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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26 11:18:02 ID : 8o42HvcnA40
나에겐 친구가 있다. 이런저런 잡다한 것을 일고 그런 걸 느끼는 친구가. 그 친구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그 애는 구름을 닮았었다. 몽실몽실하도록 의식이 흘러가는 게 꼭 구름과도 같았다.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어냐고 물으면 말갛게 웃으며 하늘의 색을 좋아한댔다. 하늘색도 아니고 하늘의 색이란다. 퍽 시적인 말이기도 하고 그런 게 우스울 나이라 웃으며 넘어갔었다. 제 태명도 하늘이라 했던 그 애를 내가 하늘이라 해도 이상할 것은 없겠다. 몽실몽실한 구름 몇을 품은 하늘. 하늘이라고 그 애를 부르도록 하자.
🌌 2018/12/26 11:22:19 ID : 8o42HvcnA40
첫 번째 이야기. 하늘이는 색청이다. 흔히들 말하는 공감각자지만 이걸 따로 설명하는 법을 몰라서 그저 내버려둔다고 한다. 가끔씩은 맛과 향 역시 소리와 색으로 표현된다고 했다. 그렇다고 일상생활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간다.
이름없음 2018/12/26 11:27:38 ID : SLe0k5SFjxO
보고있어
🌌 2018/12/26 11:28:31 ID : 8o42HvcnA40
내 목소리는 무슨 색이야, 하고 묻거나 이 단어는 무슨 색이야, 하고 물으면 한참을 곱씹다 색깔을 말해주는 하늘이를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봄비는 억새의 이삭 색깔이더라. 겨울비는 채도 낮은 푸른색이었으며 여름비는 초록빛에 가까운, 명도가 낮은 청록색이랬다. 타 공감각자 눈에도 그리 보였을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는 하늘이가 최초의 공감각자였으며 아마 그 이후에도 다른 공감각자를 만나 보지 못 하리라.
🌌 2018/12/26 11:30:10 ID : 8o42HvcnA40
두 번째 이야기. 하늘이와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처음 만났다. 아무것도 모르던 1학년 시절, 사춘기며 과도기라 할 시기. 같은 동아리였고, 기숙사 룸메이트였다. 가끔씩 꿈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흥미로웠다.
이름없음 2018/12/26 13:53:39 ID : VgkoFbfTTXz
보고있어
이름없음 2018/12/26 16:38:47 ID : Xuq7xRB88i6
ㅂㄱㅇㅇ
🌌 2018/12/26 20:36:28 ID : 8o42HvcnA40
하늘이는 하찮은 예지몽을 꿨다. 그 날의 급식메뉴라던가, 누군가가 넘어졌을 때 주변의 반응과 공기의 흐름. 시각까지 하나 틀리는 것이 없었다. 데자뷰는 아니었더랬다. 하늘이는 꿈을 통해 미래라고 생각되는 것을 봤고, 자신이 해야할 바를 똑똑히 알았다. 전부 대단한 것들은 아니었으므로 누군가의 미래를 바꾸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조금씩이나마 바꾸는 것.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했고 그것이 우리의 그릇에 맞았다. 큰 것이라 해봐야 시험지의 답을 보고 틀릴 문제 몇 개를 더 맞은 것 뿐이었다.
🌌 2018/12/26 20:37:12 ID : 8o42HvcnA40
한참을 친해지고 서로 죽고 없으면 못 사는 그런 사이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부모님끼리 혹시 둘이 사귀냐며 물어오기도 했었다. 어느 날이었다. 하늘이는 굉장히 찜찜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고, 나는 얘가 늘 그렇듯 어디 아픈 줄 알았다. 걔는 자주 아팠고 그게 일상이어서 학교를 종종 빠지기도 했으니까.
이름없음 2018/12/26 21:13:03 ID : 8o42HvcnA40
하늘은 너희 어머님 말이야, 하고 운을 뗐다. 당시 엄마와 나는 가정사로 많이 지쳐 있었고 남의 입에서 나오는 내 엄마는 그다지 달가운 이야깃거리는 아니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하지 말라고 말하려던 찰나였다. "……혹시 발목 아프시다고 하지 않아? 왼쪽 발목 말이야." 정신이 멍해졌다.
이름없음 2018/12/26 21:13:42 ID : ba05O3AY787
왜 이거 또 써 저번 스레 폭파됐어?
🌌 2018/12/26 21:16:01 ID : 8o42HvcnA40
최근에 엄마는 왼쪽 발목이 시큰거린다고 했었다. 나는 그걸 굳이 친구들한테 말하지 않았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다. 사실, 그게 당연한 행동이었다. 굳이 친구들에게 말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말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말하지 않았고, 따라서 하늘 역시 몰라야 했다. 그게 당연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 최대한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물었다.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은 미묘한 얼굴을 한 채로 퍽 덤덤하게 말했다. 꿈 꾸고 일어나니까 왼쪽 발목이 아프길래.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 리가 없었다.
🌌 2018/12/26 21:16:49 ID : 8o42HvcnA40
폭파된 게 아니라 조금 수정할 내용도 있고 새롭게 시작할 겸 해서 다시 쓰기로 했어!
