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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018/12/23 22:02:11 ID : K7s4GnBe6lu
아프지 말자, 근 3년간 우울증 탓에 집안에만 틀어박혀있으며 낮엔 외출을 일절 하지않던 내가 할 말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번년도는 그 다짐이 실천으로 옮겨지길 빌어본다. 몇 안되는 머릿가닥을 쓰다듬으며 거만한 자세로 으스대었던 그 늙은 의사에게서 받아온 효험도 없던 치료제는 진작에 강가에 내다버린 지 오래였다. 처음부터 복학을 할 의도는 아니었다. 그냥 이대로 검정고시 친 다음 고졸만 따낼까- 라는 어림도 없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돌고돌아 결론은 그거였다. 그래, 오랜만에 학교도 다닐 겸 해서 복학 좀 해보자. 복학이 뭐 대수냐. 여운이 입가로 새나가는 헛웃음을 꾹꾹 참으며 노트의 한 장을 북, 찢어냈다. 우울증에 걸리기 전, 그러니까 3년 전에 고등학교에 들어간답시고 한껏 들떠하며 샀던 아기자기한 캐릭터 모양의 노트였다. 예전같았다면 한 장 찢어내기도 크게 아까워할 여운의 눈엔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사면이 온통 검은 여운의 방과는 퍽 대조되는 흰 필통에서 마커 하나를 꺼내든 여운이 종이에 힘주어 글씨를 써내려갔다. 아프지 말자. 툭, 여운의 힘을 이기지 못한 마커가 흰 종이에 검은 얼룩을 선명히 남기고선 책상의 밖으로 튕겨나갔다.
A 2018/12/23 22:05:23 ID : K7s4GnBe6lu
"씨발, 재수가 없으려니까." 나지막히 욕을 내뱉는 여운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깨끗했던 종이에 깊게 남겨진 검은 얼룩은 여운의 마음처럼 흉했다. 저만치 굴러가 구석에 처박혀있는 마커의 뚜껑도 닫지않은 여운이 그대로 자신의 방을 벗어났다. 방 안에 있으니 어째서인지 누군가 제 목을 틀어쥐는 듯 갑갑하고 숨이 막혀 금방이라도 질식할 것 같았다.
A 2018/12/23 22:11:06 ID : K7s4GnBe6lu
시침은 벌써 부지런히 달려 어느새 12를 가리키고 있었다. 밤 12시라, 여운이 소리없이 웃었다. 볼품없이 빼빼 마른 여운의 몸과 마치 창백하게 질린 듯한 느낌이 드는 그녀의 흰 피부가 어쩐지 유독 이 시간만 되면 생기가 돌았다. 까닭은 몰랐다. 그저 그녀는 12라는 숫자가 좋았다.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 밤과 새벽 그 사이의 어딘가. 입고있던 잠옷을 벗은 여운이 내일 복학하기로 예정되어있던 고등학교의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잔뜩 헝클어져있던 금발도 대충 손으로 빗어 올려묶은 여운이 운동화를 신었다. 초침소리밖에 나지 않던 이 텅빈 집에 도어락 소리가 울렸다.
A 2018/12/23 22:16:15 ID : K7s4GnBe6lu
그녀는 혼혈아다. 정확히 말하면 외국인 엄마를 두었던 사생아였다. 여운의 아버지, 아니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애매한 작자인 그 인간은 이름 석자만 대도 알아주는 유명한 그룹의 회장이었다. 휴가를 나가 첫눈에 반한 외국인이랑 원나잇을 했고, 그 사이에서 재수가 없어 태어난 게 그녀였단다. 당연히 아버지라는 인간은 그녀의 존재를 부인했고, 엄마라는 인간도 젖 뗄때까지만을 기다렸다가 이름도 모르는, 한국의 친척에게 여운을 떠넘겼다고 했다. 그녀가 삐뚤어지게 된 계기는 몇이 더 있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사춘기의 나이에 이것을 알아버렸던 충격이려나.
