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치는 광풍에 안정이 흔들린다. 붉은 홍채에 비치는 청정무구의 눈발은 뇌리를 새하얗게 채워낸다. 갑갑하게 끓는 착잡한 심경이 참을 수 없어 제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그 의중을 가위질이라도 해버릴 양 입을 틀어막는다. 지독한 혈기가 극성스레 몰려들어 입김과 더불어 손틈을 비집고 나온다. 입가에 번진 혈흔이 흉하고 추악할 뿐이라는 것에 빈번히 뜬발로 걷게 된다. 우수에 쥔 철 삽이 바르르 떨린다. 오랫동안 몇 번이고 되뇌여 외운 성경이건만 마음을 얼러줄 구절 하나 생각이 나지 않았고, 나는 무지했다. 소려한 눈발이 곧게 곧추서있던 와이셔츠 옷깃을 눅일 때, 서슬찬 바람이 피부에 닿고 소매 속으로 설화들이 비집고 들어차도 무딘 살은 감각하지 못한다. 와이셔츠 칼라가 휘적셔진 것은 마치 추수철의 무르익은 보리처럼 주름을 잡고 고개를 숙이는 중에, 그의 뇌리가 지끈거리는 데부터 기인해 해설되고 흐르는 담결한 물방울들이 턱선을 타고 떨어지는 자태가 청명하기 그지없다. 피를 타고 흐르는 체열은 초조함을 머금고 있었고, 이제야 삶에서 붙잡을 동앗줄을 찾았건만 이 또한 놓치게 될까 성열하려는 심경이 목구녕까지 거칠게 치닫았다.

오만하고 주제넘게도 이 타락한 양 손으로 그들을 구원하겠노라 말한다. 그 때에 나무에 오르던 삭개오처럼, 더럽고 추악한 몰골로 그 옷자락이나마 움켜보는 나병 환자의 애절함으로, 구렁텅이 건너에서 나사로와 그를 올려다보는 죄악 많은 부자처럼 그들을 찾아 헤멘다. 마침내 성열하려 했으나 되려 성음은 짙게 잠겨있다. 낮게 깔리는 제 목소리가 귓가에 나앉자 그의 주변이 절망으로 뒤덮였다. 이상만을 좇다가 결국엔 어둑한 길로 들어선 두 눈이 오갈데 없이 흔들린다. 사방에 깔린 것은 눈발이었건만 그는 초열지옥에 던져진 죄자처럼 괴로움에 송곳니를 악물고 신음성의 꼬리를 흐린다. 두 손을 재촉해도 그들이 보일 기미가 전무하다. 중간마다 손에 걸리적거리는 잔해들을 손으로 으스러뜨리며 눈더미와 함께 치우며, 급박함에 죄여지는 뇌리가 떠돌고 있는 아무 것이나 움켜 비릿한 구취와 함께 내보내려 든다. 아연실색과 동요가 뒤엉킨 얼굴로 광인과 같이 손을 부리며 비통한 음색을 쥐어짠다.

못볼 꼴을 봤다는 듯 질린 기색이 역력한 상판을 보고도 잔잔한 그의 표정은 뭇 대조적이다. 과연 은총을 받은 이들은 오채영롱한 자태로. 고작 한 캔에 뺨이 불그스름해진 것은 청승을 안주 삼은 탓이다. 유구한 일전에 그들의 화혈을 탐한 죄업이 있는 것을 기억하느니라. 염치없게도 구원을 바라고 있는 내 초라한 꼬락서니를 보고 새하얗게 질려있는 그들 앞에 무릎을 …….

지갑의 관점, 처음으로 얻은 너는 공교롭게도 규격 외의 사이즈였다. 지난 2 년의 아르바이트를 전부 탕진하고도 메꿀 수 없는 네 공백인만큼 매사 잊을 수 없는 것도 당연했다. 그도 그럴 게, 뜬 눈 속 잠 아닌 예민의 고초를 건너고 남는 한 나절을 편의점에 전부 쏟아붙고, 금값이라던 시간을 전부 팔아 변변찮은 금 하나 사기도 빈난한 입장으로서는 전혀 납득하기 어려운 낭설이자 현실인 것이다.

한 때는 믿을 수 없었다. 이 외로움이 내 환각일리만은 없다고, 첫 이별은 무덤덤한 인간에게도 힘겨운 날이었다. "왜, 틈만 나면 물고 빨고 하더니, 이젠 내가 니 담배같니 ?"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로는 서로에게 좋은 담배였을 것이다. 특히 정민은 쉬이 젖지도 않고, 부러지지도 않았다. … 다만 구겨졌을 뿐, 딱 인간적인만큼만 유연한 모란꽃 한 떨기로는 쇼윈도 밖에서 걷고 구르는 것들에 결코 당해낼 수 없다. 주기적으로 충혈되는 신호등의 눈은 그것만으로도 규칙적이고 불연속적인 죽음을 불러온다. 정민은 재산도 또한 부유한 여자였기 때문에 오직 사칙연산만 했다. 미지수 투성이인 난해함 속으로 뛰어들어 그 중력에 가누지 못해 결국 지평선을 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대신 SNS를 한다. 기품있는 활자들 속을 파헤쳐보면 거기엔 늘 속절도, 생명도 없었다. 일개는 그것이 모종의 SOS임을 알고 있었고,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그녀와의 약속을 잡는다. 앞뒤 다 자르고 듣는 한국인들의 특징이었다. 애연가의 삶을 그저 연가로만 듣는다. 상대할 필요도 없는 멍청한 XY들. 된 놈 중에서도 된 놈만 만났다. 다만 결국 염색체의 프레임 속에서 헤어나온 작자들은 전혀, 오히려 자신과 비슷한 계층일 수록 더욱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사람 중의 사람은 만나봤지만 참 인간은 미처 만나보지 못한 것이 그녀를 질리게 했다. 그렇게 호화로운 샹들리에 아래 소파에 몸도 가누지 못한 채 SUHD 65JS9500 TV만 보고 있다고 해서 삶의 목적조차도 없는 가련한 삶인건 아니었다. 대한민국 상류층의 9할이 으레 그렇듯 정민 또한 보수적 아첨으로 얻어낸 돈으로 부양되고 있음은 자명한 일이고, 지령이라도 떨어질 듯 어둑함 속 휘영청 샹들리에는 확호불발하지만 조금의 요령만 있어도 위태로워진다. 닮은 꼴인 것이다. 향기는 가셨어도 향수로 남아있는 철 지난 노래들을 2018년에 듣는 그녀처럼 시간에 무딘 듯 보였고, 죽은 동태 눈, 냉장실에서 죽어있는 것들처럼, 아무래도 36.5도와는 거리가 멀다 싶은, 그런 점들.

스레주 혹시 블로그나 포스타입 같은데에 글 쓰면 힌트 좀 줄 수 있을까? 글이 너무 취향이라. ㅠ

>>6 뼛속까지 소비러인 애송이라 블로그나 포스타입까지 동원해서 글 쓸만한 근성은 없음 고마워

인생은 무한한 자기 위안의 연속이다. 단지 방 구석에서 하루 중 가장 집중적으로 수행하는, 하루 중 가장 비생산적인 활동 외에도 그것은 여러 형태를 수반한다. 다만 순수하게 행동에서 비롯되는 쾌락 하나 때문에 그 모든 것을 감내한다. 따져본다면 시답잖아도 일면식 있는 인간들과 말이나 한 두마디 섞어보는게 훨씬 유익하고 재미있는 것인데, 어쩌면 무언의 보상심리로 자기주도적 제약을 건 채 그것에 피동적으로 종속되는 굴레에 빠지는 이유는 단연 하나다. 행동에서 비롯되는 쾌락, 즉 신체적 쾌락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대를 풍미해온 퍼포먼스 아티스트들의 섹슈얼적 발상 속 고상함들과는 거리가 좀 있더라도 저 나름의 철학으로 취급받기는 충분했다는 것이다. 자위가 익숙한 것이 아니라는데 동의할 수 없는 자위광들이 꽤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기숙사를 들어갔던 후 어언 2년 째 한 번 흔들어본 적도 없는 필자의 입장이 꽤 영향력 있음을 배제할 순 없겠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얄팍한 입장으로 개진하다 언질 몇 자 끄적임에 개작살나는 불나방 심리로 서술한 것은 아니다( 당신이 불편하지 않았기를 ). 나는 단지 상대적인 관점에서 관측했을 뿐이다. 길바닥 고양이들 좆을 지우냐 냅두냐까지도 신경을 써댈 정도로 예민한 족속들인 만큼, 지극했던 관계가 동전 뒤집히듯 지독해지는 것도 한 순간이다. 당신이 죽어버릴 것만 같은 대인기피나, 혹은 무언가라도 죽여버릴 것만 같은 스트레스에 눈이 먼 장님만 아니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거미줄같은 인과를 하나하나 꿰고 어느 곳에 물이 떨어졌고 어느 줄에 불이 났는지까지 일일히 기억하고 망연자실해하지 않으면 안 될 삶이라니, 이십 대 부터 탈모에 시달리는 부류들이 많아지는 까닭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울며 겨자먹기로 익숙해진 사회여도 견딜 수 없는건 분명히 견딜 수 없는 것이고, 결국 오롯한 혼자만의 시간에 몰두하고 고집하며 집착하는 것이다.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난 그것에 '견딜 수 없었다.' 라는 표현을 구태여 가져다 붙이고 싶지 않았고, 실행에 옮겨간 끝에 실제로 십 팔년 남짓 살아있는 것이다. 일종의 경이감에 도취되기도 한 순간이고 남들 다 힘들 것 생각하면 때때로 고집불통 틀딱 감성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동시에 반향에 몸을 싣은 반항을 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을 비롯한 수 많은 소수자 응원 운동들에 연대하는 까닭이지 않을까. 물론 내가 좆 달린 것들에 대고 대뜸 팔에 힘을 주진 않는다. 다만 딱 반체제적 인간 정도로, 중학교 때 저지른 만행들을 변호할 생각까지는 없다. 딱 관심에 갈급해 저지르는 짓들이 치기 이상으로 표현할 수는 없으나 그에 수반되는 죄질은 기껏 치기 따위로 비벼볼만한 정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단지 무엇 하나 실속을 가지고 내세워볼 만한 결과물 없던 십 팔년짜리 쓰레기를 덮고자 충격적인 것들에만 집착했던 것의 말로. 오월 이십 육일, 수유로 불려나가 아는 누나한테서 받은 말레 다섯 까치를 줄 지어 문 후 가래침이나 뱉는 꼬락서니가 불현듯 딱 앰창인생의 표본처럼 느껴졌다. 매캐한 탄연에 가려 당장 내일 일정마저 불확실하게 뿌옜던 그 몽사되고 덩이진 느낌은 초현실보단 비현실적 감상에 가까웠어서 지독한 괴리감과 자기혐오를 불렀다. 학교 복도에서 소리지르던 활기찬 고삼은 온데간데없이 반나절만에 사회의 쓰레기가 되어있었고, 늘 그게 익숙하다는 듯 뻑뻑해지는 목만 만져 풀어대는 병신같은 꼴이 참 한스러웠다. 이제는 자동차 매연도 거진 전무한 마당에 연기를 피우는 것이 공장이나 다름이 없다고 느꼈다. 확신이 들게 해준 대목은 내가 여느 때보다도 가장 이성적인 태도로 본색을 드러내고 있었다는 부분이었다. 십 팔세, 시발. 입에 달고 살지만 유독 욕이라도 안 하면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은 거친 심상이었다. 금수저보다는 천재가 부러웠다. 나는 물론 알만한 이는 알만큼 염세적인 물질주의자고,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지랄들에 돈 없이 행복하기는 몹시 어렵다는 반론으로 일관해 내놓는 놈이었지만 그래도 역시 천재 쪽이 더 부러웠다. 해봄직 했던 것이다. 만약 내가 운이 나쁜 천재여서 집안이 나를 지금보다도 더 좆같이 굴렸더래도 내가 크게 성공할 길이 보장되어 있음을 알고만 있다면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혐오스러운 나만이 남았다. 구린 센스마저 예술적 선구로 취급받는. 그런 십창같이 편협하고 졸렬한 세상이 나를 바라봐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땅바닥은 기본적으로 차갑다. 여름 더위가 신이 나 기승부리며 온사방을 날뛰는 동안 한 번이라도 맨바닥에 대가리를 조아려 보았다면 확고히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비라도 내렸으면 좋겠다 싶은 홧홧한 느낌을 거진 전기밥솥처럼 거칠게 날숨하는 중 문득 올려다본 하늘엔 구름이 있었다. 따스하기보단 뜨거웠던 태양은 명백히 나를 향해 모멸찬 비난을 퍼붓고 있었다. 물론 관점의 차이다. 내가 좋아하는 비가 혹자에겐 (사실, 어쩌면 꽤 보편적으로) 기피와 도피의 대상일 뿐일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슬픔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 따지자면 이런 소소한 부분부터 내 안티테제가 수두룩한 마당에 인간 혐오가 있어도 무리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내가 취하면 후회할걸.", 자정을 넘긴 쌍문 횟집에서 민들레에 카스를 말던 혜진이 생각난다. 나는 마라주가 무슨 맛이냐고 물어봤지만 잘 모르겠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무언가 목젖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그냥 삼키기로 했다. 나 또한 그 때는 술맛이란걸 알고서 들이키는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후회는 하지 않았다.

