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일단 내 소개를 하자면 10년차 화랑도 선법 수련생 이고 그리고 선원에서 배운 부적,주문,영안 등등에 대한 것을 알려주려고 해 스레들을 읽어보니 오컬트에 대한 오해들이 많더라고? 그래서 그런 오해들을 풀어주려고도 해 ...일단 레스로 질문을 해주면 내가 그걸 보고 답해줄게. 1판 다운 링크: https://drive.google.com/file/d/1uRtXcgULHAUsgWBoD_Nq6iugharhH3jz/view?usp=sharing 2판 다운 링크: https://drive.google.com/file/d/15ML66h0_6f5QAFSVOzMaBOFFBKhiM7Dl/view?usp=sharing 3판 다운 링크: https://drive.google.com/file/d/17L2kb0zn4ISiP3RFPGnOwA_Jr2W6c8ry/view?usp=sharing 이전판(1판+2판+3판) 바로가기 링크: http://thredic.com/index.php?document_srl=4525148

사칭범들 땜에 떠난다니ㅠㅠ 스레주 오컬트계 떠난다는게 스레딕 오컬트판을 떠난다는거야?

399 그질문은 너님이 성적올리는 주술이나 부적이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인정하고단정짓고 질문을 빙자해 스레주에게 그걸 신통력으로 멋대로 사용하는것마냥 보일수가 있지 .질문에 앞서 태도의 문제지.먼저 내 의견은 399 레스주는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너의 의견부터 표출하도록하는게 어떨? . 그리고 스레주의 지난 본문을 토대로 하면 부적이나 주술따위는 정이 사라진 귀신.혼에게 영향을 줄지 몰라도 정이 결합된 사람의 정신 굳센염파에겐 통하지 않는다라고 알수있지 않나. 시길마법처럼 극한의 방법으로 무의식에 각인해서 동기부여또는 자신의 능력을 극한으로 발휘하는게 맞는거 아닐까 사람이나 생활에 영향을 주는 1순위는 신체로부터 우러나온 강인한 의지 또 살고있는 터의 기운 등이지 부적 주술따위가 사람사는 세상을 컨트롤하고 영향주짘 않는다고 적어 논거 같아서... 본문 3번은 정독하면 알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또 본문속의 글중에 이미 영적인 힘을 쓰려해도 시험치는장소 수능장(학교)의터를 관장하는 존재가 단호히 부정을 막는다고 나와있어 다시 정독하길 바래. 결론은 나는 스레주와 관련없는 눈팅러지만 그런 방법이 터무니 없거니와 사용해봤냐는 질문은 좀 우껴서

>>400 오컬티스트라는건 글쓴이의 진심를 부정하는 의미임. 업. 직업.장사를 하고 이름을 알리고 이득을얻고 영달하는 사람이 오컬티스트일것이고 . 글쓴이는 지식을 나누고 오컬의 오해를 걷어준다고 글을 썼다는 동기가 있음. 오컬트는 토테미즘과 함께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거라 역사와 떼어놓기 힘든데 (문명에 기여하지 않았다라고 하면 반은 맞음.기술의 발전과 영의 발전은 다르니까. 하지만 인류 역사 건축물.문화등에 토테미즘과 종교.종교전쟁이 개입된게 너무 많으므로 단정은 무리 아닐까. 서양의학 페니실린이 개발된게 인류역사중 한 삼백년전되나? 인공지능은 레스주가 나보다 더 잘알고 있다고 생각되니 패스(인정)

>>401 하나만 더 달게 미안하며 미안하고 한편으론 레스주가 하는 생각을 이해못하는게 아니야.. 401질문은 오컬트를 무시하는게 아니고 그게 ai와 결합되었을때 잘못될 가정 (예를들어 영화 터미네이터3처럼) 합리적임 지적이고 그래 맞아. 이부분은 나도 잘 모르니 빠질거고 레스주 내가 댓글 세개 달았다고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고 단지 스레주의 진정성을 알아주어야 하며 태도가 중요하다는걸 말하고 싶었던 거야. 나도 스레주가 안떠나고 오피셜로 가끔식 근황 알려주고 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과학우선 자세는 좋은데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오컬트랑 깊숙히 관여된채 살아가고 있다는걸 기억해줘 그것도 부정한다면 당장레스주는 행운 lucky란 단어부터 써서는 안될것이야. 그건 과학에 없거든. 랜덤이란것만 있지

>>405 제가 글쓴이께 여쭤본 오컬트가 인류를 해치게 된다는 것에서 오컬트는 인공지능과 오컬트의 융합을 뜻하는 것 뿐만이 아닌 글쓴이 분이 가지신 화랑선법을 포함한 전반적인 오컬트를 말하는 것입니다. 글쓴이 분이 수련하시는 선도 자체가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하시는 것 같기에 사람을 해치는 일은 없을거 같지만;; 혹시나 만약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글쓴이가 인본주의와 오컬트 그 두 가지 중 어떤것을 선택할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있잖어 저승의 업을 관장하는 사람은 누굴까?내가 서신을 보내면 전해질 수 있는 방법이나 주술이 있을까? 떠나기전에 이 질문은 답을 꼭해줘 이메일을 남길게 Buddinghumanist@gmail.com 나도 AI쪽에 관심이 많아.꼭 여기에 답해주던지 이멜줘

글쓴이 분께서 도전하신다는 선도 이론의 수학적 알고리즘화, 인공지능에 적용하는 것을 봤을때, 오컬트와 과학의 융합이라기보다 오컬트를 공학적, 프로그래밍으로 구현하는 것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글쓴이 분도 앞 쪽에서 오컬트를 공학에 적용한다고 하셨기에.. 그리고 글쓴이께서 도전하시는 오컬트의 공학적 구현이 오컬트와 과학의 융합보다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이 높습니다. 오컬트와 과학의 융합은 유사과학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은 반면, 오컬트를 프로그래밍으로 구현한다면 그건 유사과학이 될 수 없으니 말입니다. 또한 글쓴이께서

경제적 효과가 있다고 말씀하시니, 오컬트가 가짜든 진짜든 간에 오컬트를 프로그래밍으로 구현하는 프로젝트가 실현될 가능성은 더 높아지겠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효과는 기업이 매우 좋아하니 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오컬트에 상당히 회의적인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만, 글쓴이 분이 추진하는 오컬트의 인공지능 적용 프로젝트는 상당히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글쓴이분께 또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글쓴이 분께서 제시하신 선도 원력진화론의 함수화 및 유전알고리즘 개선 말고 혹시 또 다른 적용 계획을 가지고 있으십니까?

>>406 이해했어 덧붙여 대화를 이어나갈게 제일좋은건 스레주가 매일 답변을 주는게 좋겠지만. 여기 커뮤에서 이런 대화 토의도 충분히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니.. 스레딕에선 익명에 반말이 기본이니 이해해주길 바래.. 레스주의 질문 촛점을 세밀히 좁혀야 겠는걸 일단 내가 토론을 이어가면 스레주가 하는 단전호흡과 화랑도의 선도는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스스로 영적발전에 있고 현대와서 과학에 대입하고 적용하기 시작한걸로 알고있고. 첫째 질문은 인본주의(생명중시 생명존중맞아?) 바탕으로 생명을 해할것인지 아닌지 질문인것 같은데 사람을 대상일지 구천의 영귀들 대상인지 또 다르겠지 사람을 대상이라면 글쓴이의 본문 내용과 전혀 관련없는 질문이야. 꼭 스레주가 아니라도 길 지나가는 누구라도 너 죽이고싶은 상대가 있냐?있으면 오컬트 주술힘을 줄테니 살인 할거냐?와 같지 대상이 영귀라면 사람을 해치는 악귀라면 그럴수도 아닐수도 있지 않을까? 이건 스레주 답변이 필요하겠네 정리하면 선도는 스스로를 위해 정진하는 축적된 데이터이고 필요할때 신장이나 귀신의 힘을 이용할뿐 대상이 사람상대라면 오컬트의 신통력이 정기신의 합체인 사람의 염파앞에서 살인등에 적용되지도 않을뿐더러(라고 나는 생각되며) 적용된다해도 스레주는 그렇게 하지는 않을것이며 상대가 악귀라면 모르겠네. 레스주 이 범위를 벗어난 질문인거니?

>>411 그 부분은 저도 이해를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질문하고 싶은 점은 그것이 아닙니다. 인본주의는 인간의 존재를 중요시하고 인간의 능력과 성품 그리고 인간의 현재적 소망과 행복을 귀중하게 생각하는 사상입니다. 인본주의는 인류 사회의 존엄, 가치를 중시하는 사상입니다. 그리고 글쓴이 분의 글을 읽어보면 교육, 홍익인간의 인본주의 사상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인본주의는 보통 합리주의나 과학주의, 현실주의와 같은 사상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그래서 보통의 인본주의적 관점은 종교의 신본주의, 무당이나 오컬티스트들의 샤머니즘 관점과 상반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글쓴이분은 오컬트를 하시지만 인본주의적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합리주의적 관점과 오컬트적 관점이 공존을 이룬다는 것에 상당히 놀랐습니다. 보통 이상주의를 택하여 현실도피 및 왜곡을 하기 위해 오컬트에 빠지거나 현실주의를 택하고 현실에 굴복하여 완전히 현실주의에 빠지게 되는것이 일반적입니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상반된 두 가치관은 공존을 이루기에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글쓴이 분이 현실도피나 망상도 아니고, 현실에 굴복한 것도 아니며 이상주의과 현실주의가 공존을 하는것에 놀란 것입니다. 그 예로 글쓴이 분이 공부한 선도 이론은 오컬트적 관점의 것이지만, 그것을 알고리즘으로 만들어 인공지능에 적용, 경제적 효과를 내는 것은 합리주의적 관점의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오컬트에 상당히 회의적인 관점을 갖고 있지만, 글쓴이 분이 추진하는 오컬트의 인공지능 적용 프로젝트에는 상당히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다만, 제가 여기에서 궁금한 것은 글쓴이분께서 가지고 계신 오컬트와 인본주의가 사상적 충돌을 한다면 과연 글쓴이 분은 어떤 선택을 하실지 입니다. 그래서 글쓴이 분께 오컬트는 인생의 어느정도를 차지 하는지, 글쓴이 분이 하시는 오컬트가 오히려 인류를 해치게 된다면 어떻게 하실건지를 질문한 것입니다. 글쓴이 분이 수련하시는 화랑선법을 포함한 오컬트가 인류 사회의 존엄, 가치를 침해하여 인본주의에 어긋난다면 글쓴이 분께서는 어느 선택을 하실지가 궁금한 것입니다.

>>412 그렇구나 멋진 질문인데 내가 몇가지 단어선택에 오해를 했네. 레스주 학식도 높은것 같으시구. 스레주와 좋은 질문과 토론을 나누길 바랄게 새해 복 많이 받구. 인본주의 검색해서 공부하러 이만 슝 =33 ps. 스레주는 어여 기존의 출간된 호흡과 단전책을 오피셜로 다시한번 추천해줘 . 그리구 전에 본문에 추천했던 풍수지리 책은 아무리 찾아도 못찾겠어 방법좀 ..

잖어 저승의 업을 관장하는 사람은 누굴까?내가 서신을 보내면 전해질 수 있는 방법이나 주술이 있을까? 떠나기전에 이 질문은 답을 꼭해줘 이메일을 남길게 Buddinghumanist@gmail.com 나도 AI쪽에 관심이 많아.꼭 여기에 답해주던지 이멜줘

으아악 엄청난 이야기가 오가고있는건 알겠는데 이해하기 어렵다... 대단해.. 스레주랑 레스주...

>>412 >>413 스레주의 어떤 부분을 보고 궁금증이 생기신건지 좀 풀어서 말씀부탁드림

>>415 개 간단한 얘기야 스레주 너는 사기꾼이니 장사꾼이니를 묻는거라고 보여져. 오컬트로 유사과학은 안 만들고 그냥 기업들이 좋아할 만한 프로젝트를 한다고 하니 장사꾼에 더 가깝다는 결론 내리는 중인거고

>>417 완전히 틀렸습니다. 위의 질문글은 쓴 아이디 47xWqqmK45b 입니다. 글쓴이 분에 대한 제 질문의 의도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신것 같습니다. 글쓴이분도 이 분처럼 제 질문을 오해하실까봐 몇자 적습니다.  오컬트와 과학의 융합은 유사과학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은 것과 달리 반면 오컬트를 프로그래밍으로 구현한다면 그건 유사과학이 될 수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한 이유는 유사과학처럼 융합된 것과 달리 글쓴이 분이 하고 있는 인공지능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더 이상 오컬트가 아닌 완전한 공학 분야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리입니다.  유사과학과 달리 하나의 데이터를 넣었을때, 항상 같은 결과를 나타내는 프로그래밍이 유사과학 취급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컬트에 상당히 회의적인 관점을 갖고 있지만, 글쓴이 분이 추진하는 오컬트의 인공지능 적용 프로젝트는 상당히 관심을 갖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글쓴이 분이 성공하신다면, 세기의 발명이 될 것입니다. 기업들이 좋아할 만한 프로젝트라고 말한 의미는 그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기업은 돈이 되는 프로젝트는 투자를 합니다. 그래서 오컬트가 가짜든 진짜든 간에 글쓴이께서 한 오컬트를 프로그래밍으로 구현하는 프로젝트가 경제적 효과가 있다는 것은 기업의 투자를 받아서 현실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은 더 높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그리고 오컬트에 회의적인 제가 봤을 때, 글쓴이 분은 사기꾼이나 장사꾼은 아닙니다. 인본주의 사상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쓴이분은 다른 오컬티스트와 달리 오컬트에 그렇게 의존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사기꾼은 아닌것 같습니다.  그리고 글쓴이 분이 장사꾼이라는 것은 논제에서 벗어났습니다. 글쓴이 분은 앞 쪽에서 오컬트를 공학에 적용한다고 하셨고, 글쓴이가 하는 프로젝트는 오컬트와 과학의 융합이라기 보다 오컬트를 공학적, 프로그래밍으로 구현하는 것에 더 가까워 보였다는 것의 의미는, 오컬트를 공학적으로 구현한다면, 그 결과는 더 이상 오컬트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엄연히 공학으로 들어갑니다. 엄연히 공학에 포함되기에, 글쓴이분이 말한 '오컬트로 상업적인 장사는 안한다'라는 것에 모순은 없습니다. 제 질문의 의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글쓴이분께서 가지고 계신 각각 주정주의와 합리주의에 해당하는 오컬트와 인본주의가 사상적 충돌을 한다면 과연 글쓴이 분은 어떤 선택을 하실지 입니다. 그래서 글쓴이 분께 오컬트는 인생의 어느정도를 차지 하는지, 글쓴이 분이 하시는 오컬트가 오히려 인류를 해치게 된다면 어떻게 하실건지를 질문한 것입니다. 글쓴이 분이 수련하시는 화랑선법을 포함한 오컬트가 인류 사회의 존엄, 가치를 침해하여 인본주의에 어긋난다면 글쓴이 분께서는 어느 선택을 하실지가 궁금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글쓴이의 대답을 못 들었습니만, 결론을 어떻게 내린다는 것입니까?

