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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xXwJVhxS 2019/05/19 23:05:14 ID : E6582lg1zRz
떠오르는 게 있어서 여기에 써보기로함. 제목은 정해지면 수정함. 처음 써보는데다가 즉흥적으로 떠오르는대로 쓰는거라 많이 미흡할 수 있음 중간에 난입해도 상관없으니까 평 쓰고 싶은사람은 써줘
◆tArxXwJVhxS 2019/05/19 23:05:51 ID : E6582lg1z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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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xXwJVhxS 2019/05/19 23:08:44 ID : E6582lg1z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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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xXwJVhxS 2019/05/19 23:12:12 ID : E6582lg1zRz
아무 것도 없는 방이 있다. 문도 창문도 없는 방. 벽이고 바닥이고 천장이고 모두 흰 색인 5평 남짓한 방이다. 아무도 들어갈 수도 들여다 볼 수도 없다. 작은 구멍이나 벽에 난 금도 없는 대단히 완벽한 방이어서 아무리 작은 동물이어도 들어갈 수 없다.
◆tArxXwJVhxS 2019/05/19 23:16:54 ID : E6582lg1zRz
어느 날 그가 눈을 떠보니 그 방 안에 있었다. 방 안은 어두컴컴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눈을 두어번 깜빡이자 조금씩 앞이 보였고 육면이 모두 막힌 정육면체의 방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름없음 2019/05/19 23:20:56 ID : E6582lg1zRz
그는 바닥과 벽을 더듬다가 방의 중앙에서 일어섰다. 도대체 무엇에 의해 그 방에 갇히게 됐는지 그는 알 턱이 없었다. 그러나 그 스스로 들어왔을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필시 벽 너머에 자신을 가둔 자가 있을거라 짐작하고 벽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느정도 부드러운 소리로 밖에 누군가 있느냐고 물었다.
◆tArxXwJVhxS 2019/05/19 23:22:50 ID : E6582lg1zRz
어떠한 대답도 들리지 않자 점점 언성이 높아졌다. 그는 벽을 향해 짜증을 내다가 곧이어 벽을 주먹으로 세게 두드렸다. 욕지거리를 내뱉으면 바닥을 내리쳤지만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tArxXwJVhxS 2019/05/19 23:24:45 ID : E6582lg1zRz
그는 피로함을 느끼고 벽에 기대어 앉았다. 이성을 되찾은 그는 휴대폰을 꺼내기 위해 주머니가 있는 곳을 더듬었다. 물론 그 행위는 그가 바지를 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할 뿐이었다. 그는 온 몸을 더듬었고 결국 그가 알몸인 채로 방 안에 갇혀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tArxXwJVhxS 2019/05/19 23:42:40 ID : E6582lg1zRz
그는 좌절했다. 그가 있는 방은 견고했으며 완벽했다. 주먹으로 내리친 곳에는 어떤 자국도 남지 않았다. 아무리 소리쳐도 그의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tArxXwJVhxS 2019/05/19 23:45:38 ID : E6582lg1zRz
그는 목이 말랐다. 아까 벽을 향해 소리친 탓이었다. 방 안에 물이 있을 리 없었으므로 그는 마른 침만 계속 삼켰다. 절망감과 피로에 휩싸인 그는 잠을 청하기로 했다. 이것운 순전히 꿈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과로한 탓에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tArxXwJVhxS 2019/05/19 23:49:25 ID : E6582lg1zRz
몇 시간 후, 그는 허기를 느껴 잠에서 깼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 뻣뻣해진 몸을 풀었다. 눈을 떴음에도 주위가 어두워서 그는 아직 밤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그가 정체불명의 공간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tArxXwJVhxS 2019/05/19 23:55:46 ID : E6582lg1zRz
그는 어떤 방법으로도 그 방에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밖에서도 이 방안에 그가 갇혀있다는 사실을 알 방도가 없을 것이다. 깊은 생각 끝에 그는 방에서 탈출하기를 체념했다.
