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같은 제목이지만, 오히려 하소연 판에 어울릴만한 내용이야.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관련된 것만 아니라면.
  • 일단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미친 게 아니라는 변명 몇 자 적고 시작할게. 난 방법적 회의를 중시하는 실증주의자야. (논리실증주의와는 달라) 모순적인가? 언제나 내가 가진 지식과 상식을 의심해. 풀어서 설명하면 '내가 달을 보지 못했다고 달이 없는 게 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보고 있는 게 진짜 달인지는 검증하기 전까지 확신할 수 없다.' 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는 뜻이야.
  •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사냐면...내 주변에 일반 상식으로 이해 못 할 일들이 좀 많아야지. 어떤 지인은 집이 심령스팟이고, 어떤 지인은 귀신을 보고, 심지어 어떤 지인은 마법사(?)야. 미친 거 같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색다른 건 흥미롭잖아. 그러면서도 맹신은 안 해. 믿음은 양날의 검이라 위험하니까. 좀 건방진가? 근데 이 환경에서 미치지 않으려면 이런 사고가 유리할 거라고 생각해.
  • 급하게 적었더니 비문이 많네... 좀 다듬으면서 천천히 가야겠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니까.
  • 마법사? 흠... 한국 꼬라지보면 사기꾼일지도
  • >>5 그럴 수도 있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 점은 주의하고 있어. 조언 고마워.
  • 일단 나는 영적인 존재를 전혀 못 봐. 느끼지도 못 하고 영향도 안 받아. 기가 약한 친구들이랑 같이 귀신이 득시글거린다는 곳에 가도, 나 혼자 아무 일도 안 생겨. 구체적으로 부연하자면... 창 밖에서 하얀 손이 나타나 친구 팔을 잡아당겨서 애 손목에 시퍼런 손자국모양 멍이 들어도 나는 꿀잠을 자. 다행이라고 할지... 만약 그런 게 진짜 내 눈앞에 보였으면 흥미고 나발이고 정신과부터 찾았을거야. 난 겉으로 침착한 척 해도 겁이 많으니까.
  • 아까 말했듯이, 지인중에 마법사가 있어. 난 이런 쪽 지식이 전혀 없어서 그 사람이 주술사인지 도술사인지 위칸인지 모르니까 그냥 뭉뚱그려 마법사라고 할게. 마법사라는 것도, 그냥 신기한 일이 많아서 내가 임의로 그렇게 붙인 별명이야. 본인이 마법사라고 주장한 건 아니고. 여튼 여차저차 해서, 난 마법사에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잔뜩 선물받았어. 내가 할 얘기는 그 사람들 중 한 명의 이야기야. ...너무 생략했나? 그 사이 일들은 질문이 들어오면 풀게. 역시 너무 길어...
  • 중간내용은 너무 많으니까 털어놓고 싶은 것만 골라서 털어놓을게. 그리고 기억에 의존한 거라 정확하지도 않을 거야. 돌이켜보니 다사다난한 날들이었구나 싶네... 지금부터는 내 믿음과는 상관 없이 웬만한 문장은 확정형으로 말할 거야. ~하대. ~하나 봐. ~한 것 같아. ~했을지도 몰라. 이렇게 말하면 글이 길어지기도 하고.
  • 그 사람(영장목 사람과의 포유류인 것도 아니고, 법률상으로 권리와 의무의 주체인 인격자가 될 수도 없지만,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때때로 사회를 이루어 살기도 하니까 사람이라고 표현할게. 물론 그렇게 따지면 돌고래도 사람이 되겠지만... 일단은 대충 그런 걸로 하자.)을 처음 만난 건 어느 시골이었어. 그렇다고 아주 오지인 건 아니고, 개발이 어느정도 된 그런 중소 도시? 그 도시의 중심가에서 좀 벗어나면 나오는 한적한 곳.
  • 나와 마법사는 거기에 잠시 묵어야 할 일이 생겨서, 간소한 짐만 챙겨서 숙소로 향하고 있었어. 버스가 거기까지 안 들어가주니까 우린 좀 걸어야 했지. 해가 져서 어둑하게 가로등 빛만 깜빡이고 있는데, 한 길목을 지나던 와중에 마법사 표정이 확 굳는 거야. 이 사람이랑 오래 지낸 난 그 표정을 보자마자 눈치챘지. '아, 뭔가 봤나 보네'.