🌌 2018/12/26 21:17:16 ID : 8o42HvcnA40
조금 더 자세히 말해보라며 구름을 부추겼고, 하늘이는 조금 난처한 얼굴로 "꿈은 기억이 안 나는데, 네 어머니 생각이 나면서 왼쪽 발목이 시큰거리더라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실 거야. 아니면 병원이라도 가보라고 전해줘. 라고 했다. 그 때부터였나, 하늘은 무언가 '정상'의 범주에서 이상하리만치 벗어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은 생각보다 자주 있었다. 다른 친구를 유심히 보다 꿈자리가 사납지 않냐느니, 요즘 악몽 꾸지 않냐는 둥, 심지어는 내일쯤 어디(신체 부위)를 조심하게 다루어라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물론 입이 무거운 친구에게만 그런 말을 했기에 하늘이 이상하다는 말이 돌지는 않았다.
🌌 2018/12/26 21:17:34 ID : 8o42HvcnA40
하늘은 우리가 이상함을 느끼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물을 때가 되어서야 그제야 속내를 털어놓았다. 자신은 이상한 것을 본다고. 요약하자면, 하늘은 공감각자이고 가끔 예지몽을 꾸며 귀신 따위의 것을 본다는 사실이더라. 사실이라면 지독한 우연이었고, 거짓이라면 오히려 그걸 납득할 법한 사실이었다.
🌌 2018/12/26 21:17:49 ID : 8o42HvcnA40
하늘은 어릴 때부터 이상한 것을 보았다고 했다. 선천적인 것일 터였다. 하늘의 부모는 어린애는 으레 그런 것을 보기 마련이니 그런가 보다 했을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린아이의 헛소리 정도로 치부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늘은 어찌 되었든 부모의 그런 배려-혹은 무심함- 덕분에 '평범한' 아이로 자라날 수 있었다.
🌌 2018/12/26 21:18:54 ID : 8o42HvcnA40
세 번째 이야기. 하늘이 자신이 무언가 남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얼마 되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의 그림에는 없는 새카만 덩어리가 언제나 자리했기 때문이었다. 가족을 그릴 때도, 친구나 오늘 있었던 일을 그릴 때도 변함이 없었다. 항상 하늘의 옆자리엔 그림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검은 사람의 형체가 그려져 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유치원 때의 그림을 보관하고 있던지라 나 역시 그걸 본 적이 있었다. 지금이야 리모델링을 하면서 외가의 창고로 갔기 때문에 자신조차도 볼 수는 없다고 한다. 어린 아이가 그림자나 명암을 그릴 리는 없었다. 하늘은 썩 잘 그린다는 평을 받았으나 애석하게도 천재의 축에 속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하늘이 어릴 적에는 일기장에도 가끔씩 나에게는 검은 친구가 있다, 의 뉘앙스로 적은 적이 있다 했다. 그걸 본 어머님한테 엄청 혼나고 다른 주제로 일기를 다시 썼다지만…… 그렇다면, 하늘의 옆에 자리해 있던 그 그림자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 2018/12/26 21:19:05 ID : 8o42HvcnA40
네 번째 이야기. 특이하게도 하늘의 가족 중에는 무당이나 신기가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외가 쪽이나 친가 쪽 중 어느 곳에서도 '그 쪽' 사람이 없다는데, 하늘은 자기 자신도 그것이 신기하다고 했다. 추석 즈음 그 해 가장 큰 보름달 아래 태어났다는 하늘은 어쩌면 음기를 강하게 받은 게 아닐까?
🌌 2018/12/26 21:19:17 ID : 8o42HvcnA40
다섯 번째 이야기. 우리가 다녔던 학교는 꽤 오래되어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던 곳으로 그만큼 사람도 많이 죽었고 괴담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하늘은 더더욱 어두운 곳에 있기를 싫어했다. 종종 귀신을 보아도 아무렇지 않으려 노력한다는데, 그 중 몇 번 표정관리가 되지 않은 적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하늘이의 이야기를 조금 새롭게, 각색한 것이며 하늘이가 중학교적 친구에게 말해준 내용이다.
🌌 2018/12/26 21:20:14 ID : 8o42HvcnA40
나 사실 귀신 보는 거 아니냐고? 아니라니까 그러네. 아, 아주 친한 사람이 딱 한 번 본 적 있기는 해. 너 깨어있는데 가위 눌려본 적 있어? 아무것도 안 했는데 갑자기. 예절실에 있던 일인데 우리 미술 조별과제 했다던 때 기억나? 그 때 이야기야. 원래 고등학생 조별과제가 그렇듯이 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했었잖아. 나도 그랬었는데, 그 중에 가장 친했던 애가 엄청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거든. 방언도 터진 적도 있었대. 나는 그런 것 안 믿지만, 아무튼. 그런데 말이야. 조별과제 하기 전에 걔가 기도를 하려 했더래.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일들이 모두 순탄하게 풀리도록 도와주세요. 어쩌고.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 돼. 기도를 하려는 그 순간, 가위가 눌렸던 거야. 가위를 한두 번 눌린 게 아니라지만 그렇게 무서웠던 적은 처음이었을 거래.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는 목사님 이야기를 떠올려서 되는대로 생각나는 구절을 내뱉었는데 그게 딱 주기도문이었대.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 하고 입을 떼려는데 거기서
