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대로 할까?
  • 우리나라 삼국시대나 일본 전국시대?
  • >>2 바꿀만한 사건은 있나?
  • 세계 2차 대전에서 주축국이 숭리한다면 한국 전쟁에서 공산통일 or 북진통일이 된다면
  • >>4 어떻게?
  • >>5 그냥 만약 저렇게 되면 이후에 어떻게 흘러갔을지 생각해보는거지 뭐 예를 들어서 만약에 나치가 바르바로사 작전 중에 일제가 소련을 공격해서 양동 작전을 벌였다면 주축국이 이길 수 있었을까? 6.25 전쟁 중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지거나, 인천 상륙 작전이 실패했다면 적화통일이 됐었을까? 공산 통일 후 미국을 위시한 제1 세계 국가들이 한국 해방을 위해 제 2차 한국전쟁이 일어났을까? 아니면 일본을 최전방으로 상정하고 일본을 요새화 시켜버렸을까? 인천 상륙 작전 성공 후 중공군 참전 전에 북한이 항복을 해서 현재의 휴전선 보다 더 위에 북한하고 서로 국경이 생긴다거나, 아예 북진통일이 성공했다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있을까? 미군이 자기들 국경 바로 앞에 있는걸 부담스러워 한 중국과 소련이 침공을 해 다시 전쟁이 일어날까?
  • 아니. 모스크바 공방전을 수행하고 있었을때 일제가 소련을 배후에서 쳤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관동군이 패퇴했을 가능성이 농후함. 또한 일본의 국책은 북방작전이 아닌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방 세계의 무역 마찰을 해소하기위한 남방작전이었고 이러한 작전의 주요 목적은 서구 열강의 경제재제를 해소하기 위함이었고. 7월 2일의 어전회의에서 '정세의 추이에 따른 제국 국책 요강'을 결정했는데 이는 단순히 미국, 영국과 전쟁을 불사한다는 목적이었어. 다만 이러한 목적을 순수한 의미로 '전쟁, 개전을 결의한다'는 것이 아니라 스기야마 메모등을 봤을때 '서구 열강의 대일 경제제재에 대응할만한 루트등을 개척하지 못한다면 마지막 길은 대미,대영 선전포고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한것에 가까웠어. 16일에 제2차 고노에 내각이 총사퇴하고(18일에 제3차 고노에 내각이 성립되었고) 25일에는 미국이 재미 일본 자산 동결령을 공포하였지. 28일에는 일본군이 남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진주하였고.
  • 8월 1일에는 미국이 발동기 연료, 항공기용 윤활유의 대일 수출을 금지하였고 14일에는 대서양회의에서 대서양 헌장을 발표했음. 9월 2일경에는 익찬 의원 동맹이 결성되었고. 6일 어전회의에서 '제국 국책 수행 요령'을 결정했는데(10월 하순을 목표로 미국, 영국과 전쟁을 결의) 10월 2일에는 독일군이 모스크바를 공격하였어. 12월 8일에는 모스크바 공략이 좌절되었지. 10월 16일에는 제3차 고노에 내각이 총사퇴하였고 18일경 도조 내각이 성립되었음. 11월 5일 어전회의에서 '제국 국책 수행 요령'등을 결정하였고(12월 1일, 미국과 교섭이 타결되지 않는다면 12월 초순에 무력을 발동함) 26일 미국은 헐 토느를 제의함으로써 서로 돌이킬수없는 강에 빠진것이고. 12월 1일의 어전회의에서 비로서 미국, 영국, 네덜란드를 상대로 전쟁 개시를 결정하였어/ 8일 , 미국, 영국과 전쟁 조서. 일본군은 말레이시아 반도를 상륙, 진주만 공습하였고. 10일에는 말레이시아 해전에서 역구 전함 두척이 공격받아 침몰하였고.
