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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 2019/05/21 04:27:28 ID : 6Zg46qnO1ik
ⅰ. 호모 에테르누스 2026년, 도시의 중심에는 국가 소유의 높은 빌딩이 자리잡아있고, 그 빌딩의 옥상에는 커다란 전광판이 그 날 죽은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비춰준다. 그 전광판의 크기는 어마어마해서 어디에 있던 고개를 조금만 든다면 어떤 사람이 죽었는지 정확하게 확인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전광판을 보며 죽은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흘리기도 한다. 나는 종종 사람들에게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듣곤 한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과학은 정말 무서운 속도로 나날이 발전했다. 그리고 그 과학은 영원히 늙지도, 병으로 죽지도 않는 꿈같은 세상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스스로를 ‘호모 에테르누스*‘라고 부르며 자신들의 무한한 삶을 마음껏 누린다. 며칠 전 읽은 신문에서는 자신의 본래 장기보다 인공장기를 더 많이 달고 다니는 사람과의 인터뷰를 다뤘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공장기를 이식할 때 마다 제 나이가 10년씩 어려지는 기분입니다!” 그만큼 이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죽음이란 개념은 조롱거리가 됐다. 그리고 그게 내가 남들에게 미친놈이라 불리는 이유이다. 남들이 보는 나는 지금 조롱거리가 되려고 별 노력을 다 하는 미친놈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정말 조롱거리가 돼야할 사람들은 인공장기를 달고 살아가는 바로 이 시대의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누구에게나 이식 가능한 장기를 만드는 것에 열을 올렸다. 그 이유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우리의 삶을 좀 더 건강하고, 윤택하게 만들겠다는 다짐에서였다.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소중한 사람들을 허무하게 떠나보내고 그로인해 슬퍼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연구의 성과는 정말 칭찬해야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그 순수한 염원을 달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질리도록 담배를 피워대고, 기름 진 음식을 쓸어 담으며, 자신들이 비대해지는 것은 꿈에도 모르는 채 휠체어에 앉아 생활한다. 그로인해 도시에는 항상 담배연기가 자욱하고 거리에는 썩은 음식물 냄새가 진동한다. 이 세상 어느 과학자들을 데리고 와도 이 상황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못할 것 이다. 따지고 보면 내가 폐암에 걸리게 된 이유가 이런 공기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내가 인공장기를 이식할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국가에서는 인공장기 이식수술을 전격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그럼 왜 이렇게 버티고 있느냐? 항상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그 끝에서 도망치려 하면 어떤 벌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덧붙여 생명이란 문제는 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분명 아직까지 인공장기의 부작용 사례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실험쥐가 아니라 인간이다. 쥐 실험에서 장수했다는 연구결과가 있더라도 그게 인간에게도 적용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몸이 저렇게 불어나고, 운동도 하지 않는데 건강할 리가 없다. 그냥 생명만 유지시켜줄 뿐. 그렇게 무료히 삶을 이어나가는 날이 계속됐다. 아침이면 병원에서 주는 밥을 먹고, 신문을 읽는다. 신문에서는 인공장기 연구에 참여한 한국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주로 나온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인공장기의 장점, 가끔씩 그 부작용에 대해 연구해놓은 칼럼도 보인다. 하지만 그 기사들의 마무리는 항상 인공장기는 부작용이 없는 완벽한 기술이라는 것에 치중돼있다. 그렇게 신문을 읽다가 약을 먹고, 독한 약에 정신없이 속을 게워내다가 다시 잠에 든다. 그러다가 저녁쯤이면 간호사들이 가져온 저녁을 먹고 또 약을 먹고의 반복이다. 얼마 전에는 잠깐 바깥에 나가고 싶어 병원 발코니에 나갔다가, 도시를 에워싼 역한 담배연기에 폐가 타들어가는 느낌은 받고는 병실로 돌아와 피를 토하기도 했다. 결국 나도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다음날도 반복되던 삶에 문득 돌멩이 하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빠졌다. 여느 때처럼 아침을 먹고는 신문을 볼 때였다. 그날따라 어제의 것을 완전히 복사해놓은 것 같은 기사를 읽기가 싫어져서 창문 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커다란 전광판에는 오늘 죽은 남성의 얼굴과 이름, 사망원인에 대해 적혀있었다. ‘이름: 권성필 사망원인: 투신자살’ 사인은 투신자살이었다. 아마 나도 폐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이런 미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여 저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은 한 여성이었다. ‘이름: 정다현 사망원인: 뺑소니’ 사인은 뺑소니, 교통사고였다. 이런 세상에 뺑소니라니 정말 운 없고, 주의 없는 사람이다. 2020년부터 자동차는 모두 자동화되어 일정한 거리 일정한 속도로만 운행됐다. 그런 세상에서 뺑소니를 당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보려 했지만 어느새 약을 먹을 시간이었다. 독한 약에 목 아래서부터 뜨거운 것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난 변기를 부여잡고 고통스레 내 안에 있는 것들을 토해냈다. 하지만 그때 내가 내보낸 것은 오늘 먹은 아침뿐만이 아니었다. 첫사랑에 대한 기억마저도 흘러나온 것이다. 정다현, 내 첫사랑의 이름이다. 원래였다면 벌써 잠이 들고도 남았을 시간에 난 두 눈이 충혈된 채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 상태가 걱정이 됐는지 간호사가 와서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다. 항상 놓아달라고 애원했던 신경 안정제마저 거부하면서 생각했던 것은 첫사랑의 죽음이었다. 내가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 뺑소니를 당했다. 그것도 모든 것이 자동화된 사회에서 말이다. 난 그때 그녀 죽음의 원인을 꼭 밝혀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그날 저녁, 간호사들이 병실을 돌아다니며 환자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을 때, 나는 간호사에게 부탁해 병원 발코니에 나가봤다. 역시 폐 속을 찌르는 역한 공기에 연신 기침을 해대면서도 난 다시 병원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 동안 기침을 하다 보니 썩어가는 내 폐가 어느 정도 대기에 익숙해지는 듯 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빠삐용」의 주인공이 처음 행성에 도착해 숨을 내쉴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난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폐가 더 안좋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 호모 에테르누스 : Homo 라는 속명에 ætérnus (라틴어로 '영원한')을 섞어 만든 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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