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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fhBtipfdQo 2018/05/06 20:29:12 ID : 88o0sp801ii
며칠 전 학교에 갔습니다. 그 애가 없었습니다.
◆zfhBtipfdQo 2018/05/06 20:29:51 ID : 88o0sp801ii
흐리고 어수선한 날이었습니다. 그 애가 실종되었다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덕분에 제게 관심을 가진 사람은 얼마 없었습니다.
◆zfhBtipfdQo 2018/05/06 20:30:25 ID : 88o0sp801ii
선생님이 절 불렀습니다. 그간의 생활에 관한 질문을 받았고, 최대한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zfhBtipfdQo 2018/05/06 20:31:16 ID : 88o0sp801ii
밥은 굶고 있지 않습니다. 여전히 집에 찾아와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있다면 택배 아저씨 정도일까요. 아무도 오지 않아도 상관 없었습니다. 자신의 시간을 방해받는 것은 유쾌하지 않으니까요.
◆zfhBtipfdQo 2018/05/06 20:31:50 ID : 88o0sp801ii
밖으로 나가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시선도 싫습니다. 자신과 관련 없는 것들엔 신경 쓰고 싶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선생님은 그저 알았다 하셨습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 것은 그리 싫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zfhBtipfdQo 2018/05/06 20:32:24 ID : 88o0sp801ii
많은 아이들이 그 애를 찾았습니다. 그 애는 언제나 빛나고, 당당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사랑받고 있었습니다. 사랑이란 어떻게 주고받는 것일까요. 배운 적 없는 저로선, 바라보는 것밖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 애였습니다.
◆zfhBtipfdQo 2018/05/06 20:32:57 ID : 88o0sp801ii
지난 월요일부터 그 애는 학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합니다. 주말 동안의 행방은 묘연했고, 이렇다 할 증인도, 포착된 모습도 없었습니다. 가출이다, 자살한 것이다, 납치된 것이다. 여러 소문이 돌았지만, 그것을 흩뿌리는 아이들 중 누구도 그 애의 행방을 확신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애가 보고 싶었습니다.
이름없음 2018/05/06 22:13:09 ID : 3VfapWnTPeL
이렇게 말해서 미안한데 첫 스레부터 너무 주작같아ㅠㅜ
◆zfhBtipfdQo 2018/05/06 22:29:36 ID : 88o0sp801ii
주작에 예민해진 괴담판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네... 이 스레는 지어낸 이야기임을 첫 레스에 명시해 둘까 싶었지만, 진행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픽션으로 받아들여질 거라 생각해서 따로 쓰지 않았어. 괜히 스레 분위기를 깰 것 같기도 했고. 하지만 진짜 이야기라 생각하고 읽어도 흥미진진할 거라 생각해. 단순한 소설로 읽히기보단 하나의 괴담 스레로서 남기를 바랐던 마음이 컸는데(굳이 소설창작판이 아닌 괴담판으로 온 이유), 혹시라도 주작 논란이 불거질까 봐 이렇게 설명해 둔다. 만약 필요하다면 1레스에 픽션 여부를 써 두도록 할게.
◆zfhBtipfdQo 2018/05/06 23:16:11 ID : 88o0sp801ii
학교는 지루한 곳입니다. 수업, 교우 관계, 시험. 그 중 어느 것도 자신과 관련 있다고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그 애가 있단 사실만은 좋았지만, 이제 와서는 학교에 올 이유가 딱히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내일도 올 것이냐고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역시 집에 있을 것 같았습니다.
◆zfhBtipfdQo 2018/05/06 23:17:03 ID : 88o0sp801ii
점심을 먹지 못했습니다. 지나가던 남학생이 저에게 식판을 엎었습니다. 그는 실수라고 말했지만, 정말 실수인 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머리카락을 헹구고 옷을 갈아입은 뒤 돌아왔더니 점심 시간이 끝나 있어 그대로 굶었습니다. 역시 학교에 와서 좋을 일은 없었습니다.
◆zfhBtipfdQo 2018/05/06 23:17:41 ID : 88o0sp801ii
국어 교과서가 사라졌습니다. 집에 두고 온 것일까요. 애초에 가져간 적이 있었던가요. 잘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책을 빌릴 사람이 없어 우두커니 앉아 있었는데, 국어 선생님이 교과서가 없냐고 물었습니다. 어찌할 지 감이 안 잡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자리에서 일어서 있으란 국어 선생님의 말을 따랐습니다. 반 전체가 저를 비웃고 있었습니다. 웃음 소리가 들린 듯 했습니다.
◆zfhBtipfdQo 2018/05/07 03:43:28 ID : 88o0sp801ii
수돗가에서 더러워진 교복을 빨던 도중, 그 애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한순간 동요했지만 이내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그 애는 여기에 없습니다. 환청일 뿐입니다.
◆zfhBtipfdQo 2018/05/07 03:44:44 ID : 88o0sp801ii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더니, 괜찮냐고 물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대화에 어쩔 줄 몰라 얼버무렸는데, 그녀는 저를 슥 흝어보더니 밥을 못 먹었냐 물었습니다. 솔직히 대답하고 나니 같이 매점에 가자고 했습니다. 일단 순순히 따랐습니다. 배가 고팠으니까요.
◆zfhBtipfdQo 2018/05/07 03:55:44 ID : 88o0sp801ii
빵과 음료수를 먹어치웠습니다. 벤치에 나란히 앉은 그녀와 저 사이엔 적막만이 흘렀습니다. 혀 끝에 남은 탄산이 저릿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어딘가 먼 곳을 바라봤습니다.
◆zfhBtipfdQo 2018/05/07 03:58:13 ID : 88o0sp801ii
제가 아는 한, 그녀는 그 애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친척이라 했던가요. 평소 그 애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엔 쌀쌀맞음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 애는 나쁘지 않으니, 아마도 그건 전적으로 그녀의 잘못일 것입니다. 그녀가 빵을 사 준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때 긴장했을까요. 긴장된다는 느낌을 저로선 이해하기 힘들지만, 왠지 그래야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녀가 입을 열었습니다.
◆zfhBtipfdQo 2018/05/09 01:41:52 ID : 88o0sp801ii
괜찮냐고 그녀가 물었습니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녀는 잠시 웃더니,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구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다음에 또 보자며 그녀는 떠났습니다. 조금 얼떨떨했습니다.