  • 즉 도조 히데키가 총리 대신으로 취임하고나서 전쟁이 일어나기까지는 두달이 채 걸리지 않았고, 전쟁 개시를 결정한 12월 1일 어전회의는 도조 내각을 성립시킨 조각 시점에서 불과 44일째 되는 날이엇어. 10월 17일 오후 3시 30분, 도조 히데키는 육군대신 관저에서 스기야마 하지메 참모총장과 회의중이었는데, 천황의 연락책을 담당했던 기도 고이치(1889~1977, 일본 제국 후작위, 40년 내대신으로 임명됨.) 내대신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도조의 브레인인 군무국 군무과장 사토 겐료는 이렇게 제안했어. "14일에 열린 각의에서 지나 철병을 제안한다면, 육군대신을 그만두겠다며 고노에 총리를 몰아세우신 일로 천황께서 책망을 하실겁니다. 군대의 중국 주둔과 관련한 모든 서류를 가지고 가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음, 그렇겠군. 하지만 폐하께서 그렇다고 하시면 나로서는 뭐라고 할 수가 없네. 폐하께 변명을 드릴 수는 없지." 도조는 말을 마치자마자 옆에 있떤 아카마쓰 사다오 비서관(육군 대령)에게 서류 하나를 가방에 넣으라고 했고. 1921년의 만주사변 이후 중국 대륙 침략의 주역은 육군이었는데 장제스 정권을 지원하고 있는 미국은 일본에게 중국에서 철병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어, 육군대신인 도조 히데키로서는 십 년간의 빛나는 전과를 청산한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고. 도조는 황거에 도착하자마자 어전에 들었고, 사토 겐료는 당시의 일을 대동아전쟁 회고록(1966년)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어.
  • 대동아전쟁 회고록(1966년)에서 발췌 도조 육군대신이 어전에 들자 잠시 후 신문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도조 히데키에게 총리대신의 대명이 내려졌다!" 나는 즉시 반박했다. "무슨 멍청한 이야기오! 지금 폐하께 꾸중을 듣고 있는데." 도조 히데키가 고노에 내각을 총사퇴시킨 것은 9월 6일 어전회의의 책임을 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그 책임은 도조 히데키 역시 함께 나누어 져야만 했다. 더구나 내각을 무너뜨린 직접적인 채깅ㅁ자 였기 때문에 도조 히데키에게 총리대신의 대명이 내려지 리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우리 입장에서는 육군대신을 유임하고 있는 사실조차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도조 히데키에게 총리대신의 자격이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당시에 아무도 없었다. 도조 자신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 증거로 도조는 이미 육군대신 관저에서 다마가와요가에 있는 사택으로 이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전날 밤 도조는 자신에게 대명이 내려질 것이라는 일종의 정보를 듣기는 했지만 그것이 진실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라고 서술되어있음. 한편 도조와 동행했던 아카마쓰 비서관은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곧이어 오이카와 해군대신도 들어오는것을 봤었고, 도조 히데키 육군대신은 기도 고이치 내대신으로부터 갑자기 "오늘은 의자를 내드리지 않을 겁니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나중에 '의자'라는 말은 천황을 알현한 후에 그 표현이 바뀌어서 여러 가지 변형된 이야기가 내돌았다. 도조 히데키는 고노에 내각이 총사퇴하는 계기를 만들었기에 '의자도 내주지 않을 만큼 꾸지람을 내릴것인가'하고 생각했었지만, 천황은 "경에게 내각 조직을 명하오. 헌법 조규를 준수하도록. 시국은 극히 중대한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 생각하오. 이럴 때 육해군은 일충 긴밀히 협력해야함을 유의하시오. 또한 이 시간 이후로 해군대신을 불러 그 뜻을 전할 작정이오." 도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때문에 망연자실했었고, 기도 고이치 일기에는 이렇게 서술되어있어 '방금 폐하로부터 육해군 협동 운운하는 말씀을 들으셨으리라고 헤아려집니다만, 무엇보다 국책의 큰 기본을 결정함에 있어 9월 6일의 어전회의 결정에 구애받는 일 없이 안팎의 정세를 한층 넓고 깊게 검토하여 신중한 고찰을 더 할 필요가 있따는 생각이십니다. 목숨을 걸고 그 뜻을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
