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잘자고있는 나를 누군가가 깨우기시작했다. 누구인지 안봐도 뻔하다. 이곳에는 우리둘밖에 없으니까.
  • "이놈아 언제까지 퍼질러잘꺼냐 안일어나?!" 덥수룩한수염과 고집스럽게생긴 인상, 거기에 고된일로 단련된 근육들. 누가봐도 드워프라고 생각할법하지만 인간이시다. 이곳, 드워프의수염이라는 대장간을 운영하는 스미스영감님이다. 그리고 나의스승님이기도했다. "흐으으음...스승님 5분만..." 아직도 잠꼬대를하는내게 망치를 들고오시더니 "5초주마. 당장안일어나면 대갈통을..." 곧바로 일어났다. 아마 안일어났다면 정말로 머리가깨졌겠지. "헤헤 지금갑니다~" "하여튼 쯧쯧" 말은저렇게하셔도 누구보다 다정하신분이다. 여기서 일할수있었던것도 스승님덕분이니까. 스승님을만난것은 5년전일이다. 길거리를 전전하며 도둑질과 소매치기를하던 내눈앞에 어떤노인이보였다. 장을본것인지 주머니에는 지갑이 아무렇게나 꽂혀있었고 노인이라 손쉽게훔칠줄알았다. "허...이놈봐라?" 하지만 내가 손을대자마자 노인은 뒤를돌아봤다. 우리스승님한테 걸린것이다.
  • 스승님은 나를노려보셨고 나는 그대로굳어버렸다. 도망치려는순간 스승님이 내손목을붙잡았다. '무슨?! 힘이 장난아니잖아!' "후훗...지금생각해보니 추억이구만" 딱. 뒷통수를 얻어맞았다. "기분나쁘게 웃고지랄이야. 빨랑 안움직여?" "네..." 그때 스승님은 붙잡은손에 지갑을쥐어주시면서 내게 이렇게말씀하셨다. "이놈아. 그거받고 따라와라" 그렇게 도착한곳이 이곳, 대장간이었다.
  • 스승님은 그때 두가지선택권을주셨다. "나한테 뒤지게맞고 지갑가져갈래? 아니면 지갑은 돌러주고 여기서일할래?" ...생각해보니 저때 진짜위험했구나. 아무튼 당연하게도 두번째를골랐고 그때부터 여기서 스승님의 제자가됐다. 깡! 깡! 깡! 처음에는 마냥시끄럽기만했던 쇠를두드리는소리도 이제는 제법들을만하다. "반 이놈아!" 스승님의 부름에 망치질을멈추었다. "네 스승님." "잠깐 심부름좀다녀오너라" 오랜만에있는 외출기회에 신이나려했으나 "딴짓하거나하면 화로에다 장작으로써주마" "하..하하 설마요" 괜한기대였다. '쳇 영감탱이 눈치하나는 빠르구만' "자, 여기 이걸 전해주고오너라" 그러면서 검한자루를 건내주시는데 "이레인님이 직접주문하신거다. 흠집나면 알지?" 귀족인 이레인님보다 스승님이 무서운것은 왜일까. 건내받은검은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않은 양날의검 이레인님의 주문은독특하다면 독특했다. 항상 평범한 양날검을주문하셨다.
  • 검을챙기고 저택을향하는 발걸음이무겁다. 이왕나온김에 실컷 놀다가고싶었으나 스승님이 떠올랐다. 나를 곱게접어서 화로에던져넣는 스승님의모습이. 발걸음이 무겁다한들 그리멀지않았기에 금방도착을 했다. 노크를하자 잠시후 안에서 누군가가물었다. "누구십니까." 대답을하자 거대한나무문이 육중한소리를내며 열렸다. "반님이시군요. 어서오십쇼." 나를반기는것은 검은집사복차림의 안경을쓰시 한 늙은집사님이셨다. "안녕하세요 레온집사님. 여기 주문하신 검입니다." 레온님이 검을받고서 이리저리 훑어보는데 "흐음..." 무언가 마음에안드는건지 표정이좋지않다. "왜그러시죠? 혹시 문제라도..." "아 아닙니다. 훌륭하군요." "다음에도 잘부탁드리지요." 표정이 마음에걸렸지만 어쩌겠는가? 본인이 마음에 든다는데. 돈을받고 저택을나오자 고민이되었다. 오랜만에한 외출인데 놀다갈것이냐 아니면 곧장 돌아갈것이냐 한참을고민하다 결국 "그래. 조그만 놀다가자." 놀러가는것을택했다. 길거리를걷자 그나마 마음한켠에있던 불안감도 어느새 말끔히사라졌다.
  • 길거리를오가는 각양각색의사람들. 그중엔 검이나 방패, 활같은것을 들고다니는 이들도있었다. 그들이바로 우리대장간의 주요고객인 모험가들이다. 매일 몬스터들과 싸우다보면 아무리 잘만들어진 검과 갑옷이라 할지라도 망가지기마련이다. 스승님은 그런이들을 좋게보시지는 않으셨다. "에잉 쯧쯧...이리도 험하게다뤄서야" 라며 망가진 장비를 고치면서 한탄을하시는일이 잦았다. 아쉽지만 더이상은 들킬수도있기에 돌아가려는 순간 어느한쪽에 사람들이 유독 몰려있었다. "무슨일이지?" 가까이갈수록 고함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리기시작했다. 사람들틈을 비집고들어가자 비명과 고함소리의 정체를 알수있었다. 남자애랑 여자애다. 남자애는 여자애를감싸안았고 여자애는 남자애품안에서 울고있었다. 그리고 그런애들을 어떤남자가 발로차고있었다. "이런 망할애새끼가. 감히 누구한테 거짓말을해?" "진짜라고! 나는 당신지갑에 손안댔어!" 아무래도 지갑을훔치다 걸린듯했다. "후! 이새끼가 끝까지 발뺌을해?" 발로차는것을 멈추더니 이제는 주먹으로 아이를 무차별하게 때리기시작했다. '너무심한거아냐?' 다른사람들역시 같은생각인지 인상을썼으나 누구하나 말리는이는없었다. "에휴...놀러와서 이게뭐냐..." 그리고 그남자를향해 걸어가려는 그순간 탁 누군가 내어깨를잡았다.
  • 웬 거지같은 모습의 남자가 내어깨를 잡고있었다. "괜히 나서지말고 가만히있어." 걱정해주는것은 고맙지만 눈앞에 맞고있는것은 이제 7,8살정도먹은 애들같았다. "애들이 맞고있는데 보기만해요?" 그의 손을뿌리치고 아이들에게가려했지만 오히려 더욱 힘을주어 내어깨를붙잡았다. "살고싶으면 나서지마. 저녀석 검은달 조직원이다" 검은달. 우리마을뿐아니라 나라전체에퍼진 조직의이름이다. 약탈과 살인, 강간등으로 악명높았는데 어느정도냐면 대장간에서 살다시피하는 나조차도 이름을 알정도였다. 이제야 사람들이 왜 보고만있는지 이해가갔다. 말리지못한것이다. 괜히 말렸다가 자신한테 불똥이 튈까봐, 아니면 보복이라도 당할까봐, 아이들이 딱하기는하지만 나설용기는 없는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눈앞에서 저러는걸 보고만있어요?" 이이상은 말릴생각이 없는것인지 내어깨를 놔주었다 "그래...니맘대로해라" 가까이 다가가자 아이의몰골은 훨씬더심각했다. 얼마나 맞았는지 남자애의얼굴은 퉁퉁부어있었고 코와입에서는 피가흐르고있다. "저기요. 이제 그만하시죠?" 한참 때리고있던 그는 거친숨을 내쉬면서 나를 돌아봤다. 하지만 이내 아이들을 때리기시작했다. "이봐요! 그만하라니까요!" "꺼져. 너도 뒤지기싫으면." 그가 말했다.
  • 나는 사실 그의 압도적인 힘을 잘 알고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유명했던 검은달. 그들은 자신들에게 이득이 될만한 일들은 생명을 해치는 일이라 할지라도 서슴치않고 행했다. 하지만 나는 기죽지 않고 다시한번 얘기했다. "그만하세요 지금 이 어린아이들에게 무슨짓 하시는겁니까?" 나의 말에 처음에는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던 그 사람은 목 아래쪽부터 벌겋게 올라오며 단단히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분명 방금 신경 끄라고 했을텐데, 넌 나의 말을 무시했으니 잠시후에 널 죽여버리겠어" 그리고는 앞에 있는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는 내 오른편에 있던 주먹만한 짱돌을 들고서 그 사람이 시선을 돌리자 마자 달려가 정확히 정수리에 짱돌을 꽂아버렸다 "으억 으거으억" 정말 잠시동안 고통스러워 하던 그는 즉사하였고 잠시 후에 도착한 검은달 조직원들은 그 장면을 똑똑히 보고 말았다. 상대의 수는 대략적으로 20명 나는 제대로 배운 무술하나 없는 소매치기에 불과했기에 다리가 떨리는게 느껴질 정도로 몸이 떨려왔다. 몇 분 동안 정적의 상태로 시간이 흐른 뒤 갑자기 검은달 조직원들은 나에게 무릎을 꿇으며 "새로운 검은달 대장님께 인사 올립니다" 라고 얘기했다 알고보니 내가 즉사시킨 저 사람이 검은달 대장이였던 것이다
  • "그만하라니까!" 그의주먹을붙잡았다. "하 참. 오늘 왜이리 애새끼들이 지랄이지." 푸욱. 무언가 뜨거운것이 배에들어온것같다. 아래를내려다보니 셔츠에 무언가쥐어진 그의손이 닿아있다. "끄으으으윽...이자식..." 식은땀이 비처럼쏟아진다. 셔츠는 땀과 피로축축해져갔다. 떨리는손으로 그의손을잡았다. "그러게 왜 나서는거야 큭킄킄" 그의웃음과동시에 배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이들었다. "허어어억..." 배를부여잡았지만 출혈이심했다. 손가락사이로 피가쏟아졌고 정신도점점 몽롱해진다. 털썩. 결국 다리에힘이풀린것인지 시야가기울어진다. 쓰러지는 시야속에 보이는것은 수많은사람들이 나를보고놀라서 소리치는모습과 칼을만지작거리며 아이들에게 다가가는그였다.
  • 하지만 나는 슈퍼 히어로였다 이딴 칼나부랭이로 날 헤치진 못한다 상처가 난 배에서 하얗게 김이 올라왔다 "너 이새끼 오늘 뒤질줄 알아라" 그가 돌아봤다 "뭐...뭐야 어떻게 된거야?!" 나의 오른팔은 내가 원하는대로 변형시킬수 있다 오른팔에 힘을주어 내가 생각하는 가장 날카로운 물체로 변형시켰다 "너도 날 찔렀으니 나도 널 찌르겠다 불만있나?" 아무말도 없었다 그는 바지 아랫도리가 축축해진채로 말했다 "죄..죄송합니다 사..살려만 주세요" 하지만 이미 늦었따! 너눈 정의의 심파늘 바다야한다! "이야앗" 퓰썩 그가 쓰러져따 그사라믄 말해따 "아파..넘무넘무 아파"
  • "자 꼬맹이들아 저기 뒤져가는 저놈처럼되기싫으면 솔직하게말해. 내지갑 들고갔지?" 한걸음 한걸음. 다가갈수록 아이들은 겁에질려갔다. "에휴. 그러니까 내가나서지말라고했잖아" 누군가 내게다가왔다. "왜 나선거야?" 아까 나를말리던 거지다. 대답하고싶었지만 목소리가 안나왔다. 입만 벙긋거리고있자 내게귀를댔다. "뭐라고?" "ㅇ...애들..." 그러자 그는 기가찬다는듯한 표정을지었다. "야이 병신아. 니가뒤져가는데 무슨애들이야."
  • "에휴...그래. 나중에 물어볼게." 품안에서 보랏빛액체가든 병하나를 꺼내더니 내입에 들이부었다. 배에서 느껴지던 고통은잦아들었으나 의식은 오히려 더욱더 흐릿해져갔다. 무언가 말을하는것처럼 그의입은 움직였으나 아무것도 들리지않았다. 반응이없는 내모습을보고 한참을 말하던 그는 손가락으로 아이들을가르키고 자신을가르켰다. 아마도 자신이 구하겠다는것이겠지. 내심 불안했지만 이제는 그에게 맡기는것말고는 방법이없었다. 흐려져가는 시야속에 아이들에게 걸어가는 그의뒷모 습을끝으로 의식을잃었다.
  • 코끝에선는 익숙한쇠냄새가났고 귀에서는 누군가 작게 대화하는소리가났다 "....합니다." 눈을뜨자 제일먼저 보인것은 각종 검을 비롯한 수많은 무구들이 걸려있는벽과 망치가 올려져있는 모루였다. 내가 누워있는곳은 대장간에있는 내침대위였다. 일어서서 앉기위해 몸을일으키려고하자 "으윽!..." 배에있는 상처가 벌어진것일까 절로 신음소리가 나올정도로 아팠다. 겨우 일어나앉자 침대 주위에는 피묻은 붕대들이 널려있었고 누군가 식사를한듯 그릇들이 탁자위에 쌓여있다. 그리고 신음소리를 들은모양인지 누군가 들어왔다. "어? 니들은 그때" 들어온이들은 그때 그아이들이다.
  • 침대에 누워있는 내게다가오더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둘이서 입을모아 감사인사를하는데 듣고있자니 왠지 낯이간지럽다. "에이 내가뭘했다고. 감사는 그사람한테..." 그러고보니 잊고있었다. 나와 아이들이 무사한것은 전부 그사람덕이다. "너희들 거지처럼생긴 그분못봤니?" "누가 거지같다고?" 언제들어왔는지 벽에기대서서 우리를 보고있었다. "아 가..감사합" 그도 낯간지러운지 더이상 말하지말라는듯 손을들어 나를말린다. "아아 그만 그만. 감사는됐어." "그것보다 그때 물어본거나 답해주라." 그때 물어본게뭐지? 그에게 묻자 "왜 애들을구하려고했냐고"
  • 왜라니? 눈앞에서 아이들을 때리고있는데 말리는게 당연한거아닌가? "애들이 위험하니까..." "구하려고했다? 검은달한테서?" 그는 그때처럼 어이없어하는 표정을지었다. 마치 '뭐이런놈이다있지?' 라는것처럼. "너 검은달이 어떤놈들인지 알잖아. 사람들이 괜히 보고만있었는줄아냐?" "그래, 그건 그렇다치자. 그럼 칼에찔린건? 너 칼맞을줄알았냐?" "당연히 몰랐죠" 내가 이렇게말하기를 기다린것인지 씨익 웃었다. "그럼 알았으면? 그래도 도와줄꺼냐?" "그래도 도와줄껀데요?"
  • 그러자 내대답이 무엇이 그리우스운지 정말 즐겁게 웃었다. "큭큭큭큭큭. 아 진짜 재밌는놈이네." 한참을 웃고나서야 진정이되는지 숨을고른다. "좋아. 나중에 나랑 어디좀가자." "어딜요? 그리고 제가 왜가야하죠?" 옷을뒤적이다 품속에서 빈병하나를 꺼내서 내게 보여줬다. "이게 비싼약이거든." 그러고보니 그가 내입에 뭘붓는듯한 기억이있다. "혹시 제가 먹었던게 그거?" "맞아. 먹었으니까 계산을하셔야지?" 왠지 불길한 예감이들기에 그에게 물었다. "절팔거나 그런건 아니죠?" "야 이게 너하나 팔아서 살수있는물건같아?" 다행이라고 해야하니? "아무튼 따라와보면알아." 의심스럽긴했지만 스승님역시 흔쾌히 허락해주셨기에 그를 따라갈수밖에 없었다. "흠흠...잘다녀오거라. 그리고 반아." "네 스승님." "선택을 해야하거든 옳다고 생각하는걸 선택해라" 의미심장한말씀을 하시면서 등을돌리셨다. "이제 가보거라." 그런스승님께 감사한 마음을담아 절을올렸다. "다녀오겠습니다." 꼬맹이들은 아예 여기서 지낼모양인지 떠나는나를 향해 "다녀와 형아!", "다녀오세요!" 라며 소리쳤다. 그리고 1시간뒤 그를따라 도착한곳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곳이었다.
  • -1시간전 그를 따라가면서 여러가지 궁금한것을 물었지만 들을수있었던것은 그의이름뿐이었다. "내이름? 현수야. 근데 그냥 형님이라고 불러. 그게 편해, 나는." 현수. 상당히 이국적인 이름이라 그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지만 돌아온대답은 "나중에" 였다. 이외에도 여러가지를 물었다. 그녀석은 어떻게이겼는지, 지금가는곳은 어딘지, 내게 무엇을 시킬것인지 등등을. 하지만 역시나 모호한 대답만할뿐이라 결국 이름만 안것이다. 쉴새없이 질문을하는 내게 이번에는 형님이 질문을 하셨다.
  • "보니까 거기서 일한지 꽤 된거같던데. 영감님 손주냐?" "아뇨. 스승님은 저를 어릴때 거둬주셨어요." 나보다 앞장서서걷던 형님은 내게 걸음을 맞추며 내게 물었다. "무슨일 있었냐?"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떠오르자 자연스레 얼굴이 어두워진것인지 "말하기 싫으면 안해줘도 괜찮아." 라며 미안해했다. 그런데 길을가면 갈수록 익숙한 풍경에 혹시나 하는 생각을했다. 어쩌면 그곳아닐까 하는 그런생각을. 그리고 도착한곳은 "이레인님저택?" 내가 이곳을 아는것이 뜻밖인지 형님은 놀라는 눈치였다. "너도 그아저씨아냐? 거참 신기한 우연이구만." 노크를했지만 저번과는다르게 문은 금방열렸다. "현수님이시군요. 어서 오십쇼." 그리고 형님 뒤에서있는 나를보더니 "반님? 여긴 어쩐일로 오셨습니까?" 형님이 집사님께 다가가서 귓속말로 무어라하자 집사님의 눈빛이 달라졌다. 뭐랄까 감사와 미안함이 합쳐진듯한 오묘한눈빛이었다. "그럼. 안내해드리지요" 그리고 레온님을 따라간곳은 저택의 지하실이었다
  • 만약 검으로 이루어진 강이있다면 아마도 이런 느낌일것이다. 지하실바닥에는 무수히많은 검들이 두동강이난상태로 굴러다니는탓에 발디딜틈조차 없었다 그리고 그런 지하실가운데 놓여있는 탁자앞에는 한 남자가 서있었다. 전체적으로 생김새가 둥글둥글한것이 배나온 옆집 아저씨처럼생긴 남자였다. 양손에 검을 한 자루씩 들고있었는데 한쪽은 평범했으나 다른한쪽은 특이했다. 검의 날부분에는 금이 안간곳이 없었고 가드부분은 녹슬어있었다. 이미 망가질데로 망가진 그것은 이제는더이상 검이라고 부를수없는 고철이었다. "흐으으읍!" 양손에있는 검을 포개자 그곳에서 불꽃이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안가 바닥에있는 다른검들마냥 멀쩡했던 검은 두동강이나버렸다. "후...역시 무리인가" "이레인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그제서야 우리가온것을 알아차린 그는 수건으로 이마와 턱에있는 땀을닦으며 우리를반겼다. "어서오시게나. 오랜만이로군."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나를 한번 슥 보더니 형님에게 물었다. "저소년은 누구인가?" 레온님에게 했던것처럼 귓속말을하자 이레인님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오오! 이거 우리 가문의 은인이었구만. 잘부탁하네." 은인? 도대체 뭘시킬 작정인지 이제는 궁금하기보다 걱정이되었다.
  • 나의 걱정을 눈치챈 형님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별일 아니야. 일단 한번 살펴볼래?" 건네받은 검의 상태는 보기보다 훨씬 심각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깨져버릴 것 같은 상태였다. "이거 고치기 힘들겠는데요?" 하지만 돌아온 것은 대답이 아닌 소름 끼칠 정도의 정적이었다. "저기... 요.. 어라?" 모두가 시간이 멈춘 듯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게 무슨.." 사람뿐만이 아니다. 벽에 걸린 횃불조차 일렁이는 불꽃 그대로 멈추었고 오직 나만이 지하실에서 움직이는 유일한 존재였다. 하지만 이상 현상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 어!" 단단하던 지면이 마치 모래 늪처럼 변해 발부터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다. "으윽" 발버둥 치면 발버둥 칠수록 더욱 깊숙이 빠졌다. 하지만 당황한 내가 그것을 알 리 없었고 순식간에 지면 속으로 완전히 잠기게 되었다. 그렇게 들어간 곳은 완전한 어둠 그 자체였다. "으읍" 공기마저 없는 것일까 숨조차 쉬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지면 위로는 갈 수 없었다.
