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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음 2019/12/19 22:30:07 ID : 7Aqlu2rhumt
교수몰래 글을 던지자 시험끝난기념으로 하루에 하나씩 잡다한거쓰는스레 매일매일 쓰는게 목표(스레주특:목표못지킴) 피드백비평난입 아무거나ㅇㅋ
12/20 2019/12/20 12:22:16 ID : 7Aqlu2rhumt
도둑들이 사랑하는 것은 보통 기가 빨리는 것들이다. 깨지기 쉽고 충격에 예민하며 한번 놓치면 되돌리지 못하는 물건들. 손에 넣자마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까탈스러운 놈들. 도둑들이 아끼는 친구들은 일평생 그런 족속들이다. 얻기 어려우나 지키기는 더 어려운, 오랫동안 판에서 굴러먹던 인간이라면 자연스레 취득하게 되는 정보였다. 한눈이라도 팔면 뺏기기는 양반이고 망가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M은 아이가 생겼다는 말을 들은 날 담배 한 갑을 비웠다. 드물게 말리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는데, 짐작가는 것이 있는지 더 이상의 강제는 없었다. 술도 아니고 왜 담배였을까는 M조차도 몰랐다. 무의식의 요구라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그래놓고 M은 P가 담배 대신 술병이라도 까려는 걸 제지했다. "아냐, 그러지 마." P가 당황해서 M을 보면, "아냐, 그러지 마. 싫은 게 아냐...싫은 게..." M은 P에게 당부했다. "조심해. 뭐든." P가 갸우뚱하다 웃었다. "천하의 M이 무서운 게 있을 줄은 몰랐네." "난 많은 걸 경계하지." 당신도 알다시피. P를 닮은 딸이건 아들이건, 어떤 존재가 그 안에 들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찬 일이었다. 뱃속 애가 형태를 갖추기 전에도 M은 납작한 배를 볼 적마다 기묘한 충족감에 빠지곤 했다. 그가 깊이 있는 임신에 대한 지식을 가진 건 아니었으나, 인생 여건상, 어디선가 3개월이 지나야 겨우 태아의 심장이 뛴다는 얘길 주워들은 바 있었다. M은 3개월을 손꼽아 기다렸다. 배에 손을 올렸을 때 심장 소리를 듣게 될까 해서였다. M이 이 말을 했을 때 P는 웃었다. 즐거워 뵈었다. 하기사 답지 않게 어린애다운 발상이었다. M은 어머니에 대해 많은 걸 알지는 못했다. 아버지가 죽은 뒤로는 더더욱 정보를 캐기가 힘들어졌다. 아주 알고 싶지도 않았다. 때로는 그리운 채로 남겨둬야 아름다운 것들이 있는 법이다. 어렴풋이 느껴지던 목소리나 분위기만으로 어머니는 환상의 행복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라면 어머니는 일종의 트라우마였을 것도 같다. 어째서냐 하면, 도둑들이 아끼는 것은 연약하고 여린 것, 자그마한 충격에도 폭삭 주저앉고 마는 것들이라. 작은 소리에도 심장이 떨어지고 얇은 금에도 식겁을 하거니와, 도둑치고 산산조각난 것을 보고 트라우마가 안 생길 놈이 없었다. P가 진찰을 받으러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M은 집에 혼자 있을 때만 담배를 피웠다. 처음 소식을 들었던 날 그는 무심결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올렸던 것이다. 홀로 집에 있으면 M은 자기 아이가 어머니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을 상정했다. 솔직하게, 무서웠다. /도둑들 봤다 개꿀잼 옛날에 본뒤로 몇년만인가?? 넘 어렸을때라 그렇지 마카팹시도 약간 인생컾 중에 하나였던듯...아 화난다 너무 늦엇서
12/21 2019/12/21 10:30:35 ID : 7Aqlu2rhumt
세상에는 작은 기적들이 수없이 많다. 그것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피어나고는 한다. 좋아하는 반찬이 저녁으로 나오거나, 완벽하게 어울리는 옷을 찾거나, 혹은 사랑에 빠지거나. 내가 모든 열정을 쏟을 수 있게끔 그 자리에 있어 주는 무언가를 갖는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나의 전진을 촉진시킨다. 그것에 닿기 위해 뻗는 손끝에서 또다른 기적들이 차례차례 눈을 뜨고.
12/22 2019/12/22 12:15:02 ID : zdRzSJWo3SN
작품에 작가의 생각이 추가되는 일은 불가항력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주장하고 설득한다. 작품에는 반드시 작가의 편견과 색깔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작품에서 작가의 편향성이 묻어나온다는 비판은 옳지 않다. 편향 없는 저작은 존재하지 못한다. 대신에, 감상자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작품의 주장이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견해가 감상자의 견해와 다르다면 얼마든지 작품을 반박할 수 있다. 달리 말해 작가 역시도 자신의 작품에 수반되는 비판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작은 의사소통의 한 방식이다. 구두로의 의사소통과 마찬가지로 저자는 스스로의 발언-작품-에 책임을 져야만 한다.
12/23 2019/12/23 14:28:27 ID : 7Aqlu2rhumt
온종일 정신없이 바쁘다가도, 눈을 감고 있으면 이상하게 노래가 울렸다, 틈만 나면 니가 생각나 언제부터 내 안에 살았니, 일단은 좋아해가 아니라고 단정지어 보았다, 참 많이 웃게 돼 너 때문에 나, 인정하면 걷잡을 수 없어지지 않을까 해서. 친구들 속에 너와 함께일 때면, 오래 가지는 않았다, 조심스레 행복해지고, 감정을 부정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어쩌다가 니 옆에 앉으면, 앞자리에 찾아와서 앉아도 되냐고 물었을 때 어색하게 웃어버리고 말았을 때부터는 인정해야 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인 걸! 여전히 짝사랑이라는 낱말을 붙이지는 못했다. 그건 지금의 마음보다도 좀 더 무겁고 무서운 말이라서다. 자꾸 눈이 가는 정도로 해 두자, 관심이 있다는 정도로 해 두자, 아주 사랑하지는 않는 것으로 나는 합의했다. 어차피 깊게 아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제대로 다가서지도 말 붙이지도 못하는 소심함에겐 이만큼의 표현이 딱 어울린다. 방학이다. 몇 개월 뒤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다못해 재회조차 운에 맡겨야만 한다. 직접 말을 걸어보면 또 달라질지 모르지만, 내 이름을 알고 있을지도 불확실한 사람에게 카톡이란 때아닌 물벼락이나 마찬가지다. 난 너를 잘 몰라, 말도 고작 몇 번 섞어봤지. 그래서 더 알고 싶은 너에 대한 것들. 평범하게 운을 떼볼까 해도 영 모르겠는 타이밍들. 시험은 잘 봤니?
12/24 2019/12/24 12:41:40 ID : 7Aqlu2rhumt
거기에 당신의 손이 있었다 외로운 밤이면 꿈을 꾸었다. 손을 잡는 꿈이었다. 허공에 손을 뻗어 맺혀있던 잔상을 만졌다. 어이없이 부드러우면서도 손가락 끝에 달린 굳은살, 나는 눈을 감고도 당신을 구분할 줄 알았다. 단단한 것이 손끝에 있으면 당신임을 직감했다. 손을 잡으면 당신은 웃었다. 그러면 깼다. 웃음이 기폭제였다. 마지막의 당신은 나를 보고 웃지 않았으므로. 깨어나면 내 손은 공중을 떠다니고 있었다. 새벽마다 작은 절망을 겪었다. 배신은 숱하게 겪어왔는데 하필 당신이었다, 하필 당신이라서, 사실 외롭지 않은 날은 없었다. 나는 마음 한켠에 머물던 추억, 저릿하게 맴도는 회한, 등을 기어오르는 증오, 사무치는 고독과, 담배와도 같은 버리지 못하는 도리없는 사랑에 손을 뻗어야만 했다. 매번 확인당하고 말았다. 나의 상처가 당신을 도려내지 못했다는 것을.
12/25 2019/12/25 15:51:45 ID : 641DwIJTWry
크리스마스는 Christ와 mas의 합성어다. Christ는 탄생한 그리스도로 이것은 일반인이라도 충분히 유추해낼 만한 사실이다. 문제는 mas다. 이 단어는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제법 있는데 상당한 고어라서다. mas는 고대 영어로 예배, 미사를 일컫는다. 이렇듯 크리스마스란 그 이름부터 종교색이 대단히 짙은 단어다. 고유명사로 자리잡은 지금에야 많은 나라들에서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지만, 단어의 기원이 되는 영어를 쓰는 미국에서는 단어의 종교색을 이유로 대체어를 내세우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이 즈음을 그냥 휴일 기간 Holiday Season 이라고 칭한다. 특정 단어를 종교적인 이유로 기피하는 것이 정답일까? 정치적 올바름은 분명 없어선 안 될 것이지만, 적절한 때나 상황이 있는 법이다. 강렬히 필요하게 될 때가 있는 반면 그다지 요구되지 않는 상황 역시도 존재한다. 크리스마스의 경우는 후자 같다. 고유명사가 일반명사처럼 쓰이는 경우에는 십중팔구 타당한 맥락이 따른다. 우리가 쓰는 단어에는 사회적인 맥락이 있다. 석가탄신일을 다른 단어로 대체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종교색을 띤 고유명사, 일반화된 명사를 그대로 놓아두는 것을 오히려 다양한 종교와 가치를 존중하는 민주적인 처사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의문과 견해는 모두 다르지만, 우리가 공식과는 상관없이 크리스마스를 여전히 크리스마스로 부를 거라는 점은 사실인 듯싶다.
12/26 2019/12/27 00:08:30 ID : 7Aqlu2rhumt
암만 일찍 자고 일어나도 죽도록 졸리는 날이 있다. 밤을 새도 이상하게 기운찬 날도 있다. 내 경우에 오늘은 전자였다. 하루종일 잠만 자고 살 순 없나 싶다가도, 실질적인 취침량을 계산해 보면 가설과 마땅히 다를 바가 없어서 곤혹스럽곤 했다.
