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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음 2018/08/05 19:34:00 ID : 6rxV87eZimH
꿈을 사는 가게
이름없음 2018/08/05 19:35:02 ID : 6rxV87eZimH
남자는 익숙한 자명종 소리에 눈을 떴다. 남자는 어제 일어난 일이 꿈인가 싶어 눈을 끔뻑거렸다. 음…내가 침대에 들어와 누운 기억이 마지막이고 여기서 눈을 떴으니까 꿈은 아니겠지? 남자는 조금은 밝아진 정신으로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단 한 곳을 제외하고 부엌은 전체적으로 단조로웠다. 남자는 지금 그 단 한 곳 앞에 서 있다. 남자는 물을 끓이고, 커피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릴 준비를 하며 토스터에 빵을 두 조각 집어넣었다. 남자는 커피를 손수 내려 마신다. 아침에 자신이 마실 커피를 커피향에 둘러싸여 직접 내리는 일이 정신을 명료하게 깨워준다는 게 남자의 생각이다. 남자는 물이 끓길 기다리며 생각에 잠겼다. 어젯밤 일은 아무래도 이상한데......
이름없음 2018/08/05 19:36:01 ID : 6rxV87eZimH
그 길은 남자가 너무나도 익숙한 길이었다. 무언가 바뀐다면, 바뀌었다면 남자가 모를 리가 없는 그런 길이었다. 그 길을 걷던 남자에게 무언가 어색함이 느껴졌다. 이런 곳에 골목이 있었나? 무언가 굉장히 기이하고 가로등 하나 없어 어두운 골목이었다. 음…아닌데, 여긴 주차장이었던 것 같은데? 그 골목은 끝을 알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느닷없이 주차장이 있던 자리에 골목이 생겼다. 그 골목은 굉장히 기이하고 이상하고 무엇보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남자는 평소에 겁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은 못되었기에 자신이 그곳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당연하게도, 판단을 내려 가던 길을 재촉하기로 했다. 발길을 돌리던 참에 골목 끝에서 무언가 반짝 빛이 났다. 남자의 고개가 돌아갔다. 남자의 눈에는 가게의 간판 같은 것이 보였고 그 간판에는 꿈을 사는 가게라고 적혀 있었다.
이름없음 2018/08/05 19:36:36 ID : 6rxV87eZimH
음? 꿈을 사는 가게라니? 남자는 속으로 실소했다. 아무리 자영업이 힘든 시대라지만 꿈으로 사업을 한다니. 남자는 가던 길을 다시 발길을 돌리려 했지만 무언가가 남자의 마음을 잡았다. 꿈……밑져야 본전이니까 남자는 골목으로 향했다. 가게 앞에 다다라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들어오라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름없음 2018/08/05 19:37:30 ID : 6rxV87eZimH
-실례합니다 남자는 가게 안으로 상반신부터 염탐하듯 들어갔다. 가게 안은 꽤 포근한 느낌이었다. 그 공간 한 가운데 검은색 긴 머리를 가진 여자가 책상에 앉아 있었다. 책상은 가게를 반으로 가르고 있었고 책상을 기준으로 남자 쪽에는 단 하나의 의자가 있었다. 맞은편에는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여자의 뒤로는 6단 정도 돼 보이는 선반이 있었다. 선반에는 아무것도 장식되어 있지 않았다. 남자는 의자에 앉아 말을 걸었다.
이름없음 2018/08/05 19:38:38 ID : 6rxV87eZimH
-음…그러니까 꿈을 사신다고요? -네 꿈을 사드려요. -돼지꿈이라도 사서 로또라도 하시려나. -당신의 목표, 당신이 이루고 싶은 것, 당신의 염원, 당신의 꿈을 제가 살게요. -예? 그러니까 그 꿈이 아니라 ‘꿈’을 산다고요? -네 맞아요. 이 가게는 필요한 사람에게만 보여요. 꿈 때문에 방황하고 고민하고 헤매는 사람들에게 보이게 돼요. 이 말은 당신도 지금 그런 상태라는 거죠. 자, 어서 제게 당신의 꿈을 팔아요.
