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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1g7zapVbwl 2019/04/26 00:33:02 ID : LasjjwFg6i1
ⅰ) 스레주 혼자 주절거리는 스레. ⅱ) 주로 산문. 아마... ⅲ) 피드백 가능. 나쁜 말은 싫어요 안돼요. 칭찬은 좋아요 멋져요. 해주면 나야 좋지. ⅳ) 주제 없음. ⅴ) 접률 매우 안 좋음. ⅵ) 혼자만 알아듣는 얘기 좋아함. 20190426 12 : 33.
0. ◆hBAjcpVgja1 2019/04/26 00:34:00 ID : LasjjwFg6i1
나는 오늘도 키보드 위로 손을 올린다. 별달리 지어내고픈 문장이 없음에도 몸뚱이 그 어딘가에 붙어 숨쉬는 습관처럼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삶이란 무엇인가. 대답을 하기 어렵다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알고자 삶을 살고 있음에도 나는 감히 단어의 굴곡조차 읽어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삶이란 꼭 바다 같고, 지금의 나는 찰랑이는 파도와 같아, 아직 헤엄치지 못한 부분들이 너무도 많았기에. 혹은 검도록 푸르른 심해가 무서워 모래사장과 맞닿은 물가에 주재해있기에. 살갗에 닿는 모래알들이 따갑다. 그럼에도 심해로 나아가긴 두려운 것이었다. 하루하루를 겪다 보면 이따금 나 홀로만 저만치 뒤처져있는 듯한 느낌이 들고는 한다. 무엇에 비유하면 좋을까 한참이나 머리를 싸매보지만, 비유에 적절한 말은 별달리 떠오르지 않았다. 남들이 앞서가는 달리기 경주에서 뒤처지고 있는 것 같다 말하기엔 나는 진심을 다해 뛰고 있지 않았으며, 남들은 미래를 향해 걸음을 내딛고 있건만 나는 멈추어있다 말하기엔 억울한 것이었다. 무어라 말하면 좋을까. 각자의 미래 혹은 사회가 규정한 ‘성공한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태와 자괴로 빈둥거리는 나 자신을 무어라 말해야 할까. 작은 걸음을 떼내고 있는 그들을 보며 꼭 닮기를 희망하면서도 실천할 용기는 지니질 않고 있었다. 가장 잘하는 것은 성공한 미래를 그리는 것이었으며 또한 그 미래를 이루지 못한 나를 상상하며 현재의 자신을 원망하고 탓하는 일이었다. ㄴ 20190426 인코 잘못 들어가서 화난다...
1 ◆E1g7zapVbwl 2019/04/26 00:38:36 ID : LasjjwFg6i1
꽃이 져버렸다. 고상한 말로 표현하자면 시들어버렸고, 내 말로 표현하자면 떠나버렸다. 그 꽃은 긴 시간여행을 떠난 것이다. 잠시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잊혔다가 저를 그리워할 그 계절로. 꽃은 또다시 열두 달 사계절의 여행을 떠난다.
생존신고 ◆JV9jvzQk6Y6 2019/04/30 01:45:58 ID : LasjjwFg6i1
시험... 죽어라.... ㅡ 시험 끝나고 소설 쓰기. 5~10편 분량.
2 ◆E1g7zapVbwl 2019/04/30 20:48:26 ID : LasjjwFg6i1
눈길 위로 외로운 발자국 하나가 그려진다. 하늘에서는 새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 다시금 생각해보면, 너는 지독히도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홀연히 떠나갔다면 두 손을 비운 채 멀거니 네 뒷모습만 바라보았을 걸 새하얀 눈길 위에서 새빨간 장미 한 송이를 쥐여주고 떠나갔으니. 손에 들린 장미 한 송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걸려 너를 편히 미워할 수도 없을 노릇이었다. 내 사랑은 멍청해 네 뒷모습을 바라볼 줄만 알았으며 감히 네 발자국 위를 따라 밟을 생각은 해내질 못했다. 점차 작아져 결국에는 눈송이보다도 작아지는 네 뒷모습을 물그럼 바라보다 네가 남긴 꽃 한 송이를 바라보고, 혹여나 그 꽃송이에 네 향취가 남았을까 그것을 품어보고. 결국에 네 발자국 위로 소복이 눈길이 쌓일 즈음까지도 나는 차마 이 꽃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 일방적인 사랑을 일컫는 용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우리의 관계를 사랑이라 명명했다. 우리의 관계를 그 단어 속에 정의하고 그 단어의 규격 속에서 남아있고 싶었다. 순전한 욕심 내지는 과분한 바람.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네 이름이 바뀐다 하더라도 너는 너라는 사실을. 네 껍데기가 사라진들 결코 네 본질은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의 관계 또한 그러했다. 맞지 않는 포장지를 둘러두고 아무리 사랑이라 외쳐봐야, 결국 포장지는 찢어질 뿐이었다. 찢어진 포장지 아래로는 초라한 외사랑이 등불을 키고 앉아있겠지. 너 또한 나를 사랑했냐 묻는다면 너는 잠깐의 고민을 할 게 분명했다. 고민 속에는 자그마한 사랑이, 또 자그마한 죄책감이. 너는 어째서 나를 사랑함과 동시에 죄책감을 느껴야 했던 걸까. 무수한 고민 끝에 도달한 종착점은, 나의 사랑이 죄였다는 판결이었다. * 네가 떠난 봄에 새하얀 눈이 내렸다. 봄과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지나 다시금 봄이 돌아올 때까지 이 황량한 눈밭에서 네가 준 꽃송이는 고개를 기울이지 않고 생생히 살아있다. 내 손의 온기를 마시며, 여전히 네가 떠난 그 길을 바라보며. 그리고 나는 미련하게도 아직까지 네가 준 꽃송이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새하얀 눈길 위로 새빨간 장미를 쥔 채 이 눈이 멎길 기다린다. 이 눈발이 멎으면 푸른 땅이 장미를 심어주리라 다짐하며. 여전히 나는 네 첫 발자국 위에 덩그러니 서있을 뿐이다. 눈길이 녹고, 싹이 돋아나면. 그때서야 네 꽃은 시들 수 있을까. ㄴ20190430 : 갑자기 글 쓰고 싶어서 후다닥...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대충~
3-(1) ◆47s3wlfWjg6 2019/05/07 00:01:17 ID : LasjjwFg6i1
두 번째 경고장이 날아왔다. 젠장. 랭이 낮게 숨을 들이키며 중얼였다. 랭의 시선은 여전히 붉은 우체통에 묶여있는 상황이었다. 우편물을 집어넣는 출입구에 툭 튀어나온 흰색 봉투 하나. 구태여 그 봉투를 집어 꺼내들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가 또다시 보내온 경고장이라는 것을― 대체 어떤 요악한 취미를 가진 작자인건지. 여유롭게 삭막한 도시의 길거리를 누비고 돌아온지 삼십분이 다 되어갔으나 그 얇은 봉투 하나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참 안타까울 노릇이었다. 빌어먹을. 랭이 다시 한 번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조심스런 발걸음을 내딛었다. 어찌하였든 제게 도착한 편지였으니 그것을 무시하고 곧장 집으로 들어갈 수는 없을 일이었다. 그에게서 온 편지를 버리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흉흉한 소문은 대도시 전역을 휩쓸었고, 안타깝게도 랭은 그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에. 랭의 미간이 형편없이 우그러졌다. 꼭 싫은 반찬을 거부하는 어린 아이마냥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랭은 께름칙하다는 표정으로 우체통의 입구를 훑어보곤 재빨리 팔을 뻗어 봉투를 낚아챘다. 고작 새하얀 종이 봉투 한 장을 이리도 조심스럽게 잡아채다니. 지나가는 이웃에게 비웃음을 당한대도 할 말이 없겠군. 랭이 제 주변을 향해 녹빛 눈동자를 굴려냈다. 다행히도 제 우스운 행각을 본 이는 없는 듯 싶었다. 제 주변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찰나, 랭의 녹빛 눈동자가 새하얀 봉투의 표면을 향했다. ―친애하는 마이어스에게. 검은 잉크로 정갈하게 쓰여진 글씨가 랭의 눈에는 스산하기 그지 없었다. 꼭 감정도 뭣도 없는 인간이 한자 한자 공들여 써낸 글씨 같았다. 본디 글씨라 하는 것들은 쓰는 사람들의 성격이나 감정, 습관 따위가 묻어나오기 마련이었다. 그렇기에 랭의 글씨는 조금 들쑥날쑥하고 오른쪽으로 기울었으며, 글자 ‘ I ’ 를 쓸 때 그 끝이 조금 번지고는 했었다. 하지만 그의 글씨는 달랐다. 한자한자 정교한 틀에 맞추어 쓴 듯 보이게 하려는 것같았다. 그리고 랭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무척이나 소름이 돋고, 혐오감이 드는 것이었다. 억지로 감정을 잡아뜯어 써내는 글씨라니. 신경질적으로 손잡이를 잡아당기며 랭이 혀를 찼다. 편지 봉투를 쥔 손등에 굵은 핏줄이 돋아나고 있었다. ―친애하는 마이어스에게. 나의 첫 번째 편지가 잘 도착하였기를 바랍니다. 나는 당신의 유능함을 알고 있으며, 당신이 나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부디 나의 이야기를 당신의 글자로 나타내어주길 바랍니다. -존경하는 그레이. “ 웃기고 있군. ” 찻잔이 채 치워지지 않은 협탁 위로 편지지를 던져내며 랭이 으득 이를 갈았다. 랭이 편지를 받게 된 것은 저번달 이맘때 즈음이 처음이었다. 일명 ‘그레이 경’의 편지는 랭이 이 도시로 이사를 오기 전부터 유명했다고 한다. 여튼간 랭도 그레이 경의 존재는 이사를 오고도 두어달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으니. 그레이 경. 그 누구도 그레이 경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저 알 수 있는 사실은, 그레이 경의 편지는 오로지 글을 쓰는 이들에게만 온다는 것이었으며, ‘ 후대에 길이 남을 걸작 ’ 따위를 위해 사교 모임에는 참석도 않고 뱀파이어마냥 외톨이 같은 생활을 이어가는 이들에게도 전해진다는 것이었다. 항간에는 사실 그레이 경이 이 도시에 살아가는 유령이 아니냐는 말들도 떠돌았으나, 곧 종교재판이 두려워진 이들이 입을 함구하고 잠적하여 그 괴상한 소문은 금방 사라져 버렸다. 허나 사람들의 호기심은 단죄로도 막지 못하는 법. 특히나 글을 써대는 이상한 예술가들의 상상력은 그 무엇으로도 막아낼 수가 없었다. 교회의 경고에도 사람들은 온갖 괴상한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했으며 또 어떤 이는 그레이 경이 훌륭한 작품을 선물해주러 온 악마라는 소리까지 해댈 지경까지 이르고야 말았다. 