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똑같은데, 몸이 엄청 말랐더라고. 현실의 나는 그냥 평균 몸무게의 사람인데 꿈 속에서는 정말 말랐었어. 누가 봐도 저체중. 피부도 엄청 하얘가지고는 검은 머리카락이 허리보다 길었어. 좀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꿈속에서의 나는 나름 예뻤어. 몰골이 좋지는 못했지만, 분위기가 특이했던 것 같아. 이때까지만 해도 생각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나는 와 꿈에서는 나도 조녜 여신이 될 수 있는건가 싶었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어. 꿈 속에서의 나도 자기를 보고있었던 건지, 고개를 돌려보고, 다리도 내려다보고 하더라. 그때 나는 바지는 안 입고 허벅지 반을 덮는 오버핏 검은 티셔츠만 입고 있었거든. 허벅지를 살펴보려했던 건지 그 티셔츠 끝을 잡고 살짝 올리는데, 갑자기 현관문이 쾅 열렸어.
집(혹은 방)에는 복도나 다른 무언가가 없어서, 그냥 문을 박차고 들어오면 바로 침대가 보이고 쇼파가 보여. 그리고 나 역시도 고개만 조금 들면 현관문이 보일 위치에 있었지. 보진 않았지만.
쳐들어온 그 남자는 내게 아주 천천히 걸어왔어. 내 앞까지 와서,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굽혀 내 머리를 쓰다듬었어. 그가 쓰다듬는 나는 진짜 내가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싫었는지 몰라. 꿈속에서의 내가 싫어해서 그런가.
아 나라고 하니까 진짜 내가 겪은 일 같고 좀 기분이 그렇다. 안 그래도 요즘엔 아예 현실에서도 늘이라는 꿈 속 인물이랑 동화된 느낌이라ㅠ 그냥 늘이라고 할게. 꿈속에서의 내 이름은 오늘이었어. 성이 오, 이름이 늘. 이름마저 현실이랑 완전 다르더라.
어쨌든 K가 울지 말라는 듯이 늘이를 꼭 껴안고 등을 토닥이고 머리를 쓸어줬어. 그 순간까지도 늘이는 K가 무서웠지만. 무섭다 못해 미웠고, 그 미움은 K을 죽일까?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컸어.
아 몰라 나=오늘
나는 K에게서 벗어나 드레스룸으로 향했어. 그곳에 있는 옷들은 모두 오늘의 취향이었고, 늘이는 그 수많은 옷들 중에서 딱 붙는 흰색 가죽 원피스를 골랐어. 가방도 고르고, 악세사리도 고르고. 그리고 씻으려 드레스룸을 나오니 그 앞에 K가 떡하니 서 있었어.
다 씻고 가운만 걸친 채로 나가려고 화장실 문고리를 잡는 순간, 시야가 어두워지면서 쓰러지나 싶더니 빨려들어가는 느낌과 동시에 꿈에서 깼어. 꿈에서 깨자마자 나는 오늘이 쓰러진건가, 생각하는 동시에 뭔 이런 스토리의 꿈이 있냐고 툴툴거렸어. 드럽게 기분 나쁜 꿈이었다고. 어떤 큰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기분이 나빴어.
그 날 이후로 꿈 속 K는 뭔가 조금 더 미친넘이 된 것 같고, 오늘은 더 무기력해진 것 같아. 나라도 뭔가 하고 싶지만 나는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여서 답답하기만 해. 아무리 꿈이라도 무기력한 채로 밥 깨작깨작 먹다가 다 게워내고, 울면서 누군가를 죽이겠다 다짐하는 그 순간, 감정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건 힘들거든.
오늘은 M을 유일한 자신의 편으로 여겼고, 그런 사람과 만난 이 좋은 타이밍에 놀랍게도 K가 등장했어. K가 활동하는 범위는 내 집 안밖. 아마 문 앞에 계속 있다가, 일 보고 온 것 같은데...타이밍 진짜 별로더라. 내가 놀라서 M한테서 확 떨어지니까 안 그래도 썩었던 K 표정이 더 썩어갔어.
깨고 나서 한 생각이지만 오늘의 입장에서는 그 순간 무섭다, 싫다 라는 감정을 느껴야 하는데, 오늘은 전혀 그렇지 않았어. 정말 담담하게 K한테 가서는, K의 멱살을 쥐고 확 끌어당겼어. K 키가 되게 크거든. 오늘도 아주 작은 키는 아닌데 K가 유독 커. K가 끌어당겨진 건지, 허리를 굽혀준 건지는 몰라도 쨌든, 오늘이 K를 안듯이 붙잡고 말을 했어.
아 근데 말투 개불편하다 어정쩡 뭐야 도대체ㅋㅋㅋㅋㅋㅋ 진짜 꿈이 내 무의식의 반영이라면 내 무의식은 미친 게 아닐리 없다고 생각될 만큼 오늘이고 K고 안 미친 놈이 없어. 사실 난 오늘이 그냥 K한테 집착당하는 불쌍한 여자라고 생각했단 말이야? 그래서 현실에서도 K만 생각하면 기분이 나빴고.
뭐 그러다가 잠든 건지 기절한 건지 그대로 깼는데, 오늘 꿈을 꾼다면 그냥 잠든거겠지. 꿈을 이렇게 이어 꾸니까 드라마 보는 것 같아서 등장인물들 자꾸 생각하게 되는데 그냥 M은 너무 불쌍하다...오늘과 K의 미친 로맨스를 위해 희생된거야 뭐야.. 거기에 오늘한테 감정이입되니까 내가 오늘같이 미친넘같고 막 복잡해..
왜 그런가 했더니 K가 ‘M은 왜 만났어?’ 물어보더라고. 웃음기도 없이, 진짜 무서운 표정이랑 낮은 목소리로. K는 잘생겼어. 그냥 개잘생겼는데, 성격이 안 잘생겼잖아? 그 잘생긴 얼굴로 돌아이 같은 표정 지으면 무섭지. 늘이도 평소엔 K가 너무 잘생겨서 종종 놀라지만 이 순간만큼은 진짜 무섭다고 생각했어.
쨌든 그 무서운 얼굴로 ‘오늘, M을 죽여달라 해서 다행이야.’ 하더라고. 그리고 M이 안 죽었다면 오늘 니가 죽었을 거래. 오늘은 그 말을 당연하다는 듯 담담하게 받아들였어. 애초에 그것 때문에 M을 죽여달라고 한 거니까. K가 M과 오늘 중에 오늘을 죽일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이 M을 조금이라도 감쌌다가는 오늘도 죽기 직전까지 갈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