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gY9Ape5dU2G 2020/12/05 02:15:05 ID : e0la1eJWpbC
♪ 피드백 환영/관심 환영 ♪ 스레주의 자작 세계관 속 이야기 조각들 ♪ 큰 세계관 속 작은 세계관 다수 존재. 큰 세계관도 여럿이나 대부분 가장 큰 세계관에서의 이야기. 이야기 역시 다수 존재. 그러므로 조각끼리 이어질 수도,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 즉석으로 쓴 레스가 더 많겠지만, 몇몇 레스는 옛날에 적어둔 글을 약간 수정한 글이 될 것 같다. ♪ 그냥 설정을 풀기도 한다. ♬ 초보라 글을 잘 쓰지 못하지만 잘 부탁해!

2 ◆gY9Ape5dU2G 2020/12/05 02:46:15 ID : wK2MjfQmoLa
♪조각 01 안녕. 그 인사를 마지막으로 부서졌거늘, 난 어찌하여 이리 살아있는가? 모든 게 허물어지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 투명한 장벽 너머 얼핏 보이던 네 얼굴도, 그 위에 어린 절망 역시 기억한다. 하지만 기억이, 그 흔적이 어떻게 남을 수 있는가? 그건 우연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내가 규격에서 벗어난 이라 한들 세상에 속한 자, 그리 조각났으면 정체성은 애초에 스러져야 했다. 발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고운 모래, 노을을 삼켜 붉게 물든 바다, 부서지는 파도 소리. 그 풍경 속 난 길을 잃고야 말았다.

3 ◆gY9Ape5dU2G 2020/12/05 03:04:50 ID : wK2MjfQmoLa
>>2 내 사랑, 내 미련에 고통받은 내 사람. 아아, 난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 네 앞에서 그렇게 부서진 내가 너를 다시 찾을 수는 없는데, 네 절망을 어찌 해야하나. 그러지 말아야 했다. 그저 나만을 위해 널 다시 찾지 말아야 했다. 내가 네 죽음을 받아들였다면, 내가 널 잡지만 않았다면 이렇게 헤어지는 일은 없었으리라. 양쪽 다 괴로운 걸 아는데, 난 왜 놓지 못했을까. 문득, 모래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인지 모르게 속이 울렁거렸다. 누구일까? 누구기에 이런 느낌이 드는 건지. 호기심에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왜, 거기 네 얼굴이 보이는가? "여긴 사유지인데… 누구신가요?" 무의식중에 탄성이라도 낸 모양이다. 초점 없는 제비꽃색 눈이 내게 향했다. 어린 너였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너였다.

4 ◆gY9Ape5dU2G 2020/12/05 17:38:52 ID : wK2MjfQmoLa
♪조각 02 먼 옛날, 우리의 선조들은 신족 중 하나로 꼽혔다지. 지금이야 신력 한 줌 없는 이들이 넘쳐나지만, 그 시대의 동족은 모두 신력으로 된 날개를 등에 달고 있더랬다. 가장 강한 신족은 아니더라도 꽤 세가 강했단다. 그리하여 오만했고, 신에 대항하다 결국 다른 세계로 내쫓겼다지. 그리하여 이 척박한 세계가 우리 영묘의 땅이 되었다고 기록은 말한다.

5 ◆gY9Ape5dU2G 2020/12/06 02:08:15 ID : wK2MjfQmoLa
>>4 그들의 왕은 씨앗을 심었다. 자신의 날개를 바쳐 나무가 자라게 했고, 그나마 살 수 있는 땅이 생겼다지. 그러나 세계는 여전히 황폐했다. 살 수 있는 땅은 그리 넓지 않았고, 그마저도 마물이 침범하곤 했다. 많은 동족이 죽어갔더랬지. 하얀 귀와 검은 귀는 원래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많은 죽음을 겪으며 둘의 갈등은 심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이 잠든 사이 어린 검은 귀 하나가 싸움에 휘말려 죽었다.

6 ◆gY9Ape5dU2G 2020/12/06 02:35:14 ID : wK2MjfQmoLa
♪조각 03 어느 날 갑자기 책 속에 떨어지는 이야기를 즐겨 보긴 했다만, 결코 그런 상황을 원하지는 않았다. 겨울이었다. 눈은 내리지 않지만 바람이 세차던 어느 겨울, 하굣길에 문득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따라 골목에 발을 들였다. 어차피 집에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태어나 평생 산 동네에서길을 잃을 리도 없었으니 별 생각 없이 한 결정이었다. 야옹거리던 고양이가 담장 너머로 사라지고 집에 가려 뒤를 돌았을 때, 세상이 변했다.