◆zfhBtipfdQo 2018/05/09 01:42:41 ID : 88o0sp801ii
이유 없는 호의일까요.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괜히 불안해 할 필요는 없는 것일까요. 빵 봉지가 너풀거리며 바람에 날아갔습니다. 날이 추웠습니다.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아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녀가 싫지만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선생님과 비슷한 부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zfhBtipfdQo 2018/05/09 01:52:00 ID : 88o0sp801ii
노을이 구름에 묻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런 하늘을 멍하니 응시하며 걷는데, 편의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꽤 먼 거리였습니다만, 매대에 진열된 초코우유가 어쩐지 눈에 들어와 사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애가 좋아했던 것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달았습니다. 싫지는 않은 맛입니다. 일상이란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날도 가끔은 있을 수 있겠지요. 일단 그리 믿어볼까 싶었습니다.
◆zfhBtipfdQo 2018/05/09 02:03:58 ID : 88o0sp801ii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고모였습니다. 오늘은 할아버지의 집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고 고모는 말했습니다. 친척 모임이니 뭐니 하는 것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그런 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냥 집에 가고 싶었지만 일단 버스에 탔습니다. 이 편이 집에 고모가 찾아오는 것보단 나을 듯 했습니다. 분명 좋은 일은 없을 테니까요.
이름없음 2018/05/09 08:29:03 ID : 6nWqpbwrbCk
보고잇어
◆zfhBtipfdQo 2018/05/15 01:19:30 ID : 88o0sp801ii
하늘이 군청색으로 물들어 갈 즈음, 할아버지 댁에 도착했습니다. 안방에서 친척들이 저마다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가볍게 인사를 드리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친척들 간에 떨떠름한 분위기가 맴돌았습니다. 안방이 조용해졌습니다.
◆zfhBtipfdQo 2018/05/15 01:28:49 ID : 88o0sp801ii
조용한 와중, 고모가 잘 지냈냐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대답하고 나니 다시 정적이 흘렀습니다.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미움받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뭐가 됐든 좋게 보이지는 않는단 것이겠죠. 그냥 집에 가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zfhBtipfdQo 2018/05/15 01:40:50 ID : 88o0sp801ii
자리에서 적당히 빠져 손님방으로 향했습니다. 침대에 드러눕고 나니 조금 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흰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그 애는 이런 천장을 보았을까요. 사랑받는 사람은 빈 방으로 도피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 애였다면 저 아래 안방에서 친척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까요. 뭔지 모를 것이 가라앉았습니다. 피로가 몰려왔습니다.
◆zfhBtipfdQo 2018/05/19 03:26:27 ID : 88o0sp801ii
그 애의 꿈을 꿨습니다. 꿈 속의 그 애는 웃고 있었고, 늘 보던 것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저 바라보는 저를 향해 그 애는 괜찮다고 말해줬고, 저는 기뻤습니다. 그 감각이 솔직히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무감각했던 삶에서 그런 전율을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고, 이유 없이 저를 좋아해 준, 아니 이유가 없더라도 제가 좋은 사람이라 말해 준 사람 역시 처음이어서. 그렇기에 잊을 수 없어서, 시야에서 그 애가 아른거려서. 꿈이란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관 없었습니다. 그 애였으니까요.
◆zfhBtipfdQo 2018/05/19 03:41:48 ID : 88o0sp801ii
어두운 밤하늘 아래, 그 애가 걷고 있었습니다. 골목길 사이로 발걸음을 내딛는 뒷모습을 붙잡고 싶었습니다. 제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고, 저조차 모르고, 알 필요도 없었지만, 그 애만은 알아주었으면 했는데. 그럼에도 그 애는 뒤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 애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런 자신이 어쩐지 너무도 싫어져서, 이를 꽉 악물고야 말았습니다. 그 애가 골목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간절히 손을 뻗었지만, 여전히 그 애는 잡히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꿈에서 전 울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름없음 2018/05/19 06:02:27 ID : wpU0oGralco
다음은?
◆zfhBtipfdQo 2018/05/20 01:04:12 ID : 88o0sp801ii
바쁘고 아파서 정신이 없네... 진행이 느려서 미안해.
◆zfhBtipfdQo 2018/05/20 01:05:01 ID : 88o0sp801ii
잠에서 깨어났을 때, 눈 앞엔 고모가 있었습니다. 밤이 늦었다고 고모는 말했고, 내일 아침 차로 학교에 데려다주겠다고 덧붙였습니다. 학교에 갈 계획은 없었습니다만, 고모에게는 거역해 봐야 역효과일 뿐입니다. 그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집에는 내일 저녁에나 갈 수 있을까요.
◆zfhBtipfdQo 2018/05/20 01:13:33 ID : 88o0sp801ii
고모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아버지는 어떻게 지내냐고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선생님의 조심스러움과는 어쩐지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알 수 없는 일인지라 모르겠다 답했고, 고모는 그러냐고 말한 뒤 방을 빠져나갔습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되든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의 제 생활이 달라질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했습니다.
◆zfhBtipfdQo 2018/05/20 01:39:11 ID : 88o0sp801ii
조용한 방에 누워 있자니, 밖에서 친척들의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버지가 교도소에 갔다느니, 어딘가 이상한 애라느니, 불쌍하다느니. 그런 평가들엔 익숙해진 지 오래였고, 혼자 있는 것에는 도가 텄으니 상관없었습니다.
◆zfhBtipfdQo 2018/05/20 02:08:40 ID : 88o0sp801ii
외로움이란 것이 어떤 느낌인지는 잘 알 수 없었고, 괴롭힘보다는 무관심이 훨 나았습니다. 이런 삶의 방식이 잘못되었다 해도, 저를 잡아 고쳐줄 정도로 열정적인 사람은 없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그 애가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니 자신도 자신만을 위하는 것이고, 너 역시도 그렇지 않냐고. 이타심 역시 이기심의 산물일 뿐이라고. 내가 너를 위하듯이, 너도 너를 위하면 된다고. 그리 말하며 씁쓸히 웃던 그 애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zfhBtipfdQo 2018/05/28 01:14:00 ID : 88o0sp801ii
그 애는 제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아 좋다 했었습니다. 많은 것을 가진 그 애는 저를 무엇으로 여겼을까요. 그 말을 부정하기엔 딱히 가졌다고 할 만한 게 없는 것도 사실인지라, 늘 그렇듯 그러냐며 넘겼습니다. 절 보며 웃던 그 애의 눈이, 허무한 삶이라 푸념하던 목소리가, 목소리가. 그 뒤엔 무엇이 있었지요. 그 애는 가끔씩 텅 비어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만, 전 그것이 좋았습니다. 공허마저 손에 쥔 그 애를 미워할 수 있을 리 없잖습니까. 밤이 깊어갔습니다.
