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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2nzPcpRAY 2019/02/13 19:05:18 ID : 6oY4MqpgnWr
(안녕 나는 글 완성 못하는 사람! 사람많은 곳에 올리면 적어도 책임감을 느껴서 완결할수있을것같아서 올릴거야.) "야. 너 뭐해." 가만히 수면 위에 떠올라 입을 뻐끔거렸다. 저 위에서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잠시 뻐끔거리는 것을 멈추고 대답했다. "...물 속에 산소가 없어서 물 밖에 있는 산소를 마시려고 하는 물고기 놀이요."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는 선생님의 얼굴을 뒤로한채 눈을 감고 다시 입을 뻐끔거렸다. 여름이 된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내 얼굴 위로 제법 차가운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
◆Fa2nzPcpRAY 2019/02/13 19:10:36 ID : 6oY4MqpgnWr
귓속에서 소근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이게 환청이라는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어쩔수없었다. 손을 쥐락 펴락하는 나를 엄마는 걱정스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힐끔힐끔 쳐다보는 그 시선의 밑을 바라보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미소를 지어보았다. 그 미소에 안심한건지, 아니면 그것이 연기라는걸 아는건지. 엄마는 한숨을 쉬며 다시 운전하는것에 집중하려 애썼다.
◆Fa2nzPcpRAY 2019/02/13 19:42:00 ID : 6oY4MqpgnWr
어느정도 환청이 멎어들자 손을 멈추곤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끔씩 보이는 낮은 건물을 뒤로하고 차는 언덕을 올라갔다. 히터를 틀어서인지 공기가 건조해 코가 가려웠다. "저기 보이네. 저기 하얀집 보이지?" 엄마가 말한 하얀집을 찾으러 고개를 돌렸다. 왼쪽창문에 우두커니 서있는 집이 눈에 들어왔다. 저 집이 우리가 살 집이란건 두달전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요즘 자주 무언가를 잊는다고 해도, 하루에 4번씩 말하는건 너무 심한거아닌가. 진절머리나도록 계속 자신에게 집에 관해 얘기하던 엄마를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가 살집은 하얀색 이층집인데, 거실에 커다란 창문이 있고 벽난로도 있대. 엄마방은 일층이고 네방은 이층에 있어. 이제 고등학교 들어가는데 엄마방이랑 가까우면 좀 그렇지? 아참, 이층에 다락방도 있는데 거기에 카펫도 깔아놨어. 거기서 친구라던가...좀 친한애들이랑 같이 놀면 추억도 쌓고 좋겠다. 그렇지?
◆Fa2nzPcpRAY 2019/02/13 19:48:44 ID : 6oY4MqpgnWr
한순간 멈칫하던 엄마의 얼굴이 스쳐갔다. 얼마나 많이 들었으면 토씨 하나 안잊어버리고 그대로 기억할까. 웃음이 튀어나왔다. 내가 집을 마음에 들어하는줄 아는지, 엄마는 나를 보며 웃었다. 하얀집이라. 흐릿해 잘 떠오르지도 않는 기억속에서 내가 하얀집에서 엄마랑 아빠랑 그리고 내 동생이랑 같이 살고 싶다고 말했던걸 기억한걸까. 그럴리가 없지. 조용히 중얼거리며 못들었는지 되묻는 엄마에게 고개를 젓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거의 다 도착했다는 엄마의 말에 옆에 두었던 가방을 들었다. ****
이름없음 2019/02/16 01:44:40 ID : smGts09AlA5
보고 이써 재미있다 계속 써 줬음 좋겠어!!
◆Fa2nzPcpRAY 2019/02/19 22:28:12 ID : 6oY4MqpgnWr
그토록 바라던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제 고등학생이니 공부를 열심히 해야한다는 선생님의 말을 흘려듣는 아이들과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학교에 있었다. 문득 내가 그 속에 잘스며들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 의문이 머릿속을 지배할때면, 최대한 평범해 보이도록 노력했다. 조금이라도 선을 벗어나버리면 날아오는 질타와 시선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아물지도 않는 깊은 상처를 만든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Fa2nzPcpRAY 2019/02/19 22:50:53 ID : 6oY4MqpgnWr
이 학교의 단점을 하나 말하자면, 정말 쓸데없이 넒었다. 음악실과 교실과의 거리가 이렇게 멀으면 어쩌자는건지. 이 쓸데없이 먼 거리를 쉬는 시간을 빼앗아가는 목적으로 지었다면 정말 탁월한 선택이였다. 가끔 음악책이 어디있었는지 까먹을때면 지각할 각오를 하고 찾던가, 아니면 음악책 없이 음악실로 가 선생님께 혼다던가. 아이들과 나는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했다. 쓸데없이 넒은 공간은 싫었다. 길을 잃어버려 헤메는 일이 있는것도, 같이갈 아이들이 없어 혼자 걸어가야하는것도, 그리고 혼자 걸어갈때면 그 기억들이 나에게 속삭이는것도 싫었다. 딱 하나 좋은점은 넒은만큼 숨을곳이 많다는 점일까. 한두군데 찾아놓았지만 정작 숨을 용기가 없어 그마저도 쓸모없어졌지만.
