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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LdWmNApdT 2019/07/08 22:49:35 ID : XxSMmK6nQts
-1- -2- 에커드 거리의 한 가정집에서 일어난 강도 사건은 근래에 일어난 사건 중에 가장 이상했다. 물론 일가족은 전부 생존했다. 약간의 정신적 충격만 있을 뿐, 이상은 없다. 그리고 도주자 한 명과 사상자 한 명이 있다. 그 둘은 공범이었다. 도주자의 신원은 마약중독자로, 메인 언덕의 우범지역 출신으로 밝혀졌다. 현재 그는 추적 중에 있다. 그리고 사상자 한 명, 여기서 사건의 기이함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동안 여러 종류의 사상자를 겪어왔다. 다양한 살해 동기와 살해 도구, 시체의 처리 방식까지, 그들을 다 모아보면 수백만 가지는 된다. 개중에는 매우 특이한, 인체 발화 같은 경우가 있다. 갑자기 당신의 몸에 불이 붙어 순식간에 재가 돼버린다, 심각한 비운의 결과이다. 손 쓸 새도 없이 당신은 거리의 횃불이 된다. 하지만 만약 폭탄이라면 어떨까? 당신의 몸이 마치 풍선처럼 부풀려지고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진다. 그 모든 고통을 온몸으로 견디다가 결국 폭탄처럼 크게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몸을 사방에 휘갈긴다. 당신의 살점과 장기 덩어리들이 방 안 한가득 널려 있고 벽과 바닥엔 선혈이 낭자하다. 우리가 마주한 사상자는 바로 그 붉은 방이다. 사람이 터져 죽을 확률이 매우 적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상자의 신원은 근처 거리의 생선 가게 사장이었다. 그는 근면하고 성실한 성격으로 평판이 높았다. 그런 사람이 이러한 범죄에 가담하고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피해자가 그의 몸에서 구역질 나는 수포와 고름이 흘러내렸고, 마치 다중인격처럼 자신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다가 유아처럼 어머니를 찾다가도 분노에 찬 얼굴에 칼로 위협하는 행동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 점이 그의 사망 원인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최근 세인트 로스의 기이한 사건들에서 나타난 유사점인 수포와 고름에 대해선 고려할 여지가 충분하다. 현재로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의 주기가 짧아지고 또한 세인트 로스 전역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마치 병처럼, 세인트 로스에 전염병이라도 든 것처럼 말이다.
◆g2LdWmNApdT 2019/07/15 00:05:48 ID : XxSMmK6nQts
-1- 에밋 교수가 세인트 로스에 가길 거부한 데에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세인트 로스에 대한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에밋이 그곳에 대해 말하는 날이면 그는 심히 예민해져 있었고 특히 손짓을 가세하면서 세인트 로스에 대한 사회적 불만 등을 토해내곤 했다. 나는 분명 에밋이 세인트 로스에 가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지만, 총장이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몰라도 그는 에밋을 설득해 냈다. 에밋은 결국 세인트 로스를 향해 출발하게 되었다. 나는 그가 세인트 로스에 가기 바로 전의 격한 모습을 떠올렸다. 제발 에밋이 세인트 로스에서 아무 문제도 일으키질 않길 바란다.
◆g2LdWmNApdT 2019/07/15 12:02:10 ID : XxSMmK6nQts
세인트 로스의 전염병 첫 번째 에피소드 : 조난자
◆g2LdWmNApdT 2019/07/15 12:02:38 ID : XxSMmK6nQts
"이런 개 같은." 에밋 교수가 내뱉었다. 에밋은 재빨리 선글라스를 벗어 조수석에 던졌다. 입에선 나지막한 욕지거리가 줄줄이 새어나왔다. 에밋은 필사적으로 자동차 핸들을 잡았다. 자동차는 비포장도로에 들어온 듯이 세차게 흔들렸다. 에밋은 끔찍한 사고가 닥칠 것임을 예감했다. 자신이 절대로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미래였다. 에밋은 고삐 풀린 자동차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자동차는 뒤집어질 것처럼 요동치더니 바깥으로 쓸려나갔다. 다행히 바닥의 돌무더기는 자동차를 크게 감속시켰고 몇 초 내에 자동차는 완전히 멈추었다. 큰 고비는 넘겼지만, 에밋에게는 이미 차릴 정신이 없었다. 온몸의 심한 근육통이 에밋을 속박했다. 에밋은 심한 이인증을 느꼈고 자동차 핸들에 머리를 몇 번 내리찍었다. 햇빛에 달궈진 선글라스를 본 후에야 현실감을 찾을 수 있었다.