사리문 입술에서 미향을 풍기며 열기를 머금은 외가닥 피가 계수마냥 흘러가는 것이다. 새빨간 환형의 적구슬을 필두로 하염없이 내려갈 것만 같던 그것은 목줄기까지 타고 염야하게 와이셔츠를 적셔나갔다 그는 늑대다. 충견이다. 허울과 허식에 찌든 여타 들개들과는 달리 주인이 있다고 한다면 결코 수를 무르는 일 없이 맹렬하게 이빨을 들이댈 수 있는 늑대개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던게 화근이었는지 연기도 나지 않는 담배를 문다. 난로 앞의 눈이 두어 번 깜빡깜빡거리더니 내 쪽으로 구른다. 도도하고 고고한 월태의 위광을 비추는 보옥처럼 빛나는 눈이다. 나도 마주 흑안을 궁굴린다. 맞닥뜨린 두 눈은 구약과 신약에서 3천명의 생사를 다루는 차이처럼 명백하게 대비되었다. 불을 붙이지 않았다. 네가 있는데 고독을 달랠 필요가 있으랴. 우둔하게도 뇌리에 우문을 뇌까렸던 입은 꾹 내리닫아 닫아건다. 네 그것은 혹 아름다움과는 다를지는 몰라도 풍류에서는 제일이라는 화조풍월과 미색의 월궁항아가 온다더라도 새피한 것이다. 고즈넉하게 뜬 만삭의 배불뚝이 달이 야천을 휘가르며 일색을 걷곤 되메운다. 덩달아 내 취기의 구순도 꾹 메워진다. 터무니없다. 인간 나이었으면 벌써 향년을 삼백 번은 족히 겪었을 연령차는 고사하고 그 외관으로도 얼이 빠질 정도로 차이가 나는데도 이러한 행각에 스스럼이라곤 없다. 둘은 동공을 크게 떴다. 이렇게 키스를 하는데도 그녀는 또렷하게 눈을 뜨고있다. 칠흑이지만 빛나는 동공은 그 자체로도 오묘스러운 존재다. 깊고 깊게, 품 속으로 점점 파고든다. 내 옷깃을 움키며 눈을 감을 때 즈음에야 나도야 눈꺼풀을 내릴 수 있었다. 농밀한 접문은 확고하고도 야릇하다. 이런 인간이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싶다. 혼야가 밤들어간다.

칭얼거림을 피해 돌린 고개가 비춘 가로지르는 경비행기 창가에는 텁텁한 구름들이 지나가고 있다. 그것에 흘려보내는 상념은 경부선에서 속도를 올린 시속 200km 페라리처럼, 네 도톰하고 뭉툭한 입술은 토마토의 그것처럼, 기관실을 제하여 한 쌍 남녀만이 있는 곳에서도 애써 투박한 손을 더듬더듬하여 탁상 위의 보드카를 집어든다. 자그마한 체구에서 분수처럼 뿜어져나오는 강렬한 향취를 감쇠시켜줄 것은 오직 술 뿐이다. 짜르스까야.

줄곧 오물거리곤 하는 그녀 구문만치나 아름다운, 풍성한 머릿발을 간청하듯 애절하게 끌어안곤 정수리에 코 끝을 묻고 달큰한 향취를 삼키니 머릿전이 벙벙해진다. 낭랑한 성음으로 네가 나를 불러주었을 즈음에야 겨우 정신이 든다. 그래도 네 머리칼의 부드러운 대양에서 헤어나올만한 여념은 전무하다. 통 떼지 않고 꼭 끌어당기는 행동에 너답지 않은 당혹기가 말랑한 두 볼살에 나앉은 홍조와 함께 서린다. 스물 한 살이라고, 행색도, 행실도 한참이나 어리숙한 이 온실 속 화초의 열린 꽃잎 속으로 파고들고싶은 욕정을 폐차장 압착기처럼 우악스럽게 내리찍어 깎아질러진 마음의 벼랑 밑바닥으로 내던진다. 굳이 뱀파이어가 아니더라도 욕정은 예로부터 가장 달콤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것이다. 나의 이 유구한 세월에 빗대자면 이들의 삶은 발바닥에 떨어지는 가을 낙엽처럼 보잘 것 없고 일순의 아름다움일 뿐이다. 비행기에선 내렸어도 마음만은 아직 공중에 붕 떠있다. 중형 검은색 벤을 타곤 경인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아장거릴 때부터 본 까닭으로 작은 그녀에 대해선 몇 번을 거듭했다고 해도 모자랄 정도로 숙통한 바다. 수 만년의 광음을 거쳤지만 이토록 인상깊은 이십 년 남짓이다. 벤에서 내리고, 프랑스의 겨울 공기에서 비로소 빠져나왔다. 날씨야 어찌됬건 열기나 추위를 느낄 감각은 터무니없이 무뎌진 그는 사시사철 정장이다. 불연속적인 명령 하달에 불만족스러워했던 때가 있다. 그 때는 지금같은 충견이 아니라 단순히 말을 알아듣는 맹견에 불과했다. 사사건건 명령이냐고 따지는 어조로 물었고, 일에 부합하는 당근이 있어야만 비로소 달리기 시작했다. 그 때의 내겐 별다르고 사사로우며 부연한 것들 따위가 필요한게 아닌, 명료하고 간단한 당근과 채찍만이 있으면 되었을 뿐이다. 그저 시키는대로만 하면 깔끔하게 끝났다. 아, 물론 내게 채찍을 들이대려 했던 이들은 모두 물어죽였다. 꿈 속에서는 확연했으나 정작 깨고나면 희미한 것처럼, 암실 속에서는 한 없이 선명하다가 막상 일광을 맞닥뜨리면 금방이라도 빛이 바래버리는 인스탁스의 필름사진처럼. 요즈음에야 캐논과 소니가 점거하다시피 했지만 당시에는 그 구리구리하던 사진들 나름의 낭만이 있다. 옛 것들은 대개가 그 고유하고 특질적인 무언가를 조개 진주처럼 품고있다.

생존을 겪어본 이가 생활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여유, 몇 번이고 죽은 영혼은 무슨 무슨 류 예술가들이 인형과 그림 따위에 불어넣는 그것보다도 덜 살아있었다. 늘 그렇기 때문에 괴리는 잇따르고, 외향과 향으로 말미암아 그녀에게 생체보다는 피사체로써 수식되게 하였으며, 기어이 영락없는 모란꽃으로 만들어놓았다. "말레 한 갑." 모두 옥상에서 내려다본 도심처럼 눈 아래로 보이는 것들뿐이지만 정민이 그들을 통찰할 수는 없었다. 알맹이가 어땠던, 주위에서 아무리 떠받치던 결국엔 그 여자도 한낱 인간 따위였다. 다만 무언가 아는 듯 움직이는, 어떠한 지침 내지 방침이라도 있는 마냥 피동적이고 순종적으로 동작하는 가젤녀에게는 모두가 공통분모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틀림없이 진보했다.', 정민이 도료로 떡칠한 듯 보수적인 여자라는 걸 간과한 채. 방금의 편의점 남자도 그 짧은 순간 동안 똑같은 우를 범했으면서도 길러지는 개처럼 천진한 웃음만 짓는다. 아쉽지만 그다지 현학적이지도 않았고, 모종의 몽사할 듯한 잡념으로 들어차 머리가 지끈거리는 18정민으로썬 발밑의 개미들을 일일이 신경 써줄 만큼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불도 채 붙이지 않은 장초를 앵두같은 구순에 문 채로 그림 한 폭을 연기하는 듯 멈춰 서있다. 진취성과 지성적 발전의 차이, 구태여 문창과나 관련 진로도 고사하고 고등학교마저 중퇴했던 자신이 왜 철학 같은 불확실한 증명들에 얽매이는지, 계산적이었던 성정도 버린 채 사회에 등을 돌리곤 사회 바깥에서 사회에 순응한다. 사실 자신의 퇴행을 의심하기도 했다. 많은 것을 잃고, 놓치고, 또 저버린 한국적 현대인으로써는 뒷걸음질쳐야만 그것들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직선적 방향에서 퇴보하여 자신을 깎은 편린들을 모을 때 비로소 원형이 된다. Zeus나 Odin 같은 신화 속 것들도 극단적 결여로 인한 종말을 맞이하곤 하고, 야훼에게는 필요악 외에도 절대 악 따위의 것들이 어언 90 억 씩이나 땅 위를 돌아다닌다. 별안간 완전함이라는 단어는 가장 불완전한 것이라는 점, 차라리 "되게 멋져(예뻐)."와 같이 '무척'에 해당하는 지경에서야 정민은 겨우 공감할 수 있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감언이설들이 첨예하게 정민의 귓등으로 흘러 넘어가는 까닭이기도 했다. 아스팔트처럼 창백한 안색이라면 적어도 증류될 때만큼은 섭씨 2만 도 가량 뜨거웠다는 것이다. 그를 입증하듯 타오르는 색채의 구순만큼은 창백함의 굴레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실제로도 정민은 언제든지 소리를 지르거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만약 이것이 '서커스'나 '트루먼 쇼' 같은 그녀에 대한 TV 프로였다면 감탄과 탄성이 쏟아질 것이 자명했다. 아디다스 핫팬츠에 박시한 후드티를 입고 소파 위에서 인형을 껴안고 있을 그녀가 소리를 지를 수 있을 거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않으니까. 불현듯 복도가 또각거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연속적인 소리의 분파들이 고막에 부딪혀 마쇄하는 순간을 사랑하는지도 몰랐다. 그것은 단순한 취향 문제였고, 상당한 자기애인 동시에 그녀가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쓴 가장 지독한 방법이었다. 피아노를 치거나, 넘어지거나, 물건을 부수거나, 꽃을 기르거나, 목소리를 내는 모든 과정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거실에만 거울을 네 개 비치해둔 것은 자신을 객체로써 바라보려는 일종의 시도였다.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현상들을 꽃가루처럼 나르는 사회의 자칭 나비와 벌들, 예전같았더라면 그들이 가까이 오는 것만으로도 흔들렸을 것임을 정민은 늘 되새기고 자각한다. 꼭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어떤 마녀 구전의 그것처럼 자취와 종적과 증거를 남겨놓고 다니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느끼는 것들, 버튼을 누르면 두어 번 깜빡이며 겨우 켜지는 백열등같은 재시작을 거치고, 잠을 과다 복용한 탓에 취해있는 파리한 두 다리를 어르고 다그쳐 걷는다. 또 하기 싫은 샤워를 했다. 하지만 출근까지 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모종의 타협이 있을 지언정 매 순간, 1분 1초마저도 다음의 무언가를 위한 과도기로써 살아가는 것은 항상 승리하는 습관임과 동시에, 항상 무언가와 싸우고 있음을 의미했다. 서로 속내를 드러내야만 비로소 싸움은 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매번 싸우고만 있는 그녀로써는 세상 앞에서 발가벗은 사람과 다를 게 없는 것이다. 그만큼이나 세상을 이해한 입장에서는 그것을 미워하고 슬퍼함과 동시에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방에 들어갈 때 꼭 맥주 반 캔을 남겨둔다. TV도 일시중지로 돌려놓는다. 살아있기 위해서.

살을 에는 이별을 자행한 것은 냉동고에 들어가는 짓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다. 예상은 엇나가지 않았고, 나는 냉동고같은 이곳에서 죽은 것들만 보는 신세가 되었다.

>>7 이런 실력을 가지고 소비러라니.. 아주 이기적이야! 이런 글을 자기만 보다니 8ㅅ8 여튼 아쉽당... 스레 잘 보고 있어!

>>17 레스주한테 혼나버렸네 ㅋㅋㅋㅋㅋ 노트에만 쓰기 적적해서 올려보는거니까 여기만 올라오는 글들이야 ㅋㅋ 봐줘서 고마워.

