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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nu9y3TRxD 2019/02/01 23:55:05 ID : wnu08mE1cmo
최근에 판타지에 깊게 꽂혀서 판타지 소설 쓰기로 작정했어.
◆tunu9y3TRxD 2019/02/01 23:56:10 ID : wnu08mE1cmo
세계관 이름은 HOUSE OF DAMN NATION!
◆tunu9y3TRxD 2019/02/01 23:57:58 ID : wnu08mE1cmo
Episode.1 ELEVEN's Era -1- 코티그 땅의 주민은 안발드와의 전쟁에서 겪은 패배감을 극복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사회는 제 기능을 상실했다. 새로이 땅을 통치하게 된 안발드의 실바라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각기 다른 두 방법을 내세우는 진영으로 갈라졌다. 성향이 사납고 코티그 땅에 환멸을 느끼는 진영인 밀레시안의 제자들은 코티그 주민을 전부 토벌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자애로운 정신을 지닌 진영인 모라시온의 제자들은 밀레시안의 제자들의 방법을 극히 반대했다. 그들은 안발드의 법도 내에서 코티그 주민들의 신임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진영은 적지 않은 말다툼을 벌였고 그사이에 순수한 영혼의 진영인 길리테스의 제자들은 주민들을 도울 채비를 끝마쳤다. 밀레시안의 제자들의 수장인 레포르타는 길리테스의 제자들을 향한 모욕을 서슴지 않았다. 레포르타는 분노에 격앙된 눈으로 밀레시안의 제자들을 이끌고 은빛 홀의 밖으로 나섰다. 그들은 길리테스, 혹은 모라시온의 제자들을 상관하지 않고 자신들의 신성한 황금을 사용하여 땅 전체를 멸하겠다고 선포했다. 전쟁에서 황금의 파괴적인 힘을 목격했던 모라시온의 제자들은 매우 놀라 밀레시안의 제자들을 설득하고자 그들에게 다가갔다.
◆tunu9y3TRxD 2019/02/02 09:56:35 ID : wnu08mE1cmo
-2- 누군가의 손에 누군가의 어깨가 닿았고 찰나의 순간에 칼이 날아들었다. 계단은 네 번의 북소리를 울리고 숨을 감췄다. 모라시온의 제자는 이후에 쓰러졌다. 웅성거림은 없었다. 당황한 기운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모두가 모두를 죽이고 있었다. 통치권을 두고 일어난 전쟁은 치열했다. 밀레시안의 승리는 확실해 보였다. 그들이 황금을 빼앗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모라시온의 제자들은 밀레시안의 제자들의 힘의 근원지가 무엇인지 예측하고자 했고 몇 가지 가능성은 그들에게 열린 길을 제시했다. 모라시온의 제자들이 밀레시안의 제자들의 신성한 황금을 탈취하기까지 무수한 실바라트들이 희생됐지만 밀레시안의 약골들로부터 근거지를 수복해 나갔다. 수세에 밀린 레포르타와 잔당들은 결국 안발드로 도주했다. 하지만 전쟁은 그것으로 끝이 아녔다. 밀레시안의 제자들이 남겨놓은 난관은 검은 용의 자손인 트라즈였다. 트라즈는 조상의 탁월한 마법 능력에 비해 간단한 마법조차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미숙했으나 그만의 교활함과 잔인성으로 악명이 자자한 자였다. 전쟁 전에 트라즈는 여러 끔찍한 범죄로 감옥에 갇혀 있었다.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레포르타에 이끌려 굳건한 감옥을 나와 코티그 땅을 밟은 그로서는 이만한 신세계도 없었다. 트라즈는 전쟁 동안 코티그의 서쪽 영토를 짓밟는 데 급급했다. 트라즈를 참전시킨 밀레시안의 제자들이 이기든 지든 그가 날아다니는 모든 땅은 짙은 재로 얼룩졌다. 트라즈의 밑에선 아무도 생존하지 못했고 그보다 높은 자는 그의 날카로운 이빨에 꿰뚫려 함께 공중을 활보했다. 모라시온의 제자들은 전쟁에서 큰 전력을 소실했거니와 트라즈를 잘 알고 있었기에 대개는 그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이내 트라즈가 자신의 윗 계급인 밀레시안의 제자들의 장교를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라시온의 제자들이 기억하기를, 안발드에서 레포르타가 주도하여 트라즈를 감옥에 가뒀었다.
