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치는 광풍에 안정이 흔들린다. 붉은 홍채에 비치는 청정무구의 눈발은 뇌리를 새하얗게 채워낸다. 갑갑하게 끓는 착잡한 심경이 참을 수 없어 제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그 의중을 가위질이라도 해버릴 양 입을 틀어막는다. 지독한 혈기가 극성스레 몰려들어 입김과 더불어 손틈을 비집고 나온다. 입가에 번진 혈흔이 흉하고 추악할 뿐이라는 것에 빈번히 뜬발로 걷게 된다. 우수에 쥔 철 삽이 바르르 떨린다. 오랫동안 몇 번이고 되뇌여 외운 성경이건만 마음을 얼러줄 구절 하나 생각이 나지 않았고, 나는 무지했다. 소려한 눈발이 곧게 곧추서있던 와이셔츠 옷깃을 눅일 때, 서슬찬 바람이 피부에 닿고 소매 속으로 설화들이 비집고 들어차도 무딘 살은 감각하지 못한다. 와이셔츠 칼라가 휘적셔진 것은 마치 추수철의 무르익은 보리처럼 주름을 잡고 고개를 숙이는 중에, 그의 뇌리가 지끈거리는 데부터 기인해 해설되고 흐르는 담결한 물방울들이 턱선을 타고 떨어지는 자태가 청명하기 그지없다. 피를 타고 흐르는 체열은 초조함을 머금고 있었고, 이제야 삶에서 붙잡을 동앗줄을 찾았건만 이 또한 놓치게 될까 성열하려는 심경이 목구녕까지 거칠게 치닫았다.
  • 오만하고 주제넘게도 이 타락한 양 손으로 그들을 구원하겠노라 말한다. 그 때에 나무에 오르던 삭개오처럼, 더럽고 추악한 몰골로 그 옷자락이나마 움켜보는 나병 환자의 애절함으로, 구렁텅이 건너에서 나사로와 그를 올려다보는 죄악 많은 부자처럼 그들을 찾아 헤멘다. 마침내 성열하려 했으나 되려 성음은 짙게 잠겨있다. 낮게 깔리는 제 목소리가 귓가에 나앉자 그의 주변이 절망으로 뒤덮였다. 이상만을 좇다가 결국엔 어둑한 길로 들어선 두 눈이 오갈데 없이 흔들린다. 사방에 깔린 것은 눈발이었건만 그는 초열지옥에 던져진 죄자처럼 괴로움에 송곳니를 악물고 신음성의 꼬리를 흐린다. 두 손을 재촉해도 그들이 보일 기미가 전무하다. 중간마다 손에 걸리적거리는 잔해들을 손으로 으스러뜨리며 눈더미와 함께 치우며, 급박함에 죄여지는 뇌리가 떠돌고 있는 아무 것이나 움켜 비릿한 구취와 함께 내보내려 든다. 아연실색과 동요가 뒤엉킨 얼굴로 광인과 같이 손을 부리며 비통한 음색을 쥐어짠다.
  • 못볼 꼴을 봤다는 듯 질린 기색이 역력한 상판을 보고도 잔잔한 그의 표정은 뭇 대조적이다. 과연 은총을 받은 이들은 오채영롱한 자태로. 고작 한 캔에 뺨이 불그스름해진 것은 청승을 안주 삼은 탓이다. 유구한 일전에 그들의 화혈을 탐한 죄업이 있는 것을 기억하느니라. 염치없게도 구원을 바라고 있는 내 초라한 꼬락서니를 보고 새하얗게 질려있는 그들 앞에 무릎을 …….
  • 지갑의 관점, 처음으로 얻은 너는 공교롭게도 규격 외의 사이즈였다. 지난 2 년의 아르바이트를 전부 탕진하고도 메꿀 수 없는 네 공백인만큼 매사 잊을 수 없는 것도 당연했다. 그도 그럴 게, 뜬 눈 속 잠 아닌 예민의 고초를 건너고 남는 한 나절을 편의점에 전부 쏟아붙고, 금값이라던 시간을 전부 팔아 변변찮은 금 하나 사기도 빈난한 입장으로서는 전혀 납득하기 어려운 낭설이자 현실인 것이다.
  • 한 때는 믿을 수 없었다. 이 외로움이 내 환각일리만은 없다고, 첫 이별은 무덤덤한 인간에게도 힘겨운 날이었다. "왜, 틈만 나면 물고 빨고 하더니, 이젠 내가 니 담배같니 ?"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로는 서로에게 좋은 담배였을 것이다. 특히 정민은 쉬이 젖지도 않고, 부러지지도 않았다. … 다만 구겨졌을 뿐, 딱 인간적인만큼만 유연한 모란꽃 한 떨기로는 쇼윈도 밖에서 걷고 구르는 것들에 결코 당해낼 수 없다. 주기적으로 충혈되는 신호등의 눈은 그것만으로도 규칙적이고 불연속적인 죽음을 불러온다. 정민은 재산도 또한 부유한 여자였기 때문에 오직 사칙연산만 했다. 미지수 투성이인 난해함 속으로 뛰어들어 그 중력에 가누지 못해 결국 지평선을 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대신 SNS를 한다. 기품있는 활자들 속을 파헤쳐보면 거기엔 늘 속절도, 생명도 없었다. 일개는 그것이 모종의 SOS임을 알고 있었고,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그녀와의 약속을 잡는다. 앞뒤 다 자르고 듣는 한국인들의 특징이었다. 애연가의 삶을 그저 연가로만 듣는다. 상대할 필요도 없는 멍청한 XY들. 된 놈 중에서도 된 놈만 만났다. 다만 결국 염색체의 프레임 속에서 헤어나온 작자들은 전혀, 오히려 자신과 비슷한 계층일 수록 더욱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사람 중의 사람은 만나봤지만 참 인간은 미처 만나보지 못한 것이 그녀를 질리게 했다. 그렇게 호화로운 샹들리에 아래 소파에 몸도 가누지 못한 채 SUHD 65JS9500 TV만 보고 있다고 해서 삶의 목적조차도 없는 가련한 삶인건 아니었다. 대한민국 상류층의 9할이 으레 그렇듯 정민 또한 보수적 아첨으로 얻어낸 돈으로 부양되고 있음은 자명한 일이고, 지령이라도 떨어질 듯 어둑함 속 휘영청 샹들리에는 확호불발하지만 조금의 요령만 있어도 위태로워진다. 닮은 꼴인 것이다. 향기는 가셨어도 향수로 남아있는 철 지난 노래들을 2018년에 듣는 그녀처럼 시간에 무딘 듯 보였고, 죽은 동태 눈, 냉장실에서 죽어있는 것들처럼, 아무래도 36.5도와는 거리가 멀다 싶은, 그런 점들.