상처받고 살지는 말자, 나는 그 뭐냐 그 그 언제 구월 사일인가 할튼 낮에는 시퍼랬는데 해질녘부터는 모가지를 틀지를 않았단 말이야 주일야천이고 뭐고 하등 쓸모가 없어요 왜냐, 눈이 침침해서 모니터 밝기를 존나게 올려댔거든 사람들은 늘 봐야할 걸 눈 앞에 닥치기 전까진 통 보질 않고 나도 사람이었지 이제 학생 말년도 접고 열을 올려볼 때인데 참 이게 … 이게 미묘해요 페북을 쭉 내려봤거든 ? 좋아요도 수십개고 댓글도 수백개가 박혀서 존나 활자들 때문에 어지러울 지경이었는데 참 내가 글자 좋아하긴 하는가보다 싶었지 통 읽어처먹질 않아서 문제다만 아무튼 취한거아냐, 아냐 ? 알커얼에 카페인인지 또 타르 뭐 그 그 발암물질 덩어리 텁텁한 쓰레기 그냥 쓰레기중독이었는데 그걸 어떻게 아등바등 입에서 뗐어요 왜냐, 나는 사회화가 된 사람이기 때문인거야 근데 어쩐지 담배를 안 피니까 겉도는 느낌이야 분명히 사회화 된 인간놈으로써 이것저것 해나갈 수록 사회랑은 멀어지는 것 같단 말야 페미니즘이요, 뭐 갖은 담배 말레종 아이스블라스트까지 하여간 별별것 다 해봤을 때가 제일 사회적이었어 이정도면 한국 사회 탓 좀 해도 되지 않겠냐 ? 그 미친놈이 읊는거 가만 들어보면 또 그랬단말이야 뭐 멸망 증오 하여간 환멸밖에 없던 말종놈인데 볼썽스런 구석이 있어서 들어봤더니 그게 또 얼만큼은 맞아떨어졌더라고, 그래서 나도 해봤어 주먹질 시시하잖아 도봉이요 성북 강북 뭐 각목을 들어도 못이기는 창동 그놈 사이버제주도를 한구석을 떠들썩하게 만든 그 미친새끼 모터바이크 대신 그냥 바이크나 탔지 페달 밟아가면서 기어 변속시키고 근데 부릉부릉 소리가 별 거는 아니더라 따릉이니 부릉이니 바람 좀 맞다보면 그게 하나도 부질없다는 느낌을 받곤 했단 말이지 봐, 오토바이 타다 떨어지면 죽고 자전거 타다 떨어지면 죽고, 둘 다 아프고, 잣대를 들이밀어볼 것도 없이 그냥 자전거며 오토바이며 안 타버리면 그만인거지 근데 뒤에서 부모란 놈들이 각목을 들고 쫓아오더라 난 도망가는 수 밖에 없었어 넘어져서 훼까닥 뒈져버리나 고것들한테 맞아 뒤지나 도긴개긴인데 왜 그랬는지 몰라 바이크랑 고것들이랑 다를게 뭐냐, 뭐냐면, 음 모르겠다 괜히 날 낳았네 이딴 별 또라이같은 생명론 말고 그냥 정이 뚝 떨어져서 이런 저런 말 좀 해본거야 뭐 이지랄이 나서야 어디 가서 나 이런 사람이요 내 이름 석자 아무개씨 명함을 들이밀 것도 없이 이런 말 좀 해보기도 떳떳찮은 사람이 되는거지 뭐가 문제였을까 ? 나는 모르겠어 그냥 잠이나 자려고 안녕 달 그만 불 꺼라

헐 이거전부 레주가 혼자 쓰고있는스레야?

개좋다 ㅠ ㅠ ㅠ하루에도 여러번읽고있어

생면부지인 여자 샴푸향이 너무 강했던 오전이다. 깜빡 잠들었다. 조금 창피했던, 그런 기분.

네가 꿈에 나온다면, 그 속에서 나는 내가 움키고 있던 모든 것들을 단호히 뿌리칠 각오가 있다고 생각한다. 희뿌연 돗대 탄연마냥 불명확한 나의 각오, 결코 순전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네 책임 또한 있음을 주황색 가로등 아래서 중얼거렸다. 정현, 너를 부르고 기다린지 어언 삼십 분 째, 시간은 네 사랑을 나타내는 지표였지만 삼십 분으로는 택도 없었다. 만약 내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네 번호에 기습적으로 전화 버튼을 누른다면 너는 역시 삼십 분 남짓한 시간을 기다리게 할 것이다. 그것은 나나 그 혹자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오롯이 너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난 굳게 믿고 있다. 화장을 하고, 간단한 세면활동을 하는 네 행동은 언제나 빛나기 위해 필요한 과도기고, 나는 내 태양이 따스함으로 채워지는데 반대할 만큼 소유욕이나 지배욕이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만약 내가 그랬었다면 …, "… 늦었네," "응, 미안, 오래 기다렸어?" 그 웃음기와 언제나의 목소가 진심이 아니더라도 난 괜찮았다고 생각했었다. 그 왜, 언젠가 흑암같은 시야 속보다는 한 줄기 빛이라도 있을 때 동물이 느낄 수 있는 정신적 일사량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었다. 꽤 돌팔매질을 맞은 논문이었지만 지금 와서는 조금 신경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네 의중을 알지도 못한 채 표면적으로 쏟아지는 빛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 멋대로 널 태양 삼고 의지하는 이 마음, 기댄 채 전하는 심장의 고동은 너무나도 모호하게 뛴다. 네가 내 심장에 청진기를 댄다면야 나는 곧장 나를 맡길 수 있긴 했지만 스스로 입 밖에 낼 일은 아직까진 우책이라고 여겨지는 것이었다. "왜 불렀어?" 뭐라고 대답할까, 네게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사실 나는 답을 알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네게 건넨 네가 좋아할만한 농담들, 몇 번 입 밖에 내고서야 나는 자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많은 농담으로 버무린 관계는 너무나도 선선해서 도저히 뜨거울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우리의 계절은 여름은 고사하고 이나 봄이면 족한 정도였고, 나는 기껏해야 이 농담같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쓸 뿐이다. 아, 나는 너와 멀어지고 싶지 않다. … 아니, 조금 더 확실한 표현이 필요했다. 나는 너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나는 중력을 불리기 위해 조금 더 질량을 늘렸다. 운동, 공부, 자기개발, 용모를 단정히. 나는 사람이 살기 좋은 사람이 되어 있었지만 내 수십만 배는 뜨거운 너의 삶의 표면에는 여전히 손을 댈 수 없다. 표면 상 6천도의 청춘이란 체열이나 체온같은 인간적인 수준의 단어들로 일축할 수 있을만큼 간단한게 아니었다. 가까이 갈 수는 없지만 보다 범세계적이고 아득한 수의 사람들을 비출 수 있는 빛을 내는 너, 나의 광원.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너 때문에 쌓아올린 이것들을 너 없이 유지한다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내가 시간에 떠밀려 발걸음하는 이상 목적지까지의 도착은 정해진 수순이고, 나는 이루는 것과 잃는 것의 차이가 명백하나 아주 얇은 것임을 알고 있다. 마치 그 비슷한 발음처럼, 이루, 잃, 잃어버렸, 이루어버렸, 잃다. 이루다. 그러니까 나는 그 비슷한, 너를 잃어버릴 수 없다는 말이다. 다만 사실을 뱉으면 죄가 되어버릴 것이 자명했다. 태양같은 네 중력에 이끌리는 것들은 수도 없이 많고, 그것들은 이미 하나의 세계다. 돌고래가 물 위를 뛰고 낮과 밤의 하늘이 예쁜 내 감수성을 아마도 넌, 넌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건 너무나도 인간적인 사고방식이었고, 무언가 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이기도 했다. 나는 네가 비인도적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네가 인간적인 선의 무언가와는 다름을 알고 있다. 너의 모든 것들이, 성실하거나, 착하거나 …, 심지어 너는 예쁘기도 하지, 정말 놀라워. 나는 네가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띠를 지녔다는 사실부터도 두근거리기 시작했던지라 너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내 조촐하고 작은 세계 이야기를 네가 좋아하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만이다. 나의 차, 집, 심지어는 내 삶, 모든 것들의 유지비를 네 빛으로 대신하는 이 환경, 나와 유일하게 채무 관계인 여자. 빚을 핑계 삼아서라도 찾아다니고 싶은 여자. 그래, 나는 어쩌면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 아니, 잠깐 얼굴만 좀 보려고 했지." 그리곤 괜시리 사소한 면박을 줬다. "굳이 이렇게 안 꾸며도 됐는데." 약간 널 향한 조그마한 책망이 없었다고는 단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내 의중을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고의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나의 세계를 죽이고 황무지로 만드는 것, 그것을 단지 너와의 사랑으로 맞교환할 수 있을만큼 나는 홀가분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사실 이미 죽어나가는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나의 북반구, 머리 끝까지 오른 사람들은 가장 네 빛을 고스란히 받아 쬐는 사람들이었고, 그만큼 내 세계와의 단절이 가장 빠른 사람들이기도 했다. 나와의 가능성을 어림했던건지, 아니면 혹시 모를 다른 생각이 너로 인해 파훼될 것임을 알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떠나가곤 했다. 사실 나도 너 외엔 별달리 관심을 두지 않았어, 네 앞에서 난 카메라 녹화 중인 휴대폰 배터리처럼 빠르고 정신없게 닳아갔고, 그 모든 것들을 고려했을 때 네게 사실을 털어놓는다는 것이 여태까지의 내 세계를 죽이는 죄임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너를 뿌리칠 수 없는 것이다. 2월 초, 너와 합석한 카페 창가자리에서 나눈 동물들 이야기가 불현듯 스친다. 너는 개나 고양이 따위에 구속되어있지 않고 보다 넓은 것들을 사랑하려 했다. 나는 그걸 항성의 천성일 것이라고 상념했었던 것을 기억한다. 네 포용력에 밑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개진될 수 있었던 나의 다양성 넘치는 세계 이야기들, 어차피 너 아니면 죽을 세계들. 그게 바로 정말 타는 듯이 더운 겨울이었다. 그리고 난 으레 썸 초반에나 느낄 법한 간질거림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있다. 걷고, 뛰고, 그리고 전철과 버스 등등을 타고 종로 5가로 나가던 나, 지하철 차창이 어두워질 때나 내 얼굴을 겨우 볼 수 있었다. 네가 있는 곳에서 나는 어두운 나를 성찰하고 회고해 볼 여유따윈 없는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내 부주의다. 그리곤 천장에 달린 조명을 올려다봤다. 인위적이고 창백한 빛깔, 내가 내 눈으로 연출해내는 작위적인 그 어딘가, 비인간적인 그것은 너의 그것과는 왠지 다르게만 느껴졌다. 그래, 말하자면 너는 초인간적인 느낌이다. 이를 깨닫기 전까지 나는 그 전등들을 올려다봤고, 이전까지는 느낄 수 없었던 텁텁한 회색의 감성을 지울 수 없다는 느낌에 골몰해가고 있었다. 모든 멸망은 기존의 체제를 부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나는 그 미력한 광음조차 싸늘함으로 돌아서게 만든 삼십 초 남짓의 통화들과 두 번의 만남을 견딜 수 있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지 못했다. 나는 결국 차를 탔다. 오늘은 너와 어디든 갈 것이다. 그리고 말할 계획을 세운다. 정현아, 나 널 사랑해. 로 귀결되는 절정, 발단과 전개, 갈등, 그리고 절정까지 나 홀로의 몫이었겠지만 결말을 결정할 권리는 전적으로 네게 있었다는 사실이 한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다. "네 마음은 네가 혼자 쓰는게 아니더라, 정현아." 나는 조수석에 앉은 네게 말하기 시작한다. 새벽 한시 오십 오분을 달리는 나는 조금 아날로그적인 감성에 젖어들기로 했다. 보이는 것이라곤 2015년형 변속기 수동 기어 앞의 디지털 시계 뿐이었지만 나는 시침과 분침을 생각하고, 때로는 초까지 세어가며 가장 완벽한 완급을 갈급히 찾는다. 4초 남짓의 서론, 6초의 침묵, 너의 짤막한 1.8초간의 대답, 7초의 침묵, 나의 5초 동안의 의사 표현. 아마도 이 밤은 36시간 쯤 걸릴 예정이었다. 내가 조수석에 태양을 싣고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수십 초 남짓의 대화 동안 지난 몇 년간 너와의 기억보다도 많은 것들과 많은 감정들을 얻고 느낀다. 목적에 집착하는 대한민국의 인간인 이상 성취감은 가장 중요한 가치에 속했고, 나는 이렇기 때문에 사랑을 하나, 싶었다. 내 사랑의 발단과 저의는 대한민국에 있었지만 나는 영국 남성처럼 고지식해질 것이고, 미국의 가정적인 여느 아버지처럼 개방적인 가정을 꾸릴 것이며, 러시아 남자처럼 네 매혹에 매달리며 이 차가운 세상을 아등바등 살아갈 것이다. 모든 좋은 것들만 합쳐 네게 근사한 광경을 보여줄게, 정현아. 네 대답을 듣기까진 체감 상 한 시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우리 서로를 위해 자라가자, 늙어가지 않고 예쁘고 멋진 이대로를 가꾸어 나가자, 나는 또 네 대답을 기다린다. 그리고, 취해간다.

임사체험, 네가 내게 묻고, 그리고 나는 묻힌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내 것을 지키는 법을 배워야한다.

언제 섹스할 거야? 집에 들어왔더니, 검은 팩스 끝 부분에 A4 한 장이 밀려나와 있었다. 발신인도,수신인도 없었지만, 나는 그것이 돌고래가 보낸 편지라는 것을 금방 알았다. 하얀 종이에 인쇄된 단 한 줄의 검은 문장. 그것은 적진에서 암약하는 스파이에게 보내는 본국의 지령문처럼 보였다. 너무 짧아서 얼마나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지 오랫동안 생각해야 될 그런 문장이었다. 형식은 물음표로 되어 있지만 내용은 느낌표였다.

검정과 감정은 한 점 차이다 검정은 가장 감정적인 색상이다.

