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잘자고있는 나를 누군가가 깨우기시작했다. 누구인지 안봐도 뻔하다. 이곳에는 우리둘밖에 없으니까.
  • "이놈아 언제까지 퍼질러잘꺼냐 안일어나?!" 덥수룩한수염과 고집스럽게생긴 인상, 거기에 고된일로 단련된 근육들. 누가봐도 드워프라고 생각할법하지만 인간이시다. 이곳, 드워프의수염이라는 대장간을 운영하는 스미스영감님이다. 그리고 나의스승님이기도했다. "흐으으음...스승님 5분만..." 아직도 잠꼬대를하는내게 망치를 들고오시더니 "5초주마. 당장안일어나면 대갈통을..." 곧바로 일어났다. 아마 안일어났다면 정말로 머리가깨졌겠지. "헤헤 지금갑니다~" "하여튼 쯧쯧" 말은저렇게하셔도 누구보다 다정하신분이다. 여기서 일할수있었던것도 스승님덕분이니까. 스승님을만난것은 5년전일이다. 길거리를 전전하며 도둑질과 소매치기를하던 내눈앞에 어떤노인이보였다. 장을본것인지 주머니에는 지갑이 아무렇게나 꽂혀있었고 노인이라 손쉽게훔칠줄알았다. "허...이놈봐라?" 하지만 내가 손을대자마자 노인은 뒤를돌아봤다. 우리스승님한테 걸린것이다.
  • 스승님은 나를노려보셨고 나는 그대로굳어버렸다. 도망치려는순간 스승님이 내손목을붙잡았다. '무슨?! 힘이 장난아니잖아!' "후훗...지금생각해보니 추억이구만" 딱. 뒷통수를 얻어맞았다. "기분나쁘게 웃고지랄이야. 빨랑 안움직여?" "네..." 그때 스승님은 붙잡은손에 지갑을쥐어주시면서 내게 이렇게말씀하셨다. "이놈아. 그거받고 따라와라" 그렇게 도착한곳이 이곳, 대장간이었다.
  • 스승님은 그때 두가지선택권을주셨다. "나한테 뒤지게맞고 지갑가져갈래? 아니면 지갑은 돌러주고 여기서일할래?" ...생각해보니 저때 진짜위험했구나. 아무튼 당연하게도 두번째를골랐고 그때부터 여기서 스승님의 제자가됐다. 깡! 깡! 깡! 처음에는 마냥시끄럽기만했던 쇠를두드리는소리도 이제는 제법들을만하다. "반 이놈아!" 스승님의 부름에 망치질을멈추었다. "네 스승님." "잠깐 심부름좀다녀오너라" 오랜만에있는 외출기회에 신이나려했으나 "딴짓하거나하면 화로에다 장작으로써주마" "하..하하 설마요" 괜한기대였다. '쳇 영감탱이 눈치하나는 빠르구만' "자, 여기 이걸 전해주고오너라" 그러면서 검한자루를 건내주시는데 "이레인님이 직접주문하신거다. 흠집나면 알지?" 귀족인 이레인님보다 스승님이 무서운것은 왜일까. 건내받은검은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않은 양날의검 이레인님의 주문은독특하다면 독특했다. 항상 평범한 양날검을주문하셨다.
  • 검을챙기고 저택을향하는 발걸음이무겁다. 이왕나온김에 실컷 놀다가고싶었으나 스승님이 떠올랐다. 나를 곱게접어서 화로에던져넣는 스승님의모습이. 발걸음이 무겁다한들 그리멀지않았기에 금방도착을 했다. 노크를하자 잠시후 안에서 누군가가물었다. "누구십니까." 대답을하자 거대한나무문이 육중한소리를내며 열렸다. "반님이시군요. 어서오십쇼." 나를반기는것은 검은집사복차림의 안경을쓰시 한 늙은집사님이셨다. "안녕하세요 레온집사님. 여기 주문하신 검입니다." 레온님이 검을받고서 이리저리 훑어보는데 "흐음..." 무언가 마음에안드는건지 표정이좋지않다. "왜그러시죠? 혹시 문제라도..." "아 아닙니다. 훌륭하군요." "다음에도 잘부탁드리지요." 표정이 마음에걸렸지만 어쩌겠는가? 본인이 마음에 든다는데. 돈을받고 저택을나오자 고민이되었다. 오랜만에한 외출인데 놀다갈것이냐 아니면 곧장 돌아갈것이냐 한참을고민하다 결국 "그래. 조그만 놀다가자." 놀러가는것을택했다. 길거리를걷자 그나마 마음한켠에있던 불안감도 어느새 말끔히사라졌다.
  • 길거리를오가는 각양각색의사람들. 그중엔 검이나 방패, 활같은것을 들고다니는 이들도있었다. 그들이바로 우리대장간의 주요고객인 모험가들이다. 매일 몬스터들과 싸우다보면 아무리 잘만들어진 검과 갑옷이라 할지라도 망가지기마련이다. 스승님은 그런이들을 좋게보시지는 않으셨다. "에잉 쯧쯧...이리도 험하게다뤄서야" 라며 망가진 장비를 고치면서 한탄을하시는일이 잦았다. 아쉽지만 더이상은 들킬수도있기에 돌아가려는 순간 어느한쪽에 사람들이 유독 몰려있었다. "무슨일이지?" 가까이갈수록 고함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리기시작했다. 사람들틈을 비집고들어가자 비명과 고함소리의 정체를 알수있었다. 남자애랑 여자애다. 남자애는 여자애를감싸안았고 여자애는 남자애품안에서 울고있었다. 그리고 그런애들을 어떤남자가 발로차고있었다. "이런 망할애새끼가. 감히 누구한테 거짓말을해?" "진짜라고! 나는 당신지갑에 손안댔어!" 아무래도 지갑을훔치다 걸린듯했다. "후! 이새끼가 끝까지 발뺌을해?" 발로차는것을 멈추더니 이제는 주먹으로 아이를 무차별하게 때리기시작했다. '너무심한거아냐?' 다른사람들역시 같은생각인지 인상을썼으나 누구하나 말리는이는없었다. "에휴...놀러와서 이게뭐냐..." 그리고 그남자를향해 걸어가려는 그순간 탁 누군가 내어깨를잡았다.
  • 웬 거지같은 모습의 남자가 내어깨를 잡고있었다. "괜히 나서지말고 가만히있어." 걱정해주는것은 고맙지만 눈앞에 맞고있는것은 이제 7,8살정도먹은 애들같았다. "애들이 맞고있는데 보기만해요?" 그의 손을뿌리치고 아이들에게가려했지만 오히려 더욱 힘을주어 내어깨를붙잡았다. "살고싶으면 나서지마. 저녀석 검은달 조직원이다" 검은달. 우리마을뿐아니라 나라전체에퍼진 조직의이름이다. 약탈과 살인, 강간등으로 악명높았는데 어느정도냐면 대장간에서 살다시피하는 나조차도 이름을 알정도였다. 이제야 사람들이 왜 보고만있는지 이해가갔다. 말리지못한것이다. 괜히 말렸다가 자신한테 불똥이 튈까봐, 아니면 보복이라도 당할까봐, 아이들이 딱하기는하지만 나설용기는 없는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눈앞에서 저러는걸 보고만있어요?" 이이상은 말릴생각이 없는것인지 내어깨를 놔주었다 "그래...니맘대로해라" 가까이 다가가자 아이의몰골은 훨씬더심각했다. 얼마나 맞았는지 남자애의얼굴은 퉁퉁부어있었고 코와입에서는 피가흐르고있다. "저기요. 이제 그만하시죠?" 한참 때리고있던 그는 거친숨을 내쉬면서 나를 돌아봤다. 하지만 이내 아이들을 때리기시작했다. "이봐요! 그만하라니까요!" "꺼져. 너도 뒤지기싫으면." 그가 말했다.
