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日記

되새겼지만,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여서 그런 것이지, 아니면 내가 유독 그런지 알 수가 없던 참이다.

저 두 가지만이 추측이 낳은 결과물은 아니었다. 쓸모없는 것은 미뤄두고, 우선은 되새김이 오래 가게 하기로 했다.

그래야만 했다는 강제성보다야, 자발성이 더 컸다.

이런 일을 뭉뚱그려 개인사로 치부해서 적어놓는 건 좋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추상적이고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으로서 드러날 때, 소수의 관점으로만 존재했던 경험이, 언어로 추상적이게 다듬는다면 여러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을런지 모른다.

때론 언어로 표현해야 명확해지는 것이 있듯이, 언어라는 도구가 선사하는 무언가는 분명 내 추측에도 있을 리라고 생각한다.

- 가면을 벗어서, 더 인간적일 수 있다. 비단, 가면을 써서 인간적일 수 있듯이.

- 만족의 대상이 모두가 되어야 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포기한다.

- 어디까지나, 말할 수 있는 건 명료해야 한다.

- 나의 모든 과거에는 내가 자라온 환경과 나를 길러준 부모가 가장 먼저 있었다.

그러므로, 싫어한다고 해도 자칫한다가는 닮아가는 것이다.

호오를 드러내자. 내가 이 사실을 명료하게 표현하기 전에 드러내지 않았던 것들을.

최대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은 바꾸자.

- 무언가를 계기로 자신을 싫어하게 되었었다.

/태어날 때부터 내 것이었던 것과, 태어난 후 내 것이어야 했던 것은 있는가

인생 전반이 필연적인 요소뿐이라면, 내가 의도가능한 변화는 어디까지나 내 주위 뿐일 테다. 그 이상 가는 범위를 사고의 틀에 넣을 수 없기에 행운이라고 치부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행운의 요소를 믿고, 필연적인 요소를 신봉한다.

- 모든 숨겨진 규율을 드러내어, 보이게 하라.

- 주어진 자료도 의심하고, 남에게 말해야 할 때는 더욱 조심하라.

- 생각함에 있어서, 생각하는 것을 또 다시 생각하고자 했다.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기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학습받지 않았어도, 대부분의 경우에 끝까지 보유하고 있을 기질이 있다고 본다. 기질이라는 나무에, 땅은 학습된 지식이고. 붙어나는 곁가지들은 기질이 아니라 기술이라고 본다.

가치와 무가치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길어서 지친 여정에 아무런 쓸모없는 짐을 짊어지면서까지 계속 걸어나갈 수 없다. 자기를 깎는 일이고 기질 상 맞지 않는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 때론 하지 말아야 할 이유와 해야 할 이유를 구분한다고 해도, 필요없어지는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그냥 해라. 이왕이면 열심히.

내가 보는 세상은 나에 의해서 한 번 필터링된 세상이다. 마찬가지로 타인이 보는 세상도 타인에 의해 필터링된 세상이다. 모든 사람의 눈에 진실만이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에게 속고 있다. 속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지 몰라서, 속임수가 진실이 돼버렸다.

보유 중이었던 현금의 일부가 갑자기 사라졌다. 손해가 있을 만큼의 금액이었고, 예상 밖의 일이었다. 도둑이 들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확실히 그 돈은 있던 것이 맞았다. 이 무슨 괴상한 일인가 싶긴 했으나, 그 이상 가지 않았다. 남은 돈은 필요할 때 쓸 수 있을 정도였고, 그저 그 돈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러나, 아직도 의문이다. 그 돈은 어디로 갔을까.

- 시간이 유한한 자원이듯이, 감정도 유한한 자원이었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으로 사상으로 승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가 사상에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일 테다. 누군가 사상에 의한 역사가 아니라 역사에 의한 사상이란 표현이 더 옳다고 했는데, 이제야 그 말을 알 듯 했다.

/ 포기하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법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을 좋아할까. 좋아할 수 있을까.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자신을 혐오하고야 마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채가 살아가며, 자기에게 어울리는지도 모를 가면을 쓴 채로 사람들을 만난다.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언어를 통해 감정을 전한다. 때로는 얼굴을 보지 않고, 그저 단편일 뿐인 사진과 흘러 지나가는 넋두리를 훑어보며 사람을 본다고 한다. 말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게 있어서, 답답하다. 말한다고 해도 알 수 없는 게 있어서 괴롭다. 말할 수조차 없이 입을 막고 눈을 가린 채 있어야 하는 순간들이 억울하다. 억울해서, 기묘한 비틀림을 보며 외쳐댄다고 해도. 가면을 쓰고 있을 사람들에게서 호소가 전달되었는지를 알 수가 없다. 온갖 격식에, 온갖 예의에, 온갖 관계에, 온갖 무지와 편견에. 늘상 가식에 때로는 인간다움으로 불렸을 가면을 나조차 쓰고 있다.

글 잘 쓴다. 가면을 쓴다... 슬프고 아픈데... 참 공감가는 표현이야.

결국은 나에 대한 선택이고, 나에게로의 집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로부터 출발해서 다시 나에게로 귀의하여, 이제는 저 머나먼 밖으로의 표출이 되는 것. 나에게는 그것이 성숙의 과정이 되었다.

-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진실로 날로 새로워지려면,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고, 또 속으로 삭이고, 마를 일 없는 우물이라 여겨 끝없이 감정이란 물을 푸어 쓰는. 그런 일이 우습다고 여기서 내면에서 그것을 인정했음에도. 또 다시 시선에 움추리고 마는 것. 내겐 성숙이란 너무나도 어려워서, 매혹적이었고. 매혹적이어서 그 과정이 험난한 길이었다.

- 학습할 수 있는 지식은 덮어놓고 끝내지 말고, 직접 요약하려 해야 한다.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말하는 법을 배워라. 그리고 책을 많이 읽어라.]

단어의 미세한 차이에서 쓰임새를 알 수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처럼 그것이 화자의 비언어적, 혹은 반어적인 표현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텍스트로 보여지는 세상에서는 단어의 쓰임 자체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공감과 동의에 대해서다. 누군가의 통찰력을 빌리지 않았으면 알 턱이 없는 미세한 차이였다. 사람은 타인이 될 수 없지만, 자신이 겪은 바를 바탕으로, 그런 맥락 속에서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이해, 간추려 공감이란, 감정적인 영역에서 상대방의 의견 혹은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대개 논리보다는 감정이 우선시된다. 반면에 동의는 이성적인 측면에서의 받아들임이다. 이는 감정보다는 이성이 우선시된다. 사람은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개 이성적인 판단의 기저에는 감정적인 끌림이 깔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감정적인 끌림이 없고 이성이 전부라면, 인간은 앞으로의 AI보다 나을 점이 없을 듯하다. 그래서 파토스적인 말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성의 영역과 감성의 영역이 엄연히 구분돼야 하기에 발생한다.

해야 하지만 하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만 금세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질리게 된다. 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강제도, 자발성조차 띄지 못한 채 모든 일들이 허무주의로 빠져들어간다. 어째서 참여하지 못하고 보고만 있는가. 어째서 만들어내지 않고 소비하고 있는가. 만들어내는 모든 것을 선택적으로만 받아들인다. 원래 이 스레의 목적은, 내 자기계발에 있었다. 스레를 세우기 이전에 한없이 동기가 부여되어 무엇인가 하고 싶었던, 하고자 했던 의지가 가득했던 내게. 후에 닥칠 미연의 허무를 방지하기 위한 보관소였다. 나의 정열을 적어 모아 놓자. 나의 신성한 목적을 적어담아 놓자. 내게 있어서 금언을 닿아 모아두자. 모두가, 내게 있어서 감정이었다. 이성은 감정에 이끌려 발현되고, 감정은 계속해서 시들어간다. 속된 말로 재미가 없으면 하지 못한다. 위기가 내게 있어서 실로 끔찍한 것으로 인식되지 못한다면, 필요없다. 적어 두었듯이, 감정은 자원이었다. 시간이 그러했던 것처럼. 익숙해지는 것은 더이상은 받아들이지 않고 뱉는 자원이었다. 뇌는 감정을 선사했으면서도, 망각은 지우진 않았다. 분노도 제대로 일지 않고, 슬픔도 제대로 일지 않으며, 증오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일라 치면 이성은 감정에게 묻는다. 증오도 동력이 된다. 분노도 동력이 된다. 그런데 그 분노와 증오가 마땅한 것인지 따지게 된다. 따지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 따져 마땅한 것일지라도 그것이 오래가지 못하게 된다. 이미 타올라버린 재다. 이제 내가 감정을 느꼈던 방식에 대해서도 회의감을 느낀다. 불의에 분노하고 억울한 일에 있어서 슬픔을 가지게 되고, 기뻐한 일이 있으면 웃는다. 이 당연한 일조차 진짜 우러나온 감정이 아닌 게 되는 것이다. 이 스레를 세운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성을 지지하기 위한 것이지 감정을 지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게 된다. 이성으로 감정을 지지한다? 턱도 없는 소리. 이성으로 감정을 묶어두기 전에 감정이 망아지마냥 거칠게 뛰어다닌다. 내 감정이 이성을 따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 많은 시간 속에서 얼마나 또한 허무해지겠는가. 가능의 영역이라 생각하지만서도, 지금의 나에게는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다. 글러먹었다. 그래서 바꾸고 싶었다. 지금도 바꾸고 싶다. 후에 멀쩡한 정신으로 이걸 본다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적었냐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냥 지금은 무언가라도 써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내 기질인 마냥.