7 ◆gY9Ape5dU2G 2020/12/06 02:55:08 ID : wK2MjfQmoLa
>>6 그 뒤로 있던 일을 말하자면, 난 운이 좋았다. 이상한 능력도 생겼고, 왜인지 모르게 말도 통하고. 무엇보다 갈 곳이 없어 멈춰있던 날 도와준 사람이 있었다. 친절한 사람이었다. 이상한 옷을 입은 여자애에게도 선뜻 손을 내미는, 그런 이상하리만큼 다정한 사람. 처음에는 경계도 하고 의심도 했다. 하지만 그런 내 태도가 무색해질 정도였지. 그 덕에 온전하지는 않더라도 여유가 생겼다. 그 무렵 난 내 가방 속 책 하나를 발견했다. 이 세상에 떨어지던 날 친구가 내게 선물한 책이었다. 잠깐 시간이라도 떼울까 싶어 책을 펼쳤다. 그때 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지. 거기에 그 사람 이름이 있었다. 주인공의 친척이자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며 죽는 사람. 그런 역할이었다.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애초에 이런 세상에 온 것부터 비현실적이었다. 만약 이 책의 내용이 미래라면, 대비하는 게 이로우리라.

8 ◆gY9Ape5dU2G 2020/12/06 03:24:27 ID : wK2MjfQmoLa
♪조각 04 금빛 터럭, 홍옥처럼 붉은 눈을 가진 여우가 있었다. 그것은 오로지 이야기를 위해 태어났기에, 그저 홀로 이야기를 써 내렸다. 자신이 왜 이야기를 만들고 또 만드는지, 그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우는 문득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에 의문을 가졌다. 자신이 쓴 이야기 속 생명들은 혼자가 아닌데, 왜 자신만은 혼자인가? 이야기를 써 내리던 손이 멈췄다.

9 ◆gY9Ape5dU2G 2020/12/06 03:49:52 ID : wK2MjfQmoLa
♪조각 05 다른 세계로 넘어와 멸망은 피했다지만, 모든 게 해결된 건 아니었다. 이 세계에서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이었고, 그런 이들을 막 받아줄 정도로 세상은 친절하지 않았다. 꽤 오랫동안 떠돌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중간에 무리를 떠난 이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꽤 많은 이들이 현자를 따랐고, 그들은 어느 고요한 땅에 닿았다.

10 ◆gY9Ape5dU2G 2021/02/09 02:36:25 ID : wK2MjfQmoLa
인코가 헷갈린다. 이게 맞나?

11 ◆gY9Ape5dU2G 2021/02/09 03:17:47 ID : wK2MjfQmoLa
원래는 조각6을 쓰려 했는데 마음에 안 들어서 조각3이 속한 이야기에 대해 말하려 합니다. 처음 구상했던 건 아마 2016년 겨울? 뭔가 검색하다 무슨 증후군 모음인가? 그걸 바탕으로 썼던 것 같습니다만, 현재의 주요인물은 그와의 연관성이 떨어집니다. 이야기 소재는 책 속으로 차원이동이라는 꽤 흔한 소재입니다. 아마 왜 차원이동물 주인공들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려 노력하더라도 결국 돌아가지 않고 머무느냐와 같은 의문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중요한 몇 부분만 설정되었고 중간 흐름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중요한 부분을 설정하며 뒷배경이 조금 비대해진 편입니다. 중요한 설정이라 더 자세히 풀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12 ◆gY9Ape5dU2G 2021/03/09 11:21:26 ID : wK2MjfQmoLa
♪조각 06 얇은 실선이 하늘에 난잡하게 펼쳐졌다. 종말이 다가온 것이다. 예상한 것보다 빠른 진행 속도였다. 어떤 이변이 있어 이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전의 세계와 거의 유사해도 다른 세계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원망스러운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선배, 준비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미 끝났단다." "부지런하시네요." 그렇다면 나 역시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지. 우리가 지금까지 버틴 건 모두 이 날을 위함이지 않던가. 등 뒤로 새하얀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날았다. 천사가 되어 무덤에 묻히리. 나를 죽일 칼은 이미 네 손에 쥐어주었으니.

