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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음 2019/10/29 20:58:25 ID : MmNs2raleGl
- 들어가며 -
이름없음 2019/10/29 20:58:43 ID : MmNs2raleGl
소설을 써 본 지 오래 되었습니다. 중학생 때 풋풋한 감성에 젖어 드라큘라나, 프랑켄슈타인이나, 아니면 공상적인 사랑 이야기를 타이핑해 곧잘 웹사이트에 올리곤 했는데, 지금은 아마 그런 감성이 사라졌나봐요. 이 글이 남들에게 읽힐지는 모르겠습니다. 소설도 뭣도 아닌 일기, 누군가에게 읽힌다면 에세이 쯤이 되겠지만요. 내가 이 글들을 당당히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진다면, 아마 당신이 이 글을 보고 있을 거예요. 물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일단 써 볼 거예요. 쓰다가, 내 말이 아닌 것들과, 같잖은 현학적인 단어들이 저도 모르게 울컥울컥 치솟는다면 그만 두겠습니다. 온전히 내 이야기면 좋겠어요. 수시 원서 6개를 다 쓰고 남는 시간을 허송세월 보내듯 하기보다는,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길 바라거든요. 그럼 조금 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기소개서를 봐 주시던 사회문화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갑자기 생각났어요. 글이 너무 감성적이라고. 맞는 말입니다. 내가 동화책 모방과 필사를 시작한 여섯 살, 제대로 된 글을 쓰기 시작했던 열한 살부터 난 부족한 실력을 감추기 위해 감성에 호소했거든요. 어디서 본 표현들을 주워들곤 젠체하는 수준이었죠. 이 글을 어떻게 전개해야만 좋을까요. 그냥 그 날 있던 일을 짧게 나열하는 것도 고민해 보았는데, 그러기엔 제 일상들이 너무나 지루하고 고루해서요. 기록하고 싶을 일이 있을 때마다 이 페이지를 펴 보면 어떨까 해요. 내 가장 소중한 독자인 내가, 열아홉의 미숙한 나를 웃으며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름없음 2019/10/29 20:59:01 ID : MmNs2raleGl
#1. 창작
이름없음 2019/10/29 20:59:16 ID : MmNs2raleGl
교실 뒷자리 Y에게 종종 그런 말을 합니다. 공부하지 않으니, 우울하다’ 라고요. 제가 타고난 모범생이라거나 그래서가 아닙니다. 아마 지금쯤 제 또래 학생들이라면 전부 공감할 이야기일 거예요. 학생부종합전형을 3년간 준비해온 저로서는 달리게 만드는 연료, 뭐 그런 게 사라진 셈이거든요. 자기소개서와 생활기록부는 단어 하나하나 뒤져본지 오래고, 모의면접은 이제 자기소개쯤은 자다가도 욀 정도가 되었습니다. 7시간을 아무 짓 않고 앉아있기란 여간 고역이 아니더라구요. 그러다보니 자연히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 생각, 생각.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 생각이라는 게 우울과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당장 6개 수시 원서 어딜 붙고 떨어지나의 문제, 차후 미래의 문제, 나의 비밀스런 모습에 관한 것, 아니면 내 인간관계와 사회성에 관한 문제들. 내가 면접대비용으로 읽고 있는 수많은 책들의 저자는 그렇게나 멋진 사람들인데, 왜 나는 그렇게 될 수 없는지에 대한 안타까움 정도요. 6개 원서를 죄다 사회학과를 썼습니다. 사회에 특별히 관심이 있다거나, 뭐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엄청난 꿈을 꾸고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그냥 ‘할 수 있는 게 많아 보였기’ 때문이죠. 사실 요즘 TV에 등장하는 뭇 정치인들, 광화문을 타고 흘러가는 물결들에도 전혀 관심이 가거나 가슴이 뛰지는 않아요. 대충 주워들은 걸로 아는 척 할 뿐이지. 문젠 그 아는 척을 하고 싶어 사회학과에 간다는 거지만. 그냥저냥, 생각의 물결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나에게로 도달해요. 그리고 고민하죠. ‘뭘 할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사실 되게 잔인한 질문이에요.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미래에 될 사람을 고민하라니요. 입시용으로 적어놓은 꿈이 정말 내 바람인지도 모르겠어요. 3년간 그 꿈을 꾼다 이야기하다보니 내 꿈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해요. 사실요, 나는 나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심리학과나 철학과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 곳에 가면 내 어린 시절의 기이한 행동들, 그리고 그 못지않게 이상한 지금의 나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그 답을 찾기 위해 몇 년을 분투하다보면, 지금보다도 더 깊이 파고들어가버릴 것 같아 무섭더군요. 어디냐구요? 글쎄요, 저 밑 땅 구덩이 어디쯤이요. 내 본질을 찾고 싶긴 하지만, 외로운 건 싫습니다. 미래의 난 뭐든 되어 있을 거란 잔인한 기대는 하지 않으려 합니다. 초등학생 때, 할머니에게 실컷 얻어맞고 책상 밑에 쪼그려 앉아 울던 나에게 너무 미안해서요. 그 때의 나도 그랬거든요. 