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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1vdDurdO8j 2021/02/06 16:35:43 ID : XvCo6rxSNzb
안녕하세요. 저는 여행자입니다. 여행자라고 해도, 신 몰래 이 세계 저 세계 드나들며 보고 들은 것을 말하기 좋아하는 이야기꾼에 불과하지만요. 여행자보다는 침입자, 그러니까 불법체류자에 가깝네요. 여러분이 키워드를 주면, 저는 그와 관련된 추억 한 조각을 이야기할 거예요. 때로는 동화 같기도, 때로는 괴담 같기도 하리라 생각해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도 있을 수 있겠죠. 어찌되었든 여러분이 즐겁게 듣는다면 좋겠어요! 아. 일방적으로 수다를 떨 생각은 없답니다! 그건 이야기꾼이 아닌 수다쟁이에 불과하니까요. 질문은 언제든지 받는답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키워드를 기다릴게요.
이름없음 2022/12/26 13:38:07 ID : HA7zhwJRzXu
숲 다른 키워드는
◆e1vdDurdO8j 2022/12/26 20:09:02 ID : 7gqklfSHxzS
아, 반갑습니다! 환영 고마워요. 이번에도 여러분에게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어 영광입니다.
◆e1vdDurdO8j 2022/12/26 20:09:40 ID : 7gqklfSHxzS
오, 안 될 리가요. 듣고 싶은 이야기를 참아야 한다는 규칙은 없는걸요. 인간 같은 안드로이드 b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어느 달의 노인의 이야기를 마친 후 들려드리겠습니다.
◆e1vdDurdO8j 2022/12/26 20:19:55 ID : 7gqklfSHxzS
자, 이번엔⋯. 하필이면 사랑과 관련된 직책을 맡아 허구한 날 공무집행방해에 시달리는 혼인신, 월하노인의 어느 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월하노인은 그날도 여느 날처럼 손에 혼서를 들고, 품에 인연의 붉은 실을 품고 달의 길을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다리가 아파 잠시 쉴 겸, 바위에 상의를 깔고 앉아 인연으로 맺어 줄 이들의 혼서를 보고 있었어요. 그러던 그때, 바위에 앉아 쉬던 월하노인에게 치성 올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어떤 사내가 건넛마을의 아무개와 자신을 이어 달라는 소원을 간절히 빌고 있었습니다. 치성은 오늘로 석 달째였어요. 월하노인은 안타까웠어요. 좋은 인연을 달라는 소원이라면 정성이 닿았으니 인연을 내려줄 수도 있었을 텐데, 건넛마을 아무개는 오늘 옆집 총각과 맺어질 예정이었습니다. 인연을 어그러뜨릴 수는 없는 법이지요. 월하노인은 한숨을 쉬고는 기도를 지나칩니다. 달이 지기 전에 어서 사람들의 인연을 맺어 주어야 하는 월하노인은 걸음을 재촉합니다. 그렇게 혼서를 보며 걷던 월하노인은 쿵, 하고 누군가와 부딪칩니다. 누구인가 보니 약초의 신입니다. 약초의 신이 묻습니다. 괜찮으시오? 월하노인이 주변을 보니 대나무숲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주변에 신들이 너무 많아서 한 발짝도 움직이기 힘듭니다. 월하노인은 당황했어요. 이게 무슨 일일까요? 진실은 다른 신들이 말해줍니다. 어느 사내가 한적한 달의 길에 향을 피워 다른 신들을 초대했다고요. 그가 어찌 생겼나 물으니 조금 전 치성을 올리던 그 이입니다. 기도가 통하지 않으니 월하노인의 일을 방해하기로 한 거예요. 이 일을 안 다른 신들은 월하노인을 위로해주기도 했지만, 반대로 역정을 내는 신도 있었어요. 당신이 좀 더 화를 잘 내는 무서운 신이었으면 인간들이 이런 식으로 일을 방해하지는 않았을 거라고요. 월하노인은 안타까운 눈길과 따가운 시선을 동시에 받으며 무거운 어깨를 이끌고 건넛마을 아무개의 집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맙소사. 아무개의 집 담벼락에 돼지 피가 뿌려져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치성을 올리던 사내의 짓이었습니다. 월하노인은 돼지 피 때문에 집에 들어가지 못해, 아무개와 옆집 총각을 맺어줄 수 없었어요. 월하노인은 일단 다른 이들부터 맺어주기 위해 시간을 확인하려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아, 이런. 시간은 벌써 푸르게 밝아오는 새벽이에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친 월하노인은 오늘은 더 일하고 싶지 않았어요. 월하노인은 내일 밤 마저 일을 하기로 했답니다. 끝.