  • 나는 사실 그의 압도적인 힘을 잘 알고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유명했던 검은달. 그들은 자신들에게 이득이 될만한 일들은 생명을 해치는 일이라 할지라도 서슴치않고 행했다. 하지만 나는 기죽지 않고 다시한번 얘기했다. "그만하세요 지금 이 어린아이들에게 무슨짓 하시는겁니까?" 나의 말에 처음에는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던 그 사람은 목 아래쪽부터 벌겋게 올라오며 단단히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분명 방금 신경 끄라고 했을텐데, 넌 나의 말을 무시했으니 잠시후에 널 죽여버리겠어" 그리고는 앞에 있는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는 내 오른편에 있던 주먹만한 짱돌을 들고서 그 사람이 시선을 돌리자 마자 달려가 정확히 정수리에 짱돌을 꽂아버렸다 "으억 으거으억" 정말 잠시동안 고통스러워 하던 그는 즉사하였고 잠시 후에 도착한 검은달 조직원들은 그 장면을 똑똑히 보고 말았다. 상대의 수는 대략적으로 20명 나는 제대로 배운 무술하나 없는 소매치기에 불과했기에 다리가 떨리는게 느껴질 정도로 몸이 떨려왔다. 몇 분 동안 정적의 상태로 시간이 흐른 뒤 갑자기 검은달 조직원들은 나에게 무릎을 꿇으며 "새로운 검은달 대장님께 인사 올립니다" 라고 얘기했다 알고보니 내가 즉사시킨 저 사람이 검은달 대장이였던 것이다
  • "그만하라니까!" 그의주먹을붙잡았다. "하 참. 오늘 왜이리 애새끼들이 지랄이지." 푸욱. 무언가 뜨거운것이 배에들어온것같다. 아래를내려다보니 셔츠에 무언가쥐어진 그의손이 닿아있다. "끄으으으윽...이자식..." 식은땀이 비처럼쏟아진다. 셔츠는 땀과 피로축축해져갔다. 떨리는손으로 그의손을잡았다. "그러게 왜 나서는거야 큭킄킄" 그의웃음과동시에 배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이들었다. "허어어억..." 배를부여잡았지만 출혈이심했다. 손가락사이로 피가쏟아졌고 정신도점점 몽롱해진다. 털썩. 결국 다리에힘이풀린것인지 시야가기울어진다. 쓰러지는 시야속에 보이는것은 수많은사람들이 나를보고놀라서 소리치는모습과 칼을만지작거리며 아이들에게 다가가는그였다.
  • 하지만 나는 슈퍼 히어로였다 이딴 칼나부랭이로 날 헤치진 못한다 상처가 난 배에서 하얗게 김이 올라왔다 "너 이새끼 오늘 뒤질줄 알아라" 그가 돌아봤다 "뭐...뭐야 어떻게 된거야?!" 나의 오른팔은 내가 원하는대로 변형시킬수 있다 오른팔에 힘을주어 내가 생각하는 가장 날카로운 물체로 변형시켰다 "너도 날 찔렀으니 나도 널 찌르겠다 불만있나?" 아무말도 없었다 그는 바지 아랫도리가 축축해진채로 말했다 "죄..죄송합니다 사..살려만 주세요" 하지만 이미 늦었따! 너눈 정의의 심파늘 바다야한다! "이야앗" 퓰썩 그가 쓰러져따 그사라믄 말해따 "아파..넘무넘무 아파"
  • "자 꼬맹이들아 저기 뒤져가는 저놈처럼되기싫으면 솔직하게말해. 내지갑 들고갔지?" 한걸음 한걸음. 다가갈수록 아이들은 겁에질려갔다. "에휴. 그러니까 내가나서지말라고했잖아" 누군가 내게다가왔다. "왜 나선거야?" 아까 나를말리던 거지다. 대답하고싶었지만 목소리가 안나왔다. 입만 벙긋거리고있자 내게귀를댔다. "뭐라고?" "ㅇ...애들..." 그러자 그는 기가찬다는듯한 표정을지었다. "야이 병신아. 니가뒤져가는데 무슨애들이야."
  • "에휴...그래. 나중에 물어볼게." 품안에서 보랏빛액체가든 병하나를 꺼내더니 내입에 들이부었다. 배에서 느껴지던 고통은잦아들었으나 의식은 오히려 더욱더 흐릿해져갔다. 무언가 말을하는것처럼 그의입은 움직였으나 아무것도 들리지않았다. 반응이없는 내모습을보고 한참을 말하던 그는 손가락으로 아이들을가르키고 자신을가르켰다. 아마도 자신이 구하겠다는것이겠지. 내심 불안했지만 이제는 그에게 맡기는것말고는 방법이없었다. 흐려져가는 시야속에 아이들에게 걸어가는 그의뒷모 습을끝으로 의식을잃었다.
  • 코끝에선는 익숙한쇠냄새가났고 귀에서는 누군가 작게 대화하는소리가났다 "....합니다." 눈을뜨자 제일먼저 보인것은 각종 검을 비롯한 수많은 무구들이 걸려있는벽과 망치가 올려져있는 모루였다. 내가 누워있는곳은 대장간에있는 내침대위였다. 일어서서 앉기위해 몸을일으키려고하자 "으윽!..." 배에있는 상처가 벌어진것일까 절로 신음소리가 나올정도로 아팠다. 겨우 일어나앉자 침대 주위에는 피묻은 붕대들이 널려있었고 누군가 식사를한듯 그릇들이 탁자위에 쌓여있다. 그리고 신음소리를 들은모양인지 누군가 들어왔다. "어? 니들은 그때" 들어온이들은 그때 그아이들이다.
  • 침대에 누워있는 내게다가오더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둘이서 입을모아 감사인사를하는데 듣고있자니 왠지 낯이간지럽다. "에이 내가뭘했다고. 감사는 그사람한테..." 그러고보니 잊고있었다. 나와 아이들이 무사한것은 전부 그사람덕이다. "너희들 거지처럼생긴 그분못봤니?" "누가 거지같다고?" 언제들어왔는지 벽에기대서서 우리를 보고있었다. "아 가..감사합" 그도 낯간지러운지 더이상 말하지말라는듯 손을들어 나를말린다. "아아 그만 그만. 감사는됐어." "그것보다 그때 물어본거나 답해주라." 그때 물어본게뭐지? 그에게 묻자 "왜 애들을구하려고했냐고"
  • 왜라니? 눈앞에서 아이들을 때리고있는데 말리는게 당연한거아닌가? "애들이 위험하니까..." "구하려고했다? 검은달한테서?" 그는 그때처럼 어이없어하는 표정을지었다. 마치 '뭐이런놈이다있지?' 라는것처럼. "너 검은달이 어떤놈들인지 알잖아. 사람들이 괜히 보고만있었는줄아냐?" "그래, 그건 그렇다치자. 그럼 칼에찔린건? 너 칼맞을줄알았냐?" "당연히 몰랐죠" 내가 이렇게말하기를 기다린것인지 씨익 웃었다. "그럼 알았으면? 그래도 도와줄꺼냐?" "그래도 도와줄껀데요?"
  • 그러자 내대답이 무엇이 그리우스운지 정말 즐겁게 웃었다. "큭큭큭큭큭. 아 진짜 재밌는놈이네." 한참을 웃고나서야 진정이되는지 숨을고른다. "좋아. 나중에 나랑 어디좀가자." "어딜요? 그리고 제가 왜가야하죠?" 옷을뒤적이다 품속에서 빈병하나를 꺼내서 내게 보여줬다. "이게 비싼약이거든." 그러고보니 그가 내입에 뭘붓는듯한 기억이있다. "혹시 제가 먹었던게 그거?" "맞아. 먹었으니까 계산을하셔야지?" 왠지 불길한 예감이들기에 그에게 물었다. "절팔거나 그런건 아니죠?" "야 이게 너하나 팔아서 살수있는물건같아?" 다행이라고 해야하니? "아무튼 따라와보면알아." 의심스럽긴했지만 스승님역시 흔쾌히 허락해주셨기에 그를 따라갈수밖에 없었다. "흠흠...잘다녀오거라. 그리고 반아." "네 스승님." "선택을 해야하거든 옳다고 생각하는걸 선택해라" 의미심장한말씀을 하시면서 등을돌리셨다. "이제 가보거라." 그런스승님께 감사한 마음을담아 절을올렸다. "다녀오겠습니다." 꼬맹이들은 아예 여기서 지낼모양인지 떠나는나를 향해 "다녀와 형아!", "다녀오세요!" 라며 소리쳤다. 그리고 1시간뒤 그를따라 도착한곳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곳이었다.
