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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의회주의자 2020/05/13 23:24:05 ID : K3SLbxDtctt
금빛의 장식들과 꽃무늬가 화려하게 그려진 궁궐의 회의실은 아름다움을 넘어 사치스러워보이기까지 한다. 그 회의실 한 가운데 놓인 거대한 원탁을 둘러싸고 황제와 30명 가랑의 귀족들이 앉아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귀족들 사이 듬성듬성 주인 없는 의자들이 많이 보인다. 황제만이 입을 수 있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있어 자못 근엄해보이지만, 막시밀리안의 얼굴에는 아직 벗어나지 못한 십대의 티가 남아있다. 정적이 잠시 흐르고, 침묵 속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어린 황제였다. "지난한 1년간의 내전 끝에 잔악한 나의 이복형 페르디난트를 무찌르고 드디어 정의가 승리하였다. 이제 라인펠트 제국의 유일하게 적법한 계승자는 오직 나, 황제 막시밀리안 뿐이다. 오늘은 나의 형이 백성들의 부를 착복하고 억압해온 세월들을 단죄하는 날이다. 부당한 법률은 사라질 것이요, 정의로운 규칙만이 바로 설 것이다." 그리고 황제는 곧바로 제국 회의의 개막을 선언했다. "신성한 제국 황법에 의거하여 황법 개정 회의를 선언한다. 총 30명의 귀족 중 21명이 참석하여 개막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런데 라인하르트 공작과 레오폴트 백작이 보이지 않는 군. 그들이 어디있는지 아는 바 있느냐?" 라인하르트와 레오폴트는 황제의 자리를 둘러싼 내전에서 지금의 황제 편에 섰던 이들 중 가장 충직했던 귀족들이었다. 그러자 황제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있던, 이지적이지만 조금은 차가워보이는 젊은 남자가 대답했다. "황제폐하. 그들은 곧 도착 할 것입니다. 회의를 시작할 수 있는 인원은 채웠으니 먼저 시작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폐하, 신성한 회의의 시작을 선언해주십시오" "클라우드 공작, 그대의 말이 옳다. 황법에 의거하여 개막을 선언하겠다" 회의가 시작되었다. 황제가 말을 이어서 하려던 찰나 누군가 말을 끊었다. "자 그럼..." "황제 폐하" 그의 말을 끊은 것은 클라우드 공작이었다. "한 가지만 확실히 해주십시오. 황법 개정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은 황제도 거역할 수 없는 사항이라는 것을 분명히 선언해주십시오" 자신의 말이 끊긴 것이 다소 언찮아보였지만 막시밀리안 황제는 수긍했다. "그렇다. 클라우드 공작. 본 회의의 결과는 황제인 나 또한 거역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황제의 말을 끊은 것은 클라우드 공작이었다. "신성한 황법에 의거하여 저 클라우드 공작은 먼저 발의합니다. 저 클라우드 공작은 황위 계승 가문 라인펠트 가문을 불신임하고, 제국을 공화국으로 재건할 것을 발의합니다. 이 경우 황법은 소멸되고 새로운 법률이 제정될 것입니다." 순간 젊은 황제는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곧 격노한 황제의 말이 이어졌다. "클라우드, 자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건가. 드디어 자네가 미친 것인가. 회의가 끝나면 자네는 죽은 목숨이다. 각오하게!!!" 클라우드 공작은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누가 죽은 목숨인지는 두고 보셔야 할 것입니다, 폐하. 그럼 표결에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멈춰,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읍읍" 황제에게 침묵마법을 건 것은 아델하이트 백작이었다. 그녀는 고위급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이기도 했다. "폐하도 참~ 신성한 회의에서 소리를 지르시면 곤란해요. 말씀을 조금만 줄여도 참 매력있는 분인데" "자 그럼 라인펠트 제국의 해체를 표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스물 한명의 귀족 중.... 스물 한명이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제국력 685년, 황법개정회의는 라인펠트 제국을 해체하고 공화국으로 재건할 것을 선언합니다" 클라우드 공작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성을 잃은 황제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델하이트가 마법을 풀었던 것이다. "네가... 어떻게 네가.... 믿었는데... 형과 달리, 백성들에게 자애로운 훌륭한 황제가 되겠다는 나의 언약을 듣고도 나를 어떻게 배신할 수가...크흑.." "폐하, 저는 폐하가 훌륭한 황제가 될 것이라는 걸 한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백성들은 훌륭하고 자애로운 황제를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한 클라우드 공작은 발코니를 가린 커튼을 걷었다. 햇빛이 들어와 회의실 전체를 눈부시게 밝게 비추었다. 그리고 어린 황제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황성의 수만의 백성들이 황궁 앞에 운집해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공화국을 외치고 있었다. "라인하르트, 레오폴트.. 충직한 너희들은 어디에 있느냐.. 대체 왜 이곳에서 반역자들을 막지 않은 것이냐..!!" "폐하, 이미 그들의 영지에서는 민중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아니, 그들의 영지 뿐만이 아니라 전국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반혁명 분자인 그들의 신병은 지역의 평의회에서 확보하고 있습니다. 폐하, 이제 우리들의 시대는 흘러갔습니다. 저희 귀족들이 더이상 귀족이 아닌 것처럼 폐하도 이제 한명의 필부일 뿐입니다... 당신을 주군으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마음을 배신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어린시절을 함께 보내며 자신의 친형보다도 더 의지하고 따랐던 클라우드 공작을 바라보던 황제는 고개를 떨구었다. 이윽고 두 명의 병사가 황제를 포박하여 끌고가는 모습을 보게 된 클라우드 공작의 눈가가 젖어있었다는 사실은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굳게 먹은 그는 발코니의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창 밖, 궁궐 앞에 운집한 백성들의 우레같은 함성소리는 클라우드의 모습이 보이자 거짓말같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라인펠트 제국의... 소멸을... 선언합니다! 모든 권력을 농민-수공업자-병사 평의회로!!!" 깊은 울림 속 어딘가 슬픔이 젖어있는 듯한 클라우드의 포효같은 연설은 끝마쳐질 수 없었다. 오랜 굴종의 시간 속에서 억압받던 이들의 함성이 구 제국의 황궁 위를 뒤덮었기 때문에. 어떠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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