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먼저 제시해볼게. 구름 먼지 희망

"저 다녀올게요." 막 이병 꼬리표를 뗀 것 같은 사내가 그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에게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또 팔다리에 멍들어 오지 말고, 이제는 살도 좀 찌우고 그래라, 응?" "아이 참, 우리 엄마는 걱정도 많네. 훈련해야 되니 멍드는 건 어쩔 수 없다구요." "그래도......" "이러다가 아들내미 늦겠어. 나 들어갈 테니까 엄마도 바로 집 가요, 또 부대만 한참 바라보다 가지 말고." 사내는 흙먼지 날리는 부대에 들어가면서도 제 어머니를 생각해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그런 사내의 뛰어들어가는 뒷모습을 하염없이 쓰담아주고 싶지만, 더 이상 잡으면 안 되는 것을 알기에 애꿏은 주먹만 꽈악 마는 사내의 어머니였다.

아무렇게나 내팽게쳐져 나뒹구는 술병들 사이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슬리퍼 한짝. 마구 흐트러진 침대 위에서 이불을 끌어 안으며 떨고있는 남자. 어젯밤에 일어난 일은 그저 한여름 밤의 꿈이었을 뿐.

시꺼먼 내부를 내보인 오싹하리만큼 고요한 방이 눈 앞에 있었다. 이질적일 정도로 그 방은 그저 검기만 했다. 왜 내가 여기에 있지? 어젯밤에 난 무엇을 했지? 여긴 어디지? 조각조각 깨어진 기억을 기를 쓰며 그러모았다. 늦가을, 고등학교, 동창회, 술자리, 어쩌다 튀어나온 괴담 이야기들. 장면의 편린들이 후두둑 스쳐 지나갔다. 「 검은 방, 이라는 괴담 들어봤냐? 자기도 모르는 새 검은 방 앞에서 눈을 떠서는 그 기괴한 공간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뭐 그런 얘기. 」 「 싸구려 공포 영화도 아니고…유치하다, 임마! 」 「 아, 들어봤어, 들어봤어. 시간 내에 탈출 못하면 목이 댕강. 이었던가?」 「 참 나, 목이 댕강? 한층 더 B급스러워졌네. 」 「 무섭지도 않다, 누구 다른 얘기 아는 사람? 」 메마른 웃음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왔다. 천천히 손을 들어 뺨을 후려쳤다. 아팠다. 우습지도 않은 괴담이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 현실이 되어 있었다.

쓰던 샴푸가 다 떨어졌다. 이 늦은 시간에 샴푸 하나 사러 멀리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일 사 온다고 해도 당장 오늘은 어쩌지? ...급한 대로 여행용 세면도구 세트에 들어 있던 것을 사용했다. 평소 사용하던 것과는 다른 것이라 그런지 긴 머리가 머금은 향기가 낯설었다. 그나저나, 어디 여행 갈 여유도 되지 않는 내가 왜 이런 걸 샀더라. ...기억났다. 2년 하고도 반 전에,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아이들이 다같이 장소를 정하고 여행 일정을 짜며 한 푼 두 푼 돈을 모으던, 졸업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던 그때였을 것이다. 몇 안 되는, 나의 행복한 기억. ...결국 가지 못했지만. 아직도 나는 기억한다. 내겐 너무도 찬란했던, 밝은 웃음을 지어주던 너를. 함께 떠들고 웃으면서도 나는, 혹여 얼굴이 붉어지지는 않았을까, 고이 품은 이 마음을 들킬까 두려워했었더랜다. 내가 너에게 연심을 품었다는 것을 알면 날 경멸할까봐. 그 작은 일상마저 누릴 수 없게 될까봐. 우리 학교는 여고였다. 그 날은 졸업여행 며칠 전이었다. 코앞으로 다가온 여행에 들뜬 아이들이 가득하던 하굣길에서, 너는 나에게 편지를 내밀며 말했다. 졸업식이 지나면 열어보라고. 그 전까지는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당부와, 그러지 않았다간 미워할 거라는 장난스러운 농담을 함께 건네며.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 편지를 서랍에 고이 넣었다. 편지를 열어 보는 일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내겐 절대적이던 너의 말을 거스를 수는 없었으니까. 행복했다. 그 기쁨에 감싸여 깊은 잠에 들었다. 그날은 행복한 꿈을 꾸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를 맞이한 것은 나를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소식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네가 그럴 리가 없었다. 모두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야만 했다. 졸업여행은 취소되었다. 졸업여행 따위를 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본래라면 졸업여행을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어야 할 그 날, 우리 반의 모두는 너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세상이 나를 버린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 영정 앞에 앉아 있다 혼절했던 나는, 며칠이 지나고서야 간신히 깨어났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몸뚱아리만이 기계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자연히 편지는 잊혀졌다. 시간이 나를 비껴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렇게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추억을 회상하며, 애써 웃었다. 너는 내가 너를 생각하며 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겠지. 웃으라고 외치는 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래서 웃었다. 슬픔을 모두 지워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웃었다. 서랍에 고이 모셔두었던 너의 편지를 떠올렸다. 내게 남은 너의 마지막 흔적. 졸업식은 이미 지났으니, 이젠 마음껏 열어볼 수 있다. 한참을 망설였다. 그냥 다시, 서랍에 고이 넣어둘까. 그 속의 내용을 영원히 비밀에 부치는 게 옳은 일이 아닐까.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편지를 열어보겠다는 것도, 너와의 약속이었다. ... ......나는, 왜 이제서야......