◆tunu9y3TRxD 2019/02/02 12:18:04 ID : wnu08mE1cmo
-3- 바위 아래에서 숨죽인 주민들은 위를 바라봤다. 회의장은 누구나 회의를 기억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었다. 트라즈는 미리 회의장에 도착하여 여유로운 얼굴로 중심에 있는 원탁의 의자를 끌었다. 그는 주민들을 하나하나 흘겨보며 악질적인 미소를 띠었다. 그 모습에 장내가 공포로 소란스러워지자 하원 의원들은 주민들을 진정시켰고 곧 모라시온의 제자들이 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명령했다. 해가 저물고 풀빛을 머금은 초승달이 지면에서 떠올랐다. 회의 시간이 다가온다는 뜻이었다. 회의장에 정적이 감돌자 모든 횃불에 불이 일시에 붙었다. 몇몇 횃불의 불꽃이 매달린 얇은 밧줄을 따라 소용돌이치듯이 옮겨붙어 중심의 거대한 청동 항아리에 빨려 들어갔다. 장작을 머금은 이 청동 항아리는 서약의 항아리라 불렸는데 겉면에는 안발드 전설 속 영웅들의 서사시가 세세하게 양각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다수의 실바라트들에게 존경받는 모라시온도 있었다. 불길이 항아리 안에서 세차게 타오르기 시작하자 모든 영웅의 눈이 엄중함과 복수심으로 이글거렸다. 항아리의 위에선 화염의 여인이 춤추며 장내를 하얀 빛으로 밝혔다. 서약의 항아리는 안발드의 사람이라도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성향은 거칠더라도 안발드 전설의 독실한 신자인 트라즈는 당연히 이 광경을 놓칠 수 없었지만, 하원 의원의 큰소리에 그의 감상은 조금도 못 가고 깨졌다.
◆tunu9y3TRxD 2019/02/02 18:00:18 ID : wnu08mE1cmo
-4- 하원 의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맹렬한 섬광이 황금 대문에서 쏟아졌다. 트라즈는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섬광의 가운데에서 무시무시한 붉은 눈동자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커다란 발이 섬광 밖으로 나와 성큼성큼 걸었고 트라즈는 모라시온의 제자들의 역대 수장 중 가장 강력한 헬리언트 노바그림과 마주했다. 그들은 인사치레 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이어서 다른 상원 의원들이 차례대로 나오자 헬리언트는 트라즈의 완벽한 반대 면에 앉았고 청동 항아리의 장작을 조금 무너뜨려 여인의 춤을 멈추게 했다. 말을 먼저 꺼낸 것은 트라즈였다. 트라즈는 그답지 않은 정중한 태도로 모라시온을 칭송했다. 그는 존댓말로 헬리언트를 대우했고 자신을 낮추어 말했다. 헬리언트를 둘러싼 실바라트의 대부분이 그의 행동에 놀라워했고 어떤 이들은 트라즈가 회개했을지도 모른다고 수군거렸다. 깊게 고민하던 헬리언트는 손을 들어 실바라트들을 단숨에 그들을 침묵시켰고 트라즈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것이 트라즈가 원하던 말이었다. 트라즈는 모라시온의 제자들이 더는 무의미한 희생을 치르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트라즈와 모라시온의 제자들이 전쟁을 벌였더라도 헬리언트가 트라즈를 분명히 제압했겠지만 무수한 실바라트의 죽음이 트라즈의 손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강대한 헬리언트는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영원한 평화의 맹약, 서약의 항아리의 이름으로 트라즈와 헬리언트가 서로를 영원히 보호할 것, 트라즈가 특유의 능글거리는 미소로 제안했다. 물론 코티그 서부 일부 지방의 통치권도 포함해서 말이다.
