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일이다.
그 날은 모처럼 할 일이 없었던, 무더운 여름날의 장마철 이였다.
그런데 때 마침 아빠가 같이 은행에 가자고 나를 졸랐다.
나는 비 오늘 날 밖에 나가는 것을 꺼려해서, 잠시 고민 했지만 어차피 마땅히 할 것도 없겠다 싶어서 아빠를 따라 은행에 가기로 했다.
집에서 20분 거리인 은행을 가는데 운동화를 신고 가는 것은 괴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슬리퍼만 신은 채 밖으로 나섰다.
은행에 도착한 후, 아빠는 ATM 기계 앞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그 새 지루함을 느낀 나는 당시 학교에서 유행하던 '신발 차서 멀리 날리기' 놀이를 했다.
슬리퍼여서 더 편리했고, 은행 내부의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까지 있으니 이보다 더 적합한 환경은 찾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한참 슬리퍼를 날렸다 한 발로만 기어가서 슬리퍼를 다시 주워 오기를 반복.
이번에는 진짜 높이 차봐야지! 하는 욕심이 들었다.
그렇게 숨을 가다듬고 속으로 3초를 샌 뒤에 내 왼발에 모든 체중을 실어 힘차게 슬리퍼를 날렸다.
그런데 날라간 슬리퍼가 왠 대머리 아저씨 머리에 정통으로 맞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곧바로 그 아저씨에게 달려가서, "죄송합니다."
사과 한마디 하고 날라간 슬리퍼를 내 왼발에 장착한 채 뒤도 안돌아보고 곧장 집으로 도망쳤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면 생각나는 에피소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가슴이 아프다.
그 때 그 아저씨, 지금 쯤 뭘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