◆zfhBtipfdQo 2018/05/28 01:14:20 ID : 88o0sp801ii
다음 날 아침, 고모는 차로 저를 학교까지 태워다 주셨습니다. 아침 해를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한 마디의 대화도 없었습니다.
◆zfhBtipfdQo 2018/05/28 01:14:53 ID : 88o0sp801ii
필요에 따른 관계라고 그 아이는 평했었습니다. 누군가는 너를 챙겨줘야 하지 않겠냐며 고모는 제 보호자를 자처했고, 아버지의 재산을 탐내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친척 간에 돌았지만 저로선 별로 상관없었습니다. 어차피 누가 맡든 비슷할 것이었고, 돈은 먹고 살 정도로만 있으면 별 문제 없었습니다.
◆zfhBtipfdQo 2018/05/28 01:15:27 ID : 88o0sp801ii
그런 의미에선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돈 때문에 합법적으로, 또는 불법적으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불법적인 부분이 문제가 되어 감옥에 들어갔고, 그럼에도 숨겨 둔 재산은 상당했었습니다. 자식인 저는 아직 어려 그 돈을 감당할 수 없다 판단되었고, 결론적으로 고모가 나서게 되었단 이야기입니다. 귀찮은 일은 싫으니 저로서도 나쁠 것이 없었고, 만약 고모가 돈을 원한다면 고모에게도 좋은 일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고모는 저를 필요로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어도 별 상관은 없었지만요.
◆zfhBtipfdQo 2018/05/28 01:23:40 ID : 88o0sp801ii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고모는 잠시 제가 앉은 쪽을 쳐다보더니 건조하게 말을 건넸습니다. 가방 앞쪽에 불룩한 건 뭐냐는 질문에 저는 초코우유라고 답했습니다. 그런 것도 마시냐면서, 터지지 않게 조심하라고 고모는 말했습니다. 그 애가 생각나 산 것입니다만, 그 애는 학교에 없습니다. 미지근해지면 역시 맛없겠지요. 이따 마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zfhBtipfdQo 2018/05/28 01:32:06 ID : 88o0sp801ii
열심히 하라는 말과 함께 고모는 떠났습니다. 무엇을 열심히 하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역시 공부일까요. 터덜터덜 교문을 지나 교실로 들어섰습니다. 사람이 몇 없었습니다. 매번 느지막히 등교했던 제게 허전한 교실은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 오묘한 공백이 그 애의 눈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던 찰나, 그녀가 시야에 나타났습니다. 왠일로 일찍 나왔냐며 그녀는 웃었습니다. 제 착각이었을까요, 그녀의 미소는 그 애와 닮아 있었습니다.
이름없음 2018/05/28 01:42:35 ID : 3Qq0k2q1vhe
동접인거야??
◆zfhBtipfdQo 2018/05/28 01:43:57 ID : 88o0sp801ii
예쓰... 슬슬 잘까 싶지만.
◆zfhBtipfdQo 2018/05/28 01:52:40 ID : 88o0sp801ii
그녀는 어째선지 제게 관심을 보였습니다. 어젠 집에 잘 갔냐는 둥, 이틀 연속으로 나온 건 오랜만이라는 둥 그녀는 말을 이었습니다. 어쩐지 그 애와도 비슷한 웃음과 몸짓에 정신이 혼미해져가던 찰나, 수업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선생님은 자리에 앉은 저를 보고 놀란 듯 눈을 뜨다가, 이내 웃으며 조례를 시작하셨습니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름없음 2018/06/24 13:41:58 ID : dB9clbhdQrf
주작인걸 아는데 왤케 재밌징 ㅋㅋㅋ
◆zfhBtipfdQo 2018/10/11 01:32:27 ID : 88o0sp801ii
몇 시간을 넋이 나간 것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수업을 듣는 것도, 듣지 않는 것도 아닌 애매한 자세를 계속하는 것은 성가신 일입니다. 열심히 무언가를 해볼 생각도 없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 역시 의식하기 시작하면 귀찮아집니다. 특별히 하는 일이라곤 때때로 그 애를 생각하는 것 정도입니다. 그 애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얼굴로 누구에게 무엇을 했는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목소리, 표정, 몸짓, 말의 높낮이와 숨결. 그 애가 매 순간마다 품었을 회의를 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냥 그런 것도 있는 거야, 하고 그 애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습니다. 그렇기에 전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모든 것에 이유가 있으면 성가시니까요. 이것 역시 그 애의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랜만이넹 2018/10/11 01:33:24 ID : 88o0sp801ii
점심시간이 왔습니다. 그다지 입맛이 없어 멍하니 교내를 배회하고 있었는데, 후문 근처에서 그녀와 마주쳤습니다. 그녀는 웃으며 다가와선 말문을 텄습니다. 이런 관심은 익숙지 않아 어물거리는 제 앞에서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점심은 먹었냐는 물음에 고개를 젓자, 그녀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제 손을 잡아끌고 매점으로 향했습니다.
◆zfhBtipfdQo 2018/10/11 01:34:34 ID : 88o0sp801ii
얼떨결에 그녀에게 컵라면을 얻어 먹게 되었습니다. 일방적으로 리드당하는 것과 별개로 그녀와의 대화는 꽤나 자연스러웠는데, 그것이 어쩐지 싫지 않았습니다. 학교 급식은 역시 맛이 없다면서 그녀는 과자 한 봉지를 사와 뜯었습니다. 같이 먹자는 그녀의 말을 저는 얌전히 따랐고, 초콜릿이 발린 과자는 달콤했습니다. 이 과자는 그 아이가 좋아하던 것입니다. 어쩐지 그 아이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될 것 같아 괜스레 조금 뿌듯했습니다.