◆tArxXwJVhxS 2019/05/20 00:00:51 ID : E6582lg1zRz
탈출을 시도하는 것은 오히려 체력 낭비이다. 어차피 자력으로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살아있는 것이 최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그는 이 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것은 변함없는 그의 미래이다. 남은 시간을 최대로 늘리려면 체력을 최대한 비축해야 한다.
◆tArxXwJVhxS 2019/05/20 00:04:15 ID : E6582lg1zRz
죽기 전까지 할 수 있는 가장 생산적인 활동은 무엇일까.—그는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서 혼자 어떤 것을 해봤자 생산적일 리 없을 것이라 생각해 질문을 바꾸었다.—완전히 밀폐된,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버려진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tArxXwJVhxS 2019/05/20 23:32:13 ID : E6582lg1zRz
답은 정해져 있다.
◆tArxXwJVhxS 2019/05/20 23:34:50 ID : E6582lg1zRz
아니, 정해져 있을 것이다.
◆tArxXwJVhxS 2019/05/21 19:22:00 ID : jg2NyZa66pd
모든 행동이 제한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사고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tArxXwJVhxS 2019/05/21 19:25:56 ID : jg2NyZa66pd
그럼 무슨 사고를 해야하나. 그는 흰 바닥에 누웠다. 어차피 그의 의식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그저 가만히있는 것만으로 그는 죽어버릴 것이다.
◆tArxXwJVhxS 2019/05/21 19:27:01 ID : jg2NyZa66pd
그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본래 흰 색이지만 조명이 없는 방 안에서는 그저 어둡게 보일 뿐이었다.
◆tArxXwJVhxS 2019/05/21 19:33:23 ID : jg2NyZa66pd
문득 하늘이 그리워졌다. 항상 그의 머리 위에는 하늘이 존재했다. 원할 때면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하늘은 항상 경이로웠다. 태어났을 때부터 몇 년을 바라봐왔지만 하늘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각은 늘 새로웠다.
◆tArxXwJVhxS 2019/05/21 19:34:30 ID : jg2NyZa66pd
푸른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은 언제나 비현실적이었다.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거대한 불덩어리의 태양은 황홀했다. 특히, 황혼 무렵의 태양은 하늘의 색을 무작위로 만들었다. 붉은 빛부터 보랏빛까지, 하늘은 형형색색으로 물들기 마련이었다.
◆tArxXwJVhxS 2019/05/21 19:43:22 ID : jg2NyZa66pd
끝없는 하늘을 바라볼 때면 그는 자기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그는 하늘을 경외하고 찬양했으며 숭배했다.
◆tArxXwJVhxS 2019/05/21 19:49:56 ID : jg2NyZa66pd
그러나—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그는 노자의 말과 어느 체코 작가의 소설을 떠올렸다. 그가 아무리 하늘을 예찬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생각한다. 생각하고 생각한다.
◆tArxXwJVhxS 2019/05/21 19:53:42 ID : jg2NyZa66pd
행복은 긍정이고 불행은 부정이다. 기쁨은 긍정이고 슬픔은 부정이다. 고독은 긍정인가 부정인가? 고독을 즐기는 자와 고독에 괴로워하는 자가 있다. 고독을 즐기는 자는 정말로 그것을 즐기는 것일까, 고독에 괴로워하는 자는 또 어떨까.
◆tArxXwJVhxS 2019/05/21 19:55:19 ID : jg2NyZa66pd
그는 돌아누웠다. 몇 번 더 돌아 벽에 바짝 붙었다.
◆tArxXwJVhxS 2019/05/21 20:04:59 ID : jg2NyZa66pd
나는 인간적인가.
◆tArxXwJVhxS 2019/05/21 20:22:37 ID : jg2NyZa66pd
인간은 인간이기에 인간적이다. 인간은 비인간적이기에 인간이다. 인간은... 인간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렇기에 인간적이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그리고 그렇기에 인간적이다. 나는, 인간적인가. 인간적... 인간스러움... 인간... 너무나 인간적인... 하늘... 바람... 그러나, 나는...
◆tArxXwJVhxS 2019/05/21 20:24:27 ID : jg2NyZa66pd
그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인간적인 것에 대해선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그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tArxXwJVhxS 2019/05/21 20:32:49 ID : jg2NyZa66pd
그는 이번엔 바다를 떠올렸다. 그는 어릴 적 넓은 바다로 항해를 나간 적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갔었다.