12/27 2019/12/27 20:08:52 ID : zdRzSJWo3SN
무거운 외로움은 무디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가 갑작스레 혼자가 되면 무섭지만, 그 정도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을 제외한 수많은 관계가 주변에 수두룩하면 불안하지만, 그런 외로움은 가볍다. 식당에서 혼자 밥 먹기는 날선 외로움이기에 무겁지 않다. 가시처럼 날카롭게 마음을 찔러와서 혼자 찔리고 말지언정 인간을 죽음처럼 짓누르지는 않는다. 무거운 외로움은 이따금 집에서 찾아온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장소, 사회로부터 동떨어진 공간.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편안하고 행복할 때이기에 외로움이 아프지 않다. 외로움인지도 모르고 지나칠 만큼. 인간은 말을 해야만 살아가는 생물이지만, 의무로부터 단절되는 곳에서는, 스스로가 생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다. 무거운 외로움은 느끼지 못하는 외로움이다. 외로우려니 하고 넘어가고 마는 외로움이다. 외로움이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은 불편하지 않다. 사람은 외로움을 잊지 않는다. 외로움에 적응할 뿐이다.
12/28 2019/12/28 19:53:22 ID : 7Aqlu2rhumt
시험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 심란했다. 바라는 길에 가지 못한다면 끔찍하게 비참할 것 같았다. 원하는 일의 성취가 노력이 아니라 능력의 영역에 있다면 꼼짝없이 무너지고 말 것 같았다. 나는 내 한계를 낮추기 싫은데 삶은 계속 사람을 살아가게 한다. 인생은 결국 내 눈을 낮추고 다른 일을 부여할 것이다. 이전보다 낮은 일, 덜한 일, 그러나 나는 그때에야 생각한다, 그러면 뭐 어떻단 말인가? 삶을 지속하기로 선택한 인간에게 운명은 가혹해야만 한다. 살아나가겠다는 결정은 수많은 문제들에게 내던지는 선전포고다. 죽은 사람에게 시련은 없고 삶의 바다에 평화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겠다고 결정하고 앞으로 발을 내딛는 이유는, 모두가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삶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가 거슬리건, 현실이 어떠하건, 미래가 좌절되건 우리는 삶을 꿈꾼다. 말라버린 꽃보다야 숨쉬는 풀이 아름다움을 알기에. 나는 시험 성적이 좋든 좋지 않든 또다른 고민을 만들고 품을 것이다. 살아가는 한은.
12/29 2019/12/29 23:29:44 ID : 7Aqlu2rhumt
건강했으면 좋겠는데. 바라는 건 그뿐이다.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이 좋아. 기억하고 있음을 기억해줘. 여전히 나의 소중한 비밀, 사랑을 말하게 하는 힘.
이름없음 2019/12/31 01:19:01 ID : 7Aqlu2rhumt
12월 30일 갱신..생존신고...오늘은 책을 샀다...너무 돈이 많이 들었다...학점 올리는 데 실패했다... 내일 두개 씀 ㅂㅂ 와야지 와야지 했는데 생각이 안났네 대신 노래방 다녀왔음 인투디ㅜ언논~~~~##
대신예전에썼던거하나투척 2019/12/31 01:21:19 ID : 7Aqlu2rhumt
너에게 주고 싶었어 많은 것을 너에게 주고 싶었던 많은 것들 너에게 주지 못했던 많은 것들은 물거품처럼, 비누 거품처럼 너에게 받기만 했어 많은 것을 너에게 받기만 했던 많은 것들 너에게 받아온 모든 것들이 물처럼, 아득히, 무거워 /불현듯 떠올랐던 작사라 곡도 있음 부를순없지만 사실 부를수있지만 쪽팔려서 올릴순없서!~!~ 작사도 재미있는데 항상 라임을 고민하게됨 시도 못쓰는데... 그리고 노래 한곡 다 작사작곡하는건 너무 어려움 ㅎㅎ 언제나 맴도는건 후렴뿐이고 비슷비슷함 자가표절하는 음악가들에게 십분 공감 아 오늘 쓸거 생각났다 맴돌던 가사 기록하고가야지 내일은 한개만쓴다 12/31 우리의 삶은 고통의 연속 얻어맞고 쓰러지더라도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나 목숨걸고 꿈꾸는 게 일 우리의 삶은 기적의 연속 숨죽이고 잠들었더라도 밤이 지나면 다시 살아나 새 숨으로 눈뜨는 매일
12/31 2019/12/31 19:56:48 ID : 4ZeK40leIE8
새벽이 지나기 전에 길게 난 창을 열어, 어슴푸레한 공기를 한가득 들여보내 주십시오. 위에서 내려온 지시사항입니다. 올해의 마지막 밤이기 때문에 늦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방이 온통 청람색 연기로 차 있어야 합니다. 나는 불만을 표시했다.오늘 밤은 대단히 추운 밤이어서 지시를 곧이곧대로 따르기에 무리가 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는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새벽녘을 닮은 정적이었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방으로 찾아가실 겁니다. 사람이 더 늘어나면 추위를 느끼지 읺으실 수 있을 겁니다.
1/1 2020/01/01 20:25:38 ID : 4ZeK40leIE8
뉴스는 명명을 즐긴다. 밀레니엄, 새로운 세대, 이제껏 없었던, 훌륭한 수식어들과 함께. 세대는 정말로 새로워질 수 있는가? 새로운 세대란 있는가? 매시대 주목받는 가치는 바뀐다. 사람들의 요구사항도 바뀐다. 특정 세대는 언제나 이전에는 없었던 듯이 보이지만, 그들이 가진 성향이 실제로 과거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간은 개혁을 수반한다. 젊음은 그들 자신의 꿈을 갖고 등장한다.
1/2 2020/01/02 21:45:20 ID : 7Aqlu2rhumt
서민 주택가는 고요했다. 옆집도 뒷집도 비어 있었다. 중심부에는 커다란 대저택이 있었다. 마을 유지 집안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마을 가족들은 경관이 좋은 외곽 지역에 살았다. 값싼 집들은 모호한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집주인은 동네에 새로 전입한 신혼부부들이나 갓 독립한 청년들이었다. 양자 모두 마을의 기존 관계들과는 동떨어져 있는 외딴섬들이다. 아이린의 경우는 전자였다. 남편은 살림살이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는 생물을 전공하는 동안 로봇과 결합된 생물체를 창조해보겠다는 꿈을 꾸었다. 아이린은 그 말을 듣고 역겨운 표정을 지었지만, 에릭은 환한 웃음으로 응수했다. 이 마을에는 로봇 물고기라는 생물이 있다나. 아이린은 진위 여부를 직접 검증하기 전까지 소문을 쉬이 믿지 않았다. 언젠가 에릭이 정말로 로봇 물고기를 잡아온다면 믿어주겠다고 선언하자, 에릭은 반드시 아이린에게 로봇 물고기 스시롤을 만들어 바치겠다고 장담했다. 에릭이 꿈을 좇아 연구소에 입사했을 때, 아이린도 마찬가지로 꿈을 좇아 직장에 들어갔다. 어릴 적부터 주변에서는 아이린더러 최고의 지도자가 되라고 추천해 왔다. 아이린은 스스로를 잘 알았다. 그는 기꺼이 권유를 받아들였다. 정치계는 만만한 곳은 아니지만 공략이 불가능한 곳도 아니다. 특히나 아이린과 같은 성향의 인물들이라면 간단히 적응할 수 있다. 인맥은 정치의 필수요소다. 상관과 동료는 물론이거니와 웬만한 사람들이란 사람들은 죄다 만나고 다녀야 한다는 얘기다. 훌륭한 인맥 형성을 돕는 카리스마를 타고난 정치형 인간들이 존재한다. 아이린이 바로 그런 위인이었다. 그는 주말마다 도서관에서, 길거리에서, 공원에서 친구를 찾았다. 멀리 떨어진 집들을 순회했다. 남편의 직장 동료와도 인사했다. 막간마다 생겨나는 딜레마에도 훌륭히 대처했다. 직급은 서서히 상승했다. 에릭도 순탄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비록 날마다 정원에서 잡초를 뽑느라 아직 로봇 물고기를 찾지는 못했지만. 휴일에 둘은 이따금 해변에 놀러갔으나, 말마따나 신나게 노느라 에릭은 낚시는커녕 어류 분포 조사도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일에 바쁜 커리어우먼에게 임신은 보통 장애가 되고는 하지만, 아이린에게는 기쁨이었다. 당장은 그랬다. 앞으로 펼쳐질 고난들은 꿈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들었으나, 에릭은 이미 아이의 이름을 짓고 있었다. 침대머리에서 에릭이 읊는 아이 이름들을 들으면 악몽은 기대의 너머로 사라졌다. 사랑스러운 이름들은 상상의 방향을 손쉽게 바꿔주었다. 에릭은 남자 이름보다 여자 이름을 더 많이 불렀다. 누구라도 알아챌 허술한 의도에 아이린은 사나운 꿈을 잊어버릴 만큼 커다랗게 웃었다. 아이린은 휴가 동안 집에서 에릭을 기다리지만은 않았다. 이웃집들을 방문하고 친목을 다지거나, 임신 출산과 관련된 책을 쇼핑하거나, 도서관 나들이를 가거나, 데이 스파에서 관리를 받았다. 작은 호강을 즐기다가 집에 돌아와 보면 에릭은 정원일을 하고 있었다. 퇴근하자마자 정원에 들러붙어 있는 셈이었다. 