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수스레가 단어 세 개를 제시하면 짝수가 글 써보자!

창작소설 2018/10/06 01:23:29

1 이름없음 2018/10/06 01:23:29

나 먼저 제시해볼게. 구름 먼지 희망

2 이름없음 2018/10/06 15:48:58

막힘없이 흘러가는 구름을 봅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었는지 우중충한 하늘이 구름마저 덮어버립니다. 그 때 그 날과 같은 하늘입니다. 어릴 적 그린 희망은 아직도 구름 속에 남아있습니까?

3 이름없음 2018/10/06 15:49:39

태양 고양이 자동차

4 이름없음 2018/10/06 16:00:04

태양이 파랗게 가려진 겨울날이었다.제법 큰 눈송이들이 떨어지고,하얀 입김이 피어올라 이내는 자취를 감추었다.무릎께에 고개를 기대어 잠을 자는 고양이는 지극히 평화로웠다.또한 너와 내가 말없이 창밖을 쳐다보는 이 자동차 속마저도.

5 이름없음 2018/10/06 16:31:32

우주 향연 짙음

6 이름없음 2018/10/06 19:04:53

너는 나의 우주나 다름이 없었다. 너는 내가 없어도 꽤나, 아니 굉장히 묵묵히 네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나는 네가 없으면 사라져버릴 나약하고 작은 존재인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그래, 너는 내게 너무나도 거대한 인간이었다. 언젠가 네가 쓰는 향수를 사본 적이 있었다. 그렇게 커다란 너도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는 두려움 때문에 충동적으로 산 물건이었다. 향수를 뿌린 손목에 코를 박고 네 향기를 더듬어보았지만 네가 가진 짙은 향은 내게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때 깨달은 것은 네가 있기 때문에 내 삶은, 나의 우주는 외로움의 향연이라는 것이었다.

7 이름없음 2018/10/06 20:12:23

장난감 달 그림자

8 이름없음 2018/10/06 20:54:46

오늘도 장난감 가게의 장난감들은 동그랗게 둘러앉아서 제각각 하소연을 하고 있습니다. 한달째 가게를 벗어나지 못하는 삐에로인형, 두시간만에 환불되어 다시 가게로 돌아오게 된 곰인형, 가장 구석에 위치해있어 누구의 눈에도 띄지 못하던 봉제인형 등 오늘도 그들은 달에서 나온 새하얀 달빛을 받아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바라보며 다음에는 꼭, 꼭 이 가게를 벗어날 수 있었으면 하며 달에게 소원을 빌고 있습니다.

9 이름없음 2018/10/06 21:37:41

이불 별똥별 강아지

10 이름없음 2018/10/06 22:09:50

하늘에선 별똥별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신비로움에 강아지는 이불속에서 뛰쳐나와 커다란 창문 앞에서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 강아지도 우리처럼 소원을 빌고 있었던 것일까요? 강아지의 맑고 깨끗한 순수한 검은 눈동자에 비치는 별똥별을 바라보며 우리도 소원을 빕니다.

11 이름없음 2018/10/06 22:15:38

달 밤 호수

12 이름없음 2018/10/07 19:09:33

호숫가에서 시체 한 구가 발견되었다. 복부에 여러 개의 자상이 있었으며 과다출혈로 인해 사망했다. 용의자는 금방 붙잡혔다. 목격자가 있었던 것이다. 목격자는 사건이 있었던 밤, 호수 근처를 걷다 옷과 손에 피를 묻힌 사람이 뛰어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했다. 가로등도 없는 길이라 어두컴컴했지만 마침 달이 밝아 용의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음 날, 용의자는 풀려났고 목격자는 위증죄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건 당일의 달의 위상은 삭이었던 것이다.

13 이름없음 2018/10/07 19:10:05

치즈 지우개 이어폰

14 이름없음 2018/10/07 21:11:37

이어폰을 귀에쑤셔박고 볼륨을 높여서 내귀에서는 시끄러운 음악소리만이 울려퍼진다. 문제집에서 서로가 울며불며 자신의 정답을 맞춰달라 소리치기 때문이다. 들고있는 지우개로 틀린문제를 지운다. 문제는 자신이 오답인것을 알지도 못한채 죽어간다 죽기전 오답노트에 남기기위해서 나는 사진기를 들었다. "자 웃어봐 치즈~" 틀린오답은 끝까지 사람이라 주장하며 죽어간다. 사람이란것은 객관식에 없다.

15 이름없음 2018/10/07 21:17:06

손끝 글씨 색

16 이름없음 2018/10/08 06:01:37

떨리는 손끝을 들어 그의 사망소식을 알리는 편지에 적힌 그의 이름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히 이름을 불러본다. 어느새 흘러내린 눈물이 편지 위에 떨어졌고 글씨의 색을 어지러이 번지게 했다. 어지러이 번지는 색만큼 나의 마음도 어지러이 흔들리며 눈앞마저 흔들리는듯 하여 눈을 감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나의 마음은 모른채 밖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문득 앞으로 전쟁영웅의 아들들이라 불리며 정작 느껴야 할 아버지의 사랑과 온정을 느끼지 못하며 커갈 아이들의 미래와 장래가 걱정되어 더욱 마음이 아파온다. 뛰놀던 아이들이 배가 고파졌는지 뛰어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와 아프고 무거운 마음을 추스르며 눈물을 훔쳐내고는 아이들에게 미소를 지어주며 달려와 품에 안기는 아이들을 꼭 안아준다.

17 이름없음 2018/10/08 11:29:25

웨딩드레스 붉은색 고양이

18 이름없음 2018/10/08 13:02:57

본디 오늘 인생중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날을 맞았어야 하는 신부의 새하얀 웨딩드레스가 짙은 빨간색으로 서서히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비릿한 혈향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코를 찔렀고, 그들은 끔찍한 장면에 무심코 얼굴을 찌푸렸다. 결혼식을 이제 막 끝내고 신혼여행을 가야했던 부부의 얼굴에 걸려있던 미소는, 자신들이 타고 있는 차에 무서운 속도로 질주해오는 트럭의 모습과, 요란하게 울려대는 경적의 소리에 지워졌고, 이내 그들의 얼굴에는,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았다. 감정도, 생명도 깃들어있지 않은, 그런 얼굴. 근처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던 길고양이가 부부의 죽음을 애도하기라도 하듯, 구슬프게 울었지만 그 울음소리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뒤늦게 도착한 구급차에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19 이름없음 2018/10/08 20:26:54

심장, 이별, 풍차

20 이름없음 2018/10/09 07:29:09

아버지는 심장병으로 돌아가셨다. 가난뱅이인 우리집은 극적으로 방송에 나간 뒤, 후원금으로 아버지의 수술을 집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수술을 실패했다. 아직 실력이 부족했던 흉부외과의가 들어갔던 것인지, 너무나 많은 피가 흘렀다. 수술을 위해 뗀 심장을 너무 오랫동안 떼고 있었다. 인공 펌프역을 하는 심장이 잘못 들어갔었다. 수술은 우리에게서 두가지를 앗아가고 말았다. 아버지도, 돈도. 원래 가난했지만, 수술비를 수술에 쓰지 않았더라면 둘중에서 하나만 잃었겠지. 아나면 수술이 성공했다면. 비록 의료사고로서 보상을 받긴 했지만, 그 돈은 우리의 가난을 메워주기엔 충분하지 않은 양이었다. 무심결에 벽을 바라보았다. 벽에 우리 가족사진이 걸려있었다. 이젠 저 가족사진에서 한 명이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다시 찍으러 갈 돈은 없었다. 게다가, 다시 찍고싶지도 않았다. 사진을 바라보다보니 스스로조차 모르게 중얼거리게 됐다. "갑작스런 이별에 대한 준비는 아직 안 되었는데." 하며. 달칵. 동생이 문을 열고 돌아왔다. 학교가 끝나 온 것이리라, 쉬이 알 수 있었다. 이 시간이라면 그거밖에 없으니까. 동생을 보며 "왔구나." 나지막이 말했다. "왜 나한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안 말해줬어?"하며 억울하게 말하는 동생의 얼굴이 곧 울 듯이 씰룩댔다. 동생을 품에 안고 다독여 줄 순 없었다. 하지만 동생의 눈물을 닦아 줄 순 있었다. 가만히 보니 이 손수건은 아버지의 손수건이었다. 우리집은 원래 어머니가 안 계셨다. 말하자면, 미혼부. 고등학생 나이에 미혼부가 되셨다고 했다. 때문에 집에서 온갖 욕설과 폭력을 해댔고, 그에 못 이겨 집을 나오셨다 했다. 고등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와, 미흡한 미혼부 지원이 우릴 이런 가난에 몰고갔다. 동생이 울음을 그쳤다. 동생을 데리고 마을의 풍차 방앗간에 데려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정도였다. 공부도 못했고, 아니, 애초에 공부를 할 수 없었던 우리는 노동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잘 먹고 자라지도 못해 몸도 못 쓰던 우리가 일할 수 있던 곳은 여기 뿐이었다. 다른 노동을 하기엔 너무 부실한 몸이라. 풍차 방앗간에서 일하는건 좋은 선택이었고, 후회하지 않았다. 방앗간 주인의 성격도 나긋하니 좋았고, 남은 것들은 집에 들고 가도 된다 하여 주린 배를 달랠 수 있었다. 풍차 방앗간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익숙한 목소리가 "어여 와, 요새 많이 힘들겨."하며 귀를 반겼다. 어째서인지 그리운 느낌에 순간 눈물만 왈칵 쏟아졌다. 이번에는 동생이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아버지는 풍차 방앗간 주인과 상당히 비슷한 성격이셨다.

21 이름없음 2018/10/09 12:01:09

바닷가, 환청, 몽롱

22 이름없음 2018/10/09 17:07:52

시끄러운 바닷가 앞에 선다. 지나간 날들이 이리저리 한군데에 뒤섞여 불협화음을 만들고,희뿌연 안개는 몽롱한 상태를 유지한다.그 그리운 소리들을 지운다.다시는 듣지 못하도록. 미처 지우지 못한 조각이 있는걸까.또다시 어지러운 소리가 들려온다.빈 손을 들어 두 귀를 막아봐도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나는 알고있다.이 바닷가의 조각들은 모두 나의 환청이라는 것도,내가 무심한 듯 씻어내는 그 곳이 그립다는 것도. 미안합니다,전해질 수 없는 배를 이 바다에 띄우며.