13 ◆gY9Ape5dU2G 2021/04/13 23:50:00 ID : wK2MjfQmoLa
♪조각 07 그는 뛰어난 사람이었다. 본래 꿈꿨다는 인형 제작자로서의 재능은 뒤떨어졌지만, 인형사로서는 내가 본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14 ◆gY9Ape5dU2G 2021/06/30 22:25:50 ID : wK2MjfQmoLa
♪조각 08 수많은 시체가 쌓여 언덕을 이루었고, 땅은 붉게 물들었다. 날개와 한 팔을 잃고 겨우 살아남은 전령이 전하기를, 왕이 그 학살을 저질렀다지. 그것은 명실상부 재앙이었다. 왕보다 소식을 먼저 접한 이들은 저 먼 땅으로 도망쳤고, 늦은 이들은 차가운 시체가 되었다. 천족, 마족, 혼혈 가리지 않고 눈에 뵈는 모든 이를 살해하니 왕이 미쳤다는 것 외엔 원인을 짐작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 한탄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답을 알만한 이들은 모두 죽은 후였다. 당시 나는 수도에서 꽤 거리가 있는 교류 도시의 경비대에 속해있었다. 수도에서 멀수록 마물이 들끓었고, 나는 강한 축에 속했기에 자원했던 바, 늘상 다름없이 마물을 처치하고 있었다. 오라버니의 연락이 한참 없던 게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바빠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전령이 온 건 왕이 학살을 시작한 것으로부터 보름 뒤, 왕이 가까워진 뒤였다. 그는 수도에서 북부 신전으로 향하는 길을 담당했기에 서로 연락을 자주하던 우리 남매는 단골이었다. 그 학살이 있던 날도 오라버니의 편지를 챙겨들고 이 수도를 떠나려 했다지. 그런데 갑자기 왕궁에서 큰 소음과 함께 섬광이 일었고… 그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15 ◆gY9Ape5dU2G 2021/09/12 19:22:15 ID : wK2MjfQmoLa
♪ 조각 09 이상한 꿈을 꾸었다. 모래가 가득한 어느 황폐한 땅, 가면을 쓴 여자. 나보다 조금 앞서 걷던 여자는 내가 뒤쳐질 때면 잠시 걸음을 멈추곤 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 역시 먼저 말을 거는 일이 없는 기묘한 동행. 그것은 꿈 속의 내가 잠들 때까지 이어졌다. 그런 목적도, 의미도 알 수 없는 꿈인데 마음이 이리도 뒤숭숭한 건 왜일까? 어스름한 하늘에서 활처럼 휜 달이 어슴푸레 빛났다. 다른 곳보다 이르게 하루를 시작하는 신전도 아직 문을 닫은 이른 시각이었다. 드문드문 들려오는 새와 풀벌레 우는 소리가 아니었다면 시간이 멈췄다 착각하지 않았을까 싶은 기묘한 정적.

16 ◆gY9Ape5dU2G 2021/10/09 20:00:49 ID : wK2MjfQmoLa
♪ 조각 10 언제부터 널 사랑했는지 모른다. 첫 만남이 꽤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커튼 사이로 새어든 햇살에 잠시 빼앗긴 시선처럼 스쳐가는 관심이었다. 분명 그랬을 터였다. 왜 친구가 되었을까? 왜 가까워졌지? 함께한 시간은 가랑비 같아서 젖어드는 것을 알지 못한 채 흘러갔다.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네게 빠진 뒤라 계기를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17 ◆gY9Ape5dU2G 2021/10/09 20:09:00 ID : wK2MjfQmoLa
>>8 여우는 외로웠고, 누군가 자신의 곁에 있길 바랐다. 그리하여 소망을 담아 여우는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렸다. 모든 것을 잃고 홀로 남은 검은 여우와 친구가 되는 금빛 여우의 이야기를.

18 ◆gY9Ape5dU2G 2021/10/18 02:59:28 ID : wK2MjfQmoLa
♪조각 11 비가 유독 세차게 내리던 날, 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에 부딪히는 물방울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렸지만 그 사람은 결국 오지 않았다. 점심시간을 한참 지나 기다림에 지쳐 집으로 가던길, 헐렁한 이어폰에서 흐르는 노래 너머로 빗소리가 들려왔다. 찰박거리는 소리, 자동차가 지나가며 들리는 소리처럼 일상적인 소음도 섞여 있었다. 그건 마치 자기 전 틀어두던 영상 속 소리 같아 묘하게 나른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러다 잠드는 게 아닐까 생각하던 순간, 갑자기 소리가 멎었다. 순간 삐이-하는 높은 이명이 들린 것도 같다.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어폰에서 잔잔하게 흐르는 노래만이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이상한 건 소리만이 아니었다. 이명에 놀라 눈을 감기 전까지만 해도 세차게 내리던 비가 내리지 않았다. 고여있던 빗물도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익숙했던 거리가 보이지 않았다. 내 눈 앞의 세상은, 내가 살던 곳이 아니었다. 나는 그날 다른 세상에 홀로 던져졌다.

