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날 견디지 못했다. 내가 고여선 썩어들어가는 걸 넌 한심하게 여겼을 거라고, 막연히 추측해 본다. 알고 있음에도 그랬다. 이건 확신이며, 너무도 뚜렷한 칼날이다. 인정하는 순간 무너지는 것은 나다. 그것을 알기에 오늘도 머문다. 나에 대해서. 너에 대해서. 너와 내가 함께했던 시간에, 별것 아니었던 단절에 대해서. 모든 것은 결국 나를 위해서. 이 조각들은 그래. 너이며, 나다.

동아리 회지 냈던 조각글 모음으로 시작해서, 땡기면 새로 쓰고 가기도 하는 스레. 글들은 서로 이어지거나 이어지지 않는다. 순서는 불규칙. 스레딕이나 다른 곳에서 봤던 글들이 있을 수도 있어. 글에 대한 질문과 피드백은 언제나 대환영! 난입 환영! 그 밖의 질문들도 오케이. 따봉 눌러주고 가면 사랑한다. 아니어도 사랑한다. 잘 부탁해!

마음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해도, 마음 없이 할 수 있는 일 역시 없으니까. 그저 믿는 것만으로도 어떻게든 된다고, 괜찮을 거라고. 그대에겐 아침이 올 것이라고. 그런 당신을 부정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빛에 타버릴 것만 같아서. 차라리 불태워 달라 울부짖은 날이 있었고, 당신은 그조차 받아들였지만. 동경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알았는데, 알았기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어 죽어가던 날이었고, 하늘은 언제까지고 맑았을 뿐 절대 흐드러지지 않아서. 정말이지, 사라지고 싶은 날이었다.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죽어도 상관없다는 말도, 외면한 것도 전부 상처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살지 않아도 괜찮아. 어차피 남는 건 고통뿐이야. 그러니 고개를 돌리자, 귀를 막자. 언제까지고 도태되어 있자. 누가 뭐라든 신경쓰지 않아. 난 아무렇지도 않아. 어차피 삶이란 건 전부 거짓부렁이야. 태어난 건 그저 생겨났기 때문이고, 마음은 고독의 장난일 뿐이니까. 그딴 것에 놀아나고 있다는 게 기분 나쁘고, 생명 따위를 찬양하는 종자들이 역겨워서.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해 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거야. 변하지 않을 거야. 변해서는 안 되고, 이 알을 깨부술 배짱 따윈 없으니까. 난 내 세계에서 나갈 수 없어. 영원히 갇혀 있을 거야. 이 안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고, 들이지 않을 거야. 더 이상 살아 있을 자신이 없어. 밖의 바람을 견딜 정도로 이 마음은 강하지 않아. 이대로 죽어버려도 괜찮아. 정말로 상관없어. 그러니까, 어서 박살내 줘.

순애, 에로스, 자비, 집착,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무언가.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게 우습고, 단지 몇 줄의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마음도 아니지만, 네가 나에게 주는 마음을 말하자면 그랬다. 나를 좀 더 괴롭게 만들어 줘. 그게 당신이 원하던 거잖아. 그리 말하며 함께 떨어지려던 날들을 당신은 말없이 발밑에 묻어버렸다. 그런 갈망은 아플 뿐이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하고 난 답했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말하자면 자포자기한 얼굴로 말을 토해내면 너는 언제나 내게로 왔다. 그래, 어쩌면 그런 걸 원했을 뿐이었던지도 모르겠다. 품에 안겨 울부짖는 너의 눈 속에 너 자신은 없었다. 나의 절망을 비추다 못한 동공이 탁하게 물들어 스러지면, 바로 그 순간에 내가 살고 있었다. 너를 갉아먹으며 나는 살아가고 있었다.

어제보다 오늘이 나을 리 없고, 오늘과 내일은 뭐가 다르죠? 그걸 찾지 못한다면 우린 모두 죽어버릴 수밖에 없어요.