23 이름없음 2018/10/09 17:09:46

파티 고어 내려다봄

24 이름없음 2018/11/11 22:17:38

파티. 당장 사전을 찾아보기만 해도 말장난을 바로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그만두자. 이 파티는 그렇게 신나는 파티가 아니니까. 아니, 저들은 잔뜩 신이 난 것 처럼 보이긴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한 끝에 그 현상의 기분을 맞춰주려는 시도는 언제나 있어왔지만, 이건 정말 잘못됐다. 한 눈에 알 정도로 명백하게 죽음을 초래하고 있다. 이들이 파티를, 카니발을 즐기는 이유는 죽음에 친숙해 졌다고, 남들을 속이기 위해... 자신을 속이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런 결혼식의 여자아이가 처음 하는 화장보다 얇은 가면은 필연적인 시간의 경과만으로도 피부와 함께 떨어져 나갈 게 분명한데도. 회의적인 눈을 숨기고, 나는 회장을 내려다 본다. 내려다 봐야만 한다. 만약 내가 눈을 감는다면,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그 기나긴 문장들에 전부 대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들이 자신을 속이는 데에 이용되겠지. ...나는 지금도 이용되고 있지만.

25 이름없음 2018/11/11 23:10:26

이 스레에서 언급됐던 것 세개를 골라서.... Dice(1,23) value : 22레스의 Dice(1,3) value : 1번째 단어 Dice(1,23) value : 7레스의 Dice(1,3) value : 2번째 단어 Dice(1,23) value : 22레스의 Dice(1,3) value : 3번째 단어 짝수 레스가 나오면 그 숫자서 -1레스

26 이름없음 2018/12/01 16:28:03

바닷가, 달, 몽롱 ** 언제나 잠에 드는 것이 좋았다. 심란했던 것들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 그 순간 만큼은 걱정따위 없이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었으므로 나는 잠을 도피처로 정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난 언제나 잠에 드는 것이 무서웠다. 잠에서 깨어나면 내가 직면해야 하는 사실이, 갑작스럽게 가까이에 온 느낌 이었고, 그 깨어나는 순간의 기분이 너무나 허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자기 직전에 생각하곤 했다. 이대로 잠에 들면, 다시는 깨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말이다. 내가 잠에 들고나면 난 동시에 깨어 있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꿈속 세상은 순백의 모래사장에 순흑의 하늘 그리고 그 하늘과 저 멀리서 맞닿아 있는 언한 옥빛 바다였다. 그 바다는 결코 파도치치 않아 거울과도 같은 느낌이었고 물 속에는 아무런 생명체도 없었다. 새하얀 모래사장을 걷다보면 시야가 흐릿해져 비틀거리다 뿌옇게 끼는 안개를 들이마시면, 한 번도 해본적 없는 마약의 느낌이 이러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몽롱해지다 결국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잠에서 깨어나 창문으로 밖을 보면 고층의 아파트 답게 뻥 뚤린 전광이지만 늘 가장 먼저 눈에 띄는건, 날 비웃는것 같은 느낌을 주는 달인것이다.

27 이름없음 2018/12/01 17:05:36

거짓, 고기, 반전

28 이름없음 2018/12/01 23:42:06

이웃집 정육점 고기가 인육고기라는 소문이 퍼졌다. 덕분에 우리가게는 날로 번창하였고 이웃집은 파리만 날리게 되었다. 소문을낸 우리 입장에서는 경사였다. 오늘은 경찰까지와서 조사를 하고갈 예정인지 아침부터 제복을 입은자들이 들락날락거리기 시작했다. "저..혹시 000씨를 마지막으로 보신게 언제시죠?" 경찰의 질문에 나는 당황했다. "고기 품질조사 하러 오신거 아니신가요?" "확인결과 인육은 아니였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고기였습니다. 야반도주를 하셨는지 며칠째 안보이신다네요" 설마진짜 가짜였을줄이야 나는 봇본지 오래되었다고 말한뒤 고기를 꺼내기 위해 냉동창고로 들어갔다. "이야~ 대단하시네 아주 싸게판다했더니 플라스틱이였어?" 굳어있는 시체에 말을건뒤 조용히 칼을들어 다리를 내리친다.

29 이름없음 2018/12/01 23:42:49

수술 실패 절망

30 이름없음 2018/12/14 23:23:23

예상대로 당신의 수술은 실패로 끝났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했던 말이 벌써 가물가물하다. 당신의 손을 붙잡고 붙잡다 못해 자꾸 미끄러져서 울음이 터진 기억도 이젠 꼭 오래전 꿈결처럼 느껴진다. 진저리나는 병원 냄새와, 가만히 눈을 감았던 당신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머리를 박박 긁어내리고 손에 닿는 오만 델 다 주먹으로 때렸다. 지긋지긋하다. 이 공기가, 엎드린 방안이 지긋지긋해 죽겠다. 문득문득 온몸이 오싹해지기도 하는 이 넓은 방 구석에서 나는 온 힘을 다해 절망했다

31 이름없음 2018/12/14 23:32:41

하늘 태양 비행기

32 이름없음 2018/12/15 22:48:13

구름 한점 없이 검푸른 하늘에 검은 점같은 비행기가 지나간다. 오후의 태양이 져가는 이곳과는 반대 방향으로, 태양이 떠오르는 곳으로 당신은 떠나간다. 나를 이 어두운 깊은 밤속에 남겨두고.

33 이름없음 2018/12/15 23:14:27

그림자 번화가 리본

34 이름없음 2018/12/16 00:58:36

번화가에 우두커니 서있다. 흘러가는 사람과 환하게 반짝이는 네온사인이 어두컴컴한 저녁하늘을 심심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 여기저가서 삐져나온 빛이 나의 그림자를 여러개로 산란시킨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신호등은 계속 바뀌어만 가고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보았다. 그때였다. "야! 미안해 좀 늦었지?" 누군가 신호등을 건너며 소리친다. 나는 문득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본다. 역시 이쁘다. 가벼운 모습을 보이기 싫어 웃음을 참고 있었는데 결국 웃음이 새어나오고야 말았다. 피식 하며 미소를 짓고는 그의 손을 잡는다. 차가운 손. 많이 추웠나보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기다렸잖아" 나는 오랜만에 만난 그와 길을 걸으며 추억을 되짚었다. 같이간 식당, 노래방, 카페들. 우린 여기 기억나냐며 밤새 돌아다녔다. 시간이 흐르고 슬슬 거리의 네온 사인이 하나 둘씩 꺼지고 사람들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늦겠다. 이제 가자" 나는 싱긋 웃으며 노란리본이 달린 액자를 들고는 다시 길을 건넜다. 밤공기는 맑고 청량했다.

35 이름없음 2018/12/16 04:35:43

마법소녀 학교 신발

36 이름없음 2018/12/16 17:30:56

여긴 청송여자교도소 나는 수감자다. 내 죄수번호는 503 나는 마법소녀라며 사기를 쳐 금품을 갈취한 혐의로 구속됬다. 이때까지 번 모든것이 빼앗겼다. 눈물이 났다. 그때였다. 방문이 열리며 교도관이 한 명을 밀어넣었다. "새로 한명 들어왔다. 잘대해줘라." 나는 반가웠다. 신참아 들어오다니. "아따... 거기.. 느어는 뭣땀시 왔당가?" 신참은 고개를 푹 떨구며 말이 없었다. 나는 기가 찼다 감히 내말을 무시한것은 절대로 참을수 없었기에 이를 물고 다시 되물었다. "야있냐 느가 대답을 안허면 나가 열이 뻗쳐븐게 느에게 손찌검을 할 수밖엔 없디야... 대답을 할겨 아님 쳐 맞을겨?" "연쇄...살인...." 무서웠다. 나보다 더한놈이 들어왔다. 순간 머릿속엔 여기서 지면 남은 6년 편하긴 글렀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온 자리인데 무려12년동안이나 줄서가며 아부하며 얻어낸 자리이다. "어허허.... 사회서 허벌나게 사람을 죽였다 이말인가? 독한년 왔네야" 난 미심쩍게 웃어 보이며 어디 트집잡을거 없나 살펴보았다. 그때 그 신참의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다. "야있냐.. 너 신발짝이 우리꺼랑 쪼까 다르다잉? 무어냐?" 그러자 옆에 있던 24601이 답했다. "예 언니 저건 올해부터 바뀐 지급품입니다." 순간 내머릿속에는 좋은생각이 희번뜩 떠올랐다. "우리는 전통이란게 있어야... 학교에 입학을 하며는 꼬까신을 신제라? 근디 우리는 꼬까신대신 헌신을 신어야디야" 그리곤 덧붙여 말했다. "긍께 신발 벗어라잉"

37 이름없음 2018/12/16 23:26:50

>>36 ㅁㅊㅋㅋㅋㅋㅋㅋ 머그잔 올빼미 침묵

38 이름없음 2018/12/19 01:39:24

침묵으로 이루어진 새벽은 언제나 좋았다. 세상 속에 홀로 남겨진 듯한 그 아린 감각에, 줄곧 밤잠을 줄이고는 했다. 겨울이 찾아들면서, 피어나는 흔들리는 숨결이 퍽 위태롭다. 추위로 붉게 얼어붙은 손 끝을 입김으로 녹이며, 하늘을 올려봤다. 구름 사이로 가려진 달이 둥근 모습을 서서히 드러냈다. 때로 의미없이, 달이 기우는 것을 보면 하루가 끝났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몇 시간이 채 흐르지않아, 달 대신 차오를 해가 아침을 고할 터였다. 짧은 숨이 허공으로 부서져 사라졌다. 난잡한 생각을 정리하다보면 문득 속이 차가워진다. 그럴 때면 이미 차가운 공기에 식은 머그잔을 들고는 했다. 따스함이라고는 없는 커피를 마시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일상이니까. 하지만 때로, 혼자 있기 때문에 들렸으면 하는 소리가 있는 법이다. 그것이 내게는 구슬픈 올빼미 소리인 것은, 사연 없는 이야기였다. 이런 도시에서는 듣기 힘든, 어릴 적의 올빼미 소리가.

39 이름없음 2018/12/19 01:43:12

머리카락 카드 노트북

40 이름없음 2018/12/22 13:11:12

머리카락... 크리스마스 선물로 머리카락을 빌었다. 25살의 젊은 아니, 어린나이지만 탈모가 온탓에정수리와 이마가 비어있는 그 였다. 크리스마스 이브전날 그는 100일된 여자친구에게 차였다. 그날따라 바람이 세게 불었는데 데이트 도중 가발이 벗겨진 탓에 여자친구는 놀라 집으로 가버렸고 나는 쓸쓸히 가발을 쥐고 집에 돌아와야했다. 그녀는 하룻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 방금 문자메세지로 연락이 왔다. '미안해. 하지만 대머리는 아니야. 그만하자 우리'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렀다. 크리스마스 2시간전 나는 잠에 들었다. 안올줄 알지만 혹시 하는 맘이었을까. 머리카락을 선물로 주었으면 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눈을 뜨고 안경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뿔싸. 머리맡에는 머리카락이 한 가득이었다. 머리카락을 달라고 빌었더니 머리맡에 내 머리카락을 두고 간것인가 싶어 야속했다. 머리카락 한 뭉치를 들고 거울을 보니 울면서 잠든 탓에 눈은 팅팅 부어있고 머리는 어제보다 더 허전해 보여 더 비참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사람들이 하얀 눈을 보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날. 사랑하는 사람과 함깨 하는날.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오늘도 어김없이 가발을 주문한다. 지갑안의 카드만이 유일하게 내 손을 잡아준다.

