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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음 2020/09/19 13:27:17 ID : 05O5O3xxCry
우선, 이 논의가 이 논의에 참여한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 "인간적 맥락에서의 깨달음"은. 사회에 나가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얻어가는 것일까? 사회에서 벗어나 나에 대해 집중하면서 얻어지는 것일까? 둘 중 깨닫는다는 건 어디에 있는 걸까?
이름없음 2020/09/19 13:29:19 ID : 05O5O3xxCry
그도 아니라면 단지, 이 둘의 관점이 진부하리만치 개인의 느낌이며 개인 서사에 반영되는 무엇인 걸까? 혹은 그 둘의 우열을 가리는 게 의미가 없을 만큼, 우리는 잘 알 수도 없을 테고, 잘 알지도 못하고 있는 걸까? ** 이 논의에서 구하고자 하는 결론은, 인간적 맥락에서의 깨달음은 사회에 나가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얻어가는 것일까? 사회에서 벗어나 나에 대해 집중하면서 얻어지는 것일까? 였어. 여기서, 인간적 맥락이란 인간은 무엇인가?와 같이 인간이란 존재에 관한 맥락이야. 인간의 성품은 어떻고, 인간은 어떤 욕구가 있고, 인간은 집단을 이루어야 하는지..등등 주어가 인간이 되고 주어인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한다는 당위와 인간이 어떠하다라는 과학적 탐구와 인간은 어떠해왔다라는 역사적 사실 등등 모든 인간의 본질에 관한 게 이 맥락에 속한 것이야. 그 중에서도, 논의 배경에서 적어두었듯이, 실존적 관점을 빌리면, 오직 인간만이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 그냥 동물은 사는 대로 살고, 사는 대로 생각하게 돼. 또한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별 거 없어. 나의 생각은 타인의 몸에서 출발할 수 없잖아. 개인은 개인일 뿐, '타인의 심정'을 이해하기 위해선 '개인'의 공감 능력에 의존해야 하잖아. 타인의 고통에 대해 인식하는 것도 이와 같고, 타인에게 마음이란 게 있을까? 하는 것도 비슷할 테지. 내가 이 논의의 첫 시작에서 생각한 '사회'란, 이처럼 너무나도 많은 불확실로 가득찬 타인, 그런 타인들이 모이고 모인 수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야. 그런 더불어 살아감에 있어서 필요에 의해 이후에 만들어진 게 법 체계와 같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해.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지만, 목격했지만 납득하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차마 반인륜적이다라고 하는 일들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일어날 곳이 이 사회고,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곳이 그러므로 삶이라고 생각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위의 내용을 토대로 재진술하면, 오직 인간만이 어떻게 살아야할 지 질문할 수 있기에, 공자는 어떻게 살아야할 지에 대해서, 仁과 禮를 강조하며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감에 있어서 인의 실천을 통해 이상적인 삶을 추구했고, 현재에는 마음챙김과 명상 같이 내 안의 진정한 나에 대한 앎을 통해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은, 사회에 나가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얻어가야'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회에서 벗어나 나에 대해 집중하면서 '얻어지는' 것일까? 라고 할 수 있겠네.
이름없음 2020/09/19 14:09:45 ID : 05O5O3xxCry
정확한 논지 확보를 위해 논의 배경을 적어둘게. 길긴 한데...충분히 접해봤을 이야기일 거야, 되새기는 정도니까 그렇게 길진..않겠지? 논의 배경: 우리는 과학이 발달한 세계에 살고 있어. 우리는 우주에 나갈 수 있고, 칼 세이건이 말했듯 창백한 푸른 점(지구)에 살고 있고 우주에 찍힌 그 점을 볼 수 있어. 그 옛날 6천만 년 전에 인류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우리는 많은 발전을 거듭해왔지. 정말 놀라울 정도로. 근데, 그 발전에 과연 문제점이 없었을까? 세상은 우리에게 달콤한 과실만을 허락했을까? 아닐 테야. 아니겠지. 세상이 우리에게 행복만 주었으면 1900년대 그만큼의 전쟁이 있지 않았을 거고, 그만큼의 사상들이 각축장을 열지 않았을 거야. 또한, 지금은 눈부실 만큼 아름다운 지상 낙원이었겠지. 그러니 우리의 현 주소는, 피와 철과 화약으로 가득한 시체더미 위에 쓰인 역사를 배우고 것이고, 그만큼의 아픔을 묻어두고 앞으로 나아가는 세계일 거야. 피와 철로 가득한 세계는 우리의 세상과는 다소 멀지만, 그 흔적은 느낄 수 있어. 제자백가가 그 예겠지. 공자, 그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시했지. 인, 예. 적어도 그는 개인에게 깨달음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진 않았지. 그렇지만, 석가모니는 달랐지. 우리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지. 종교판 야너두였지. 그와 동시에 서양에선, 모두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이 있었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있었지. 시간이 지나서, 우리는 그런 세상과는 달리 왕이 없고 충분한 과학이 있고 오랜 시간만큼의 사상이 깔린 시기에 있어. 살아가면서 사람을 대면하기보다 인터넷을 통해 더 많은 사람과 만날 수 있고, 인터넷이 없는 시절 우리가 평생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때문인지,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해지는 시기까지 왔어. 개인 윤리가 부상하고, 개인만을 위한 서비스가 각광을 받는 시대야. 이런 시대에 진정한 나를 찾는다거나, 마음챙김이라던가 하는 것들은 인기 있을 수 밖에 없겠지. 그렇다고 해서 과거로부터 물려진 지혜는 쓸모없는 걸까? 과거부터 지금까지 무의식에 깔린 시스템은 바뀌지 않았고 우리의 마음도 비슷하게 작동하겠지. 시대가 달라졌다고 달라지는 무언가는 아닐 테야. 오직 인간만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 과거랑 현재랑 던진 질문의 해답은 달라도 던진 질문 자체는 같겠지. 우리는 현재는 과거가 될 테고 미래는 불확실한 곳이야. 똑같이 질문을 던져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 지 물어본다면, 무엇을 선택하고 싶니?
