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레주가 그럭저럭 소설 씁니다. 제목에서 보다시피 회빙환 클리셰 꽤 많을거에요.
#연습에 가깝게 쓰는 글입니다. 이런저런 지적이라던가 달게 받아요.
#중간중간에 후기나 잡설같은 거 들어갈 지 모릅니다.
◆Wo1yNtcpQpX2020/05/05 18:36:37ID : lu8kk01eFdv
창을 두들기는 빗방울에 눈을 떴다. 하얗고 얇은 속눈썹이 치워지며 높은 천장이 보였다. 익숙해지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 하고 생각했다만 그것이 틀린 모양이었는지 익숙해지는 것은 생각보다 빨랐다. 이 천장을 세 번쯤 보니, 이 방이 나의 방이 아니라고 생각하기가 힘들어진 모양이다. 그런데도 결국 이 방은 내 방이 아니다.
이 방의 주인의 이름은 로젤리아 루시 화이트, 공작 가문의 장녀라고 한다. 그리고 나는 어느 날, 내가 그녀로 환생하게 된 것을 깨달아버린 다른 세계의 존재이다.
깨달은 때는 언제였을까. 아마 며칠 전의 꿈이었을 것이다. 나는 건널목을 빠르게 달리던 누군가의 발걸음을 보았다. 교복을 입은 소녀의 검고 긴 머리카락이 허공을 헤엄쳤고 경적이 귀를 찌르듯 울렸다. 이내 선혈이 흩뿌려졌다. 그 순간 소녀는 죽었다. 그리고 그것이, 전생의 나였다. 그러한 악몽을 꾸고 정신을 차리자, 때는 새벽이었고 다급하게 달려온 것으로 보이는 검은 단발의 시녀와 밤색 머리의 집사, 똑같은 백발을 한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통해 깨달았다. 이 세계는 어떤 로맨스 판타지 소설의 세계였다. 제목조차 희미한 어떤 소설, 그러나 기억하고 있다. 나는 악녀로 나올 게 뻔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본래 이 세계의 존재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 사흘간, 모두의 동태를 살피며 스스로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깨달았다. 나는 역시나 지독한 악인이었고, 모두에게 원한을 살 만한 존재였다. 악녀로서 삶을 끝내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과연 그게 제대로 진행되기는 할까. 나는 악녀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