◆tunu9y3TRxD 2019/02/03 20:12:36 ID : GmoJV9ck2qZ
-5- 어두운 곳에 살았던 코티그의 관중에게 회의장은 환한 빛무리에 불과했다. 그저 말소리만을 간간이 들을 수 있었는데 안발드의 언어를 조금이나마 알던 이들은 길리테스의 제자들의 손짓에 따라 회의장의 말을 번역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화라는 단어에는 유일하게 말이 멈췄는데 그에 대응할 단어가 코티그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헬리언트는 손가락으로 두 관자돌이를 후볐다.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인상을 찌푸렸다가 풀리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트라즈는 여전히 여유롭고 모든 것을 파악하는 눈치였다. 자애로운 모라시온의 눈이 항아리에서 번뜩였다. 헬리언트는 모라시온의 유지를 받들 것이었으나 트라즈의 행적은 처벌받아야 마땅한 것들이었다. 전술적 우위는 헬리언트가 쥐고 있었다. 그러나 트라즈의 모습은 이 회의장의 분위기를 이끌어가고 있는 존재 자체였다. 피와 살육의 파편들, 트라즈의 손에 담길 수백의 비명들, 살아갈 아이들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악마와 손을 잡아야 했다. 트라즈는 남들 앞에서 이토록 크게 웃어본 적이 처음이었다. 회의장의 대부분이 그의 웃음을 불길한 징조라고 여겼지만 밝은 미래를 향한 발판일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헬리언트는 뒤를 돌아 모라시온의 제자들을 보았다. 이 모든 결과에 이견을 제시하는 실바라트는 없었다.
◆tunu9y3TRxD 2019/02/04 20:23:04 ID : hBy5gi7e0la
-6- 트라즈와 헬리언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트라즈는 품에서 기괴한 문양이 새겨진 황금 단검을 꺼냈다. 그는 헬리언트에게 다가가 새하얀 장갑을 낀 오른손을 그에게 내밀었고 헬리언트는 그에 응해 한 번의 묵직한 악수를 했다. 트라즈는 칼을 장갑 낀 손으로 옮기고 나서 그의 해초 빛 손의 중심을 바로 그었다. 검은 피가 흰 바닥에 맺혔다. 트라즈는 헬리언트가 자신과 똑같이 하는 것을 보고 항아리의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그 둘은 불타오르는 장작에 대칭으로 서서 피 묻은 손을 장작으로 뻗었다. 그들은 서로를 노려보았지만 헬리언트가 워낙 거구인 탓에 트라즈는 고개를 올려야만 했다. 피가 방울지어 떨어지자 화염 위에서 붉은색의 실낱이 뛰쳐나와 팔목부터 서서히 감겨왔다. 헬리언트가 안발드의 신을 위한 경문을 읊자 회의장 전체가 울렸고 실낱이 빛을 발했다. 갑자기 이는 소용돌이가 관중의 시야를 가렸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소용돌이의 중심 내에서 실낱은 트라즈와 헬리언트의 몸 전체를 빽빽하게 감았다. 경문의 마지막 문장이 읊어지자 실낱이 둘의 몸에 문신처럼 새겨들어서 이내 서서히 사라졌다. 세찬 바람은 그에 맞춰 자취를 감췄다. 소용돌이 밖의 실바라트들이나 주민들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단지 알 수 있었던 것은, 트라즈의 표정이 매우 만족스러워 보였다는 것이다. 회의장은 고요할 뿐, 장작만이 타들어 갔다. 미세한 움직임도 없이 모든 눈이 트라즈와 헬리언트로 집중됐다. 항아리 위의 뚫린 천막으로 강렬한 달빛이 비쳤다. 트라즈의 보라색 홍채가 번뜩였다.