시들해진다는 게 그런 거, 였을까. 함께 있어도 다만 함께 있다는 사실 안에서는 어느새 지루했다. 그래도 함께 무언가 한다는 건 즐거웠는데 그나마도 언제나 같은 버스노선처럼 같은 풍경의 날씨 변화를 얘기하는 게 고작이여서 언젠가 튕겨져 나갈 듯이 위태위태, 그래도 가끔은 마주보고 웃었다. 그러나 정신없이 눈물나도록 웃었던 기억은 가물가물. 그 때 네가 그렇게 얘기했다. "만약 우리 헤어져도 널 보면 인사할 수 있을 것 같아." 곰곰히 생각했다. 만약, 이라는 가정하에 너는 헤어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가정된 헤어짐 안에서 너는 담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치 비상구의 선명한 초록색이 반짝 하고 켜지는 것 처럼. 하얀 그림자 사람은 달려나갈 듯 문 앞에서 주춤거리고 있었다. 너는 그걸 말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라 한들 나는 솟구치는 의문들은 꼴깍 삼켰다. 알록달록한 알약을 삼키듯 꼴깍. 입 안에 담고 있기가 한없이 까끌거리는 말들이었다. 후에 네가 따져물을 지도 모른다. 왜 대답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냐고. 그러나 반듯한 논리에서 한없이 멀어진 곳에서 허우적 거리는 바보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감정의 문제. 더 이상 손을 잡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입을 맞추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없었다. 말랑말랑하고 도곤도곤하고 찌르르하는 의미. 우리는 더 이상 어딘가에 의미를 부여할 수 없었다. 언젠가부터 내 눈에 보이는 수 많은 연인들은 어딘가 결핍되어 있었다. 이제 막 시작된 연인들마저 아직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결핍의 징후들로 위태로워보이기만 했다. 그 때 네가 그렇게 얘기했다. 이전에도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짐에 이를 때마다 내가 거듭 느낀 건, 결말은 누구도 장담해서는 안된다는 거야. 그렇게 될 수도 있고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어. 나는 네게도 결말을 장담하지 않을 생각이야. 곰곰히 생각했다. 우리의 결말을. 나는 너도 모르게 내 세상에서 각각의 틀들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것은 언제나 결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내 세상에 집을 짓고 있었다. 그 집의 벽지 무늬와 부엌에 놓인 접시세트와 침대시트까지. 원목질감의 2인용 식탁이 있는 집이었다. 결말을. 각각의 틀들을 만드는 것은 내 오래된 습관이었다. 통증을 상실한 과거에 몸을 기대고 내 멋대로 미래를 늘 미리 꾸며 놓음으로써 나는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즐겼다. 그런데 너는 어떤 결말도 장담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내 세상에 지진이 일어나고 갈라진 틈 사이로 그 예쁜 집이 가라 앉았다. 고운 먼지들이 내 키 만큼 높게 일었다. 내 세상에는 그후로 오랫동안 장마가 이어졌다. 나는 작게 웅크리고 비 속으로 몸을 숨겼다. 내 세상의 어느 틀보다도 완성할 수 있다는 믿음이 큰 틀이었다. 얼마나 그 집에 공을 들였는지 모른다. 접시를 예쁘게 진열하고 책꽂이에 순서대로 책들을 정리했다. 서재의 햇빛이 잘드는 창 앞에 놓인 책상에 앉아서 낮게 숨을 고르는 때에 나는 행복을 느꼈다. 그 속에서도 가장 구체적인 것은 너였다. 그러나 나는 너무도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네게 동의를 구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내 세상에서 너무도 구체적인 너는 정작 내 세상의 그 집을 어떻게도 볼 수 없는 곳에 서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너는 완벽하게 그 집에 들어올 수 없었으며 너에게 그럴 마음이 있는지도 실상 나는 몰랐다. 그 역시 입 속에서 까끌거리던 말들이었다. 어쩌면 그 집을 더 사랑했던 것 같다. 현실에는 절대 존재할 수 없는 그 예쁜 집을 나는 너무나 사랑했던 것 같다. 네가 그 집을 의도하지 않게 부수는 순간 나는 너에 대한 모든 믿음을 상실했다. 그로써 우리의 결핍은 더욱 커졌고 대화는 시들해졌다. 너는 정말 한번도 우리의 결말을 장담하지 않았을까. 나는 버리지 못한 무수한 미망으로 폐허를 맴돌았다. 나는 정말 묻고 싶다. 너는 정말 한번도 우리의 결말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왜 만나고 있을까. 비상구에는 불이 켜져 있고 결말은 열려 있는데 … 나는 비 속으로 자꾸만 몸을 숨기고 모든 질문들을 삼켜 버린다. 꼴깍.

의심이 갖는 값어치를 사람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말초는 명칭부터가 저급하다. 몹시 봉건적이면서도 뜻 모를 행동거지의 수족 위에서 귀속된 영은 농노처럼 신체를 바삐 동작시키고 혹사를 일삼는다. 나의 몸을 헤아리고, 마음을 기준으로 치자면 머나먼 곳까지도 매만져 침투할 수 있게끔 지령하는 것이 나의 뇌. 때때로 이지를 잃는 것이 두려워질 때면 나는 도저히 스스로의 자아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게만 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한 것이 올곧고 오롯한 나의 생각일까, 떠올린 것만으로도 이미 확약되어있는 논파지만 나는 그 통 속을 끊임없이 탐미하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시간을 끄는 일과 같은 것이다. 허나 예정된 죽음과 / 고난을 피할 수 없는 무력감만이 뱀처럼 내 팔을 휘감을 뿐. 영하도 고사하고 혹한이라는 말도 붙여봄직한 일월 초 서울의 기온과 공기 속에서, 고통을 오래 겪은 영혼들의 파단면을 살펴보면 갈 수록 둥글어지게 마련이라는걸 알 수 있다. 마치 에베레스트와 알프스처럼, 오랜 풍화는 되려 사람을 무디게 만들기 마련이다. 시려운 눈발이 됐건 소려한 모래가 되었건 푹푹 발을 찍어 올라선 인간 머리 꼭대기에는 갖가지 영역이 있는 것. 이런 면을 건드리면 화를 내고, 이런 면에서는 침음하는 사람들을 왜 어렵게 생각하는지, 나약 유약 연약 취약한 인간들은 도대체 왜 어려운건지.

네가 모든 일을 제쳐두고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만둔다고 하지 않는 것이 되려 기이할 정도로 너의 몰골은 나날이 피폐해져가고 있었으니까. 넌 당분간 찾지 말아달라는 휴대전화 안내음을 남기고는 기실 며칠째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덧 자신의 의지로 해낼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는 무기력의 반복이었을 뿐, 넌 천천히 지난 날을 되돌아본다. 네가 온전히 너일 수 있었던 그 시점. 그런 날이 있었던가. 창문이 없는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오랫동안 고민하다 보면 시간은 물리적이라기보다 육체적인 문제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불 속에서 아주 오랜 시간동안 지내다가 너의 체취가 방 안을 가득 채웠을 무렵, 밀렸던 끼니를 한꺼번에 해결하고, 20여 건 정도의 형식적인 문자메세지와 간간히 걸려오던 전화를 뒤로 한 채 문을 나섰다. 넌 그리 모진 사람이 못 되었다. 미련없이 떠나려고 했건만, 문자를 보내주었던 사람들에게 일일이 답장을 해주고 네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회사 일이 걱정되어 신입사원에게 주의사항을 메일로 보내주고 말았다. 이렇게 생겨먹은 걸. 비행기를 두어 번 갈아타고 몇몇 나라의 국경을 통과해 지금은 사막으로 향하고 있다. 이런 곳에서 히치하이킹이란 목숨을 내어놓은 일이라고들 하지만 네 목숨은 이미 한국에서도 여러 번 내어놓았던 터라 두려울 것이 없었다. 마음 좋게 생긴 이방인의 중고 일제차를 얻어타고 가끔씩 해오는 질문에 나름의 영어로 대답해주는 사이, 광활한 사막의 초입에 다다랐다.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며 신기루나 오아시스 같은 걸 찾고 있는 너를 누군가 뒤에서 툭툭 하고 두드렸다. 낯 익은 초콜릿 빛 피부 사이로 눈부시게 하얀 치아가 쨍하고 빛났다. 사연이 있는 인연이란 쉽게 잊혀지지 않은 법이다. 수많은 여행자들과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도 사막에서 길을 잃고 생사를 같이 했던 동양인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깊은 포옹과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그 때 그 곳, ok? ok. 달빛의 위력은 사막에서 단연 빛난다. 그 순간 누가 옆에 있던지 너무나 근사한 모습으로 마치 독한 주술에 걸린 것처럼 매혹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달을 회피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별들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넌 꿈을 꾸듯 뒤척여보았다. 침낭 밑에 모래들이 서걱거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이방인이 모닥불에 때때로 마른 땔감을 던져 넣으며 상념에 빠져있고 넌 갑자기 눈물이 울컥 솟아올랐다. 왜 하필 사막이었을까. 그것도 이렇게 이질적인 푸른 밤, 문득 어느 나라에서는 모래로 그릇을 닦고 칫솔질도 한다던 다큐멘터리가 너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넌 이내 목까지 채웠던 침낭의 지퍼를 조금 내리고 조심스럽게 오른쪽 손을 내어서는 달빛에 반사되는 모래를 한 움큼 쥐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이방인이 볼까봐 조심스럽게 침낭 속으로 손을 넣고 눈을 감았다. 네가 온전히 너일 수 있었던 그 시간, 너는 아팠다. 수많은 별들이 너의 가슴에 비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그 푸른 사막의 밤에. 조용히 모래 한 움큼으로 가슴을 서걱서걱 씻어 내리고 잠이 들었다.

고생인 여아가 등전에서 숨을 쉰다 머리칼을 꺼내어 흐느껴나 본다 거울이 말을 건네지 않는다 산벚꽃이 파밭의 철쭉마냥 매고 고뇌다 동생은 여전히 그치지 않는다 실로 모든 정지는 일시에 그치는 것이다 어머니가 항상 등전에 잠이 든다 역시 고생이던 아비는, 울고 없다 그 탓에 애꿏은 나방에만 불을 묻힌다 어제의 나방이다 아무래도 여의치가 않다.

난 정말 이 스레와 스레주를 사랑해 ㅠㅠㅠㅠ 레주는혹시 이쪽 전공을 했다던가 출판이라던가 연재경력이 있어??

레스를 못달고있다가 >>36 덕에 용기가 났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보고 있어 스레주 가끔 왔다갈 때마다 레더는 행복해 ㅜㅜ

작가님 이쯤되면 책 내주시죠

뭐야 헉 몇몇개 삭제돼있어 안돼!!!ㅜㅜㅜ

글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란 스레주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어.....

그날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깜깜한 밤이었는데 12층에서 창 밖으로 아껴보던 책들을 던져버렸어, 스피노자의 철학이며 논어며 또 장자 등등의 책들. 그리고 울었던가, 까지는 잘 기억이 안나. 하지만 분명히 추악한 기분이었지 천장도 뚫을 나이였고 죄없는 책들이 나 대신 뛰어내리게 된거지. 그런 기분의 복선은 이미 유년부터 있었던거야. 간혹 당혹스런 뭔가가 그 시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게 만들곤 했어, 되돌리고 싶은 시간, 망쳐버린 것에 대한 개운하지 못함, 그래 처음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 자살의 싹은 자라고 있었던거야 시간 앞에는 그래서 철면피도 필요하고 수긍도 필요하지, 그 기술의 존재를 아직 몰랐을 때 본능적으로 익혀져 있지 않았을 때 그것을 약하다고 하지, 삶은 스스로에게 잔인해지는 방법을 익히는 과정 그래서 스스로를 난도질 해 죽임으로써 나는 빠져나와 살아남는 기묘하고 재밌는 원리. 걸었던 길을 다시 걷는데 그 길이 아직도 열려있다, 그 앞의 하늘은 얼마나 긴지 언젠가는 잡힐줄 알았는데 잡히지 않는다, 투신의 이유가 될까 싶어서 하늘에 투신하려니 긴 하늘로 거꾸러지지가 않는다, 굵은 다리가 땅에 너무 바짝 붙어있다, 먹을 것을 안먹어 위에 구멍을 내어 위가 숨을 쉬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참는데 꼬르륵 자꾸 말을 건다. 그래서 바람 위에 자리를 품는다 행려병자, 빌딩이 얼마나 무심하게 서 있는지 마치 사람같다. 귀가 조금 멍멍할 뿐 너무나도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날, 자살하고 싶은 날은 왔다 지나가고 난 여전히 살아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네온이나 블루 같은 단어에는 끌릴 수밖에 없음이 당연하지 않은가, 네온은 그 허영만큼이나 눈부시고 반짝인다 모텔 앞의 야자수 네온을 보면 지금 라스베가스에 와있다고 말하고 싶어져도 별 해가 없다 그날 밤에 네온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금에 와서라도 말해줄 수 있겠니? 추측해본다면, 모텔 테라스, 같은 표현을 너무 쉽게 사용하는 것은 약간 싫다 와 같은, 그런 망설임이 아니었지 싶어 그렇다고 꽁꽁 숨겨둘 것은 못 되잖아, (나는, 콤마를 남발하는 사람인데, 그래도, 괜찮아?) 차라리 여기가 라스베가스라면 모를까. 그래서, 아무튼, 테라스든 베란다든, 발코니든, 아아, 발코니. 발코니라고 치고 그날 제주 콘도 발코니에서 목격한 것은 바다가 아니었다 차라리 공중에 펼쳐진 길들이었다 창문이라는 매질을 통해 전해진. 그날 현무암들의 숨구멍에서는 해녀들의 체온만큼이나 뜨거운 파동이, 나는 거기에 치여 죽었다. Silence is easy를 듣기 전에, 플레이리스트는 네온(이걸 니온으로 읽을 수도 있겠지 니온을 제작하는 사람들의 발음을, 아니 혀를 듣고 싶어 얼마나 깊숙한 곳에서 끌어오는 허영들일까 까스, 니온, 니온 까스, 니온의) 스카이, 스카이는 너무 스카,해 언제 한번 풍선에 네온 가스를 가득 채우고는 그것이 내 안의 색채를 닮는 순간에 놓치지 않고 후읍, 하고 마시고 싶어 그러면 나는 허영해지겠지 울트라마린에 중독된 네온 강박증 환자들처럼 너를 사랑해 (하지만 콜론만큼은 아냐 안심해도 좋아)