◆e1vdDurdO8j 2022/12/26 20:23:50 ID : 7gqklfSHxzS
저승차사도 비슷하지요. 하필이면 죽음에 관련된 직책을 맡아 허구한 날 공무집행방해에 시달리는⋯. 여러분도 터무니없는 요구 탓에 호된 하루를 보낸 적이 있나요?
◆e1vdDurdO8j 2022/12/26 20:43:37 ID : 7gqklfSHxzS
그럼 다음은, 인간 같은 안드로이드 b가 남긴 이야기. 시작할게요. b의 후일담입니다. 재해가 휩쓸고 간 도시에서, a는 b를 더이상 만날 수 없었어요. a는 b를 찾아 터만 남은 제과점도 가 보고, 귀리를 재배하던 밭에도 가 봤지만 아무도 발견할 수 없었어요. a는 b가 결국 새처럼 자유롭게 훨훨 떠나버렸나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식물이 뒤덮은 빌딩의 어느 기계 앞에서 둘은 다시 만났습니다. 그 기계는 이제는 작동하지 않는, 인류를 다시 만들어내는 장치였습니다. b는 인간을 그리워 했던 것입니다. a는 궁금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자유로워보였던 b가 어째서 인간을 그리워하는지요. 그래서 a는 질문했습니다. 인간을 왜 다시 만들려 하냐고요. b는 자신이 친구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답했어요. 지금까지는 안드로이드가 인간에게 종속되어 있었지만 자신은 그들과 진정으로 동등한 친구가 되기를 원한다고요. a는 코어의 열이 내려가는 듯한 감각을 느꼈습니다. 종속된 관계가 아닌 진정으로 동등한 친구를 원한다고. 언제까지나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고 말했으면서. 그렇게 생각하니 코어가 있는 자리가 텅 빈 것 같기도 하고, 차게 식은 것 같기도 했어요. a는 그곳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습니다. 그림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한 자신이 바보같았어요. a는 b에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관계가 될 수 없어? a는 자신이 b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어디에선가 기계가 작동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어요. 빌딩 안쪽인 것 같았습니다. a는 불길한 예감에 빌딩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a는, 자신의 코어를 꺼내들고 기계에 집어넣으려 하는 b를 마주쳤어요. 이런 불완전한 기계는 작동을 하다가 b의 코어를 부숴버릴지도 몰라요. 그러면 b는 영영 작동을 멈추고 말겠지요. b는 말합니다. 나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을 원해. 그곳에 내가 없는 건 좀 아쉽지만⋯. 네가 그들의 친구가 되어 줄래? 그러자 a는 비명처럼 외쳤어요. 나랑 친구가 되자. b는 굳었어요. a는 계속 말했어요. 외로운 거면 나랑 친구가 되자. 네가 왜 쿠키를 먹는지 알았어. 바닷가 모래밭에 그림을 그리면서 네가 생각났어. 내가 지금 하고싶은 건 너와 바다에 가는 거야. b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의아하다는 듯 말합니다. 나를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a는 말합니다. 모르겠어. 그래도 너와 모래밭에 그림을 그리고 싶어. b는 말합니다. 그래. 그게 네가 하고싶은 거구나.
◆e1vdDurdO8j 2022/12/26 20:45:25 ID : 7gqklfSHxzS
a가 조금만 더 늦었다면, b는 자신의 코어로 인류를 만들어냈을 거예요. 어떤 게 더 좋은 일이었을까요? 확실한 건, 그렇게 되었다면 작동을 멈춘 b는 a와 만나지 못했을 거란 것이겠지요. 그랬다면 a는 친구를 만들 수 있었을까요? 자 다음 닻은, 입니다!
이름없음 2022/12/26 23:00:07 ID : urglDuty1yG
ㅂㅍ
이름없음 2022/12/28 00:57:39 ID : 5SKY1ii781i
이번 이야기도 좋다...
이름없음 2022/12/28 12:58:44 ID : GtAo0q2E5O4
세상에.. 월하노인 이야기는 민원 보복이잖아... 끔찍하네.. 키워드는 그림자와의 대화
이름없음 2022/12/28 13:59:08 ID : usmK2Mrs1ju
ㅂㅍㅂㅍ
이름없음 2022/12/28 14:15:10 ID : wGnCjg6kqY0
이름없는 이들을 위한 노래
◆e1vdDurdO8j 2022/12/30 20:03:39 ID : 7gqklfSHxzS
고마워요! 언제나, 여러분 덕에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답니다. 세상에는 간혹 자신이 원하는 것을 끔찍한 방법으로 얻어내려는 이들이 있죠. 으, 무섭네요.