  • 스레주 혹시 블로그나 포스타입 같은데에 글 쓰면 힌트 좀 줄 수 있을까? 글이 너무 취향이라. ㅠ
  • >>6 뼛속까지 소비러인 애송이라 블로그나 포스타입까지 동원해서 글 쓸만한 근성은 없음 고마워
  • 인생은 무한한 자기 위안의 연속이다. 단지 방 구석에서 하루 중 가장 집중적으로 수행하는, 하루 중 가장 비생산적인 활동 외에도 그것은 여러 형태를 수반한다. 다만 순수하게 행동에서 비롯되는 쾌락 하나 때문에 그 모든 것을 감내한다. 따져본다면 시답잖아도 일면식 있는 인간들과 말이나 한 두마디 섞어보는게 훨씬 유익하고 재미있는 것인데, 어쩌면 무언의 보상심리로 자기주도적 제약을 건 채 그것에 피동적으로 종속되는 굴레에 빠지는 이유는 단연 하나다. 행동에서 비롯되는 쾌락, 즉 신체적 쾌락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대를 풍미해온 퍼포먼스 아티스트들의 섹슈얼적 발상 속 고상함들과는 거리가 좀 있더라도 저 나름의 철학으로 취급받기는 충분했다는 것이다. 자위가 익숙한 것이 아니라는데 동의할 수 없는 자위광들이 꽤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기숙사를 들어갔던 후 어언 2년 째 한 번 흔들어본 적도 없는 필자의 입장이 꽤 영향력 있음을 배제할 순 없겠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얄팍한 입장으로 개진하다 언질 몇 자 끄적임에 개작살나는 불나방 심리로 서술한 것은 아니다( 당신이 불편하지 않았기를 ). 나는 단지 상대적인 관점에서 관측했을 뿐이다. 길바닥 고양이들 좆을 지우냐 냅두냐까지도 신경을 써댈 정도로 예민한 족속들인 만큼, 지극했던 관계가 동전 뒤집히듯 지독해지는 것도 한 순간이다. 당신이 죽어버릴 것만 같은 대인기피나, 혹은 무언가라도 죽여버릴 것만 같은 스트레스에 눈이 먼 장님만 아니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거미줄같은 인과를 하나하나 꿰고 어느 곳에 물이 떨어졌고 어느 줄에 불이 났는지까지 일일히 기억하고 망연자실해하지 않으면 안 될 삶이라니, 이십 대 부터 탈모에 시달리는 부류들이 많아지는 까닭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울며 겨자먹기로 익숙해진 사회여도 견딜 수 없는건 분명히 견딜 수 없는 것이고, 결국 오롯한 혼자만의 시간에 몰두하고 고집하며 집착하는 것이다.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난 그것에 '견딜 수 없었다.' 라는 표현을 구태여 가져다 붙이고 싶지 않았고, 실행에 옮겨간 끝에 실제로 십 팔년 남짓 살아있는 것이다. 일종의 경이감에 도취되기도 한 순간이고 남들 다 힘들 것 생각하면 때때로 고집불통 틀딱 감성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동시에 반향에 몸을 싣은 반항을 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을 비롯한 수 많은 소수자 응원 운동들에 연대하는 까닭이지 않을까. 물론 내가 좆 달린 것들에 대고 대뜸 팔에 힘을 주진 않는다. 다만 딱 반체제적 인간 정도로, 중학교 때 저지른 만행들을 변호할 생각까지는 없다. 딱 관심에 갈급해 저지르는 짓들이 치기 이상으로 표현할 수는 없으나 그에 수반되는 죄질은 기껏 치기 따위로 비벼볼만한 정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단지 무엇 하나 실속을 가지고 내세워볼 만한 결과물 없던 십 팔년짜리 쓰레기를 덮고자 충격적인 것들에만 집착했던 것의 말로. 오월 이십 육일, 수유로 불려나가 아는 누나한테서 받은 말레 다섯 까치를 줄 지어 문 후 가래침이나 뱉는 꼬락서니가 불현듯 딱 앰창인생의 표본처럼 느껴졌다. 매캐한 탄연에 가려 당장 내일 일정마저 불확실하게 뿌옜던 그 몽사되고 덩이진 느낌은 초현실보단 비현실적 감상에 가까웠어서 지독한 괴리감과 자기혐오를 불렀다. 학교 복도에서 소리지르던 활기찬 고삼은 온데간데없이 반나절만에 사회의 쓰레기가 되어있었고, 늘 그게 익숙하다는 듯 뻑뻑해지는 목만 만져 풀어대는 병신같은 꼴이 참 한스러웠다. 이제는 자동차 매연도 거진 전무한 마당에 연기를 피우는 것이 공장이나 다름이 없다고 느꼈다. 확신이 들게 해준 대목은 내가 여느 때보다도 가장 이성적인 태도로 본색을 드러내고 있었다는 부분이었다. 십 팔세, 시발. 입에 달고 살지만 유독 욕이라도 안 하면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은 거친 심상이었다. 금수저보다는 천재가 부러웠다. 나는 물론 알만한 이는 알만큼 염세적인 물질주의자고,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지랄들에 돈 없이 행복하기는 몹시 어렵다는 반론으로 일관해 내놓는 놈이었지만 그래도 역시 천재 쪽이 더 부러웠다. 해봄직 했던 것이다. 만약 내가 운이 나쁜 천재여서 집안이 나를 지금보다도 더 좆같이 굴렸더래도 내가 크게 성공할 길이 보장되어 있음을 알고만 있다면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혐오스러운 나만이 남았다. 구린 센스마저 예술적 선구로 취급받는. 그런 십창같이 편협하고 졸렬한 세상이 나를 바라봐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 땅바닥은 기본적으로 차갑다. 여름 더위가 신이 나 기승부리며 온사방을 날뛰는 동안 한 번이라도 맨바닥에 대가리를 조아려 보았다면 확고히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비라도 내렸으면 좋겠다 싶은 홧홧한 느낌을 거진 전기밥솥처럼 거칠게 날숨하는 중 문득 올려다본 하늘엔 구름이 있었다. 따스하기보단 뜨거웠던 태양은 명백히 나를 향해 모멸찬 비난을 퍼붓고 있었다. 물론 관점의 차이다. 내가 좋아하는 비가 혹자에겐 (사실, 어쩌면 꽤 보편적으로) 기피와 도피의 대상일 뿐일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슬픔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 따지자면 이런 소소한 부분부터 내 안티테제가 수두룩한 마당에 인간 혐오가 있어도 무리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내가 취하면 후회할걸.", 자정을 넘긴 쌍문 횟집에서 민들레에 카스를 말던 혜진이 생각난다. 나는 마라주가 무슨 맛이냐고 물어봤지만 잘 모르겠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무언가 목젖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그냥 삼키기로 했다. 나 또한 그 때는 술맛이란걸 알고서 들이키는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후회는 하지 않았다.