>>36 스레주는 저저번주에 졸업하고 갓취업한 따끈한 초년생이야 ㅎ … 책도 못보는 반꼴찌공고생이고 연재는 근성없어서 해본 적이 없어 ㅋㅋㅋㅋㅋㅋ ㅜㅜ. >>37 에고 거의 메모장 백업하듯 쓰는건데 반응이 있을 줄 몰랐네 고마워 되게 기분좋다 💕💕 >>38 실력도그렇고돈이안돼 >>39 ㅎㅎㅎ 퇴고를 안하는 스타일이라 낸중에 봤을 때 손대기 어려운건 그냥 갈아버려 … 글은 늘 나중에 봐야하더라 근데 여긴 그냥 올렸는데 누가 보는 것 같아서 창피해져서 (()) >>40 아냐 레더 너 내가 초중딩 때 쓴 글 못봐서 그래 ㅠ 시간이 약이야

혹시 책 많이 읽는 편이야?

>>44 어렸을 땐 남들 읽는 만큼만 읽었는데 중학교때 이후론 책은 커녕 교과서도 안봤음 창피 ㅎㅁㅎ …

글 진짜 잘쓴다 야...우리판 존잘님 해줬음 좋겠다 진짜ㅠㅠㅠㅠ

스레주 사람이 쓰는글이랑 스펙트럼이 완전딴판인뎈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돈이 안된다니 너무 뼈아프다.. 잠깐만 그럼 지금 레주가 고작스무살에 공고졸이라는거야?문창과 학생이 아니고???????

돈이라는 것은 통상적으로 세속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돈은 신성한 것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즉 돈에서는 무한성과 영속성이라는 표지를 발견할 수 있는데, 무한성과 영속성이 신성에 속한 무엇이라고 볼 수 있다면 돈은 그러한 표지에 의해 신성한 무엇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의 무한성은 그 축적에 제한이 없다는 것에 의해 나타난다. 우리는 어떠한 사물이나 물건, 대상을 축척하려고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구체적 물질성을 가진 사물들은 공간적 제한을 받게 되고 그러한 제한성에 의해 물질적 사물의 축적을 무제한으로 할 수 있다는 상상은 뻗어나가기 힘들다. 하지만 돈이란 것은 물질성을 가지는 동시에 추상화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돈을 쌓아놓기 위해 커다란 창고를 짓지 않아도 오히려 보관료를 받으며(이자) 은행에 맡겨놓을 수 있으며 그러한 과정은 꼭 물질적인 돈을 손에서 손으로 건내주지 않아도 가능하다. 돈이란 그렇게 물질성을 거세한 추상적 대상으로 변화되었으며 그러한 추상성은 무한성의 표지가 되기에 충분하다. 우리가 머리속에서 추상적인 숫자를 끝없이 세어나가고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돈이라는 것은 그러한 추상적 속성에 의해 무한한 축적이 가능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고, 그러한 무한성의 표지에 의해 돈은 성스러워진다. 돈의 영속성은 돈이 썩지 않는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모든 물질적 사물은 부식하거나 썩어 없어지는 물질적 한계성을 지닌다. 상품도 마찬가지로 그것이 교환되거나 애프터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은 한정되어 있으며 그 상품의 수명 또한 제한적이다. 그러나 돈은 썩지 않으며 유통기한도 갖지 않는다. 돈은 아무리 그것이 너덜너덜해진다고 해도 은행에 가면 빳빳한 새 지폐로 교환이 가능하며, 그 돈을 얼마나 오래 소유하고 있던지 간에 시간에 의한 돈의 가치의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론 돈의 가치는 변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러한 구체적 수준의 논의는 하지 않기로 한다) 즉 만원짜리 지폐는 꼭같은 만원짜리 지폐로 얼마든지 교환이 가능한 것이다. 돈은 교환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돈이 단지 교환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돈은 그것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사용되지 않아도, 소유 그 자체만으로 사회적 효과를 발생하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은 돈의 소유자가 죽어서도 후대에 물려짐으로써 그 생명을 이어나간다. 물론 이러한 돈의 영속적 생명력을 끊어내는 제도는 법에 존재하지만 그러한 것을 피해나가는 현상들을 보여주는 현실적 사건들은 오히려 돈을 통해 자신의 영속성을 유지하려는 돈의 신성화를 보여주는 단면이 아닌가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돈은 무한성과 영속성의 표지를 가지고 있으며 그 표지를 통해(실제로 돈이 그러하다 아니다와는 무관하게) 신성한 무엇으로 인지될 수 있다. 따라서 돈은 가장 세속적이면서 신성한 무엇이며 무한과 영속의 신화가 깨진 작금에서는 돈의 추구가 신성 추구라는 종교적 욕구를 대신 충족하는 대체물로 기능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고속버스 터미널의 작은 매표창구를 통해 그가 사는 도시의 이름을 말한다. 표를 건네 받고 버스에 오른다. 평일 오후의 고속버스는 한산하다. 버스 출발시간까지는 10여분 정도가 남아 있다. 생수통을 꺼내 물을 마시고 숨을 돌리는데 버스 차창에 누군가 써놓은 듯한, 러브레터. 고속버스의 차창도 편지지가 될 수 있었다. 연인의 마음은 그런 것이다. 어디에나 사랑을 끄적일 수 있다. 커피숍의 로고가 적힌 휴지에도, 눈쌓인 초등학교 운동장에도, 바닷가 등대의 흰 벽과 놀이동산 관람차의 천장, 그와 그녀의 부드러운 손등에도. 너를 사랑한다고 아로새긴다. 거기, km단위의 거리를 고속도로 위로 숨차게 뛰어온 연인에게 보내는 마음이, "항상 고맙고 사랑한다." 2시간 남짓 버스를 타고 그에게 가는 동안 여덟줄의 마음을 읽고 또 읽는다. 이 자리에 앉아 펜을 쥐고 글을 쓰는 남자의 손과 이 자리에 앉아 글을 읽어내리는 여자의 미소가 차창에 비친다. 나는 그와 그녀에게 묻는다. 장거리 연애가 힘들지는 않으세요. 한용운 시인은 '사랑의 측량'을 이렇게 했다. 당신의 사랑은 당신과 나와 두 사람의 사이에 있는 것이므로 사랑의 양을 알려면, 당신과 나의 거리를 측량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신과 나의 거리가 멀면 사랑의 양이 많고, 거리가 가까우면 사랑의 양이 적을 것입니다. 뉘라서 사람이 멀어지면, 사랑도 멀어진다고 하여요. 당신과 나의 사랑은 150km. 1년 동안 우리들이 서로를 향해 숨차게 뛴 거리를 모두 더하면 사계절의 시간을 이을 수 있을까. 차창 밖으로 지나쳐가던 봄, 여름, 가을, 겨울. 차창 위에 또박또박 적힌 글자 뒤로 사계절이 되감기고 있다. 마른 가지에 떨어진 잎들이 다시 붙고 붉던 잎들이 푸르러 지고 푸른 잎들이 살풋한 연둣빛으로, 가지 끝에서 꽃망울이 터진다. 남자의 손 끝에 여자의 입술에 꽃이 핀다. 버스 안에서 곤히 잠든 사람들의 뒤통수에도, 버스 기사 아저씨의 정수리에도, 지금 가고 있다고 누군가와 통화하는 속삭이는 목소리에도 꽃이 핀다. 내려다보이는 중형차의 핸들을 쥔 손에도 차창에 매달려 장난을 치는 아이의 웃음에도 꽃이 핀다, 피어난다. 갑자기 느려진 속도에 잠을 깬다. 버스는 이제 톨게이트를 지나고 있다. 이어폰에서는 Asto Union의 Think About'chu가 흘러나온다. 그 기억 여기서 또 한번 너와 나 둘만의 사랑을 느껴지네 느껴지네... 친구들은 장거리 연애가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한다. 하지만 세상에 나쁜 연애가 어디 있겠는가. 터미널에 서 있는 당신이 보인다. 버스에서 내리자 당신은 나를 안아준다. 내 손을 꼭 잡아 당신의 호주머니에 넣고 걷는다. 당신의 체온, 당신의 웃음, 당신의 목소리. 항상 고맙고 사랑한다.

진짜 스레주 첫레스도 완전잘썼는데 가면갈수록 느는게 보인다,,,내가 오징어로보여....

뭔가 멋있다.. 저렇게 많고 다양한 단어를 알면서도 절제하듯 표현하는쪽으로 바뀌었다는게 ㅋㅋㅋㅋ 대단해 스레주ㅠㅠㅠ

스레주 다좋아 사랑하는데 조금만자주와.,.,.,소통하자 ㅜㅜㅜ

헉 여기 표현 쩐다... 고속버스 차창도 편지지가 될 수 있다니 너무 시적이고 낭만있는거 같아

레주 혹시 커미션같은거 받니?

스레주 혹시 글쓴지는 얼마나 되는건지 글 쓸 땐 얼마나 걸리는지 알고싶어 ㅠㅡㅠ .. 난 작업속도는 빠른데 맨날 퀄리티가 내 마음에 안 들게 나오거든 ....

그렇다고 해서 자네가 다시 이 문장을 읽게 될 줄은 몰랐소. 그렇지만 이렇게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자네는 음악을 좋아한다고 했었지, 아니라면 할 수 없지만 아까 속으로 그랬을 것이오. 나는 앞으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지 아오. 처음에는 내가 횡설수설한다고 느꼈을 게요. 그렇지만 하나의 전체성을 논할 때 악장과 악장 사이, 오선에 목을 맨 음표와 쉼표, 각종 기호들에 의하여 악곡이 정립되는 것 처럼 모든 것은 혼돈에서 하나 하나 자리를 잡아가는 법. 생각도 마찬가지라오. 브레인스토밍 하는 순간은 폭풍이 일다가 그 속에 나무도 집도 가축도 있다는 걸 알게 되지 않소. 머릿속이 비로소 평화를 찾으면 퍼즐 조각처럼 늘어진 요소들을 복구하는 것은 당신의 재량. 태초엔 신이 혼돈에게 질서를 부여하자 죽어버리고 정돈을 낳은것이라 들은 바 있소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를 아시겠는가.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관계가 무한히 반복될 것이오.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관계가 공회전 할 것이오. 당신은(이제부터는 자네라고 부르겠소) 문장에 개연성이 없다 욕할지도 모르오.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소. 단지 이것이 나만의 주장이므로, 객관성이 결여되었다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여러분은 이 글을 딱 한번만 읽다가 이해하고 말 것이오. 딱 한번만 읽다가 늙어죽고 말 것이오. 이제는 아시겠소? 자네는 음악을 좋아하오? 나는 음악을 남 골려주는 것만큼이나 좋아하오. 내가 남 골려주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자네는 모른다오. 이 글에 하나의 법칙만 만들면 간단한 일이오. 바로 음악기호를 적용시키고 단 하나의 기호만 덧붙이겠소. 나는 이 글의 끝이 될 수 있었던 곳에다가 도돌이 표를 그릴것이오. 자네는 음악시간에 배운대로만 하면 되는 것이오.(참고로 이 글에는 두 줄의 마침표가 없소) 이렇게. :).