◆zfhBtipfdQo 2018/10/11 01:35:08 ID : 88o0sp801ii
식사를 끝낸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으면 종종 같이 먹자고 그녀는 말했고, 저는 얼떨결에 승낙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제 머리칼을 쓰다듬었는데, 그 모습이 순간 그 애와 겹쳐 보여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어째서였을까요. 단지 저의 착각이었을까요. 정신을 추스를 틈도 없이, 그녀는 저를 데리고 교실로 향했습니다. 그녀에게 조금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같았습니다.
◆zfhBtipfdQo 2018/10/11 01:47:41 ID : 88o0sp801ii
5교시는 체육 수업이었고, 마침 체육 선생님이 출장을 갔던지라 자유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귀찮은 운동에 비하면 훨씬 낫다고 생각하며, 운동장 구석 벤치에 앉아 잠을 청했습니다. 피구하는 반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멀찍이서 들려왔습니다. 저런 곳에 끼어도 딱히 즐겁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집에 갈 수 있단 사실에 내심 기뻐하며 눈을 붙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볼을 쿡쿡 찌르는 손가락이 느껴졌습니다.
◆zfhBtipfdQo 2018/10/11 01:48:44 ID : 88o0sp801ii
그 애일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그 애는 여기 없으니까요. 혹시 그녀일까요. 그렇지만 자신은 피구를 좋아한다고 그녀가 말했던 기억이 있어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시비라도 걸러 온 무리일까요. 그렇다기엔 주변이 꽤나 조용해 앞뒤가 맞지 않았고, 더 이상 생각하기 귀찮았던 저는 그냥 눈을 떠 버렸습니다. 그리고 눈앞엔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zfhBtipfdQo 2018/10/11 02:04:47 ID : 88o0sp801ii
자고 있었냐 물으며, 선생님은 지그시 미소지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선생님은 자연스레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서류 처리에 질려 창밖을 내다보던 차에 반 아이들이 노는 것이 보여 산책할 겸 나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애도 그렇고, 그녀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을 잘 하는 것일까요. 이번에도 별 대답을 떠올리지 못한 저는 그렇냐며 적당히 맞추어주는 수밖엔 없었습니다. 조금만 비켜 주지 않겠냐면서, 선생님은 벤치의 다른 한 쪽에 걸터앉았습니다.
◆zfhBtipfdQo 2019/06/23 03:01:03 ID : 88o0sp801ii
아버지와는 잘 만나고 왔냐며 선생님은 물었습니다. 부담스러울 것 같아 묻지 않으려 했지만 역시 알아 둬야 할 것 같았다면서, 상담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하란 말도 덧붙였습니다. 사실 아버지 같은 건 어찌 되든 상관없었습니다. 두어 달에 한 번씩 의례적으로나마 찾아가고는 있었지만, 면회를 거부당한 지 꽤 되었습니다. 저로선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만, 아버지는 제게서 무너진 자신을 보는 것이 싫을 뿐인 거라고 그 애는 얘기했었습니다. 너는 언제까지고 변하지 않으니까. 마치 얼어 있는 것처럼. 그리 말하던 그 애의 눈은 공허했고, 오히려 얼어버린 것은 그 애인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손이 조금은 서늘하게 느껴질 때마다 그 말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마치 얼어 있는 것처럼. 그것이 그 애에게 비친 저라면 언제까지고 얼어버린 채 살아가도 괜찮겠지요. 바람이 서늘하게 느껴졌습니다.
◆zfhBtipfdQo 2019/06/23 03:17:35 ID : 88o0sp801ii
날씨가 시원하다고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비가 올 것 같지만 선생님은 이런 날도 좋다고, 희게 빛나는 하늘도 멋지지 않냐며 웃었습니다. 별 생각은 없었기에 그냥 그렇다 말했지만, 선생님은 알겠다며 제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그 애도, 그녀도 그렇고 어째서 사람들은 매번 제 머리를 만지는 것인지 잘 알 수 없었지만, 싫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애의 손길이 그리워진 탓일 겁니다. 만나게 되면 머리부터 쓰다듬어 달라 해야겠습니다.
◆zfhBtipfdQo 2019/06/23 03:30:49 ID : 88o0sp801ii
그렇게 앉아 있던 지 얼마나 지났을까, 선생님을 발견한 아이들 무리가 벤치로 다가왔습니다. 선생님은 웃으며 모두를 맞았고, 이내 벤치 주변은 왁자지껄해졌습니다. 저는 적당히 빠져나와 교실로 향했고, 책상에 엎드려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집에선 왜인지 깊이 잠들기 힘들었습니다. 잠자리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역시 그냥 조퇴할 걸 그랬나 봅니다.
이름없음 2019/06/23 10:36:11 ID : zfe1Dusi9By
완전 오랜만이다 스레주ㅠㅠㅠㅠㅠㅠ 작년에 보고 진짜 다음이 궁금했는데 올려줘서 고마워ㅠㅠ
◆zfhBtipfdQo 2019/06/24 01:40:38 ID : 88o0sp801ii
헐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었구나...!! 나야말로 읽어줘서 고마워!!
◆zfhBtipfdQo 2019/06/24 01:41:06 ID : 88o0sp801ii
- 나는 살아 있는 게 아니랬어. 이해 가? - 잘 모르겠어. - 그렇겠지. 이런 건 몰라도 돼. - 왜? - 아냐, 아무것도. 너도, 나도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대부분 다 비슷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 ...그 말도 어렵긴 하지만, 너는 아무것도 아니진 않다고 생각해. - 그래? 뭐 그렇다면야 고맙고. 그 애의 말을 그날만큼은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사랑스러운 공허라곤 생각했지만, 그것 역시 엄연한 그 애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니라기에 그것은 너무도 크고 또렷했으며, 그 애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전 거기에 매료되었던 겁니다. 저는 몰라도, 그 애는 쓸모없지 않았습니다. 그리 말해주고 싶었지만 왜인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명치 언저리에서 어렴풋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이 날은 언제였던가요. 한 달 전? 일주일 전? 잘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내겐 살 가치가 없댔어. 그 애의 목소리가 뇌리를 떠돌고, 점심시간의 종소리가 머릿속을 어지럽게 뒤흔들었습니다. 이건 아마도 꿈일 것입니다. 예전에, 아마도 그 애에게 저 말을 들었던 날 저는 비슷한 꿈을 꿨던 것 같습니다. 그 애는 왜, 대체 왜. 그러던 찰나, 누군가가 시야를 흔들었습니다. 눈꺼풀 안쪽에서 그 애의 모습이 암전했습니다.