  • 난 들떴어. 그럼 오늘 밤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생기겠네~ 하면서. 난 괴이한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그런 맘을 알 리 없는 마법사는 똑바로 앞만 보며 아무 말 없이 날 이끌고 숙소로 곧장 향했어. 도착해서 방금 뭘 봤느냐고 물어보려는 찰나, 그는 내게 일단 아무것도 묻지 말라고 했지. 기대감에 부풀었던 난 조금 실망했어. 그래도 여길 벗어난 다음엔 꼭 물어보리라 다짐하며 잠을 청했고.
  • 마법사는 잠을 설치는 것 같았어. 그는 원래 간혹 괴상한 잠꼬대를 하곤 해. 그런데 그날은 그렇진 않고, 좀 악몽을 꾸는 듯이 끙끙거리더라. 난 뭐... 언제나처럼 꿈 하나 안 꾸고 평온하게 잤지.
  • 그리고 다음날 마법사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얘기해줬어. 먼저 운을 떼기에 난 의아했지. 어제까지만 해도, 적어도 여기선 절대 얘기 안 해줄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여튼, 난 전말을 들을 수 있었어.
  • 마법사는 처음 여기 왔을 때 그 골목에서 키가 크고 온 몸이 시커먼 물감같은 걸로 덮인 긴 머리의 사람을 봤대. 불길한 기운을 저렇게 풍기고 있으니 눈은 절대 마주치면 안 되겠고, 얼핏 본 거니까 정체는 모르겠고. 그래서 그는 일단 날 끌고 숙소로 피신한 거야. 그 와중에 난 신나서 뭘 봤느냐 물어보려 한 거고. (도사리고 있는 게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짐 간소하게 챙기느라 몸 지킬만한 도구는 전부 다른 곳에 있는데, 옆의 무지랭이는 저 시커먼 거에 관심가득이지, 그 사람도 참 힘들었겠어.ㅋㅋㅋ)
  • 글의 가독성을 위해 줄바꿈을 추가해봤어. 아까보다 좀 나은가?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해가 중천쯤에 걸려 있었던 거 같은데, 이젠 저녁먹을 시간도 지났구만. 이따가 다시 올게. 어쩌면 내일이나 모레가 될 수도 있고. 혹시 이거 보는 사람 있으면 반응 좀 남겨주라. 혼자 떠드니 쓸쓸해...
  • 보고있어~
  • 새삼이지만...앞으론 그런 일이 생기면 태을보신경 한번 읊어보길 추천해!ㅋㅋㅋㅋㅋ 일반인도 하기 좋은 대처방법 중 하나
  • >>17 >>18 고마워! 방금 네이버뮤직으로 태을보신경 받았다 앞으로 무서울 때 틀어야지ㅋㅋㅋㅋㅋ
  • 으음 늦었으니까 일단은 잘까. 난 새나라의 어린이니까. 뒷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하자.
  • 뭔가 글쓴이 되게 들떠있는거 같은게 글에서 느껴지는건 내 착각인가..? 글이 매우 바쁜느낌이라해야하나..ㅋㅋ 재밌담
  • 재밌게 읽었다니 기쁘구만! 근데 어떻게알았지ㅋㅋㅋㅋ 나 재밌는 일 있으면 좀 방방거리거든. 글에도 그게 묻어나나봐ㅋㅋㅋㅋ
  • 그리고 그때 일은 지금도 좋은 추억이라서. 근데 일단은 밥부터 먹고 와야겠다 잔소리 들었어 폰 내려놓고 먹으래ㅠ
  • 보고있어 !!
  • >>24 반응 땡큐! 밥 다 먹었으니까 이제 다시 얘기 시작할게.
