어린 시절에는 내가 뭔가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성인이 될 무렵에는 이미 대단한 일을 해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였다. 20살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상처받기 쉽고 말 잘 못하는, 내 감정을 정리하는 법조차 모르는 그냥 꼬맹이다. 여전히 게으르고 여전히 겁이 많다. 현실도피성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를 좋아한다. 여느 젊은이들과 같이 세상의 형태에 화를 내지만, 그것을 바꾸기 위해 뭘 어떻게 해야겠다고 결심하지는 않는다. 나는 내가 외국에 나가 일할 줄 알았다. 그리고 행복하고 멋지게 살 줄 알았다. 내가 동경했던 사람들을 보며 언젠가 저렇게 되겠노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사람들 역시도 결국에는 인간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와 함께 내가 결코 특별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 역시도 알게 되었다. 대학에 합격했다. 원하는 대학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서울 내 4년제, 그럭저럭 명문대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대학이다. 새로 산 옷을 입고 새로 산 가방을 매고 학교에 갔다. 그리고 이제는 뭔가 새로운 세상이 내 눈 앞에 펼쳐질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내가 그곳에서 알게 된 것은, 결국 그곳에서도 나는 '나'일 뿐이라는 사실이였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아마,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 아이의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고, 주위에서도 계속 산타는 없다고 수근거렸을 터다. 하지만 계속 조용히 마음 속에는 믿음을 품고 있던 꼬마가 처음으로 제대로 알게 된 거다. '산타는 없다'라고. 결국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다. 산타는 전에 그랬듯이 여전히 계속 없을 것이다. 꼬마 역시도 계속 살아갈 것이다. 그래도 뭔가 허하다. 문턱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뭔가 목표를 달성한 순간, 그 문턱을 넘은 순간 무력감이 몰려오는 현상이다. 나는 대학에 오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그래서일까 지금 공허함을 느낀다. 내가 노력한 게 결국 이런 것 때문인가 하는.
  • 나는 어린 여자이며, 여자대학에 다닌다. 공격받기는 완벽한 대상이다. 그리고 나한테 여대생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순간부터 나는 이 사회의 미소지니를 제대로 깨닫게 되었다. 난 최근 생전 처음으로 남녀차별의 타깃이 되었고, 그 즉시 끔찍한 공포가 몰려왔다. 그건 그 생각없는 언어와 그 사람의 표정 때문만은 아니였다. 그 순간 직감적으로 내가 앞으로 이런 취급을 자주, 언젠가 둔감해질 때까지 자주 받게 될 것이란 사실을 알았다. 도무지 이 사회를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내가 꿈꾸었던 미래가 가로막힐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선배들은 계속 싸우고, 바꿀 것이며, 우리는 남녀차별이 종식되는 순간 그 과도기에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무서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우물 안 잔잔한 파도만 알고 있던 개구리는 처음으로 바깥 숲에 내던져졌고, 아직 이 세상이 그다지 상냥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공포라는 것은 우울하다.
  • 무력함, 절망감, 공포. 분노나 증오라는 감정보다 먼저 두려움이 찾아들었다는 사실은 별로 놀랍지 않다. 난 원래 남을 잘 미워하지 못하니까. 내가 착하다거나 그딴 이유 때문은 아니다. 증오라는 감정은 본래 최소한의 자존감이 뒷받침되어야 나올 수 있는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간단히 말해서, 분노할법한 그 상황에 대해 나의 책임보다는 그 사람의 책임이 더 크다고 믿을 수는 있어야 한다는 거다. 내 바닥을 치는 자존감은 그런 걸 허락하지 않는다.
  • 아직까지도 어린아이처럼 환상 속에서 부유하고만 있다. 언제쯤 현실에 발을 디디게 되려나. 내게 남을 비난할 권리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생각 없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를 '믿는' 사람들이 싫다. 물론 이 믿음이란 인류애라든가 정의, 연인의 사랑 같은 개념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며, 자신의 사고방식이 완전히 틀렸을 수 있다고 의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싫다. 남을 이해하려들지조차 않는 공감능력 없는 사람들이 싫다. 물론 나 역시도 이런 비난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나는 오늘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에게 주었고, 얼마나 성찰 없이 살았으려나.
  • 도대체 내가 왜 한반도 평화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걸까. 북한에 대한 틀에 박힌 사고에서 사람들이 좀 벗어나 주었으면 한다. 네이버 댓글이 개판이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한반도 평화를 바란다"라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따뜻한 글에 "역시 여자들은 주적 개념 개판임ㅋ 빨갱이년 북한은 쳐죽여야 함 더러운 빨갱이새끼"란 댓글이 달리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그걸 보자마자 인류애가 뚝뚝 떨어지더라. 공산주의를 욕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대부분이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그 개념조차 모른다는 것은 비극이다. 물론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실에 일단 덤벼들어 피아 구별 없이 물어뜯는 사람들은 유사 이래 계속 존재해 왔고, 나 역시도 어느 정도는 그런 인간 부류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북한과 반공을 조직적으로 이용해 온 이 땅의 기득권층은 그런 인간들을 생산해내기 위해 지난 수십년 동안 심혈을 기울였을 터다. 공산주의라는 단어의 뜻을 알기 이전에, 우선 공산주의를 증오하게 만들었을 터다.