물론, 그는 머지않아 이 도시에서 얼굴을 비추지 못하게 되었지만. 이 도시로 이사를 온지 겨우 반 년이 채 되지 않은 랭은 그 괴소문들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그레이의 편지라는 괴소문 조차 이 거무죽죽한 도시에 어떤 미묘한 전설이라도 걸어두고 싶었던 인간의 소행이라 생각할 정도였다. 한 달 전 그 편지를 받기 전까지는. 그래, 그 때까지는 그 또한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 밀튼. 두 번째 편지가 왔네. ” “ 자네에게도 드디어 두브로의 망령이 찾아온 게로구만. ” “ 말조심하게, 밀튼. ” 랭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예민해져있었다. 거칠게 돋아난 것같기도, 무릇 쉬어있는 것같기도 했다. 어찌되었던간 랭의 모든 신경이 편지를 향해 있다는 것정도는 모두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지경이었다. 밀튼은 둥그런 안경테를 한 번 고쳐쓰고는 랭이 집어던진 편지지를 찬찬히 훑어내리기 시작했다. 고작 두세 줄 정도의 짤막한 편지. 제 책상 위로 라즈베리 차가 올려져 있었으나 랭은 그것을 본체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풀풀 김이 올라오는 것에 신경이 거슬렸는지 찻잔을 툭 밀어내버렸다. 반쯤 채워져있던 라즈베리 차가 몇 방울 책상 위로 넘쳐 떨어졌고, 랭은 여전히 그것을 무시한 채 팔짱을 끼고는 반쯤 내리깐 눈동자로 밀튼을 바라보고 있었다. 밀튼, 그 또한 랭의 동료로 벌써 두 편의 소설을 완성한 작가였다. 랭은 희곡을 쓰는 작가였고 밀튼은 오로지 소설만을 취급하는 작가였으나 둘은 나름 죽이 잘 맞는 동료였기에 단 둘이서 티타임을 갖거나 서로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일이 흔했다. 오늘은 티타임이나 식사 대접 따위가 목적은 아니었지만. 밀튼이 편지를 건네 받고 십 분이 넘게 지난 시간이었다. 팔짱을 끼고 있던 랭의 손은 어느샌가 제 이마를, 또 한 손은 책상을 짚고 있었다. 밀튼. 랭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불렀다. 밀튼은 협탁 위에 놓인 찻잔을 느긋이 내려놓으며 시선을 돌려냈다. “ 난 지금 이 빌어먹을 작자 때문에 미치기 직전이야. 내 신경을 긁어내고 있다고. ” 감정을 꾹꾹 눌러담아낸 듯한 목소리였다. 발음 하나하나에 힘을 준, 날이 잔뜩 서있는 목소리. 랭의 시선이 밀튼을 향해 천천히 떠올랐다. 맑은 푸른빛을 띄던 눈동자 뒤로 새빨간 핏줄이 언뜻 보이고 있었다. “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아, 마이어스. 어쩌면 좋은 기회일 수도 있지 않나. ” “ 좋은 기회? 자네도 머리 한 부분이 이상해진 게 분명하군. ” 밀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랭이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소리를 내질렀다. 꼭 성난 말과 같았다. 평소에는 그리도 품격을 찾던 랭이 이리도 경박스런 모습을 보이다니, 참 별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감정이 실려 쿵쿵거리는 발걸음으로 책상 아래 서랍장을 당겨 열어낸 랭은 거친 손놀림으로 서랍장 가장 안쪽에 보관되어있던 편지지 하나를 꺼내들었다. 밀튼의 손에 들린 그것과 같은 재질의 편지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랭이 들고 있는 편지지에는 대략 열 줄이 넘어갈 정도의 빽빽한 글씨가 채워져있었다는 것이었다. “ 가증스러워서 읽어줄 수가 없군. 지금 나더러 연쇄살인범의 전기를 쓰라는 말인가? ” 협탁과 책상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그렇기에 랭은 몇 걸음을 떼내지 않고도 금방 밀튼이 앉은 의자 앞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랭은 아까보다도 더 흥분한 듯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근 일주일 내로 랭이 이토록이나 크게 화를 낸 일은 없었다. 랭은 늘 품격이 넘치는 신사였고, 제 감정을 훌륭히 숨길줄 아는 인간이었기에. 그는 그토록이나 이성적인 인간이었건만―. 밀튼이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그 둥그런 안경을 치켜올리자, 랭은 낮게 으르렁대는 목소리로 편지 위의 글자들을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ㄴ20190507 갑자기 쓰고 싶어서 무작정... 퇴고 한 번도 안해서 내일 보면 개판일 듯 한 달 뒤에 다시 읽어보고 고쳐보자.....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E1g7zapVbwl 2019/08/09 01:16:05 ID : LasjjwFg6i1
그이는 대문을 나서며 쯧, 혀를 찼습니다. 함박눈이 푹푹 내리던 겨울날의 밤이었습니다. * " 돌아올기제? " " 아, 걱정 마쇼. " 주름이 깊은 노파가 그이의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었습니다. 그이는 퍽 귀찮은 얼굴을 하고선 그 손길이 마냥 싫진 않은 듯 잠자코 자세를 굳히고만 있습니다. 노파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옵니다. 노파의 맑은 눈은 그이의 가슴팍을 향하고 있습니다. 변변찮은 옷가지도 없어 우야노. 노파의 목소리가 자그맣게 기어듭니다. 노파의 마음 속에는 죄책감과 미안함, 온통 어둑하고 아득한 감정만이 끈적히 눌러붙어있습니다. 감정이 세월을 못이겨 녹아내린 모양새입니다. 그이는, 페, 입술을 퉁깁니다. 의도적으로 비튼 시선이 산끝을 향합니다. 노파의 손끝이 붉게 얼어붙었습니다. 그이의 눈에도 그것이 비친 모양입니다. 아, 고만 좀 하소. 그이가 노파의 손을 거칠게 쳐냈습니다. 노파의 손은 우물쭈물 갈 길을 잃다, 결국 그이의 얼굴께로 향했습니다. 깊은 주름이 빨갛게 언 뺨을 어룹니다. 크게 한 바퀴, 소중한 듯 한참을 어룹니다. 함박눈에 축축히 젖어든 눈동자는 그이를 바라보다 저물었습니다. 그이의 눈동자는 여전히 뻣뻣히 노파의 정수리에 꽂혀듭니다. " 인자 진짜 가요. " " 으응, 조심혀. " 그이는 말만 던지고는 어째 미동이 없습니다. 머뭇이는 모양새도 아닙니다. 그저 우두커니 서있습니다. 함박눈은 그이가 기둥인줄 알고 머리 위로 소복히 쌓여만갑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이는 여전히 요지부동입니다. " 돌아올거요. 근데 기다리진 마셔. " 노파는 말이 없습니다. 말 하는 법을 잊어먹은 듯합니다. 노파는 그이의 얼굴에서 내린 손을 꼭 맞잡았습니다. 거무죽죽한 하늘이 꼭 노파의 눈과 같아보입니다. 들어가보쇼. 그이가 고개를 기울입니다. 진짜 갑니다. 매정한 그이는 그 말을 남기고는 뒤도 돌지 않습니다. 저벅저벅 남겨진 발자국에서, 그이의 목소리가 자꾸만 밟힙니다. 그이는 대문을 나서며 쯧, 혀를 찼습니다. 함박눈이 푹푹 내리던 계절의 인사였습니다. #인코 이거 맞나...진짜 오랜만에 들어오네ㅠㅠㅠ... 내 의지란.... 근데 퇴고 안 하는 버릇 고쳐야하는데;;;;; # 0810 오타 수정 / 보입다 -> 보입니다ㅠ
◆E1g7zapVbwl 2019/09/12 01:01:32 ID : LasjjwFg6i1
“ 그래서 말이죠. ” 여자가 차분히 숨을 골랐다. 공기를 들이마시는 동시에 그것들이 들끓는 소리가 들렸다. 1인용 소파에 몸을 기대 앉은 여자는 멀거니 반대편 벽을 바라보고 있다. "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됐어요. " 무슨 문제가 있나요? 여자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뻣뻣히 굳은 표정을 짓던 여자는 가볍게 발 끝을 구르다, 퉁기듯 몸을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 문제…가 아니에요. 내가 사람을 싫어하게 되었다는 게 쟁점이었죠. " 여자의 표정이 오묘하다. 뻣뻣하게 굳어든 얼굴이 미약하게 일그러드는 것 같기도, 혹은 얄팍한 환희에 젖은 것 같기도 했다. 말을 마친 여자는 다시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한결 더 안락해진 모습이었다. 무언가를 더 말하고 싶은듯 입술을 달싹이던 여자가, 별안간 제 눈썹을 꿈틀인다. " 나는, 내가 영원히 인간을 사랑할 줄 알았어요. 내게는 그것이 당연한 이치였죠. " 여자가 자세를 바꿔 앉았다. " 그러한 목적을 위해 손수 신이 빚어준 생명이리라 믿었어요. 그러니까, 뭐랄까… " 여자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여자의 목소리가 사라진 공간은 정적으로 덧칠해진다. 도르륵, 눈을 한 번 굴려낸 여자가 검지를 들어 제 턱선을 매끄럽게 문질렀다. " 숙명? "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군요. 여자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제 할 말을 이어갔다. " 뭐 이제는 필요 없지만요. 아무튼 중요한 건, 내가 인간을 싫어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난 인간이라면 지긋지긋해요. 세상에서 가장 악한 존재가 바로 인간일걸요. " 여자의 눈이 잠시 반짝였다. 지는 햇살에 눈이 비추어진 탓이었다. 잠시 눈가를 찡그리던 여자는 그대로 눈을 감아내린 뒤, 조곤히 말을 이어나갔다. " 조금이라도 상대가 호의를 베풀면 제 아랫 존재로 낮잡아보고, 늘 게으르죠. 게다가 얼마나 이중적인데요. 아, 실증도 금방 내고요. " 여자는 여전히 무표정을 고집했다. 매끄러운 얼굴형과 텅 빈듯한 눈동자. 노을빛을 받아 은은히 빛나는 피부 결. 단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굳다 못해 고정된 듯한 그 공허한 무표정이었을까. 여자가 드디어 입을 멈추었다. 여전히 반대편 벽을 응시한 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한참이나 고요를 입에 물고 있던 여자가 찬찬히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판판한 유리벽이 여자의 눈동자 속으로 비쳐든다. " 내 말 듣고 있나요? " 여자의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어쩔 수 없지. 저 제품은 폐기처분해. 아, 마이크 안 꺼놓은겐가? 암전이 된 방 밖에서, 늙은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호다닥 쓰다가 잠시 결말 어떻게 쓸까 고만하고 또 그냥 호다닥 마무리 지은 글 #좀 자주 들어오자 내현생아~~,,