>>417 사기꾼이니 장사꾼이니가 아니라 글쓴이분이 주정주의에 가까운지, 합리주의에 가까운지를 알고 싶은 것입니다.

>>260 그 4차원은 상대론에서 정의하는 4차원 이네.. 나는 4차원이란 시간의 유무와 관계없이 입체의 3차원에서 확장된 초입체의 세계라고 정의하고 있어. 아인슈타인이 거론한 시간이란 엄밀히 따져보면 수학에서 쓰는 축이나 방에 속하는 개념이라서, 아인슈타인은 용어 설정의 오류를 범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야. 서로 용어를 정의하는 패러다임이 달라서 내가 답변을 하기에 애매하네.. 시간과 차원에 대해 약간 설명하자면, 0차원인 점에서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지만, 1차원인 선과 2차원인 면, 그리고 3차원인 입체는 시간과 공간의 축 위에서 존재하지. 시간과 공간이 전제되지 않고는 0차원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거든. 따라서 3차원이라 할 때는 시간이 포함되어 봐야하는데... 아인슈타인은 시간이 포함되어 있는 3차원에 또 다시 시간을 넣어 차원론을 복잡하게 만들었지. 그 결과 어떤 과학자는 현재의 세상을 4차원이라 하고, 일본의 미치오 가쿠 같은 과학자는 그대로 3차원이라 부르는 등 혼란이 가중되고 말았지... 3차원은 이미 시간을 내포하고 있고.. 여기에 시간을 아무리 첨가해도 그대로 3차원의 세계일 뿐이야. 단순히 시간만 더하고 빼는 것으로 차원의 벽을 넘나든다면 그것은 차원이라 할 수 없거든.

>>260 차원에 대해서는 1판에 내가 적어놓았으니 참고 했으면 좋겠어.

>>265 으음.. 이건 잘 모르겠어.. 미안.

>>268 수면시간 잘 지키고 밤낮만 바뀐 것 뿐이면, 건강에는 아무 문제 없어. 다만, 밤에 잤다가 낮에 활동하다가 다시 낮에 잤다가 밤에 활동하는 것으로 바꾸고, 또 다시 밤에 잤다가 낮에 활동하는 것으로 바꾸고 또 다시 낮에 잤다가 밤에 활동하는 것으로 바꾸고.. 만약 이런 경우라면, 소화기능에 문제가 생기거나, 혈압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겠지만..

>>277 '인과율'을 쉽게 설명하자면, 우주의 거대한 컴퓨터라고 볼 수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주의 이법에 따라 윤회하게 되지. 그러고 그 이법이란 '다각적 경험을 통한 영적 진화'야. 그래서 여기 저기를 떠돌며 윤회하며 경험을 쌓게 되는 거지. 그리고, 이 윤회는 거대한 컴퓨터인 '우주의 인과율'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지. 따라서 프로그램의 종속을 벗어나 스스로 프로그램을 짤 수 있는 선까지 진화하는 노력을 일러 '영력을 올리는 수행'이라 부르는 거야.

>>279 이건 잘 모르겠네.. 처음 듣는 얘기인걸?

>>280 정보를 얻는 자주 찾는 특정한 사이트가 없어서 답해주기가 애매하네. 대부분의 정보는 책을 읽어서 공부하거든. 굳이 말하면, 사이버 도서관 정도?

>>289 아니,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고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걸.

>>290 아니... 몰라.. 정확히는 내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어..

>>293 음... 그럼 수련 책들을 찾아 보는 것은 어때? 수련 관련 책들중에는 부록에 그 수련을 가르치는 도장 연락처가 나와있는 경우가 있거든 상당한 수의 수련자가 그런 식으로 입문하기도 하지...

>>293 혹시, 수련을 하기 위하여 어느 수련원을 방문하게 되면 반드시 그 곳 수련생들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보는 것이 좋아. 기에 대하여 저마다 다른 얘기를 하는 지, 아니면 백 명이면 백 명이 다 똑같은 얘기를 하는 지, 수련 단체에서 수련의 진척을 알 수 있는 객관적 잣대를 제시할 수 있는 지를 알아보길 바라. 만약 최면을 걸 듯, 객관적 잣대 없이 '수련이 잘 되고 있다'라는 식의 지도자나 사범의 일방적인 선언 뿐이거나, 수련인 개개인 스스로가 자아도취에 빠져 환상을 듣거니 보고 수련이 잘되고 있는것으로 믿는 것이라면 그 수련단체는 입문을 안하는 것이 좋아. 정확한 수련단체는 수련의 진척을 알 수 있는 객관적 잣대가 있어서 수련의 효과가 명명백백하게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과 사범에게도 드러나거든. 그래서 정확한 수련단체는 지도자나 사범, 혹은 수련생 스스로가 최면을 걸 필요가 없지. 종교 있어도 상관없어. 맹신만 하지 않으면 돼.

>>294 직관은 지각을 이용하여 대상의 전체를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말하지... 쉽게 말하면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이라고 할 수 있지. 이성적인 생각을 수단으로 하여 성립하는 간접적인 이성적 인식과 구별되고, 때로는 대립된다고 할 수 있지. 이렇게 감성적인 지각을 사용한 직관은 존재하지만... 아무런 판단과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 절대적 직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어. 아무런 감각이나 판단 없이 대상을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야 그렇기에 현대 철학계에서도 절대적 직관은 없다는 결론이 났지... 그래서 이런 직관을 중시하는 직관주의 철학에서는 논증이나 매개 없이 사물의 본질을 바로 포착할 수 있다고 하지. 직관의 예로 통찰 학습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어. 심리학자 울프강 쾰러가 침팬지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야.. https://www.youtube.com/watch?v=FwDhYUlbxiQ 위는 울프강 쾰러가 한 바나나를 두고 침팬지들이 이를 어떻게 손에 넣어 먹는지를 실험한 영상이야. 심리학.. 특히 인지심리학에서 유명한 실험이지. 실험을 해석해 보면, 굶긴 침팬지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였는데, 침팬지 우리 바깥쪽에 바나나를 놓아두고 침팬지에게 하나는 짧고 하나는 긴, 연결이 가능한 막대기 2개를 주었어. 침팬지는 이 문제 상황을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조련받은 적이 없었어. 그런데 침팬지들은 근처에 있는 나무 상자를 쌓아 올라가거나, 두 개의 막대기를 길게 연결하여 하나의 긴 장대로 만든 뒤 바나나를 끌어당기는 등, 배운 적이 없는 해법을 어느 순간 찾아내어 적용하였다는 것이지. 이 실험에서 침팬지는 반복과 시행착오를 통한 기계적 학습이 아니라 어느 순간 직관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야. 쾰러의 침팬지 실험과 비슷한 실험으로, 톨만이 쥐를 대상으로 한 인지도 실험도 있어. 톨만은 신 행동주의자 이지만. 기존의 행동주의자들과 달리 학습에 있어서는 인지의 측면을 강조한 학자분이시지.. 톨만 인지도 실험도 시간나면 한번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거야.

>>295 1판에 전생과 환생에 대해 적어놓았으니 참고하길 바라.

>>300 직관을 키우기 위한 방법이라... 직관은 자신의 지각을 이용하여 대상의 전체를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말하지.. 그리고 직관을 키우는 대표적인 방법은 '피드백'을 받는 거야. 정확한 피드백을 많이 받아서, 자신의 직관에 대한 신뢰도를 조정하는 것이지. 일단 정확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분야에서 경험을 잔뜩 쌓으면 돼. 대표적으로 세 가지 방법이 있지.

>>300 방법 1. 수학 수학을 공부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어. 한 가지는 기계적으로 반복 숙달하는 방법이고, 다른 한 가지는 생각을 많이 해보고 직관적인 해결점을 찾는 방법이야.. 이 중 기계적으로 반복하여 숙달하는 방법은 논리를 기르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직관을 기르는 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 생각을 많이 해보고 직관적인 해결점을 찾는 방법은 도움이 돼. 이 경우 논리 뿐만 아니라, 직관을 키우는데에도 큰 도움이 되지. 수학이 직관력을 키우는 유용한 방법이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정확한 피드백 때문이지. 반론의 여지가 없을거야... 수학의 경우 반박할 수 없는 정답이란 게 존재하거든. 이 때문에 직관적 사고력을 키우는데 수학은 큰 도움을 줄 수 있어. 방법 2. 게임 (판단을 요하며, 그 판단에 따라 결과로 나오는 그런 게임) '직관을 기르는 데 왠 게임?!' 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사실 게임 역시 정확한 피드백을 줄 수 있거든. 물론 게임 중에서도 특히 판단을 요하며, 그 판단에 따라 결과로 나오는 그런 게임이어야 하지..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바둑기사나 프로게이머, 골프선수 등은 직관력이 좋다고 할 수 있어. 무수히 많은 피드백을 받으면서 직관력을 키운 것이지... 직관적 판단을 통한 게임이라면, 어떤 게임이든 좋아. 특히 더 정확하고 더 많은 피드백을 받는 게임이라면 더욱 좋지. 방법 3. 기록 내 직관적 판단을 그날 그날 기록해두는 방법도 직관을 기르는데 좋은 방법이 되지... 기록해서 훗날 나의 직관이 정말 맞았는지를 살펴보면 돼... 그럼 그게 피드백이 되거든. 특히.. 정말 작정하고 특정 직관력을 키우고자 한다면, 이걸 집중적으로 할 필요가 있어. 기록하면 피드백이 왜곡될 확률은 급격히 떨어지게 되지. 기억이 왜곡될 가능성이 적게 되니까.. 그에 따라 더 적은 경험으로 더 빨리 직관력을 끌어올릴 수 있어. 또한 직관력의 한계치를 더욱 높일 수 있지. 원래 경험을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직관력이 더이상 좋아지지 않는 시점이 오는데, 기록은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해주거든. 기록은 타인의 직관력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해. 예를 들어, 누군가의 직관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싶으면, 그 사람의 판단을 기록하면 돼. 기록을 해두면, 훗날 둘러대거나, 어물쩍 넘어가거나, 딴 소리를 하거나, 주목되지 않아 피드백을 못 받는 등의 일을 방지하고, 그 사람의 직관력의 실체를 선명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되거든.

>>304 응.. 사칭이지.. 어차피 이 스레가 끝나고, 나는 이제 모든 오컬트 커뮤니티에서는 완전히 떠날 것이거든..

>>306 내가 다니는 수련원은 서초구에 있어. 물론 수련원이 서초구에만 있는 곳은 아니고, 서울 뿐만 아니라 인천, 대구 등등에도 여러군데 있지. 그나저나 w스레라.. W라는 얘는 나는 문호개방하기 전의 신무 수련자라고 생각해. 신무는 선도와 신도의 중간 쯤에 있는 수련이야. 그 스레를 처음에는 그냥 재밌는 괴담읽는 기분으로 봤는데. 읽을수록 나오는 W의 행동이 신무 수련자의 행동과 소름이 끼쳤어. 주작이기엔 너무 자세히 전통적인 신무 수련자의 행동이 서술되어 있고. 하지만 끝에 갑자기 산이 사라졌다는 부분떄문에 사실이라고 보기에도 좀 애매해... 만약 w스레가 주작이라면 그 스레 스레주는 엄청난 찍기 실력을 가졌다고 봐...

>>307 1판에 영력점검표를 적어놓았으니 참고하길 바라.

>>311 음.. 사람이 죽게 되면 몸뚱이는 썩지만 생각을 구성하는 정기는 고스란히 보전되고, 정기에 독특한 정보가 붙어 생각의 기능을 하게 되면 신이라 한다고 내가 말했었지. 신이 물질의 옷을 입고 있을 때는 정의 응고성이 강해지기 때문에 ‘정신’이라 부르고, 죽게 되면 물질의 이탈과 더불어 ‘정’이 대폭으로 흩어지게 되고 ‘신’만 홀로 남게 된다고 말했지... 하지만 신이라고 해서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니야.. 어느 무엇에 의해 생겨난 것은 결국은 해체되어 소멸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야.. 신이 수명을 다하고 죽게 되면, 그야말로 완전한 죽음이지. 인간의 생명은 사후의 신으로 이어져 연장된 삶을 살지만, 결국은 그 신마저 해체되면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것이지.. 그런데 누구나 그렇듯이 죽고 싶어 하는 인간은 없을 거야. 이런 점은 신들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신들은 죽지 않기 위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서 생명을 연장하고 싶어 했지. 윤회를 통하여 물질의 옷을 입게 되면 느슨해진 정기가 물질의 응고성에 의해 조여져서 단단하게 되어, 그만큼 수명이 연장되기 때문이야. 윤회의 편리를 위해서 신들은 자연스레 인간들이 사는 행성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세계를 형성해 나갔지. 마치 인류가 편리를 위해 강을 중심으로 모여 살기 시작한 것과 같이... 그리고 윤회의 가치는 단순히 생명 연장의 도구만이 아니라, 영력을 빠르게 증진시킬 수 있다는 수단이 되지. 윤회를 통한 영력의 증진은 4차원에서보다 몇 배에서 많게는 몇 십 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으니 말이야. 즉, 윤회는 '수명연장'과 '영력증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수단인 것이지. 영력이 5~6천인 선계에 닿은 영이나, 상당히 드물긴 하지만 7~8천인 천계에 닿은 영들도 수명이 다 되거나, 자신의 영력을 올리기 위해 윤회하는 경우가 있긴 해.. 그리고 할 일이 있어서 내려온다라.. 그건 자신이 세웠던 원력에 따라 다르겠지?

>>331 글쎄.. 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들이 나보고 창의력을 기르라고 어떤 수련원에 토론으로 진행되는 동양학 리더쉽 교육을 등록해 주셨는데, 그곳이 화랑도라는 선도 수련원의 한 곳이었고, 거기서 선도를 배우게 된 케이스라 잘은 모르겠네. 그리고 나는 오컬트를 '인도적인 성찰의 수단'으로 써.