  • '뭐가 별일이 아니야?! 죽게 생겼구만!' 하지만 기절하기 바로 직전에 누군가 내 발목을 잡아당겼고 어디론가 떨어졌다. 어두운 곳에 있었던 탓에 밝은 곳에 나오자 눈이 부셨다. 물론 숨 막혀 죽다 살아난 내게 눈이 부신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지만. "커흑 켁 켁.." 엎드려서 숨을 고르는사이 나를향해 걸어오는 한쌍의 발이 보였다. 고개를 들자 양손에 팔짱을 낀 채 나를 노려보는 내 또래의 소녀가 보였다. 치켜올라간 눈매 탓에 약간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인상을 가진 소녀였다. "너 내 결계는 어떻게 들어왔어?" 그녀의 질문에 오히려 내가 묻고 싶었다, 여긴 어디인지 그리고 너는 누구인지. 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건 그렇다치고. 여긴 왜 들어온거지? 아직도 내힘을 노리는 녀석이 다있네" "그게 무슨 소리야? 힘이리니?" 하지만 그녀는 내 대답이 시치미를 뗀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코웃음까지 치며 어이없어했다. "흥! 시치미 떼기는. 야 너같은 놈이 한둘인줄 알아? 어디서 날 속이려고" "아니 속이긴 누가 속인다고 그래?!" 이후로도 그녀의 오해를 풀기위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을했고 다행히도 그녀는 어느정도 믿어주는듯 했다. "그럼 너는 누구야?" "내 이름은 반이야." "그렇구나. 그런데 정말로 날 몰라?"
  • "몰라. 난 그저 검을 잡은 것뿐이라고." 검이라는 말을 듣자 그녀가 갑자기 한숨을 쉬더니 내게 다가왔다. 딱! 주먹을 쥐어서 머리를 때렸다. "아! 왜 때리는 거야!" 한대맞고 눈물이 핑 돌정도로 진심으로 때린것이다. "이 멍청아! 그게 나라고!" "뭐?"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갑자기 자신이 검이라고 한다면 누가 알아듣겠는가? "너 사람 아니냐?" "하아아아..." 고개를 푹 숙이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그녀는 이마를 짚더니 한번 더 한숨을 쉬고 내게 물었다. 설마 모를까 명색이 대장장인데. 자아를 가진 검이라는 뜻으로 우리 대장장이들 사이에서는 그저 모험가들의 헛소문으로 치부했다. "알지. 근데 그거 거짓말이야." 애초에 모험가들은 이야기를 부풀리는 경향이있다. 도마뱀형 몬스터를 잡고서는 '내가 용을잡았다!' 라고 하는게 그들이니까. "그.러.니.까!" 갑자기 그녀가 내게 다가와서는 멱살을 쥐고 흔든다. "내가 그 에고 소드의 자아라고! 여긴 그안이고" "뭐어어어?!"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모험가들의 헛소문이 아니라는것인가? 하지만 이게 다가아니었다. "원래대로면 땅속에서 기절하는게 정상인데 너 뭐야 도대체?"
  • "그럼 시간이 멈춘것도?" 그녀는 내멱살을 놓아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전부 내가 설치한 결계였다고" 머리를 부여잡고 괴롭다는듯 끙끙 앓기시작했다. "으으...안그래도 시간이없는데..." "시간이 왜?" "앞으로 5일정도 지나면 이검은 부러질꺼야." 검이 부러진다면 그녀는 어떻게 되는것이지? "그리고 나는 소멸하겠지" 자신의 죽음을 말하는데도 표정하나 바뀌지않고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였다.
  • "자...잠깐만! 소멸이면 죽는다는거야?" "아마도?" 저게 어딜봐서 자기 죽음을 말하는 태도란말이야? "그럼 죽는게 안무섭냐?" "당연히 무섭지." 뭘 그런 당연한걸 묻냐? 라는듯한 표정을 짓는 그녀는 이어서 말했다. "그래도 아무하고나 계약할수는 없지." "계약?" 내가 묻자 그녀는 목을 한번 가다듬고 말했다. "크흠. 계약이란건 나같은 검들이 사람이랑 맺는걸 말해. 영혼을 통해서 맺지." "하지만 계약을 어기거나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하지않을 경우엔 나처럼 부서져." 그래서 그런 상태인건가. "아까말한 힘을 빌려준다는게 계약을 말한거야?" "그렇지. 근데 날 찾아오는게 하나같이 이상한 놈들밖에 없었어." "이상한놈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찾아왔었기에 기억만으로 저렇게 불쾌한 표정을 짓는 것일까? "내가 이래 봬도 망가지기 전에는 명검이라는 소리 좀 들었거든." 의기양양하게 말하다가도 "그 탓에 이놈 저놈 별에 별놈 다 만났지만." 금세 옛 기억을 떠올리고는 풀이 죽어버렸다. "계약을 맺으려고 소리치고 욕하는 건 애교지. 1분마다 사람을 죽이는 녀석도 있었다니까?" 세상에. 아무리 명검이 탐난다지만 사람을 죽이다니?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됐어?" "다 죽여도 내가 안 해주니까 다시 팔아버렸어." 죽이는 그 사람도 이해가 안갔지만 그녀 역시 이해가 안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데 보고만있냐?" 그러자 되려 그녀가 화를냈다. "뭐? 야! 니가 계약이 어떤 의미인지 몰라서 그래. 평생을 함께할 파트너를 그런놈으로 하라고?" "하지만..." "평생을 버리면서까지 그사람들을 살려라 이말이야? 내가 왜그래야하지?" 내가 답을 하지못하자 그녀는 나를 비웃었다. 마치 그럴줄 알았다는듯이. "흥. 너같은놈들이 그렇지. 말로는 희생, 희생거리면서 나설 용기도없는것들" "뭐라고?! 나였으면 당장 계약했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를 비웃는듯한 태도였다. "그럼 증명해봐." 증명이라니? 여기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어디있... "아..." 있다. 바로 내눈앞에.
  • "계약을 맺어서 나를 구해보라고" 그게 어려운 일인가? 생각보다 쉽다고 생각했다. "그정도야 쉽지" "과연 그럴까? 너 대장장이지?" 도대체 그녀가 어떻게 안것이지? 놀라서 대답조차 못하는 내게 그녀는 친절하게도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뭘 그렇게 놀라? 이정도는 기본이야" "검을 통해 그사람의 수준을 알수있지" 손을 낚아채더니 자신의 손으로 여기저기 눌러본다. "그런데 너는 검을 제대로 잡은적도 없으면서 굳은살은 제법있거든" 이번에는 팔을 이리저리 주무른다. "근육도 마찬가지. 검을 쓴다고 발달한게 아니야." "손에 굳은살이 박힐정도로 무언가를 쥐고 팔에있는 근육이 그정도로 발달하려면? 뭐 대장장이지" '괜히 명검이 아니구나' 속으로 감탄을하다 앗 하고 정신을 차렸다. "그래서 대장장이인게 무슨 상관이지?"
  • "상관있고말고. 나랑 계약하면 다른 검들은 손에 못 대거든" '다른 검에 손을 못대? 그럼 대장장이 일은? 설마...' 내가 깨닫는 것과 동시에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히히히 그래 날 살리면 대장장이는 평생 못할 거야" 대장장이를 못한다는 생각에 스승님이 떠올랐다. 내가 제자가 되기 전부터 스승님은 홀로 대장간을 운영하셨다. 그러다 생긴 제자인 나를 말로는 구박을 하셔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시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분명 내가 다쳤을 때 간호해주신 것도 스승님이 셨다. "아니면 그냥 인정하고 돌아가던가? 나야 5일뒤에 소멸하겠지만 니가 신경쓸일 아니잖아?" 그건 그랬다. 오늘 처음본 그녀를 살리기위해 내평생을 버리는것은 남들이 보기에는 바보같다고 할것이다.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도 없는 내가 유일하게 할줄아는 대장간일을 포기하는것, 말그대로 평생을 버리는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살수있잖아?" "뭐라고?" 그녀는 이해가 안 가는 것인지 내게 다시 물었다. "대장장이일은 못해도 살수는있어. 하지만 너는 계약을 못하면 소멸하잖아" "정말 남을 위해서 니인생을 줄수있어? 그런 사람이 있다고?" 그녀의 표정이 이제는 놀라움을 넘어서 경악하는 수준이었다. "도대체 너는..."
  • 고개를 숙인채 어깨를 들썩이는 그녀를 보고 순간 그녀가 우는줄알았다. "크흑.....아하하하하하" 하지만 그녀는 웃고있었다. 그것도 아주 해맑게. "흐흐흐흐 후우..." 한참을 그렇게 웃다가 겨우 한숨돌리는 그녀. "너같은 바보는 처음이다." 아까와는 달리 기분 나쁘지 않았다. 비웃거나 하는 그런 종류의 웃음이 아니라 정말로 재밌다는 듯이 웃고 있었기에. "그래도 말이야" 오른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 그녀 "잘부탁해. 파트너" "그래" 그리고 그녀의 손을잡는 순간 "어때? 고칠수 있겠어?" 저택의 지하실로 돌아왔다.
  • 조금 전까지만해도 못미더웠던 반의 눈빛이 무언가달라져있었다. 어떤 결심을 한듯한 눈빛이었다. "어때? 고칠 수 있겠어?" "아뇨." 금이 가있던 검날에서 액체 같은 것이 흘러나와 검을 적셨다. 그리고 금이 간 곳 구석구석 스며들어 마치 상처에서 새 살이 돋듯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흐음?" 녹이슨 부분역시 오래된 묵은때를 벗겨내듯이 떨어져나갔다. "그럴필요는 없어요"
  •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더이상 낡은 고철덩어리가 아니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하나의 검만이 그의 손에서 빛을 내고있었다. "오오...이럴수가!" 검에서 일어난 변화를 보자 이레인은 물론 좀처럼 감정의 변화를 나타내지 않는 레온마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현수의 표정은 뜻밖이라는것을 빼면 처음과 비슷했다. "반님. 해내셨군요." "아.. 아뇨 제가 뭘 했다기보다는.. " 정말로 그가 한 것이라곤 그녀와 계약을 맺은 것이 다였다. 물론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가 검을 수리한 것처럼 보였겠지만. "아닐세. 자네가 그녀를 구했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다들 그를 칭찬하는 가운데 반은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녀? 분명히 시간이 멈춘뒤로는 나만 움직였을텐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혹시 다들 알고있었나?' "저기 혹시 다들 알고있었나요? 이안에 여자애가 있는걸?" 그러자 오히려 이레인과 레온이 의아하다는듯이 그를 처다봤다. "자네. 알고서 여기온게 아닌가?" "반님이 스스로 이아이를 구하시겠다고 오신게 아닌겁니까?" '이건또 뭔소리야!' 그들은 이미 알고있었던것이다. 애초에 이레인이 검을 소유하고있는데 본인이 모른다는것은 말이 안 됐다. 그리고 반이 현수를 바라보자 그는 미소를 지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거짓말을 들켰을때의 표정이다.
  • "나? 당연히 알고 있었지." 역시나 반의 예상대로였다. "그럼 왜!" "왜 안 말해줬냐고? 시험해보고 싶었거든" 시험이라는 현수의 말에 반은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잘못하면 그녀는 소멸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도대체 뭘 위해서 그런..." 그에게 따지려 했으나 반은 그럴 수 없었다. 미소를 짓고 있던 아까와는 달리 그가 처음으로 진지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대장간으로 돌아가자. 거기서 전부 설명해줄테니까." 결국 어느 것도 알 수 없었다. 돌아가는 동안에도 그는 입을 굳게 닫은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돌아왔구나." 돌아온 반을 반기는 스미스와 그런 그의 뒤로 아이들이 고개를 내밀며 누가 온 것인지 확인을 했다. "누구 왔어요? 어 형아!" "오셨어요?" 해맑은 아이들과 달리 반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본 스미스의 표정은 어두웠다. 현수는 아이들에게 잠시 자리를 비켜달라고했고 그렇게 반과 스미스, 그리고 현수만이 남았다. "그럼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줄까?" "전부다요" 그럴줄알았다는 말과함께 설명을 시작했다. "네가 정신을 잃은뒤에 영감님한테 한가지 제안을 했지. 그렇죠?" 스미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반은 배신감에 사로잡혔다. "스승님..." 믿고있었던 스승의 고백에 배신감을 느끼는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아무튼 제안한건 한가지. 바로 너야" 그러건 말건 현수는 이야기를 계속했지만. "저를요?" "그래. 만약 니가 계약에 성공할경우, 내가 널 데리고 가는거지." "그럼 실패하면요?" 하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글쎄다? 딱히 없는데?" 그렇다면 이거래는 애초에 말도안되는 거래다. "스승님은 이걸 받아들이셨고요?" "저분이 아이들과 너를 데리고오면서 그러더구나."
  • '이 아이들이 어떤 남자에게 맞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이들을 구할 생각조차 못 했죠. 그러다 이 친구가 그걸 본 겁니다. 제가 말려도 겁도 안 내더군요. 그러다 칼에 찔리고 정신을 잃기 전에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애들을 구해달라.였습니다. 솔직히 이 말을 듣고 뿌듯했다. 물론 무모한 짓을 한 건 화가 났지만 말이다." 미소를 짓고있었지만 그의 마음 한편에는 반을 향한 미안함이 존재했다. "그리고 네가 들고있는 검을 설명해주면서 내게 제안을하더구나. '만약에 저친구가 그녀를 구한다면 제게 그를 주십쇼.' 라고."
  • "말하지 않아서 미안하구나." 고개 숙이는 스미스를보자 반의 가슴속에있던 배신감은 눈녹듯이 사라졌다.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죄송해요..." 눈물을 글썽이며 용서를 구하는 반에게 스미스는 괜찮다며 그를 진정시켰다. "옳다고 여기는것을 선택하라고 말하지않았느냐 그리고 그덕에 그녀도 구했는데 뭐가 죄송하는거냐." 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자랑스레 현수를 보면서 그는 말했다. "이런 울보에다 바보같은 놈이지만 잘부탁드립니다." "스승님..." 손을 얹은채로 이번엔 반을 바라보았다. "반아, 세상에는 그녀처럼 도움이 필요하지만 아무도모르게 사라져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단다. 가서 그들을 돕거라." 그리고 스미스는 왼손으로 자신의 등뒤를 가르키면서 말했다. "내걱정은 말거라. 저꼬맹이들덕에 심심하지는 않을게다." 그런 스승의 말에 반은 눈물을 소매로 닦으며 현수에게 물었다. "그게 형님이 제게 시킬일인가요?" "뭐 당분간은?" 아이들에게 반이 떠난다는 사실을 알리자 눈물바다가 되버렸다. 만난지 얼마안됬지만 그사이에 정이들어버린듯하다. 훌쩍이는 아이들과 덤덤하게 배웅하는 스미스를 뒤로한채 현수를따라 반은 대장간을 떠나게 되었다.
  • -다들 잘보고있는지 모르겠다. 부족한필력에 이렇게까지 길게쓴건 처음이거든 뭐 이제 프롤로그정도지만
  • 노력추
  • 대장간을 떠나 도착한 곳은 이레인 저택이었다. "어서오십시요 반님, 현수님."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하던 레온의 두 눈이 반과 현수를 빠르게 훑었다. "일단 두 분 모두 씻으셔야겠군요." 레온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방에 있는 욕실에서 목욕을 하고 나온 반은 커다란 크기의 침대에 누군가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구.." 반의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린 남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듯한 모습이었다. 칠흑같은 머리칼과 눈, 하얀 피부, 붉은 입술.. 각양각색의 머리칼이 있지만 검은색머리칼은 존재하지 않는 이 곳에서 홀로 검은 머리칼을 가진 남자의 모습은.... 두근. " 나야 현수." 왠지 모를 두근거림을 안겨주었다.
  • "이제 어디로 가는 거죠?" 반의 물음에 그는 두 가지 선택권을 주었다. "엘프들의 숲으로 갈래? 아니면 수도로 갈래?" 그의 제안에 반은 고민에 빠졌다. "흐으으으음..." 여태껏 마을을 떠난 적이 없는 반에게는 어느 쪽도 매력적이었는데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겨우 정할 수 있었다. "수도도 좋지만 그래도 엘프쪽이 낫죠." "그럴줄 알았지" 그를 따라 도착한 곳은 마차를 타는 곳이었는데 놀랍게도 귀족들이나 탈법한 고급스러운 마차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형님 혹시 부자세요?" "응? 부자는 아니고 그냥 먹고살정도지."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하는 그를 보고 반은 더욱 그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 그러거나 말거나 마차를 올라타는 현수를보고 반은 따라서 탈수밖에없었다. 마을을떠나 길을따라서 달리던 마차는 어느새 울창한 숲으로 들어섰는데 쉴새없이 달려온 마차의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기시작했다. "저기...손님, 여기서부터는 그게 좀..." 안절부절 어딘가 불편한것일까? 마부의 안색이 좋지않았다. "흠 그럼 여기서부터 걸어가자" 하는수없이 마차를 내리는데 돈을 받자마자 마차는 순식간에 왔던길을 돌아가버렸다. "저사람 왜저러죠? 갑자기" "감이좋은걸?"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반에게 들렸다. "아. 티아구나." 그녀의 이름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모르고 있었는데 마차를 타고 오는 도중에 현수가 그에게 그녀의 이름은 알고 있냐고 묻자 모른다고 하는 그를보고 기가 찬 나머지 알려준 것이다. '너 그것도 모르고 계약했냐?' 라며 잔소리까지. 그건 그렇고 감이 좋다는 건 무슨 뜻일까.
  • "그런데 왜감이좋다는거야?" 그의 물음에 그녀는 대답대신 한숨을쉬었다. "에휴..." 그모습을본 현수는 웃으면서 대신 답해주었다. "너는 아직 못느끼겠지만 지금 이숲은 마나의 농도가 아주짙어." 여전히 알아듣지 못하는 반을 위해 그는 추가로 덧붙였다. "그리고 숲에서 그럴 경우엔 대부분 원인은 한 가지. 바로..." "강한 몬스터가 닥치는 대로 죽여서 영혼들이 마나로 바뀐 거지. 그러니까 제발 돌아가자, 응? 너 같은 약골이 어찌할 수준이 아니라고!" 농후한 마나 탓일까 아니면 그녀의 경고 탓일까?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반이었다. "혀... 형님. 엘프들이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을까요?" 두려움에 떨고 있는 반과는 달리 문제없다며 그를 다독였다. "걱정하지 마. 그 녀석이 사는 곳까진 안 갈 테니까." 그의 말에 조금이나마 안심을 한 반과 여전히 경고를 하는 티아를 이끌고 현수는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 "...!" 누군가 자신을 노려보는듯한 이상한 느낌에 반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나무와 높은 풀들이 전부였다.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지금도 느껴지는 이상한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반은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즈음, 현수가 반에게 손짓했다. '멈춰' 갑자기 자신을 멈춰세운 이유가 궁금했기에 그의 옆구리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는데 "윽!..." 이쪽을봐도 저쪽을봐도 온통 붉은색이다. 바닥에는 어떤 동물인지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찢긴 고깃조각들이 흩어져있었고 가지에는 분홍빛의 내장들이 마치 축제장식마냥 걸려있었다. "어떤놈인지 참 더럽게도 먹었네" "우웁..." 뒤늦게 피와 내장냄새를 맡은 반은 결국 참지못하고 토를해버렸다. 그에반해 현수는 표정하나 안바뀌고 살점과 내장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 "흠...이거 제법 덩치가 큰놈일세?" "...." 시체를 살펴보던 현수가 갑자기 어딘가를 뚫어지게 노려봤다. 토를하고 일어난 반도 그쪽을 바라본순간 ".....세요" 반의 귀에도 분명히 들렸다. 작지만 누군가가 도움을 청하는 소리다. "형님" 이미 그는 소리가 난 곳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풀숲에 쓰러져있는 어떤 여성을 찾아냈다. 긴 은색의 머리칼은 피와 흙먼지로 인해 더러웠고 옷은 여기저기 찢기고 구멍이 뚫린 곳도 있었는데 그곳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뒤늦게 따라온 반은 그녀를 보자 화들짝 놀랐다. "형님 그 사람 살았어요?" 그녀의 상처 부분을 살펴보고 맥을 짚어보더니 품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치료했던 보랏빛 액체를 꺼내는 줄 알았으나 그의 손에 있는 것은 연한 연두색 액체였다.
  • "저번에 그거랑 다른 건가요?" "응. 얘는 엘프니까" 뚜껑을 여는 순간 향긋한 풀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어찌나 강한지 비릿한 피 냄새를 지워버릴 정도로 향이 강했다. 약이 줄어들수록 새햐얗던 그녀의 안색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상처까지 아물어갔다. 그런데 잘 마시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아.... 으...." 심지어 입에서는 검은색 액체가 흘렀다. 그럼에도 현수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기만 하자 보다못한 반이 그에게 소리쳤다. "저 사람 저러다 죽겠어요!" "야 안 죽어 인마! 원래 이러는 거야" 그의 말대로 서서히 들썩임이 잠잠해지더니 검은색 액체도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야 잠깐만 움직이지 마라" "네?.. 그게" 반이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차가운 무언가가 그의 목에 닿았다. "움직이지 마라." 그제서야 반은 자신의 목에 있는 것이 시퍼런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언제 온 것인지 현수의 목에도 검이 겨눠져있었는데 그들의 생김새로 보아 그녀를 찾으러 온 동족인듯했다.