41 이름없음 2018/12/22 15:16:44

인스타그램 그림 친구

42 이름없음 2018/12/22 16:22:18

입시에 집중한다며 폰은 전화, 문자만 되는 2G 폰으로 바꾼 채로 그림만 그리며 살다가 오랜만에 켠 옛 휴대폰을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SNS를 들어가 보았다. 별 친하지 않은 친구들의 보고 싶다는 몇 주 전 연락들은 다 씹고 인스타그램을 둘러 보았다. 다른 사람들 글에 좋아요를 남기자, 알람이 떴는지 다이렉트 메시지로 몇 명에게서 오랜만이야 ㅠㅠ 등의 메시지를 받았다. 대충 답해 주고는 마저 피드를 살피는데, 사라지지 않은 다이렉트 메시지 아이콘 위 1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들어가 봐도 안 읽은 메시지는 없는데... 싶어 메시지 목록 창을 한참 내려 보았더니 저 밑에 깔려 있는 메시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아이디도 낯설고 도통 누군지 감이 안 잡혀서 온 메시지를 읽어 보았지만, 보고 싶다는 말 외에는 깔끔하게 아무것도 없는 메시지 창에 프로필을 눌러 보았고 이내 뜨는 찾을 수 없다는, 탈퇴한 계정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문구에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친구들에게 이 아이디가 누구 것인지 아냐고 물어봐도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심플한 아이디에 잠깐 그 애의 생각이 났다. 설마? 뇌리를 스치는 그 아이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왜 걔가...? 걔가 이 아이디의 주인이라는 전제 하에 생각해 보니 딱 맞아 떨어졌다. '04.23.04' 나와 네 생년월일을 합친 숫자였다는 것을. 한때는 우리의 비밀번호 여섯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숫자들이라는 것을. 나는 한참을 울었다.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내가 너무 늦어서, 사랑해 마지않는 네가 너무 그리워서.

43 이름없음 2018/12/22 20:44:15

인어 수족관 기억상실

44 이름없음 2018/12/22 21:37:44

난데없이 내게 드러난 것은 분명 인어였다. 나와 고작 한 뼘 가까이 떨어져 있는 그것이 내게 무어라 지껄인다. 나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고작 희미하게 차임벨 소리가 들린다. 그것이 점점 가까워진다. 기억의 시작은 아마 입이 바짝 마르도록 더운 아스팔트 위였다. 주변에는 지평선과 아스팔트 말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희망이라도 찾을까 몸을 움직였다. 움직이면서도 곧잘 어지러웠다. 나는 곧잘 쓰러지는 편이였다. 핑계지만, 내 발 아래에 물웅덩이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난 분명 보았다. 사실 그것이 신기루가 아니면 무엇이겠느냐고 생각했다. 다만 내가 간과했던 것은 신기루는 지평선에 걸쳐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기름 위에 쓰러졌다. 억지로 퍼마신 기름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갈증은 몰라도, 공복감은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었다. 나는 점점 기름을 빨아들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가 기름에 빨려들어갔다고 보는 것이 맞다. 기름에 이목구비가 모두 맞닿을 적까지가 크레디트 타이틀의 끝이다. 기억상실인지 그 전 기억은 없다. 내가 무엇을 향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인어 앞에 있고, 영문도 모르게 나는 물 속에 가득 잠겨있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차임벨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이내 내 귀에는 진공만이 남는다. 내 앞의 인어는 점점 다급해진다. 그러더니 텅 소리와 함께 나와 그것 사이의 투명물질을 가격한다. 무언가 사이에 있다. 수족관인가 싶어 나는 앞으로 귀를 댄다. 인어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그곳에 입을 댄다. 우웨에에에에엑. 입이 닿자마자 아스팔트 덩어리와 강렬한 햇빛이 뿜어져 나왔다. 점점 커져가는 그것들에 사이의 무언가가 늘어나고 있다. 나는 인어를 응시한다. 인어도 나를 응시한다. 그리고 나에게 말한다. 돌아온 아스팔트는 밤이었다. 바닥은 기름으로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상실되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나만 인어였을 뿐이다. 방금 내가 본 것은 나의 기억이었을까.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몸을 움직여본다. 기억나는 것은 단 한 마디였다. "맛있겠군."

45 이름없음 2018/12/23 13:53:51

개 고양이 늑대

46 이름없음 2018/12/23 13:53:56

앗 실수로 두 개 달았어... 이거 못 지우는 거지...?

47 이름없음 2018/12/23 13:54:41

>>45 미안해... 다시 달게 개 고양이 늑대!

48 이름없음 2018/12/28 00:01:15

히잌! A "방금건 뭐지?" B "잠깐만요 내려서 확인해볼게요" A "방금건 분명히..." (동시에)"개? 늑대?!" A ???"왜 늑대야? 그건 개였다고" C "뭔소리야 그건 늑대야!" A "아니 늑대가 이런데 왜있겠어? 말이되는소리를..." C "맞다니까?? " A " B가 오면 누구말이 맞는지 보자고" (B돌아옴) (동시에) " 개지? 늑대지?" (품속에서 무언가 나오면서) B "고양인데요" 냐아^ↀᴥↀ^

49 이름없음 2018/12/28 00:42:32

마녀 시간여행 전쟁

50 이름없음 2019/01/10 01:58:08

눈을 떠보았다. 여기가 어디지? 분명히 난 내 방에서 자고있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숲인것 같다. 갑자기 앞에 무언가 휙 지나가더니 내 앞에서 멈춘다. 매우 아름다운 여자였다. 바람에 흩날리는 긴 생머리와 영롱한 눈, 오똑한 코, 맑고 투명한 피부, 앵두같은 입술, 드레스로 부각되는 잘록한 허리라인. 순간 나도 모르게 멍해져 그 여자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생각했다. 이 여자 뭐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여자가 내게 "아 자기소개를 안했구나! 난 마녀야!" 라고 답했다. 소름끼쳤다. 내가 생각한걸 읽었나? 무의식적으로 말을 내뱉었나? 자신이 마녀라고 하는 그 여자는 나에게 시간여행을 떠나자고 말했다. 하지만 난 의아했다. 지구에 사는 50억 인구중에 왜 하필 나인거지 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아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기도 전에 그녀가 내게 말했다. "왜 너냐니~ 너가 특별하니까 그렇지!". 특별..? 내가 어딜봐서 특별한거지? 갑자기 시간여행은 왜 하자는거야? "그거야 난 여행을 하는걸 무척 좋아하는데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원래 여행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떠나는게 재밌거든!" 맞는말이다. 나 또한 그녀와 같은 생각으로 여향을 갔었으니. 그렇게 그녀와 시간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녀가 내게 어딜가고 싶냐고 물었다. 순간 며칠 전 역사시간에 배웠던 세계 2차 전쟁이 생각났다. 나는 전쟁을 좋아한다. 싸우는걸 좋아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냥 전쟁 이라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얘기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모습을 보고싶다고. 그랬더니 마녀가 나에게 투덜댔다. "뭐어? 전쟁? 아유 참~ 넌 어떻게 그런것만 고르니?" "... 하긴.. 그래서 특별한거지 뭐! 그래 좋아 가자!!" 알수없는 시간여행을 떠니게 된 마녀와 나. 살아서 돌아갈수는 있을까..? the end

51 이름없음 2019/01/10 02:42:10

고기 괴물 촛불

52 이름없음 2019/01/10 14:27:14

촛불이 꺼진다. 몇 안되는 촛불에 의지하며 길을 나아가지만 어둠속에 숨은 괴물은 제 먹을 고기를 탐하며 주위를 맴돈다. 곧 마지막 희망이 꺼졌다.

53 이름없음 2019/01/10 14:55:46

비밀 속임수 침묵

54 이름없음 2019/01/11 17:39:55

"밤이 되었습니다. 마피아는 고개를 들어주세요." 부스럭,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죽일 사람을 지목하라는 내 목소리에 테이블에 둘러앉은 그들 사이로 긴급한 침묵이 오갔다. 한 명이 손짓까지 동원하며 열성적으로 누군가를 손가락으로 지목했다. 곧 있으면 발짓까지 할 기세다. 다른 마피아는 불만스럽게 고민하는 듯 싶더니,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불쌍해라. 경찰은 이제 죽었다. 그 뒤에 고개를 든 의사가 자힐을 했기 때문이다. 백의의 천사가 내린 선택이 민중의 지팡이를 꺾은 것이다. 참고로 경찰이 짚은 사람은 의사다. 지지리도 운 없는 자식같으니. "그는... 마피아가, 아니었습니다." 밤새 경찰이 살해당했다. 아침이 되자 마피아들이 짜고 치며 시민 하나를 마피아로 몰았다. "저 새끼 마피아로 의심받더니 결국 죽였어!" 이 게임에서 중요한 건 정치질이다. 속임수고 나발이고 범인 몰아가기에 은근슬쩍 올라타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아! 난 아니라니까! 부모님 건다! 건다고!" 역으로 의심받은 마피아 한 명이 게임 하나에 족보를 팔아먹었다. 마피아가 아니라 패륜아였나보다. 등신... 결국 시민이 처형당했다. 진작에 죽어서 내 옆에 앉아있던 경찰이 입이 근질거리는 듯 복장을 두드렸다. 떽, 비밀엄수. 내 입에 들어가려던 새우깡의 노선을 바꿔 경찰 입에 넣어주자 얌전해졌다. 다만 의사를 표독스럽게 노려보고 있었다. 자힐의 대가는 처참했다. 쟤는 이번 턴에 죽어야 게임이 끝난 뒤 경찰에게 얻어맞지 않을 것이다. 마침 마피아끼리 속닥거리다가 의사의 널따란 등짝을 가르키고 있었다. 서포트부터 잘라낼 심산인가보군. 나는 마피아들에게 오케이 사인을 주고 의사를 불렀다. 또 자힐이다. 문득 생각이 나 경찰을 잠깐 바라보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개판이군.