안 돼, 가지 마. 얼어붙은 공기가 대답을 대신했다. 붙잡은 소맷자락과 하염없이 쌓이는 눈, 그 모든 것이 만들어 낸 침묵 속에 우리는 있었다.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전할 수 있는 말은 없다. 토해내지도 못할 열을 품고, 홀로 바스라져갈 뿐인 날들을 안은 채 죽어버리려 했다. 밀려오는 통증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데, 그렇다고 어떻게든 부수어버릴 수 있냐, 일어설 수 있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나마도 견디는 것만은 어느 정도 하는 줄 알았는데 큰 착각이었다. 고작 너 같은 것에게 녹아들어가 구원을 바랐다. 눈발이 찼다. 울기 좋은 날이었다. 미안해, 좋아했어. 그런 고백을 목 뒤로 삼켰다.

어떻게든 무너지려는 본성이 발목을 잡았다. 낮은 진작에 종말을 맞았고, 남은 것은 끝없는 어둠뿐이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어서. 막혀오는 숨에 터질 듯한 고동에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어서, 급기야는 쓰러지고야 말았다. 엉망이다. 당신은 내 발치에 서서 무엇을 봤을까. 우두커니 선 당신의 모습이 푸른 나무를 닮은 듯 해서, 당신과 나의 그늘이 겹쳐 늘어진 광경을 믿을 수가 없어서. 나는 그렇게라도 당신과 함께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미안해, 동경했어. 그런 말조차도 내뱉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체온이 그리웠다. 공허해서, 베이는 듯 차가워서 울고 싶었다. 그렇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아서, 왜 그런지 억지로 생각한 후에야 조금이나마 울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텅 비어서가 아닌 걸. 그저 견딜 수 없어서야. 흉부를 조이는 통증이 가시지 않는다. 안기고 싶어. 안겨서 울고 싶어. 사랑받고 싶어. 누군가 이름을 불러 주길 바라면서, 정작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주제에. 내가 얻은 모든 너는 그저 잔상일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외로운 게 무서워. 그럼에도 다가가는 건 무리라고, 가슴에 잦아드는 공포가 말하고 있다. 이 고독은 근본 없는 구멍이다. 언제부터인지 막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 안으로 너를 뛰어들게 해서, 산산히 부숴 가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너의 모든 것을 아는 것도, 으스러뜨리는 것도 나였으면 좋을 텐데. 너를 끌어안아 온전히 내 것이라 칭할 수 있도록, 너를 조각내고 싶었다. 그 예쁜 눈알이 데룩데룩 굴러 날 바라볼 수 있게끔, 너를 이 안으로 뛰어들게 해서, 이 칠흑으로 감싸서. 그렇게 나만을 봐 줬으면 좋을 텐데. 더 이상 외롭지 않으면 좋을 텐데. 사랑과 함께 깊어져가는 밤이다. 언제까지고 이 밤이 끝나지 않도록, 아침을 일깨울 네가 밤하늘로 추락하도록 울부짖을 뿐이다.

언젠가는 이 순간을 그리워할 날들이 올 지도 모르죠. 하지만 당신이 그런다면 전 슬플 거예요. 끝없이 과거를 동경한다면 괴로워질 뿐이니까. 인간은 동경의 생물이라, 무언가를 바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어요. 그러니 미래를 바라요. 돌아올 수 없는 순간에 붙들려 살아가지 말아요. 내가 있어줄 테니까. 같이 나아갈 테니까, 그러니까. 살아줘요.

마음이 널을 뛰어. 네가 웃어 줄 때마다 너와 얘기할 때마다 너무나도 기쁘고 사랑스러운데, 그 모든 게 나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떠올릴 때마다 슬퍼질 뿐이야. 그렇지만 네가 좋아서,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등불로 달려드는 불나방의 최후를, 넌 지켜봐 주기나 할까. 네 앞에서라면 죽어도 좋을 텐데. 무너지는 너조차 사랑할 수 있는 날 바라봐 줘. 안아 줘. 사랑해 줘. 이건 그저 바보같은 욕심일까. 난 오늘도 널 보고 웃어.

차라리 영영 잠들고 싶다는 너에게 나는 답한다. 이제 눈을 감아도 좋다고. 네가 무너진다. 쌀쌀한 밤이다.