🌌 2018/12/26 21:20:29 ID : 8o42HvcnA40
하늘에계신우리아버지우리를시험에들게하지마시옵고다만악에서구하시옵고다만악에서다만악에서다만악에서다만악에서우리를시험에들도록다만악에서하늘에계신우리아버지우리를시험에들게하지마시옵고다만악에서구하시옵고다만악에서다만악에서하늘에계신우리아버지우리를시험에들게하지마시옵고다만악에서구하시옵고다만악에서다만악에서다만악에서다만악에서우리를시험에들도록다만악에서다만악에서다만악에서우리를시험에들도록다만악에서하늘에계신우리아버지우리를시험에들게하지마시옵고다만악에서구하시옵고다만악에서다만악에서다만악에서다만악에서우리를시험에들도록다만악에서하늘에계신우리아버지우리를시험에들게하지마시옵고다만악에서구하시옵고다만악에서다만악에서다만악에서다만악에서우리를시험에들도록다만악에서하늘에계신우리아버지우리를시험에들게하지마시옵고다만악에서구하시옵고다만악에서다만악에서다만악에서다만악에서우리를시험에들도록다만악에서
🌌 2018/12/26 21:20:48 ID : 8o42HvcnA40
하면서 기분 나쁠 정도로 낄낄낄 웃더래. 알지도 못 하는 소리가 귓가에서 막 들리는데, 나 같으면 아주 울었어. 기도하느라 감았던 눈을 억지로 뜨려고 하면
🌌 2018/12/26 21:20:57 ID : 8o42HvcnA40
눈뜨려고? 눈주는거야? 그눈내꺼야? 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내꺼야
🌌 2018/12/26 21:21:08 ID : 8o42HvcnA40
눈 하나 뜨지도 못 하게 겁을 주고 그러는 거야. 그렇게 한참을 뭐라고 속삭이다가 가위가 조금씩 풀리길래 눈을 떴는데, 글쎄...... 계속 옆에서 기도하는 흉내를 내고 있었대. 걔가 거기에서는 죽어도 과제 못 하겠다고 해서 결국 카페로 옮겨서 회의만 하고 끝났었던 기억이 있네.
🌌 2018/12/26 21:22:14 ID : 8o42HvcnA40
여섯 번째 이야기. 학교의 역사가 깊은 만큼 동아리도 오래되었었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가장 역사가 깊던 합창단의 단원이었다. 제 1 음악실과 제 2 음악실, 그리고 음악 전공자들을 위한 연습실로 나눠진 별관 2층에는 여러모로 으스스한 소문이 많았다. 목이 잘린 선배가 나온다던가, 밤에 거울을 보면 혼자가 아니라는 그런 몇몇은 사실인 소문들. 소문은 으레 살과 살이 붙여져 과장되어 퍼지기 마련이었고 오래된 곳에서는 그 거품이 더 심했다.
🌌 2018/12/26 21:27:43 ID : 8o42HvcnA40
음악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따금씩 귀신의 장난으로 혼자 음악실 안에 있던 사람은 밖에서 열어주지 않는 한 나가지 못 하게 된다더라, 하는 소문이 있었다. 대다수가 무섭다는 듯 떠들어 댔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무엇보다 하늘이가 시큰둥한 반응이었으니까. 당시의 나는 하늘이가 귀신 이야기만 나오면 좋아하는 오컬트 마니아인 줄 알았으므로, 자칭 귀신 본다는 애가 그렇게 시큰둥할 리 없다는 생각에서 도출해낸 나름의 결론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왜 관심을 가지지 않았느냐 물었을 때, 하늘이는 그걸 듣고 딱 한 마디 했었다.
🌌 2018/12/26 21:28:02 ID : 8o42HvcnA40
"내가 왜 그걸 신경 써?"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늘이는 그에 대해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오컬트 마니아긴 했지만 귀신을 보고 듣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니까. 뒷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어쨌든. 합창단원의 특권 중 하나는 마음대로 음악실을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학교에 노래방 기기가 있었으므로 노래를 부를 수도 있었다. 종종 그게 좋다며 하늘이는 나를 따라 음악실에서 놀기도 했었다. 문제는 혼자 있을 때였다. 혼자 합창 연습을 하고 난 뒤에는 누군가 꼭 제 노래를 듣던 것처럼 있을 리 없는 인기척이 존재했다. 찜찜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도 기분 탓이라 여기며 어떻게든 넘어가려 했었다. 귀신의 존재를 부정해오기도 했었으므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쑥 하늘이가 나에게 말했다. "오늘도 연습 가면, 나랑 같이 가."
🌌 2018/12/26 21:28:43 ID : 8o42HvcnA40
하늘과 함께 있으면 애초에 찜찜한 기분도 들지 않았고 오히려 유쾌하기까지 했으므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자고 대답한 이후부터 방과후가 기대되었다. 어쩌면 그게 화근일는지도 몰랐다. 정규 수업 시간이 끝나고, 저녁을 먹기 전에 비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그 시간에 음악실에서 떠들고 노래도 부르며 놀았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자 출출해지기 시작한다는 하늘을 끌고 학교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때까지는 꽤나 평범한 일과였다.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야자 1교시가 되자 하늘이는 야자를 하기 싫다는 이유로 음악실에 눌러 앉아 휴대폰을 하고 있었고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합창 연습을 했다. 간간이 노래를 못 부른다며 성질을 부리는 하늘을 무시하고 가끔은 반응해주면서. "나 갈게." 야자 2교시가 채 끝나지 않았을 무렵 불쑥 하늘이가 꺼낸 말이었다.