  • 그들은 그녀의 상태를 살피더니 검을 거뒀다. "아무래도저희가 오해를한모양이군요." "휴..." 무사히 오해가 풀려서 안심하는 반에 비해 현수는 어딘가 석연찮은 표정을 지었다. 한명은 쓰러진 그녀를업고 먼저떠났고 나머지 한명이 반과 현수에게 고개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동족의 은인께 실례를 범했습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오해할만하죠" 현수가 괜찮다고하자 그의 표정은 밝아졌고 자신을 따라오라며 엘프들의 은신처로 안내하겠다고 했다. "여러분에게 대접을 하고싶습니다. 부디" 거절할 이유는 없었기에 흔쾌히 그를 따라갔다.
  • "그러고보니 이름을 못들었는데?" 앞장서서 걷던 그는 고개를돌려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제 이름은 샤엘입니다." "그렇구나." 그것을 끝으로 대화는 더이상없었고 묵묵히 걸었던 탓일까? 생각보다 그들의 은신처라는곳은 그리 멀지않았다. "와..." 그들이 사는곳을 보자마자 반은 그저 감탄할수밖에 없었다. 우선 그들의 집은 거대한 나무위에 지어진게 마치 밤하늘에 떠있는 별들같았다. 그리고 하나의 거대한 구체가 중앙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달빛을 대신해서 이곳을 밝히고 있었다. 아직 해가 지지않았음에도 이곳은 밤처럼 느껴졌다.
  • 그리고 반과 현수가 들어서자마자 "와아아아아!" 정말로 수많은 엘프들이 이들을 반겼다. "흐음" 이번에도 현수의 반응은 미미했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듯한 그의 태도와는 달리 반은 그들의 환호에 일일이 손을 흔들어주며 답했다. "어서 오십쇼. 제가 이곳의..." "알아 알아, 엘프들은 나이순으로 계급을 나누지. 그건 됐고 이름이?" 한 엘프가 걸어오며 자신을 소개하려 했지만 현수는 이를 끊고는 이름을 물었다. "예?... 티모시라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그의 질문에도 곧바로 정신을 차린 그는 자신을 티모시라고 말했다. "티모시라고? 그쪽 이름이?" 뭐가 문제인지 재차 물어보는 현수에게 티모시는 웃으며 답했다. "예. 티모시입니다." 그의 대답을 듣고 작게 미소를 지었으나 볼 수 있었던 것은 반밖에 없었다. "우선 여러분에게 대접을..."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잖아? 그쪽 괴롭히는 괴물말야. 우리가 잡아주지." 이번에도 말을 끊는 현수. 하지만 이번에 반응한 것은 티모시가 아닌 티아였다. "야 이현수. 너 우리 반 죽이려고 작정을 했구나?" "우리?" 혼자 얼굴을 붉히는 반은 내버려 둔 채 티아는 계속했다. "얘가 무슨 수로 잡아! 네가 할 거야?!" "벌써 정이 드셨구먼. 걱정 마라 충분히 잡을 수 있어" 한편, 현수와 티아가 다투는 사이 정신을 차린 반이 티모시에게 물었다. "혹시 그녀를 공격한 괴물을 알고 있어요?"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입니다..."
  • 그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는 원래 펜리르라고 불리는 거대한 늑대가 살던 곳이었는데 자신들이 여기에 자리를 잡으면서 내쫓았다고 한다. 그후로 벌써 300년이 지났음에도 펜리르는 집요하게 자신들을 공격했다고 한다. "부디 저희를 도와주세요..." 고개숙여 부탁하는 티모시를보자 반은 절로 그를돕고 싶다는 생각이들었다. "싫어! 니가 직접해!" 물론 티아는 여전히 반대를 하는중이었다. "티아. 그래도 이분들이..." "글쎄 위험하다니까?! 제발 부탁이야 응? 아까 시체들 못봤어? 진짜 죽는다고!" 완강하게 거부하는 그녀를 보다못한 현수가 나섰다. "알았어 알았다고!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내가나설게 그러면 문제없지?" 그렇게 겨우겨우 티아의 허락을 받고 있을 무렵 "으으..." 어딘가의 방에서 침대에 누운상태로 그녀는 깨어났다. 그리고 그녀가 깨어났다는 소식을들은 가족들이 찾아왔지만 "누구세요..?" 자신의 가족을 못알아봤다. 심지어는 "여긴 어디고 저는 누구죠?.." 자기 자신조차 기억하지못했다.
  • "우욱..." 티모시가 설명해준 길을 따라서 펜리르가 살고 있는 동굴에 도착하자 반은 다시 속이 메스꺼워졌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우와...이거 장난아닌데?" 죽은지 오래된 백골부터 이제 막 썩기시작하는 시체까지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없을 정도였다. "야 진짜 니가 나설꺼지?" 수많은 시체들을보자 불안해진 티아가 현수에게 물었지만 그는 그저 동굴로 걸어들어갔다. 하는수없이 그를 따라들어가는 반을 티아가 불렀다. "야. 진짜 위험하다싶으면 냅다 도망쳐. 알았지?"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인뒤 현수를따라 더깊은곳으로 들어가게되었다. "형님. 안추워요?" 점점 깊이들어갈수록 알수없는 한기를 느끼는 반이었으나 현수는 괜찮은것인지 별다른 말은 없었다. "슬슬 괜찮아질껄? 아마도" 아마도라는 말이 신경쓰였지만 그의말을 믿을수밖에 없는 반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까, 앞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후우. 통로만 이어지던 동굴이 드디어 거대한 공간으로 바뀌었고 그곳에서 반에게 보인것은 작은 언덕이었다. 소리에 맞춰서 오르락 내리락하는 저것이 바로 펜리르였다. 입에서 튀어나온 송곳니가 반의 상반신 정도니 오죽 거대했으면 반이 언덕이라고 느낄정도였다. 그들의 인기척을 느낀것인지 서서히 감겼던 눈이 뜨이면서 날카로운 이빨들이 박힌 입을 쩍 벌리더니 "흐아아아아암..." 늘어지게 하품을했다. "혀..형님?" "자고일어났으면 기지개를 펴야지. 안그래?" 당황하는 반과 달리 현수는 태연하게 그것에게 말을걸었다. 하품을 하다가 자신에게 말을거는 현수를 한번 슥 보더니 거대한 머리를 그에게 가져갔다. "스으으으으읍" 깊게 숨을 들이쉬면서 그의 냄새를 맡던 펜리르의 분위기가 갑자기 돌변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반은 무언가가 자신의 심장을 강하게 움켜쥐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호흡 역시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압박감이 반을 덮쳐왔다. "정신 차려!" 그녀의 외침과 팔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충격 덕분에 가 가스로 정신을 차렸다. "고.. 고마워" 하지만 그의 감사 인사는 그녀에게 들리지 않았다. 점점 더 강해지는 펜리르의 기운에 그녀는 굳어버렸다. "너 정도 녀석을 그것들이 보냈을 리는 없고. 너 정체가 뭐냐?"
  • '그들이 누구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펜리를 앞에두고도 그의표정은 변함없었다. "네힘이 필요해. 엘프들을 구할수있게 도와줘" 현수의 말에 펜리르는 그를향한 경계심을 한단계 끌어올렸다. "지금 뭐라고 했어?" "우리를 도와서 엘프들을 구하자고" 이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반은 현수에게 물었다. "엘프들을 구하다뇨? 펜리르가 그런게 아닌가요?" 펜리르의 거대한 눈동자가 반에게로 돌아간 순간 "윽!.." 아까와는 비교도 할수없는 감각이 그에게 전해졌다.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몸 구석구석이 짓이겨 지는듯한 기분이었지만 비명조차 지를수없었다. 이번에는 현수가 나서서 그를 도와주었다. "진정해. 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너도 착각하지마. 엘프들때문에 돕는거지 니가 좋아서 그러는건 아니니까" 그가 살기를 거두자마자 반은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반? 야 정신차려!" 티아의 외침에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않자 현수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펜리르에게 말했다. "어쩔꺼야? 너 때문에 기절해버렸잖아."
  • 반은 푹신푹신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무언가가 자신을 감싸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손을 뻗어서 더듬거리자 물컹하는 감촉과 함께 "흐엑!.." 이상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얌전히 탈것이지 어딜 만져?!" 눈을뜨자 익숙한 그의 얼굴이 보였다. "형님...여기는?" "니가 기절하는바람에 이녀석 등에타서 움직이는 중이야. 어때? 승차감 죽이지?" 그제서야 자신들이 펜리르의 등에 올라타있는것을 알고서 그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괜찮아" 다행히 그는 그리 신경쓰지 않는것인지 아니면 기절 시킨것이 미안한건지 화를 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화를 낸것은 티아였다. "야 늑대.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하지?" 그녀의 일갈에 그는 오히려 코웃음을 치면서 으르렁 거렸다. "입조심해라. 평소였으면 진작에 너나 네주인이나 죽었을꺼다." "뭐..뭐라고?!" 대꾸하려던 티아가 입을 닫았다. 아무리 그녀가 명검에다 특별하다 한들 아까 느꼈던 살기 앞에서는 꼼짝도 할 수 없었으니 아마도 그의 말대로겠지. 험악해진 분위기를 읽은 현수는 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보니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지않냐. 펜리르가 그런게 아닌걸 말이야." "아 네! 궁금해요"
  • "일단 살아남았던 걔부터. 나는 그때부터 의심을 했거든." 다쳐서 쓰러져있던 그녀가 왜 의심이 갔을까? 반이 묻기도 전에 그는 설명해주었다. "동물들은 다찢겨서 죽었는데 걔는 고작 구멍 몇개가 전부였잖아? 심지어 살아있었고, 우연치고는 너무 수상하잖냐. 그리고 두번째는 이름이야" "이름요?" 이번에 반의 물음에 답한건 현수가 아닌 펜리르였다. "원래 엘프들은 어느정도 나이가 지나면 2번째, 3번째 이름을받는데 너희들이 만났던 엘프들은 전부 이름을 하나씩 말했지?" 그러고보니 다들 하나의 이름만 말하고 다른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째서 수상한 것인지 펜리르에게 묻자 그는 "첫 이름은 부모가 지어주지만 나머지는 아니야. 두번째부터는 정령들이 지어주지. 그리고 자신을 소개할때는 반드시 그이름들을 말하거든" 정령이라는 단어를 이해못하는 반을 위해 현수가 설명을 덧붙였다. "정령들은 간단히 말하면 다른세상에서 사는 존재들이지. 마계, 천계, 명계, 정령계, 그리고 여기 현계. 이중에 정령계에 사는 친구들이지." "그친구들은 우리세상에 오래있지 못해. 자기 세상으로 돌아가야 하거든. 그래서..." 설명이 길어지자 펜리르가 헛기침을 하며 그의 말을 끊었고 자신이 설명을 이어갔다. "크흠...아무튼 어째서 이름을 못말하냐면 기억으로 알수있는게 아니거든. 정령들의 이름은 영혼에 새겨져 그래서 정신을 조종한다 하더라도 알수없지." 그렇다면 이제 궁금한 것은 두개, 누가 그리고 왜 그랬냐는 것이다.
  • 반은 현수에게 물으려 했으나 펜리르에게 물었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 그런것은 아니다. 그저 그가 설명하는것이 즐거워보였기 때문일까. "그럼 누가 왜 그런거죠?" 생각만으로도 화가 치미는것인지 반이 묻자마자 이를 갈았다. 까드득 까드득. 소름끼치는 소리에 반은 자신이 실수했다는것을 깨닫고 그에게 사과하려 했다. "죄송..." "원래 누루엔은 토끼같은 작은 동물들을 유인해서 잡아먹는 녀석이야. 크기도 작은 나무정도지." 화를 추스른 그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변종이라도 나타난건지 한 엘프를 유인해서 숙주로 만들었더라. 내가 이사실을 깨달은건 이미 모두가 정신을 빼앗긴 뒤였지." "그럼 왜..." 이유를 물으려는 반의 입에 현수가 손가락을 갖다대며 그를 조용히 시켰다. "쉿" 그리고 앞을 보라며 손짓했다. 그를 따라서 앞을 본 순간 반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사람들이 10명정도 손이 묶인채 어딘가로 가고있었다. 그들주위에는 무장한 엘프들이 지켜선채 처지거나 느리게 걷는 이들을 때리며 속도를 유지시켰다. "으으으...무..물좀" 물을 달라는 그에게 어떤 엘프가 다가가더니 가차없이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얌전히 걸어라" 자신들을 대할 때와는 너무도 다른 그들의 태도에 반은 저들이 무언가 잘못이라도 저지른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숲에 쓰러진 그녀부터가 누루엔의 미끼였던거야. 누군가 그녀를 구해주면 자연스레 보답을 해주겠다며 끌어들이지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끝난거고" 그렇게 한참을 그들의 뒤를 따라갔고 마침내 그것의 모습을 볼수있었다. "으으 징그러" 티아의 말대로 흉측한 모습이었다. 마치 나무처럼 생겼지만 다른점은 가지 대신에 촉수들이 돋아나 있었다. 그리고 몸통의 정중앙에는 세로로 찢어진 거대한 눈동자가 번뜩이며 눈앞에있는 인간들을 훑어보았다. 마치 어떤것부터 먹을지 고민하듯이.
  • "흐...흐아악" 모두 살기위해 도망치려했지만 서로 묶인 상태라 한명이 쓰러지자 줄줄이 넘어졌다. 무릎이나 몸 여기저기가 까졌는지 피가 흘렀지만 지금 그들에게 그런 고통따위 느껴질리가 없었다. 절망에 찬 얼굴로 뒤를 돌아본 순간 "어..." 기울어지는 세상을 보며 다시 넘어진줄 알았다 . 하지만 머리없는 누군가의 몸통을보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자신의 머리가 잘렸음을. 그뒤로 이어진 학살은 현수의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그들이 묶인 상태라는 것과 처음에 죽은 동료를보고 도망칠 의욕을 잃어서 그렇겠지. 깔끔하게 날아간 머리들은 엘프들이 주워서 누루엔에게 가져갔고, 몸통들은 그것이 직접 촉수들로 끌고가서 자신의 뿌리부분에 묻었다. 그리고 잠시 후, 뼈와 살이 짓이겨지는 끔찍한 소리에 반은 귀를 막아버렸다. "저걸 없애면 엘프들은 돌아오는거죠?" 하지만 현수와 펜리르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너무 오래 빼앗겼어. 죽인다 한들 다들 제정신으로는 돌아오기 힘들어" 펜리르가 "그녀만 있었더라도.."라며 중얼 거렸지만 듣는이는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시체를 먹고있던 누루엔이 촉수하나를 엘프에게 가져갔다. 반은 저괴물이 엘프마저 잡아 먹는줄 알았지만 자신에게 촉수가 다가오자 엘프는 익숙한듯이 커다란 물통을 꺼내서 촉수를 그곳에 넣었다. 촉수는 그곳에다 무언가를 쏟아냈고 투명하던 물통은 서서히 검은 액체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물통이 채워질수록 들고있는 엘프의 표정이 황홀하게 변해갔다. 그것은 옆에있는 다른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 -이제 겨우 2명째인데 벌써 50을 넘겨버렸네 근데 스레제한이 몇정도야?
  • >>52 스레제한은 딱히 없고 스레 하나당 1000개까지 쓸 수 있어
  • >>53 그렇구나 고마워. 2개정도는 쓰겠구나... 갈길이 먼걸
  • 한바탕 식사를 마친 누루엔은 눈을 감고 움직임을 완전히 멈췄다. 물통도 가득 찼겠다 엘프들 역시 볼일은 끝났으니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고 남은 것은 우리들뿐이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비릿한 피 냄새는 더욱 짙어졌지만 반은 이번에는 토를 하지 않았다. 익숙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눈앞에 있는 괴물이 신경 쓰여 냄새를 느낄 여유조차 없는것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앞장서서 걷고있던 현수가 반과 펜리르를 돌아봤다. "너희둘이서 처리해줘. 나는 볼일이 있거든" "그게 무슨" 하지만 반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그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야말로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진것이다. "야! 이현수!" 그리고 그가 사라지자마자 티아는 불안해졌다. 현수가 없다면 반을 지켜줄 사람은 펜리르밖에 없다. 하지만 그가 말했던것을 떠올리자 그녀는 자연스레 걱정이 된것이다. "저기 펜리..." 무어라 말할 새도 없이 엄청난 살기가 반과 티아에게 엄습했다. 어찌나 강렬한지 자신을 항하는게 아님에도 절로 온몸이 덜덜 떨렸다. "지난 300년동안 이날만을 기다렸다. 잘도 나를 봉인시켰겠다? 찢어발겨주마!" 어찌나 빠른지 순식간에 누루엔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펜리르가 앞발을 들어올리는 순간까지도 누루엔은 눈을감은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발톱이 몸통에 박히려는 바로 그때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오히려 펜리르가 날아가버렸다. "크르르르르"
  • 흙먼지를 일으키며 일어나는 펜리르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다. 왼쪽 허리부분에 붉은 발톱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움직일때마다 피가 왈칵 쏟아졌다. 하지만 펜리르는 상처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루엔만 있는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건?" 그것은 거대했다. 단순히 덩치로만 본다면 펜리르보다도 더욱 컸다. 거대한 몸집만큼이나 앞발도 보통이 아니었다. 날카로운 발톱은 어지간한 검보다 길었고 스치기만 해도 사람은커녕 나무조차 종이 베듯이 잘라버릴 듯했다. 그리고 발과 이어진 두꺼운 다리는 다리라기 보다는 마치 거대한 기둥과도 같았다. 마지막으로 이성을 잃은 붉은 두눈은 눈앞의 펜리르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딘. "곰?" 그것은 바로 곰이었다. "크흑..언제 곰까지 길들인거지?" "설마 저게?" 숲에있던 동물들의 사체들은 저것이 벌인 짓이었다. 현수의 말대로 엄청난 덩치를 가진 곰이었던것이다.
  • 살짝 벌어진 곰의 입에서 검은 타액이 길게 늘어졌다. 아무래도 누루엔은 그들을 자신의 체액으로 조종하는듯했다. 하지만 반은 이생각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쿠워어어어어어!" 눈앞에있는 짐승과 그뒤에있는 괴물을 상대하는게 우선이었으니. "펜리르씨! 괜찮아요?" "...괜찮아. 아무래도 네가 누루엔을 상대해야겠어" 괜찮다는 말과는 달리 그는 거친 숨소리를 내면서 힘겹게 움직였다. 쿵, 쿵, 쿵. 한걸음씩 다가올때마다 땅이 울렸고 점점 가까워질수록 반은 손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반 내 말 잘 들어. 내가 말했었지? 위험하면 도망치라고 말이야. 지금이 바로 그때야." 티아가 도망치라며 그를 말려도 반은 그저 가만히 서있을뿐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야. 반! 제발...도망가!" 그녀가 아무리 소리쳐도 그는 미동도 하지않았다.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리는 미칠듯이 후들거리고 손은 이미 흥건하게 땀으로 젖어있었다. '도망가! 누난 괜찮아' 티아의 외침이 반에게는 어떤 어린소녀와 겹쳐보였다. 울면서도 어떻게든 미소를 지으려는 그녀는 반에게 손을 흔들었고 서서히 그에게서 멀어져갔다. "티아" 평소와는 분위기가 달라진 반이었기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닫았다. "너..." "이제 두번다시 도망치기 싫어. 도와줄꺼지?"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에휴...알았어 알았다고! 진짜...죽을꺼야." "그럴지도." 한걸음. "저녀석한테 잡혀서 조종당할 수도 있어." "그건 좀 무섭다." 한걸음. "그래도 싸울거지?" "물론이야." 두렵고 떨리지만 반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한걸음씩 다가갔다.
  • "펜리르씨! 저녀석좀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나아가던 그는 반을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부탁한다. 엘프들을 구해줘" 그리고 포효를 지르며 곰에게 달려들었다. "너는 나랑 놀아야지!" 그의 왼쪽 앞발이 곰의 가슴을 지나갔고 그자리에는깊게 파인 발톱자국이 남았다. "크워어어어어!" 분노한 곰은 그를 향해 거대한 발을 휘둘렀지만 그는 이미 멀리 떨어진 뒤였다. 곰이 그를 따라서 숲 저편으로 가버리자 누루엔은 그제서야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반을 보자 멈춰있던 촉수들을 한데 모았다. 그렇게 모여있던 촉수가 갑자기 자신의 몸통으로 파고들어갔다. 거무틱틱하고 질척한 액체가 마구 튀었으나 촉수는 오히려 더욱 깊이 들어갔다. 한참을 자신의 몸속을 휘젓던 촉수가 확 하고 뽑혔다. 그리고 그곳엔 정신을 잃은 여성이 있었다. 그녀의 머리에는 한가닥의 촉수가 꽂혀있었는데 검은색의 다른 촉수와는 달리 붉은색을 하고있었다. "너어어어...느으으은...누우우..구우우...냐아아아..." 그녀의 입에서 기괴한 음성이 들러왔다. 마치 쇠를 긁는듯한 끔찍한 소리였다. 얼굴을 찡그린채 그녀를 살피던 반은 그녀가 누루엔의 숙주임을 깨달았다. "니가 숙주구나." 반의 대답에 그녀는 말대신 한줄기의 촉수를 휘둘렀다. 어찌나 빠른지 반의 눈으로는 피하기는 커녕 쫓을수도 없었다. "숙여!!!" 그녀가 없었다면 말이다. 티아의 다급한 외침에 반은 황급히 자세를 낮추었고 머리위를 스쳐지나간 촉수가 나무를 베어버리는것을 보았다. 그야말로 즉사의 일격. 스치기만해도 피부는 우습게 잘려나갈 위력에 반은 마른침을 삼켰다.