◆g2LdWmNApdT 2019/07/15 15:31:41 ID : XxSMmK6nQts
에밋의 손이 땅바닥을 제일 먼저 짚었다. 에밋은 헛구역질을 내뱉다가 결국 자동차 바깥으로 나가떨어졌다. 속을 게워내야겠는지 침이 마구 흘렀지만 수백 마일을 쉬지 않고 달려오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에 나오는 것은 없었다. 에밋은 몸을 돌려 땅바닥에 퍼질러졌다. 고가의 정장은 안중을 떠나간 지 오래였다. 에밋이 가장 낙담한 부분은 바로 그의 자동차였다. 얼마 전에 출시되어 큰마음을 먹고 산 신형 자동차였다. 에밋의 머릿속에 그가 애지중지했던 자동차의 모든 부위가 떠다녔다. 에밋의 입은 현실을 계속해서 부정하면서 얇게 뜨인 눈으로 자동차를 아련하게 훑었다. 육중한 범퍼와 단단한 차체, 그중에서도 강렬한 빨간 도색은 에밋이 가장 신중하게 선택한 옵션이었다.
◆g2LdWmNApdT 2019/07/15 20:02:39 ID : XxSMmK6nQts
에밋이 진정한 문제를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리 걸리지 않았다. 에밋은 천천히 상체를 들어 타이어 휠을 응시했다. 에밋은 미간을 찡그렸다. 턱을 당겨 노려보았다가도 가까이 다가가 살폈다. 에밋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자동차 전체를 몇 번이나 돌았다. 온몸에는 흙먼지가 잔뜩 들러붙어 있었고 반쯤 걸쳐진 외투에 발을 질질 끌었다. 에밋이 머리카락을 올렸다가 도로 쓸어내렸다. 모든 하나하나의 타이어 휠에서 똑같은 문제가 나타났던 것이었다. 에밋은 외투 안쪽 주머니에서 은색 봉지를 꺼냈다. 윗부분을 길게 찢자 하얀색 멸균 장갑이 나왔고 에밋은 손에 능숙하게 씌웠다. 에밋은 그대로 쪼그려 앉아 타이어 휠을 바로 마주했다. 약간 망설였지만 입을 꾹 다물고 휠에 손가락을 내밀었다.
◆g2LdWmNApdT 2019/07/15 22:37:47 ID : XxSMmK6nQts
그리고 타이어 휠은 마치 수백 년이라도 방치된 철근 마냥 무너져 내렸다. 손에 남은 것은 오로지 붉게 산화된 쇳가루뿐이었다. 에밋은 가루로 점칠 된 장갑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에밋은 타이어 휠 안으로 손을 깊게 들이밀었다. 아무리 손을 휘저어봐도, 정상인 부분을 찾으려 해도 나오는 것은 단단한 쇠가 아닌 녹슨 먼지 더미였다. 에밋은 그대로 쭈그려 앉았다. 그의 오른손부터 팔, 뺨까지 전부 붉게 물들여 있었다. 에밋은 자신이 사기를 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미 자동차를 살 때부터 고급 철판만 덕지덕지 붙여놓은 고물차를 산 것이다. 에밋은 담배를 찾으려 안쪽주머니를 뒤졌다. 단지 군용 라이터 하나만이 나왔다. 에밋은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다가 엉성하게 새겨진 이름을 발견했다. 에밋이 지은 표정은 조금 전 자동차를 훑어 볼 때와 같았다.