이름없음 2019/06/24 16:33:18 ID : ranA2JSJVe3
보고있어 언제 오려나
◆zfhBtipfdQo 2019/06/25 02:54:43 ID : 88o0sp801ii
글 쓸 정신이랑 시간이 있을 때 온다! 봐줘서 고마워!!
◆zfhBtipfdQo 2019/06/25 02:54:49 ID : 88o0sp801ii
저를 깨운 건 그녀였습니다. 곧 종례니 슬슬 일어나라면서, 먹고 잠 좀 깨라며 음료수도 한 캔 주고 갔습니다. 청소를 설렁설렁 때우고 멍하니 앉아 있었더니 어느새 종례가 끝났습니다. 이제야 집에 갈 수 있습니다. 길고 긴 이틀이었습니다. 일단 집에 가면 귀찮은 일은 없겠지요. 오랜만에 조금 들뜬 마음으로 교문을 나서려는데, 그녀가 제 옷자락을 붙들었습니다.
◆zfhBtipfdQo 2019/06/25 03:08:31 ID : 88o0sp801ii
혹시 시간이 있냐고 그녀가 물었습니다. 근처에 케이크가 맛있는 카페가 있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며 그녀는 눈을 빛냈습니다. 점심도, 음료수도 그렇고, 그녀는 사실 저를 살찌워 잡아먹으려는 건 아닐까요. 어릴 적 읽었던 책에 나오는 마녀처럼요. 어쨌거나, 그녀는 나름 열정적으로 저를 조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젠 별로 기운이 없었습니다. 됐다고서 그냥 집에 가려 했는데, 정말 안 갈 거냐고, 그 애도 무척 좋아하던 곳이라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저는 그녀를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zfhBtipfdQo 2019/06/25 03:25:24 ID : 88o0sp801ii
카페는 한적했고, 빛이 잘 들어 내부가 밝았습니다. 초코 케이크는 꽤나 달고 맛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좋아했다던 것도 이해가 갔습니다. 결국은 같이 올 거였으면서,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지 않냐는 그녀의 말에 저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습니다. 그녀는 웃으며 여러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제가 자는 사이 교실에 벌이 들어와 난리가 났었다던지, 교장 선생님의 새 가발이 너무 티가 난다든지 하는 시시콜콜한 얘기들이 이어졌습니다. 사실 그렇게나 재미있는 일들인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그랬냐면서 그냥 적당히 대답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득 궁금한 게 생겨서, 그녀에게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zfhBtipfdQo 2019/06/27 02:22:38 ID : 88o0sp801ii
- 저기, 있잖아. - 와, 네가 먼저 말 건 거 처음이야. 왜? - 네 사촌이랑은 어떤 사이였어? - ...언제 물어보나 했어. 그녀의 말에 의하면, 둘은 그냥저냥한 관계였다고 합니다. 집도 가깝고 음식 취향이 잘 맞는 편이라 가끔 같이 뭘 먹으러 다니긴 했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서는 정을 붙이기 힘든 애였다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가끔 쎄하기도 했고, 정확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잘 알 수 없었던데다, 학교에서는 친절하게 굴어 인기도 많았지만 생각보다는 어두운 녀석이었다고요. 무겁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분위기 있잖아, 하고 그녀는 덧붙였습니다.
◆zfhBtipfdQo 2019/06/27 02:45:29 ID : 88o0sp801ii
- 다가가기 힘들었지. 솔직히 말하면, 사람들 앞에서 밝은 척하는 게 위태로워 보여서 싫었어.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고. - ...어쩔 수 없었을 거야, 그 애도. - 뭐, 자기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을 거라곤 생각해. 캐묻지 말라는 눈치여서 한 번도 제대로 얘기해 본 적은 없었지만. - 아버지가 언제나 자기를 때린다고 했었어. - 뭐? 그건 처음 듣는 얘긴데. - 나한테만 말했으니까. 그 애의 몸은 자주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옷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곳 위주로 푸릇푸릇한 상흔이 새겨져 있었고, 그 애는 제게 그걸 보여주며 슬프게 웃었습니다. 차라리 너처럼 혼자였으면 좋았을 지도 모르겠다는 그 애에게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애가 왜 고통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빛나던 그 애가, 아름다워야 했을 그 애의 몸이 푸른 그림자에 먹혀버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내겐 살 가치가 없댔어. 그 애의 담담한 말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zfhBtipfdQo 2019/07/03 03:24:09 ID : 88o0sp801ii
- ...삼촌이 그럴 사람이라고는 생각 안 했는데. 수사 결과도 깨끗했다 들었고. - 어쨌든, 그 애는 그렇게 말했어. - 확실해? - 응. - 경찰에 말해볼 생각은 없어? 네 말이 진짜란 걸 증명할 방법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 ...됐어. 원래는 아무에게도 말 안 하려 했었는데. - 걔가 싫어할까봐? 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름없음 2019/07/03 06:14:27 ID : hdO4JQrfgi8
넘 재밌오... 레주 시간날 때 다시 와줘!
◆zfhBtipfdQo 2019/07/06 02:57:54 ID : 88o0sp801ii
고마워...!! 짬짬이 와 보도록 할게!!
◆zfhBtipfdQo 2019/07/06 02:57:58 ID : 88o0sp801ii
- 그 말대로면 삼촌이 실종사건에 관련돼있을 지도 모른단 거네. 걔가 뭔가 더 자세히 얘기한 건 없었어? 집안 얘기 같은 거 말야. - ...딱히 없어. 애초에 그런 얘기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그 애는. - 뭐, 확실히 자기 얘기는 잘 안 하려 하더라. - ...... - 그나저나, 걜 엄청 좋아하는구나? 말할 때 표정이 확 달라져. - ...그럴지도 몰라. - 와, 얼굴 빨개졌어. 그녀는 저를 보며 소리 내 웃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제가 그나마 잘하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였습니다. 그 애에 관해서라면 얼마든지 침묵할 수 있었는데, 그녀가 웃는 모습이 어쩐지 그 애를 닮아 홀려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사촌끼리는 원래 웃는 모습이 닮는 걸까요. 또래의 친척이 없는 저로선 알 수 없었지만, 그녀를 보자니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바탕 웃고 난 뒤, 그녀는 말을 이었습니다.
