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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색처럼 눈동자 색도 갈색이었다. 맑고 투명하면서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머리색보단 약간 더 밝은 듯한 연갈색 눈동자와 마주쳤을때 귓가에 울리던 시끄러운 매미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멍했다. 첫눈에 반한다는게 뭔지 몰랐었던 그동안의 내가 무색할만큼 처음 본 그 아이에게 빠졌고 난 깨닫게 되었다. 첫사랑이었다.
하지만 장난처럼 떠올랐던 부정맥과는 달리 설렘이 동반되는 떨림이었다. 첫 사랑인만큼 나는 이 감정이 소중했고 사랑스러웠다.
그 아이가 늘 앉는 자리가 잘 보이는 곳에 앉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고, 창가의 그 아이만의 자리가 채워질때까지 몇번이고 흘끔거렸다.
그 아이가 오면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할 게 분명하면서, 나는 늘 그아이를 기다렸다.
오늘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그 아이를 뒤에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아이가 일어서더니 나에게로 걸어왔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왜 자꾸 꼬라봐?"
난 그저 독서실의 먼지를 삼킨듯 놀라 콜록거렸다.
내가 보고 있단 걸 알고있단 것에 한번.
말이 보기보다 험하다는 것에 두번.
당황할 틈도 없이 그 아이는 다시 말을 꺼냈다
“나와”
나오라는 말을 하며 문 쪽으로 향하는 그 아이의 말에 뭔가에 홀린 듯 그 뒤를 따라나갔다.
그 애가 부스스한 갈색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눈을 맞춰 왔다. 나른히 내려다보는 눈길에 뺨이 뜨겁게 달았다.
"혹시 내가 읽고 있는거 보고 싶어서 그러냐?"
책?
그가 손에 들고 있는건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
길다.. 저런 어려워 보이는 책을 읽고 있는 줄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속마음을 감출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하며 떨떠름하게 말했다
"어..맞아..나도 라블레씨를 좋아해서"
사실 너를 좋아하는 거지만
씨익 그가 웃는다. 웃는 그의 모습을 보니 좋다. 좋다.
"오~역시! 그럼 가르강튀아 읽어봤겠네?"
라블레씨 감사합니다.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제 앞에 있는 사람과 저를 연결해주고 있군요.
나는 오랜만에 본 사람을 반가워하듯이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고 말했다.
"어! 그게 내가 처음 본 라블레씨 작품이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니까"
모르는 말이 마구 나오지만 적당히 받아치면 될거 같다. 더 어려운 말이 나오기 전에 주제를 바꾸자.
가르강튀아.. 읽어둬야겠네..
다음날, 다시 도서관을 갔는데 그 아이는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왜 안오는 거지.. 걱정하던 내 뒤에서 누군가 툭툭 쳤다.
그 아이의 가발이었다.
붉은기 도는 갈색 곱슬 세팅, 한올한올 플라스틱으로 정성들여 뽑아낸 장인 기계의 머리털.
오래 사용된 듯 조금 부스스하게 들뜬 모습까지. 나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 중 가닥 한 뭉치가 태양빛을 받아 내 등 뒤에서 맨드럽게 빛나고 있었다.
그 때, 어떤 남자아이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리고 숨을 들이키며 나에게 말했다.
"하.. 미안해. 이것 좀."
나는 처음 보는 아이인 줄만 알았다. 대머리였으니까.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확 하고 느낌이 왔다. 그는 내 첫사랑, 이름도 모르는 갈색 머리 남자아이였다. 사실 그는 소아암 투병으로 머리카락이 없어 가발을 쓰고 다녔던 것이다.
나는 그의 대머리까지도 사랑하고싶어졌다.
이제 호칭을 바꿔야겠다.
갈색머리 남자애가 아닌 투명한 머리칼을 지닌 남자애로.
"놀랐냐?"
힐끔 , 내 눈치를 보며 말을 잇는다.
어느새 귓볼이 빨갛게 달아올라있었다.
잠시 쳐다본듯한 기분 뒤에
"그럼, 간다"라며
가발을 챙긴 후 나가려는 남자아이를 붙잡았다
"저기- 괜찮다면 커피 한 잔 어때?"
"미안, 나 엄마가 심심하다고 해서 가볼게."
남자아이는 마마보이인걸까?
"어... 그래. 잘가고 다음에 또보자."
"엄마가 허락하면."
아이는 끝까지 깊은 여운을 남기는 말을 남기곤 홀연히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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