A 2018/12/23 22:21:27 ID : K7s4GnBe6lu
사놓고 한번도 신지 않았던 흰색의 스니커즈였다. 그녀는 어째서인지 밝은 계열의 색을 싫어했지만 그럼에도 흰색의 물건들을 집 안에 꼬박꼬박 쟁여놓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녀 자신도 그 이유를 몰랐다. 어째서 흰색을 싫어하면서도 왜 흰색만 보면 저절로 손이 갈까. 그녀도 그 이유를 몰랐다. 또한 알고싶지 않았다. 무엇이 되었던 자신의 과거와 연관되어있을 것이 뻔했기에. 고층 아파트가 줄지어 서있는 단지 밖을 빠져나가는 여운의 발걸음이 다급했다.
A 2018/12/23 22:28:07 ID : K7s4GnBe6lu
사실, 여운은 음지계에서 알아주는 꽤나 실력있는 바텐더이다. 지금 그녀가 자립해서 살아감에도 부족함없이 살 수 있는 이유는 이 직업 때문이었다. 이 일을 시작했을 당시, 여운의 나이는 고작 열 일곱이었다. 그마저도 만 나이로 친다면 열 여섯, 기껏해야 중학교 3학년 정도의 나이. 고작 바텐더가 무슨 일을 하기에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을정도로 돈을 많이 버는가 의심스러울 테지만, 실로 이 직업은 그냥 바텐더가 아니라 대답할 수 있다. 음지계에서 일하는만큼이나 여운의 직장 -직장이라 하기엔 뭐하지만- 에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수많은 검은 양복차림의 남자들이 드나들었다.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조직들을 보았고, 때때로 마피아들과 야쿠자들이 거래를 하는 장면도 흔치않게 목격을 해왔다. 그럼에도 여운은 태연한 척 제 할일을 했다. 제 앞에서 사람 여럿이 죽어감에도 그녀는 조용히 눈을 내리 깔고 있었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허점을 보일 시에는 죽어가는 이가 다른 사람이 아닌 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그녀는 붉은 입술을 꾹 다문 채 그들의 앞에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진열해놓는 와인잔을 닦았을 뿐이지.
A 2018/12/23 22:37:34 ID : K7s4GnBe6lu
딸랑, 모자를 눌러쓰고 들어오는 여운의 눈이 안도감으로 채워졌다. 많이 늦지는 않게 도착한 모양이었다. "어서 와, 퀸. 조금 늦었네?" 넥타이를 맨 경호원, 사실상 꽤 규모있는 조직의 간부인 제이가 아는 체를 했다. 여기를 매일 밤마다 드나들며 안면을 쌓았던 사람이 있냐고 묻노라면 그녀가 망설임없이 언급할 수 있는 사람은 제이였다. 이쪽 음지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잘생긴 페이스의 제이는 뭇 여성들의 마음을 단 한번만에 사로잡을 수 있는 말재간과 눈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여운에게는 예외. 첫만남에 여운을 보며 살살 눈웃음치던 제이의 정강이를 그녀가 내리찍음으로서 -우두둑 소리가 나게끔- 제이는 그녀에게 단 한번에 꼬리를 내렸다.
A 2018/12/23 22:40:52 ID : K7s4GnBe6lu
"많이는 안 늦었지?" "대략적으로. 근데 교복차림이네? 퀸 코스프레라도 하나 봐?" 짧게 대답한 제이가 여운의 옷차림을 보고 신기하다는 듯 살펴보았다. 워낙 오랜만에 봐서인지 그녀가 교복을 입는 걸 본 적이 없어서인지 제이는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꿈 깨, 코스프레에 취미 없거든." 제이에게서 등을 돌린 여운이 탈의실로 걸어들어갔다. 제이가 피식,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A 2018/12/23 22:44:47 ID : K7s4GnBe6lu
"어서오세요, Q입니다." 손님들이 들어올때마다 고개를 숙여 기계적인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는 항상 찬장에 깨끗이 진열되어있는 와인잔들을 닦고 또 닦았다. 조금이라도 이가 나가거나, 기스가 난 와인잔들이 있다면 그녀는 가차없이 그것들을 내다 버렸다. 완벽하지 않은 것은 쓸모가 없다. 완벽하지 않은 것은 존재 가치가 없다. 그러기에, 그녀 자신 역시도 쓸모가 없었다. 그녀는 완벽하지 않았으니까.