◆E1g7zapVbwl 2019/10/04 01:09:09 ID : LasjjwFg6i1
은아가 돌아왔다. 꼬박 삼 년만의 일이었다. 엄마, 아빠. 나와봐요. 은아예요. 은아는 아무렇지 않게 사라졌던 그날 밤처럼 돌아왔다. 삼 년동안 머리가 많이 길었고, 키도 조금 큰 것처럼 느껴졌다. 턱 끝에 겨우 닿던 머리카락은 어느새 가슴팍에서 찰랑였다. 흑단 같이 검은 머리색만이 그대로였다. 그날 밤 입었던 분홍색 원피스는 조금 낡았고, 발이 많이 커버린 탓일지 분홍색 구두 대신 낡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무릎까지 오던 원피스는 허벅지 아랫단에 겨우 닿았다. 키가 큰 게 맞았다. 그런데 오히려 살은 빠진걸지 꼭 맞던 원피스가 헐렁했다. 안그래도 마른 편이었던 은아는 더 빼빼말라버리고 말았다. 새하얗던 살결은 조금 건조해보였다. 피부가 조금 그을리기도 했다. 삼 년만에 은아를 본 부모님은 덤덤했다. 내색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몇 달 몇 밤을 은아의 이름이나 부르짖으며 울었던 게 무색했다. 전혀 놀라지도, 기쁘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부모님은 그저 평소와 같은 얼굴로 은아를 맞이했다. 그동안 어디서 지냈어? 은아는 답하지 않았다. 은아는 묵묵히 김자반에 하얀 쌀밥을 비볐다. 은아는 소세지를 제일 좋아했다. 나는 된장국에 밥을 말았다. 우리의 저녁은 늘 조용했다. 사실 은아가 떠나기 전에는 시끄러웠는데, 은아가 떠난 이후로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부모님은 은아가 떠난 후로 소세지 반찬을 하지 않았다. 사실 나도 소세지 반찬을 좋아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말할 수 없었다. 집안 곳곳에는 은아의 액자가 놓여있다. 식탁에서 바로 마주보이는 거실 장식장에도, 현관 옆의 신발장 위에도, TV 위에도, 안방 서랍장과 화장대 위에도. 온통 은아의 얼굴이었는데, 볼살이 통통하게 오른 시절의 사진이었다. 은아는 밥을 먹는 동안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높고 귀엽던 은아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는데, 은아는 묵묵히 밥만 먹었다. 너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은아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나는 괜스레 머쓱해져, 쓸데없는 말을 덧붙였다. 왜 화를 내고 그래. 은아는 화가 난 것같았다. 밥도 먹지 않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은아는 화가 날 때면 종종 얼어붙곤 했다. 그러고 난 뒤 한참이나 숨을 몰아쉬다 빵 울음을 터트렸다. 은아는 늘 울기 전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은아야, 너 울어? 은아가 우는지 울지 않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은아야, 너 얼굴 좀 보여줘. 우는지 안 우는 지 알 수가 없잖아. 삼 년 전의 은아는 얼굴이 제법 통통하고 눈이 컸는데. 눈동자는 반짝였고 입술은 오동통했는데. 콧망울은 작았는데. 양 볼이 꼭 도토리를 숨겨둔 다람쥐 같았는데. 내가 그래서 너 다람쥐라고 불렀잖아. 은아야 기억 나? * " 진아야, 일어나. " 엄마가 나를 부른 건 꼬박 세 시가 넘어서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은아의 얼굴이었다. 볼이 오동통하고, 눈이 크던 시절이었다. 우리 은아를 찾습니다. 나는 그 문장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엄마를 보았다. 엄마, 내 꿈에 은아가 나왔어요. 은아가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었어요. #이것도 방금 다 썼으니까... 내일 퇴고하자.... 자주 오자...
이름없음 2019/10/04 01:49:27 ID : 0rgo6ruk1e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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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1g7zapVbwl 2019/10/04 02:05:46 ID : LasjjwFg6i1
으잉 레스미아지? 나 소심해 ㅠㅅㅠ
◆E1g7zapVbwl 2019/11/24 03:51:04 ID : LasjjwFg6i1
우리들의 공통점은 고작 외로움이 전부였다. 나는 외로움이 많았다. 그것은 꼭 내 삶의 일부처럼 눌러 붙어버려, 어떤 날이건 하루의 말미를 외로움의 냄새로 물들게 만들고는 했다. 가령 창 밖을 내다볼 때나 홀로 침대 깊숙이 파고들 때, 새벽까지 뜬 눈으로 허공을 훑을 때 마음에서 나는 냄새들. 이따금 외로움이란 우울함과 겹치기도 하고 공허함과 마주하기도 했다. 외로움과 만나 밝고 맑은 색채를 띠는 감정은 없었다. 얕은 희망도 외로움을 만나면 까맣게 타들어가듯 탁해지고는 했다. 나는 그런 색채의 감정이 익숙했다. 아니면 내게 어울리는 색은 그따위의 탁한 색채밖에 없을거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너는, 외로움과 어울리지 않는 아이였다. 네 마음에서는 외로움의 냄새가 나질 않았다. 그런데 너는 꼭 한편으로는 깊은 외로움 속에 잠겨있는 것같기도 했다. 네 주변에는 사람이 참 많았는데, 너는 그 사이에서 외로움이란 감정을 놓지 못하는 것같았다. 놓지 못하는걸지, 그것이 너를 놓아주지 않는걸지. 혼자가 더 어울리는 나에 비해 너는 사람들 사이에 파고드는 것이 더 어울렸다. 그래서 네 외로움의 냄새는 금방 타인의 향취에 묻혀버리곤 했다. 그래서 내가 너를 알아보지 못했던 걸 수도 있고. 너와 나는 제법 죽이 잘 맞았다. 너와 함께하면 시간이란 게 참 편하게 느껴졌다. 너는 나와 있을 때 책을 읽거나, 나와 수다를 떨려 하거나, 창 밖을 내다보았다. 나는 대부분 그런 너를 구경했다. 너와 단 둘이 있을 때는 네 외로움이 살갗 바로 아래까지 물 밀려오고는 했는데, 네 외로움은 내 것에 비해서 무척이나 차가웠다. 아주 조금이라도 더 오래 그것에 몸을 담궜다가는 저체온증으로 죽어버릴 정도로. 그래서일지 너는 외로움에 몸을 담글 수 있는 허용 시간을 철저히 지켰다. 대체로 그 시간은 밤과 새벽이었다. 하늘이 거무죽죽할 때만 외로움에 몸을 담그고, 날이 밝아오면 너는 재빨리 그곳에서 벗어났다. 내 외로움은 미적지근해서, 나는 대부분 그곳에 잠긴 채로 너를 구경했다. 너는 한낮의 시간에도 이따금 외로움에 몸을 담그다 나오고는 했다. 주변에 사람들이 참 많았는데. 어쩌면 그 사람들이 너를 억지로 떠민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와 내가, 서로의 외로움을 채워주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을 것이다. 너도 나와 똑같이 생각하겠지. 우리는 외로움이 너무 무거울 때 서로를 필요로 했지만 그것이 온전히 사라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아주 가끔 그런 경우도 있긴 했지만. 그저 목 끝까지 차오른 외로움을 서로 조금씩 퍼내주고, 숨통이 트일만 하면 멈추었다. 죽지 않을 정도로만. 상대의 외로움을 온전히 받아들이거나 없애주기엔 각자의 외로움이 너무 버거웠다. 너도, 나도. #오랜만~... 갬성타서 일단 아무렇게나 적어봄... 내일이면 이불킥 하려나
이름없음 2019/11/25 17:27:25 ID : B8641A0pRA0
이런 분위기 글 좋아.
삶, ◆fVeY3DxXBBu 2020/01/23 00:31:39 ID : LasjjwFg6i1
더이상 삶을 연명해낼 이유가 없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난방을 켜지 않아 싸늘해진 집 안에, 홀로 앉은 채 멀거니 하늘을 바라보다 떠올린 판단이었다. 아무리 고심해봐도, 그러한 진리를 깨달은 뒤로 부터는, 도저히 살아가야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혹여 살아가야할 이유가 저 모르게 꽁꽁 숨겨져 있는걸까 싶다가도, 그는 곧내 구태여 제 손을 더럽히면서까지 땅 속에 묻혀있을 삶의 목적을 찾아내야하는가에 대한 의문에 휩싸였다. 그는 삶이 버거웠다.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땅을 파낼 자신도 힘도 의미도 이유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태곳적부터 낙오자의 꼬리표를 단 채로 세상에 출하된 것이 틀림없노라 생각했다. 그는 길바닥에 몸을 누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의 발걸음은 빨랐다. 주변인들이 한 걸음을 내딛는 동안, 그는 한 걸음 하고도 반걸음을 앞서 나갔다. 당장이라도 걸음을 멈추고 땅바닥에 머리를 기대고 싶었다. 옆으로 몸을 뉘이고, 몸을 한껏 웅크리고, 한쪽 팔로 얼굴을 가린 채, 그렇게 잠들고 싶었다. 그의 머릿 속은 공허했다. 부질없는 생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위로 다시 부질없는 생각이란 생각이, 그 생각 위로 다시 한 번 생각이, 그리고 그 생각 위로 또 한 번 생각이…. 생각이 생각을 덧씌운 그의 존재란 하등 부질없는 객체였던가. 세상에서 사라져야지. 그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무리 길게 고민한들 결국 종착지는 죽음일 것이 확실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상상 속의 그는 몇 번이나 죽음을 맞이했다. 상상 속의 자신은 죽는 순간에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그는 참 좋았다. 어느샌가 상상 속의 자신을 죽여버리는 일이 즐거웠다.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그는 상상 속에서 무적이었다. 사라져야지, 살아져야지. 혹은
삶,미완 ◆E1g7zapVbwl 2020/01/23 00:32:01 ID : LasjjwFg6i1
아 인코 잘못나왔다...