에릭은 순조로운 승진을 위해 원예 고수가 될 필요가 있었는데, 덕분에 집안 냉장고에는 각종 과채류가 끊이지 않았다.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휴가비를 제외하면 당분간의 생계는 온전히 에릭만의 책임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아이린은 에릭에게 로봇 물고기 탐색 경과에 대해 묻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고도 에릭이 아이에게 말을 걸거나 육아서적을 읽느라 바빴던 까닭이다. 아기는 남편의 소망대로 딸이었다. 작명을 전부 검토한 결과 위트니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에릭은 시원한 어감을, 아이린은 서정적인 기원을 마음에 들어했다. 눈이 시릴 만큼 새하얀 해변을 연상시키는 예쁜 이름은 딸아기의 희미한 백금발과 잘 어울렸다. 격세유전이었다. 에릭은 자기 어머니의 백금발이 얼마나 많은 칭송을 받았는가 자랑하며, 장래 딸의 외모가 놀랍도록 아름다우리라고 예지했다. 아이린은 성정답게 에릭의 짐작을 믿지는 않았다. 대신 그의 예지에 자신의 축복을 보탰다. 아기와 함께하는 생활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즐거웠지만 짧았던 출산휴가가 끝나고 아이린은 다시 출근해야만 했다. 위트니는 이제 겨우 기어다녔다. 깜빡 잊고 있던 어느 날 아침, 세상 모르고 자던 아이린을 에릭이 깨웠다. 밖에 통근차가 와 있었다. 아이린은 애를 요람에서 꺼내주지도 못한 채 허겁지겁 집을 나섰다. 서둘러 부른 일일 보모는 아이린이 집에 돌아오자 퇴근했다. 아이린은 보모를 배웅하고 방에 들어섰다. 불이 꺼져 있었다. 위트니는 혼자 아기침대에 누워 놀고 있었다. 애초에 일을 그만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직장에 꿈이 있었다. 부부는 보모를 알아보러 다니다가 좋은 방법을 발견했다. 출퇴근 형식이 아니라 동거인 형태로 집에 들이는 방법이었다. 한 사람 한 표가 아쉬운 아이린의 직업상 특성은 숙식을 해결해줘야 한다는 애로사항을 상쇄했다. 뭣보다 아이린은 휴가가 끝난 첫 출근날에 본 광경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 뒤 카렌 케인이 집에 들어왔다. 젊은 아가씨는 육아에 소질이 있고 아이를 좋아해서 전문 보모가 되고 싶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했다고 순박하게 웃는 모습에 아이린은 덥석 아기를 안겼다. 이상하게도 그러게 되었다. 에릭은 그날 밤에 그렇게나 빠르게 애를 들려줄 줄 몰랐다고 의아해했다. 아이린은 카렌이 했던 말을 그대로 들려줬다. 다른 집 애기들은요 제가 잘못할까봐 사실 좀 무서운데요, 그래도 보모가 하고 싶은 건 다른 분들도 똑같이 무섭게 느낄 거 같아서예요 사람이 늘면 늘수록 무서운 게 줄잖아요. 에릭은 즉각 아이린에게 급료 인상을 건의했지만, 첫날도 안 되어 급료 인상이라니 비현실적이라며 기각당했다. 카렌은 위트니를 잘 돌봤고 남는 시간에는 집안일도 했다. 카렌이 만든 스파게티를 처음 먹어본 날, 그는 아기가 혼자 잘 노는데 집에 가만히 앉아있기 뭐해서 그랬다고 수줍게 말했다. 카렌은 요리를 아주 잘하는 건 아니었으나 재능이 있는지 갈수록 늘었다. 에릭은 카렌이 재료 걱정 없이 요리에만 전념하도록 하려고 작물을 보다 열심히 길렀다. 아이린은 카렌의 수당을 올려주었다. 급료 인상을 전한 지 얼마 안 되어 2차 인상이 필요해졌다. 둘째였다. 둘째를 임신한 동안 아이린은 위트니와 사이좋게 지냈다. 카렌은 뭐든 도와드리겠다고 말했지만 아이린은 부러 카렌을 건드리지 않았다. 이런 여유가 있을 일은 앞으로 더 드물어질 터였다. 과연 아이린의 휴가가 끝나면서 카렌의 자유도 끝났다.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배가 되었지만 돌봐야 할 아이도 배가 되었다. 카렌이 여자아이 둘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동안, 에릭은 생물과 로봇을 한꺼번에 상대했고, 아이린은 당내 정적과 당외 정적을 한꺼번에 상대하며 선거를 준비했다. 위트니의 초등학교 입학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위트니는 공부를 곧잘 했다. 에릭과 아이린은 서로 자기 공이라고 우기다가, 앨리스와 노는 카렌을 보곤 카렌에게 영광을 돌리기로 합의했다. 이윽고 위트니의 진로를 놓고 2차전이 치뤄졌다. 카렌의 의견에 따르면 위트니는 수셈도 빨랐고 자연 탐험도 좋아했다. 에릭은 그걸 듣고 위트니를 과학자로 기르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작문도 좋아하는데다 성적 자체만 보면 언어에 뛰어났기 때문에 아이린은 위트니가 정치의 길을 가길 원했다. 기실 위트니가 제일 좋아하는 건 어느 쪽도 아니고, 술래잡기 놀이였다. 숙제가 끝나면 위트니는 무조건 술래잡기 모드로 들어갔다. 누구도 방심하지 못했지만, 주된 희생양은 역시나 아버지였다. 에릭은 두 딸들, 정확히는 두 딸과 놀아줄 자신과 아내와 보모를 위해 이동식 신체 기력 배터리를 연구해 보리라 다짐했다. 아이린은 뭔가 더 할 일이 있지 않냐고 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제 자신도 기억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을지도 몰라, 아이린은 지친 남편의 이마에 웃으며 입을 맞추고 말았다. 둘째 딸의 성적도 좋긴 했지만, 앨리스가 두각을 드러내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앨리스가 그린 그림은 식구들뿐 아니라 담임 선생님, 심지어 친구들에게까지 사랑을 받았다. 아이린은 앨리스에게 이젤을 사주었다. 생일 선물처럼 건네진 이젤은 앨리스의 가장 친한 벗으로 기능했다. 앨리스는 버릇처럼 자기가 그림을 그리면 위트니가 글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위트니는 앨리스가 같이 술래잡기를 해준다면 그러마고 약속했다. 예술적 재능이 어디에서 왔는지 집안 어른들끼리는 그 영문을 몰랐지만, 유일하게 카렌이 유아 시절 읽은 그림책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그럴듯한 가설을 내놓았다. 이젤에서는 갈수록 좋은 그림들이 나왔다. 아이린의 둘째 공주님은 동네 유명인사로 자리매김해 갔다. 그리고 선거가 다가왔다. 집에서는 선거 자금 파티가 열렸다. 카렌은 뷔페 테이블을 사고 음식을 내놓았다. 아이린은 딸들의 요청으로 피자를 주문했다. 파티 풍선으로 장식한 집에 손님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친한 이웃들, 친구들, 지인들이 너나할것 없이 파티에 찾아와 수다를 떨어댔다. 평범한 잡담부터 흉흉한 소문까지 다채로운 발언들이 자유로이 날아다녔다. 딸들은 어른들과 몇 번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시한지 드레스 차림으로 술래잡기를 시작했다. 집안이 말으로 꽉 차 터질락 말락할 때가 되어서야 파티는 끝났다. 손님들은 맑은 얼굴로 돌아갔다. 아이린에게 건네는 덕담들은 일률적으로 파티에 대한 찬사를 담고 있었다. 아이린은 이제 그 말들이 진심인지 교묘한 비아냥인지 간단히 구분해낼 만큼 잔뼈가 굵어져 있었다. 파티가 끝난 뒤 식구들은 집안을 정리하고 자금을 정산했다. 별안간, 계산을 끝낸 에릭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이내 커다랗게 소리를 지르며 거실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경기를 이긴 운동선수마냥 거실을 내달리는 아빠를 본 딸들이 역할놀이를 하는 줄 알고 달려들었다. 카렌이 장부를 건네며 환하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여보, 아이린! 목표치 초과 달성이야! 에릭이 신나게 말하자 딸들은 뭔지도 모르고 같이 신이 나서 박수를 쳐댔다. 그해 선거는 아이린의 독무대였다. 아이린은 넉넉한 자금을 바탕으로 여유있게 지역대표 자리를 꿰찼다. 자금은 선거 때마다 꾸준히 필요했지만, 성공적인 모금 파티 유경험자에게 자금 모금은 식은 죽 먹기였다. 아이린은 굳이 파티 없이 미팅만으로도 자금을 조달받을 수 있었다. 승진은 꾸준히 이루어졌다. 집에는 좋은 컴퓨터, 훨씬 푹신한 소파, 비디오 게임기, 야구공이 생겼다. 아이린은 에릭에게 다음 선거에 시장으로 선출된다면 이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에릭은 흔쾌히 동의했으나,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 아이린은 그 이유를 짐작했다. 쓸쓸한 동네에서 두 사람만으로 시작한 작은 집은 다섯 명에겐 지나치게 좁았으나, 오랫동안 따스하고 익숙한 안락이 되어주었다. 다른 현관, 다른 방바닥, 다른 천장을 상상하기에는, 이 집과 두 사람은 너무나도 친했다. 그래도 예정에 두고 있는 집은 지금보다 남편의 직장과 더 가까웠으며, 근처에 낚시터도 있었다. 아이린은 낚시터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정확한 이유는 댈 수 없었다.