55 이름없음 2019/01/11 22:03:09

서재 화분 쿠션

56 이름없음 2019/01/13 04:31:28

나는 내 친구의 무릎을 베고 있다가 옆에 놓인 쿠션을 끌어안고 즐거워하며 말했다. ''너가 선물해준 화분을 서재에 두고 꽃을 피우기위해 노력했었어, 꽃을 좋아하는 너에게 피운 꽃을 보여주면서 고백하려고 했거든... 그런데 꽃을 피우기도 전에 너가 먼저 고백해올줄이야... 사랑해♡''

57 이름없음 2019/01/13 13:24:24

꽃,책,옷

58 이름없음 2019/01/13 19:28:48

내다본 창문 밖 하늘에는 별들이, 꽃들이 가득히 피었습니다. 여느때와 같이 포근한 옷을 입고, 두꺼운 책과 하얀 우산을 들고 나섭니다. 언젠가 난 별이 속삭이는 말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있는 밤하늘을 담아달라고. 너른 언덕에 앉아 책을 펼치곤 또 밤하늘을 남겨봅니다. 이 하얀 우산도 누군가에겐 별이기를, 간절히 소망하니까요.

59 이름없음 2019/01/13 19:45:07

심장, 비수, 진창

60 이름없음 2019/01/13 20:03:58

그에게서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미 어렴풋이 곧 헤어지겠구나..하고 느끼고 있었으니깐. 다만, 그게 오늘일지는 몰랐다. 늘 그가 희생하는 일방적이고 엉망진창인 연애였다. 그는 나만을 바라봤지만 나는 늘 그의 심장에 비수를 꽂았다. 시간이 지나고, 그는 지쳐보였다. 우리가 연애라고 느끼던 것들은 그저 한 남자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스스로 진창으로 들어간 일방적인 한 사람의 희생이었다. 그는 날 놓았다. 난 그를 잡지 않았다. 애초에 가지고 있던 적도 없으니깐.

61 이름없음 2019/01/13 20:04:45

원망, 빗소리, 애절

62 이름없음 2019/01/13 22:13:18

후둑 후둑 떨어지는 빗소리가 가뜩이나 크게 들렸다. 소녀의 친구는 오늘처럼 빗소리가 크게 들리는 날에 묻지마 살인을 당했다. 친구를 잃은 소녀는 슬프고 어찌하면 애절하게 들리는 노래를 불렀다. 구슬프게 들리는 소녀의 노래에는 원망서린 감정이 섞여 있기도 했다. 소녀의 머리가 빗물로 전부 젖어갈 무렵, 소녀는 이내 애절하게 부르던 노래를 멈췄다. 우뚝 선 소녀의 눈에는 커다란 물이 고여있었다. "나랑... 같이... 대학, 가기로 했잖아... 같, 이... 이것저것 하기로 했으면서..." 이내 소녀의 눈에서는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63 이름없음 2019/01/14 05:27:55

사랑 먼지 바람

64 이름없음 2019/01/14 16:27:39

그저 사랑이였다. 그저 한끝 더없고 덜있는 사랑이였다. 가볍게도 누군가를 품에 안듯 사랑하였다. 그 마음이 커질것을 알면서도 애절히 사랑하였다. 그 마음이 먼지자락이 되어 흩날리는것을 보니 내 마음도 살랑살랑 흩어진다. 일부러 모른체 모으던 것들이 뽀록났다. 오늘도 베게에 얼굴을 묻고는 잠을 청하며 작은 소원 아닌 소원을 빈다. 언젠가는 절망적으로 애절하게 사랑하던 그이를 다시 한번 모아달라고

65 이름없음 2019/01/14 16:32:45

라디오 카페 한겨울

66 이름없음 2019/01/15 13:17:36

이제 눈발이 제법 거세지고 있다. 곧 있으면 영하는 아주 우습다는 듯 기온이 더 내려가겠지. 쇼윈도창이 조금 깨지긴 했지만, 다른 건물에 비하면 제법 그 골자를 유지하고 있는 카페를 거점삼아 버틴지 이제 26일째. 한겨울의 한파 탓인지 좀비들은 눈에 띄게 기동력이 낮아졌다. 하수구에 빠졌다가 얼어붙는 바람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팔만 허우적거리는 좀비도 있었다. 미끄러운 오르막길 밑에서 서성거리기만 하는 좀비도 있었다. 정수리에 고드름이 꽂힌 채 거리에 쓰러져있는 좀비도 있었고. 좀비들의 저런 꼬라지는 제법 우습지만, 우리도 그걸 대놓고 비웃을 처지가 되지는 못했다. 카페 탕비실에서 다같이 산 채로 동태묶음이 되게 생겼으니까. 현재 이 거점은 전기가 끊겨 실내에서도 입김이 뿌옇게 흘러나왔다. 어떻게든 온기를 끌어모으겠다고 여기저기서 박박 긁어온 담요도 그닥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구석탱이의 담요뭉치 안에서 단군은 분명 부동산 사기를 당해 이딴 땅에 정착한게 틀림없다는 소리가 웅얼웅얼 비져나왔다. 동감이다. 한국의 겨울은 언제나 욕이 절로 튀어나오도록 추웠다. 참 가혹했다. 나는 한숨을 쉬고 치직거리며 탁한 소음을 내뱉는 라디오를 내려다보았다. 얼어죽기 전에 구조는 될런지 모르겠다. 다들 슬슬 지쳐가고 있었다.

67 이름없음 2019/01/15 18:25:42

대가, 쌍둥이, 문

68 이름없음 2019/01/20 18:05:05

우리는 쌍둥이로 태어났다. 하지만 완전히 똑같았던 우리를 아무도 구분하지 못했기에, 그 탓일까, 우리는 서로를 반쪽이나, 자기 자신처럼 생각하며 자랐다. 너가 나고, 나는 너. 아침에 일어나서 부모님이 먼저 깨우는 쪽이 형, 두번째가 동생. 우리는 그렇게 정했다. 어느날은 내가 형이었다. 아침에 일어난 나는 너를 깨우고, 우리는 밖으로 나와 웃고 떠들면서 온 마을을 돌아다녔다. 우리는 이 마을에서 유명한 악동이었다. 어느날은 너가 형이었다. 너는 나를 깨우고, 아픈 나를 걱정했다. 한 시라도 가만 있으면 답답한 너면서, 내가 아프기라도 하면 내 옆에서 떠나지 않고 그렇게. 계속 머물렀다. 내가 경험한 일은 너도 겪은 일. 모든 걸 공유하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내 반쪽. 우리는 서로에게는 예외적이었다. 내가 형이더라도, 너에게는 동생일 수 있었다. 너가 형이더라도, 너는 나에게 동생이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가 똑같아서, 따로 본 적이 없었다. 그래, 거울에 비치는 자신처럼. 어느날 아침은 조금 이상했다. 아무도 깨우지 않았는데 저절로 눈이 떠져서 일어나버렸으니까. 너가 나를 깨운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나를 깨운 것도 아닌데. 알람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나는 눈이 떠졌다. 누워서 너를 보던 나는 새삼 거울을 보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이날은 오랜만에 너랑 놀러 나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랑 나는 오랜만에 나갔다. 그동안 누가 아팠던 걸까, 싶지만 이유가 무슨 상관일까. 이 날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이었는지도 기억 안 나지만, 이제 와서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문 앞에 서 있고, 이 문을 지나면 앞에는 너가 있다. 하지만 잘 모르게 돼버렸다. 나는 형인건지, 동생인건지. 문 너머의 너는 매일 변했다. 형은 어디 있냐고 눈물 짓다가도, 동생은 어디 있냐고 울부짓기도 했다.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아마 죽었고, 이제 너는 오롯이 너로서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였기에, 서로를 떼어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매일 변하는 너를 보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모르게 돼버렸다. 내가 누구인지, 정말 모르게 돼버렸다. 하지만 너가 소중하고, 사랑하는 내 반쪽이라는 걸 알아서, 나는 아무것도 못 하면서 여기에 남아 있다. 지금까지 행복했던 것의 대가가 이거라면, 사랑하는 반쪽이 미쳐가는 이유가 나라면. 신이시여, 저는 태어난 것을 후회합니다. 차라리 나는 태어나지 않고, 혼자 태어난 내 반쪽이 나 없이 행복했다면. 나만 없었더라면 너는 이렇게 될 일이 없었을텐데. 피칠갑 된 내 손은 여전히 너를 통과하기만 한다.

69 이름없음 2019/01/20 18:11:05

여성 주연 둘, 평화로운, 쓸쓸한

70 이름없음 2019/01/24 00:23:32

레나선배. 응 소나쨩? 둘은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레나라고 불린 사람의 얼굴은 착찹한 표정이었고, 소나라고 불린 사람은 어딘가 웃고 있었다. 이제 졸업이죠 선배? 응... 나 떠나기 싫어 나 소나쨩이랑... 기여코 울지는 않았다. 떠난다면 물론 소나도 쓸쓸하겠지, 둘은 사귀고 있으니까. 조금은 슬프려나. 아주 조금. 그래도... 선배 우리 다시 만날거죠? 응... 당연하지 내가 무슨수를 써서라도 우리는 만날거야. 둘은 서로를 꼬옥 안았다. 그리고 서로가 떠났을때 남은건 씁쓸함뿐.

71 이름없음 2019/01/24 05:44:10

홍연 가로등 빈자리

72 이름없음 2019/01/24 06:10:03

"가로등 아래에서는 담배 연기가 잘 보여." 스쳐 지나가듯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가로등을 지나치고 있어서였을까. 무심히 서 있는 가로등을 가벼이 지나치지 못하고 결국 담배를 꺼내 들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꺼내고, 담배에 불을 붙이는. 일련의 과정을 통과하며 머릿속으로는 안예은의 홍연을 재생했다. 네가 좋아하던 사극 드라마에 나온 OST라며 열심히도 불렀던 노래. 노래방의 LED에 비추어 여러 색으로 반짝이던 네 모습이 떠올랐다. 네가 그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면 자주 방해하곤 했다. 무슨 발라드를 부르냐? 내가 그러면 너는. 넌 감성도 모르냐? 하면서 장난스러이 화내고 또 나는. 또 너는... 그리고 나는, 너는.... 집에 돌아가면 안예은의 홍연을 듣는 게 좋겠다. 네가 좋아했던 곡이니 너를 추억하기엔 딱 알맞을 것이다. 네가 부르기 어려워하던 부분을 원곡이 자연스럽게 처리하고 있을 때면, 때때로 눈물이 나곤 했다. 내가 듣고 싶은 건 이게 아니었는데, 하면서. 네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너의 커버 버전을 녹음해두면 좋았을 텐데. 다시는 들을 수 없을 너의 목소리가 그립다.