19 ◆gY9Ape5dU2G 2021/10/18 03:05:46 ID : wK2MjfQmoLa
>>17 그 이야기를 쓰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더 많은 이야기를 써내리며 그 이야기를 잊은 여우에게 검은 여우가 찾아왔다. 외로웠던 여우는 검은 여우와 친구가 되길 바랐다.

20 ◆gY9Ape5dU2G 2021/11/08 02:42:47 ID : e0la1eJWpbC
>>19 여우가 바란 대로 여우는 검은 여우와 가까워졌다. 검은 여우와 함께하며 여우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 소홀해지기 시작했고, 아무것도 없던 집을 벗어나 세상을 알게 되었다. 여우는 행복했다.

21 ◆gY9Ape5dU2G 2021/11/08 02:48:47 ID : e0la1eJWpbC
>>9 그 고요한 대지는 생명의 기척조차 없이 황폐했다. 이미 멸망한 우리의 고향을 닮았고, 이 세계에서 우리가 그나마 편히 머물 수 있는 유일한 땅이었다. 현자를 따라온 이들은 조용히 그 땅에 정착했다. 떠돌이 생활은 끝이었지만, 막막함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22 ◆gY9Ape5dU2G 2021/11/17 00:21:27 ID : ctz9craoJRz
가제 : 불타 죽은 연인의 환상 이제 다시는 그대를 볼 수 없지만, 여전히 그대를 사랑하는 이 마음만은 알아주오. 아그리페는 가을 낙엽만큼이나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은 외형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으나, 아그리페를 잘 알지 못하는 이라면 외형에 한한 아름다움이라 생각했겠지. 하지만 남의 평가가 무엇이 중요할까. 아그리페를 처음 만난 건 태양궁 연회장이었다. 그날은 황제 폐하의 탄신 연회가 있었고, 제국의 수많은 귀족과 타국의 사신까지 많은 사람이 모였다.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을 경박하다 여기는 제국이었지만 작은 소리도 모이면 시끄러워 지는 법. 집중해 듣지 않으면 타인의 말을 알아듣기 어려웠다. 이런 큰 규모의 연회에 참여하는 것은 처음이라 어색하게 벽을 장식하던 중, 한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타오르는 불꽃 같은 머리카락을 가졌지만 어째서인지 저 심연에 가라앉은 것만 같은 기묘한 자. 처음은 단순한 호기심이었던 것 같다. 분명 제 또래로 보이는데 어째서 그런 눈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저 저 사람을 알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며 난 그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세상과 유리된 듯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그 사람은 놀란 듯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곧 머뭇거리며 자신을 소개하길, 아그리페라 했다. 아그리페 라나한. 그 이름을 듣고 조금 놀랐다. 라나한은 5년 전 있던 전쟁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남자의 가문이었다. 그는 젊은 청년이라 했으니 아그리페는 그의 누이일까? 호기심에 묻자 아그리페는 옅게 웃으며 말했다. 선명한 긍정의 표시였다. * 비명 가득한 혼돈 속,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그리페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건물 안에 있다는 것인가? 괴물처럼 타오르는 불꽃 속에 제 연인이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나는 반대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아그리페, 내 소중한 가을을 잃을 수는 없다. 뜨거웠다. 목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아그리페는, 제 가을은 그렇게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제 세상을 채색한 가장 아름다운 색이었다. * “모두 기억나셨나요?” 책을 덮으며, 하얀 여인이 싱긋 웃었다. 요요히 빛나는 보라색 눈을 멍하니 바라보자 여인은 책을 허공에 띄우고는 노래하듯 말했다. “자신의 몸을 날려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다니, 이 어찌나 아름다운 사랑인가요? 당신의 연인은 그것을 바라지 않았겠지만 말이에요.” “아그리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스웠던 것일까? 내 말을 듣고 여인은 크게 웃었다. 새하얀 책으로 가득한 공간이 웃음으로 가득 찰 때까지 꽤 오랫동안 여인은 웃기만 했다. “기억하자마자 묻는 게 그것이라니! 아, 사랑에 빠진 사람이란!”