이름없음 2020/01/02 22:17:21 ID : 7Aqlu2rhumt
아 쓰니까 심즈하고싶다 물론 삼즈....사즈개노잼ㅅㄱ 너무 오래전 플레이라 최대한 기억을 되살려서 써봤음 2탄에계속
1/3 2020/01/03 19:31:08 ID : 7Aqlu2rhumt
간판에 붙은 원조라는 말은 그 자체로 손님을 끈다. 태초적인 것, 아무 가공이나 변동이 가해지지 않은 것은 으뜸가는 순수성을 지닌다. 거기서부터 전해져오는 매력은 강력하다. 원조의 맛과 개량된 맛이 있을 때 일반적으로 더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받는 것은 전자다. 하지만 한국식으로 개량되어 마늘을 듬뿍 넣은 돈코츠 라멘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라면, 실제로 일본식 돈코츠 라멘을 먹어보고 기함할 것이다. 원조 돈코츠는 진한 돼지 뼛국물을 사용하므로 그 냄새가 만만찮고, 간이 뜻밖에 센 경우가 허다하다. 면 정도를 제외하면 제주도의 돼지국수와 흡사하다. 비슷하게 어린 친구들에게 이탈리안 피자를 내어주면 열에 아홉은 당황할 텐데, 어린이들의 눈에는 푹신푹신한 미국식 피자가 훨씬 익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국 사람들에게 중국식 자지앙몐과 한국식 짜장면 중에 고르라면 거진 고민 없이 짜장면을 선택할 것이다. 개량과 변동은 원조에 대한 침해로 여겨지고는 한다. 현대는 많은 것들이 처음 창조된 이래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첫째와의 먼 거리는 현대인들이 원조에 대한 향수나 동경을 갖는 이유다. 심리학적으로, 멀리 사는 친한 친구보다 가까이 사는 이웃의 일이 나에게 더 큰 영향을 준다고 한다. 바뀌고 고쳐지고 수정되어 이어져 내려온, 바로 옆에 있는 것이 저 멀리 희미한 과거의 자락보다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얘기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최신이라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의 나이가 아니라 내가 그것에게 품는 지금의 감정이다.
1/4 2020/01/04 21:27:41 ID : Aqpe3Pa60nC
선명한 기억은 영명하다. 색깔이 어떻든지 간에. 나는 여전히 학교가 두려웠다. 그곳에는 축축한 파란색과 공포스러운 까만색이 있었다. 쓰레기는 예사였다. 낙서에도 둔감해졌다. 뜻없는 예술은 고통스럽다. 싸늘한 시선이 내리눌리면 가슴이 서늘해져 훌쩍 열렸다. 강물처럼 눈물이 흘러내렸다. 괴물들이 받아마시는 수분이었다. 괴물들은 내가 먹여주지 않으면 자생하지 못하는 종들이었지만, 거기까지 생각할 만큼 똑똑한 시기가 아니었다. 오빠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 자문했지만 변화는 없었다. 나는 울지 않는 나를 꿈꿨다. 막무가내인 나를 소망했다. 주눅들어 자신을 낮추고 감히 맞서지 못하는 내가 아니라 당당하게 눈앞에 나서고 싸우는 나를. 나는 아름다워지길 바랐다. 그는 아름다웠다. 그를 부르는 매번 호칭에 부러움을 느끼지 않은 적 없다. 나는 같은 호칭으로 불리길 원했지만 동시에 그 호칭을 받는 미래를 의심했다. 나는 그림을 보는 것이 좋을 따름, 그림에 대해 마음껏 얘기하고 싶을 따름, 나와 나의 그림에는 아직 일언반구도 꺼낼 수 없는데. 그는 나를 앨리스라 불렀다. 아무것도 모른 채 세계를 헤집고 다니는, 철없는 소녀에 걸맞은 명칭이었다. 그는 나를 내가 꿈꾸던 나로 보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림에 대해 유일하게 솔직한 평을 내렸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야말로 내가 꿈꾸던 나라는 것을. 그는, 또 솔직하게 평해본다면, 굉장히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언제든지 나빠질 수 있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 점을 존경했다. 그에게는 거리낌이 없었다. 마음대로 말하고 표현해도 막아설 이 하나 없는. 나의 하트 여왕,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처형하겠다고, 이 세계에서 쫓아내겠다고 말한들 나는 반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따라야만 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가해지는 무분별한 비난을 용서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소심히 숨어 슬퍼하지 않았다. 면전에 나와 비난을 꼬집고 오류를 반박했다. 그의 작품은 그래서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은 아름답다. 그도 아름답다. 슬프지만 내가 그를 동경한다고 해서 현실적인 차이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그렇게 한다면 또다시 화장실에 갇히겠지만, 그는 몇 번이라도 용서받았다. 나와 그의 위치는 앨리스와 하트 여왕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그래서 뭐?" "저는 작가님한테...너무 부족하다구요." "응, 그럴 수 있지. 근데 그래서, 뭐?" 그는 나에게 달리 칭찬을 건네지는 않았다. 외모이든 작품이든 업무력이든. 단지 나에게 자신만의 애칭을 부르고, 나와 조금 즐거운 듯이 대화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엔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다행히 그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싫어?" "네?" "내가 싫냐구, 나랑 사귀기 싫어? 아니면 너, 스트레이트야? 여자는 싫어?"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손까지 내저었다. "네?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혹시나 지금이 신기루일까봐, 현실을 만져보느라, 놓치지 않으려고. "작가님은 좋아요, 작가님은...작가님은 정말로 예쁘시고, 멋있으시고...저, 저도 작가님을 예전부터..." 서글프게도, 그에게 직설적인 말버릇이 있는 듯이, 나에게도 말버릇이 있었다. 횡설수설하다가 막상 하고 싶은 말이 나오면 감정에 복받치는 버릇이었다. 나는 꼴사납게 울었다. 듣기 싫은 울음이 엉엉 울렸다. 그는 정말로, 전혀 거리낌 없는 듯이, 나에게 다가와, 어쩌면 그는 촌스럽다고 여겼을 나의 이름을 불렀다. 선화야. 나는 그에게 앨리스로 충분했는데. "자, 작가님." "그래, 선화야." 그는 아주 착한 사람도 성숙한 사람도 아니지만, 당당하고, 사랑스러우며, 귀엽고, 아름다운, 내가 꿈꾸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그를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이 사랑이 어떻게 끝나든지 간에, 나조차 악으로 물들어 깨지거나 떨어지더라도. 혹은, 어쩌면, 떠오르더라도.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이제 나는 그와 함께 물든다. 그는 만족스럽다는 것처럼 웃었다. "그럼 우리 이제 사귀는 거다?" /일일드라마 백합 착즙...수지선화... 혐성 악역녀 주제에 남주 여동생한테 애칭 써가면서 츤데레처럼 대할 일 있냐??? 서놔는 수지 거의 프리큐어 주인공 보듯이 좋아하더만 ㅠㅠㅠㅠ 아니 눈씻고봐도 쌍방썸인데요 드라마 개구데기같은데(그래서안봄^^) 백합만이 향기롭다 엉엉엉엉 엉엉엉엉
1/5 2020/01/05 15:58:43 ID : Aqpe3Pa60nC