73 이름없음 2019/01/24 12:03:28

인어 바다 버스

74 이름없음 2019/01/24 13:40:47

끼익- 삐걱-, 다 낡아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바다 냄새.. 사실 썩 좋지는 않다. 원해서 돌아온 것도 아니고, 시골 마을이라 이젠 사람도 몇 없다. 아.. 김씨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렸을 때 간식거리를 잘 챙겨 주셨었는데.. 저쪽 바다에 뿌리셨다고 한다. 바다.. 바다 하니까 하는 말인데.. 이 마을엔 인어가 산다. 다들 헛소문이라고 하지만 나는 사실이란 걸 안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혼자 놀러간 집 앞 해변에서 처음 만났다. 또래 친구가 없었던 나는 매일같이 그 인어와 함께 놀았다.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 병세가 악화되어 큰 병원으로 옮기셔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몇일 뒤. 우리 가족은 갑작스럽게 이사를 가게 되었다. ".. 아직도 있을까.." 몇년이나 지났는데.. 아직까지 있을리가 없지.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을 때 해변 끝 바위에서 누군가 보였다. '설마..' 무언가 쿵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가쁜 숨 몰아쉬며 바위 앞에 섰다. "너... 아직도..." ".. 오랜만이야, 말 없이 가버려서 미안해." 몇년만에 만난 인어는 아직도 그 때 그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 원망하나 없이, 그저 다시 만난 것이 기쁘다는 듯 웃었다.

75 이름없음 2019/01/24 14:07:09

기차 꽃 낭만

76 이름없음 2019/01/25 02:58:21

덜컹덜컹 기차안에서 지가나는 풍경을보며 졸고있었다. 기차에서 내리자 새로운 환경이 날 반기는듯 했고 새로운 가족 새로운 희망과 낭만이 가득한곳으로 왔다고 생각했다. 하얀 목련꽃을 들고 새로운 사람들이 지나가는것을 보고 나의 예전 친분이 가득 쌓인 사람들이 문득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 때 쓰잘때기 없는 시간일 뿐이였다. 그냥 그한순간이였을 뿐 이였다. 나는 새로운 생활을하며 고향에 남겨진 나의 몸, 나의 가족, 나의 친구, 나의 사랑하는 사람 까지 다 잊을텐데 그 사람들은 나를 생각하며 얼마나 힘들까 그사람들에 마음을 헤아릴수가 없다. 그사람들에 추억을 생각하면 그냥 내 마음이 찢기는것같았다. 하지만 나는 여기로 오기전 내 사진앞에서 울고있던 친분이 가득 채워진 사람들이 울고있는 관경을 보았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내 사진앞에있던 하얀 목련꽃을.

77 이름없음 2019/01/25 10:41:05

안개꽃 꿈 인사

78 이름없음 2019/01/25 14:31:38

( GL ) 끔에 사무치게 그리운 네가 나왔다. 왜 날두고 떠나서 왜... 꿈으로만 온거야? 넌 널 닮은 흰색의 안개꽃을 들고 있었다. 다가갈래. 다시 나랑 같이 있어줘. 미안해, 잘못했어... 분명 잘못한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네가 다시는 내 꿈에라도 나오지 않을거 같아서. " ( - ) 쨩. 나랑 있어줘. 꿈에서라도.... " " ( ? ) 선배. 우린 끝났잖아요. 선배가 먼저 나한테 헤어지자 했잖아? " " 미안해, 다 거짓말이었어... 잘못했어... " " 난 정리 했어요. 안녕. 잘있어요. 사랑했고 다시는 만나지 말기를 " 넌 그렇게 미련만을 주고. 인사했다. 떠나지마 안돼.... 그렇게 꿈에서 깼고. 바뀐건 없었다, 사랑했어 ( - ) 쨩. 그리고 사랑하고 있어.

79 이름없음 2019/01/25 14:34:28

아기 자몽향수 초저녁

80 이름없음 2019/01/25 16:53:33

나는 너를 아기때부터 봐왔어 나는 너가 좋았어. 동생이 생긴 거 같았거든 이 집에서 나보다 작교 약한 생명이 생겼다는게 너무 신기했어 • • • 어느날 나는 어떤 열매를 찾아서 그걸 너한테 건네줬어 나름대로 호감의 표시로 준 선물이었지. 나도 뭔지 궁금하고 흥미가 있었지만 너한테 양보한거야. 너는 나한테 그 열매를 잘라줬어. 하지만 내가 먹은 그 열매는 엄청 쓰고 이상해서, 열매를 준 너가 미우면서도 이걸 내가 너한테 선물로 줬다는게 미안했어 자몽이던가. 너는 자몽을 좋아하더라. 그 쓰고 맛 없는게 뭐가 좋다고. 나중에 가서는 자몽향이 나는 향수를 뿌리고 다녔지 나는 그 냄새가 싫었어. 자몽맛이 떠올라서 기분 나빴거든 하지만 자몽향을 내는게 너니까 피하지 않았어 시간이 지나고 나니 자몽향만 나면 너인줄 알고 들뜨는 내가 있더라 뜬금없지만 갑자기 이 일이 떠올랐어 지금도 내 옆에서 자몽향이 나는데, 이건 너인걸까? 벌써 초저녁이야. 빨리 안자면 몸에 안 좋아 너는 자라서 나보다 더 커져버렸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직 아기같아. 내가 없으면 못 자고 불안해하잖아. 눈이 안 떠져서 너를 볼 수는 없지만 아마 너인거 같아. 나를 이렇게 쓰다듬는 건 너밖에 없거든. 엄마도, 아빠도 나를 이렇게 부드럽게 쓰다듬는 건 못해. 눈을 떠서 너를 보고 싶은데, 정말 못 뜨겠어. 깨 있다고 알리고 싶은데, 꼬리가 안 움직여. 있는 힘껏 너를 반기고 싶은데 엄청 졸리고, 노곤해. 너가 쓰다듬어줘서 그런가? 내가 먼저 자면 너는 어떡하지? 너무 힘들어 하면 안 돼는데. 미안해, 울지마 (노견의 마지막 기억)

81 이름없음 2019/01/25 23:36:02

눈물 커피 코트

82 이름없음 2019/01/26 02:01:18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잘지내셨는지 잘 모르겠네요. J씨 저는 오늘 아주 슬픈일이 있었답니다. 하소연하는건 아니지만 그냥 J씨 라면 이 일을 잘 해결할 수 있을것 같아서 적어 봅니다. 일단 먼저 오늘 남자친구와 헤어졌어요. 영화를 보고 커피숍을 가서 같이 앉아 서로 웃음꽃 피우며 이야기를 하고있었어요. 아 이야기에 심기가 불편할 단어는 없었어요. 맹세코 하늘에 이갸기할수있을정도로요. 그리고 남은 커피를 들고 남자친구의 코트를 챙겨 주었죠. 서로 집에 가는 길에서 저는 그만 실수로 넘어 지고 말았죠. (아 그때 날씨는 흐렸어요. 바로 비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요. 날씨 적는걸 깜빡했네요 :\ ) 남자친구가 넘어지는 저를 받아줄려고 하다가 코트가 커피에 젖어버렸지 뭐에요. 남자친구는 거기서 인상을 찌푸리며 저한테 이야기를 했답니다. “ 그러게 길을 잘 봤어야지 뭐하는 거야 아...씨 코트 버려야겠네” 저는 기분이 나빠졌지만 그냥 미안하다고하고 넘어갔어요. 남자친구는 오늘 집에 대려다주고 저에게 한마디를 남겼어요. (커피 흘린뒤 남자친구와 이야기는 안했어요.) 헤어지자고 말이에요. 오는길에 이야기를 안한 이유가 고민해서일까요. 오는길에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해서일까요. 저는 아직 모르겠네요. 어째뜬 저는 비가 오니까 남자친구를 잠시 붇잡아두고 집에 가서 우선을 남자친구에게 줬어요. 주면서 나와 사귀어줘서 고맙다고 인사도 하고요. J씨 내가 정말 잘한걸까요? 참.. 미련쓰러웠을까요. 그리고 남자친구가 안보일 때 까지 앞에서 손을 흔들며 있었답니다. 남자친구가 안보이자 저는 참아왔던 감정이 폭팔한 것 인지 눈물이 삐져나와 흐르기 시작하더니 멈추질 않아 한참 그 자르에서 울었답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비가와서 저의 눈물이 눈물인지 사람들이 잘 몰랐을 것. 그거는 저에게 큰 행운이였죠. J씨 라면 어떻게 행동할꺼에요? 저는 제가 잘 행동한 것 인지 잘 모르겠네요. 오늘 편지는 여기까지 쓸께요. 잘있어요 J.