내가 나도 모르는 심중으로 뭔가를 원하는 건가. 그게 충족되지 않아서 뭘 해도 금세 질리는 것이 아닐까.

- 원래 내 것이어야 했을 것, 원래 내가 가지고 있어야 했을 것. 그럼으로 박탈당한 것, 결국 빼앗겨서 되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고마는 것.

>>38 반쯤 놓고 살았더니만 괜찮아진 것 같다. 단순히 기분 탓으로 치부하기에는 내심 지쳤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지금 생각해보면 질려하던 게 강박이 아니었나 싶다. 사회나 혹은 내 자신이 나에게 주입한 의식, 그로 인한 강박 같은 거 말이다. 남들이 어려우니까, 나도 어려워야 한다. 남들이 재미없어 하니까 나도 재미없어야 한다.... 자신에 대한 이해를 시작할 때부터 강박에 대한 이상함을 느꼈을 터다. 이상한 꿈으로부터 해방된 기분이다. 아직을 덜 깼지만, 나 자신이 온전해질 때 언젠가는 괜찮아지리라.

앞에 - 붙은 것들이 내가 나로서 지켜야할 규칙, 약속을 명시하는 것이고 또한 망각돼서는 안 되는 정열을 옮겨놓은 것이다. 요 며칠새는 나름 생각없이 살기도 하며 지켜야할 것들을 지키면서 살다보니 위 같은 생각들을 잘 하지 않게 되었다. 느끼기엔 생각이 있을 때보단 덜 치열해진 것 같지만 그저 생각만으로 했던 약속을 옮기다 보니 어떤 면에서는 좀 더 치열해졌다고 느낀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일이다. 어째서 나는 오늘이 지나면 내가 오늘에서야 느꼈던 게 모조리 내 것이 아닌 게 되는 것 마냥 굴었을까. 어제의 나는 경탄했고, 한탄했으며 후회하고 개선하려고 했는데 그게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것 마냥 굴었을까. 진짜로 하루 아침에 사라진 것이어서 그랬을까? 아니다. 아닌 것이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작심일일보다는 3일이 보편적이었을 테다. 나는 내가 평균 이하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그랬다면 내가 이런 인생을 살아왔을 리가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하루 걸러 다시 새롭게 감정을 개선해야하는 사태는 어째서인 것일까. 아마도, 내가 일일신 우일신과 같은 격언에, 혹은 내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있던 것은 아닐까? 이러한 면면들을 내가, 본래 나는 그러하니 마땅히 이런 게 맞을 것이다.라고 퉁쳐버려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강박이란 내게 있어서 긍정이었다. 좋은 거 싫은 거 구분없이 내가 나에게 암시한 것들이 분간없이 달려들어 나를 해하려 한다. 어쩌면,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루 전 일을, 그것도 깨달음 비스무리한 걸 잊을 리가 없다. 그것이 감정 상태라고 해도 일부분 다시 회상하는 게 가능할 터고, 실제로도 그래 왔다. 그런데, 유독 나를 더 낫게 이끌고 개선하는 일에만 나는 무뎌져 왔다. 일의 경중 문제일 수도 있고 앞서 언급한 강박이 일으킨 사태라고 볼 수 있겠지만, 감정을 논리로 바꾼 게 아닐까 싶다. 공감이 논리적인 영역에 개입해서는 감정이 논리를 침해하는 일일 테지만, 공감이 불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필요하다. 그런데, 나는 이성을 무기로 감정을 휘둘러 이성의 영역으로 한 번 감정이었던 것을 편입하려고 했다. 때로는 이성의 저지를 도약하여, 이성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감정만의 도전이 있다. 덕택에 이성으로 편입되고 말아버린다면 감정은 더이상 도전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나는 나의 태도의 문제가 그러한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감정의 영역에서만 도달할 수 있는 일을,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나의 능력, 내가 통제하기도 힘든 나의 컨디션을 하루하루 확정지으면 나의 의식은 나를 개선할 수 없는 영역에 도달시켰다.

아마도, 습관이 그런 것이고 또한 습관이 바꾼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나를 알면 그런 류의 시간 지체없이, 실패없이 이룰 수 있는 종류의 것이지 않나 싶다.

- 인내라는 보기 좋은 미명 하에, 너무 많은 것들을 속으로 삭혀왔다. 때론 안 좋은 기억, 마음의 화로 어떨 때는 작은 트라우마로. 떠올린다면 그것은 언제나 나의 흑역사며 마음 속으로는 그래야 했다고 간간이 생각하기도 했었다. 과연 내가 일궈놓은 만족은 내게 의미가 있었나? 생각해보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의미있던 때가 적다. 반면에, 내가 그때 내 안으로 속으로 삼켰던 걸 보기 좋게 토해냈다면. 비록 토함에 있어 흉악했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나는 속 편했겠지.

전에 쓴 일기를 살펴봤다. 그저 덤덤하게, 무난하게 읽힐 줄 알았던 문장들이 처음에는 오글거리게, 나중에는 괴리감이 느껴지게 다가왔다. 몇 년 전, 자아관이 별반 달라지지 않을 거란 허무주의의 과거는 지금에 와서는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의아했고, 내 전반의 인생에 걸쳐서 나의 성격을 이끌어온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에 잠기게 되었다. 확실하게 있었을까? 어느 하나 구체적이지 아니해서, 막연했다. 차근차근 바뀌어온 내 성격은 불과 2년, 3년 사이에 탈바꿈됐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나는 나대로 살아왔고, 살아오다보니까 많은 걸 경험하고, 버리고, 추스르고 다 떠나서... 그럭저럭 살아온 나머지 이렇게 됐다. 운명이었을까, 우연이었을까. 이곳에 쓰는 것보다 좀 더 진솔하게 담겼던 나의 현실이었던 문장은 날 것 그대로여서 과거로 감정을 회귀시켰다. 지금의 사고로 그때의 행동들에 웃고, 비웃고, 괴리감을 느끼며, 때론 안쓰러워하고, 또한 흑역사를 들추는 느낌에 소스라치기도 했다. 지금 느끼는 감정을 정리해보니, 과거에 내가 느낀 감정들의 진솔함이 부러웠고, 그런 감정들을 별 탈없이 잘 소화해낸 내가 자랑스러웠고, 그 감정들 내내 아파했을 내가 안쓰러워 동정했다. 현실을 등지려했던 아이가, 자살을 막연하게나마 그려왔던 아이가. 지금은 생을 어떻게서든 이어나가고 있다. 꿈을 세우고, 아직 애송이지만 애써 자맥질하며 바다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 한다. 슬프다기보다는 현재가 있기에 행복하다. 기쁘다. 나는 과거를 과거로 내버려둔 채, 현실을 살련다.