  • 9월 6일의 어전회의 결정이란, 정부와 통수부(이른바 대본영. 대본영 육군부는 참모본부. 대본영 해군부는 군령부)의 책임자가 모여서 결정한 '제국 국책 수행 요령'을 말한다. 그 내용은 조건부라고는 하지만 10월 하순에 미국과 전쟁을 개시한다는 냉엄한 것이엇다. 1) 제국은 자존자위를 보전하기 위해 미국(영국, 네덜란드)을 상대로 전쟁을 불사하겠다느 결의하에 대체로 10월 하순을 목표로 전쟁 준비를 완비한다. 2) 제국은 위의 사항과 병행하여 미국, 영국에 대해 외교 수단을 다하여 제국의 요구 관철에 노력한다. 3) 전호 외교 교섭에 의거하여 10월 상순경에 이르러도 우리 요구를 관철할 가능성이 없을 경우에는 즉각 미국(영국,네덜란드)을 상대로 개전을 결의한다. 이 결정은 주전파라고 평가되던 육군성과 통수부(참모본부, 군령부)가 화평파인 고노에 후미마로 수상, 해군 출신의 도요다 데이지로 외무대신을 밀어부인 결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복잡하고 기이하고도 할수 있는데 나중에 기술한다. 도조를 추천한것은 우선 기도 내대신인데 대붑누의 사람이 황족내각이 결정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을때 이를 뒤집어엎은 사태였다. 10월 16일의 기도 고이치 일기에는. 오전 8시 반, 스즈키 (기획원) 총재 내방. 황족내각 운운하는 이야기였는데 이전부터 숙고한 바에 의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반대한다는 취지를 명료히 하였다. 이 앞뒤의 기술을 살펴보면, 스즈키는 곤에와 도조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황족내각안을 집약, 기도 내대신에게 권유했어. 하지만 내대신이 반대한 이유는 다른데 있었는데. ...지난 번 이야기에서 나온 어려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그 타개책을 황족에게 부탁하는 일은 절대 불가하다. 어떻게 보면 신하 중에 이재가 없다는 의미도 될 것이고 더구나 만일 황족내각이 미국과 전쟁에 돌입하게 되는 경우에는 사안이 무척 중대해진다. 즉, 고노에 수상이 어전회의에서 결정한 방침을 실행하지 못할 만큼 중요한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 문제를 황실의 일원인 황족으로 하여금 실행하게 하여 만일 예상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황실은 국민의 원환의 대상이 될 우려가 있다. 스즈키가 돌아간 후 '10시 출근,' '1시 20분부터 11시 10분가지 알현, 급박한 정치정체에 관해 주상하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기도 내대신은 50분간이나 천황에게 보고를 했던 것인데, 그 후 "3시 도조 히데키 육군대신 내실"이라고 적혀 잇어. 도조는 내대신에게 '히가시쿠니노미야(구니노미야 아사히코) 전하 운운하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지만 내대신은 "저는 스즈키 총재가 진술하는 바를 듣고 반대의 뜻을 명확히 했습니다"라며 동의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어. 특히 9월 6일의 어전회의 결정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따는 점, 아울러 육해군의 진정한 일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여것ㄹ, 이는 우리나라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사안이며, 이것이 불가능하면 국가 발전은 있을 수 없음을 진술하였다. 그 후로도 분주한 움직임이 계속 이어졌는데 그 날 일기의 마지막 한 줄이 결정적이었다. 4시, 고노에 공으로부터 각료의 사표를 모았다는 취지의 전화가 왓는데 무척 갑작슬운 일이어서 놀랐다. 4시부터 4시 15분까지 배알, 내각 총사퇴 운운을 주장했다. 5시, 고노에 수상이 방문했고 사표를 봉정했다. 5시 반부터 5시 45분까지 배알, 후임 내각에 관해 하문을 만들었다. 기도 내대신이 천황으로부터 후임 내각에 대해 마지막 '하문을 받든' 것이 바로 이때 15분 간이었는데,