>>335 일단 호흡'만'을 가지고 따져볼게, 기수련에서의 호흡은 크게 유정호흡과 무정호흡으로 나누어지지, 레스주가 말한 전자처럼 호흡에 의식을 가지고 하는 것을 유정호흡, 레스주가 후자처럼 호흡에 의식을 가지지 않고 호흡하는 것을 무정호흡이라 해. 단전의 형성이 일단락 되기 전에는 유정호흡을 해야 진전이 빨라. 유정호흡이 축기와 운기에 적합한 반면에 무정호흡은 무아지경에 몰입하여 초월의식에 이르는 데 적합하거든. 다만, 혹시나 해서 말이지만 레스주가 말한 것이 호흡만이 아닌 기수련 전체를 '의념'으로 하겠다면 이야기는 달라져...

>>335 옛날이라면 모르겠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의념 수련이 비효율적이라서 현대 사회에서는 허기를 돌리다 기체, 주화 그리고 입마와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거든.. 응고정사 고정연기 연기화신 신환허 (凝固靜思 固精鍊氣 鍊氣化神 神煥虛) "고요히 생각을 하나로 모아서 정을 굳건히 하며 정으로 기를 단련한다. 단련된 기는 신으로 변화하고 신은 허로 바뀌며..." 윗글의 내용은 고전에 나오는 연기의 구결이야. 대부분 고전에서 나오는 기수련은 몸속에 있는 정을 의념으로 기화시키는 방법을 쓰고 있어. 정은 물에 해당하고 신은 불에 해당되는데 의념을 단전에 둔다는 것은 물을 끓여서 증발 시키는 것과 같아. 의념수련에서는 기화된 기를 단전에 모아서 운행하고 소주천 혹은 대주천을 하면서 외부의 기운을 합해서 경지에 오르는 방법을 쓰고 있지. 의념수련에서는 필수적으로 조용한 곳을 찾아 기를 소모하지 않아야 하며 모은 기를 오직 기수련에만 힘 써야 하지. 예전에 기수련자의 대부분이 출가하여서 기를 수련하게 된 이유야.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의념적인 기수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좀 위험한 일이야... 그렇다면 의념수련을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은 '정'으로 기화시킨 기를 소모해 버리기 쉬운데 그런 경우는 어떻게 될까?? 건강 측면에서 볼 때 중요한 이야기이므로 복잡하더라도 이해를 돕기 위해서 비유로 설명하자면, 의념을 써서 정을 기화 시켜서 얻은 기는 허기, 즉 뜨기 쉬운 기운이야. 따라서 이 기를 묶어 놓기 위해서는 강력한 정이 필요하지. 이러한 이유로 애써 기화 시킨 기가 다시 정으로 되돌아 가 버리는 일이 많아서 기를 모으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지. 의념을 써서 기를 모으면 단전에 뜨거운 기운을 느끼더라도 금방 그 기운이 사라져 버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 선도서적에 흔히 등장하는 이야기 중에 '진흙으로 만든 보살이 황하를 건넌다'는 말처럼 이게 어디 쉬운 일일까? 정신력이 얼마나 강해야 그럴 수가 있을까? 가 있는데.. 이것이 의념 수련으로 축기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이유인 것이지...

>>335 기화된 기를 안정된 기로 가정하고 또다시 설명해 보자, 정이 10 이 있다고 가정하자. 정이 잡을 수 있는 기는 10 이 되지. 그러면 의념으로 정1 을 기로 전환 시키면 전체는 정9 과 기11 이 되지. 물론 이 과정에서 외부의 기를 1 정도 가져 왔다고 가정하면 전체의 정기는 21 이 될 것이고.. 1 이 늘어났으므로 몸은 활력이 넘치고 좋아져 보이지만,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정기를 소모할 일이 많지. 일상에서 일어나는 움직임, 스트레스 등등이 정기의 소모를 가져오지. 이렇게 해서 기력의 3 을 소모 했다고 가정하면 정이 9 가 되고 기는 9 가 될 것이지. 전체의 정기는 18 이 되므로 문제를 느끼지. 다시 의념으로 정1 을 기화 시키고 외부의 기1을 끌어 왔다고 가정하면 전체의 정기는 정8 에 기 11 이 되지. 느끼는 정기의 총량은 19 가 되는 것이야. 이제는 기수련의 효과는 원래의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정도가 되지? 다시 이 과정을 되풀이 하면 정은 급속히 고갈되고 기력 또한 구멍난공에서 바람 빠지듯이 새어 나가기 시작하면서 몸은 극도로 쇠약해지게 되지. 몸에서 비상경보가 울리면서 각종 병이 창궐하며 아주 그냥 종합병원이 되는 거지.. 참고로 비유로서 숫자를 들어 이야기한 것이지만 정에서 기화된 기운은 쉽게 소모가 돼. 왜냐하면 기를 잡아 주는 힘은 정의 양에 비례하기 때문이야. 따라서 기를 소모하는 양은 정이 잡아 줄수 있는 나머지 양으로 계산한거야. 정에서 기화된 기는 뜨기 쉬운 기라고 했는데 이유는.. 결국 정의 양이 줄면 줄수록 정이 잡아 줄수 있는 안정된 기력 또한 비례해서 줄어 드는 것이지.

>>335 음.. 명상의 최대의 적은 ‘아집’, 즉 '자기를 세상의 중심으로 삼는, 자기에게 집착하고 자기를 내세우는 모든 생각과 마음'이야. 그래서 명상은 첫번째로 이런 아집을 줄이기 위한 것이 중요하지. 그리고 흩어지는 생각을 한 곳에 집중하여 통일하고 나중에는 집중된 의식 자체도 없게 하는 것이 중요해. 마지막으로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마음을 비우고 비워 최대한 공(空)에 가깝게 되지... 이 상태에서 선정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야..

>>335 음.. 득도가 무조건 되는 명상법은 없어. 정확히 말하면 득도라는 것은, 타인이나 수단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깨어나야 하기 때문이야. 가령, 부산에서 서울을 올라갈 때 걸어오는 것보다는 버스를 타고 오는 것이 훨씬 빠르지. 하지만 결국 집 앞에서는 제 발로 걸어서 올라가야 해. 명상도 마찬가지야. ‘명상’이라는 것은 버스와 같이 집에 이르는 시간을 단축시켜 주는 효과가 있는 것이지 이것으로써 집안(깨달음)까지 들어가게 하는 것은 아니야. 결국 마지막 단계인 득도는 제 발로 찾아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지

>>337 꼭 단전호흡을 할 필요는 없어. 깊게 숨을 쉬기만 하면 되거든.. 음.. 팁을 주자면, 호흡은 코로 들이쉬고 입으로 내쉬는 것이 좋아. 코로 들이쉬어야 숨이 깊이 들어가고, 입으로 내쉬어야 숨이 얕게 나가기 때문이야. 들숨의 경우 입의 모양을 ‘옴’을 소리낼 때의 구조로 하는 것이 좋아. 물론 실제로 ‘옴’을 소리내는 것이 아니라 이런 구강 구조로 숨을 들이쉬어야 보다 깊은 호흡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야. 날숨의 경우는 ‘허’ 발음에 가깝게 짧게 내뱉고, 이 때 입 안쪽에 있는 콧구멍이 열리게 하는 것이 좋고.

>>339 인공지능을 공부한다고 내 원력이 바뀐 것은 아니야. 내 원력은 아직도 이치 교육이야. 물론, 원력에 관련된 직업을 가지면 원력을 이루는 것은 더 수월하겠지만, 요즘 인공지능에서 새로운 것을 도전해야 할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야. 2판에서 원력에 대해 내가 설명했던 글에서도 나와 있지만, 일정한 위치에 있어야만 실현 가능 한 '과력'과 달리, '원력'은 현재의 위치에 관계없이 가능해 과력 : 분별에서 이루어지는 개체, 성패를 중시, 특정한 정보만 걸러서 습득, 딱딱하여 흑백으로 갈라서 봄, 문제를 해결하는 삶, 일정한 위치에 있어야만 실현 가능 원력 :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에너지장, 방향성을 중시, 다양한 정보를 그대로 습득, 유연하여 전체구조로 통합하여 봄, 가치를 창조하는 삶, 현재의 위치에 관계없이 가능 이라고 할 수 있거든. 쉽게 말하면, 과력이 '자기가 어떤 것을 하고 싶은가?'라면, 원력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이라고 할 수 있지. 나는 원력을 기준으로 과력을 설정한 것이야. 즉,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기준으로, '자기가 어떤 것을 하고 싶은가?'을 조정한 것이야. '자기가 어떤 것을 하고 싶은가?는 변하지만,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는 변하지 않거든. 나의 원력은 '아이들과 소통과 공감을 이루는 이치 교육을 실현하는 사람'이므로, 나는 현재 내 원력을 교육봉사활동으로도 실행하는 계획을 짰어. 교육봉사활동은 지금도 하고 있으니 말이야. 나는 교육 봉사 활동을 내 원력인 '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선도와 같이 수행 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실현하고 있어.

>>340 나는 오컬트를 공부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도적인 스스로의 성찰'이라고 생각해. 이것은 시대를 거스르는 것도 아니고, 도덕적인 면을 저버리면서까지 행해야 될 것은 더더욱 아니고, 지식없이 망상으로만, 전율로만 배우는 것 또한 절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 오히려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더욱 더 확장되는 시야로 인해, 현재 인간사회에 더욱 더 깊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과학과 윤리, 정치, 경제등에도 조예깊게 파고드는, 함께하는 것이라는 것이지. 사실 이 것이 형이상학적 내용들을 탐구한다는 것, 대부분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들을 탐구한다는 것에서 경험론이 중시되는 이성이 지배하는 현재사회에서 절대론으로써 거부당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하지만... 뭐..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럼 오컬트를 왜 하는것일까? 사람의 속성은 불완전함이기 때문에 완전함을 추구하려는 본능이 있지. 그리고 고대부터 이 완전함을 추구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대상이 바로 물질 저편에 있는 이상의 세계, 형이상의 범주이기 때문이야. 적어도 현대의 과학이 이만큼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한 배경에 이 형이상학이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다는 것을 부정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것이지. 그러니까 호기심이 곧 탐구가 되고, 그 탐구의 근본에 위치해 있는것이 바로 이 오컬트이지. 오컬트라는 것은 그렇다고 거창한 것이 아니야. 그저 사람이 가지고있는 본능적인 한 가지 속성인 거야

>>340 내가 오컬트를 접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인도적인 측면'이라고 말했지. 오컬트 분야에 접근을 하다보면 상당히 이상한 것들과 많이 마주하게 돼. 고대에서부터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구전, 또는 기록되어오던 수 많은 신비학적 저서중에는 단연 현대인이 이해하기 힘든, 납득하기 힘든 지식들도 많이 있기 때문이야. 우리가 중세의 마녀사냥을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을까? 신을 믿지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화형을 당하던 시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오컬트는 고대에서 현대에 까지 이르기까지 꾸준히 존재해왔기 때문에 당연히 그때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할 수 밖에 없어. 그리고 바로 이런것들을 걸러내는 자세가 필요해. 습득할 것은 습득하고, 버릴것은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맞다는 얘기야. 만약 이 쪽을 파고 들 때, 강인한 정신을 가지고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충고를 하고 싶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자세를 지킬 자신이 있어야하며, 사리분별을 할 줄 아는 지혜 또한 기르는게 좋아. 현실에서의 삶을 져버려서도 안돼. 현실과 현실너머는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분리된 것이 아니며, 현실 너머를 공부하는 그 주체 자체가 현실에 있는 한, 현실을 등지는 것은 안 될 것이야. 그리고 오컬트는 어찌보면 종합적인 거야. 현실 그 넘어를 탐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분야와 동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안될꺼야.

>>340 가장 중요한 것, 현실세계에 충실하는 것이 좋아. 그리고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아. 도덕적인 면이 많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인문학도, 도덕적 관념들도 머리속에 많이 집어넣는 것이 좋아. 도덕 없이는, 강인한 자아성찰과 사색 없이는 접근 안하니만 못하는 분야이기 때문이야. 그 것을 알기위해선 역사를 알아야하며, 철학을 알아야하지. 이 쪽을 공부해보고싶다면 철학책들을 읽는 것도 좋아. 고대부터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플라톤이,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교부철학과 근대의 데카르트, 현대의 하이데거나 비트겐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철학적 사고와 관념에 의해 세상이 바뀌고, 사상이 바뀌고, 이념이 바뀌었는지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좋아. 오컬트는 철학분야와 동떨어져 있지 않아. 오히려 아주 밀접하게 달라붙어 있지. 결국 모든것은 인간의 궁극적 호기심으로 부터 파생된 것들이기 때문이야. 그러니, 형이상학을 공부한다고 과학을 져버리지 마. 과학 역시 '호기심'에서 이루어졌고, 수많은 귀납법을 통해 이루어진,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학문이기에 매우 중요해. 인문학 역시 져버리지 말고 공부하는 것이 좋아. 도덕적인 성찰과 인간다움의 사고방식은 오컬트를 접함에 있어서, 어긋난 곳으로 빠지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는 가장 중요한 뿌리와도 같은 역할을 하지. 지식을 넓히고 머리를 충분히 확장시킨다음, 그 다음 천천히 접근해도 절대 늦지 않으니 걱정하지마. 역사도 공부하는 것이 좋아. 동서양의 역사가, 중동의 역사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떠한 것들이 일어났는지, 어떠한 것들이 순환되고 반복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좋아. 역사를 공부하는것만큼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파악하기 좋은 수단도 없거든. 사회에 대해서도 공부하는 것이 좋아. 현대의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어떤지, 이전과는 어떻게 다르고 이 사회에 부합하는 한 인간이 되기에는 어떠한 것들이, 어떠한 노력들이 필요한지 공부해야 하지. 진리는 현실과 동떨어져 생각해야 된다는 생각은 그만두는 것이 좋아. 존재에는 이유가 있듯이,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완전함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실에서의 삶은 반드시 그 이유가 있는 법이기 때문이야. 위와같은 이유로 정치에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이 좋아. 경제도 마찬가지야. 예술에도 조예가 없어선 안되는 것이 좋아. 예술이야말로 인간이 물질계를 넘어서는 가장 직접적인 도구이기 때문이야. 또한 언어도 공부하는 것이 좋아. 사실상 언어만큼 이 분야에서 중요한 것도 없거든... 건강도 많이 중요해. 스스로의 몸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 좋아. 건강한 정신으로써 탐구하지 않으면 그 결과물을 도출하기 살짝 힘들어. 하지만, 건강한 정신이란 항상 건강한 육체가 동반되어야만 존재하는 것이니.. 그러기에 자기 스스로를 항상 아끼고 건강했으면 좋겠어.