에르하르트가 기억하는 첫 아버지는 자신에게 말을 걸던 모습이었다. 아빠, 아빠라고 해봐! 아버지는 에르하르트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갓난애에게서 나오는 말이라곤 늑대 울음소리래도 믿을 아우우우 정도였지만, 아버지는 굴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에르하르트와 매일매일 함께 있었다. 아버지도 잠시 사라졌다 오는 시간을 빼면 늘 에르하르트와 같이였다. 아기는 집에 부모님과 있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시간이 흘러 에르하르트는 변기 의자를 쓰는 법을 배우고, 걸음마를 떼고, 말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러나 웬걸 아까까지 있던 어머니는 사라져 있었다. 아버지도 아직 보이지 않았다. 에르하르트는 어리둥절했다. 그러다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잠깐이면 아빠가 오셔, 엄만 일하러 가볼게, 잠깐이면 아빠가 오셔. 하지만 아빠는커녕 처음 보는 누나가 집 안에 들어와 있었다. 에르하르트는 눈을 끔뻑거렸다. 누나는 한 십분 집에 있다가 에르하르트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고 현관을 나섰다. 교대하듯이 아버지가 문간에 들어섰다. 그날 이후엔 큰 문제가 없었다. 아버지는 왠지 예전처럼 내내 에르하르트와 함께 있었다. 밥을 주고 놀아주고 씻겨주었다. 에르하르트는 어머니가 집을 비우는 시간대, 다시 말해 일하러 가는 시간대를 깨우쳤다. 에르하르트 홀로 집에 남아 있을 일도 없어졌다. 학교라는 곳에 간 이후 에르하르트는 남들이 놀랄 만큼 빠르게 적응했다. 친구들을 사귀고 같이 숙제를 하고 방과후 심부름을 했다. 아버지는 에르하르트가 받아온 성적표를 보고 신이 나서 박수를 쳤다. 주말이면 영화를 보러 갔다. 부모님을 졸라 운동경기를 보러 가기도 했다. 충실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안, 어린 시절의 기억은 재빨리 사라져 갔다. 윤곽도 희미하고 색깔도 흐릿한 기억들이었으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불과 몇 달 앞둔 날 어머니가 수줍은 얼굴로 중대발표를 했다. 아이가 생겼다고. 아이는 여동생이었다. 고등학생인 오빠와는 나이차이가 꽤 있었고, 에르하르트는 여동생이 조그만한 게 꼭 인형 같다고 생각했다. 시얼샤를 안았을 때의 감촉만이 인형과 달랐다. 아버지는 에르하르트 때와 같이 아기를 돌보고 집을 지켰다. 아버지는 시얼샤가 저를 보기만 해도 헤벌쭉 웃었다. 에르하르트도 남말할 처지는 아니었다. 에르하르트는 시얼샤를 돌보는 것을 즐겼다. 여동생의 이름을 부르는 발음도, 여동생이 자기에게 뻗어대는 손도 앙증맞았다. 오히려 아버지보다도 시얼샤를 더 돌보고 더 예뻐하고는 했다. 에르하르트는 자신이 그런 아버지를 닮았겠거니 했으나, 의문이 한 가지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경찰관이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원하던 대로 경찰에 합격했고 바라던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돌연 아이가 생겼다. 어머니가 육아휴직을 하는 기간에는 문제가 전무했다. 그러나 에르하르트가 채 자라기도 전에 직장에서는 어머니를 호출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많이 고민했으나, 아버지의 퇴근시간과 어머니의 출근시간이 겹쳤기 때문에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서둘러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기 불가능했다. 두 사람 다 통근에 걸리는 시간을 깜빡했던 것이다. "경찰은 아버지가 꿈꾸던 직업이 아니었나요?" "나는 예전부터 최고의 요리사가 되길 바랐어. 하지만 아버지는 아니었어. 너희 아버진 그냥 경찰과 같은 일을 하고 싶어서 거기에 취직하셨지. 아버지의 꿈은 딱히 최고의 경찰은 아니었으니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버지는 더 어린 여동생에게 많은 신경을 쏟았다. 에르하르트도 아버지의 관심이 어려서처럼 강력히 필요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구태여 아버지에게 파고들어 묻지는 않았다. 에르하르트는 우등생으로 학교를 졸업했다. 이런저런 직장에서 러브콜이 들어왔다. 집에 상의해보니, 어머니는 웃기만 했지만, 아버지는 슬쩍이 자신의 바람을 내비쳤다. 예상가능한 범위 내는 아니었지만, 바람을 이뤄줄 가능성은 충분했다. 에르하르트는 아버지의 권유대로 연구소에 입사했다. 딱히 최고의 과학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성인이라면 평생 동안 이루고 싶은 꿈 하나는 갖는 편이 좋았다. 에르하르트는 자신이 사랑하던 것들을 되돌아보았다. 결정까지는 짧은 시간이 걸렸다. 에르하르트는 대가족을 꾸리고 싶었다. 아주 많은 아이들, 아주 많은 손주들, 그리고 그 중심의 자신. 꿈을 정한 날 에르하르트는 모처럼 아버지와 대화했다. 시얼샤는 곧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어머니는 본업은 물론이고 강연이나 방송에 출연하느라 느지막이 바빴다. 에르하르트는 내일이면 출근해야 했다. "내일부터 뭐하실 생각이에요?" "무슨 말이냐? 평소처럼 지내지 뭘." "아니, 내일부터는 정말...그, 조금 쓸쓸히 지내시니까요. 저도 바쁘고요. 시얼샤도 이젠 아버지하고 예전처럼은 못 놀잖아요." "그런가." 아버지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르하르트는 문득 자신이 원하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로 질문이 있었다. 아버지는 매우 평온해 뵈었다. 에르하르트는 질문을 해야 했다. 감히 아버지의 평안을 깨야만 했다. "아버지, 꿈이 뭐였어요?" "꿈?" "예." "우리 가족이 잘 사는 거지." 그것은 진실이었다. 아버지의 꿈은 가족의 안녕이었다. 아버지가 에르하르트를 홀로 집에 두고 달려왔던 날 사직한 이유였다. 에르하르트는 질문을 바꿔야 함을 짐작했다. "크리스토프, 꿈이 뭐였어요?" 이번에야말로 아버지는 곰곰이 생각하던 것 같았다. 아버지의 눈은 어딘가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앞에 선 아들의 너머 다른 곳을, 맞은편의 부엌도 아니라 그 너머를. 아버지는 지그시 웃었다. "내일부터 할 일이 생각났어." "뭘 하실 건데요?" 아버지는 언제나 예상 밖의 인물이었다. "낚시."
1/6 2020/01/07 00:50:24 ID : 7Aqlu2rhumt
나는 사랑을 지킴으로써 삶을 지탱해 왔어.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사랑만이 남지. 여기에도 사랑, 너의 눈, 나는 다시 정으로 생을 믿고, 반복하여 너의 일 외에는 흘리지 않는 눈물. 소원의 감촉은 너의 손과 닮아있어 쓸쓸한 밤이면 내 소원을 대신 품에 안고 잠들곤 했지. 그런 밤 창밖으로 들어오던 달, 나는 달빛을 마음에 쬐이며 속삭였다. 이 달이 너에게도 가 닿기를.
1/7 2020/01/07 20:49:15 ID : 7Aqlu2rhumt
하루 중에 제일 행복한 고민은 저녁밥으로 뭘 만들까다. 양식, 밥에 국, 한 그릇 차림, 다양한 음식을 떠올리기만 해도 간질간질 즐거워졌다. 장을 보러 가는 길도 보고 오는 길도 콧노래가 절로. 어제 저녁은 알리오 올리오를 해먹었으니 오늘은 쌀으로 하는 것도 좋겠다. 독신 생활의 낙은 음식뿐이다. 마음껏 내가 먹고 싶은 걸 해먹을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게는 사치스러운 기쁨이었다. 가끔 엄마가 가져다주는 반찬들은 커다란 도움이었지만, 손수 만드는 만족감과는 다른 종류였다.
책먹는 인간(물리) 2020/01/08 22:37:33 ID : y43RyMlyILg
나는 책을 먹었다. 읽는 것이 아니라, 먹었다. 한문장 한문장이 나의 생각과 표현이 되도록. 내가 읽은 글들을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이 세상의 마지막 책까지 먹을것이다. 책먹는 여우 생각나네.
이름없음 2020/01/10 10:28:59 ID : i2rgjg0mr9e
이틀간 여행 찾아보느라 정신없어서 못왔다 흑흑 다시 쓰긴 써야하는데..일단 오늘 저녁부터 다시 올리도록 노력해봄 갱 신
1/12 2020/01/12 22:31:18 ID : 7Aqlu2rhumt
내가 알고 모르는 과거의 당신, 지켜봤던 순간들과 돌려봤던 순간들. 압도적이었던 자태와 최선을 다했던 싸움. 한계를 뛰어넘는 당신도 멋졌지만 한계에 부딪치는 당신도 아름다웠어, 이제야 나는 그걸 말할 수 있네. 당신의 앞에 있던 유리라면 내 손으로라도 깨주고 싶었는데, 내 손이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당신에게 유리 따윈 애초에 없었지. 당신은 끊임없이 앞으로 달려 나갔어. 당신은 당신의 탁 트인 길을 걸었던 거야. 나의 비밀, 네가 해내던 모든 순간을 사랑해. 네가 쌓아온 장면 하나하나가 내 가슴을 울리지. 나는 당신의 과거를 다시 보기 두려웠어. 이미 끝나버린 그것이 박제로, 죽은 채 놓여 있는 걸 돌아보기가 무서워서. 그러나 나는 그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이제 깨닫네. 사체면 어떻고 박제면 어때, 너는 내 가슴을 설레게 해. 나의 비밀, 나의 사랑, 나의 자랑, 지금도 끝없이. 너의 빛나던 순간이 선연하게 비치면 내 마음은 주책맞게 들뜬다. 끓어 열이 오르고 소리가 커지고 아플 만큼 한껏 차올라, 나를 두드리는 피, 동맥, 심장, 한 번 젊음은 영원한 젊음임을 나는 너를 통해 깨달았어. 과거만으로 나를 구름 위로 끌어올리는 힘, 나이든 나를 옛날의 너를 보고 부르짖던 내가 되게 하는. 네가 있는 한, 너로 인해서, 나는 언제까지나 열정 가득히 젊어질 수 있겠지. 영원히 너는 횃불, 별자리, 세월이 흘러도 꺼지지 않는 나의 청춘. 내 손에 남아있어줘, 그 때의 그 감각으로.
1/14 2020/01/15 00:29:25 ID : 7Aqlu2rhumt
나그네는 미아가 되지 않는다. 여정의 목적이 없어서다. 시샘하는 달무리와 잡아채는 억새들을 뿌리치고, 다만 저 너머에서 희미하게 부르는 꿈소리를 따라갈 따름이다.