  • "집중해! 스치기만 해도 잘려나갈꺼야!" 자신의 공격을 피한 반을 유심히 살피던 누루엔은 그의 손에있는 티아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마치 온몸에벌레가 기어가는듯한 기분나쁜 감각에 티아는 초조해졌다. "조금씩 다가가는거야." 반이 한걸음 내밀자마자 두번째 공격이 날아왔다. 이번에도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단순한 공격이었지만 촉수에 실린 힘과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오른쪽!!!" 그와동시에 반은 있는 힘껏 옆으로 뛰었고 엄청난 굉음과 함께 그가 있던 자리에는 커다란 구멍이 파였다. 고작 두번을 피했을뿐인데 반의 옷은 이미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허억..허억.." 뿐만아니라 호흡역시 거칠어져 있었다. '이...이거 생각보다 힘든데?' 이를 악물고 다시한번 앞으로 나아가자 이번에는 두개의 촉수가 날아들었다. 아까와같은 내려치기였기에 티아는 이번에도 옆으로 뛰라고 소리쳤다. "왼쪽!!" 또 다시 굉음이 들려왔고 다시 걸어가려는 순간, 어디서 온것인지 촉수하나가 티아를 휘감았다. "큭..이게 무슨" 잡아당기는 힘이 어찌나 강한지 속수무책으로 누루엔에게 끌려갔다. 티아 역시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을 했는지 정신을 못차렸다. "으으으...이거 안놔?!" 다행히 티아의 날을 붙잡고있던 촉수가 알아서 잘려나가 풀려날수있었다. 하지만 반과 티아는 안심할수 없었다. 반을 노리던 공격이 이제는 티아까지 노리니 더욱 피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 잘려나간 촉수에서는 아까와 같은 검은색의 체액이 마구 뿜어져 나왔고 그녀는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질렀다. 안그래도 끔찍한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자 반은 아예 귀를 틀어막았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 잘려나간 촉수는 더이상 재생되지 않는것인지 축 늘어진채 움직이지 않았다. 조종당하는 그녀는 괴로움에 울부짖으며 반과 티아를 노려봤다. '저들이다. 저들이 너에게 고통을 주는거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누루엔은 쉴새없이 속삭였다. 그럴수록 그녀의 증오와 살기는 끊임없이 커져만갔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걸" 티아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좀전과는 비교할수도 없는 흉흉한 기운을 내뿜었다. 펜리르가 거대한 느낌이었다면 그녀는 마치 날카로운 날붙이로 찌르는듯한 느낌이었다. 또 한걸음, 내딛자마자 그녀는 촉수를 움직였다. 다만 이번에는 한두개가 아니라 모든 촉수를 이용해서 공격했다.
  • 7개의 촉수들이 날아들자 티아는 고민에 빠졌다. 이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반이었다. 잘못하면 그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 방법이었기에 망설이는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도 구할꺼지?" "물론이야." 망설임없는 그의 대답에 그녀는 휴 하고 작게 한숨쉰뒤에 자신이 생각했던 방법을 말했다. "지금부터 마나로 니근육에 간섭할꺼야. 아프더라도참아." 아직 마나라는것을 느끼지는 못하는 반이었지만 그녀에게서 빠져나오는 무언가는 손을 통해서 느낄수있었다. 손에서 팔로, 팔에서 어깨로, 그리고 어깨에서 심장으로. 혈관을 타고 흘러간 마나는 반의 심장근처에서 잠시 멈추었다. 이게 끝인가? 하고 생각한 순간, 미친듯이 날뛰면서 팔과 다리로 뻗어나갔다. 혈관을 타고 뻗어나가는 마나들이 각자 제자리를 찾아가자 반은 불에 타는듯한 고통을 느꼈다. "크흑..." 고통을 참으리라 다짐을 했음에도 신음이 새어 나오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그가 고통스러워하자 티아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는 것이었다. 사방에서 쇄도하는 촉수들을 피하기 위해 티아는 반에게 뒤로 뛰라고 소리쳤다. 그녀의 외침대로 있는 힘껏 뒤로 뛰기위해 다리에 힘을주자 "흐악!" 그대로 뒤로 날아가버렸다. 촉수들은 반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고 땅을 파헤칠 뿐이었다. 촉수들이 빗나가자 그녀는 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드시 저들을 찢어죽인다는 일념으로 다시한번 공격을 준비했다. 한편, 뒤로 날아간 반은 몇번을 뒹굴고 나서야 겨우 멈췄다.
  • "티아. 이거 혹시 니가 한거야?" "맞아. 일시적으로 네근육들을 강화한거야" 그녀의 설명에 반은 자신의 팔,다리를 만지작거렸다. 별다른 차이점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저 떨림이 멎은 것 정도가 달라진 전부다. 반은 그녀가 위험하다던 이유가 아마 처음에 느껴진 고통을 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했다. 달라진 신체를 보며 자신감을 느끼는 반과 달리 티아는 그를 보면서 죄책감을 느꼈다. 자신이 그에게 해준 것들은 분명히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치명적인 부작용이 존재했다. "반, 잘 들어. 앞으로 3분안에 저녀석을 쓰러트려야해." "3분이 지나면 어떻게 되는건데?" 그의 물음에 티아는 차마 입을 열수없었다. "티아?" "팔,다리에있는 근육들이 찢길꺼야. 순간적으로 네수준 이상으로 힘을 써버렸으니." 이래서 그녀는 망셜였다. 대가없는 힘은 없었고 그대가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하지만 반은 그녀의 말에 절망하거나 화를 내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저 말없이 그녀를 꼬옥 쥐었다.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누루엔이 다시 공격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촉수들을 그녀의 명령과 강화된 신체로 가뿐히 피하며 전과는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오히려 피하면서 티아와 반은 공격을 시도했고 3개를 잘라내는데 성공했다.
  • 촉수가 잘릴때마다 그녀는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이유는 누루엔이 촉수를 잃을때마다 그녀에게 고통을 주었기 때문이다. 더욱 저들을 증오하도록 그리고 저들이 망설이도록. 실제로 반은 그녀가 괴로워하자 망설이기 시작했다. "지금!" 공격하라는 그녀의 외침에도 그는 머뭇거렸고 이틈을 놓치지않은 촉수들은 맹렬한 기세로 그를 공격했다. 결국 빨라진 신체에도 불구하고 반은 왼쪽 어깨를 내주었다. 더욱 깊숙히 파고들려는 촉수를 붙잡고 그대로 끊어내자 어깨에서 피가 솟구쳤다. "크으윽!" "이 멍청아! 왜 망설인거야!" 좀전에 그가 머뭇거리는것을 느꼈고 어깨에 상처까지 입었다. 그녀는 화가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었다. 물론 그녀도 반이 어떤 성격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막상 그가 다치는 것을 보자 화가 난 것이다. "미안..." "에휴...팔은 어때? 움직일 수 있겠어?" 반은 어깨를 움직이려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 조금만 팔을 들어도 어깨가 끊어지는듯한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무리야. 그것보다 시간은?" "앞으로 1분정도." 시간이 부족했다. 다급해진 반은 그녀에게 공격을 하자고 말했고 그녀 역시 남은 방법은 공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이번엔 망설이지마." 반 역시 더이상 망설일 생각은 없었다. 비록 왼쪽 팔은 쓰지 못하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지금 그가 신경쓰는것은 그녀를 구하는것 외에는 없었다. 그녀에게 달려가면서도 반은 촉수들을 신경쓰지 않았다. "왼쪽 위!" "오른쪽 아래!" "정면!" 티아와 반의 호흡은 처음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척척 맞았고 누루엔은 번번이 땅만 파헤쳤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하나, 하나 촉수들이 잘려나갔고 이제 남은것은 한개뿐이었다. 마지막 촉수를 잘라내기위해 다가가자 누루엔은 재빨리 거둬들였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간 촉수는 엘프의 목을 겨눴다. 사납게 반을 노려보던 그녀는 이제 힘없이 축 늘어져있었다. 그가 더이상 주저하지않자 계획을 바꾼것이다. 갑작스런 상황에 반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섣불리 다가가지도 못하고 그저 제자리에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를보고 티아는 답답함에 소리쳤다. "이제 앞으로 30초 남았다고! 그냥 뛰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있는 그때, 누루엔의 뒤에서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갈색의 거대한 형체는 바로 펜리르였다.
  • '셋을세면 뛰어.'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오자 반은 화들짝 놀라 펜리르를 바라봤지만 그는 누루엔을 바라본채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티아가 그런것인가? 하지만 티아 역시 별다른 말은없었다. '하나,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뛰어야하는 기분이 들었기에 온힘을 다해서 달려갔다. 놀랍게도 펜리르 역시 달려왔다. 마치 그와 합을 맞춘것처럼 동시에 움직인것이다. 엘프를 죽이려던 누루엔은 뒤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살기에 무심코 뒤를 돌아봤고 그곳에는 피를 흘리면서 펜리르가 미친듯이 뛰어왔다. 예상치 못한 그의 등장에 누루엔은 잠시 촉수를 멈추었고 그틈을 노린 반은 엘프의 머리에 꽂힌 촉수를 끊어버렸다. "아아아아아아!!!" 촉수가 끊긴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다행히 쓰러지는 그녀를 반이 안았는데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했다. 누루엔과의 연결이 끊기자 그녀의 두뺨은 홀쭉해졌고 팔,다리 역시 뼈만 앙상하게 변했다. 변한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숙주인 그녀를 잃어버리자 누루엔은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찾아나섰다. 그리고 그녀와 그녀를 안고있는 반을 발견했다. "키에에에에에에엑!!!" 끔찍한 괴성을 지르며 촉수를 뻗어 그녀를 다시 차지하려했지만 반에게는 닿지못했다. "뿌드득,뿌드드득!" 펜리르의 이빨들이 누루엔의 몸통에 깊숙히 박혔고 끔찍한 소리를 내면서 말그대로 찢어발기고 있었다.
  • 지금 펜리르의 눈에는 죽여야할 존재만이 보일뿐 자신의 상처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누루엔이 고깃조각으로 바뀔 때까지 발톱과 이빨로 도륙을 냈다. 헉헉 거친 숨소리를 내던중 그제서야 반이 떠올랐고 엘프여성과 함께 쓰러져있는 그를 발견했다. 어깨에서는 피를 흘리며 팔과 다리가 심하게 부어있는 그의 모습에 펜리르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 이들을 도와줘서." 처음엔 그가 못미더웠다. 재밌는 검을 들고있는것 말고는 그저 현수의 짐꾼인줄 알았다. 하지만 약할지언정 그는 도망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덕에 펜리르는 그의대한 평가를, 나아가서 인간에대한 평가를 바꾸게 되었다. "야! 구경만 하지말고 도와줘!" "크흐흐흐흐흐흐. 알았어." 갑자기 웃는 그를 보고 티아는 순간 '얘가 지금 머리를 다쳤나?' 하고 생각했다. 그를 등에 태우던중 펜리르는 강렬한 마나의 움직임을 느꼈다. 그리고 티아 역시 느낄수있었다. 상처때문에 뛸수는 없기에 최대한 빨리 마을로 향했다. 그만큼 그는 불안했다. 숲에 가득차있던 마나들이 모조리 어딘가로 움직였다. 이말은 누군가가 상당한 수준의 마법을 사용했다는것인데 엘프들이 그럴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남는것은 현수인데 그가 사용했다면 아마도... '꺄악!' '살려줘!' 불타는 마을과 수많은 엘프들의 시체들이 떠올랐다. 어째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라면 왠지 그럴것같은 느낌에 펜리르는 더욱 빠른걸음으로 마을로 향했다. 수풀을 헤치며 도착한 마을은 걱정과는 달리 멀쩡해보였다.
  • 문제는 너무나도 조용했던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던것처럼 정적만이 마을을 채우고있었다. 펜리르는 엘프나 현수를 찾기위해 마을을 둘러보았지만 어느곳에서도 그들을 찾을수없었다. 그렇게 망연자실하게 서있는 그순간. "어. 왔냐?" 현수가 나타났다. 사라질때와 마찬가지로 나타날때역시 갑자기 모습을보였다. "엘프들은 어디로 간거냐!" 펜리르가 소리쳤음에도 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어디로 가긴 어딜가. 정령계로 보냈지." 그렇다면 아까 느껴졌던 마나의 움직임도 그들을 움직일때 발생한것인가? 하지만 펜리르의 의문은 금새사라졌다. 등뒤에있는 반과 엘프를 치료하는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일단 살살 내려놔." 상태가 심각한것은 엘프쪽이었지만 그는 오히려 반을 걱정하였다. "티아. 이거 니가 그런거냐?" 반의 상태를 살피던 현수가 처음으로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의 차가운 시선에 티아는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을 계속했다. "미안...내 잘못이야...도망치라고 했어야 하는건데.." 자신이 조금더 강력하게 말렸더라면, 도망치라고 더설득했더라면 하는 생각에 티아는 고개를 들지못했다. "후...이거 낫더라도 못걸을수도 있겠는데?" 그의 말에 티아는 더욱더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 사실 현수는 반이 이기지 못하더라도 그러려니 하려고했다. 옆에 펜리르도있겠다 도망이라도 치거나, 아니면 적어도 둘이서 함께 싸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않았다. 자신의 몸을 망치면서까지 무리했고 결과적으로 엘프는 구했지만 팔과 다리가 모조리 박살이났다. 정도를 모르는 반의 무모함에 현수는 짜증이 치솟았다. "이새끼는 약하면서 나대기는 왜 이리 나대는거야!" 반을 험담하자 펜리르는 이를 드러내며 현수에게 경고했다. "약하더라도 용감한 애야. 그리고 그녀를 구한것도 반이고." 그가 반을 칭찬함에도 현수는 비웃기만 할 뿐이다. 현수는 반을 내버려둔채 엘프를 살펴보았다. 겉보기에는 심각했지만 영양분만 충분히 섭취하면 건강해질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흐흐흐흐흐흐" 그녀를 살피던 현수는 심각한 문제를 한가지 발견했다. 몸속에 있어야할 영혼이 그녀에겐 없었다. 그가 웃고있는 이유는 반이 필사적으로 구한 그녀가 영혼도없는 시체라는 것이었다. 펜리르 역시 그녀가 빈 껍데기라는것을 깨닫자 반을 처다봤다. 그가 깨어나면 뭐라고 말해야할까? 그런 고민을 하고있을때 현수는 누워있는 반에게 소리쳤다. "야 니가 구한 이녀석말인데. 억울해서 어쩌냐? 이미 죽은 사람인데." 기절해있는 반이었기에 반응은 없었지만 다른이들은 분한마음에 이를갈았다.
  • "에휴...이게 뭔 고생이라냐." 현수는 품속에서 자그마한 갈색깔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를 뒤집어서 손바닥에 탈탈 털자 그안에서 나온것은 연두색으로 빛나는 작은 보석이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집어서 엘프의 입에다 넣고 물을 조금 먹였다. 그녀는 물과함께 보석을 삼켰고 현수는 반응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펜리르는 그가하는 행동을 그저 바라볼수밖에 없었다. 잠시후 그녀의 두뺨은 다시 통통하게 살이 차올랐고 팔과 다리 역시 뼈만 앙상했던 모습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영혼이 없었기에 펜리르는 소용없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러건말건 현수는 그녀를 계속 지켜봤다. 새하얗던 그녀의 머리카락이 아까 삼킨 보석처럼 연두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살며시 눈을 떴다. 그녀의 시야에 제일 먼저 보인것은 인간이었다. 그다음으로 보인것은 그녀에게 익숙한 인물이었다. "펜리르?" 그녀가 부르자 화들짝 놀란 펜리르는 현수에게 물었다. "위그누님?" 위그라고 불린 그녀는 자신의 손과 발을 살펴보더니 얼떨떨한 표정으로 펜리르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엘프의 몸에서 깨어난 모양이구나. 어찌 된 일인지 설명해다오." 그에대한 대답은 현수가 대신했다. "영혼이 빠져나간 몸에다 당신 씨앗을 먹였어." "영혼이 어쩌다가?" 그동안에 있었던 모든일들을 그녀에게 설명해주었고 그녀는 얼굴로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된거지." 위그는 쓰러진 반을 바라봤다. 그가 엘프들을 구하기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고 현수가 설명했다. 다행히 살았지만 팔과 다리는 모두 박살 났다는 것까지 말이다. 그녀는 자신을 대신해서 그들을 지켜준것이 고맙고 미안했다.
  • 위그는 무언가 결심한듯 반에게 다가가서 그를 살펴봤다. 근육은 물론이고 관절과 뼈까지 멀쩡한 곳이 없었지만 그녀는 그를 포기하지않았다. 반의 가슴에 손을 얹은채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모든 신경을 그의 팔과 다리에 집중했다. 그녀의 손에서 빠져나온 마나들이 찢어진 근육들을 다시 붙였고 조각난 뼈들은 제자리를 찾아갔다. 이마에서는 땀이 비오듯 쏟아졌고 겨우 혈색을 되찾았던 낯빛은 다시 새하얗게 질렸다. "크흡,.."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신음을 억지로 삼키면서도 치료는 멈추지않았다. 반을 치료하는 그녀의 모습을 펜리르는 넋을 잃은채 바라봤다. 누워있는 반과 그런 그를 치료하는 위그의 모습이 어디선가 본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억속에 누워있던것은 반이 아닌 엘프소녀였다. '제발...' 죽어가는 소녀를 살리기위해 위그는 자신의 모든 마나를 쏟아부었고 결국, 그녀를 살려냈다. 하지만 그녀를 살린 대가로 정령계에 묶인채 현수가 소환하기 전까지 다시는 이곳으로 오지못했다. "제발..." 서서히 떨여져가는 마나를 느끼며 위그는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부디 이소년을 고치기전에 마나가 고갈되지 않기를. 그녀의 간절한 바램이 통한것인지 반의 팔과 다리는 원래대로 돌아갔다. 말없이 지켜보던 티아는 그녀에게 감사인사를 건냈다. "고마워요." "에..엘프들의 으..은인인데 이정도야." 몇마디조차 지금 그녀에게는 버거울 정도다. 아마도 조금만 더 무리했다면 곧바로 이몸에서 빠져나와서 정령계로 돌아갔음을 그녀는 알고있었다.
  • "쓸만 하네." 그녀가 치료하는것을 지켜본 현수의 평가다. 위그를 부른것도 애초에 현수가 반을 포기할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모하고 자기 분수도 모르고 덤벼드는 반이지만 그런 그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현수는 비겁한 겁쟁이보다 무모한 바보들을 더 좋아했다. "이제 걸을수 있는거야? 괜찮은 거지? 진짜지?" 어찌나 걱정이됬는지 티아는 치료가 끝났음에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꼭 쥐자 두려움은 사라지고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티아? 그것보다 그녀석은?! 우리가 이긴거야?" 두리번 거리는 반의 시야에 위그가 들어왔고 서로 눈이 마주쳤다. "어? 당신은..." 분위기와 머리색이 변했지만 분명히 그녀였다. "고맙구나. 저들을 구해줘서." 갑자기 다가와서 고개를 숙이는 그녀를보고 반은 당황하며 그녀를 말렸다. 한참을 숙이고나서야 고개를 위그는 고개를 들어주었다. "슬슬 정리는 끝났고. 어쩔 생각이지?" 현수가 묻자 펜리르는 정령계로 돌아가 엘프들을 지켜보겠다고했다. 반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한뒤 현수가 그랬듯이 사라졌다. "그럼 너는?" 그가 떠나고 남아있는 위그에게 물었다. "나는..."