>>340 오컬트하는 사람들도 일반인이야. 오컬트하는 사람하고 오컬트를 안하는 사람의 차이는 그냥 오컬트를 하나 안하나의 차이야. 어떤 사람이 오컬트 한다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어. 솔직히 일반인이라는 표현부터 말이 안되는 표현이라고 생각해. 우리는 다 한명의 사람이잖아? 오컬트를 하는지, 안 하는지 이전에 우리는 전부 한 명의 사람이야. 세상에 나와 있는 많은 수련기를 읽어 보면 거의 대부분이 위인전을 읽는 것 같아. 태어날 때부터 남달랐다는 둥 수련 시에 벌써 신통을 얻게 되었다는 둥 이러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지. 또 한가지 방어막은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말은 빠지지 않으니 일반인들이 접근하는 것을 미리 차단하는 것으로 보이지. 그런 걸 보면 처음부터 일반인들은 따먹지 못할 감만 쳐다 보는 격이지 자신이 특별한 스스로 신격화 하면서 스스로를 포장하지. 그런데 그런 사람이 보는 세계는 일반 속인이 보는 세계와 다르지 않으니 무슨 원리가 있고 어떤 깨달음이 있다는 것인지 아리송하지. 그러한 경지에 다다랐을 때 스스로가 바라는 자기만의 세계를 쓴 소설처럼 헷갈릴 때가 많다는 이야기야. 뭐.. 결론은 우리는 한명의 사람이라는 것, 오컬트를 한다, 오컬트를 안한다, 이전에 우리는 전부 한 명의 사람이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

>>341 음.. 정확히는 오컬트와 공학의 융합이 아니라 오컬트를 공학에 적용하는 것이야.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선도의 요소를 공학으로 구현하는 것이지. 선도에서 정신활동을 정의하는 이론들을 분석해서 하나하나 수학적으로 함수화 해서 알고리즘으로 만든 후 인공지능에 적용하려고 해. 물론 현재 내 지식이 얕은 관계로 인공지능 쪽을 차근차근 공부하고 있고, 어떻게 적용할지도 계획을 하고 있는 중이야. 현재 내 능력으로 도전할 수 있는 것은, 선도에서의 원력에 따른 진화이론을 알고리즘화 하여 딥러닝의 초기값을 정할 때 사용되는 유전 알고리즘을 재정의하여 오차율을 줄이는 것이야.

>>341 살짝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이론을 살짝 설명하자면.. 내가 재정의하려는 유전 알고리즘은 풀고자 하는 문제에 대한 가능한 해들을 정해진 형태의 자료구조로 표현한 다음, 이들을 점차적으로 변형함으로써 점점 더 좋은 해들을 만들어 내지. 여기에서 해들을 나타내는 자료구조는 유전자, 이들을 변형함으로써 점점 더 좋은 해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진화로 표현할 수 있어. 달리 표현하면, 유전 알고리즘은 어떤 미지의 함수 f(x)를 최적화하는 해 x를 찾기 위해, 진화를 모방한 탐색 알고리즘이라고 말할 수 있지. 그리고 유전 알고리즘은 초기화, 선택, 교차, 변이, 대치, 반복, 종료 단계로 구성되어 있어. 초기화 단계는 해결하고자 하는 해를 유전자로 표현한하고, 랜덤한 유전자를 적당한 개수만큼 준비하는 단계이고, 선택 단계는 배치한 각 유전자에 대해 적합도.. 적합도는 그냥 점수라고 봐도 돼. 점수로 측정하고, 현재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질 후보를 선택하는 단계야. 교차 단계는 선택한 유전자들을 가지고 여러 방법을 이용해서 후대 유전자를 만드는 단계. 변이 단계는 만든 후대 유전자에서 낮은 확률로 변이를 일으키는 단계야. 대치 단계는 후대 유전자를 현재 유전자로 교체시키는 단계이지. 반복 단계는 거의 모든 유전자가 같아졌고 전체적으로 변화가 거의 없어질때까지 선택, 교차, 변이, 대치를 반복하는 단계야. 다만, 반복 단게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이 반복 단게에서 답이 구하지 못하고 종료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걸 방지하기 위해서 변이단계에서 변이 연산으로 임의의 요소를 바꾸어 주는 것이야. 이렇게 되고, 종료 단계에서 얻은 유전자의 해가 원하던 것인지 확인하고 종료하게 되지.

>>341 위에서의 단계에서 내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변이 연산'이야. 변이 연산자는 유전자가 바뀌는 것을 나타내며, 자연계에서는 드물게 발생하지. 변이는 적합도를 상당히 증가시킬 수 있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만드는 경우가 훨씬 많아. 변이는 탐색 알고리즘이 지역 최적점에 갇히지 않도록 보장하는 역할을 해. 선택과 교차 연산만 적용되면 동질적인 해집단에서 정체될 수 있거든. 그런 경우에는 모든 염색체가 동일하기 때문에 해집단의 평균 적합도가 향상되지 않아. 변이 연산자는 염색체에서 임의로 선택한 유전자를 뒤집는 거야. 변이는 염색체의 모든 유전자에 일정한 확률, 즉 변이율로 일어날 수 있어. 그런데 변이율은 자연계에서도 꽤 낮고, 유전 알고리즘에서도 0.001~0.01 사이의 범위로 꽤 낮거든. 즉, 유전 알고리즘의 변이 연산은 답의 도출 유도를 위해서 '임의로' 변이를 일으키는 연산인 거야. 나는 이 임의로 선택하는 변이 연산을 현재 선도의 원력 개념을 함수로 표현하여 적용하여 보완하여 오차율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어.

>>341 원력을 세우는 것은 생명이야. 생명이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을 거야. 그 원하는 것이 분명하면 청사진이 되고 원력이 세워지게 되지. 그렇다면 생명이라는 것은 일종의 정보덩어리라고 할 수 있어. 그런데 정보만 뭉쳐 있다고 생명이 되는 것은 아니야. 사실상 모든 것이 정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지. 따라서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정보의 취합에 일정한 에너지의 흐름이 있어야 하겠지? 에너지의 흐름이 멈추고 외계와의 정보망이 폐쇄되면 더 이상 생명이 아니야. 이런 상태를 물질이라 하지. 그렇다면 에너지의 흐름만 잘 보전하면 생명으로서 손색이 없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야. 모든 것에는 우열이란 것이 있어. 마찬가지로 생명에도 그 질적 차이가 현저하게 존재하거든. 에너지의 흐름이 있다고 해도 중구난방이 되어서는 참된 생명이라 할 수 없을 거야. 에너지가 일정한 방향으로 꾸준히 흐를 때에 정보는 취합되어 의식에 차곡차곡 쌓이게 되고, 모든 정보가 제 본연의 기능을 하게 되지. 따라서, 생명의 조건은 정보 취합의 문호가 열려 있어야 하고, 에너지의 흐름이 일정해야 하지. 생명의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려면, 정보의 취합이 잘 발달되어 있어야 하지. 정보 취합의 문호가 잘 열려 있기 위해서는, 양질의 정보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고, 일정한 에너지의 흐름이 있기 있기 위해서는 그 양질의 정보를 조합하여 응용해야 하지. 선도 이론에서 영장류는 양질의 정보 취득 및 응용을 위해 ‘단순화’와 ‘효율화’의 원칙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돼. 그리고 유전 알고리즘에서 쓰이는 진화 패러다임 적자생존은 찰스 다윈이 처음 제기한 이론으로서 다윈이 주창한 진화론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야.

>>341 다윈은 그의 저서 《종의 기원》에서, 부모가 가지고 있는 형질이 후대로 전해져 내려올 때 '적자생존'을 통해 주위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하는 형질이 선택되어 살아남아 내려옴으로써 진화가 일어난다고 주장하였지. 생물 개체는 같은 종이라도 환경에 적응하여 여러 가지 '변이'를 나타내게 되는데, 이 중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변이로의 선택이 일어나서 후대까지 전해져 내려간다는 것이야. 이 때 주위 환경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생물은 같은 종이나 다른 종의 개체와 경쟁을 해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이 경쟁이 바로 생존경쟁이지. 적자생존설은 다윈 이전까지의 진화론에서는 거의 전례가 없었던 독창적인 이론으로서, 현재까지도 진화론을 뒷받침해주는 가장 좋은 가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유전 알고리즘은 특정한 문제를 풀기 위한 알고리즘이라기 보다는 문제를 풀기 위한 접근방법에 가까우며, 유전 알고리즘에서 사용할 수 있는 형식으로 바꾸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적용할 수 있기에 범용성이 넓어. 일반적으로 문제가 계산 불가능할 정도로 지나치게 복잡할 경우 유전 알고리즘을 통하여, 실제 최적해를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적해에 가까운 답을 얻기 위한 방안으로써 접근할 수 있지. 이 경우 해당 문제를 푸는 데 최적화되어 있는 알고리즘보다 좋은 성능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대부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해를 보여줄 수 있어. 앞에서 말했다 싶히, 선도에서 진화는 양질의 정보가 적당한 위치에 저장이 되어 적기에 솟아나서 자신의 역할을 하게 되어 창조라는 작품을 이루게 되기 위한 진화 즉, 진화는 '정보취득'을 화두로 한 진화를 패러다임으로 가지고 있어. 유전 알고리즘은 주위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하는 형질이 선택되어 살아남아 내려옴으로써 진화가 일어난다는 '적자생존'을 화두로 한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지. 이 둘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패러다임처럼 보이겠지만, 원력을 이루기 위한 '정보취득'을 위한 함수에 넣는 초기값에 허수값을 곱하여 따로 빼서 구분하게 되면 이 두 패러다임은 서로 공존할 수 있어. 또한, 선도에서는 정신진화의 구성요소를 물질과 상반된 요소인 '상질'로 정의해. '상질'은 이미 존재가 밝혀진 반물질과는 다른 개념이야. 이걸 표현하자면 허수값을 곱하여 나타날 수 있어. 기존의 유전 알고리즘의 초기값에다가 허수값을 곱하는 것으로 선도의 '상질'을 표현가능한 것이지. 일단 기존의 유전 알고리즘의 초기값은 '토너먼트 선택'방법을 적용할거야. 두 개의 염색체를 임의로 선택하여 [0, 1) 범위의 난수를 발생시킨 다음 이것이 t 보다 적으면 두 염색체 중 품질이 좋은 것을 선택하고, 그렇지 않으면 품질이 나쁜 것을 선택하는 것이지. 여기서 t 는 파라미터화 할 수 있는 것으로 t 값이 높을수록 선택압이 높아지게 돼. t 가 0.5 근처이거나 이보다 작은 것은 비합리적이지. 뭐.. 두 개의 염색체를 선택하는 대신 염색체를 선택한 다음 위와 같은 난수 발생에 의해 토너먼트 형식으로 비교하여 마지막으로 남은 것을 선택하는 방법도 있어. 근데 어차피 토너먼트에 참가하는 염색체가 많을수록 선택압이 높아진다는 것이므로 의미는 결국 같다고 할 수 있지.

>>341 반면 선도의 진화 패러다임은 ‘단순화’와 ‘효율화’의 진화원칙을 통한 '정보의 다양성 취득'이 목표이므로, 기존의 유전 알고리즘의 초기값에다가 허수값을 곱하여 그 값을 따로 뺄거야. 그리고 '순위 기반 선택'을 적용한 후, '공유 연산'을 적용할거야. 순위 기반 선택 방법은 해집단 내의 해들을 품질 순으로 '순위' 를 매긴 다음 가장 좋은 해부터 일차 함수적으로 적합도를 배정하는 방법으로 '효율화의 원칙'에 대응한다고 할 수 있지. 그리고 공유연산은 순위 기반 선택에서 쓰는 적합도 값을 구한 뒤, 여기에 해당 염색체가 해집단 내의 나머지 염색체들과 유사한 특징을 '공유' 하는 정도가 높을수록 나누어 적합도를 조정하는 방법이야 '단순화의 원칙'에 대응한다고 할 수 있지. 그리고 또한, 공유 함수는 두 염색체의 차이가 적을수록 큰 값을 가져야 해. 해집단에서 가장 차이가 많이 나는 두 해의 차이로 잡는 것이 합리적이거든. 공유는 해집단 내의 해들을 문제 공간상에서 지리적으로 분산되게 도와 주는 효과가 있어. 이것은 양질의 '정보 다양성 취득'에 해당하지. 그리고 변이 연산은 왼전히 새로운 함수를 만들어야 하지. 기존의 유전 알고리즘 내의 정보들끼리의 변이가 아닌, 기존의 유전 알고리즘의 초기값에다가 허수값을 곱하여 그 값을 따로 빼서 순위 기반 선택 후 공유 연산을 적용한 정보들도 포함하여 교류하는 함수가 필요하거든.

>>343 파동이라.. 그렇다면 양자전기기학을 공부해보는 것은 어때? 양자전기기학에 의하면, 이 세상의 물질들은 파동 형태의 에너지로 구성된 입자들이 서로 상호작용한다고 볼 수 있거든. 빛은 주파수에 형태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니깐 말이야. 파동 형태의 에너지는 빛과 전자기장이고. 양자전기기학에 따르면, <에너지 = 물질 = 빛>이 성립되게 돼. 상대성이론는 <E=MC^2> 로 <에너지 = 물질>임이 성립되었으니 말이야, 물질은 주파수만 다를뿐 광자인 빛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야. 양자전기기학은 전자기력을 광자의 교환으로 설명해. 전자와 같은 입자 하나가 광자 (빛의 최소 단위) 하나를 방출하면 반동으로 밀려나고 방출된 광자는 다른 물질입자와 충돌해 흡수되며 그 입자의 운동을 변화시키는 것이지.​ 열이라는게 자세히 보면 원자와 분자들의 운동상태에 따라 달라지듯이, 전자기력이라는 힘도 양자 차원에서 보면 전자에서 광자가 방출되고 방출된 광자가 다른 전자에 흡수되는 현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내용이야. 이미 이 내용은 파인만이 실험을 통하여 이를 증명했지. 전자기장의 주파수에 따라 물질과 상호작용하는 특성이 달라지며, 우리의 시신경에 반응하는 주파수 대역을 빛이라 하지. 빛은 전자기장의 일부이며, 전자기장은 사실 다양한 형태의 빛이라고 할 수 있지.