1/17 2020/01/18 22:01:44 ID : 7Aqlu2rhumt
내가 하는 일이 너희를 위해서가 아니라는 말은 대단히 잘생긴 말처럼 들리지만, 개인적인 신념의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타인을 생각하고 떠올리며 무언가를 만들 때, 우리는 보통 그러지 않았을 때보다 더 오르는 능률을 발견하곤 한다. 나의 그림을 볼, 음악을 들을, 글을 읽을 누군가, 나의 산물을 기꺼이 함께 향유하고자 하는 다른 사람이란 필수적인 기적이다. 뮤즈는 탁월한 영감이요 작업의 태반이다. 타인은 심상의 발원지다. 창작은 결코 홀로 태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거울에 맺힌 하나의 상이다. 거울에 세계를 비춰야만 예술이 보인다. 동시에 모든 창작은 근본적으로 창작자의 자기만족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현대로 올수록, 예술은 발언이다. 예술가가 만든 것이 그를 대변한다. 작가들은 작품 뒤에 숨어 보호를 받을 수도 있고, 변호를 할 수도 있으며, 익명의 사랑을 고할 수도 있다. 그들은 분명 타인-사회에 보내는 언어의 일종이지만, 그저 그것들만으로는, 어떤 반응이 되돌아오기 전까지는 소통이 아니다. 발언하고자 하는 욕구일 따름이다. 창작자는 자신의 말을 하기 위해 작품을 만들고 자기가 상상한 바를 실현시키고자 창조의 과정을 겪는다. 무언가가 완성되었을 때 가장 먼저 그를 즐기는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창조자 본인이다. 제작자의 꿈이 없는 작품은 없다. 따라서 예술은 혼자만의 것도 아니고 남들만의 것도 아니다. 창작은 자기만을 위한 것도 아니고 타인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둘 것인지는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무언가 하나만을 극도로 숭상하면서 다른 하나를 등한시하는 태도는 비판받을 수 있다. 예술에는 엄밀히 개인과 타인, 두 영역이 있다. 어느 것 하나도 무시당할 이유는 없다. 두 영역 모두가 예술을 구성한다. /n-buna 트윗보ㅗㄱ 생각한거. 링크는 커찮아서 안 달래 ㅎㅎ 글고 옛날트윗임 트윗 내용만 말하자면, 노래는 자기를 위해 만드는 게 좋다, 옛날이 더 좋았다는 말은 내가 남들을 위해 뭘 하는 게 아니라는 증명이라 기쁘다는. 일정부분 공감하지만 창작에서 타인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해 창작하지만, 가끔 남을 위해/남을 생각하며 창작할 때 더욱 기쁜 것, 혹은 더욱 잘되는 것도 사실이지. 그렇다면 창작(예술)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이하 예서 말하는 예술은 창작과 같은 용어로 치부하겠음 근데 나는 예술은 발언-소통의 시도라고 생각함 (특히 현대로 올수록) 그것이 자기중심적인지 아닌지는 논외로 하고, 결국은 남에게 내 말/생각/욕구(그것이 예술적인 영역에서는 소위 "주제"가 된다)를 전하려는 시도. 그래서 내 관점에서는 다분히 사회적인 것으로 인식되지만, 예술이 개인 욕구, 감정, 사고의 표현임을 감안하면 그 개인적이고 사적인...내밀한 면모 역시 큰 지분으로 존재한다고 하겠다. 막말로 야썰중엔 ㄴ남한테 못보여주고 나혼자 엔조이하는 것도 괘만타 이말이야 ㄲㄲㄲㄲ 그럼에도 그것이 (나 자신에게 향할지라도) 소통의 시도임은 확실하기 때문에, 본질에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면모가 둘다 동시에 있다. 그러므로 무릇 예술가라면 두 가지 면모를 모두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가 있겟으요 오랜만에 흥미로운 주제라 길어졌음
1/28 2020/01/28 03:39:16 ID : 7Aqlu2rhumt
너는 내가 사랑하던 것들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인데. 내 사랑은 거진 가장 꼭대기에 있었어. 절대 다수였고 최상위층이었지. 이름만 대도 누구나 아는, 모두의 지지와 성원을 받는. 너는 누구냐, 너는 틀림없는 전설이자 놀라운 전율로서 존재해 왔으나, 내가 사랑하던 것들에 비하면 평범에 한없이 가까웠지. 그렇기에 너는 더욱이 마법,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곳에서 나를 먼저 불렀던 기적. 내가 감히 너를 운명이라고 부르는 까닭. 나는 너를 아주 오래전부터 사랑해 왔을지도 모른다, 너를 기억하기 전부터.
완전오랜만에갱신함 2020/01/28 03:43:39 ID : 7Aqlu2rhumt
목표는 달성모댓지만 (ㅠㅠㅠ) 별 뻘글 생각날때마다 끼적거리는 낙서장으로 쓸것 ㅎㅎ 그래도 최대한 개학전까지 자주오는것으로~~ 아니 무ㅜ도 개재밋어 ㅠㅠㅠㅠ 사실 무도보느라 밤샘 근데 볼때마다 웃기는동시에 눈물남 그게 너여서 좋았는데 ㅠ... 낼쯤 관련글 쓰고 좀 자중해야지 인제 일해야되니깐 ㅠ 연휴끝 ㅅㄱㄹ
이름없음 2020/01/28 23:46:44 ID : rs04MmL9ck8
꺄아 이거 먼가 좋당ㅎㅎㅎㅎㅎㅎㅠㅠㅠㅠ
이름없음 2020/01/31 16:22:32 ID : U0slxu7hvCi
ㄱㅅㄱㅅ
1/31 2020/01/31 16:37:38 ID : U0slxu7hvCi
그걸로 됐어? 이따금 묻고 싶었다. 비는 오고 젊음은 시들고 생기는 저물며 습기가 차오른 기분, 붙들고, 묻기를; 그걸로 좋아? 정말 이것으로 좋니? 넌 그러니? 단칼에 아니라고 대답해주기를 바랐다. 한편으로는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 답은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길에 핀 꽃에서는 더부룩한 향기가 났다. 머리카락에 묻는 순간 영영 지워지지 않는 냄새, 돌아오는 계절마다 시린 흉으로 지고 말겠지. 여기에서 멈춘다면 내게도 네게도 좋겠지.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꽃망울과 마주치지 않는다면. 그러나 이미 머리카락을 쥐이고 빗겨진 터라 뒷걸음질치기도 어려웠다. 나를 사랑하니? 이미 머리카락을 쥐이고 빗겨진 터라 뒤돌아서면 낭떠러지, 돌아보면 걸어왔던 길은 차례차례 부서져 사라져 있었다. 흔적 하나 없이 깨끗하게 밀려난 과거의 장소/길/관계/나아가 우리, 하릴없이 재차 우리. 나를 사랑하니? 거기에는 당연하다시피 수반되는 질문이 하나 더 있었으며, 사랑이 뭔데?, 당연하다시피 답하지 못한 채 말을 아꼈다. 그런데도 이미 머리카락에 손길이 닿고 내음이 닿아 짙게 배어들어 버린 터라 이 뒤에는 돌이키지 못하는 일들 뿐, 이 냄새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테지, 사랑이 세계에 존재하는 이상은. 홀로 결론지은 바, 연인은 질문이 아니라 요구를 한다.
이름없음 2020/02/03 16:09:10 ID : 7Aqlu2rhumt
글 어디로 송고했음. 완전 그대로는 아니고 살이랑 좀 붙여서...이 스레는 자동암호로 쓰고있기때문에 지울수잇을지없을지 모르겟는데 지워지면 그래서 지워진거고 만약 어디서 봐도(사실볼일없음^^) 그러려니해주셈 ㅎㅎ
2/13 2020/02/13 01:29:03 ID : 7Aqlu2rhumt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는 종이 한 장 차이다. 누군가에게 유토피아는 어딘가에선 디스토피아일지도 모른다. 디스토피아라고 알고 있던 세계가 한 꺼풀 벗기면 유토피아일지도 모르고, 유토피아로 계획된 도시의 실상은 디스토피아와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눈은 그래서 중요하다. 구역의 안에 들어있는 주체가 아닌, 바깥의 객체가 보는 시선이 평가에 유리함은 사실이다. 특정 세력 또는 개인에 의해 만들어진 유토피아가 목적 그대로의 기능을 지속할 수 있는가? 혹은, 유토피아는 만인에 의해 생성될 수 있는가? 즉 특정한 무엇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유토피아는 존재할 수 있는가? 이상적인 시스템에 대한 질문은 인류를 괴롭혀 온 중대한 문제였으나 누구도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타인의 눈은 그래서 중요한데, 우리는 모두 서로의 타인이기 때문이고, 모든 타인의 온전한 동의를 얻어내기란 불가능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름없음 2020/02/13 01:35:29 ID : 7Aqlu2rhumt
와 완전ㄴ오랜만 졸리지만 생각난거 메모해둔거라...난 이 세상에 재미있는 질문이 참 많다고 생각한다 오늘 이것도 우리가 늘 안고 사는 것이지만 막상 질문으로 바뀌고 발제를 하면 상상치도 못한 답변들이 쏟아져 나오거든... 그리고 그런 질문들은 너무 일상적이라 순간 떠오르는 착상을 붙잡아둘 필요성이 있음 안 그러면 다시 생활의 요 아래로 숨어들어가버리지 으 머리카락같은놈들 한번 보일때 처리해야한다
이름없음 2020/02/13 01:40:03 ID : 7Aqlu2rhumt
요새 책 오지게 안읽는다 바쁘긴한데 핑계지 ㅋ ㅋㅋ ㅋㅋㅋㅋㅋ 아 뭐읽ㄱ냐 진짜 이번엔 각잡고 목민심서 읽는다 근데 그거만읽으면 좀 노잼일거같아서 소설도 하나 읽고싶군 크큭 안드로이드를 한번 쭉 읽을까 아 아니다 희곡 남은거 봐야지 밤으로의 긴 여로
2/17 2020/02/17 19:58:24 ID : 7Aqlu2rhumt
나는 스스로 너에게 아무것도 되지 않기를 선택해 왔는데, 본 목적과는 별개로, 정말 아무것도 되어주지 못하고 있네. 네가 사랑받는 사람이라 다행이야. 그래도 이건 너무 안타까워. 나는 자꾸만 너한테 나쁜 사람으로 남아버리고 마는구나.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아직도 많이 사랑해, 그런데 그만큼 벅차서...너를 어쩌면 좋을까. 불변하는 빛, 항성, 소원, 무슨 명사를 갖다 붙인들 네 이름만큼 예쁜 게 어디 있으랴마는, 너는 네 이름보다 그런 단어들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 해서. 사랑을 하면 어쩔 수 없는 겁쟁이가 되고 만다. 너는 나를 끔찍한 수준의 겁쟁이로 만들었어. 너로 인해 나는 비겁해지고 그림자로 숨어들어 그늘 같은 시선으로 전락하고 말지만, 그런 추락조차 내게는 저릿한 기쁨, 너를 사랑해, 음침한 구석에서, 많이 사랑해,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너는 알까, 내게 너는 손대기조차 두려운 유리 인형, 수정 꽃, 건드리면 깨질 듯이 청초하고 투명하지. 네가 기뻐서 다행이야. 몸 조심해. 여기는 눈이 많이 내린다. 네가 있는 곳에는 쌓이지 않았으면. 봄 조심해. 네 몸이 안 좋아지고는 하는 시기. 올해는 무사히 지나가야지, 괜히 큰일로 번질라. 내 사랑, 언제든지 빛으로. 꿈결처럼 부드러운 손이 오래도록 다정하기를. 혼자 생각이 겁이 많은 초라한 내게 매번 성큼성큼 다가오는, 내, 햇빛, 얼어붙은 겨울의, 짙게 푸른 여름의... 많이 사랑해. 네 모든 것을. 너의 눈동자. 그래, 언젠가는 말해야지, 언젠가는...
