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야기를 쓰려다 말았다
오늘은 날씨가 습하네라고
연락하려다 말았다
나는 이제 잉크가 없다
네 속에 글씨를 써보려 했는데
계속 자국만 남기네
밀린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참 재미있었다
이름없음2018/08/01 15:46:41ID : pO8ja4MnRxz
열린 서랍에서 날 맞이한 것은 매일 열어 닳은
일기장이었다. 잠시 망설였다. 그 해는 그의 해였으므로, 나에게 있어서는. 아니나다를까, 모든 페이지는 당신으로서 채워졌는데, 마지막 장을 넘긴 내 마음속에서 슬픈 감정이 채울 자리는 이상하게도 새하얬다. 다만 한 구석, 우주의 먼지같은 구석 한 켠에서는, 아무리 힘들더라도 잊진 않겠다던 과거의 나만이 시퍼런 눈빛을 하고는 울부짖을 뿐이었다.
이름없음2018/09/20 20:23:37ID : wFg2L89zgrs
우울하고 힘들때면 일기장을 찾는 건 나만의 습관 같은 거였다. 암울했던 날이면 나는 꼭 과거에 썼던 일기장들은 들쳐 보았다. 행복했던 나날들을 회상하며 잠깐이라도 그 속에 잠기려고 애썼다. 이게 습관이 되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몇 년이 지나 있었고, 나는 그동안 수도 없이 깊은 추억 속에 잠겨 왔다. 삐뚤삐뚤한 글씨, 틀린 맞춤법, 서툰 일기는 내 활력소가 되었다. 추억 속에 잠기다보면 내 마음엔 작은 흉터민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상처는 아물고 그 흉터가 아프진 않지만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텨가며 지금도 나는 미래의 나를 위로하기 위해 일기를 쓴다.
이름없음2018/09/20 23:11:08ID : jAjiqrvCi5V
네가 그리도 소중히 여기던 너의 일기장은 이제 나의 것이 되었다. 항상 쉬는 시간, 점심시간마다 사각사각 소리가 울리던 그 일기장은. 네가 항상 숨기며 "비밀이야." 라며 웃었던 그 일기장은. 이젠 저 너머로 사라져간 너가 떠나고 내 손에 남은 것은 그저 너의 일기장 뿐이다. 난 그 일기장을 펼쳐 보았다. 꾹꾹 눌러 쓴 예쁜 글씨. 샤프심 몇 통을 써 가며 썼던 그 일기장. 이것을 열어 봐도 될까. 그런 생각안 하지 않았다. 문득 했을걸, 하며 후회했던 적은 있었더라 해도. 그 안의 내용, 그 일기장을 펼치면 누구라도 읽을 수 있는 수십, 수백 개의 이름. 난 그 이름들 안에 나의 이름이 없길 바랬다.
뿌엥2018/10/05 00:51:53ID : 1yE3Be587bB
가득히 적혀있던 누군가를 향한 욕설과 비난, 미움들과 질투 싫어하고 짜증나서 날카로운 샤프의 끝으로 찢어버리고야 말았던 페이지들.
분명 처음엔 그렇지 않았는데, 설레고 기쁘던 마음으로 애지중지했었는데, 어느새 저 깊숙한 어둠속에서 먼지를 마시며 내 내면의 어둠마저 먹어버린 수렁같은 곳에서 사는 것.
문득 나이가 들어, 내 마음의 어둠도 나이가 쌓여 지혜로워 질때 쯔음에 널 발견하게 되면 얼마나 후회스러울까.
나의 조그마한 역사가 어둠으로 점칠되어있다는 것이 얼마나 비탄스러울까.
애써 가공되어 선택받아 들어간 집에, 그 주인에게 학대만 받아 온 흔적이 남아 있는 일기장을 보는것이 얼마나 안쓰러울까.
너에게 어두움을 쓰고 있던 나는 문득 생각했고
너를 위하는 일이라며 애써 너에게 학대의 흔적을 지워본다.
지워도 패인 자국만은 어찌하지 못한채,
그저 앞으로 잘하겠다며 새로운 장을 펼치는 일밖에는 할 수가 없다.
그래도 너는 항상 그랬듯이 내게 새하얗게 웃어주겠지.
네게 아픔만을 새기고 검게 물들였던 나에게
바보같이 또 웃어줄꺼야. 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