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는 대로 읽기.

(…)영혼을 산산조각 내는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 범행을 저지르는 가해자 역시 동일한 일을 겪어 보는 편이 더 좋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남에게 더 능숙하게 상처를 준다. 남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전문가들은 과연 어느 쪽을 베면 더 효과적인지 잘 알고 있다. -산소 도둑의 일기, 익명인.

그녀가 지금 어딘가에서 이 책을 읽고 있을 가능성도 존재하겠지. 그러니 나머지 여러분들은 잠시만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려 주길 바란다, 다음 부분은 오직 그녀에게만 전하는 말이니까. (……) 이제 여러분은 다시 이쪽을 봐도 된다. -산소 도둑의 일기, 익명인.

연애는 암으로 죽은 것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 갔다. 그래, 정말로 목숨을 끊게 한 것은 아니겠지만, 더 많은 삶들을 둔화시켰다. 더 많은 희망을 지워 버리고, 더 많은 약물을 팔았으며,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하는 원천이 되었지. -산소 도둑의 일기, 익명인.

광고라는 건 가짜다. 일단 그걸 알게 되었다면, 당신에겐 그나마 구제받을 기회가 있다. -산소 도둑의 일기, 익명인.

(…)자살은 오랜 친구처럼 찾아온다. -산소 도둑의 일기, 익명인.

하지만 우리가 섹스를 하는 순간에도 그녀와 나 사이에는 무엇인가가 가로막혀 있었다. 뭔가 나를 위축되게 하였던 것, 그게 그녀가 나를 미워한다는 기분 같은 건 아니고, 어쩌면 그녀의 자기혐오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자기혐오 같은 것이 더 맞겠다. 그 감정은 그녀가 직접 처리할 몫이고, 나는 결코 그 감정에 감히 다가갈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었다. /내게 주어지지 않은 그 특권. -산소 도둑의 일기, 익명인.

(…)삶은 임의적으로 일어나는 순간들의 연속일 뿐이며, 그러므로 우리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엔 아무런 의미나 구조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그저 이유없이 일어나거나 혹은 일어나지 않는다. -산소 도둑의 일기, 익명인.

(돌이켜 보는, 회상이라는 게 없다면 우린 도대체 어디에 가 있을 것인가?) -산소 도둑의 일기, 익명인.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많은 요구를 하지 않는 법이니까. -산소 도둑의 일기, 익명인.

그들이 천성적으로 배려심과 사랑 넘치는 착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곧 그들의 발목을 잡아 깊은 물 아래로 가라앉게 하는 맷돌이 되었다는 점에 나는 주목했다. 공식은 완벽하다. 간호사는 점점 자기 환자한테 연민을 느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하려 한다. 하지만 환자는 외적인 질병으로 고통받는 게 아니라, 자신이 자처한 상처로부터 고통을 받는다. 간호사는 이런 고통으로부터 환자를 구하고자 한다. 환자는 그냐가 자신의 고통을 똑같이 느껴보기를 원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녀가 어떻게 그를 이해하겠는가? -산소 도둑의 일기, 익명인.

그대들 앞에 이런 어처구니없음을 가능케 한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시간은, 우리들의 세월은 침묵도, 반성도 다 부끄러운 죄다 _숨 쉬기도 미안한 4월, 함민복.

우리는 좀더 중요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다. 좀더 좋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충분히 나빠지지 못했고 밤은 충분히 차갑지 못했으며 말들은 움찔거리며 멈추어 서 있을 뿐이었다. -더 나쁜 쪽으로, 김사과.

지금 이건 마치 악몽 같지 않아? 그런데 악몽이 아닌 꿈이 있어? 너는 악몽이 아닌 꿈을 꾸어본 적이 있어? -더 나쁜 쪽으로, 김사과.

(…)아마도 그 점에서 나는 실패했다. 나는 내가 가진 조건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는 것이다. 단지 역겨워한다. 내가 가진 그리고 가지지 못한 모든 것들에 대하여. 하지만 도대체 역겨워하지 않을 수가 있어? 오직 그것을 모른다. 모든 것을 다 알지만 그 앎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을 알지 못한다. -더 나쁜 쪽으로, 김사과.

처음 본 순간부터 그와 자고 싶었다. 자는 것만이 그의 진짜를 보게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나이들었고, 유명하며, 모든 것을 경험했다. 그러니 그가 정직해질 수 있는 그때뿐일 거라고, 그를 아는 방법은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더 나쁜 쪽으로, 김사과.