열 하고 엿새, 한 그믐의 허리 위에서. 당신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때에, 발목에 힘주어 걷는 이유는, 내 발자욱 더 오래 남으라고.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이 노래는 그 명칭 그대로 혼을 부르는 의식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기서 실제로 불리는 것은 혼이라기보다는 '이름'이다. 떠나가는 영혼의 발걸음을 돌려세우기 위해서는 그 외 달리할 방도가 없다는 양 현세의 잔류자들은 망자의 이름을 소리쳐 부른다. 오래도록 살아남은 의식이 어떤 방식으로든 진리에 관여하고 있다면 이런 사태의 본질에 대해 숙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왜 영혼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이름'에 응답하는가? 영혼, 혹자를 그 어떤 자로서 존립하게 해주는 것, 동일성의 원천, 바로 '본질'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영혼을 소환하는 방식이 이름을 부르는 것이라면, 그것은 영혼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 영혼이 들어 있는 상자가 바로 이름이기 때문은 아닐까? 이름이 망자의 영혼과 연결되어 있는 유일한 끈이라는 사고는, '초혼'의 의식을 치르는 한국인에게 뿐만 아니라, 서구의 사유 속에서도 발견된다. 가령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에서, 스완의 사망 소식을 신문에서 접한 주인공은 그의 이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생각에 빠진다. "부고란에 인쇄된 몇 줄은, 살아 있던 한 사람을, 우리가 그에게 건네는 말에 하나의 이름, 실재의 세계에서 단숨에 침묵의 왕국으로 건너간, 쓰여진 이름에 밖에 답하지 못하는 어떤 자로 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침묵의 왕국으로 건너간 자가 이승의 부름을 알아차리고 응해올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오로지 이름이라는 것이다. 재밌게도 쿳시는 이름에 대한 이런 프루스트의 생각을 자기 작품 속에서 그대로 모방해, 서구에서 가장 오래된 죽음에 대한 명상인 오르페우스 신화와 뒤섞고 있다. "그는 한발짝 한발짝 뒤로 물러서면서 죽은 여인의 이름을 부르며 지옥으로부터 그녀를 불러내는 오르페우스를 떠올린다. (중략) 플루토도 없고 리라도 없는 상태에서 오직 이름만을 거듭 부를 뿐이다. 죽음이 모든 끈을 끊어버려도 이름은 여전히 남는다." 놀랍도록 프루스트의 그것과 유사한 구절이다. 프루스트에게서 죽은 스완과 이승을 연결지어주는 것이 이름이듯, 망자의 땅으로 들어간 여인의 영혼을 이승의 오르페우스에게 불러올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이름이다. 바로 이름을 통해 한 인간의 본질은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있거나 소환될 수 있는 것이다. 괴테가 남긴 이름의 정체성의 긴밀한 관계에 대한 암시. 파우스트는 변장한 메피스토펠레스의 정체가 악마라는 것을 도대체 무엇을 통해 알아보는가? 파우스트 : 자네 이름이 뭔가? 메피스토펠레스 : 그 질문은 시시한 것 같은데요. 말이란 걸 그다지도 경멸하시고 일체의 외관을 훨씬 초월해서 본질의 깊은 곳만을 탐구하시는 분으로선 말입니다. 파우스트 : 너희 같은 부류에 대해선 이름만 들어도 대강은 정체를 짐작할 수 있지. 파리의 신, 파괴자, 사기꾼이란 이름만 들어도 그 얼마나 분명하게 알 수 있겠는가? 그건 그렇고, 자넨 대체 누군가? 이렇게 메피스토펠레스의 이름은 그 이름을 부여받은 자의 정체, 본성을 구성한다 따라서 말을 경멸하고 그 너머에 있는 본질만을 탐구하는 파우스트도, 말 중의 말, 가장 특별한 말인 '이름'을 외면할 수는 없다. 쿤데라는 어느 소설에서 이름 안에 그 이름의 주인만이 가진 정체성을 구성하는 영혼이 들어있다는 그런 생각을 다음과 같이 긍정하고 있다. "이 마을의 모든 소들에게는 이름이 있었다. 이름이란 영혼의 표지이기 때문에 그것들은 하나의 영혼을 지녔다고 나는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데카르트에 대한 반론이다." 익명성 속에서 동물 등은 데카르트가 보았듯 한낱 자동기계에 불과하다. 그들은 익명적인 수량으로 계산되는 자원일 뿐이다. 그러나 호명되었을 때 마치 주술이 풀리듯 이름의 마술 상자는 봉인이 제거되고 한 개체만의 양도할 수 없는 '독자성'이 흘러나와 빛나기 시작한다. 물질이 영혼을 입고 생명이 된다. 반면 이름이 없다는 것은, 나의 양도불능의 독자성을 잃어버리고, 가난한 벌거숭이가 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토마스 만의 인물들이 <요셉과 그의 형제들>에서 다음처럼 의미심장하게 이야기하듯. "사람들은 우리를 이 감옥으로 보내기 전에 그 이름들을 모두 벗겨버렸어. 그래서 우리는 지금 (중략)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라네." 죄를 지어 감옥에 갇힌 이 이집트인들에게, 마치 양도할 수 없는 최후의 거처마저 태워버리듯 박탈되는 것은 바로 이름이다. 본질이 담겨 있는 상자라는 이름의 비밀을 숙고하기 위해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사색하고 있는 한 작품을 면밀히 살펴보는것도 좋겠다. 폴 오스터의 <문팰리스>가 바로 그것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마치 "이름이 자기에게 없어서는 안 될 어떤 것을 선택하도록 부추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즉 없어서는 안 될 자기의 본질을 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름을 대한다. 이름의 신비에 이끌려, 이름의 상자를 하나하나 열어가며 그 안에 들어 있는 본질을 육화시켜 나가는 일에 대한 주인공들의 집착은 이 작품 전체를 이끌어가는 추동력이다. 가령 한 구절. "집안의 다른 사람들은 그를 솔리라고 불렀는데, 바버는 그 별명을 싫어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별명이 자기의 원래 이름인 솔로몬, 즉 아기를 반으로 자르겠다고 위협을 할 수 있었을 만큼 판단이 명확했던 히브리의 현명한 왕 솔로몬과 어쩐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그것이 자기에게만 알려진 비밀인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나중에는 접미사가 떨어져 나가서 솔리는 솔이 되었다. 그는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시인들로부터 솔은 태양을 뜻하는 옛말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프랑스 말로는 '땅'이라는 뜻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자기가 동시에 태양과 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 뒤로 몇 년 동안 그는 솔이라는 별명을 자기만이 우주의 모든 모순을 포괄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여기서 솔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거대한 선물 상자같이 작동한다. 이 이름으로 명명된 자는 처음에 이름의 상자 안에서 솔로몬을 불러내고, 태양과 땅을 동시에 찾아내며, 마침내 이름 속에서 '모든 모순을 포괄하는' 자기의 본질을 발견해낸다. 또한 이 소설에서 이름은 한 인물의 본질뿐 아니라 한 사건의 본질을 육화하기도 한다. "우린 그걸 잊어선 안 돼. 이 차가 위대한 인디언 추장의 이름을 물려받았다는 거. 그게 우리의 여행에 또 다른 의미를 더해 줄 거니까. 이 차를 몰고 서부로 감으로써 우리는 그 추장에게 경의를 표하고 우리가 그들에게서 훔친 땅을 지키기 위해 들고일어났던 용맹스런 전사들을 기리게 될 거야." 여기서 주인공의 여행이라는 사건은 그것의 본질을 '폰티악(인디언 추장)'이라는 하나의 고유명사로부터 얻고 있다. 물론 이야기 막바지에 이뤄지는 이러한 여행은 이미 소설의 첫 부분에 운명지워져 있는데, 이 운명 또한 마치 빙의가 되듯 주인공이 갖게 된 이름을 통해서 부여된 것이다. "마르코 스탠리 포그. 외삼촌 말에 따르면 그 이름은 내 피 속에 여행을 좋아하는 기질이 배어 있다는,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전에 아무도 가보지 못했던 곳으로 가게 될 징표라는 것이었다." 즉 하나의 주문처럼 이름은 명명되자마자, 방랑벽이라는 주인공의 본질을 결정해버린다. 비슷한 경우로서, 데리다 같은 이는 자기 이름이, 말하는(글쓰는) 자로서 자기의 운명을 결정했다고 말한다. "나는 데리다라는 나의 본명은 결코 건드리지 않았는데 나는 항상 이 이름을 아름답다고 생각했지요. (중략)나로 하여금 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그리고 타인에 대해 그렇게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하는 건 바로 데리다란 이름입니다. (중 략) 그것에 봉사하기를 열망했음에 틀림없습니다." 나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내가 아니라, 운명처럼 내게 붙여진 '이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의 이름을 선택하는 것도, 이름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이름 이 담고 있는 본질이 우리를 통해 육화할 수 있도록 이름에 '봉사'하는 것이다. 이름에 대한 데리다의 이런 생각은 매우 플라톤적이다. 하나의 본질로서의 선율이 육화하기 위해 작곡가를 부리듯 데리다라는 작가의 이름은 자신의 본질을 육화하기 위해 그 이름을 부여받은 어떤 이의 운명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포그(Fog)라는 그의 이름이 여행자의 운명을 담고 있는 마술 상자가 되어버린 것은, 그 단어가 이민국 직원의 실수에서 생겨난 '포겔만'의 잘못된 변형이기 때문이다. 포겔만은 말할 것도 없이 여행자의 운명을 지닌 새(Vogel)를 환기시키는 이름이다. "나는 내 이름자에 새가 들어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중략) 나는 늘 안개를 헤치고 나는 새, 미국에 이를 때까지 쉬지 않고 대양을 가로질러 나는 새를 생각하곤 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주는 바가 무엇인가? 포그라는 이름은 여행자의 본질을 담고 있는 이름이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 이름 자체를 분석해서는 여행자의 운명이라는 이 이름 안에 담긴 주문과도 같은 본질을 결코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지시의 관점에서 '포그'는 이름의 주인인 한 인물을 가리킬 뿐 이 지시관계 안엔 여행자와 관련된 어떤 함의도 없다. 의미의 관점에서 포그라는 이름은 기술론적으로 분석될 수도 있다. 또 만일 원한다면 인디언식 작명법에 착안해, 안개라는 그 이름의 뜻에서 인물이 지닌 속성을 엿보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시도는 포그라는 이름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여행자'라는 본질을 밝혀내는 데 실패하고 만다. 이름이 지시하는 바나 이름으로부터 기술될 수 있는 것은 이름 안에 들어 있는 정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지시적 관계나 기술적 관계 속에서 이름 안에 들어 있는 본질이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면, 이름 자체와 그 안에 있는 본질은 서로 공통점이 없는 것(incommensurabilité)임이 분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바르트는 "고유명사는 지시하는 단순한 지표가 아니며, 의미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단지 고유명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심지어 일반명사조차도,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이나 그것을 발화하는 자가 이해하는 그것의 의미와 상관없는 본질, 즉 이름 자체와 상관없는 본질을 가지는 경우를 우리는 알고 있다. 이성복의 다음 싯구절에서 볼 수 있듯. "아내가 자기 언니 보고 '언니!' 그럴 때는, 반쪽 짝 갈라놓은 水晶의 내부 같은 것이 보인다. 촘촘한 보랏빛 각진 기둥들이 지키는 原石의 내부, 아내에게도 언니에게도 없는, 언니라는 말의 내부." 언니라는 말의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아내에게 이 말의 본질은 없다─따라서 이 말은 이미 일반명사로 쓰이고 있지 않다─그렇다고 지시체인 언니에게 이 말의 본질이 있지도 않다. 수정의 원석과도 같은 이 낱말의 본질, 내부는 지시체나 객관적 의미에서 결코 찾아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름 안에 들어 있는 본질, 주문을 외듯 발음하자마자 그 이름의 봉인이 해체되고 마개가 열려 새어나오는 그 본질은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걸까. 2. 이러한 이름의 비밀에 대해, 프루스트의 사색은 값진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신의 이름 붙이는 행위를 창조의 본질로 이해한' 프루스트는 어떤 것이 그것 고유의 특정성을 갖고 탄생하는 것은 바로 이름을 통해서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름 붙임으로써 사물들을 창조하셨다." 재밌게도 훗날 사르트르는, 신은 이름을 붙임으로써 사물들을 창조했다는 이런 신학적 명상에서, 신의 자리에 인간을 밀어 넣었다. "우주가 내 발 밑에 층층이 쌓여 있었고, 모든 것이 겸손하게 하나의 이름을 간청하고 있었다. 그것에다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은 그것을 창조함과 동시에 거머쥐는 것이었다. 그러한 주요한 환시 없이는, 나는 결코 글을 쓰지 않았으리라." 무신론자인 사르트르의 글쓰기는 역설적이게도, 이름지음으로써 사물의 본질을 창조하는 신의 작업을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이름지음을 통한 본질을 창조하는 신의 작업을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이름지음을 통한 본질의 창조에 대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주인공도 재밌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암캉아지에게 남자 이름을 지어주자고 하는 토마스에게 여자친구 테레사는 이렇게 걱정을 털어놓는다. "이 암캉아지를 남자 이름인 카레닌으로 이름 붙인다면 성적인 발전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요?" 정말 지장을 주었다. 암캐는 자기에게 붙여진 남자 이름으로 인해 '남성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암캐는 보통 바깥주인에 더 매달리는데도 불구하고 카레닌의 경우에는 그 반대였다. 이 암캐는 테레사를 보다 더 좋아할 것을 결심했던 것이다." 즉 남성형 이름 때문에, 여성에게 끌리는 남성적 '본질'을 갖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이름이 그 이름을 획득한 자의 본질을 규정한다는 것은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이름에 대한 오스터의 성찰에서 봤듯 이름과 이름 안에 들어 있는 본질은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이 두 가지 사이의, '무관계의 관계'라고 불러도 좋을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오스터의 성찰은 이름에 대한 위대한 탐구자인 프루스트를 선구적 원천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프루스트에서 파름므라는 이름도 아무런 상관 없이 본질을 감싸고있다. 이 점을 바르트는 다음처럼 설명한다. "'파름므(Parme)'는 에르투리아인들에 의해 건설되고, 포 강 유역에 위치하며, 인구 13만 8천명을 가진 에밀리아의 한 도시를 가리키지 않는다. 이 두 음절의 진정한 기의는 두 개의 의미소로 구성되어 있다. 스탕달적인 감미로움과 제비꽃의 광택이다." 스탕달적 감미로움과 제비꽃 빛깔이라는, 파름므라는 이름 안에 들어 있는 본질은 그 이름과는 전혀 닮은 데가 없다.