>>344 맞아, 그리고 요즘 인공지능을 공부하면서 알고리즘화를 어떻게 시키면 되는지 점점 더 큰 확신을 얻고 있어. 음.. 그리고 이건 여담이지만, '유전자 알고리즘'이라고 하는 건 잘못된 번역이야. 영어로는 Genetic Algorithm이라고 하는데 일본에서 유전자 알고리즘이라고 번역해서 통용되기 시작한 것을 우리나라에서 그냥 사용하게 된것이거든.. 그리고 '유전자 알고리즘'이라는 표현이 틀린 이유가.. 유전적인 현상을 문제 해결이나 시뮬레이션에 이용하는 것이지, 유전자의 이용에 그 초첨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유전 알고리즘'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해.

>>345 사피어 워프 가설의 약한 해석을 이용한거야. 사피어 워프 가설의 강한해석은 현재 언어학계에서 부정하지만 약한 해석은 받아들이고 있거든.. 음.. 정확히 말하자면, 사피어-워프 가설보다는 인지언어학을 접목시켰다고 한 것이 더 정확하겠네. 인지언어학이 사피어-워프 가설의 강한해석은 부정하지만, 약한해석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사피어 워프 가설의 타당함과 거짓됨을 다른 언어학 종파에 비해서 좀 더 진지하게 연구하려는 학파여서 인지언어학이 사피어-워프 가설의 사상적으로 먼 후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지. 간력하게 설명하면, 언어가 사고에 완전히는 아니지만 일부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지. 그럼 여기서 떠오른 생각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새로운 언어를 만들고, 그걸 공명을 통해 다른 것에도 그 언어를 주입하면. 비슷한 사고를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가설이었어. 똑같은 언어를 주입하고, 그 언어를 이용해서 비슷한 사고를 하게 하여 공유몽을 꾸게 유도하는 것이지. 그래서 특정한 패러다임의 인공어를 직접 만들고 그것을 위빠사나 명상을 통한 공명을 응용해서 그 인공어를 주입한 것이야.

>>345 위빠사나는 산스크리트어로 '진실한 모습을 본다, 혹은 분석적으로 본다'는 뜻이야. 여기서 분석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편견을 개입시키지 않고 현상을 현상 자체로 본다는 뜻이야. 즉 어느 한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며 생성, 소멸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수행을 말하지. 내가 1판에서 위빠사나의 요체는 바로 '심식관구(深息觀口)'에 있다고 그랬지?. 여기에서, 관구(觀口)는 글자 그대로 ‘입구를 보라는 뜻'. 그리고 입구라는 것은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정보가 들어오는 다섯 입구를 뜻하지. 위빠사나는 ‘있는 그대로 보는 수행’이기 때문이고, 이런 위빠사나는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인지심리학과 인지철학과 같은 인지주의 관점과 호환되지.

>>345 인지주의에 대해 잠깐 설명해주자면, 인지주의는 인간 내부에서 일어나는 능동적인 사고과정과 인지구조를 중시하는 입장이야. 인지주의는 인지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외부감각이 자극하는 것을 변형하는 과정, 또 이를 기호화하거나 재생 내지는 재현하는 과정을 중시하지. 인지주의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할게. 행동주의 부터 설명해야 겠네. 행동주의는 프로이트로 대변되는 정신분석 또는 정신역동을 비판하며 등장한 심리학에 대한 과학적 접근 방법이야. 행동주의에서는 이전의 흐름과는 달리 철저하게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하고자 하였어. 눈으로 관찰 가능한 행동만을 심리학의 연구 대상으로 한정하고 이를 통해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었지. 그때 20세기 초중반을 지배했던 행동주의는 당시 학문적 흐름이 그랬듯이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과학성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어. 행동주의자들은 심리학이 추상적이고 사변적으로 흘러가려는 것을 경계했고, 무의식처럼 관찰될 수 없는 것은 연구의 주제도 될 수 없다고 보았지. 행동주의의 주장은 <자극 → 반응>이야. 흔히들 S → R 로 알고있는 것이지. 그러다가 <자극 → 반응>가 아닌, <자극→'심적 과정'→반응>, 즉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심적과정'을 하는 무언'가 있다는 새로운 주장인 인지주의적 입장이 제기되었고, 행동주의는 비판을 받게 되지. 그러다가 '학습', '인지지도', '통찰학습' 등의 반례가 나오면서(대표적으로 1925년의 쾰러의 통찰 학습 연구나 1946년의 톨먼의 인지도 연구) 행동주의의 입지는 점점 흔들렸고, 마침내 인지주의가 본격적으로 나타났지. 사실 인지주의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전에도 행동주의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이론은 꽤 있었어. 대표적인 사례가 인지부조화 이론이지. 20달러를 받은 사람보다 1달러를 받은 사람이 더욱 동기화되었다는 보고는 행동주의적으로 설명하기가 너무 어렵거든. 하지만 이는 당시 행동주의의 관점에서는 비과학적인 것이었어. 인간 내면에서 눈으로 관찰되지도 않는 심적 과정이라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연구할 수 있는지라는 결론밖에는 내릴 수 없기 때문이야. 하지만, 생물체는 동일한 자극이 주어졌을 때 동일한 반응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들이 축적되고, 과연 행동주의의 <자극 → 반응>만으로 인간의 행태를 전부 설명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지. 행동주의로는 설명될 수 없는 이상현상들이 위와 같이 보고되고 있던 와중에, 여러 전쟁을 거치면서 컴퓨터가 발전되게 되지. 이건 마침 자극과 반응 사이에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과연 그것은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 있을까에 대해 의문을 가지던 당시의 심리학자들에게 컴퓨터는 말 그래로 오아시스였지. 인지주의에서 나온 주장인 <자극→'심적 과정'→반응>, 즉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심적과정'을 하는 무언가'는 바로 컴퓨터에서의 '알고리즘'이다라는 <자극→알고리즘(='심적 과정')→반응>라는 주장이 완성되었고, 행동주의는 과거의 관점 취급을 받게 되지. 그래서 행동주의는 과거엔 흥했지만 지금은 한물 간 관점 취급을 받는 것이지. 인간 내면에서 눈으로 관찰되지도 않는 심적 과정이라는 것을 우리가 연구할 수 없다라는 행동주의의 입장은 컴퓨터의 등장으로 우리가 연구할 수 없다라는 주장을 더이상 하지 못하게 되었지. 이렇게 되어서 마음은 컴퓨터가 하는 일을 생물체 안에서 행하는 일종의 정보 처리 메커니즘과 같다는 '컴퓨터 비유'가 나오게 된거야. 내가 >>213 에서 설명한 것도 바로 인지주의 관점이었어. 게다가 컴퓨터를 이용하여 인간의 사고 및 문제해결 과정을 모사하는 연구, 즉 '인공지능 연구'의 등장으로 이러한 흐름은 더욱 가속화되었지. 그래서 인공지능의 패러다임도 인지주의야. 내가 인공지능을 공부하려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이전에 인지언어학을 응용한 인공어, 위빠사나의 패러다임, 인공지능의 패러다임 모두가 인지주의적 관점과 관련있기 때문이거든.

>>345 각설, 이렇게 인지주의는 사람의 뇌가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출발해. 인간이 어떤 행동을 습득하고 이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은 인간의 머릿속에서 이를 가능하게 하는 작동이 일어나기 때문이야. 따라서 인지주의는 인지자의 머릿속에서 전개되는 일련의 지적 활동과정을 중시하지. 인지주의는 인식 주체가 활용 가능한 정보를 지각, 조직, 평가하는 '정신적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하거든. 패러다임이 위빠사나의 '생각을 관한다'와 많이 유사해. 게다가 위빠사나는 구체적으로는 어떤 현상에건 반드시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고, 특별한 일이 없을 때에는 호흡과 호흡에 따른 몸의 변화를 관찰하지. 어떤 감각이 생기면 그 감각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야. 이렇기에 위빠사나의 장점은 모든 언어 동작이 수행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거야. 인지언어학의 패러다임은 인지주의이고, 위빠사나 명상과 인지주의는 어떤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에, 인지언어학적 관점을 이용하여 특정한 패러다임의 인공어를 직접 만들고, 그것을 위빠사나를 통한 공명을 응용해서 그 인공어를 주입하여, 유사한 사고를 유도한 거야.

>>349 음.. 나는 선도 수련자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AI쪽으로 가는 공학도이기도 해서, 컴퓨터에 많은 기여를 하는 양자역학은 상대성이론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해. 당장 우리가 쓰고 있는 컴퓨터나 스마트폰만 봐도 그 원리는 양자 역학이지. 예를 들어, CPU.. 핵심 소재인 반도체를 이용하고 개발하는 방법은 철저히 양자역학적으로 다루어지지. CPU가 컴퓨터에서 중요한 부품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오늘날의 컴퓨터 성능은 양자역학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경지라고 할 수 있겠지? 물론, 양자역학 없이 만들어진 컴퓨터가 있긴 하지만... 그건 현대에 아무도 쓰지 않는 30톤 짜리 계산기나 다름 없는 애니악이라.. 그걸 누가 쓰겠어. CPU 말고도 하드디스크도 양자역학이 적용되지. 하드디스크에 적용되는 이론은 거대 자기 저항 이론이야. 물질의 전기저항이 자기장에 따라 변화하는 현상이 확률이 적은데. 그것을 특수한 다층막을 이용해서 확률을 올리는 것이 '거대자기저항효과'라 하는데, 거대자기저항효과를 응용한 자기헤드라는 물체를 만들고, 이것이 적용되면서 하드 디스크 용량이 크게 늘어났지. 현대 문명이 컴퓨터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양자역학이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의 막대함을 짐작해 볼 수 있지..

>>349 현대 물리학의 가장 큰 화두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통합이기도 하고.. 하긴, 특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은 물리학자 폴 디랙에 의해 통합되어 양자전자기학이 탄생되었지만...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통합, 즉 양자중력 이론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통합이 가장 큰 화두라고 할 수 있겠네. 음.. 양자전자기학은 과거에 전기현상과 자기현상도 서로 독립적으로 연구되었지만 맥스웰이 빛도 전자기 형상임을 알아내서 그 둘을 연결하는 법칙을 발견했고, 화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원자의 존재를 알아 냈는데 물리학자들이 원자의 역학인 양자역학을 찾아냈지. 양자역학과 전기역학을 합쳐진, 양자역학과 특수상대성이론이 합쳐진 것이 양자전기역학이지. 뭐.. 양자전기역학은 아인슈타인이 꿈꾸던 통일장 이론에는 못 미치지만 가장 근접한 학문이지. 통일장 이론이 제시되어 있는 것을 실험하려면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통합이 되야 하는데 일반 상대성 이론은 중력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세계를 다루기 때문에 실험적 검증이 힘들지. 통일장 이론으로 제시되어 있는 초끈 이론도 검증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이고..

>>349 그나저나 '양자역학의 원리로 이루어진' 이라..양자역학 만의 패러다임으로는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해. 양자역학의 패러다임에다 '시간을 초월한 물리학'의 패러다임이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해. 음.. '시간을 초월한 물리학'이 뭐냐면.. 원문으로는 'Timeless Physics'이라고 부르는 것이야. '시간을 초월한 물리학'에서는 시간을 인간의 기억이 만들어내는 것으로 보지. 이렇게 되면 시간은 인간만의 주관이지 실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될 것이야. 물질의 속성을 보는 패러다임의 역사를 지우개를 예로 들어서 전체적으로 한번 훑어볼까? 마침 손에 잡히는 것이 지우개라서.. 일단 첫번째, 세상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작디 작은 입자. 근접성이 결여되어 있고, 이어지지 않은, 그저 전자력에 의해 결속되고 있는 작은 점으로 말이야.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는 개별적인 작다작은 입자이지. 단순히 고체라고 해서 정말 틈도 없이 완벽한 것은 아니라는 거야. 원자는 전자기장의 양자로 인해 공유결합을 일으키고, 간혹 근접거리에서 자력을 일으켜서, 이온 결합이나 반데르발스 힘을 일으키겠지. 더욱더 파고 들고자 한다면, 원자의 핵 안에 있는 양성자와 중성자 또한 독립된 개별적인 녀석이라고 할 수 있지. 양성자와 중성자 속에 들어있는 쿼크들마저 작디 작은, 독립된 개념이란 말이지. 요컨데 현실에서,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체'의 이미지에 부합되는 물질은 존재하지 않아. 잘 들여다보면 그저 무한과도 같은 숫자의 작은 점들로 구성되어 있을 뿐. 그럼 지우개라는 것은 지우개라는 이름을 가진 원자의 집합체이겠지? 두 번째, 여기서 한 단계 더 높혀보자. 공원에 들어섰을 때, 우리를 둘러싸는 주변환경은 실은 신경세포의 정보전달에 의해 우리의 두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청렴하고 화창한 하늘의 풍경은 상공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피질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이고, 시각피질은 두뇌의 후두엽에 존재하지. 이 밝은 세계에 대한 감각은 우리들이 두개골이라고 부르며, 평생을 떠나지 않고, 자각하지도 못하는 그 고요한 동굴 속에 존재하는 것이지. 고로 우리들이 거닐고 있다 생각하는 공원의 풍경은 실은 망막과 눈이 보내는 신호를 받은 두뇌 속의 신경세포가 해석해가며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불과한 것이지. 아 참, 이 두 번째 관점이 금강경 사구게에 나오는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해석하자면 '모든 것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으며 그림자와 같다'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말하는데, 이 두번째 관점은 그런 불교적인 관점과는 살짝 달라. 고정관념처럼 신비롭고 몽환적인 장막에 덮힌 것이 아니라, 공원의 허상 너머에 존재하는 건 분명 진짜 공원임이 틀림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허상이라는 것 뿐이야. 그럼 우리가 지우개를 내려다 보는 것은 우리가 지우개를 실제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겠지. 다만 우리는 우리의 두개골 속에 존재하며, 그저 망막이 보내는 신호를 해석하며 뇌가 생성해나가는, 상상에 불과한 이미지를 경험하고 있을 뿐, 진짜 지우개를 그 이미지 속이 아닌, 다른 어디엔가 존재하겠지. 그리고 그 진짜 지우개는 우리의 두뇌가 떠올리는 무의식적으로 떠올리는 그런 형태가 아니겠지. 지우개가 틈이 없는 완전한 사물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그저 우리의 두뇌 속, 즉 형태의 감각 통합과 공간지각을 통괄하는 두정엽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불과하겠지. 진짜 지우개는 전자력에 의해 만들어진 공유결합으로 서롤 옭아매고 있는 원자의 집합체이고, 그 근처에는 지우개-분자레 튕기면 사방을 돌아다니고 있는 공기 분자가 있겠지. 세 번째, 또 한 단계 더 높혀보자. 지우개가 그저 틈이 없는 하나의 완전한 물체라는 우리의 무의식적인 개념은 당연하게도 이상한 소리겠지. 마치 실제의 영토와 육안으로도 구분이 가능한 엉터리 지도와도 같은 것이야. 인간은 세계를 혼층적으로 구별해 두었어. 각각의 국가가 돌아가는 법, 인간이 움직이는 법, 내장이 작동하는 법, 세포, 분자, 그리고 심지어는 쿼크마저 말이야. '지우개'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지우개를 관장하는 법칙, 즉 '지우개는 연필 자국을 지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거야. 그럼 여기서 더 화학적인 면모로 바라보자는 생각을 하면 우리의 두뇌는 마치 별개의 지식인 것처럼 고무 분자에 대해서 떠올리게 되겠지. 허나, 이 모든 것들의 우리의 머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 비록 우리가 지우개를 관장하는 법칙에 대해 개별적인 사고를 지녔을지도 모른다고 해도, 지우개의 법칙을 물리적으로 개별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 우리는 현실을 각각 단계마다 인식이 틀린, 단계적인 다수의 조직으로 받아들이지. 하지만, 그것은 지도에 그려진 형상일 뿐이며 진짜 영토는 그렇지가 않고, 현실은 오직 단 한 개의 단계로만 구성되어 있지. 그것이 바로 쿼크, 기초적인 수학적 법칙을 따르는 통일된 저층의 개념이지.