/ 내가 정열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문제가 있었다. 간결하게 압축한 문장으로 적어두었기에 나는 그 문장을 그 때 당시의 감정과 사고를 떠올리며 내 마음 속에서 다시금 풀어헤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활용하지 못했다. 또한, 태도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문장의 문제도 있었다. 영문 번역체와 같은 단어와 그런 단어를 이은 문장은 엄연히 일기로 쓰여야 할 문장의 성질과는 맞지 않았다. 또한, 영문 번역체 같이 쓰인 문장은 한국적인 글을 자주 접하는 내가 편안히 읽을 수 있는 문장은 아니었다. 한 단어 한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지 않고 금방 휘발되어 버렸다. - 문장을 가다듬어 써야 한다. 되도록 일상적인 언어로 일기를 기록하는 편이, 앞으로는 나을 것 같다. 읽기 편하도록 만연체보다는 단문으로.

- 나의 최선에 미치지 못한 채,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위로는 건네지 말자.

가상 의식. 구체적 의미에서의 예(禮). 가상 의식 안에서의 역할을 현실로 끌어들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모르는 일이다. 내가 후회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후회하지 않는 삶은 사는 게 아닌 것처럼.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게 내게 후회로 남는 것은, 그때에는 모르는 일이다. 멍에로 남게 된다. 화를 참는다는 것은, 화가 나지만 화를 풀지 않고 억누른다는 의미다. 어린 아이처럼 화를 내본 적이 언제 적일까. 5년, 10년 헤아려 봐도 멀기만 하다. 어린 아이 때에는 화를 내어도 괜찮았다. 화를 내서 괜찮았다. 화를 내는 이유는 우스꽝스러웠고, 지금은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것도. 아이는 그저 화가 나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서 소리를 지르고 자기가 화가 났다는 것을 피력한다. 그때는 관용이라는 걸 몰랐고, 화를 낸 후 어떤 일들이 있게 되는지 잘 몰랐다. 이제는 안다. 화를 잘못내면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꾹꾹 화를 참으면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화를 내는 일조차 죽은 듯 없고, 화를 내고 싶을 때조차 서로 회피하고 싶어한다. 이제는 모르는 일이다. 서로의 속이 어떻고, 내가 어떤 말을 전해줘야 할 지. 어린 날에 내가 풀지 못했던 뜨거운 화는 지금 남아 화상 같은 흉터를 남겼고, 지금은 되려 화를 그리워 한다. 깔끔한 화도, 비틀린 화도, 냉정을 가장한 화도, 전부 있고 없고 진짜 그런 지조차 모른 채 점점 화는 메말라 가는 한편이다.

- 사람이 아니라 상황을 믿어라

나 혼자 잘 하면 될 것을, 굳이 남의 말을 귀 기울여야 하는지. 쓸쓸하지 못한 인생, 되려거든 하나에만 맞춰지면 어디가 덧나는지 나는 쓸쓸하지도 그렇지 아닌지도 못한다. 털어 놓으면, 괜찮아지고 털어 놓으면 비웃음 당하고, 털어 놓으면 듣는 이는 관심이 없다. 태생이 말이 많은 사람도 관심을 받지 않고 비웃음 당하면 어쩌면 말을 안 하게 되지 않을까. 아니면 미칠 수도 있겠다. 들어주는 누군가가 필요하고, 혼자 말한 대상이 필요하다. 혼자 말한다는 건 그만큼 외롭다는 증거인 걸까, 혹은 불안하다는 증거일 지도 모른다. 나는 그리하여, 끊임없이 이름을 부르고, 불려야 하는 대상일 테다.

- 모든 것은 언어의 문제다.

선과 악이란 내가 봐온 어떤 것들보다 특이한 것이다. 이질적일 만큼 특이하다. 원시에서 우리는 선과 악이란 개념을 전부 가지고 있지 않고, 도덕적 개체로 세상에 들어오는 것도 아닐 텐데 선과 악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됐다고 버젓이 내 앞에 있다. 선과 악 앞에 중립이란 너무나도 추상적이어서 오히려 추상적인 선과 악이 더 구체적으로 보인다. 사고로 원시를 생각하면, 원시에는 한 사람이란 그만큼의 귀중한 노동력을 상징했을 거다. 사람의 몸은 여러 개지만 그 중 내 몸은 하나고 정신은 넓지만 그때 당시는 삶에 초점을 맞춘 정신이었을 뿐이다. 태어나자마자 죽기 태반인 아기들. 사냥 한 번 한 번에 목숨을 걸어야 하고, 그만큼의 용기가 있어도 사냥감을 구하지 못하는 나날들. 그 나날들 속에서 인간이 인간을 죽인다고? 사람이 사람을 먹어? 먹을 수 있다고 쳐도, 내가 죽을 수 있다는 압박은 너무나도 강력한 촉발제다. 부족 내의 다툼과 노동력의 손실은 너무 뼈아픈 죄악이다. 인간을 죽인다는 살인은, 그렇게 죄악이 됐다. 마찬가지로 생존에 방해되는 모든 일체는 악이 될 것이다. 세월은 길다, 언어보다 길었던 세월들은 온갖 악을 축적했다. 언어 이전의 존재했던 구전들은 금기를 낳았고, 금기는 악을 매개했다. 악은 우리가 경험하기에 너무나도 크게 덩치를 불렸고, 저 조로아스터교의 신처럼 우리의 인식 밖으로 뛰쳐나가버렸다. 고작 생존에 도움이 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미연의 방지책들이 신이라는 이름으로 변해버렸다.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나는 무례하고도 무지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나에게 해를 끼치지 못한다. 그들과 나는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려운데, 사람이 힘들기도 한데 위같은 소리는 조금 받아들이기 벅차기도 하다. 어떨 땐 한없이 공감하다가도 어떨 땐 말도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이 사람에게 사기를 치고 죽이는 시대. 역시 검은 머리의 짐승은 믿으면 안 된다는 말을 주워 섬기는 시대에 나는 그런 시대에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해야 할까.

문득, 이 폰이 보여주는 화면 아래 괜한 걱정과 고민을 만들어두고 성찰이랍시고 떠올리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기 위한 규칙인가? 요즘은 문장마다 이해도가 다르다는 걸 체감한다. 단순히 맥락 간의 이해 구조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서사에서 해당 문장이 얼마나 자신의 서사에 반영되고 의미 부여가 됐는지 그에 따라 문장이 갖는 이해도가 달라진다. 내 개인 서사에 반영된 것들이야 위에 저 문장들이지만. 무수한 철학자들이 있고 또한 무수한 문장들이 있기에. 나는 또한 무수한 체험들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문득 아름답다 느끼며, 묘한 외로움에 휩싸이는 듯 하다.

지난 날의 모든 하루하루에 대하여.

>>31 비틀거리며 더더 나의 세상으로 침잠하며 그 침잠 속에서 외부와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인데. 비틀거리는 건 언제나 불안해서, 조금은 겁이 나기도 한다.

고귀하다. 고귀해져라. 모든 聖이 俗에 있으리라.

- 다만, 나를 구원하소서.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있었다. 나의 추락에도 날개가 있었고 높음을 알았기에 높은 곳에서의 추락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 이런 나의 추락이 한갓 추락이 머무르지 않기를. 신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노예로. 산과 산 사이를 단 몇 걸음에 넘어갈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끝없이 고뇌하며 그 안에서 흔들리기를 반복하는 무력한, 또한 무심하기를 기도하는 내가 있다. 나의 무심에 관한 단련이 다만 단련으로서만 그치기 않기를. 불안함과 좌절, 절망과 체념, 직면과 딛고 일어남. 이 모든 연결이 사슬과 사슬이 이어져 고리가 되었다가 풀리는, 그런 우연에 맞는 패턴과는 다르기를. 무력한 내가 이루어낸 힘이기를. 내 삶에의 의지는 이토록 가엾은 것이 아니었기를. 도대체, 몇 번이고 흔들려야 하고, 고뇌해야 하고 장고해야 하고. 그 속에 몇 번이고 자기 혐오에 질색해야 할까. 도대체 몇 번이고 내 머릿속에 내 스스로에 대해 경계하라. 내 스스로에 대해 의심하라. 내 스스르에 대해 통제하라. 내 스스로에 대해 한 발짝 물러나라. 이따위 소리들로 가득 채워야 할까. 일어나고 싶다. 무력한 것아. 뭔가 울력할 때마다 그것이 뭔지 모르겠단 말이다. 벗어나고 싶다. 정체를 모르는 불명에서. 명징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구원이 필요하다. 혼돈을 직면할 용기가 있을런지 모를 내게. 단 한 줄기 빛이 필요하다. 그 빛은 내재되어 있는가. 아니 실재하는가. 다만 구원하소서. 너무 많이 떨었습니다. 이제 잘 모르겠다면 뇌까릴 수 밖에야. 너무 혼란스럽다.

