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레주는 중학생 때 공부는 잘했으나 세상은 공평하다고...... 그 대신 사회성이 포악한 길거리 고양이만도 못했음...... 덕분에 친구 한 두명과 소소하게 어울려 다니는 개찐따였지. 그래도 공부는 잘한다 뭐, 라는 자부심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던 나는 어느 시험 이후 내 인생 최대의 위기를 직면함.

머리를 샛노라게 물들이고 지 귀가 귀걸이 보관함인줄 아는지 귀에 피어싱을 치렁치렁 박아놓은 애가 나한테 다가옴. 피부도 허여멀건하니 귀티 나게 생겼지만 인상이 뭔 맹수시끼 마냥 포악해서 난 초장부터 필요 이상으로 쫄아 있었음.

인사고 뭐고 죄다 쌩까고 그 시끼가 건넨 말: 너 공부 잘한다며? 아 신이시여......

나는 정신이 아찔해져서 무교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만 신을 다 찾았음. 순간 이제까지의 내 인생이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가던데 이게 주마등인가 싶더라.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알라신 공자님 최고권력자 어무이 제발 날 구원하소서...... 소소하고 찐따스러웠던 내 평화로운 학교생활이 이대로 막장대로를 달리는 건가? 오만 생각이 다 들었음.

어어 그냥 뭐 그냥저냥...... 왠지 잘한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얼버무렸지만 그 넘은 암시롱 않다는 듯 "XX(쌤 이름)이 너 머리 좋다던데." 라고 함...... 난 앞으로 벌어질 끔찍한 일들을 상상해 보았음. 일진들에게 개처럼 끌려다니는 셔틀 인생이 되는 것인가 난 공부 열심히 한 죄밖에 없는데 뭔가 억울했다.

그 양아치 쉑은 뭔가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는데 그 장면을 내가 아직도 세세히 기억한다 이 개새야. 니 불만 섞인 표정에서 난 내 참담한 미래밖에 안 보였다고. 여하튼 그렇게 난 내 머릿속으로 소설을 써재껴 내려가고 있는데 걔가 한참 고민하더니 웅얼거리듯이 하는 말: 나 공부 좀 도와줘.

예??? 뭐라굽쇼?? 나는 한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걔를 올려다 봤지만 그 시키는 아무런 설명도 없었음...... 중얼거리듯이 덧붙이는 설명에 의하면 자기는 성적이 낮은 빡대갈 새끼라 도움이 필요하댄다. 근데 그걸 왜 내가 돕냐고...... 와이......

설명도 턱 없이 부족했고 억울함은 머리 끝까지 차올랐지만 어쩌겠어...... 찐따인 내게 그 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는 명분 따위 없었음...... 결국 나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그 시퀴는 만족한듯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음. 아 전학 보내달라 그럴까, 자퇴할까, 열심히 고민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필력보소 존나 블랙홀인줄 개빨려들어가네 ㅋㅋㅋ

그렇지만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의외로 내가 예상했던 괴롭힘은 없었음. 내가 해주는 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가끔 주말에 시간 내서 만나서 ㄹㅇ 공부를 도와주는 것 뿐이었음. 아니 사실 이것도 짜증난다면 짜증났지. 피 같은 내 시간을 이런 양아치랑 보내야 한다니...... 하지만 친구라곤 몇 없었던 나는 쉬는시간은 물론이고 주말 동안에도 혼자인 적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은 기뻐하셨다. 우리 딸이 주말에 반 친구를 만나기 위해 외출을 한다니...... 덕분에 부모님한테서 용돈을 두둑히 받았기 때문에 넘어가 주기로 했음. 안 넘어갔으면 어쩔 거냐고? 물론 그딴 선택지는 없었다.

>>10 ? 아 여자였구나 생각해보니 양아치 묘사도 은근 여자같았네 ㅋㅋㅋㅋㅋ

>>11 놀랍게도 생물학적 여자다. 남자였으면 그 시퀴의 파이어에그를 힘껏 걷어차 줄 수 있었겠지만 그 녀석에겐 소중한 두짝이 없는 관계로 패스. 이어서 말하자면 그 새키는 은근...... 은근 머리가 좋았음. 내가 상상한 빡대갈이 아니었다 뭐야 이거, 기만인가? 가르쳐주면 가르쳐주는 대로 잘 배우고, 일말의 양심인지 뭔지 늘 나한테 꼬박꼬박 먹을 걸 쥐어줬음. 그리고 난 이때 살이 7kg이 쪘지. 내 인생은 막장대로를 달리진 않았지만 돼지로드는 확실하게 달렸다.

