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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음 2018/09/15 16:42:04 ID : 4ZcpPg2FeGr
3년 전의 일이다. '경욱'은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내향적이며 조심스러운 경욱과 달리 친구들은 거칠고 외설적이었다. 제 애인과의 성관계 경험담을 자랑스럽게 내뱉었다. 경욱을 포함하여 술자리에 모인 친구들은 4명. 입을 다문 경욱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자에 관한 대화 뿐이었다. 창녀, 걸레, 갈보 등의 단어가 오갔고 친구들은 낄낄 거렸다. 야야. 저기. 9시 방향. 하얀 블라우스. 어우. 가슴이 너무 납작하잖아. 저게 여자냐? 저 정도면 A컵도 안되겠지? 내가 가서 번호 물어볼까. 저년은 왠지 줄 것 같아. 지랄. 나 정도는 돼야 주지. 좆 까는 소리하지마. 이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있다는 것이 역겨웠다. 말소리는 어찌나 크던지 주위 소님들이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직전까지 집에서 명상책을 읽었떤 경욱은 하얗게 표백됐던 마음이 검게 얼룩지는 듯 했다. 대화 주제는 다채로웠다. 여자 꼬시는 법, 클럽에서 원나잇 하는법, 창녀촌에 갔다온 이야기. 후에는 축구, UFC 등의 스포츠 이야기. 그리고 길거리에서 시비 붙었던 이야기. 싸움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사회에 불만은 어찌나 많던지 이런저런 욕을 늘어놓았다. 야. 씨발. 원래 되는 놈들만 되는 거라니까? 맞아. 그리고 부모를 잘 만나야 돼. 우리가 씨발 병신이라서 이러고 사냐? 아냐. 한국이 병신인 거지. 부모 잘 만나서 갖고 태어난 놈들. 대학물 먹었다고 깝죽대고. 인성이 돼야지. 씨발. 대학만 가면 다야? 그러니까. 요즘 새끼들. 우리도 요즘 새끼지만. 아무튼 뒤지게 맞아야 돼. 경욱은 자리를 뜨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금세 대화 주제는 SNS로 바뀌었다. 존재감 없던 여자애가 요새 이뻐졌따. 학창시절 코 흘리고 다니던 놈이 대학 졸업하고 연봉이 얼마다. 다시 성적인 농담과 욕설이 오갔다. 뒷자석에 앉아있던 여성들이 미개하다는 듯 무리를 째려보고 있었다. 한 마디 없이 술잔만 홀짝이던 경욱은 수치스러워 자리를 떠 화장실로 갔다. 거울을 보니 얼굴비치 창백했다. 마치 혼이라도 나간 사람 같았다. 소변은 전혀 마렵지 않았다. 다만 동창 무리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다음 모임에는 절대로 오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온 김에 손이나 씻고 가자 싶었던 경욱은 물을 틀었다. 세면대 위로 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화장실 안이 물소리로 시끄럽던 중, 이를 뚫고 비명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덜컹하더니 무서운 예감이 들었다. 경욱은 재빨리 문을 열고 나갔다. 물기를 뚝뚝 흘리며. 경욱 앞에서는 남자들이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옆의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씨발! 이거 놔! 안 놔! 이 좆만한 새끼가! 아까부터 뭐하는 짓거리야. 입에 걸레를 물었나! 경욱의 친구들과 웬 남자가 싸우고 있었다. 그들은 벌써 피를 흘리고 있었다. 경욱의 친구 중 한명은 옷까지 찢겨 있었다. 티셔츠 목덜미가 너덜너덜했다. 분위기를 보니 듣다 못한 남자가 친구들에게 불만을 표한 것 같았다. 그에 친구들은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고 몸싸움으로 번졌을 것이다. 곧 술집 주인의 신고 전화를 받은 경찰이 들이닥쳤다. 몇 분이 지나자 상황은 종결됐다. 친구 3명과 남자는 경찰차를 타고 떠났다. 떠나고 남은 자리는 흘린 피와 깨진 술병들로 난리였다. 술집은 다시 잔잔해졌고 적막이었다. 그 사이로 미세한 폭포 소리가 들려왔다. 그 일이 있고 경욱은 사람들을 가렸다. 조금이라도 경박한 티가 난다 싶으면 자리를 떠버렸다. 술집에서 있었던 일은 경욱에게 피해의식을 주었다. 사람을 볼 때 일종의 필터링을 하게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경욱의 필터에 걸러졌다. 열 중 아홉은 외설적이고 폭력적인 대화를 즐겼다. 열등감에 차있는 그들은 경욱의 친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경욱은 깨달았고 그들을 '대중'이라 불렀다. 이후로 경욱의 취향은 변질되었다. 갈수록 외진 것을 찾았다. 경욱은 베스트셀러를 읽지 않았다. 일부러 외진 것을 찾았다. 낡고 오래된 것, 하지만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을 찾았다. 그리고 클래식을 고집했다. 힙합, 락, 발라드 따위는 절대 듣지 않았다. 흥행 영화도 보지 않았다. 경욱이 보는 영화는 항상 정해져있었다. 늦은 새벽에나 상영하는 유럽 영화였다. 그런 영화관을 찾는 관객은 매번 5명을 넘지 않았다. 경욱은 그런 '외짐'을 아꼈다. '외짐'은 표백이었고 하양이었다. 검은 얼룩 따위는 없었다. 그러던 중 프랑스 영화가 흥행하기 시작했다. 경욱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준 영화였다. 1달 전 개봉했던 것이 뒤늦게 흥행하다니. 경욱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취향을 대중들이 이해했다는 게 치욕스러웠다. 철학이나 가치관을 영화에서 배우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 영화는 달랐다. 그것은 경욱의 철학이자 가치관이었다. 그리고 정체성이었다. 그런데 얼룩이 묻기 시작했다. 창녀, 갈보를 내뱉던 그들의 색깔로 얼룩 지고 있었다. 포털 사이트에는 연일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 대중들이 감상평이랍시고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영화가 더러워지고 있었다. 경욱이 더러워지고 있었다. 죄다 얼룩이 가득 한 감상평이었다. 한줄한줄 읽을 때면 기괴하고 미끌거리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목구멍에서 뱀이 기어다니는 느낌이었다. 아주 더럽고 징그러운 뱀이었다. 경욱은 프랑스 영화를 버렸다. 무척 아까웠지만 얼룩이 묻은 것은 가치가 없었다. 경욱은 완전히 포기했다. 경욱은 이제 독일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독일 영화는 검지 않았다. 완전한 하양이었다. 눈이 부실 정도였다. 독일 영화는 낡고 헤졌고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손떼가 묻지 않았다. 경욱은 이제 독일 영화를 본다. 그리고 프랑스를 극도로 싫어한다. 에펠탑만 봐도 혐오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프랑스 문학, 프랑스 음악, 프랑스 음식. 경욱은 프랑스와 관련된 것은 취급하지 않았다. 독일. 독일이 답이다. 독일로 가자. 경욱은 프랑스를 허물었다. 그리고 다시 독일을 쌓았다. 아주 높게. 누구도 들어올 수 없게. 독일을 쌓았다.
이름없음 2018/09/16 19:46:44 ID : eIHCmIHDuk1
우와 재밌다 더 써줘!
이름없음 2018/09/24 02:57:40 ID : IJU5bCnXy2G
혹시 내가 재밌게 봐서 더 이상 안 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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