>>349 네 번째, 자.. 여기서 몇 단계를 쭈욱 높여볼까?. 전 단계들의 패러다임과 달리 이제 여기서부터 양자역학이 들어갈거야. 현실은 원자라는 이름의, 여기저기 산만하게 돌아다니는 작은 당구공의 집합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어. 그 또한 거짓말에 불과한 것이지. 원자가 작디 작은 점과도 같은 개념이라는 허울 좋은 또 하나의 허상에 불과한 것이지. 입자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그저 다입자 배열적인 공간 속의 자욱한 진폭만이 있으며, 우리의 두뇌가 아주 자신감 넘치게 지우개라고 믿고 있는 무언가는 사실 공교롭게도 인수분해가 적용되는 파동 함수의 인수였던 거야! 6이라는 숫자 안에는 3이라는 인수가 있다는 사실처럼 결코 개별적인 존재라고 부르기 힘들지.. 다섯번째, 그럼 여기에서 '시간의 개념을 초월한 물리학'의 패러다임을 적용해 보자. 지우개라는 것은 결국 인수분해가 적용되는 파동 함수의 인수이기 때문에, 결코 개별적인 존재라고 부르기 힘들다고 네번째에서 말했지. '시간의 개념을 초월한 물리학'을 적용한다면, 그 파동함수의 인수를 변화시키는 것은 곧, 개별적인 과거와 미래의 현실의 관계를 형성시키는 매개체가 되겠지?

>>349 물론 주의할 것이 있어. '시간의 개념을 초월한 물리학'이 적용된 '시간에 구애 받지 않은 양자역학의 공식'은 최근에 나왔기에 현재 대외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는 점은 주의하길 바라. 하지만, 시간에 구애 받지 않은 양자역학의 공식은 시간에 구애를 받는다는 생각을 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거의 드러난 지식이라 곧 대외적으로 인정받을 거야. https://rationalwiki.org/wiki/Timeless_physics 한국에는 '시간의 개념을 초월한 물리학'이 아직 그렇게 안 퍼져있는 것 같아서, 관련 링크를 올릴게.

>>351 허수값 처리하는 이유를 설명해 줄게 요즘 유체이탈을 과학도분들이 양자역학의 양자 얽힘 현상으로 설명하기도 하긴 해.. 아 참, 양자 얽힘 현상은 양자 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으로 부터 유도되는 결론 중 하나야. 쉽게 말하면, 서로 연결된 두 개의 양자 중 어느 한개를 관찰하게 되면 그것의 상태가 정해지는 동시에 연결되어 있는 나머지 양자도 자연스럽게 상태가 정해지는 현상을 뜻하지. 유체이탈을 양자역학의 양자 얽힘 현상으로 설명하는 것을 보면, 양자 얽힘 현상에 의해 의식이 구성되고 그것이 사망한 뒤로도 일정 시간 동안 주변에 머물수 있다는 이론이야.. 그리고 유체이탈을 양자 얽힘에 의해 의식이 빠져 나오는 것으로 해석하여, 유체이탈을 물질 현상의 일종으로 보는 관점인데.. 난 이 관점에 반대하는 입장이야. 한번 생각해 봐, 꿈이나 상상같은 것은 과연 물질일까? 양자 얽힘 현상 이론대로 물질이 반응하여 생각을 일으켰다고 한번 가정해보자, 그렇게 해서 일어난 생각 자체만을 따져 보자. 그게 어떤 소립자로 어떻게 구성이 되어 반응을 하는지 과연 알 수 있을까? 생각이나 꿈 같은 것을 소립자의 운동으로 해석하기는 힘들지. 소립자보다 더 작은 초극미자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뭐.. 과학이 조극미자의 세계까지 도달을 못해서 소립자의 세계 정도만 파악할 수 있다고 할 수 있겠지. 만약 그 말대로 쿼크 이전의 초극미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나오면 영혼의 구성물질이라고 할 수 있을거야. 그렇게 되면 생각과 영혼의 문제는 백일하에 드러나겠지. 그런데 문제가 있어. 오늘날의 양자역학은 이미 질량이 제로인 소립자까지 다루고 있거든. 이미 질량이 제로인 소립자까지 다루고 있는데 이보다 더 작은 초극미자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이렇게 해서 발상을 전환하기로 했어. 영혼이라는 것을 양자 얽힘처럼 소립자의 정보 덩어리로 이루어진것이 아닌, 물질과 상반된 상질이라는 것으로 정의할 거야. 선도에서는 정신의 구성요소를 물질과 상반된 요소인 '상질'로 정의하거든. '상질'은 이미 존재가 밝혀진 반물질과는 다른 개념이야. 그리고 위를 고려하면 비물질은 허수값을 곱하여 나타내야 하지. 그렇기에, 기존의 유전 알고리즘의 초기값에다가 허수값을 곱하는 것은 '상질'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야.

>>351 유전 알고리즘부터 시도하는 이유는 아직 강인공지능에 대해서 많이 연구가 되지 않아서 약인공지능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기 위해서야. 인공지능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인간의 마음을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같은 관점으로 보고 행하는 강인공지능과 단지 유용한 도구의 개발을 위해 행하는 약인공지능이 있어. 그리고 현재까지 만들어진 모든 인공지능은 약인공지능이지. 지금까지 인공지능이랍시고 개발 된 물건들은 미리 정의된 규칙이나 복잡한 알고리즘, 방대한 데이터를 토대로 비교적 지능적으로 보이는 행동이나 결정을 할 수 있게끔 구현한 수준에 불과하거든. 딥러닝이 나오면서 제한적인 분야에서 사람을 능가하거나 유사한 성능을 보이는 프로그램이 속속 등장했지만 이것도 결국 사람의 학습 능력 일부를 구현해낸 것에 불과하니까, 약인공지능을 인간과 같이 바라보는 것은 무리수라고 볼 수 있지. 알파고도 역시 그냥 정해진 규칙 내에서 바둑을 잘 두는 도구일 뿐이야. 전기톱이 나무를 잘 자르는 도구이고 자동차가 도로를 빠르게 다닐 수 있는 도구이듯이 말이야 뭐.. 그렇다고 해도 단순 도구라는 약인공지능의 특징은 그렇게 얕볼만한 것이 아니야. 현재의 약인공지능들은 이미 인간의 능력을 한참 초월하고 있으며, 이 인공지능들이 하는 일 중에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일도 많거든. 강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컴퓨터의 정보처리능력으로 구현한 시스템이고, 현재 인공지능에 대한 모든 논란은 강인공지능에서 나오지. 그런데 사실 강인공지능이라고 불릴만한 수준의 인공지능은 개념이 모호한 상태야. 애초에 인간의 지성 전체를 구현한다고 하는데 이게 뭔지,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도 과학적으로는 명확히 정해진게 없거든. 의식이나 마음, 생각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는 과학적으로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에 있거든. 내가 하고 있는 선도의 이론들을 수학적으로 알고리즘화여 인공지능에 적용하는 시도는 현재 약인공지능의 시도에 해당하지. 물론 약인공지능에 시도를 여러번 한 다음에 강인공지능에도 도전할 계획이야. 선도의 원력진화론을 함수화하여 유전알고리즘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은 약인공지능에 해당하지. 강인공지능을 도전하게 되면 >>254에서 말한 마음의 움직임을 모두 네 층인 '원종(原種)', '원식(原識)', '염식(念識)', '상식(想識)' 으로 나눈다는 있다는 이론을 사용할 계획이야.

>>351 증명 반박이라.. 과학 계열이면 모르지만 공학 계열에서는 딱히 문제되지 않아. 딥러닝에서 쓰이는 인경신경망만 봐도 말이야.. 회귀 분석의 방법론에 입각해서, 정답들과의 오차를 최소화하는 가중치와 역치를 찾는 최적화 문제를 풀기 위해 기울기 하강법을 사용하거든...? 근데 인공신경망에서 기울기 하강법을 쓰다보면 최소점이 없다던지, 기울기가 사라진다던지 하는 문제가 생겨. 기울기 하강법은 무작위 위치에서 시작해서, 자신의 발 밑만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아래쪽 경사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 나가는 것과 같지. 그리고 현재 인공신경망은 층위의 개수가 많아질수록 학습이 기하급수적으로 어려워져... 층위가 지날수록 신호는 기하급수적으로 희석되고, 층위가 조금만 깊어져도 이 신호는 심각할 정도로 약해져 노이즈에 완전히 파묻히게 되거든. 현재 인공신경망의 가장 큰 문제인 '기울기가 사라지는' 문제야. 인간의 뇌세포는 상당히 복잡한 연산 장치이며, 그 과정은 현재까지 완벽하게 해명되지 않았어. 앞으로 뇌과학이 발달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리고 뇌세포는 머나먼 목표값에 자신을 최적화하는 대신 맡은 자리에서 자신에게 들어온 신호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역할을 하지. 이 과정을 '헵 가소성'이라고 해. '헵 가소성'은 연결된 뉴런들 중 다른 뉴런들과 함께 움직이는 뉴런들의 연결을 강화시키고, 그렇지 않은 뉴런들은 연결을 끊어버리는 거야. 때문에 층위가 많아질수록 정보가 취합될지 언정 흩어지지는 않아. 이런 본질적인 차이 때문에 인공신경망 알고리즘은 생물학적 뇌의 어설픈 모방으로 여겨졌고, 실패한 이론으로써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갔다가.. 딥러닝 기술의 개발로 다시 쓰이게 되었지. 하지만 이건, 인공신경망 알고리즘 문제점들은 '과학적'으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는 거야. 그렇지만, 위 문제점들을 커버할 수 있는 '공학적' 기술이 등장하면서, 성능이 향상된 것이지. 예를 들어, 망이 자기 자신을 출력하도록 미리 학습시켜, 신호의 기하급수적인 분산을 완화하는 '사전 훈련'이라던가 데이터를 나눠서 각각 일부 시냅스를 '끈' 뒤에 나중에 다시 합치는 트릭이라던가.. 그리고 컴퓨터의 연산속도가 무지막지하게 빨라지면서 알고리즘 자체의 느린 속도가 그렇게까지 문제가 되지 않게 되었거든.

>>351 이것이 바로 '과학'과 '공학'의 차이야. 아직 인공신경망 알고리즘은 인간 뇌에 미치지 못했어. 사람의 뇌는 무게는 안 나가고 당 몇 그램만 주면 몇 시간이고 굴려먹을 수 있지만, 컴퓨터가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슈퍼컴퓨터로도 모자라지. 쉽게 말하면, 현재 인공신경망의 문제점은 엄청 딸리는 소프트웨어의 효율을 압도적인 하드웨어가 커버하고 있는 셈이지. 인공신경망은 만드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이게 왜 잘 작동하는지 잘 모르는 실태거든. 그냥 결과가 나오니까 쓰는 거지.. 인경신경망 알고리즘의 성능 개선을 위해 접근하는 각종 시도의 경우 인간 뇌세포의 과학적 작동 방식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이 방법을 사용하면 어떻게 성능이 나아지는지에 관한 이론적 근거가 빈약하거든..

>>389 요즘 나를 언급하거나 나를 사칭해서 상업적으로 사기를 치는 사기꾼들이 많아서 충격을 받았고.. 그 외에도 여러 일정이 겹쳐서 오컬트계를 완전히 뜰려고 해.

>>391 이 스레를 읽어줘서 고마워. 하지만 오컬트계를 떠나는 이유가 나를 언급하거나 나를 사칭해서 상업적으로 사기를 치는 사기꾼 때문인 것도 있지만.. 유학 준비로 영어와 패턴인식과 기계학습을 공부해야 해서 바쁘고, 교육봉사활동도 해야 해서 바쁘고, 조금 있으면 군입대도 겹치고.. 선도 수행은 계속할 생각이지만, 혼자서 조용히 할 생각이라.. 앞으로 오컬트계에서 활동할 시간이 아예 없을 것 같아. 제대하더라도 오컬트계는 활동할 시간이 없어서 아예 안 올 생각이야.

>>391 맞아, 7주기 적용은 날은 따로 잡지않아도 돼. 개인적으로 내가 본 책 중에선 호흡이론으로는 율려선과 석문호흡이 가장 괜찮다고 생각해..

>>393 내가 알기론 불가능 해. 음.. 시간 관련 질문이 많이 나오는데, 시간에 대해 잠깐 설명을 할게. 시간에 대한 주장은 크게 두가지가 있어. 시간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는 가설과 시간은 필요에 의해서 정의된 것이라는 가설로 대립되지. 전자의 가설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뉴턴이고, 후자의 가설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라이프니츠지. 과학자 말고도 철학자 칸트는 전자든 후자든 시간을 인정하는 주체가 인간이라는 점을 자각한다고 주장했지. 이런 칸트의 입장은 시간은 필요에 의해서 정의된 것이라는 라이프니츠의 주장에 가깝지. 어떤 물리학에서는 시간을 인간의 기억이 만들어내는 것으로 보지. 이렇게 되면 시간은 인간만의 주관이지 실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될 것이야. 이런 입장도 시간은 필요에 의해서 정의된 것이라는 라이프니츠의 주장에 가까워. 철학에서는 시간을 '사건의 변화'로 규정하지. 변화가 있게 되면 순서가 있을 것이고, 그 순서가 시간이라는 것이야. 따라서 시간이 없다면 어떤 변화도 없지. 변화가 없다는 것은 일체 만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야. 온 우주에 바위 덩어리만 있어도 시간은 흐르게 되지. 극미한 것 뿐이지, 바위는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야. 이런 입장도 시간은 필요에 의해서 정의된 것이라는 라이프니츠의 주장에 가깝지.