  • -1시간전 그를 따라가면서 여러가지 궁금한것을 물었지만 들을수있었던것은 그의이름뿐이었다. "내이름? 현수야. 근데 그냥 형님이라고 불러. 그게 편해, 나는." 현수. 상당히 이국적인 이름이라 그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지만 돌아온대답은 "나중에" 였다. 이외에도 여러가지를 물었다. 그녀석은 어떻게이겼는지, 지금가는곳은 어딘지, 내게 무엇을 시킬것인지 등등을. 하지만 역시나 모호한 대답만할뿐이라 결국 이름만 안것이다. 쉴새없이 질문을하는 내게 이번에는 형님이 질문을 하셨다.
  • "보니까 거기서 일한지 꽤 된거같던데. 영감님 손주냐?" "아뇨. 스승님은 저를 어릴때 거둬주셨어요." 나보다 앞장서서걷던 형님은 내게 걸음을 맞추며 내게 물었다. "무슨일 있었냐?"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떠오르자 자연스레 얼굴이 어두워진것인지 "말하기 싫으면 안해줘도 괜찮아." 라며 미안해했다. 그런데 길을가면 갈수록 익숙한 풍경에 혹시나 하는 생각을했다. 어쩌면 그곳아닐까 하는 그런생각을. 그리고 도착한곳은 "이레인님저택?" 내가 이곳을 아는것이 뜻밖인지 형님은 놀라는 눈치였다. "너도 그아저씨아냐? 거참 신기한 우연이구만." 노크를했지만 저번과는다르게 문은 금방열렸다. "현수님이시군요. 어서 오십쇼." 그리고 형님 뒤에서있는 나를보더니 "반님? 여긴 어쩐일로 오셨습니까?" 형님이 집사님께 다가가서 귓속말로 무어라하자 집사님의 눈빛이 달라졌다. 뭐랄까 감사와 미안함이 합쳐진듯한 오묘한눈빛이었다. "그럼. 안내해드리지요" 그리고 레온님을 따라간곳은 저택의 지하실이었다
  • 만약 검으로 이루어진 강이있다면 아마도 이런 느낌일것이다. 지하실바닥에는 무수히많은 검들이 두동강이난상태로 굴러다니는탓에 발디딜틈조차 없었다 그리고 그런 지하실가운데 놓여있는 탁자앞에는 한 남자가 서있었다. 전체적으로 생김새가 둥글둥글한것이 배나온 옆집 아저씨처럼생긴 남자였다. 양손에 검을 한 자루씩 들고있었는데 한쪽은 평범했으나 다른한쪽은 특이했다. 검의 날부분에는 금이 안간곳이 없었고 가드부분은 녹슬어있었다. 이미 망가질데로 망가진 그것은 이제는더이상 검이라고 부를수없는 고철이었다. "흐으으읍!" 양손에있는 검을 포개자 그곳에서 불꽃이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안가 바닥에있는 다른검들마냥 멀쩡했던 검은 두동강이나버렸다. "후...역시 무리인가" "이레인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그제서야 우리가온것을 알아차린 그는 수건으로 이마와 턱에있는 땀을닦으며 우리를반겼다. "어서오시게나. 오랜만이로군."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나를 한번 슥 보더니 형님에게 물었다. "저소년은 누구인가?" 레온님에게 했던것처럼 귓속말을하자 이레인님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오오! 이거 우리 가문의 은인이었구만. 잘부탁하네." 은인? 도대체 뭘시킬 작정인지 이제는 궁금하기보다 걱정이되었다.
  • 나의 걱정을 눈치챈 형님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별일 아니야. 일단 한번 살펴볼래?" 건네받은 검의 상태는 보기보다 훨씬 심각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깨져버릴 것 같은 상태였다. "이거 고치기 힘들겠는데요?" 하지만 돌아온 것은 대답이 아닌 소름 끼칠 정도의 정적이었다. "저기... 요.. 어라?" 모두가 시간이 멈춘 듯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게 무슨.." 사람뿐만이 아니다. 벽에 걸린 횃불조차 일렁이는 불꽃 그대로 멈추었고 오직 나만이 지하실에서 움직이는 유일한 존재였다. 하지만 이상 현상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 어!" 단단하던 지면이 마치 모래 늪처럼 변해 발부터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다. "으윽" 발버둥 치면 발버둥 칠수록 더욱 깊숙이 빠졌다. 하지만 당황한 내가 그것을 알 리 없었고 순식간에 지면 속으로 완전히 잠기게 되었다. 그렇게 들어간 곳은 완전한 어둠 그 자체였다. "으읍" 공기마저 없는 것일까 숨조차 쉬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지면 위로는 갈 수 없었다.
  • '뭐가 별일이 아니야?! 죽게 생겼구만!' 하지만 기절하기 바로 직전에 누군가 내 발목을 잡아당겼고 어디론가 떨어졌다. 어두운 곳에 있었던 탓에 밝은 곳에 나오자 눈이 부셨다. 물론 숨 막혀 죽다 살아난 내게 눈이 부신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지만. "커흑 켁 켁.." 엎드려서 숨을 고르는사이 나를향해 걸어오는 한쌍의 발이 보였다. 고개를 들자 양손에 팔짱을 낀 채 나를 노려보는 내 또래의 소녀가 보였다. 치켜올라간 눈매 탓에 약간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인상을 가진 소녀였다. "너 내 결계는 어떻게 들어왔어?" 그녀의 질문에 오히려 내가 묻고 싶었다, 여긴 어디인지 그리고 너는 누구인지. 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건 그렇다치고. 여긴 왜 들어온거지? 아직도 내힘을 노리는 녀석이 다있네" "그게 무슨 소리야? 힘이리니?" 하지만 그녀는 내 대답이 시치미를 뗀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코웃음까지 치며 어이없어했다. "흥! 시치미 떼기는. 야 너같은 놈이 한둘인줄 알아? 어디서 날 속이려고" "아니 속이긴 누가 속인다고 그래?!" 이후로도 그녀의 오해를 풀기위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을했고 다행히도 그녀는 어느정도 믿어주는듯 했다. "그럼 너는 누구야?" "내 이름은 반이야." "그렇구나. 그런데 정말로 날 몰라?"
  • "몰라. 난 그저 검을 잡은 것뿐이라고." 검이라는 말을 듣자 그녀가 갑자기 한숨을 쉬더니 내게 다가왔다. 딱! 주먹을 쥐어서 머리를 때렸다. "아! 왜 때리는 거야!" 한대맞고 눈물이 핑 돌정도로 진심으로 때린것이다. "이 멍청아! 그게 나라고!" "뭐?"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갑자기 자신이 검이라고 한다면 누가 알아듣겠는가? "너 사람 아니냐?" "하아아아..." 고개를 푹 숙이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그녀는 이마를 짚더니 한번 더 한숨을 쉬고 내게 물었다. 설마 모를까 명색이 대장장인데. 자아를 가진 검이라는 뜻으로 우리 대장장이들 사이에서는 그저 모험가들의 헛소문으로 치부했다. "알지. 근데 그거 거짓말이야." 애초에 모험가들은 이야기를 부풀리는 경향이있다. 도마뱀형 몬스터를 잡고서는 '내가 용을잡았다!' 라고 하는게 그들이니까. "그.러.니.까!" 갑자기 그녀가 내게 다가와서는 멱살을 쥐고 흔든다. "내가 그 에고 소드의 자아라고! 여긴 그안이고" "뭐어어어?!"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모험가들의 헛소문이 아니라는것인가? 하지만 이게 다가아니었다. "원래대로면 땅속에서 기절하는게 정상인데 너 뭐야 도대체?"