이름없음 2020/09/19 15:23:12 ID : e59bio0rasl
애초에 깨달음이라는 게 무엇인지부터 확실히 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해. 개인의 성장으로 귀결되는 깨달음인지, 하나의 학문적 발견인지, 공통된 진리를 향한 깨달음인지. 내 생각은 이래. 사회라는 것의 정의가 불확실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가 태어나 마주하는 최초의 사회인 가족이 없이 사람A가 자랄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고. 그렇게 가정한다면, A에게 있어서는 타인이라는 개념이 자체가 있을 수 없고, A가 상호작용 할 수 있는 물체들은 주변의 사물들 뿐일 거야. 의사가 없는. 하다못해 인터넷도 사회라 볼 수 있으니까. 책들마저도 사회적 상호작용의 산물이지. 이렇게 생각해보면, 깨달음에 있어서 혼자 있느냐, 부딪혀 살아가느냐는 크게 의미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어. 쭉 혼자 있는다면 자아와 타인의 개념이 없을테고, 혼자 있는 시간이 없이 타인과만 어울려 살아간다면 그런 사람은 깨달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할 틈도 없을거야. 그런 사람은 하나의 이름을 가진 개체가 아니라 사회적 위치로서만 자신을 유지할 수 있을테니까. 개체A가 아니라 학생, 직장인, 후드티를 입은 사람. 정도로만 자신을 규정할 수 있겠지. 직장인의 이미지에 자신을 맞추고, 직장인의 대체적인 기호에 자신을 맞추고 하는 식으로 말야.
이름없음 2020/09/19 15:34:58 ID : e59bio0rasl
결국 깨달음이라는 건 두 환경을 모두 겪어본 사람으로부터만 나온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우리 대부분은 어차피 그렇게 살고 있잖아? 내가 어떤 글귀를 본 적이 있어. '세상에는 계급상의 귀족, 물질상의 귀족, 정신상의 귀족이 있는데, 이 중 정신상의 귀족이 가장 고결하다' 라는 글이었는데,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란 일종의 정신적 귀족에 해당할거야. 생각해보면 좀 더 의미심장한데, 귀족이라는 것은 대부분 타고나는 지위거든. 세상에는 인문학이 중요하다라는 말에 동의할 사람들도 많고, 문학이나 예술, 철학에 매료되어 그런 것들을 배운 사람들도 많아. 2010년부터 지금까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사람만 해도 오천 명은 넘을걸. 그렇지만, 그 많은 사람들 중 사상가로서 이름을 날리는 사람은 한두명도 되지 않지. 나는 이것이, 그들의 '정신의 귀족'이 될 만한 자질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해. 그들은 그들 자신의 차별화된 사상을 만들만큼 똑똑하지 못했거나, 철학사를 배우며 암기하는 것밖에 못하는 주입식 교육의 승자들이었거나, 자신의 사상을 삶 속에 체현하지 못할 정도로 약했거나(몸과 정신, 양쪽의 의미로)라고 생각해. 이 '자질'이라는 것은, 진리에 대한 갈망과 발견에 대한 야망, 호기심이라 볼 수 있겠지. 세상에는 호기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 민주주의가 왜 생겼는지도 모르면서 학교에서 가르친 얕은 지식만으로 현재의 시스템이 옳다고,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며 살지. 문화적 가치관, 예의 등은 물만 건너도 달라지는 건데도, 기존의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살아간다는 거야.
이름없음 2020/09/19 15:38:08 ID : e59bio0rasl
기존의 것을 해체하여 분석해,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는 사람이야말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야. 결국 나는 깨달음을 얻는다는 건 타고난 자질과 환경의 합작이라 생각해. 먼저 호기심을 타고나야 하고, 그 후에는 책과 지식, 사회 시스템과 인간 심리를 배울 만한 책이 있는 환경 등이 필요하지. 둘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군중심리에 기대서 타성적으로 살아가거나, 개인의 아집에만 잡혀 논리적 모순점을 찾아내지 못하는 망가진 인간이 되는거지.