  • '20대에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가슴이 없는 사람이고, 40대에 마르크스주의자인 사람은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라고 했었지. 내가 마르크스에 아는 사실은 파편화되어 있으며 그 깊이도 대단히 얕다. 사탐과 생윤에서 배운 내용과 내가 혼자 찾아 읽어본 책 몇 권이 내가 아는 지식의 전부이다. 하지만 그의 사상에 대해서 관심은 가지고 있다. 사회주의는 인간에 대한 기대치를 너무 높게 잡았고, 그 결과 거하게 실패했다. 하지만 그가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또다른 사회구조가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줬음은 분명하다(거하게 망했지만). 마르크스주의 토론 동아리에 들어가볼까 고민하는 중이다. 왜 그렇게나 많은 지식인들이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건지 배우고 싶다.
  • 내가 증오하는 건 파시즘이다. 여기에는 별 주저 없이 증오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
  • #MeToo #WithYou 표창원 의원님께서 트위터에 올리신 글을 읽고 울고 말았다. 그래, 일단 무고죄로 의심하는 것 역시도 무고죄에 해당된다. 가해자가 작은 것 하나라도 잃을까봐 전전긍긍하는 사이, 피해자는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하고 폭로에 나서야 했다. 그것을 기억하자. 내가 틀린 것은 아닌지 뼈저리게 의심했다. 그리고 아직도, 지금도 의심한다- 나 자신에 대한 의심을 멈추는 순간, 나는 사회적 존재로서 나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일 테니까. 하지만 내가 틀린 것인지 죽도록 의심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이런 여론이 죽도록 두려웠다. 권력형 성범죄에서, 약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명령을 들어야만 했던 여성들에게 '왜 반항하지 않았느냐, 왜 지금 와서야 밝히는 것이냐, 너도 원했던 것이 아니냐, 왜 멀쩡한 남자 인생 망치려 드느냐'라고 묻는 것이, 그리고 아무도 그런 분위기를 비난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성범죄에 피해자의 책임이 있을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들이 두려웠다. 성범죄의 대책으로 여성을 사회 일선에서 배제시키는 것을 당당하게 주장하는 그네들이 두려웠다. 상처받았다고 말하는 피해자보다,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에게 우선적으로 감정이입하는 이 사회가 끔찍했다. 그 누가 피해자를 꽃뱀이라 의심할 권리를 가지는가. 그 누가 아직 입증되지 않는 피해자의 주장을 거짓말로 몰아 2차 가해를 할 수 있는 도덕적 권리를 가지겠는가. 표창원 의원님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가 틀렸다고 말해 주셨다. 지금 우리가 여성이 부조리에 굴복하는, 패배의 순간이 아니라 부조리가 끝나가는 과도기의 순간에 서 있을 뿐일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주셨다. UN은 여성정책에 대해 대한민국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 성범죄의 기준을 '협박당한'에서 '동의 없는'으로 바꿀 것. 사이버 성폭력에 대한 제재를 실시할 필요가 있음. 부부 간 강간 역시 범죄로 규정할 것.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막아야 함. 성폭력 피해자를 무고죄나 명예훼손으로 몰아가는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성폭력 피해자들을 침묵하게 하고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킬 의욕이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가. 의미 없는 통계를 늘어놓는 대신, 한국의 여성을 보호하고 남성과 동등한 수준의 인권을 누리게 할 구체적 대책을 한국은 제시해야 한다.
  • 내일부터는 게으르게 살지 않아야지... :3
  • 비가 내리는 날에 지하철을 타고 한강다리를 건넜다. 하늘은 흰 물감을 짙게 덧바른 것처럼 뿌연 회색이였고, 한강에서 피어오른 물안개는 시야를 흐리게 덮어 서울의 풍경을 조금 기묘한 분위기로 물들이고 있었다. 다리 위에서 지하철 두 대가 서로 엇갈려 지나갔다. 그 속도 때문에 안의 사람들은 흐릿한 형체로만 보였다. 그 풍경은 정말 기이했다. 비 내리는 날이 다 그렇듯이, 빗소리에 소음은 묻히고 세상은 젖은 흙내음 풍기는 정적에 잠긴다. 그리고 빗방울 너머로 보이는 시야는 늘 뭔가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비가 내리는 날에는 그 묘한 두근거림이 있다. 불투명해진 세상이 주는 비 오는 날만의 그 느낌이 있는 것 같다.