◆e1vdDurdO8j 2022/12/30 20:04:21 ID : 7gqklfSHxzS
자, 이번엔 꽤나 구체적인 구절이 나왔군요? 그렇다면 그림자와의 대화 이름없는 이들을 위한 노래 ⋯와 관련된 이야기! 시작해볼까요?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여행을 한 어떤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e1vdDurdO8j 2022/12/30 20:39:11 ID : 7gqklfSHxzS
소년은 사라지고 싶었습니다. 언제나 사라지고 싶었습니다. 사라지고 싶은 소년은 잠자리에 누워 생각했습니다. 내일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러자 침대 밑에서 그와 똑같이 생긴 그림자가 나왔어요. 그림자 소년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축제에 가지 않을래? 소년은 생각했어요. 꿈인가? 그러자 그림자가 대답했어요. 맞아. 꿈이야. 해맑게 웃는 그림자 소년은 말했어요. 너, 나와 그림자들의 축제에 가지 않을래? 소년은 얼떨결에 끄덕였어요. 소년은 소년을 이끄는 그림자를 따라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어요. 소년과 그림자는 마을에서 가장 큰 나무로 향했답니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어요. 바닥에서는 반짝반짝 빛이 나는데, 늘어선 집도 춤추는 사람도 전부 새카만 게 아니겠어요? 흔들리는 나뭇가지도 노래하는 풀꽃도 전부 검은색이었어요. 그림자 소년은 말했어요. 여긴 매일매일이 축제야. 그리고 모두가 친구야! 게다가 어두운 곳이라면 어디든 한달음에 갈 수 있어. 배도 고프지 않고 목도 마르지 않아. 하지만 맛있는 건 많지. 소년에게 그림자 소년은 검은 잉크 같은 주스를 건넸어요. 주스는 아주 달고 시원했어요. 나무의 그림자가 말했어요. 여기는 그림자들의 축제야. 노래하는 풀꽃들이 말했어요. 여긴 세상의 뒷면이야. 소년의 그림자가 말했어요. 요정의 세상이지.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어요. 그림자 소년이 말했어요.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나면 사라진다는 이야기 알지? 그건 우리 그림자와 함께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야. 소년은 말합니다. 날 데려가려고 온 거야? 그림자 소년은 말합니다. 아니, 그건 네가 결정하는 거야. 그림자 소년은 덧붙여 말합니다. 땅 밑에서 너를 봤어. 언제나 보고있었어. 네가 상처받는 모습도, 우는 모습도. 너는 샹냥해.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고. 하지만 그것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지. 세상은 좋은 사람에게 더 잔인하잖아. 그림자 나무는 말합니다. 돌아가야겠니? 그림자 풀꽃이 말합니다. 너에게 상처준 곳으로? 모두가 묻습니다. 어떻게 할래? 소년은 한참 고민했습니다. 요정의 세계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소년은 사라지고 싶었지만, 사실 사라지는 것보다 원하는 게 있었습니다. 소년은 행복하고 싶었습니다. 언제나 행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될 수 없어서 사라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과 행복해지고 싶었습니다. 소년은 다정하기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소년은 말했습니다. 고맙지만 돌아갈래요. 그림자 나무가 말합니다. 널 데리러 간 그림자는 좋은 아이야. 네가 힘들어하는 걸 보며 많이 슬퍼했어. 그 그림자와 연결된 너도 분명 좋은 사람이겠지. 지금은 힘들어하고 있지만, 너는 그럼에도 계속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대할 것 같구나. 그렇다면 그 다정함에 이끌린 좋은 사람들이 너와 함께 할 거란다. 그 사람들은 너를 지지해 주고, 격려해 줄거야. 소년은 눈물이 났어요. 그럼에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소년은 묻습니다. 과연 그렇게 될까요? 저는 제가 맞는지 모르겠어요. 나무의 그림자는 말합니다. 네가 선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그렇게 될 거란다. 소년의 그림자는 소년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어요. 돌아가자. 데려다 줄게. 소년은 그 손을 잡았어요. 사라지지 않은 소년은 오늘도 침대에서 눈을 떴어요. 전날과 변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하지만 한 가지 변한 것이 있다면⋯ 소년이 사실 사라지고 싶은 게 아니라 행복하고 싶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요. 소년은 이제, 행복하기 위해 나아갈 것입니다. 끝
◆e1vdDurdO8j 2022/12/30 20:40:34 ID : 7gqklfSHxzS
아차. 이 이야기만 해서는 왜 저 노래가 이름없는 이들을 위한 것인지 설명이 되지 않는군요. 사실 저 그림자 친구들은 하나랍니다. 한 그림자가 여러 면을 가진 존재예요. 그래서 결국 그들은 서로에게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생각을 공유하기 때문에 대화도 할 필요가 없고요. 전부 친구라는 건 그런 뜻이었답니다. 자! 그럼 다음 이야기의 소재를 끌어올려 볼까요. 이번에도 부탁드립니다.