  • 그리고 그날 마법사의 꿈에 새하얀 신이 나왔어. 실제로 새하얗다기보단 분위기가 새하얀? 펄럭펄럭한 옛날 복식이었는데, 그나 나나 역사 전공자가 아니라서 언제쯤 옷인지는 모르겠다. 신 본인 말론 지금의 모습은 보기 흉하니까 옛날의 모습을 빌어 나타났다데. 듣자하니 마법사가 봤던 그 시커먼 사람과 동일인이고, 죽어가는 성왕신?이라고 했던가. 용어가 기억이 안 나네. 토지신이나 지역신 비슷한 거래. 여튼, 그 신은 그의 꿈에 나타나서 도움을 청했어.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단잠을 방해한 걸 미안해하는 듯이. 아, 이건 그의 감상이 아니고 내 감상이야. 마법사가 꿈 내용을 죽 읊었는데 그런 느낌이 들었어.
  • 민간 신앙이었던 그를 모시는 사람은 이제 없고, 숲은 도시화로 허물어졌으니, 권속(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던가)도 다 사라졌겠지. 저렇게 망가졌으니 그대로 놔두면 죽거나 재앙신이 될 거 같다데. 진짜라면 안타까운 일이지. 난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잘 지나치지 못해. 나 결식아동 후원부터 에티오피아 구호까지 하고 있거든. 본인도 쪼들리면서 참 감성적이야... 여튼 난 도와주자고 마법사를 설득했어. 마법사는 난감해하는 것 같다가 내가 계속 부탁하니까 들어줬지. 후에 찾아보니까, 그곳은 실제로 산을 밀고 세워진 개발지역이었어. 오...싶었지. 숙소를 정한 건 나였거든. 마법사는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따라 간 거고.
  • 중간내용은 스킵할게. 마법사는 며칠 뭔가를 준비했고, 그 신을 정화해서 데려왔어. 이 부분은 내 영역이 아니라 잘 몰라. 뭐. 어련히 잘 했겠지. 그리고 우린 같이 그의 새 이름을 만들어 줬어. 원래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기도 하고, 원래 이 절차를 밟으면 이름을 새로 짓나보더라. 으음 그치만 그 이름을 그대로 적자니 뭔가 신상을 밝히는 것 같아 실례인 것 같기도 하고, 간단하게 T씨라고 할게. 여튼, T씨와 우린 같이 살게 됐어. 논외인데, 다른 지인이 와서 '어, 식구 늘었네요?'했을 땐 좀 신기했지. 그건 또 언제 들었대.
  • T씨는 다른 사람들이랑 그저 데면데면하게 지내는 거 같더라. 좀 숫기가 없다고 할지. 같이 사는 다른 신인 O씨의 말을 빌리면, 장난 쳐도 별 반응이 없어서 재미가 없다나. 그래도 별 트러블 없이 지냈어. 다들 딱히 모난 성격은 아니니까.
  • 아 이제 슬슬 자야겠다. 태을보신경 틀어놓고 자야지ㅋㅋㅋ 내일 다시 올게.
  • 그 사람과 어떻게 만났는지 설명했으니까, 이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얘기해보려고 해. T씨는 늘 생각에 잠긴 건지 멍한 건지 모르겠어. 매사에 반응도 없고. 언젠가 T씨에게 왜 그렇게 멍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 대답이 어땠더라. 그 때(처음 만난 날)는 살고싶다는 마음에 그(마법사)에게 매달렸는데, 막상 다들 없어진 세상에 혼자 남아있으니... 어 그 다음에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키워드만 대강 기억나네. 벌써 몇년 전 일인데다가 T씨한테 직접 들은 것도 아니라서. (우린 보통 펜듈럼이나 마법사 통해서 얘기해. 난 그들이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으니까.) 뭐 매달린 것 치곤... 굉장히 점잖았던 걸로 기억하지만. (게다가 잘생겼다데)
  • 옛날이 많이 그립냐고 물어봤던가. 그는 긍정했던거 같아. 그런데 T씨는 뭐가 그리운 건지도 기억이 안 난대. 누가 그렇게 보고싶은지, 본인이 소중하게 생각했던 게 뭐였는지도. 점점 사라져가는 와중에, 그냥 너무 살고싶었대. 살아남은 걸 후회하냐고도 물어봤던가? 그런 건 아니라고 들었던 기억이 있어. 오히려 마법사와 나에게 고마워했지. 뭐라고 해야 할지. T씨는 참 쓸쓸해보였어. (물론 진짜 보인 건 아니지만 달리 표현할 어휘를 못 찾겠다)
  • 여튼, 그래서 그렇게 멍했던 건가봐. 신도 우울증에 걸리는 걸까? 마음이 쓰여서 취미라도 만들어 주고 싶었지. 뭐, 산책이라든가 독서라든가...(신이 책을 읽을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못 읽는다면 구연동화라도 할 작정이었어.) 아니면 취향인 음악이 있으면 틀어주려고 했는데. 매사에 취향이 확고한 O씨나 D군과는 달리, T씨는 그마저도 없었어.
