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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음 2019/06/17 22:05:06 ID : rfdVcHCo5cE
스레딕은 처음 왔는데 여긴 말해도 될 것 같아서 이야기 해보려고 해 때는 중2 때고 지금은 10년이 지나서 그 친구랑은 연락을 안하고 있어 요즘 같이 여름이 되면 많이 생각 나거든
이름없음 2019/06/17 22:09:37 ID : rfdVcHCo5cE
먼저 난 레즈야. 당시엔 정체화도 안했지만 어렴풋하게 여자아이들을 괴롭히는 남자애들을 보면 참지 못하고 나서거나 내가 지켜주고 싶단 생각도 하고 그랬네. 여자아이들이랑 몰려다니는게 더 좋고 이성보다는 동성친구들의 그런 관심이 더 기쁘고 두루두루 친구 넓게 사귀던 타입이었어. 여중으로 진학하고는 친구들 챙겨주는 그 역할이 엄마같은 이미지로 굳어졌던 것 같아.
이름없음 2019/06/17 22:12:41 ID : rfdVcHCo5cE
첫사랑 친구하고의 첫만남은 2학년 올라가고 얼마 안되어서였어. 과학실 뒷자리에 앉은 아이였는데 혼자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게 보여서 무심코 말을 걸었는데 생각보다 친절하게 받아주길래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계속 말을 걸고 혼자있으려는 그 친구를 챙겨서 내 친구들이랑 같이 다니기 시작한거야. 그 땐 상상도 못했지. 최고로 있지못할 추억들을 안겨줄 사람인지도, 또 그걸 그리워하면서 정체화까지 하게 될 줄도.
이름없음 2019/06/17 22:17:44 ID : rfdVcHCo5cE
지금 생각해도 무슨 청춘영화같기도 하고 그래. 사실 나는 그때쯤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가장 사랑하던 아빠랑 떨어져 살게 되는 바람에 많이 외롭고 쓸쓸하던 시기였어. 세상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리 혈연관계의 부모자식이라도 불가피한 상황에 의해 떨어질 수 있다는 걸 그 때 배웠거든. 그래서 그때부터 더 친구들을 살뜰히 챙겼어. 이 친구들도 언제 원치않는 이유로 못 보게될지도 모른다고 불안감이 들었었어. 그런 나에게 챙김받는 친구는 많았지만 반대로 나를 챙겨주는 사람은 첫사랑친구 뿐이었어. 그 친구하고의 특별한 관계는 내 생일부터였어
이름없음 2019/06/17 22:22:39 ID : rfdVcHCo5cE
내 생일은 6월 초야. 아빠랑 떨어져서 맞는 생일이 반가울 리도 없었지만 애들 앞에선 밝은 척했던 것 같아. 그 친구한테도 그건 아직 얘기도 못했었고 막 친해진 참이었으니 더 그랬고. 방과 후 같이 다니던 친구 다섯명이 작은 케이크랑 같이 깜짝축하파티를 해줬었어. 아빠랑 같이 부는 케이크촛불이 아닌게 괜시리 서러워서 울었는데 애들 앞이니 ‘아 너무 감동이라 눈물나네~’ 하고 말았지. 웃고 떠들면서 애들은 하나씩 조그만 선물을 건네는데 그 친구만 선물을 못 주는 거야. 아마 가정형편이 어려우니 선물을 못 챙겼던 거라고 지금은 생각해.근데 그 친구가 자기도 선물이 있다고 가까이 와보라고 하더라.
이름없음 2019/06/17 22:28:05 ID : rfdVcHCo5cE
신나서 뭐냐고 물으면서 순순히 그 친구 앞에 섰더니 포장용 붉은 리본으로 내 목에 리본을 묶어주더니 ‘너는 이제부터 내가 돌봐줄게. 내 고양이해! 이름은 나비야.’ 하면서 장난처럼 말하는 거야. 당시 내가 고양이상이고 다른 친구가 강아지상이라고 애들끼리 맨날 얘기하곤 했었어. 어이가 없어서 울었던 것도 쏙 들어갈 기세였는데, 나보다 키도 작은 그 친구가 내 뒷목을 손으로 감싸서 훅 당기더니 그대로 품에 안아주더라. 엥? 하는 중에 그 친구가 조용히 귀에 속삭였어. 그니까 힘든 거 나한테 다 얘기해도 돼.