우리 학교는 산 위에 자리잡은 곳이었다. 여름에는 날벌레가 날아다니고 가끔 야생동물까지도 볼 수 있으며, 겨울에는 산이랍시고 눈이 펑펑 내려 무릎까지는 평이하게 쌓이는 그런 곳. 학교로 올라오려면 차를 타고 다니거나 아니면 2시간 이상씩 걸어다녀야해서 학교 내에 자체적인 기숙사까지 있는 곳이었다. 후우, 한겨울에 운동부라 대회를 나가야한다는 이유로 방학임에도 기숙사 생활을 하던 비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은 겨울의 차가운 바람을 맞아 뿌연 입김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매점이나 가볼까. 방학에도 남아있는 이들이 많아서 그런지 매점은 방학에도 닫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쭉 기숙사에서 지내는데 매점까지 없으면 아마 학교에 질려 진작에 탈주라도 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비나는 시린 손을 마주 비비며 몸을 움츠리곤 잰걸음으로 달려가듯 걸었다. 기숙사에서 매점까지 가는데에는 교사를 빙 돌아가야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 후에 기다리고 있을 맛있는 음식들을 생각하면 별로 나쁘지 않은 길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말이다. 비나는 걸음을 멈췄다. 두걸음 앞, 어제 눈이 내리고 아무도 매점에 가지 않았기에 새하얀 눈밭이 펼쳐져 있을 길 위에 비현실적인 붉음이 흩뿌려져 있었고, 그 위에는 제 소중한 친구가 미동도 없이 누워있었다. 추운걸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친구가. 아무리 둔하기로 학교에서 유명한 비나라도 그 모습을 보면 눈 위에 뿌려진 붉음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깨닫고만다. 저것은 피였다. 대회가 얼마 남지않은 겨울 방학, 비나는 학교에서 피로 물든 친구를 발견하고 말았다. 학교는 그날, 어제 내린 폭설로 고립된 상태였다.

나는 카디건을 여몄다. 4월, 봄이라지만 새벽의 공기는 제법 쌀쌀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나 보다. 어느새 아줌마, 아저씨가 되어버린 추억 속의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혼자 구름조차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자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뒤돌아 보니 학창 시절을 줄곧 함께 했던 친구 박신혜였다. "얘, 미숙아! 혼자 서서 뭘 하고 있니?" "좀 추워서. 옷 좀 여미고 있었어." 장난스레 올라간 입꼬리와 살짝 찡그린 눈이 어릴 때 그대로였다. 신혜는 자연스럽게 내게 팔짱을 끼더니 걷기 시작했다. 힐끗 곁눈질로 바라본 그녀는 세월의 탓인지 나이 들어 있었지만... 그 시절, 임미숙의 멈춰버린 시간 속 그대로였다. 여전히 밝고, 쾌활하며 주변 사람의 기분을 빠르게 파악했다. "하아... 어디로 가는데?" "응? 그런 건 비밀로 해야 재밌지!" 발랄한 소녀처럼 대꾸하더니 발걸음이 빨리했다. 역시 내 기분이 썩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채고 달래주려는 심산인 모양이었다. 작게 웃은 나도 그녀를 따라 뛰듯이 걸었다. 새벽녘의 바람은 더 이상 춥다는 기분을 들게 하지 못했다. "미숙아. 그 열쇠고리 말인데..." 순간 둘의 발걸음이 멈췄다. 아니, 내가 멈췄다. 신혜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내리니 나비 모양의 열쇠고리가 보였다. 열쇠고리지만 가방 한 귀퉁이에 매달려 있었다. 노란색의 그것은 벌써 20년 넘게 내 곁에 있었다. "미안.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건 아니었어." "알아." 내 퉁명스러운 대답은 신혜는 슬쩍 팔짱을 풀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쩐지 그녀가 가려는 곳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친구가 묻혀 있는 곳 하지만 내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 "신혜야." "알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거." 뒤돌아 본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애당초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임미숙은 최다희의 묘에 갔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무서우니까. 다희가 죽었단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피한다고 사라지는 현실이 아닌데, 도망쳐 버렸다. 박신혜는 말하고 싶은 거다. 지금이라도 잔인한 현실을 똑바로 마주 보라고. 더 이상 도망쳐서 다희의 안식을 방해하지 말라고. 감았다 뜬 눈은 희뿌옇게 변해 신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가 나를 안아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 상냥한 친구는 겁쟁이의 손을 잡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 정도 거리면 택시를 타는 게 나았을 텐데. 그러지 않은 게 나에 대한 배려라는 걸 때 달으니 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너는 쓸데없이 눈물이 많다니까." 놀리듯 말한 그녀가 발걸음을 멈추고 손을 놓았다. 수많은 비석들이 서있었다.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어째서 네가 이곳에 묻혀야만 했는가? 눈을 감고 뒤돌아 뛰쳐나가고 싶다. 하지만 여기까지 나를 데려와준 친구와 오랜 시간 나를 기다렸을 친구를 생각하니 그럴 수 없었다. 이제는 도망치면 안 됐다. "일주일 전쯤에 영희랑 현주가 다녀갔어." 겁쟁이는 나뿐인가 보네. "이거 돌려줄게." 노란색 나비를 꽃의 옆에 놓아주니 제법 화사해 보였다. 너는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는 싫어했지. "이만 가자." "벌써?" "응. 다희가 화난 것 같으니까 다음엔 맛있는 거라도 들고 와야겠어." 신혜가 달려들듯 뛰어와 팔짱을 꼈다. 묘를 뒤로하고 올려다 본 하늘은 아름다웠다. 새벽과 아침의 빛깔에 물든 구름 사이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어제 너와 나는 이별했다. 물론 내 고의는 아니였다.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크다. 마지막으로 네 얼굴, 목소리, 온기 아니 숨결이라도 느낄수있었으면 좋으련만 내 뺨은 너의 손길대신 뜨거운 액체로 물들어가는게 느껴졌다. 그렇다. 어제 새벽3시36분. 나는 사망했다. 너는 곤히 자고있을 그 새벽, 너와 함께 살아갈 방 한켠을 구하러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던날. 이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오면 넌 나의 흔적을 찾겠지. 사랑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오른다. 그 옅은 색으로 어떻게 하늘마저 물들일 수 있는지, 꽃과 구름의 경계를 가늠하는 건 포기해야 할 듯 싶었다. 바람이 스치자 나무는 기다렸다는 듯이 안겨들어 몸을 떨었다. 흔들리는 가지는 천천히 꽃잎을 흘렸다. 가득 차오른 눈물에 잠긴 흰 털이 언뜻거린다. 거기서 뭐 해. 고양이가 고개를 돌렸다. 떨어지는 꽃잎을 잡고 놀았는지, 새하얀 눈밭에 군데군데 분홍빛이 스친다. 손길을 마다하지 않는 털뭉치를 쓸어 꽃잎을 털었다. 발톱에 찢기고 흙에 밟혀 더러워진 꽃잎이, 저 하늘에 스며든 순수함과 같다는 생각조차 조심스럽다. 입 속의 둔한 단맛을 와작 깨물었다. 사탕이 깨지는 소리에 고양이가 꼬리를 휘저었다. 가자. 벚꽃에 등을 돌리고 조심히 마루 위로 올라섰다. 고양이는 여전히 나를 따라온다.