  • 위그는 그동안 갇혀있던 정령계로는 돌아가기 싫었다. 그렇다고 이곳에 혼자 남겨지는것은 더더욱 싫었고. 마음같아서는 저들을 따라가고 싶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녀에게 현수가 살며시 물었다. "혹시 말야. 갈데가 없는거냐?" 속으로 뜨끔했지만 그녀는 애써 태연한 척을 했다. "따..딱히 그런건 아니다! 그저..." 말끝을 흐리며 그저 말없이 반을 바라봤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반은 그것을 알아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에게 물었다. "저희랑 같이 가실래요?" "아 아. 은인이 부탁한다면야 어쩔수 없지." 어설픈 그녀의 연기에도 현수와 반은 그냥 넘어가 주었다. 그렇게 엘프들을 구하고 근처의 마을로 돌아가는 마차안에서 위그는 현수에게 물었다. "그런데 내 씨앗은 어떻게 얻은거지? 남한테 준 기억은 없는데 말이지." "비밀이다." 그가 대답할 마음이 없어보임에도 그녀는 질문을 계속했다. "그럼 저소년은? 무슨 목적으로 데리고 다니는거지? 혹시 나쁜..." "네가 생각하는 짓은 안 할 거야."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마지막 질문으로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이다. 너는 도대체 뭐지?" 함축적인 질문임에도 현수는 그녀가 어째서 그런질문을 한것인지 어렴풋이 눈치챘다. "너한테서 느껴지는 기운만 본다면 내가 여태껏 만난 어느 누구보다도 악하다. 그런데도 너는 반을 시켜서 엘프들을 구했어. 어째서지?" 그녀는 사람들의 성질을 꿰뚫어 볼수있었다. 그리고현수의 성질은 악이었다. 단순한 악이아닌 사악 그자체로 그의 모습을 보지못했다면 인간이 아닌줄 알았을 정도다. "첫째, 내가 시킨적없어. 전부 지가 나선거지. 그리고 둘째, 나는 니가 생각하는만큼 나쁜놈은 아니야." 위그는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동안 그를 지켜보기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수도로 가기위해 로던이라는 도시로 향했는데 어째서 그곳으로 가냐는 반의 질문에 현수는 별다른 이유는 없다고했다. "그냥. 볼일도 조금있고 거기 술맛이 기가 막히거든." 그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랜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로던은 쉴새없이 길을 오가는 마차들로인해 정신이 없었다. 현수는 이곳이 수도로 향하는 길목에 있기때문에 엄청 붐비는것이라고 설명했다. "자. 이거 받아라." 현수는 반에게 작은 주머니를 하나 던져주었다. 짤랑거리는 소리를 듣고 반은 그것이 동전주머니임을 알수있었다. 어째서 그가 자신에게 돈을 주는것인지 의문이 들자마자 현수는 답해주었다. "잠깐 볼일좀 보고올게. 셋이서 놀고있어." 그가 떠나고 주머니를 열어본 반은 깜짝 놀랐다. "도대체 형님은 정체가 뭘까?" 주머니속에는 작은 금화가 두둑하게 들어있었다. 그의 정체를 고민하던 반은 이내 놀러다닐 생각에 싱글벙글 웃음이 절로나왔다.
  • "위그씨 어디로 갈까요?" 그녀는 현수의 볼일이라는 말이 상당히 신경쓰였지만 들떠있는 반의 모습에 하는수없이 포기했다. "음...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니?" 꼬르륵. 대답대신에 반의 배가 요란한 소리를냈다. "밥부터 먹자." 반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있는 적당한 식당을 골라서 들어갔는데 안은 사람들로 붐비고있었다. 테이블에 앉아서 종업원을 기다리는동안 위그는 주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현수가 말한 볼일에 관한것을 알아내기 위해서였지만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위그씨? 듣고 계세요?" "..." 깊은 생각에 잠긴 그녀는 내버려두고 반은 메뉴를 살피기 시작했다. 갖가지 먹음직스런 음식들이 식욕을 자극시켰는데 종업원을 부르려는 반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이야~ 도련님이 돈 좀있으신가봐?" 비아냥거리는 그의 말투부터 험악하게 생긴 얼굴까지 한눈에봐도 좋은사람은 아님을 알수있었다. 그는 히죽거리며 반의 옆에 앉아있는 위그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서 귀부분에 시선이 멈추었다. "엘프잖아? 저 귀한걸 어디서 얻으셨을까? 요즘에는 물량이 없어서 돈주고도 못구하는데." "뭐라고요?!" 마치 위그를 물건처럼 여기는 그에게 반은 화가 난 나머지 소리쳤지만 그는 실실웃으며 장난이라며 눈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진정하쇼. 그냥 엘프들 잘 아는 노예상있으면 소개해달라고 한말이니까." 그러면서 그는 소매를 걷어서 자신의 팔뚝을 보여주었는데 그곳에는 선명한 검은색의 초승달 문신이 새겨져있었다. "이곳 로던의 부지부장, 데미안이요. 뭐든 필요한게 있으면 말만하쇼." 예상치못한 검은달 간부의 등장에 반은 순간적으로 숨이 멎을듯했으나 위그는 태연하게 그에게 물었다. "우리 동족들도 있는가?" 갑자기 엘프노예가 자신한테 말을걸자 짜증이 났으나 눈앞에있는 도련님의 취향이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옛날만큼은 없지만 있기는 있지. 왜? 남편감이라도 찾는거냐? 크크크 관둬라, 그것들 어차피 정신이 망가져서 말도 못할껄?" 더이상 참지못하겠는지 반은 티아를 쥐려고 했으나 위그의 손이 반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반에게 살며시 귓속말을 했다 '저기로 가자. 동족들을 구해야겠어.' 그녀의 말에 화들짝 놀랐지만 이내 마음을 굳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엘프들말인데 구경좀 해도 괜찮을까요?" 데미안은 속으로 땡잡았구나 하고 생각하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요. 언제쯤 가시게?" "지금 당장."
  • 데미안은 반에게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잠시후 그의 손에는 천으로 만들어진 무언가가 들려있었는데 받아서 살펴보니 그것은 망토였다. "왠만하면 얼굴가리는게 나을껍니다. 워낙 험한것들이 많아서." 망토를 뒤집어쓴 채 그를 따라서 골목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밝고 깨끗했던 길과는 달리 더럽고 음침한 분위기의 골목에는 위그와 반처럼 자신의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던 데미안이 멈춰섰다. 지하로 통하는 계단과 그앞에 덩치가 커다란 경비 2명이 서있었다. "나다. 손님 오셨다." 그의 말에 그들은 옆으로 비켜섰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희미한 비명소리가 들려왔지만 위그말고는 들을수없었다. 그녀는 내려갈수록 더욱 커지는 끔찍한 소리에 머리가 아플지경이었다. 데미안은 자신의 업무실이라며 작지만 호화로운 방으로 안내했다. 그는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잠시만 기디리쇼. 선객이 온 모양이요." 잠시후,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데미안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를 따라서 도착한곳은 끔찍했다. 수많은 이들이 쇠사슬에 손과 발이 묶여서 철창속에 갇혀있었다. 몸은 비쩍 말라있었고 그들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뭐가 그리도 신이난것인지 데미안은 웃고있었다. "흐흐흐. 안타깝지만 너희들 보러온게 아니란다." 데미안이 아까 자신의 문을 두드렸던이에게 손짓을 하자 그는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누군가를 끌고왔다. 엘프들이었다. 그들도 철창안에있던 사람들처럼 뼈만 앙상한 상태로 끌려왔다. 그들을 보는순간 위그는 분노가 차올랐다. 금방이라도 폭발할듯한 그녀를 말린것은 뜻밖의 인물이었다. "너희들 여기서 뭐하냐?" 현수가 뚱뚱한 누군가와 걸어오면서 물었다. 현수와 그의 옆에있던 이를 알아차린 데미안이 그에게 인사를 올렸다. "지부장님, 손님맞이하고 계셨습니까?" 그런데 그를 알아본 사람은 데미안뿐만이 아니었다. "다..당신은.." 현수의 옆에있던 그도 반을 알아보고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반...맞느냐? 어디갔던게냐." 걱정하는듯한 그의 표정과는 달리 반의 표정은 악몽이라도 꾸는듯했다. "당신이 어째서..." 현수는 자신의 옆에있는 그에게 물었다. "누군데 반이 저래요?" 그의 대답은 현수마저 놀라게 만들었다. "반의 아버지입니다."
  • 빅토르는 원래 별볼일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던중 어떤일을 계기로 그는 검은달 간부의 눈에 띄었고 로던의 지부장이라는 자리에 오를수있었다. 그리고 그일때문에 반은 자신의 집을 뛰쳐나왔다. "왜...당신이 여기있는거지..?" 믿을수없다는 반의 얼굴에 빅토르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지만 반은 뒷걸음질치며 빅토르에게서 떨어졌다. "잠시만. 반 이리와봐." 현수는 잠시 반을 불러내 상황을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반은 한숨을 깊게 쉬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한테는 2살많은 누나가 있었어요. 이름은 사라, 주근깨와 주황색 머릿결이 예뻤었죠. 하지만 어느날 놀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누나가 울고있더라구요." 반은 눈을 질끈감고 주먹을 쥔채 부르르 떨었다. "물어보니까 아버지가 자기 친구라면서 누나를.." 현수는 더이상 말하지말라며 그를 말렸지만 반은 괜찮다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아버지 친구들중에는 저를 원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그날, 누나는 한밤중에 저에게 도망치라고 말했어요. 자기가 시선을 끌고있을테니까 어서 빨리 도망치라고 등을 떠밀었죠. 저는 겁쟁이처럼 도망쳤어요. 정신없이 도망치다보니 어느새 스승님을 만나고 새까맣게 잊어버렸죠." 그동안 잊어버렸던 그녀에 대한 기억들이 떠오르자 반은 자기자신을 증오했다. 어떻게 그녀를 버리고 혼자서 행복한거지?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있다면 목숨이 위험해도 신경쓰지 않았다. 반의 이야기를들은 현수는 결심을 했다. "좋았어. 박살내자." "네?" 갑자기 무엇을 박살내자는 것인지 이해할수 없었던 반은 그에게 되물었다. "뭘요?" 그는 손가락으로 땅을 가르키며 말했다. "여기. 검은달 로던 지부."
  • 반은 지금 그가 장난이라도 치는줄알았다. 아무리 그라고한들 이곳에서 검은달을 상대하는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진지한 그의 표정을 보고 걱정할수밖에 없었다. "일단 나가있어." 현수는 위그를 불러서 반을 맡긴뒤에 자신이 부르기전까지는 들어오지말라고 당부했다. 그들이 나가고 현수는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네스토. 들리나?" 그의 부름에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검은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2미터는 가뿐히 넘는 거대한 체구와 불타오르는 듯한 붉은 두눈은 먹잇감을 찾는 짐승의 그것이었다. 그것은 곧바로 무릎을 꿇어 현수에게 예를갖췄다. "부르셨습니까." 현수는 네스토에게 손가락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리 그었다. "위층부터 팔목에 달모양 문신있는것들은 다죽여. 그중에 뚱뚱한놈 하나는 빼고." 그의 명령에 네스토는 고개를 끄덕인 뒤에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네스토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반을향해 조용히 물었다. "자, 어쩔 셈이냐."
  • 한스는 귀족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나 남부러울것없이 자랐다. 누구든지 자신의 밑에서 살살 기면서 비위를 맞추고 별볼일없는 그의 외모에도 여자들은 서로 아양을 떨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최근들어서 생긴 취미가 하나 있었다. "흐흐흐. 나왔어 자기~" 그의 징그러운 목소리에 철창안에 갇혀있던 리사는 또 다시 악몽이 시작됐음을 알 수 있었다. 철창으로 들어가기전 한스는 벽에 걸려있는 여러가지 도구중기다란 짐승용 채찍을 들고서 그녀를 바라봤다. "오늘은 이걸로 해볼까?" 리사는 그저 끔찍한 고통이 빨리 끝나기를 간절히 바랄뿐이었다. 처음에는 그녀도 누구던간에 이곳에서 자신을 구해주기를 바랬지만 점점 몸과 마음이 지쳐갔고 이제는 포기했다. 있는 힘껏 휘두른 채찍이 그녀의 등에 맞는 순간 "....!!!" 시야가 새하얗게 변하면서 비명대신 바람빠지는 소리만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막상 고통이 느껴지자 그녀는 정말로 누구던지 이지옥같은 처지를 벗어나게만 해준다면 영혼이라도 주겠다며 기도했다. '제발...아무나 도와줘...' "야. 그러면 재밌냐?" 그녀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서 갑자기 나타난 그를 처다봤다. 철창의 문앞에 서서 얼굴을 찡그린채 한스를 바라보고있는 그는 현수였다.
  • "응? 재밌어?" 현수의 물음에 한스는 그를 위에서 아래로 스윽 훑어봤는데 이곳에서 일하는 검은달의 조직원같지는 않았다. 보나마나 노예상이 자신이 누군지 모르고 함부로 지껄인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천한놈이 감히?! 내가 누군지 알아! 바로 한스.." 서걱. 무엇인가 잘리는 소리와 함께 채찍을 쥐고있던 그의 왼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한스는 멍하니 자신의 팔을 내려다봤고 그제서야 고통이 느껴졌다. "끄아아아아아악!!! 내 팔이!!!" 한스가 피가 뿜어져나오는 팔을 부여잡고 바닥을 뒹구는 사이 현수는 리사에게 다가갔다. 현수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작은 알약하나를 그녀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이걸 먹으면 조금 괜찮아질꺼야." 보통 사람이라면 갑자기 나타나서 사람의 팔을 잘라버린 남자의 말을 믿지않겠지만 지금 그녀에게 그런것은 중요치않았다. "....하아아아!" 그녀는 알약을 삼키자마자 자신의 몸에서 오랜만에 느껴지는 활기에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현수는 리사의 손과 발에 묶여있는 쇠사슬을 끊어버린뒤에 아직은 서있기 힘들어하는 그녀를 부축했다. 바닥을 기면서 날뛰던 한스는 핏발이 선 눈으로 둘을 노려봤다. "감히이이!!!! 밖에 아무도 없느냐아아!!!" 하지만 돌아온것은 쥐죽은듯한 정적이었다. 누구도 자신을 구하러 오지않자 한스는 그제서야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ㄴ...네놈!! 누군데 내 팔을... 그년이랑 아는사이 인게냐?! 데려가라! 데려가도 좋으니 제발..." 그런 그를 내버려둔채 현수는 리사에게 속삭였다. "두가지 선택권을 줄게. 하나, 그냥 이대로 나가서 전처럼 평범하게 산다." 현수는 언제꺼냈는지 손에 단검 한자루를 쥐고있었는데 그것을 리사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둘, 이녀석을 죽이고 나를 위해서 일한다." 리사는 단검과 한스를 번갈아가면서 쳐다보더니 현수에게 물었다. "당신의 노예가 된다는 뜻인가요?" 그녀의 물음에 현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노예보다는 낫다고 생각해." "그럼 할게요." 이나라에서 사람을 노예로 부리고 거래하는것은 엄연한 불법이지만 검은달의 영향력아래에 모두가 알면서도 눈감아 주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대로 이곳을 벗어난다고 한들 그녀의 빚과 노예라는 신분은 사라지지 않을것이고, 그말은 다시 붙잡혀 노예가 된다는 의미였다. 그럴빠엔 차라리 현수의 제안을 받아들이는것이 나았다. "자..잠깐만! 진정해라 리사! 내가 그동안 잘못했다!" 머리를 땅에다 박으면서 빌고있는 그를 리사는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봤다. "죽어." 그녀의 단검이 한스의 등을 꿰뚫고 폐에 박히자 그는 바닥을 기면서 서서히 죽어갔다. 그동안 당한게 있었기에 죄책감이나 살인을 저질렀다는 두려움따윈 없었다.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현수에게 자신에게 시킬일이 뭐냐고 물었다. "이걸 살아있는 애들한테 하나씩 줘." 아까 자신이 먹었던 약주머니를 건내는 현수에게 한가지 의아한것을 물었다. "살아있다는게 무슨 뜻이죠?" 대답대신에 현수는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했고 잠시뒤 그녀는 살아있다는 의미를 알수있었다.
  • 그를 따라 올라온 윗층에서 살아있는 존재는 리사와 현수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어디로 시선을 돌려도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고 특징이라면 하나같이 끔찍하게 망가진 모습이었다. -10분전 "흐흐흐흐. 오랜만에 돈좀 만지겠구만." 데미안은 자신의 방에서 곧있으면 들어올 돈을 생각하며 미소짓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와 행복한 상상을 하고있던 그를 방해했다. 데미안은 방해를 받은것이 짜증이 났지만 뛰어들어온이의 상태가 심상치 않자 무슨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무슨일이야! 왜 그리 급하게..." "괴..괴물이! 괴물이 쳐들어왔습니다!" 어찌나 다급한지 그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쉴새없이 말을 계속했다. "지금...헉헉..경비들이 막고는 있는데...얼마 못버팁니다! 어서 도망치십쇼!" 갑자기 괴물타령을 하고있는 자신의 부하에게 데미안은 뺨을 후려갈겼다. 짜악 하는 소리가 울릴정도로 강하게 때렸음에도 그의 부하는 아직도 헛소리를 계속했다. "이럴때가 아니라고요! 어서" 그는 자신의 말을 끝맺지 못했다. 쿵 쿵 쿵. 육중한 무언가가 땅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얼굴이 새하얘지면서 자포자기한 얼굴로 주저앉았다. "아...늦었어...늦었다고!!!!" 머리를 감싸면서 절규하는 그를 보자 데미안은 무슨일인지 싶었다. 멀쩡하던 그를 도대체 무엇이 이렇게 망가트렸단 말인가? 데미안은 쿵쿵거리는 소리가 원인이라고 생각을 하고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소리는 커져갔고 익숙한 어떤 냄새 또한 점점 진해졌다. 수없이 많은 악행을 저지른 그가 피 냄새를 착각할리는 없었고 곧바로 허리춤에 꽂혀있던 검을 뽑아서 자세를 잡았다. 빅토르와는 달리 데미안이 부지부장이 된 것은 그의 실력이 출중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하급이기는 하나 그는 왕실 기사단의 칭호를 얻었던 실력있는 검사였다. 하지만 데미안은 이것을 악용해 온갖 범죄를 저질렀고 결국에는 붙잡혔다. 그렇게 감옥에 갇혀서 처형당할날만을 기다리던 그에게 그들이 제안했다. '너를 여기서 꺼내줄테니 우리에게 충성을 맹세해라' 데미안으로써는 손해볼게 없는 제안이었으니 당연히 받아들였고 얼마 안가서 지금의 자리에 오를수있었다. 하나둘 시체들이 보이고 냄새가 완전히 짙어질 즈음 데미안은 자신의 부하가 말했던 괴물을 볼 수 있었다. 경비원중 한명이 검을 뽑아서 대치하고있는 상황인지라 데미안은 협공을 시도하려고 했으나 그것이 최악의 선택인것을 깨달았다. 네스토는 앞에서 자신과 대치하고있는 그는 물론이고 건물 전체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을 느끼고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뒤에있는 데미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소라면 인간들의 전투방식을 경험할겸 그들이 공격하기를 기다렸을테지만 자신의 주인인 현수를 기다리게 할수는 없었다. 본인에겐 그저 평범한 발차기 겠지만 인간의 기준에서는 피할수도, 반응할수도, 볼수조차없는 수준이었다. 그의 발이 검과 닿자마자 산산조각으로 박살이 나버렸고 그대로 날아가서 경비의 머리를 수박이 터지듯이 박살을 내버렸다.