  • 흠, 내 문체는 지독한 화려체로군요! 자중합시다!
  • >>12 저 글, 난 되게 좋았는데. 산뜻하면서도 왠지 몽롱한 느낌.
  • >>13 어... 보는 사람이 있었구나! 그렇게 말해 주니까 뭔가 기쁘면서도 많이 쑥쓰럽네... 으음, 내가 표현을 덕지덕지 바르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서 영 글이 매끄럽지 못한 것 같더라고. 사실 저건 감성포텐 터져서 갈겨쓴 흑역사야... ;-; 조금씩 고쳐보려고 해.
  • 대학수업은 재미있다. 내가 사회학을 좋아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즐거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미디어는 어떻게 사회와 상호작용하는가? 인간은 사회 속에서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는가? 분명 내가 어렴풋하게 이해하고 있었던 내용이다. 하지만 그것을 전문용어로 정리하고, 그 흐릿한 개념을 정의할 수 있는 단어를 배우는 것은 정말 즐겁다. 무우우울론 내 이런 감정이 무의식적인 쇼비니즘에 어느 정도 기인함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뭐 괜찮아, 실제로 잘난 척만 안 하면 되잖아! 내 무의식의 저열함이 내 행동을 바람직한 쪽으로 교정해 준다는 게 조금 웃기다. 하지만 사회학을 배우고 있으며, 이후 언론계나 NGO 쪽으로 진출하고 싶은 내가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큰 고민이다... 아직도 친한 친구가 없어. 그냥 내 일만 열심히, 잘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말도록 하자. 내 잣대로 남을 정의하지 말 것, 말하기보다는 들을 것, 내 의견이 틀렸을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을 것. 항상 기억하자.
  •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나뭇가지에 매우 옆은 노란색이 도는 것을 보았다. 봄이 오려나 봐.
  • 겨우내 잘 벼린 칼마냥 날카롭고 매서웠던 바람이 말랑해졌다. 겨울비와 봄비는 그 냄새부터 다르다. 봄에는 항상 가슴이 설레온다. 누렇게 말라버린 풀잎 사이로 여린 새싹이 고개를 들고, 그렇게 하나 둘 솟아나는 연둣빛 잎사귀들을 신기해하다 보면 어느샌가 세상은 밝게 빛나는 연녹색으로 물들어 있겠지. 옛날 사람들은 분명 봄을 보며 신의 존재를 믿게 되지 않았을까. 모든 것이 잠들어버렸던 땅이 깨어나는 모습은 현대인의 시선으로도 충분히 경이롭다. 우리 집 뒷편에는 야생 제비꽃 군락이 봄마다 피어난다. 올해에도 그 보라색 물결은 올 것이다. 제비꽃은 매년 피지만, 그 꽃이 피어나는 순간은 항상 짧아서 보는 이에게 아쉬움을 남기게 한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이 내가 봄을 기다리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사시사철 피어있는 꽃에 도대체 무슨 매력이 있나.
  • 나는 내가 동경하는 투사가 되기에는 지나치게 유약하고, 내가 꿈꾸었던 예술가가 되기에는 지나치게 투박하고, 그렇다고 다른 뭘 잘 하는 것도 아니였다. 애매한 재능이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없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많이 아쉬우니까. 내가 미술을 그만두었던 건 반쯤은 충동적인 결정이였다. 내가 그 당시 충격에 빠져 있었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는 건 변명거리가 될 수 없으리라. 그래도 그 이후로 잘 이겨내 왔다고 생각했는데, 친구가 물어본 '후회하지 않냐'는 질문에 이렇게나 우울해질 수 있을지는 몰랐다. 평생 살아왔던 길, 그리고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길에서 튕겨져 나온다는 게 이런 감정을 수반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사실 처음으로 실감했다. 난 미술을 포기했구나. 이 감정이 혼란인지 공포인지 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낯선 영역에, 어쩌면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곳에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아 버렸다. 진한 홍차를 마신 것처럼 입 안이 쓰다. 안 그래도 유약하고 겁 많은 나는 늘 그랬듯 겁에 질려 있다. 이미 지나간 수많은 어제들은 후회되고 앞으로 가야 할 앞날은 두렵다. 지금 내가 달리 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현실에 충실한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리라. 감정은 마음 속에서 낡디낡은 명주실처럼 빙빙 꼬여 얽힌다. 본디 그 하나하나에 이유와 이름이 있었겠지만, 이젠 복잡하게 헝클어진 수많은 감정들이 한데 뭉뚱그려져 '한없는 비참함과 우울함'이라는 애매하고 울적한 덩어리로 변해버렸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배부른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 정도는 안다. 나는 분명 지난 1년간 제법 인상적인 일을 해냈고, 진득한 아쉬움은 남을지언정 설정해 두었던 목표를 이루었음은 분명하니까. 내 이성은 내가 나 자신을 한심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비참한 기분을 느낄 합당한 이유도 물론 없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입맛은 쓰다. 그리고 지금 나는 많이 슬프다.