이름없음 2018/08/05 19:48:40 ID : 6rxV87eZimH
-잠깐요 잠깐요. 제 꿈을 산다니……그래요 꿈을 산다고 칩시다. 그럼 당신에게는 뭐가 남는다는 건데요? 여자는 남자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말했다. -제가 꿈을 사면 당신에게서 그 꿈은 지워지게 돼요. 꿈을 좇을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게 되는거예요. 제게 꿈을 파는 것으로 당신은 고통 없이 현실에 충실하여 살 수 있어요.
이름없음 2018/08/05 19:50:31 ID : 6rxV87eZimH
남자는 꿈이 있었다. 남자의 꿈은 ‘커피’였다. 남자는 커피가 정말로 좋았다. 언젠가는 커피로 인생을 꾸릴 것이라 다짐했으며 그 다짐을 꽤나 오랜 기간 유지하고 준비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권유로 젊을 때에 취직을 하고 회사에 머물며 그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들었고 여자친구와의 결혼 이야기도 오가는 바람에 결국 꿈을 좇아 회사를 떠나기엔 조금 위험한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요즘 같은 시기에 다니던 회사를 버리고 자영업을 선택한다는 건 꽤 위험한 결단이지 않은가. 그러나 남자도 쉽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의 오랜 염원을 부모님과 여자친구에게 이야기해보았으나 부모님은 험한 소리까지 하시며 반대하셨고 여자친구도 돌려 말하기는 하였지만 반대의 뜻을 내비쳤다. 물론 남자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아니, 그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성적인 이해와 납득은 다른 법이다. 남자는 지금까지도 고민에 빠져 있었다.
이름없음 2018/08/05 19:59:43 ID : 6rxV87eZimH
-당신도 현실에 충실할 것을 권하는군요? 역시나…이려나. 남자는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못 팔아도 본전, 팔리면 돈까지 받는 데다 후회 없이 가정을 꾸릴 수 있다’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고, 결국 될 대로 돼라 라는 식으로 -그래요. 제 꿈을 팔게요. 라고 내뱉고 말았다.
이름없음 2018/08/05 20:02:34 ID : 6rxV87eZimH
남자는 흥정을 예상하고 있었다. 돈과 숫자가 오가는 그런 장면 말이다. 무게를 다는 것과 비슷하게 ‘당신의 꿈은 이러이러하고 저러하니까 이정도 가치입니다’라는 말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그저 얼굴을 조금 찌푸리고 입을 다물고 있다가 돌연 이렇게 이야기했다. -죄송해요, 당신의 꿈은 이미 제가 살 수가 없게 돼버렸네요. 남자는 어이가 없었다. 나는 내 꿈을 팔겠다는 결심까지 했는데 이제 와서? -참, 어이가 없어서. 내가 이럴 줄 알았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가게 들어와 보는 것도 아니었어. 이렇게 이상한 장사를 하니까 선반에 아무것도 없이 이렇게 가게가 횡하지. 남자가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그러자 여자는 엄지로 뒤를 가리키며 남자에게 말했다. -저긴 제가 산 꿈을 장식할 곳이에요. 당신의 꿈이 첫 번째가 될 수 있었는데 아쉽게 됐어요. -아이고 그렇습니까? 됐습니다. 꿈 사는 가게라며 꿈도 못 사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전 이만 가볼 테니 뭐…번창하세요 남자는 허탈한 웃음과 함께 비아냥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남자의 등을 향해 여자가 조용히 이야기했다. 남자에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이 가게는 필요한 사람에게만 보인다니까요. 남자는 잠깐 멈칫하는 듯하더니 그대로 가게를 나섰다.