이름없음 2019/02/20 22:00:10 ID : A2Gmk9AoZil
벌써 재밌다ㅠㅜㅠㅜ기다릴께!!
◆Fa2nzPcpRAY 2019/02/21 19:59:04 ID : 83yNs60pU47
학교의 1동에는 커다란 어항이 있었다. 어항에는 알록달록한 금붕어들이 힘껏 제 색들을 뽐내보았지만, 그 누구도 보지못한채 지나갈 뿐이였다. 머리를 자를까 말까, 셔츠에 묻은 얼룩을 어떻게 해야할까. 저마다 사소하디 사소한 생각에 휩싸여 주위의 것들을 못본채 지나가기 바빴다. 가끔씩 지루해져버린 아이들은 그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손을 집어넣어 물 밖으로 꺼내 파닥거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살고 싶다는 몸부림을 보며 재미있다는듯 웃는 아이들은 이윽고 그것마저도 지루해져버렸다. 지루해져버린 것들은 물속으로 넣어진다면 다행이였다. 그대로 물밖에 덩그러니 놓여진 그들은 말라붙어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Fa2nzPcpRAY 2019/02/22 02:46:03 ID : 6oY4MqpgnWr
물론 그랬다더라-라는 소문을 들었을 뿐, 직접 눈으로 말라비틀어진 금붕어를 본적은 없었다. 이 조그맣지만 그 속에 있는 우리에겐 큰 공간. 마치 어항과도 같은 이곳에서는 하루에도 수십개의 이야기가 생겨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몇번씩이고 바뀌는 화제들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동안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는 연못 속 아이였다. 물을 좋아해서 수업도 빠지고 학교 뒤에 있는 연못에 있다더라. 수돗꼭지에 제 머리를 들이밀더니 그대로 물을 틀더라. 당연히 머리고 옷이고 다젖었지. 자기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애들까지도. 항상 들어보면 이야기는 같았다. 물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보통사람이라면 저지르지 않을 일을 저지른다거나, 방해하는 사람을 때리고 밀친다거나. 뻔한 것들 뿐이였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입에 오를때면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신경이 쏠렸다. 그건 분명히 그 이야기가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것이다. 나는 이야기 속 아이를 보았다. 그 아이가 연못에 떠있던것을 보았다. 수면 위에서 입을 뻐끔거리던 것을 보았다.
◆Fa2nzPcpRAY 2019/02/22 02:59:28 ID : 6oY4MqpgnWr
정말로 뭐였을까.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러나 똑똑히 기억했다. 그것은 별 재미도 없는 말장난과도 같았다. 도깨비불처럼 눈앞에서 아른아른 거리다가도 이내 코웃음을 치며 사라졌다. 어딘가 슬펐던 인상만 기억에 남아 나에게 원치않는 속삭임을 반복했다. 그 속삼임에 잠에 들다가도 악몽에 깰것만 같았다. 희미하기만했던 기억이 뇌리 깊이 잠들어 이따금씩 잠꼬대를 했다. 그 환청과 달리 기분이 나빠지진 않았다. 애꿎은 손을 쥐락펴락하지 않아도 됬다. 그거면 된거 아닐까. 그걸로 된거였다면, 어째서 걸음이 그 곳으로 향하는걸까. ****
이름없음 2019/02/23 02:03:20 ID : A2Gmk9AoZil
헉 스레주 왔구나.. 그뒤가 궁금하다ㅠㅜ
◆Fa2nzPcpRAY 2019/02/23 02:21:32 ID : 6oY4MqpgnWr
주말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담이 있는 주말이였다. 학교에 있는 상담사들은 어째서 다 이모양인건지. 다들 자기 얘기만 꺼내놓곤 힘내자. 이 한마디로 끝을 내기 바빴다. 내가 조금이라도 심각한 얘길 꺼내면 바로 엄마에게 연락이 갔다. 내 비밀인데 왜 말하냐고 물어보면 엄마한테 얘기 좀 할수있지않냐며 이상한 취급을 했다. 그 눈초리를 견딜수없었다. 별난애네. 유난떨지마. 난 그냥 걱정되서 한말이야. 듣기싫은 말들이 넘어왔다. 그후로 학교 상담시간에는 말을 아꼈다. 원래부터 7할이 자기 얘기였으니 달라진건 없었다. 그저 믿을만한 곳이 하나 사라졌구나. 라는 생각만들뿐이였다. 지루한 가정사얘기를 한귀로 흘려보내며 창문을 곁눈질했다. 연못의 끄트머리가 보였다. 그속에 무엇있을까. 목을 뻗어도 보이는건 없었다. 책상이 조금이라도 창문에 가까웠다면. 아쉬워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쉬워한다니. 정신차려. 환각일거야. 허무맹랑한 소문에 속아넘어간거라고. 비웃음이 흘려나왔다. 약을 빼먹지도 않았는데 왜이럴까. 다음에 병원에 갈때는 의사선생님께 말이라도 꺼내볼까. 여전히 자기 얘기에 심취해있는 상담사의 흰머리를 새며 생각했다.