이름없음 2019/07/06 03:07:59 ID : CnQrfdTXAmF
잘 읽고있어! 덤덤한 분위기속에서 이야기하는 느낌이라 좋아 ㅠㅠㅠ
◆zfhBtipfdQo 2019/07/06 03:20:41 ID : 88o0sp801ii
- 나야말로 궁금한데, 너랑 걘 어떤 사이였어? - 아마도... 친구? - 어떻게 친해졌는데? 솔직히 아까 얘기 듣고서는 좀 놀랐어. 걘 말이 많은 편이었지만 그런 얘기는 확실히 가려서 했으니까. - 처음에, 걔가 먼저 말을 걸었어. 이름이 뭐냐면서. 그 뒤로는 그냥... - 그냥? - 그냥, 걔가 계속 말을 걸었어. - 그게 끝이야? - ...말하자면 그래. 이름이 뭐냐 묻는 그 애의 목소리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을 물어본 사람은 그 애가 거의 처음이었고, 그렇게나 서슴없이 다가와 준 사람 역시 처음이었습니다. 너는 나와 비슷하다고, 우린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그 애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zfhBtipfdQo 2019/07/06 03:21:45 ID : 88o0sp801ii
레스 고마워ㅋㅋㅋㅋㅋㅋ이거 읽은 친구가 그러더라. 주인공 완전 인생무상 같다고... 최대한 안 나대려고 노력하며 쓰고 있어...!
◆zfhBtipfdQo 2019/07/06 03:50:31 ID : 88o0sp801ii
- 음, 처음엔 너희 둘이 친했단 게 의외라고 생각했어. 솔직히 지금도 좀 그렇고. - ...안 어울린단 건 알아. - 아니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걔가 마음을 열었단 게 좀 신기하다 느껴졌어. 내 눈에는 정말 철저해 보였거든, 걔는. - 그 애는, 언제나 빛나고 있었어. - 와, 왠지 시적이네... 너 그런 말도 할 줄 아는구나. - ...시적인지는 잘 모르겠어. 아무튼, 그 애는 뭐랄까, 내겐... - 그 애를 동경했다? 대강 무슨 느낌인지는 알겠다. - 동경? - 응. 내가 보기엔 그런 것 같아.
◆zfhBtipfdQo 2019/07/06 04:15:36 ID : 88o0sp801ii
- 그리고 너에 대해서도 궁금한 게 많아. 학교에도 잘 안 나오고, 평소에 말도 거의 없고. 다들 널 피하잖아. 괴롭히는 애들도 있고. - ...그런 건 별로 상관없어. 학교는 귀찮으니까 안 가는 거고. - 하지만 좋지 않은 소문도 도는걸. 이런 얘기를 해도 될진 모르겠지만, 범죄자 자식이라느니 막... - 사실이야. - 진짜로? - 어.
◆zfhBtipfdQo 2019/07/17 03:08:10 ID : 88o0sp801ii
지금은 교도소에 계셔. 짧게 말을 이었습니다. 달리 각별한 사이도 아니었던데다, 자식을 만나 주지도 않는 아버지입니다. 딱히 원망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습니다. 애초부터 크게 사랑받았던 적도 없었고, 아버지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어차피 복역 기간이 끝나면 알아서 나오겠지요.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때 생각하면 될 일입니다. 저의 어릴 적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그 애의 말에 몇 가지 일들을 생각나는 대로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애는 저의 아버지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을 거라 말했습니다. 우린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네. 우리 아빠도 비슷하거든. 그리 말하며 그 애는 언제나처럼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습니다.
◆zfhBtipfdQo 2019/07/17 03:31:43 ID : 88o0sp801ii
- 그럼 지금은 어머니랑만 살아?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고. - 혼자 살아. 어머닌 날 낳다가 돌아가셨고. - ...미안해. 괜히 물어봤네. - 상관없어. 궁금하다며 물어보러 오는 사람도 많았고. - 그래서 얘기해줬어? - 별로... 귀찮아서. - 넌 뭔가, 너무 쿨하다 해야 하나... 의외인 면이 많은 것 같아. - ...난 잘 모르겠는데. -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러고 보면 아버지 덕에 주변의 시선을 꽤나 받았던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아버지는 제게 성가신 존재였습니다. 수군거리며 저를 바라보는, 혹은 피하는 어른들과 학교 아이들이 딱히 달갑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처음에 그 애는 제 소문을 듣고 찾아와 봤다 했었습니다. 저는 어쩌면 아버지 덕에 그 애를 만나게 된 것일까요. 그리 생각하니 어쩐지 머리가 조금 아파오는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그 순간,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zfhBtipfdQo 2019/07/21 03:55:02 ID : 88o0sp801ii
전화를 받은 그녀는 알겠다고 몇 번 대답하더니 이내 통화를 끝냈습니다. 슬슬 가야겠다. 엄마가 밥 먹으러 들어오래. 그리 말하며 그녀는 휴대폰과 지갑을 가방에 챙겨넣고는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멀뚱히 앉아 있는 저에게 그녀는 같이 나가자 말했고, 저는 그녀와 함께 카페를 나섰습니다. 혼자 카페에 있어 봐야 딱히 할 일도 없었으니까요. 나가는 길에 그 애가 생각나 초코 케이크를 한 조각 샀습니다. 그 애가 좋아하던 가게라 했으니 앞으로도 종종 들릴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그녀와 가게를 나선 순간, 저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과 마주쳤습니다. 그 애의 아버지였습니다.
◆zfhBtipfdQo 2019/07/21 04:38:15 ID : 88o0sp801ii
- 어, 삼촌! - 오랜만에 보는 것 같구나. 잘 지냈니? - 그럭저럭요. 음... 삼촌은 요즘 어떠세요? - 글쎄... 그냥, 조금 심란하단다. 도무지 수사에 진전이 없으니 말이야. - 어떡해... 힘드시겠어요. - 괜찮단다. 너까지 그리 마음 쓰지 않아도 돼. 잘 해결될 거라 믿어야지. - ...네. - 옆에는 친구니? 용돈 줄 테니 같이 맛있는 거라도 사 먹으렴. - 어, 굳이 안 주셔도 되는데...! - 좋아하는 게 다 티나는데 무슨. 옛다. - 헤헷, 감사합니다! - 재밌게 놀아라. 그럼 난 이제 다시 회사에 가 봐야겠구나. 챙길 게 있어서 잠시 나온 거거든. - 안녕히 가세요! 아, 너도 인사해! -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그 애의 아버지는 떠났습니다. 그녀의 말대로, 자식을 폭행할 사람으론 보이지 않았습니다. 따뜻하고 유쾌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자식을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고, 씁쓸하게 웃는 얼굴은 그 애를 쏙 닮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애는 아버지의 모든 말과 행동은 꾸며진 것이라며,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 했었습니다. 저것도 전부 연기인 것일까요. 그 애가 그렇다 했으니 전 그리 믿기로 하였습니다. 그리 생각하던 찰나, 그녀가 제 옆구리를 쿡쿡 찔렀습니다.