2/20 2020/02/20 12:09:50 ID : 7Aqlu2rhumt
다시, 네가 사랑받는 존재라 다행이다. 너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많아서 다행이다. 더 많았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게 된 것이 모두에게 사랑받기를 꿈꾸는 내 고질적인 성향은 네 덕분에 시작된 게 아닐까. 나는 널 깊이 사랑하는 분들이 여전히 있어서 기뻐. 그분들이 너의 끝까지 함께하기를 바라. 너도 그분들을 사랑하겠지. 그 관계가 계속됐으면 한다, 꾸준했으면 한다. 네가 모르는 내가 여기에 있듯이.
3/7 2020/03/07 23:38:28 ID : 7Aqlu2rhumt
예술가는 태풍의 눈 속에 있다. 사회의 비바람으로부터 안전한 곳에 서 있다. 풍파를 관찰한다. 관찰의 기록이 끝나고 나면 기록과 함께 제 발로 태풍에 걸어들어간다. 기록이 필요할 때는 도로 안전지대로 나온다. 예술가는 세상에게 방목되는 집단, 유일하다시피 자유로운 이름이다. 예술만큼 효율적인 관찰은 없다. 또 그만큼이나 단단한 보호도 없다. 예술의 비호 아래서는 누구라도 모든 것을 사용할 수 있다. 골방 한구석에서도 제작될 수 있는 예술의 특성상 강압을 피하기 위한 은닉도 가능하다. 예술은 모두를 자유인으로 만든다. 한데 완성된 예술은 그 자체로 시대에 대한 기록이자 사회에 환원되는 참여가 된다. 결국 예술가는 전장에서 격리됨으로써 전장에 기여하는 셈이다. 방관함으로써 참여하는 실로 특이한 부류라 하겠다. 폭풍의 눈 안에서 일하고 생산물과 같이 재차 폭풍에 뛰어들다니 정신나간 짓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하려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도 당연한 이치다. 모순을 특권으로 알아듣는 사람들이나 예술을 한다. 어떤 세계에서든 시대의 사관이 될 수 있게 하는 특권으로.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 예술은 어떻게 예술가들에게 자유를 수여할까? 예술은 시대의 기록이다. 현재에선 잔재가 되고 미래에겐 유래가 된다. 시간에서 자유로운 힘에게 그 정도의 능력도 없을 리가. /신문 칼럼(인듯)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 세계에 대한 짧은 논평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488321 제8기후대(예술은 무엇을 하는가?)<16년도 광주 비엔날레 주제. 괄호 안은 부주제였음 당시 작품 중에 경찰의 오인사격(유색인종 학생이 희생당함) 재판을 주제로 한 것이 있었음 제목이 기억이 안나는데 상당히 인상깊게 봤던듯...(모의인지 실제인지 모르겠으나) 음성 기록을 들려주면서 그걸 시각화한 오디오그래프를 보여줬음. 딴 작품은 얼핏 기억나고 마는데 그건 와닿기가 좀 세더라 18년 비엔날레를 보면서 더 강하게 느낀 건데 예술은 시대의 기록이라고 나름 그때 정의했던 것 같음 다만 16년도엔 그것이 현대의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18년-이거 쓴 현재에 와서는 현대에 국한되지 않고 전 시대에 걸친 얘기라는 생각이 듦 우리가 과거를 상상하게 하는 유물이 죄다 당시 즉 시대의 예술인 만큼. 뮤즈 당신들은 신인가? 아 신이지 참^^ 논평에서는 사라마구의 작품을 들면서 그의 인생에 대해 설명하기를 평생 자유인이었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 작가라는 이름을 달면 자유인으로 살아야만 한다. 살수 있는 게 아니라 살아야만 함. 주관적으로 시대를 기록한다는 특이한 사명은 자유의 이름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예술이 자유를 주는 이유에는 강제성도 포함돼 있는 셈이다. 나를 갖는다면 죽어도 자유로우라고. 생각하면 자유를 포기한 작가가 어디 작가로 불리나? 암튼 그런 생각을 해볼만큼 흥미로운 칼럼이라 공유하고싶어서 링크! 나는 눈먼자밖에 안읽었는데...(눈뜬자 조금 읽다말앗음ㅠ,,,) 만약 사라마구 작품을 좋아하거나 많이 읽었으면 더 재밌게 볼수있을듯 이스레 안버렷어요 가끔 이런 이상한거나 재밌는거 발견하면 찾아옴 그리고 레스주들도 아무렇게나 메모장으로 써도됨 물론 공유메모장 ^^나도 재밌는거있음 좋기때문
3/19 2020/03/19 23:53:16 ID : 7Aqlu2rhumt
백 년이 흘러도 물은 흐르나 그 때의 물과 지금의 물은 엄연히 다르다. 발에 전해져오는 감각으로 알 수 있다. 나는 여기에서 놀았고, 싸웠고, 수영했고 물에 내동댕이쳐졌으며, 그러다 수면에서 눈을 뜨면 가녀린 웃음소리가 나를 반겼다. 머리를 타고 갈라지는 물줄기를 따라 나는 그 애를 내려다봤다. 나는 물에 누운 채로 그 애의 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 애는 매번 미끈한 손을 내밀어 나를 일으켜 세웠다. 희한하게도 결코 나를 미끄러뜨리지 않는 손을. 그 애는 나보다 키가 컸던 게 언제적 말이냐는 것처럼 어느 순간 줄었다. 비슷한 눈높이에서 보게 되었을 즈음하여 비로소 그 애의 입술을 봤다. 공주들은 모두 그 애처럼 붉은 입술을 가진 줄 알았는데 그러지는 않았고, 그 애의 입술은 그 애만의 것이었다. 처음에는 뭔가를 바른 게 아닐까 싶었다. 도톰한 진홍색 입술이 영 부담스럽기도 했다. 마치 다 여문 과일 같이 건드리기만 해도 연약히 씨앗이 터져 나올 듯 했다. 따로 뭘 바르는 거야? 그 애는 내 질문에 놀란 눈을 뜨더니 웃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내가 하기엔 우스운 질문이었다. 아무것도.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그 애의 입술까지 그리고...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어차피 마지막임을 나나 그 애나 알고 있었는데도 기어코 그 애는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문다, 어째서. 백 년이 흘러도 물이야 흐른다만 그 때의 물은 여기에 없고, 가까스로 기억을 거슬러 오면 수원지엔 못다한 회한뿐이다. 샘에서는 미련과 채 끝맺지 못한 감정만이 넘치고 있었다. 그 애는 네가 와서 울음을 멈췄다고 했다. 한순간 그 애를 구하기라도 한 듯한 착각이 들었다. 틀림없는 그 애의 기운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지만 한시적인 것이었다. 말을 걸고자 했으나 그 애만이 말할 수 있었다. 한결같은 눈을 보고 있자니 내 이야기가 들릴지 들리지 않을지조차 불분명했다. 나는 창을 얻았다. 그 애가 쓰던 창이었다. 워낙에 차고 부드러워 금방이라도 물로 변해 흐를 듯했으나, 매번 그러했듯이, 희한하게도 나를 결코 미끄러뜨리지 않았다. 다시, 여기에 놀러 와 줄래? 입술까지 사랑하고 말았는데, 백 년이 흐르고 당시의 물은 죄다 흘러가 버렸다. 그 애는 나를 놓치지 않았는데 나는 그 애를 백 년 전의 물에 실어다 보냈다. 입술마저 그 애의 것이라 사랑하고 말았는데, 나는 그 애를 위해 여기에 오지도 않았다. 약속을 지키지도 않았다. 여기에 놀러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도 그 애도 미처 마치지 못한 의무였다. 여기에 그 애가 없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탓이었다. 나는 그 애가 결국 마지막에도 말하지 못한 이유를 깨달았다. 한번 흘려보낸 물을 되돌려 잡을 순 없었다. 나는 영영 그 애를 구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이제 영영 아무것도 될 수 없었다. / ※주의 : 미파 생각하면 오열함 미파쨔응...살려달라능.... 미파만 생각하면 과몰입 오타쿠가 되는걸ㅇ ㅓ쩔수없다 미파야 ㅠㅠㅠㅠㅜㅠ
3/24 2020/03/25 00:43:27 ID : 7Aqlu2rhumt
좋은 냄새가 났다. 왼쪽에 편의점이 있었다. 주머니 안에 동전이 몇 개 잡혔다. 미친 듯이 군것질이 끌리는 날이 있다. 저녁도 먹기 전에 편의점 입성이라니 평소에는 기가 찰 일이다. 자동문은 매끄럽게 열렸다. 안에 들어서자마자 더운 기운이 훅 끼쳤다. 머리에 앉은 온기를 조금 털어내고 오뎅 앞에 섰다. 마침 곤약도 있고 소힘줄도 있었다. 곤약이 75엔, 소힘줄이 125엔, 딱 200엔, 가진 돈만큼 사는 것이 나의 신조다. 주머니의 동전을 꺼냈다. 백엔짜리가 하나, 1엔짜리가 여섯. 쓸데없게 왜 1엔짜리만 여섯 개씩이나 되는지 과거의 나를 소환하고 싶어졌다. 코트에 얽힌 기억을 읽어볼까 했지만 지나친 듯 해 그만뒀다. 소힘줄을 포기하면 곤약 하나, 두 개 정도도 못 산다면 오뎅을 살 의미가 없었다. 애시당초 무계획이었으니 돈이 좀 부족하리라곤 생각했지만 오뎅 두 개도 못 사는 잔돈이리라곤 예상 못 했다. 참고 집에 들어갔다가 올까 생각해도 귀찮았다. 집에 들어가면 그대로 식탁에나 앉고 말겠거니, 여기서 끝장을 봐야 했다. 그러고 싶었다. 미친 듯이 군것질이 끌리는 날엔 보통 이렇듯 무계획이라 지갑도 없다. 친구들하고 같이 오지도 못한다. 어쩌면 옆에 사람이 없어서 더 허전하니 주전부리를 찾는지도 모른다. "언니!" 나는 화들짝 뒤로 돌았다. "유카리!" "언니랑 편의점에서 보는 거 처음이야..." 귀엽게도, 유카리는 기쁘다는 듯이 살짝 웃었다. 이쪽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지만 당연히 우리가 편의점에서 볼 일은 없지 않겠니. 나야 친구들하고 온다지만 유카리는 간식이라면 편의점보다 카페를 선택하는 애다. "언니는 편의점을 좋아하니까...