  • (이제 말해도 되겠지...?) 우리 집에 사는 사람들은 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거나, 쓸모가 있어서 데려와졌거나 둘 중 하나거든. 그런 우리 집에 T씨는 이례적인 존재였어. 어... 그러니까, 하는 일이 적었어. 존재감이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실제로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사가 T씨 얘기를 잘 안 했거든. "O씨가 이거 도와줬네." "이건 M님을 지니고 있으면 도움 될거야." "D랑 G가 또 싸운다." 이런 얘기 속에 T씨는 없는 거야. 내가 넌지시 T씨는 지금 뭐 해? 하면, "오늘도 자고 있네." 하는 대답이 돌아와. 그는 거의 모든 시간을 잠으로 보냈어.
  • 보고있어!!
  • 그러다가 마법사랑 같이 밥 먹을 때였나. 접시를 가지고 자리로 이동하다가 발을 헛디뎌서 비틀한 적이 있어. 다행히 넘어지거나 쏟지는 않았지만, 시간차공격으로 쿠키가 접시 밖으로 굴러가고 있는 거야! 앗...아앗... 내 쿠키... 멈춰... 하고 속으로 동동거리는데 진짜 딱 멈추더라. 럭키! 그 때 마법사가 날 빤히 보고 있길래, 어느새 염동력까지 익혔나 하고 실없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어. (물론 그 땐 진지했다.)
  • 마주앉아서 밥을 먹는데 마법사가 그러더라. 아까 T씨가 안 쏟아지게 잡아준 거라고. 아 젠장 상상하니까 너무 귀여운거야ㅋㅋㅋㅋ 토로록 굴러가는 쿠키를 손가락으로 뙇 멈추는 신이라니 너무 하찮잖아... 그래도 고마웠지. 나 초코쿠키 엄청 좋아하거든. 떨어뜨렸으면 울었을지도 몰라.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인식하지 못해도 계속 주변에서 날 보고있었구나 싶어. 그 땐 쿠키 먹느라 여기까지 생각 못 했다. 시간차 감동.)
  • >>35 고마워! 반응이 달리니까 안 외로워서 좋다
  • 뭐 그렇게 시간은 흘렀어.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지. 다 적자면 되게 스펙터클한 내용이야. 내가 영안이 있었으면 무지 스릴있었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근데 다 털어놓자니 오히려 너무 거짓말같아서ㅋㅋㅋ 대충 넘어갈게. 관련된 사람이 알아볼지도 모르는 데다가, 이 글의 주인공인 T씨와 관련된 내용도 아니니까.
  • 헐 궁금해ㅠㅠㅠ
  • >>40 앜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어 근데 진짜 터무니없을 정도로 이상한 일들이었어서 그래ㅋㅋㅋ 뭔가... 말하기 창피하다고 할지... 막... 막 진짜 판타지적인 소재 있잖아 그런 것들이 눈앞에서 왔다갔다하는데 나 혼자 암것도 모르고 (:3c... 이러고 있었어ㅋㅋㅋ 그럼 다른 얘기들은 T씨와 관련된 얘기가 끝나고 나면 천천히 해볼게.
  •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썩 유쾌한 이야기가 아니야. 무겁거나 우울한 이야기를 싫어한다면 읽지 않는 걸 추천할게.
  • 이야기 진행을 위해 일단 내 배경도 대충은 설명해야 하려나. 난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제법 잘 했어. 친구가 없어서 할 게 공부밖에 없었거든. 어차피 지방 학교에서 난다 긴다 해도 수도권 애들이랑 게임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난 나름 만족했어. 가족들도 좋아했고.