A 2018/12/23 22:48:28 ID : K7s4GnBe6lu
"세븐, 다운 스테이션으로." "나인 룸입니다." 오늘도 한 차례 피바람이 부는 것인지, 검은 정장의 남자들이 총을 빙글빙글 돌리며 걸어들어왔다. 그 수가 족히 서른은 넘어보였다. 한숨을 쉬며 머리를 더욱 단단히 끌어묶었다. 출입문쪽의 블라인드를 내리고, 스탠드등만 켜놓은 채 문을 걸어잠그었다. 벌써부터 코 끝에서 아릿한 혈향이 진동을 하는 것 같았다.
A 2018/12/23 22:49:41 ID : K7s4GnBe6lu
***
A 2018/12/23 22:53:00 ID : K7s4GnBe6lu
간밤에 집에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다. 기분이 가라앉아서 설탕을 통으로 부어버린 듯, 달다 못해 아린 칵테일 한 잔을 모조리 삼켜버린 후 멍한 정신을 붙잡고 새벽 세시 쯤에야 집에 온 것 같았다. 머리가 욱신거렸다. 세 시간밖에 자지 못했는지, 시각은 정확히 6시였다. 화장실에 들어가 얼굴에 남아있는 화장 잔여물들을 닦아내고 씻었다. 묘하게 흥분되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3년만의 학생 생활이었다. 3년만에...... 그녀는 제자리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A 2018/12/23 23:06:31 ID : K7s4GnBe6lu
보는 사람들 있을까나
이름없음 2018/12/24 00:11:36 ID : u2txU445bA0
나 보고 있어!
A 2018/12/24 19:44:05 ID : K7s4GnBe6lu
고마워 그쪽덕분에 힘내서 쓸게
A 2018/12/24 19:49:33 ID : K7s4GnBe6lu
자신의 뒤쪽에 무언가 매달려있는 느낌이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적응이 안됨과 동시에 믿기지가 않았다. 낮에는 정신병 환자, 밤에는 바텐더. 3년동안이나 그런 삶을 살았던 그녀에게, 누구보다 밝은 빛을 두려워했던 그녀에게. 저 멀리 피어나는 햇빛이 손짓하고 있었다. 괜찮다고, 이젠 그 가방을 메고 문을 열라고. 밖에는 오직 그녀만을 위한 빛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그녀가 덜덜 떨리는 한 손을 다른 손으로 감싸잡고 손잡이에 손을 갖다대었다.
A 2018/12/24 19:52:43 ID : K7s4GnBe6lu
철컥, 하고 문이 열렸다. 3년만에, 이 문을 제 손으로 열었다. 눈물 한 줄기가 상기된 여운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렇게, 쉽게 열 수 있었던 문을. 그동안, 나는..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던 여운이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내 안에 갇혀 살았구나.
A 2018/12/24 19:56:42 ID : K7s4GnBe6lu
아까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녀는 계단을 내려갔다. 나도, 이제 조금은 행복해도 되는거겠지. 그 동안 누리지 못했던 '평범한' 삶을 조금은 살아도 되는거겠지. 계단을 향해 마지막 발을 딛던 여운의 호흡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여태껏 한번도 보지 못한 미묘한 얼굴을 하고선- 그녀는, 아침에 발을 들였다.