왠지, 하고 들어와 봤어." 배시시 웃는 유카리에게 나는 마주 웃었다. "유카리는 편의점에 잘 안 오니까 웬일일까 했어. 내 기운을 느꼈던 걸까?" "어? 으응...그랬을지도." "마술, 일까?" 무의식으로 뱉은 말에 유카리는 한껏 당황한 표정이 되고 만다. 유카리의 마술은 아직 평범한 개인의 기를 읽는 수준까진 아니다. 내가 알고 있다. 농담일 뿐인데 유카리는 다음 말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설마 농담이 아니게 됐을 리가 없다. 유카리는 아직 그만큼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정말로 유카리가 내가 안에 있음을 깨닫고 들어왔다면 유카리는 어머니의 마법을 이미 습득했을 리는 없고 적어도 작은 일면에 도달했을 리도 없으며 내가 아는 유카리라면 전혀 감조차 잡지 못했을 거였다 "당연히 아니지, 왜 그렇게 말하는 거야? 언니도 참 이상한 소리나 하구..." 유카리는 쑥스러이 볼을 붉히며 눈을 내리깔았다. 짖궂게 군 사람을 도리어 미안하게 만드는 언제나의 모습이다. 언뜻 보니 목도리가 흐트러져 있다. 학교에서 나올 때 대충 매고 나왔으려니 짐작했다. 생각해보면 오늘은 유카리가 부활동을 안 하는 날이었다. 방금 만나자마자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언니로서의 섬세함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 같아 불안하다. 나는 한 발짝 다가서 유카리의 목도리를 잡았다. "목도리 다시 매줄게. 냅다 둘러메고 왔구나? 뭐가 그리 급했어." "아..." "리본 모양으로 해줄게." 유카리에게 잘 어울리는 매무새라고 생각했는데, 웬일로 그 말에 단호히 부정을 표한다. "아냐, 괜찮아." "왜 그러니, 유카리. 귀엽게 하면 기분도 좋아지잖아..." "아니, 아니야. 다시 매주는 게 아니라, 리본 모양이..." "그러니까 말이야. 귀여운 모양 하고 싶지 않니?" 진심으로 의아하여 물어본 건데 뜻밖에 기특한 소리를 들었다. "언니...처럼 평범하게 하고 싶어. 언니하고 같은 모양이 좋아." 반사적으로 내 목도리를 내려다보았다. 평범한 모양으로 목도리 끝은 가슴께에 얹혀 있다. "그렇네, 유카리. 그 편이 자매처럼 보이겠네." 동생이 원하는 대로 목도리를 풀어서, 한 번 두르고, 내 목도리 모양대로 엮는다. 유카리는 내 손이 움직이는 걸 가만히 보다가 지그시 웃으며 또 말하기를 어쩌면 이렇게 귀여운 말만. "언니는 역시 대단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아는 걸까." 후후 웃고 목도리에서 손을 떼자 내 것과 꼭 같아졌다. 이쪽도 만족스럽다. "역시 마술, 이려나." 그렇다고 말하면 유카리는 더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보겠지만, 동생의 존경스러운 눈빛을 거짓말로 받을 만큼 악인은 아니다. "그럴 리가." "에헤헤, 그렇겠지." "아무리 마술이라도 여동생의 마음을 전해 듣는 건 못하겠지." "에엥, 어째서?" "그야 언니의 특권인걸." 유카리가 소리내어 웃는다. 사랑스러운 소리. 할 수만 있다면 그대로 본을 떠두고 싶은 소리. 유카리는 웃음기를 지우지 않은 채로 말했다. "그럼, 음...언니, 지금 오뎅이 먹고 싶지?" 유카리는 아직 그 경지에 오르지 못했으니 마술은 아닐 것이다. 마술일 수가 없다. 저 정도의 마술을 쓰는 건 유카리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알았니?" 나는 목소리에 진동이 가해지지 않도록 온갖 노력을 다해야 했다. 유카리에겐 절대로 아직 불가능한 일이니 "아, 맞췄네! 그럼 언니, 나하고 합쳐서 오뎅 사먹을래? 나 마침 오늘은 지갑을 가져왔으니까..." "어떻게 알았어, 유카리?" "응? 그, 그냥. 언니가 오뎅 앞에 서 있었고..." 유카리는 왜 지갑을 가지고 왔을까? 유카리도 지갑을 가지고 오고 싶은 날이 있을 것이다. 유카리는 친구들과 하교하는 일이 잦지 않아서 지갑을 자주 들고 다니지 않는데, 하필 오늘은 지갑을 가지고 온 것은 내가 편의점에서 오뎅을 사고 싶어할 거란 사실을 알아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유카리는 정말 어머니의 마법을 조금씩 터득해가고 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지만 그럴 리가 없다. 유카리의 실력은 아직 그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맞춘 건 우연이지만..." "어머, 아하하! 그러니, 잘 맞췄네!" 유카리는 안 그런 척 해도 은근히 감이 있다. 여자의 육감이라고 하나, 어머니는 도통 모르겠다는 것이지만 유카리나 나나 가끔 느끼곤 한다. 그런 걸 보면 유전이라기보단 타고나는 사람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언니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응?" "마술이라도 언니의 마음을 전해 듣는 건 못할 거야...이건, 여동생의 특권이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유카리를 끌어안았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도 끌어안았다. 데운 오뎅 국물조차 이다지도 따뜻하지는 못할 테다. 유카리의 코트도, 목도리도, 볼을 간질이는 머리카락도 따스했다. 따뜻한 몸이었다. 유카리가 전신에 퍼져나간다. /과제하기 싫어서 끄적끄적 대충쓸라햇는데 길어진걸보면 역시 과제의 힘은 머단해! 페이트 기반 자캐 언니와 여동생. 설정놀이 조와용 호호 사족으로 언니 이름은 미즈호. 미즈호랑 유카리~
4/28 2020/04/28 02:01:08 ID : 7Aqlu2rhumt
선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이다. 선은 생각하고 사고하며 자중한다. 가는 대로 뻗는 손은 선이 되지 못한다.
5/4 2020/05/04 22:49:45 ID : 7Aqlu2rhumt
미디어는 어떻게 사회를 정형화하는가? 미디어는 보여주는 것을 옳은 것으로 만든다. 보여지는 행복은 일률적이다. TV와 핸드폰과 컴퓨터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눈치보기 시작한다. 우리는 액정 뒤의 사람에게 보이지 않지만 액정 뒤의 사람은 우리에게 보인다. 화면에 빗대어 초라하게 만든 삶은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대리만족을 찾을 경로는 재차 유리로 통한다. 부모를 포기한 사람들은 TV의 아이들에게 향하고, 대화를 잃어버린 아이들은 인터넷의 부모들을 바란다. 젊은이들은 결혼도 육아도 스펙으로 여긴다지만, 그냥 결혼과 육아와 스펙이 되는 결혼과 육아는 따로 있다. 우리는 수준을 정한 뒤에 수준 이상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수준은 어디에서 왔는가? 자신만의 기준에는 기반이 될 정보가 필요하지만, 보통 매체는 정보가 되기로 그치지 않고 박탈감에서 비롯된 포기를 잉태시킨다. /커뮤 댓글 보고 확 온 단상 메모. 링크 띄울까 했는데 (공개커뮤긴 하지만) 커뮤댓이라 스루했음 육아예능 인기 많은 이유엔 육아를 포기한 사람들의 대리만족도 있을 거라고...보고 깜짝 놀라서 육성 나왔음. 점점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 또한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출산과 육아가 버겁기 때문에. 무슨 말이냐면 단순히 부양자에게 힘든 일이라는 게 아니라, 피부양자에게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것만큼 해줄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만큼 하기 위해서는) 버겁게 느껴진다는 거...(잘 될 자신이 없으니까) 난 안 할 거야<육아문제를 떠나서도, 이런 생각이 전반적으로 많아진 기분. 사회분위기가 먼저인지 매체가 먼저인지는 연구의 중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어쨌든 둘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 건 분명하고...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부분. 미디어의 프레이밍은 강력함. 그게 의도든 아니든 간에. 항상 성찰과 비판이 필요한 것도 그래서다. 이쪽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진짜 이런생각은 어케하냐. 내가 아직도 어리다는 걸 실감함; 나이는 진짜 못속임
이름없음 2020/05/04 23:00:13 ID : 7Aqlu2rhumt
원래 작문용으로 쓰는 스레(였)긴 한데 오늘처럼 아이디어 메모만 할 때는 일기판으로 옮겨야 될까 싶기도하다 ㅠㅠ 처음 의도가 작문용 스레고 연성도 몇 번 해서 냅두고 있지만...혹시 불편한 레더들 있음 언제든 말해줘!
5/5 2020/05/05 23:03:32 ID : 7Aqlu2rhumt
누구나 한번쯤은 뒤돌아보겠지만 지금껏 헤쳐왔던 폭풍우를 지나서 어두운 숲의 끝엔 빛이 있을 거라고 반드시 믿으며 나아가
5/23 2020/05/23 02:03:47 ID : 7Aqlu2rhumt
별들이 울부짖던 밤과 붉게 물들어버린 내 목소리 수천 번 되풀이했던 아침을 지금 너에게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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