◆tunu9y3TRxD 2019/02/06 22:59:00 ID : wnu08mE1cmo
-7- 카롯은 흠칫 놀라며 잠에서 깨어났다. 꼭 지독한 악몽을 꾼 것 같았다. 정신을 가다듬으려 해도 카롯은 차마 집중하지 못했다. 다리의 격한 통증이 온몸을 감쌌다. 피로 흥건히 젖은 담요를 들추자 힘없이 벌어진 상처가 드러났다. 다 해진 붕대가 반쯤 풀려 있었다. 카롯은 시야 밖으로 손을 뻗어 쉴 새 없이 휘젓다가 마침내 신경질적인 얼굴로 붕대의 끄트머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피부가 맞닿아 으직이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고 신음은 그만큼을 못 참고 새어나왔다. 베인 족 특유의 회복력 덕분에 상처는 점차 아물어 갔다. 카롯은 깊은숨을 바닥에 게워냈다. 두 손이 피로 가득 얼룩졌다. 카롯은 근처의 담요에 손을 닦았다. 담요의 주인이 조금 들썩였는데 어차피 다 죽어가는 사람이라 상관하지 않았다. 카롯은 다리를 끌어 마차의 끝으로 자리를 옮겨 갔다. 아주 작은 마차라 옮길 구석도 없었지만, 이만큼이라도 떨어지면 사람들의 역겨운 진물 냄새를 피할 수 있을 것이었다. 다리가 끌리는 동안 카롯의 피는 물감이었고 마차 바닥은 캔버스였다. 그림은 우산 모양이었다. 얼굴에 느껴지는 두 손이 얼얼했다. 카롯은 얼굴에 손을 댄 채로 손을 뒤로 넘겼다. 그러다가 무심코 잊고 있던 이마의 두 뿔이 엄지손가락에 닿았다. 천천히 뿔을 매만지자 투박한 각질이 속속히 느껴졌다. 오랫동안 갈아내질 않았으니 멍청해 보일 게 뻔했다. 카롯은 뿔을 피해 머리카락을 두어 번 쓸었다. 머리카락은 꽤 뭉쳐졌다. 카롯은 머리카탁에서 무언가를 때어내 공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는 그 속에서 잊어서는 안 될 사람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터커였다. 터커는 카롯이 여기는 가장 베인 족다운 사람이었다. 비일라스의 충성스러운 기사이자 그의 유지를 받들 자이자 영웅이었으며 카롯이 등을 맡길 유일한 친구였다. 카롯이 있는 곳에 터커가 있고 터커가 있는 곳에 카롯이 있었다. 둘은 친형제보다 가까운 사이였다. 터커는 카롯에게 영원히 함께하고 죽을 때도 동시에 죽을 것이라 맹세했다. 하지만 터커는 끝내 카롯을 배신했다. 그를 끝없이 어두운 육신의 지옥에 밀어 넣었다. 마지막 전투에서 카롯과 터커는 밀레시안의 잔당들을 만났다. 힘은 뺏겼지만, 여전히 강한 자들이었다. 잔당들의 공세에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카롯은 이를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만약 전투에서 맹렬히 싸우다 전사한다면 비일라스의 위대한 홀이 그를 초대할 것이다. 예리한 도끼가 카롯을 향해 날아들었다. 카롯은 도끼의 날을 치켜보았다. 순간, 터커가 아니었다면 카롯은 이미 시체였을 것이다. 깊게 베이는 감각과 고통의 신음이 터커의 육체를 통해 진동했다. 제자의 조각난 칼날이 터커의 등을 마구 파열시켰다. 카롯이 그를 치우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카롯은 그의 표정을 생생히 기억했다. 카롯이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이었다. 제자들은 도주했다. 우는 새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카롯은 그의 앞에 두 명이 있는지 한 명만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의 얼굴은 위로 고정되어 있었다. 터커는 입에 머금은 피를 토해냈다. 피가 카롯에게 맺히고는 소리도 없이 곧장 피 웅덩이로 곤두박질 쳤다. 터커의 몸은 이내 축 늘어졌다. 한 손으로도 옮길 만한 무게였다. 카롯의 두 다리는 앞으로 쓸 수 없어 보였다. 카롯은 터커를 한쪽으로 치워두고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그의 머리에 잔뜩 스며든 피가 등을 타고 내려갔다. 그는 주위를 한참 동안 둘러보다가 터커를 보았다. 카롯은 아찔한 기억이 저 너머로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불현듯 되뇌었다. 베인 족은 동족이 죽을 때 울지 않는다. 카롯은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햇볕의 따스함에 고개를 들었다. 터커가 비일라스의 위대한 홀로 입성하는 것이 보였다. 카롯은 완전히 혼자였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이, 터커는 카롯만 이 차가운 땅에 버려두고 혼자 올라갔다. 카롯의 다리는 이제 영원히 망가졌기 때문이다.