  • 도조에게 대명이 내려진 날인 17일은 오후 1시 10분부터 3시 45분까지 '중신회의'가 열렸다. 중신회의에서 와카쓰키 레이지로가 우가키 대장을 추대한 것 이외에는 황족내각설이 제기되었을 분인데, 그 이상의 "특별한 의견이 없었고 나는 이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육해군 일이츨 도모하는 것과 9월 6일 어저회의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견지에서 도조 육군대신에게 대명을 내릴것을 주장했다. ...반대론은" 없었다. 이하 기도 내대신의 기술은 오로지 도조에게 대명을 내리는 것으로만 채워져 있다. <중신회의> 산회 후, 4시부터 4시 15분까지 배알, 중신회의 내용을 상세히 주상하였다. 도조 육군대신을 불러 대명을 내렸다. 이어서 오이카와 해군대신을 불러 육해군 협력에 관해 말씀하셨다. 이렇듯 살펴보면 10월 16일 5시 반부터 15분간의 '하문'은 다름이 아닌 "도조로 하라"는 천황의 최종 판단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인데, 10월 20일 항목에서 기도 내대신은 다음과 같이 천황의 발언을 기술하고 있어. 10시 45분부터 11시 반까지 배알했다. 내각 경질에 대해 본인의 그동안의 전력에 대해 한량없는 은혜의 말씀을 전해주시니 진정 송구스러웠다. 이번 내각 결정은 한 걸음만 잘못 내디뎌도 부주의하게 전쟁으로 돌입할 우려가 있으므로 숙려의 결과, 이것이 유일한 타개책이라고 믿기에 주청 드린다는 취지를 상세히 주상하였다. 지극한 해량으로 양해해주셨으며 이른바 호랑이 새끼를 잡으렴녀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슴흘 하셨기에 감격했다. 천황이 "호랑이 새끼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속담을 인용한 것은 '9월 6일 결정'의 선봉에 서 있는 도조 히데키가 '백지 환원'이라는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기 위해 그를 총리대신으로 임명하는것을 의미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나타났다. 미일 교섭은 1941년 4월에 시작되었는데, 처음에 미일양해안에 담겨진 대중국정책은 일본에 유리한 것이었다. 일본군의 중국 퇴각이 전제였지만 '만주국'에 한해서는 미국이 눈감아줄 가능성도 잇었다. 또한 '장-왕 합작정권 합류'도 반공(소련과 중공)이라는 선에서는 가능성이 존재햇다. 왕자오밍 정권을 지지했던 일본에게는 유리한 조건이었다.
  • 하지만 제2차 고노에 내각의 외무대신 마쓰오카 요스케는 히틀러, 무솔리니와 세계 분할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고 의기양양하게 귀국하였다. 마쓰오카가 미일양해안을 무시하는 태도로 나왔기 때문에 미국과 관계는 냉각되엇고, '만주국 승인'도 '중일 방공 공동 방위'도 제안에서 바져버렷다. 고노에는 미일교섭 중단을 주장하는 마쓰오카 외무대신을 잘라내기 위해 군부의 동의를 얻어 7월 16일에 총사퇴 한 뒤, 화평파인 도요다 데이지로 해군 대장을 외무대신으로 정하고 제3차 고노에 내각을 조지갷ㅅ다. 그러나 7월 2일 어전회의에서 이미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베트남)및 태국에 대한 모든 방책을 완전히 성취함으로써 남방 진출의 태세를 강화한다. 제국은 본 목적을 다성하기 위해 미국, 영국과 전쟁을 불사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었고. 이 결정은 7월 28일 남부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진주로 구체화된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가 굴복하기 시작한 7월 25일, 미국은 미국내 일본 자산을 동결했고, 영국, 네덜란드도 이에 따름으로써 ABCD(미국,영국,중국,네덜란드) 포위진이 완성되었다. 그날 도쿄 주식시장은 대폭락되엇고. 이어서 8월 1일, 미국은 석유를 비롯한 중요 군수물자의 대일본 수출을 금지하고 나섰다. 이에 분노가 폭발한 군부의 주장이 '9월 6일 어전회의의 결정'으로 나타났다. 고노에 내각이 총사퇴에 냄로린 것은 9월 6일 어전회의에서 결정된 바를 준수하라는 도조 히데키의 돛고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 천황은 9월 6일의 어전회의에서 선대 메이지 천황이 지었던 노래 한수를 읊었다. 사해의 바다 모두 같은 동포라 여기는 세상 어찌해 파도바람 소란스레 여는가 이윽고 한 마디를 덧붙였는데 "짐은 대제께서 손수 제작하신 이 노래를 삼가 읊음으로써 대평화 애호정신을 따르려 노력하고 있소." 어전회의에서 천황은 발언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가 기본이었는데 굳이 이와 같은 발언을 한것이었고, 어전회의는 의식이었다. 9월 3일의 대보녕- 정부연락회의에서 실질적으로 결정된 것을 어전회의에서 형식적으로 승인한 것이며, 천황의 발언은 해프닝에 불과하며 그런 해프닝이 있다고 해도 결정은 결저이었기에 바뀌기란 불가능했다. 결국 두가지의 모순된 방향이 드러났다. 개전과 그 결정과는 다르다고 외치는 천황이었다.