◆tArxXwJVhxS 2019/05/21 20:35:16 ID : jg2NyZa66pd
아주 어릴 때의 일이라 어쩌다 바다에 가게 됐는지 누구와 갔는지 어디로 갔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대의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몇 시간 동안 보트가 달렸는진 알지 못했지만 상당히 오래 달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tArxXwJVhxS 2019/05/21 20:53:58 ID : jg2NyZa66pd
달리던 보트는 어느 순간 멈췄다. 그들은 망망대해의 한가운데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낚싯대를 꺼냈고 다른 몇몇은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는 멀미에 시달렸는제 아니면 피곤했는지 보트 안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tArxXwJVhxS 2019/05/21 20:57:12 ID : jg2NyZa66pd
누군가 그를 불렀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광활한 바다와 하늘에 시선을 빼앗겼다.
◆tArxXwJVhxS 2019/05/21 21:00:54 ID : jg2NyZa66pd
난간을 붙잡고 바닷바람에 몸을 맡겼다. 시원했다. 축축한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머리카락이 날린다. 셔츠가, 바지가, 휘날린다. 날아오를 것만 같다.
◆tArxXwJVhxS 2019/05/21 21:01:26 ID : jg2NyZa66pd
누군가 어깨에 손을 얹는다. 그한테 무어라고 말을 한다. 들리지 않는다...
◆tArxXwJVhxS 2019/05/21 21:06:33 ID : jg2NyZa66pd
그는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아무 것도 없는 방 안이었지만 시원한 바닷바람이 아직 느껴졌다.
◆tArxXwJVhxS 2019/05/21 21:15:01 ID : jg2NyZa66pd
그는 몸을 세워 벽에 기대앉았다. 흰 벽, 흰 바닥. 흰 천장. 탁해진 공기.
◆tArxXwJVhxS 2019/05/21 21:16:13 ID : jg2NyZa66pd
주변을 둘러보다 다시 눈을 감는다. 허기와 갈증이 사고를 방해한다. 인간은 나약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tArxXwJVhxS 2019/05/21 21:17:22 ID : jg2NyZa66pd
사고하는 것이 집중해야한다. 인간은 나약하다. 나약하기에 인간이다. 인간적인 것은 나약한 것이다.
◆tArxXwJVhxS 2019/05/21 21:19:38 ID : jg2NyZa66pd
눈 앞에 바다가 펼쳐졌다. 수많은 나약한 자들이 낚시와 수영을 하고 있다. 그는 곧 옷을 전부 벗어던지고 바다에 뛰어든다. 팔과 다리를 유연하게 움직인다. 작은 물고기들을 따라간다. 배에서 멀어지지 않게 다시 근처로 돌아간다. 물고기를 따라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tArxXwJVhxS 2019/05/21 21:29:13 ID : jg2NyZa66pd
해가 질 무렵 보트로 돌아왔다. 보트에는 사람들이 잡은 물고기들이 펄떡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보트의 머리를 한 곳으로 모았다. 가운데에 장작을 잔뜩 쌓아올리고 불을 붙였다. 위에서 봤으면 꽃이나 태양처럼 보였을 것이다.
◆tArxXwJVhxS 2019/05/21 21:31:17 ID : jg2NyZa66pd
그는 몸의 물기를 닦아내고 그의 옷을 찾았다. 옷은 벗어둔 곳에 없었다. 그의 옷은 장작과 함께 타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태울만한 것들을 모두 불 속에 던져넣고 있었다.
◆tArxXwJVhxS 2019/05/21 21:32:42 ID : jg2NyZa66pd
그들은 장작불에 물고기를 구웠다. 연기가 피워올랐다. 맛있는 냄새가 났다. 사람들은 생선이 익었음에도 불에서 꺼내지 않았다. 탈 때까지 계속 두었다. 검은 연기는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tArxXwJVhxS 2019/05/21 21:33:49 ID : jg2NyZa66pd
누군가가 큰 소리로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에 맞받아치듯 이상한 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알몸으로 구석에 앉은 채 그들이 하는 행위를 지켜보았다.