이름없음 2018/08/05 20:02:58 ID : 6rxV87eZimH
흠…그렇게 골목에서 다시 돌아보니까 골목은 없어져 있었고…좀 지나 우회전하고 집에 들어왔으니까… 그때였다. 띵! 경쾌한 소리와 함께 토스트 두 장이 기세 좋게 하늘로 솟았다. 남자의 커피도 이미 마지막 단계였다. 남자는 커피와 토스트를 들고 식탁에 앉아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이름없음 2018/08/05 20:03:57 ID : 6rxV87eZimH
필요한 사람한테만 보인다고? 애초에 꿈을 산다는 게 말이 안 되지. 꿈을 산다고 하니까 그렇게 아무 것도 없는 거잖아? 남자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남자의 온 몸을 녹이는 커피향이 입 안에 맴돈다. 아침잠이 달아남은 물론 기분까지 좋아지는 듯했다. 커피로 인해 아침이 이렇게 상쾌해질 수 있다니 미안하다 커피야, 어제는 이런 너를 내가 버리려고 했구나. 남자는 잔에 담긴 커피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나저나 아무리 말이 안 되는 것으로치부한다고 해도 그 골목이나 가게나 기억, 냄새, 촉감들은 다 진짜였는데? 그런 게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게 가능이나 한가? 남자는 다시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필요한 사람, 꿈을 사는 곳, 꿈, 내 꿈의 가치…… 남자의 커피잔이 돌연 공중에서 멈췄다. 뭐야…그런 거였어?...... 남자의 입에는 미소가 걸린 듯했다. 그 가게, 필요한 사람한테는 보인다고 그랬었지 아마?
이름없음 2018/08/05 20:04:27 ID : 6rxV87eZimH
밤이 되고 남자는 그 골목으로 향하고 있었다. 남자의 예상 대로 그 가게는 남자의 필요를 맞이할 준비를 이미 마친 상태였다. 이번에는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남자는 천천히 문을 열고 가게로 들어갔다. 여자는 남자가 올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오셨군요? -네 왔습니다. -이번에는 제게 팔릴 꿈을 가져오셨네요? -네 맞아요. 저는 이걸 팔지 않을 거니까.
이름없음 2018/08/05 20:06:57 ID : 6rxV87eZimH
여자는 말없이 남자를 바라보기만 했다. -제가 이미 팔겠다고 한 순간부터 제 꿈은 저한테는 일말의 가치도 없는 게 돼버립니다. 그런 꿈을 당신이 사봤자 꿈이라고도 할 수 없겠지. -그런가요? -당연하지! 당신, 장사 수지타산이 하나도 안 맞는데요? 여자는 조용히 웃었다. -고맙게 됐습니다. 아니, 고마워요 이 꿈을 파는 가게를 만나게 되어서 다행이야. -여기는 꿈을 사는 가게예요. 여자는 여전히 웃으며 이야기했다. -아 그랬던가요? 글쎄 과연. 저는 오히려 제가 꿈을 산 듯한데요. -착각이에요. -조금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자, 그럼 이만 여기까지군요. -아니 잠깐만 기다려 난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 -이미 당신에게는 제가 필요하지 않아요. 자, 당신의 다음 꿈을 기대할게요. 남자는 무어라 이야기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그와 더불어 현기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현기증은 점점 심해져서 남자 자신이, 가게 전체가 뒤틀리는 수준까지 심해졌다. 남자는 참지 못하고 두 눈을 꽉 감았고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름없음 2018/08/05 20:07:55 ID : 6rxV87eZimH
씨끄러워 무언가 경쾌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너무 씨끄럽잖아 그 소리가 점점 커지고 명확해졌다. 남자는 자신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자명종 소리에 눈을 떴다. 남자가 주변을 인식하기까지에는 수 초 정도가 필요했다. 뭐야?
이름없음 2018/08/05 20:12:12 ID : 6rxV87eZimH
남자는 죽다 살아온 사람처럼 자신의 온 몸을 더듬고 살펴봤다. 볼을 꼬집어 보기도 했다. 아팠다. 꿈이 아니다. 남자는 서둘러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뛰어나갔다. 부엌은 아직도 잠에 빠져 있는 듯했다. 젠장, 그게 꿈이었군. 왠지 볼 꼬집을 생각이 들질 않더라. 그래, 꿈이었군. 남자는 허탈해하면서도 기분이 좋은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무언가 결심한 사람처럼 몸을 곧게 펴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좋아! 남자는 곧장 침대로 가 자명종 아래의 서랍을 뒤적거렸다. 이윽고 남자가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남자의 손에는 ‘사직서’라고 쓰인 봉투가 들려있었다. 남자의 입에는 무언가 큰 일을 앞둔 사람의 설레는 듯한, 아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미소가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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