23 ◆gY9Ape5dU2G 2021/11/17 00:33:59 ID : ctz9craoJRz
>>22 이루마 When The Love Falls를 들으니까 약간 생각나는 이미지 가지고 글을 쓸까 했다가 역시 망한 것 같아서 그냥 올리는 글. 떠오르는 장면은 제목은 기억 안 나는데 발레리나 인형이랑 다리가 하나뿐인 병정 인형?이 서로 사랑하는 그런 이야기(안데르센 동화에서 봤나?)에서 두 인형이 함께 타오르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녹아내리면서도 서로의 사랑을 주체 못하는 그런 느낌? 일단 여기 메모한 글은 대충 말하자면 (생각나는 대로 지은 임시 이름)아그리페 라나한을 사랑했던 아그리페의 연인, (가칭)A의 이야기. A의 호기심으로 시작된 둘은 연인이 되었는데 어느 날 연회장에서 화재가 일어나고 아그리페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을 위기에 처하는데 그런 아그리페를 구하러 온 A. 이 일로 A는 죽고 아그리페는 살아남는다. A는 죽은 후 저승사자 같은 것과 대화를 하며 살아있던 시절의 자신을 알아간다. 솔직히 그냥 써지는 대로 지른 글이라 자세히 설정된 것 따위 없다. 근데 다시 보니 더 별로다.

24 ◆gY9Ape5dU2G 2021/12/15 01:29:04 ID : e0la1eJWpbC
>>20 붉다. 온 세상이 붉다. 날붙이에 꿰뚫린 여우는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제 유일한 친구가, 검은 여우가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알지 못했다. 검은 여우는 고통에 몸을 비트는 여우를 내려 보았다. 타들어 가는 여우의 작은 세상 속에서 검은 여우는 느리게 입을 열었다. 몰랐겠지. 알았다면 그럴 수 없어. 하나 원망스러운 것을 어찌하겠어. 검은 여우는 웃었다. 죽자. 같이 죽자. 비극은 이제 끝내자. 여우가 다시 깨어났을 때 남은 건 잿더미 뿐이었더라.

25 ◆gY9Ape5dU2G 2021/12/15 23:34:04 ID : e0la1eJWpbC
♪조각 12 사랑이었다. 난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26 ◆gY9Ape5dU2G 2022/01/15 00:22:47 ID : e0la1eJWpbC
>>25 이거 뭘 쓰려다 방치한 거지?

27 ◆gY9Ape5dU2G 2022/01/15 00:25:00 ID : e0la1eJWpbC
>>23 이거 생각해보니 옛날에 본 어느 웹소설 스토리가 생각나는데 그거 영향 받은 건가?

28 ◆gY9Ape5dU2G 2022/07/01 03:45:02 ID : u4LcHyMmJXy
>>24 검은 여우는 재가 되어 유해조차 남지 못했다. 한데 저는 이리도 멀쩡히 살아있다니, 이 어찌된 일인가? 여우는 멍하니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새까만 잔해 사이 흰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홀린 듯이 다가간 여우는 그것을 잡아 빼냈다. 아. 여우의 입에서는 짧은 탄식이 새어나왔다. 그 흰 것은 제가 적어내린 이야기였다. 그것도 제 소망—이기심을 담아 써내린 검은 여우 이야기. 다만 여우가 그 이야기의 결말을 적은 적이 없거늘, 이야기는 검은 여우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그제야 여우는 깨달았다. 내가 써내린 불행은 실재하는 재앙이 되었구나. 모든 건 내 이기심의 업보로구나.

29 ◆gY9Ape5dU2G 2022/07/01 03:59:36 ID : u4LcHyMmJXy
>>8 >>17 >>19 >>20 >>24 >>28 이건 자작 세계관의 배경에 있는 이야기 중 하나로 메인 스토리 전개에서는 불필요하지만, 세계관의 설정에서는 중요한 이야기라 볼 수 있다. 새로운 이야기가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식으로 확장되는 세계라 이야기를 쓰는 인물, 이야기를 퍼트리는 인물, 이야기가 잘못 흘러가지 않도록 수정하는 인물, 지나간 이야기를 기록하는 인물까지 이 넷이 '설정'에서는 중요하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여우는 첫 번째인 '최초의 창작자'를 맡고 있다.