마음 따위는 그냥 죽어 버리라지.

이젠 뭐든 상관없지 않을까. 당신이 있든 없든, 난 살아갈 수 있어. 그렇다고 믿고 싶어 - 그러니 믿을게. 난 강해진 거야. 끊어내고, 울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흘러내리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됐어. 고마워. 어떻게든 버텨볼 테니까, 언젠가는 돌아와 줘. 믿고 있을게.

심장이 뛸 때마다 아파. 박동이 전신을 치고 가. 어떤 날은 숨이 막히고, 또 다른 날은 온 몸이 떨려 - 그런 삶을 살아왔어. 하루하루 마음을 움켜쥐며, 안 된다고, 아직 살아야 한다고 외치면서. 난 지금도 서 있어. 어떻게든 살아가고, 또 다시 죽고, 미워하고, 울부짖으면서 걸어나가고 있으니까. 작별인사를 하자. 안녕, 사랑했어.

사랑 너의 우는 얼굴을 보고 말았다. 그 순간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단지 말로 전하기엔 세상이 너무 크고 넓어서. 너무 많은 것들이 이 안에 뒤섞여 있어. 네가 그걸 파헤친다 해도 거기 있는 건 그저 시커먼 상념이고, 물든다면 그걸로 끝이야. 같이 썩어가겠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짙고 물렁한 무형無形으로 향하는 거야. 그건 인격체로서의 멸망을 뜻해. 그 곳은 출구가 없는 터널이자, 거인의 위장이야. 흘러내리는 산을 어찌할 수도 없어 무너지고 녹아들어갈 게 뻔해. 그래서는 안이나 밖이나 다를 게 없어. 없다는 개념조차 사라져. 우리는 대부분 그런 어둠을 끌어안고 있지. 역설적이게도, 난 그 칠흑이 너라고 생각해. 우습지? 같잖아, 정말.

드러내지 않으면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조금 외롭기만 하면 편해질 수 있는데, 세상엔 멍청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 고독에 저항하는 척 발목을 묶이는 족속들이 한심해 꼴도 보기 싫었고, 누구와 같이 있어도 자신은 자신으로밖에 있을 수 없다. 결국 뭘 해도 마지막엔 혼자다. 사랑은 그저 왜곡된 인식의 정수에 불과하며, 호르몬의 장난일 뿐이다. 관계에서의 쾌감을 미끼로 인류는 명맥을 이어 왔고, 생존 본능은 아직도 인간들의 뇌리에 남아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흔히 마음이라 불렀다. 그런 구시대의 찌꺼기들에 삶을 맡기는 짓은 바보같지 않은가. 살아남을 이유도 뭣도 없는 자에게 사랑은 그저 성가실 뿐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시대였다.

사랑이니 뭐니, 얄팍해. 왜 그리도 서로를 묶지 못해 안달이지. 너는 너, 나는 나. 그 이상을 바라는 건 이해할 수 없어. 우리는 우리가 되어 서로를 가두고, 너도 나도 창살에 질식당해 스러져 갈 뿐인 것을. 스스로를 새장에 밀어넣는 멍청이들을 지켜봤어. 고통받는 주제에 그게 사랑이라고, 그것도 운명이라고 웃었어. 너도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사랑할 수 있을 거야. 미안해, 무리였어. 사랑과 행복은 전혀 다른 말이고, 다들 서로를 억지로 이어 놓고는 행복하다고 말해. 있지도 않은 보석을 껴안고 죽어가. 웃으면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떠났어. 미소 지은 얼굴로 꽃을 채운 유리관에 실려서, 구해줄 사람을 기다리는 듯이. 사실 그런 사람은 어디에도 없는데. 누구나 자신에게는 자신 뿐인데, 아무도 그걸 모르고 있어. 구원자는 없어, 없다고. 어디에도,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없어. 인간에게 희망은 없어. 우리는 모두 죽어가. 나에게 사랑은 없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난 널 사랑할 수 없어. 네가 죽은 지금은 더더욱. 언제까지고 널 사랑할 일은 없을 거야. 그렇게 정했어. 난 살아 있어. 네가 준 보석은 아직도 그대로야. 하지만 난 이걸 볼 수도 껴안을 수도 없어.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거야. 넌 너로서, 난 나로서, 우리는 우리로써 최선을 다했어. 이제 됐어. 뭐든 상관 없어. 정말이야. 미안해. 언제까지고 미안해. 이 말을 전하고 싶었어. 행복했어.