◆g2LdWmNApdT 2019/07/16 10:25:34 ID : XxSMmK6nQts
에밋은 고개를 올려 주위를 살폈다. 홍채에 넓게 펼쳐진 황무지가 맺혔다. 텅 빈 지평선과 황색의 산맥들은 하늘과 나체로 만났지만, 아지랑이 때문에 그 경계는 명확하지 않았다. 길게 뻗어 나가는 이차선 도로는 고요했고 늘어선 가로등만이 그림자를 남겼다. 하늘 정중앙에 뜬 태양은 모든 것의 색을 비현실적일 정도로 진하게 했다. 눈을 가늘게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에밋은 자동차 한 대 오지 않는 도로 끝을 몇 분간 응시했다. 그리고 다시 자동차를 봤을 때 후드 위로 검게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에밋은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지만, 그것은 눌어붙은 타르 따위나 그런 것 따위가 아녔다. 그것은 지평선 가장자리에 있었다. 에밋은 곧 검은 연기가 도시의 구조를 이루고 있고 점차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도시는 빠르게 일렁이며 황무지를 잠식해 나갔고 에밋이 눈을 깜빡일 때마다 더욱 커졌다. 에밋은 검은 연기에서 한 건물을 기억해 냈다. "세인트 로스!" 에밋이 외쳤다.
◆g2LdWmNApdT 2019/07/16 12:00:22 ID : XxSMmK6nQts
검은 세인트 로스는 에밋의 한두 걸음 앞에서 멈췄다. 연기의 건물들은 어느 때보다 더욱 격렬하게 타올랐다. 도시의 도로, 나무, 신호등이 에밋의 이름을 불렀다. 일그러진 얼굴의 사람들이 거리를 거닐었다. 그중에서 에밋은 익숙한 얼굴을 찾았다. 에밋은 그들의 이름을 불렀지만 잠시 고개를 돌릴 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그것은 도시의 가장 높은 건물보다 몇 배는 더 거대했다. 에밋은 단순히 티끌에 불과했다. 에밋은 그것의 모습에서 낯설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이전에 분명히 본 것이었다. 에밋은 완전히 공포에 휩싸였다. "세상에, 이건." "그저 먼지 더미뿐이에요." 목소리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g2LdWmNApdT 2019/07/16 19:10:27 ID : XxSMmK6nQts
그리고 에밋은 자동차 안에서 일어났다. 헝클어진 머리에선 이마 주름을 따라 핏줄기가 맺혔고, 에밋은 앞을 간신히 내다보고 있었다. 앞창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각각의 조각에선 풍경을 간신히 알아볼 수 있었다. 에밋의 비틀린 신음은 뚝뚝 끊겼다. 태양 빛은 너무 뜨거웠다. 근처에서 차문 열리는 소리와 다급한 발걸음이 들려왔다. "이봐! 정신이 들어?" 노인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런, 잠깐 기다려." 노인은 문고리를 잡고 잠시 끙끙거리다가 문짝을 뜯어내다시피 열어냈다. 에밋을 좌석에서 끌어낸 노인은 그를 바닥에 눕혔다. 에밋에겐 간신히 말할 기운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에밋이 중얼거리자 노인은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빛, 태양이... 제발."
◆g2LdWmNApdT 2019/07/16 22:16:23 ID : XxSMmK6nQts
"아! 알았어. 알았어." 노인은 에밋을 바로 부축했다. 이차선의 바로 옆에 노인의 차량이 있었다.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픽업트럭이었다. 뒤에는 강렬한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간이 천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에밋을 그곳에 눕힌 노인은 이마에서 땀을 훔쳤다. 노인은 앞좌석에서 물을 가지고 다시 에밋에게 돌아왔다. 에밋은 노인이 입안으로 흘려주는 물 덕분에 곧 정신을 차렸다. 에밋은 끄트머리에 구부정한 자세로 걸터앉아 거친 숨을 몇 번 몰아내쉈다. "젠장할, 대체 뭔 일이 일어난 겁니까." 에밋의 목소리는 축 처져 있었다.
◆g2LdWmNApdT 2019/07/16 22:30:59 ID : XxSMmK6nQts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당신은 큰 사고를 당했어. 이 정도 다친 것만 해도 다행이지." 노인은 목을 축이다가 말했다. "집에 돌아가던 길에 가로등에 들이박은 빨간 자동차를 발견했지. 처음엔 뭔 헛 것인 줄 알았는데,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 안에 어떤 남자가 누워 있더군. 다가가서 보니 숨을 쉬고 있었지. 그래서 일단 내 트럭으로 데려온 거야." "가로등?" "그래, 저기 보이는 거." 노인이 가리켰다.