30 ◆gY9Ape5dU2G 2022/07/01 04:06:38 ID : u4LcHyMmJXy
>>29 위와 같이 이야기가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는 개념 때문에 상위 세계와 하위 세계 등의 개념이 존재한다. 영혼의 크기나 격의 차이… 이런 개념도 있는데 어쨌든 격의 차이 때문에 원칙적으로 하위 세계 소속 인물은 상위 세계의 인물을 죽일 수 없다. 애초에 다른 층계의 세계로 이동하는 게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세계가 '애초에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없게' 상황을 틀어버린다. 다만 악마나 이레귤러 등 일부 예외가 존재한다.

31 ◆gY9Ape5dU2G 2022/07/01 04:10:05 ID : u4LcHyMmJXy
>>30 단, 이게 하위 세계의 존재가 상위 세계의 존재보다 약하다는 말은 아니다. 승패와 생사는 다른 문제다.

32 ◆gY9Ape5dU2G 2022/07/29 00:54:52 ID : u4LcHyMmJXy
중요하진 않지만 인코 헷갈린다.

33 ◆gY9Ape5dU2G 2022/07/29 00:55:03 ID : u4LcHyMmJXy
모든 끝을 이룬 그대여, 그대 앞에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구하려 선봉에 선 그대를 배신한 세계를 처단하는 것, 그대로 인해 멸망을 이겨낸 이 세계를 재건하는 것, 그리고 멸망이 다가오지 않은 새로운 시간. 그대가 승리했기에 제안하는 일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약속을 어기지 못하는 운명, 거짓이 없음을 약속합니다. 처음을 택한다면 그대는 우리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추천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대의 모든 힘과 우리의 모든 자원이 그대에게 온전히 귀속되겠지요. 다음을 택한다면 우리의 모든 자원은 그대 세계의 재건을 위해 소모되겠지요. 이는 그대가 목표한 바, 세계는 그대를 추앙하고 영웅으로 여기겠지요. 하지만 과거의 것은 되돌아 오지 않습니다. 자원이 존재한들, 새로 쌓아야 합니다. 마지막을 택한다면 우리의 모든 자원과 그대의 모든 힘을 태워 시간을 돌려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재앙이 되어 그대의 세계를 다시 침략하는 일도 없을 겁니다. 다만 다른 재앙이 다가온다면, 그대의 세계는 다시 멸망을 겪겠지요. 동시에 가능한 선택은 없습니다. 그대는 무엇을 택할 건가요?

34 ◆gY9Ape5dU2G 2022/07/29 01:05:02 ID : u4LcHyMmJXy
최근에 막 떠오른 걸 메모한 거라 딱히 재미나 개연성 등은 생각하지 않고 메모한 것이긴 한데 >>33를 설명하자면 시작은 정석적인 헌터물이었지만, 세계의 배신으로 침략자들에게 대항이 어려워진다. 하지만 결국 주인공을 필두로 한 영웅들은 침략자들이 제안한 게임에서 승리를 거두고, 침략자들의 대표가 보상으로 셋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한 상황이다. 결론적으로 저 존재는 세 번째를 선택하길 권하고 있고, 제시된 것 중에는 세 번째가 가장 나은 선택일 수 있다.

35 ◆gY9Ape5dU2G 2022/07/29 01:29:05 ID : u4LcHyMmJXy
>>33 >>34 바탕으로 설정 정리&수정하면 세계관 자체는 흥미로울 것 같으니 조금 정리해보겠다. 근데 그러다 또 던지겠지? 1. 침략자 마법과 같은 기이한 힘을 보유한 고도로 발전한 문명. 고향 세계를 잃었거나 추방된 이들로 다른 세계의 자원을 빼앗아 가며 사는 약탈자라 보면 될 것 같다. 이런 침략자 무리는 여러 세계 사이를 떠도는데, 침략자는 여러 무리가 존재한다. 침략자 무리마다 다른 제약을 가지고 있는데, >>33의 침략자 무리는 '약속을 어기지 못한다'와 '약속에 거짓을 섞을 수 없다' 정도의 제약. 2. 침략자가 다른 세계에 간섭하기 위해 지켜야 하는 조건이 있다. 마법과 같은 기이한 힘을 가진 이가 nn% 미만인 세계를 직접적으로 공격할 수 없다. 근데 이건 누가 어떻게 강제하는가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36 ◆gY9Ape5dU2G 2022/11/21 02:14:10 ID : AlxxzQpTQsp
밉고 미워서, 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여행자는 다시 길 위에 올랐다. 그 길에 남은 건 오로지 재와 잔해 뿐이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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