나, 그래도 조금씩 따뜻해져가는 걸지도 몰라. 잠들 수 있는 밤을 받았어. 고마워.

아, 그런가. 그냥 안아줬으면 했어요. 심장이 맞닿길 원했어요. 아직 숨을 쉬고 있다고,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 그렇게 살아 있고 싶었어요. 미안해요, 좋아했어요. 미안해요. 이별을 고하고 종말을 맞이하고, 그런 절망이 당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단 사실을 알아서, 그래서 말할 수 없었어요. 마음 같은 건 꺾인 지 오래일 텐데, 빈자리에 환상통이 잦아들어 견딜 수 없어요. 부디 제게 끝을 고해 주세요. 그 속죄로 이 공허를 채워 주세요. 고작 이것뿐인 사랑이라 미안해요. 언제까지고 잊지 않을 테니까, 그냥 한 번만 더 웃어 주세요.

수천 번은 더 올려다봤던 천장이 시야를 채웠다. 어쩐지 머릿속이 공허해져서 잠시 눈을 감았다. 목울대 아래로 시큰한 감각이 올라왔다. 그저 거기까지였다. 우는 법 따윈 잊어버린 지 오래였고,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도 않는다. 알 수 없어야만 한다고 믿고 있었다. 깊게 생각해봤자다. 그저 피상을 좆고 핥으며 연명해온 세월은 길고도 짧았다. 그간 쌓아올린 겉껍질이 굳어 자신이 되었고, 원래 이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어떤 것을 바랐는지, 그리던 미래는 어땠는지에 관한 모든 것을 나는 잊었다. 고통을 느끼는 법도, 우는 법도 모른다.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후회 역시도 잊었기에 없다. 아무것도 없다. 이 곳에 앉아 있는 나는 그저 껍데기일 뿐이었다. 그리 생각하고 나면 속에서 무언가가 굳어 차분해졌다. 아프지 않냐고, 괜찮냐고 물어봐줄 사람도 여기엔 없다. 언덕에의 고립을 택한 것은 정말로 멋진 선택이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어차피 똑같은 나날들이다. 앞으로 달라질 일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다. 천천히 눈을 떴다. 형광등이 성가실 정도로 밝게 느껴졌다. 기분 나쁜 빛이었다. 소파에 미끄러지듯 몸을 눕혔다. 고통스러울 바에야 눈이 머는 편이 낫다. 애초부터 빛을 알아차려서는 안 되는 거야, 형. 그 애의 모습이 시야 한 구석에 어른거렸다. 역시, 오늘도 그다지 살기 좋은 날은 아니었다. 몸이 떨리고, 시야가 흐릿해진다. 아직까지도 얼지 않고 버티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고작 이 정도론 절망 축에도 안 든다는 것입니까, 신이시여. 정말 존재하기는 하십니까. 있다면 어찌 인간에게 이런 시련을 주셨습니까. 그런 것이 당신의 사랑이라면 필요 없으니 거둬들이십시오. 자신이 자신이길 원했던 세월에 배신당했기에, 뚫린 구멍이 메워지지 않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차라리 정말로 얼어버리길 원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곱씹을 것이 절망뿐이어서, 소파에 누운 채로 가라앉아갔다. 오늘 밤도 끝나지 않을 듯 했다. 나는 그대로 몸을 웅크린 채 잠들어버렸다.

날 잊어버려도 너무 슬퍼하지는 마. 네 공백에서 살아갈게.

고통 따위를 동경해선 안 되는 거였다.