“(…)실패할 때마다 모든 게 조금씩 불확실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불확실해진 단어들을 버렸다. 이후 사용 가능한 단어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 너무 많은 말들이 복잡하게 엉겨붙은 채, 사람들의 삶 속에 광고처럼 끼어든다. 누군가의 삶에 내가 하는 말이 그렇게 끼어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죽을 만큼 두렵다. 그래서 나는 적게 말하는 것을 택했다. 결국 나는 모든 말을 잃게 될 것이다. 상관없다. 내 삶은 실패했다. 나는 자살과, 여자 초등학생에 관심이 없다.” -더 나쁜 쪽으로, 김사과.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이 구닥다리 얘기로 들리겠지만 그 구닥다리는 여전히 현대적이며 끊임없이 새롭다. 구닥다리 얘기없이 현대인들은 단 한 마디도 말할 수 없다. 모든 구식 개념들이 형체를 잃고 부서져내려, 더이상 원래의 사용법을 유추할 수 없을 만큼 자폐적인 즐거움이 되어버렸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들의 바깥으로 나아갈 수 없다(……).” -더 나쁜 쪽으로, 김사과.

“(…)아마 우리는 실패할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누군가를 필요로 하며, 결국 아무데도 닿지 못할 것이다. 끝은 영원히 오지 않고, 같은 시작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 실패에는 어떤 교훈도 없을 것이다(……).” -더 나쁜 곳으로, 김사과.

“삶은 호텔 같았고 매일매일은 호텔의 욕실에 놓인 일회용 샴푸 같았다. 그것을 도대체 다 써버릴 수가 없었다.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새것이 놓여 있었다. 거기엔 오직 시작만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을 망쳤다. 시작하고 또 시작했다. 낮과 밤이 바뀌는 것을 눈치챌 수 없을 때까지 우리는 계속 시작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심지어 미쳐버리지도 못했다.” -더 나쁜 쪽으로, 김사과.

—그 여자는 섹스도 똑똑하게 했어. -더 나쁜 쪽으로, 김사과.

“죽을 거야?” (……) “생각중이야.” “난 죽을 건데. 나랑 같이 죽을래?” -더 나쁜 쪽으로, 김사과.

(그 씨발년이 나를 빛속으로 꺼내어. 엄마. 나는 태어나던 순간부터 형광등 불빛이 진짜 싫었어.) -더 나쁜 곳으로, 김사과.

요즘 기분이 어떠세요, 언니? 죽고 싶지 않으세요, 언니? 저는 요즘 더 보이 위드 디 아랍 스트랩을 듣는데, 그럼 더 죽고 싶어진다고…… 언니, 언니는 자해해보셨어요? 언니, 자해에는 어떤 칼이 좋아요? 언니, 술먹고 모르는 남자랑 섹스해본 적 있어요? 언니, 언니는 왜 살아요? 왜 안 뒈지고 계속 살아 있어요? -더 나쁜 쪽으로, 김사과.

(…)우리는 삶 속에서 절망을 피하는 길은 실종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배운 것을 적용할 삶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더 나쁜 쪽으로, 김사과.

왜일까. 나는 어른인데, 때로 어린애의 시간에 갇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나는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언젠가 내 아이를 갖게 되면, 그 아이에게 꿀도 눈도 먹여주고 싶다. 그 아이의 몸이 세균에 강해졌으면 좋겠다. 어차피, 이 불결한 세상을 홀로 살아가야 하니까. -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아빠는 재미있어 했지만, 나는, 울 때면 늘, 세상의 끝이었다. /이 세상은 울 때 마다 끝났다. 몇 번이든. 그리고, 한 번 끝난 이 세상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나는 해방된 기분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조그만 죽음 같은 것이다. -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무서운 것에 익숙해지면 무서움은 사라질 줄 알았다. 익숙해질수록 더 진저리쳐지는 무서움도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최선의 삶, 임솔아.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밥이 먹고 싶어질 때가 있는 것처럼, 멀리 나가다보면 원하지 않던 곳에 다다르더라도 더 멀리 나아가야만 하는, 그런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먼 곳에서 더 먼 곳으로 갈수록,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 더 비참한 느낌이라는 걸. 따뜻한 이불이 포근하고 좋아서 무서워지는 순간이 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최선의 삶, 임솔아.

좋아하는 남자애와 첫 섹스를 했다는 친구는 없었다. 우리는 저마다의 불행을 한자리에 모아놓고서는 어이없는 교집합을 발견하고 즐거워했다. -최선의 삶, 임솔아.

무릎을 꿇으면 희망이 있을 거라고 믿는 태도, 희망을 향해 다가가려는 태도가 나를 희망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것 같았다. 병신이 되지 않으려다 상병신이 되었다. 나는 최악의 상병신을 상상했다. 그것을 바라기 시작했다. 최악의 상황이 유일한 출구였다. -최선의 삶, 임솔아.

최악의 병신이 될 희망은 점점 사라져갔다. 가짜 희망들이 몸을 간질였다. 웃지 않은 것 같았는데 입이 먼저 웃었다. 병신이 된 후에도 일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는 것이 진짜 병신이었다. (…)하루하루가 그렇게까지 최악은 아니었다. 나는 최악의 병신이 되는 일에도 실패한 최악의 병신이 되어갔다. -최선의 삶, 임솔아.