◆E1g7zapVbwl 2020/01/23 00:32:55 ID : LasjjwFg6i1
으악 이 레스를 너무 늦게 봤네...! 고마워 익명의 레더야💗
◆E1g7zapVbwl 2020/03/05 16:49:25 ID : LasjjwFg6i1
우리의 시선은 모두 보랏빛이야. 너는 제비꽃을 들고 있어. "말했잖아. 나는 장미를 좋아한다니까." 나는 제비꽃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 한여름 쨍한 햇빛에 내 목소리가 지글지글 익어갔지. 너는 이 강렬한 햇볕에 바짝 구워진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원래 바짝 익은 것들은 말소리를 잃곤 하잖아. 대신 너는 제비꽃을 들이밀었어. 푹 익어 고꾸라지기 직전의 모습이었지. 사지가 끊어져 생명을 잃은건지, 더위를 먹어서 그런건지. 하여튼간 제비꽃은 그런 모습이었어. "장미를 가져와." 내가 말했어. 조금 심통이 난 목소리였어. 왜냐면, 말했잖아. 나는 장미를 좋아한대도. 이 모습을 더이상 두고보질 못하겠던지, 순간 태양이 구름 속으로 사라졌어. 우리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지고 삐질삐질 땀이 흐르던 자리가 서늘해졌지. 너는 제비꽃을 다시 가져갔어. 오른손에 꼭 쥐고 있던 제비꽃이 조금 생생해진 것같았어. 제비꽃도 그늘 아래가 좋았던걸지. 그날은 하늘이 예뻤어. 구름은 파란빛이 돌았어. 꼭 추위에 질린 사람처럼 말이야. 한 여름에 추위에 질리다니. 하늘은 보라색이었어. 해가 스르르 지고 있던 시간이었거든. 보라색 하늘 아래 있는 제비꽃이 난 싫었어. 사실 네가 신고 있던 보라색 찍찍이 신발도 싫었어. 맞아. 찍찍이 위에 불빛이 반짝대는 스티커가 붙어있던 그거 말이야. 아, 스티커가 아니었나? 잘 모르겠어. 너는 얇은 머리칼을 양갈래로 묶고 있었지. 근데 한쪽이 밉게 풀어져 있었어. 삐죽삐죽 머리카락이 튀어나와 있었고. 너는 제비꽃을 쥔 손으로 풀어진 머리를 매만졌어. 힘없는 고무줄이 네 머리카락 위에서 간신히 버티는 중이었지. 다음에는 장미를 찾아볼게. 네가 말했어.
고치 ◆E1g7zapVbwl 2020/03/06 01:16:07 ID : LasjjwFg6i1
비닐을 늘려 뒤집어쓴 남자는 아스팔트 바닥 위에 눕는다 비닐 아래로 눈을 감고 두 손 가지런히 모으고 오롯이 순환하는 숨결 속에서 아무런 미동도 없이 그렇게 고치를 튼다 길바닥에서 주워온 허물을 벗을 생각도 않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고치를 튼다 고치를 깨트릴 생각도 고치를 벗어날 생각도 비닐을 찢어낼 생각도 않고 아스팔트 틈새로 뿌리처럼 이어진 틈새로 천천히 스며들어 시간과 미래와 꿈들의 거름이 된다
나, ◆uk5SMi9zanD 2020/03/14 00:26:06 ID : LasjjwFg6i1
유리잔이 깨졌다. 부엌 한 켠에 우뚝 선 나영이 깨진 파편들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저께부터 찌르르 아파오던 허리를 굽히고, 동시에 비질비질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귓잔등에 꽂아넣으며, 마룻바닥 위로 쭈그려 앉은 나영은, 먼발치서 불구경을 하듯 멍한 얼굴로 유리 조각들을 응시했다. 큰 조각이 세 개, 그것보다 작은 조각이 여섯 개... 별안간, 나영이 바짝 세운 무릎 사이로 얼굴을 처박았다. 유리잔이 깨졌다. 나영은 일상의 그 작은 균열로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룻바닥에 흩뿌려진 작은 유리 알갱이들이 나영의 눈알과 입천장과 손금 사이로 그득그득 쳐박힌 기분이 들었다.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게. 나영이 까득 입술을 깨물었다. 나영의 삶은 늘 이런 식이었다. 이 작은 해프닝 따위에 삶이 조각날 정도로 위태롭고 앙상했다. 나영은 늘 그런 인간이었다. 기어이 무언가에 손을 대고 구태여 그것을 망가트렸다. 모든 것을. 나영은 살짝 고개를 들어 마룻바닥 위를 바라보았다. 작은 알갱이들이, 꼭 설탕을 흩뿌린 듯이, 햇살 위로 자글자글 빛났다. 나영은, 저 유리 조각들이 내 삶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가에 무언가가 치밀어오른다. 바깥으로 밀고 나가려는 듯 그것이 울렁인다. 목 끝에서 무언가가 가르륵 죽는 소리를 낸다. 입꼬리가 주륵 아래를 향해 흘러내린다. 눈가가 뜨겁다. 마음에 목이 메인다. 창문 끝에서 햇살을 잘라 밀어넣던 태양 조차 등을 돌린다. 나영은 늘 그런 인간이었다. 늘 모든 것을 망쳤다. 나영은 늘 무언가를 망가트리고, 엉망으로 만들었다. 나영이 잔뜩 구부린 자신의 무릎을 끌어안았다. 코끝에서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빠져나온다. 목구멍이 컥컥 소리를 낸다. 등허리가 헐떡인다. 나는 늘 그런 인간이었다.
나,영 ◆E1g7zapVbwl 2020/03/14 00:26:22 ID : LasjjwFg6i1
인코 화난다... 나중에 뭐 알아서 퇴고하러 오겠지....? 퇴고 안 하고 올리는 거 버릇되면 안되는데.....
이름없음 2020/03/14 00:35:44 ID : Aqrs7gjjBAk
스레주 잘쓴다~! 글들이 되게 분위기 있어 이런 분위기 글 진짜 좋아하는데! 앞으로도 종종 읽으러 올게~
◆E1g7zapVbwl 2020/03/14 00:49:22 ID : LasjjwFg6i1
헉 칭찬 넘 고마워〰️💗 별루 잘 쓰는 실력도 아닌걸ㅠㅠㅠㅠㅠ 글들이 분위기 있다니 이 레스 읽고 넘 기분이 좋아졌어! 자주 놀러와!!
이름없음 2020/03/14 01:11:52 ID : cHDs2moL89A
ㅠㅠㅠㅠ대박 뭐지 하고 들어왔다가 숨죽이고 정독했어ㅠㅠㅠ 계속 틈틈히 올려주라....사랑해 스레주야😘
◆E1g7zapVbwl 2020/03/14 01:40:09 ID : LasjjwFg6i1
헉 혹시 나 오늘 무슨 날인가〰️!! 흑흑 읽어줘서 고마워ㅠㅠㅜ💕 넘 행복하네 나두 사랑해 착한 레더야 자주 올릴게 자주 와〰️〰️!!
지평선 ◆E1g7zapVbwl 2020/03/30 02:03:30 ID : LasjjwFg6i1
내 사랑은 무얼 그리 잘못했길래 하늘색 위 그어진 지평선보다도 아득하고 또 아득할까 무거운 사랑에 가득 담긴 눈물을 전부 짜고 나면 그때는 아픔이 덜할까 문득 네 생각이 스치면 괜스레 저 멀리 너머를 바라보는 건 지평선 너머 광활한 곳에 너를 두고 오고 싶어서일까
우울 ◆E1g7zapVbwl 2020/04/05 00:59:08 ID : LasjjwFg6i1
우울이 없는 삶은 결국 온전한 삶이 아니다 마음보다 비좁은 방에 앉아 외벽에 가로막힌 창문 밖을 넋 잃고 바라보다 보면 눅눅한 벽지처럼 깔린 어둠을 멀거니 바라보다 보면 비로소 삶에 끝에는 우울이 함께 하고 있음을 그 오랜 시간을 함께 해주는 것은 결국에 무뎌지는 행복도 결국에 강인해지는 슬픔도 결국에 잃어버리는 분노도 아닌 내 마음 멍든 색처럼 푸르른 우울이 함께 하고 있음을 # 나는 시에는 소질이 없는 거 같다...ㅠ
◆E1g7zapVbwl 2020/07/11 22:39:24 ID : LasjjwFg6i1
오랜만에 생존 신고... 스레 버린 게 아니라 스레주가 고삼이라ㅠㅠ... 들어올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방치하게 됐네... 무튼 요즘 생각나는 문장이나 소재들은 쭉쭉 정리하고 있는데 요런 것들 갈무리 해서라도 뭐 하나 올려야겠다~~...
이름없음 2020/07/12 18:07:14 ID : ttjy2K0oNBx
스레주 글 멋지다
◆E1g7zapVbwl 2020/07/13 20:22:37 ID : GmoFeIK3V82
헉... 칭찬 넘 고마워ㅠㅠㅠㅠ💕 글이 멋지다니 쪼끔 늦게 읽긴 했지만 넘 기분 좋다... 흑흑 이렇게 가끔 가다 달리는 레스 하나가 날 행복하게 만들어... 정말정말 고마워!! 😘
이름없음 2020/07/22 17:55:55 ID : i9y7tipeY6Z
스레주 이 글 보고 진짜 미친듯이 정독했어! 너무 재밌고 감정선이 특히나 너무 좋아.. 이건 진짜 악마의 재능정돈데 고 3이라 바빠서 못오는거라고 했지만 얼른 와서 더 써주면 하는....암튼 글 잘보고있어!
