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엄청 옛날 일이야. 벌써 17년인가 18년전 얘기.
문득 생각났는데 딱히 말할 곳도 없어서 여기다 혼잣말처럼 써볼게.
특별히 엄청 소름끼치거나 오컬트적인 건 아니고 그냥 사소한 미스테리에 가까운 얘기야.
이름없음2019/05/27 02:17:41ID : s6Zhak9AnVb
그날 나와 동생은 아빠랑 할머니 할아버지 묘에 가던 길이었어.
그런데 아빠가 따로 해야할 일 때문에 우리는 그 지역 pc방에서 잠깐 있게 되었지.
쥬니버 들어가서 캐릭터 플래시 같은거 보면서 놀았어.
그런데 그것도 지겨워져서 이것저것 클릭하다가 그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메모장을 발견한 거야.
이름없음2019/05/27 02:20:55ID : s6Zhak9AnVb
보통 pc방 컴퓨터에 메모장 파일이 있는 경우는 드물기도 하니까 호기심이 생겨서 읽었지.
제목은 나이나 이야기. 아직도 기억해.
제목이 투박해서 당시 유행하던 인소같은 건줄 알았는데 공포 소설이더라.
나이나라는 이름의 여자애가 주인공이었고,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여자애를 미워해서 락스를 먹여 몰래 죽인다는 얘기.
이름없음2019/05/27 02:25:25ID : s6Zhak9AnVb
읽으면서 엄청 오싹했어.
난 어릴때부터 공포물 좋아해서 온갖 괴담 사이트를 다녔는데 한번도 그런 얘기는 본 적이 없었거든.
어떤 괴담 사이트든 배경이나 등장인물 정도만 다르지 거기서 거기인 얘기들이 많잖아? 근데 그런건 한번도 본 적 없었어.
컴퓨터만 붙잡고 무서운 동영상, 무서운 얘기만 줄줄 읽었던 고인물에게 아주 흥미진진한 얘기였지.
이름없음2019/05/27 02:31:23ID : s6Zhak9AnVb
그때는 그 메모장이 내 기억에 이렇게 강하게 남을 줄 정말 몰랐는데....
'어디서 퍼온 얘기가 아니라 직접 창작해서 쓴 공포 소설인가보네, 못 본 얘기라 색다르고 재미있다'
정도의 감상만 남기고 pc방에서 나와서 묘에 들렀다가 다시 집에 갔고.
인터넷으로 다시 거기서 거기인 괴담들이나 읽고 지루해 하면서
'아, 그러고보니 그때 읽은 그 소설 정말 재미있었는데' 하고 가끔 떠올릴때 빼고는 잊고 있었어.
이름없음2019/05/27 02:34:05ID : s6Zhak9AnVb
몇 년 지나니까 그때 그 소설이 괴담 사이트에서 떠돌기 시작하더라.
제목은 나이나 이야기일 때도 있었고, 다를 때도 있었고.
그때 본 그 얘기를 여기서 보게 되었다는 그리움, 놀라움 같은 걸 느끼면서 다시 읽었던 것 같아.
이름없음2019/05/27 02:34:11ID : s6Zhak9AnVb
사람들도 맨날 틀에박힌 괴담만 읽다가 그런 창작 공포를 읽고 좋아했어.
지금은 그 사이트들 죄다 사라져서 검색해도 아무것도 안 나오지만
어린이 괴담 사이트에서 좀 놀아봤다 하는 내 또래 스레더라면 한번쯤 봤을 거야.
이름없음2019/05/27 02:37:45ID : s6Zhak9AnVb
그리고 여기서부터 스레 제목인 본론이 나와.
나는 그때 pc방에서 나이나 이야기2(진짜 이 제목 그대로 였음)라고 후속편도 읽었는데, 인터넷에는 1편만 떠돌고 있더라?
아무리 찾아봐도 기다려봐도 2편은 올라오지 않았어.
