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기억뿐입니다. 증거가 없으니 믿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저는 분명히 그 아이를 만났습니다. 시작은 고등학생 때였습니다.
이름없음2020/08/07 14:25:29ID : SK6rs9z86Zh
ㅂㄱㅇㅇ
◆nu3Dy5hs3vc2020/08/07 14:26:29ID : Fg7xRvdxwnu
저는 그때 나름 성실한 고등학생이었습니다. 모두가 가고 야자가 끝난 후에도 학교에 남아 공부를 하다가 11시 무렵에야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nu3Dy5hs3vc2020/08/07 14:28:48ID : Fg7xRvdxwnu
어느날은 야자를 너무 늦게까지 하다가 평소보다 10분정도 늦게 끝나게 되었습니다. 항상 막차였는데, 버스가 갔을 거라고 생각하고 참담한 마음으로 버스 정류장에 갔지만 다행히 버스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매일같이 그 시간에 같은 곳에서 타다보니 버스 기사님이 저를 기억하시는 듯 했습니다.
◆nu3Dy5hs3vc2020/08/07 14:30:17ID : Fg7xRvdxwnu
그 아이를 만난 건 그 날입니다. 버스를 타고 가며 장래에 대한 걱정을 했는데, 어느 한 여고에서 그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가 버스에 올랐습니다.
◆nu3Dy5hs3vc2020/08/07 14:31:33ID : Fg7xRvdxwnu
저는 그냥 누군가 탔구나 정도의 생각이었습니다. 얼굴은 예뻤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다보니 그닥 큰 생각은 없었습니다.
◆nu3Dy5hs3vc2020/08/07 14:32:55ID : Fg7xRvdxwnu
하지만 그 아이는 저를 계속 지켜보는 듯 했습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시선이 느껴졌고, 그 시선이 너무 신경쓰여서 전 그 아이 쪽을 보게 되었습니다. 보통은 시선이 마주치면 피하기 마련이지만, 그 아이는 저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피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제가 당황해서 눈을 피했었습니다.
◆nu3Dy5hs3vc2020/08/07 14:34:46ID : Fg7xRvdxwnu
그러다 갑자기 그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제 자리 쪽에 걸어와 말을 걸었습니다. (제 이름은 별명을 조금 바꿔서 도도라고 해두겠습니다.) 그 아이는 제게 너 도도맞지?라고 물었습니다.
◆nu3Dy5hs3vc2020/08/07 14:36:59ID : Fg7xRvdxwnu
다시 말하지만, 저는 그 아이를 처음 봤습니다. 예쁘게 생긴 아이였기 때문에 기억에 남을 법도 하지만, 전혀 기억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저를 기억하는 듯 했습니다. 제게 중학교 동창이었다고 말했고, 중학교 때 제가 겪었던 일 등 같은 반이라면 으레 알 법한 일들을 말하며 자신이 같은 반이었다고 말했습니다.
◆nu3Dy5hs3vc2020/08/07 14:39:07ID : Fg7xRvdxwnu
저는 너무 기억이 안났기 때문에 결국 직설적으로 기억이 안 나서 그런데 이름을 알려줄 수 있냐고 물었고, 그 아이는 자신이 홍■■이라고 답해줬습니다.
◆nu3Dy5hs3vc2020/08/07 14:40:38ID : Fg7xRvdxwnu
저는 그 날 집으로 돌아가서 졸업 앨범을 펼쳐봤습니다.
◆nu3Dy5hs3vc2020/08/07 14:41:29ID : Fg7xRvdxwnu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홍■■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는 없었습니다. 얼굴로 찾아보려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매치가 되지 않았습니다.
◆nu3Dy5hs3vc2020/08/07 14:42:03ID : Fg7xRvdxwnu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이 친구가 전학을 갔구나.
◆nu3Dy5hs3vc2020/08/07 14:45:42ID : Fg7xRvdxwnu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성인이 되었고, 어느날엔 중학교 동창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nu3Dy5hs3vc2020/08/07 14:46:11ID : Fg7xRvdxwnu
그때 문득 그 아이가 생각났고, 동창들에게 그 아이에 대해 물었습니다.
◆nu3Dy5hs3vc2020/08/07 14:47:52ID : Fg7xRvdxwnu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아이를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 아이가 버스를 탔던 곳, 그 여고를 졸업한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그 아이를 몰랐습니다
◆nu3Dy5hs3vc2020/08/07 14:49:38ID : Fg7xRvdxwnu
분명 그 여고 교복을 입고 있었고, 분명 저를 알고 있었으며,
저와 얘기도 나눴던 그 아이를 모두가 몰랐습니다.
◆nu3Dy5hs3vc2020/08/07 14:51:50ID : Fg7xRvdxwnu
무서웠지만, 저는 그냥 괴담거리가 생겼다며 웃었습니다. 그 이후에 일어날 일을 알았다면 그렇게 태평할 수 있진 않았을 겁니다.
◆nu3Dy5hs3vc2020/08/07 14:53:12ID : Fg7xRvdxwnu
어느새 직장인이 된 제가 회식때문에 막차를 타게 되었었습니다. 저는 술을 싫어하기 때문에 대충 어울려주기만 했는데도 막차 끊길 시간이 아슬하게 되어 버스에 올랐는데, 마침 예의 그 버스였습니다.
◆nu3Dy5hs3vc2020/08/07 14:55:06ID : Fg7xRvdxwnu
저는 그 날, 그때, 봐버렸습니다. 만났다는 표현보다도 봤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입니다.
◆nu3Dy5hs3vc2020/08/07 14:56:03ID : Fg7xRvdxwnu
그 아이였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보자마자 막차고 뭐고 다음 정류장에서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nu3Dy5hs3vc2020/08/07 14:56:27ID : Fg7xRvdxwnu
왜냐하면 그 아이는 그때봤던 그대로였기 때문입니다.
◆nu3Dy5hs3vc2020/08/07 14:57:02ID : Fg7xRvdxwnu
교복도, 얼굴도, 저와 눈을 마주쳤던 그 눈빛, 그 상황마저 전부 그때와 같았습니다.
◆nu3Dy5hs3vc2020/08/07 14:59:06ID : Fg7xRvdxwnu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서 지금까지 감춰왔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해도 좋으니 그 일을 털어두고 싶었습니다.
◆nu3Dy5hs3vc2020/08/07 15:00:54ID : Fg7xRvdxwnu
저는 몰랐던 그 아이를 여전히 기억합니다. 검은 색 머리가 셔츠 깃까지 내려오는 길이에 갈색 눈의 그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