◆Fa2nzPcpRAY 2019/02/24 17:33:24 ID : 6oY4MqpgnWr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변하지않는 현실과, 발버둥쳐서 만들어낸 거짓의 그 끝은 항상 같았다. 나는 이곳에 살고 있고 일어난 과거는 변하지않는다. 어느쪽이 더 비참한지 고르라면 발버둥쳐서 만들어낸 거짓일것이다. 발버둥쳐봤자 결국엔 현실로 돌아오고 말아. 잠시나마 행복했던 그 시간이 행복하고 잔인하기때문에 비참한 기분을 억누를수없었다. 모든걸 순응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걷잡을수없는 불안이 찾아온다. 내가 진짜로 받아들인것일까? 사실은 어딘가에서 나는 발버둥을 치고 있는게 아닐까. 그 불안함을 안고 살다보면 괜찮아질거라는 위로의 말도 건네지않았다. 그것마저 희망이 될까봐. 희망이 빛날 순간이 오지않는다는걸 알면서도 품으며 지낼까봐. 연못속 아이는 어떨까. 발버둥쳐도 변하지않는 현실을 받아들인걸까. 아니면 거짓을 만들어내 그 속에서 살아가는것일까. 저도 모르게 연못으로 시선이 갔다. 역시 난 미친게 분명해. 제정신이라면 다시 한번 그 앨 보고 싶다고 생각할리없잖아. ****
◆Fa2nzPcpRAY 2019/02/26 23:25:06 ID : 6oY4MqpgnWr
방과후에는 아무도 남지않았다. 몇몇의 선생님들이 모여 일하는것 외에는 움직임이라고는 찾아볼수없었다.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어디서 놀자, 학원까지 같이 가자,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같이 놀 아이도, 다니는 학원도 없는 나는 조용히. 아주 천천히 가방에 필통과 공책을 집어넣었다. 가장 먼저 교실에 오고 가장 늦게 교실에서 나가길 반복했다. 문득 주말의 일을 떠올렸다. 비여있던 연못이 눈앞에 맴돌았다. 내가 봤던 연못속의 너는 그저 환각이였을까? 내 환각이였기때문에 그토록 슬퍼보였던것이였을까?
◆Fa2nzPcpRAY 2019/02/26 23:30:57 ID : 6oY4MqpgnWr
마지막으로 얇은 공책을 집어넣고 가방을 매며 교실밖으로 나갔다. 교실의 불을 끄는것을 잊지 않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창문이 활짝 열려있는탓에 습한 공기가 감도는 여름의 복도였다. 슬며시 그 습한 냄새를 맡으며 커다란 어항을 지나쳐 1동을 나서려했다. 그러나 그 광경에 시선을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Fa2nzPcpRAY 2019/02/26 23:48:11 ID : 6oY4MqpgnWr
어항 속 금붕어들이 수면 위로 모여들어 뻐끔거리고 있었다. 한마리도 빠짐없이 수면위로 모여든 모습이 어딘가 필사적인 모습이여서,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소름돋으면서도 서글퍼져서. 가만히 멈춰 그들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면, 그 노력에 맞는 가치를 얻는걸까. 그 가치가 그들이 원하던 것일까. 누군가가 다가오는것도 모르고 아랫 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바라보았다. "...산소가 부족해서 그런거에요."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돌아보았다. 제 몸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을 모르는지, 아니면 신경을 쓰지않는건지. 너는 나에게 천천히 다가와 말을 이어갔다.