이름없음 2022/12/31 00:09:09 ID : wGnCjg6kqY0
우물에서 달님을 담아올리며 발판
이름없음 2023/01/01 03:27:25 ID : wGnCjg6kqY0
새해 복을 기원하며 발판
이름없음 2023/01/01 17:49:59 ID : ze0lharbyNA
도끼
이름없음 2023/01/02 21:56:51 ID : xRwtxWi79g0
발판
이름없음 2023/01/03 13:11:58 ID : CrAo41zV9jt
그런가?
이름없음 2023/01/04 13:24:08 ID : hhusjilDs03
발판
이름없음 2023/01/04 20:02:42 ID : wGnCjg6kqY0
발판.
이름없음 2023/01/04 20:09:09 ID : V9cpTTWnO08
단어연(断魚淵) 물고기가 살 수 없는 연못.
◆e1vdDurdO8j 2023/01/12 13:15:55 ID : VdSFeIHu9xR
이야기에 의문점이 있었나요? 이야기꾼은 언제나 질문을 환영한답니다.
이름없음 2023/01/15 18:35:01 ID : wGnCjg6kqY0
키워드는 다 채워졌는데... 소식 없는 그대여...
◆e1vdDurdO8j 2023/03/26 14:58:19 ID : BdXutBvxBcI
하하, 조금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요. 그럼 이제, 어느 연못과 우정에 관한 이야기. 시작할게요!
◆e1vdDurdO8j 2023/03/26 15:01:09 ID : BdXutBvxBcI
어느 깊은 숲속, 어둠에 가려진 자리에 한 자그마한 연못이 있었습니다. 땅이 말라 물이 스러져가는 얕은 연못이었어요. 생명이 살지 못하는 곳으로 변해 버린지 오래인 연못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홀로 외롭게 말라갈 뿐이었습니다. 어느날 한 젊은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찾아오기 전까지는요.  나무꾼은 연못 근처에 자리를 잡고 나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집에서 기다리는 어린 동생을 위해 열심히 일했어요. 그런데 그러던 와중, 실수로 도끼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도끼는 저 멀리 날아가 연못에 풍덩 빠지더니, 바닥에 팍하고 박혀버렸어요. 그런데 도끼가 바닥에 세게 박힌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도끼가 박힌 자리에서 물이 콸콸 새어 나오더니, 말라 있던 연못이 어느새 물로 가득 차며 점점 깊어지는 게 아니겠어요? 멀거니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나무꾼의 앞에 한 어린아이가 나타났어요.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아이에게 나무꾼은 조심스레 누구냐고 물었어요. 아이는 연못의 신령인데, 연못이 말라버려 한동안 지상에 나타날 수 없었다고 해요. 신령은 나무꾼에게 연못이 살아나도록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이 연못에 머물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원래 이곳은 큰 잉어 영물이 살고 있었대요. 흰 사슴이 찾아와 목을 축이고 가기도 했고요.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 신령은 무척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신령은 이내 시무룩해졌어요. 물이 마르고 나서 사슴은 더이상 마실 물이 없는 샘을 찾지 않았고, 잉어는 물이 마르기 전에 물길을 따라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거든요. 하지만 신령은 물이 다시 잔뜩 생긴 지금이면 분명 친구들도 다시 찾아올 거라고 말했어요. 그리하여 신령은 나무꾼에게 그 친구들을 찾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나무꾼은 신령의 이야기를 듣자 동생이 생각났어요. 동생도 친구들과 놀 때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거든요. 나무꾼은 신령이 안쓰러워졌어요. 그래서 나무꾼은 신령의 친구들을 찾아주기로 마음먹었답니다. 하지만 인간을 싫어하는 흰 사슴은 나무꾼이 찾아가자 무시하고 도망가려 했어요. 나무꾼은 사슴이 멀리 달아나기 전에, 신령이 기다리고 있다고 급히 설명했습니다. 사슴은 멈춰서 돌아보았지만 여전히 미심쩍은 기색이었어요. 나무꾼은 다시 한번 말했습니다. 잉어가 살고 사슴이 찾아오던 연못의 신령이 친구들을 찾고 있다고요.  그러자 사슴은 조심스레 다가와서 물었어요. 정말 신령이 돌아왔어? 나무꾼은 그렇다고 말하며 끄덕였어요. 신령이 친구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설명했지요. 설명을 들은 사슴은 나무꾼과 함께 신령이 기다리는 연못을 찾아갔어요. 그러자 연못에 발을 담그고 기다리던 신령은 물이 마르지도 않은 발로 냉큼 달려와 사슴을 얼싸안았습니다. 