◆zfhBtipfdQo 2019/07/25 14:59:35 ID : LglDBvyK5hv
- 괜찮아? 안색이 창백해. - ...... - 걔한테 그런 얘길 들었으면 싫을 만도 하겠지만, 아까 네 표정 엄청 무서웠어. - 그랬었나... - 응. 그러고 있으면 괜히 수상하잖아. 삼촌도 내심 곤란해하는 것 같았고, 인사 정도는 하는 게 자연스럽고 좋으니까. - ...응. - 그럼 이제 난 갈게. 내일 봐! 기왕이면 학교 오고! 그녀는 그렇게 집으로 떠났습니다. 그녀는 야심차게 내일 보자 말했지만, 내일은 아마도 집에 있을 것입니다. 그녀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매일 학교에 나가는 것일까요. 다들 그렇게나 기운이 넘쳐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애가 있다면야 학교도 나름대로 있을 만한 곳이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니까요. 그 애가 보고 싶었습니다.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zfhBtipfdQo 2019/07/25 14:59:59 ID : LglDBvyK5hv
집의 대문을 열어젖혔습니다. 혼자 살기에는 조금 큰 집이지만, 이젠 부모님이 아무도 안 계시니 어쩔 수 없습니다. 이 집은 시내에서 멀진 않아도 나름대로 외진 곳에 위치한 편이었고, 깨끗한 건물이지만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어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처음 이곳에 왔던 그 애가 어쩐지 기묘한 쓸쓸함을 풍기는 집이라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그렇다면 이 집은 그 애와 닮아 있는 것이 아닐까요. 결국 뭘 해도 자신은 혼자라며 그 애는 웃었습니다. 그 애의 주변엔 언제나 사람이 많았지만, 그 애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그 애의 말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작은 마당을 건너 현관으로 들어섰습니다. 하룻밤을 다른 곳에서 잔 것뿐인데 정말 오랜만에 돌아온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마음이 조금 들뜨는 것도 같았습니다.
◆zfhBtipfdQo 2019/07/25 15:00:20 ID : LglDBvyK5hv
가방에서 초코 케이크를 꺼내들고 지하실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한 걸음씩 가까워질 때마다 뱃속에 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을 어느 먼 나라에서는 뱃속에 나비가 들어찬다는 말로 표현한다 합니다. 이것 역시 그 애가 가르쳐준 것으로, 이게 정말 사랑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뱃속에서 무언가가 날아다니는 기분만은 알 것 같았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지하실의 문을 열어젖힙니다. 문틈으로 빛이 새어나와 어두운 지하복도를 비추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결국 초코우유는 전해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케이크를 사 왔으니 용서해 주겠지요. 그 애는 여기에 있습니다. 어디에도 가지 않고. 아마도 스스로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밝은 표정으로 저는 그 애에게 말합니다. - 다녀왔어.
이름없음 2019/07/25 18:14:37 ID : 66qqknu3va0
결말이 살벌하네
◆zfhBtipfdQo 2019/07/29 01:26:55 ID : 88o0sp801ii
어허 아직 안 끝났어!
◆zfhBtipfdQo 2019/07/29 01:30:07 ID : 88o0sp801ii
그리고 추리 추측 피드백 잡담 뻘소리 등등 모든 레스 환영한다!! 스레주가 관종이라 엄청 좋아함 히히히
이름없음 2019/07/30 12:54:53 ID : 66qqknu3va0
아 뭐야 아직인끝났어? 그럼 다음것도 올려줘
◆zfhBtipfdQo 2019/07/30 23:46:17 ID : 88o0sp801ii
- 어디 갔다 왔어? 하루 종일 안 들어오고. - 친척집에. 그리고 학교도 갔다 왔어. - 네가 웬일로? 부지런하네. - 아침에 고모가 학교까지 태워다 주셔서. - 어쩐지. - 그리고 이거 먹어. 그 애에게 초코 케이크를 내밀자, 그 애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습니다. 케이크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 애는 꽤나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 애가 행복해하는 모습이 귀여워 저도 괜스레 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zfhBtipfdQo 2019/07/30 23:46:50 ID : 88o0sp801ii
이건 어떻게 알고 사 왔대, 하고 그 애가 피식 웃었습니다. 그녀가 데리고 가 줬다고 말하자 그 애는 조금 놀란 눈치였습니다. 걔가? 하고 되묻는 그 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 애는 어쩐지 오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애는 대화의 화두를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뭐 재밌는 일 있었으면 얘기해 봐, 하고 그 애는 건들거렸습니다. 제 기억엔 딱히 재밌는 일이라 할 만한 것은 없었지만, 그 순간 그녀가 카페에서 했던 말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냥 조금 특이했던 일들을 말하면 되는 것이겠죠.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재미있다고 여기는 듯 했으니까요. 그렇게 저는 그 애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녀가 제게 왜인지 계속 다가오는 것이나, 체육 시간에 선생님을 만난 것, 친척집에 갔던 얘기 같은 것들을요. 그 애는 늘 그랬듯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그 애가 웃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그 애는 어차피 뭘 해도 아름다우니 역시 상관없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야기가 거의 사그라들었을 즈음, 그 애가 입을 열었습니다.