"왜 도주한거지?"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차가우면서도 습한 공기가 내 뺨을 스쳤다. "짐은 너를 박대한적이 없다. 무엇이 불만이었던 것이냐?" 그가 온유하게 나를 본다. "맞아요, 박대한적도 불만도 없어요." 내가 그를 쏘아보며 앙칼지게 말했다. "호란, 너는 이런 얘가 아니었잖니, 짐이 다 들어주마." "황상께서 저에대해서 무얼아신다고 이런 얘가 아니었다고 라고 말하시는지요? 첩신은 이런 얘였습니다." 그의 미간이 찌뿌려지더니 그는 옆의 모란봉수백자를 들고는 내앞에 내리쳤다. "고얀!" ".." 그의 황색 도포가 내눈을 어른거렸다. "너는 나를 사랑했지않느냐!" 그가 윽박질렀다. "하? 사랑이요? 그 사랑을 위해서 날밤새고는 하찮은 적선같은 잠자리가 사랑인가요? 구걸하는 사랑이 사랑이던가요? 그런걸 사랑이라고 배웠다면.. 참 가엾어라. ..이 자오궁중에 황상에게 가면을 쓰지않고 다가온 사람이 있기나할까요? 벗고 만나도 시간이 흐르면 쓰게되죠. 당신 기억속에서의 그해의 호란은 당신이 준 상처에 이미 죽었어요. 평생 그 시절의 호란만 기억하세요!" 나는 그의 허리춤에 있는 칼을 뽑아 순간적으로 복부에 찔렀고 일순간의 신음과 아리는 고통은 내 흰백색의 앏은 비단은 붉은 비단이 되어버렸는데 그 붉음이 띄엄거려서 마치 눈속의 크고 붉은 홍모란과 홍매화같았다.

아무 의미 없는 하루가 마무리 되고, 해가 지고 또 다시 밤이 찾아왔다.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 나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았고, 도움도 되지 않는 희미한 빛 한줄기만을 바라보는 일상이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였지만 하루하루가 더욱이 힘든 느낌이다. 나는 항상 자기 전에 같은 생각을 한다. 내가 왜 이런 하루하루들을 반복해야하며 이렇게 아파야하고 쓸쓸해야하는지.. 내가 무엇인가 잘못한게 있나 자기성찰을 하며 잠드는 하루다. 햇빛으로 어둠이 차츰 물러갈 때 쯤에 눈을 뜨고 일어나면 나는 또 생각한다 창문을 타고 내려오는 저 많은 물방울이 얼룩진 창문을 깨끗하게 해주는 것처럼 저 물방울이 내 어둠도 차츰차츰 지워주면 좋을 것 같다고 빛 한줄기를 어둠 한줄기로 바꿔줬으면 좋겠다고

어린 시절 나는 마을 버스 기사 일을 하시던 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매일 아침 등교할 때면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이 버스에 올라 내 아버지를 보고 킥킥거리고 비웃곤 했다. 나는 너무나 화가 났다. 분통이 터졌다. 하지만 나는 비열하게도 그 분노의 화살을 엉뚱하게 아버지에게 돌리고 말았다.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집을 뛰쳐나간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왜 버스 기사 따위 일이나 해서 나를 학교에서 창피하게 만드냐고, 마구 성을 내고 울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쩔쩔매시며 도리어 나에게 사과하셨다. 미안하다, 아빠가 다 미안해. 아버지는 항상 낡은 안경에 퀴퀴한 냄새가 나는 작업복을 입으셨다. 철부지였던 나는 아버지의 그 초라한 모습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비뚤어진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갔다. 나는 얼마 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집을 나와 멋대로 다른 지역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죄송한 마음도 조금 있었지만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고 대학 생활에 집중했다. 4년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그리고 대학 졸업이 다가왔다. 나는 졸업식을 마치고 동기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 굉장히 익숙한 사람이 걸어왔다. 머리칼이 조금 희끗해지고 얼굴의 주름이 더 패였다는 점을 제외하면, 예전의 아버지와 변함이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낡은 안경, 퀴퀴한 옷, 예전과 조금도 바뀌시지 않은 그 모습으로 손에 꽃다발을 들고 계셨다. 그것도 내게 활짝 웃음을 지으시며. 순간 내 속의 무언가가 뜯겨져 나갔다. 나는 아버지에게 달려가 눈물을 쏟으며 끊임없이 죄송하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당황하신 것 같았다. 오히려 나를 꼭 안아주셨다. 옆에 있던 동기가 이 분은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눈물범벅이 된 채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우리, 아버지야."