  • 사리문 입술에서 미향을 풍기며 열기를 머금은 외가닥 피가 계수마냥 흘러가는 것이다. 새빨간 환형의 적구슬을 필두로 하염없이 내려갈 것만 같던 그것은 목줄기까지 타고 염야하게 와이셔츠를 적셔나갔다 그는 늑대다. 충견이다. 허울과 허식에 찌든 여타 들개들과는 달리 주인이 있다고 한다면 결코 수를 무르는 일 없이 맹렬하게 이빨을 들이댈 수 있는 늑대개다.
  •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던게 화근이었는지 연기도 나지 않는 담배를 문다. 난로 앞의 눈이 두어 번 깜빡깜빡거리더니 내 쪽으로 구른다. 도도하고 고고한 월태의 위광을 비추는 보옥처럼 빛나는 눈이다. 나도 마주 흑안을 궁굴린다. 맞닥뜨린 두 눈은 구약과 신약에서 3천명의 생사를 다루는 차이처럼 명백하게 대비되었다. 불을 붙이지 않았다. 네가 있는데 고독을 달랠 필요가 있으랴. 우둔하게도 뇌리에 우문을 뇌까렸던 입은 꾹 내리닫아 닫아건다. 네 그것은 혹 아름다움과는 다를지는 몰라도 풍류에서는 제일이라는 화조풍월과 미색의 월궁항아가 온다더라도 새피한 것이다. 고즈넉하게 뜬 만삭의 배불뚝이 달이 야천을 휘가르며 일색을 걷곤 되메운다. 덩달아 내 취기의 구순도 꾹 메워진다. 터무니없다. 인간 나이었으면 벌써 향년을 삼백 번은 족히 겪었을 연령차는 고사하고 그 외관으로도 얼이 빠질 정도로 차이가 나는데도 이러한 행각에 스스럼이라곤 없다. 둘은 동공을 크게 떴다. 이렇게 키스를 하는데도 그녀는 또렷하게 눈을 뜨고있다. 칠흑이지만 빛나는 동공은 그 자체로도 오묘스러운 존재다. 깊고 깊게, 품 속으로 점점 파고든다. 내 옷깃을 움키며 눈을 감을 때 즈음에야 나도야 눈꺼풀을 내릴 수 있었다. 농밀한 접문은 확고하고도 야릇하다. 이런 인간이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싶다. 혼야가 밤들어간다.
  • 칭얼거림을 피해 돌린 고개가 비춘 가로지르는 경비행기 창가에는 텁텁한 구름들이 지나가고 있다. 그것에 흘려보내는 상념은 경부선에서 속도를 올린 시속 200km 페라리처럼, 네 도톰하고 뭉툭한 입술은 토마토의 그것처럼, 기관실을 제하여 한 쌍 남녀만이 있는 곳에서도 애써 투박한 손을 더듬더듬하여 탁상 위의 보드카를 집어든다. 자그마한 체구에서 분수처럼 뿜어져나오는 강렬한 향취를 감쇠시켜줄 것은 오직 술 뿐이다. 짜르스까야.
  • 줄곧 오물거리곤 하는 그녀 구문만치나 아름다운, 풍성한 머릿발을 간청하듯 애절하게 끌어안곤 정수리에 코 끝을 묻고 달큰한 향취를 삼키니 머릿전이 벙벙해진다. 낭랑한 성음으로 네가 나를 불러주었을 즈음에야 겨우 정신이 든다. 그래도 네 머리칼의 부드러운 대양에서 헤어나올만한 여념은 전무하다. 통 떼지 않고 꼭 끌어당기는 행동에 너답지 않은 당혹기가 말랑한 두 볼살에 나앉은 홍조와 함께 서린다. 스물 한 살이라고, 행색도, 행실도 한참이나 어리숙한 이 온실 속 화초의 열린 꽃잎 속으로 파고들고싶은 욕정을 폐차장 압착기처럼 우악스럽게 내리찍어 깎아질러진 마음의 벼랑 밑바닥으로 내던진다. 굳이 뱀파이어가 아니더라도 욕정은 예로부터 가장 달콤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것이다. 나의 이 유구한 세월에 빗대자면 이들의 삶은 발바닥에 떨어지는 가을 낙엽처럼 보잘 것 없고 일순의 아름다움일 뿐이다. 비행기에선 내렸어도 마음만은 아직 공중에 붕 떠있다. 중형 검은색 벤을 타곤 경인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아장거릴 때부터 본 까닭으로 작은 그녀에 대해선 몇 번을 거듭했다고 해도 모자랄 정도로 숙통한 바다. 수 만년의 광음을 거쳤지만 이토록 인상깊은 이십 년 남짓이다. 벤에서 내리고, 프랑스의 겨울 공기에서 비로소 빠져나왔다. 날씨야 어찌됬건 열기나 추위를 느낄 감각은 터무니없이 무뎌진 그는 사시사철 정장이다. 불연속적인 명령 하달에 불만족스러워했던 때가 있다. 그 때는 지금같은 충견이 아니라 단순히 말을 알아듣는 맹견에 불과했다. 사사건건 명령이냐고 따지는 어조로 물었고, 일에 부합하는 당근이 있어야만 비로소 달리기 시작했다. 그 때의 내겐 별다르고 사사로우며 부연한 것들 따위가 필요한게 아닌, 명료하고 간단한 당근과 채찍만이 있으면 되었을 뿐이다. 그저 시키는대로만 하면 깔끔하게 끝났다. 아, 물론 내게 채찍을 들이대려 했던 이들은 모두 물어죽였다. 꿈 속에서는 확연했으나 정작 깨고나면 희미한 것처럼, 암실 속에서는 한 없이 선명하다가 막상 일광을 맞닥뜨리면 금방이라도 빛이 바래버리는 인스탁스의 필름사진처럼. 요즈음에야 캐논과 소니가 점거하다시피 했지만 당시에는 그 구리구리하던 사진들 나름의 낭만이 있다. 옛 것들은 대개가 그 고유하고 특질적인 무언가를 조개 진주처럼 품고있다.