  • "그럼 시간이 멈춘것도?" 그녀는 내멱살을 놓아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전부 내가 설치한 결계였다고" 머리를 부여잡고 괴롭다는듯 끙끙 앓기시작했다. "으으...안그래도 시간이없는데..." "시간이 왜?" "앞으로 5일정도 지나면 이검은 부러질꺼야." 검이 부러진다면 그녀는 어떻게 되는것이지? "그리고 나는 소멸하겠지" 자신의 죽음을 말하는데도 표정하나 바뀌지않고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였다.
  • "자...잠깐만! 소멸이면 죽는다는거야?" "아마도?" 저게 어딜봐서 자기 죽음을 말하는 태도란말이야? "그럼 죽는게 안무섭냐?" "당연히 무섭지." 뭘 그런 당연한걸 묻냐? 라는듯한 표정을 짓는 그녀는 이어서 말했다. "그래도 아무하고나 계약할수는 없지." "계약?" 내가 묻자 그녀는 목을 한번 가다듬고 말했다. "크흠. 계약이란건 나같은 검들이 사람이랑 맺는걸 말해. 영혼을 통해서 맺지." "하지만 계약을 어기거나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하지않을 경우엔 나처럼 부서져." 그래서 그런 상태인건가. "아까말한 힘을 빌려준다는게 계약을 말한거야?" "그렇지. 근데 날 찾아오는게 하나같이 이상한 놈들밖에 없었어." "이상한놈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찾아왔었기에 기억만으로 저렇게 불쾌한 표정을 짓는 것일까? "내가 이래 봬도 망가지기 전에는 명검이라는 소리 좀 들었거든." 의기양양하게 말하다가도 "그 탓에 이놈 저놈 별에 별놈 다 만났지만." 금세 옛 기억을 떠올리고는 풀이 죽어버렸다. "계약을 맺으려고 소리치고 욕하는 건 애교지. 1분마다 사람을 죽이는 녀석도 있었다니까?" 세상에. 아무리 명검이 탐난다지만 사람을 죽이다니?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됐어?" "다 죽여도 내가 안 해주니까 다시 팔아버렸어." 죽이는 그 사람도 이해가 안갔지만 그녀 역시 이해가 안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데 보고만있냐?" 그러자 되려 그녀가 화를냈다. "뭐? 야! 니가 계약이 어떤 의미인지 몰라서 그래. 평생을 함께할 파트너를 그런놈으로 하라고?" "하지만..." "평생을 버리면서까지 그사람들을 살려라 이말이야? 내가 왜그래야하지?" 내가 답을 하지못하자 그녀는 나를 비웃었다. 마치 그럴줄 알았다는듯이. "흥. 너같은놈들이 그렇지. 말로는 희생, 희생거리면서 나설 용기도없는것들" "뭐라고?! 나였으면 당장 계약했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를 비웃는듯한 태도였다. "그럼 증명해봐." 증명이라니? 여기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어디있... "아..." 있다. 바로 내눈앞에.
  • "계약을 맺어서 나를 구해보라고" 그게 어려운 일인가? 생각보다 쉽다고 생각했다. "그정도야 쉽지" "과연 그럴까? 너 대장장이지?" 도대체 그녀가 어떻게 안것이지? 놀라서 대답조차 못하는 내게 그녀는 친절하게도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뭘 그렇게 놀라? 이정도는 기본이야" "검을 통해 그사람의 수준을 알수있지" 손을 낚아채더니 자신의 손으로 여기저기 눌러본다. "그런데 너는 검을 제대로 잡은적도 없으면서 굳은살은 제법있거든" 이번에는 팔을 이리저리 주무른다. "근육도 마찬가지. 검을 쓴다고 발달한게 아니야." "손에 굳은살이 박힐정도로 무언가를 쥐고 팔에있는 근육이 그정도로 발달하려면? 뭐 대장장이지" '괜히 명검이 아니구나' 속으로 감탄을하다 앗 하고 정신을 차렸다. "그래서 대장장이인게 무슨 상관이지?"
  • "상관있고말고. 나랑 계약하면 다른 검들은 손에 못 대거든" '다른 검에 손을 못대? 그럼 대장장이 일은? 설마...' 내가 깨닫는 것과 동시에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히히히 그래 날 살리면 대장장이는 평생 못할 거야" 대장장이를 못한다는 생각에 스승님이 떠올랐다. 내가 제자가 되기 전부터 스승님은 홀로 대장간을 운영하셨다. 그러다 생긴 제자인 나를 말로는 구박을 하셔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시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분명 내가 다쳤을 때 간호해주신 것도 스승님이 셨다. "아니면 그냥 인정하고 돌아가던가? 나야 5일뒤에 소멸하겠지만 니가 신경쓸일 아니잖아?" 그건 그랬다. 오늘 처음본 그녀를 살리기위해 내평생을 버리는것은 남들이 보기에는 바보같다고 할것이다.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도 없는 내가 유일하게 할줄아는 대장간일을 포기하는것, 말그대로 평생을 버리는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살수있잖아?" "뭐라고?" 그녀는 이해가 안 가는 것인지 내게 다시 물었다. "대장장이일은 못해도 살수는있어. 하지만 너는 계약을 못하면 소멸하잖아" "정말 남을 위해서 니인생을 줄수있어? 그런 사람이 있다고?" 그녀의 표정이 이제는 놀라움을 넘어서 경악하는 수준이었다. "도대체 너는..."
  • 고개를 숙인채 어깨를 들썩이는 그녀를 보고 순간 그녀가 우는줄알았다. "크흑.....아하하하하하" 하지만 그녀는 웃고있었다. 그것도 아주 해맑게. "흐흐흐흐 후우..." 한참을 그렇게 웃다가 겨우 한숨돌리는 그녀. "너같은 바보는 처음이다." 아까와는 달리 기분 나쁘지 않았다. 비웃거나 하는 그런 종류의 웃음이 아니라 정말로 재밌다는 듯이 웃고 있었기에. "그래도 말이야" 오른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 그녀 "잘부탁해. 파트너" "그래" 그리고 그녀의 손을잡는 순간 "어때? 고칠수 있겠어?" 저택의 지하실로 돌아왔다.
  • 조금 전까지만해도 못미더웠던 반의 눈빛이 무언가달라져있었다. 어떤 결심을 한듯한 눈빛이었다. "어때? 고칠 수 있겠어?" "아뇨." 금이 가있던 검날에서 액체 같은 것이 흘러나와 검을 적셨다. 그리고 금이 간 곳 구석구석 스며들어 마치 상처에서 새 살이 돋듯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흐음?" 녹이슨 부분역시 오래된 묵은때를 벗겨내듯이 떨어져나갔다. "그럴필요는 없어요"
  •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더이상 낡은 고철덩어리가 아니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하나의 검만이 그의 손에서 빛을 내고있었다. "오오...이럴수가!" 검에서 일어난 변화를 보자 이레인은 물론 좀처럼 감정의 변화를 나타내지 않는 레온마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현수의 표정은 뜻밖이라는것을 빼면 처음과 비슷했다. "반님. 해내셨군요." "아.. 아뇨 제가 뭘 했다기보다는.. " 정말로 그가 한 것이라곤 그녀와 계약을 맺은 것이 다였다. 물론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가 검을 수리한 것처럼 보였겠지만. "아닐세. 자네가 그녀를 구했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다들 그를 칭찬하는 가운데 반은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녀? 분명히 시간이 멈춘뒤로는 나만 움직였을텐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혹시 다들 알고있었나?' "저기 혹시 다들 알고있었나요? 이안에 여자애가 있는걸?" 그러자 오히려 이레인과 레온이 의아하다는듯이 그를 처다봤다. "자네. 알고서 여기온게 아닌가?" "반님이 스스로 이아이를 구하시겠다고 오신게 아닌겁니까?" '이건또 뭔소리야!' 그들은 이미 알고있었던것이다. 애초에 이레인이 검을 소유하고있는데 본인이 모른다는것은 말이 안 됐다. 그리고 반이 현수를 바라보자 그는 미소를 지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거짓말을 들켰을때의 표정이다.
