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4년제 지방대 학생이고 졸업까지 이제 막학기야
근데 나 졸업 못할 것 같아 아니 못해 학교를 안 나가서
졸업 요건을 충족 못했거든 학점도 부족하고 당장 한 달도 안 남은 졸업시험도 99.99%로 떨어질 만큼 학교를 열심히 안 다녔어 학점 채워도 시험 통과 못하면 졸업 유예라더라
사실 나 신입생 OT부터 학교에 적응을 못 했어
내 본가는 수도권인데 이름도 처음 들어본 지역 안에 혼자라는 생각에 그 자체로 너무 무섭더라
수도권부심 그런게 아니고 나 평생 아랫지방에 가본 적이 없거든 혼자 거기서 4년을 보내야 한다는게 무서웠어
OT날 첫차 타고 학교에 갔는데도 시간 안에 도착 못했고 OT 끝나고 뒷풀이도 안 가고 바로 집에 가려는데 아는 사람도 없고 길도 모르겠고 휴대폰 배터리도 없고 그 상황이 너무 두려워서 학교 앞 상가 화장실에서 혼자 엉엉 울다가 겨우 막차 타고 집에 도착하니까 밤 12시더라
이게 트라우마가 됐는지 본가에서 학교로 내려가는 것 자체가 너무 지옥 같았어
그래도 내가 배우고 싶었던 전공이었기 때문에
이 꽉 깨물고 4년만 버티자 하고 1학년을 시작했어
1학년 때는 기숙사를 썼는데 같은 과 친구들 중에 기숙사 사는 친구들이랑 학교도 같이 다니고 술도 마시러 나가고 잘 지냈거든 근데 이 친구들이랑 너무 안 맞는 거야
그래서 거리를 좀 두려고 했지
알고 보니 그 친구들은 이미 날 배척하고 있었더라
그래서 난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더 지옥 같은 생활을 했어 그러다 다시 새로 사귄 친구들이 지금까지 그나마 제일 친한 친구들이야
사실 이 친구들도 그렇게 친한 건지는 잘 모르겠어
그냥 조별과제 같이 하고.. 뭐 그런 정도? 방학 때나 학교 안 나갈 땐 연락 1도 안 해
아무튼 학교 자체에 적응을 못하기도 하고 정이 안 가서
1학년 때부터 학교를 내 마음대로 다녔던 것 같아
자퇴 생각도 했는데 우리 엄마 생각하니까 속상하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괜찮은 척 하고 어영부영 넘기며
여지껏 미뤄왔던게 더 독이 된 것 같아
그래서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지금 4학년 막학긴데 말이야.. 진짜 한심하지?
아직도 우리 가족은 내가 학교 열심히 잘 다니고 친구들이랑 여기저기 놀러도 잘 다니는 줄 알거든
근데 나 정말 4년 동안 잘 지낸 적이 없어
어디 하나 마음 붙일 곳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우울함과 무기력함이 날 집어 삼킬수록 난 내 자취방 침대 밖으로 벗어나기가 무서워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내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없어
과제? 안 내고 점수 안 받으면 되지 뭐..
학교 가기 싫다... 그냥 안 가지 뭐..
시험? 수업도 안 나갔고 공부한 것도 없는데 안 가지 뭐..
어차피 내가 학교 안 나가도 연락 오는 친구들 없거든
내가 밖에 나갈 때 음침하고 우울하고 폐인처럼 다니는게 아니라 평범한 여대생들처럼 화장 예쁘게 하고 날씨 좋을 땐 치마도 입고 원피스도 입고 잘 꾸미면서 밝은 척 다니기 때문에 아무도 내가 이렇게 사는지 몰라
내 자취방엔 쓰레기와 먼지들 널부러진 빨래들이
점점 쌓여가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휴대폰 불빛 찾아 날아든 날파리들이 웽웽거리고 있다.
종일 침대 위에서 멍때리면서 시간 낭비하고 있어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잠도 깊게 못 자고
어쩌다 잠에 들면 화들짝 놀라면서 깨버려
이렇게 깨고 나면 한동안 심장이 벌렁벌렁거리고
몸이 부들부들 덜덜 떨리면서 오한이 들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해
너무 우울하고 무기력하다. 나도 잘 지내고 싶다.