◆Fa2nzPcpRAY 2019/02/28 02:39:55 ID : 6oY4MqpgnWr
"이 어항엔 여과기가 없으니까 제대로 산소가 물에 녹아들지 못해서 숨을 쉴수가 없는거에요. 거기다 여름이니까 물 속에 있는 산소가 부족하기도 하죠. 그래서 바깥에 있는 산소를 마시려고...." "...." "...저러고 있는거에요."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눈치챘는지 한순간 멈칫하던 너는 마지막 말을 내뱉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마에서부터 미끄러지듯 내려오던 물방울 하나가 네 턱을 끝으로 떨어졌다. 뒤이어 뚝, 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채 너는 눈동자만을 움직여서 바닥에 떨어져있는 물방울을 보았다. 아직도 그런 너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화들짝 놀라 어색한 몸짓으로 입을 열었다.
◆Fa2nzPcpRAY 2019/03/02 19:03:25 ID : 6oY4MqpgnWr
"저, 저기! ..어...있잖아..." 갑자기 말을 걸어서 그런가. 순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버렸다. 내 앞에 있는 너가 내 환상이 아니란걸 확신할수있을까. 내가 조금이라도 더많은 말을 건넨다면 지루해하며 스쳐지나가지않을까. 너는 물방울에서 시선을 때곤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어떠한 재촉도 없는, 그저 기다림이 가득한 눈빛이였다. 그 눈이 자신을 향하자 그제야 당황했던 마음이 조금 진정이 되는듯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쉬곤 입을 열었다. "그...물 닦아야하지않을까? 감기걸릴것같은데..."
◆p89y0oGk2nA 2019/06/02 17:05:30 ID : 6oY4MqpgnWr
(오랜만에 와서 인증코드가 뭐였는지 까먹었다! ㅋㅋㅋㅋ) 내 말에 제 몸을 흘낏 보던 너는 아무렇지 않다는듯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네 주변으로 점점 물이 생겨나는것만 같았다. 그 물에 나도 이 건물도, 어항도 전부 잠겨버린다. 어항 속 금붕어들은 이제 건물 안을 헤엄쳐간다. 살며시 내 볼을 스치고 간 꼬리를 바라보았다. 마치 하늘거리는 드레스 자락처럼 화려하기만한 그 꼬리가 멀리 저 멀리 나아갔다. 너는 익숙하다는듯 금붕어들을 바라본다. 이것은 환상일까. 현실에서 버티지 못하는 너가 만들어낸 거짓의 세계가 이것일까. 그것을 알기에 너는 희미한 웃음을 지은것일지도 모른다. "야. 너 뭐하는거야?" 놀란 국어 선생님의 목소리에 물은 사라졌다. 건물안을 헤엄치던 금붕어들도, 드레스 자락마냥 아름다웠던 꼬리도, 전부 사라졌다. 그저 수면위로 고개를 내밀고 뻐끔거리는 금붕어들만 존재할뿐이였다.
◆p89y0oGk2nA 2019/06/02 17:17:15 ID : 6oY4MqpgnWr
"너 오늘도 수건안가져왔지? 귀찮게 맨날 수건가지고 다니고 싶지않으니까 이제 좀 가져오란말이야." 국어 선생님은 인상을 쓰며 가방에서 수건을 꺼냈다. 익숙하게 그 수건으로 머리를 털어주는 그 손길을 너는 피하지않았다. 오히려 수건이 눈을 때리지 않도록, 머리카락이 눈을 찌르지않도록 눈을 지그시 감을뿐이였다. 이걸로 몇번째인걸까. 그들은 이미 그 행동이 익숙해져있었다. 국어 선생님은 눈치 채지못했을수도 있겠지만 너라면 눈치챘을것이다. 그럼에도 너는 그 행동을 반복했다. 마치 재미있는 놀이처럼. 네 앞에 있는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며 미안하다는듯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고동이 울려퍼졌다. 설레임이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어쩌면 너는 환각이 아닐수도 있다.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일수 있다. 우리가 비슷한 사람일수도 있다. 가장 어두운 곳에 있던 것이 제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장 달콤하면서도 가장 쓰디 쓴 것. 때때로 기쁜 눈물과 아픈 웃음을 짓게 하는것. 이 몸이 제 시간을 다하지 않는 한 영원히 잊히지 않고 남아있는 것. 나는 그것을 기대라고 부른다. ****
◆p89y0oGk2nA 2019/06/02 17:51:44 ID : 6oY4MqpgnWr
너는 일학년이였다. 먼지가 쌓인 모서리에 얌전히 놓여있는 밑창이 닳아빠진 운동화가 너를 닮은 모습이였다. 이따금씩 연못에 들어가있는 너를 보며 난 빵을 베어물었다. 맑은 연못에서 너는 첨벙거렸다. 상체를 숙여 다리를 감싸안았다. 치마의 밑단에는 흙이 조금 묻었다. 너가 그것을 일러주었지만 나는 그저 내버려두었다. 그 작은 얼룩이 추억이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참 재미없는 사람이구나." 너는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작은 첨벙거림이 너의 목소리와 같았다. "이런것도 추억이라니." 치마 밑단에 웅쿠린 흙을 가리켰다. 너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사소하디 사소한 것. 그 사소한 것으로 우린 살아가나봐. 예를들어 급식에 청국장과 햄버거가 동시에 나온다던가, 수학선생님이 자습을 주곤 의자에 앉아 침 흘리며 잔다던가. 그리고 그것에 우린 울고 웃는다. 너의 볼에 새겨진 주근깨처럼 아주 작아. 그래도 그것이 너를 이루는것처럼 이 흙도 내 일부분이 될수있는거겠지. 양말을 벗어 실내화 위에 올려놓았다. 발끝에 닿는 물이 차가웠다. 소름이 돋아 팔을 슬었다. 그런 나를 너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온몸을 담군 너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발끝만 담군 나는 이렇게 차가워하는걸까. 아마 너는 이 차가움에 온몸에 뒤집어 쓰고 숨쉬며 익숙해졌기 때문일거야.
