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레스가 제시한 단어 세 개가 들어가게 소설이나 조각글을 쓰는 스레야! 글 쓴 뒤에 아래 레스에게 단어 세 개 지정해줘! ㅜ 실종, 동전, 전화
단어 세 개로 소설을 만드는 스레
과제를 완성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다. 김을 다시 불러야 한다. 곧 옥탑방의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윈도우 창을 끄고 문을 열었다. 창문 옆에 김이 양손에 소주 한 병씩을 들고 추위에 떨고 있었다. "왜 문을 두드리지 않고?" "빈 손으로도 창은 두드릴 수 있거든. 심지어 깨고 들어갈 수도 있지." 장난으로라도 그렇게는 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김을 서둘러 안으로 들여 보냈다. 문을 연 사이에 찬 바람이 김보다 더 많이 들어와 버렸다. "또, 내 경험을 산다는 거구나." 김이 투덜거렸다. "네가 시작한 장사잖아." "목적이 문제야. 난 네가 소설을 써주리라 믿었단 말이야. 내 개인사를 내러티브 연구에나 쓰다니. 그 잘나신 카펫 아래의 자아. 카펫 하나도 못 까는 대학원생이." 김이 콧물을 훌쩍거렸다. 원래 눈물이 많은 성격이었으나 취기가 오르는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 질적 연구, 그 문학 연구, 문학 아닌 문학 연구라 조잘대며. 난 그가 취하지 않도록 술병에 물을 섞었다. 김이 희석되는 술을 보며 말 없이 더 울었다. 머리가 길어 잎자루가 긴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어댔다. 그 꼴이 남사스러워 무릎에 그가 벗은 외투를 덮어주었다. 술잔과 손을 외투 밑에 넣고 김은 쌕쌕거렸다. 사회과학적인 글쓰기도 소설이 아니겠냐고, 변혁이 없으면 개개인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라면, 더더욱, 소설은 사회과학적인 형태를 띄지 않겠냐고 말하고 싶었다. 세계를 바꾸지 못하는 소설보다 세계를 바꾸는 논문이 더 소설에 가깝다고, 진도 선도 빠져나간 동화보다는 오직 미만이 빠져나간 논문이 더 고귀하다고. "딴짓하지 말고, 빨리 술 깨고 상담하자. 응?" "너야말로 딴짓하지." "응. 맞아. 난 딴짓하고 있어. 널 위해서." 난 대강 대화의 배경지식을 쌓기로 했다. "추운 길거리에서 가장 필요한 건?" "나랑 나가려고? 별 보러?" "아니. 과거의 너만 내보내면 돼. 상상 속에서. 어떘니?" "쉼터에 날 따돌리는 애들이 없기를. 다른 쉼터로 가야 하거든." 김이 답했다. 나는 랩탑을 꺼냈다. 그는 코트에서 손을 꺼내 나를 가로막았다. 그를 어르고 달랬으나, 내가 달력을 찢으러 간 사이에 김은 술 한 병을 마시더니 그대로 폭삭 허물어졌다. 외투는 이미 내던져져 있었다. 오래 전에 허물어진 건물에서 귀금속을 찾는 사람처럼, 나는 한숨을 쉬다가 그의 주머니를 뒤적였다. 휴대전화를 찾아 갤러리를 열었다. 김의 어릴 적 사진을 하나씩 넘겼다. 내가 사진에 더해질 때까지. 배경이, 내가 질리도록 오래 살아온 이 옥탑방이 될 때까지. 도서관에서 책임지지 못할 약속을 했을 때까지. 김의 자서전 작가가 되겠다고. 그를 통쾌히 분석하겠다고. 그의 인생이 이리 된 잘못을 분석해 책임을 철저히 캐묻겠다고. 그게 그의 주정뱅이 아버지이든, 입만 살았던 선생이든, 구조 자체이든, 무엇이든 간에. 내가 함께하겠다고 말해버렸을 때까지. 점점 더 스스로에게 책임을 지우고 있다. 더 못된 인간으로, 그의 상처를 해집는 인간으로 만들고 있다. 자서전을 쓰지 않겠다고 말하는 순간 엄청난 뒷감당을 치르게 되도록 몰아넣어지고 있다. 자서전이 완성되면 빈에 가자고, 김에게 했던 약속을 기억한다. 안나 O의 전시품이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이 누구냐고 김이 물었다. 나는 답했다. 정신분석학의 첫 환자. 가명을 썼음에도 지인들에게 모든 상담 사례가 들통난 환자. 최면술사를 사랑해 상상임신까지 했던 환자. 일흔일곱까지 살았고 사회 운동을 한 부유층 자제였으나, 이십대 때의 정신병력만이 역사에 남은 여자. 그러나 그녀가 평생을 모았던 레이스가 빈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그 누구의 상담집에도 기록되지 않은 그녀의 취미가, 딴짓이 보존되어 있다고. 자서전을 더 이상 쓸 필요가 없게 되면, 우리는 그들을 보러 갈 필요가 있다고. ㅜ 넥타이, 레이스,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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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신... >>26이야. 단어가 난감하면 바꿀게ㅠ ㅜ 아침, 토스트, 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