내년이 코앞인데, 나는 일구어 놓은 것이 몇 개인가. 헤아려 보는 마음이 많기도 많구나. 내년이 코앞인데, 나는 일구어 놓은 것을 걱정하다가 또 한 해를 보내는구나.

이제 뭘 해야 할까. 뭘 할 수 있지. 하고 나면 남는 게 뭐지. 아는 게 없다. 해야 되는 것, 할 수 있는 것. 분간이 가지 않는다. 내 세상이 이리도 작았나. 수능이란 큰 목표가 사라지니 허망감은 짙어져 간다. 차라리 잘 봤더라면 이런 걱정은 없었을까. 현재로서는 목표했던 대학은 고사하고, 내린 눈은 어디로 둬야 할지 모르겠다. 모르기만 하니 답답하구나. 도대체 어쩌자고 이리도 우둔했을까. 도대체 어쩌자고. 돌아서 책망한들 어찌하리. 애써 꿋꿋이 삼켜내야지. 한 해가 비중없이 다만 하나로 채워진 느낌이다. 그런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고로 한 해란 다사다난해야 되지 않을까?

또다시 후회가 올라온다. 막상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부족하였다. 이 부족함을 왜 몰라 우둔했을까. 치열할 순 없을까. 여러모로 이번 해는 의미를 준다.

잠도 안 오고, 인생 전반에 대해 훑어본다는 사고가 머릿속에 맴도는 와중에, 이렇게나마 일기에 뭔가를 써보려고 한다. 인생 톺아보기. 잠 드려고 뒤척이는 와중에 생각해보건데, 나의 기억은 극단과 극단을 오간다. 좋았던 기억은 희미하고, 안 좋았던, 지극히 트라우마처럼 느껴지는 기억만이 기억 속에 맴돈다. 그러니 내가 내 인생을 훑어본다는 건 내 인생의 그림자를 훑어보는 일이테고, 절대로 단언컨대 나의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겠지. 그래도 좋다. 나는 나를 알 수 있으니까. 뭐...할게 없기도 하고.

음....가장 오랫된 기억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 이외에는 더 자세히 기억나는 게 없다. 내가 걸음마 떼고 얼마 지나지 않을 무렵....얼마 지나지 않을 무렵인가? 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조부모, 부모, 친척들이 모여 내가 걸음마 떼는 걸 지켜봤다.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tv도 틀어놓지 않고 아무도 소리내지 않는 가운데, 애기 보행기?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는데 걸음을 보조하는 기구를 타고 나는 걸었다. 혼란과 당황, 왜 이런지 모르겠었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이후 특이하게 기억하는 건, 전부 어린이집 때 기억이거나 그 이전 시절에 살았던 아파트에 대한 기억 뿐이다. 아파트가 더 오래된 거니 그것부터 생각해볼까.

사실, 이 일기를 작성하기 이전에 남들의 시선에 대해 내가 너무 의식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지금 이 레스도 그 증명 중 하나일 테지만. 뭐, 그렇게 크게 신경 쓰는 것 같지 않다. 그냥 사고하기 편한 대로 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느낌인가??

아파트에서 살 때, 어린이집을 끝마치고 통학 버스? 그런 곳에서 내려서 우리집 문 앞에 섰는데, 문이 잠겨있다. 전화기도 뭣도 없어서 기다릴 수 밖에 없었지. 아무도 없는 곳, 어린이 혼자. 나는 어처구니 없다기 보다는 긴장했고 두려웠다. 왜 당연히 열리던 문이 안 열리나 했지. 얼마 지나지 않았나? 좀 기다렸긴 했는데 엄마가 와서 나를 보고는 급히 문을 열어주셨다. 그때는 참...뭐랄까. 어처구니없다고 해야 하나. 집에 들어갔는데 아빠가 거실에서 자고 있지 뭔가. 얘가 문을 두드리는데, 문을 안 열어주고 자고 있었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내 어린 시절은 그렇게 떨었는데...

음 그 시절 부근에 일이다. 이건 좀 긴 시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책에서 최근에 읽으면서 기억이 부활했다. 부활이라는 표현도 우습지. 그런 특이한 걸 잊을 수가 없지. 나는 남성이고 성기가 버젓이 달려있다. 옛날 습속인지 뭔지. 무슨 이상한 풍습이 있다. 어린 남성의 성기를 꺼내, 떼간다 떼간다면서 액땜 같은 걸 하는 이상한 풍습. 이게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아동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게도 아동의 심리 상태에 숨고 싶다는 심정과 수치심을 부여하고 또한 그것이 다른 이들 다 보는 공개된 장소에서 일어난다는 점에서 진심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내 어린 시절이 그걸 당했다. 정확한 명칭도 없고, 쌍팔년도 시대도 아니고 2000년대 초반에. 이런 무슨...집안의 시대가 조선인가?? 조선에서도 이런 근본 없는 전통은 없었을 걸?

어린이집인가, 유치원인가. 음, 유치원이다. 기억에 남는 풍경 상 유치원이다. 그때 내가 아빠한테 명치 후려패는 걸 배웠던가? 주먹 말아쥐는 법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하면 내가 타격하면서 주먹이 다치지 않는 걸 배웠었지. 어린이집에서 유치원 넘어간지 얼마 안 된 시기라, 뭐..유치원 끝나갈 때즈음해도 비슷하겠지만. 어린 시절에 그런 걸 배우면 바로 써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뭔가 배웠고 써먹었다. 친한 친구에게. 명치 찌르기를. 얘가 갑자기 억하고 쓰러지는데 낸들 별 수 있나... 폭력은 나쁜 거다 라는 걸 배우기 이전에 사람 패는 것부터 가르치셨다... 알기 이전에 쓰러지는 친구를 보면 깨달았지. 와 쓰벌. 주먹은 잘못 쓰면 안 되는구나 하고. 아, 물론 그때 욕은 안 썼다. 욕이란 걸 알기 시작한 건 초 3,4 인가 그랬을 거다. 청정수였지.

또 한 번은 어린이집 시절이다. 조부모가 운영하는 식당에 갔다. 고깃집이었는데, 고기는 못 먹고, 장사 마무리 지으려는 시기였는지 고기도 잘 안 팔았다. 그런 시기에 내 어린 시절은 그곳에서 밥을 먹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의 내 입에 들여놓기에는 너무나도 큰 김치 조각을 내가 먹으라고 구는 것이다. 그 할아버지라는 작자는...도대체... 얘가 먹기 싫다고 하는데도 계속 먹으라고 다그치지 뭔가. 지금 생각해서 이정도 반응이지. 기억 상,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아, 알겠어요 시전하고 잡쉈지. 다음 날 하도 큰 걸 먹어서 그런지 토하고 난리났다. 어쩐지 속이 이상하더라니. 그런 것도 몰랐던 나라 내가 무슨 큰 일을 낸 줄 알았지. 토를 난평생 해본 기억이 없던 시점인데. 속은 이상하고 머리도 홰가닥했겠다. 그때는 큰 문제인지 몰랐는데, 하필 어린이집 선생님 면전에다가 토를 해버리는 바람에 치우느라 난장판을 펼친 걸 보고 문제라고 생각했지. 그 시절 생각하면 여러 번 옮겨 다닌 어린이집 중에서도 그 어린이집 선생님 두 분이 가장 나으셨다. 나를 다그치지도 않고 걱정부터 하셨으니... 뭐, 그다음이야 엄마 손 잡고 병원갔다가 내 입에서 김치 조각 우겨넣은 사건이 나왔고, 뭐 그다음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하도 이상한 구석이 있는 조부모네라 사과를 하셨으란가... 무슨 예수 믿는 집안이 제사는 또 곧이곧대로 지내냐. 환장하겠네. 내가 배운 역사에서는 그리스도교 믿는 신도들이 늘어나서 제사를 안 지내 문제라더만. 이 집안은 뭐하는 곳이냐...

심지어 종교 믿으라 잘도 말해요. 제사는 뭔데 도대체... 지금에서야 평하지만, 할아버지라는 작자의 풍모와 기풍을 생각했을 때. 솔직히 되고 싶지 않는 형상이다. 애초에 꿈에 그리지도 않는다. 롤모델이라는 단어와는 정반대쪽.