환상을 본다. 오롯이 무너진 성과, 부서진 놀이기구들과 깨진 조명, 쓸려 나간 폭발의 흔적을 본다. 한때는 찬란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이곳은 최소한 무너질 가치가 있었을 터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찾은 사람에게 어떤 의미도 줄 수 없잖은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어서 역겨울 정도다. 세상 어느 폐허도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거늘, 알면서도 착각을 반복하는 괴상한 본성을 타고났다. 그게 인간이잖아. 합리화의 조각들이 공중을 부유한다. 성은 그 자리를 지켰다. 닳고 닳은 회갈색 벽이 쓸쓸했다. 부서진 오르골 하나가 굴러다녔다. 괜히 집어들어 태엽을 돌리고, 세상이 돌아가고. 관람차가 빛을 발하며 역주행했다. 밤이 도래했다. 회전목마에서 말 두어 마리가 울고, 롤러코스터가 강으로 추락한다. 이내 레일이 부서져 나갔다. 이건 기억이다. 환상 따위가 아닌 역사의 기록이며, 재회를 꿈꾸는 세계의 소망이다. 레일의 잔해가 물보라를 일으키고, 별 한 점 없는 겨울 하늘은 변함없이 추웠다. 태엽이 풀리고, 세계가 무너진다. 기억 따위는 더 이상 없다는 걸 깨닫고 만 것이다. 부수고, 무너지고, 추락하고 나면 그곳에는 폐허가 남는다. 성은 아직도 건재하다. 홀로 남았을 뿐이다. 바스라진 빛을 아직도 네가 가지고 있기에, 폐허는 아직도 환상을 본다. 언제까지고 무너진다. 괜히 눈물이 났다. 안쓰러운 밤이었다.

보이는 것뿐이라고 말했잖아요. 당신이 무슨 노래를 부르고 시를 지어도 그 사람은 당신을 봐 주지 않아요. 바라봤자 죽어갈 뿐인데, 그런 한심한 이야기를 끌고 어디로 가겠다는 거예요. 깨부수기에 이 밤은 너무도 길고, 아무리 걸어도 결국은 제자리잖아요. 영원히 헤맬 생각인가요? 어디를 가도 똑같이 괴로울 거라고 당신은 말했어요. 난 그걸 똑똑히 들었는데, 그런데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이렇게 엎드려 있는데. 죽여도 돼요. 밟고 가라고요. 떠난다면서요. 사막에 쓰러져 버려요 그대로. 장미를 물어뜯는 양이 되라고요. 하지만 당신의 행성은 어디에도 없고, 난 뱀이 아니에요. 세상 어느 것도 당신을 돌려보낼 순 없어요 - 그냥 여기 있어요, 제발. 눈을 뜨란 말은 하지 않을게요. 그 꿈의 끄트머리에서 시들어가는 걸로 충분하니까, 한 번만 더 나를 봐 줘요. 이름을 불러 줘요. 당신 곁에서 죽고 싶어요. 그러니 제발, 조금만 더 여기 있어요.

언젠가 삶을 증오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렇다면 당신에게 이걸 바칠게요. 그러니 좀 더 깊이 떨어져주세요.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요. 당신을 살릴 수 있게, 이 마음을 으깨 주세요. 그러면 구멍이 보일 것 같으니까, 제발.

빛에 익숙해지지 마세요. 당신의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을 뿐이잖아.