이름없음 2019/06/17 22:32:31 ID : rfdVcHCo5cE
그 때 알 수 없지만 그 친구 품이 되게 넓게 느껴졌어. 못 본지 몇달은 더 넘은 우리 아빠같았어. 마른 단단한 품이. 항상 작다고 생각한 그 아이가 너무도 커보였고 그 품이 따뜻해서 맘놓고 안겨 엉엉 운게 얼마만이었는지 몰라. 악력이 좋아서인지 떨어지지도 못하게 잡아당긴 그 팔도 든든했고. 그 날 그 친구랑 같이 하교하면서 다 이야기했었어. 친구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등교했는데 천천히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겠다고 타지도 않는 자전거를 끌며 이따금 내가 울거든 자전거를 멈추고 똑같이 나를 단단히 안아줬어. 우리 가족들도 눈치 못챈 내 아픔과 서러움을 눈치채준게 고마웠고 기뻤어. 안길 품이 있단 것도 안도감이 들었지.
이름없음 2019/06/17 22:33:16 ID : cnDAo6mMi60
보고있어. 슬프면서 감동적이다 계속 들려줘 스레주!
이름없음 2019/06/17 22:36:02 ID : rfdVcHCo5cE
그 날 이후로 난 그 친구한테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몰랐어. 여전히 친구 사이의 스킨쉽은 낯간지럽다고 생각하지만 그 친구한테는 성격에도 못하던 팔짱 끼고 백허그하는 것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오게 되더라. 반한 것도 모른 채로 그 친구가 나긋나긋하게 나비야, 나비야, 하고 쓰다듬고 안아주니까 어리광 부리듯이 정말 고양이들이 몸 부비듯이 스킨쉽하게 되더라. 예쁘다고 해줄 땐 심장이 멈추고 쓰다듬어줄까?하고 간지럽힐 땐 부끄러웠어.
이름없음 2019/06/17 22:39:36 ID : rfdVcHCo5cE
그 친구도 아마 내가 드러내지 않고 우울을 쌓는게 걱정되고 그런 어리광 부리는 모습은 다른 친구들한테 보여주지 않으니까 우리 둘 사이가 다른 친구들하고 다르다고 생각한 것 같아. 밤늦게까지 문자하고 통화하고 하교 중엔 나를 집앞까지 데려다주고 그런 날들이 쭉 이어졌어. 딱 이맘때쯤이 그 친구에 대한 내 감정이 나날이 커지던 시기였어. 여름 볕은 더웠지만 더울 땐 가디건으로 나한테 그늘을 만들어줬고 부채질해줘가며 예쁜 고양이 대접하듯 나를 귀여워해줬어.
이름없음 2019/06/17 22:44:20 ID : rfdVcHCo5cE
가장 설레었던 나날이지. 나를 무릎에 앉히고 쓰다듬는게 그 친구의 습관이었고 내가 낮잠을 잘 땐 자기 가디건을 덮어주고 머리카락이 흩어지면 빗고 쓸어주면서 예쁘다고 속삭여주고 옆자리는 당연히 나를 위한 편안한 보금자리처럼 남겨줬고 내가 걱정시킬만한 일이나 다치는 일이 있을 땐 속상해하면서 혼내기도 했어. 난 정말 그 친구의 소유인 기분이었고 학교에서 낮잠시간마다 그 팔과 품에 안겨 쓰다듬받으니 밤엔 외로워서 잘 수 없었어. 그럴 때마다 문자로 보고싶다, 떨어지기 싫다, 하면서 그 친구가 불러주는 ‘나비야’를 머릿속으로 되뇌었어.
이름없음 2019/06/17 22:48:25 ID : rfdVcHCo5cE
여름방학이 될 쯤이 되어서는 우리는 그게 일상이었고 하다하다 피구를 하더라도 그 친구 뒤에 숨거나 다른 친구들하고 어울리는 시간을 포기하면서 둘만 있으려고 한다던지 시험 끝나고 반 아이들이 공포영화보며 꺅꺅 소리 지르는 걸 보며 그 친구가 화를 내기도 했어. ‘좀 조용히 하면 안돼? 얘 자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내가 좋아하던 그 손으로 뒤척이는 내 귀를 막아준 순간을 난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해. 에어컨 바람에 추울까 안아주면서 뒤척이다 깨지말라고 쉬쉬, 하면서 토닥여주던 그 친구가 더 참을 수 없을만큼 좋아졌어.