학원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다. 2년내지 3년 조금 안된게 다닌 것 같다. 웅변학원이라고 명칭은 그런데 별 잡다한 걸 다 가르치는 학원이었다. 학원가가 많이 발달을 안할 시기이기도 하고, 강남이나 대치동 같은 학구열만큼의 비용을 지불할 수 없는 곳이여서 그런가. 교사 수준이 많이 낙후되어있다. 아니 무슨 주판 배우는데, 하..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왜 주판을 배웠지? 그걸 왜 부모님은 허락했고? 가장 먼저 강권한게 부모님이였지... 하... 주판. 지금 쓰기나 하나. 계산 스피드는 그걸 어디다가 써먹어. 여하간, 주판 배우면서 주판 교재에 써있는 문제를 푸는데 나는 그걸 암산으로 풀었다. 주판 때려치고. 그 당시의 나의 사고를 추측해보면. 아, 이건 내 기억 속에 잘 남겨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이게 특별히 감정이 들어간 게 아니거든. 그냥 이러면 되지 않을까? 하는 심정에서 한 거다. 그냥 해본 건데 되니까 했지. 주판 솔직히 필요없었다고 생각했다. 암산으로 풀고 머릿속에 온갖 상상을 했지. 8이 새겨진 운석이라 7이 새겨진 운석이 충돌해서 15 이런 식으로. 아마 그때 공룡을 무지막지하게 좋아해서 운석을 떠올린 것 같다. 공룡...참 좋아했었지. 그 시절 남자아이치고 공룡 싫어하던 얘가 있을까. 여튼 주판은 그렇게 넘겼는데, 선생이라는 작자가 창의성을 칭찬하고 주판으로 해야할 일을 암산으로 넘겼다는..아, 이건 내 의견이 아닌 것 같다. 엄마의 아들 자랑 레파토리다. 그때의 나의 심정으로는, 별 이해도 안 되게 얘를 갈궜다고 생각했다. 아니 암산으로 되는데 왜 주판으로 하지? 암산으로 하느라 잘 숙달도 안된 주판으로 계속 어떤 계산식들을 계산해보라고 하더라. 그때 내가 계산하는 것들을 보고 내가 암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안 했나? 아니면 내가 그 부분을 잊었나? 되게 눈빛이 요상하더만. 그 시절 기억을 최대한 되살려봤을 떄는 그 이후로 주판을 안 했던 것 같다.

대신 미술을 했지. 어떨 때는 주판이랑 미술을 둘 다 했다. 둘다 ㅈ같았다는 심정이다. 아는 얘들도 없고, 친구 사귈 그런 환경도 아니었다. 밥먹을 때 옆자리 친구랑 말할 수 있긴 한데, 내가 숫기가 없었나 친화력이 없었나 친구는 잘 못 사귄 걸로 기억한다. 하도 엿같은 경험을 해서 그런가. 어떤 놈이 크레파스가 들어간 케이스로 자기 손을 후려쳐도 멀쩡하다고. 아무런 고통이 없다고 염병하길래. 어린 시절 나는 아 그래? 그럼 나도 해볼래. 나도 안 아플 것 같아. 그러면서 나도 나서려고 했다. 아마 자기 자랑인가, 혹은 그냥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심보였다. 뭐라고 해야 하나, 사기꾼이 사기 치는 걸 당연히 알고 있는 느낌? 그리고 그 사기를 내가 정면에서 파훼할 수 있다는 느낌? 아이여서 그런 고도의 사고는 못하고 직관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근데...그랬더니 얘가 연필을 들고 오더라고. 이걸로도 안 아프다고 하더라고. 어떻게 해서 내가 스스로 그 연필을 손에 꽂아도 된다고 허락을 하는 데까지 설득이 된지 모르겠지만. 뭐, 연필이 손에 꽂혀본 경험이 없으니까 잘도 허락했다. 그리고 연필이 손에 꽂혔지. 손바닥이다. 아팠나? 그냥 눈물이 나오고 우니까 썜들이 오더라. 뭔, 반응도 되게 간편해. 간편하다는 이유가 있다. 그냥 연필심 뽑고 연고 같은 거 바르지도 않고, 소독은 쥐뿔이고 밴드만 붙이더라. 그러고는 병원도 안 가고 엄마가 왔지. 아빠는 안 오더라. 그때는 진짜 아빠가 쌍팔년도 가부장 상이었지. 지금도 설거지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하고 집안일은 거의 손을 놓고 계신다. 참...독하고, 특이하고, 나쁘게 말하면 잉여인간.... 내 손에 연필심 박힌 이후로 그 학원에서 친구 사귀기는 물 건너갔고. 연필심 박힌 이후인가, 연필심 박힌 이전인가. 웅변학원 원장으로 추측되는 중년의 아저씨 교사가 혼자 입을 열며 코흘리개 얘들 앉혀놓고 자기 썰 푸는 시간이 있다. 그때가 짖궃게 구는 게 트랜드로 자리잡혔나... 뭔, 이상한 트랜드를 들고 왔지. 요상한 별명 지어주기. 연필심 박힌 이후로 찌질이라는 별명을 붙인 교사면 그건 학원 강사도 붙일 필요가 없는 쓰레기고. 박힌 이전이라면 잘 모르겠다. 내가 찌질하게 굴었나? 그때 찌질하다는 의미를 처음 알았다. 지금도 잘 안 쓰는데. 그때는 알았을까? 그냥 별명 생기는데, 날 잘 알지도 못하고. 음, 그떄는 잘 알려진다는 개념이 없었다. 내게 낯설다라는 개념은 있었지. 내게 낯선 인물이 갑자기 내 별명을 짓고, 남들이 그러니까 형, 누나, 나한테 연필심 박은 것과 관련된 무리들이 전부 나를 보는데 조금 위축되고 말았던 것 같다. 나중에야 자랑인가? 그냥 별명이 생겼다고 좋다고 엄마한테 말했더니 웃더라. 옛날은 참 희안해요. 지금 같은 시대에 찌질이라고 교사가 직접 애한테 별명을 붙였다고 하면 미친 놈 아니냐. 얘들 앉혀다가 입 열 자격이 있냐. 가정 교육을 어떻게 받았냐고 듣는 세상인데. 참 많이 달라졌고, 이게 옳다고 생각한다. 얘한테 찌질이? 돌았나... 찌질이라는 뜻도 모르는 얘가 갑자기 찌질이 취급 당했는데. 댁 문제는 아니고?

글쎄, 내가 그 학원에서 뭐했을까? 가르친다는 웅변은 단 1도 배우지 못했지. 그래도 지금은 말 하난 잘한다. 엄마는 그 학원을 왜 나한테 가게 했지? 나는 그 학원이 죽도록 싫었다. 죽을만큼 싫다는 개념은 몰랐고, 싫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는 알아서, 답답하고 갑갑한 이 느낌이 싫다는 건 알았다. 다만, 그 싫음에서 나를 구제하는 방법을 몰랐지. 웅변학원에서 가르치는 비정식 인가를 받았겠지. 미술을 가르침받고 주판을 가르침받았지. 미술도 뭐 별거 없다. 그냥 취미가 미술인 인간 하나 앉혀놓고 그 사람이 그림 그리게 해서, 앞에 칠판에다가 걸어놓고 따라 그리라는 형식이었지. 와, 정말 버러지 같은 형식이다. 연필과 각잡고 그린다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집에서 온갖 추상 미술을 그리던 아이가 아니고, 음 내 입에다가 엄마 립스틱으로 난장판 해본 경험은 있지. 혹은 추상 미술 같은 걸 알려주는 tv를 본 것도 아니다. 그떈 뽀로로가 나오지도 않았다. 그랬는데, 그림을 그리라... 돌았지. 알려주지도 않아요. 얘들 배려는 하나? 할 수는 있는 학원인가? 내가 볼 땐 거기는 학원이 아니다. 여하간, 미술이나 주판 등등 다 배워야 할 거 다 배우면 tv가 있는 교실 같은 곳에서 여가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드럽게 배우는 건 없고 배우도 영 쓸 데가 없는 것 같아서 교실을 탈출하면 tv가 있는 교실로 갔지. 그때가 지하철도 999를 한국어 더빙으로 방송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거 보면서 낄낄 웃다가 다시 배우는 곳으로 끌려가고 그랬지. 의미가 없다. 의미가. 그때는 그런 개념도 몰라서...저인지 상태라고 하나? 존나 갑갑하고 답답하고. 이걸 구제할 수는 없나 싶었지. 내가 그렇게 싫었는데 내 가족들 앞에서 내가 어떻게 했는데 엄마가 알지도 못하더라. 왜 그랬지? 나는 잘 알 수 있을까? 내 자식이 그런다면?