  • 생존을 겪어본 이가 생활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여유, 몇 번이고 죽은 영혼은 무슨 무슨 류 예술가들이 인형과 그림 따위에 불어넣는 그것보다도 덜 살아있었다. 늘 그렇기 때문에 괴리는 잇따르고, 외향과 향으로 말미암아 그녀에게 생체보다는 피사체로써 수식되게 하였으며, 기어이 영락없는 모란꽃으로 만들어놓았다. "말레 한 갑." 모두 옥상에서 내려다본 도심처럼 눈 아래로 보이는 것들뿐이지만 정민이 그들을 통찰할 수는 없었다. 알맹이가 어땠던, 주위에서 아무리 떠받치던 결국엔 그 여자도 한낱 인간 따위였다. 다만 무언가 아는 듯 움직이는, 어떠한 지침 내지 방침이라도 있는 마냥 피동적이고 순종적으로 동작하는 가젤녀에게는 모두가 공통분모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틀림없이 진보했다.', 정민이 도료로 떡칠한 듯 보수적인 여자라는 걸 간과한 채. 방금의 편의점 남자도 그 짧은 순간 동안 똑같은 우를 범했으면서도 길러지는 개처럼 천진한 웃음만 짓는다. 아쉽지만 그다지 현학적이지도 않았고, 모종의 몽사할 듯한 잡념으로 들어차 머리가 지끈거리는 18정민으로썬 발밑의 개미들을 일일이 신경 써줄 만큼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불도 채 붙이지 않은 장초를 앵두같은 구순에 문 채로 그림 한 폭을 연기하는 듯 멈춰 서있다. 진취성과 지성적 발전의 차이, 구태여 문창과나 관련 진로도 고사하고 고등학교마저 중퇴했던 자신이 왜 철학 같은 불확실한 증명들에 얽매이는지, 계산적이었던 성정도 버린 채 사회에 등을 돌리곤 사회 바깥에서 사회에 순응한다. 사실 자신의 퇴행을 의심하기도 했다. 많은 것을 잃고, 놓치고, 또 저버린 한국적 현대인으로써는 뒷걸음질쳐야만 그것들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직선적 방향에서 퇴보하여 자신을 깎은 편린들을 모을 때 비로소 원형이 된다. Zeus나 Odin 같은 신화 속 것들도 극단적 결여로 인한 종말을 맞이하곤 하고, 야훼에게는 필요악 외에도 절대 악 따위의 것들이 어언 90 억 씩이나 땅 위를 돌아다닌다. 별안간 완전함이라는 단어는 가장 불완전한 것이라는 점, 차라리 "되게 멋져(예뻐)."와 같이 '무척'에 해당하는 지경에서야 정민은 겨우 공감할 수 있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감언이설들이 첨예하게 정민의 귓등으로 흘러 넘어가는 까닭이기도 했다. 아스팔트처럼 창백한 안색이라면 적어도 증류될 때만큼은 섭씨 2만 도 가량 뜨거웠다는 것이다. 그를 입증하듯 타오르는 색채의 구순만큼은 창백함의 굴레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실제로도 정민은 언제든지 소리를 지르거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만약 이것이 '서커스'나 '트루먼 쇼' 같은 그녀에 대한 TV 프로였다면 감탄과 탄성이 쏟아질 것이 자명했다. 아디다스 핫팬츠에 박시한 후드티를 입고 소파 위에서 인형을 껴안고 있을 그녀가 소리를 지를 수 있을 거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않으니까. 불현듯 복도가 또각거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연속적인 소리의 분파들이 고막에 부딪혀 마쇄하는 순간을 사랑하는지도 몰랐다. 그것은 단순한 취향 문제였고, 상당한 자기애인 동시에 그녀가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쓴 가장 지독한 방법이었다. 피아노를 치거나, 넘어지거나, 물건을 부수거나, 꽃을 기르거나, 목소리를 내는 모든 과정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거실에만 거울을 네 개 비치해둔 것은 자신을 객체로써 바라보려는 일종의 시도였다.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현상들을 꽃가루처럼 나르는 사회의 자칭 나비와 벌들, 예전같았더라면 그들이 가까이 오는 것만으로도 흔들렸을 것임을 정민은 늘 되새기고 자각한다. 꼭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어떤 마녀 구전의 그것처럼 자취와 종적과 증거를 남겨놓고 다니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느끼는 것들, 버튼을 누르면 두어 번 깜빡이며 겨우 켜지는 백열등같은 재시작을 거치고, 잠을 과다 복용한 탓에 취해있는 파리한 두 다리를 어르고 다그쳐 걷는다. 또 하기 싫은 샤워를 했다. 하지만 출근까지 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모종의 타협이 있을 지언정 매 순간, 1분 1초마저도 다음의 무언가를 위한 과도기로써 살아가는 것은 항상 승리하는 습관임과 동시에, 항상 무언가와 싸우고 있음을 의미했다. 서로 속내를 드러내야만 비로소 싸움은 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매번 싸우고만 있는 그녀로써는 세상 앞에서 발가벗은 사람과 다를 게 없는 것이다. 그만큼이나 세상을 이해한 입장에서는 그것을 미워하고 슬퍼함과 동시에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방에 들어갈 때 꼭 맥주 반 캔을 남겨둔다. TV도 일시중지로 돌려놓는다. 살아있기 위해서.