◆g2LdWmNApdT 2019/07/16 22:43:35 ID : XxSMmK6nQts
노인의 손가락의 끝에는 미세하게 기울어져 있는 가로등이 있었다. 가로등의 허리엔 반파된 빨간 자동차가 꽂혀 있었다. 자동차의 후드에선 아직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타이어 휠은 깨끗하게 햇빛을 투영했다. 녹슨 흔적 따윈 없었다. 그 뒤에 도로를 처음 이탈한 위치가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사고가 난 위치와 그곳까지는 원근법까지 고려하지 않아도 꽤 되어 보이는 거리였다. "아무튼." 노인이 말을 이었다. "이곳은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야. 세인트 로스에서도 아는 사람이 적지. 만약 내가 오지 않았더라면 어찌 될 뻔했어?"
◆g2LdWmNApdT 2019/07/16 22:45:21 ID : XxSMmK6nQts
"감사합니다, 정말로." 에밋은 짧게 답했다. 노인은 충분히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에밋은 노인의 허리춤 주머니를 응시했다. 입이 바싹 말라갔다. 네모나고 각진 자국은 분명 답배갑이었다. 노인은 마침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려던 참이었다. 에밋은 다리를 떨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혹시." 에밋이 머뭇거렸다. "이걸 원하나?" 노인은 에밋의 생각을 눈치 채고 담배 한 대를 건넸다.
◆g2LdWmNApdT 2019/07/16 22:45:47 ID : XxSMmK6nQts
에밋은 담배를 마지못해 받았다. 곧바로 입에 물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라이터까지 닿았지만, 그저 그것을 돌리기만 하다가 손을 뺐다. 에밋은 어금니를 꽉 물어 정면을 응시했다. 입에서 뺸 담배는 팔 아래에서 손가락과 함께 놀렸다. "필 생각이 없나?" "머리가 심하게 울리는군요..." 에밋은 허탈하게 숨을 뱉었다. "필요하면 더 누워 있어도 돼. 시간은 많으니까." 노인이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g2LdWmNApdT 2019/07/16 22:46:00 ID : XxSMmK6nQts
"젠장, 이렇게 텅 빈 공간이라니. 이런 곳에 사고라도 당한다면 정말 참담할 심정일 거야. 그렇지 않나?" 노인이 중얼거렸고 에밋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밋은 천막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 몸을 뉘었다. 왼 주머니에 이질감이 느껴져 꺼낸 것은 악력으로 구부린 듯한 핸드폰이었다. 에밋은 앞좌석으로 돌아가려던 노인을 불렀다. "저기." "뭐지?" 노인이 돌아왔다. 에밋은 자신의 망가진 핸드폰을 들었다.
◆g2LdWmNApdT 2019/07/16 22:46:13 ID : XxSMmK6nQts
"제 핸드폰이 망가져서 말입니다. 급하게 전화할 데가 있는데, 혹시 선생님의 핸드폰 빌려도 되겠습니까?" "아, 내가 깜빡한 게 있었나." 노인이 트럭 끝을 두 손으로 잡아 몸을 굽혔다. 노인의 얼굴은 사뭇 진지하고 위압적이게 보였다. 에밋과 노인의 두 눈이 마주쳤다. "내가 자네에게 말하지 않은 게 있어." 노인은 뜸을 들였다.
◆g2LdWmNApdT 2019/07/16 22:46:23 ID : XxSMmK6nQts
"자네가 바쁜 건 잘 알겠어. 물론 견디기 어렵겠지. 어딘가로 빠르게 달려가던 중이었을 테니까. 그래서 불행히도 사고가 일어났겠지. 그런데 자네는 알아야 해. 주위를 보라고! 온통 허허벌판이야. 아무것도 없지! 사람이 지은 것은 가로등과 이 끝도 없는 이차선 뿐이야. 여기에서 내게 가장 좋은 점은, 자네가 이곳에서 사고를 당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는 거야." 노인은 허리춤 뒤쪽으로 왼손을 옮겼다. "자네는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아나?" "대체 무슨." "그건 바로." 노인이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대자 에밋이 숨을 죽였다. "자네가 핸드폰을 쓸 수 없다는 뜻이야."
