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 세상에 유일히 변질하지 않는 물질이 있다면, 감히 그게 너였으면 좋겠다, 고 소망한다
기상의 목적은 오로지 저처럼 무사히 기상한 연인의 상판을 마주하는 것 뿐이라 술에 취해 실토하던 애인의 음성을 언제쯤 잊을 수 있으련지 나는 언제쯤 너에게서 독립해 자립할 수 있을지
그를 기약할 수 없는 내 심정은 수 없이 허물어지고 재구축하길 반복하는데, 표피를 피칠갑이 될 때 까지 무참히 긁어내고 새로 돋아나기 무섭게 도로 제거하길 반복하길 몇 해째 이젠 외마디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
나, 나 있잖아 죽고 싶어 아픈데 너무 아픈데 원인을 몰라… 나한텐 이유가 없어 그냥 그런거 있잖아 그냥 있잖아, 그냥 그런 거, 너도 나 이해 못하지 미워할거지 나는 그냥 이대로 잠들면 모든게 끝났으면 좋겠어 그냥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굳이 내 손으로 무언갈 파손하거나 할 필요 없이 그냥…… 있잖아
너는 불을 끄고 이불을 덮어주면서 내일 보자, 말했지
난 그 때 왜 네가 막연히 괜찮을 거라 단정지었을까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나한테 내일 꼭 보자 말하던 건 나를 위로하기 위한 게 아니라 너의 위안을 바라고 했던 말이었을텐데
드물게 누군가는 얼룩지고 점철 된 이 삶을 시기하기도 했었는데, 난 차라리 내가 없어져야 마땅한 불운이 사인에 기재되길 기원했는데. 그다지 기막힌 재난은 선사 되질 않아. 달래지지 않는 갈증에 항시 투병 중이었다. 병명은. 사실 있잖아, 내 편 해달라는 말 있지 다 거짓말이야 내 편 안 해줘도 돼, 근데, 그냥…… 나 미워하지만 말아줘. 아이는 마치 벌레를 투시하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응시한다. 질색을 하며.
아직은 날이 제법 춥다… 생각하며 나설 채비를 마치고 길을 나선다 지난 몇년 간 쫓기듯이 일을 하고 돈을 벌고… 나를 붙잡아줘, 호소하면 그러겠노라 소매자락을 붙잡아주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으나 끝내 그 손길을 갼디지 못하고 뿌리친 건 내 쪽이었다. 어느 한 곳에 온전히 정착하지 못하고 방랑하길 자처한 건.
스승은 내 글을 겨우 두어번 봐놓고선, 어째선지 유일무이하게 내가 글을 쓰면서 살 거라 지레짐작한 사람이었다. 당신은 투병 중인 나를 무척 질책하는 기색이었다. 다른 제자도 아닌 네가 그런 삶을 살고 있을 줄은 몰랐다며. 그렇게 살지마. 여전히 당신 전보에 내 답신은 없을 예정이다.
초에 불을 붙이며 즐거워하는 너를 보다, 나는 결국 이 순간을 무척 그리워하게 될 거라는 걸, 지금 활짝 웃고 있는 너를 원망하게 될 거라는 걸 자각하고 많이 슬펐지 그래서 정말 많이 울었어
나의 스물다섯 여름에 네가 기입되어 나는 기꺼웠는데
너의 이십대에 내가 관여된 게 너는 그다지 불유쾌했나보구나
소등한 건물 건너편에 새벽 세시가 훌쩍 넘을 때 까지 잠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나와 같은 불면일까 궁금해하면서도 소통할 방법은 없던 공간 안에서도 나는 네 걱정뿐이었어
멍청하게도, 내가 파손 된 상태에서도 나는 네 걱정이 우선이었어
정말 멍청하게도 나는 그랬어
너희들은 모든 걸 파기할 테지만 나는 천년의 인류로 잔존하여 모든 걸 보존하고 싶었는데 점점 나를 잃어가고 있다 너희를 잃어가는 걸까 오늘 밤 만큼은, 적어도 오늘 만큼은 울지 말아야지 굳게 다짐 해놓고선 그저 괜찮아질 거라는 무책임한 기약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잘 자고 내일 다시 만나, 너의 한 구절로 세상은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