이 마을에는 그런 전설이 있었다. '별을 직접 보는 사람은 누구든 불행해진다.' 때문에 마을의 사람들은 실수로라도 별을 보지 않기 위해 땅거미 질 무렵이 되면 하나둘 집으로 들어가 문을 단단히 걸어잠궜다. 이윽고 세상에 어둠이 커튼처럼 얇게 내려앉으면 그 마을에는 적막과 어둠만이 새벽 동 트기 전까지 함께 마을을 지켰다. 동이 트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그제서야 하나둘 잠에서 깨어나 제 할 일을 하는 식이었다. 마을에서 별이란 쓸모없는 주제에 너무나도 위험하여 혹 보게 된다면 눈이 멀어버릴지 모른다는 유언비어까지 나돌았는데 정작 그런 소문을 퍼뜨리는 인간들 또한 별을 직접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 신빙성 있는 소문은 아니었지만 심심풀이로 잠깐 소비할 소문 정도는 되었다. 아주 먼 옛날, 대체 어떤 불행을 당했을 지 모르는 우리의 선조들이 그려둔 그림들만으로 우리는 별의 생김새와 특성을 짐작해야 했다. 그 그림들에 담긴 별은 별이 저주와 동의어가 아닌 곳에서는 어떨지 모르나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저 하늘이 푸르고 흰 불꽃에 잠식되어가는 것처럼 보였고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이 혹 땅으로 떨어진다면 온 마을이 불타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 떠들기도 했다. 간혹 호기심 많은 꼬마를 둔 집은 그 아이가 저녁에 몰래 빠져나가 별을 보지는 않는지 철저하게 감시해야 했다. 비교적 별의 저주에 대해 느슨한 집에서는 가끔씩 그런 꼬마들을 단속하지 않고 그냥 두기도 하였는데, 이제와서는 그도 다 옛말. 먼 옛날에 호기심으로 부모님 몰래 별을 보러 집 밖으로 나간 꼬마아이가 다음날 마을에서 영영 자취를 감춘 일로 사람들, 특히나 부모님들의 걱정은 극대화되어 그 날 이후 아이들은 저녁은 커녕 해질녘에조차 집 밖으로의 외출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그 날에 그가 본, 어둠으로 물든 하늘을 배경삼아 꽃인마냥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별들은 저주보다는 희망의 동의어와 훨씬 어울렸다. 그 아름다운 밤하늘을 본 순간 그의 폐는 마치 자신이 받아들인 것이 산소가 아니라 별들의 파편이기라도 한 양 한 점의 숨도 새어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숨이 막혀오는 감각, 심장이 빠르게 뛰어 가슴께에서 무언가 벅차올라 입 밖으로 터져나올 것만 같은, 흔히들 감동이라 표현하는 감정. 만감이 교차하는 그 감각들을 추스른 그가 가장 처음 떠올린 것은 이 마을에 머물러서는 두 번 다시 이 밤하늘을 볼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 언질도 없이 그 날 마을 밖으로 빠져나왔고, 사람들의 불안감이 고조되어 아이들을 반드시 해질녘 무렵부터 집으로 돌아오도록 했던 시기도 이 무렵이었다. 이후 마을을 빠져나간 그가 어찌 되었는지는 누구도 알 지 못했으나, 그 당시 마을에 있던 또래의 아이들이 지금은 백발 성성한 노인이 되어 하나둘씩 영원한 어둠 속에 빠지는 것으로 보아 그 또한 그리 되었으리라는 추측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그에게 희망이 된 눈부신 별들 아래에서 잠들었는지, 혹은 마을을 나가고 이내 별에 흥미를 잃어 눈부신 태양이 작열하는 곳에서 숨을 거두었는지, 그도 아니면 그저 정처없이 떠돌다 해도 별도 달도 없는, 마치 그가 떠나온 마을을 닮은 곳에서 눈을 감았는지, 아니면 만에 하나의 확률로 그가 잠든 곳이 이 마을은 아니었는지, 그것을 알 방법은 전혀 없다.