  • 살을 에는 이별을 자행한 것은 냉동고에 들어가는 짓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다. 예상은 엇나가지 않았고, 나는 냉동고같은 이곳에서 죽은 것들만 보는 신세가 되었다.
  • 통화할까.
  • >>7 이런 실력을 가지고 소비러라니.. 아주 이기적이야! 이런 글을 자기만 보다니 8ㅅ8 여튼 아쉽당... 스레 잘 보고 있어!
  • >>17 레스주한테 혼나버렸네 ㅋㅋㅋㅋㅋ 노트에만 쓰기 적적해서 올려보는거니까 여기만 올라오는 글들이야 ㅋㅋ 봐줘서 고마워.
  • 상처받고 살지는 말자, 나는 그 뭐냐 그 그 언제 구월 사일인가 할튼 낮에는 시퍼랬는데 해질녘부터는 모가지를 틀지를 않았단 말이야 주일야천이고 뭐고 하등 쓸모가 없어요 왜냐, 눈이 침침해서 모니터 밝기를 존나게 올려댔거든 사람들은 늘 봐야할 걸 눈 앞에 닥치기 전까진 통 보질 않고 나도 사람이었지 이제 학생 말년도 접고 열을 올려볼 때인데 참 이게 … 이게 미묘해요 페북을 쭉 내려봤거든 ? 좋아요도 수십개고 댓글도 수백개가 박혀서 존나 활자들 때문에 어지러울 지경이었는데 참 내가 글자 좋아하긴 하는가보다 싶었지 통 읽어처먹질 않아서 문제다만 아무튼 취한거아냐, 아냐 ? 알커얼에 카페인인지 또 타르 뭐 그 그 발암물질 덩어리 텁텁한 쓰레기 그냥 쓰레기중독이었는데 그걸 어떻게 아등바등 입에서 뗐어요 왜냐, 나는 사회화가 된 사람이기 때문인거야 근데 어쩐지 담배를 안 피니까 겉도는 느낌이야 분명히 사회화 된 인간놈으로써 이것저것 해나갈 수록 사회랑은 멀어지는 것 같단 말야 페미니즘이요, 뭐 갖은 담배 말레종 아이스블라스트까지 하여간 별별것 다 해봤을 때가 제일 사회적이었어 이정도면 한국 사회 탓 좀 해도 되지 않겠냐 ? 그 미친놈이 읊는거 가만 들어보면 또 그랬단말이야 뭐 멸망 증오 하여간 환멸밖에 없던 말종놈인데 볼썽스런 구석이 있어서 들어봤더니 그게 또 얼만큼은 맞아떨어졌더라고, 그래서 나도 해봤어 주먹질 시시하잖아 도봉이요 성북 강북 뭐 각목을 들어도 못이기는 창동 그놈 사이버제주도를 한구석을 떠들썩하게 만든 그 미친새끼 모터바이크 대신 그냥 바이크나 탔지 페달 밟아가면서 기어 변속시키고 근데 부릉부릉 소리가 별 거는 아니더라 따릉이니 부릉이니 바람 좀 맞다보면 그게 하나도 부질없다는 느낌을 받곤 했단 말이지 봐, 오토바이 타다 떨어지면 죽고 자전거 타다 떨어지면 죽고, 둘 다 아프고, 잣대를 들이밀어볼 것도 없이 그냥 자전거며 오토바이며 안 타버리면 그만인거지 근데 뒤에서 부모란 놈들이 각목을 들고 쫓아오더라 난 도망가는 수 밖에 없었어 넘어져서 훼까닥 뒈져버리나 고것들한테 맞아 뒤지나 도긴개긴인데 왜 그랬는지 몰라 바이크랑 고것들이랑 다를게 뭐냐, 뭐냐면, 음 모르겠다 괜히 날 낳았네 이딴 별 또라이같은 생명론 말고 그냥 정이 뚝 떨어져서 이런 저런 말 좀 해본거야 뭐 이지랄이 나서야 어디 가서 나 이런 사람이요 내 이름 석자 아무개씨 명함을 들이밀 것도 없이 이런 말 좀 해보기도 떳떳찮은 사람이 되는거지 뭐가 문제였을까 ? 나는 모르겠어 그냥 잠이나 자려고 안녕 달 그만 불 꺼라
  • 헐 이거전부 레주가 혼자 쓰고있는스레야?
  • 개좋다 ㅠ ㅠ ㅠ하루에도 여러번읽고있어
  • 생면부지인 여자 샴푸향이 너무 강했던 오전이다. 깜빡 잠들었다. 조금 창피했던, 그런 기분.