학원 차 타고 집으로 귀가하는 형식이었다. 귀가라는 놈이 그렇게 좋았지. 그 안에서 음담패설의 즐거움은 어떻게 알았는지, 아 이거 생각하니까 친구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중 한명은 초등학교에서도 친하게 지냈다. 여하간 음담패설을 했었다. 주로 첫 삘 받는 대상은 지하철도 999의 메텔. 가끔 그런 장면이 나온다. 그런 걸로, 도무지 나신이라는 용어도 벌거벗었다라는 것도 잘 모르면서 그런 것에는 잘 반응했지.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긴 하다. 그걸 내가 직접 주도했으니. 얘들도 다 한 마음 한 뜻이었는지 잘도 주고 받았다. 내가 직접 주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지냈을지 궁금할 지경으로. 그 학원 다닐 막판 즈음에는 내가 어떨결에 엄마한테 학원 시간 줄이면 안 된다고 물었지. 줄이면 안된다고라는 개념을 몰랐으니까 없거나 있거나 둘 중 하나였으니까 다니지 않으면 안 되냐고 물었을 터다. 미적지근한 허락이었다. 연필심이 손바닥에 박혔을 내가 다니지 않으면 안 되겠냐고 묻지 않았는데, 내가 그럴 정도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아니다. 그런 거 없고. 그냥 왜 안 다니려고 하는데라는 순수한 궁금증이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진심인가? 진심으로 나를 이해하려고,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었나? 그렇게 힘들 게 생난리를 치며 낳았는데. 왜 그랬지? 뭐, 내게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으니까. 근데 아이의 눈에 뭐가 필터링될 게 있다고. 아마 맞을 거다. 진짜 순수한 궁금증인거. 별거 아닌 거라 치부했고, 반쯤 수락하면서 점심 시간 이전에 집에 오는 형국이 되었지. 그것만으로 겁나 행복해하니까 그때서야 학원 뺴주더만. 지금 생각하면 하등 쓸모도 없는 학원이고, 왜 웅변인지 죽어도 모를 곳이것만. 왜 다니게 했지? 진짜, 진짜 그 선택이 어리석었다.

쓰면 쓸수록 억울하다. 억울해....

내가 소심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니었나봐.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해. 개념은 몰라서 용어를 몰라서 말도 못하는 걸 숫기 없다고 포장을 해? 교양이 없던 부모야..,.,, 그 선생에 그 학원이고,

내가 또 하나의 노답이라고 생각하는 선생이 있지. 어린이집 선생이었는데. 이건 님자 붙이기도 뭣하네. 하... 통학버스에서 귀가하는 시점이었을 거다. 내가 피곤해서 자는데, 지금의 성인 몸뚱아리가 얄밉게 자는 것도 아니고 어린이집 갓 들어간 얘가 피곤해서 조는데, 집 앞에 왔다가 당시 내가 쓰고 있던 모자 모퉁이로 내 대가리를 후리네? 그것 때문에 깨긴 했는데, 씨발년. 너는 욕 먹어도 싸다. 내가 사람 대상으로 욕은 안 쓰려고 했는데. 또 뭐했더라. 유독 나만 갈구더라. 다들 나만 칭찬했는데 그 작자는 아니었다. 내가 하도 배알이 꼴려서 그 작자 서랍 쌩 난리 치려고 하니까. 그랬나? 기억에 혼선이 있는데, 그 작자의 것으로 해당되는 걸 고의는 아니로 해치긴 했다. 그 사람의 소유 물건을 건들면 안 된다는 생각은 있었으니까 내 잘못은 맞다. 근데, 그게 그 작자의 것인줄 알았나. 아닌가, 그 사람의 것이라는 규정이 있나? 그냥 자신의 권위가 침해당하는 게 싫었나? 아닌데. 나랑 똑같은 짓을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했던 얘가 있는데. 아무리 말을 잘했다고 해도 거기선 나랑 같이 혼났어야지. 왜 나만 무릎 꿇고 손 들고 있었지? 내가 손들고 있을 때, 다시 찾아와서 뭐라 한 것 같은데 이해하지 못해서 그냥 흘려넘겼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거라면 왜 그랬는지 묻는게 아니라 아마 욕 아니었을까. 인신공격에 해당하는 욕. 다시 해도 지금 시대였으면. 하다보면 부모가 좀 정상적이었으면 그 년은 갔다. 근데 나도 특이한게, 왜 그때는 역겹고 싫다는 것보다 오기가 났지? 처음 받아보는 적의 떄문이었을까? 오기는 좋았긴 한데, 아마 그 권위 침해 머시기도 오기로 일어난 사건이었을 거다. 다만 그 사건 이후로 억압과 악제에 대한 도전이라는 개념 부족으로 싫어지고 회피하기 시작했지.

어린이집 다니면서 별별 희안한 어린이들을 만났다.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진짜 친해서 걔가 다른 어린이집으로 간다고 했을 때 그 어린이집으로 보내달라고 때를 쓰고 울기도 했는데. 그런 친구 이름과 얼굴을 기억 안나고, 나를 엿먹인 얘들 얼굴만 기억 난다. 이름하고. 내가 초등학교 동창회 안 갈 이유가 늘었지. 배알 꼴려서 못가지. 가서 뭐하지. 어린이집에 다 내 또래만 있었는데, 유치원 갈 형들이 2명 있기도 했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괴담이나 판타지로는 그 또래보다는 잘 알고 있어 괴상한 지식을 주입하기도 했고. 나름 동경했던 것 같은데, 지금 보면 경멸하지 않을까? 대개 그런 인간군상은 좋지 않던데. 후드 푹 눌러쓰고 길 가다가 차에 부딪히기도 했지. 인솔 선생님이 당황하셨지... 또 한 번은 블럭을 쌓는데, 어떤 얘가 자기 블럭을 던져서 내 블럭을 무너트리더라? 던져서 무너트렸는지 자기가 와서 직접 무너트렸는지 부수기는 부섰지. 나도 화나서 그 아이 걸 부쉈지. 그때 내가 영악하지 못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고대의 법률 근원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 아이가 울면서 눈물은 그 증거입니다라는 말이 실현됐다. 선생님이라는 작자가 제대로 사실 확인도 안하고 그 아이 말만 믿고 나를 추궁하더라. 나는 계속해서 벌을 받아...받지 않았다. 그냥 넘어갔지. 여하간 나는 계속해서 나의 무죄를 주장하고 그 아이가 그랬다고 했다. 내 일기는 온전히 내 기억에 의존한다. 그 격한 감정에서 나온 기억은 거짓이라는 환영으로 가려지지 않는다. 내 기억이 맞겠지. 나는 옳았고, 그 아이는 울음으로서 순수를 증명하고자 했고 선생들은 잘만 넘어갔지. 그걸 뭐 아이 돌봄 일기 같은게 있어서 그 일을 거기에다가 적었다. 엄마가 보더니만 나에게 왜 거짓말을 했냐고 묻더라. 나는 아니라고, 나는 무죄라고 항변했는데. 내 누나라는 작자가 그때부터 거짓말을 술술 나불대기 시작해서 그런가. 잘 안 믿더라고. 나는 그 당시부터 줄곧 거짓말은 하나도 치지 않고 엄마가 온갖 이상한 역정을 내도 다 받아줬는데. 위에 서술했던 이상한 풍속부터 카레 먹으면 토할 것 같다고 말해도 먹으라고 화내면서 우겨넣는 걸 꿋꿋이 먹다가 토하고. 화나서 집 밖에 나가라는 걸 누나가 같이 집밖에 나가서 손 꼭쥐고 어디로 갈까 이러고 있고. 엄마가 육아에 대해 본능과 귓동냥으로 밖에 몰랐던 게 화근이다. 생각 나는 것만 해도 전부 머저리다. 지식이 없었다...내가 개념이 없다고 서술한 바처럼 그렇게 포장하고 싶다. 포장을 벗기면 내가 욕하던 자처럼 되지 않을까...그래도 나를 힘들게 낳아주셨다라는 사실이 너무 크다. ...근데 왜 나를 안 믿고 그딴 개짓거리들을 행한거지?