  • "나? 당연히 알고 있었지." 역시나 반의 예상대로였다. "그럼 왜!" "왜 안 말해줬냐고? 시험해보고 싶었거든" 시험이라는 현수의 말에 반은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잘못하면 그녀는 소멸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도대체 뭘 위해서 그런..." 그에게 따지려 했으나 반은 그럴 수 없었다. 미소를 짓고 있던 아까와는 달리 그가 처음으로 진지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대장간으로 돌아가자. 거기서 전부 설명해줄테니까." 결국 어느 것도 알 수 없었다. 돌아가는 동안에도 그는 입을 굳게 닫은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돌아왔구나." 돌아온 반을 반기는 스미스와 그런 그의 뒤로 아이들이 고개를 내밀며 누가 온 것인지 확인을 했다. "누구 왔어요? 어 형아!" "오셨어요?" 해맑은 아이들과 달리 반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본 스미스의 표정은 어두웠다. 현수는 아이들에게 잠시 자리를 비켜달라고했고 그렇게 반과 스미스, 그리고 현수만이 남았다. "그럼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줄까?" "전부다요" 그럴줄알았다는 말과함께 설명을 시작했다. "네가 정신을 잃은뒤에 영감님한테 한가지 제안을 했지. 그렇죠?" 스미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반은 배신감에 사로잡혔다. "스승님..." 믿고있었던 스승의 고백에 배신감을 느끼는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아무튼 제안한건 한가지. 바로 너야" 그러건 말건 현수는 이야기를 계속했지만. "저를요?" "그래. 만약 니가 계약에 성공할경우, 내가 널 데리고 가는거지." "그럼 실패하면요?" 하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글쎄다? 딱히 없는데?" 그렇다면 이거래는 애초에 말도안되는 거래다. "스승님은 이걸 받아들이셨고요?" "저분이 아이들과 너를 데리고오면서 그러더구나."
  • '이 아이들이 어떤 남자에게 맞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이들을 구할 생각조차 못 했죠. 그러다 이 친구가 그걸 본 겁니다. 제가 말려도 겁도 안 내더군요. 그러다 칼에 찔리고 정신을 잃기 전에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애들을 구해달라.였습니다. 솔직히 이 말을 듣고 뿌듯했다. 물론 무모한 짓을 한 건 화가 났지만 말이다." 미소를 짓고있었지만 그의 마음 한편에는 반을 향한 미안함이 존재했다. "그리고 네가 들고있는 검을 설명해주면서 내게 제안을하더구나. '만약에 저친구가 그녀를 구한다면 제게 그를 주십쇼.' 라고."
  • "말하지 않아서 미안하구나." 고개 숙이는 스미스를보자 반의 가슴속에있던 배신감은 눈녹듯이 사라졌다.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죄송해요..." 눈물을 글썽이며 용서를 구하는 반에게 스미스는 괜찮다며 그를 진정시켰다. "옳다고 여기는것을 선택하라고 말하지않았느냐 그리고 그덕에 그녀도 구했는데 뭐가 죄송하는거냐." 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자랑스레 현수를 보면서 그는 말했다. "이런 울보에다 바보같은 놈이지만 잘부탁드립니다." "스승님..." 손을 얹은채로 이번엔 반을 바라보았다. "반아, 세상에는 그녀처럼 도움이 필요하지만 아무도모르게 사라져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단다. 가서 그들을 돕거라." 그리고 스미스는 왼손으로 자신의 등뒤를 가르키면서 말했다. "내걱정은 말거라. 저꼬맹이들덕에 심심하지는 않을게다." 그런 스승의 말에 반은 눈물을 소매로 닦으며 현수에게 물었다. "그게 형님이 제게 시킬일인가요?" "뭐 당분간은?" 아이들에게 반이 떠난다는 사실을 알리자 눈물바다가 되버렸다. 만난지 얼마안됬지만 그사이에 정이들어버린듯하다. 훌쩍이는 아이들과 덤덤하게 배웅하는 스미스를 뒤로한채 현수를따라 반은 대장간을 떠나게 되었다.
  • -다들 잘보고있는지 모르겠다. 부족한필력에 이렇게까지 길게쓴건 처음이거든 뭐 이제 프롤로그정도지만
  • 노력추
  • 대장간을 떠나 도착한 곳은 이레인 저택이었다. "어서오십시요 반님, 현수님."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하던 레온의 두 눈이 반과 현수를 빠르게 훑었다. "일단 두 분 모두 씻으셔야겠군요." 레온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방에 있는 욕실에서 목욕을 하고 나온 반은 커다란 크기의 침대에 누군가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구.." 반의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린 남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듯한 모습이었다. 칠흑같은 머리칼과 눈, 하얀 피부, 붉은 입술.. 각양각색의 머리칼이 있지만 검은색머리칼은 존재하지 않는 이 곳에서 홀로 검은 머리칼을 가진 남자의 모습은.... 두근. " 나야 현수." 왠지 모를 두근거림을 안겨주었다.
  • "이제 어디로 가는 거죠?" 반의 물음에 그는 두 가지 선택권을 주었다. "엘프들의 숲으로 갈래? 아니면 수도로 갈래?" 그의 제안에 반은 고민에 빠졌다. "흐으으으음..." 여태껏 마을을 떠난 적이 없는 반에게는 어느 쪽도 매력적이었는데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겨우 정할 수 있었다. "수도도 좋지만 그래도 엘프쪽이 낫죠." "그럴줄 알았지" 그를 따라 도착한 곳은 마차를 타는 곳이었는데 놀랍게도 귀족들이나 탈법한 고급스러운 마차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형님 혹시 부자세요?" "응? 부자는 아니고 그냥 먹고살정도지."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하는 그를 보고 반은 더욱 그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 그러거나 말거나 마차를 올라타는 현수를보고 반은 따라서 탈수밖에없었다. 마을을떠나 길을따라서 달리던 마차는 어느새 울창한 숲으로 들어섰는데 쉴새없이 달려온 마차의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기시작했다. "저기...손님, 여기서부터는 그게 좀..." 안절부절 어딘가 불편한것일까? 마부의 안색이 좋지않았다. "흠 그럼 여기서부터 걸어가자" 하는수없이 마차를 내리는데 돈을 받자마자 마차는 순식간에 왔던길을 돌아가버렸다. "저사람 왜저러죠? 갑자기" "감이좋은걸?"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반에게 들렸다. "아. 티아구나." 그녀의 이름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모르고 있었는데 마차를 타고 오는 도중에 현수가 그에게 그녀의 이름은 알고 있냐고 묻자 모른다고 하는 그를보고 기가 찬 나머지 알려준 것이다. '너 그것도 모르고 계약했냐?' 라며 잔소리까지. 그건 그렇고 감이 좋다는 건 무슨 뜻일까.
  • "그런데 왜감이좋다는거야?" 그의 물음에 그녀는 대답대신 한숨을쉬었다. "에휴..." 그모습을본 현수는 웃으면서 대신 답해주었다. "너는 아직 못느끼겠지만 지금 이숲은 마나의 농도가 아주짙어." 여전히 알아듣지 못하는 반을 위해 그는 추가로 덧붙였다. "그리고 숲에서 그럴 경우엔 대부분 원인은 한 가지. 바로..." "강한 몬스터가 닥치는 대로 죽여서 영혼들이 마나로 바뀐 거지. 그러니까 제발 돌아가자, 응? 너 같은 약골이 어찌할 수준이 아니라고!" 농후한 마나 탓일까 아니면 그녀의 경고 탓일까?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반이었다. "혀... 형님. 엘프들이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을까요?" 두려움에 떨고 있는 반과는 달리 문제없다며 그를 다독였다. "걱정하지 마. 그 녀석이 사는 곳까진 안 갈 테니까." 그의 말에 조금이나마 안심을 한 반과 여전히 경고를 하는 티아를 이끌고 현수는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 "...!" 누군가 자신을 노려보는듯한 이상한 느낌에 반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나무와 높은 풀들이 전부였다.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지금도 느껴지는 이상한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반은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즈음, 현수가 반에게 손짓했다. '멈춰' 갑자기 자신을 멈춰세운 이유가 궁금했기에 그의 옆구리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는데 "윽!..." 이쪽을봐도 저쪽을봐도 온통 붉은색이다. 바닥에는 어떤 동물인지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찢긴 고깃조각들이 흩어져있었고 가지에는 분홍빛의 내장들이 마치 축제장식마냥 걸려있었다. "어떤놈인지 참 더럽게도 먹었네" "우웁..." 뒤늦게 피와 내장냄새를 맡은 반은 결국 참지못하고 토를해버렸다. 그에반해 현수는 표정하나 안바뀌고 살점과 내장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 "흠...이거 제법 덩치가 큰놈일세?" "...." 시체를 살펴보던 현수가 갑자기 어딘가를 뚫어지게 노려봤다. 토를하고 일어난 반도 그쪽을 바라본순간 ".....세요" 반의 귀에도 분명히 들렸다. 작지만 누군가가 도움을 청하는 소리다. "형님" 이미 그는 소리가 난 곳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풀숲에 쓰러져있는 어떤 여성을 찾아냈다. 긴 은색의 머리칼은 피와 흙먼지로 인해 더러웠고 옷은 여기저기 찢기고 구멍이 뚫린 곳도 있었는데 그곳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뒤늦게 따라온 반은 그녀를 보자 화들짝 놀랐다. "형님 그 사람 살았어요?" 그녀의 상처 부분을 살펴보고 맥을 짚어보더니 품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치료했던 보랏빛 액체를 꺼내는 줄 알았으나 그의 손에 있는 것은 연한 연두색 액체였다.