>>394 명상의 시간은 중요하지 않아. 집중의 정도가 중요하다고 봐.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것보다 짜투리 시간을 사용해서 최대한 집중하는 방법도 추천할게.

>>396 업이라는 것을 관장하는 사람...? 굳이 말하자면, 업이라는 관장하는 것은 자신의 양심과 마음이라고 할 수 있지. 업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이치라고 할 수 있거든. 오컬트판에서 자주 나오는 저주를 예로 들어보자. 누군가를 저주하고 싶다는 마음은 그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마음이겠지? 그리고 그 사람과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접촉하게 되면 어떻게든 전달되기 마련이지. 결국 그 사람이 레스주들을 껄끄럽게 여겨 거기에 대한 대응이 생길 뿐이야.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이치이지. 그게 업보라는 거야. 업이라는 것이 없다는 게 아니라, 업이라는 것은 그냥 자연스러운 이치인데 이게 신비스럽게 포장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

>>397 서신을 보내면 전해질 수 있는 방법이나 주술..? 읽어도 감이 잘 오지 않는데.. 의미를 모르겠어. 내가 도움을 줄 수 없을 것 같아.

>>399 음.. 나는 주술이나 부적을 가지고 기복을 하는 행위를 그렇게 좋게 보지 않아. 부적이나 주술에 의존하는 것보다, 나는 스스로의 성취를 더 중요시 하기 때문이야. 용돈 버는 주술, 성적 올리는 부적..? 나라면 용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주술이 아닌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부적이 아닌 시험 한 문제라도 더 풀 것 같거든. 그 이유? 나는 고통이라는 것은 그것을 극복하여 개선된 상황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신호라고 보거든. 하지만 그것을 주술에 의존해 버리면,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리고 합리적 사고가 퇴색된다는 것도 큰 문제이지. 용돈 버는 주술이나 성적 올리는 주술로 인해서 그 결과가 나타났다고 치자. 과연 그 결과가 나타난 것이 정말 주술이나 부적을 써서 그런 것일까? 나는 의문을 가지고 끝없이 사고해야 한다고 생각해. 여기에서 끝나면 모르겠지만, 한번 좋은 결과가 나타났다는 이유로 용돈 버는 주술이나 성적 올리는 주술을 만약 계속 맹신하거나 의존하게 되면, 이성적 사고가 퇴색되어버려. 이성적으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한 걸 신앙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역효과가 나타나지. 난 그렇기에 현실에 깃든 장애와 난관들을 무조건 주술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경계하고 있어.

>>399 음.. 내 견해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할게. 이 설명은 1판의 영력 점검표에서 '맹신, 신앙'과 '귀의'의 차이를 가르는 것과 같기도 해. 언뜻 보면, 신의 종류는 인간들의 수 만큼이나 많아. 설사 종교가 같더라도 믿고 따르는 신은 제각각이지. 사람들은 신앙에 몸담고는 그곳에서 내거는 신을 신앙한다고 말하지. 그런데 자세히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것이, 저마다의 의식에서 만들어내는 관념의 신을 진짜 신으로 착각하고 있어. 신앙인이 만명 있다고 치면 그들 만명이 죄다 다른 신을 믿고 있다는 말이야. 즉, 그들은 자신들의 의식에서 날조해 낸 관념의 신을 숭배하고 있다는 거야. 그렇기에 교리가 억갈리고 종파가 분화되고, 성직자마다 사소한 문구하나에도 해석의 차이를 보이게 되는 것이지. 그 뿐이겠어? 그 종교의 신자들 또한 저마다의 신을 창조하여 교통을 하면서 지내니, 이건 뭐 신의 수가 곧 사람의 수가 아니면 뭐겠어? 즉, 내 말의 요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짜 신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릿속에서 조작된 관념의 신을 믿고 따른다는 것이지. 참된 신은 어디에 있을까? 그건 다름 아닌 우리의 양심이야. 양심에 귀를 기울어야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이지. 이곳이 아닌 머리에서 찾으려고 하면 신의 음성은 곧바로 왜곡되고 말지. 권력과 물욕, 색욕의 얼룩이 묻어서 신의 뜻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지고, 여기에 저마다 지닌 구복적 바람이 덧붙여져서 생각지도 않은 엉뚱한 신이 재탄생하는 것이지. 신앙인들은 노상 신에 대한 숭배를 거론하는데, 어느 신이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 애쓰고, 어느 신이 무엇이 부족하여 재물을 바치라고 했을까? 그들의 논리라면 이미 그들의 신은 우주 삼라만상을 지배하는 전지전능한 창조주 일텐데 말이야. 그러니 신앙인들이 믿는 신은 자신들의 생각에서 만들어낸 관념의 신인 것이지. 참된 신은 양심에 있지. 모든 인간들의 그들의 자신이기에 차별이 없고, 그렇기에 베품으로서 아낌이 없어. 양심은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처럼 양심 역시 우리들이 바르게 성장하여 가치 있는 존재가 되기를 소망하지. 양심은 인간들이 신에게 매달려 구복을 하고 나아가 구원을 바라는 일체의 행위를 싫어하지. 그건 성인이 된 자삭이 부모 품에 도로 안겨 젖을 물려는 것과 진배없으니 말이야. 자신의 마음에서 울리는 양심의 소리가 곧 참된 하느님의 소리라는 것이야. 일체의 사심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목소리. 이것에 귀울이는 것이 곧 하느님이라는 것이지. 양심이 아닌 관념의 신을 택하는 것 순간 영력 증진은 완전히 완전히 물 건너가고 말아. 뭐.. 오히여 영력이 퇴화하지만 않아도 잘된 일이라 하겠지. 그래서 성인들이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숱하게 강조했던 것이고.. 우상이란 결국 우리들의 관념에서 만들어낸 가짜 신을 말하는 것이야.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편의대로 날조한 신이지. 양심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선택받았다는 오만이야. '신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니 나만은 어여삐 여기실 것이야. 재물도 남보다 많이 바쳤고, 더군다나 신성을 모독하는 자들을 혼재주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기특하게 여기실까' 하는 생각들 말이야. 선택 받았다는 생각, 이런 차별심에서 온갖 상극적 병폐가 불거져 나오는 것이야. 인류의 역사가 온통 전쟁으로 얼룩진 것도 바로 자신들만이 선택 받았다는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이겠지. 그렇게 스스로 관념의 신을 우상으로 섬기니.. 양심을 따르는 것은 단순하지만, 단순하면서도 지켜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것이 영생과 더불어 권욕, 물욕, 색욕으로 향하니 그것에 도움을 주는 신을 간절히 원할거야. 이런 욕심은 저마다의 맞춤형 신을 조작해 내는 것이지. 자신의 욕심을 채워주는 신이니 얼마나 고귀하고 거룩하겠어? 멸시맏고 천대당하는 자에게는 그런 불평등을 말끔히 해소해주는 신이 깃들 것이고, 착취하고 군림하려는 자에게는 그런 권력을 쥐여주는 신이 임어할 것이며, 폭행하고 전쟁하고 싶은 자에게는 그런 투쟁을 정당화하는 신이 자리할 것이고, 복락을 얻고 영생과 열반을 누리고 싶은 자에게는 그것을 실현해 줄 신이 강림할 것이지.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주는 축복의 신이지만, 그건 마치 고통을 잊기 위해 진통제나 아편을 취하는 것처럼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이야. 현실에 깃든 수많은 장애와 난관들을 맞춤형 신으로써 모조리 지워버리면 어떻게 영력을 증진시킬수 있는 것일까? 고통이라는 것은 그것을 극복하여 개선된 상황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신호일진대, 그것을 꺼 버리면 무엇 가지고 영력을 증진시킬수 있는 것일까? 마약은 달콤하지만 그 끝은 참혹하리만큼 쓴 것 처럼, 관념의 신은 황홀하지만 그 끝은 퇴화로 귀결되고 마는 것이지. 관념의 신을 택하는 것은 맹신이나 신앙이 될 것이고, 양심을 택하는 것은 귀의가 될 것이야. 그 양자택일에서 영격이 현저하게 갈리게 되지. 물론 그냥 머리로만 이해하면 이것 역시 관념의 벽에 걸리게 되고 직접 자신이 실천을 해야 온갖 주의와 사상, 교리와 이념으로부터 초월하여 자유로워 질 수 있지.

>>400 내가 인공지능을 공부하려는 여러가지 이유 중의 하나는 이전에 인지언어학을 응용한 인공어, 위빠사나의 패러다임, 인공지능의 패러다임 모두가 인지주의적 관점이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접했을 때 푹빠지게 되었거든. 또 여러가지 이유 중의 하나는 나는 오컬트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현재 오컬트를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지 않고 오컬트는 특수한 사람들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서 꼭꼭 감추더라고.. 개인적으로 나는 그것에 반대하는 입장이야. 그 이유에 대한 일화를 하나 들어볼게.. -예전에 포달다라는 인도의 승려가 있었다. 똑똑한 제자 하나를 두었는데, 이 제자가 중국에 건너가 대승불교를 공부하고 돌아왔다. 제자와 선문답을 하던 포달다는 제자가 자신의 경지를 훨씬 넘어선 것을 발견했다. 포달다는 너무나 기뻐서 예를 표하면서 가르침을 제자에게 청했다. 이것을 옆에서 지켜 본 포달다의 도반들은 혀를 내둘렀다. “저런 미친 녀석, 아니 제자에게 예를 표하다니….” “이보게, 그게 아닐세. 나는 일정 경지에 오른 다음부터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네. 그런데 나의 제자가 그 이상에 도달하였으니, 다시 나에게는 도약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네.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니며, 또한 가르침을 주는 선생님에게 예를 표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위의 포달다의 이러한 마음을 존경해. 무슨 비법을 감춰 두고 마치 당근을 매달아 당나귀를 부리듯 제자 위에 군림하는 행위는 배타주의를 낳겠지. 그리고 그것은 나도 용납할 수 없어. 나는 새 잎이 돋아나면 당연히 헌 잎은 제쳐져야 한다고 생각해. 후학이 선학보다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후학들이 선학을 뛰어넘을 때 비로소 진보는 싹튼다고 할 수 있지. 나는 오컬트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특수한 사람들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반대한다고 그랬지? 그런 생각이 나를 선도를 인공지능으로 구현한다는 생각으로 이끌게 되었어. 인공지능은 공학의 영역, 공학의 혜택은 모든 사람에게 접근이 허락되어 있지. 그렇다면 선도 이론을 수학적으로 함수화해서 인공지능에 적용한다면, 선도를 특수한 사람들만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열린 혜택을 주지않을까? 라고 생각했어.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선도 이론을 수학적으로 함수화해서 인공지능에 적용한 것을 버전 업그레이드 할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이 알고리즘의 원리를 알기위해서 소프트웨어 리버스 엔지니어링 툴로 어차피 다 코드를 뜯어볼게 뻔하거든.. 특수한 사람들만이 아닌 모든 사람이 열린 혜택을 받게 되는 거지. 이것이 선도를 하다가 인공지능을 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야. 이 두가지 이유 말고도 여러가지 이유가 더 있긴 해..

>>401 나에게 오컬트는 '인도적인 성찰의 수단'이야. 나는 현재 개개인의 깨달음, 즉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등의 '인도적인 통찰의 수단'으로 선도를 수행하는 거지. 명상을 통해 우리들의 철학적인 문제인, 나는 누구인가 과 같은 궁금중을 해소할 수 있거든.

>>402 스레딕 오컬트판뿐만 아니라, 오컬트계 관련 곳은 전부 다 떠날거야. 화랑도는 일단 간부직 내려놓고, 학회 탈퇴 등 오프라인 단체와 스레딕 오컬트판, 오컬트 카페, 오컬트 오픈톡 등등 온라인도 전부 떠날거야. 장사꾼이나 사칭범들 때문도 있지만, 유학 준비와 교육봉사활동도 해야 해서 바쁘기 때문에 오컬트계를 완전히 떠날려고.

>>405 여담이지만, 영화 터미네이터 같은 인공지능을 강인공지능이라고 해. 인공지능은 강인공지능과 약인공지능으로 나누어지며, 강인공지능은 인간을 완벽하게 모방한 인공지능이라고 할 수 있고, 약인공지능은 유용한 도구로써 설계된 인공지능이라고 할 수 있는데. 레스주가 말한 것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인공지능 논란은 대부분 강인공지능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지. 그런데 강인공지능은 현재 기술로는 아직 멀고 멀었지. 그래서 나는 MICrONS 프로젝트를 매우 기대하고 있어. MICrONS 프로젝트는 미국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인데, 뇌를 리버스 엔지니어링해서 뇌의 알고리즘을 규명 후, 컴퓨터에 응용함으로써 인간처럼 생각하는 컴퓨터의 개발을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야. 링크를 올려볼게. https://www.iarpa.gov/index.php/research-programs/microns … 이 프로젝트의 성과는 강인공지능 과학 발전의 토대를 구축하겠지.

>>410 약인공지능의 분야인 선도의 원력진화론을 함수화하여 유전알고리즘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을 마치고 약인공지능의 타 부분들도 도전하고 나서.. 강인공지능을 도전하게 되면 >>254에서 말한 마음의 움직임을 모두 네 층인 '원종(原種)', '원식(原識)', '염식(念識)', '상식(想識)' 으로 나눈다는 있다는 이론을 사용할 계획이야.

>>413 풍수지리 책.. 찾아보니 지금 절판되었구나.. 이런.. 1999년에 나왔던 책이라서 그런가..

>>418 당연히 인본주의가 우선이지. 사람을 위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인본주의가 가장 중요한 것이야. 사람을 중시하는 것이 바른 사상이야. 만약 내가 하고 있는 오컬트가 인본주의에서 벗어난다면 당장 버려야 겠지? 음.. 그나저나 오컬트가 인본주의와 충돌할 수 있는 시나리오면, 오컬트가 민족주의로 변질된 것이겠네. 민족주의의 예로 가장 좋은 사례가 내가 >>481 에서 말한, '어떤 사람들은 현재 오컬트를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지 않고 오컬트는 특수한 사람들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서 꼭꼭 감춘다'라는 것이지. 특수한 사람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단체의 사람들은 선택 받았다는 생각, 이런 차별심을 갖게 되겠지. 그럼 그 집단의 구성원들은 자신은 선택받았다는 차별심과 함께 소속감에 극도로 집착하게 되고, 만약, 자신들이 있는 집단을 부정하는 시도에 이빨을 드러내겠지 울타리가 생기는 동시에 분별이 생기고 여기서 온갖 질시와 반목, 투쟁이 따라오지. 내부는 소속감으로 채워져 있지만 울타리를 높이 세우는 바람에 그 소속감은 언제든지 제악으로 돌변할 수 있고, 누군가 그 울타리를 흔들거나 침범하기라도 할라치면 가차 없이 밟을려고 하는 것. 지나친 안정감, 지나친 집단소속감... 소규모이지만,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지.