🌌 2018/12/26 21:29:16 ID : 8o42HvcnA40
"벌써 가게? 왜?" 아직 야자도 안 끝났잖아. 내가 품은 의문이었다. 진짜 노래를 못 불러서 가나? 하는 의문도 들었다. 말하지도 않은 그 의문을 다 알고 있다는 듯 하늘이는 손사래를 치면서까지 웃으며 부정했다. 그게 아니라 엄마가 나오라고 했단다. 간식 사주겠다고, 지금 정문 앞이라고. 맛있는 걸 마다할 하늘이가 아니었으므로 조금 서운했지만 나는 얼른 가라고 말했다. 신난 하늘이는 바로 가방을 싸고 음악실을 먼저 빠져나갔고, 나는 하는 수 없이 혼자 음악실에서 연습을 해야 했다. 어쩐지 기분이 찝찝했다. 나 혼자 있는데, 누군가가 있는 듯한 그런 느낌. 서둘러 저녁 연습을 마치고 나가려 문을 열었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 나를 비웃는 환청을 들으며 패닉에 빠지기 시작했다. 왜지? 왜 문이 잠겼지? 경비 아저씨가 실수로 잠갔나? 당황한 나는 문을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문이 아래위로 고정되는 형식이 아닌 두 문을 함께 연결하여 잠그는 형식이었기에 앞뒤로 흔드는 대로 조금이나마 덜컹여야 정상이었다.
🌌 2018/12/26 21:29:26 ID : 8o42HvcnA40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2018/12/26 21:29:45 ID : 8o42HvcnA40
온갖 의문이 머리를 가득 채울 때쯤에 음악실의 모든 조명은 팟, 하고 꺼졌다. 정전이었다. 아니, 차라리 정전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설마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으나 정말 귀신이 한 짓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 바람과는 다르게 선배들이 말해주었던 그 모든 괴담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음악실에는 귀신이 산다고, 혼자 있게 되면 열리지 않을 때가 있을 거라고. 그런데 정작 해결책 따위는 생각이 나질 않았다. 어떻게 행동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했지? 키득거리며 비웃는 소리는 귓가에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고 이젠 그마저 변형되어 무어라 말을 걸고 있었다. 차라리 미쳐버리는 게 나을 성 싶었다. 문득 뚜렷하게 들린 소리는 "그러게 왜 그 애를 데려왔어? 무서웠잖아." 이제 우리랑 같이 있자. 라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 2018/12/26 21:30:47 ID : 8o42HvcnA40
아. 나는 이제 진짜 끝이구나. 하늘을 괜히 데려왔어. 이제 여기에 갇혀서 영영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몰라.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지? 하늘이는 왜 하필 오늘 나와 같이 가지 않은 거지? 함께 가도 됐잖아. 하는 생각들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문을 두드리던 손은 아파왔고, 공포심은 더해만 갔다. 억울하고 서러웠다. 아프고 슬펐다. 수치도 모르고 엉엉 울면서 몸을 문에 갖다 박아도 보고 누구에게 들리지라도 않을까 살려달라 있는 힘껏 외쳐도 보았다. 체감상 몇 시간은 지난 것 같았다. 나는,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목이 죄어오는 것을 느꼈다. 분명한 죽음의 서막이었다.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앞으로는 들이지 않을게요. 반쯤은 쉰 목소리로 외치며 극장의 것을 닮은 그 문을 득득 긁고 보이지도 않는 그 환청에게 애원을 했다. 나는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몰랐다.
🌌 2018/12/26 21:31:01 ID : 8o42HvcnA40
따르르르릉,
🌌 2018/12/26 21:31:39 ID : 8o42HvcnA40
구세주였다. 깜박하고 벨소리를 무음모드로 해두지 않은 게 나를 살렸다. 몇 번이고 울리는 벨소리에 나는 누군지도 확인하지 않고 허겁지겁 전화를 받았다. "야, 문 열어!"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급하게 외친 하늘이었다. 하늘이의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문을 열었다. 아. 문이, 열렸다. 그것도 너무도 쉽게. 내가 죽어가던 시간이 거짓이던 것처럼. 그리고 문 앞에는 숨을 거세게 몰아 쉬는 하늘이가 있었다. 문 손잡이를 쥔 채로. "괜찮아?" 잔뜩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던 하늘이는 숨을 몇 번 더 몰아 쉬다 제 페이스를 되찾고 철퍼덕 바닥에 주저 앉았다. 뛰어온 모양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며 묻고 싶었지만, 그럴 기력도 없었고 아직 음악실 안에 있었으므로 나는 허둥지둥 밖으로 기어나갔다.
🌌 2018/12/26 21:32:05 ID : 8o42HvcnA40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숨통이 그제야 트였다. 울음을 겨우 삼키고 진정시키고 난 뒤 주변을 둘러보니 하늘이는 말없이 내 옆에 있었다. 괜히 화가 치밀었다. 너만 나가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순 억지인 걸 알고는 있는데, 어디에 이 서러움을 풀어야 할지 몰라서 하늘에게 그 화살을 돌렸다. 왜 왔어, "겨우 5분이야." 생뚱맞은 대답이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눈살 찌푸리며 다시 올려다 보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굉장히 의외의 것이었다. 어쩌면 나에게만 의외일 지도 몰랐다. "5분 걸렸다고. 나 나가고, 너 갇혀서 이 사달이 난 지."
🌌 2018/12/26 21:32:32 ID : 8o42HvcnA40
머리가 멍해졌다. 몇 시간이라고 느꼈던 게, 겨우 5분? 그렇다면 아직 야자가 끝나지도 않았다는 말이 된다. 정신이 퍼득 들어 휴대폰을 살폈다. 아. 오후 9시 30분. 야자가 끝나기 30분 전이었다. 그 후론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늘과 손을 잡고 교문을 빠져 나오고, 집에 가고. 몸에 시퍼렇게 든 멍을 보고 나서야 나는 이게 꿈이 아님을 알았다.