이름없음 2020/09/19 23:08:46 ID : 05O5O3xxCry
의견 고마워. 깨달음이 있기 위해선, 혼자만의 시간도 타인과의 시간도 둘다 필요하다라는 것. 그리하여 깨달음을 얻기 위한 조건까지. 존재와 획득으로 이어지는 과정 잘 봤어. 그런데 레스에서 말했듯, 이 논의에서 밝히고자 하는 깨달음이란 건, 인간적 맥락에서의 깨달음이야. 레주의 논리에서 '인간적 맥락에서의' 라는 전제가 빠져 버린 건, 첫 논의 시작에서 내가 '인간적 맥락에서의'라는 전제에 설명을 명시적으로 적어두지 않은 탓이지... 이 논의에서 구하고자 하는 결론은, 인간적 맥락에서의 깨달음은 사회에 나가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얻어가는 것일까? 사회에서 벗어나 나에 대해 집중하면서 얻어지는 것일까? 였어. 여기서, 인간적 맥락이란 인간은 무엇인가?와 같이 인간이란 존재에 관한 맥락이야. 인간의 성품은 어떻고, 인간은 어떤 욕구가 있고, 인간은 집단을 이루어야 하는지..등등 주어가 인간이 되고 주어인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한다는 당위와 인간이 어떠하다라는 과학적 탐구와 인간은 어떠해왔다라는 역사적 사실 등등 모든 인간의 본질에 관한 게 이 맥락에 속한 것이야. 그 중에서도, 논의 배경에서 적어두었듯이, 실존적 관점을 빌리면, 오직 인간만이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 그냥 동물은 사는 대로 살고, 사는 대로 생각하게 돼. 또한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별 거 없어. 나의 생각은 타인의 몸에서 출발할 수 없잖아. 개인은 개인일 뿐, '타인의 심정'을 이해하기 위해선 '개인'의 공감 능력에 의존해야 하잖아. 타인의 고통에 대해 인식하는 것도 이와 같고, 타인에게 마음이란 게 있을까? 하는 것도 비슷할 테지. 내가 이 논의의 첫 시작에서 생각한 '사회'란, 이처럼 너무나도 많은 불확실로 가득찬 타인, 그런 타인들이 모이고 모인 수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야. 그런 더불어 살아감에 있어서 필요에 의해 이후에 만들어진 게 법 체계와 같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해.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지만, 목격했지만 납득하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차마 반인륜적이다라고 하는 일들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일어날 곳이 이 사회고,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곳이 그러므로 삶이라고 생각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위의 내용을 토대로 재진술하면, 오직 인간만이 어떻게 살아야할 지 질문할 수 있기에, 공자는 어떻게 살아야할 지에 대해서, 仁과 禮를 강조하며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감에 있어서 인의 실천을 통해 이상적인 삶을 추구했고, 현재에는 마음챙김과 명상 같이 내 안의 진정한 나에 대한 앎을 통해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은, 사회에 나가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얻어가야'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회에서 벗어나 나에 대해 집중하면서 '얻어지는' 것일까? 라고 할 수 있겠네. 정확성과 명료성을 높이는데 도움이 됐어. 고마워.
이름없음 2020/09/19 23:17:36 ID : 05O5O3xxCry
근데 이 레스의 논의와 좀 벗어난 논의이긴 한데, 레주가 말한 타고난 자질이란 건 결국 눈 먼 행운의 결과라고 볼 수 있나? 또한, 특정 개인에게만 발현되는 자질이라면, 생물학적인 자질인 거야? 환경은 이런 자질에 플러스적 요인이 될 수 있고 마이너스적 요인이 될 수 있는 거야?
이름없음 2020/09/20 14:06:22 ID : e59bio0rasl
내가 말한 자질이라는 건, 우연의 산물이 맞아. 근본적인 자질은 지적 장애인 등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이성 등. 그러나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는 주변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에, 자질을 깨우기 위해서는 좌절의 경험이 필요해. 여기서 열등감을 가지고 그 상태에 머무르거나, 아니면 다른 가치관에 미혹되서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난 괜찮아'를 외치게 된다면 실패하는 거야. 좌절의 경험 이후에, 우리는 인지부조화를 겪게 되고 그것을 인식하고 대안을 찾았을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가치를 찾을 수 있어. 그동안의 인식된 세계가 개인의 것으로 재구성되는 거지. 좌절을 극복하는 능력은 환경 속에서 길러지는데, 이 환경을 자각할 수 있는지에 대한 능력은 처음과는 다른 자질이야. 정확히 말하면, 타고난 에너지의 방향과 부모로부터 처음 주입된 가치관, 아이의 모델이 되는 사람의 행동 등이 자질이 된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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