83 이름없음 2019/01/26 02:20:44

딸기우유 비오는날 눈물

84 이름없음 2019/01/27 03:39:23

[ 딸기우유 색의 눈물 모양 무늬가 그려진 우산의 주인분을 찾고 있어요. 저번 주에는 우산 빌려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2층 미용실에서 우산을 보관 중이니 와서 찾아가 주시기 바라요. ] 귀여운 글씨체로 쓰인 공고문을 본 순간, 온몸의 기관이 몇 초간 정지해버린 듯했다. 말도 안 돼! 그걸 안 버리고 갖고 있었다고? 강혜경은 그녀에게 우산을 빌려주고 달려가 버린 지난주 금요일을 회상해보았다. 무시하고 갈 생각이었는데, 같은 건물을 오다가다 언뜻 본 그녀의 곤란한 표정이 너무 신경 쓰여서,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이거, 쓰고 가세요."라며 우산을 던지듯 넘겨준 채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가 버린 강혜경이었던 것이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좀, 로맨스의 한 장면 같지 않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강혜경은 지난주 금요일의 그녀처럼 곤란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이거, 찾아갈 수도 없고 안 찾아갈 수도 없고! 찾아가면 뭐라고 말해? "하하, 제가 지난주의 그 사람인데요. 하하하하?" 아니야.. 어색해 보여.. 이런 상황에 적당히 할 말이 무어가 있을까. "우산 찾으러 왔는데요..." 하면, 지난주의 그 멋진 말이 허세처럼 들릴 거 아냐! 뭐라고 말해?! 뭐라고 말할지를 결정하지 못한 채, 강혜경은 미용실 앞에 섰다. 마음 같아선 더 미루고 싶었지만! 공고문을 보고 5일이나 미뤄본 결과 다음 주에 찾아가는 게 더 부끄러워질 거란 힘들 결론을 내리고, 그 실행을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미뤄버린 결과였다. 정말.. 뭐라고 말하면 좋지? 미용실 문고리를 잡을락 말락, 혼자서 몇 분간 마임을 하고 있을 찰나에 갑작스레 미용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안녕하세요. 머리 하러 오셨나요?" / "네?"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등장한 그녀는..... 이건, 마치, 뭐랄까, 여신?! 조금 전에 들은 종소리가 천사의 강림을 알리는 종소리였나?! 너무나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강혜경은 잠시 정신을 뺏겨버린 수준이었다. 멍해 보이는 강혜경을 가만 바라보던 그녀는 잠시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가, 아! 하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 저번 주의 그 우산. 빌려주신 분이신가요?" / "네? ...아! 네! 맞아요! 그거 저예요!" / "저번 주에는 정말 감사했어요. 잠시만요, 우산 가져올게요." 그녀가 우산을 찾을 동안 강혜경은 계속 그녀에게 눈을 떼지 못한 채였다. 그녀는 너무, 예뻤으니까! 그러나 강혜경은 소심하기론 정평이 나 있는 사람이었고, 결국.. 우산이 제 손에 쥐어졌을 때는 기묘한 우울감을 느끼며 그럼 안녕히 계세요, 라고 말해버리고 말았다. 침울한 걸음걸이로 느릿하게 미용실에서 멀어져갈 때쯤,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저기! 제 이름은.. 이나연인데요. 혹시 시간 되시면 다음 주 금요일에 같이. 저녁 드실래요?" 그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조, 좋아요! 진짜 좋아요! 너무 좋아요! 좋아요!를 연발하던 강혜경은 그 뒤로 도망치듯 건물을 빠져나왔다. 뭐지? 나 지금 뭐한 거지? 데이트 신청 받은 거야?! 근데 나 지금 저 사람한테 반한 건가?! 어쩌지? 근데 지금! 너무 기뻐!!!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강혜경은 버스정류장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저번 주 금요일처럼.

85 이름없음 2019/01/27 05:52:03

짝사랑, 다정, 우울.

86 이름없음 2019/01/27 15:41:38

그대의 다정함이 독이겠습니까. 멋대로 연심을 품은 제 잘못이겠지요. 허나, 쓰라린 이 공허함 또한 멋대로 생겨나 얼굴을 들지 못할 뿐입니다. 그대의 다정함은 너무나도 깊어, 빠져나가지 못할 뿐입니다. 저를 부르는 그 목소리가 달고, 선뜻 내미는 그 마음이 달아 차마 입을 못 열 뿐입니다. 그대, 지금처럼만 웃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대. 내 한마디에 손끝이 떨리지만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드는 수렁같은 파란 빛은 제 것입니다. 그대, 방울지며 파란 빛을 떨구지 말아주세요. 모든 것을 끌어안을 저이니 그대는 말간 웃음을 잃지말아주세요. 저는 그대의 다정에, 속으로 죽어나갈터이니, 이 연심만큼은 다시금 내비치지 않을터니. 그대는 저를 벗으로나마 생각해주길 바라봅니다.

87 이름없음 2019/01/27 16:23:31

화장실 욕조 커튼

88 이름없음 2019/01/27 17:24:01

욕조에 서서히 물들어가는 피는 네가 준 그 꽃을 닮았다. 결혼하자, 며 수줍게 얘기하던 네 얼굴에는 홍조가 예쁘게 피어 있어서. 보면 마음이 약해질까,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물었다. -왜 장미꽃이 아니라 튤립이야? -어? -바보. 청혼할 때는 장미꽃 100송이. 아무도 이런 거 말 안 해 줬어? 아. 소리를 내며 설핏 웃는 너는 지독히도 사랑스럽다. 내가 예쁘다고 했던 갈색 눈이 부드럽게 접힌다. 그 사람을, 닮았다. 네가 내 앞에 숨쉬는 지금은 비현실적이고, 밤이 되면 너는 목을 조르러 찾아온다. -아니, 그게 아니라... 톡. 토독. 화장실 바닥에 흐르는 마음은 흐드러지게 붉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되는하루. 사실은 처음붗 알고 있었어. -으, 알았어. 장미꽃 준비해올 테니까. 그래도 그건 안 버리면.. 안 돼? 나를 기어코 찌르고 만 너의 울 듯한 표정과. -튤립... 예쁘다. 피에 젖은 커튼을 잡고 덜덜 떨고 있는 모습과. -뭐야, 반지...? 그럼에도 널 놓을 수 없는 내 마음은. -'결혼하자, 응?' 너를 사랑한다는, 흔해빠진 이야기 정도는. -사랑해. 나도. 죽어가는 심장으로, 간신히 웃어 보였다. 날 사랑한다고 한 네가 칼을 든 이유 같은 건 알고 있어. 결혼 같은거 부담스러워 했으면서, 오늘 아침에 청혼한 이유도. 잠이 많은 네가 오늘 아침에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 이유도. 일러나자마자 내가 사라지진 않았는지, 그 떨리는 손길도. 전부, 기억하고 있어. 그러니까 그런 표정은 짓지 마. "잠깐만 자. 내가 아프게 해서 미안해. 내가 널 못 놔서 미안해,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 "야." 난 튤립이, 제일, 좋아. * * *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네가 소리를 지르며 일어난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듯 내 얼굴을 어루만진다. 기어이, 입에 담고 만다 너는. "죽지 마 제발..." 그리고 기어이, 나를 사랑해 버리고 만 너를 나는. * * * -있잖아, 넌 어떤 꽃이 제일 좋아? -꼭 골라야 돼? -아니! 근데 뭐, 궁금하기도 하고...? -...딱히 좋아하는 꽃은 없어. 해마다 철마다 가장 아름다운 꽃은 다르니까. 그때의 가장 어여쁜 꽃을 좋아한다면, 답이 되려나. -헤에. 그럼 요즘엔 뭐가 좋은데? -튤립. 꽃말은, 사랑의 고백...일까. 루프물인데 한명이 다른 한명을 죽여야 하루가 돌아간다는 설정😬

89 이름없음 2019/01/27 21:27:24

>>88 루프물 좋아해😍 반복 바람 파란(색깔 - 파랑색)

90 이름없음 2019/01/27 23:51:12

반복되는 일상 속에 오늘은 조금 다른것이 있을까? 바람이 불어오는 하루의 색깔은 파랑, 오늘 하루종이 내기분은 파랑, 기분이 별로 안좋아. 오늘은 좀 예민해. 너는 모르겠지만. 내가 항상 너에게는 까다롭게 굴었잖아. 넌항상 나에게 잘 지내냐고 물어봐 줬지? 오늘 대답 해줄께 난 아니야 지금 보다 더 나아졌으면 해. 항상 조금은 호감? 좋아한다고 표현해야하느 잘 모르겠네. 사실 그마음보단 미안함이 더크지만. 넌 날 미워하겠지? 너에게만 까다롭게 굴었으니까. 어제보다 오늘이 더 야위어서 안쓰러워서 잘댛ㅐ줄까 했지만 그만뒀어. 난 너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면서, 까다롭게 굴었잖아. 넌 내가 미워 보이겠지. 우리가 처음 만날때 연극 준비를 하고있었잖아 그때는 참 친했는데 말이야 하늘을 칠하면서 서로 파란색이 묻어서 얼굴보고 한참동안 웃고 그일 뒤로 많은일이 있으면서 너의 마음도 파랗게 멍들어가고 그랬겠지. 너와 친해지고 우리는 그대로 썸을 탔지. 그게 잘못인걸까? 난 아직도 그대로 멈춰있지만 티안내려고 너에게 까다롭게 구는걸수도 있어. 넌 여자친구가 생기고 난 여자사람친구였고 그래서 심술이 난거 아닐까? 까다롭게 군건 미안해 날 미워해도되. 난 너와 더 멀어지고싶지 않아. 하지만 그냥 그대로 있는것도 나삐지 않은듯해. 난 오늘 영화 세트장에서 하늘을 칠하는데 니가 생각나서 한번 글을 남겨봐 니가 볼수있을까? 다음이 니가 칠하는 차례긴한대 보면 좋겠네 난 이만. 볼빨간 사춘기 - BLUE 듣고 쓴글