사슴은 다시 신령을 만나게 된 것에 기뻐했답니다. 그리고 나무꾼에게도 몹시 고마워했어요. 나무꾼은 그저 우연이었다고 말했지만요. 이제 잉어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잉어는 물속에 살기 때문에 물 밖에서 사는 나무꾼과 사슴은 그를 찾을 방법이 요원했어요. 나무꾼이 난감해하던 그때 사슴은 한가지 의견을 냈어요. 곧 선녀들이 물놀이를 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들은 물이 있는 곳을 잘 알고 있으니 그들에게 잉어를 보았는지 물어보자는 것이었어요. 마침 선녀들이 물놀이를 위해 무지개를 타고 내려오는 중이었어요. 나무꾼과 사슴은 무지개가 드리운 곳으로 향했어요. 어느덧 무지개에 다다른 나무꾼과 사슴은 막 땅에 내려온 선녀들을 마주쳤어요. 선녀들은 놀랐지만 나무꾼과 사슴이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한 선녀가 말했어요. 여기에서 남쪽으로 가면 작은 폭포를 낀 호수가 있는데, 그곳에 따듯한 기운을 뿜는 잉어가 산다고요. 그 이야기를 들은 나무꾼과 사슴은 선녀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남쪽으로 걸음을 옮겼어요. 선녀들의 말대로 남쪽 호수는 따듯한 기운이 감돌았어요. 나무꾼과 사슴은 큰 목소리로 잉어를 불렀어요. 그러자 커다란 잉어가 모습을 드러냈어요. 나무꾼과 사슴은 잉어에게 신령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잉어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해요. 연못이 마른 것이 자신 때문이라면서요. 연못이 마른 해가 유독 가물긴 했지만, 연못이 바닥을 드러낸 원인은 연못에 머무는 잉어가 불의 기운을 가진 영물이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잉어는 사슴과 신령이 계속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이 호수는 넓어서 살기 좋다고도 했지요. 하지만 정작 그렇게 말하는 잉어는 쓸쓸해 보였어요. 더운 기운을 내뿜는 잉어의 주변에는 어떤 물고기도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거든요. 연못으로 돌아오는 나무꾼과 사슴은 발걸음이 무거웠어요. 신령에게 이 사실을 전하면 신령은 분명 실망하고 말 거예요. 연못에 물이 더 많으면 잉어도 안심하고 돌아올 텐데. 나무꾼은 생각했어요. 도끼가 박혔을 때 샘물이 나왔으니 땅을 조금만 더 파보면 혹시⋯. 연못으로 돌아온 나무꾼은 연못에 들어가 물이 나오는 곳을 도끼로 한참 찍었어요. 그러자 가뭄으로 딱딱하게 굳어있던 땅이 조금씩 부드러워졌어요. 그렇게 구덩이가 점점 깊어지자 물줄기도 점점 거세어졌어요. 이윽고 강하게 솟구치는 물은 못 밖으로 흘러넘쳐 잉어가 머무는 호수까지 뻗어갔어요. 나무꾼은 연못이 순식간에 깊어진 탓에 하마터면 빠질 뻔했지만요. 연못과 이어지는 물길이 생기자 놀란 잉어가 연못을 찾아왔어요. 그리고 잉어는 신령과 다시 만나게 되었지요. 돌아온 잉어에게 신령은 말했어요. 내가 행복하려면 너도 있어야 해. 호수로 돌아가더라도 가끔은 이렇게 날 보러 와 줄래? 잉어는 신령이 너무 그리웠기 때문에 계속 연못에 있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또 물이 말라버릴지 몰라요. 잉어는 슬픔을 꾹 참고 끄덕였습니다. 잉어는 다시 떠나기 전에 말했어요. 또 올게. 그렇게 잉어가 돌아가고, 나무꾼도 산에서 내려가기 위해 도끼를 찾았어요. 그런데 아뿔싸, 연못 바닥에 도끼를 두고 올라온 게 아니겠어요? 못이 깊어진 바람에 나무꾼이 다시 들어가서 가져오기도 어려웠어요. 나무꾼이 어쩔 줄 몰라 하자 신령이 웃으며 도끼를 건넸어요. 나무꾼은 고맙게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도끼의 날이 금으로 변해있는 게 아니겠어요? 나무꾼은 깜짝 놀랐어요. 신령은 웃으며 선물이라고 말했어요. 나무꾼은 과한 선물이라며 사양하려 했지만 신령의 완강한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작별 인사를 나누고, 나무꾼은 산에서 내려갔어요. 한참이나 숲속을 헤맨 것 같은데, 하늘을 보니 시간은 전혀 흐르지 않았어요. 집으로 돌아오자 식구들은 왜 이렇게 빨리 왔냐며 놀랐습니다. 한바탕의 봄꿈이었던 걸까요? 그러고 보니 연못으로 가는 길이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손에 들린 묵직한 금도끼가 아니었다면 그들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를 노릇이에요. 어쩌면 이 선물은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신령의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이름없음 2023/03/26 15:37:54 ID : 8qoZa5U0ljy
잘 봤어!!
