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에 살아가고, 살아가기에 사랑한다.
비천한 이 한 몸 보전하려 외면하고 방관했으니, 이 역시 업이로다.
이 길 끝에 네가 있기를. 그는 그저 바랐다.
38◆gY9Ape5dU2G2022/12/20 19:57:09ID : 2NxWknxA1ws
후회하지 않는 이에게 징벌은 무엇인가? 그에게 죽음도, 고통도 무의미하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벌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악당은 웃으며 죽음을 맞이했다. 허무하게도 그것이 결말이었다.
39◆gY9Ape5dU2G2022/12/20 20:04:28ID : 2NxWknxA1ws
시간에 휩쓸려 모든 추억이 바래 희미한 흔적만이 남았다. 기억하는 건 오직 나 하나라, 잊은 네가 원망스러웠다. 네 탓이 아님을 알고, 너를 사랑하는 것도 여전한데 뿌리내린 마음은 깊이 파고들 뿐이라.
40◆gY9Ape5dU2G2022/12/20 20:19:12ID : 05XByY2q3Xu
아이야, 기억하련. 끝이 있기에 시작이 유의미하단다. 그렇기에 무한한 삶은 축복이 아닌, 저주라 불린단다.
41◆gY9Ape5dU2G2023/02/20 00:42:26ID : 9zaq1zO03xu
별을 헤아리며 지새운 밤은 스러지고, 바람은 바람을 싣지 못한 채 흩어졌다. 눈물이 피가 되어도 구원은 없기에 나를 구할 것은 나뿐임을 알았다.
42◆gY9Ape5dU2G2023/03/27 15:48:02ID : lfQnyK6nSIG
신이시여 응답하소서.
구원을 부르짖어도 소리는 닿지 못한다. 끝에 남은 것은 절망 뿐이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하여 악마는 손을 뻗었다. 닿지 못할 목소리를 내가 거두마. 이 또한 좋은 거래 아니겠느냐? 끝에 절망만이 남는다 한들, 구원없는 세상에 이는 차악이리.
43◆gY9Ape5dU2G2023/05/10 01:55:15ID : AlxxzQpTQ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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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gY9Ape5dU2G2023/05/10 02:16:16ID : AlxxzQpTQ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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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AlxxzQpTQsp2023/07/12 02:30:38ID : AlxxzQpTQsp
알고 있다.
너는 내 사랑을 안다. 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작마저도 안다.
알고 있다.
너와 내 감정은 동등하지 않다. 네게 난 언제까지나 친구일 것이다.
알고 있다.
이 관계가 깨지는 것이 두려워 고백하지 못할 것을 안다. 동시에 그 고백조차도 이 관계를 흐트러 놓지 못함을 안다.
알고 있다.
나는 곧 종말을 맞이할 테고, 네게는 영원한 방랑이 기다리겠지.
다만 하나 예상하지 못한 것은, 네 절망이다.
46◆AlxxzQpTQsp2023/07/12 02:55:27ID : AlxxzQpTQsp
시작부터 원만한 관계는 아니었다.
처음 만나던 날, 어른들 뒤에 숨어 아무 말 없던 그가 유약하다고 생각했다. 선명하지는 않지만, 그때 느낀 감정은 불만에 가까웠으리라. 검이라고는 한 번도 쥐어본 적 없을 듯 고운 손을 보고서도 대련을 청했으니.
나는 그의 두 눈에서 불꽃을 보았다.
힘도 기술도 없는 나약한 육체. 하지만 그 포기하지 않는 눈빛. 나는 그 하나에 꽂혀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곁에 머물며 그의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꽃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한다. 세상에 다신 없을 천재적인 마법사이자 세상을 궁금해하는 호기심 가득한 아이였고… 고집이 있는 편이지만 올곧다. 다정하고 따스해 매료될 수밖에 없는 아이였다.
아, 하고 깨달았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구나.
47◆AlxxzQpTQsp2023/08/04 03:47:26ID : AlxxzQpTQsp
다른 세계에서 온 성녀와 그 동료들이 힘을 합쳐 마왕을 몰아냈고, 마왕군은 와해되었다. 그리하여 세계는 평화를 되찾았다. 그리고 성녀와 황태자는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가 세상의 전부였다면, 우리와 같은 삶을 사는 이는 없었겠지.
모두의 사랑을 받던 성녀는 출산 후 시름시름 않다 죽었다. 그리하여 태어난 황녀는 저주받은 황녀로 불리며 세상과 단절되었다.
마족과 사랑을 나눈 신관은 처형되었다. 그러나 반마족 아이는 신의 축복을 품었기에 살아 남았고, 제 부모를 죽인 자들의 손에 자라났다.
어느 귀족 가문의 사생아는 홀로 살아남아 적자로 위장되어 후계자가 되었고, 다른 가문의 막내 아가씨는 검에 뜻을 가지며 사교의 장에서 밀려났다.
이건, 우리의 이야기다.
48◆gY9Ape5dU2G2023/08/16 03:29:14ID : AlxxzQpTQsp
원한 건 세계 정복도, 멸망도 아닌 그저 진실이었다. 하지만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다며 저지른 과오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 정도야 인정 못할 것도 없다. 그럴 필요도, 이유도 이젠 없으니까.