A 2018/12/24 19:59:29 ID : K7s4GnBe6lu
학교로 오기엔 제법 이른 시각임에도 등교길은 시끄러웠다. 그녀와 똑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둘이나 셋,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학생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그 나이대의 아이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생기가 배어있었다. 여운은 그 아이들을 보는 순간 자신도 알 수 없던 감정에 사로잡혔다. 생소한 느낌이 뼛속 깊이 파고드는 듯 했다. 여운은 몰랐겠지, 그 감정의 이름이 부러움이라는 것을.
A 2018/12/24 20:08:05 ID : K7s4GnBe6lu
"저기, 쟤 뭐야?" 뭐가 그렇게 바쁜지 연신 핸드폰만을 두드리고 있던 지영이 자신의 조금 앞에 걸어가는 금발의 여자아이를 보고 그제서야 화면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얼굴을 들여다보는데 여념이 없던 몇 여자아이들이 지영의 중얼거림에 거울 너머를 쳐다보았다. 자신들보다 비슷해보이는 나이대에, 같은 교복. 그러나 그 피부만은 한 겨울 눈꽃처럼 희고 투명한 아이. "전학생인가." "알아서 뭐 하려고." 지영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머리만을 다듬던 시안이 무신경적인 어투로 핀잔했다. 지영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좆까, 라고 받아쳤다. 시안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A 2018/12/26 15:08:23 ID : K7s4GnBe6lu
여운이 느린 발걸음으로 학교 입구에 다다랐다. 어느 새 가방끈을 쥔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파리하게 질린 얼굴로 몇 걸음 가던 여운의 뒤에 검은 그림자가 비쳤다. "서 운!"
A 2018/12/26 15:11:09 ID : K7s4GnBe6lu
타악, 별안간 누군가가 여운의 목에 팔을 둘렀다. 안 그래도 호흡이 불안정했던 여운이 목에 압박이 가해지자 켁, 하고 기침을 했다. "어라, 왜 한 마디도 안 하냐? 평소같으면 욕부터 먼저 나오는 놈이." 제이랑 제법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 분위기는 묘하게 다른 남학생이었다. 장난스럽게 웃던 남학생이 천천히 고개를 돌린 여운과 눈을 마주쳤다.
A 2018/12/26 15:13:13 ID : K7s4GnBe6lu
"....." "....." 둘 사이에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야, 학교 안 나온 사이에 성...형 했냐...?" 잠깐 여운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생각들이 오갔다. 그러다 나온 결론은 하나. "저... 그런 사람 모르는데요."
A 2018/12/26 15:15:11 ID : K7s4GnBe6lu
민망하게 뱉은 말 뒤로 천천히 남학생이 여운에게서 손을 뗐다. 그녀의 목에 선명한 붉은 자국이 남아있었다. 남학생이 천천히 손을 배로 포개더니, 고개를 푹, 아래로 꺾었다. 그러더니 한 마디. "죄송합니다!!!"
A 2019/02/04 14:00:46 ID : K7s4GnBe6lu
...뭐야. 한동안 멀뚱히 남학생을 바라보던 여운이 아까와 다를 것이 없는 표정으로 남학생에게서 시선을 떼곤 발걸음을 옮겼다. 모르는 사람과는 일절 상대하지 않는다 -정상인을 제외하고는- 는 것이 여운 나름대로의 신조였으므로 -게다가 이 남학생은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여운은 그 남학생을 버려둔 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학교의 내부로 들어갔다. 모처럼의 개학을 맞은 학교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만치서 풍겨오는 커피의 향은 아릴 듯이 달콤했으며 그 안은 활기차고 따뜻한 소리가 가득했다.