>>418 민족주의와 인본주의의 이야기를 해볼까.. <구약> 알지? 구약이라는 것은 글자 그대로 '옛날 약속'이지. 핍박 받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정치적 그리스도를 보내주겠다는 여호와의 약속이지. 유대인 민족은 이 그리스도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어. 이들은 그리스도가 오는 날 전 세계를 자신들이 통치하게 될 것으로 믿었지. 여호와의 말처럼 타민족을 노예로 부리며 천하의 주인으로 군림하는 날이 반드시 올것이라고 믿으며 수난의 세월을 감내 하였어. 이 때, 예수가 나타났어. 많은 군중들이 그를 따르며 <구약>에서 약속하신 그리스도가 나탄ㅆ다고 모두들 믿었지. 그러나 당시 유대인 랍비들은 좀 더 신중히 지켜보도록 했어. 과연 <구약>에서의 그리스도가 맞는지 여러 관점에서 살펴보았지. 그런데 여러 면에서 예수는 <구약>에서 약속한 그리스도가 아니었어. 첫째, 예수는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닌 모든 민족을 공평히 구원하고자 하였지. 이는 <구약>전체에 흐르는 여호와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야. 둘쨰, 예수는 구약의 율법을 훼손했어. 가령, 안식일 날 쉬지 않고 일을 했지. 랍비들이 왜 율법을 지키지 않느냐는 질문에, 예수는 "병들고 굶주린 자들을 구원하는 일이 율법보다 중요하다"고 대답했지. <구약>에서는 여호와의 안식일을 어기면 무조건 돌로 쳐죽이라고 적혀있던 것과 달리 말이야. (민수기 15:32-36)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안식일에 나무를 줍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그 사람이 나무를 줍고 있던 것을 발견한 사람들이 그 사람을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에게 데려와 그를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죽어야 한다. 온 회중이 진 밖에서 그를 돌로 쳐야 한다." 그래서 온 회중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를 진 밖으로 데려가 돌로 쳐 죽였습니다. 위 에서 나무꾼은 처자식을 먹여 살리느라 부지런히 일하다가 안식일을 어겼다는 이유 하나로 참변을 당했지.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는 안식일뿐만 아니라 수많은 율법을 뒤집어 버렸어. 만일 여호와가 이런 예수를 보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구약>에 있는 여호와의 율법을 살펴볼까? (레위기 11:4-12) 돼지고기를 먹지 마라. 물고기 중에는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만 먹어라. 메뚜가와 베짱이와 귀뚜라미는 즐겨먹어라 (신명기 22:6-7) 새가 둥지를 틀어 놓은 것을 보면 알이나 새끼를 잡아먹어라. 그런면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 (신명기 14:21) 너희는 부정탄 것을 먹지 말고 다른 이방인에게 팔아라. (신명기 21:18-21) 못된 자식은 가차없이 돌로 쳐 죽여라. (출애굽기 21:7-21) 노예제도는 필요한 것이다. 노예는 상전의 재물이므로 죽여도 괜찮다. (레위기 27:28-29) 사람도 재물일 때는 가차없이 죽여라. (이사야 34:17) 잘 판단이 서지 않을 때는 제비뽑기를 하여 결정하라 (신명기 13:6-16) 나를 믿지 않는 자는 부모 자식을 가리지 않고 모조리 죽여라 만일, 예수가 와서 이런 율법을 없애지 않았다면 오늘날 어떻게 되었을까? 장수하기 위해서 새 둥지를 털어 새끼고.. 알이고.. 다 잡아먹겠지. 부모가 자식을 제물로 바치고 말 안듣는 자식을 돌로 쳐죽이겠지. 믿지 않응 부모는 자식이 죽여버리고, 집집마다 노예를 두고 말을 안들을 때는 기분 내키는 대로 죽겠지. 일의 결정은 제비를 뽑아서 하고, 나쁜 물건이나 음식은 포장만 잘하여 다른 이교도들에게 팔겠지. 그러면서 질투의 신 여호와를 믿지 않는 자는 노아의 방주처럼 믿는 자만 몇 명 남기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말살할 계획을 세우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니? <구약>의 율법을 그대로 지키게 되면,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은 하늘 아래 있을 수가 없지. 민족마다 원시종교가 있었지만 지구상에 이런 악한 종교를 가진 민족은 없었어. 그래서 예수는 죽음을 불사하고 율법을 뜯어 고친것이지. 예수가 율법을 뜯어 고친것에 대해 신학자들은 구약의 완성이라는 표현을 쓰던데.. 나는 선이라고는 일모도 찾아볼 수 없는 <구약>을 완성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해. 송두리째 율법을 없앴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뭐... 이런 이유로 인하여 유대인들은 전 세계가 예수를 성자로 받들어도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지. 자신들의 여호와를 무참히 짓밟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할 수 없었던 것이야. 도리어 이단이라 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엄청난 죄악을 저지른 것이지. 그리고 그들은 수천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리스도를 기다리지. <구약>의 율법을 완전히 지키고 이행하는 끔찍한 지도자를 기다리는 것이야. 아돌프 히틀러는 유대인과 같은 선민 사상에 젖어서 게르만 족 중심의 유토피아 건설을 외치며 전쟁을 일으켰지. 그 와중에 경쟁 관계에 있던 유대인의 씨를 말리려고 대학살의 만행을 저질렀어. 만일 이런 히틀러보다 몇 백 배 광적인 <구약>의 그리스도가 나온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아놀드 토인비도 "나는 유대인이 하느님이 선택한 민족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어느 종족이나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것은 민족주의의 착오이다. 그것은 지적인 오류이며 동시에 윤리적인 오류이다." 자신의 회고록에서 민족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 이런 끔찍한 일들은 모두 지나친 민족주의에서 나오지. 인류사에 기록된 전쟁이라는 것은 대부분 민족주의의 대립이었고,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끊이질 않고 있어. 그래서 톨스토이는 "사람은 특별한 의미 없이 악을 끊임없이 행한다"라고 하였고, 쇼펜하우어는 "사람의 생존 경쟁이 가장 심각하다. 사람은 사람을 잡아먹는 승냥이이다"하고 말하였던 것이지. -초나라 공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그 활을 잃어버렸다. 신하들이 찾으려고 하자 공왕이 말했다. "그만 두라. 초나라 사람이 잃어버린 활을 초나라 사람이 주워 갈 터인즉 또 찾아 무엇하겠는가." 신하들은 임금의 어질음에 크게 감복하였다. 그러나 훗날 공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말하렸다. "애석하도다. 공왕은 큰 인물이 아니로다. 사람이 잃어버린 활을 사람이 주워 갈 뿐이라고 했어야 했거능 어찌 하필 초나라 사람뿐이랴." <설원> 공자가 나라와 민족을 초월하여 '사람' 중심의 도리를 논한 대목이야. 공자도 민족주의를 누구보다도 염려했지. 공자의 이 말을 공왕이 들었다면.. 예수와 같이 십자가에 못 박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

>>418 인류사를 되짚어보면 간단한 정리를 할 수 있어. 인류사는 민족과 사람의 대결이야. 민족을 강조하면 전쟁과 살육이 이어지고, 사람을 강조하면 사랑과 평화가 이어졌지. 종교사도 마찬가지야. 종교를 강조하면 십자군 전쟁과 같이 피바람이 멈추질 않겠지. 오늘날도 세계 곳곳에서 얼마나 많은 종교 테러가 발생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종교는 사람을 위해야 할텐데, 어째서 사람을 죽이고 핍박하는 살인 기계가 되었는지.. 동양, 서양 가릴 것 없이, 동서양의 성인들 중 민족을 강조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지. 사람보다 종교를 강조한 성인도 없었지. 공자, 예수도 모두 '사람'만을 강조했지. 공자는 "사람도 섬기지 못하면서 무슨 귀신을 섬기겠는가?" 라고 하였고, 예수는 마태복음 25장 40절~45절에서 "너희가 여기 있는 사람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베푼 것이 바로 나에게 베푼 것이라. 그런 사람을 도와주지 않은 것은 곧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라고 하였지. 사람을 위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야. 사람을 중시하는 것이 바른 민족주의이며, 사람을 중시하는 것이 바른 종교인 것이지. 사람보다 민족이나 종교를 더 사랑하는 자는 예수나 공자와 같은 성인에 합당하지 않아, 이것은 예로부터 함께한 뭇 종교의 기본적인 가르침이고... 사람을 중시에 놓으면 '나'와 '너'라는 대립이 줄어들고, '우리'라는 둥그런 공종체 의식이 싹틀게 되겠지. 인본주의는 21세기에 처한 인류의 최대의 과제라고 생각해. '사람' 중심의 사상과 종교와 문화.. 이것에 이상 사회의 대간이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야.

>>418 내가 하는 오컬트가 인본주의에 어긋난다면 나는 그걸 버릴거야. 나는 오컬트를 '인도적인 성찰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민족주의에 빠질 수 없는 '삶 속의 수련화' 수행을 하겠지. '삶 속의 수련화'는 오컬트하곤 매우 멀지만, 그것도 수행 이거든. 무슨 말인지 자세히 설명해줄게... 수행이라는 것이 꼭 현실과 등져야만 할까? 그렇지 않아. 예를 들어 볼까? 태극이라는 것이 뭘까? 태극이라는 것은 분별과 초월을 번갈아 하는 것이지. 분별과 초월이 일진일퇴를 거듭하겠지만, 분별을 키우고, 다시 분별을 지우고.. 이렇게 반복하면 늘 제자리이지만 그런 상태로 굴러간다면 모종의 변화가 생기게 되지. 내부에서 분별과 초월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그것을 동력으로 삼아 변화를 일으키게 되지. 뭐.. 물론 현실에서 상반된 두 양태의 생활을 동시에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을 하겠지. 이 태극을 적용해서 현실에 친숙한 수행을 만들어 볼까? 음.. 사회에 나가 힘차게 일하고, 집에 돌아와 휴식 겸 수행을 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보자. 다시 말해, 이침에 눈을 뜨면 각자의 일터에 나가 일에 전력을 기울리고, 퇴근해서는 만사를 접고 명상에 전념하는 것이지.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이것만큼 모순된 것도 많지 않을거야. 낮에 쏟아부운 분별활동으로 과연 수행이 되기나 하겠어? 아마 대부분이 낮 동안에 벌여놓은 분별을 되새기면서 좀 더 이로운 방향을 모색하겠지. 또한 저녁때 수행이 잘되었다고 치자. 명상을 통해 분별을 지우고 초월식을 잔뜩 지닌 상태에서 그 다음날 분별 활동이 왕성하게 일어날 수 있을까? 몽롱한 의식으로 한나절을 보내다가 십중팔구 좌절하게 되겠지. 이런 이유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지 말고 줄기차게 한 우물만 파라는 얘기가 나온 것이겠지.. 그럼, 여기에서 발상을 전환해보자. 자체 내에서 순환하는 구조라면 어떨까? 쉽게 말해, 낮에 쓴 분별 활동의 에너지를 수행의 밑천으로 쓰고, 다시 수행했던 에너지를 다음날의 분별 활동에 쏟을 수 있다면 어떨까? 낮 시간에 왕성했던 창조활동을 밤이 되면서 명상으로 허무한 의식으로 전환시키는 것이지. 자신이 피땀 흘려 이룩한 창조물이 결국 죽음으로서 이슬처럼 증발해 버린다는 이념, 바로 인생무상의 심리로 바꿔서 일체의 분별을 초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지.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 싹 비웠던 마음 바탕에 새로운 창조를 실컷 담고, 비워 놨기에 더 많은 것을 욕심내서 채울 수 있지. 그리고 다시 저녁이 돌아오면 많이 채운 만큼 허무함도 더 많이 몰려오고.. 이런 식으로 반복해서 나아가면 태극이 되는 것이지. 창조와 소멸이 반복되고, 이렇게 굴려가면서 '공'에 가까워 지는 것이지. 공이 뭐겠어? 바로 유력과 무력이 혼재된 도의 본래 모습 아니겠어? 따라서 현실 생활에 참여하는 것을 외면하지 말고 그것을 극즉반의 원리로 수행에 끌어다 쓰는 거야. 이렇게 되면 멀리서 수행을 찾지 않고도 일상생활에서 영력 증진을 할 수 있겠지? 여기에다가 자신의 원력을 세우면, 이것이 바로 내가 예전에 언급했었던, '삶 속의 수련화'야. 이 '삶 속의 수련화'를 오컬트라고 하기에 거리가 멀어. 하지만 이것은 영력을 올리는 수행의 일종이야. 이 수행법은 현실에 충실하면서도, 영적인 것도 추구하지. 충분히 답변이 되었지?

>>322 이 스레를 퍼갈 사람은 퍼가도 돼. 링크를 만들어줄게. 4판 다운 링크: https://drive.google.com/file/d/14bJCPzZlK8Cr4vP9n66MwzQoQIKyMiSI/view?usp=sharing

그럼 이제 이 스레를 끝낼게. 스레 뿐만 아니라 이제 나는 더 이상 오컬트 질문을 받지 않고, 오컬트 관련 이야기를 하지도 않을거야.. 정확히 말하면, 나는 오컬트계에서 나가게 되었어. 스레딕 오컬트판뿐만 아니라, 화랑도는 일단 간부직 내려놓고, 학회 탈퇴 등 오프라인 단체와 스레딕 오컬트판, 오컬트 카페, 오컬트 오픈톡 등등 온라인도 떠나게 되었어 오컬트계에서 나가게 된 이유는 요즘 나를 언급하거나 나를 사칭해서 상업적으로 사기를 치는 사기꾼들이 많은 이유도 있고, 유학 준비 및 교육 봉사등의 여러 일정이 겹쳤기 때문이야. 스레더즈에서 스레딕 까지.. 거의 2년 동안 스레를 이어갔었네. 내 스레를 읽어 준 레스주들 너무 고마웠어. 레스주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 모두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길 바라. 그럼 안녕!

>>492 스레주 .. 마지막을 실시간으로 함께 할수 있어 영광! 지식 고마워 그리고 트위터로 근황 지켜보며 항상 응원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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