별에는 날개 따윈 없다. 빛을 타고난 사람이라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별이야. 그런 말을 믿을 수 있을 리 없다. 불태울 마음도 뭣도 없는 무력을 어찌 삭히고 죽일 수 있는가. 혜성의 꼬리는 극저온에 가깝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나아가는 건 열정 따위가 아니다. 몸을 불사르며 나는 건 바보같은 짓이다. 별은 움직이지 않아, 스텔라. 너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난 너의 뚱한 표정을 조금 애처롭게 바라보다 그만두었다. 이해받을 수 있을 리 없고, 조각만을 뱉어선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는다. 공원에 밤하늘이 내려앉아 녹아들기 좋은 날을 만들었다. 그리고 네가 일어섰다. "혜성은 움직이는 걸." "그건 알아." "하지만 아저씨 이름은 - " "그것도 알아. 하지만 꼭 이름대로 사는 건 아니잖아, 사람이. 나쁜 사람은 많아도 나쁜 이름은 잘 없으니까." "그럼, 혜성은 좋은 이름이야?" "......아마도 좋은 이름일 거야. 어울리진 않지만." 너의 그 가명보다는 훨 나을 것 같은데. 뒷말을 이으려는 찰나, 네가 꽤나 절절히 말을 뱉었다. "난 괜찮다고 생각해." 목소리에 깊은 호흡이 섞여 있었다. 그것은 마치 밤을 통째로 담은 것만 같은 무게를 지녀, 곱씹을 수밖에 없는 여운을 남기고 떠났다. 여름밤의 습한 공기가 말끝에 가라앉은 울음을 덮었다. 넌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알아채지 못할 리 없다고, 우리 둘 다 한구석에서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이 대화에 어떠한 불문율이 있기를 바랐나 보다. 상대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을 땐 서로 적당히 넘어가 주는 것이 예의다. 눈치 없는 우리들은 자신을 죽이지 않기 위해 그런 것들을 조금씩 익히고 있었다. 우습기도 하다. 긍정할 순 없지만, 마냥 뭐라 하기에도 애매한 분위기를 틈타 대답을 끼워넣었다. 그럴 수도 있지. 수풀 사이로 반딧불이가 날아다녔다. 결국 그 뒤로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 세상은 아직 죽지 않았다. 멸망하기엔 너무도 이르다. 네게 그것을 전해도 들어줄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밤만은 부수고 싶지 않았다. 이것조차 너에겐 욕심으로 들릴까. 별이 빛났다. 돌아가자. 그리 말하며 너는 웃었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서투르고, 어색하고, 언제나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고. 세상을 두 번 아니면 세 번 정도 비틀어 바라보고, 얄팍한 우울에 침잠해선 죽어도 상관없다 말하는 당신을 위한 피의 노래. 오직 그대만을 위한 영광의 찬가. 당신의 어둠을 움켜쥐어 삼킨 심장이 차갑게 식어서, 시체와도 같은 당신을 담지 않고는 눈을 뜰 수 없어서. 아름다운 사람아, 삭의 후예야. 이 밤을 끝내지 말아라. 눈을 감고 나를 보아라. 너의 우울을 나는 사랑한다. 세계를 그대에게 줄 지어니, 언제까지고 내게 침잠하라.

눈을 감다 이렇게 아플 바에야 눈이 멀었으면 좋겠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살아가고 싶어요. 당신의 이름만으로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어요. 다른 건 어찌 되든 상관없어요. 안아 주세요. 빛을 잃기 전에. 내가 이 두 눈을 감기 전에.

어쩌죠, 말이 넘쳐흐를 것만 같은데 내뱉을 수가 없어요. 써내려가기 버거워요.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아요. 내가 아닌 내가 되어서, 단지 당신을 부르짖는 외톨이인 채 남아 숨을 끊을 것만 같아요. 오늘은 햇빛을 받지 못했어요. 여전히 밤에 갇혀 있어요. 가련한 척 구원을 바라도 당신은 없고, 남는 건 침잠뿐이라 오늘도 누워 있어요. 이대로 잠들어도 괜찮을까요. 내일은 당신을 찾을 수 있을까요. 아름다운 사람아, 내게 와 줘요. 기다리고 있어요, 떠나지 않고 있어요, 당신을 위해서. 날 여기서 꺼내 줘요. 언제까지고 아픈 척하고 있을 테니까요.

힘이 없어. 아플 바에야 죽어버리고 싶어. 세상이 의지대로 움직여 주면 좋을 텐데,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네. 싫어하는 걸 만든 것부터가 죄악이었어. 그냥 사라지게 해 줘 제발.

절절히 아프다고, 흘러넘쳐 죽을 것 같다고 말하고 싶어 환장한 놈. 아는 거라곤 고작 그것밖에 없어서 오만 것들을 부숴먹는 주제에, 뭐, 사랑? 같잖아서 헛웃음이 다 나오네. 사라져, 그냥.