아무튼 내가 시간을 쪼개가며 얘의 공부를 봐준 건 물론 내가 소심함의 집결체 같은 사람이기 때문도 있었지만 사실 그보다는 조금 쾌감이 있었다. 아 좀 변태 같나. 반 뒤에서 늘 밀림의 왕 사자 마냥 고고하게 존재해 계시던, 차마 접근할 수 없는 오오라를 내뿜던 인간이 내가 하라는 대로 말을 고분고분하게 따른다? 심지어 와서 아는 척을 하며 내게 먹거리를 쥐어준다? 그 덕에 용돈이 인상했다? 와우. 생각보다 이득이 많은 거래였다. 선생님들도 걔한테 붙잡힌 나를 측은하다는 듯이 바라보시면서 잘 대해주셨고 걔가 주변에서 알짱거려서인지 다른 애들도 왠지 날 좀 조심스러워 하던 게 느껴졌다. 심지어 남을 가르치면서 공부하다 보니까 나도 성적이 더 올랐다. 그래, 원래 인간은 분에 넘치는 권력을 손에 넣으면 훼까닥 해버린다고...... 난생 처음 정복감을 느낀 찐따는 이미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음.

아무런 생각 없이 남들을 도륙해 버릴 것 같이 생겼던 이 친구는 의외로 양심이라는 게 존재했던 모양인지 나한테 늘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부피가 늘어가던 스레주는 급기야 그 친구를 놀려먹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거임...... 복도에서 어깨를 부딪히기만 해도 눈을 부라리던 놈이 내가 눈치 한 번 주면 바로 꼬리 내리는 순한 양이 되어버린 것임...... 덕분에 난 즐겁게 이 친구의 공부를 봐주었고, 그 대가로 그 친구는 나한테 먹거리와 학교에서의 안전을 보장해 주었다. 그 왜 과거 영주들이 주민들에게서 세금을 걷는 대신 병력으로 그 지역과 주민들을 지키던 것처럼. 은근 합리적인 제도였을지도 모른다고 그 당시의 사상을 재평가 하는 내가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필력뭐야 레주 쩐다

쓰잘데기 없는 말이 좀 길었네. 아무튼 나는 날이 갈수록 걔가 편해져서 급기야 기어오르기 시작했고, 그 친구는 날이 갈수록 성적이 올랐다. 그 놈은 '쟤 저래서 고등학교나 무사히 갈 수 있냐?' 싶던 수준의 성적을 평균까지 끌어올리는, 흡사 죽은 자를 되살리는 급의 기적을 보여주었고 난 우리 반 최고 양아치를 이 새끼 저 새끼로 부르면서 막대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음.

개판이던 그놈의 성적이 봐줄만해진 덕에 나는 아주 흐뭇했다. 아...... 자식을 키워낸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무사히 키워낸 내 자식의 성장을 본다는 게 이런 감정일까? 글썽이는 눈물을 삼키며 나는 내내 궁금했던 부분을 물어봤다. 집에 돈도 많아 보이던데 학원도, 과외도 안 하고 굳이 나한테 부탁한 이유가 대체 뭐야?

웃는 얼굴로 그 놈이 말하길, 학원은 단체로 하는 거라 본인이 진도를 못 맞출 것 같고, 가족은 이미 자기를 내놓다 싶이 해서 과외를 한대도 지원을 안 해 줄 것 같더라. 그리고 우리 학교에서 공부 잘한다는 애 중에 네가 제일 찐따 같고 만만해 보이더라. ...... ...... 그렇다. 이 새끼는 후레자식이었던 것이다.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없다. 나는 과감하게도 싸커킥을 날렸으나, 비록 사회적 위치는 성장했을지언정 신체능력은 여전히 맥아리 없는 찐따였던 나는 최고존엄 양아치를 쓰러뜨리지 못 하고 대신에 헤드락을 당했다. 나쁜 새끼.

활짝 웃는 순진한 얼굴로 '너 찐따 ㅎㅎ' 라고 말하는 그 놈에게 나는 하루 정도를 내리 삐져있었고, 그 이후로도 일주일 정도를 더 삐진 척 해서 결국 놈에게 치킨을 얻어 먹었다.

아무튼 그 새끼는 정말 온 몸이 기만으로 철철 흘러 넘치는 희대의 개새끼였고, 큰 도움 없이도 성적은 아주 옥황상제의 똥침을 찌를 기세로 상승곡선을 탔다. 본인은 자기 입으로 자신을 빡대가리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이 놈은 그냥 공부 안 하던 재능충이다. 주식 그래프가 이 녀석의 성적표 같은 모양이었으면 전 세계의 주식인들이 기쁨의 눈물로 바다를 새로 만들어 냈을 것이다. 청출어람이라고, 심지어는 나보다 시험 성적이 높던 때도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그때마다 뇌세포야 죽어라, 를 외치며 머리를 딱콩 때려줬지만 별 의미는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악연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툭 치면 끊길 것 같은 허약해 보이는 인연이었는데 어찌저찌 살아남는 게 참 질기다. 어휴 징그러운 놈.