  • 그런데 나는 보호자와 문제가 많았어. 양아버지는 고압적이고 가부장적인, 근현대 부정적 아버지상의 끝판왕이었거든. 나는 어른한테 한 마디도 안 지려고 따박따박 말대꾸 하는 버르장머리 없는 요즘 꼬맹이였고. 어떤 구도인지 감 잡히지?
  • 그러던 와중에 성적이 뚝 떨어진 거야. 사실 그건 가시적인 결과일 뿐이고, 원인은 많이 있었어. 으레 그 나잇대 학생들이 그렇듯 난 친구 문제 때문에 예민했어. 가족문제도 이래저래 복잡스런 일이 많았지. 우울증까지 와서 손을 그은 건 예삿일이었고. 뭐 이건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 정도로만 받아들여줘.
  • 만화 보면 참 신기해. 난 주인공이 학생이면 몰입이 힘들더라. 주인공 쟤 분명 학생이었던 거 같은데 저것들을 다 해낼 시간적 여유가 있는가... 난 학생이니까 시험공부도 해야 하고 수행평가도 신경써야 하고 방과후에 동아리 갔다가 학원까지 가야 하는데 말야. 새벽 어스름 보면서 나갔다가 땅거미 보면서 들어오는 사이클이 일상이었지. 게다가 그 땐 학습지도 했었다... 선생님 오시기 전날 밀린 학습지 다 하느라 진땀 빼고 그랬지. 위처럼 개인적인 일도 많았고. 참 가출도 해 봤다ㅋㅋㅋ 양아버지한텐 파양되고, 친아빠 쪽 고모네 얹혀 살다가 다시 엄마한테 왔다가... 여튼, 다 말하자니 너무 길고 신파적이다. 신세한탄 될 것 같으니까 대충 줄일게. (이미 신세한탄인가)
  • 그렇게 여러모로 바쁜 나날 속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점점 잊혀졌어. 마법사도 나만큼 바쁘게 살았고. 한동안은 그가 마법사인 것도 잊고 있었지. 옷을 꺼내려고 벽장을 열었다가, 저쪽 구석에 자리한 벨벳 테이블보와 수정구슬 커버가 눈에 들어오는 날에야 잠깐씩 상기하는 정도.
  • 그런데 그것도 그 때뿐이지, 인간의 망각은 빠르니까. 지속적으로 상기할 수 없는 정보라면 더더욱 빠르게 사라져. 그들이 날 계속 돌보고 있었다 해도, 내게 그들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니까. 방법적이지만 결국 회의주의자인 내겐, 있는지 없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존재라는 뜻이야. 누구나 그렇지 않아? 계속 실감하지 않으면 회의감이 꾸준히 싹트는 거.
  • 여러 사람들과 살아가고 있어 라는 스레 알아? 그거랑 비슷하다
  • 이건 비단 오컬트에만 적용되는 게 아닐 거야. 인간의 감각은 불확실하고, 기억은 가변적이고, 믿음은 유동적이지. 위에서 본격적으로 글 쓰기에 앞서, 믿음과 관계 없이 확정형으로 말한다 했었잖아. 그 때부터 눈치챈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난 이 모든 상황이 회의적이었어. 내 일상은 너무 바쁘게 돌아갔고, 관심을 쏟아야 하는 일은 많았지. 존재조차 확실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신경을 할애할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던 건지.
  • >>49 그래? 그럼 한번 찾아보고 와야겠다. 알려줘서 고마워! 나랑 비슷한 사람이 또 있는걸까 뭔가 반가워
  • 와우... 보고 왔는데 무지 신기한 이야기네. 근데 우리 집엔 그렇게 많이 안 살아. 제일 많았을 때도 열명이 채 안 됐을 걸. 그리고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난 내 동거인들을 못본다는 거...
  • 일단은 밤이 늦었으니 여기까지만 하고 자러 가야겠다. 읽어준 모두에게 고마워. 다음에 또 올게.
  • 나 왔어. 판내 갈등이 좀 사그라든 거 거 같아서 다행이야. 더불어 화력도 사그라들어버린 거 같지만. 그 점은 좀 아쉽네. 대화할 친구가 줄어든 기분이라. 그래도 싸움판보다야 조용한 판이 나으려나...