  • -늦어서 미안!! 그제서야 데미안은 자신이 크게 착각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네스토는 그를 얌전히 보내줄 생각이 없었기에 도망치는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자신에게 걸어오는 괴물을 보자 데미안은 그제서야 아까 부하가 어째서 그런 모습을 보였는지 이해가갔다. 아무리 도망친다고 한들 쫓아오는 괴물을 피할수는 없었던 것이다. 네스토가 휘두른 주먹에 데미안의 몸이 찢겨나갔고 네스토는 이제 다음층으로 올라가 나머지 인간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리사는 살아있는 노예들에게 자신이 먹었던 알약을 하나하나 나눠주면서 현수에게 어째서 자신들을 돕는것인지 물었다. "왜죠? 검은달과 싸우면서까지 저희를 구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그녀의 물음에 현수는 그저 한마디로 답했다. "변수" 리사는 이해하지 못한채 그저 현수가 착하지만 겁없는 사람이구나 하고 넘어갔다. 그가 말한 변수는 반의 아버지를 뜻했는데 사실 현수는 그녀들은 물론이고 검은달을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노예들을 구입해서 검은달과 친분을 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계획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했는데 바로 반의 아버지였다. 그의 사연을 듣고나서도 자신이 이들과 친분을 유지한다면 반은 반드시 자신을 돌아설게 분명했다, 위그 또한 가만있지는 않을테고. 그래서 귀찮더라도 이곳을 싸그리 박살내는게 낫다고 판단한것이다. '주인님. 정리가 끝났습니다. 그쪽으로 끌고 가겠습니다.' 잠시후, 네스토의 손에 빅토르가 도살장의 돼지마냥 걸려있는채로 끌려왔는데 그의 얼굴이 공포로 하얗게 질려있었다. "현수님! 이..이게 무슨 짓입니까?!?!" 조금 전까지만해도 노예를 사간다며 친근하게 굴던 현수의 태도가 180도로 달라졌다. "미안합니다. 그냥 운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현수는 반을 불러서 둘만 남기고 모두 나가라고했다. 둘이 남게되자 빅토르는 벌벌 떨면서 반에게 빌었다. "반아 살려다오! 저인간이.." 하지만 반이 티아를 뽑아서 자신을 겨누자 그는 입을 다물었다. "우리 누나 어떻게 했어요." 사라에 대해서 묻자 빅토르는 시선을 피하며 대답하기를 주저했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반은 티아를 목에 가져다 댔다. 자신의 목에서 피가 흐르자 그제서야 대답을 시작했다. "ㄴ..네가 집을 나가고 조..좋은곳으로 시집 보냈다. 오해하지 말거라! 사라가 원해서 간것이다! 정말이다!!!" 다급하게 외치는 자신을 바라보던 반이 검을 거두자빅토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이곳을 빠져나갈 궁리를하기 시작했다. "누나가 무사해야 할겁니다." 반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일 줄 알았던 현수는 들어와서 빅토르가 멀쩡한것을 보고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사실은 반이 죽이지 않으리라는것을 알고있었다. "살아있었네요? 이야기가 잘 마무리됐나 봐요?" 현수가 비아냥거려도 빅토르는 그저 꾹 참을수 밖에 없었다. 그를 따르는 그괴물을 언제 불러낼지 모르니까. "현수님 한번만 살려주십쇼..." 그가 바닥에 머리를 박으면서 빌자 현수는 손사래를 치면서 말렸다. "에헤이 참... 일어나요 누가 죽인답니까? 가봐요." 놀랍게도 현수가 자신을 그냥 보내주는것이었다. 빅토르가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자 현수는 리사를 시켜서 배웅하고 나서야 그는 현수의 말을 믿었다. 계단을 올라 정문을 빠져나간뒤에 골목길을 걷던 리사가 그에게 물었다. "아저씨는 자기전에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그게 무슨 소리지?" 그순간 빅토르는 자신의 배에 뜨거운것이 깊숙이 박히는 느낌에 아래를 내려다보자 그곳에는 살을 뚫고 박혀있는 단검 한자루와 그단검을 쥐고있는 그녀의 하얀 손이 보였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잡으려했지만 리사는 그렇게 두지 않았다. 재빨리 뽑아서 한번, 두번 그가 싸늘한 시체로 변할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헉...헉..헉..." 리사는 숨을 고른뒤에 그자리를 떠났고 남은것은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있는 이름모를 누군가의 시체였다.
  • 다시 돌아온 리사는 현수의 옆에 누군가가 서있는 것을 보았고 그녀 역시 리사가 온 것을 알아차렸다. "니가 리사구나? 반가워~" 굉장히 아름다운 외모였지만 리사는 그녀가 인간이 아니라는것을 한눈에 알수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피부색이 보라색을 띄고있었기 때문이다. "이쪽은 실라, 앞으로 스승으로 모셔야할꺼다." 현수의 설명이 끝나자 실라는 리사에게 다가가서 그 녀의 몸 이곳저곳을 살펴보면서 점수를 매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온 종합적인 결과는 이러했다. "너무 평범해 주인. 차라리 시녀로 쓰자, 응?" 리사는 뛰어난 신체능력도, 엄청난 마력도 없는 그저 평범한 소녀다. 그녀의 기준에서 보자면 형편없는 수준인 게 당연했다. "잔말 말고 시키는 데로 해라." 그녀가 주인에게 불평을 하자 네스토는 불쾌한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네가 뭘 알기나 해? 짐승 같은 놈이." 실라 역시 가만있지는 않았고 둘 사이에선 스멀스멀 살기마저 흘러나왔다. 그런 둘의 모습에 현수는 한숨을 쉬더니 둘의 이름을 불렀다. "네스토, 실라." 그제서야 자신들이 주인 앞에서 추태를 보였음을 깨닫고 무릎까지 꿇어가며 용서를 빌었다. "제..제발...인스만큼은.." 특히 실라는 몸을 벌벌 떨면서 패닉에 빠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지만 다행히도 그녀가 걱정하던 일은 없었다. "휴...됐다. 리사랑 애들 데리고 돌아가라." 그렇게 네스토와 실라, 그리고 노예들이 사라진 그곳에는 시체만이 존재했다. 현수가 건물을 무사히 빠져나오자 반은 그가 정말로 해냈다는 사실에 감탄을 했고 위그는 그에게 할말이 있어보였다. "형님은 도대체 정체가 뭐죠???" "말하면 믿을 수 있겠냐? 빨리 가자." 반은 따라왔지만 위그는 그자리에 가만히 서있자 현수는 그녀가 자신에게 할말이 있다는것을 알아차렸다. "왜? 할말이라도 있냐?" "노예들도 죽였나." 조금 전만 해도 느껴지던 엘프들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자 위그는 현수가 그들을 죽였다고 생각했다. "그게 사실이에요 형님? 정말로 그사람들을 죽이신건가요?" "하아..." 현수가 반과 위그에게 네스토를 비롯한 몇몇의 존재들을 보여주지 않은것은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부터가 빈말로도 좋다고 할수없었기 때문이다. "네스토, 실라." 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숨길수 없었기에 우선은 둘을 불러냈다 "어!" "이게 무슨.."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네스토와 실라가 나타나자 반은 물론이고 위그마저 놀란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것도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둘의 모습이 마치 악마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어두운 색의 피부와 붉게 빛나는 눈동자는 수없이 들어온 이야기 속의 모습과너무도 비슷했다. "혀...형님? 이게 무슨 일이죠?" "악마를 소환하다니.. 제정신인가?" 위그는 그에게 다가가려는 반을 말리며 몸속에 남아있는 마나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2대1 이라는 불리한 상황이지만 그녀는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기회에 현수에게서 반을 떼어낼 생각을 하고있었다. "그래서 반을 데리고 다닌거군. 악마를 소환하기 위한 제물로 말이야." 단단히 오해를 하고있는 그녀를 실득한것은 현수도 아니고 네스토와 실라도 아닌 반이었다. "제물이라뇨?! 그럴거면 뭐하러 저를 구했겠어요? 그리고 엘프들은요? 진정좀 하세요!" "그..그건.." 반이 격렬하게 현수의 편을 들어주자 위그는 주눅이 들었고 이틈을 놓지지않은 현수는 그녀에게 설명할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좋아. 하지만 거짓말이거나 반이 위험하다고 생각된다면.." 위그는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현수에게 경고했다. "좋아. 대신에 오해는 하지말고 끝까지 들어줘." 현수가 네스토에게 그것을 보여주라고 하자 그는 입고있던 윗옷을 벗고 자신의 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기괴한 문양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었다. 반에게는 생소했지만 위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건...흑마법? 그것도 강령술이라니...이자는 도대체 정체가 뭐지?" "죽은 제 몸을 주인님께서 되살리셨습니다." 위그는 그제서야 그와 그녀의 모습이 어째서 그런것인지 이해했다. 한번 죽은이를 살려내는데 원래 모습 그대로 살려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 "당신들도 동의한건가? 설마 멋대로 살려낸건 아니겠지?" 그녀의 물음에 네스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주인님은 죽은 저희들에게 제안을 하셨고 제안을 받아들인 이들만 살려내셨습니다." 위그가 실라를 바라보자 그녀도 동의했다. "네 맞아요. 주인님은 저희를 필요로하셨고 저희들은 생전에 이루지못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죠." 즉, 그들과 현수는 일종의 거래를 했고 그대가로 죽은 자신들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더 궁금한게 남았냐?" 그때 반이 손을 들었다. "저요! 왜 이분들이 필요하신거죠?" 그의 질문에 현수는 이렇게 답했다. "심부름시키려고. 내가 하긴 귀찮아서 말이야."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암살, 거점 파괴, 납치, 고문 등등 본인이 나서서 하기에는 너무도 귀찮았기에 각 분야별로 담당 인원을 1,2명씩 뽑았고 그들중 거점 파괴와 암살을 맡고있는게 각각 네스토와 실라였다. 위그는 못믿는 눈치였으나 순진한 반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다. "네스토, 실라." 그의 부름에 둘은 무릎을 꿇으면서 답했다. ""예"" "저둘을 나보다 우선으로 지키라고 모두에게 전해. 그리고 나와 동급으로 대하도록. 만일 지키지 않는 놈이 보인다면 인스가 아니라 내가 직접 조져준다고 확실히 말해라." "...!" 둘은 마지막 부분을 듣고 흠칫 놀랬다. 거구의 네스토조차 안색이 좋지 않았는데 실라는 오죽했을까? 돌아가라는 현수의 명에 둘은 도망치듯이 사라졌다. "쯧쯧쯧... 맞을 짓을 안 하면 그만인데 매부터 걱정하기는. 뭐 아무튼 쟤들처럼 데려가서 심부름 시킬꺼니까 걱정들 하지말고." 그때 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분들이 한다고 하던가요? 아 물론 형님이 억지로 시키지는 않았겠지만 혹시나..." 반의 물음에 현수는 서운한 표정으로 섭섭하다는듯 말했다. "야 넌 내가 그런 양아치로 보이냐?" 위그와 반은 잠시 눈을 마주치더니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은 안하겠다." "쪼오오금... 불량스럽죠." 현수는 그들의 말에 이번엔 정말로 상처를 받았다. "너희들..." 축 처진 그의 어깨를 보고 반은 팔꿈치로 위그를 툭툭 건드리면서 눈짓으로 말했다. '빨리 뭐라도 말해봐요!' '내가?!' "흠흠.. 그런데 아까 네스토라고 했던가? 그의 몸에 새겨진 그마법진말인데 보통 실력이 아니던데 역시 사령술사였나?" 스스로 정확했다고 뿌듯하게 생각하고있는 위그에게 현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이 당황스러워서 짓는 표정으로 착각했다. "후후.. 역시 아직 눈썰미가 날카롭군. 숨기려면 좀더 제대로 숨기지 그랬나?" 딱. 보다못한 현수는 그녀에게 딱밤을 때렸다. "으으..이게 무슨짓이냐!" "개소리에는 매가 약, 그리고 난 사령술사가 아니야." 이마를 문지르던 그녀는 아픈것도 잊을정도로 두눈이 커지며 놀랐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럼 어떻게 그정도 수준의 주문을 사용한거지? 그리고 너한테서 느껴지는 악한 기운은 흑마법의 영향아닌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현수는 또 다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정도 주문은 연습만 하면 반도 할수있어. 그리고 흑마법이 악하다는건 사람들의 착각이다. 애초에 흑마법이라고 불리는거부터 그렇지." 설명을 하는 도중에 현수는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서 모두에게 보여줬다. "마나가 동전이라면 마법은 가게에있는 물건들이야. 쓴만큼 돌아오는게 커지지. 그런데 물건은 샀는데 너한테 돈이 없으면?" 곰곰이 생각해보던 반은 조심스럽게 답했다. "일을해서 갚아야죠?.." "그렇지, 몸으로 때워야지. 흑마법도 비슷한 이치야. 지불할 마나가 부족하니 생명력이나 영혼, 아니면 사람 그자체를 대가로해서 마법을 쓰는거지. 그럼 어째서 사람들이 흑마법은 나쁘다고 생각하는거지?" 이번엔 위그가 답했다. "그거야 대부분의 흑마법들이 악마나 사령술, 사람의 목숨과 연관이 돼서 그런 게 아닌가?" "그게 착각이라는거다. 원래 흑마법은 성기사들이 부족한 마나대신에 자신들의 강인한 생명력으로 마법을 사용하는거였어."
  • "그러다 자기를 흑마법사다 뭐다 하는 미친놈이 사건을 일으키면서 인식이 나빠졌고 정신나간 놈들이 연구하면서 지금의 흑마법이 완성된거지." 이 사건은 위그는 물론이고 반마저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였다. "유명한 데일의 흑마법사 이야기 말이죠? 그거 그냥 누가 지어낸 거 아닌가요?" 반의 물음에 현수는 고개를 저었다. "워낙 오래전 일이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니 그렇게들 생각하지, 하지만 전부 사실이야." 둘은 그저 흑마법이 위험하다는것을 알리기 위해서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인줄 알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야기속의 모든게 사실이라고 현수가 말했다. "근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반 역시도 그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참이었다. "내가 역사에 관심이 많거든. 아무튼 난 흑마법을 써도 나쁜사람이 아니고 악마 추종자는 더더욱 아니야, 알겠지?" 위그는 그가 반에게 지금은 위협이 되지않는다고 판단을 내렸고 현수는 잠시 눈을 붙이려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반의 시선때문에 도저히 잘수가 없었다. "왜? 또 할말있냐?" 그가 자는 줄 알았던 반은 화들짝 놀랐고 머뭇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그..형님은 두렵지 않으세요?" 뜬금없는 반의 질문에 현수는 무슨 의미인지 다시 물었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사람을...죽이는 거 말이에요." 예상치 못한 반의 대답에 현수는 감았던 눈을 다시 떴고 위그는 눈을 감은채 자는척하며 조용히 둘의 대화를 들었다. "아버지를 보자마자 화가 치밀었어요. 그래요, 죽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죠. 하지만 막상 티아를 겨누자 두려웠어요.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는 상대도 막상 죽이려니 두려운데 어떻게 하면..." "이 바보야!!" 지금껏 조용하던 티아가 입을 열었다. "티아?" "검을 쓰는 인간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게 뭔지 알아? 사람을 죽이고 더이상 두려움을 못느끼는거야. 그러니 괜한 걱정하지마 바보야." 화가나서 씩씩거리던 티아는 '헛소리 하지말고 잠이나 자!' 라며 조용해졌고 현수는 묵묵히 듣고 있다가 그녀의 말이 끝나자 반의 머리를 헝클어질 정도로 거칠게 쓰다듬었다. "혀..형님?!" 갑작스런 현수의 행동에 당황한 반이었지만 현수는 그가 자랑스러웠다. "반, 내말 잘 들어라. 증오하는 상대를 죽이는 것보다 증오하는 상대를 죽이지 않는게 훨씬 힘들고 어려운 일이야." 현수는 반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진지하게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게 네 장점이지. 뭐 단점일수도 있지만 그건 네가 강해지면 그만이니까. 아무튼 걱정하지마. 사람을 막 죽이는 놈들은 오래못살거든." 만족할만한 답을 얻은 반은 금세 잠이들었다. 잠들어있는 반을 바라보면서 현수는 앞으로 그를 어떤식으로 성장시킬지 생각했다. '제대로된 검술을 가르칠 사람이...' 곰곰히 생각해보던 현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없구나.." 그의 부하중에서 검을 사용하는 이가 없는것은 아니었다. 다만 반에게 가르칠만한 검술이 없었던 것이다. 군에 보내면 검술은 익히겠지만 딱 일반 병사수준으로 성장할게 뻔했다. 그렇게 된다면 반은 하루도 못버티고 남을 돕다가 죽을것이다. 그래서 현수는 생각했다. '사람을 죽이지않고 제압하면서 검을 잘쓰는 사람이라면...' 그의 머릿속에서 한사람이 떠올랐다. '자신의 신념때문에 검을 포기하려는 이들이 있다면 내게 데려와라. 내가 직접 가르치지.' 그녀라면 분명히 반을 잘 가르칠것이 분명했기에 현수는 드디어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 "다시 말해봐. 뭐가 어째?" 그의 물음에 엎드려있던 이들중 하나가 답했다. "로던지부가 습격을 당했습니다. 노예들은 사라졌고 지키고있던 간부들은 한명을 제외하고 전부 죽어있었습니다."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중 상석에 앉은 남자가 갑자기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흐흐흐흐하하하하하하하하! 아주 재밌어. 오랜만에 나타난 적이구만! 그래서 어떤 놈들이냐? 제노바? 익슬림? 그것도 아니면 던이냐?" "언제 적 조직들이냐? 그리고 제노바랑 익슬림은 우리가 10년 전에 없애버렸는데 잊은 거냐? 머리속에도 근육밖에 없나보군." 그의 앞에 있던 남자가 핀잔을주자 다른 이들은 큭큭 거리며 웃으을 참으려 애썼다. "크흠... 그럼 남은건 던이군?" 하지만 그의 말에 반박하는 이가 있었다. "아뇨. 던은 얼마전에 보스가 바뀌면서 재정비 중이랍니다. 우리를 공격하지는 못할텐데요?" "그럼 도대체 누구지? 어이 말해라. 누가 우리를 공격한거지?" 그가 물어도 엎드려있는 이들은 벌벌 떨고만 있을뿐 어느 누구도 답을 하지않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상석에있는 남자는 문옆에 서있는 경비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그는 검을 뽑아서 한명의 등에다 꽂아 넣었다. "끄으윽.." "히이익!!" 한명이 죽자 나머지 사람들은 겁에 질려서 작게 비명을 질렀다. "답해라. 누구냐?" 또 다시 아무말이 없자 그는 두번째 인물을 지목하려고했고 그순간, 그들중 한명이 외쳤다. "아..악마입니다!!! 악마가 그랬습니다!!" 그는 현수가 로던지부를 부술 때 있었던 노예상중 한 명이었는데 운 좋게도 그는 아직 문신을 새기기 전이었고 그덕에 살아남았다. 악마라는 그의 외침에 모든 이들은 실소를 지으며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상석의 남자는 아까 자신에게 핀잔을 준 남자에게 말했다. "말콤, 저녀석 머리좀 살펴봐라." 그의 명령에 말콤은 노예상에게 다가갔고 머리에다 손을 얹으며 말했다. "좀 아플꺼다." 말콤의 마나가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그는 머리가 쪼개지는듯한 격통이 느꼈다. "흐아아아아악!!! 머..머리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의 모습에도 말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고 드디어 그가 말한 악마의 정체를 볼 수 있었다. 검은 피부와 불에 타는것처럼 붉게 빛나는 두눈, 그리고 맨손으로 사람들을 찢어죽이는 어마어마한 괴력까지 악마라고 생각하는것도 이해가갔다. 물론 말콤은 네스토의 정체가 악마가 아니라는것도, 시체라는것도 알아챘다. "카론, 이거 어떤 놈 작품인지는 몰라도 제법인데? 시체는 원형 그대로인데 힘은 더 강해졌어." 다만 그를 당황시킨것은 다른점이었다. "뭐야... 이놈 하나한테 다죽은거야? 이게 무슨.." 다른 이들 역시 말콤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는데 상석에 앉은 카론만이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게 정말이냐?" "세상에나..." "데미안은 뭐한거지?" "흐음.." 각자 저마다의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 생각을 마친 그가 입을 열었다. "보스한테는 내가 직접 말하지. 너희들은 각자 맡은 도시들 경계를 더욱 철저히 하도록." 카론의 말에 다들 동의했고 검은달의 간부회의는 그렇게 끝이났다. 보스의 저택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매우 무거웠다. 지부하나를 통째로 잃었다는 소식과 적이 누군지도 모른다는 멍청한 소리를 자기입으로 말하는게 괜찮을리가 없었다. "보스, 접니다. 카론 입니다." 대답이 들리지 않았지만 카론은 익숙하다는듯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먼지 투성이에다 거미줄이 곳곳에 붙어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폐가로 착각할 정도로 더러웠지만 남을 자신의 집에 들이는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보스의 성격탓에 청소할 메이드조차 저택에 없었고 그덕에 이리 더러운 상태였다. 그의 방문앞에 서서 카론은 자신의 옷과 머리가 깔끔한지 확인했고 이정도면 괜찮겠지 라는 생각이 들자 노크를 했다. 잠시후 대답이 들려왔다. "들어와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침대에 기대서 앉아있는 익숙한 인물의 얼굴이 보였다. "오랜만이네요 카론" 아직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는데도 카론은 그의 기분이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말해봐요. 나를 찾아온 이유가 있을텐데 말이죠?" 둥근 안경 너머로 번뜩이는 그의 두 눈앞에서 카론은 뱀 앞에 있는 개구리처럼 꼼짝도 못 했다. "카론?" 그가 한번 더 부르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카론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로던지부가 습격을 당했습니다." 그의 말에 보스는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사고친 강아지마냥 안절부절 못했군요? 뭐 아무튼, 누구 짓이죠? 아직도 검은달에게 맞서는 멍청한 인간들이 존재했다니..쯧쯧" "그게...한명이 그랬답니다. 그것도 사령술로 되살린 시체 하나로..." 보스의 눈이 가늘어지며 카론을 노려봤다. 지금 그는 카론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빅토르는 그렇다치고 데미안을? 사령술사가 시체따위로 죽여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건 아니겠죠 카론?" 보스는 그의 두 뺨을 한 손으로 잡은 채 두 눈을 마주치면서 그에게 다시 물었다. 뱀처럼 세로로 찢어진 그의 눈동자가 카론의 시야를 가득채웠다. "저..정말입니다!!! 정말로 혼자서 다죽였다고 살아남은 놈이 말했습니다!! 말콤이 확인도 끝냈습니다! 그러니 제발.." "후우.." 한숨과 함께 그를 붙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풀었고 풀자마자 카론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 "나머지 간부들에게는 알아서 잘했을테고...짐작가는 놈들이 있던가요?" 카론은 이곳까지 오는 동안 정말로 머리가 터져라 생각해봤지만 도저히 자신들을 건드릴만한 정신 나간 놈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게...사실은 우리를 누가 건드리겠습니까? 단단히 미치거나 저희에게 불만이 있지않고서는 말이죠." 그건 그도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자신들을 노릴만한 조직들은 이미 옛날에 정리를 끝냈고 남아있는건 조직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동네 양아치들이 전부였다. "그럼 도대체 누가....잠깐만.." 불현듯 그의 머릿속에서 한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카론! 혹시 노예들이 전부 사라졌나요?" "네? 네. 그런데 그건 왜?.." 카론의 물음에 보스는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근처에 있던 가운을 걸쳐 입었다. 작은 조각들이 서서히 맞춰지기 시작했고 카론은 그가 옷을 입기를 기다렸다. "놈은 우릴 노린게 아니에요." 카론이 어리둥절해하자 보스는 그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왜 많은 곳 중에 로던이었을까요?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하려고? 그럴 목적이었다면 로던뿐만이 아니라 모든 지부가 공격받았을 테죠 . 그럼 돈때문에? 아뇨, 돈 역시 노예보다 다른 지부의 약이나 무기들을 파는게 이득이죠. 그럼 어째서 일까요?" 보스의 질문에 카론은 식은땀을 흘리며 수없이 많은 이유를 생각해내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보스는 아쉬움을 느꼈다. '하긴... 머리 쓰는건 말콤이나 다른 이들이 있으니 당신은 생각할 필요가 없었겠군요.' "노예들입니다." 전혀 생각지도못한 정답에 카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본인 입으로 다른 곳을 공격하는 게 이득이라고 했는데 어째서 노예 때문에? 하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최근에 엘프들이 숲에서 사라졌습니다. 알고 있겠죠?" 처음듣는 이야기였지만 카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예상들이 매번 공격해서 끌려가도 자기들 자리를 떠나지 않던 게 그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놈들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때마침 우리 지부에 있던 엘프들도 사라졌고?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확실히 머리가 둔한 카론도 어딘가 수상했다. "아마도 같은 놈의 짓일 겁니다. 카론, 최근에 로던과 엘프들의 숲으로 간 적이 있는 마차들을 알아봐요. 그리고 놈의 인상착의를 모든 도시에다 뿌려서 가능하면 놈을 생포하라고 전하세요." 카론이 방을 나가자 보스는 그곳으로 향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을 그는 철저하게 대접해줄 상각이었다. "....해서 결국 그녀는 모든 이들에게 인정을 받고 검의 마녀에서 검의 여제로 불리며 수많은 검사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으면서 행복하게 눈을 감았지." 이야기가 끝이 나고 집중해서 듣고 있던 반과 티아는 탄성을 지르며 각자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반은 그녀의 모습, 목소리, 검술등등 실제로 보고싶어했고 티아는 그녀에게 쥐어진다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상상을 했다. "항상 느끼지만 어디서 이런 옛날 이야기를 찾아내는거지? 나도 나이를 적게 먹은건 아닌데 루스라고하는 여성 검사의 이야기는 처음 듣는군." 그녀의 나이는 진작에 세자릿수를 넘긴지 오래지만 현수가 하는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자신도 처음듣는 정말로 오래전 이야기들이었다. "아 이번껀 직접 들었어. 루스한테도 갔었거든." 현수의 말에 반과 티아는 설마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물었다. "형님?" "현수야?" "응?" 창밖의 경치를 구경하고있는 자신에게 둘이 슬며시 다가오자 현수는 둘이 어떤것이 궁금한지 알아챘다. "미안하지만 루스는 거절했어." 현수가 그녀에게 '전생에 이루지 못한 어떤 소원이든 한가지 들어줄 테니 나한테 힘을 빌려주지 않겠어?' 라고 제안했지만 그녀는 작게 미소지으며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미안하지만 이미 모든걸 다이루고 죽었거든. 제안은 고맙지만 사양하지. 대신..' 그녀는 자신이 직접 검을 가르치겠다면서 검을 포기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든지 돕겠다고 말했었다. 당시엔 그녀가 필요했지 그녀의 가르침은 필요없었지만 지금은 그녀보다 적합한 사람은 없었다. "대신에 검술은 가르쳐준다는데 어때? 생각있냐?" 그의 물음에 반은 미친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워 워~ 진정해 인마 당장 가는게 아니라고. 일단은검은달이 우선이니까." 검으달이라는 단어에 들떠있던 분위기가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특히 위그는 아직도 그때 본 엘프들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지? 놈들에게 선전포고를 한 셈인데 위험하지 않을까?" 현수도 그 부분이 걱정이 되었기에 자신의 부하들을 시켜서 반의 보호를 명령했다. 웬만한 실력자가 아니고서는 상대조차 안 되겠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었기 때문에 대책을 생각 중이었다.