  • 네가 꿈에 나온다면, 그 속에서 나는 내가 움키고 있던 모든 것들을 단호히 뿌리칠 각오가 있다고 생각한다. 희뿌연 돗대 탄연마냥 불명확한 나의 각오, 결코 순전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네 책임 또한 있음을 주황색 가로등 아래서 중얼거렸다. 정현, 너를 부르고 기다린지 어언 삼십 분 째, 시간은 네 사랑을 나타내는 지표였지만 삼십 분으로는 택도 없었다. 만약 내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네 번호에 기습적으로 전화 버튼을 누른다면 너는 역시 삼십 분 남짓한 시간을 기다리게 할 것이다. 그것은 나나 그 혹자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오롯이 너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난 굳게 믿고 있다. 화장을 하고, 간단한 세면활동을 하는 네 행동은 언제나 빛나기 위해 필요한 과도기고, 나는 내 태양이 따스함으로 채워지는데 반대할 만큼 소유욕이나 지배욕이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만약 내가 그랬었다면 …, "… 늦었네," "응, 미안, 오래 기다렸어?" 그 웃음기와 언제나의 목소가 진심이 아니더라도 난 괜찮았다고 생각했었다. 그 왜, 언젠가 흑암같은 시야 속보다는 한 줄기 빛이라도 있을 때 동물이 느낄 수 있는 정신적 일사량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었다. 꽤 돌팔매질을 맞은 논문이었지만 지금 와서는 조금 신경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네 의중을 알지도 못한 채 표면적으로 쏟아지는 빛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 멋대로 널 태양 삼고 의지하는 이 마음, 기댄 채 전하는 심장의 고동은 너무나도 모호하게 뛴다. 네가 내 심장에 청진기를 댄다면야 나는 곧장 나를 맡길 수 있긴 했지만 스스로 입 밖에 낼 일은 아직까진 우책이라고 여겨지는 것이었다. "왜 불렀어?" 뭐라고 대답할까, 네게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사실 나는 답을 알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네게 건넨 네가 좋아할만한 농담들, 몇 번 입 밖에 내고서야 나는 자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많은 농담으로 버무린 관계는 너무나도 선선해서 도저히 뜨거울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우리의 계절은 여름은 고사하고 이나 봄이면 족한 정도였고, 나는 기껏해야 이 농담같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쓸 뿐이다. 아, 나는 너와 멀어지고 싶지 않다. … 아니, 조금 더 확실한 표현이 필요했다. 나는 너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나는 중력을 불리기 위해 조금 더 질량을 늘렸다. 운동, 공부, 자기개발, 용모를 단정히. 나는 사람이 살기 좋은 사람이 되어 있었지만 내 수십만 배는 뜨거운 너의 삶의 표면에는 여전히 손을 댈 수 없다. 표면 상 6천도의 청춘이란 체열이나 체온같은 인간적인 수준의 단어들로 일축할 수 있을만큼 간단한게 아니었다. 가까이 갈 수는 없지만 보다 범세계적이고 아득한 수의 사람들을 비출 수 있는 빛을 내는 너, 나의 광원.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너 때문에 쌓아올린 이것들을 너 없이 유지한다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내가 시간에 떠밀려 발걸음하는 이상 목적지까지의 도착은 정해진 수순이고, 나는 이루는 것과 잃는 것의 차이가 명백하나 아주 얇은 것임을 알고 있다. 마치 그 비슷한 발음처럼, 이루, 잃, 잃어버렸, 이루어버렸, 잃다. 이루다. 그러니까 나는 그 비슷한, 너를 잃어버릴 수 없다는 말이다. 다만 사실을 뱉으면 죄가 되어버릴 것이 자명했다. 태양같은 네 중력에 이끌리는 것들은 수도 없이 많고, 그것들은 이미 하나의 세계다. 돌고래가 물 위를 뛰고 낮과 밤의 하늘이 예쁜 내 감수성을 아마도 넌, 넌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건 너무나도 인간적인 사고방식이었고, 무언가 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이기도 했다. 나는 네가 비인도적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네가 인간적인 선의 무언가와는 다름을 알고 있다. 너의 모든 것들이, 성실하거나, 착하거나 …, 심지어 너는 예쁘기도 하지, 정말 놀라워. 나는 네가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띠를 지녔다는 사실부터도 두근거리기 시작했던지라 너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내 조촐하고 작은 세계 이야기를 네가 좋아하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만이다. 나의 차, 집, 심지어는 내 삶, 모든 것들의 유지비를 네 빛으로 대신하는 이 환경, 나와 유일하게 채무 관계인 여자. 빚을 핑계 삼아서라도 찾아다니고 싶은 여자. 그래, 나는 어쩌면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 아니, 잠깐 얼굴만 좀 보려고 했지." 그리곤 괜시리 사소한 면박을 줬다. "굳이 이렇게 안 꾸며도 됐는데." 약간 널 향한 조그마한 책망이 없었다고는 단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내 의중을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고의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나의 세계를 죽이고 황무지로 만드는 것, 그것을 단지 너와의 사랑으로 맞교환할 수 있을만큼 나는 홀가분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사실 이미 죽어나가는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나의 북반구, 머리 끝까지 오른 사람들은 가장 네 빛을 고스란히 받아 쬐는 사람들이었고, 그만큼 내 세계와의 단절이 가장 빠른 사람들이기도 했다. 나와의 가능성을 어림했던건지, 아니면 혹시 모를 다른 생각이 너로 인해 파훼될 것임을 알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떠나가곤 했다. 