>>124 찡하다... 겨울 밤 커피

진한 블랙커피가 하얀 머그컵 속에 떨어져 차올라간다. 남자는 확하고 올라오는 진한 향에도 감흥 없다는 듯이 무표정으로 컵을 집어들었다. 커피만큼이나 깊게 눈가에 자리 잡은 다크써클은 오늘 이 컵에 담겨진 커피가 지금 이 잔 하나만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눈이 내리고 있는 밤의 거리와는 상반적으로 따뜻한 방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이 무럭무럭 나고있는 커피를 지체없이 입으로 가져가 한모금을 입에 머금은 남자는 조금 뜨겁다는 듯이 얼굴을 찌뿌렸지만 이내 입안에 든 커피를 삼키고 의자에 앉아 펜을 집어들었다. 책상위는 찢겨지고 구겨진 종이, 펜, 마구잡이로 놓여있는 책들 등의 온갖 잡동사니로 인해 엉망이였지만 남자는 그닥, 아니 전혀 신경쓰지 않는듯 했다. 그의 필체는 유려하고도 정갈하다며 칭송받았지만 그의 방이 그것과는 달리 엉망진창인 것을 아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그밖에 없었다. 미동도 없는 몸과는 달리 빠르게 움직이는 펜은 벌써 몇문단째 글자를 써내려갔다. 책상위 구겨진 종이 더미속에는 어느 잡지의 한 페이지가 있었다. 역시나 구겨지고 찢겨진채로. 잡지의 사진속에 남자는 말했다. "글을 쓰는 이유요? 별다른 이유는 없어요. 제가 글쓰는걸 좋아하니까요." 거짓말이었다. 그는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정확히 말하자면 그 말의 반은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있다. 그가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던건 그가 아니였다. 어렸을때부터 그 아이는 남자를 잘 따랐다. 남자의 글을 볼때가 아이의 표정이 가장 밝아질때였다. 처음에는 달리 할것도 없어 시작한 글쓰기지만 그런 그 애를 보면서 아직 어렸던 그도 즐겁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정말로 그 아이는 남자를 잘 따랐다. 어느 겨울, 그 이상의 학대를 참지못한 그가 결국 고아원을 뛰쳐나갔을때 그를 따라나왔을 정도로. 처음 몇년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고아원을 나온것은 후회하지 않았지만 이러다 죽겠다 싶을정도로 바깥사회는 가혹했다. 공장 잡일, 신문 배달, 굴뚝 청소...안해본 일이 더 적을 정도로 여러 곳을 전전하며 일하다가 그의 인생은 크게 바뀌게 된다. 아이의 제안으로 틈틈히 쓴 글을 별 생각 없이 어느 출판사 공모전에 냈고, 결과는 대성공이였다. 대상, 그러니까 일등상을 받아내버린 것이다. 그뒤로는 모든 일이 물 흐르듯 일사천리로 일어났다. 대상을 인연으로 출판사와 계약을 해 책을 냈고, 책은 금세 유명세를 얻어 남자까지 유명세에 오르게 했다. 다음 책도, 그다음 책도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그의 이름은 어느새 꽤나 유명한 것이 되었다. '거리를 전전하던 굴뚝 청소부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라는 그의 타이틀은 매스컴의 흥미를 끌기에 더할나위 없었고 그의 이름은 전국을 오르내리게 된다. 남자는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아이가 없었다면 자신은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라고. 분명 어딘가의 공장쯤 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라며 드문 웃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이가 없어진 후에도 그건 변하지 않았다. 사실 변한건 별로 없다. '결핵' 이라더랬다. 안 그래도 날때부터 약했던 몸은 학대를 받아 더 쇠약해져갔고 거리에서 떠돌때에는 위험수준까지 가있었을거라고 의사는 말했다. 남자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눈치채지 못했다. 병원을 몇번 보낸적은 있지만 몸은 건강하다며 웃으며 돌아왔다. 같이 갔어야 했다. 알아채야했다. 온몸을 끈적하게 내리누르는 검고 깊은 후회는 아직까지 그의 곁에 머물고 있는 모양이였다. 그아이와 살던 작은 빌라 한켠에 아직까지 살고 있는것을 보면. 그는 지금도 글을 쓴다. 이유는 그도 잘 모른다. 아이가 좋아했던 자신의 글을 놓을 수 없는건지,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인건지, 아니면 전혀 다른 이유가 있는건지. 아까 말했던대로 남자에게 아이의 부재가 준 변화는 그리 많지 않다. 다만 마감이 가까운 밤, 철야로 작업을 할때마다 아이가 타주던 커피는, 그 맛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이제는 손수 타마시고 있는 커피는 아무리 해도 그때 그맛이 나지를 않는다. 시나몬, 초콜릿, 크림 같은 재료를 그때그때 바꿔가며 만들어 보지만 그맛에는 가까워지질 않았다. 혹시 심경의 변화 때문인걸까? 아니면 힘겨웠던 날의 잔재된 기억을 흔히 말하는 '추억 필터'같은 것이 바꿔놓은걸까? 아이에게 물어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남자는 이제 반쯤 포기하고 그냥저냥의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쓴다. 김이 무럭무럭 나던 하얀 머그컵은 어느샌가 차갑게 식었다. 안에 든 블랙커피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반이 넘게 남아있는 것을 보면, 남자의 커피는 오늘도 남자를 만족시키지는 못한 모양이다. 쉼 없이 펜을 움직이던 남자의 손이 드디어 글자를 만들어 내는것을 끝마쳤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의 시선이 하얀 머그컵에가 멈춘다. 얕은 한숨을 쉰 그는 피곤한 듯이 눈을 감았다. 이미 식어버린 커피와는 달리 거리에는 아직도 흰눈이 소복히 내리고 있었다.

" 우와...! " 지구는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유리구슬같은 놀란 아이의 눈동자에 또한 유리세공품같은 지구가 비쳤다. 푸른 물과 또 푸른 나무. 갈색 대지로 가득 차서 터질 것만 같은 부피. 흰 구름이 난폭하게 주변을 휘저으면서도 섭리에 따라 나아간다. 아이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곳에 여러 번 온 나조차도 경이롭다 생각이 드는데. " 너는 항상 이런 데 사는 거야? 좋겠다! " " 좋은 것만은 아니야. " 이 아이는 뭔가 특별했다. 마치 유리같은 아이였다. 매끄러운 유리병 안에 담긴 물보다 더욱 투명한 색. 그러면서도 가득 차 있다. 방금 본 풍경만큼 투명하게 아름답고 경이롭고 사랑스럽다. 지금껏 이 곳에 온 수많은 사람들한테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빛깔이다. 아이가 상상의 수면으로 떠오를 때까지 나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 했다.

그녀가 웃는 그 모습을 볼때마다 나의 삶은 점점 야위어갔다. 이제 나에게 남은 시간은 단 한달. 그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마냥 그녀를 웃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한달 뒤 슬퍼할 모습을 생각하면 죽음따위 생각치도 않았던 그 옛날로 거슬러 가고 싶다. 결국 난, 죽는 날까지 그녀에게 말 한마디 못한 채 그녀를 놓아줄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죽는다는 사실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었으니까.

다시다시, 아씨, 한복 ,벚꽃

한복을 입은 아씨의 미모는 벚꽃을 보러 모여든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웠다. 심지어 벚꽃보다도 아름다워 누군가는 그녀를 보고 반드시 반했음에 틀림없으리라. 하지만 그 여인 오래 전부터 괴고 있었던 사내는 그녀를 멀리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음이라, 그 사내의 마음은 애가 타고 시간이 더해질 수록 간절해졌다. 한 번만, 한 번만 여인과 말을 나눠보고 싶었지만 그 용기가 없어 지켜만 보았음인 사내였다.

앗 홀짝 바뀌어버렸다ㅇ0ㅇ!! 그래서 내가 다시 돌려놨어 잘했지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밤 사이에 온 동네가 하얀 눈으로 덮여있었다. 눈이 오면 항상 옛날 생각이 나고는 한다. '내가 옛날 앨범을 어디에 두었더라.' 다락방을 뒤져보니 눈이 쌓인것처럼 먼지가 쌓여있는 앨범을 찾을 수 있었다. 밖이 내다 보이는 창가에 앉아 앨범을 한장한장 넘겨 보다가 한장의 사진에 시선이 멈췄다. 어릴적 살던 그 동네를 떠나오기 전, 마지막 날 찍은 사진 한장. 정든 동네를 떠나 이사를 하는 날, 그날에도 함박눈이 내렸다. 동네 친구들과 떨어지기 싫어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사진 속 어린 나의 볼에는 눈물자국이 선명하다. 어릴적 친구들은 잘살고 있을까. 가끔 연락을 주고받고는 있지만, 정작 만난건 까마득하다. 오늘따라 그 친구들이 더 보고싶다. / / / 필력 진짜.....