  • 지금껏 숲속이나 들판처럼 거친 길을 달리던 마차가 평평한 도로로 접어들자 반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경치를 구경했다. 아직 먼 거리였음에도 거대한 왕궁이 한눈에 들어왔고 그런 왕궁을 둘러싼 성벽들은 마치 산맥처럼 느껴졌다. 한 번도 수도에 와본 적이 없는 반에는 모든 게 신기하고 특별해 보였다. 심지어는 자신들의 마차를 막아선 이들조차 말이다. "멈춰라! 안에있는 놈들한테 내리라고 말해라." 자신의 목에 창을 겨누자 마부는 다급한 목소리로 현수와 일행들을 불렀다. "여..여러분! 잠깐만 나와보세요!" 무장한 5명의 병사들이 저마다 창과 칼을 겨눈 채 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중 마부의 목을 겨누고 있는 남자가 리더인지 그가 눈짓을 보내자 반과 현수, 그리고 위그에게도 무기를 들이댔다. "형님 이게 무슨일이죠?" 현수는 자신과 일행에게 무기를 겨누고있는 그들을 의외라는듯이 보고있었다. 당연히 자신들을 쫓을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정도로 빨리 잡힐줄은 몰랐기때문이다. "흐음..생각보다 제법인걸?" 그들중 하나가 품속에서 어떤 종이를 꺼내서 일행의 얼굴과 대조하더니 리더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이 끝나자 그들의 리더는 자신의 품에서 또 다른 종이를 꺼냈는데 아까와는 질이 다른 고급스러운 재질이었다. "크흠.. 로던에서 벌어진 귀족 및 상인들의 살해 혐의로 네놈들을 즉시 잡아오라는 발테온전하의 명이다. 얌전히 따라오는 게 좋을 거다." "네에?!!" 반은 왕의 명이라는 그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지며 현수에게 도와달라는 시선을 보냈지만 현수는 생각에 잠긴 채 병사의 손에 들린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귀족? 상인? 무슨 소리냐! 거기에 있던건 검은달과 노예상들이었다. 뭔가 착각을" 위그가 항의하자 리더는 코웃음을 쳤고 나머지는 낄낄거리며 그녀를 비웃었다. 예상치 못한 그들의 반응에 위그는 당황했고 현수는 그럴줄 알았다고 생각했다. "흥! 뻔뻔하게 발뺌을 하다니. 현장에서 발견된 시체들을 조사했지만 어느 누구도 검은달의 조직원인 사람은 없었다. 잔말말고 따라와라!" 도저히 방법이 없자 위그 마저도 현수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놀랍게도 그는 반과 위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따라 가자고." 이번만큼은 반도 그가 어째서 순순히 따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이대로 따라갔다간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물론 현수는 순순히 그들의 계획을 따라줄 생각이 없었다. 적당히 따르는척하다가 빠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을 데리고 간 곳을 보고 생각을 바꾸었다. "...무슨 생각이지?"  왜냐하면 그들이 일행을 끌고 온곳이 바로 왕궁이었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홀의 중앙에는 크기에 걸맞은 왕좌가 있었고  주위에는 수많은 귀족들이 아래를 내려다보는 구도였다. 먼저 들어온 병사들이 무릎을 꿇고 예를 다하자 위그와 반도 그들을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폐하! 명하신대로 로던의.." 그때 누군가가 그의 말을 끊었다. "네이놈!! 당장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지 못할까!!!" 유일하게 고개를 들고 서있는 현수를 향해서 귀족 하나가 소리를 질렀고 그를 시작으로 다른 이들 역시 얼굴을 붉히며 고함을 질러댔다. "그만!" 보다 못한 왕이 직접 나서고 나서야 그들은 겨우 진정이 됐지만 정작 현수는 눈 하나 깜빡 않고 그대로 서있었다. 지금 그는 왕에게 집중을 하고 있던 터라 그들이 뭐라고 지껄이던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나라가 개판이 되는 것도 이해가 가는군." 무심코 내뱉은 속마음이었지만 이보다 적절한 말은 없다고 현수는 생각했다. "자네도 어서 무릎을 꿇게." 커다란 왕좌에 비해 그곳에 앉아있는 왕이라는 자는 너무도 초라했다. 귀족들을 조용히 시키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곧바로 실실 웃으며 그들의 눈치를 보는 그의 모습에 현수는 크게 실망했다. 지금 앉아있는 발테온 4세의 아버지, 발테온 3세는 뛰어난 화술이나 빼어난 외모를 지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모든 이들을 굴복시킬수 있었던것은 본인 특유의 분위기와 타고난 카리스마덕이었다. '꿇어라.' 저왕좌에 앉은채 자신의 아래에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복종을 명했던 그의 모습과 너무도 비교되는 발테온 4세의 모습에 현수는 불쾌함을 넘어서 화가 날 정도였다. '그녀석의 아들이 저따위 광대짓이나 하고있다니..쯧쯧쯧' 아마 그가 살아있고 지금 이모습을 본다면 피바람이 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이미 죽었고 검은달의 영향력은 갈수록 거대해졌다. "그럼 말해보게. 왜 그들을 죽였나? 이유가 뭐.." "뮈겠습니까 폐하? 당연히 그들의 돈을 노린 것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뚱뚱한 귀족하나가 왕의 말을 끊어도 어느 누구도 그에게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몇몇이 불쾌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볼뿐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끝이겠다 싶어서 현수가 나서려고 순간 누군가가 나서서 왕을 지지하고 나섰다.
  • "륀델공, 폐하께서 말씀중이십니다." 값비싼 의복을 온몸에 두른 채 자신을 뽐내고 있는 여느 귀족들과는 달리 그의 모습은 볼품없었다. 왕의 앞인지라 그도 나름 꾸민다고 꾸민 것이겠지만 여기저기 흠집이 나있는 갑옷과 그것만큼이나 흉터가 나있는 얼굴은 모르는 이가 본다면 흔하디흔한 모험가 나부랭이로 볼 게 뻔했다. "크흠흠..." 하지만 그가 누군지 아주 잘 알고있는 귀족들은 그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방금전까지 기세등등하게 떠들어대던 륀델도 그의 한마디에 입을 다물수밖에 없었다. "고맙습니다 로만 단장." 왕의 감사에 로만은 고개를 숙였다. "그럼 다시 묻겠네, 자네는 어째서 그많은 사람들을 죽였나? 정말로 단순히 돈때문에 그런짓을 벌였나?" 잠시 뭐라고 답할지 생각한뒤 현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단순한 상인이 아니었습니다. 검은달이 운영하는 노예상들이었죠." 그의 대답에 또 다시 소란스러워지려는 찰나, 누군가 쉰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네이노오오오옴!!!! 내 아들은 그럼 왜 죽인것이냐!"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른 중년이 현수를 향해서 소리를 질러댔고 현수는 리사가 죽였던 귀족 꼬맹이를 기억해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순수한 아이를...어찌 그리 잔인하게 죽였냔 말이다!" 거친 숨을 내쉬며 자신을 노려보는 그에 반해 현수는 태연하게 품속에서 꺼낸 종이다발을 살랑살랑 흔들며 그에게 보여주었다. "흠...순진한 아이라...이걸 보고도 그렇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네요." "뭐,뭐야?" 로만은 현수가 내민 종이다발을 훑어보더니 두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곧장 왕에게도 그것을 보여주자 그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허...이게 전부?" "제가 알기로는 선왕께서 노예 거래를 금하셨다고 알고있는데 맞습니까?" 한장 한장 넘겨보던 왕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그러자 현수는 자신을 향해서 소리를 질러대던 한스의 아비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를 어기면 경우에 따라서는 사형까지도 내릴수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악귀, 한스 남작의 눈에는 미소짓고있는 현수의 모습이 마치 자신을 지옥으로 끌고가려는 악귀와도 같았다. "히,히이익!"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그는 자신도 모르게 현수에게서 멀어지려고 뒷걸음질 쳤지만 한 걸음 떼는 게 고작이었다. "자네 아들 말고 자네 이름도 제법 보이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주겠나?" 왕의 차가운 시선에 한스는 다급하게 외쳤다. "어,어찌 저런 종이따위를 믿고 이러십니까 폐하! 저놈이 속였을 가능성은.." 하지만 그의 변명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었다. "그럼 여기 찍혀있는 자네 가문의 인장은 무엇이지? 더 이상 들을가치도 없다 끌고가라." 병사들의 손에 붙잡힌채 끌려가면서 그는 도움을 청하는 시선을 보냈지만 다들 딴청을 피우며 그가 빨리 이곳에서 나가기를 기다렸다. "시,시리온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자 모든이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후" 그곳엔 눈을 감은채 의자에 기대서 앉아있는 남자가 있었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한스의 목소리에 한숨과 함께 감겨있던 그의 눈이 뜨였다, "시끄럽게 만들지 말고 빨리 가는게 어떠십니까?" 자신을 도와줄줄 알았던 그가 한심하다는듯이 쳐다보자 한스는 더이상은 방법이 없다는것을 깨달은것인지 고개를 푹 숙인채 조용히 끌려나갔다. "그들이 평범한 상인이 아닌것은 알겠네, 하지만 범죄자라고는 하나 자네는 살인을 저질렀어." 물론 현수는 이부분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두었다. "먼저 공격한것은 그들이었고 제가 살기위해선 그들을 죽여야만 했습니다." "음...그럼 그곳에는 무슨 목적으로 간건가? 설마 자네도 노예가 목적이었던것은 아니겠지?" 현수는 엎드려있는 반을 가르켰고 지금까지 듣고만있던 반은 화들짝 놀랐다. "혀,형님?!" "음? 자네 고개를 들어보게." 반이 고개를 들자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전부 그를 쳐다봤고 떨려서 어쩔 줄 모르는 반의 뒷모습에 현수는 괜히 미안해졌다. "꽤 어려보이는데 어째서 그런곳에 간거지?" "저녀석의 누나를 찾으러 갔습니다." 반은 이번에도 놀랐지만 곧바로 현수가 생각이 있어서 그랬을 거야 하고 넘어갔고 위그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지라 가만히 있었다. "누나? 자세히 얘기해보게." 빅토르와 반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현수는 약간의 거짓말을 더했는데 빅토르가 지부장인 것과 자신이 노예를 사기 위해서 갔던 것을 약간씩 바꾸었다. "아비라는 자가 그런짓을 하다니...저런..." 이야기가 좋게 마무리되려는 찰나, 누군가가 박수를 천천히 치기 시작했다. "이거 저희가 영웅분을 몰라뵙습니다. 큭큭큭" 한스가 시리온이라고 불렀던 남자가 조소를 머금은 미소를 띠며 현수 일행을 한 명씩 노려봤다. "윽..." "큭..." 반은 물론이고 위그조차 그의 세로로 갈라진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 몸이 굳어버렸다. "..." 시리온은 아무렇지도 않은 현수를 보면서 역시나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도 멀쩡한 인간이 얼마 만인지 시리온은 기쁘다는 감정마저 느낄 지경이었다. "시리온공, 할말이라도 있으십니까?" 보다못한 로만이 그에게 묻자 시리온은 안타깝다는듯이 고개를 저었다. "저런...로만 단장께서는 평생을 검만을 잡아서 그런지 머리는 조금 둔하신가봅니다?" 그의 노골적인 비난에 로만과 같은 문양이 갑옷에 박혀있는 병사들은 이를 갈았지만 정작 로만은 익숙한지라 별 반응은없었다. "왕국의 최강이신 단장께서는 무장한 병사를 최대 몇명까지 상대할수있습니까?"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로만은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생각했다. "마법사가 없고 단순히 무장한 병사들이라면...아마 100명은 상대할수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은겁니까?" "그곳에서 발견된 시체가 대충 150구 정도 입니다. 저자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왕국 최강은 단장이 아니라 저자겠지요." 그러자 또 한번 분위기가 험악하게 변해갔다. 시리온은 그가 어떻게 나올지 속으로 기대하며 여러가지를 생각해봤지만 현수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그의 예상을 가뿐히 짓밟았다.
  • "어째서 저 혼자 했다고 생각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뒤에 있는 동료들과 함께 싸웠습니다." 그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시리온은 현수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두 사람을 관찰했지만 역시나 평범한 꼬마와 여자였다. "꼬맹이랑 아가씨가 도움이 되던가요? 저희를 너무 바보로 아시는군요." 시리온이 그를 계속 몰아붙이는 이유는 현수를 자신의 조직에 묶어두기 위해서였다. 데미안의 경우처럼 검은 달이 구원자마냥 나타나서 그를 구하고 조직에 대한 충섬심과 절대적인 복종을 노린것은 아니다. 애초에 현수는 데미안정도의 그릇이 아님을 시리온은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시리온은 다른 방법을 생각했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중이었다. "뭐 그래도...당신들이 '일부러' 들어갔을리는 없을테니 저들을 풀어주시는게 어떠신지요?" 그의 말을 들은 발테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시리온이 그리 말한다면야..일어나게 자네들." 그렇게 무사히 풀려나고 거리로 나오기전까지 누구도 입을 열지않았다. "다들 분위기가 왜그래?" 보다못한 현수가 두 사람에게 묻자 반은 위그와 현수의 눈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저..형님? 아까 시리온이라는 사람, 기억하세요?" 반이 그를 얘기하자 현수는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뱀눈깔? 그사람이 왜?" 옆에있던 위그도 그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혹시 그의 정체를 알고있나? 그는 마치..." 말하는 도중 위그의 표정이 어딘가 안 좋아 보였다. 마치 오래된 트라우마를 떠올리는듯한 그녀의 낯빛을 보고 반은 그녀를 걱정했다. "괜찮아요?" 그런 그에게 위그는 괜찮다며 미소지었지만 불안해보이는것은 어쩔수없었다. "그는 마치 인간이 아닌것같았다." 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 누루엔의 경우와는 비슷하면서도 달랐지만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듯한 느낌, 실제로 위에서 아래로 보는게 아니라 마치 하등한 생물을 바라보는듯한 느낌이었다. "그의 시선은...아니, 그의 정체는 인간이 맞을까?" 두 사람의 심각한 분위기에 현수도 진지하게 자신이 알아낸것들을 알려줬다. "일단은 그놈은 사람이야. 눈이 조금 재수가 없어서 그렇지. 진짜 중요한건 그놈이 검은 달의 수장이라는게 문제야." 두 사람은 그의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혀,형님?! 그럼 위험한거 아닌가요? 저희를 찾고있을텐데 얼굴이 알려지면..." "그것보다 어떻게 알아낸거지?" 그러자 현수는 자신의 눈을 가르키면서 말했다. "눈에다가 마법을 걸어뒀지, 노예상들 중에서 한 놈을 살려뒀거든." 그들이 찾아낸 생존자는 애초에 현수가 일부러 살려둔것이었다. 자신에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대신에 시리온의 위치를 알아냈으니 현수로써는 남는 장사였다. "덕분에 나말고 너희들 얼굴도 알게 됐지만 걱정하지마." 그리고 마침 현수가 기다리던 인물이 그의 일행앞에 나타났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 망토와 두건을 뒤집어썼지만 현수는 그가 누군지 한눈에 알아차렸고 그는 더 이상 변장이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 입고 있던 천 쪼가리들을 벗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빠르겠군요." 그는 바로 로만이었다. 위그와 반은 이게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했지만 그러건말건 로만은 현수를 바라보면서 매우 공손하게 부탁했다. "부디 저희를 도와서 이나라를 구해주십쇼." 로만은 그에게 부탁을하면서도 이게 얼마나 말도안돼는 짓인지 알고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기적을 바라면서 부탁을 할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나라에는 더 이상 그들과 싸우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폐하를 지키는게 고작인 저로써는 역부족입니다. 물론 보상은 얼마든지 해드리겠습니다. 가능한 범위안이라면 무엇이든 드리겠습니다. 돈으로.." 하지만 현수는 한참 이야기중인 로만에게 손사래를 치면서 그의 말을 끊었다. "에이...겨우 돈 몇푼에 나라를 구해달라뇨? 너무 바가지를 씌우시네." 물론 돈 몇푼을 주지는 않겠지만 로만은 그것이 거절의 의미로 알아듣고 어떻게든 그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현수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않았다. "돈 대신에 작은 '부탁' 하나 들어주시죠." 부탁이라는 단어를 듣자 로만은 별의별 상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부탁은 정말로 단순했다. "얘들을 아저씨밑에다 넣어주시죠. 물론 정식 기사단원으로 말이죠."