사실 나도 너 외엔 별달리 관심을 두지 않았어, 네 앞에서 난 카메라 녹화 중인 휴대폰 배터리처럼 빠르고 정신없게 닳아갔고, 그 모든 것들을 고려했을 때 네게 사실을 털어놓는다는 것이 여태까지의 내 세계를 죽이는 죄임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너를 뿌리칠 수 없는 것이다. 2월 초, 너와 합석한 카페 창가자리에서 나눈 동물들 이야기가 불현듯 스친다. 너는 개나 고양이 따위에 구속되어있지 않고 보다 넓은 것들을 사랑하려 했다. 나는 그걸 항성의 천성일 것이라고 상념했었던 것을 기억한다. 네 포용력에 밑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개진될 수 있었던 나의 다양성 넘치는 세계 이야기들, 어차피 너 아니면 죽을 세계들. 그게 바로 정말 타는 듯이 더운 겨울이었다. 그리고 난 으레 썸 초반에나 느낄 법한 간질거림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있다. 걷고, 뛰고, 그리고 전철과 버스 등등을 타고 종로 5가로 나가던 나, 지하철 차창이 어두워질 때나 내 얼굴을 겨우 볼 수 있었다. 네가 있는 곳에서 나는 어두운 나를 성찰하고 회고해 볼 여유따윈 없는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내 부주의다. 그리곤 천장에 달린 조명을 올려다봤다. 인위적이고 창백한 빛깔, 내가 내 눈으로 연출해내는 작위적인 그 어딘가, 비인간적인 그것은 너의 그것과는 왠지 다르게만 느껴졌다. 그래, 말하자면 너는 초인간적인 느낌이다. 이를 깨닫기 전까지 나는 그 전등들을 올려다봤고, 이전까지는 느낄 수 없었던 텁텁한 회색의 감성을 지울 수 없다는 느낌에 골몰해가고 있었다. 모든 멸망은 기존의 체제를 부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나는 그 미력한 광음조차 싸늘함으로 돌아서게 만든 삼십 초 남짓의 통화들과 두 번의 만남을 견딜 수 있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지 못했다. 나는 결국 차를 탔다. 오늘은 너와 어디든 갈 것이다. 그리고 말할 계획을 세운다. 정현아, 나 널 사랑해. 로 귀결되는 절정, 발단과 전개, 갈등, 그리고 절정까지 나 홀로의 몫이었겠지만 결말을 결정할 권리는 전적으로 네게 있었다는 사실이 한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다. "네 마음은 네가 혼자 쓰는게 아니더라, 정현아." 나는 조수석에 앉은 네게 말하기 시작한다. 새벽 한시 오십 오분을 달리는 나는 조금 아날로그적인 감성에 젖어들기로 했다. 보이는 것이라곤 2015년형 변속기 수동 기어 앞의 디지털 시계 뿐이었지만 나는 시침과 분침을 생각하고, 때로는 초까지 세어가며 가장 완벽한 완급을 갈급히 찾는다. 4초 남짓의 서론, 6초의 침묵, 너의 짤막한 1.8초간의 대답, 7초의 침묵, 나의 5초 동안의 의사 표현. 아마도 이 밤은 36시간 쯤 걸릴 예정이었다. 내가 조수석에 태양을 싣고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수십 초 남짓의 대화 동안 지난 몇 년간 너와의 기억보다도 많은 것들과 많은 감정들을 얻고 느낀다. 목적에 집착하는 대한민국의 인간인 이상 성취감은 가장 중요한 가치에 속했고, 나는 이렇기 때문에 사랑을 하나, 싶었다. 내 사랑의 발단과 저의는 대한민국에 있었지만 나는 영국 남성처럼 고지식해질 것이고, 미국의 가정적인 여느 아버지처럼 개방적인 가정을 꾸릴 것이며, 러시아 남자처럼 네 매혹에 매달리며 이 차가운 세상을 아등바등 살아갈 것이다. 모든 좋은 것들만 합쳐 네게 근사한 광경을 보여줄게, 정현아. 네 대답을 듣기까진 체감 상 한 시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우리 서로를 위해 자라가자, 늙어가지 않고 예쁘고 멋진 이대로를 가꾸어 나가자, 나는 또 네 대답을 기다린다. 그리고, 취해간다.
  • 임사체험, 네가 내게 묻고, 그리고 나는 묻힌다.
  • 가진 것 하나 없이 내 것을 지키는 법을 배워야한다.
  • 언제 섹스할 거야? 집에 들어왔더니, 검은 팩스 끝 부분에 A4 한 장이 밀려나와 있었다. 발신인도,수신인도 없었지만, 나는 그것이 돌고래가 보낸 편지라는 것을 금방 알았다. 하얀 종이에 인쇄된 단 한 줄의 검은 문장. 그것은 적진에서 암약하는 스파이에게 보내는 본국의 지령문처럼 보였다. 너무 짧아서 얼마나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지 오랫동안 생각해야 될 그런 문장이었다. 형식은 물음표로 되어 있지만 내용은 느낌표였다.
  • 과도하게 권태로운 기분, 그 누나가 너무 보고싶은 것 같다. 너무 울적해지진 말자.
  • 삭제.
  • 삭제.
  • 검정과 감정은 한 점 차이다 검정은 가장 감정적인 색상이다.
  • 삭제.
  • 시들해진다는 게 그런 거, 였을까. 함께 있어도 다만 함께 있다는 사실 안에서는 어느새 지루했다. 그래도 함께 무언가 한다는 건 즐거웠는데 그나마도 언제나 같은 버스노선처럼 같은 풍경의 날씨 변화를 얘기하는 게 고작이여서 언젠가 튕겨져 나갈 듯이 위태위태, 그래도 가끔은 마주보고 웃었다. 그러나 정신없이 눈물나도록 웃었던 기억은 가물가물. 그 때 네가 그렇게 얘기했다. "만약 우리 헤어져도 널 보면 인사할 수 있을 것 같아." 곰곰히 생각했다. 만약, 이라는 가정하에 너는 헤어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가정된 헤어짐 안에서 너는 담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치 비상구의 선명한 초록색이 반짝 하고 켜지는 것 처럼. 하얀 그림자 사람은 달려나갈 듯 문 앞에서 주춤거리고 있었다. 너는 그걸 말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라 한들 나는 솟구치는 의문들은 꼴깍 삼켰다. 알록달록한 알약을 삼키듯 꼴깍. 입 안에 담고 있기가 한없이 까끌거리는 말들이었다. 후에 네가 따져물을 지도 모른다. 왜 대답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냐고. 그러나 반듯한 논리에서 한없이 멀어진 곳에서 허우적 거리는 바보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감정의 문제. 더 이상 손을 잡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입을 맞추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없었다. 말랑말랑하고 도곤도곤하고 찌르르하는 의미. 우리는 더 이상 어딘가에 의미를 부여할 수 없었다. 언젠가부터 내 눈에 보이는 수 많은 연인들은 어딘가 결핍되어 있었다. 이제 막 시작된 연인들마저 아직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결핍의 징후들로 위태로워보이기만 했다. 