◆tunu9y3TRxD 2019/02/06 23:03:20 ID : wnu08mE1cmo
-8- 비포장도로에 들어온 마차는 위아래로 덜컹거리기 일쑤였다. 매우 급하게 흔들리는 바퀴에선 나무가 쪼개지는 소리가 마구 났다. 곰팡이가 빼곡히 핀 마차 가장자리는 이 이상 버티기 어려웠다. 카롯은 어쩔 수 없이 부상자들의 옆으로 몸을 옮겨야 했다. 카롯의 팔에 맞닿은 물컹거리고 미지근한 피부에 카롯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마 그 피부의 주인은 개구리 타이비트 족일 것이라고 카롯은 의심했다. 무임승차했을 게 분명하다고 여긴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이맛살을 찌푸렸다. 짙푸른 암흑이 기나긴 산맥을 야금야금 먹어치워 갔다. 지나온 길의 저만치에는 웅장한 바위산맥들이 숲을 높게 들어 올려 가뒀다. 세차게 일렁이는 바위의 파도 위에서 코티그의 신들은 뒤로 계속해서 사라져 갔다. 눈이 은은하게 작약 하는 그들은 지평선의 환한 빛을 가리키면서 과거의 영광을 어슴푸레 떠올렸다. 그날, 코티그의 태양은 다른 날보다 유난히 붉었다. 겹겹이 층을 이룬 구름 틈새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졌다. 마차가 들어온 입구는 벌써 보이지 않아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종적을 감췄다. 오렌지빛이 구불대는 갈대밭에 폐허 하나만 무덤처럼 세워져 있었다. 하얀 잔해들이 무수히 도로에 떨어져 있었는데 그에 새겨진 고대의 문양들로부터 신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마차가 짙푸른 색의 아치를 지나가자 신전 터에 들어갔다. 곳곳에 세워진 새하얀 피라미드들은 무기력하게 반파되어 있었다. 그 위의 은으로 된 신상들은 주민이 하늘에 바라는 것도 모른 채 하늘에 발을 대었다. 은빛을 잃은 신상에는 엄숙하지만 허무한 미소가 가득했다. 마차는 신전 안에서 몇 번이나 방향을 바꿔야 했다. 근처에서 굶은 야수들이 어슬렁거렸다. 날이 저물자 보금자리로 돌아갈 낌새가 보이는 야수들을 따라가자 마침내 나갈 길이 보였다. 출구에 우뚝 선 거대한 대들보들이 그림자로 시간을 알렸다. 그들은 구슬픈 방랑자처럼 공터를 배회했다. 카롯은 뒤로 돌아 무너진 신전을 마주했다. 그는 눈을 감고 신전의 과거 모습을 상상하려다 곧 포기했다. 신전은 한눈에 담지 못할 정도로 넓었지만, 이 박살 난 풍경을 치울 사람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카롯은 모든 잔해를 다 지나쳐갈 즘에 슬그머니 나타난 바위조각을 유심히 보았다. 음각된 벽화, 글자는 익숙한 것이었다. "베니엄." 지금은 마부이자 카롯의 친형인 카니스는 동생이 깨어난 것을 곁눈질하고는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렸다. 카니스는 잘린 뿔의 단편이 시린지 손으로 몇 번 툭툭 쳤다. "카니스." 카롯은 혼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목적지가 어디야." "네가..." "나도 목적지는 알아." 카니스의 말을 끊은 카롯이 말했다. "내 말은, 왜 베니엄... 회의장으로 가는 건데." 둘은 잠시 침묵했다. 먼저 말문을 연 것은 카롯이었다. 분노가 섞인 떨리는 말투였다. "족장이 거기에 가는 데 찬성했어? 네가 대표라도 되나 보지?" "족장만이 아니야. 모두가 찬성했어. 힘들더라도 받아들여." "모두." 카롯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래, 나는 단 한 번도 모두의 축에 낀 적이 없었어. 피부색까지 모조리 다른 내가 모두가 아닌 건 당연해. 지금까지 줄곧 나를 무시해서 나같이 버림받은 인생을..." "카롯." "형. 날 왜 데려왔어? 내가 납작 엎드려서 굴복하길 원하는 거야? 감히 나한테! 날 바보 취급하지 마, 카니스! 도축장의 소 대가리처럼 업신여기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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