◆E1g7zapVbwl 2020/08/08 20:17:53 ID : LasjjwFg6i1
헉 늦게 봐서 정말 미안해...!! ㅠㅠㅠㅠㅠ악마의 재능이라니 진짜 너무너무 고마워ㅜㅠㅠㅠㅠ... 셤기간 끝나서 다시 들어왔는데 오자마자 딱 너레더 레스 보고 너무 기분이 좋아졌어...ㅠㅠ 정말정말 고마워 시험이 끝나긴 했어도 자소서나 면접 준비나 수능 준비로 이것저것 바쁘겠지만... 😂 전보다는 틈틈히 더 많이 들어오도록 노력할게 칭찬 정말 고마워! 💘💕💕
이름없음 2020/08/08 23:27:12 ID : Ds5Wi9uk1eM
시에는 소질이 없다니... 너무 잘썼다. 레주는 글 쓰는거 되게 소질있구나🎈자주 들릴게 향기로운 밤 되길💐
이름없음 2020/08/10 12:52:30 ID : i9y7tipeY6Z
스레주!!!!!!!!!!!! 아악........나는 왜 8일에 안들어온거야.............내 못난 주접으로 기분이 좋아졌다니 너무너무너무너무 행볻해....나 정말 스레딕 들어오면 스레주글부터 정독하고 눈팅을 시작해.....정말 그정도로 스레주 글을 사랑해...ㅠㅠ 난ㄴ 정말 언제든 볼 준비가 되있으니까 천천히 늦게 여유있을때 언제든 와서 조각글이라도 써주고 가줘..!! 더 많이 얘기하면 친목되니까 여기까지할게.....정말 스레주 사랑하고....사랑해.....❣
눈에 ◆q5arcIFhgmF 2020/08/26 18:08:53 ID : LasjjwFg6i1
태양을 사랑한 인간은 가엾다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는 것조차 죄가 되어 두 눈이 멀고마는 벌을 받는다 나는 태양을 사랑했고 그 강렬한 사랑을 바라보다 눈에 가시가 돋은 듯 내 마음이 멀어간다 «눈에 가시가 돋은 듯 내 마음이 멀어간다» # 이건... 사실 <눈에 가시가 돋은 듯 내 마음이 멀어간다> 라는 문장이 번뜩 생각 났는데, 도저히 적절히 끼워넣을 시나 소설이 생각나질 않아서ㅋㅋㅋㅋㅋ 얼렁뚱땅 지은 시~~! 마음에 드는 시는 아니네... 😫 진짜 오랜만에 왔다...
◆E1g7zapVbwl 2020/08/26 18:13:15 ID : LasjjwFg6i1
아 인코.... 왜...^^.. 헉 내가 넘 늦게 봤지ㅠㅠㅠㅠㅠ 고마워 레더야... 소질 있다는 말은 언제 들어두 넘 기분이 좋아지는 거 같아💖💖 예쁘게 말해줘서 넘 고맙구 늦었지만 코로나 태풍 조심! 자주 와준다니 넘 행복하네😘😘 ㅋㅋㅋㅋㅋㅋㅋ이 레스도 넘... 늦게 봤어~~! 진짜... 진짜 레더야 넘 사랑해ㅠㅠㅠㅠ💕💖💗 내 글이 머라구... 누군가가 내 글을 정독하고 좋아해준다니 진짜 넘 기쁘고 행복하구... 사랑해 레더야.....❣️ 레더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머리 굴려서 글 써야겠다~~ 진짜 힘이 되는 이야기밖에 안 해주네 다들ㅠㅠㅠ 레더두 코로나, 태풍 조심하구 정말 넘 고마워😭😭 거의 한 달만인가...? 그동안 글을 아예 안 쓴 건 아닌데... 신세계 보고 2차 창작? 이라고 해야하나 이자성 독백 쓴 게 고작이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ㅠㅠㅠ 아 이걸 올려말어... 싶다... 😂 하지만 자성이... 자성이가 넘 멋졌던걸... 아무튼 소설 창작판이니까 사담은 이쯤하고... 더 자주 와야겠다~~...
32 2020/08/27 12:13:00 ID : f84IMp9fRu0
히히 고마워🌻 레주도 태풍이랑 코로나 조심하고! 시원한 하루 되길 바라💙💚
이름없음 2020/08/27 20:24:38 ID : JU45e1zTRDx
와... 의 삶은 바다같고 나는 파도같다는 그 문장 너무너무 좋다. 좋은 글 잘 읽었어 스레주!
바다 ◆E1g7zapVbwl 2020/10/14 00:02:00 ID : LasjjwFg6i1
언젠간 바다에 가보자. 그는 비쩍 마른 팔로 내 몸을 감싸안으며 그리 말했다. 창백하게 달라붙은 살가죽이 이마를 쓸고, 입술을 쓸고, 손등을 쓸고. 그의 손은 무척이나 차가웠다. 얼음장에 손을 가득 담구었다 빼어낸 듯 차가웠다. 나는 그것이 생명의 온도임을 알고 있었다. 그의 생명력이 찬찬히 식어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나는 항상 그의 손을 양 손 가득 잡아쥐었다. 조금이라도 그의 손이 따스해지길 바라면서. 얼음장같은 그 손이 녹기를 바라면서.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새하얀 침대 위로 구겨지듯 몸을 누인 우리는 손으로 바다를, 입으로 우주를, 눈으로 들판을 그렸다. 겨울 바다는 어때? 춥지 않을까. 하지만 서로 꼭 안고 있으면 괜찮을거야. 그래. 그럼 겨울 바다를 가보자. 그가 말했다. 제 품 속으로 나를 가두며 그리 말했다. 갈라지고 튿어진 목소리에는 벌써 겨울이 와있다. 눈이 내릴 준비를 마친 듯, 고요하고 겸허한 목소리였다. 바다로 가자. 그는 가족이 없었다. 그의 젊은 어머니는 일찍이 그를 버리고 제 살 길을 찾아 나섰다. 때문에 다섯살의 그는 밤이면 밤마다 아버지의 허리끈을 피해 찬 겨울 부엌방으로 달아나야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열아홉이 될 무렵 거나하게 취한 채 밤거리를 휘청이다 쓰러졌다. 손을 쓸 새도 없이 아버지는 그리 허무하게도 삶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그는 가족이 없었다. 나는 바다로 향했다. 외로이 이름 석 자 적힌 유골함을 들고서. 겨울 바다로 향했다. 겨울을 닮은 푸른 빛이 천지에 가득했다. 한 줌이 되어버린 그에게선 온기가 느껴졌다. 품 안 가득히 그의 향취가 느껴졌다. 비쩍 마른 손으로 손등을 쓸고, 입술을 쓸고, 이마를 쓸고. 갈라진 목소리로 사랑을 속삭이고. 새하얀 침대에 함께 몸을 구기고서 선잠에 든 나를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차가운 손으로, 생명이 뜨겁게 뛰어오르는 손을 맞잡으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바다를 보러 가자던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떠나고 하얗고 차가운 그 곳에 남겨졌을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밤을 싫어하던 그가 그 외로운 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밤을 싫어했다. 밤에는 늘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그의 어머니가 떠나고, 아버지가 허리끈을 휘두르고, 홀로 추위에 떨며 잠에 들고, 홀로 죽음의 두려움을 견디고. 그는 그리도 싫어하던 밤에 훌쩍 떠났다. 바다를 찾아 떠난 것일지, 은하수가 드리웠을 그 어딘가의 하늘을 찾아 떠난걸지. 밤에는 늘 좋지 않는 일이 일어났거든. 그가 말했다. 그는 그리도 싫어하던 밤에 자유를 찾아 떠났다. 차디찬 바닷물 위로 그를 보냈다. 그러다 문득 그가 추위를 잘 타던 것을 떠올렸다. 얼마나 추울까. 겨울 바다 위로 몸을 뉘이고 잔물결에 몸을 맡긴 그는 얼마나 추웠을까. 하늘을 훨훨 날아 따스한 곳으로 가길 바랬건만 이 추운 바다에서 몸이 젖어 더욱 더 차가운 곳으로, 더욱 더 차디찬 곳으로 가라앉아버리는 건 아닐까. 저 아래에서 그 마른 손을 휘적이고 있진 않을까. 겨울 바다를 보자던 내 멍청한 말 한 마디에 그가 떠나지도 못하고 덜덜 몸을 떨고 있진 않을까. 저 바닷 속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차마 그를 보낼 수 없었다. 차가운 바람이 파도 속으로 몸을 던진다. 저 하늘 위로 몸을 날렸음 좋을 것을 자꾸만 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E1g7zapVbwl 2020/10/14 00:05:15 ID : LasjjwFg6i1
아이구 8월 레스를 이제야... 😂 레스 남겨줘서 고마워! 별 것두 아닌 글인데 요렇게 한 마디씩 남겨주고 가니까 넘 행복하다... 많이 늦었지만 정말 고맙구 좋은 밤 보냈음 좋겠다💖💘💕💘💖 그냥 손 가는대로 쓴거라... 내일 다시 읽으면 띠용스러울 거 같네...ㅋㅋㅋ큐ㅠㅠ 어우 넘 오랜만에 왔다 반성반성...