참고로 그 놈은 보이기는 정말 길가다가 잘못 건들면 장기 털 것 같이 생겼지만 의외로 인간이 지녀야 할 지혜와 양심과 배려를 모두 지니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렇게 키워냈다. 중학생 때도 조선족 같거나 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이 훨씬 낫다. 내가 유인원을 사람으로 키워냈으니 이로써 다윈의 진화론은 증명되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발 존나 웃기네 친구하고 싶다 근데 지금은 몇 살인거야 그럼?

만남과 친해진 계기는 이러했는데, 비록 내가 긴 인생을 산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 진화론의 살아숨쉬는 증거 같은 녀석과의 만남은 아직까지도 어이가 없다. 걔는 지를 도와줄 인간으로 가장 만만한 놈을 골라잡았다는, 굉장히 별 일 아닌 행동이었겠지만 나는 머릿속에서 이미 나 자신을 위한 셀프 향을 피우고 있었단 말이다. 덕분에 가끔 그때의 이야기가 나오면 웃으면서 때려준다. 그래도 내 대부분의 인맥이 이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덕에 생성된 것이므로 그 이상의 불만은 함구하는 중임.

>>24 워낙 특이한 케이스이기도 하고, 혹시라도 누군가 이 스레를 읽고 알아볼까봐 자세히는 말 못하지만 영원한 17세임. 농담이고 꽃 다운 20대 초반이다.

>>26 ㅋㅋㅋㅋㅋㅋㅋㅋ 뭔가 엄청 오래된 친구네 그 친구도 대학 잘 갔어?

포악한 길거리 고양이부터 알아봄 레주 비유,필력ㅆㅅㅌㅊ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웃겨

>>27 집에서 지원 안 해줬던 거 + 중학생 때 쌩양아치였던 거 치곤 굉장히 잘 갔음. 뭐 누구나가 부러워 할 만한 수준은 아니어도 중학생 때 알고 지내던 애들한테 "OO이가 그 대학 갔다더라." 하면 다들 놀랄 것 같음. 지원만 좀 빵빵했어도 더 좋은 곳 갈 수 있었을 것 같아서 그저 안타까울 따름임. 그래도 어쨌든 전체적으로 노답이었던 그 넘 대학은 내가 보냈다. 그런데 효도는 하지 못 할 망정 날 놀리는 재미로 살고 계신 것 같음.

>>29 축하해ㅋㅋㅋㅋㅋㅋ 너는 좋은 대학 갔겠네!

다들 봐줘서 고맙다. 사실 스레 낭비 같아 보일까 봐 방구라도 더 껴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이 이상 얘기할만한 건 딱히 생각이 안 남. 그래도 뭔가 생각나면 나중에라도 더 얘기하거나 질문 같은 거라도 있으면 대답할테니까 많은 관심 가져줘. 현실에선 무리지만 인터넷 여포인 나는 0과1로 이루어진 관심은 굉장히 좋아한다.

읽고 있는데 레주 필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3 진화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눈물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의외로 많이들 내 필력에 감명을 받았구나. 별 생각 없이 싸지른 글을 좋아해줘서 고맙다. 보이진 않겠지만 지금 나는 양손에 핸드폰을 든 채 탈콜 될 기세로 어깨춤을 추고 있는 중이다. 이 모든 영광은 내 하나뿐인 웬수 같은 자식새끼에게로 돌리겠음.

0과1로이루어진관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혹시 둘다 이과야???

>>35 오 뭐야 어떻게 알았지, 맞아.

필력 쩐다 ㅋㅋㅋㅋㅋ 추천이나 받아

재밌게 봤어ㅋㅋㅋㅋㅋ 나중에 생각나면 또 들러줘!

필력 개쩌네 와 대박 개쩌는 필력은 레전드 스레의 좋은 구성원이죠

레전드는 내가 보낸다☆

이게 머선 일이고...... 자다 깬 김에 폰질이나 하고 있다가 스레딕에 들어와 보니 레전드에 가 있었네. 다들 별 거 아닌 나와 웬수놈의 이야기를 좋아해줘서 고맙다. 내일 심심하면 친구한테 허락 맡고 메신저 내용이라도 짤막하게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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