나 학교는 어떻게 하지?
집에다가는 어떻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사실대로 털어놓기 겁난다.
난 항상 예쁘고 착하고 성실하고 공부 잘하는 첫째였거든
첫째로서 그래야만 했고 집에 실망을 주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너무 크다.
내가 너무 어린 나이에 아빠가 엄마를 많이 속상하게 한다는 걸 알아버려서 나랑 내 동생은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것 같다.
이혼 가정은 아니야 아빠랑 따로 산 지 10년 넘었고 연락 자주 해 그냥 같이 안 사는 것 뿐이야
내가 마음에 병이 걸려 정신 못차리고 지방대 다니게 되어 내 동생은 집에 엄마 혼자 살게 하기 싫어서 죽도록 공부해 수도권 대학 갔다.
내 짐을 동생한테 떠넘긴 것 같아 너무 미안해
지금 내가 이렇게 사는 걸 우리 엄마가 알면
우리 엄마 너무 속상하겠지 그러면 안 되는데
울 엄마 진짜 힘들게 살았는데
우리 엄마도 여자고 엄마도 엄마라는 걸 처음 해보잖아
내가 효도해야 되는데 난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학교도 제대로 안 다니는데 바쁘단 핑계로 이번 추석엔 집에도 안 올라갔다. 나도 울 엄마랑 동생 보고 싶은데
도저히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 죽기 전에 우리 가족 걱정 없이 살게 할 수 있을까
네 식구 둘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화목하게
돼지김치찌개에 달걀말이 해서 밥 한 끼 먹고 싶다.
이모네 가족처럼 가족끼리 여행도 가고 싶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렇게 흘러흘러 엄마 아빠 다 늙어 돌아가시면 난 어떻게 살지? 너무 고생해서 병 걸려 아프진 않겠지
이런 걱정을 하면서도 정신 못차리는 내 자신이 너무 혐오스럽다.
걱정 마 얘들아 너무 무기력하면 자살하기도 귀찮거든
정말 나도 너무 잘 살아보고 싶다 진짜로
괜찮은 척 아니고 진짜 괜찮게 살고 싶다.
당장 제일 큰 고민은 학교 졸업이야 후...
일단은 휴학 신청하고 지긋지긋한 이곳에서 벗어나려고 해
나중에 다시 학교를 다니던 자퇴를 하던
지금은 빨리 여길 떠나서 집에 가고 싶다.
얘들아 나 잘 살 수 있겠지 그랬음 좋겠다.
이름없음2018/10/18 15:49:39ID : WkmpU1vg0nv
너무 맘아프다..
이름없음2018/10/18 16:53:13ID : fgqrBz9ii2l
학교 안에 상담센터 있을텐데 꼭 받아보는걸 추천해. 스레주 등록금으로 돌아가는 학교인데 그거라도 누려야지. 진로워크샵, 대인관계 워크샵 등 학교에서 제공해주는거 최대한 이용해보려고 해봐...상담이 절실해보이니 꼭 받아보길 바래.
휴학하고 진지하게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 고민해보거나 여행 등 네가 정말로 필요하다고 느끼는걸 해보는건 어때? 우리학교는 중간고사 치기 전까진 등록휴학 가능한데, 아직 안 늦었으면 한번 고려해봐. 나도 학교 다니면서 대인관계, 성적, 등록금, 진로에 대한 부담감이 정말 큰데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중이야
누군가에게 도움이라도 요청할 힘이라도 났으면 좋겠어.
이름없음2018/10/18 19:53:33ID : 5WmMkpVfatx
학교를 다시 시작할수있어?그러면 최대한 앞당겨서 빨리 돌아가자.요번에는 그냥 운이 나빴던거지. 다시 제대로 해봐
이름없음2018/10/18 20:04:30ID : imE7hvDz862
4년이나 버틴게 대견하다. 힘들었겠다
진작 부모님한테 솔직하게 말하고 휴학이라도 하고
본가가서 힐링좀 하고 안정 찾았으면 좋았을텐데
조금 안타깝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