동화 속 공주들처럼, 현재의 고통은 시간이 다 해결해줄거라 믿었어요. 아니, 시간이 흐른 내가요. 인터넷 소설들의 고등학생은 죄다 성숙했고, 사랑에 있어 당당했고... 그랬으니까, 나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죠. 근데 아니더라구요. 머리가 굵어질수록 고민에, 고민에. 꼬리를 물어요. 나는 이제 곧 내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할 나이가 다가오고. 지금 꼴을 보아하면, 그 때도 뭐가 되어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차라리 엄마의 말처럼, 적성에도 맞고 안정적인 사범대를 썼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혹시 열아홉의 나를 바라보고 있는 당신이 지금의 날 원망하고 있진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교사 못지않게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다며, 그를 위해서는 최소한 내 주변을 둘러싼 무엇무엇에 대해 알아야 한다며 패기롭게 대학 원서들을 썼는데. 벌써 후회되는 듯하기도 하고요. 그 가치 있는 일을 찾을만큼 내가 삶에 대한 열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얼굴이 빼어나게 예쁘지도 않아요. 거울을 볼 때마다 뒷자리 Y와 ‘뭐 인간이 이렇게 생겼냐’ 며, 서로를 ‘제인 구달’, ‘롤랜드 고릴라’ 라 부르며 낄낄대거든요. 공부도 그닥이죠. 그럭저럭 주어진 걸 하는 수준이에요. 그렇다고 몸을 잘 쓰지도 않아요. 50M 10초 끊는 정도면 말 다 했죠. 생활력이 좋지도 않습니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혀본 애가 저일 걸요. 그리던 그림도, 쓰던 글도 다 그만둔지 오래에요. 쉬는 시간만 되면 재잘대는 아이들처럼, 말재간이 뛰어나지도 않고요. 내 깜깜한 미래의 지평선을 더듬거리며 가다보니, 내가 경멸하는 종자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게 되더군요. ‘답은 취집이다’. 아직 1차 결과도 나오지 않은 공립대를 가게 되어 벌게 될 장학금으로 결혼자금을 준비하는 상상까지 해 봤어요. 물론, 내 옆에 있을 사람이 누군진 모르겠지만요. 농담입니다. 아직 그런 미래를 꿈꾸기엔 너무 어린 감이 있죠. 사회학과를 가서 교육대학원을 나올까 싶기도 했지만, 차라리 재수를 하는 편이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반 풍경을 보면 교사도 절대 만만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거미줄 국수 삶은 듯 축 늘어진 아이들과, 아무도 듣지 않는 수업을 하기란 여간 고역이 아니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어쨌든 결론은 창작이더랍니다. 나는 나에 대해 고민을 해야만 하고, 이런 나를 끊임없이 남에게 보여줘야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한민국에 널리고 널린 XX에 조금 특이한 성적 지향성을 가진 생물로서, 지구에 기여할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상주의자인 정자와 현실주의자인 난자의 합작품이 나인지라, 아직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살아보려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어느 곳에 있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겠죠. 작곡도 배워보고 싶어요.
이름없음 2019/10/29 20:59:28 ID : MmNs2raleGl
재미없나요? 뭐라 끝내는 게 좋을까요?
이름없음 2019/10/29 21:10:17 ID : MmNs2raleGl
#2. The origin of love
이름없음 2019/10/29 21:10:34 ID : MmNs2raleGl
우와, 글 엄청 잘 써지네요. 누군가에게 당장 보여주지 않을 글을 쓴다는 건 이렇게 재미있는 일인가봐요. 초고고 퇴고고 뭐고, 술술 써져요. 신이 나서 20만원짜리 헤드폰을 끼고 최근 플레이 리스트를 틀었는데, 헤드윅의 ‘The origin of love' 가 나오고 있어요. 맘에 들어요. 얼마 전에 교실 노트북으로 Y와 본 영화인데... Y는 별 관심이 없더라구요. 가사가 참 좋아요. 플라톤의 ‘향연’ 이라는 글에서 따 온 사랑의 기원 이야기인데... 그 뭐냐, 사람이 원랜 하나의 존재였는데... 신의 분노를 사서 두 개로 갈라졌고, 자신의 반쪽을 평생 찾아다닌다는 이야기에요. 로맨틱하죠. 세 종류 사람이 있는데, 두 소년이 하나 붙은 건 해님의 아이, 두 소녀가 붙은 건 땅의 아이, 그리고 소년 소녀가 붙은 건 달님의 아이... 뭐 이 정도였을 거예요. 플라톤이 살던 시기에나 자랑거리였던 이야기겠죠. 조금 억울한 건, 난 저 세 종류 사람 중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제 반쪽은 누구일지 아직도 궁금하네요. 해님의 아이들과 땅님의 아이들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그리고 어쩌면 달님의 아이들도. 그냥 아이들을 사랑하는 건요. 어쩌면 플라톤이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 노래는 내게 심심한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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