들판위에서 꽃을 꺾고는 널 바라보았다 어쩜, 무뚝뚝한 너도 꽃과 함께 가만 있으니 참 예쁘구나 한 번쯤은 네가 해사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싶었는데. 쓰게 웃으며 꺾은 꽃을 한아름 들고는 네게로 걸어갔다 바람이 조금 찼다 아 이런, 바람까지 차다니 조금 비참할 수도 있겠다 네 곁으로 가 앉으니 네가 조금은 놀란건지 날 쳐다보았다 그런 너를 보고 난 또 싱긋 웃겠지. 실실웃는 내 모습이 보기 싫었나봐 조금 인상을 찌푸리곤 넌 가만 있다가 이내 주머니에서 한 자루, 회전식 연발 권총을 꺼냈지 " 할까? " - ,,, 응 총의 많은 약실에 하나의 탄알을 넣으려 네가 작은 성냥갑에서 탄알을 꺼내었다 긴장되는지 손끝을 덜덜 떠는 네 모습이 퍽 안쓰러워서 그냥 내가 하겠다고 반 강제로 총을 네게서 뺏어와 내가 넣었지만. 그리고 난 이제 탄창을 돌렸어. 자, 이로서 총알의 위치는 알 수 없게 되었어. " 네가 먼저할래? " - ,,, 답이 없이 내 물음만 허공에 떠다녀서 좀 무안했다. 하여간, 쫄보. 쓸데없이 겁은 많아서. 내가 겁이 없는건 아니지만, 난 너보단 용감하다고는 장담할 수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났다. 역시나 대답을 않으니 별수있나, 내가 시작해야지. 내 머리에 총구를 겨누었다. 발끝부터 등허리까지 오싹오싹했다. 망설임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핑- 힘없이 공기가 옆통수에 닿았다. 약간의 안도감. 머리를 정리하곤 네게 총을 건넸다. " 해. " - ... 넌 말없이 총을 받아들고는 너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었다. 뭔가, 그냥 보기가싫어 꺾어다놓은 꽃의 꽃잎을 하나하나 따서, 바람에 날렸다. 하얗게 날리는게 보기도 좋았다. 좀 지나자, 역시 핑-, 하고 공기소리가 났다. 넌 천천히 손을 내려 다시 내게 총을 건넸다. 난 내 무릎위에 올려두었던 꽃을 네 무릎위에 얹어놓고는 총을 어느정도 쓰다듬었다. 그리고 내 머리에 총구를 갔다대었다. 조금의 긴장과 함께 정적 -정적이라고 하기엔 아까부터 나혼자 말만 했으니 딱히 정적이라 할건 없었지만- 이 흘렀다 이내 방아쇠를 잡아당기자 탕 - ! 귀를 후벼파는 소음과 함께 의식이 흐릿해졌다. 아, 결국 난가? 어지러움에 털썩, 옆으로 쓰러지듯 누웠다. 눈을 두어번 깜빡이자 위에서 날 바라보는 네가 보였다. 난 손을 뻗고 네 얼굴을 만지며 말하겠지. " 왜 울어. " 어차피 둘중에 하난 꼭 죽어야했는데. 너하고 난 같이 있을 수가 없는데. 이왕이면 우는거말고 웃는거 보여주지, 나 한번도 네 웃는 모습 본 적 없는 데 ,,, *** " 환자분, 결국 하나의 인격이 남았네요. 그래도 치료가 잘 되서 다행이에요. " [ 위에 등장하는 화자와, ' 너 ' 는 그냥 한 사람의 인격들. 다중인격인 사람을 치료하기위해 두 인격을 만나게 한 정신과의사. 그 인격들은 왜인지 인격이면서도 서로를 사랑했지만, 그래도 치료를 진행하여(위에선 러시안룰렛 게임이 치료 진행을 나타냄) 결국 하나가 죽게된다는,,, 아 설명 뭔가 엄청 엉성하네 하 어려워 아이덴티티에서 약간의 영감을 받아따,, ]

창문 사이로 달빛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그런 달빛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치마 자락이 흘러들어오는 달빛에 담궈졌다. 그녀는 창문에 다가가, 조심히 창살을 밀었다. 새벽에 떠있는 외로운 달 하나. "... 또 다시 외톨이야" 그녀는 벽에 살짝 기댔다. 눈에서는 은하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그녀의 머리카락은 불안정하게 휘날리기 시작했다. 창가운 침대 시트가 점점 은하수에 물들기 시작했다. 항상 외롭고, 추웠다. 주위의 별들은 그녀를 조롱했다. 새벽 하늘에는 점점 빛을 잃어가는 외롭고 아름다운 별 하나를 위한 자리를 더 이상 주지 않았다. "싫어... 추워..." 그녀는 다시 창문을 굳게 닫고는, 커튼을 쳤다. 마치, 다시는 열어주지 않을 것처럼, 단단하게. [조금 해석을 하자면 대인관계에 있어서 지친 주인공을 포함한 사람들을 별에 비유해봤어! 그리고 달을 '그녀'에 있어서 조금의 희망이지만 주인공은 달을 거부하고 그 미련조차 창문과 커튼으로 막은거야!]