  • 그리고 오늘 밤까지 우울해한 뒤에, 내일은 맛있는 커피를 먹을 생각이다. 그러면 기분이 조금 나아지겠지. 그 뒤에, 밝은 마음으로 고민해 보도록 하자. 괜찮아. 아직 스물이다. 이젠 어리다기보다는 젊다고 불러야 하는 나이지만, 내게 아직 수많은 시간이 허락되어 있음은 분명하다. 분명 나에게 맞는 길이 있을 거야. 괜찮아. 딱 오늘 밤까지만 우울해하자. 실컷 자기동정과 모순, 끝없는 자학에 빠졌다가 오자. 그리고 내일은 혼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하자.
  • 막연했던 동경이 현실에서 나아가야 할 길로 나타난 순간 꿈 하나를 포기했음을 깨달은 순간 나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고 부끄럽게 여겨진 순간 그냥 모든 것에서부터 도망치고 싶어진 순간 에휴. 유우니 소금사막에 정말 가보고 싶다. 항상 그 꿈을 꿨었다...
  • 이성으로는 감성을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궤변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난 아직 굉장히 미성숙한가 봐. 감정을 꾹꾹 누른다거나 합리적이고 건조한 선택을 한다거나,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다. 그냥 지금은 우울해할래 :( 딱 여덟 시간만.
  • 내가 상처에서 회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하루 반이구나.
  • 오랜만에 일기다. 난 많이 어리다. 그걸 얼마 전에 제대로 알았다. 난 아직도 내 감정을 다룰 줄 모른다. 기쁨을 속에 끌어안고 내 안을 환하게 밝히는 법도, 분노를 잘 조절해 효과적인(하지만 치명적이지 않은) 무기로 만드는 법도, 슬픔을 삭혀 단단한 결정으로 굳혀내는 법도 모른다. 내 감정은 단편적이고 한없이 가볍다. 한 순간 강렬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그런 감정이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내 행동은 크게 변한다. 정말 어린아이 같다.
  • 건강하게 화낼 수 있는 법을 배우고 싶다. 착한 아이 콤플랙스가 정말 너무 심각하다.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무슨 말을 할 줄 모른다. 다만 상대방이 내 의중을 파악해 주기를 빌 뿐이다. 정말 어린애 같다. 오히려 거리가 조금 있는 상대에게는 내 의견을 건조하고 깔끔하게 피력할 수 있는데.
  • 학교에서 파는 브라우니 쿠키의 평가가 좋아서 사 왔다. 가족이 마음에 들어해서 많이 기뻤다. 표정을 숨기는 법도 잘 모르다보니, 동생이 그렇게 좋냐고 엄청 놀려댔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어.
  • 남미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건 내 오랜 꿈이다.
  • Skillet 노래 정말 좋아. 신념과 용기에 대한 노래가 많아서 항상 응원이 된다.
  • 과... 과제해야 하는데... 영타가 느려서... ;-;
  • 공감가는 글귀들이 많네. 치열하게 사는 것 같아서 보기좋다. 머릿속에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들이 글로 늘여있으니까 기분이 묘해. 늦었는데 과제하느라 애쓰네. 오늘 하루도 수고했고, 내일은 더 좋은 하루를 보내길 바라.
  • >>29 안녕. 좋게 봐줬다니 기쁘지만 어쩐지 내가 사기를 친 느낌이야... 난 치열하지 않아, 나처럼 게으른 사람 없다구? :-: ㅎㅎㅎㅎ예쁜 말 고마워. 이 스레에 공감가는 말이 적혀 있었던 걸까, 내가 적은 레스들 중 어떤 부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내 안의 울적함이 아니라 사소한 기쁨에 공감했던 것이기를 바랄게. 레스주도 오늘 하루 수고했어. 더 나은 내일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좋은 밤 되기를 바라.
  • 수강 철회 깜빡하고 못했다아아아아아아아아!! 열두시까지라고 알았는데... 설마 여섯시까지였을 줄은...!! 이 교양을 안고 가야 한다니... 1학년 1학기 학점은 곱게 접어 하늘 위로 날아가게 생겼네. 안 그래도 선배들이 경고했는데. 여기 모인 너희들은 분명 너희 고등학교에서는 상위권이였을 지 모르지만, 여기서는 너희가 기본 스탯이고 더 잘난 사람들 많을 거라고... 니들이 고등학생 때 그래왔듯 A 당연히 받을 거라는 기대는 접으라고 했는데...