핑계의 집합. 알아 달라는 몸부림. 내보이는 것은 껍데기와 편린. 더러운 자기모순, 그걸 또 즐기고 앉아 있는 대단한 마조히스트. 비뚤어진 자기애 혹은 자기혐오를 같잖은 감성으로 포장해선 속여 넘기는 사기꾼. 어제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었어. 그렇게 믿어 줄래? 지금부터 날 속여넘길 거라 조력자가 필요할 것 같거든. 얼어 뒤질 진실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우리 모두 바보가 되자.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 줘. 나로서도 모르겠으니, 지금이라면 넌 내 최초의 진실이 될 수 있어. 이 기회를 놓치지 마. 영원히 내 모든 것이 되어 줘. 내가 그랬듯 널 버리면 끝나는 일이야. 그렇지만 넌 너로 있어야만 해. 껍데기만이라도 괜찮지만, 역시 그건 조금 슬플 것 같아서 안 되겠네. 이기적이라서 미안. 이런 것밖에 안 돼서 미안. 애초부터 왔는지조차 불분명한 너지만 그래도 떠나진 말아 줄래. 여기로 들어와. 솔직히 무서워. 그렇지만 이 밤만이라면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각자를 잊자. 어때, 좋은 거래지? 알아. 그걸로 됐어. 이제 키스해 줘.

하다못해 심장 소리를 들어 줘.

외로움을 팔아치워 사랑받고 있어. 뭐 그리 나쁘진 않네.

이런 삶은 어딘가 잘못됐다.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 억지로 현실에 붙어 있어도 남는 것은 절망뿐이었고, 그 모든 것들을 긍정하고 뛰어드는 것은 무리였다. 그냥, 지쳐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세상을 꿰뚫는 눈도, 스스로를 지킬 의지도 언젠가 사그라들고 말았다. 세간은 이런 변화를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들 말했다. 언제고 환상에 기생할 순 없다.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하여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스스로 그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말았다. 이것이 저의 절망입니다. 동정을 주세요. 날 봐 주세요. 울어 주세요, 웃어 주세요, 안아 주세요. 털끝만큼이라도 좋으니 사랑해 주세요, 괜찮다고 해 주세요. 너무 많은 걸 바랐나, 과분한 건가. 자격은 누구에게나 있다. 당연스럽게도 기회는 공평하지 못하다. 타고난 것은 어쩔 수 없다. 애초부터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당신들이라는 자판기에 넣을 돈이 내겐 없었다. 지불했다 믿은 액수만큼의 대가를 받고 싶었다. 속죄도 사랑도 무엇도 좋으니 쏟아부어 줬으면 했다. 이제 와선 그냥 전부 다 싫다. 난 내가 아니었어야 했다. 이래선 빈털터리밖에 더 되는가. 땡전 한 푼 없이 거리를 활보하며 눈길을 구걸하는 광대, 혹은 그 이하. 떨어지기 싫다고 말했다. 다음 순간 그 말에 붙들려 가라앉았다. 족쇄가 채워진 느낌이었다. 심해에서 나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구하러 올 사람이 있나. 아니, 목소리조차 내지 않았는데 그럴 리가. 일종의 딜레마였다. 없으면 공허하고, 있으면 성가시다. 부수지 않고 쥐는 방법을 몰랐다. 어떻게 쓰다듬어야 하는지, 말을 걸어야 하는지, 화내야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결핍을 누구보다 사랑한 주제에 공허를 불평하고 있었다. 그냥 내버려 둬, 아니야 찾아 줘, 안 돼 보일 수는 없어, 그래도 조금만, 이 조각을 줄 테니 모든 걸 알아채 줘, 하지만 동정하진 말아 줘. 내게 동경을 줘, 아니야 그건 부담스러워 기대는 안 돼, 하지만 내 빛을 썩힐 순 없잖아, 애초부터 빛나긴 했어? 그게 빛이야? 모순투성이인 생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젠 그냥 사라지게 해 줘. 존재할 리 없는 당신에게, 오늘도 기도했다.