  • "저번에 그거랑 다른 건가요?" "응. 얘는 엘프니까" 뚜껑을 여는 순간 향긋한 풀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어찌나 강한지 비릿한 피 냄새를 지워버릴 정도로 향이 강했다. 약이 줄어들수록 새햐얗던 그녀의 안색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상처까지 아물어갔다. 그런데 잘 마시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아.... 으...." 심지어 입에서는 검은색 액체가 흘렀다. 그럼에도 현수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기만 하자 보다못한 반이 그에게 소리쳤다. "저 사람 저러다 죽겠어요!" "야 안 죽어 인마! 원래 이러는 거야" 그의 말대로 서서히 들썩임이 잠잠해지더니 검은색 액체도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야 잠깐만 움직이지 마라" "네?.. 그게" 반이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차가운 무언가가 그의 목에 닿았다. "움직이지 마라." 그제서야 반은 자신의 목에 있는 것이 시퍼런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언제 온 것인지 현수의 목에도 검이 겨눠져있었는데 그들의 생김새로 보아 그녀를 찾으러 온 동족인듯했다.
  • 그들은 그녀의 상태를 살피더니 검을 거뒀다. "아무래도저희가 오해를한모양이군요." "휴..." 무사히 오해가 풀려서 안심하는 반에 비해 현수는 어딘가 석연찮은 표정을 지었다. 한명은 쓰러진 그녀를업고 먼저떠났고 나머지 한명이 반과 현수에게 고개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동족의 은인께 실례를 범했습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오해할만하죠" 현수가 괜찮다고하자 그의 표정은 밝아졌고 자신을 따라오라며 엘프들의 은신처로 안내하겠다고 했다. "여러분에게 대접을 하고싶습니다. 부디" 거절할 이유는 없었기에 흔쾌히 그를 따라갔다.
  • "그러고보니 이름을 못들었는데?" 앞장서서 걷던 그는 고개를돌려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제 이름은 샤엘입니다." "그렇구나." 그것을 끝으로 대화는 더이상없었고 묵묵히 걸었던 탓일까? 생각보다 그들의 은신처라는곳은 그리 멀지않았다. "와..." 그들이 사는곳을 보자마자 반은 그저 감탄할수밖에 없었다. 우선 그들의 집은 거대한 나무위에 지어진게 마치 밤하늘에 떠있는 별들같았다. 그리고 하나의 거대한 구체가 중앙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달빛을 대신해서 이곳을 밝히고 있었다. 아직 해가 지지않았음에도 이곳은 밤처럼 느껴졌다.
  • 그리고 반과 현수가 들어서자마자 "와아아아아!" 정말로 수많은 엘프들이 이들을 반겼다. "흐음" 이번에도 현수의 반응은 미미했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듯한 그의 태도와는 달리 반은 그들의 환호에 일일이 손을 흔들어주며 답했다. "어서 오십쇼. 제가 이곳의..." "알아 알아, 엘프들은 나이순으로 계급을 나누지. 그건 됐고 이름이?" 한 엘프가 걸어오며 자신을 소개하려 했지만 현수는 이를 끊고는 이름을 물었다. "예?... 티모시라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그의 질문에도 곧바로 정신을 차린 그는 자신을 티모시라고 말했다. "티모시라고? 그쪽 이름이?" 뭐가 문제인지 재차 물어보는 현수에게 티모시는 웃으며 답했다. "예. 티모시입니다." 그의 대답을 듣고 작게 미소를 지었으나 볼 수 있었던 것은 반밖에 없었다. "우선 여러분에게 대접을..."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잖아? 그쪽 괴롭히는 괴물말야. 우리가 잡아주지." 이번에도 말을 끊는 현수. 하지만 이번에 반응한 것은 티모시가 아닌 티아였다. "야 이현수. 너 우리 반 죽이려고 작정을 했구나?" "우리?" 혼자 얼굴을 붉히는 반은 내버려 둔 채 티아는 계속했다. "얘가 무슨 수로 잡아! 네가 할 거야?!" "벌써 정이 드셨구먼. 걱정 마라 충분히 잡을 수 있어" 한편, 현수와 티아가 다투는 사이 정신을 차린 반이 티모시에게 물었다. "혹시 그녀를 공격한 괴물을 알고 있어요?"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입니다..."
  • 그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는 원래 펜리르라고 불리는 거대한 늑대가 살던 곳이었는데 자신들이 여기에 자리를 잡으면서 내쫓았다고 한다. 그후로 벌써 300년이 지났음에도 펜리르는 집요하게 자신들을 공격했다고 한다. "부디 저희를 도와주세요..." 고개숙여 부탁하는 티모시를보자 반은 절로 그를돕고 싶다는 생각이들었다. "싫어! 니가 직접해!" 물론 티아는 여전히 반대를 하는중이었다. "티아. 그래도 이분들이..." "글쎄 위험하다니까?! 제발 부탁이야 응? 아까 시체들 못봤어? 진짜 죽는다고!" 완강하게 거부하는 그녀를 보다못한 현수가 나섰다. "알았어 알았다고!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내가나설게 그러면 문제없지?" 그렇게 겨우겨우 티아의 허락을 받고 있을 무렵 "으으..." 어딘가의 방에서 침대에 누운상태로 그녀는 깨어났다. 그리고 그녀가 깨어났다는 소식을들은 가족들이 찾아왔지만 "누구세요..?" 자신의 가족을 못알아봤다. 심지어는 "여긴 어디고 저는 누구죠?.." 자기 자신조차 기억하지못했다.
  • "우욱..." 티모시가 설명해준 길을 따라서 펜리르가 살고 있는 동굴에 도착하자 반은 다시 속이 메스꺼워졌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우와...이거 장난아닌데?" 죽은지 오래된 백골부터 이제 막 썩기시작하는 시체까지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없을 정도였다. "야 진짜 니가 나설꺼지?" 수많은 시체들을보자 불안해진 티아가 현수에게 물었지만 그는 그저 동굴로 걸어들어갔다. 하는수없이 그를 따라들어가는 반을 티아가 불렀다. "야. 진짜 위험하다싶으면 냅다 도망쳐. 알았지?"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인뒤 현수를따라 더깊은곳으로 들어가게되었다. "형님. 안추워요?" 점점 깊이들어갈수록 알수없는 한기를 느끼는 반이었으나 현수는 괜찮은것인지 별다른 말은 없었다. "슬슬 괜찮아질껄? 아마도" 아마도라는 말이 신경쓰였지만 그의말을 믿을수밖에 없는 반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까, 앞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후우. 통로만 이어지던 동굴이 드디어 거대한 공간으로 바뀌었고 그곳에서 반에게 보인것은 작은 언덕이었다. 소리에 맞춰서 오르락 내리락하는 저것이 바로 펜리르였다. 입에서 튀어나온 송곳니가 반의 상반신 정도니 오죽 거대했으면 반이 언덕이라고 느낄정도였다. 그들의 인기척을 느낀것인지 서서히 감겼던 눈이 뜨이면서 날카로운 이빨들이 박힌 입을 쩍 벌리더니 "흐아아아아암..." 늘어지게 하품을했다. "혀..형님?" "자고일어났으면 기지개를 펴야지. 안그래?" 당황하는 반과 달리 현수는 태연하게 그것에게 말을걸었다. 하품을 하다가 자신에게 말을거는 현수를 한번 슥 보더니 거대한 머리를 그에게 가져갔다. "스으으으으읍" 깊게 숨을 들이쉬면서 그의 냄새를 맡던 펜리르의 분위기가 갑자기 돌변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반은 무언가가 자신의 심장을 강하게 움켜쥐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호흡 역시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압박감이 반을 덮쳐왔다. "정신 차려!" 그녀의 외침과 팔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충격 덕분에 가 가스로 정신을 차렸다. "고.. 고마워" 하지만 그의 감사 인사는 그녀에게 들리지 않았다. 점점 더 강해지는 펜리르의 기운에 그녀는 굳어버렸다. "너 정도 녀석을 그것들이 보냈을 리는 없고. 너 정체가 뭐냐?"