이름없음 2019/06/17 22:51:28 ID : rfdVcHCo5cE
여름방학이 되고는 그 친구가 학원에 가지 않는 날을 매일 기다렸어. 부르면 그 집앞으로 가고 그런 날은 날 우리 집앞까지 데려다 주고. 그렇게 놀러가면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고 그림을 그려주기도 하고 책을 같이 읽기도 했는데, 항상 밥 때가 되면 손수 요리를 해줬고 나한텐 손도 까딱 못하게 했어. 나비 다친다고, 쉬라고. 이제 보니 참 사귀지만 않았네. 낮잠시간도 챙겨줬어. 팔베개를 해주면 그 친구 목을 껴안고 같은 이불 덮은 채로 잠이 들었거든.
이름없음 2019/06/17 22:58:12 ID : rfdVcHCo5cE
그렇게 꿈같던 여름방학이 지나고 나서 문제가 시작됐어. 그 친구가 날 대하는게 어색해진 거야. 여름방학 마지막 주에 강아지 닮았단 친구네 다녀오고서부터 나를 나비라고 불러주지도, 손을 잡고 하교하지도, 껴안거나 쓰다듬지도 않게 되었어.(앞으로 그 강아지 닮은 아이를 윤이라고 할게) 나는 불안감이 커졌어. 그 때는 학교 안에서 내가 레즈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거든. 복도에 지나만 가도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난 전혀 신경 안쓰고 있었어. 내 친구는 첫사랑 그 아이 하나면 족하다고 생각했어. 사실 정체화도 안했는데 그런 이야기에 타격 받지도 않았어. 여름 방학 전에도 그런 질문을 한 두번 들었지만 첫사랑친구가 ‘얘는 내 고양이라서 내가 예뻐하는 것 뿐인데?’라고 철벽치고 마저 나를 쓰다듬기만 했거든. 하지만 2학기는 달랐지. 나를 밀어낸거야
이름없음 2019/06/17 23:01:55 ID : rfdVcHCo5cE
나를 밀어낸 그 친구는 윤이랑 점점 붙어다녔어. 나는 영문도 몰랐고 친구들이랑 같이 있으면 이제 내 옆자리가 비게 되었어. 나는 윤이와 함께하는 셋의 하교길이 괴로웠고 윤이의 실내화 가방을 들어주느라 바빠서 내 손을 잡지 않는 그 친구의 손을 하염없이 쳐다보다 울며 집에 들어오는 날도 늘었어. 더 이상 내 집앞까지 헤어지기 아쉽다며 데려다주는 일도 없어진 거야. 난 윤이가 미워졌어. 항상 둘만 있던 시간에 윤이가 끼어드는 건 둘째치고 나를 두고 윤이랑 둘이 시간을 보내는 그 친구를 보며 버림받는단 생각이 들어서 견딜 수 없었어. 내가 그렇게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택한 대응은 올바르질 못했지
이름없음 2019/06/17 23:09:28 ID : rfdVcHCo5cE
나는 윤이가 건들거나 말을 걸기만 해도 욕을 뱉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내가 맞는지도 모르겠어. 생전 남한테 욕하며 싸운 거라곤 정말 윤이 뿐이었거든. 사실 윤이는 내가 1학년 때 처음 사귄 친구이기도 하고 사교성이 없길래 내가 많이 챙겨서 친구들 만들어줬던 아이였기도 해. 윤이 입장에선 갑자기 말만 걸면 당장 꺼지라며 성질 내던 날 이해할 수 없었을 거야. 화도 나고 상처도 받았겠지. 윤이랑 내가 싸우면 싸울수록 첫사랑 친구는 나한테서 멀어져갔어. 결국 나한테 한마디도 건네지 않게 된 그 친구를 보며 난 남은 시간을 줄곧 혼자 다녔어. 윤이한테 사과하고싶은 마음이 없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되면 윤이를 챙겨주는 그 친구를 가까이서 봐야했거든. 다른 친구들이 챙겨주겠다고 다가왔지만 사실 그 때 무슨 기분과 생각으로 하루종일 학교에서 혼자 앉아있었는지 모르겠어. 그렇게 무뎌지고 원망이 쌓이고 나니 그 친구가 선생님 말씀 전달때문에 건드리면 똑같이 욕을 했어. 건드리지마, 기분 거지 같으니까. 이런 식이었던 것 같아. 그런 날이면 그 친구 집 뒷뜰에서 펑펑 울었던 걸 아마 그 친구는 평생 모를거야.
