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할 수 없는 세상이었다. 모든게 허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두팔을 벌려 그 세상에 빠져들려고 했다. 바보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속아서는 안된다고 스스로 몇번씩이나 되뇌었지만 순식간에 그 세상에 들어가려했다. 너에게 빠져들어가는 순간 모든 것들이 부서져 흩날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름다웠던 너의 세상은 없고 나는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있었어. 후회하고, 또 후회했어. 애초에 너를 사랑했으면 안되었는데. 너에게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사랑임을 인정해서는 안되었는데. 너를 좋아하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내가 얼마나 몸부림 쳤는지 모르지.
너에게 물어보고 싶었어. 네가 나에게 했던 말들이 모두 진심이었냐고, 나를 보며 짓던 네 표정들이 진짜 네 표정이었냐고. 네 행동들에는 정말 가식이 없었냐고, 그리고 우리의 이별의 순간에 네가 나에게 대던 이별의 이유가 정말 사실이었냐고. 너는 나를 사랑한 순간이 존재했냐고. 우리가 한게 사랑이 맞길 바래. 우리가 한 것이 사랑이고, 우리는 그저 다른 연인들처럼 맞지 않아서, 사랑이라는 것에 서툴러서 어쩔 수 없는 이별을 맞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고.
그 때 기억나니. 네가 술에 취해 나에게 전화를 해서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며, 내가 너무 예뻐서 몇번이고 설레게 된다며 이야기를 하던 밤. 누구에게던 따뜻한 한마디한마디를 건네는 입술이 얼마나 예쁜지, 너를 바라볼 때의 내 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던 그날 밤. 굳게 웅크려있던 내가 너에게 순식간에 녹아버린 그 날. 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 누구라도 그 시간속에 너를 이기지 못했을거야. 그 때 네 목소리가 얼마나 달콤하게 들렸는데.
가끔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내가 당신만큼 매력적인 사람이었더라면,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
당신을 사랑하는 밤이 늘어갈수록 나는 작아지고, 비참해졌어요. 당신은 나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과분한 사람임을 그 어떤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았으니까.
당신은 내 비참함을 당신의 우월감을 채우는데에 쓰곤 했어요.
내 절망으로 인해 당신이 잠깐이나마 웃는다면 기꺼이 당신을 위해 지옥으로 빠져들 수 있어요.
내 절망의 끝이 결국에는 당신이라면 과감히 슬픔에 잠겨줄게요.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려면 내가 얼마나, 어디까지 비참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