죽음 ◆E1g7zapVbwl 2020/10/14 00:05:57 ID : LasjjwFg6i1
사방에서 들려오는 죽음이 꼭 내 얘기인 것만 같다 누군가의 부고를 듣고도 인생이 녹아든 이름 세 글자 치워내어 내 이름 꾸역꾸역 밀어넣고 싶은 것은 죽음에 대한 갈망인지 미래를 위한 소망인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처절한 소망인지 죽고 싶은 마음으로 살고픈 마음을 증명한다
운명 ◆E1g7zapVbwl 2020/10/15 22:52:21 ID : yE3Co43TVhv
사랑을 갈망하던 때가 있었다. 차가운 겨울의 포옹, 스마트폰 화면 위로 떠오르는 당신의 이름, 졸린 듯 가라앉은 목소리, 목구멍이 끔찍이 타버려도 내뱉을 사랑한다는 말, 사랑의 증거를 찾아 움직이는 손길. 사랑 없는 삶을 죄악으로 여기듯 사랑을 찬양하던 때가 있었다. 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도 모른 채 사랑을 원했다. 사랑이 메마른 불모지엔 오직 사랑을 갈망하는 공허만이 무성히 자라났다. 사랑을 대신해 몸 속으로 차오른 공허함은 사랑의 조약한 모조품에 불과했다. 공허함과 외로움과 고독에는 이자가 붙는다. 갚아도 갚아도 끝이 없이 몰려드는 죄악들에 도망칠 곳은 없다. 차가운 밤 죄악을 씻고자 네 이름을 삼켜보아도, 두 손에 남는 것은 오직 공허함 뿐이니, 나는 오늘도 고독을 억지로 삼키며 구원을 바랄 뿐이다. #요즘 왜이렇게 글이 안 써지지...🤔 수능이 문제구나 ^!^
지희 ◆E1g7zapVbwl 2020/12/20 23:56:09 ID : LasjjwFg6i1
내가 지희를 만난 건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 늦은 밤 홀로 운동장에 앉아있던, 한겨울 밤 그때의 지희에게는 내가 필요했다. 그리고 나도 지희가 필요했다. 우리는 이름도 얼굴도 나이도 몰랐지만 서로가 필요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어두운 새벽 한 시에 만나게 되었고, 지희는 내게 씨발, 하며 작게 속삭였다. 지희는 평범한 여자애였다. 평범한 키에 평범한 얼굴에 평범한 옷을 입었다. 근데 유난히 짧고 똑 내려오는 단발을 했었다. 촌스러워. 그 말에 지희는 다시 한 번 씨발, 하며 욕을 했다. 지희는 나와 같은 학교였지만 좀처럼 학교에 나오지는 않았다. 어쩌다 그 애가 교복을 입고 오는 날은 그 애의 기분이 좋은 날, 학교에서 보이지 않는 날은 그 애가 피시방에서 하루종일 총질을 해대는 날. 그리고 유난히 운이 좋지 않은 날에 지희는 어김없이 학교 운동장에 나왔다. 새벽 한 시 그 컴컴한 밤에 직접 담을 넘어서까지. 우리가 만난 날도 지희는 운이 없었고,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지희는 그 늦은 시간에 운동장을 찾아온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새벽 한 시에 사람이 있는 운동장은 처음이었다. 혼자가 아닌 밤도 처음이었다. 지희를 알게 되고 한 달 뒤부터 나는 지희의 뒤를 졸졸 쫓았다. 지희는 대부분 나를 무시했고, 욕을 했고, 내 몫까지의 라면을 시켜줬다. 그러다 헤드샷을 맞으면 내 탓을 했다. 피시방에서 먹은 라면은 맛있었고 지희는 퉁퉁 불어버린 면발을 냅둔 채 피시방을 떠났다. 지희는 검은색을 좋아했다. 검은색을 입어야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고 했다. 지희는 살이 하얀 편이었지만 검은색으로 꽁꽁 감싼 덕에 매일 밤마다 어둠에 묻혀있을 수 있었다. 넌 어차피 사람들 눈에 잘 안 띄잖아. 학교에서도 여기서도. 지희는 검은 모자를 눌러쓰며 내게 그리 말했다. 지희는 이번 겨울이 끝나면 죽을 거라고 말했다. 사실 지희는 항상 죽겠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피시방에서도 이 판만 하고 죽을 것이라 말했고, 어쩌다 교복을 입고 가는 날에도 점심만 먹고 죽을 것이라 말했고, 새벽에 운동장을 찾아왔던 날에도 날이 밝으면 죽을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지희는 매번 아침을 맞았다. 나 때문에 그래? 지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번 겨울은 무척이나 추웠다. 지희는 목도리를 좋아했다. 어느 날 부턴가 남색 목도리를 둘둘 두르고 오더니 매일 밤마다 그 목도리를 맨 채 운동장으로 왔다. 목도리를 매고, 짧은 패딩을 입고, 검은 운동복을 입은 지희는 항상 고개를 푹 숙인 채 운동장 바닥을 바라보았다. 지희는 그것을 명상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게 거짓말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너 때문에 여기 오기 싫어. 지희는 매일 그렇게 말하며 운동장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한두시간을 보낸 뒤 늘 그렇듯 인사도 없이 돌아갔다. 나는 지희보다 조금 더 오래 여기에 남아있었고, 지희가 없는 운동장은 무척이나 쓸쓸했다. 야. 넌 집에 안 가? 지희가 스마트폰 액정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그러는 너는. 난 안 가. 그럼 나도 안 가. 너는 제발 좀 집에 가라고. 안 갈건데. 지금쯤 다 너 기다리고 있을걸. 알아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그럼 좀 가. 지희가 처음으로 교복을 입고 왔던 날, 지희는 나를 아는 척도 하지 않은 채 학교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곧장 학년부장 선생님께 걸려 교무실로 끌려갔다. 지희는 그동안 학교에 무단으로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혼났고, 점심을 먹고 난 뒤 익숙히 담을 넘어 학교를 빠져나갔다. 학교 때려치고 싶다. 지희가 말했다. 나도. 지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학교 때려칠려고. 지희가 운동장에서 말했다. 너도 그만 집에 가라 좀. 그리고 지희는 평소보다 일찍 학교를 떠났다. 지희가 항상 앉던 자리에서는 높은 아파트들이 보였다. 아파트에서는 환한 불빛이 반짝였고 그것들은 꼭 인공적으로 하늘에 박아둔 별자리 같았다. 지희가 앉아있던 자리에서는 아파트가 보이고, 하늘이 보이고, 횡단보도가 보이고, 차들이 보이고,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한참이나 지희가 앉던 자리에 앉아 별을 헤듯 아파트의 창문들을 헤아렸다. 지희가 찾아오지 않는 학교는 너무도 적막했다. 밤하늘 아래에서 최신 뉴스를 읽어주는 사람도 없었고, 아이돌의 신곡을 틀어주는 사람도 없었고, 이름의 뜻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복 지(祉)에 빛날 희(熙). 그게 지희의 이름이었다. 나는 잘 몰라. 그렇겠지. 너무 오래돼서. 어쩌라고. 그 날 지희는 그 뒤로 한참이나 한자 사전을 뒤적였다. 학교를 그만 둘 것이라 말한 이후로 지희는 운동장에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항상 그 자리에서 지희를 기다렸다. 지희의 남색 목도리에서 나던 그 향기를 기억하면서, 지희가 자주 쓰던 모자의 문양을 그려보면서. 야, 뭐하냐? 지희가 나를 보았다. 교복을 입은 채로. 집에 가라고 좀. 난 간다. 지희는 그 말만을 남기고 가버렸다. 오늘은 담장을 넘을 필요도 없었다. 지희가 다시 운동장에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나는 어쩌면 지희와 일찍 피는 벚꽃을 맞이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었다. 밤하늘 위로 활짝 핀 벚꽃을 보며 예쁘다, 하고 감탄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었다. 지희가 앉아있던 자리 위로 말라붙은 나뭇잎이 떨어졌다. 나뭇잎이 꽃잎으로 변하기 까진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지희는 항상 내게 집에 돌아가라는 말을 했다. 그러는 너도 집에 안 들어가면서. 내가 그렇게 대꾸할 때마다 지희는 입을 다물었다. 아니, 어쨌든 집 좀 가 제발. 언제까지고 거기서 그러지 말고. 교복을 입고서 운동장에 왔던 날에도 지희는 작별 인사 대신 그 말을 남겼다. 지희는 집으로 돌아갔다.
◆E1g7zapVbwl 2020/12/20 23:57:14 ID : LasjjwFg6i1
오랜만에 왔는데 대체 내가 뭘 쓴건지 모르겠네.... ㅎㅎㅎㅎㅎㅎ 에이 몰라...
짝사랑 ◆E1g7zapVbwl 2020/12/26 10:53:57 ID : AknDuleFfTR
나는 마음이 쉬운 사람이었다. 어쩌다 네가 한 번 던져준 그 눈길을 사랑이라 착각한 채 매일 밤 품고, 매일 밤 닦고, 매일 밤 어루어만졌다. 결국 만들어진 것은 초라한 사랑의 모조품에 불과했음에도, 나는 하루하루 그 값싼 사랑만을 소중히 끌어안으며 컴컴한 방 안에 틀어박혀 너의 이름을 불렀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너의 이름을 불렀다. 빛 한줄기 들지 않는 방 안을 밤하늘 삼아 너의 얼굴을 그리고, 너의 이름을 띄우고, 내 마음을 숨겨놓고. 지금쯤 문 밖에서 금빛 햇살을 맞고 있을 너를 조그마한 문틈으로 훔쳐보며 나는 항상 너의 이름만 불렀다.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는 것은 죄악이었다. 그래서 나는 네 이름만으로 마음을 달랬다. 사랑한다는 그 말을 꺼내면 이 컴컴한 문 밖으로 끌려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내 마음을 숨길 밤하늘도 네 이름을 띄워올릴 밤바다도 전부 햇발에 부서져 사라지고 말겠지. 숨겨놓은 값싼 사랑을 들키고야 말겠지. 상자 속 고양이가 죽었을지 살았을지를 알게 되겠지. 미래를 들여다볼 용기가 없는 자는 죄인이다. 그래서 나는 이 방을 나갈 수 없다. # 20201226 마음에 확 들지는 않지만...