"아." 비 내린다. 뒷말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빗소리에 작게 먹혀들었다. 먹구름이 내내 껴있다싶더니, 밤이 깊어오자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산도 없는데 이걸 어쩐담. 부를 사람도 없고 이 깊은 숲까지 누가 와줄 리도 만무했다. 비 좀 내린다고 공기가 그새 싸늘해지기 시작한 탓에 얇은 옷차림 위로 찬 공기가 스몄다. 내가 정말 버스만 오면 빨리 여기서 떠나고 만다. 추위를 한 번 자각하자 짜증이 당연할 정도로 몸이 떨리고 있었다. 숲 한가운데 뻥 뚫린 도로 중간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이라니. 위치 선정도 참 지지리 운이 없었다. 버스는 언제쯤 오려나 한참 목을 빼고 있던 참이다. 도로 저쪽에서 타박타박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제법 두꺼운 코트를 걸치고 하늘하늘 예쁜 원피스에 단화를 신은 여자였다. 음, 하기사 아침에는 제법 따뜻했어도 밤이 되니 춥긴 하더랬다. 지금 날씨에 맞지 않는 서로서로의 옷차림을 살펴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 여자의 표정은 길고 검은 생머리와 우산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금 뻘쭘해졌다. 시간이 좀 더 흘렀다. 저 여자는 우산을 든 채 버스 표지판 아래에 서있었다. 나는 내 옆에 앉아도 괜찮다는 의미로 웃으며 눈짓했지만, 여자는 묵묵부답으로 그 아래에 계속해서 서있을 뿐이었다.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피부가 창백했다. 그러고보니 저 여자는 어디서 온 걸까? 여자가 걸어온 쪽에 작은 마을이 있기는 했지만 이 정류장과는 제법 떨어진 곳이었다. 걸어오는데 제법 힘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 바는 아니었다. 난 여전히 그 표지판 아래 우산을 받치고 서있는 여자를 무시하기로 했다. 결코 뻘쭘하거나 무서워서는 아니었다. 부우우웅. 멀리서 버스 오는 소리와 함께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고개를 들어 흘끗 버스를 살피더니,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자기가 탈 버스가 아니므로 당연한 행동이었다. 내 앞에 버스가 정차했다. 나는 저 여자를 무시하기로 했으므로 버스에 말없이 올라탔다. 푹신한 좌석에 앉은 나는 여전히 창백한 낯으로 서있는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후후, 조금 웃음이 나왔다. 왜 나는 겨울이 서서히 찾아오고 있는 가을 날씨에 얇은 반팔티와 반바지 차림일까? 심지어 신발조차 신고있지 않았다. 정류장 뒤쪽, 숲의 아주 깊은 곳까지 들어가면 작은 봉분이 있다. 급하게 만들어진 무덤같은 모양새다. 뭐, 사실 묫자리는 맞다. 내가 묻혀있기 때문이다. 단지 제대로 된 무덤이 아닐 뿐이었다.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흙무덤. 그냥 암매장이지. 전애인 새끼 밥은 먹고 다니나 모르겠다. 문득 내가 비치지 않는 창 너머로 겁에 질린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너무 무서워하지 말라는 의미로 손을 흔들었으나 여자는 더 창백해질 뿐이었다. 이젠 울 것 같았다. 밀려오는 무안함에 나는 창가 자리에서 저 사람이 보이지 않는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목에 로프가 감겨있는 청년의 옆이었다.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깨진 머리 탓에 눈 위로 자꾸만 흐르는 피가 거슬렸으나 이제는 신경쓸 것도 없었다. 저 여자는 무사히 귀가했으면 했다. 버스는 그저 조용히 출발했다. 이젠 떠날 시간이었다.

203X년 2월 3일 새벽 2시 36분 전쟁은 아직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공군이 되지 말 걸! (글자를 지운 흔적) 아니다. 역시 난 공군 체질이란 말이지. 이런 와중에도 드는 오만가지 생각이 순 공군과 나라에 돤련된거여서야 원. 낮 6시 방금 전투기에 탑승했다. 이제 곧 비행해야하니 일단 일기 적는건 나중에 해야겠군. 그렇다고 자율주행으로 맡길만한 상황도 아니고. 아침달이 보인다. 응원해주러 온 걸까? 아쉽게도 그럴리야 없지만. 오후 4시 52분 동료가 죽었다. 내 이럴줄 알았지. 저놈은 항상 영웅이 되려고 한다니까. 그리고 결국 진정한 영웅이 되었구나. (여러저러 말을 적었다 지운 흔적) 오늘은 일기를 더 적을 기분이 아니다. 여기까지 적어야겠다. ... 203X 3월 21일 오전 8시 5분 드디어 전쟁이 끝났음이 선포되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전투에선 졌지만 전쟁에선 이겼다. 아마 미래의 역사학자들이 눈여겨 보게 되지 않을까? 그렇지 못하더라도 내 일기 만큼은 많은 관심을 보여주면 좋겠다. 내 일기가 안네의 일기 급이 되길 바라는 건 아니다. 낮 1시 33분 전사자들의 추모식이 열렸다. 내 친구도 있었다. 스스로가 영웅이 되길 자처하며 진짜 영웅이 된 녀석. 일기를 들고 추모식에 찾아가기로 했다. 낮 2시 추모식에 도착했다. 의외로 먼 거리는 아니었다. 내 친구에 대한 언급이 들려온다. 나는 말없이 자리에 찾아갔다. (시간을 적었다 지운 흔적) 빼곡히 놓여있는 영정이 눈에 보인다. 얼마나 많은 전사자가 있는지는 나도 잘 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들 모두에게 흘려줄 눈물이 없었다. 안타까운 이야기다. 이 곳은 어째 고요하다. 엉엉 우는 추태를 보이는 이는 없다. 다들 입을 꾹 닫고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내고 있을 뿐. 7시 30분 집이다. 추모식이 끝난지는 좀 됐다. 허무하다. 내 친구의 행적을 크게 느끼는건 당연히 나 뿐일텐데. 괜시레 허무하다. 내일이 오면 달라질까? 눈이나 감아야겠다.

야야, 일어나! 눈을 뜨자 폐허가 되버린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어디지? 난 분명 우리집 까망이랑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갑자기 어지럽더니 여기란 말이지. 왜 여기에 있는거야? 너 인간이야? 응? 당연히 인간이지. 근데 넌... 나에게 말을 건 남자는 개의 꼬리와 귀를 달고 있었다. 내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남자는 자신이 리트리버 수인이라고 했다. 수인? 여기 지구 아니야? 지구 맞아. 정확히는 99번째 멸망하고 있는 지구야. 남자는 21번째 멸망에 태어나 78번의 멸망을 보았다고 했다. 마지막 예언만을 바라보며 주변인들이 죽는 것을 견디며 날 기다렸다고 했다. 날? 왜? 예언의 인간이니까. 여긴 인간이 없어. 수인뿐이지. 네가 여기로 온 건 예언의 때가 왔기 때문이야. 예언이라는게 뭔데? 그건...여길 모험하다보면 알게 될거야. 네가 어떤존재인지, 무엇을 할 수 았는지, 예언이 무엇인지 전부 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탁탁 털었다. 먼지가 흩어지고 내밀어진 손을 보았다. 네 가치를 여기서 증명해줄게.

