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뜬금없지만 나는 지금까지 랜선연애를 세 번 정도 해봤어. 마지막 랜선연애는 5개월 전이었고 그걸 끝으로 더 이상은 안 하겠다고 다짐했지. 5개월이 지날 동안 랜선연애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는데 오늘 문득 생각이 나서 말이야.
오늘 책 한 권을 읽었는데, 이런 말이 나왔어.
"사람이 사람을 귀찮아하면 안 된다. 결국 귀찮아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게 되므로. 사람이 사람을 고마워하면 안 된다. 결국 고마워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므로."
이 말을 딱 읽었는데 랜선연애에 한창 관심을 갖고 빠져있던 때가 떠오르더라. 왠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사실 랜선연애란 게 생각 보다 힘들잖아. 안 그래도 연애라는 건 상호간의 신뢰가 정말 중요한데 랜선에선 그 신뢰가 의심받는 경우가 얼마나 많아. 세 번의 랜선연애로 그런 걸 직접 겪고 느끼다보니 제일 먼저 떠올랐던 것 같아.
랜선연애 경험이 있다면 다들 뭐가 좋았고 뭐가 나빴는지, 뭐가 특별했는지 짧게나마 남겨줄래? 나도 내 이야기를 몇 개 써보려 해.
이름없음2018/09/17 23:12:04ID : tumsqmNuq7z
랜선 연애 하면 어때?
이름없음2018/09/17 23:17:57ID : 1ctz81g6mFj
사실 굉장히 양은냄비 같은 연애방식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랜선에서는 누구나 쉽게 상대방의 이상형이 될 수 있어. 일단 얼굴 같은 개인정보가 드러나질 않잖아. 그렇기 때문에 순식간에 사랑을 받거나 빠질 수가 있어.
나 같은 경우, 랜선으로 길게 만난 게 108일인가 그 정도 돼. 그 기간 동안은 정말 행복하지! 상대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없지만 그래도 연애니까 말이야. 하지만 한 번 식으면 겉잡을 수 없어. 양은냄비 같다고 했지? 어느 날 갑자기 여러 이유로 싫증 나거나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거기서 끝이야. 참 어렵지
이름없음2018/09/17 23:27:16ID : tumsqmNuq7z
랜선연애하는 거 친구들한테 말했어??
이름없음2018/09/17 23:37:02ID : 1ctz81g6mFj
사람이 사람을 귀찮아하면 안 된다. 결국 귀찮아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게 되므로. 사람이 사람을 고마워하면 안 된다. 결국 고마워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므로.
이 말이 되게 와닿았던 이유는 내 성격 탓도 있었던 것 같아. 나는 내가 확실하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성과의 연락이 잦아지는 걸 정말 꺼려해. 말 그대로 귀찮아서일 거야. 때문에 랜선이 아닌 평범한 연애를 할 때도 썸만 타다가 연애까지 가지 못한 경우도 너무 많고.
나에게 호감을 가지던 여자애가 한 명 있었어. 호감을 가졌단 게 내 주관적인 판단이 아니라, 그쪽에서 날 좋아한다고 말까지 할 정도였어.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난 내가 좋지 않으면 관계 발전되는 걸 싫어해. 그런 느낌이 들 때쯤 그 여자애와의 연락이 점점 귀찮아졌어. 일부러 메시지도 늦게 확인하고 대답도 미지근하게 하고. 쓰레기 같아 보이는 건 인정해.
근데 나한테 안 좋은 일들이 막 연달아서 일어날 때 가장 보고 싶은 건 그 여자애더라. 굉장히 이기적인 생각인데, 아무튼 걔만큼은 날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거든. 조심스레 걔한테 연락을 했을 때 누구보다 반가워 해주고, 진심 어린 위로를 해주는데 너무 미안하고 너무 고맙더라. 그리고 그 고마움이 어느새 호감으로 바뀌어버렸고. 고마워하면 결국 사랑하게 된다고 저 위에 써있지? 딱 그꼴인 거야. 물론 좋아한다는 감정이 싹틀 때 난 개인사정으로 그 애와 연락할 수 없게 됐고 몇 주 후에 그 애는 애인이 생겼어. 지금은 꼭 그 둘이 오래가길 바라고 있고 그래서 일부러 어떤 연락을 하지도 않아.
그냥 저 문장에 내 이랬던 상황이 떠오르더라.
이름없음2018/09/17 23:37:38ID : AlxClDtinSM
얼굴빼고 다 알려주는거야? 목소리나 사는곳 등등
이름없음2018/09/17 23:38:26ID : 1ctz81g6mFj
아니. 난 절대 친구한테 연애한다고 말하는 타입이 아니야. 제3자에게 연애 얘기를 꺼내놓으면 자기들이 마치 주인공인 것처럼 왈가왈부하거든. 그런 게 싫어.
이름없음2018/09/17 23:41:19ID : 1ctz81g6mFj
목소리는 어쩔 수 없이 공개하게 돼. 키패드만 두드릴 순 없잖아. 점점 전화를 하기 시작하지. 사는 곳은 대충 포괄적인 지역만 말해. 그냥 서울, 경기도, 부산 뭐 이렇게. 자세한 주소는 아무래도 까놓기 힘들지. 얼굴공개는 사실 굉장히 위험해. 많은 랜선 커플을이 깨지는 이유가 이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 보지도 않고.
이름없음2018/09/18 13:43:48ID : 4HCjclilwr8
만난적은 한번도 없어??
이름없음2018/09/18 23:30:43ID : 1ctz81g6mFj
실제로 만난 적은 없어. 아, 한 번 있나.
이름없음2018/09/19 00:56:14ID : 4HCjclilwr8
어떻게 만났어?? 어쩌다가?
이름없음2018/09/19 01:00:06ID : 1ctz81g6mFj
사실 난 랜선연애할 때 얼굴 공개를 하지 않는 편이야. 나도 상대의 얼굴을 궁금해하지 않고. 근데 어쩌다가 카톡 프사에 내 셀카를 올려놓는 바람에 공개가 되어버렸어. 분명 나랑 만나던 애도 봤을 거야. 근데 내 프사 봤다는 말은 하지 않고 자기도 프사를 셀카로 해놓더라. 그렇게 얼굴을 사진으로 확인하고나니 뭔가 이제 숨길 게 없단 느낌이 들어서 기회 되면 한 번 만나자고 했어. 응 그렇게 만난 것 같아
이름없음2018/09/19 17:27:21ID : tumsqmNuq7z
만나니까 어때?
이름없음2018/09/19 22:57:16ID : 1ctz81g6mFj
일단 정말 떨렸어. 아무래도 사진은 어플의 힘이 있다보니 실제랑 다르잖아. 상대가 날 보고 실망하면 어쩌지, 혹여 실수라도 한다면 등등 이런 생각들 때문에 긴장도 엄청 하고.
카톡이나 전화로는 되게 잘 떠들었는데 막상 만나니까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자꾸만 숨었던 것 같아. 물리적으로 숨었단 게 아니라 쉽게 말해 겁 먹은 거지. 그래도 좋았어. 걔랑 연애 시작할 때 느꼈던 두근거림이 다시 느껴지기도 했고 나중에도 이런 식으로 계속 만날 수 있단 생각에 행복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