  • 내가 존경하는 친구가 사과를 받아줬다. 기억도 제대로 못하던 일이였지만 어쨌든 사과해줘서 기쁘고, 고맙다고 말했다. 기쁜 건 내 쪽이야. 무지는 죄의 이유는 될 수 있겠지만 면죄부는 될 수 없다는 걸알고 있어. 내가 생각 없이 휘두른 무지를 용서해줘서 고마워.
  • 봄이 된 것 같다. 학교에는 새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정문에 서 있는 커다란 벚꽃나무 앞에서는 계속 찰칵찰칵 카메라 소리가 나고, 바람은 옅은 풋내를 안고 흐른다. 그리고 중간고사거 찾아와 버렸어...
  • 삶이 장미 가득할 정원일 것이라고 너에게 말한 이 그 누구도 없을진데, 왜 그렇게 억울해 하는가.
  • 신념을 짊어질 만큼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 >>35 좋겠다. 좋은 하루?
  • >>36 공강이였으므로 행복한 하루 :) 오랜만에 일기!
  • >>37 안자고 뭐해 ㅋㅋㅋ
  • 소설을 쓸 때는 항상 초입, 절정부, 마무리만 생각나곤 하지. 지금의 나도 똑같아. 하고 싶은 것도, 내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 방식도 있지만 그 과정을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거야. 아니, 아닐지도 모르겠어. 오히려 지금은 모든 것이 어려워. 도대체 어떤 식으로 살아야 좋은 걸까. 난 모든 이들이 그렇듯 사랑받고 싶어, 그리고 모든 이들이 그렇듯 선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만 그 방식을 정말 모르겠어. 내가 아직 어려서일까, 아니면 어리석어서일까. 어린 시절 한 여성 여행가의 수기를 읽으며 부풀었던 나의 포부는 현실 앞에서 낡은 사진마냥 색을 잃고 그 가치를 잃었지. 이제는 그 꿈의 가치마저도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야. 그 꿈을 처음 마음 속에 품었던 순간의 설렘은 아직도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글쎄. 이젠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어.
  • >>38 감정 쓰레기통에 감정 쏟아내는 중이얌
  • >>40 감정 내가 다 먹어줄테니 얼마든 쏟아내라고 :V
  • 난 프로불편러고 그 사실이 자랑스러워. 불편해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바뀌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솔직히 무서워. 이렇게 상처받고 욕먹으면서 싸울 만큼 나의 가치에는 의미가 있는가. 내가 지금 소중히 품는 가치는 과연 옳은 것인가. 믿고 따를 신이 없는 무신론자라면 으례 겪게 되는 혼란인 걸까, 아니면 그냥 내가 부족할 뿐인걸까. 나는 더 나은 내일을 원해. 그것만은 분명해. 근데 그거 말고는 잘 모르겠어...
  • >>41 ...그만둬요ㅠㅠㅠㅠ
  • >>43 :Vv ?
  • 참 이쁘게 글을 쓰고 참 치열하게 사는 사람같아. 멋있어 정말.
  • 가장 크게 환멸을 느낀 순간이라고 하면 역시 한비야 자작 논란이 터져나왔을 무렵이겠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하기 직전부터 그녀의 세계여행 수기를 읽으며 마음을 한껏 부풀렸다. 정말 진심으로 그녀를 동경했다. 치열하게 가슴 뜨겁게 살아가는 삶, 하고 싶은 것을 하며 가치에 목숨을 바치는 책 속의 그녀를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 내 가치관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도 그녀일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라. 뜨겁게 사랑하라. 사람을 만나라. 경험하라. 여행을 떠나라. 이 장소는 너에게 너무 좁다, 세상을 향해 뛰쳐나가라' 그녀의 조언처럼 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세계일주를 꿈꿨고 언젠가 약자를 위해 생애를 바칠 수 있기를 소망했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 싶다는 한 어린아이의 오만하고 유치한 소망은 스물이 된 오늘까지도 내 마음 한켠에 남아 있다. 뭐, 그녀를 롤모델로 삼고 믿었던 그 감수성 흘러넘치는 어린애는, 지금은 한비야 논란과 월드비전 비리에 쇼크먹고 어딘가 숨어서 웅크리고 있지만. 한비야 관련 논란을 처음으로 알았던 날, 참 오랫동안 순진한 꼬맹이였던 나는 처음으로 뭘 어떻게 믿어야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배신감에 훌쩍거렸다. 사실 그 사건이 산타가 없다는 것보다 더 쇼크였던 것 같다. 그녀는 내 어린 시절의 우상이였으니까.
  • >>45 솔직히 말하자면, 나 같은 찌끄레기한테 그런 말 할 때마다 부담스러워 죽을 것 같아... ;-;
  • 세상이 왜 이렇게 생겼냐며 화를 내고 혼자 울부짖는 건 젊은이의 특성이자 특권이라지만 난 그게 좀 심한 것 같다.