🌌 2018/12/27 14:17:01 ID : 8o42HvcnA40
그리고 괴담은 어디까지나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까지.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무렵. 신입생 신고식치고는 굉장히 늦고, 끔찍했던 경험이었다. 나는 합창단을 탈퇴했고 다른 동아리에 들었으며 내 2학년 예체능 선택 과목은 음악이 아닌 미술이었다. 아주 사소한 것들만이 바뀌었을 뿐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괴담 정도로 소비하기로 했다.
🌌 2018/12/27 14:17:44 ID : 8o42HvcnA40
일곱 번째 이야기. 2학년 2학기 초반, 한창 더울 때 그 즈음이었다. 당시의 우리들은 무서울 게 없었고 눈에 뵈는 게 없었다. 고 3들은 죄 수험생이라는 명목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 했고, 고 1들은 신입생이고 아직 학교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이유로 행동에 제약을 많이 받는다. 분명 부조리한 것들이었으나 타 학교 역시 그러리라는 이유로 죄 눈 감는 학교의 '전통'이었다. 학교는 2학년이 장악을 하고 있었다 해도 무방한 것이었다.
🌌 2018/12/27 14:18:27 ID : 8o42HvcnA40
어찌 되었건 우리는 그 때에도 철이 없었고, 괴담이 득실한 오래된 학교에서 담력시험을 할 만큼 멍청한 편이었다. 제일 무서운 사람이 제가 똑똑하고 다 큰 줄로만 아는 사람이랬다. 우리가 꼭 그러했다.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재미있겠다, 하는 유쾌한 생각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 2018/12/27 14:18:51 ID : 8o42HvcnA40
삼겹살 파티를 하고 나서 노래도 부르고 그 후에서야 담력시험이 시작된다. 하늘이는 겁이 많았으므로 담력시험에 참여하는 것을 꺼려했으나 조를 짜서 간다는 말로 꼬셔서 가게 되었었다. 아니나 다를까 긴장을 했던 건지 이유를 알 수 없게 하늘이는 체해버렸고, 결국 하늘의 조는 마지막으로 빠지게 되었다. 바늘이 없었기에 따지는 못 하고 배아제 몇 알을 삼켰다. 원체 허약한 축에 속했기에 약간의 걱정을 샀고 하늘이는 그걸 미안해하는, 평소와 같은 일들이었다. 나는 하늘과 같은 조였다. 트라우마 탓에 하늘이는 어두운 것을 무서워했고 나는 그걸 알고 있었기에 자진하여 같은 조가 되기로 한 것이었다. 담력시험 장소를 안내할 때 괴담을 이야기 해주던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는 방울이라 하겠다.
🌌 2018/12/27 14:19:39 ID : 8o42HvcnA40
낮고 음산한 목소리로 괴담을 속삭이는 것은 퍽 무서웠고, 무엇보다 사실이라는 것이 여름임에도 우리를 오싹하게 했었다. 괴담의 내용은 이러했다. 「운동선수 출신의 한 사내가 있었다. 그 사내는 어떤 이유로 미쳐버려 재혼한 여자의 딸을 강간한 뒤 죽였고, 그 딸의 시신을 은폐하기 위해 여기저기 끌고 돌아다니다 시신이 된 딸의 목이 부러지다 못 해 덜렁거리게 되었다. 그 딸은 당시 수험생이고 음악 전공이었던 탓에 그 혼이 아직 제가 죽음을 자각하지 못 했다. 아직도 목을 겨우 받친 채로 몸을 질질 끌며 음악연습실 부근에 문을 열어달라 애원한다며 전공생들 사이에서 괴담처럼 떠돌고 있다.」
🌌 2018/12/27 14:20:09 ID : 8o42HvcnA40
어디서나 있을 법한 괴담이었으나, 꽤나 최근에 일어난 일이었다고 했으므로 찜찜한 구석은 숨길 수가 없었다. 하늘이는 그 때까지도 담담하게 괴담을 들었었다. 그렇구나, 하고. 늘 그렇듯이, 무언가 알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담력체험은 솔직히 말해서 재미있었다. 밀실에서 퍼즐 풀기하며, 맨발로 걸어오는 친구들의 귀신 분장은 생각보다 리얼했으므로. 다만 하늘에게는 공포스러웠으리라. 담력시험은 휴대폰 불도 금지된 철저한 어둠 속에서 진행되었으니까. 하늘의 손을 잡고 무사히 담력 시험을 마치고 돌아오니, 먼저 돌아왔던 조의 애가 울고 있었다.
🌌 2018/12/27 14:20:39 ID : 8o42HvcnA40
그렇게 무서웠나 싶었지만 스릴 넘칠 정도의 담력시험이었기에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무슨 일이냐며 다가간 그 때, 그 친구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나, 귀신을 본 것 같아……" 보았다, 도 아닌 본 것 같아. 오히려 그 쪽이 좀 더 공포스러웠다. 귀신인지 아닌지 확신이 가지 않는다면, 우리 반 애가 아닌 건물에 다른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보다 현실적인 공포였다. 뭐 하러 이 야밤에, 혼자서? 하는 생각들. 결론만 말하자면, 그건 귀신이었다. 사람이 분장을 하고 머리를 늘어트리며 발을 질질 끌고 다닐 리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경비아저씨가 본 모든 CCTV에, 외부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 외에는 그 누구도 있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하늘이가 무언가라도 설명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하늘을 봤으나 그저 침착한 얼굴로 그 친구를 달래줄 뿐이었다.