이름없음 2019/06/17 23:10:21 ID : rfdVcHCo5cE
근데 내가 그렇게 행동했던 벌을 받았나봐. 난 평생 후회할 짓을 시간이 지나고서야 깨달았어.
이름없음 2019/06/17 23:15:16 ID : tuoE1ck8pgi
ㅂㄱㅇㅇ
이름없음 2019/06/17 23:16:03 ID : rfdVcHCo5cE
겨울방학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어. 그 친구는 여전히 윤이와 놀러다니기도 했던 것 같고 학원도 다녔어. 연락도 안하는데 이걸 어떻게 알았을 것 같아? 사실 겨울방학 내내 그 친구랑 보내던 여름방학 생각에 외롭고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어. 겨울방학 첫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그 친구 집앞을 갔고 사과하고 싶다고 연락을 하려다 말려다, 추운 겨울인데도 그 고민에 추운지도 모르겠더라. 눈 밭에 서서 한숨만 쉬다가 울다가, 그러는데 그 친구 집 문이 열리는 거야.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다보니 난 바로 숨었어. 뭐하러 간 건지 모르겠는데 그 땐 숨는 것도 서러워서 끅끅 울었네. 학원차가 마중나올 시간에 맞춰서 나오는 거였나봐, 차가 오자마자 떠나더라. 학원가는 친구 얼굴 보면서 결국 연락도 못하고 울면서 돌아왔어. 그 날은 눈이 펑펑 내렸어.
이름없음 2019/06/17 23:19:41 ID : rfdVcHCo5cE
그렇게 눈오는 날도, 맑은 날도 그 친구 집앞에 찾아갔다가 울다가 돌아오길 여러번 반복했어. 윤이가 그 집에 놀러가는 걸 우연히 보게 된 날부턴 찾아가지도 못했지. 그 날은 눈이 쌓인 다음날이었는데 서러워서 집앞에서 엉엉 울다가 내가 서있던 자리만 눈이 쏙 녹아내린 구덩이가 몇개 생긴게 기억나. 그리고 지독했던 그 겨울방학이 끝나고 3학년 교과서와 반배정을 받는 예비소집일?이 됐어. 그 친구를 마지막으로 마주칠 날이 될, 내 마지막 사과의 기회였어.
이름없음 2019/06/17 23:20:49 ID : rfdVcHCo5cE
결국 난 사과를 못했어. 타이밍을 재겠다고 마지막까지 남아서 그 친구한테 눈짓도 하고 그 친구도 그걸 눈치채고 끝까지 남아있어줬는데, 내가 도망쳤거든
이름없음 2019/06/17 23:24:11 ID : rfdVcHCo5cE
모든 아이들이 돌아가고 그 친구와 다른 아이 몇몇만 남아있을 때, 다른 아이들과의 대화를 듣고 우리 둘의 반이 떨어졌단 걸 알았어. 정말 그 날이 마지막 기회였던 거야. 가방을 마저 여미고 돌아서려던 순간에 그 친구랑 눈이 마주쳤어. 이야기하고 싶은게 있는 눈치였어. 그런데 기분탓인지 못 본 사이에 많이 야위었더라... 속상하게. ‘나 하고싶은 말 있는데...’ 하고 가방을 들고 그 친구 옆 자리로 갔어. 윤이가 밖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무시하고 말을 하려는데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라
이름없음 2019/06/17 23:28:49 ID : rfdVcHCo5cE