◆p89y0oGk2nA 2019/06/02 17:55:15 ID : 6oY4MqpgnWr
너는 고개를 젖히곤 눈을 감았다. 입술은 조용히 허공을 향해 벙긋거렸다. 그것이 1동에 있는 어항의 금붕어들과 같아보였다. 너는 산소를 들이마쉬기 위해 노력한다. 나도 조용히 입술을 벙긋거렸다. 산소가 내 몸속으로 들어간다. 너와 금붕어가 그러고 있는 이유는 그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산소가 부족해서.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하겠지. 입을 다물었다. 너는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멈추지않는것처럼. 끝임없이, 계속. '그렇게 하루에도 몇번씩 우리가 내린 사소한 행동에 따라 평행세계가 만들어지고 또 무너진다. 그렇게 나에게서 분리되는 수많은 나들이 지금 이순간에 죽어가고 있을지 모른다....' 전에 읽은 책의 구절을 떠올렸다.
◆p89y0oGk2nA 2019/06/02 19:50:56 ID : 6oY4MqpgnWr
"....은택이네 이모가 그렇다고 하던데, 요즘 학교에서는 별일없어?" 엄마의 말을 흘려 들으며 옥수수 알갱이를 하나하나 떼어냈다. 내용이 생각나지 않지만 마지막 말로 앞의 내용을 유추할수있었다.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엄마 친구가 해준 말을 말하고 그러면서 내 학교생활을 캐내려하는거겠지. 엄마가 내 학교 생활을 궁금해하는건 당연한건데. 왜이리 짜증이 나는건지. 그릇에 흩어져있는 옥수수 알갱이를 입에 넣었다. 앞니로 알갱이를 하나하나 짙이기며 이것저것 생각해보았다. 수업시간에 졸아서 혼났던일, 내 앞을 지나가던 길고양이, 그리고 흙이 묻은 치마와 너. 너에 관한 이야기를 엄마에게 꺼내고 싶진 않았다. 괜히 이야기를 꺼냈다간 엄마는 다른 이모들에게 물어물어 너의 소문을 찾을것이다. 너에 관한 악담들. 나는 그것을 엄마가 아는걸 원치않는다. 사람들은 서로의 일부분만 보며 살아가고 너의 일부분은 나쁘게 보이기만 할 뿐이다. 엄마는 내가 이상한 아이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또 오지랖을 부릴게 뻔한데. "그냥 좀 친하게 지내는 후배가 한명있어요." 그럼에도 난 다른 누군가에게 너를 말하고 싶어하는 충동을 이기지 못한다. 그 앤 너희들이 생각하는 만큼 나쁜놈이 아니야. 조금 특이한 아이 일 뿐이지.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아이들에게 말했던것처럼. 나를 모르는 그자식들에게 말하고 싶었던것처럼.
◆p89y0oGk2nA 2019/06/04 23:38:40 ID : 6oY4MqpgnWr
엄마의 놀란 눈동자를 외면한다. 마주치고 싶지않다. 내 동생에게 물려준 나무껍데기와 같은 고동색의 눈동자. 바람 맞으며 살아와 거칠거리고 갈라진 틈사이로 진액이 흐르는 나무껍데기. 상처받았지만 곧있으면 나아질거라며 가만히 하늘도 땅도 아닌 곳을 바라만본다. 그 답답함과 마주하기 싫어서.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외면했다. 눈을 감았다. 나의 눈동자는 어떤가. 실망감만이 가득차 있지 않을까.