하나 허망하다 말하는 것은 결국 끝까지 진실에 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실에 닿을 '권한'은 오직 신과 일부 예외적인 존재들의 몫이었으니. 그리하여 신조차 만들어냈건만, 내가 찾은 건 진실의 편린이라 부르기도 민망했다.
그것이 내 한계였다.
49◆gY9Ape5dU2G2023/08/27 03:26:29ID : AlxxzQpTQ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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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gY9Ape5dU2G2023/09/01 03:44:14ID : 9wLhxRxwr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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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gY9Ape5dU2G2023/10/08 13:31:42ID : 0moGnDzbu5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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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gY9Ape5dU2G2023/10/08 13:34:55ID : 0moGnDzbu5O
보소서. 바라소서. 부디.
신전에는 늘 목소리가 가득하다. 원망, 찬양, 갈망… 온갖 감정이 실뭉치처럼 엉켜 신의 귓전에 이를 때엔 이해조차 못할 무언가로 변모해 있다.
53◆gY9Ape5dU2G2023/10/10 12:03:29ID : 1bjBxVgrs2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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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gY9Ape5dU2G2023/10/10 12:04:34ID : 1bjBxVgrs2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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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gY9Ape5dU2G2023/11/03 15:11:14ID : Y1imNy2Gt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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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gY9Ape5dU2G2023/11/09 12:34:09ID : 0moGnDzbu5O
불꽃이 되어도 상관 없소. 죽어간다 한들 상관없소. 단지 그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면, 모두의 염원이 끝에 닿을 수 있다면. 나는 이 하잘 것 없는 목숨을 바치리라. 그리 맹세하겠소.
57◆gY9Ape5dU2G2023/11/09 12:39:20ID : 0moGnDzbu5O
네가 내가 될 수 없듯이, 나 역시 네가 될 수 없다. 하나 잔혹한 운명이 길을 강제하네. 아! 어찌 이리 참혹하단 말인가?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되었다. 모든 게 비틀리고야 말았도다!
58◆gY9Ape5dU2G2023/11/09 12:53:19ID : Y1imNy2GtvC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사랑하지 못하는 이에게는 무의미하게 피고 지는 어떠한 것일 뿐이다.
59◆gY9Ape5dU2G2023/11/09 13:02:37ID : Y1imNy2GtvC
세계는 이야기에서 태어났기에, 원본이 되는 이야기를 따르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운명이라 정의됩니다. 이것은 이 세계를 구성하는 영원불변의 법칙이지요.
하지만 이 세계에서 정의하는 운명은 확정된 미래가 아닙니다. 단지 흐름일 뿐. 자격이 있고 힘 있는 자는 거스를 수 있고, 부정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는 휩쓸리겠지만, 그 가능성 하나만으로 도전할 가치는 충분하지 않나요? 그게 그들이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나아간 이유입니다.
바란다면 행동하고 증명하시길. 변화는 선택하는 자의 몫입니다.
60◆gY9Ape5dU2G2023/11/09 13:10:24ID : Y1imNy2GtvC
모든 끝에서 너를 기다릴 테니, 부디 그 끝이 이르지 않기를.
61◆gY9Ape5dU2G2023/11/09 15:01:27ID : 0moGnDzbu5O
아이야, 너도 알듯이 악신은 수많은 세상을 무너트렸다. 수많은 무고한 생명이 그리하여 사그라들었고, 세계는 악신을 처단했지. 하지만 내가 악신이 아닌 그를 최악의 악당이라 부르는 건 그가 후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모든 걸 버린 자였다. 그는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했고, 그가 사랑한 이들조차 예외가 될 수 없었지. 네가 본 기록의 공백은 그 과정에서 생겼다.
그는 감정을 이용할 줄 아는 자였다. 누군가의 세상이 자신으로 가득 차도록 하고는, 가장 빛나도록 높은 곳에 올리고는 추락 시켰지. 그것이 우리가 아는 악신이 탄생한 과정이다.
관련된 이야기 >>38>>48
62이름없음2023/11/09 15:26:01ID : dzXy0spamnv
선생님 글들 하나하나가 너무 좋아요.....
63이름없음2023/11/14 02:43:16ID : z9a5Pa4E07h
아무리 기억하려 노력해도 점점 흐려지기만 하는 너와의 추억에 조용히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 네 사진을 볼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네 사진이라곤 몇 년 전 사진이 전부였고, 그것마저도 몇 장 남아있지 않았다. 사진을 좀 더 많이 찍을걸 그랬어, 라고 울면서 후회하기엔 너무나 늦어있었다. 너의 꿈을 꾸고 싶었다. 그러나 언제나 꿈에서 만나는 것들은 내가 다신 가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너를 보고 싶었다. 네 목소리를, 웃는 얼굴을, 따뜻한 체온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나는 네 사진을 내 앞에 두고, 작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마치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처럼 현실감이 없는 느낌이었다. 꿈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인지, 진짜 꿈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감각에 나는 또다시 공허함을 눈물로 흘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