스레주의 문체는 뭔가 보풀이 일어난 삼베 이불 같은 느낌이야. ㅋㅋㅋ 없어 보이는 표현인데 딱 읽자마자 그 생각이 들었어ㅋㅋ 정말 잘 읽고가 앞으로도 종종 눈팅 할게

매일 아침마다 아기새처럼 채 눈도 뜨지 못한 채 부스스한 네 머리카락을 정리해줄 무렵이면 게슴츠레 뜨는 누나 눈이 예쁘다는걸 알아요? 침대 시트를 꼬깃 그러쥔 누나 손을 덮어주고 굿모닝 키스를 할 무렵이면 응석부리기 시작하는 모습이 예쁘다는걸 아는지 모르겠어요. 졸려운 와중에도 서로 장난칠 욕심이 몽글거리는 양치거품이 바닥으로 흘러간 뒤, 같이 세수하고 수건으로 누나를 뽀송뽀송하게 만들어주는 순간을, 여벌의 옷들을 서로의 앞에 가져다 대어보며 서로의 모습을 가꾸어주는 상황이, 공강이 아닌걸 아쉬워하며 오전 중 먼저 외출하는 애인을 잘 다녀오라며 꼬옥 껴안고 뽀뽀해주는 순간이 누나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을텐데요. 찬이는 확신할 수 있을까요? 누나는요? 혼자 집에 남아서 잘 참아보다가도 한시간 쯤 뒤면 전화를 걸어 잘 도착했는지 어리광 부리는 찬이가 혹시 귀찮지는 않아요? 그럴 게, 찬이는 혼자 있을 때 누나 생각이 너무 많이 나니까요. 이따금씩 어플 보고 누나가 달가워하지 않을만한 메뉴라도 있으면 도시락 싸주는건 어때요? 나중에 찬이한테 좋아해./아니. 로 대답해주세요!(웃음소리.) 남들 시선 신경쓰지 않고 쪽쪽 뽀뽀하며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순간들을 찬이는 많이 좋아해요! 일이나 공부하고 있을 내 애인에게 힘내라고 문자 보내주거나, 가끔 누나가 약속 때문에 늦는 날이면 내심 불안하면서도 얌전히 잘 기다리는 찬이에게 예뻐예뻐(뽀뽀, 쓰담쓰담, 키스< 등등) 해줄건가요? 술 마시고 취해 귀가한 내 애인을 껴안고 사랑해, 고백하며 폭풍뽀뽀를 하는건요? 언젠가 요리하는 누나를 뒤에서 꽉 껴안아줄거에요. 찬이가 알바가기 싫다고 칭얼거릴 때도 잘 타이르고 얼러줘서 배웅보내는 누나를 많이많이 좋아해요! 퇴근 후엔 주말에 어디 놀러갈건지 계획 정하는 그 다정한 시간도 좋아하고, 때론 누나의 답잖게 삐뚤어진 옷매무새를 저 혼자만 알고 있다가 충분히 간질간질해졌을 때 정돈해주는 정도는 봐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달달한걸 좋아하는 누나 입가에 묻은걸 살짝 핥고 뽀뽀하며 먹어버렸을 때 창피해하는 누나 모습을 찬이가 많이 좋아해요. 때론 여유롭게 테레비 보다가 잘생긴 연예인이라도 나오면 내심 많이 불안하다는걸 누난 알까요? 길을 걷다가 애인이 마음에 들어하는 선물을 사줄 수 있다는게 얼마나 뿌듯한건지 몰라요. 누나의 생일 날, 12시 정각에 전화해서 축하해주고 종일 같이 데이트하는거에요. 소소한 기념일마저 빠짐없이 챙기고, 혹시 깜짝파티 같은걸 하는건 누나가 싫어하진 않을까요?(이건 고민 중…), 누나가 아플 때면 늘 달려가서 안아주며 간병해주고 싶고, 일이나 과제 때문에 바쁜 누나에게 이것저것 챙겨주고싶은 마음도 이다지도 잔뜩인데요. 눈에 뭐 들어갔다고 거짓말하곤 누나가 거울 살펴볼 때 뽀뽀하는 장난기가 싫지는 않아요? 친구들과의 자리에서 누날 내 애인이라고 자랑하는건요? 잔뜩 칭얼거려서 볼에 뽀뽀해달라고 하곤 고개 돌려서 입에 받아도 돼요? 어쩌면 부끄러워 할 것만 같은 누나를 꼭 껴안아줄거에요. 가끔은 누날 위한 디저트를 연습하다가 미처 청소하지 못한 채 엉망인 거실을 누나에게 들킬지도 몰라요. 무릎에 누날 앉히고 같이 누나의 졸업앨범을 보거나(찬이는 없으니깐!), 누나가 약속에 얼마든지 늦더라도 상관없는 내 애정의 형태를 어떻게 말해주면 누나가 이해해줄 수 있을까요? 퇴근할 때나, 하교할 때 맞춰서 나와 누나를 놀래키고 싶어요! (아직도 날씨는 종종 추우니깐)혹 누나가 춥다면 손 깍지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어요. 심심할 때면 찬이 허리를 끌어안고 바이크 뒤에 타도 괜찮아요. 내 애인이 우울하다면 그 날 그대로 바다라도 데려가서 같이 드라이브 하고 싶어요. 여유가 된다면 커플링도 같이 맞추고, 놀이공원이라도 가게 되면 게임으로 인형도 따줄거에요. 둘이 두루두루 사진 찍으며 즐거워하는 순간도 겪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찬이는 대부분의 나날동안 먼저 잠든 누날 보고 귀여워할테지만, 만약 누나가 잠이 통 오지 않는 밤이라면 옆자리에 누워 자장가를 불러줄거에요. 같이 달력을 보며 이번 달의 기념일을 구태여 찾아보고, 한사코 설거지를 같이 하겠다면 누나 뺨에 거품 묻히면서 장난치고싶어요. 쌀쌀한 날에 춥다면 누나한테 담요를 덮어주고 포근하게 껴안아줄거에요. 어쩌다 빨간 실이 눈에 띈다면 장난 삼아서라도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이어두고만 싶고, 바닷가에서 다른 사람한테 시선 돌린다면 어쩔 수 없지만 찬이는 조금 많이 질투가 나버릴거에요. 우리가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눠 꽂곤 서로의 어깨에 꼬옥 붙어선 음악을 듣거나, 피아노가 보인다면 그 앞에 나란히 앉아 같이 피아노를 치고도 싶어요. 별 것 아닌걸로 아웅다웅하다가도 어색해져서 마주보고 웃는 순간이 나중의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추억이 될지 찬이는 감히 어림할 수가 없네요. 애인이 만든 요리라면 무엇이던 맛있어해주거나, 가끔 새벽 주파수로 흐르는 티비에서 야한거<! 라도 나오면 얼른 채널 돌리고 어색해하는 순간도 마찬가지겠고요. 누나가 소파에 앉아있다면 허리를 꼬옥 껴안고 누워있고 싶어요. 만약 누나 향기가 좋고, 따뜻하고도 몹시 포근해서 많이 졸려워진대도 찬이는 두 눈을 부릅뜨고 버틸거에요. 혹시 정각이 되었을 무렵에 꾸벅꾸벅거리는 나의 애인을 공주님안기로 침대에 데려가주어야 하니까요.

??아니 스레주 갑자기이렇게 연하남이 되면 어떡해 묘사못하는게뭐야대쳌ㅋㅋㅋㅋㅋ???

이쯤하니까 스레주는 어떤 삶을 사는지도 궁금하곸ㅋㅋㅋ

근데 뭔가 암묵적 룰이라도 있는거마냥 스레주 외에 아무도 글을 안씀

바쁜 세상이 되었다 아침에 현관을 나서면 즐거움보다 시름에 잠겨 울상을 짓는 일이 더 많고 친구를 보는 날보다 원수와 하루 더 척을 지는 착잡한 일들이 많아진다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본다 밖에서 보는 것들 죄 짐승 그런 환상속에 살고있다 언제부터인가 친구들도 환상에 빠졌다 꿈에 빠져 살면 눈을 뜨고 걷기가 힘들어서 자주 보던 역앞에서도 매번 진이 빠진다 잠이 덜 깬 모양새로 휘적거리며 걷다가 어 그래 잘 지내고 다음에 보자 다음이 언제일 거란 기약따위는 전혀 없다 어려서 배웠던 약속의 중요함을 잊었으니까 이제 기억하는 일보다 잊는 일이 많아졌다 다음이 의미하는 바와 보자가 무슨 뜻인지 꿈 속에서 현실을 기억하기란 힘든 일이다 즐거웠던 기억만 붙잡고 기계처럼 웃었다 너무 즐거웠고 다음에 또 보자 지랄, 지랄 육갑이다

와 스레주 문체에 반했어.... u///u 진짜 글에 빠져드는 느낌이 이런거구나 싶어

레주 진짜 뭐하는사람임?

연습스레라며...다 완성돼있잖아.....이건 반칙이야,, 근데 진짜 스레주가 달필인거 외에도 다양한시도 하는 것 같아서 많이 배워가 ㄷㄷ 구어체였다가 설명문이 되기도 하고, 고전적 근대로맨스였다가 고찰문이 되기도 하고 대단해... 근데 제일 충격인건 잘가다가 갑자기 페북인스타하는 인싸존잘생고딩연하남된거...............

아 하루에 몇번을 들락날락하는거야 갱신!