그 놈의 더러운 이중잣대. 최근까지도 돈이 없으면 재테크라도 하라니까. 자기는 그런 거 못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왜 입으로는 돈이 없다고 달고 사는데. 공부를 하라니까, 되려 나한테 공부하라고 하고.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게임 하나 해보지도 않고 pc방은 논문 쓰는 용도로나 친구들과 가봤던 내가 수능 끝나고 게임하고 있으니까, 내 방에 와서는 게임 하고 있냐고 윽박지르고. 이제 윽박 같지도 않다. 그러다가 내가 엄마가 폰 게임하는 거 보고 왜 게임 하냐고 그러면 그놈의 이중잣대!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거야. 사춘기...그래 인정하다, 사춘기에 해당하는 중학교 시절에 그 이면을 잠시나마 목도하고 그 인간 군상 안에 있는 정신 세계를 목도하고. 나보다 돈이 중하냐는 말에 빈말로도 내가 중하다는 말을 못 들은 그때. 나는 그 역거움을 극상으로 느꼈던 것 같다. 아마 좀 못 보다가 다시 만나서 몇마디 안부를 주고 받다 보면 질색하지 않을까? 그나마 괜찮아진 게 저런데. 내 어린시절에는 얼마나 엿같았단 말인가. 지금 내가 내 격정을 토로한다고 해도 그대로 수용할 수 있을까? 그녀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럴 만한 지식도, 그럴 만한 동기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한 번 빡쳐서 돈 없는 거 다 아니까, 내 자취방도 못 구해서 내가 직접 알바해서 벌어야 되는 거 아니까, 그렇게 찢어지듯 가난한 거 다 아니까. 집 나가라고 해도 나간다고 했을 때 한 번 나를 이해하려고 시도했긴 했지. 그 다음날 나한테 엄마가 할 말 없냐고 물었을 때 끝까지 다 말했어야 했나? 내가 실수라도 한 건가... 그랬으면 정말...끔찍할 텐데. 내가 직접 내 환경을 바꿀 기회를 놓쳐버린 건가... 그렇다면 앞으로는 나는 이 환경에서 도피해야 한다. 미안하지만 부모님은 손자, 손녀가 있어도 자주 못볼 거다. 평생 이모양 이꼴이면.

어떻게 이 집안에서 어린 시절 보낸 거 생각하면 정상적인 게 없냐. 쌍팔년도 아버지상 같은 작자에게 궁둥이 후려맞은 것 밖에 생각 안나네. 엄마 출산 이후 몸관리 할 때도 수발 안 들어줬댔나. 뭐하는 인간이지? 지금은 많이 후덕해진 건가? 저게?? 와....나 진짜 대견하네. 몇가지 성격적인 결함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완벽일 리는 없으니. 이정도는 잘 컸다. 이 ㅈ같은 가정 하에서.

그 놈의 공동체주의와 억압하고 갈구면 다 될 거라 생각하는 더러운 집안....

다시 생각해도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개념과 지식. 경험이 없던 것이지 소심함까지는 아니었다. 찌질함은 더더욱 아니고. 숫기가 없나? 통학 버스 안에서 남자얘들 모아놓고 음담패설 짖껄이는데 숫기가 없어? 도중에 조금 역함을 느껴서 그만 두긴 했는데, 그걸 선동한 얘가 숫기가 없을 리가... 다시 생각해도 나란 놈은 환경 때문에 이렇게 된 게 아닐까 싶다. 너무 책임 전가인가. 글쎄, 반쯤 그럴 순 있어도, 대부분은 아닐 걸? 하...어린 시절, 유소년 시절은 진짜 파도파도 끝이 없구나! 진짜 이정도면 선방했네. 책이 왕도였어. 책이 핵심이었지. 그러고 보니, 어미라는 작자는 내게 숫자를 1부터 10까지 외우게끔 했다. 트럼프 카드로 했었지. 아시다시피 1은 트럼프에서 a다. 근데 아라비아 숫자도 이제 막 떼기 시작한 애한테 생판 처음 보는 a를 들먹이면서 이게 1이라고 하면 난 어떻게 반응해야 되지? 체벌했었나? 눈물 찔끔 나오는 거 보며 체벌했던 것 같다. 누나라는 작자는 그때 뒷짐지고 구경하고 있었다. 도움이 안 되고 비웃고 있었다. 지금 와서 보면 학벌은 내가 더 좋게 땄으니, 그 비웃음은 누굴 위한 것이었을까? 그 조기교육 덕분이라고? 아서라...부모라는 작자들은 입시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온종일 내가 알아서 했지. 대치동이 좀 부럽긴 하다. 배경도 힘이 된다. 부정할 수 없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누구보다 직관으로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이의 유년은 처음은, 사랑으로 보살펴야 한다. 누가 뭐래도 그 아이가 옳다는 것처럼. 세상이 다 틀렸다고 해도 그 아이만은 내가 믿는다는 것처럼. 옳음과 그름은 알려주면 된다. 그걸 행동하게 알려주면 된다. 그 구분이 익숙하게 만들어주면 된다. 처음부터 구제불능의 악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알려준다.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불을 알려준 것처럼. 알려준다. 아이에게 사랑을.

억압된 자아와 자기비하, 허무감. 어떻게 자기 구제에 성공하다시피 한 걸까? 그건 궁금하다.

코시국에 온전히 집에 나 혼자 있게 됐기 때문 아닐까? 억압받은 자아가 내 잘못이 아니라고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을 알려준 지식 때문 아니었을까? 그때 철학 책을 읽으면 했던 초월 명상의 일종도 도움이 되어 겠지. 이 일기의 초반부와 나의 생애 톺아보기도 도움이 됐을 거다. 시종일관 비웃기부터 시작한 어미와는 다르다. 온전한 내가 있었기에, 반문할 수 있고 포용할 수 있었기에. 내가 있다. 내, 나, 혼자. 나... 이것이 또 하나의 문제가 될 수 있을까...

차마 위쪽을 읽어볼 엄두가 안 난다. 들어오자마자 나를 반겨주는 저 문장은 무언가... 의미 자체는 맞지만, 뭔가 오글거린다.

음, 재수를 하기로 했다. 누군가에게는 말했지만, 내 자신에게는 닿았다가 멀어진 것 같다. 이곳에 적어 다시 닿게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마음에 적어본다.

혹시 이 재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일기장을 들여다볼 누군가를 위해 몇 줌의 재미를 첨가해볼까.

나라는 사람은 인간관계를 신경쓰지 않는다. 어, 이렇게 쓰면 내가 방구석 히키코모리처럼 들리겠지만 아니다. 좀 다른 차원의 의미다. 쓰면서 깨달았지만, 이건 본질적으로 재밌을 수 없는 문장들 같다. 아무튼, 대강 나라는 사람의 일부를 소개하겠다. 공자가 말했다. 수기한 후 치인하라고. 온전히 풀자면, 자기를 돌본 후 타인을 다스리라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보편적으로 당연한 것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 편이지 않은가? 예를 들어, 숨 쉬는 거라든가 걷는 거라든가. 밥을 먹고 싶다든가 하는 것들. 숨 쉬는 게 어떻게 가능하지? 하고 궁금증을 느끼는 건, 당장 내가 돈을 어떻게 벌어야하지? 쟤랑 어떻게 친해지지? 성적을 어떻게 올리지?라는 것에 궁금증을 느끼는 것보다 질적으로 약하다. 모두가 잘하는 일이고, 모두가 할 줄 알아서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이다. 그런 종류에 대개 자기 자신과 관련된 일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이땐 이렇게 해야지. 저땐 이렇게 해야지하는 생각이 쌓이면 어느새 당연해져서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 이른바 패턴화가 된다. 페르소나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앞줄에서 내가 이런 사람이다라고 소개하겠다고 했는데, 윗 레스를 읽었다면, 대충 감을 잡았겠지만 나는 글을 쓴다면 많이 삼천포로 빠진다. 스레딕에서는 더 그런 것 같다. 물론 가변적이다. 가변까지 명시적으로 해둬야 괜찮을 것 같다. 아무튼, 이 이야기들을 왜 했나면. 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방향으로 생각을 패턴화했다. 보편적인 경향으로 보면, 질적으로 궁금증이 떨어지는 것에 왜 관심을 두었냐 하면. 공자의 영향이 있었고, 성격 자체가 소심한 면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기에, 나는 내 내면으로 침착하는 편이다. 재수와 이 내용이 관련이 있다.