◆e1vdDurdO8j 2023/03/26 16:20:09 ID : BdXutBvxBcI
고마워요! 이번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랍니다. 서로 다른 이들이 어우러지는 광경이 여러분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을지 궁금하네요. 나는 그들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한때는 비슷한 이들만이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한 탓에 외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던지라⋯. 뭐, 이제는 그게 아닌 걸 알지만요!  그럼 닻을 내릴까요? 여러분이 어떤 말을 걸어줄지 기대됩니다. 
이름없음 2023/03/27 00:45:44 ID : xu8qpcGk07f
발판
이름없음 2023/03/27 01:07:20 ID : JTU3RwskoE8
노을을 사랑한 소녀
이름없음 2023/03/27 17:30:35 ID : 5SKY1ii781i
발판
이름없음 2023/03/27 19:46:43 ID : JTU3RwskoE8
발판
이름없음 2023/03/28 06:29:44 ID : mFg2NAja7bv
이슬을 증오한 소년
◆e1vdDurdO8j 2023/03/30 00:10:20 ID : 47Buk4Mjg1w
오. 노을을 사랑한 소녀와, 이슬을 증오한 소년이라⋯. 그 이야기가 적당하겠어요. 사랑을 위해 날아오르기로 결심한 두 요정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1vdDurdO8j 2023/03/30 00:12:25 ID : 47Buk4Mjg1w
제가 그들을 처음 본 건, 금실을 뭉친 듯한 구름이 자줏빛 하늘아래 찬란하게 빛나던 새벽이었습니다. 그곳은 새벽노을이 아주 아름다운 숲이었어요. 그 날은 그 해의 마지막 태양이 뜨는 날이었습니다. 그곳은 겨울이 오면 태양이 뜨지 않았거든요. 노을을 감상한 나는 다른 곳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던 와중 두 명의 요정을 보았습니다. 온몸이 희게 반짝거리는 자그마한 요정들은 물과 빛무리로 이루어진 숲의 주민들이었어요. 요정 소녀는 하늘에 울긋불긋하게 퍼진 빛자국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는데, 요정 소년은 그런 소녀를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문득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나무들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며 시간의 페이지를 넘겨보았어요. 소녀는 노을을 사랑했습니다. 터지는 꽃망울 사이로 태어난 소녀가 세상에 처음 고개를 내밀었을 때, 그 눈에 비친 것은 눈이 부시어 어릿어릿할 정도로 찬란하게 빛나는 금빛 노을이었습니다. 소녀는 단숨에 그것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노을을 바라보는 소녀의 눈을 보며 생각합니다. 빛이 어른거리는 그 눈을, 빛살을 받으며 반짝이는 그 모습을 계속 보고 싶다고요. 그들이 매일같이 함께 새벽노을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소년은 소녀가 하늘의 구름을 따라 저멀리 떠나버릴 것만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명과 이슬이 내린 시간, 소년은 소녀를 바라보며 풀잎을 그러쥐었습니다. 소년은 자신이 터오는 동의 붉은 빛 때문에 마음이 술렁이는 것인지, 아니면 손에 고인 차가운 아침이슬 때문에 가슴이 서늘한 것인지 알 수 없었어요. 소년은 차마 소녀가 사랑하는 노을을 원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소년은 자신의 마음이 소란스러운 것은 다 아침이슬이 차가운 탓이라 여겼어요. 내가 그런 사정을 탐독하고 있으면 마침내 해가 뜨지 않는 겨울이 왔습니다. 소년과 소녀는 처음으로 맞이하는 겨울에 영문도 모르고 늘 같은 자리에서 동이 트는 것을 기다렸지요. 하지만 숲의 겨울은 요정의 수명보다 길었습니다. 그들이 다시 노을을 보게 되는 일을 없을 터였습니다. 그러다 결국, 소년이 걱정하던 일이 벌어집니다. 소녀는 숲을 떠나고 싶어했습니다. 소녀는 생각했습니다. 해가 뜨는 땅으로 가고 싶어. 해는 언제나 큰 나무 쪽에서 떠올랐으니까, 더 큰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갈래. 소녀는 날개를 치며 날아올랐습다. 그것을 망연히 바라보던 소년은 황급히 그 뒤를 따라 날아오릅니다. 소년과 소녀는 바깥이 메마르고 척박한 땅임을 압니다. 요정은 물과 빛무리로 이루어젔기에 습윤한 숲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여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물어 쩍쩍 갈라진 땅에 물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높게 활공하며 광활한 대지와 하늘을 오갔습니다. 그러나 해가 뜨지 않는 나날은 계속되며, 그들은 끝없는 밤을 견디며 여명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의 물기는 점점 날아갔습니다. 결국 마른 평원을 날아가던 소녀가 힘없이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뒤따르던 소년은 놀라 소녀를 부축해 근처의 수풀까지 날아갔습니다. 소녀는 몸의 물이 다 말라 있었습니다.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둘은 함께 말라갔습니다. 소녀는 새벽이 너무나 보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 저멀리 하늘이 푸르게 밝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본 소녀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날갯짓을 했습니다. 소녀는 긴 수풀을 헤치고 다시금 하늘을 마주했습니다. 결국 소녀는 지평선이 붉어지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한참 바라보던 소녀는 소년을 돌아보았습니다. 소녀는 눈이 부시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소녀는 빛무리만을 남기며 사라졌습니다. 소년은 한참을 그곳에서 떠나지 못했습니다. 이윽고 바람에 스치는 수풀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습니다. 소년은 이슬에 닿자 기운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슬 덕분에 소년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이슬이 너무나 미웠습니다. 그렇게 끝나는, 언젠가의 이야기였습니다.