A 2019/02/04 14:07:54 ID : K7s4GnBe6lu
"...계십니까?" 지난 몇년간 밥먹듯 썼던 말들이 전부 무뚝뚝하고 투박한 단어들이었어서 그런지 교무실의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며 말하는 여운의 입에서는 군대에서나 쓸법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개의치않는 여운이었다. 말이 다 알아들을 수 있으면 말이지, 굳이 고쳐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언젠가 딱딱한 그녀의 말투를 지적하던 제이에게 대답했던 것이었다. 잠시 뒤 들어오세요- 라는 여자의 말이 들려오자 여운이 천천히 문을 열었다.
A 2019/02/04 14:30:12 ID : K7s4GnBe6lu
갈아내린 원두커피의 향이 짙게 배어나오고, 하나같이 생생한 이들이 담겨있는 그 곳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자신이 속했던 곳과는 전혀 다른 백색의 소음으로만 채워져있는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린 여운이었다. 역시, 이렇게나 단시간에 어두운 곳에만 머물렀던 자신이 양지로 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까? 쉽사리 적응되지 않는 분위기에 눈을 찌푸리자 문과 가장 가까이에 앉아있던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여운에게로 다가왔다. "예쁜 얼굴 그렇게 막 쓰면 퍽이나 보기 좋겠다, 너! 이름이 뭐야?"
A 2019/02/04 14:36:34 ID : K7s4GnBe6lu
"...여운이요." "풀네임?" "서여운." "말이 짧다?" "에헤이, 한 선생. 그쯤 해요. 첫날이라잖아." 여자가 들고있던 출석명단으로 여운의 머리를 쳤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옆에서 커피를 내리던 남자가 짧게 타박하자 여자의 얼굴이 다시금 장난기어린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나이? ... 대답 좀 하지? 스물이요. 여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몇살이라고? 스물이요.
A 2019/02/04 14:40:19 ID : K7s4GnBe6lu
"스물이 학교엘 왜 와? 재깍 수능치고 졸업이나 할것이지. 쌈질해서 1년 꿇은거야? 이제보니까 머리도 금발이네?" "혼혈인데요." "그럼 미안." 빠르게 잘못을 수긍한 여자가 노란색의 명단을 폈다. 하는 짓이 꼭 술쳐먹고 바 와서 지랄하는 진상들과 다를 것이 없다. 여운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여자의 출석명단을 째려보았다.
A 2019/02/04 14:49:10 ID : K7s4GnBe6lu
"꼭 너는 내가 담임 해야겠다. 3학년 8반!" 여자가 깔깔 웃으며 여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무뚝뚝히 네에, 대답하는 여운을 바라보던 여자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한지우. 네? 한지우라고, 내 이름. 우리 반 애들도 몇 모르는 내 이름이다, 고맙게 여겨? ...네. 누가 알려달랬나.
A 2019/02/04 18:12:07 ID : K7s4GnBe6lu
보는 사람 있을까
A 2019/02/06 16:50:16 ID : K7s4GnBe6lu
한동안 시덥잖은 얘기를 주고받던 여운에게 여자가 물었다. "부모님 성이 다르네?" "......" 여운의 얼굴에 잠깐 혐오의 빛이 스쳤다. 부(父)의 이름을 적는 곳에 회장의 이름이 단정한 필체로 쓰여있었다. 그러나 그 이름이 대기업의 회장과 같은 사람임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남자의 이름 한00, 여운은 자신이 그 성을 물려받는 게 너무나도 역겨워 스스로 이름을 고쳤다. 언젠가 들었던 어머니의 한국식 성과 같은, 서여운으로.
A 2019/02/06 17:00:23 ID : K7s4GnBe6lu
굳어있는 여운의 표정을 살핀 여자가 아무일이 없었다는 듯 한손에 명단을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운 역시 아무 말 없이 여자의 뒤를 따랐다. 애써 의미없는 말을 듣는 것보다는 아무 말 않는 여자의 반응이 훨씬 나았다. 여자를 따라 올라간 4층은 고등학교답지 않게 화사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것은 퍽 여운의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8반 앞에 도착한 여자가 문틈으로 시끄러운 교실을 둘러보곤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개선이나 한 장군같은 자세로 앞문을 쾅 소리가 나게 열었다.