◆tArxXwJVhxS 2019/05/21 21:35:16 ID : jg2NyZa66pd
어느순간 그들의 주문이 멈췄다. 파도가 일렁거렸다. 보트들은 흔들렸다. 보트 사이에 위태롭게 걸려있던 장작불은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이 일제히 동쪽을 보았다. 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tArxXwJVhxS 2019/05/21 21:37:14 ID : jg2NyZa66pd
그는 무슨 일인지 궁금하여 사람들 틈에 들어갔다. 바다 먼 곳에서 누군가 수영하고 있었다. 금발의 여인이었다. 여인은 잠수했다가 수면에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그녀의 하반신은, 물고기의 꼬리와 같았다. 인어였다. 인어는 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tArxXwJVhxS 2019/05/21 21:40:38 ID : jg2NyZa66pd
그 이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는 눈을 번쩍 떴다. 괜히 과거를 회상했나 싶었다. 물고기를 굽는 장면 때문에 배가 더 고파졌다. 그가 본 것은 정말 인어였을까. 어릴 때여서 그의 기억이 외곡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던 인어만큼은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었다.
◆tArxXwJVhxS 2019/05/21 21:44:56 ID : jg2NyZa66pd
그는 눈을 번쩍 떠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럴 리 없겠지만 천장은 희미하게 푸른 색을 띄고 있었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하늘은 나약하지 않다. 하늘은 강하다. 하늘은 절대적이다.
◆tArxXwJVhxS 2019/05/21 22:58:35 ID : E6582lg1zRz
그는 하늘에게 빌었다. 나를 구원하소서. 이 고난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그는 어떠한 종교의 신자도 아니었지만 하늘을 향해 기도했다. 그는 그 자신의 힘으로 그 곳을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기도했다.
◆tArxXwJVhxS 2019/05/21 23:00:19 ID : E6582lg1zRz
그는 눈물을 흘렸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갈증과 허기를 이겨내며 사고하는 것뿐이었다. 하늘에 기도하는 것은 쓸데 없는 일이다. 몇 분 동안 기도를 하던 그는 그것을 깨달았는지 기도를 멈췄다.
◆tArxXwJVhxS 2019/05/21 23:02:21 ID : E6582lg1zRz
그는 구석에 웅크려앉았다. 고독이 그를 엄습해왔다. 그러나 그는 고독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숨을 내쉬었다. 인간적이지 않은 하늘은 그를 구원하지 않았다.
◆tArxXwJVhxS 2019/05/21 23:04:22 ID : E6582lg1zRz
그의 아버지는 생전에 사냥을 즐겼다. 그 때문에 그의 집에는 사냥용 총이 대여섯 자루는 있었다. 그는 종종 아버지가 가져오시는 여러 종류의 고기를 저녁으로 먹을 수 있었다. 그런 고기를 먹을 때면 아버지와 작은 내기를 하곤 했다.
◆tArxXwJVhxS 2019/05/21 23:05:52 ID : E6582lg1zRz
그것은 그날 먹은 고기가 어떤 고기인지 맞추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맛만 보고는 맞추기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몇몇 고기의 맛은 그마다 특징이 있어 쉽게 맞출 수 있는 것이 있었다. 그가 정답을 맞추면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용돈이나 간식을 주셨다.
◆tArxXwJVhxS 2019/05/21 23:07:18 ID : E6582lg1zRz
그는 그의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모른다. 여느 날처럼 사냥을 나가신 그의 아버지는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고 그는 두번 다시 아버지가 살아있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름없음 2019/05/21 23:11:43 ID : E6582lg1zRz
그의 아버지는 산 중턱에서 마구 토막난 상태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그가 야생동물에 의해 죽었다고 결론지었지만 어떤 동물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tArxXwJVhxS 2019/05/21 23:13:23 ID : E6582lg1zRz
그는 고개를 저으며 회상을 멈췄다.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tArxXwJVhxS 2019/05/21 23:48:23 ID : E6582lg1zRz
그는날어서서 방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더 돌았다.
