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순진한 맛이 없는 건지, 교육을 똑똑히 받은 것인지.
가끔 주변을 보면 당황할 때가 있어.
생각해보면 난 너무 어렸을 때 부터 엄청 많이 알긴 했음.
진짜ㅋㅋㅋㅋㅋ 존나 웃긴게 난 내 또래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진 모르겠는데, 어른들이 하는 생각은 읽었음.
아니 물론 꼬맹이가 어른들 생각을 알아봤자 얼마나 알겠니.
그 사람의 감정, 느낌이 보였음.
아 저 사람은 나를 귀찮게 여기는 구나, 저 사람은 나를 만만히 여기는 구나.
지금도 그렇지만, 난 정말 어렸을 때 부터 남을 잘 안 믿었어.
크게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더라도 언제나 대처를 준비했어.
그 때도, 지금도 남들을 '안심해도 되는 사람' 이라 느끼지 않음.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가 아님.
나를 해칠 수도 있다, 내가 필요 없어지면 버릴 수 있다는 의심이 늘 깔려 있었어.
이름없음2019/03/22 07:46:28ID : dWqo3PjxQpP
난 이유 없는 친절은 없다고 생각했어.
친구 사이에, 가족 사이에는 하나하나 따지지 않았어.
저 관계 외에서 상대방이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이유를 모르겠으면 난 거절했어.
무조건 피했어.
예를들면 1금융권에서는 나의 등급을 이것 저것 따져가며, 겨우겨우 조금 돈을 빌려주지만,
2금융권에서는 등급 기준이 덜 깐깐하고, 더 많은 금액을 빌려주잖아.
난 1금융권 외에는 거래를 안 했어.
쟤네가 괜히 나에게 관대한 것이 아니라 생각했거든.
다 이유가 있어서 쉽게 돈을 빌려주는 거니까, 쟤네는 상종을 안 했어.
이름없음2019/03/22 07:55:47ID : dWqo3PjxQpP
중학생 때 부터 내 또래가 답답하다 느끼는 횟수가 늘었어.
그때 당시에도 난 내 또래를 대상으로는 눈치가 굉장히 느렸지만, 어른을 대상으로는 보였어.
친구들은 '괜찮아.' 라고 말하지만, 난 혼자서 '아닌 거 같은데...' 싶었어.
그리고 내 추측이 맞았어.
고딩 때는 내 예측이 너무 잘 들어 맞아서 상처도 받았고.
그 사건은 정말... 너무 빡치면서 내 스스로가 불쌍하기도 해.
아무리 약아도 아이는 아이, 아무리 멍청해도 어른은 어른.
난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
근데 정말 눈치 빠른 내 또래가 못 알아챈 어른들 수작을 나만 알아챘어.
굉장히 약고, 눈치가 빠른 사람도 몰랐던 것을 나만 알고 있었어.
난 당연히 다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만 알아챘어.
이거 느낌 어떤지 알아?
엄청 뭐같아.
내가 불쌍해.
난 아이답지 못하는 아이가 너무 불쌍하더라.
근데 그게 나였어.
내가 결코 어른스럽다는 의미는 아님.
아이다운 것이 없었다는 거지.
이름없음2019/03/22 08:04:32ID : dWqo3PjxQpP
난 그 때도 도망치기 바빴어.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어른에게 가서, 있었던 모든 것을 다 말했어.
난 '내가 받아들여서 해석한 것'은 전달하지 않았어.
정말 사실 그대로 '있었던 일'만 말했는데, 그 어른은 엄청 화를 냈지.
개수작이라고.
성인이 되었고, 사회 경험이 풍부한 건 아냐.
그냥 저냥 흔하다면 흔하고, 찌질하다면 찌질한 20대 중반이 되었어.
난 아직도 내 또래 친구들의 순진한 모습을 이해하기 힘들고, 어른들의 생각이 더 쉽게 읽혀졌어.
아 쟤가 나의 뭐를 원하는 구나, 쟤는 내 돈을 탈탈 털고 돈이 떨어지면 버릴 것이다, 쟤는 술 한 잔 먹일려고 혈안이다, 쟤는 내가 웃으면서 예쁘게 말해주니까 날 만만한 사람으로 보는 구나.
좋게 말하면 이성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싸가지 없고, 평범하게 말하면 냉정하고,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쌈닭이 되었어.
내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면 모든 게 편해졌어.
내가 계속 만만한 사람으로 남으면 상대는 끝까지 날 만만하게 여기더라.
이름없음2019/03/22 08:09:41ID : dWqo3PjxQpP
나랑 동갑인 친구들은 나처럼 행동 못 하더라.
용기가 없다고.
그게 나쁘단 건 절대 아냐.
그것도 처세 중 하나니까.
근데 나는 그런 어른들을 많이 봤어.
'어린 애들은 주변 사람들 시선을 많이 의식해, 그러니까 내가 큰 소리 내면서 조금만 억지 부리면 쪽팔려서 내 뜻대로 하게 돼.'
이런 생각으로 많이 못난 어른들이 어린 애들을 착취하더라.
근데 또 가끔 내 또래 애들은 저 생각을 몰라.
그냥 갑자기 미친 어르신이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만 알아.
이런 경우도 있어.
'내가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고, 이렇게 애매모호하게 행하면 나에게 뭐라 못 해.'
이런 생각으로 빠져나갈 구실을 미리 만든 다음에 착취를 하더라.
그럼 또 몇몇은 '화 내기 너무 애매한데...' 이러고 혼자 속으로 삭혀.
이름없음2019/03/22 08:14:01ID : dWqo3PjxQpP
난 가만히 당하는 모습이 너무 이해가 안 돼.
아니 애초에 저 못난 어른의 수작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 부터 이해를 못 하겠어.
근데 또 한 편으로는, 저게 우리 나이에 맞는 행동인가 싶어.
내가 내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많은 것을 알고있는 것인가 싶어.
이러면 또 내가 불쌍해.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싶어져.
이름없음2019/03/22 08:18:53ID : dWqo3PjxQpP
나랑 동갑인데 '순진하다' 라 느껴지는 사람들이 너무 신기하고, 답답해.
그리고 곧 내가 불쌍해져.
난 사랑받고 자랐어.
정말 냉정하게 생각해봐도, 사실 내가 내 부모를 평가하는 건 엄청 싸가지 없는 짓이지만,
냉정히 생각해봐도 내 부모는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해주기 위해 노력했고, 해줬어.
내가 내 친구 관계에서 큰 마찰이 있던 것도 아냐.
근데 정신차려보니 난 쌈닭이 되어있고, 내 나이에 맞지 않다 싶을 정도로 의심과 방어가 강해.
그냥 그래.
그냥 내 감정을 정리하고 싶어서 글 썼어.
너무 힘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