◆g2LdWmNApdT 2019/07/17 22:58:11 ID : XxSMmK6nQts
-2- 에밋과 노인,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에밋은 노인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에밋의 당황한 표정에 노인이 웃음을 크게 터트렸다. 기다란 수염은 말려 올라간 입꼬리와 함께 들썩였고 반달처럼 휘어진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이따금 가는 숨이 실실 새어나왔다. 에밋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노인은 모자에 손을 올려 숨을 골랐다. 노인이 트럭 끄트머리에 몸을 걸쳤다. "염병할, 이거 너무 웃기는구만! 자네 자신이 어떻게 보였는지 알아?" 노인은 자신이 한 말투를 따라 하다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에밋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노인을 응시했다. 에밋의 짙은 눈썹은 더욱 진해졌다. 노인은 찔끔 배어 나온 눈물을 훔쳤다.
◆g2LdWmNApdT 2019/07/17 23:04:26 ID : XxSMmK6nQts
"이거 농담이었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면 사과하겠어." 노인은 에밋을 향해 왼손을 내밀었다. "나는 분명 자네의 사고에 큰 유감을 느끼고 있어. 소개가 늦었어. 내 이름은 윌리엄 뱃슨이야. 더 친했더라면 윌리라고 불러도 되는데, 일단 만난지 겨우 몇 시간도 채 안 됐으니 뱃슨 씨라고 불러." 뱃슨 씨의 농담으로 때문인지 에밋은 차마 손을 내밀지 못했다. 바짝 솟아오른 에밋의 경계 태세에 뱃슨 씨는 미안한 눈치로 손을 거둬들였다. "하지만 전부 거짓말을 한 건 아니야." 뱃슨 씨가 변명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여긴 아무것도 없어. 그 전화할 수 있는 기지국도 말이야. 이 모래 더미에서 뭘 더 바라?"
◆g2LdWmNApdT 2019/07/19 16:14:09 ID : XxSMmK6nQts
뱃슨 씨가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가 놓자 쨍한 햇볕이 모습을 드러냈다. 넓게 펼쳐진 황야를 본 에밋은 결국 이마에 손을 얹고 한숨을 뱉었다. 에밋은 노인이 있는 곳까지 기어나와 손을 내밀었다. "저는 에밋입니다. 아까 건 정말 제가 들어본 최악의 농담이었습니다." 노인은 에밋의 손을 꽉 잡았다. "만나서 반가워, 에밋! 앞으로 분발하도록 하지." 뱃슨 씨는 에밋의 손을 짧고 굵게 흔들며 눈웃음을 지었다.
◆g2LdWmNApdT 2019/07/19 17:03:53 ID : XxSMmK6nQts
에밋은 어느새 뱃슨 씨의 옆에 걸터앉았다. 뱃슨 씨는 수염에 흘린 물기를 닦아내느라 물통을 에밋에게 넘겼다. 에밋은 받은 물통의 뚜껑을 열어 몇 모금 마시고 바로 옆에 내려놓았다. 에밋은 칼같이 선명한 풍경에 품에 넣어두었던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하얗게 금이 간 선글라스는 그래도 제 기능을 하고 있었다. 에밋은 이차선 끝으로 눈을 옮겼다. "저희는 언제 출발하는 겁니까?" 에밋이 물었다. "자네가 다 준비됐다면."
◆g2LdWmNApdT 2019/07/19 21:53:19 ID : XxSMmK6nQts
"지금 바로 말입니까?" "그럼 그렇지." 둘은 땅바닥으로 동시에 내려왔다. 노인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에밋이 차에 탈 때쯤에 노인이 불러 세웠다. "아니, 아니. 운전석에서 발 치워, 에밋. 난 모래밭에서 구르기 싫다고."
◆g2LdWmNApdT 2019/07/25 10:29:48 ID : Zjth9jBAi06
에밋은 무척이나 아쉬운 표정으로 문을 닫았다. 트럭 안에서는 담배 냄새와 먹다 남은 초콜릿 바 냄새가 났다. 노인은 창문을 열 것이냐고 물었지만, 에밋의 눈에는 바깥의 열기가 더욱 끔찍해 보였다. 엔진의 떨림이 느껴지자 트럭은 빠르게 가속되었다. 도로 위의 표지판이 세인트 로스까지의 백 킬로미터를 표시했다. 에밋은 뒤에 뚫린 창으로 그의 자동차를 내다봤다. 벌써 빨갛고 작은 점이 된 저것이 바로 그의 자동차였다. 하지만 풍경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황무지가 노란색 바다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흔들림 하나 없는 잔잔한 대양에서, 이차선 도로는 아지랑이처럼 사라져 갔다.