이름없음 2019/07/31 00:14:17 ID : unA5cHzPimJ
이 스레 잔잔하면서도 흥미로워서 좋다...! 보고있어
◆zfhBtipfdQo 2019/08/13 03:54:34 ID : 88o0sp801ii
고마워..!! 흥미롭다니 기부니가 좋다 히히힣
◆zfhBtipfdQo 2019/08/13 03:54:39 ID : 88o0sp801ii
- 그래서, 날 풀어줄 생각은 없어? - 그건 안 돼. - 어째서? - 내보내 주면 넌 죽으려 할 테니까. - 안 그래. - ...거짓말. - 그런 거 아니라니까. - 보면 알아. 울 것 같잖아. - 내가? - 응. 넌 거짓말을 할 때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을 지어. 그리 구구절절한 말은 딱히 하지 않았지만, 그 애는 적당히 단념한 듯이 한숨을 쉬고는 접시에 다 쓴 포크를 내려놓았습니다. 플라스틱 접시와 날이 무딘 일회용 포크. 교도소도 아니고 이게 뭐냐며 그 애는 가벼운 푸념을 읊조렸습니다. 오래 전, 그러니 아직 면회를 거부당하기 전에 아버지에게 들었던 것이라 말하자 그 애는 피식 웃었습니다. 정말 그런 것이었냐며, 그래서 자신의 죄는 무엇이냐 묻는 그 애의 말에 저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 애는 정말로 잘못한 것이 없었으니까요.
◆zfhBtipfdQo 2019/08/13 04:50:40 ID : 88o0sp801ii
- 그리고 말야, 찾아보면 여기서도 죽을 방법은 많아. 샤워기 끈으로 목을 매면 어쩌려고? 티비를 깨서 파편으로 배를 찌르면? - ...그럼 샤워기는 빼 둘게. - 아, 그럼 방금 한 말은 취소. 씻기 불편해지잖아. - ...... - 뭐, 그냥 농담이야. 여기선 죽거나 그럴 생각 없어. 얼굴 좀 펴. - ...진짜지? - 진짜야. 그러니까 샤워기 빼면 안 된다? 티비도. 그거 없으면 진짜 할 거 없어져. - ......알았어. 그러자 그 애는 순진하게 웃었습니다. 그것이 진심인지는 고사하고서라도, 정말이지 잘 웃는 애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이렇게 말하기에도 애매합니다. 진짜로 웃는 게 뭔지, 그렇다면 가짜 웃음은 어떤 것인지 저는 잘 알 수 없었습니다. 가끔은 좀 웃어보라는 그 애의 말을 종종 따르고는 있었지만, 그저 얼굴 근육을 움직이는 것 뿐이라는 느낌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웃으면 사람들이 좋아해. 다 쓸데없는 거긴 하지만. 그 애는 어김없이 웃으며 그리 말했던 것 같습니다.
◆zfhBtipfdQo 2019/08/13 05:11:57 ID : 88o0sp801ii
- 네가 잘못한 건 없어. - 그렇게 생각해? - 응. 하지만 네가 죽는 건 싫어. - 그렇다고 가둬 놓냐? - ...여기서 나가도 좋을 건 하나도 없다고 너도 그랬잖아. 학교도, 집도 싫다고. 나도 그 기분은 조금 알아. - 뭐, 그건 그렇지. 차라리 여기가 편하단 생각은 해 봤어. - 계속 여기 있어도 돼.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니까. - 있어도 된다기엔 네가 그냥 감금하고 있는 거잖아. 앞뒤가 안 맞아. - ...미안. - 또 그런다. 미안하다면서 풀어 주진 않을 거지? - ...... - 거 봐. 정말 평생 이러고 살아야 하려나~ - ...그래도 괜찮아. 안 들킨다면. - 진심이야? 평생 나 먹여 살리려고? - 응. - 와, 사랑 고백이야? 쩌네. 하지만 인생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건데? - ...할 수 있는 만큼 해볼게. - 진짜... 너도 참 대단하다.
이름없음 2019/08/13 05:58:50 ID : ZiqnXumoE6Y
이런이야기 좋아.
◆zfhBtipfdQo 2019/08/14 04:03:42 ID : 88o0sp801ii
그래!! 레스를 남겨주다니 나도 네가 좋다!!
◆zfhBtipfdQo 2019/10/04 03:33:05 ID : 88o0sp801ii
- 근데, 죽으면 진짜 어떻게 될까? - ...몰라. - 부루퉁해진 거 봐라? 안 죽는다니까. 그냥 궁금해서 그래. - ...... - 정말로 천국이나 지옥같은 게 있을지, 귀신이 될지, 다음 생이 있을지. 넌 이런 거 안 궁금하지? 왠지 그럴 것 같아. 그리 말하곤 천장 한구석을 바라보는 그 애의 눈은 마치 텅 빈 것 같았습니다. 그 안에 있어야 할 것은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저 세상, 그 애의 말을 빌리자면 여기가 아닌 어디든. 그런 아주 먼 곳에 그 애의 혼이, 마음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어붙은 것은 제가 아니라 그 애일지도 모릅니다. 삶이 싫다고, 스스로가 있어야만 할 곳이 아니라면 어디든 좋다며 울던 그 애를 저는 똑똑히 기억합니다. 그렇기에 그 애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었으니까요.
◆zfhBtipfdQo 2019/10/04 03:50:51 ID : 88o0sp801ii
- ...딱히 생각해본 적은 없어. - 역시나. - 하지만 네가 궁금하다면, 나도 같이 생각해 볼게. - 뭐야 그게. 이런 건 생각만 해선 알 수 없잖아. - 그런가... - 뭐, 됐어. 피곤하니까 잘래. 무릎 줘 봐. - 여기. - 따뜻하다... 잠시만 잘게. - 응... 잘 자.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수 있을까요. 물론 그 애가 질리지만 않는다면 걱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곳을 아는 사람은 저뿐입니다. 이 지하실은 온전히 그 애를 위한 공간이었으며, 이곳에 그 애를 괴롭게 만들 것은 없었습니다. 굳이 찾자면 지루함 정도가 문제일 테지만, 제가 있으면 웬만해선 괜찮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할 지 생각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생활비는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있습니다. 이 근처에는 CCTV도 없고, 다니는 사람도 적습니다. 경찰은 그 애와 제가 친구라는 것을 모르고 있을 테고, 굳이 경찰이 아니더라도 그 애와 저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그녀밖엔 없을 것입니다. 그녀는 저를 의심하는 것 같진 않았으니 아마도 괜찮겠지요. 아무튼 당장에 걸릴 것은 없었습니다. 살짝 한숨을 뱉어 머릿속을 가다듬었습니다. 시야 아래쪽에선 그 애가 저의 무릎을 벤 채로 잠들어 있었습니다.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듣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지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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