🌌 2018/12/27 14:21:10 ID : 8o42HvcnA40
담력체험은 떠들썩하게 시작되었던 것과 달리 이후 몇몇 애들도 보았다는 귀신 탓에 조금은 으스스하게 마무리 되었다. 담임 선생님의 종례를 끝으로 각자 헤어지게 되었는데, 하늘과 같이 집에 가는 도중 하늘이가 불쑥 말을 꺼냈다. "너, 내가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도토리묵보다 가만히 있었는 줄 알아?" 알 리가 있겠나. 고개를 도리도리 저을 뿐이었다. 왜, 뭔데. "귀신이 자기 이야기 하면 찾아온다는 소리 들어본 적 없어?" 들어본 적은 있었다.
🌌 2018/12/27 14:21:29 ID : 8o42HvcnA40
괴담이라 할 것도 없이 그저 가벼운 썰에 지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뭐, 거짓말이겠거니 하고 안일하게 생각한 것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다. 거짓이 아니었단 말인가. 농담이었노라고 말하길 바라는 내 마음과는 달리 하늘이는 입을 다물었다. 퍽 오랜 침묵이었다. 나만 그렇게 느꼈을 가능성이 컸다. "다들 저 얘기 하는 줄 알고 몰려들 기세더라." 눈을 번뜩 뜨고 다 저희들만 주시했다더라. 몇몇 애들이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했던 게 생각이 났었다. 어쩐지 그 애들이 걱정되어 하늘을 힐끔거리자 걱정 말라 한다.
🌌 2018/12/27 14:22:11 ID : 8o42HvcnA40
"흥미만 보였을 뿐이야. 괜찮을 걸." 아마도, 라는 말이 뒤에 붙었지만 어조는 퍽 확신에 차 있었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야, 그래도." 한참을 걷다가 방향이 달라 갈라질 때가 되어서야 하늘이는 다시 입을 열었다. "등 뒤에 소금 뿌리고 자라. 호기심 생겨서 너 따라갈라." 나름의 조언일 터였다. 어쩌면 나에게뿐만이 아니라,
🌌 2018/12/27 14:22:27 ID : 8o42HvcnA40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 2018/12/27 14:26:53 ID : 8o42HvcnA40
여덟 번째 이야기. 하늘이는 어릴 때부터 기이한 일을 많이 겪었다고 했다. 스스로도 놀랍다고 했었다. 악몽은 꾸어도 가위는 눌린 적이 없었고, 어느 순간 자각몽과 예지몽은 꾸었으나 스스로 하고자 하지는 않았다. 그 악몽조차도 부모님이나 동생이 죽는 꿈이거나, 무작정 사람이 쫓아오는 꿈 정도였다. 오늘 할 이야기는, 사람이 죽는 것을 예견한 하늘의 중학생 시절 이야기다.
🌌 2018/12/27 14:27:11 ID : 8o42HvcnA40
중학교 2학년이었나, 햇볕이 따갑던 여름방학 때의 일이었다. 하늘이는 놀러 갈 겸 외조부의 문병을 위해 외갓집으로 내려갔었다. 친가보다는 외가를 좋아하던 하늘이었기에 유독 외가로 내려가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하늘의 집이 친조부모를 모시던 큰 집이어서 그랬을 가능성이 컸을 테지. ) 지금도 좋아는 하지만 어릴 적만큼은 아니라고. 중학생이던 하늘이는 지금도 그렇지만 조금 더 깨발랄했고, 호기심이 많았다. 몸이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요양병원이나 대학병원을 불문하고 병원 자체에 드나드는 것을 부모님이 못마땅하게 여기셨으나 그래도 손주가 할아비 보고 싶다 하는 감정은 못 말렸다더라. 하는 수 없이 허락을 하고 외조부를 뵙게 해주었댔다.
🌌 2018/12/27 14:27:50 ID : 8o42HvcnA40
"할아버지, 하늘이에요. 하늘이. 저 알아보시겠어요?" 조심스레 하늘이는 외조부의 손을 어루만지며 물었고 순간 외조부의 눈에는 이채가 돌았다. 심신이 고되어 정신이 온전치 못 한 사람이더라도 큰 딸의 첫째 손주. 당신의 첫째 손주만은 어찌저찌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하늘이구나, 뻐끔뻐끔 하는 입 모양 너머로 알아들은 말이었다. 그 날은 그걸로 끝이었다.
🌌 2018/12/27 14:28:20 ID : 8o42HvcnA40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내용을 알 수 없어 지루했으며 가만히 있기에는 하늘에겐 외사촌들과 놀아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의무라기보단 본인의 바람이었으리라. 오만 떼를 다 썼다 그랬다. 외사촌과 더 놀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그네들 집에서 자고 가겠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다만 어렴풋하게 본인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었다. 왜 이렇게까지 본가로 올라가고 싶어하지 않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 2018/12/27 14:28:45 ID : 8o42HvcnA40
찜찜함은 뒤로 젖혀두고, 무턱대며 머무른 사촌 집에서의 생활은 훨씬 즐거웠다. 밤 늦게까지 책을 읽고, 느긋하게 컴퓨터로 영화를 보는 그런 일상이었다. 한 이틀까지는 그랬다고 한다. 그 날 하늘이는 꿈을 꾸었다. 찝찝한 꿈이었다. 하늘이는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표를 두 장 구해야 했었다. 이유도 모른 채로 어딘가를 가려 표를 끊었다. 하나는 자신의 것, 하나는 외조부의 것이었으리라. 예를 들자면 오후 1시 36분 출발, ■■■행, 9번 출입구…… 등으로 표가 쓰여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유독 외워야 한다는 생각이 커 외조부를 찾으면서도 영단어를 외우듯이 달달 외웠더랬다. 1시 36분 출발, ■■■행…… 하며 외우고 있을 때쯤 외조부를 만날 수 있었다.