그 친구가 선생님을 보자마자 멋쩍게 웃었어. 진짜 어색하고 민망한 것마냥. 선생님은 그 친구 보자마자 손을 잡고는 작은 목소리로 그러더라. ‘장례는 잘 마쳤니? 선생님이 더 오래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 순간 머리를 얻어 맞은 것 같았어. 고개도 못들고 뒤로 한 발을 뺐던 것 같아. 그 다음부터 이어진 대화는 그 친구의 의도가 담겨있었어. 너한테 들려도 상관없다는 목소리 크기였거든. 그냥 알려주고싶었던 거라고 난 느꼈어. 자기가 그동안 힘들었다고. 아버님 좋은 곳에 가셨을 거야, 친가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괜찮았어요, 등등의 말을 듣고 난 그대로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왔어. 그 친구가 쳐다보는 걸 느꼈지만 내가 먼저 울어버릴 것 같아서 그냥 달렸어
이름없음 2019/06/17 23:32:10 ID : rfdVcHCo5cE
그 날은 동네 놀이터로 뛰어가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울었어. 그 친구는 내가 가장 외롭고 힘들 때 옆에 있어줬는데 난 그 친구가 가장 외롭고 힘들었을 시간에 먼 발치서 다가가지도 못하고 있었다는게 저주 같았어. 그리고 얼핏 들은 ‘친구들이 장례식장을 못와서 선생님 와주신게 다행이었어요.’란 말에 억장이 천번 만번 무너졌어. 윤이는 왜 안갔던 걸까. 내가 알았더라면 사과를 서둘러서라도 갔을텐데. 누군가에게 안겨서 울긴 했을까. 그 날은 그 친구를 홀로 뒀단 죄책감에 잠도 못잤어.
이름없음 2019/06/17 23:39:34 ID : rfdVcHCo5cE
3학년이되고 반이 떨어진 그 친구하고는 가끔 복도에서 스쳐지났었어. 난 좋아한만큼 지켜주지 못했단 죄책감에 숨어 다니기 급급했고 그 친구는 윤이하고도 반이 떨어지더니 소원해진 것처럼 보였어. 날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낯가리느라 쭉 혼자 다닌다고 들었거든. 그러다 난 김이라는 친구랑 친해지게 됐어. 이 친구가 내 은인이야. 김은 여전히 연락하는 내 가장 친한 친구로 남았는데 여전히 첫사랑 친구에게 연락해보라고 아직도 날 흔들어. ㅋㅋ 여기서 조금 분위기가 바뀔거야
이름없음 2019/06/17 23:42:48 ID : rfdVcHCo5cE
김은 나랑 같은 상처가 있고 닮은 구석도 많은 친구였어. 우린 금방 친해졌고 난 첫사랑에 대해 처음으로 남에게 이야기 해봤었어. 하지만 사랑이라고 생각도 못했고 정체화랑도 먼 이야기였지. 이렇게 관계가 끊긴 친구가 있어서 속상하다란 맥락이었으니까. 근데 김이 매일 물었어.’혹시 그 애가 저 애야?’하면서. ‘아니, 그 뒤에 키 작고 당돌하게 생긴 안경낀 애.’ 그리고 내 대답을 듣고 김은 그 친구의 얼굴을 기억해뒀어.
이름없음 2019/06/17 23:46:23 ID : rfdVcHCo5cE
어느 날인가 그 친구네 반이랑 합동봉사활동을 나간 날이 있는데 너무 가깝게 보여서 내가 김의 뒤로 숨었어. ‘레주야, 쟤 맞지?’ ‘맞으니까 나 좀 숨겨줘. 나 긴장돼서 못 있겠어...’ ‘아냐, 레주야! 너 재랑 다시 친해지고 싶지 않아?!’ 난 그 때 김이 진짜 대단해보였어. 뭐가 씌인 것처럼 내가 물어보고 올게! 하더니 달려갔거든. 야!!!!! 하면서 쪽팔려서라도 김을 막으려고 한 순간엔 이미 늦었었어. ‘안녕! 난 3반 김이라고 하는데 너 레주 친구였지? 혹시 레주가 사과하면 받아줄 마음 있어? 레주는 너한테 사과하고 싶대.’