이름없음2019/05/27 02:41:15ID : s6Zhak9AnVb
아무도 모르는 2편의 존재를 나만이 알고 있다.
만화나 영화같은데서 가끔 나오는, 어떤 중요한 책의 숨겨진 후속권이 있어서
모두 그걸 찾아 헤매는데 유일하게 그걸 아는 신비한 등장인물이 된 기분이었어.
이름없음2019/05/27 02:41:47ID : s6Zhak9AnVb
당시에 1편이 인기 있으니까 적당히 내가 기억하는대로
2편을 쓰면 대박치지 않을까 하고 노력해보기도 했는데
글쓰는거 되게 힘들어서 몇줄 안 쓰고 때려쳤던 기억도 새록새록 나네.
이름없음2019/05/27 02:49:07ID : s6Zhak9AnVb
요즘은 일본의 5ch나 미국 레딧같은데서 번역해오는 괴담이나,
창작 공포가 많이 활성화되어있지만 그 시절에는 진짜 문방구에서 파는 500원짜리 책에 있는 학교 4대 괴담, 빨간마스크 같은게 전부였어.
인터넷에서도 그런 싸구려 괴담책에 적혀있는 걸 그대로 옮겨적은 게 고작이었고.
그래서 하루이틀만 둘러봐도 다 들어본 얘기, 등장인물만 다른 같은 얘기들만 가득했지.
그런 와중에 나이나 이야기는 엄청 신선했다는 걸 말하고 싶어.
지금와서 보면 흔해빠진 얘기지만, 당시에는 괴담 좋아하는 어린이들 사이에서 알아주는 명작이었어.
이름없음2019/05/27 02:57:37ID : s6Zhak9AnVb
이런 말 하니까 나 진짜 아줌마 다 된것 같아서 슬퍼지네.
여튼, 2편은 나이나가 성인이 되어서 치정 살인을 벌이는 얘기.
당시에도 1편에 비하면 임팩트가 적어서 실망했던 게 떠올라.
이름없음2019/05/27 03:02:29ID : s6Zhak9AnVb
어째서 2편은 올라오지 않았던 걸까.
작가도 2편은 임팩트가 약하다고 생각해서 버린걸까?
그 pc방에서 읽고 몇년 후 인터넷을 떠돌았던 걸 보면 그 메모장 파일이 원본이었던 것 같은데 누가 쓴 걸까.
작은 미스테리야.
이름없음2019/05/27 03:20:20ID : s6Zhak9AnVb
2편이 왜 임팩트가 약했다고 생각했냐면 너무 리얼해서였어.
1편은 무려 유치원생이 동급생을 음독살해한다는 막장이었는데
2편에서는 그런 막장이 없어서 별로라고 느꼈던 것 같아.
그리고 뭐라고 할까 오히려 동일인물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변해서, 캐릭터 붕괴하고 해야 하나?
유치원생에서 성인으로 점프한거니 그 사이에 인격이 변할 수도 있긴 하지만 너무 이상했지.
범죄 수법도 이상할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었고.
1편에서는 마음에 안 드는 아이가 있어서 몰래 락스를 먹였다.
그 락스를 다른 아이 가방에 넣어 누명을 씌워 숨겼다. 그 정도였는데 2편은...
언제 어디서 불러내 어떻게 죽였고 시체는 어떻게 처리했으며
주변 인물에게 어떻게 둘러댔는지 알리바이를 만드는 과정과 그때 느낀 감정등등 묘사가 많았어.
어렸던 나는 그런 게 지루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
이름없음2019/05/27 03:24:01ID : s6Zhak9AnVb
다시 찬찬히 되짚어보니 공포소설이라기보다는 거의 범죄소설이었던 것 같아.
인터넷 초창기였으니까 검색한다고 해도 지금처럼 범죄관련 데이터베이스가 풍부하진 않았을텐데
어떻게 그 많은 것들을 알았던 건지, 그것도 미스테리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