민들레 베개 흰비둘기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보호받고 싶은 시간이 있다. 나에겐 새벽 2시가 특히 그러하였다. 정권의 무능을 논하며 술파티를 벌이던 대학 시절 이후, 새벽 2시를 뜬 눈으로 지새어 보지 않았다. 그러다 "아빠, 아빠!" 하고 부르는 소리에 깨어난 새로운 나를 받아들이기는 버거우리만치 낯설었다. 파열된 꿈의 틈새로 딸이 온순한 눈동자를 보인다. 졸음이 내린 눈꺼풀과 바닥에 머리를 박은 딸의 베개를 보고 나면 사태를 알아채야 한다. 이런 때에 한바탕 웃으며 신나게 매달릴 그네가 되어주는 것은 온전히 아버지의 몫이다. 이게 누구야, 나는 딸의, 어머니를 쏙 빼어 닮은 흰 살갗에 느껴지는 감동과, 뿌연 그리움 같은 것에 백구라는 별명을 불러 중화시키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 된다. 우리 백구 왔니? 그러면 딸은 혈연관계에 존재하는 어떤 불문율에 따라 내게 매달린다. 내 귀여운 포도알, 종기, 바다표범... 우리는 피부를 부비적거리며, 인간은 홀로 살아가고 죽어가는 것이라던 어느 종교의 가르침을 필사적으로 망각한다. 어떤 일이 있어 왔니? 무서운 꿈을 꿨니? 딸은 고개를 젓는 모양새로 내게 알린다. 무슨 일로 왔는지 맞춰보아요. 이제부터는 밤중의 스무고개가 시작된다. 어디가 아팠니? (아니요.) 꿈이 짧아서 잠이 깼니? (아니요.) 옳지, 목이 말랐구나! (틀렸어요.) 그럼 우리 백구가 왜 아빠를 찾아왔을까? 그러자 딸은 내 둘째 심장처럼 가슴에 파고든다. 아빠. 비밀 알려줄게요. 딸이 속살거리는 소리에는 누구도 잠을 깨지 않는다. 요정이 다녀갔어요. 민들레 요정이요.

빌어먹을. 작게 욕을 중얼거리곤 헝클어진 머리를 박박 긁어댔다. 수첩에 적힌 문장들은 찢겨져 바닥을 뒹굴게 되었다. 참으로 짜증나는 일이다. 무엇을 써도, 전에 쓰던 것만큼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실력은 오히려 갈수록 퇴화되는 것만 같다. ...거지같은 일이다. 후우, 한숨을 쉬곤 옷가지를 챙겼다. 숨 좀 돌리고 오면 괜찮아 지겠지. 구겨진 신발에 발을 넣고 틱틱, 불량한 태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끼익- 낡은 철제문이 열리는 소리가 귓가에 맺힌다. 곧이어 바다의 내음이 나를 반긴다. 맞다, 여기 바닷가지. ...글을 쓰기 위해 영감을 찾는다고, 나름 괜찮은 직장을 때려치고 이곳저곳 돌아다닌지 벌써 반 년. 영감은 개뿔, 그것 찾기전에 돈이 다 거덜나게 생겼다. 하루에 컵라면 하나 먹기도 간당간당할 지경이다. 와, 잘나가는 인생을 살겠다던 과거와는 거리가 멀다. 어쩌다 이렇게 구차한 인간이 됬는지. 체념한 눈으로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는 상상하던것과 달리 깨끗하고 빛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의 내꼴처럼! 뚜벅뚜벅 바다를 향해 걸어가다, 쓰레기에 걸려 넘어져 버렸다. ...운 거지같네, 진짜. 꼴사납게 모래밭에 머리박고 넘어진 성인이라니, 창피하기 그지 없다. 그저 모든걸 포기하고픈 충동에 아예 자세를 바꿔 하늘을 바라보며 모래에 몸을 맡긴다. 어쩌다 이렇게 됬지? 분명 처음은 나쁘지 않았다. 비록 짜증나는 집안 환경이 있었지만, 내힘으로 나름 좋은 대학도 갔었고. 텃세 부리는 말종들이 있었지만 살살 눈치보며 인간관계도 구축했고. 아등바등 기어서 장학금도 타냈고! ...아니, 생각해보니 일단 다 거지같은 일만 있었네? 벌떡 일어나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하, 주변이 뭔 상관이야 나만 있음 됬던거였...네? 순간 떠오른 간단한 사실이 시야를 가리던 뿌연 안개를 걷어주었다. 그순간, 빌어먹게도 간절히 찾아다니던 영감이 나타난 것 같다. 실실쪼개며 자리를 박차고 숙소로 잡은 낡은 민박집을 향해 달려간다. 더러운 진흙탕 속에도 연꽃은 피어, 그렇지?

붉은 립스틱을 짙게 바른 그녀는 마침내 바다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자신의 발을 가주던 하이힐을 벗어버렸다. 한 평생, 바다는 사진이나 멀리에서만 볼 줄 알았다. 처음으로 맛 본 자유는 정말이지 달콤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뒤를 잠시 돌아본 그녀는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는 자신을 잡으러 오는 것들에게 약간의 미소를 보이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기 시작했다. 바닷물의 차가움과 진해지는 비린내, 소금내에 몸을 맡기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마침내,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 마저 삼켜버린 바다는 잠깐의 그녀를 애도했고 그녀를 쫓아왔던 현실이 도착하자 바다는 침묵을 지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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