이름없음 2019/06/07 21:34:59 ID : q6jeJSE3xzW
더 써주라... 뒤에 궁금해
◆p89y0oGk2nA 2019/06/08 23:48:09 ID : 6oY4MqpgnWr
2년전쯤 우연히 거울을 바라본적이있었다. 덥수룩하게 자란 앞머리 밑에는 탁한 검은 눈동자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게 꽤나 징그럽다고 느껴져서 그후론 거울을 보지 않았다. 문득 너의 눈동자가 보고 싶어졌다. 내 눈동자를 보고 싶은 만큼. 왼쪽 팔이 욱씬거려 인상을 썼다. **** 너는 학교 뒷편에 있는 잔다밭에 누워있었다. 눈을 감았지만 자고 있진 않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었다. '...내가 평범한 사람이였다면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평범한 사람일수없었다. 나는 평범한것을 동경했다. 거리의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평범한 생활이 얼마나 가치 있는것인지 알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며 살아간다. 적어도 옆에서 마음놓고 웃을수있는 상대가 있다는것만으로도 얼마나 가치있는 삶인가!' 그저 글자를 스쳐지나가며 읽었다. 그렇게 읽으면 결국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행동을 반복한다.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때에 느끼는 까슬거리는 얇은 커튼이 내 뇌를 감싸고 있는듯한 느낌을 들지 않게 해주었다. 그 커튼이 쳐지면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몸은 무거워지고 눈은 감긴다. 쓸데없는 무기력감만이 나를 감돌기 시작한다. 엄마는 말한다. 밖으로 나가 햇빛을 쐬거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렴. 엄마. 그것들이 전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데 나에게는 그 무의미한것들을 할만한 힘이 없어요. 봐요. 그냥 이렇게 가만히 서서 눈을 깜빡이는것만이 내가 할수있는 모든것이랍니다. 이윽고 그 커튼이 내 귓속에도 쳐졌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먼지만 둥둥떠다니는 공간안에 나 혼자 있다. 눈썹이 파르르 떨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눈들이 보인다. 그들은 전부 나의 눈을 보지않는다. 나도 그들의 눈을 보지 않는다.
◆p89y0oGk2nA 2019/06/08 23:53:24 ID : 6oY4MqpgnWr
그런 쓸데없는 감성에 젖어 같은 페이지만을 맴돌고 있다. 평범해지고 싶은 '나' 그리고 평범해지고 싶지 않은 '너'. '우리' 는 조용히 갈등한다. 그 폐이지에서 벗어날수없다. 내가 그 페이지를 제대로 읽을수없기에, '우리' 의 시간은 거기서 멈춘다. 내일이 되도 한달이 지나도 '우리' 의 관계는 바뀌지않는다. 내가 읽지 않아서. 내가 그 이야기의 뒷편을 꾸며낼순 없으니까. 허벅지를 찌르는 잔디를 무시했다. 무시해도 그 거슬림이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다. 그 목소리도, 거슬림도. 내가 조금만 움직이면 사라질텐데 나는 움직이지않는다.
◆p89y0oGk2nA 2019/06/08 23:55:08 ID : 6oY4MqpgnWr
그저 익숙해질 궁리만 찾을뿐. 너처럼 익숙해지고 싶으니까. 어쩌면 너는 익숙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겉모습만이라도 익숙한 척만이라도 익숙해지는건 안되는걸까.
◆p89y0oGk2nA 2019/06/09 00:14:21 ID : 6oY4MqpgnWr
치마 주머니에 조심스레 숨어있던 사탕을 꺼냈다. 배 위에 가지런히 올려둔 너의 손등위에 사탕을 조심스레 놓는다. 잠시 너의 쪽으로 기울어졌던 몸이 다시 멀어지자 너는 눈을 떴다. 조용히 그러나 서두르듯이 너는 몸을 일으켰다. 당연하게도 노란색 봉지로 둘러싸인 사탕은 툭. 잔디밭으로 떨어진다. 곧게 뻗은 두손가락으로 그것을 잡은 너는 나에게 눈짓했다. "...먹어도 돼요?" "응." 사탕껍질을 최대한 소리없이 까는데 집중하며 대답했다. 사탕을 꺼내 입으로 넣을때까지 너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안에서 사탕을 굴리며 먹으라고 눈짓을 하자 그제야 너는 사탕을 까 입에 넣었다. 양 볼이 아리는듯한 느낌에 얼굴을 찌푸렸다. "너 신거 좋아해?" 좀 물어보는게 늦은것 같지만. 찡그리는 얼굴로 보아하니 좋아하진 않는건가. 다음부턴 달달한걸로 가져와야겠다. 사과라던가 포도라던가. 볼을 쿡쿡 찌르는듯한 느낌이 들었음에도 싫어하는 음식을 먹은 아이같은 표정을 지은 너를 바라보며 소리내어 웃었다. "싫어하진 않는데 잘 못먹어요."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잔디를 움켜쥐었다. 손쉽게 토독. 하고 뽑혔다. 멍하니 그걸 바라만보며 힘을 뺐다. 잔디를 뽑는건 간단한 일이다. 뽑히지않으려 저항하지 않으니까. 뿌리가 더욱 깊이 흙을 파고들었다면 안뽑혔을까. 사탕을 입에서 굴려댔다. 이빨에 부딪히며 딱딱 거리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너도 굴리고 있었다. 아이같은 표정따윈 전혀 짓지않았다는 얼굴로.