91 이름없음 2019/01/27 23:53:11

초콜릿 다리( 차들이 건너는거 ) 딸기

92 이름없음 2019/01/28 01:10:15

지척에 딸기 꽃이 피어있었는데, 그게 얼마나 예쁘던지. * 봄이면 어미 손을 잡고 산으로 놀러갔지. 가서는 풀도 따고 꿀도 먹고, 그러다 선잠에서 깬 개구리가 있으면 잡아다 어미한테 달려갔어. 개구리야 개구리! 하고. 그걸 고대로 주머니에 잘 숨겨놓고 있으면 이따 집에 가 아궁이 불에 구워먹을 수도 있었는데 말야. 개구리를 한 손에 꼭 움켜쥐고 어미 앞에서 손을 펼쳐보이면 어미는 고대로 내 손을 잡고 물가로 걸어갔어. 그리고선 손에 힘을 풀고 그 아래로 개구리가 떨어지게 했어. 엄마야? 하고 부르면, 엄마는 고대로 불쌍하잖아, 라고. 봄 풀을 다 딴 어미는 한 손에는 바구니를, 한 손에는 내 손을 꼭 쥔 채 산비탈을 따라 내려왔어. 해거미가 지는 도중이라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밟으며 마찬가지로 긴 그림자 꼬리를 단 돌을 툭툭 찼지. 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작은 철길과 큰 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나는 예닐곱살 무렵에 다리에서 큰 개한테 물릴 뻔 해서 다리를 무서워 했어. 처음에는 그 다리가 너무 싫어 그 방향으론 고개로 안 돌렸지. 근데 언제 엄마가 그러는 거야, 영아, 무서운 게 있으면 그 자리에서 잠깐 멈추고 눈을 감아봐. 그럼 엄마가 영이가 무서워하는 걸 다 없애줄게. 나는 엄마 말을 믿고 오른쪽에 엄마 손을 꼭 쥐고 속으로 십초를 셌어. 그리고 눈을 뜨니 정말 거짓말처럼 그 다리가 안 무서운 거야. 그래서 나는 꼭 그 다리 앞에서 잠깐 멈춰 눈을 감고 십초를 세고 움직였어. 십초로 무서운 게 가시지 않으면 이십초고 삼십 초고 계속 세면서 엄마가 그 무서운 걸 없애주길 기다렸어. 그래서 나는 꼭 그 다리 앞에서 십 촌가 이십 촌가를 세고서야 움직였는데, 엄마는 그게 귀찮지도 않은지 항상 불평도 않고 십 초든 이십 초든 삼십 초든 기다려줬어. 산에 갔다오면 꼭 고사리 밥을 해먹었지. 고사리가 없으면 그때그때 있는 나물들로 나물 밥을 지어 먹었어. 그날도 그랬어. 평소처럼 산에 올라가 엄마가 나물을 딸 동안 나는 나무 사이사이를 뒤적이며 벌레나 곤충이나 아니면 다른 소동물들을 찾았고, 해가 질 즈음에야 산에서 내려와 기도하듯 다리 앞에서 이십 초를 멈추고 집에 돌아와 나물밥을 지었어. 그 순간 쾅, 하는 소리가 들리고, 순이 아저씨가 지친 대문을 열고 들어왔어. 순이 아저씨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큰 슈퍼마켓을 하시는데, 나를 유독 예뻐해서 내가 그 앞을 지날 적마다 쪼꼬렛을 주셨지. 나는 반가운 마음에 순이 아저씨! 하고 불렀지만 순이 아저씨는 사색이 된 채 엄마를 찾았어. 영이 엄마! 영이 엄마! 하고 부르는 순이 아저씨는 태어난지 한달된 새끼를 뺏길 때의 맹구의 울음 소리를 닮아있었어. 영이 엄마, 지금 마을에 군인들이! 아저씨의 말에 엄마는 집 안으로 들어가 분홍색 보따리를 하나 들고 나왔어. 그러곤 내손을 잡고 어디론가 뛰어갔어. 순이 아저씨네 슈퍼를 지나, 얼마 전 또 새끼를 밴 맹구가 있는 파란 대문집을 지나, 떡 가게를 지나서. 숨이 턱끝까지 차 달리는 와중에 다른 사람들도 우리랑 같은 방향으로 뛰고 있단 걸 깨달았지. 엄마, 지금 우리 어디가? 엄마는 말 없이 뛰었어. 그러다 다리에 다다랐어. 나는 아직 개가 무서웠고, 자리에 멈춰섰지. 그런데 평소에는 십초건 이십초건 기다려줬던 엄마가 멈추지 않았어. 어, 안 되는데... 기다려야 하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춰섰어. 엄마도 멈춰 나를 돌아봤지. 엄마, 잠깐만. 영아, 우리 저기 산까지만 가자, 응? 나는 무서운 게 너무 싫었어. 그래서 멈춰서 눈을 꼭 감았지. 십 초만 세면 엄마가 무서운 걸 다 무찔러 줄 거야. 그리곤 당겨진 손, 고막을 꿰뚫는 소음, 영아-! 엄마의 비명, 번쩍이는 섬광, 아픔, 고통, 아픔, 아픔, 아픔. 으아악-! 영혼이 섞이듯이 혼란스럽게 들리는 다채로운 음색의 비명. 눈을 뜨고야 그게 다리가 무너진 거란 걸 알았지. 엄마? 나는 내 아래 누워있는 엄마를 흔들었어. 엄마. 엄마는 일어나지 않았어. 이상하다. 엄마는 내가 기침만 해도 일어났는데. 문득 엄마 머리에 엉켜붙은 붉은 피들이 보였어. 나는 덜컥 겁이 나 눈을 감고 삼십 초를 셌어. 눈을 떠도 당연하게 변한 건 없었지. 그래서 난 막연히 생각했어. 이건 무섭지 않은 거야. 난 엄마가 들고 있던 보자기를 들고 엄마를 부축했어. 축축 쳐지는 팔이 너무 무거워서 몇번이나 떨어뜨릴 뻔했어. 땀을 뻘뻘 흘려가며 겨우겨우 엄마랑 산의 초입까지 왔어. 그러다 나무뿌리에 걸렸는지 그만 철푸덕 넘어지고 말았지. 소리내어 엉엉 울고 싶은데 아까부터 들리는 고함소리가 무서워 그러지도 못했어. 나는 입을 꾸욱 막고 잠깐 쉬기 위해 엄마를 나무에 기대게 했어. 산은 나무 그늘이 많아 시원했어. 잠깐 눈을 감았다 떴는데 엄마가 쓰러져있었어. 나는 놀라 엄마를 일으켰어. 근데 엄마가 계속해서 쓰러졌어. 나는 울지 않으려 입술을 물고 엄마를 똑바로 세웠어. 세우는 내내 엄마의 몸이 차가웠어. 계속해서 바람이 불었어. 뭐가 다리를 툭툭 쳐서 봤는데 아직 설익은 딸기 꽃이었어. * 그러니까, 지척에 빨간 딸기 꽃이 피었는데, 그게, 그게, 참,

93 이름없음 2019/01/28 01:35:56

소낙비, 민들레, 차 (마시는거! 종류는 상관없어)

94 이름없음 2019/01/29 09:38:45

어느 여름날 , 나는 너를 생각한다. 갓 스물이 된 우리 둘. 너는 도시로 가버리고 나는 이 조그마한 시골에서 지내고 있지만 이곳도 꽤 살만하다. 네가 없는것 빼곤 그럭저럭이다. 나는 비를 꽤 좋아하는데, 이유는 네가 비의 마녀이기 때문이다. 어딜가든 비를 몰고다니는 너니까 어느새 비는 내 행운의 증표가되어버렸다. 네가 오지 않아 더 뜨거웠던 어느 여름날 오후, 소낙비가 내렸다. 그리고 운명처럼 너는 우리 찻집에 들어왔다. 너는 나를 모른다. 우리가 18살 같은반이 되었던것도, 내가 너를 그리는것도,너를 사랑하는것도. 너는 내 존재를 모른다. "민들레차 주세요." 그리운 목소리. "저기요...?" 아 널 바라보다 멍때렸다. "아 죄송합니다. 뭐라고 하셨죠? " 웃으며 말하는 너 " 민들레차..ㅎ" "네, 민들레차. 네?? 죄송하지만 여긴 민들레차가 없어요" 너의 향기가 나를 마비시킨다. "알아요.18살의 민들레를 가져다주던 네가 생각나서 온거니까." 그리고. 심장이 멎는다

95 이름없음 2019/01/29 15:43:12

병원, 피(혈액), 첫사랑

96 이름없음 2019/01/30 02:43:34

기다란 손가락이 둥글게 말리나 싶더니 다음 순간 꼿꼿하게 서면서 내 이마를 가격하고 지나갔다. 이런 것을 세간에서는 딱밤이라고들 부를 터였다. "아야." 화끈해진 이마를 만지작거리면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손등을 허리에 얹은 누나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가 차다는 표정이었다. "엄살쟁이 같으니. 내가 살다 살다 코피 좀 났다고 병원까지 쳐들어오는 애는 처음 본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법이죠." 말대꾸가 아니었다. 방실방실 웃으면서 대답했는데 설마 그래도 말대꾸로 들리지는 않았겠지. 좋단다, 한숨처럼 중얼거린 누나가 뒤를 돌아 뭔가 도구들이 잔뜩 담긴 카트를 뒤적거렸다. "코에 휴지 빼 봐." 시키는 대로 하자 콧속이 휑한 느낌이 들었다......싶더니만 다시 주륵,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누나가 혀를 끌끌 차면서 소독솜을 코에 넣어 줬다. "아 하고." "목은 안 아픈데요." "떽." 뭐라고 더 하는 대신 누나는 내 손을 끌어다가 뭔가를 쥐어줬다. 확인해보니 사탕이었다. 짙은 주황색 봉지, 오렌지맛. "이제 그거 다 먹으면 집에 가. 그때쯤이면 피도 멎어 있을 거야." "누나 가려구요?" "그럼 여기서 계속 너랑 놀고 있을까? 일해야지." 심드렁하게 말하고는 쓱 일어나 훌쩍 가 버리는 누나. 누나의 일해야 한다는 말 때문에 가지 말아달라고도 못하고, 멀거니 쳐다만 볼 수밖에 없는 나. 나는 가만히 고개를 떨궈 손에 쥐인 것들을 내려다봤다. 마르지 않은 피를 머금고 시뻘겋게 축축한 휴지 덩어리, 흔히 볼 수 있는 봉지 알사탕. 사탕은 먹는 대신 주머니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누나, 난 오렌지맛 사탕은 싫어요. 어디로 갔는지 더 이상 누나는 보이지 않았다. 피묻은 휴지를 들고 주먹을 쥔 나머지 손에 피가 잔뜩 말라붙었다.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화장실을 찾았다. "뭐야, 안 갔어?" 손을 씻고 나오자마자 누나랑 눈이 마주쳤다. 안 보이길래 간 줄 알았네. 덧붙이는 누나를 보며, 새삼스럽게도 나는, 별안간 코끝에 감도는 병원 냄새를 맡았다. 그래 맞아. 여기는 병원이야. 사람이 있었다 없어졌다 하는 일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곳이야. 내가 여기 온 게, 누나한테는 동생 친구가 귀찮게 구는 상황일 뿐이겠지. 내가 가 버려도 그냥 그러려니...... "이제 가려구요." 서글퍼진 나머지 어물어물 대답했다. 그러자 아까 갔던 것처럼 성큼, 이번에는 누나가 내게 다가왔다. 몸을 낮춰 나와 눈을 맞췄다. "앞으로 이런 걸로는 병원 오지 말기야, 알았지?" "네." "그래야지. 열두 살씩이나 먹었으면, 엄살 부릴 나이는 지났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병원 밖으로 나왔다. 병원에 있던 시간이래 봐야 불과 15분 남짓, 오후 두 시의 햇살은 아직 따사로웠다. 집에는 들어가기가 싫다. 내 발로 나왔지만 그래도 발길이 자꾸만 병원 앞을 맴돈다. 나는 누나가 좋다.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다. 나보다 열세 살이나 많은 누나가, 내 머리가 허리에 닿을 정도로 키가 훌쩍 큰 누나가, 일을 해서 돈을 버는 어른인 누나가 좋다. 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누나가, 그래도 너무너무 좋다. 하필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나라니. 하필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나라니. 하필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나, 라니. 이러면 첫사랑은 안 이루어진다는 통설에 한 가지 예시를 더해주게 될 수밖에 없잖아. 때아닌 아픔에 낑낑 앓는 나를 사이에 두고 병원은 굳건했으며 햇살은 여전히 따사롭기만 했다.