  • 당시 일본은 제국 국책 수행 요강등을 통하여 대미 전쟁결의를 했던것은 분명하나 그것을 적극적으로 회피하려고 하였고 외교적, 경제적 노력등을 수반하였을뿐더러 같은 이유로 대소 선전포고를 할 가능성은 절대적으로 없었음. 따라서 일제가 소련을 친다는 선택지 자체가 나타날수가 없다. 실제로 진주만 공습은 12월 8일에 일어났으며, 12월 7일은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독일군이 패배했을때였다.
  • >>15 결론: 일본이 트롤
  • >>16 ..? 일본이 트롤인게 아니지. 그런식이면 일찍 본토 잃은 프랑스나 자유 폴란드하고 루마니아,체코슬로바키아 같은 국가들도 다 트롤이게..? 도대체 역사를 어떻게 공부했으면 일본이 트롤이라는 이런 소리를 하고있나. 각국의 정세나 경제 상황에 따라서 전쟁 목표는 달라지는것이고 이미 미-일은 1920년대 초부터 서로를 잠재적 적국으로 인식하고 미국의 태평양 라인의 군비가 급격히 확충하기 시작했는데. 단순히 시간으로보면 미-일은 지정학적 라이벌 관계로써 충돌이 불가피했으니 오히려 트롤은 몇년만에 전쟁 일으킨 독일이지 ㅋㅋ
  • >>16 그런데 만약에 국공합작이 이뤄지지 않고 국민당, 공산당이 치고 박고 싸우다 중일전쟁 초기 일제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중국이 항복을 해버렸다면 가능했을것 같기도 해. 중국 내부에서의 게릴라전은 계속 이어졌을테지만 중국이 가지고 있는 그 많은 인력과 장비들이면 소련을 칠 수 있었을거야. 상상력 좀 더 보태서 인력 많겠다, 장비도 넘치겠다. 진주만 공습의 이유 중 하나였던 미국이 일본을 때릴 준비를 끝내기 전에 미리 선빵 때려놓고 참전 지연시킬 이유도 없어지지. 이미 일본은 이제 무서울게 없는데 뭐하러 진주만을 건들겠어. 게다가 나치는 유럽 전역을 먹고, 일본은 아시아 대부분을 먹었는데 참전을 계속 꺼려하던 미국이 굳이 일본을 공격했을까? 미국은 아마 독일이든 일본이든 한 곳은 묵인하거나 아예 유럽은 독일땅, 아시아는 일본땅, 아메리카는 미국땅! 이런식으로 아예 3강 체제로 가던가 했을려나
  • >>17 넹 역사공부 잘 안해서 죄송합니당 외국에서 살아서 아시아 역사는 잘 공부한적이 없어서 잘 모른다 시이벌 난 학교에서 유럽사 아니면 남아메리카 역사만 공부했어 한국사를 포함해서 아시아사는 잘 몰라. 한국인으로서 잘 모르는게 자랑은 아닌건 알지만 너레더가 그렇게 말하니까 좀 서운하다 그래야되나 슬프다 그래야되나 에혀 모르겠다 여기는 지금 새벽이라 감성 올라와서 이러나보다 술마시고 아무말 대잔치 한거니까 걍 별 신경 쓰지마 깔깔 난 자러간당 추석 잘 보내랑!