◆p89y0oGk2nA 2019/06/09 00:14:48 ID : 6oY4MqpgnWr
물론 그 얼굴을 보았던 나에겐 그저 우스울 뿐이였다.
◆p89y0oGk2nA 2019/06/11 18:22:58 ID : 6oY4MqpgnWr
너를 안지 몇달이 지났다. 사실 그보다 더 오랫동안 알고 지낸것처럼 느껴졌다. 그저 흐릿하게 기억하고 있는 내 모습보다 햇빛 아래의 너가 익숙했다. 그랬기에 너가 없는 학교가 평소보다 더 넒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연못 속에는 너가 없었다. 잔디밭에도 없었다. 나는 작디 작은 먼지처럼 넒은 공간을 부유한다. "무슨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니? 왜 자꾸 입을 벌렸다 닫았다 해?" 복도에서 마주친 선생님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말을 하고 싶은게 아니였다. 숨을 쉬고 싶었다. 이곳은 내가 숨쉬기엔 산소가 부족해서, 점점 사라져만 가는 산소를 붙잡지도 못한채 뻐금거릴 수 밖에 없다.
◆p89y0oGk2nA 2020/01/14 19:11:42 ID : 6oY4MqpgnWr
너는 어디있을까. 그립다. 너가 그리워. 그리움이란 감정을 느끼는것도 오랜만이였다. 내 옆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을줄 몰랐다. 그것에 내가 정이 들어갈줄도 몰랐다. 나는, 그때의 나는 그리움을 느끼지 않았던것인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저 배신감만 느꼈던것이 아닐까. 지금하고는 완전히 달라. 한순간 내 발밑에 있는 것이 무너지고 내 팔다리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였다. 뜨거운 태양 밑에 아무런 그늘도 없이 놓여진 젤리처럼. 끝내 더러운 신발에 짓밟혀 납작해진채로 바닥에 늘러붙었다. 지금은 그저 내 발밑에 있는 탄탄한 땅이 잘느껴져. 내 팔다리도 아주 잘 붙어있어. 그래서 더 잔인한것만 같았다. 나는 태양 아래에 있다. 여과기가 없는 어항 속에 있다.
◆p89y0oGk2nA 2020/01/14 19:49:22 ID : 6oY4MqpgnWr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학교가 끝날시간이 되었다. 너는 오지 않았고, 나는 나사가 하나 빠진 장난감 병정처럼 시간을 보냈다. 모두가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데 나만이 비틀거리며 움직인다. 어느순간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정도로. 느릿느릿 가방에 책과 필통을 집어 넣는다. 또 조용히 가방을 맸다. 아직도 제자리에 앉아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잠구고 나갈거니까 너 먼저 가. 거울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는 아이가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간다. 집으로 가는 길이였다. 가는 길에 있는 공원의 벤치에 너가 있었다. 순간 온 몸이 굳었다. 환상일지도 몰라. 갔다가 실망하려고? 기대하면 안된다니까. 그럼에도 나는 너에게로 달려갔다. "너 왜 거기서 이러고 있어!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p89y0oGk2nA 2020/01/14 19:49:41 ID : 6oY4MqpgnWr
소리를 치며 너에게로 달려갔다. 붓에 물감을 묻혀 조그마한 점을 찍은것마냥 너는 아주 작아보였다. 네 어깨에 걸린 가방이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것 같았다. 너는 희미했고, 가방은 선명했다. "왜 말도 없이 학교를 안와? 난 너가 어디 잘못된줄 알았잖아! 하루종일 정신이 너한테 팔리는 바람에 수업도 제대로 못들었어. 왜 그렇게 제멋대로야?" 하고 싶은 말도, 하기 싫은 말도 산더미 같은데. 너의 그 희미한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나는 그것이 싫었다. 내가 원하지도 않는 이야기들이 내 머릿속에 들어온다. 사람의 눈동자는 진실만을 말한다. 제 아무리 환한 미소를 짓는다한들 그 눈에 담긴 절망을 감출수있을까. 한없이 슬픈 얼굴을 그려낸다한들 그 눈에 감긴 희열을 지울수있을까. 용을 쓰고 아름다운 몸짓을 담고 사랑스러운 말을 속삭여도 그 안에 있는 더러움을 숨길수있을까.