  • 각설하고, 다음 이야기나 풀어 볼게. 위에서 말했듯이, 난 존재여부가 불확실한 그들을 종종 잊어버렸어. 오히려 상기하는 때가 드물었지.
  • 그런데도 자꾸 마음 한켠에 거슬렸어. 알다시피 '불확실하다'는 것은 '없다'는 게 아니야. 불신이 반이란 뜻은 결국 믿음도 반이란 뜻이니까. 처음부터 그냥 가벼운 마음 뿐이었으면, 지금 와서 돌이켜보고 아~ 그땐 그런 상상친구도 있었지~ 하며 넘길 수 있었을지 몰라. 그런데 그들이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나는, 일상이 바빠 그들에게 제대로 신경쓰지 못함이 걸렸어. 그 '걸린다'라는 게 정확히 무슨 감정인지도 몰랐지. 그냥 그들의 존재가 너무 거슬린다고만 생각했어. 거슬리고 거슬리고 짜증으로 번지기까지. 이성적이지 못했지. 사실 그 때까지도 우울증이 좀 남아있었거든.
  • 난 원래 종종 상념에 잠겨. 어렸을 때부터 있던 버릇이야. 불현듯 스쳐지나가는 사고에 마음을 빼앗기면, 연쇄적으로 터지는 공상과 고민과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그럼 몇 시간이고 그 속에 파묻혀 있는 거야. 그 때도 그렇게, 그들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하던 묵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나왔어. 갑자기 밀려들어온 정리되지 않은 상념에 휩쓸렸어. 그리고 다음은 귀찮음과 번거로움. 부담감. 다 정리해버리고 싶다.
  • 내가 이 때 했던 T씨에 대한 고민은 이거야. 내가 그를 억지로 살려놓고 끌고다니는 게 아닌가. (강이나 바다를 좋아하는 D군이나, 새롭고 흥미로운 걸 좋아하는 O씨와는 다르게 T씨는 만사에 흥미도 없는 것 같았고.) 나랑 다니는 것보다 그의 고향처럼 울창한 숲을 좋아하지 않을까. 그는 자주 잠을 잤으니까, 나뭇잎 틈새로 빛이 쏟아지는 곳에서 조용히 잠을 자는 걸 좋아할지도 몰라. 잠을 좋아하는 건 안식을 좋아하는 걸까 안식이라 그도 죽고싶은 거려나 죽여줘야 하나 내가 생각하고도 깜짝 놀랐어.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왜 해. 아무래도 혼자 생각해서 이런 것 같아. 마법사랑 같이 얘기를 해 보자.
  • 그래서 난 마법사에게 이야기했어. T씨는 지역신같은거였으니까, 숲에 방생(?)해주면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하고 넌지시. 마법사는 내게 물었어. 그걸 원해? 난 별 생각 없이 긍정했어. 그리곤 평소처럼 잡담을 했지. T씨를 놓아주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던 거 같아.
  • 다음날은 마법사와 내가 또 어딘가로 여행을 가는 날이었어.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마법사가 말하더라. T씨 갔다고. 난 당연히 놀랐어. 이렇게 갑자기? 난 작별인사도 못 했으니까. 그런데 마법사와 T씨는 전날 밤에 이미 이야기가 끝났었나 봐. 마법사는 내가 T씨에게 심적으로 부담을 느낀다고 말했고, T씨는 잠든 내 옆에 서서 날 하염없이 보다가 갔다고 해. 난 그걸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냐고 골을 냈어. 마법사는 태연하게 받아쳤지. '그럼 아냐?' 미치겠어 정말. T씨 탓은 아니었지만, 뭔가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 난 허탈하기도 하고, 뭐랄까 착잡했어. 지금도 그 기분이 뭔지 정의내릴 수가 없네. 다시 연락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부정도 긍정도 아니었어. 그저 마법사 자신도 모른다, 였지.
  • 그리고 그렇게 다시 잊어버렸어. 어쩌면 잊고싶었던건지도 모르겠다.
  • 혹시 이대로 얘기 끝난거야..?