이름없음 2019/06/17 23:49:15 ID : rfdVcHCo5cE
진짜 아직도 김이랑 술마시면 그 때 너 별났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해. 의외로 그 친구도 김이 내 친구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했대. 그리고 사과를 받아줄 마음도 있는데 핸드폰 번호가 바뀌었으니 새 번호로 연락 달라고 번호도 전달해달라고 그랬대. 물론 김이 신나서 달려왔으니 다 들었지만 나는 뭉클하고 고마워서 그 때도 찔끔 눈물을 짰어. 그리고 혼자 집 돌아가는 길에 김의 응원을 받고 연락을 했지. ‘안녕, 나 레주인데 그동안 잘 지냈어?’
이름없음 2019/06/17 23:50:56 ID : rfdVcHCo5cE
우린 그동안 쌓였던 많은 이야기들을 했어. 내가 윤이를 질투했단 이야기도, 그렇게 힘든 순간 옆에 못있어줘 미안했단 생각에 더 사과하기 무서웠단 이야기도 했어. 그리고 나도 그 친구의 말들을 들었지. 여름방학이 끝나고서부터 나를 피한 이유.
이름없음 2019/06/18 00:06:12 ID : rfdVcHCo5cE
당시 윤이의 언니와 내 언니는 같은 반 친구였는데 나랑 윤이도 같은 반 친구인 신기한 상황이었어. 자매들끼리 친구인 거지. 근데 내가 첫사랑을 겪으면서 레즈라는 소문이 돌았던 걸 알면서도 무시하니까 우리 언니랑 언니 친구들이 일부러 우리 반에 더 찾아오고 귀찮게 날 불러내고 다른 애들한테 눈치를 줬다더라. 우리 언니는 내가 레즈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해서 그걸 그렇게 무겁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실상 뭐 가오잡을만큼 노는 사람도 아닌 그냥 선도부 무서운 언니 중 하나였어... 근데 동생 욕하는 소리가 들리니까 친구들한테 가오잡는 척 하자고 헬프를 친 거지...ㅋㅋㅋㅋㅋ 그 중에 윤이네 언니도 있었고 윤이네 언니가 집에서 ‘레주 소문 괜찮나 모르겠다, 걱정이네...’ 하는 거 듣고 윤이도 나름 걱정이라고 내 첫사랑친구한테 이야기를 했대.
이름없음 2019/06/18 00:09:04 ID : rfdVcHCo5cE
결국엔 쟤 레즈 아냐? 하는 그런 시선과 뒤에서 들리는 욕들이 나한테 해가 될 거라고 생각해서 자기가 밀어내고 다른 친구랑도 친하게 지내는게 맞다고 판단한 거야. 내 첫사랑 그녀는. 괜히 자기 탓이라고 생각해서 미안한 마음에 윤이랑 짜고 뒤집어쓴 악역이었는데 그 친구 아버님이 뺑소니 사고로 억울하게 돌아가시고서는 엄청 후회했대. 너무 힘들고 괴로운데 내가 없어서 외롭고 쓸쓸했다고. 너무 멀어져서 힘들다 연락하기도 어려웠다고.
이름없음 2019/06/18 00:12:04 ID : rfdVcHCo5cE
그리고 며칠 후 학교가 끝나고 그 친구 집에 놀러가기로 했어. 전처럼 친구는 자전거를 끌었고 난 그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걸었어. 그 친구가 내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고 나도 그 손을 겹쳐서 비어있는 자전거 왼쪽 핸들에 올렸어. 혹시 내 손을 잡다가 자전거가 쓰러지면 친구가 다칠까봐. ‘이렇게 가는 거 오랜만이네’ 그 말에 울 뻔했는데 그 날은 그 친구도 울 것만 같아서 그냥 끄덕거리고 친구 아버님 이야기를 들었어. 너무 아프고 아픈 이야기를.
이름없음 2019/06/18 00:15:49 ID : rfdVcHCo5cE
아버님 사고 이야기는 친구의 아픔이니까 자세히 쓰지 않을게. 그 이야기를 하면서 친구가 처음으로 나한테 안겨 울었어. 나는 내가 안겼을 때처럼 단단히 친구를 안고 고생했다고, 힘들었는데 잘 참았다고 다독였어. 그 친구는 앞으로 이런 억울하고 부당한 일 당하지 않게 법학 공부를 하겠다고 했어. 난 응원한다고 했고 정말 오랜만에 고맙다는 말과 함께 쓰다듬을 받았었어.
