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야. 집적 연락해서 얘기할 수 없어.
다들 미안해. 구차한 똥글이지만 이렇게 라도 혼자 끄적이며 털어놔야 속이 시원해 잠이라도 올 것 같아.
그리고 이 편지 아니 내 쓸모없는 감수성 글 따위는 듣지 못할 너에게. 다시 어떻게 해보자는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구 난.
여름이 다가올 때, 난 항상 들 떠 있어.
이상해. 나는 가을을 제일 좋아하는데,
꼭 여름 냄새를 맡을 때 마다 자꾸 새로운 무언가를 갈망하는 모습을 보게 돼. 넌 어때?
왤까. 아무래도 여름의 추억들이 기억에 남아 그런가봐.
여름엔 해가 늦게 지잖아. 굳이 하는 일 없이,
갈 곳 없이 아무데나 앉아 있기만 해도 분위기가 좋더라고. 뭔가 머릿속도 잔잔해 지면서.
내 자신이 여름에는 좀 더 감성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바람이 내 이마에 닿는 걸 느끼면 더.
그런 날, 어느 뻥 뚫려 있는 곳에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네 향기가 느껴져.
실제로 네 냄새가 나는 것 도 아닌데 말이야.
그냥 그때의 오늘 같은 계절을 떠올리는 거지.
‘아, 이맘때는 너랑 어디서 무엇을 했었는데.’ 하면서.
어느 곳을 갔었고,
무슨 대화를 나눴고,
세상 다 가진 것 마냥 좋았기도 했고,
또 다 잃은 것 마냥 슬퍼하기도 했고.
뒤섞인 많은 감정들이 그 계절에 나를 쓸고 가서 그런 가봐.
그래서 나한테는 가을 다음으로 소중한 계절이야.
드라마나, 영화나, 책 중에 흔한 사랑얘기는 별로 인데,
최근에 나랑은 되게 안 어울릴 것 같은 책을 알게 됐어.
제목이 ‘너라는 계절’ 이래.
누군가도 나처럼 한 계절에 어떤 사람을 품고서 어쩌면 그리워 하나봐.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그 계절을 견디는지 궁금해.
난 아직도 이맘때 냄새만 맡아도 가슴이 철렁 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변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잊은 줄 알았어. 아닌가봐.
계절이 몇 바퀴 빙 돌아오면서 나도 그때로 돌아 간 것만 같아.
절대 원했던 것은 아닌데,
그때 향기가 자꾸 날 맴 도니까 어쩔 수 없어.
미안해.
분명 냄새는 가득한데 그림은 흐릿해.
내가 살던 오피스텔 건너편에서 우리 손잡고 걸어갈 때,
옆 화단에 피어있던 꽃 너무 예쁘다고 그랬었잖아.
사실 그 꽃 색깔 기억 안나.
예쁘다고 했던 것은 난데.
기억하려고 눈을 이렇게 감으면 눈물만 나. 이유 없이.
이러다가 몇 번 더 계절이 돌고 돌면
그 때 쯤은 냄새도 조금 씩 잊어버려서
내 여름도 그냥 무더운 날들 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