  • 내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이 땅을 탐험하기에는 너무 늦어 있었다. 그렇다고 별들 사이를 탐험하기에는 너무 일러 있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했던 말이였던 것 같다. 나도 지금 내가 애매한 시대에 태어난 건 맞다고 생각하지만 내 앞의 수천 세대가 그 생각을 했었겠지.
  • 글읽다가 작곡영감(노인아님ㅎ) 떠오름 ㄳ
  • 20년 동안 살던 동네의 구석구석을 최근 돌아볼 일이 있었다. 평생 앞을 지나다녔지만 한 전도 가보지 않았던 야생화 보호구역에 가 보았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하얀 꽃들이 소담하게 피어 있었다. 세상과 조금 격리된 것 같은 곳이였다.
  • >>50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겠네.
  • 진짜 혼자있고 싶어. 불가지론적 무신론자라는 지독하게 메마른 사상의 소유자인 주제에 자꾸 산사에 찾아가는 이유는 내가 인간에 질렸기 때문인가? 나이 스물에? 우와. 나 진짜 특이한 사람인 건 확실하구만.
  • 시작하는 게 두렵다. 무능한 나를 내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그 순간이 두렵다.
  • 그냥 진지하게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도박이잖아.
  • 언제쯤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어.
  • >>50 난 이게 닉네임이라고 생각했는뎈ㅋㅋㅋㅋㅋㅋ 말 그대로 작곡 영감이였구낰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이 정도로 우울한 날도 오랜만이다. 다 때려치고 하와이행 편도티켓을 끊어버리고 싶은 그런 날.
  • >>57 궁금한데 나중에 곡 완성하면 들려주면 안될까? 엌ㅋㅋㅋㅋㅋㅋㅋ 나도 내가 어이없다 진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 빵터졌네 진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울했는데 갑자기 기분 나아졌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나 뭐야 진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작곡영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웅냥웅냥
  • 오늘은 진짜 의식의 흐름이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몰라 알게뭐람
  • 술이라도 마셔야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ㅜ진짜 우울했는데 이 실수 하나 발견하고 진짜 빵터졌네 진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래 뭐 어떻게든 되겠지.
  •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보자.
  • 불안장애의 초기 증상일런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카페인 과잉이거나.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진보하고, 인생은 아름답다. 타투로 새기고 싶은 문구다. 이걸 되뇌이며 얼마나 용기를 얻었던지 모르겠다. 여성에게는 조국이 없다며 절망스럽게 중얼거렸던 친구가 있다. 나는 그 말에 어느 정도로 공감했었지? 칵테일 때문인지, 알코올처럼 그 기억이 휘발되어버렸다.
  • 실제로 받은 음식은 가게 앞에 전시된 모형 음식보다 항상 초라했다. 실제로 본 바다는 여행 책자 안의 바다보다 더러웠다. 카페 후기를 읽고 기대했던 향기와 실제로 내 앞에 놓여진 커피의 향기는 늘 달랐다. 실제로 내가 겪은 취기는 소설 속의 묘사와는 달리 어지럽고 불쾌했다. 어린 시절에 내가 본 어른들은 항상 멋있었는데, 정작 어른이 되니까 뭔가 많이 다르더라.
  • 나는 겁쟁이고 그것을 부정할 방법도 생각도 없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나름대로의 유구한 세월동안 난 항상 겁쟁이였다. 넘어지는 게 무서워 걸음마가 늦었다. 사람이 무서워 친구를 잘 사귀지 못했다. 틀리는 게 무서워 문제를 잘 풀지 못했고, 발표하다가 울어버리는 것도 잦았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 것에 빠져들었다. 활자로 인쇄된 세상은 건조하고, 단정하고, 무엇보다도 나를 해치지 못했다. 그 때문이였을 것이다.
  • 처음으로 책을 나 혼자 읽었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아직 우리 집 서랍의 세번째 칸에 키가 닿지 않을 정도로 작았던 시절이였다. 창문에서 연노랑색 햇살이 비쳐들고 있었고, 그 때문에 먼지가 반짝거리는 게 보였다. 집 안은 조용했다. 나는 낡은 노란색 동화책을 책장에서 꺼냈다. 표지는 나 말고도 많은 아이들을 거쳐서인지 매끄럽고 보드라웠다. 동화책이라면 으례 그렇듯 코팅되어 있는 종이를 넘길 때의 그 감촉을 기억한다. 문자가 의미가 되어 머리에 박혔던 순간이 기억난다. 나는 말을 유창하게 할 수 있게 된 것보다 읽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 것이 더 빨랐다. 이건 내가 수동적인 인간이라는 것의 방증일지도 모른다. 나는 읽는 것을 사랑했다. 책 속의 세상에서는 항상 방관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항상 행동하는 것을 지독하게 두려워했으니까. 그래서 지금까지도 내 인생을 제대로 직시하고 있지 못할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인생에서조차 방관자가 되고 싶어한다. 행동하지는 않고 이래저래 평가하고 싶을 뿐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 난 정말 모르겠다.