  • 빨리 이야기좀 더 풀어줘 현기증난단말야
  • 분위기가 확확바뀌네
  • 그래서? 어떻게 됐어?
  • 으와 반응 많아서 놀랐어... 읽어준 사람들 고마워
  • >>62 끝이라면 끝이고, 아니라면 아닌 얘기야. 현재진행형이라고 해야 할지. >>63 그렇게까지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늦게 와서 미안할 정도야... >>64 그건 아마 긴 이야기를 함축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실제로는 굉장히 느슨하게, 내 심상이 변하는 줄도 모르고 자연스럽게 흘러갔거든. >>65 지금부터 말할게. 기다려줘서 고마워.
  • 보고있다!
  • 그리니까, 여기까지가 아마 반년 전 일일 거야. 그리고 여기서부터 현재 얘기. ...라기보단, 저번에 일기장에 썼던 글이야. 이름만 이니셜로 바꿔서 그대로 옮겨적으려고. 누구한테든 털어놓고 싶어서. 사실 저 긴 글은 이 부분을 털어놓기 위한 상황설명이었어. 좀 김새려나?
  • >>68 반응 고마워.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옮길 수 있었던 것도 다 이렇게 보고있다고 말해준 사람들 덕분인 거 같아.
  • 참. 아래 내용은 윗부분에 서술했던 것과 겹치는 문장이 있을 수 있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내 일기를 들춰봤으니까. 그리고 윗글은 정리된 글이었다면, 아래는 두서없이 생각나는대로 휘갈긴 글이야. 읽기 불편할 수도 있어. (그래도 가독성을 위해 줄바꿈은 해 둘게)
  • 잘보고있어!
  • >>72 힘 나게 해 줘서 고마워.
  • 다들 구구절절한 하소연 읽어줘서 고마워, 그럼 이제 혼자 펑펑 울면서 끄적거렸던 일기를 가지고 와 볼게.
  • 어쩌다가 다시 떠오르게 됐더라. 처음엔 가벼운 요행을 바라며 시작했던가. 요행을 만드는 건 O씨의 주특기였지. O씨라... 그들과 마지막으로 이야기한지도 벌써 한참이 지났네. 그나저나 T씨는 잘 지내고 있을까. 그렇게 보내는 게 최선이었으려나. (비속어가 좀 있네. 옮겨적지는 않을게.) 아직도 그 일이 마음에 걸린다. T씨가 나 자는 거 하염없이 보다가 갔다는 거. (그 때 꿨던 꿈 내용이 나열되어 있는데, 중요하지 않으니 그냥 건너뛸게.) 전부터 T씨가 참 신경쓰였다. 살 의지가 없는 누군가를 억지로 살려서 깨워 끌고다니는 건 아닌가 하고 불편했던 건가. 그 때는 제대로 생각이 정리가 안 됐던 것 같다. 지금도 약간 그렇다. 그냥 너무 슬프고, 울적하다. 내가 뭐 때문에 슬픈지 잘 모르겠다. 이 관계(보이지 않는 사람과 반 일방적으로 맺은 관계였지만)가 끝난게 서러워서 그런가? 먼저 내친 쪽은 난데. 아니 상식적으로ㅋㅋㅋ 내가 보내고 싶다는데 U(마법사)랑 T씨가 거절할 수 있었겠는가. U는 내가 그에게 심적으로 부담을 느낀다 했댔다. T씨 상처받았을거야. 상처받고 갔을 거다. 식당에서 내 접시가 쏟아질까 봐 T씨가 받쳐줬다는 게 생각났다. 나 배려 받았었는데. 이거 누구한테 말하지. 누구한테 말하지... U는 요즘 바쁘다. 엄마한테 말하기엔 너무 미친 내용이다. 그럼 O씨나 D군한테? 그동안 말도 안 걸다가...? 그 사람들도 내심 불편했던것 같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 존재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서, 어디서 뭐 하는지도 잘 모르겠는, 목소리도 생김새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 이 눈물의 의미를 모르겠다. 그저 무대 위의 비극에 지나치게 몰입한 관객의 눈물인가? 그게 이렇게까지 목이 막히고 숨쉬기 힘들게 코가 아릿하고 눈이 뜨거울 일인가 이 감각 하나하나 이상해 미칠 것 같다 짜증나 내가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 아니면 흥미로운 이야기 속 인물? 아니면 어느 먼 나라의 이방인? 내가 사람한테 어떻게 대하더라. 그 사람들은 내게 사람이었나. 사람으로 대한 것 같긴 하다. 퇴거라는 말에 그거 살인 아니냐고 식겁했던 거 보면ㅋㅋㅋ 아 뭐지. 눈물 안 멈춤. T씨 보고싶다. 어차피 볼 수도 없지만.