나름 좋은 대학에 붙었다고 생각한다. 특정짓지만 않으면 익명성이 보장되는 듯하니 읊어보자면. 현역일 당시, 정시로 3개를 썼을 때. 중경외시 라인에 2개 경북대부산대 라인에 하나를 썼다. 과는 문과 최상위 학과를 갈겼다. 그리고 쓴 곳 중에 하나가 되어 그 대학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목표하던 곳은 아니지만, 나름 괜찮은데 아닌가 싶었다. 학벌로 꿀릴 만한 일은 드물 테니까. 애초에 공무원 시험 같은 걸 염두해 두고 있었고 말이다.

에타에 가입하고 과톡에 들어가고... 이것저것 바쁘게 흘러가는 나날이었다. 시간표를 짜느라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으며, 과외를 하느라 그 준비로 바쁘기도 했다. 각기 뿔뿔이 흩어지는 친구들을 위해 술을 마시기도 했다. 수능 끝난 직후에 마음이 허전했고 거대한 목표를 잃었다는 사실에 미래가 불투명하게만 보였는데. 그래서 재수할까. 잘 못봐서, 아쉽고 허망하고. 내 자신이 우둔하다고도 느꼈는데. 거짓말처럼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는 나름 바쁘게. 그리고 계획적으로 살고 있었다. 대학. 그 두 글자가 머지 않았고, 실제로 그러했다. 단. 에타 수강평을 보기 전까지는...전공 교수 수강평이 개떡 같았다. 그 이후부터는 특정이 가능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줄이겠지만. 친일 성향을 드러낸 발언으로 논란이 되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았다. 위에서 내 내면에 침착했다고 했는데, 전공 교수라는 인물은 내 사전의 트라우마와 한국인 고유의 민족의식을 건드렸다. 신념이라 해야 할까, 사상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이 계속 반발을 일으키는데. 나는 필히 그 반발에 대응해야 했다. 나는 대학에서까지 인간관계로 피곤하고 싶지 않았다. 속히 대학 등록금 반환 신청을 하고 인강 사이트에서 판매중이던 패스를 샀다. 집안 분위기 자체도 대학을 바꿀 마음이 있다면 반수보다 재수를 하라는 분위기였다. 죄책감이 드는 건 사실이다. 위에서 엄마에 대해서 무어라 적어놓았긴 했는데. 절망의 깊이만큼 행복의 높이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또한, 어쩌다 보니 엄마 개인의 서사를 들어서, 이럴 수 밖에 없었다는 걸 인지한 편이기도 하고... 우리 둘다 서툴렀던 거다. 처음 바꾸는 게 나인 편이 낫겠지. 그렇게 된 거다. 재수 결정은.

진정한 쌍년 오브 개쌍년은 누나였다. 내 지갑에서 10만원도 홀라당 빼먹어 가더니. 코로나로 수입이 줄어들어서 본격적으로 월급이 반토막나고 6개월동안 빚을 최소 2000을 졌다는 걸 밝혔다. 정확히는 밝혀졌다. 사촌 누나로 인해서. 도대체 뭐하느라 그 빚이 생겼을까 했더니. 저축일랑 신경도 안 쓰고. 하루 종일 고기만 처먹으려하고, 담배값은 담배값 대로 나가고...금전 개념이 모자랐다. 그냥 빡대가리 아닌가?

어느새 이 스레도 95개째다.

뭔가 많이 쓰긴 했구나...

오랜만에 윗레스들을 읽었어. 추억이네. 하루하루, 나는 다 기억 못해. 분명. 그 순간들은 내 뇌속 어딘가에 고이고이 모셔두고 있겠지만. 아파서일까? 금방 날아가서일까. 나는, 다 기억 못해. 그래도 다행인 건,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두고 있다는 거고.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그때 내가 어땠고. ..그때 내가 뭘 생각했고...그때, 내가 뭘 느꼈는지 알 수 있었다는 거야. 후후...짧은 시간인데. 길다면 길긴한데. 짧은 시간 같았는데. 이렇게나 훌쩍 가버리고 커버렸구나. 무진장 제멋대로네. 단순히 시간이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지식, 지혜가 부족했던 걸까? 무엇이 됐든 시간이 약이었던 같아. 나날이 갈수록, 나는 더더 성장해나가는구나. 그거면 된 거겠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슬픔. 나에 대한 좌절감...혼돈이 불러오는 무력감. 그 모든 것 속에서 나는 배우고, 깨닫고. 때론 무너지기도 하고..언제나 그랬듯 욕도 하고 가끔 울기도 하고. 가끔 또 가끔은 비참해지고. 그 모든 순간 순간에서도..나는 괜찮아지고 있는 거겠지? 역설적이게도 말야. 나는 늘 화내고 좌절하고 있는 채로 적었는데...왜 이걸 읽는 나는 마음이 푸근해질까... 결국 다 괜찮아질 거라고. 그 어렸던 내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야, 좀만 더 버텨. 하고.

>>97 성장해나가고, 때로 나에 대해서 자조하고. 자조를 머금을 때면, 나는 내 성장이 하잘 것 없고 무기력해지지만. 지나고 보면 희미해져있다. 어떻게 삶에 내게 거는 기대에 부응할 수 있나라고 하였다

- 가족은 가족이란 이름 하에 되려 울타리를 쌓고 있는가?

빅터 프랭클린의 수용소에서 라는 책에서 현재의 고통이 극심한 수감자가 과거를 곱씹으며 현재에 무감하게 보낸다는데. 어째 위에 적힌 내용이 그런 것 같기도? 만약 그렇다면 내가 그렇게 심한 고통을 겪었나? 상대적이라고 했긴 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될 것 같다.
스크랩하기
레스 작성
762레스 새 책 줄게 장미 다오 1분 전 new 918 Hit
일기 2021/03/08 23:24:29 이름 : 이름없음
42레스 23, Restart🌸 12분 전 new 33 Hit
일기 2021/04/12 11:22:40 이름 : ◆85RyK588rAk
483레스 갈비에 버무린 간장양념 15분 전 new 698 Hit
일기 2021/02/05 18:50:57 이름 : ◆5SLdQlhhule
104레스 오늘도 파란버스를 타고🚌 37분 전 new 140 Hit
일기 2021/03/17 23:51:04 이름 :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963레스 또 내 잘못이지 45분 전 new 1329 Hit
일기 2020/12/26 15:26:34 이름 : 노마
472레스 신기루 53분 전 new 572 Hit
일기 2021/03/09 16:37:52 이름 : 이름없음
791레스 🎻 tranquillo: 조용하게 차분하게🎻 1시간 전 new 721 Hit
일기 2021/02/05 19:20:52 이름 : ◆JXxUZclg59c
432레스 🌱 새싹레주는 고삼 1시간 전 new 1306 Hit
일기 2020/11/29 04:43:14 이름 : 새싹레주◆cIHBbvhf9eG
146레스 일기판 QnA 스레: 하루에 하나씩 묻고 답하기 1시간 전 new 814 Hit
일기 2020/11/11 09:42:33 이름 : 이름없음
798레스 🌺 그때는 아직 꽃이 아름다운 걸 1시간 전 new 821 Hit
일기 2021/02/12 00:26:46 이름 : ◆hhvA1wk7dXx
697레스 Where to go? 2시간 전 new 987 Hit
일기 2020/08/12 13:42:40 이름 : 이름없음
203레스 나의 라임 개쩌는 오렌지나무 2시간 전 new 208 Hit
일기 2021/04/04 20:14:56 이름 : ㄴㅇㄷㅎㅇ ◆o584NwNuq4Z
678레스 나의 하루의 끝을 접으면서 하는 말 2시간 전 new 1191 Hit
일기 2019/06/16 21:31:56 이름 : ◆1zPhcHu1inV
609레스 진짜로 그날 하루의 기분과 일상 적는 일기 스레 2시간 전 new 1235 Hit
일기 2019/08/21 21:25:45 이름 : ◆dTPck7f9eIN
546레스 시리야, 3시간 전 new 1258 Hit
일기 2020/03/18 23:49:10 이름 : ◆nxBdSFa8m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