A 2019/02/06 17:06:56 ID : K7s4GnBe6lu
"지금 떠든 새끼들 다 튀어나와. 셋 셀동안 안나오면 한 시간동안 단체 기합이다. 하나, 셋." 시끄러운 교실이 여자가 들어서자마자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여자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하나를 세자 몇 아이들이 교탁 앞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아이들이 이상하리만치 여자에게 절대복종하는 꼴을 여운은 그저 떨떠름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누가 먼저 시작했어?" "박지현이요." "그럴 줄 알았다. 박지현 이리 안 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여자에게 다가선 지현의 머리를 여자가 들고있던 명단으로 내리찍었다. 빡, 하는 소리가 세게 울렸다. 아까 여운에게 했던 것은 장난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걸 몸소 체감한 순간이었다.
A 2019/02/06 17:12:27 ID : K7s4GnBe6lu
"이제부터 누가 시끄럽게 하던지 다 똑같이 맞는다. 서여운 들어오고, 박지현 들어가." "네." 여운이 조심스럽게 앞문을 열고 들어섰다. 작은 체구에 아담한 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에 긴 속눈썹은 화장이 들떠있는 여자아이들이나, 게임에 대해 열정적으로 토론하던 남자아이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것이었다. "혼혈, 외국에서 살다왔단다. 한국말 잘하니까 놀려도 다 알아들어. 인종차별하거나 그런 새끼들 있으면 명단 모서리로 대가리 함몰될때까지 빻을 줄 알아. 그럼 전학생, 인사."
A 2019/02/06 17:15:51 ID : K7s4GnBe6lu
안녕하세요, 서여운입니다. 어색하기 그지없게 인사를 마친 여운이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여자는 여운의 자리배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중인듯 했다. "야, 이시안." "왜." "쟤 아까 걔 아니야?" 여자의 눈치를 보며 아이라인을 그리던 지영이 일순간 기겁하며 시안을 불렀다. 어딜가나 눈에 띌 정도로 금발은 여운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A 2019/02/06 17:23:28 ID : K7s4GnBe6lu
"쟤 진짜 설마했는데, 혼혈이네. 존나 예뻐. 비율 봐, 째진다." "예쁜 건 맞네. 하긴, 혼혈이 예쁘지." 마스카라를 다듬은 시안이 지영의 말에 동의했다. 시안의 옆에 앉아있던 민주도 여운의 외모에 감탄했다. 허얼, 쟤 화장 하나도 안했는데 얼굴 하얗고 입술 빨간 거 봐. 존나 백설공주인 줄. 병신아, 백설공주는 흑발이거든? 어 야, 그러고보니까 백설공주 미국 애 아니야? 근데 왜 흑발이야? 염색했나보지. 그 시대에? 아 몰라 씨발! 다물어. 넌 꼭 왜 나한테만 지랄이야... 닥치라니까?
A 2019/02/06 17:28:24 ID : K7s4GnBe6lu
곰곰히 생각하던 여자가 아 맞다, 하며 다시 교탁으로 되돌아왔다. "스무 살. 얘 1년 꿇어서 현 나이는 스물이니까, 깝치면 내가 아니라 얘한테 먼저 맞겠다. 그러니까 귀찮게 굴지 마라? 특히 남자들!" 아이들이 뜨악한 표정으로 여운을 바라보았다. 일순간 교실은 술렁임으로 가득찼다. 그럼 학교 끝나고 술 마셔도 되냐? 아마 될 걸, 스물이래잖아. 와, 존나 부러워. 당당하게 살 수 있겠네? 그렇겠지. 담배도 살 수 있겠네? 그렇겠지. 콘돔도? 아 이 씨발아!
이름없음 2019/02/10 02:05:00 ID : u2txU445bA0
보고 있어 새해 복 많이 받았지? 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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