  • 우울이라는 감정은 부드러운 실크 천과도 같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다. 서늘하고, 매끄럽고, 부드럽고, 매우 얇게 하늘거린다. 매우 얇은 천이 한들거리며 나를 감싸안는 그 감각.
  • 동경이 현실이 된 순간 나는 공포에 빠졌다.
  • 난 아직도 모든 것에 서툴다. 바람직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학원이 있다면은 얼마나 좋을까.
  • 역시 불안할수록 생각도 말도 글도 툭툭 짧게 끊기네.
  • 우울함이 나무였다면 지금쯤 내 모세혈관을 따라 뿌리를 뻗고 내 심장 위에 짙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겠지
  • 여행을 한다면 중앙아시아나 남미로 가고 싶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다. 그 사람들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치게 될까.
  • 스물이란 나이는 참 애매하다.
  • 나의 스물이 절반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고민하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것에 소비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우물쭈물하며 내가 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으려고 한다. 독서광이던 한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그녀 스스로를 소설 속 주인공에 투영해보기 시작했다는, 이미 클리셰일 정도로 진부한 이야기다. 나는 무신론자다. 이 세상에는 신이 없다는 전제 하에 살아가는 불가지론자다. 신의 존재와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몬스터의 존재 가능성을 동급으로 두는 나는 앞으로도 내 인생에 종교나, 신이나, 영혼 같은 것이 자리할 자리는 없을 것이라고 감히 확신한다. 하지만 그런 건조하다면 건조한 사상을 가진 주제에 나는 아직도 내가 특별하기를 바란다. 종교가 선민사상에 기반을 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제법 많다. '이 세상을 굽어살피는 절대적 존재는 우리를 살피고 보살핀다, 우리는 특별하다, 우리는 남들과는 다르다.' 이런 욕망들에 뿌리를 둔 것이 종교라는 것이다. 반면에 무신론자는 그런 선민사상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그런 생각을 유아적이라고 비웃는다. 리처드 도킨스가 그러했고 러셀이 그러했다. 무신론자는 인격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따라서 신이 사랑하는 특별한 존재 따위도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 존재가 세상의 중심일 것이라는 사고를 배격한다. 한 인간의 소망을 위해 세상 전체가 움직이는 부조리한 상황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무신론자인 나는 아직도 세상이 나를 위해 움직여주기를 바란다. 이 세상에서 나의 소망에 따라 움직여주는 것은 결국 나 자신밖에 없다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러하다. '어떻게든 되겠지, 설마 그러겠어, 내가 설마 실패하겠어' 같은 안일하고 게으른 생각들이 지금 나를 짓누르고 있음을 느낀다. 무기력증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내 천성이 나약하기 때문인가. 난 여전히 기적을 소망한다. 하늘이 텅 비었다고 생각하는 무신론자 주제에 거기에 누군가 자비로운 절대자가 있어서 나를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아이러니라는 근사한 호칭보다는 그냥 찌질하다는 이름을 가져다 붙여야 할 상황이다.
  • 난 정말로, 정말로 유약하고 겁이 많다. 나는 누군가를 감히 증오하는 것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겁쟁이다. 이 세상에서 나 자신을 가장 혐오하는 나는 항상 내 행동에 대해 지독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그 기준에 맞지 못한다면 그 즉시 모든 분노를 나에게 퍼부었다. 가장 끔찍한 육아방법 중 하나이리라. 나 자신에게 있어서 나는 항상 충분히 선하지 못했고, 충분히 지혜롭지 못했고, 충분히 성실하지 못했다. 고등학생 시절 상담실에서 상담 선생님은 티슈를 나에게 건내며 조언하셨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완벽하지 못해. 너무 완벽하려고 노력하지 마. 그리고 난 울음을 멈추려고 노력하면서 웅얼거렸다. 하지만 그러다가 제가 정말 쓰레기가 되어버리면 어쩌죠. 그 날 상담선생님께서는 내가 나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그 사실을 납득시키려고 시간을 다 보내셨다. 그리고 난 그 날 정말 많이 울었다. 그 대상조차 잃은 지독한 부채감과 그 목적도 잃은 공포가 내 머릿속을 항상 채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내가 깨닫게 된 것은 그 후 계절이 바뀌고 난 뒤였다.
  • 감정을 다루는 법을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떨 때 우는 게 좋고 어떻게 화내는 게 좋을지.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을 그냥 내 안에서 삭이기에는 내가 너무 약한 것 같고.
  •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내가 지독하게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세상이 나에게 부당하게 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내 생각보다 굉장히 한심한 인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 한 달의 기한이 있었던 과제를 하룻밤 안에 끝내려고 발악하는 중이다. 게으름이란... 뭘까...