당신의 그것은 무엇입니까 의지의 반향입니까 빛나는 꿈입니까 갈 곳 없는 증오입니까 그것은 무엇입니까. 누굴 향합니까 나입니까 당신입니까 아니면 둘 다입니까 세상입니까 무엇입니까. 당신이 토해낼 수 있습니까 제가 멈출 수 있습니까 정처 없는 마음은 재앙이라 말했던 것은 분명 당신이었을 텐데 나는 왜 당신은 왜 우리는 왜 썩어들어갔습니까 이것은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혼돈이며 방황이고 눈물입니까. 서로가 서로를 상처입힐 뿐인 말에 무슨 의미가 있고 합리성이 있으며 진리로 떠받드는 겁니까 당신은 그걸로 만족합니까 그런 걸 행복하다 말하는 겁니까. 이해할 수 없으며 그러고 싶지도 않고 당신 같은 것은 이젠 쳐다보기도 싫으면서도 다시 눈물이 터져나오는데 이를 어찌합니까 울어야 합니까 멈춰야 합니까 당신을 떠나야 합니까. 납득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그 누구에게서도 거부당한 채 나아가는 당신의 발걸음이 눈빛이 그러쥔 주먹이 그렇게나 쓸쓸한데 나더러 보고만 있으라는 겁니까 그렇게는 못 합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당신을 잡고 어긋나가고 울고 싸우고 부식되고 침식되어 먼지가 되어갈 뿐인데 우린 어찌 이 글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까 이 수레바퀴 아래엔 무엇이 있지요 전 도저히 정말 하나도 알 수 없습니다. 해는 저물고 별은 떠오르고 지구는 아직 돌고 있음에도 나는 멈추고 당신은 나아가고 빠져들어가고 거리는 멀어져 목소리는 퇴색되어가는데 당신은 그것을 가치라고 말하는 겁니까 어찌 눈물 한 방울 머금지 않고 그리 말할 수 있지요 정말 당신이란 사람을 그 마음을 의지를 이어받을 자는 지금도 앞으로도 오직 나 뿐인데 날 두고 가십니까. 제가 그 길에 꽃을 뿌리겠습니까 짓밟히겠습니까 이런 부끄럼 많은 삶을 어디에 갖다 붙이지요 당신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최악입니다. 이건 끝입니다. 난 지금 작별을 고한 겁니다. 알아요? 아냐고요. 알면 왜 뒤돌아보지 않지요 내가 고작 당신에게 그 정도였습니까 당신에게 나는 그리 내팽개칠 수 있는 것이었습니까 그리고 나는 왜 당신을 잡지 않지요 왜 손을 떨고 있지요 울고만 있지요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겁니까 아니 애초에 우리긴 했습니까 당신은 당신이긴 했습니까 서로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말 하나부터 열 백 천 만 수억까지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입니다. 당신은 나를 떠나고, 난 당신을 바라보지만 언젠가는 멀어지고 지평선은 가까워지고 하늘이 무너져 수문이 열리고 비는 쏟아지고 우린 젖어들어가고 당신은 울고 있었습니까 웃고 있었습니까 지금 그것은 빗물입니까 눈물입니까 무엇이었습니까. 무엇이었습니까. 정말 우리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렇게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무언가로 전락해가지요 우린 아니 당신과 나는 고작 이런 것이었습니다. 비는 그치지 않고 하늘은 솟아나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을 어쩌면 좋을까요 당신과 나의 마음은 사랑은 꿈은 증오는 혼돈은. 무엇이었습니까.

이별 언제나처럼 그대에게로 떨어집니다. 그렇게 맨땅에 헤딩, 즉사!

사랑하지 않으면 죽을지도 몰라. 이 마음을 굳혀버리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아. 결국엔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지경까지 오고야 말았어. 네게 속죄받고 싶어. 미안해, 역겹지? 공허한 사랑을, 방랑하는 증오를 바칠게. 뱉을 수 있는 말이 얼마 남지 않았어. 이젠 솔직히 한계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그냥 안아 줬으면 좋겠어. 아무것도 묻지 말고 같이 울자. 끝나지 않는 밤에 녹아들어 사라지는 거야. 난 지금 이 방에서 홀로 흩어지고 있어. 구해줘. 언제라도 좋으니 기다리고 있을게. 껍데기뿐인 마음을 잊지 말아줘. 어쩌면 이건 나의 전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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