  • '그들이 누구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펜리를 앞에두고도 그의표정은 변함없었다. "네힘이 필요해. 엘프들을 구할수있게 도와줘" 현수의 말에 펜리르는 그를향한 경계심을 한단계 끌어올렸다. "지금 뭐라고 했어?" "우리를 도와서 엘프들을 구하자고" 이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반은 현수에게 물었다. "엘프들을 구하다뇨? 펜리르가 그런게 아닌가요?" 펜리르의 거대한 눈동자가 반에게로 돌아간 순간 "윽!.." 아까와는 비교도 할수없는 감각이 그에게 전해졌다.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몸 구석구석이 짓이겨 지는듯한 기분이었지만 비명조차 지를수없었다. 이번에는 현수가 나서서 그를 도와주었다. "진정해. 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너도 착각하지마. 엘프들때문에 돕는거지 니가 좋아서 그러는건 아니니까" 그가 살기를 거두자마자 반은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반? 야 정신차려!" 티아의 외침에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않자 현수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펜리르에게 말했다. "어쩔꺼야? 너 때문에 기절해버렸잖아."
  • 반은 푹신푹신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무언가가 자신을 감싸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손을 뻗어서 더듬거리자 물컹하는 감촉과 함께 "흐엑!.." 이상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얌전히 탈것이지 어딜 만져?!" 눈을뜨자 익숙한 그의 얼굴이 보였다. "형님...여기는?" "니가 기절하는바람에 이녀석 등에타서 움직이는 중이야. 어때? 승차감 죽이지?" 그제서야 자신들이 펜리르의 등에 올라타있는것을 알고서 그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괜찮아" 다행히 그는 그리 신경쓰지 않는것인지 아니면 기절 시킨것이 미안한건지 화를 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화를 낸것은 티아였다. "야 늑대.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하지?" 그녀의 일갈에 그는 오히려 코웃음을 치면서 으르렁 거렸다. "입조심해라. 평소였으면 진작에 너나 네주인이나 죽었을꺼다." "뭐..뭐라고?!" 대꾸하려던 티아가 입을 닫았다. 아무리 그녀가 명검에다 특별하다 한들 아까 느꼈던 살기 앞에서는 꼼짝도 할 수 없었으니 아마도 그의 말대로겠지. 험악해진 분위기를 읽은 현수는 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보니 엘프들이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 궁금하지않냐?" "아 네! 궁금해요"
  • "일단 살아남았던 걔부터. 나는 그때부터 의심을 했거든." 다쳐서 쓰러져있던 그녀가 왜 의심이 갔을까? 반이 묻기도 전에 그는 설명해주었다. "동물들은 다찢겨서 죽었는데 걔는 고작 구멍 몇개가 전부였잖아? 심지어 살아있었고, 우연치고는 너무 수상하잖냐. 그리고 두번째는 이름이야" "이름요?" 이번에 반의 물음에 답한건 현수가 아닌 펜리르였다. "원래 엘프들은 어느정도 나이가 지나면 2번째, 3번째 이름을받는데 너희들이 만났던 엘프들은 전부 이름을 하나씩 말했지?" 그러고보니 다들 하나의 이름만 말하고 다른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째서 수상한 것인지 펜리르에게 묻자 그는 "첫 이름은 부모가 지어주지만 나머지는 아니야. 두번째부터는 정령들이 지어주지. 그리고 자신을 소개할때는 반드시 그이름들을 말하거든" 정령이라는 단어를 이해못하는 반을 위해 현수가 설명을 덧붙였다. "정령들은 간단히 말하면 다른세상에서 사는 존재들이지. 마계, 천계, 명계, 정령계, 그리고 여기 현계. 이중에 정령계에 사는 친구들이지." "그친구들은 우리세상에 오래있지 못해. 자기 세상으로 돌아가야 하거든. 그래서..." 설명이 길어지자 펜리르가 헛기침을 하며 그의 말을 끊었고 자신이 설명을 이어갔다. "크흠...아무튼 어째서 이름을 못말하냐면 기억으로 알수있는게 아니거든. 정령들의 이름은 영혼에 새겨져 그래서 정신을 조종한다 하더라도 알수없지." 그렇다면 이제 궁금한 것은 두개, 누가 그리고 왜 그랬냐는 것이다.
  • 반은 현수에게 물으려 했으나 펜리르에게 물었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 그런것은 아니다. 그저 그가 설명하는것이 즐거워보였기 때문일까. "그럼 누가 왜 그런거죠?" 생각만으로도 화가 치미는것인지 반이 묻자마자 이를 갈았다. 까드득 까드득. 소름끼치는 소리에 반은 자신이 실수했다는것을 깨닫고 그에게 사과하려 했다. "죄송..." "원래 누루엔은 토끼같은 작은 동물들을 유인해서 잡아먹는 녀석이야. 크기도 작은 나무정도지." 화를 추스른 그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변종이라도 나타난건지 한 엘프를 유인해서 숙주로 만들었더라. 내가 이사실을 깨달은건 이미 모두가 정신을 빼앗긴 뒤였지." "그럼 왜..." 이유를 물으려는 반의 입에 현수가 손가락을 갖다대며 그를 조용히 시켰다. "쉿" 그리고 앞을 보라며 손짓했다. 그를 따라서 앞을 본 순간 반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사람들이 10명정도 손이 묶인채 어딘가로 가고있었다. 그들주위에는 무장한 엘프들이 지켜선채 처지거나 느리게 걷는 이들을 때리며 속도를 유지시켰다. "으으으...무..물좀" 물을 달라는 그에게 어떤 엘프가 다가가더니 가차없이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얌전히 걸어라" 자신들을 대할 때와는 너무도 다른 그들의 태도에 반은 저들이 무언가 잘못이라도 저지른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숲에 쓰러진 그녀부터가 누루엔의 미끼였던거야. 누군가 그녀를 구해주면 자연스레 보답을 해주겠다며 끌어들이지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끝난거고" 그렇게 한참을 그들의 뒤를 따라갔고 마침내 그것의 모습을 볼수있었다. "으으 징그러" 티아의 말대로 흉측한 모습이었다. 마치 나무처럼 생겼지만 다른점은 가지 대신에 촉수들이 돋아나 있었다. 그리고 몸통의 정중앙에는 세로로 찢어진 거대한 눈동자가 번뜩이며 눈앞에있는 인간들을 훑어보았다. 마치 어떤것부터 먹을지 고민하듯이.