  • 누군가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 자신이 이미 자살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도. 나는 왜 이렇게도 현재에 충실하지 못할까.
  • 옳은 사람이라는 게 하나의 형태로 정의될 수 없다는 것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내가 아직 너무 어리고 멍청한 것 같다.
  • 난 망했어
  • 내 학점은 이미 망했어 그냥 등록금 아까워서 남은 시험을 보러 갈 뿐
  • 스페인어를 공부하다 보면 가끔씩 북한이 하는 말에 이입이 된다. "이 망할 제국주의자 서방놈들아 너희가 한국어를 배우란 말이다!(이북 사투리로)" 혐오란 이렇게 의미도 논리도 없는 일방적 짜증에서 시작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핳하ㅏㅏ하하ㅏㅏ핳하하ㅏ 스페인어 어렵다. 언젠가 남미 여행가고 싶어서 배우기 시작했는데 후회하고 있어...
  • 낙태죄 위헌이라고 판결났으면 좋겠다. 미프진 정도는 그냥 구입할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
  •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젊은이의 오만이리라. 내가 추구하는 이상과 다른 사람들이 추구하는 이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언제쯤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나와 생각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전부 '멍청하고 오만해서' 나와 생각이 다른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순간이 기억난다. 정말 많이 놀랐었어. 그리고 그 날 환멸감에 끙끙 앓으며 자기혐오를 삭히려고 부던히 노력하던 열일곱살의 내가 기억난다.
  • 무신론자와 유신론자의 토론 같은 거지. 세상은 경험적 지식을 토대로 정의할 수 있다/세상은 경험적 지식만으로는 정의할 수 없다. 이렇게 기본적으로 생각의 토대가 다르니까 서로를 이해할 수도 없고 여간해서는 서로에게 설득되지도 않아. 사상의 충돌이란 건 참 어려운 거다. 난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가 절대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반면, 친구 어머님은 절대적이라고 여겼었다. 그래서 마르크스에 푹 빠져 있었던 당시의 나와, 시장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셨던 그 분은 정말 첨예하게 대립했었지. 가장 기본적인 요소에서부터 추구하는 가치가 달랐으니까. 어떤 가치를 가장 높게 두느냐, 그 사실에서부터 사상의 차이는 시작되고 어떤 사상이 옳으냐란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 아직 난 무지하고 경험 부족한 20살 새내기일 뿐이니까, 함부로 뭔가를 판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기억하자. 난 정의가 아니다, 나에게는 부조리를 정의할 권리가 없다, 난 틀릴 수 있다, 소중히 믿는 것이라도 사회 정의와 경험적 증거에 어긋난다면 주저없이 폐기하라, 사랑하고 용서하고 노력하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의 주장을 함부로 혐오하지 말자. 제발.
  •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환멸이 느껴지는 밤이다.
  • 술 마시고 싶다 으어어
  • 페미니즘을 배우고 내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여자한테 어울린다, 남자한테 어울린다 이런 말들이 결국 인간을 주체적인 존재로서 존중하는 대신 일반화와 편견으로 옭아매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 교양영어 마지막 문제는 '여성들만 다니는 대학에 재학하는 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였고 나는 거기에 '사회의 편견이 배제된 환경에서, 학생들은 여성 이전에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개인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라고 적었다. 수능 망치고 들어온 대학이라서 처음에는 불만이 많았는데 이 역동적인 학풍은 정말 마음에 든다. 학내 불의에 단결해 싸우는 젊은 지식인들의 모습은 내가 동경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무엇보다도 문제 제기가 자유롭고 모든 의제에 대해서 열린 토론이 가능하다는 게 정말 인상깊었다. 무신론자와 유신론자가 격렬하게 토론하고, 페미니즘과 성소수자같이 진보적인 의제가 검열 없이 오갈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날 어느 정도 위축되게 했다. 난 고등학교에서는 전교 1등이였다. 몇 번인가 1등 자리를 놓친 적도 있었지만 10등 바깥으로 벗어났던 적은 없었다. 모의고사 백분율도 상위 5% 안에는 항상 넉넉하게 들었다. 사실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는 타입도 아니였기에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오만방자함이 자라고 있었다. 대충 해도 최상위권 유지는 어렵지 않구나. 치열하게 살아가지 않아도 괜찮겠구나. 그런데 대학에 오니 내가 제일 무지한 것 같았다. 사람들이 격렬하게 토론하곤 하는 각종 사회적 의제에 나는 발조차 디딜 수 없었다. 그나마 알고있던 모호한 배경지식으로 아는 척을 했다가는 전문적 지식과 세련된 문장력으로 폭격을 맞고 나가떨어지기 일수였다. 난 내가 굉장히 오만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회적 이슈에 제멋대로 결론을 내렸던 결과가 결국 이런 꼴이구나.
  • 아무래도 상관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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