떠나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최선의 삶, 임솔아.

파탄은 일상에도 넘치고 있다. -오토픽션, 가네하라 히토미.

나는 항상 피부감각을 믿으며 살고 있다. 시각 청각 후각 같은 건 거의 믿지 않는다 해도 좋다. 피부가 느낀 것이 전부다. 만져본 적 없는 사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해도 좋다. 만져본 사람하고만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정말이지 가혹한 세계라는 생각도 들지만, 역시 결국에는 피부가 느끼는 것만이 전부다. 아무리 서로 사랑한다 해도, 만지지 않으면 사랑에 의미가 생겨나지 않는다. 애무도 섹스도 없는 사랑 따위 의미가 없다. -오토픽션, 가네하라 히토미.

매년 여름을 나기 어려워지는 게 지구온난화 탓인지 아니면 내가 늙어가기 때문인지 알 수 없어서 두렵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내가 하루하루 여생을 파먹어간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것을 멈추려면 죽는 수밖에 없다는 단순명쾌한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육체가 증오스럽다. -오토픽션, 가네하라 히토미.

“진짜야, 나 세 살 때부터 피아노 쳤었거든. 한참 전에 그만뒀지만.” “왜 그만뒀어?” “왜냐.” “응.” “피아노 안에 내 시체가 들어 있는 것 같아서.” -오토픽션, 가네하라 히토미.

이봐, 인생은 농담이라고. 인생은 농담으로 구성되어 있는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은 나 뿐인지도 모르고. 나뿐만이라고 해도 딱히 안 될 것 없다. 그럼 다르게 말해볼까. 내 인생은 농담이다. 농담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내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만이다 그만이다. 나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만이다. -오토픽션, 가네하라 히토미.

세계는 친절함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내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나도 있다. 결과가 전부인 이 세계,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내가 있다는 것은, 세계는 친절함으로 가득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 세계를 규정하는 건 나다. 이 곳은 내가 사는 세계다. 다른 누군가가 규정하는 세계는 내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다른 누군가의 세계, 다. 세계는 무수하게 존재한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수만큼. -오토픽션, 가네하라 히토미.

가망 없는 인간이 왜 계곡을 만드느냐고? 아무도 자신의 계곡만은 비웃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웃는다 해도 마주 웃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계곡이 가진 폭력적인 이런 힘을 원하기 때문에 만드는 것이다. 나는 계곡을 존경한다. -오토픽션, 가네하라 히토미.
스크랩하기
레스 작성
6레스 내가 책 안 읽는데 이 책 진짜 ㄹㅇ 개좋음 2020.04.29 422 Hit
도서 2020/02/21 13:07:44 이름 : 이름없음
3레스 내 기준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들 2020.04.29 58 Hit
도서 2020/04/12 18:00:46 이름 : 이름없음
14레스 좋아하는 작가 적고 가는 스레 2020.04.29 117 Hit
도서 2020/03/03 16:57:36 이름 : 이름없음
2레스 햄릿 읽고 있는데 2020.04.29 28 Hit
도서 2020/04/29 12:01:24 이름 : 이름없음
1레스 이런 종류 소설 없어? 2020.04.29 22 Hit
도서 2020/04/29 03:21:13 이름 : 이름없음
1레스 어나더 2020.04.28 15 Hit
도서 2020/04/28 23:38:06 이름 : 이름없음
2레스 위기철 작가의 아홉살 인생 본 레더 없어?? 2020.04.28 25 Hit
도서 2020/04/28 18:19:21 이름 : 이름없음
44레스 거짓말로 스포일러 하는 스레 2020.04.27 490 Hit
도서 2020/01/26 20:59:12 이름 : 이름없음
22레스 비문학 보는 스레더들 주로 어떤거 읽어? 2020.04.27 299 Hit
도서 2020/02/24 18:26:49 이름 : 이름없음
53레스 » 책갈피 2020.04.27 121 Hit
도서 2020/04/10 00:29:03 이름 : 이름없음
12레스 혹시 이책 제목 아는사람 2020.04.26 103 Hit
도서 2020/04/23 18:29:59 이름 : 이름없음
13레스 혹시 다들 덕혜옹주 라는 책 읽어본 적 있어?? 2020.04.25 154 Hit
도서 2020/02/26 14:54:19 이름 : 이름없음
22레스 음 심오한책? 추천해주라!!! 2020.04.23 248 Hit
도서 2020/03/16 22:20:33 이름 : 이름없음
1레스 감동적인 고전 2020.04.22 14 Hit
도서 2020/04/22 17:42:00 이름 : 이름없음
1레스 급해 영어교사나 스튜어디스 2020.04.21 26 Hit
도서 2020/04/21 10:16:48 이름 : 이름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