이름없음 2019/06/18 00:18:04 ID : rfdVcHCo5cE
예전처럼 가까워졌지만 예전만큼 편할 수는 없었어. 친구는 여전히 소문을 신경썼고 날 나비라고 불러주지도 않았어. 나도 요구하지 않았고 조심해주는 그 호의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똑같이 조심하고 다녔어. 김이랑 같이 만나 놀기도 하고, 평범한 친구처럼 지냈지만 하교길엔 남들 몰래 손을 잡았어. 헤어지는게 아쉬워 서로의 집 앞을 왔다갔다 하기도 했어. 그걸로 난 충분했던 것 같아.
이름없음 2019/06/18 00:20:45 ID : rfdVcHCo5cE
고백은 물론 했어. 직구로는 아니고 돌려돌려서. ‘나는 너만큼 인간 대 인간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없을 것 같아. 잘 맞고 멋있기도 하고 다정하고 같이있고 싶은 그런 사람.’ ‘뭐야. 고백이야?’ ‘굳이 그런 건 아니고. 인간 대 인간!’ 친구는 더 묻지도 않고 고맙다고 웃어줬어. 그걸로 괜찮았던 것 같아. 그렇게 우린 자연스레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했고 각자 진로를 위해 공부에 매진하느라 연락도 못했어.
이름없음 2019/06/18 00:22:36 ID : rfdVcHCo5cE
고등학교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형태를 갖춘 자연스런 연애를 해보고서야 알았어. 그 친구가 첫사랑이고 그 당시 내 기분이 설레임과 애정이었다는 걸. 그러고 나니까 부끄러워서 연락 못하겠더라. 괜히 만나면 긴장하고 그럴 것 같아서. 근데 여전히 연락을 못하는데는 다른 사건이 하나 있었어.
이름없음 2019/06/18 00:25:21 ID : rfdVcHCo5cE
고3때였어. 9월정도 였을거야. 간간히 연락은 했는데 전화가 온 건 처음이었어. 난 아빠가 안계시니까 엄마의 가장으로서의 짐을 덜기 위해 상고에 진학했고 운 좋게도 노력한 것 이상의 좋은 회사에 일찍이 입사해서 이미 9월엔 회사를 다니고 있었어. 그 날은 퇴근해서 강아지랑 놀아주고 있었어. 울면서 그 친구가 전화를 한 거야.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이름없음 2019/06/18 00:28:38 ID : rfdVcHCo5cE
대학 문제로 집안에서 싸웠다고, 법학과 진학 위해서 고집 부리는 중인데 하루만 재워주면 안되겠냐고. 민폐인 건 아는데 지금 떠오르는게 나뿐이라고. 그러고 보니 공중전화였어. 번호를 외우고 있는 친구가 나 뿐인 거야. 그걸 어떻게 뿌리쳐. 가출한 친구 받아주는 거 아니라는 엄마 붙잡고 나도 울고 불고 사정했어. 얘 절대 이러는 애 아니라고, 무슨 일 있는 거라고. 내 친구 살리고싶다고. 결국 급하게 나오느라 핸드폰도, 택시비도 없는 애가 도보로 한시간을 걷고 지하철로 30분을 달려서 2시가 다 될쯤 우리 집에 도착했어.
이름없음 2019/06/18 00:30:47 ID : rfdVcHCo5cE
나도 퇴근 후였으니까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기다리다 친구 오자마자 옷 갈아입히고 물 마시게 하고 자자고 같이 침대에 누웠는데 아무래도 예전 그 품에 안겨서 애처럼 자던게 생각나는데다 그 시기엔 정체화도 끝났을 때라 얘를 그렇게 대하면 안된다고 생각이 드는 거야. 나는 등을 돌리고 누웠어. 신경쓰지 말고 편하게 있으라고 얼른 잠든 척도 했고.