◆e1vdDurdO8j 2023/03/30 00:37:58 ID : 47Buk4Mjg1w
불확실한 가능성에 삶을 통째로 내던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적어도 그들에게 의미있었던 순간이, 노을을 발견한 그 한순간 뿐만은 아닐 것이라 믿습니다. 미지의 세상으로 뛰쳐나가겠다는 결심과, 험난한 길을 뚫고 나아간 그 날갯짓⋯ 나는 그 모든 것이 숭고했노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렇다면 다음 닻을 내리겠습니다.
이름없음 2023/03/30 00:50:45 ID : JTU3RwskoE8
너무나 시린 이야기야. 홀로 남은 소년은 빛무리로 승화하길 바라면서 몇번인가를 더 맞이할 노을에서 소녀의 숨결을 더듬으며 되돌이키고 또 회상하겠지.. 그럼에도 소녀는 마지막까지 행복할 수 있었으니 소년은 그걸로 되었노라 웃겠지. 결국 같이 가지 못 한 자신에게는 웃지 못 하겠지만.
이름없음 2023/03/31 10:53:26 ID : 9teJRu8jg1y
발판
이름없음 2023/03/31 11:39:32 ID : 8i3Dy4Y8mGp
ㅂㅍ
이름없음 2023/03/31 14:03:23 ID : JTU3RwskoE8
망국
이름없음 2023/04/01 09:30:19 ID : JTU3RwskoE8
발판.
이름없음 2023/04/01 13:02:39 ID : ruq41wlg59f
https://youtu.be/zwYhHynBdJ0 이 노래가 생각나네ㅠㅠ 발판!
이름없음 2023/04/01 22:59:22 ID : 5SKY1ii781i
다음 키워드는 뭐가 되려나
이름없음 2023/04/02 02:57:54 ID : 40oIMi8jirw
얼음 사슬
◆e1vdDurdO8j 2023/04/04 16:08:45 ID : 7zaoJQsi7ff
서글프고도 아름다운 감상이로군요. 그 말대로, 빛무리가 되지 못한 소년은 소녀의 웃는 모습을 결코 잊지 못할 테지요.
◆e1vdDurdO8j 2023/04/04 16:09:53 ID : 7zaoJQsi7ff
망국과 얼음 사슬이라⋯. 음, 이거 어려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어쩌면 내 작은 일탈에 대한 고백이 될 수도 있겠어요. 불과 흙의 나라, 그리고 어떤 멸망의 이야기. 시작할게요.