한 책에서, 소설 쓰기 혹은 늘 글 쓰기 이거 중노동이라고, 정말 그래 그래서 술 많이 먹게 되는 거였더라, 이건 한도 끝도 없어요 24 시간이 늘 '문학'이야 보상도 없어요 그냥 자체 만족해야만 하는 거야, 결혼이며 직장이며 보통 사람처럼 살기며 이런 게 다 아닌 삶이야, 그러니 술이야 국민마약 술, 예 술을 마시게 되는 거야 예술 믿는 게 아니라 인간은 툭하면 중독 잘 돼요. 문학에도 저런 사정이 있기 때문에. 책, 책이야. 술, 술이고, 도서관, 도서관이고.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버릇이야 살다 보니까 알게 되더라 글 읽고 나도 글 써야겠다 그러면 그게 여든 간다고 하하하하! 버릇! the habit. 하하하하 이러는 국제스러븐 의미 비교를 해야 안심되는 시절이라. 이 정대홍, 나도 공식적으로는 노벨문학상을 노리고 있습디다 이 허름한 무명작가 정대홍도 말이외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면, 보호관찰소라고 법원 판결 전 조사라는 걸 거기 가서 받았을 때 내 환경을 죄다 밝혀야 할 때 내 장래 희망을 그리 쓰게 됩디다 단소연주회 피아노연주회를 할 것이다 이리, 노벨문학상 받길 희망한다 이리, 하하하하 하이고 꿈은 커서, 이게 내 블로그요, 전혀 무명이 그래도 간덩이는 막걸리로 커져서는 저랬더라는 이야기. 하! 아하, 그 보상이 없다는 건 수정해야겠네, 있어 보상이 있어 술 주로 막걸리, 1300 원짜리 두어 병이 하루 보상이라. 40년 경력이야 거의 정확히 술먹기 글쓰기 병행이 40년이야 수주 변영로- 명정 40 년 읽어는 보셨나 거기서는 술 실수들을 아조 자랑차게 이야기 하지 시방 읽으면 하하하하 순 범죄지 범죄... 이러는 게 전통이야 한 사람이 국무총리가 됐어 그러면 신문에 실려요 술은 두주불사-말술을먹는다는것 이쯤 돼야 총리 자격쯤 되는 거였어. 요새야 하이고 간드러지게 요사스럽지 성희롱입네 성추행입네 하지. 이거 얼마 못 가요 전쟁이 터져 봐요 강간 이건 거의 기본이야 세상이 이래 인간세상이 이래 인간은 철저한, 처절한 짐승이야. 아주 평화스러워서 사치스럽게, 성희롱 받아서 마음이 죽도록 고달퍼요 요래는데 말야. 하하하하. 이런 인터넷 소통 자체가 끊기는 그런 사태가 안 올 거 같으냐? 짐승인 인간이 과학을 쥐고 있는데 앞으로도 이렇게 늘 평화로울 것 같냐? 나 정대홍은 여기서 ddz1이오. 왜 그리 하였는가는 아는 이는 알으로. ddz. 나는 정대홍이오. 전도연은 그 학교 내, 연극과 후배요. 난 연극 연출에서는 안민수를 스승으로 생각하며 소설에서는 광장을 쓰오신 최인훈을 스승으로 주관적 생각 하오 시에서는 김남주 혁명, 민족 시인이라 역시 나대로 생각하오. 물론 저 세 분 직접 뵈온 것이며 읽은 것이며 확실하오. 유튭, (자동으로 나온다는 유튭 동네는 광고로 먹고 살겠지만 하하하하 니들도 그렇지 전혀 광고를 안 읽어요) 이제는 모찰트 레퀴엠이 나오네 디 마이너-라 단조 정대홍이 가장 좋아하는 음높이-키. 나도 모르게 디 마이너 키로 시작하길 좋아하는 피아노 치기. 내가 장정일 추켜 세웁니다 왜냐 나도 그쯤은 하니까. 나도 그쯤은 책 읽은 셈이니까. 난 도서관 세 군데를 다니오. 오프라인에서는. 문학인은 그럽니다 최대 적이 불알 친구요. 문학인은 이럽니다 최대 적이 불알 친구요.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범죄라도. 내가 여기 8년 됐지만 유일하게 직접 만난 사람이 누구냐 '장경규'. 개 같은 새끼. (당랑거철, 곱등이 새끼) 오래 여러 번. 갔지. 갔는데 지 방에 모시데 아니 데리고 가데. 갔더니 책이 한 권도 안 보이고 새끼가 진공관이며 스피커며 <전문 듣기 꾼>이라 난 또 그런 경험은 처음이라 화하! 쿵쿵 울리는 그 소리가 정말 현장, 연주회 현장에서 듣는다 싶은 그런 장관이더라고 그게 하! 그 새끼가 김종삼 모르더라고 한국 서정시 거두라고 하기도 하는 김종삼을. 왜 그 김종삼을 말했냐면 김종삼이나 그 새끼나 같은 안짱다리거든 게다가 그 새끼는 지 방에 자비출판 시집도 쌓여 있고 하하하하. 모른대 김종삼을 모른대. 하하하하하. 이놈으새끼 공돌이 분께오서 김종삼을 모른대 같은 안짱다리께옵서 그 장경규는 자세가 된 거야. 응. 음악으로 문학하고자 한다는 그 자세. 하하하하 밥 딜런도 노벨문학상 타는 세상에 뭐. 음악에서 가사 부분 개좆대가리지 그렇잖아? 이상한 거지 스웨덴 상 주는 애들이 좀 이상해진 거 같아. 거기에도 경규가 힘 쓴 거 같아. 하하하하하. 경규스러움이 스며든 노벨상위원회 같'애'. 좋은 거야 그게 현재를 살아 카르페디엠 현재를 지금을 지금을 살아 그게 없어 곧 죽어 지나온 걸 보니 금방이었던 거야 부모 다 없어. 김종삼이나 장경규나 공통점은 아마도 누나들이 많이 업어 키웠을 거라는 거 그래서 업히다 보니까 O 형 아랫다리로 다리가 휜 것일 거라는거 이거 맞는 얘기냐 이거 응? 경규야? 하여간 내 듣기론 장경규 누나들이 한 7명 된다지 자기는 제사모시는사람-제관 가만만 있어도 밥이 생기는 그런 무슨 -- 살다 보니까,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살게 된 인생 - 버릇. 줄담배-자.

ㄳ 스레주 연습스레 잘보고가

와 스레주 진짜 존잘이다...... 존경스러움

스테레오타입. 어떤 특정한 대상이나 집단에 대하여 많은 사람이 공통으로 가지는 비교적 고정된 견해와 사고. 고정관념이라고 번역된다. 대개의 경우 뚜렷한 근거가 없고 감정적인 판단에 의거하고 있다. 인간이 왜 스테레오타입을 고집하느냐 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인간이 스테레오타입에 의존하지 않고는 일상생활의 모든 사물을 새롭게 지각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스테레오타입의 체계가 아이덴티티의 핵심이며 자아방위의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어떤 스테레오타입이 불합리한 것이라고 판단되더라도 질서와 단순성을 성취하기 위해서 현실을 왜곡시키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스테레오타입이 이상하거나 병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떤 개인에 대한 첫인상처럼 자연스러운 인지반응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연스러운 인지반응을 수용하지 않고 거부할 때 반도덕적-반사회적이라는 낙인과 함께 비난과 공격을 받게 된다. 또한 이러한 제재가 정당한 것으로 당연시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람들을 스테레오타입에 순종과 동조를 보인다. 이 용어는 특정한 문화에 의해 미리 유형화되고 사회적으로 공유된 관념, 혹은 이미지를 의미한다. 이 용어는 원래 인쇄기술에서 유래된 것으로 명백하게 한정된 의미를 지닌 것이다. 어떤 활자의 형체가 완성이 되면 그것으로 주물을 떠서 단단한 금속판을 주조해내는데, 그 금속판이 바로 스테레오타입이다. 그렇게 얻어진 인쇄의 판형은 원래 활자의 판형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러한 스테레오타입의 목적은 수많은 인쇄를 거듭할 수 있는 판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스테레오타입은 '기술적으로 반복되는', 혹은 더 넓은 의미로는 '여러 번 써서 낡게 한다'거나 '흔해빠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용어는 미국의 사회학자인 월터 리프만의 <여론>에 의해 여론 형성의 사회적 토대를 분석하기 위한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 책에서 리프만은 현대사회에서 정치지도자들과 일반 시민들은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다양한 문제나 집단들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 그들이 그 집단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 그 집단의 실질적인 구성원 전체의 특성을 대변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그러한 생각들은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아닌 다른 경로를 통해 얻어진 스테레오타입이다. 리프만에 따르면 이러한 상황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스테레오타입에 속하는 대상들을 직접 경험한다고 해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 우리는 먼저 보고 나서 정의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정의를 내리고 나서 본다"라는 리프만의 말처럼, 사람들에게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보다는 그들이 보려고 하는 것을 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스테레오타입이라는 말 속에는 1.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거나 2. 직접적인 경험이 아닌 불확실한 정보, 혹은 지식에 의존해서 과장되거나 왜곡되게 일반화 내지 범주화되어 있거나 3. 감정적 호오나 도덕적 선악과 관련된 강한 주관적 판단이 개입해 있거나 4. 새로운 경험이나 증거에 의해 쉽사리 수정되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리프먼은 스테레오타입이 쉽사리 수정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인간의 환경적응과정에서 스테레오타입이 지닌 경제성과 더불어 스테레오타입이 인간의 사회적 아이덴티티의 형성과 자기방어의 메커니즘 형성에 깊게 관여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한다. 스테레오타입은 직접적인 경험에 의하지 않고도 낯설고 이질적인 대상들에 대한 개념정립을 가능케 해주며, 비록 그것이 왜곡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를 통해 혼란스럽게 헝클어져 있는 세계에 낯익은 질서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매우 단순하고 일반화된 기호로서 특정 사람이나 사물을 사회적으로 구분짓는 것. 일종의 부당한 동일시라고 할 수 있겠는데 흔히 고정 관념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스테레오타입화한다는 것은 어떤 집단에 속한다고 보는 모든 특성을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에 귀인시키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숲 때문에 나무를 알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예컨대 우리가 갑이라는 사람을 공산주의자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공산주의자라고 불리는 집단의 모든 특성을 갑이라는 개인에게 덧씌우는 것이다. 일단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무엇이라고 분류되고 나면 우리는 그 개인 또는 사물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일종의 효율성의 원칙이 작용한다. 말하자면 실제 세계는 매일 매일 새롭게 경험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 복잡한 실제 세계를 단순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종종 이 부당한 동일시, 즉 스테레오타입에 의존하게 된다. 월터 리프먼이 용어를 사회과학적 용어로 처음 사용했을 때 그 의미는 우리의 행동이 실제 세계가 아니라 종종 우리머리 속에 저장해 둔 인상에 근거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 머리 속에 흑인이라는 집단이 게으른 사람들로 인상지워지면, 개개의 흑인이 아무리 부지런한 사람일지라도 우리는 모든 흑인을 게으른 사람으로 스테레오타입시키게 된다. 리프먼은 ‘바깥 세계와 우리 머리 속의 그림’에 대해 말하면서, 특정 조건하에서 인간은 실재하는 현실과 마찬가로 허구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반응하며, 때로는 바로 그 허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고 했다. 여기서 리프먼이 말하는 허구는 거짓이 아니라 환경의 정신적 표상이다. 그리고 이 표상은 의사환경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스테레오타입에 관한 논란은 사회학과 사회심리학에서 많은 연구성과를 낳는 계기가 되었지만, 최근에는 매스 미디어에서의 스테레오타입이 갖는 문화적, 정치적 순환과 의미, 특히 인종·여성·정치·산업관계·일탈행동 등에 대한 매스 미디어의 표상이라는 맥락에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한 연구들은 예컨대 특정한 제도적 맥락과 직업적인 뉴스가치 내에서 뉴스생산의 관습이나 강령이 지닌 지향성의 결과로 특정 형태의 스테레오타입이 강화돼 나가는 방식을 지적하고 있다. 결국 최근의 이와 같은 주목에 의해 스테레오타입 개념은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의 이론과 접합하게 되었다.

이별은 항상 이촌동에서 한대요. 그것은 어떠한 정형으로 정평난 구설로써 곧 사랑꾼들의 말미를 태우는 것이다. 너만한 파열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깎는 것이다. 돌처럼 굳은 마음은 조각같을 때 아름답다던 너는 사람을 반자연주의적으로 쳐다보려는 태도를 고수했다. 그리곤 본성적으로 사랑하려는 날 비웃기라도 하는 양 다정하게 선을 긋고 있다. 추억의 모래바닥에 줄과 선을 직직 그어대며 규명하는 것, 동성 간 섹스는 사랑이 아닌 교류에 가깝다고, 까짓 입술 좀 섞을 수도 있는 인간. 우릴 멀리 본 사람들은 난자당하는 비극을 안타까워했지만 어차피 가까운 희극이란 대개가 그런 법이었다. 차트 한 구석을 차지한 이별 노래, 감정이란게 그런 것이다. 나는 영화관에서 영국식 로맨틱 코미디를 고르던 네가 애틋했고, 실례였다는걸 알지만. 누군가를 어떻게 느끼느냐는 온전히 내 마음이니까 나는 너를 좀 더 멋대로 좋아하기로 했다. 술자리가 파해진 하루, 너와 난 갈 곳을 잃었다. 하나 둘 택시를 잡아 어디론가 달려갔다. 새벽녘의 대학가는 여전하다. 토하고 울고 키스하고 싸우고 나뒹구는. 둘이던 혼자이던 이 시간대 우리의 많은 감정은 결핍되어간다. 그래서 나는 잠시 휘청거리는 네게 팔짱을 꼈는지도 모른다. 달랑 남겨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아리방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캠퍼스엔 가로등이 하얀 입김마저 비추고 있었다. 낙엽은 바삭하게 얼어 크래커같은 소리를 냈고 너의 손은 한없이 차갑기만 했다. 보스턴백에 있는 벙어리장갑이 생각났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우고 슬그머니 네 손을 잡았다. "괴테, 좋아해?" 나는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는 괴테에 대해 주저리 떠들었다. 그러나 괴테 따위는 내게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너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다만 너는 슬그머니 손을 빼거나 하지 않았다. 가만히 너의 손을 내 더플코트 주머니에 넣을 때까지, 내가 너의 손을 살짝 쥐었을 때에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동아리방에 들어서자마자 너는 소파에 얼굴을 묻고 잠이 든다. 그러고 있다가 곧 일어날 줄 알았는데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나는 너의 다섯 손가락이 머물렀던 더플코트를 벗어 덮어주었다. 동아리방은 변한 게 없었다. 90년대 학번을 가진 선배가 쓴 시화가 여전히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고, 테이블 위에 놓인 동아리 일기장엔 하루하루 의미 없음이 기록되고 있었다. 창문을 열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새벽인데도 캠퍼스 곳곳에선 사람들의 그림자가 스쳐지나간다. 멀리 보이는 도서관 불빛과 길다란 목도리를 함께 감싼 캠퍼스 커플, 노천에 버려진 술병이 나를 미소 짓게 했다. "추워요." 잠꼬대 같은 목소리로 네가 말한다. 아, 미안. 나는 황급히 담배를 끄고 창문을 닫는다. 너는 부스럭거리며 몸을 뒤척인다. 너의 치명적인 머리가 엉망이 되었다. 네가 잠에서 깨어나면 새집이 된 너의 머리를 놀려주고, 내가 좋아했던 해장국집에 데려가야겠다. 그 가게가 아직 남아있을 진 의문이지만. 그리고 네가 집에 도착해 한숨 푹 자고 일어나 오늘의 일을 기억할 때면 나는 함부르크 행 비행기를 타고 있을 것이다. 물론, 와타나베를 따라한 게 아니라는 걸 네가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 나의 네가, Gute nacht.

레주 딱 한 레스만 더 써주고가......ㅠㅠㅠ갱신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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