그 때 네가 그렇게 얘기했다. 이전에도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짐에 이를 때마다 내가 거듭 느낀 건, 결말은 누구도 장담해서는 안된다는 거야. 그렇게 될 수도 있고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어. 나는 네게도 결말을 장담하지 않을 생각이야. 곰곰히 생각했다. 우리의 결말을. 나는 너도 모르게 내 세상에서 각각의 틀들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것은 언제나 결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내 세상에 집을 짓고 있었다. 그 집의 벽지 무늬와 부엌에 놓인 접시세트와 침대시트까지. 원목질감의 2인용 식탁이 있는 집이었다. 결말을. 각각의 틀들을 만드는 것은 내 오래된 습관이었다. 통증을 상실한 과거에 몸을 기대고 내 멋대로 미래를 늘 미리 꾸며 놓음으로써 나는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즐겼다. 그런데 너는 어떤 결말도 장담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내 세상에 지진이 일어나고 갈라진 틈 사이로 그 예쁜 집이 가라 앉았다. 고운 먼지들이 내 키 만큼 높게 일었다. 내 세상에는 그후로 오랫동안 장마가 이어졌다. 나는 작게 웅크리고 비 속으로 몸을 숨겼다. 내 세상의 어느 틀보다도 완성할 수 있다는 믿음이 큰 틀이었다. 얼마나 그 집에 공을 들였는지 모른다. 접시를 예쁘게 진열하고 책꽂이에 순서대로 책들을 정리했다. 서재의 햇빛이 잘드는 창 앞에 놓인 책상에 앉아서 낮게 숨을 고르는 때에 나는 행복을 느꼈다. 그 속에서도 가장 구체적인 것은 너였다. 그러나 나는 너무도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네게 동의를 구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내 세상에서 너무도 구체적인 너는 정작 내 세상의 그 집을 어떻게도 볼 수 없는 곳에 서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너는 완벽하게 그 집에 들어올 수 없었으며 너에게 그럴 마음이 있는지도 실상 나는 몰랐다. 그 역시 입 속에서 까끌거리던 말들이었다. 어쩌면 그 집을 더 사랑했던 것 같다. 현실에는 절대 존재할 수 없는 그 예쁜 집을 나는 너무나 사랑했던 것 같다. 네가 그 집을 의도하지 않게 부수는 순간 나는 너에 대한 모든 믿음을 상실했다. 그로써 우리의 결핍은 더욱 커졌고 대화는 시들해졌다. 너는 정말 한번도 우리의 결말을 장담하지 않았을까. 나는 버리지 못한 무수한 미망으로 폐허를 맴돌았다. 나는 정말 묻고 싶다. 너는 정말 한번도 우리의 결말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왜 만나고 있을까. 비상구에는 불이 켜져 있고 결말은 열려 있는데 … 나는 비 속으로 자꾸만 몸을 숨기고 모든 질문들을 삼켜 버린다. 꼴깍.
  • 의심이 갖는 값어치를 사람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말초는 명칭부터가 저급하다. 몹시 봉건적이면서도 뜻 모를 행동거지의 수족 위에서 귀속된 영은 농노처럼 신체를 바삐 동작시키고 혹사를 일삼는다. 나의 몸을 헤아리고, 마음을 기준으로 치자면 머나먼 곳까지도 매만져 침투할 수 있게끔 지령하는 것이 나의 뇌. 때때로 이지를 잃는 것이 두려워질 때면 나는 도저히 스스로의 자아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게만 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한 것이 올곧고 오롯한 나의 생각일까, 떠올린 것만으로도 이미 확약되어있는 논파지만 나는 그 통 속을 끊임없이 탐미하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시간을 끄는 일과 같은 것이다. 허나 예정된 죽음과 / 고난을 피할 수 없는 무력감만이 뱀처럼 내 팔을 휘감을 뿐. 영하도 고사하고 혹한이라는 말도 붙여봄직한 일월 초 서울의 기온과 공기 속에서, 고통을 오래 겪은 영혼들의 파단면을 살펴보면 갈 수록 둥글어지게 마련이라는걸 알 수 있다. 마치 에베레스트와 알프스처럼, 오랜 풍화는 되려 사람을 무디게 만들기 마련이다. 시려운 눈발이 됐건 소려한 모래가 되었건 푹푹 발을 찍어 올라선 인간 머리 꼭대기에는 갖가지 영역이 있는 것. 이런 면을 건드리면 화를 내고, 이런 면에서는 침음하는 사람들을 왜 어렵게 생각하는지, 나약 유약 연약 취약한 인간들은 도대체 왜 어려운건지.
레스 작성
13레스 2019.01.13 37 Hit
창작소설 2019/01/11 15:37:24 이름 : 이름없음
1레스 소설정보커뮤니티 2019.01.12 43 Hit
창작소설 2019/01/12 21:25:28 이름 : ㅇㅇㅇ
67레스 그래서 마왕성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2019.01.12 414 Hit
창작소설 2018/11/13 18:29:13 이름 : ◆XvvfTU1DxO9
8레스 우리 소설 제재로 쓰일 미신 전설 쓰고 가자!! 2019.01.11 69 Hit
창작소설 2019/01/08 00:05:04 이름 : 이름없음
35레스 청진기네 일기장 씨 2019.01.11 22 Hit
창작소설 2019/01/10 03:16:42 이름 : ◆Gk4E5QnvdCl
33레스 » 묘사 연습 스레. 2019.01.10 558 Hit
창작소설 2018/08/30 01:39:39 이름 : 이름없음
12레스 2019.01.10 61 Hit
창작소설 2018/12/28 01:40:55 이름 : 이름없음
4레스 이거 장르 좀 알려줘 2019.01.07 83 Hit
창작소설 2019/01/05 15:02:01 이름 : 이름없음
7레스 00 2019.01.07 21 Hit
창작소설 2019/01/07 00:49:12 이름 : 이름없음
1레스 소설 속 살인마 2019.01.05 34 Hit
창작소설 2019/01/05 22:02:55 이름 : 이름없음
1레스 랩퍼가 되고싶은 인어 왕자와 전학생(막써봄) 2019.01.05 27 Hit
창작소설 2019/01/05 02:22:25 이름 : 스노우스윙칩
2레스 -자가삭제된 스레입니다. 2019.01.05 56 Hit
창작소설 2019/01/04 23:49:39 이름 : ◆yK7y7zgi8jd 스레주
10레스 고양이를 주웠다[백합/일상] 2019.01.04 67 Hit
창작소설 2018/12/31 06:54:00 이름 : 이름없음
15레스 조아라 같은 사이트 2019.01.04 368 Hit
창작소설 2018/10/12 02:43:24 이름 : 이름없음
104레스 파티 모집중 2019.01.02 958 Hit
창작소설 2018/06/25 19:28:54 이름 : 이름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