◆tArxXwJVhxS 2019/05/21 23:51:17 ID : E6582lg1zRz
고독... 넓은 바다에 홀로 있는 인어는 고독을 느낄까.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직전에 고독을 느끼셨을까. 하늘은 고독을 느끼나.
◆tArxXwJVhxS 2019/05/21 23:52:13 ID : E6582lg1zRz
그는 방을 한 바퀴 더 돌았다.
◆tArxXwJVhxS 2019/05/21 23:53:53 ID : E6582lg1zRz
내가 하늘이었다면 고독을 느꼈을까. 누군가의 기도를 들어줬을까. 그는 생각했다. 내가 하늘이었다면 나약한 자들을 구원했을까.
◆tArxXwJVhxS 2019/05/21 23:55:07 ID : E6582lg1zRz
그러다, 그는 깨달았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하늘은 나약하지 않다. 나약한 인간을 상대해 줄 필요가 없다. 하늘은 강하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하늘은... 이기적이다.
◆tArxXwJVhxS 2019/05/21 23:58:20 ID : E6582lg1zRz
더이상 그는 하늘을 숭배할 필요가 없었다.
◆tArxXwJVhxS 2019/05/22 00:06:34 ID : E6582lg1zRz
그의 머릿속에 며칠 전에 들은 음악의 멜로디가 흐른다. 그는 그 맬로디를 휘파람으로 따라불렀다. 곧이어 스스로 만든 가사를 붙여 노래를 불렀다.
◆tArxXwJVhxS 2019/05/22 00:08:44 ID : E6582lg1zRz
아무리 크게 불러도 신경쓰는 사람이 없다. 그는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었다. 자유를 박탈하는 공간에서 자유를 찾는다는 아이러니함에 그는 실소를 뱉었다.
이름없음 2019/05/22 00:14:42 ID : E6582lg1zRz
공기는 점점 탁해지고 산소의 농도는 낮아진다. 그는 노래를 부르다 전보다 숨쉬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래서는 아사하기도 전에 질식사하겠군. 갈증은 목을 태웠다. 입 안에는 침조차 남아있지 않아 그는 십수번 마른 기침을 했다.
◆tArxXwJVhxS 2019/05/22 00:19:04 ID : E6582lg1zRz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는 반쯤 정신을 잃은 듯했다. 그의 머릿속에 몇몇 구절이 맴돌았다. 나는 인간적인가. 인어는 인간적인가. 바람은 인간적인가... 그는 생각한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나는 하늘 예찬을 그만뒀다. 그러니 나는 인간적이다.
◆tArxXwJVhxS 2019/05/22 00:20:58 ID : E6582lg1zRz
그는 흐릿한 의식 속에서 비논리적인 삼단논법을 펼치고서는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는 일어나야만 해. 지금 잠들면 영원히 못 깨어날 지 몰라.'
◆tArxXwJVhxS 2019/05/22 00:23:12 ID : E6582lg1zRz
너는 누구지? 그는 목소리에게 되묻는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목소리의 의견을 수용하기로 했다. 지금 죽어버릴 수는 없다. 어차피 죽겠지만 지금은 안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자신의 뺨을 세게 쳤다.
◆tArxXwJVhxS 2019/05/22 00:28:17 ID : E6582lg1zRz
그는 똑바른 자세로 앉았다. 자세가 흐트러질 때마다 그는 몸을 다시 곧추세웠다. 그는 눈을 뜬 채로 그의 집을 떠올렸다. 그의 방에는 그가 좋아하는 영화의 포스터가 벽에 걸려있다. 책상에는 컴퓨터와 필기구가 있다. 책꽂이는 그가 모은 책들로 가득 차있었다.
◆tArxXwJVhxS 2019/05/22 00:32:05 ID : E6582lg1zRz
다음에 이런 곳에 갇히게 된다면 책이라도 챙겨놔야지. 다음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아주 지루할테니 꽤 긴 소설을 챙기는 게 좋겠지. 그는 그가 가진, 아직 다 읽지 못한 긴 소설들을 떠올린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피를 마시는 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홍루몽......
