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순이 좀 바뀐 것 같긴 하지만 내 이야기부터 다시 풀어볼까 한다
나는 23살 공대생 여자고 작년부터 휴학한 상태다
23살이면 원래 4학년이어야 정상이지만 난 아직 2학년이다
애초에 대학 자체도 재수해서 들어갔고, 학점 문제로 진급이 꼬이면서 일이 그렇게 됐다 게다가 지금은 휴학까지 했고
원래 작년에는 휴학 버튼 누를 계획이 없었는데 작년 1학기를 다니면서(그래봤자 싸강이었지만) 기존부터 좋지 않았던 정신상태가 너무 악화돼서 어쩔 수 없었다
기존부터 안 좋았다는 말이 뭐 지병 같은 게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1학년(그러니까 2019년) 2학기 말에 난생 처음 우울증이 찾아왔던 거지
우울증+무기력증에 폭식증까지 겹치면서 그 때 내 꼴이 말이 아니었다 학교도 제대로 못 나갈 지경이었으니까
원인을 얘기하자면 일차적으로는 전공이 안 맞았고, 이차적으로는 이상적인 내 모습과 현실의 내 모습의 괴리가 너무 커서 그랬다
자세히 파고들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상담판 아니고 연애판이니까 이 정도로만 해두겠다
완전히 나아진 것도 아니었고 근본적인 문제가 전공이 안 맞아서였는데
그 상태로 전공을 계속 들으려 했던 거다
사실 그 때의 내 선택도 아주 이해 못할 건 아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공은 애증의 대상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마냥 미워할 수만은 또 없었던 거지
다만 좀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했지 않았나 싶다
언급한 대로 멀쩡하지도 않은 상태로 한 학기를 버티려 했고 당연하게도 그 시도는 불발됐으니까
악화된 상태로 매일같이 질질 짜다가 방학하자마자 2학기 휴학신청을 했다
참고로, 지금은 전공에 학 뗐다
>>12 고마워
그렇게나 저렇게나 시간은 잘도 갔고 2021년이 되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수험생이 됐다
1학년 시절부터 이 시험을 준비할까 말까 고민을 시작한 게 작년 2학기 말까지 이어졌었지
지금의 결정에는 후회가 없다 작년에 막연히 1학기 다녀야지 결정했던 것과는 반대로 나름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나온 결과니까
솔직히 이 시험을 준비한다는 게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기는 하다
내 전공이나 흥미와는 전혀 무관한 공부고 그런고로 완전히 바닥부터 시작하는 일이라
게다가 이 시험 하나만으로도 공부할 양이 방대한데 거기에 까다로운 응시조건까지 얹혀서 더 그렇다
그래도 오히려 심정적으로는 편하다
유일한 불안감이라면 내가 과연 이 시험에 붙을 수 있을까 하는 것뿐이지
물론 그 불안감이 제일 큰 문제이긴 하지만
>>14 실시간이네 고맙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내가 이 시험에 도전하기로 한 데는
지금은 훈련소에서 입영절차를 거치고 있을 그 친구의 영향이 크다
걔가 나한테 직접적으로 이 시험 관련해서 추천 같은 걸 한 적은 없다 오히려 이 분야에 대해서는 암시조차 꺼낸 적 없지
그러니까 결정 자체는 전적으로 내 몫이었다
다만 그 친구가 나한테 해 준 동기부여가 내게는 아주 컸다
정작 본인은 자기가 나한테 그런 동기부여를 해줬다는 것도 모르고 있겠지만
내가 이 친구를 짝사랑하기 시작한 것은 2019년 2학기 초중순, 우울증이 찾아오기 두어 달 전부터였다
그 무렵까지만 해도 드문드문 우울감을 느꼈을지언정 일상생활 범위 내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다고
오랜만에 찾아온 연애감정이라, 한참 좋아 죽네 마네 설레발을 칠 시기였다
그래서 가능했던 거지 스레딕에 신나게 짝사랑 썰을 푼 게
정작 썰이네 마네 할 만한 건덕지도 없었던 걸 생각하면 헛웃음밖에 안 나오지만
http://thredic.com/index.php?document_srl=38803989
그 시기 만들었던 짝사랑 스레다
이 시기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우울증이라는 공백기로 인해 제법 큰 괴리가 생겼다 굳이 저 스레를 잇지 않고 새로 이 스레를 만든 건 그래서다
그리고 언급한 동기부여라는 건, 위 스레 21-24번 레스의 내용이다
그 때 이후로 쭉 고민했다 정말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무슨 진로를 택하는 게 내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까
분명 내가 지나치게 과몰입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애에게는 위의 일이 그저 단순한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렸을지도
하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다 나는 이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내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결정을 하게 만든 점에 대해 그 애애게 내심 고맙다
좌우간 그랬다는 이야기고
그와 별개로 언급했다시피 작년 한 해는 그 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녀석이 계속 좋았고 단념이 안 되고 하지만 이렇다 할 명분 없이 따로 연락할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었다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체념 상태였다 그 애에 관해서는 그냥 계속 나 혼자 끙끙 앓을 팔자려니 싶었다
처음 화제는 내 스토리였지만 먼저 온 연락에 내가 반응하자마자 곧바로 군대 쪽으로 틀어진 걸 보면 이게 목적이었으려니 싶다
학과 사람들도 몇몇 못 만나고 군대를 가게 생겼다며 한탄하는 거였다
[과 사람들 다 만나지도 못하고 군대 감]
<아 군대 가? 공군가시나요>
[그렇습니다]
<몸건강히 다녀오십쇼>
[예 인편 많이 써주세요]
날더러 인편을 많이 써 달란다
이실직고하겠다 나는 그 순간 뭐라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그동안 그 애애게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던 내가 최소한 군대 내에서의 연락을 바랄 정도의 사람은 된다는 거였으니까
더해서 그 애에게 쓰고 싶은 만큼 마음껏 인편을 써도 된다는 얘기였으니까
그러니까 상관없었다는 거다 그 애가 내게 연락한 목적이 단순히 인편 써 줄 사람을 구하는 것이었다고 해도
뜻밖의 경사(?)에 내가 완전히 행복감에 취하기도 전에 그 애는 또다른 폭탄발언을 했다
[코로나 괜찮으면 밥이나 함 먹고]
[인편 써주는 대신 밥한끼 사드림]
꿈인지 생시인지 싶었다
녀석이 먼저 내게 밥을 먹자고, 심지어 자기가 사 준다고
그게 아무리 인편이라는 목적이 있었다고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