여자 ◆E1g7zapVbwl 2021/08/22 01:36:03 ID : LasjjwFg6i1
그 날 여자는 처음으로 소주를 세 병이나 마셨다. 평소 친구들과 마셔도 한 병을 겨우 넘기는 주량이었음을 감안하자면 이는 여자에게 있어 치사량과 같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죽을 생각이었으니까. 여자는 제법 즉흥적인 성격이었다.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것은 곧장 하고 가지고 싶은 것은 곧장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였으니 오죽할까. 인내의 달콤함을 배우지 못한 여자는 갈수록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행복을 추구해나가기 시작했다.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은 그 무엇보다도 자극적이다. 그녀의 입맛에 꼭 맞았단 이야기였다. 그녀는 미래가 궁금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쌓아올리는 행위 조차 시도하지 않았으니 쌓아올려질 무언가를 기대할 리 만무하다. 그러한 그녀의 인생을, 일대기로 펼쳐보자면… 예의상으로도 좋은 인생이란 한 줄 평을 남기긴 힘들어보인다. 그녀는 제 분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미래를 내다볼 때마다 시커멓고 끈적한 불안이 밀려와, 애둘러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고개를 숙여 제가 우두커니 서있는 길바닥만을 쳐다봤다. 적어도 그녀가 밟고 서있는 그 바닥만큼은 푸르른 잔디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 서른이 되면 죽어야지. 그녀는 항상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주변인 중 대부분은 그것을 별 뜻 없는 농담 따먹기 정도로 치부했다. 개중 그녀를 정말로 사랑하는 몇몇만이 이따금 그 말의 의중을 떠올리며 그녀를 걱정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서진 않았다. 아직 서른이란 나이는 까마득히 멀어 보였기에. 사실 대강 서른 즈음이 된다면 그런 말 따위야 어린 날의 흑역사 정도로 치부될 줄 알았던 것이다. 서른이 되면 죽어야지. 그 말이, 나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어. 라는 뜻이었음은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녀는 항상 죽음을 염두해두는 사람이었음을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그녀는 죽음을, 인생의 리셋 버튼 즈음으로 생각했다. 달칵, 누르면 화면이 꺼졌다 켜지는 그런 정도로. 그녀에게 있어 죽음이란 일종의 돌파구였다. 퍼런 불을 번쩍이는 비상구. 그 끈적하고 시커먼 불안이 발 끝까지 차올랐을 때 벌컥 열어버릴 수 있는 단단한 문. 그 버튼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 될 것이란 막연한 믿음.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그리 가벼운 것으로 여겼다. 스스로 그리 값어치를 매겼다. 세상이 빙글이며 춤을 추었다. 아니 사실은 그녀가 춤을 추고 있었다. 여자는 잔뜩 흥이 올라 마구잡이로 스텝을 내딛기 시작했다. 그녀의 발길에 짤그랑, 하고 퍼런 소주병이 흐트러져 뒹군다. 비상구와 같은 퍼런 빛이 바닥 가득 퍼진다. 그녀의 발 밑에 시퍼런 비상구가 켜졌다. 당장 그 문을 열기만 하면, 화면은 꺼졌다 켜질 것이다. 여자가 벌게진 얼굴로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춤 추던 몸뚱이를 억지로 멈추어세운 탓에 자세가 제법 우습다. 그럼에도 여자는 웃지 않았다. 우스꽝스러운 몸뚱이를 넘어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환하게 불이 켜진 몇몇 집들, 높은 빌딩, 점멸하는 신호등, 세차게 달려나가는 승용차. 그러한 것들. 여자가 비틀이며 발걸음을 내딛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녀를 웃음 짓게 한다. 어질어질한 머리가 그랬다. 그 어지럽고 메슥거리는 머릿 속이 그녀를 웃게 만들었다. 여자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두꺼운 베란다 창문에 얼굴을 가득 문지르고 나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가냘픈 성냥개비처럼 흔들리던 몸이 점차 중심을 찾아간다. 여자의 눈동자는 여전히 밤하늘에 박혀있다. 그녀는 조금 더 면밀하게 세상을 살피기 시작했다. 걸어가는 사람들, 웃는 사람들, 뛰는 사람들, 술에 취해 비틀이는 사람들. 땀에 흠뻑 젖은 티셔츠, 검은 샌들, 뜨거운 보도블럭, 밑둥이 녹기 시작한 아이스크림, 손을 꼭 붙잡은 연인, 앞뒤로 흔들리는 비닐봉투. 여자가 눈을 굴렸다. 창문에 몸을 기댄 자신이 보인다. 벌게진 얼굴과, 벌게진 눈시울이. 밤하늘에 채 닿기 전에 초라한 자신에 맞부딪힌다. #20210822 노래 들으면서 쓰자마자 올린 글. 나중에 차차 읽어보면 고칠 부분 한가득일듯
◆E1g7zapVbwl 2021/08/22 01:37:25 ID : LasjjwFg6i1
완전 오랜만에 들어왔네...😓 현생이 넘 바쁜 바람에ㅠㅠㅠ 의식의 흐름대로 쓴 글이라 엉망진창이다 ㅜㅡㅜ 앞으로 자주 들어와야지...!
이름없음 2021/11/15 15:42:09 ID : cK59jwK0r85
자주 그리고 즐겁게 오랫동안 보고 있었어 레주 글 분위기가 참 아련하고도 서글퍼서 정말 좋아해 생각이 날 때마다 검색해서 감상하고 있어
사랑한다는 ◆Y1dwrdUY1eI 2021/12/09 02:57:06 ID : LcIFcmqY4Mr
사랑한다는 것은 채은은 그날 밤을 똑똑히 기억했다. 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바람이 무척이나 찼던 날이었다. 두 사람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 한 점 없는 어두운 하늘이었다. 그날 밤 채은은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확신했다. 옆자리에 앉은 성진의 얼굴을 흘깃 바라보았을 때, 봄 꽃망을이 터지듯 가슴이 벅차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사랑이 끝나고 남은 것은 이삿짐을 치우는 일과 같았다. 이제 계약기간이 만료된 쓸쓸한 방을 비울 때가 온 것이다. 쓸만한 것을 상자에 주워 담고 쓸모없는 것은 잠시 미련 어린 손길로 매만지다 가차없이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채은은 그날 마음을 정리하던 중 몇 개의 추억을 상자 속에 담았다. 밤하늘을 바라보던 그 저녁과, 함께 길을 걸었던 초여름,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던 한 봄의 기억 정도였다. 구석에 박혀있던 추억을 다시 꺼내들었을 때, 성진의 얼굴은 무척이나 흐릿해져 채은의 마음 한 켠을 따갑게 만들었다. 채은은 침대에 앉아 멍하니 벽을 바라보았다. 채은의 사랑은 항상 조촐한 결말을 맞이했다. 가꾸어놓은 빈 방에는 결국 그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다. 딱 그 정도의 마음이었다. 어쩌면 채은이 크나큰 착각을 했던 것일 수도 있다. 채은은 사람의 마음이 너무나 어려웠다. 차라리 머리통 위로 사람의 감정이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채은은 끝까지 입을 열지 못했던 그날 밤을 후회했다. 선명한 분홍빛을 띠고 있던 그 감정이 머리통 위로 떠올랐다면, 미래는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채은은 많은 사랑을 해보았다. 그 중 대개는 상대에게 차마 닿지 못한 종이비행기에 불과했다. 채은은 힘없이 바닥에 고꾸라진 종이비행기를 주우며 자신의 마음도 함께 접었다. 그리고 가슴 속에 남은 기억과 감정들이 반으로 접힐 때마다 채은은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이별을 선고했다. 선고된 이별은 깊은 망망대해 아래로 잠겨 반짝이는 사랑을 품은 난파선이 되었고, 몇몇의 난파선 속에서는 아직 못 다 접은 마음이 헐떡이며 밤하늘을 꿈꿨다. 누군가 사랑은 자해라 했더란다. 맞는 말이었다. 특히나 짝사랑은, 온전히 자기 자신이 가해자가 되어야했다. 그 누구도 칼을 휘두르지 않는다. 질투와, 의심의, 혹은 불안의 칼자루는 제 손이 아니고서야 움직일 일이 없다. 채은은 사랑이 싫었다. 이제는 진절머리가 났다. 성큼 들어와 그리움만 두고 가버리는 그 예의없는 방문객들에게 짜증이 났다. 채은은 자신이 이기적이고 웃긴 인간이란 것을 알았다.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사실 그들이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채은이 그들의 문고리를 잡아당긴 것이었다. 그리곤 제 집으로 돌아와, 다시 찾아오지 않는 그들을 원망했다. 영문없이 문이 열린 그들은 알 턱이 없다. 누군가가 저를 그리며 잠들지 못하고 뒤척인다는 것과, 눈 앞에 얼쩡이다 바닥에 처박힌 그것이 누군가의 감정을 담은 편지 한 통이었단 것을. 알 턱이 없으니, 답신이 돌아올 일 따위 만무했다. 채은은 이제, 사랑이란 감정이 무엇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이것이 사랑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특히나 채은은 다른 사람의 사랑을 잘 믿지 못했다. 마음에 반으로 접힌 주름이 너무 많아, 새로이 다가오는 것들에 겁이 많은 탓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뻗어오는 저 손길이 사랑인지, 그저 그런 호의인지. 때를 놓친 손길이 그대로 눈 앞을 지나갈 때면, 채은의 마음은 허리를 반으로 접어 몸을 웅크리며 스스로를 눈물로 적셨다. * 가라앉은 보물은 잊힘으로 그 가치가 빛난다. 그러니까, 잊는 법도 배워야한다는 것이다. 바다 속에 가라앉은 그 마음들을 잊어야만 그것은 추억이 되고 인생의 경험이 된다. 잊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저 마음 한 켠을 찌르는 분실물일 뿐이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해봐야 쓸모없는 후회를 일으키는. 언제까지고 그 마음에 묶여 서성일 수는 없다. 채은은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잔뜩 웅크려 발에 채이는 신세가 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두고 앞서 나가는 성진의 뒷모습을, 멀뚱히 보고만 있는 그런 미련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림자를 붙잡으려 애써봐야 잡히지 않는다. 채은은 붙잡을 것이 없어 그림자라도 움켜쥐려는 그 마음이 안쓰러웠다. 허나 홀로 시작하여 홀로 끝난 마음은 당연히 그의 그림자나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짝사랑은 그리하여 그리도 조촐한 것이다. 채은은 그림자를 잡으려다 전부 까져버린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다신 그림자를 쫓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제야 채은은, 엉엉 우는 어린 아이처럼 주저앉아있던 바닥에서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채은은 그날 밤을 기억한다. 그리고 사실은, 그날 밤 성진도 자신을 사랑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것에 대한 답은 그 누구도 모른다.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채은은 상관치 않았다. #211209 * 아래는... 사실 붙일까 말까 고만한 부분. 일단 그냥 함께 올리는 것으로 결정...! 갑자기 너무 내용이 중구난방해지는 거 같아서 빼버릴까, 하다가 그냥저냥 마음에 드는 구절들이 좀 있어서 그대로 냅뒀당 ㅎㅎ. 그냥 새벽 감성으로 무작정 쓴거라 별로일 수도...... 으으 아니 그리구 인코 또...^^^
◆E1g7zapVbwl 2021/12/09 03:06:08 ID : feZcnvbhdSM
사실 읽은지 꽤 된 레스인데 이제야 답레(?)를 쓰네...! 이 레스를 읽고나서 정말 마음이 막 엄청 몽글몽글하고 기뻤어 ㅠㅡㅠ... 누군가가 꾸준히 내 글을 찾아준다는 것도 그렇고 내 글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그렇고... 또 이렇게 직접 레스를 남겨서 그걸 표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그렇고...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는지 몰라😭😭 내가 너무너무너무 뜸하게 스레를 찾다보니 (사실 요즘 글이 잘 안 써져서 부끄럽기도 했어... 흑흑) 뭔가 막 답레를 달 면목이 없어서 이렇게 늦게 대답하게 됐네...! 내 글을 좋아해줘서 또 이따금 내 글을 찾아줘서 정말정말 고마워 지금 계속 뭐라고 쓰다 지우다 하는데 뭔가 표현을 잘 못하겠지만ㅋㅋㅠ... 나한테는 정말 이런 레스 하나하나가 너무 큰 행복이고 응원이 되는 거 같아 요즘 날씨 추운데 따숩게 감기 조심하구 앞으로 종종 들러줘! 😘 사실 나는 내 스레 찾아와서 예전에 달린 레스들 다시 읽어보고, 막 행복해하구 그래... 요즘 글이 잘 안 써져서 거의 스레를 버린 것처럼 보이게 됐지만....!! ㅠㅡㅠ 절대 아냐 앞으로는 진짜진짜 자주 찾아오도록 할게... 사실 요즘 진짜 글이 안 써져서 곤욕이었거든... 막 아 드디어 글빨(?)이 떨어진건가..^^ 싶고 막..... 🥲 그래도 머리를 쥐어짜서라도 글을 써야겠어 으아악~~~! 조만간 다시 올게!!