◆g2LdWmNApdT 2019/07/25 10:30:34 ID : Zjth9jBAi06
세인트 로스의 전염병 첫 번째 에피소드 : 조난자 3일 전
◆g2LdWmNApdT 2019/07/27 21:35:45 ID : Zjth9jBAi06
일렬로 쪼개진 햇살이 어두운 방 안에 맺혔다. 공기는 미세한 곰팡이 포자로 가득하여 흐렸다. 벽에 눌어붙은 내장조각은 아직 끈적거렸고 그 위에는 포자 자루가 빽빽하게 피어올라 있었다. 콜린 수사관은 방독면을 뚫고 매캐한 포자 냄새와 비릿한 바다 냄새가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8시 21분 34초, 메인 거리 강도 미수 및 폭사 사건이 일어난 지 정확히 7시간이 지난 시각이었다. 그는 난생처음 보는 사건 현장에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그의 두 눈을 온통 메우는 것은 빨간 방과 방 한가운데를 나뒹구는, 잘려나간 하반신뿐이었다.
◆g2LdWmNApdT 2019/07/28 15:39:48 ID : Zjth9jBAi06
콜린 수사관은 멈춘 수사관들의 어깨를 뚫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그는 소독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로 다급하게 방역복을 벗어냈다. 얼굴은 식은땀으로 절어 있었다. 잔뜩 굳은 얼굴을 한 그는 밴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의 휴대폰은 장비칸 구석에 박혀 있었다. 콜린 수사관은 휴대폰을 밴에서 바로 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울리는 동안 그의 눈은 현장 건물을 불안하게 살폈다. 흐린 하늘, 붉은 벽돌의 건물은 숨 막힐 듯이 고요했고 창문 블라인드 사이로 새하얀 빛이 쉴 새 없이 지나갔다. 습하고 차가운 공기에 콜린 수사관의 숨이 턱 막혔다. 귀에 붙은 휴대폰은 떨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연결음이 멈추고 수신인이 받았다. 중년 여성의 목소리였다. 콜린 수사관은 현장에서 몸을 돌려 통화에 온전히 집중했다.
◆g2LdWmNApdT 2019/08/02 09:46:53 ID : Zjth9jBAi06
"네, 접니다." 콜린 수사관이 말했다. "지금 메인 거리에 있습니다. 그 일로 전화한 겁니다." 콜린은 한동안 통화를 계속했다. 그의 표정은 한층 진지하고 깊어 보였다. 심지어 아만다 경사가 등 뒤 가까이 온 것조차 몰랐다. 아만다는 케이스를 열면서 콜린 수사관을 힐끔 쳐다봤다. 먼저 말을 건 것은 아만다였다. "콜린 수사관님." 콜린이 뒤를 돌아보자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 아만다는 콜린 수사관의 눈이 매우 격앙되어 있다고 느꼈다. 콜린은 흔들리는 눈으로 아만다를 말없이 살피다가 아만다를 등지고 통화를 계속했다.
◆g2LdWmNApdT 2019/08/02 09:56:31 ID : Zjth9jBAi06
네, 알겠습니다. 오늘 그 시간에 만나뵙도록 하겠습니다." 콜린은 마침내 전화를 끊고 고개를 들었다. 한숨을 내뱉은 콜린은 비로소 아만다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아만다의 두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누구랑 통화하신 거예요?" "네가 몰라도 되는 일." 콜린이 휴대폰을 밴 안으로 무심하게 던졌다. "너는 왜 밖에 나와 있지?" "아, 카메라 하나가 작동을 안 해서요. 마이클 경위님이 여기에 여분 카메라가 있다고 하셔서 왔어요."
◆g2LdWmNApdT 2019/08/02 14:20:38 ID : Zjth9jBAi06
"카메라 찾았으면 빨리 돌아가 보기나 해." 콜린은 건조하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콜린은 사건 현장으로 돌아가는 아만다를 보면서 천천히 거리 중심으로 나왔다. 바지 주머니에서 꺼낸 담뱃갑에는 담배 한 개비밖에 없었다. 콜린은 담배를 꺼내 바로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한껏 들이마신 입에서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의 모든 얼굴을 가려버릴 정도로, 콜린은 다 태우지도 못한 꽁초를 바닥에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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