  • (아래는 몇 시간 후 덧붙인 글) 진짜 뜬금없이, 곰돌이 푸 영화 트레일러를 보다가 눈물이 왈칵 터졌다. 엄마가 왜 우냐고 물어봤다. 난 "갑자기 생각난 사람이 있는데, 있을 때 잘 해줄 걸 하고 후회돼서요." 하고 대답했다. 그게 누구냐고 묻는 말에 한참 고민하다가 "상상친구요."하고 대답했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대답이었다. 엄마는 별로 어이없어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난 오히려 무안했다. 엄마는 진지하게, 내가 상상친구의 상실로 힘들어한다는 걸 납득했다. (어쩌면 내가 사실을 말 못할 이유가 있나보다 하고 이해해준 걸지도.) 부끄러워져서 방에 들어가서 또 울었다. 왜 납득하고 난리야.
  • T씨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너무 허무한 엔딩인가? 좀 더 희망찬 결말이었으면 좋았을 걸. 예컨데 내가 갑자기 (안전한 방법으로) 영안이 트여서, 함께하는 사람들을 제대로 자각하고 소통할 수 있게 된다든가. 그 다음엔 생각지도 못하게 T씨와 재회하는 거지. 내가 서 있는 곳이 희곡이 펼쳐지는 무대 위고, 그 극의 주인공이 나라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여긴 무대가 아니잖아? (이 스레를 보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이야기 속 인물이고 화자겠지만ㅋㅋ) 나는 현실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현실이란 것은 메인 스토리랄게 없는 공간이지. 안타깝게도 그런 기적을 기대하긴 힘들 것 같아.
  • T씨와의 일 말고도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사건은 많이 있었지. 그건 문득 추억을 상기하고 싶을 때 다시 이야기하는 걸로 할게. 아. 그리고 쫓기듯 학업에 종사하는 나날이 끝나면, 마법사랑 같이 세계 각지를 여행다닐 거야. 그러면서 기이한 이야기들을 만난다면 그때도 다시 이곳을 찾아 오려고.
  •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줘서 고마워 스레주,다음에도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싶어. 그리고 그 T라는 신은 분명히 레주한테 고마워 했을거야. 레주는 상냥하니까 자책하지 않아도 괜찮아.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는 또 그 신과 만날지도 모를테니까 그 때의 이야기를 기다릴게.
  • >>79 기다려준다니, 꼭 이야기를 들고 와야겠다. 따듯한 말 고마워. 주책맞게 눈물 터질 뻔했네ㅋㅋㅋ 인연이라. 그랬으면 좋겠다. 내 생각보다 단단한 인연이 있던 거였으면 좋겠어. 그리고 고맙다는 이야기를 한번 더 해야겠어. 덕분에 생각이 좀 더 정리됐거든. 어느 정도, 자책하고 있던 게 맞는 거 같아. 자각도 없었네. 과거에 내가 어떤 생각을 가졌던가 하고 분석하려 들었으면서, 지금 내가 무슨 심정인지도 정확히 몰랐던 건지... 우스운 일이야. 좀 차분해져야겠어. (그래도 역시 상냥한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보였다니 쪼끔 쑥스럽네.)
  • 사실 이건 마법사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기 시작한 글이야. 난 말로 할 때보다 글을 적을 때 생각 정리가 잘 되거든. 그런데 글을 다 쓸 때까지 혼자 앓자니 답답해서, 여기에라도 털어 놔 본 거야. 지금까지 읽어 줘서 정말 고마워. 들어 주는 사람이 있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 질문이랄 게 있을진 모르겠지만, 혹시 있다면 자유롭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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