◆p89y0oGk2nA 2020/01/14 19:56:51 ID : 6oY4MqpgnWr
나는 싫었다. 눈동자들이 나를 향하는것이 싫었다. 그들에게 비추어지는 내 모습이 어떤지 선명히 알수있었다. 싫었다. 너의 눈동자가 내게 말하는 그 이야기도 싫었다. 너의 그 진실이 내겐 너무나도 가혹했다. 그렇기에 나는 너에게 손을 내밀었다. "...집에 가자. 데려다 줄게." 너는 현실을 받아들이지도, 거짓을 만들어내지도 않았다. 그저 행복해하며 그 순간을 살아간다. 얼마나 아픈 삶일까. 고통을 외면하며 행복해한다는것은 얼마나 힘든것일까. 삶에 익숙해진다면, 그것만으로 눈물이 흘러나오는 불행이 아닌가. 분에 넘치는 불행은 행복이라고 하지. 그러나 그것은 너에게 행복이 아니였다. 그것은 오로지 너의 몫이였으니까. 절대로 분에 넘치지 않았다. "네, 선배."
◆p89y0oGk2nA 2020/01/14 19:57:35 ID : 6oY4MqpgnWr
너는 겨우 손을 들어 내 손 위에 포겠다. 손에 힘을 꽉 쥐고 싶었다. 다시는 너가 그러지 못하도록. 너라는 존재가 얼마나 나에게 크나큰 것인지 알려주고 싶은 충동이 내 몸속에서 크고 작은 소음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너는 수분이 없는 꽃잎과 같아서, 소중히 다루지않으면 내 손안에 있음에도 가루가 되어 날라가는 꽃잎과 같아서. 나는 그저 다시는 그러지 말아달라는 말을 건낼뿐이였다. 너는 조용한 훌쩍임으로 대답했다. "있잖아요 선배. 혼낼거에요?" "아니." 내가 무슨 권리로 너를 혼내겠어. 나는 너의 가족도 선생님도 아닌 그저 선배인데. 고개를 돌려 너를 처다보곤 웃었다. 기뻐서 웃는것인지 슬퍼서 웃는것인지. 습관인건지 알수없었다.
◆p89y0oGk2nA 2020/01/14 20:05:53 ID : 6oY4MqpgnWr
"...그게 나를 혼내는거에요." 나를 보고 아무런 혐오감없이 웃어주는거요. 나를 아무렇지 않게 잡을수있는거요. 너의 눈동자가 말한다. 눈을 감았다 뜬다. 그저 가만히 웃으며 바라본다. 미안해. 그렇게 말했던것도 같은데. 너의 표정은 조금도 바뀌지않았다. 아마 말을 하지 않았나봐. 기억이란건 불안정한거니까. 언제든 쉽게 왜곡할수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바로 기억이였다. 우리는 계속해서 걸었다. 낡디 낡은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길게 내려앉은 그림자가 너를 환영하고, 나를 내쫒는것만 같았다. 너는 계속해서 걸었다. 나도 계속해서 걸었다. 조용히 계단을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는 무서워요. 어렸을때 엘리베이터에 갇혀서 죽은 사람이 나오는 영화를 봤거든요. 너가 말했다. 네 집 앞에 서자 손을 놓았다. 그제서야 나는 우리가 줄곧 손을 잡고 있었단걸 알았다. 너는 너의 집앞에 있는 화분을 들어 열쇠를 꺼냈다. 열쇠를 쥐고 너는 구멍에 맞추어 열쇠를 돌렸다. 철컥 하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퍼졌다.
◆p89y0oGk2nA 2020/01/15 00:01:12 ID : 6oY4MqpgnWr
"열쇠를 거기에 두고 다녀?" "아뇨. 가지고 있긴한데...그냥 비상용으로 하나 놓고 다니는거에요." 너가 웃는다. 부셔질듯이 아름답게. 순간 너를 그대로 꽉 안아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너 스스로 부셔질바엔 차라리 내가 부셔주고 싶다고 그리 생각했다. 그 충동을 그저 집으로 들어가는 너의 손을 다시한번 꽉 붙잡는것으로 대신한다. 이것으로 너의 손 끝이라도 부실수있지않을까. 너는 놀라지도 않았다. 문이 닫혔다. 나는 홀로 남았고, 너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한참을 문 앞에 서있었다. 문 뒤에 있을 너를 그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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