🌌 2018/12/27 14:29:21 ID : 8o42HvcnA40
9번 출입구 앞에서 대기하고 계셨던 것이다. 어떻게 아셨나 싶기도 했지만 우연이겠거니 싶어 표를 건네어 드렸다. 그 때의 시각 오후 1시 13분. 유독 눈에 들어오는 시계를 잠깐 보고 시간이 되자 줄을 서 차례대로 버스에 들어갔었다. 그런데 하늘의 차례가 되자 표가 위조된 것이라 뜨는 것이 아닌가. 위조일 리가 없었으나 위조였고, 가짜일 수가 없었으나 가짜였다. 그렇게 버스는 하늘을 뒤로 하고 떠났다. 하늘이는 그 행선지로 가는 버스의 마지막 손님이었다. 저를 뒤로 하고 떠나는 버스의 뒷모습을 보며 하늘이는 잠에서 깼다고 했다.
🌌 2018/12/27 14:29:50 ID : 8o42HvcnA40
유독 생생한 것이 퍽 찝찝할 꿈이었으나 수영장을 다녀왔었기에 피곤했고 무엇보다 예지몽조차도 개꿈으로 치부했을 시절이라 더 쉬이 넘어갔었다. 일주일 즈음 머무르자고 합의를 봤었더랬다. 나흘째 되는 날, 어쩐지 하늘이는 풀어놓았던 짐을 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몰랐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오늘 제가 입을 옷과 간단한 물건들만 제외하고 차곡차곡 짐을 싸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날은, 하늘의 외조부 병문안을 가는 날이었다. 하늘이는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 큰 애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흐릿한 기억이지만 그래도 나쁜 기억은 없었다더라. 그냥 누구 병문안을 가는구나, 정도의 생각이었지 애틋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고 했었다.
🌌 2018/12/27 14:30:11 ID : 8o42HvcnA40
병원이 대개 그렇듯 죽어 있는 삿된 것은 존재했고 하늘이는 최대한 의식하지 않으려 애를 썼을 뿐이었다. 하늘의 외조부는 사람을 기억하지 못 하셨다. 그 때 하늘은 오늘내일 하시는 양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당신의 고모 되시는 분은 물론이요, 아들이며 손자조차도 알아보시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의례적으로 외조모가 아이들의 손을 차례로 이끌며 이 애가 누군지 아시겠소, 하며 외조부의 손을 쥐게 했었다. 돌아오는 답은 모두 모르겠다는 것이었고 이는 모두가 예상했기에 그렇구나 하고 말았었다. 이변은 하늘이 외조부의 손을 쥐었을 때 일어났다. 외조부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 2018/12/27 14:31:29 ID : 8o42HvcnA40
안녕, 스레주야. 저번에 쓰던 건 여기까지였어~! 오늘은 아마 이게 다일지도 모르겠다. 조금의 보고있어나, 갱신같은 반응은 스레주를 즐겁게 해주니까 많이 반응해줬으면 좋겠어!!
이름없음 2018/12/27 15:19:45 ID : vwmtwGpU1yN
보고있어!!
이름없음 2018/12/27 19:25:12 ID : K0pQmmk04Gp
개앵시인
이름없음 2018/12/27 19:46:42 ID : ze7xQmr9fWi
보고있어!!
🌌 2018/12/28 19:02:19 ID : 8o42HvcnA40
손주구나, 내 첫 손주야. 힘겹게 속삭이던 말을 하늘은 놓치지 않았다. 하늘은 저를 알아봤다는 것에 놀라야 했는지 아니면 아직도 말할 기력이 남아 있다는 것에 놀라야 했는지 몰랐다. 할아버지는, 무어라 입을 더 뻐끔거리다 하늘과 눈이 마주치자 그제야 숨을 거두셨다.
🌌 2019/01/04 20:16:29 ID : QoK0mk5SLao
무섭지는 않았다. 타인의 첫 죽음이었으나 무슨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일어나지도 않았다. 하늘은, 놀라우리만치 무덤덤한 감정을 겪었다. 그럼에도 눈물은 나왔다. 그게 이상하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 2019/01/04 20:19:10 ID : QoK0mk5SLao
눈물이 얼마나 나왔을까. 애들은 볼 것 없다고 한 시체 확인을 하고, 장례식장에 안치된 것을 보고서야 눈물이 그쳤다. 다시는 못 볼 거란 생각이 이제와서 생각하면 슬펐던 것도 같았다.
🌌 2019/01/04 20:21:16 ID : QoK0mk5SLao
신기한 일은 이제 시작되었다. 사망시각, 장례식장 이름(당시 머무시던 병원에는 장례식장이 없었다), 장례식장 호실이 하늘의 꿈에서 나오던 것과 완벽하게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오후 1시 36분 사망, ■■■장례식장 9호실.
🌌 2019/01/04 20:21:42 ID : QoK0mk5SLao
지독하게도 인위적이었다. 당시에는 하늘조차 인식을 못 하고 있었다.
