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치매였다.
허름한 주택. 그곳의 지하실이 할머니의 세상이었다.
지하실 계단을 올라올 힘 조차 없는 할머니는,
지하실 가장 안 쪽 방 한켠에서,
둘째 딸의 보살핌을 받으며
그렇게 삶의 끝자락을 보내고 있는 듯 했다.
손녀인 연희와 미희는 명절 때마다 할머니를 찾아왔다.
거친 돌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가, 할머니 방 문을 열면,
할머니는 겨우 몸을 움직여 미희를 반긴다.
할머니 앞에 앉는 연희와 미희.
할머니는 흐려진 눈동자로 연신 미희의 이름을 부른다.
"밖은 위험해, 미희야. 밖은 위험하단다. 미희야."
인사를 다 나누고, 자매가 집에 가야할 시간이 되었는데도,
할머니는 보내줄 생각이 없다.
"밖은 너무 위험해. 가지마. 미희야."
밖은 위험하지 않다. 할머니 방 문을 열고 나가면
위험한 세상이 아닌 지하실이다.
위로 올라가면 자매에겐 큰이모, 할머니에겐 둘째 딸의 집이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다는 것.
치매인 할머니는 알 리가 없다.
"나가지 마. 미희야. 밖은 위험해."
위에서는 가족이 부르기 시작한다.
"연희야. 미희야. 집에 가야지. 그만 올라오렴."
"가지 마. 미희야. 밖은 너무 위험해."
"빨리 올라오라니까."
"가지 마. 미희야."
안절부절하는 연희.
그리고 그런 연희를 두고, 지하실을 나가버리는 미희.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밖은 위험해. 미희야."
할머니는 연희의 손을 잡으며 말을 이어간다.
"저는, 연희예요. 할머니."
"미희야. 밖은 위험해."
"연희야. 넌 안 올라오니? 빨리 올라 와."
위에서 들리는 가족들의 목소리.
그리고 손을 잡고는 미희의 이름을 부르는 할머니.
연희의 눈엔 혼란함이 가득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연희는 할머니를 생각하면, 그 때의 일이 생생하다.
"참, 할머니는 미희만 좋아했었지. 내 이름은 한 번도 불러준 적이 없잖아."
내심 서운했던 연희.
그런 연희를 이상하다는 듯 보던 어머니의 말.
"할머니가 연희를 알 리가 없지. 연희 너는 할머니의 치매가 시작될 쯔음에 태어났 거든."
연희는 몰랐다. 할머니는 연희에 대한 기억 전부가 없었다는 것을.
할머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줄 알았다.
이미 돌아가셨으니, 할머니가 연희를 사랑했는 지, 사랑하지 않았는 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분명 연희를 사랑했다.
다른 가족들 꿈에는 단 한번도 찾아간 적이 없었던 할머니가,
연희의 꿈에 찾아와서는, 한참을 바라보시다 가셨다.
연희가 말을 걸어도, 아무 말도 없이.
생전에 사랑해주지 못 했던 연희를 그렇게 살피고 가셨다.
그 후로 할머니를 꿈에서 만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