◆tArxXwJVhxS 2019/05/22 00:36:38 ID : E6582lg1zRz
그의 의식은 다시 흐려져갔다. 그가 그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이미 꿈 속에 있었다. 꿈 속에서 그는 사막을 기어가고 있었다. 팔과 다리는 무언가 묶여있는 듯이 매우 무거웠다. 그는 목이 말랐다. 그는 오아시스를 찾아 헤맸다.
◆tArxXwJVhxS 2019/05/22 00:40:25 ID : E6582lg1zRz
그러나 오아시스는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았다. 신기루조차 없었다. 그는 울부짖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제발, 제발... 나를 구해줘. 그러나 누가? 하늘은 이기적이다. 하늘은 그를 구원하지 않는다. 이 곳엔 아무도 없다.
◆tArxXwJVhxS 2019/05/22 00:42:31 ID : E6582lg1zRz
'이건 꿈이야. 어서 깨어나야 해.'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또 들렸다. '너는 누구야?! 나를 살려줘. 너는 어딨는 거야?' 그는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tArxXwJVhxS 2019/05/22 00:43:44 ID : E6582lg1zRz
대답은 없었다. 그는 생각하려고 애썼다. 그의 무의식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tArxXwJVhxS 2019/05/22 00:46:00 ID : E6582lg1zRz
"너는... 너는, 한니발이야! 그렇지?" 그가 갑작스레 소리쳤다 "너는... 그, 뭐든지 할 수 있잖아! 그... 말하지면..." 그는 조금 뜸을 들이고 말했다. "초능력을 가지고 있잖아. 안 그래? 그렇지 않으면 내게 이렇게 말을 할 수도 없을거잖아?!"
◆tArxXwJVhxS 2019/05/22 00:47:30 ID : E6582lg1zRz
그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렸다. '어서 여기서 빠져나가. 나는 널 살릴 수 없어' 그는 쉰 목소리로 외쳤다. "한니발, 한니발! 제발 날 구해줘... 그냥 물 한잔이면 돼."
◆tArxXwJVhxS 2019/05/22 00:48:51 ID : E6582lg1zRz
한니발이라 불린 목소리는 말했다. '나는 널 구할 수 없어. 나는 그냥 너의 무의식에 있을 뿐이야.' "그럼 누구한테 구원받아야 하는거지?" 그가 물었다.
◆tArxXwJVhxS 2019/05/22 00:51:00 ID : E6582lg1zRz
어느새 그의 머릿속을 맴돌던 목소리는 사람의 형상이 되어 그의 앞에 나타나 있었다. 그는 다시 물었다. "나는 누구로부터 구원받아야 하는거야?" 한니발은 위를 가리켰다.
◆tArxXwJVhxS 2019/05/22 00:52:42 ID : E6582lg1zRz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간의 흐름이 빨라졌다.
◆tArxXwJVhxS 2019/05/22 00:53:44 ID : E6582lg1zRz
해가 지면서 하늘은 불타오르는 노을을 자아냈다. 곧이어 밤이 되어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박혔다. 다시 아침이 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출이 시작되었다.
◆tArxXwJVhxS 2019/05/22 00:54:51 ID : E6582lg1zRz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외쳤다. "그러나...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아. 하늘은 이기적이야. 하늘은, 날 구원할 수 없어." 한니발이 말했다. '하늘은 그 무엇보다 인간적이야.'
◆tArxXwJVhxS 2019/05/22 00:56:36 ID : E6582lg1zRz
하늘에 먹구름이 끼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온 몸으로 비를 맞았다. 몸이 가벼워졌다. 그는 빗물을 맛보았고 모든 갈증이 해소되었다. 비는 엄청난 양이 내렸다. 비는 끊기지 않았고, 사막은 바다가 되었다.
◆tArxXwJVhxS 2019/05/22 00:58:53 ID : E6582lg1zRz
그는 헤엄쳤다. 앞으로, 앞으로 계속 헤엄쳐 나갔다. 그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인어를 보았다. 그녀는 매우 아름다웠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노래를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tArxXwJVhxS 2019/05/22 01:00:35 ID : E6582lg1zRz
그 때, 그의 뒤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아직 그의 집 거실 벽에 걸려 있는, 아주 오래 전 그의 아버지가 쓰던 총의 총성과 정확히 같은 소리였다. 세상이 뒤집어졌다. 그는 꿈에서 깼다.