  • 어ㅡ이 이럴려고 만든 방이 아니라구ㅡ 가상역사를 만들 사건과 시대와 어떻게 꼬을껀지를 말해보자구!
  • 스레주 안 와서 폭파된 줄 (...) 전국시대라면 역시 혼노지의 변이네.
  • 만약 혼노지의 변이 실패했다면- 이라든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이 승리했다면- 이라든가.
  • 흐음.. 그러면 일본쪽의 역사에 빠삭해야겠네ㅡ
  • >>19 아... 보니까 나도 꽤 안좋게 말했구나 미안하다;; 너레더도 추석 잘보내라 ㅇㅇ 그런데 일제가 중국을 밀었으면 오히려 소련,미국과의 전쟁 결의가 낮아지는게.... 중국을 지배했다고 하더라도 그곳을 유지할 치안 병력, 경제력이 과연 일본에게 있었는가? 당장 대전 말기까지 조선인을 징병하여 편성한 부대는 딱 하나, 그것도 800명밖에 없었는데... 과연 중국인들을 징집했을까? 또한 중국이 장비가 많았다는데... 중국의 장비는 미국,영국등 서방 국가의 랜드리스와 금융 원조책이 있었고 그들의 채권을 받은 중국은 독일,소련 등으로부터 무기를 사와서 가능했던것임. 그 장비마저도 적었음... 당장 중국군에게는 중화기라고는 박격포따위밖에 없었고 전차는.... 말을 말아야지
  • 타국을 무력 병탄하여 지배함에 있어서 타국의 내정 간섭을 불러오게 되는데(현대로 친다면 유엔 안보리 결의 및 규탄 성명 등) 그것에 대한 방책이 되어있는가? 타국의 무력 병탄에 대한 대응책으로 A국, B국등의 규탄 성명뿐만이 아니라 외교 대사의 추방등의 외교적 방책에 대응할 수단이 있는가? A,B국에서의 외교 대사등의 추방뿐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경제재제 등이 들어온다면 그것에 대한 방책, 우회로등이 존재하는가? 방공식별구역등을 침범하는 군사적 도발이 생긴다면 이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해야하는가? 단순히 스크램블등의 대응으로만 끝내야하는가? 설령 일제가 중국을 지배했다하더라도 당분간 배급제가 시행될수밖에 없을탠데 그만한 식량, 민수품을 중앙 당국에서 나눠줄만한 여건이 되는가? 그만한 생산 시설과 생산력, 경제 규모가 있는가? 당장 현실의 역사속에서는 1931년 만주 사변 이후 일본은 3년만에 총력전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것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가상 역사를 어떻게 만든다는건지..
  • 만약 폭동등의 사유로 치안 출동이 불가피해진다면 이에 대하여 민간인 소개등의 치안 방책이 수립되어 있는가? 있다고 한들 어떻게 수행해야하는가? 만약 과격파, 독립분자등의 요인 암살, 시설물 폭파등의 테러 공작이 벌어질수 있는데 이것들을 조기에 막을 방법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치안을 유지하려면 피지배국에 많은 병력을 파견, 주둔해야하는데 그만할 군대를 유지할수있는가?
  • 어이ㅡ >>19 >>24 는 다른 스레 만들어서 해 줄 수 있어? 여기선 정하고 하는거지 토의는 의견이 많이 나온 후에 하는게 더 좋을거 같아서.. 그리고 일본이 어디를 공격했든 Axis는 하도 난리를 피웠으니... 그들의 오합지졸 행태로는 연합작전도 못했을껄.
  • 만약 독일이 2차세계ㄷ전에서 승리 했다면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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