  • "흐...흐아악" 모두 살기위해 도망치려했지만 서로 묶인 상태라 한명이 쓰러지자 줄줄이 넘어졌다. 무릎이나 몸 여기저기가 까졌는지 피가 흘렀지만 지금 그들에게 그런 고통따위 느껴질리가 없었다. 절망에 찬 얼굴로 뒤를 돌아본 순간 "어..." 기울어지는 세상을 보며 다시 넘어진줄 알았다 . 하지만 머리없는 누군가의 몸통을보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자신의 머리가 잘렸음을. 그뒤로 이어진 학살은 현수의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그들이 묶인 상태라는 것과 처음에 죽은 동료를보고 도망칠 의욕을 잃어서 그렇겠지. 깔끔하게 날아간 머리들은 엘프들이 주워서 누우렌에게 가져갔고, 몸통들은 그것이 직접 촉수들로 끌고가서 자신의 뿌리부분에 묻었다. 그리고 잠시 후, 뼈와 살이 짓이겨지는 끔찍한 소리에 반은 귀를 막아버렸다. "저걸 없애면 엘프들은 돌아오는거죠?" 하지만 현수와 펜리르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너무 오래 빼앗겼어. 죽인다 한들 다들 제정신으로는 돌아오기 힘들어" 펜리르가 "그녀만 있었더라도.."라며 중얼 거렸지만 듣는이는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시체를 먹고있던 누루엔이 촉수하나를 엘프에게 가져갔다. 반은 저괴물이 엘프마저 잡아 먹는줄 알았지만 자신에게 촉수가 다가오자 엘프는 익숙한듯이 커다란 물통을 꺼내서 촉수를 그곳에 넣었다. 촉수는 그곳에다 무언가를 쏟아냈고 투명하던 물통은 서서히 검은 액체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물통이 채워질수록 들고있는 엘프의 표정이 황홀하게 변해갔다. 그것은 옆에있는 다른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 -이제 겨우 2명째인데 벌써 50을 넘겨버렸네 근데 스레제한이 몇정도야?
  • >>52 스레제한은 딱히 없고 스레 하나당 1000개까지 쓸 수 있어
  • >>53 그렇구나 고마워. 2개정도는 쓰겠구나... 갈길이 먼걸
  • 한바탕 식사를 마친 누루엔은 눈을 감고 움직임을 완전히 멈췄다. 물통도 가득 찼겠다 엘프들 역시 볼일은 끝났으니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고 남은 것은 우리들뿐이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비릿한 피 냄새는 더욱 짙어졌지만 반은 이번에는 토를 하지 않았다. 익숙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눈앞에 있는 괴물이 신경 쓰여 냄새를 느낄 여유조차 없는것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앞장서서 걷고있던 현수가 반과 펜리르를 돌아봤다. "너희둘이서 처리해줘. 나는 볼일이 있거든" "그게 무슨" 하지만 반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그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야말로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진것이다. "야! 이현수!" 그리고 그가 사라지자마자 티아는 불안해졌다. 현수가 없다면 반을 지켜줄 사람은 펜리르밖에 없다. 하지만 그가 말했던것을 떠올리자 그녀는 자연스레 걱정이 된것이다. "저기 펜리..." 무어라 말할 새도 없이 엄청난 살기가 반과 티아에게 엄습했다. 어찌나 강렬한지 자신을 항하는게 아님에도 절로 온몸이 덜덜 떨렸다. "지난 300년동안 이날만을 기다렸다. 잘도 나를 봉인시켰겠다? 찢어발겨주마!" 어찌나 빠른지 순식간에 누루엔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펜리르가 앞발을 들어올리는 순간까지도 누루엔은 눈을감은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발톱이 몸통에 박히려는 바로 그때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오히려 펜리르가 날아가버렸다. "크르르르르"
  • 흙먼지를 일으키며 일어나는 펜리르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다. 왼쪽 허리부분에 붉은 발톱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움직일때마다 피가 왈칵 쏟아졌다. 하지만 펜리르는 멈출 생각이 없는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누루엔만 있는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건?" 그것은 거대했다. 단순히 덩치로만 본다면 펜리르보다도 더욱 컸다. 거대한 몸집만큼이나 앞발도 보통이 아니었다. 날카로운 발톱은 어지간한 검보다 길었고 스치기만 해도 사람은커녕 나무조차 종이 베듯이 잘라버릴 듯했다. 그리고 손과 이어진 두꺼운 다리는 다리라기보다는 기둥에 비슷했다. 마지막으로 두눈은 이성을 잃었는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곰?" 그것은 바로 곰이었다. "크흑..언제 곰까지 길들인거지?" "설마 저게?" 숲에있던 동물들의 사체는 바로 저것의 짓이었던 것이다. 현수의 말대로 엄청난 덩치를 가진 곰이었다.
  • 살짝 벌어진 곰의 입에서 검은 타액이 길게 늘어졌다. 아무래도 누루엔은 그들을 자신의 체액으로 조종하는듯했다. 하지만 반은 이생각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쿠워어어어어어!" 눈앞에있는 짐승과 그뒤에있는 괴물을 상대하는게 우선이었으니. "펜리르씨! 괜찮아요?" "...괜찮아. 아무래도 네가 누루엔을 상대해야겠어" 괜찮다는 말과는 달리 그는 거친 숨소리를 내면서 힘겹게 움직였다. 쿵, 쿵, 쿵. 한걸음씩 다가올때마다 땅이 울렸고 점점 가까워질수록 반은 손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반 내 말 잘 들어. 내가 말했었지? 위험하면 도망치라고 말이야. 지금이 바로 그때야." 티아가 도망치라며 그를 말려도 반은 그저 가만히 서있을뿐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야. 반! 제발...도망가!" 그녀가 아무리 소리쳐도 그는 미동도 하지않았다.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리는 미칠듯이 후들거리고 손은 이미 흥건하게 땀으로 젖어있었다. '도망가! 누난 괜찮아' 티아의 외침이 반에게는 어떤 어린소녀와 겹쳐보였다. 울면서도 어떻게든 미소를 지으려는 그녀는 반에게 손을 흔들었고 서서히 그에게서 멀어져갔다. "티아" 평소와는 분위기가 달라진 반이었기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닫았다. "너..." "이제 두번다시 도망치기 싫어. 도와줄꺼지?"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에휴...알았어 알았다고! 진짜...죽을꺼야." "그럴지도." 한걸음. "저녀석한테 잡혀서 조종당할 수도 있어." "그건 좀 무섭다." 한걸음. "그래도 싸울거지?" "물론이야." 두렵고 떨리지만 반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한걸음씩 다가갔다.
  • "펜리르씨! 저녀석좀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나아가던 그는 반을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부탁한다. 엘프들을 구해줘" 그리고 포효를 지르며 곰에게 달려들었다. "너는 나랑 놀아야지!" 그의 왼쪽 앞발이 곰의 가슴을 지나갔고 그자리에는깊게 파인 발톱자국이 남았다. "크워어어어어!" 분노한 곰은 그를 향해 거대한 발을 휘둘렀지만 그는 이미 멀리 떨어진 뒤였다. 곰이 그를 따라서 숲 저편으로 가버리자 누루엔은 그제서야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반을 보자 멈춰있던 촉수들을 한데 모았다. 그렇게 모여있던 촉수가 갑자기 자신의 몸통으로 파고들어갔다. 거무틱틱하고 질척한 액체가 마구 튀었으나 촉수는 오히려 더욱 깊이 들어갔다. 한참을 자신의 몸속을 휘젓던 촉수가 확 하고 뽑혔다. 그리고 그곳엔 정신을 잃은 여성이 있었다. 그녀의 머리에는 한가닥의 촉수가 꽂혀있었는데 검은색의 다른 촉수와는 달리 붉은색을 하고있었다. "너어어어...느으으은...누우우..구우우...냐아아아..." 그녀의 입에서 기괴한 음성이 들러왔다. 마치 쇠를 긁는듯한 끔찍한 소리였다. 얼굴을 찡그린채 그녀를 살피던 반은 그녀가 누루엔의 숙주임을 깨달았다. "니가 숙주구나." 반의 대답에 그녀는 말대신 한줄기의 촉수를 휘둘렀다. 어찌나 빠른지 반의 눈으로는 피하기는 커녕 쫓을수도 없었다. "숙여!!!" 그녀가 없었다면 말이다. 티아의 다급한 외침에 반은 황급히 자세를 낮추었고 머리위를 스쳐지나간 촉수가 나무를 베어버리는것을 보았다. 그야말로 즉사의 일격. 스치기만해도 피부는 우습게 잘려나갈 위력에 반은 마른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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