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을 가장 먼저 해야 할까 생각을 해 보자 그래 생각을 해 보자고 새벽에 깨어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싸구려 볼펜 찌꺼기처럼 묻어 있는 감정을 떨치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됐어 내가 겪었던 일들이나 따로 담아 두고 싶던 것들을 올리는 계정이야 난입이나 질문도 항상 받고 있어 지친 개미처럼 천천히 어떨 땐 터진 둑 사이 물살처럼 빠르게 굴러 갈 예정 필터링은 당연하게도 없을 거니까 열람에 유의해 줘
✔ 내일 해야 하는 일
▪️ 할머니 댁 내려가서 밥 먹고 세뱃돈 드리기.
▪️ 남은 작업 마무리 후 여가 시간 제대로 보내기.
▪️ 보고 싶던 영화 한 편은 꼭 보자.
▪️ 내일 작업 두 편 마무리하고 쉬기. 정확하게 끝내 놔.
▪️ 저녁 맛있는 거 먹기.
▪️ 담배 사고 남은 돈 분류해 놓은 다음 가계부 쓰기.
재이는 잘 지낼까. 내일은 쓰려던 글을 다 쓰고 재이에게 편지를 적어야겠다. 너무 오랜만에 써 보는 편지라 조금 긴장되지만, 재이는 내가 보여 주지 않은 편지까지도 모조리 읽었으니 이해해 줄 수 있을 것이리라. 재이에게, 하고 시작되는 일기들이 다시금 나를 서럽게 한다. 원래 겨울은 마음껏 애틋하고 서러우라 있는 계절이니 딱히 유감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나는 여지껏 모든 겨울을 따뜻해했기에 이런 서러움과 추위에는 그다지 면역이 없는 것 같다. 재이가 보고 싶다. 오랜만에 재이에게 다음에 또 편지를 하겠다는 거짓말을 하고 싶다. 시간은 녹슨 기억을 괘씸할 정도로 그럴싸하게 꾸며낸다.
감기 같은 감정엔 항체가 생기지 않는다. 감기는 외롭다. 감기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꾸지 못한다는 걸 알아도 열이 펄펄 끓는 와중에는 조금씩 갉아먹히는 기분이 든다. 그럴 때면 환자는 혼자다. 그럴 때만 혼자다. 감기는 늘 혼자라 외롭다. 자꾸만 이불에 집착하게 되는 걸 보면 나도 감기에 걸릴 타이밍인가 보다. 그렇다면 나도 외로운 환자다. 모든 계절성 감기가 이 공식을 가지고 있고, 감정이 치우친 감기는 제곱으로 치환된다. 이변은 없기 때문에 답은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