  • "...정말 그거면 저희를 도와주시는겁니까? 고작 기사단으로 넣어주면 끝이라구요?" 로만은 현수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원한다면 돈은 물론이고 귀족으로 만드는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이 남자는 겨우 일개 기사단원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그것도 본인이 아닌 자신의 동료들을 넣는 것으로. "형님? 갑자기 기사단이라뇨?! 무,물론 들어가는건 좋은데 형님은 어쩌구요?" 졸지에 기사단원이 된 반이 어리둥절해 하면서 놀라는데 반해 위그는 의외로 담담하게 반응했다. "반은 몰라도 나는 필요없지 않을까 싶다만.." 하지만 현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시끄러, 넌 어차피 반을 지켜보는 보호자로 가는거야." "그렇다면야...알겠다." 위그는 수락했고 남은것은 반이었는데 아직도 자신이 기사단이 된것이 믿기지 않는듯했다. "어..저기...그러니까 제가 진짜로 기사단원이 된건가요?" 말까지 더듬어가면서 반은 기쁜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어차피 내일은 먼 곳으로 떠날테니까 기사단의 맹세는 넘어가는게 낫겠죠?" 현수는 대수롭지않게 말했지만 로만은 순간 자신의 두귀를 의심했다. "그게 무슨 소리신지?" 그러자 현수는 짓궂게 웃으면서 말했다. "에이 다 알고있는데 왜 그래요. 내일 '사건 조사' 한다고 국경 근처까지 기사단 파견보낸거, 그거 다들 알고있던데요?" 지금 현수가 말하고있는 내용은 극비 중에 극비였다. 어중간한 신분으로는 사건 자체를 모르는 이번 파견을 어째서 그가 알고있는지 로만은 몹시 궁금했다. '인스말이 사실이었군' 인스는 네스토나 실라처럼 현수가 되살린 이들중 한명으로 그녀의 특기는 정보수집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괴담부터 왕의 사적인 대화까지, 현수의 명령이라면 그녀는 모든것을 알아냈다. 물론 정보를 얻기위해서라면 그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았다. 그덕에 그녀는 정보수집과 고문이라는 두개의 역할을 맡았다. "어디서 들으셨는지 몹시 궁금합니다만... 맞습니다. 내일 당장 서던이라는 시골 마을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돌아오려면 적어도 몇 주는 걸릴듯싶은데 두 분은 어쩌실 생각이신지?" 극비였지만 이미 들킨마당에 더 이상 숨기는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로만은 두 사람에게 의견을 물었다. "가겠습니다." "갈래요 형님." 억지로라도 보낼 생각을 하고있던 현수는 다행히 그럴일이 생기지 않았음에 안도했다. "그럼 다들 건강히 잘 다녀와. 아! 단장님은 이녀석들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현수와 잠시 이별을 하게된 위그와 반은 로만을 따라 기사단이 지내는 숙소로 가게되었다. 가는 동안 반은 온갖 상상을 하면서 기대를 했지만 도착한 숙소의 상태를 보고 크게 실망했다.
  • -벌써 3달이나 지났구만...참 빠르다~
  • 여기저기 망가지고 낡은 그곳은 더 이상 숙소라고 부를 수조차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나름 병사들이 훈련할 수 있게끔 중앙에는 넓은 공간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그낭 바닥에 선으로 표시만 해놨을 뿐이었다. "실망하신거 잘압니다 저도 그렇거든요" 과거, 기사단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과 지금을 비교한다면 단장인 로만조차 자신의 처지를 보고서 한숨이 절로나왔다. "선왕께서 계실 때 저희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리라 맹세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로만은 자신의 허리춤에 차고 있는 한 자루의 검을 만지작거렸다. 입고 있던 갑옷과 마찬가지로 여기저기에 흠집이 무수히 많은 볼품없는 검이었지만 로만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물건이었다. "그들이 나라를 장악한 뒤로는 더 이상 방법이 없더군요. 지원은커녕 급여마저 끊기고 날마다 전투는 벌어지니 다들 살기 위해 기사단을 떠났습니다." '다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피를 흘리며 나눴던 우리의 맹세는 잊은 거야?!'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사들이 떠나려 하자 로만은 그들을 설득하려 애를 썼지만 그들은 이미 마음을 정한 후였다. '미안해 단장, 그래도 다들 힘들게 내린 결정이니까 이해해줄 거라고 믿고 있어.'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아줄거라 믿고있던 부단장마저 탈퇴를 선언하자 로만은 배신감과 충격에 사로잡혀 그들은 배신자라며 더 이상 동료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너를 이곳에 두고 가는 우리가 배신자처럼 보일 테지. 그렇지만 우리도 노력했어, 다치고 죽어가면서도 맹세 그거 하나를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하지만 지켜야 할 나라가 뺏겨서 없어졌는데 이게 무슨 소용이야?' 사실 로만도 알고 있었다. 그저 그것을 부정당하는 게 싫어서 억지를 부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뒤로 로만은 떠나는 이들을 설득하지도, 떠난 이들을 욕하지도 않았다. '부족한만큼 내가 강해지면 그만이야.' 대신에 그는 끝없는 훈련을 시작했다. 언젠가 혼자 남겨지더라도 왕과 백성들을 지키기위해, 누구에게도 지지않기 위해. "다들 나와라! 신입이 들어왔다." 그가 소리치자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각자 방에서 뛰쳐나왔다. 다들 자고 있었는지 졸린 눈으로 하품을 하며 억지로 잠을 깨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내가 잘못들었나? 분명히 대장이 신입이라고 했었는데.." 그러던 중 누군가가 로만의 옆에 서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자 모두의 시선이 그들에게 집중됐다. "바,반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위그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인사를 받은 기사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대장, 신입이 설마 두 사람을 말한겁니까?" 맨 앞에 서있던 남자의 물음에 로만이 끄덕이자 여기저기서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도 그럴 게 그들 눈에 보이는 두 사람은 아직 어린애들이다. 아무리 인원이 부족하다지만 아이들에게까지 피를 흘리게 할 수는 없었다. "하아... 대장 그냥 저희가 더 열심히 할테니까 다시 돌려보내세요." 아무래도 그들은 두 사람을 로만이 어딘가에서 데려온 아이들로 착각을 하고있었다. "로던에서 일어난 사건, 알고들있나?" 보통 사건이 아닌만큼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는듯했다. "그사건을 벌인게 이들이다." 그러자 두 사람을 향한 눈빛이 달라졌다.
  • "그게 사실이라면 실력이 어떨지 궁금하네." 맨 앞에 서있던 남자의 손에는 어느새 투박한 목검이 쥐어져있었고 검의 끝은 반을 향해서 겨눠져 있었다. "네?"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한 반을 상대로 그는 그저 한 번의 발구름으로 거리를 좁혀왔고 허술한 자세에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찌르기로 반의 어깨를 노렸다. "피해!" 다행히 티아가 소리쳐준 덕분에 스치는 것으로 끝났지만 그것만으로도 반은 어깨가 욱씬거렸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싸늘한 표정으로 반의 앞에선 위그를 보자 그는 두 손을 들면서 능청스럽게 웃었다. "한번 시험해본 거야. 겨우 이 정도를 못 피한다면 오래 못 살 테니까." 사실 로만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있었다. 그래서 그가 반을 공격할때도 일부러 가만히 지켜만보고있었다. "그래서 제이스, 네 생각은 어떻지? 합격인가?" 로만의 물음에 그는 잠시 고민하는척을 했지만 이미 반이 피한시점에서 답은 정해져있었다. "뭐..얘는 그럭저럭 합격인데.." 이번엔 위그의 차례라는듯 제이스의 검이 그녀를 향해있었다. 하지만 그가 움직이기 바로 직전에 그의 어깨를 붙잡고 말리는 이가 있었다. "뭐야 왜 그래?" 머리카락 색과 눈동자, 그리고 외투까지 온통 보라색인 여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아이는 마법사야, 나한테 양보해줘." 그러자 제이스는 위그와 그녀를 한번 번갈아보더니 이내 검을 거두고 그녀에게 양보한다는 양 뒤로 빠져주었다. "마나가 제법 상당하구나. 어디서 마법을 배웠니?" 하지만 위그는 답을 할 수 없었다. 몸을 빌렸다고는 하나 그녀도 그렇고 엘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마나와 마법을 다루는 게 당연했다. 그러니 그녀의 질문은 마치 새에게 어디서 나는 법을 배웠는지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뭔가 사정이 있나보구나? 그럼 나중에 천천히 알려줘" 다행히 그녀는 위그에게 말 못 할 사연이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한 모양인지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지금부터 시험해볼 건데 너무 긴장하지 마 살살할 테니까." 그녀가 품에서 꺼낸것은 칼자루만있고 날은 없는 특이한 물건으로 위그는 그게 무엇인지 몰랐지만 반은 알고있었다. "간다?" 미리 알려주면 무슨 의미가 있지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반은 납득을 했다. 단 한 번 눈을 깜빡거렸을 뿐인데 그녀는 위그의 코앞까지 와있었다. 그리고 자세를 취하는 것과 동시에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쇠붙이끼리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위그가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연달아서 들렸다. "위그씨!" 위그가 쓰러지자 반은 서둘러 그녀 곁으로 뛰어갔다. 안절부절못하는 반과는 달리 다른 기사들은 물론이고 검을 휘두른 그녀조차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로만은 약간 기쁜듯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그녀가 눈을 뜨자 그제서야 반은 안심할 수 있었다. 기사들은 무사히 버텨낸 그녀를 보고 드디어 신입들이 들어왔다면서 기뻐했지만 정작 검을 부딪힌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위그를 바라봤다. "꼬맹이가 막아서 어지간히 충격이 큰가봐 아이린?" 물론 반응하는것 자체는 그렇게 놀랄일이 아니었다. 아이린의 움직임과 검의 궤적만 안다면 얼마든지 막을수 있으니까.하지만 중요한것은 어떻게 막았느냐였다. "...마법이었어." 아이린이 베기 직전에 위그는 손에 작은 보호막을 만들어서 그녀의 공격을 막으려고 했고 비록 충격은 버티지 못하고 날아가 버렸지만 아이린의 검은 막을 수 있었다. "내 검을 막은게 마법이었다고.." 그녀의 검에 날이없는것은 오로지 마법을 위해서였다. 보통의 검으론 마법을 베거나 없앨 수 없었고 이 때문에 아무리 로만처럼 단련된 검사라 할지라도 마법 앞에선 약한 모습을 보였다. 아이린은 그런 단점을 극복하고자 왕국에서 직접 선발한 인재였다. 마나로 이루어진 날과 그런 날이 달려있는 검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는 게 조건이었지만 그녀는 해냈고 기사단으로써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대장은 어디서 어떻게 저런 애를 데리고 온 거지?" 비록 위그가 다칠까 봐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니었지만 막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이린에겐 충격이었다. "... 합격이야." 물론 위그도 완전히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급하게 마나를 끌어올린 탓에 오른손이 덜덜 떨렸지만 반이 걱정할까봐 일부러 숨겼다.
  • "남는 방이 많으니까 아무 곳이나 써도 상관없어." 반이 제이스의 안내를 받고 들어간 방에는 낡은 침대 하나, 그리고 작은 탁자와 의자가 전부였다. "침대잖아?!" 하지만 반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만에 푹신한 침대에서 잘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그동안 현수를 따라다니며 마차에서 잠을 자거나 야영을 하기도 했으니 편안한 잠자리가 그리운 게 당연했다. "그렇게 좋아?" 티아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침대를 뭐가 그리 좋다고 눕는지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꼬맹이가 여기까지 버틴 게 대단한 거겠지?' 어느새 잠에 취한 반을 바라보면서 티아도 눈을 붙였다. "일어나 반." 위그가 흔들어가면서 깨우고 나서야 겨우 눈을 뜬 반은 벌써 준비를 끝낸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다들 너만 기다리고있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반이 허겁지겁 준비를 끝내고 방에서 나오자 정말로 그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행과 열을 맞춰서 서있었다. 반이 빈자리를 찾아서 들어가자 로만은 품속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펼쳤다. "최근 서던이라는 마을에서 사람들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에 폐하께서는 우리가 직접 움직여서 그 원인과 해결을 명하셨다." 로만이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위그가 손을 번쩍 들었다. "단순한 사건이라면 기사단이 아니라 조사단이 파견될 텐데 혹시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그건 그랬다. 그저 시골에서 발생한 실종사건이라면 조사가 특기인 조사단이 파견 나가면 나갔지 기사단이 움직일만한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다른 기사단원들은 별다른 생각이 없어 보였고 오히려 익숙한듯했다. "그건 있다가 설명해줄 테니 우선 마차에 짐부터 옮기게." 그리고 마차가 출발하고나서야 로만이 입을 열었다. "아까 말한 서던과 실종 사건은 일종의 암호일세. 우리가 실제로 갈 곳은 타스티아지." 그가 말하길 그곳은 원래 듀란이라는 귀족 가문이 다스리는 도시인데 '타스티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울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들은 백성을 사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상한 소문과 함께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발테온이 직접 조사단까지 파견했지만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폐하께서는 이일이 검은 달의 짓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자네들은 어떤가?" 두 사람은 실종과 검은 달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저절로 로던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아마도 로던에서 없앤 노예를 사고파는 곳을 새로 만든 게 아닐까요?" 반이 조심스럽게 추측하자 위그는 그때 봤었던 엘프들과 사람들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고 로만은 '음.. 역시'라며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두 사람은 나와 함께 움직이게. 자칫 자네들이 다치거나 한다면 현수님을 볼 면목이 없으니 말일세." 그들이 타스티아에 가까워지고 있을 무렵 현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은 채로 발테온과 대화중이었다. "하...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기사단을 줄이고 마법 학회를 폐지시킨 겁니까? 거기에 백성들한테는 세금을 올려서 귀족 놈들 배는 터지려고 하네요?" "나라고 좋아서 그런 줄 아느냐? 일단은 백성들을 살려야 하지않겠느냐." 순간적으로 지랄하고 있네 라는 말이 무심코 튀어나올뻔한 현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게 어딜봐서 백성을 살리는 짓입니까. 놈들이 두려워서 개짓거리 한거지." "하지만..." 현수가 코앞까지 다가와서 자신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자 발테온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을 다물고 듣고만 있었다. "왕이란 놈이 백성들이 피눈물을 흘리게 놔두면 안 된다 이 말입니다. 검은 달이 두려워서, 나부터 살자고? 때려치워 새끼야 그딴 식으로 왕 노릇 할 거면 관두고 도망치라고." 그가 말하는 내내 발테온은 주먹을 굳게 쥐고 화를 삭였지만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참지 못했다. "닥쳐!!! 네가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는 거냐!" 원하는 반응이 나오자 현수는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참고 일부러 담담한 척 연기를 시작했다. "뭘 말이지?" 한번 터지니 나머지는 알아서 술술 나왔다. "처음 그들의 존재를 눈치챘을땐 이미 2개의 조직을 집어삼킨 뒤였다. 그들을 토벌하려고 병사들을 보냈지만 백성들을 잡아다가 방패로 쓰더군." 결국 병사들은 차마 무고한 사람들을 베지못하고 죽거나 다쳐서 발테온에게 돌아왔다. 결국 그는 토벌을 포기하고 그들을 방치했고 지금은 더 이상 손쓰기 힘들정도로 몸집을 키우게되었다. "힘들더라도 살아있는게 낫지않느냐 방패가되어 병사들의 검에 쓰러지는것보단 말이다. 그리고 내가 언제 그들이 두렵다고 했느냐?"
  • -후...쉬고나니까 생각이 정리되는구만~ 그나저나 이걸 언제 끝내려나...
  • "폐하, 네빌님이 도착하셨습니다." 밖에 있던 신하가 누군가가 도착했음을 알리자 구원의 손길이라도 받은 사람마냥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 서둘러 준비해주게!" 도대체 네빌이 누구길래 그가 이리도 기뻐하는지 현수마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호오...이정도로 준비하는걸보니까 대단한 손님인가봐?" 진수성찬이 차려진 거대한 식탁을 앞에두고 현수가 한마디 했지만 지금 그에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 하염없이 문을 바라보고있는 그의 모습은 어딘가 간절하기까지했다. "잘 지냈냐."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네빌이 들어왔다. 진한 푸른색의 눈동자, 금색의 곱슬머리, 그리고 이것들이 합쳐진 조각 같은 외모까지 주변의 이목이 모조리 그에게 집중되었지만 정작 모두의 시선이 모인 곳은 그의 얼굴이 아니었다. "이야~ 못본사이에 아주 듬직해졌구만! 영감도 기억나지?" 그것은 털이 잔뜩 덮여있는 짐승의 귀였다. "끌끌끌 그럼요." 그리고 그를 따라서 들어온 노인 역시 그와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노인은 귀뿐만 아니라 온몸이 새하얀 털로 덮여있었다. 그에 비해 네빌이라는 남자의 모습은 노인처럼 완전한 동물의 모습보다는 인간에 가까웠다. '혼혈인가?' 이종족들사이에선 종종있는 경우기에 그다지 신기한 일은 아니었지만 인간의 피가 더 많이 흐르는탓에 귀만 없다면 그저 잘생긴 미남으로 보였다. "헌데 저분은 누구신지?" 노인의 질문에 발테온이 대답하려는 찰나 네빌이 그를 막아섰다. "네놈이냐?" 조금 전까지 그가 짓고 있던 사람 좋은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사나운 맹수처럼 현수를 향해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킁 킁...이정도로 피냄새가 그윽한 놈은 평생 처음보는군." 정말로 피냄새가 나는지 아니면 그렇다는 비유인지 코를 감싸 쥔 채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검은 달인지 뭔지 그거 너지?" 아니라고 말하려던 현수는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검은 달을 찾는지 궁금해졌다. 손을 푸는게 금방이라도 달려들 줄 알고 나름대로 가라앉아있는 마나를 끌어올리고 공격에 대비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흥..마음같아서는 여기서 반쯤 다져놓고싶다만" "크흠!" 노인이 헛기침을 하자 네빌은 그의 눈치를 힐끔 살피더니 품속에서 주머니를 꺼내 현수에게 던졌다. "쳇...그거 열어봐" 달그락거리는 주머니 안에 있던 것은 형형색색의 보석들이었다. 아무리 못해도 이 정도 양이라면 보통사람이 평생을 먹고 살 정도였는데 현수는 이걸 무슨 의미로 건넸는지 대충 예상이 갔다. "...이게 무슨 뜻이지?" 하지만 현수는 일부러 모르는채했다. 네빌은 그런 현수를 벌레보듯이 했고 보다못한 노인이 나서서 설명을 해주었다. "보시다시피 작은 성의표시입니다."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는 네빌과는 달리 노인은 철저히 자신의 속내를 숨기고있었다. "저희 나라에서만 얻을 수있는 아주 귀한것들입니다." 비록 얼굴은 웃고 있지만 현수는 자신을 향한 증오와 분노가 느껴졌다. 아무래도 검은 달에 대한 악연이 있는듯한 인물들이기에 현수는 이쯤해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로 했다. "저기 죄송한데 저는 검은 달이 아닌데요?" 어리둥절해하는 두사람에게 현수는 로던에서 있었던 일들, 그리고 로만과 발테온이 부탁한것들을 알려주었다. 그제서야 큰 실수를 했다는것을 알고 서둘러 사과했다. "미안하다!" "죄송합니다." 애초에 그들을 떠볼 목적으로 곧바로 정체를 밝히지 않은 현수의 잘못도 있었기에 대충 넘어갔다. "아 괜찮아요 그리고 이건 돌려드릴게요." 아까 받았던 보석주머니를 건네주려하자 그들은 은인에게 드리는 답례라며 거절했다. "넣어둬, 은인한테 드리는 선물이니까." 현수는 지금까지 그들에게 은인 소리 들을 일은 한 적이 없었는데 무슨 소리지 싶었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일이라고는 로던에서 있었던 일인데 거기 있던 노예들 중에 이 종족은 없었다. "은인이라는게 무슨 소리죠?" 네빌은 생각만하면 아직도 분한지 뿌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릴정도로 이를 갈았다. "어떤 정신나간 놈들이 우리 영토에서 동족들을 납치해서 데려갔었어. 덕분에 한동안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지." 그리고 네빌은 오랜 추적끝에 범인이 검은 달이라는것과 목적지가 로던이라는것을 알아냈었다. "마침 누군가가 로던을 박살내는 바람에 동족들이 팔리는기 직전에 막을수있었지." 이야기가 끝나자 발테온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만약 현수가 없었더라면 그들은 수인족들을 여기저기에 팔아치웠을것이고 네빌은 자신의 동족들을 영영 찾지 못했을것이다. "아이고 우리 조카 얼굴이 왜이리 어두워? 이제 괜찮아, 삼촌만 믿으라고!" 풀이 죽어있는 발테온과 그런 그를 달래려는 네빌의 모습은 정말로 삼촌과 조카사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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