🌌 2019/01/04 20:22:14 ID : QoK0mk5SLao
문득 생각한 것이지만, 그렇다면 하늘이 그 버스를 타게 되었더라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 2019/01/04 20:22:43 ID : QoK0mk5SLao
뒷맛이 좋지 않은, 하늘이 겪은 첫 죽음의 이야기를 여기서 마친다.
🌌 2019/01/05 13:26:53 ID : 8o42HvcnA40
흔히들 괴담에는 기승전결이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그냥 평범한 한 사람의 이야기로, 결말이 찝찝한 게 대다수일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면,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 나가도록 하겠다.
이름없음 2019/01/22 15:36:27 ID : hgjdvilDs1a
흐어어엉 갱신 너무 글 잘 쓴당!!
🌌 2019/01/27 22:46:57 ID : 8o42HvcnA40
입원하고 오느라 늦어졌어. 미안해. 지금은 퇴원했으니까 걱정은 안 해도 돼!
이름없음 2019/01/27 23:56:19 ID : 62HwnwpRCjc
ㅂㄱㅇㅇ
이름없음 2019/02/10 18:56:42 ID : 6nTO8nRwmnB
갱신! 스레주가 푸는 이야기 너무 빠져들게 잘 한다ㅠㅠ
이름없음 2019/02/12 00:28:02 ID : DBwJO5UY3Bg
ㄱㅅ
🌌 2019/02/15 14:00:03 ID : 8o42HvcnA40
아홉번째 이야기, 하늘은 어느 순간 알게 된 이야기가 참 많았다. 그 어느 순간 알게 된 정보는 생각보다 구체적이었고 광범위했다. 이를테면 수학이라던가, 신과 관련된 이야기들.
이름없음 2019/02/15 14:16:47 ID : farfe2GoNBw
오오우
이름없음 2019/02/15 15:10:29 ID : cNByY8i1fPc
너무 재밌게 읽고 있어~~~ 계속 올려줘~~~ 레주 글 진짜 잘쓴당
🌌 2019/02/20 12:04:48 ID : vu2smGk4Mrt
그것을 어떻게 알았느냐면, 허공을 보며 이야기하거나 이따금씩 일반인은 알지 못 할 이야기를 할 때였다. 어디서 알았냐 물으면 하늘은 항상, "자연스레 알게 되었어." 라거나 "어느 순간 알고 있더라." 따위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 2019/02/20 12:38:42 ID : vu2smGk4Mrt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누군가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어디서 본 것도 아니라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니.
🌌 2019/02/20 16:06:46 ID : 8o42HvcnA40
이 이야기는 거의 유일하게 내가 뒷사정을 알지 못 하는 이야기인데,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고만 하였을 뿐이다. 하늘은 대표적인 예로 신내림을 받을 때나 굿을 할 때 방울을 흔드는 이유가 신을 포함한 귀신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또, 물가에 귀신이 많은 이유는 물이 음기를 갖고 있는데 귀신은 음기에 끌리게 되어있기 때문에 음지와 같이 서늘한 곳에 자주 모인다고 했다.
🌌 2019/02/20 16:13:43 ID : 8o42HvcnA40
구글링을 해서 알게 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을 할 정도로 하늘은 한가한 편이 아니었고, 그런 것으로 거짓말을 할 위인은 아니었으므로 나와 친구들은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무슨 일이 있었겠거니 하고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 2019/02/20 16:14:02 ID : 8o42HvcnA40
이것으로, 아주 작고 사소한 아홉 번째 이야기를 마친다.
🌌 2019/02/20 20:33:31 ID : 8o42HvcnA40
열 번째 이야기. 이 이야기는 나보다 하늘이 더 풀기 쉬울 것 같다는 생각에 하늘의 입을 빌려보려 한다. 올리는 것은 하늘의 문자를 복사하여 올릴 예정이다.
이름없음 2019/02/20 20:34:10 ID : thhxVaoK5hA
보고있어
🌌 2019/02/20 20:37:11 ID : 8o42HvcnA40
안녕하세요. '하늘' 입니다. 이 친구가 스레딕을 한다길래 한 번 와서 훑어 봤더니 저를 무슨 초능력자 취급을 했네요. ㅎㅎ 초능력자는 아니지만 귀신도 대충 보고 대충 예지몽을 꾸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으니 딱히 이 친구의 글에 태클을 걸진 않겠습니다.
🌌 2019/02/20 20:48:56 ID : 8o42HvcnA40
이번 이야기는 조금 길 것 같아요. 자칫 루즈해질 수 있으니 최대한 빨리 써보겠습니다. 여기선 반말을 쓰는 거라고 하니 반말도 써볼게요. 제가 신에게 시집을 간 꿈 이야기, 아주 작은 열 번째 이야기 시작합니다. :)
🌌 2019/02/20 20:53:21 ID : 8o42HvcnA40
시작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잘 기억이 나질 않아. 기억나는 것은 한 사내로 추정되는 인영과 내가 즐겁게 놀았다는 것뿐이었어.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굉장히 잘생겼다는 느낌이었고. 나는 그 때 당시 예지몽을 꿔도 예지몽인 줄 모르고, 자각몽을 꿔도 그게 자각몽인 줄 모르던 때였으니 그저 재밌었다는 느낌만 품었었지.
🌌 2019/02/20 20:59:02 ID : 8o42HvcnA40
그 애를 뭐라 불러야 할까. 내가 하늘이니 그 애는 별 쯤이 어울릴지도 모르겠어. 별이라고 불러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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