◆tArxXwJVhxS 2019/05/22 01:02:40 ID : E6582lg1zRz
꿈에서 깬 그는 아무 것도 없는 방 안에 있었다. 그 방은 문도 창문도 없는 방이었고, 육면이 모두 흰 정육면체였다. 꿈꾸기 전과 거의 같은 방이었다.
◆tArxXwJVhxS 2019/05/22 01:04:25 ID : E6582lg1zRz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이전의 방보다 열배, 스무배... 아니, 마흔 배는 더 커보였다. 그는 일어섰다. 그는 넓어진 방의 반대쪽 끝을 볼 수 없었다. 그는 그의 팔을 들었다. 뭔가 느낌이 달랐다.
◆tArxXwJVhxS 2019/05/22 01:05:15 ID : E6582lg1zRz
그의 팔은 날개가 되어있었다. 그의 다리는 여섯 개가 되었다. 그의 몸이 떠올랐다. 그는... 한 마리의 작은 나비가 되었다.
◆tArxXwJVhxS 2019/05/22 01:06:56 ID : E6582lg1zRz
그는 자유롭게 방 안을 날아다녔다. 반대쪽 벽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어쩌면 반대쪽 벽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아마 그 끔찍한 방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tArxXwJVhxS 2019/05/22 01:09:04 ID : E6582lg1zRz
그는 매우 인간적인 하늘에게 구원받았다. 그는 아름다운 곤충이 되었다. 그는 더이상 사고도 회상도 할 필요가 없다. '그런 건 인간이 하는거야' 그는 날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제 어떤 생각도 그만두어야지. 나는 이제 나비야.'
◆tArxXwJVhxS 2019/05/22 01:10:20 ID : E6582lg1zRz
그는 인간적인 하늘에게 무려 나비가 되는 구원을 받았다. 그것이 산소 부족으로 인한 환각일지라도 말이다. 그는 이제 어떤 생각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는 고독조차 느끼지 못한다. 아니, 느낄 이유가 없다.
◆tArxXwJVhxS 2019/05/22 01:11:14 ID : E6582lg1zRz
그는 그가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지금까지 그가 된 것이었는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계속 날았다.
◆tArxXwJVhxS 2019/05/22 01:14:17 ID : E6582lg1zRz
고독은 긍정인가 부정인가. 고독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었다. —고독은 고독이다. 궁정도 부정도 아니다. 고독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아무 것도 없는 이 방 안에 있을 수 있었다—라고.
◆tArxXwJVhxS 2019/05/22 01:16:20 ID : E6582lg1zRz
그러나 그는 그가 만든 질문에 답하지 않고 계속 날았다. 계속해서 날았다. 하늘도 바다도 모두 잊고 그저 날았다. 그는 점점 주변이 어두워지는 것을 인지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tArxXwJVhxS 2019/05/22 01:17:43 ID : E6582lg1zRz
그는 그렇게 날다가—어딘가에 부딪혀 떨어졌다. 그는 다시 날아오랐다. 그러나 다시 부딪혔다. 그는 아랑곳하지않고 계속 날아오르가룰 반복했다. 그는 계속, 계속 무언가에 부딪혔다.
◆tArxXwJVhxS 2019/05/22 01:19:29 ID : E6582lg1zRz
그는 계속, 계속 떨어졌다.
◆tArxXwJVhxS 2019/05/22 01:19:49 ID : E6582lg1zRz
다시 날아오를 수 없을 때까지...
◆tArxXwJVhxS 2019/05/22 01:23:16 ID : E6582lg1zRz
어느 날 아무 것도 없는 방에서 눈을 뜬 그는 결국, 인간적인 하늘에게 구원받아, 산소가 거의 떨어진 그 곳에서 질식사했다.
◆tArxXwJVhxS 2019/05/22 01:23:29 ID : E6582lg1zRz
<완>

레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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