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생생하다.
그 일이 얼마나 나에게 있어 충격적이었는지..
어쩌면 나는 그 일을 계기로, 무신론자에서 유신론자로 전향하는 초석을 놓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때는 여름이었다. 매미가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오후 시간대였고, 나는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침대에 걸터앉아 교고쿠 나츠히코의 '백귀야행 음' 을 읽고 있었다.
내가 책을 읽던 곳은 내 방이 아니라 할머니가 쓰던 방이다. 방 구조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침대가 방문 가까이 설치되어있고, 남쪽 방향, 그러니까 베란다 쪽 근처에 오래된 컴퓨터가 하나 있었다. 방의 평수는 네 평 남짓. 베란다와 근접한 방이라 낮만 되면 제법 햇살이 잘 들어온다.
아마도 그 점을 노리고 나는 그 곳에서 책을 읽은 것이겠지.
..책의 중후반부까지 읽었을 때였다.
나는 당시 침대의 끝트머리에 걸쳐 앉아 독서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방문이 있다.
그런데 방문이 갑자기 열리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팔을 보았다. 대단히 새하얗고 가는 팔. 분명 여자의 팔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할머니나 엄마가 방문을 연 줄 알았다. 조금 위화감은 있었지만, 실제로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독서가 끝난 후 바로 깨졌다.
우리 집엔 그렇게 피부가 하얀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할머니나 엄마가 밝히기를, 자기들은 방문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는 거지만.. 내가 그 때 고개를 조금만 더 위로 치켜들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