◆e1vdDurdO8j 2023/04/04 16:35:26 ID : 7zaoJQsi7ff
불타는 대지를 가지고 있어 불과 흙의 나라라고 불리는 땅. 그곳에서 새 생명을 만드는 방법은 조금 특이했습니다. 생명의 물을 넣은 흙으로 빚은 아이를, 성스러운 불꽃이 피어오르는 산의 동굴에 넣으면, 그는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해 그들의 품에서 살아가게 되었어요. 그렇게 태어난 이들의 피부는 도자기처럼 매끈하고 몸은 돌처럼 단단했지요. 그런데 성스러운 불꽃은 너무나 뜨거워서 모두가 조심스레 다루어야 했어요. 하지만 자연을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성스러운 불꽃은 때때로 산 밖까지 흘러넘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굴에서 새어 나온 가장 강력한 불꽃이 산 밖으로 넘쳐버렸을 때, 그곳을 지나가던 어떤 마법사의 소중한 물건이 불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화가 난 마법사는 동굴을 지키던 사람들을 전부 깨뜨리고, 불과 흙의 나라의 왕도 산산조각 내고 말았어요. 왕을 잃은 불과 흙의 백성들은 두 가지의 의견으로 갈라졌습니다. 마법사가 잃은 그 물건을 다시 구해다 주어 분노를 피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저자가 앞으로 무슨 짓을 더 저지를지 모르니 그를 막아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어질고 선한 왕을 잃은 민중들은 분노한 상태였어요. 결국 의견은 마법사를 치자는 쪽으로 기울었지요. 하지만 맞붙어 싸운 결과 아주 많은 불과 흙의 사람들이 한 줌 파편으로 화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공격이 언짢았던 마법사는 이후 불의 나라에 저주를 걸었어요. 그러자 산의 불꽃이 전부 얼어붙고 말았지요. 반전의 저주로 만들어진 불꽃 형상의 얼음은 마치 사슬처럼 산을 옭아맸습니다. 불을 잃은 흙의 나라는 더이상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수 없는 땅이 되고 말았어요. 불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은, 얼음의 땅이 된 그곳에 더이상 머물 수 없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불과 흙의 나라는 왕과 백성, 국토를 잃었어요. 누구나가 불과 흙의 나라를 망국이라 불렀습니다. 그럼에도 마법사에게 대항하려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마법을 연구해서, 나라의 위협이자 세계의 위협인 그 마법사를 저지하자는 지식인들이었어요. 그들은 나라를 떠나온 자신들을 여전히 '불과 흙의 백성'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마법사는 장난치듯 그들을 찾아내고 파괴했어요. 보다 못한 나는 마법사를 말렸습니다. 그가 그 세계의 마법사였다면 무슨 짓을 하든 가만 두어야 했겠지만, 실은 그도 나와 비슷한 여행자였거든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 말은 그에게 닿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나는 이 사건에 개입하기로 했어요. 같은 여행자로서의 책임감도 없지 않았고⋯. 나는 불과 흙의 성화를 구경하는 것이 좋았거든요. 원래는 이래선 안 되지만⋯. 나는 결사대를 이룬 불과 흙의 사람들에게 나타나, 소환 마법을 담은 보석을 건넸어요. 그리고 위급할 때 이것을 던져 깨뜨리면 언제든 나타나 도와주겠노라고 말했지요. 보석을 받은 학자는 잠시간의 침묵 끝에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도 마법사는 횡포를 멈추지 않았어요. 몇 개의 결사대가 더 파괴되었지만 불과 흙의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보석을 깨뜨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세계에 전체에, 이계의 존재를 세계 밖으로 쫓아내는 마법이 발동되었어요. 내가 불과 흙의 사람들에게 주었던 보석에는 나를 소환하는 마법이 걸려 있었는데, 그날 세계를 덮었던 것은 마치 그 소환마법을 거꾸로 뒤집은 것 같은, 추방마법이었지요.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불을 얼음으로 만드는 반전의 저주와, 머나먼 이계의 존재를 불러내는 보석의 마법을 연구해 둘을 결합시킨 것이었어요. 그 결과 이계의 존재를 쫓아내는 마법이 만들어졌고, 사람들이 마법을 발동시키며 마법사도 나도 이계로 추방당했습니다. 그 덕에 저도 더이상 그곳의 성화를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뭐, 그것은 괜찮습니다. 그들이 무사하다면 아름다운 성화는 내가 바라보고 있지 않아도 다시 피어오를 테니 말이에요. 그들은 앞으로도 분명 잘 해내겠지요.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리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말입니다. 나도 그들을, 도움이 필요한 약한 존재로만 여겼던 걸까요? 부끄러운 일이네요.
◆e1vdDurdO8j 2023/04/04 16:40:11 ID : 7zaoJQsi7ff
사실 이계의 마법사가 자신들을 죽이려 하는데 수상한 여행자가 준 보석을 어찌 믿을 수 있겠나요, 하하. 그들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겠군요. 나도 급해서 생각이 짧았습니다. 자! 그럼 다음 닻을 내려 볼까요.
이름없음 2023/04/04 20:13:38 ID : WnPeIK0snQl
발판
이름없음 2023/04/05 17:57:48 ID : lyJQlg1wrdR
ㅂㅍ
이름없음 2023/04/05 19:19:32 ID : JTU3RwskoE8
하르모니아
이름없음 2023/04/06 21:29:46 ID : xRwtxWi79g0
발판
이름없음 2023/04/07 14:10:45 ID : JTU3RwskoE8
발퍄
이름없음 2023/04/07 15:56:44 ID : Ns2mk2pVbDw
발판
이름없음 2023/04/07 22:39:57 ID : 5SKY1ii781i
자연
이름없음 2023/04/09 11:19:09 ID : xB9fXupPg5e
여행할 장소가 하나 줄어들어서 아쉽겠다. 그러고 보니 여행자님이 직접 나온 이야기는 처음이네! 사실 여행자님의 이야기도 궁금했어서 반가워. 그나저나 다른 여행자들도 있구나. 그 마법사는 어떻게 됐을까? 여행자님처럼 다른 세상을 떠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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