이름없음 2019/06/18 00:33:43 ID : rfdVcHCo5cE
근데 나라고 잠이 오겠어ㅋㅋ... 애가 딱 같이 눕는 순간 심장 엄청 뛰고 긴장되고 옛날처럼 따뜻하게 같이 안고있고 싶단 생각도 들었다가 막 혼란의 뇌내망상을 접느라 애쓰고 있었는데 뒤에서 그 팔이 내 허리를 감는 거야... 나 진짜 심장이 돌이 되는 것 같았어. 근데 힘들어서 그런 거였는지 걔가 살짝 우는 것 같더라. 근데 뒤돌아 그 친구를 안아주기엔 내가 친구로서의 그런 마음이 못 될 것만 같아서 이 악물고 자는 척만 했어.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스르륵 잠이 든 것 같아.
이름없음 2019/06/18 00:36:33 ID : rfdVcHCo5cE
그 날은 그 친구가 나비라고 불러주는 꿈을 꿨어. 일어나서 그 팔 걷어내는데 정말 가기 싫더라. 엄마한테 애 일어나면 잔소리 말고 그냥 보내주라고 당부해놓고 출근 했는데 나중에 그 친구한테 연락왔어. 일어나서 씻었더니 우리 엄마가 밥 먹자고 웃으면서 상차려주셨다고.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울었더니 우리가 짧게 본 사이도 아니지 않냐며 너스레 떨었다더라. 나중에 커밍아웃하고 알았는데 엄마도 직감적으로 나한테 보통의미 아닌 애인 건 느끼고 있었대.
이름없음 2019/06/18 00:36:37 ID : tuoE1ck8pgi
ㅂㄱㅇㅇ
이름없음 2019/06/18 00:37:56 ID : rfdVcHCo5cE
고맙다고 이 은혜 안 잊겠다고 하는 카톡 보고서 뭔가 뛰던 심장이 차게 식었어. 나에겐 설렘이고 떨림이던게 그 친구한테는 빚이고 은혜잖아. 그 이후로 떨림을 느낀 내가 너무 죄스러워서 연락 못한게 6년째네.
이름없음 2019/06/18 00:39:14 ID : RxA5faq3RxD
연락해줘 제발 ㅜㅜㅜ
이름없음 2019/06/18 00:43:54 ID : rfdVcHCo5cE
여름이 되고 매미가 울면 그 친구가 생각나. 에어컨 바람에 가디건을 걸쳐주던 온기도 그립고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깰까봐 내 귀를 막아주던 손이나 가볍고 당연하게 내주던 그 옆자리가 그리워. 그 때 했던 어리숙한 고백처럼 나를 그렇게 설레게 한 사람은 이 친구말곤 없었어. 겉모습이 특출나게 예쁘고 멋있지 않아도 그 급이 다른 부치 매너?라고 해야하나ㅋㅋ. 목소리가 나긋나긋한데에 비해 카리스마 있는 눈빛도, 책읽을 때의 지적인 모습도. 매번 연락하고 싶다가도 그 때 좋아했던 마음을 숨기지 못할까봐 카톡 프로필만 보다가 취소버튼만 누르게 되네. 겨울 방학에 눈 맞으면서 그 친구에게 사과할까 말까 망설였던 것처럼 말야.
이름없음 2019/06/18 00:46:50 ID : rfdVcHCo5cE
내가 과연 친구답게 행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야. 그 친구가 가출하고 침대위에서 날 끌어안았던 새벽이 난 너무 생생한데... 난 눈도 못 마주칠 것 같아 ㅋㅋ
이름없음 2019/06/18 00:49:39 ID : tuoE1ck8pgi
쭉 보고있었어 이글을 읽고 침대에 누우려니 내가 예전에 들었던 노래가 갑자기 생각나는데 스레주한테 꼭 추천해주고 싶어.. SG워너비 - 우리의 얘기를 쓰겠소 . 이 제목 맞는지 잘 기억이 안나는데 한번만 꼭 들어봐...
이름없음 2019/06/18 01:44:06 ID : rfdVcHCo5cE
지금 듣고 있어. 노래 추천 고마워. 앞으로는 여름에 자주 찾아 들을 것 같아. :)
이름없음 2019/06/23 04:42:47 ID : K6mMmIGtBs9
스레주ㅠㅜ 너무 좋은 글이라 찾아들어와서 다시 읽었어. 정말 사랑스러운 시간들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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