사랑 ◆E1g7zapVbwl 2022/09/10 22:46:08 ID : QoMpgklfPa3
숨죽인 밤 나지막이 발음한 네 이름에 마음이 아려올 때 그걸 사랑이라 느꼈는데, 달밝은 밤 깊고 깊게 감긴 눈꺼풀 아래로 느껴지는 온갖 설움에서도 사랑을 찾고 말았어. 사랑이란 뭘까. 나는 항상 생각해. 시덥잖은 예술가들은 항상 사랑을 노래해. 나도 진짜 사랑이 뭔지 몰라 그들이 노래하는 사랑을 훔쳐들을 뿐이야. 네 눈을 바라볼 때면 사랑이 느껴지는데 저 동떨어진 세상 불 꺼진 내 방에서 네 이름을 떠올릴 땐 괜스런 심술이 떠올라. 갑작스레 울컥이며 올라오는 슬픔과 불안 위로 사랑이란 덮어쓸 수 있을까? 너를 사랑하지만 이 이유 모를 불안과 서러움은 어디서 떠밀려온 것일지 모르겠어 꼭꼭 뒤로 숨기고 말아. 모든 것을 보여주겠노라 약속했는데도. 이 축축하고 미끄러운 감정들은 온갖 따사롭고 향기로운 것들을 모아둔 사랑의 부유물일까. 사랑이란 뭘까? 모두가 사랑을 노래하지만 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없어. 그게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지.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부터 사랑이 아닌지. 무른 버터를 자르듯 말해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어. 모두가 사랑을 입에 담지만 그 무게를 정확히 아는 이는 없어. 그래서 모두가 사랑의 무게에 짓눌려 지쳐버리고 마는걸까? 나 역시 이 밤 감당못할 무게를 짊어지려 한 죄를 지고 있어. 네 이름을 담는 것은 황홀하고 아름답지만 나는 이 사랑이란 이름의 미지가 조금 무서운 것 같기도 해. #20220910
사랑 ◆E1g7zapVbwl 2022/09/10 22:46:42 ID : QoMpgklfPa3
오랜만에 왔네... 사랑이란 뭘까 정말 어려워
47 2022/12/07 11:44:51 ID : Ntdvcldxwsk
인데 스레주 너 자주 찾아오겠다는 약속도 해놓고 서운하게 소식이 너무 드물잖아. 바쁘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리운 내 마음도 어쩔 수 없어서 적어. 그래서 찡찡대보는데, 네 글이 나에게 주는 의미를 설명하자면 3년 전부터 읽어온 네 글은 내 발화점이었어. 잊혀진 마음에 자극을 주고, 로망도 심어준 내 발화점. 네 글을 읽고 내가 느끼는 것은 글이 전달하는 내용에서 느껴지는 다른 사람들이 느낄 자연스럽고 기본적인 감정을 포함해서, 그것들을 초월한 무언가야. 무조건적인 애정과 감사함과 비슷한 그 어떤 것? 내말은, 3년 전 처음 봤던 네 글이 3살이나 어린 내 마음을 강하게 울려 내게 시작이라는 것을 만들어준 순간부터 ‘잘 쓰여진 너의 글’이 아니라 그냥 ‘너의 글’을 조건없이 사랑하게 되었다는 뜻. 네 필력이 좋든 말든. 글의 주제가 내 취향이든 말든. 내 이야기를 알 턱이 없으니 너는 조금 아리송하겠지만, 이 글 너머 너에게까지 애정을 가질 정도로 네 글이 좋아. 네가 쓰는 글이 좋아. 몇 년이 지나도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버리거나 지우거나 잊어버리거나 하면 안 돼. 네 글. 네 생활. 네 성공. 네 행복까지. 모두 응원하고 있을 테니까 스레주도 자신의 과거의 흔적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자주는 아니어도 다시 찾아와. 네 발자취를 계속 들여다보고 싶어. 너무 민망하긴 하네. 그래도 보고 스레주가 기뻐해줬으면 좋겠다.
◆E1g7zapVbwl 2024/02/29 01:18:37 ID : HyNuoFbjAnX
안녕 정말 오랜만에 다시 들렀어… 사실 의 레스를 확인한 적어도 반 년은 넘은 거 같아. 그동안 이따금 이곳에 돌아와 내 글을 다시 읽어보고, 다른 사람들이 남겨준 응원을 곱씹어보곤 했었거든. 의 레스를 발견하곤 정말 회피하고 회피하고 회피하다가—나도 내가 왜 회피한 건진 모르겠지만…— 항상 그렇듯 힘들고 벅차는 오늘 같은 날이 와서 내 스레에 들리고, 오늘은 꼭 대답을 두고 가야겠다 싶어서 용기내보아… 우선 레주야 너무너무 고마워. 사실 네 레스를 보고 너무 기뻤었어! 난 항상 내 글에 확신이 없었고 글을 쓰는 일을 굉장히 사랑하고 있었지만 재능은 없는 나를 마주하는 건 무서웠거든… 깔짝깔짝 글을 써 올리다 누군가 응원을 남겨주면 너무너무 기뻤고, 동시에 웃기게도 다른 사람을 질투하며 열등감에 빠지기도 했어. 그런데 내 글을, 내 글 자체를 이렇게나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심장이 얼마나 뛰었는지 몰라! 나는 너를 모르고 너도 나를 모를테지만 내 존재 자체가 네게 응원을 받는 기분이었어. 그 누가 내 글을 이렇게나 사랑해줄 수 있을까 싶고 말야… 어쩌면 내가 고르고 골라 내 글을 올린 곳이 이런 익명의 사이트기였기에 이런 마음을 투명하게 전해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 마음이 오묘하기도 했어. 네 말들은 정말 내게 인생의 원동력 그 자체가 되어주었어. 내 글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단 사실부터 어쩌면 나란 인간의 가치 그 자체에 대한 지지를 받은 것 같기도 했고. 완전 뻑뻑하게 굳어버린 지금의 글솜씨로는 표현하지 못할 마음이야!! 그리고 정말 미안해. 이제야 답레스를 달게 되어서… 아까도 말했지만, 정말 지독하게 회피하고 있었던 것 같아. 지금은 어쩌면 스레딕을 안 할지도 모르고, 네가 이런 레스를 남겼다는 걸 잊어버렸을 수도 있겠지만… 🥹 정말 계속해서 말해도 모자를 고마움이야. 너는 내가 사랑하는 일에 대한 확신을 줬어. 그 일을 붙잡고 있어도 된다는 확신말야. 그리고 이만큼이나 순수하고 다정한 지지를 온전히 받아본 적도 없었던 거 같아… 스레에도 나와있는 내용이지만 이 스레를 처음 세울 때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지금은 화석 대학생이 되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어. 어느순간부터 글이 잘 안 써지고, 떠오르지도 않고, 내가 살아가는 게 너무 바쁘다고 여겨져 이곳에 잘 오지 않게 되었던 거 같아. 그래도 이따금 들리고, 내가 쓴 글을 읽고,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즐거워하기도 했어. 요즘엔 왜이리 글이 잘 써지지 않는지… 남몰래 글밥 먹으며 살고 싶단 꿈을 가지고 있지만! 난 여전히 이곳이 아니면 내 글을 세상에 내놓을 수가 없는 상태야… 부끄럽게도… 그러니까 어쨌든 속으로 간직하고만 있는 꿈이란 이야기지… 말이 이래저래 횡설수설하네. 어쨌든 레주야 정말 고마워. 네 레스가 그간 내 삶에 엄청난 힘이 되고, 지지가 되어주었어. 앞으로는 글을 좀 더 쓰고 이곳에 올리려 노력할게. 일단은 여기서 말을 줄여야겠다. 대신 정말 자주 찾아오려 노력할게! 내 스레를 봐주고 응원해주던 레주들 다들 너무 고마워. 정말정말 말해도 말해도 해소되지 않을 고마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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