97 이름없음 2019/01/30 03:23:30

>>54, >>66 너레더 글 찰지게 잘 쓴다. 문체가 내 취향이야. 비, ufo, 돌담

98 이름없음 2019/01/30 17:45:57

비가 투둑투둑 기분 좋게내리던 날 처음 만난 너와에 인연은 운명이라 생각했다. 비,청춘,처마밑 우리 둘다 우산이 없었고 비를 피하려 뛰어든곳도 같았고 심지어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친척 언니가 그랬다. 연애는 공통점이 있는사람끼리 만나야지 오래지속된다고 나는 금사빠처럼 그를 쫓아다녔다. 겨우 받아낸 고백이였고 누구도 부럽지 않은 사랑을 이어갔다. "돌담길 가서 산책이나할까?" 똑같은 비오는날 우산은 두 개인데 우리는 하나만 나눠쓰며 돌담길을 걸었다. 다른연인과 다름 없었지만 비오는 날에 추억 때문일까 묘하게 더 달달해보이는 우리 커플에 몇몇 솔로들은 우리에게 부러움이 눈길를 주었지만 우리는 아량곳하지 않고 걸으며 분위기 좋은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한 잔씩 시키고서는 그가 잠시 의자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갔다 오겠다고 하였다. 그의 주머니에서 유독 네모났게 튀어나온 물체에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저게 반지면 얼마나 좋은까하며 방금 나온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살짝 마시고서는 망상에서 나왔다. 자리로 돌아온 그는 어딘가 숨이 차 보였고 뒤에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그거 뭐야? 손에서 나온 꽃다발 내가 좋아하는 안개꽃 받고서는 고맙고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글썽글썽하였다. 네모난 박스를 나에게 주었고 네모난 박스를 열자 작은 ufo에 우리 둘에 이니셜이 적혀있었고 열쇠고리여서 살짝 실망을 보일까 내 눈치를 보는 그에 강아지같은 모습에 일부러 더 실망한척 했더니 그가 내 옆에 서더니 -너 반지나 그런거 싫어한다며, 마침 너가 외계인 좋아한다길래 일단 그거 받고 이건 서비스 촉 나의 첫키스는 그렇게 그 남자에게 뺏겼다. 기분좋은 달콤함 그가 바르던 내가준 립밤의 맛과 나의 립밤에 맛이 섞였고 달달함이 폭파되었다.

99 이름없음 2019/01/30 17:46:59

키스 안해봐서 느낌을 몰라 미안해...

100 이름없음 2019/01/30 18:15:19

삭제하고 싶은데 글 순서깨문에 삭제하는 법을 모르겠다 미안 이러면 순서 되는거지? 미안해ㅠㅠ

101 이름없음 2019/01/30 18:29:19

강압, 축복, 도둑질

102 이름없음 2019/01/30 18:34:34

ㄹㅇㅂㅈ

103 이름없음 2019/01/30 19:07:45

인사 미소 이병

104 이름없음 2019/01/31 01:50:45

"저 다녀올게요." 막 이병 꼬리표를 뗀 것 같은 사내가 그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에게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또 팔다리에 멍들어 오지 말고, 이제는 살도 좀 찌우고 그래라, 응?" "아이 참, 우리 엄마는 걱정도 많네. 훈련해야 되니 멍드는 건 어쩔 수 없다구요." "그래도......" "이러다가 아들내미 늦겠어. 나 들어갈 테니까 엄마도 바로 집 가요, 또 부대만 한참 바라보다 가지 말고." 사내는 흙먼지 날리는 부대에 들어가면서도 제 어머니를 생각해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그런 사내의 뛰어들어가는 뒷모습을 하염없이 쓰담아주고 싶지만, 더 이상 잡으면 안 되는 것을 알기에 애꿏은 주먹만 꽈악 마는 사내의 어머니였다.

105 이름없음 2019/01/31 05:06:22

여름 슬리퍼 술

106 이름없음 2019/01/31 18:33:47

아무렇게나 내팽게쳐져 나뒹구는 술병들 사이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슬리퍼 한짝. 마구 흐트러진 침대 위에서 이불을 끌어 안으며 떨고있는 남자. 어젯밤에 일어난 일은 그저 한여름 밤의 꿈이었을 뿐.

107 이름없음 2019/01/31 18:38:59

괴담 탈출 검은 방

108 이름없음 2019/02/01 13:51:57

시꺼먼 내부를 내보인 오싹하리만큼 고요한 방이 눈 앞에 있었다. 이질적일 정도로 그 방은 그저 검기만 했다. 왜 내가 여기에 있지? 어젯밤에 난 무엇을 했지? 여긴 어디지? 조각조각 깨어진 기억을 기를 쓰며 그러모았다. 늦가을, 고등학교, 동창회, 술자리, 어쩌다 튀어나온 괴담 이야기들. 장면의 편린들이 후두둑 스쳐 지나갔다. 「 검은 방, 이라는 괴담 들어봤냐? 자기도 모르는 새 검은 방 앞에서 눈을 떠서는 그 기괴한 공간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뭐 그런 얘기. 」 「 싸구려 공포 영화도 아니고…유치하다, 임마! 」 「 아, 들어봤어, 들어봤어. 시간 내에 탈출 못하면 목이 댕강. 이었던가?」 「 참 나, 목이 댕강? 한층 더 B급스러워졌네. 」 「 무섭지도 않다, 누구 다른 얘기 아는 사람? 」 메마른 웃음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왔다. 천천히 손을 들어 뺨을 후려쳤다. 아팠다. 우습지도 않은 괴담이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 현실이 되어 있었다.

109 이름없음 2019/02/01 13:54:16

샴푸, 편지, 졸업

110 이름없음 2019/02/03 03:19:29

쓰던 샴푸가 다 떨어졌다. 이 늦은 시간에 샴푸 하나 사러 멀리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일 사 온다고 해도 당장 오늘은 어쩌지? ...급한 대로 여행용 세면도구 세트에 들어 있던 것을 사용했다. 평소 사용하던 것과는 다른 것이라 그런지 긴 머리가 머금은 향기가 낯설었다. 그나저나, 어디 여행 갈 여유도 되지 않는 내가 왜 이런 걸 샀더라. ...기억났다. 2년 하고도 반 전에,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아이들이 다같이 장소를 정하고 여행 일정을 짜며 한 푼 두 푼 돈을 모으던, 졸업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던 그때였을 것이다. 몇 안 되는, 나의 행복한 기억. ...결국 가지 못했지만. 아직도 나는 기억한다. 내겐 너무도 찬란했던, 밝은 웃음을 지어주던 너를. 함께 떠들고 웃으면서도 나는, 혹여 얼굴이 붉어지지는 않았을까, 고이 품은 이 마음을 들킬까 두려워했었더랜다. 내가 너에게 연심을 품었다는 것을 알면 날 경멸할까봐. 그 작은 일상마저 누릴 수 없게 될까봐. 우리 학교는 여고였다. 그 날은 졸업여행 며칠 전이었다. 코앞으로 다가온 여행에 들뜬 아이들이 가득하던 하굣길에서, 너는 나에게 편지를 내밀며 말했다. 졸업식이 지나면 열어보라고. 그 전까지는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당부와, 그러지 않았다간 미워할 거라는 장난스러운 농담을 함께 건네며.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 편지를 서랍에 고이 넣었다. 편지를 열어 보는 일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내겐 절대적이던 너의 말을 거스를 수는 없었으니까. 행복했다. 그 기쁨에 감싸여 깊은 잠에 들었다. 그날은 행복한 꿈을 꾸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를 맞이한 것은 나를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소식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네가 그럴 리가 없었다. 모두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야만 했다. 졸업여행은 취소되었다. 졸업여행 따위를 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본래라면 졸업여행을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어야 할 그 날, 우리 반의 모두는 너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세상이 나를 버린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 영정 앞에 앉아 있다 혼절했던 나는, 며칠이 지나고서야 간신히 깨어났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몸뚱아리만이 기계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자연히 편지는 잊혀졌다. 시간이 나를 비껴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렇게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추억을 회상하며, 애써 웃었다. 너는 내가 너를 생각하며 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겠지. 웃으라고 외치는 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래서 웃었다. 슬픔을 모두 지워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웃었다. 서랍에 고이 모셔두었던 너의 편지를 떠올렸다. 내게 남은 너의 마지막 흔적. 졸업식은 이미 지났으니, 이젠 마음껏 열어볼 수 있다. 한참을 망설였다. 그냥 다시, 서랍에 고이 넣어둘까. 그 속의 내용을 영원히 비밀에 부치는 게 옳은 일이 아닐까.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편지를 열어보겠다는 것도, 너와의 약속이었다. ... ......나는, 왜 이제서야......

111 이름없음 2019/02/03 14:24:05

학교 눈 피

112 이름없음 2019/02/03 20:08:28

우리 학교는 산 위에 자리잡은 곳이었다. 여름에는 날벌레가 날아다니고 가끔 야생동물까지도 볼 수 있으며, 겨울에는 산이랍시고 눈이 펑펑 내려 무릎까지는 평이하게 쌓이는 그런 곳. 학교로 올라오려면 차를 타고 다니거나 아니면 2시간 이상씩 걸어다녀야해서 학교 내에 자체적인 기숙사까지 있는 곳이었다. 후우, 한겨울에 운동부라 대회를 나가야한다는 이유로 방학임에도 기숙사 생활을 하던 비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은 겨울의 차가운 바람을 맞아 뿌연 입김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매점이나 가볼까. 방학에도 남아있는 이들이 많아서 그런지 매점은 방학에도 닫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쭉 기숙사에서 지내는데 매점까지 없으면 아마 학교에 질려 진작에 탈주라도 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비나는 시린 손을 마주 비비며 몸을 움츠리곤 잰걸음으로 달려가듯 걸었다. 기숙사에서 매점까지 가는데에는 교사를 빙 돌아가야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 후에 기다리고 있을 맛있는 음식들을 생각하면 별로 나쁘지 않은 길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말이다. 비나는 걸음을 멈췄다. 두걸음 앞, 어제 눈이 내리고 아무도 매점에 가지 않았기에 새하얀 눈밭이 펼쳐져 있을 길 위에 비현실적인 붉음이 흩뿌려져 있었고, 그 위에는 제 소중한 친구가 미동도 없이 누워있었다. 추운걸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친구가. 아무리 둔하기로 학교에서 유명한 비나라도 그 모습을 보면 눈 위에 뿌려진 붉음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깨닫고만다. 저것은 피였다. 대회가 얼마 남지않은 겨울 방학, 비나는 학교에서 피로 물든 친구를 발견하고 말았다. 학교는 그날, 어제 내린 폭설로 고립된 상태였다.

113 이름없음 2019/02/03 20:38:08

나비 구름 새벽

114 이름없음 2019/02/03 22:08:54

나는 카디건을 여몄다. 4월, 봄이라지만 새벽의 공기는 제법 쌀쌀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나 보다. 어느새 아줌마, 아저씨가 되어버린 추억 속의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혼자 구름조차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자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뒤돌아 보니 학창 시절을 줄곧 함께 했던 친구 박신혜였다. "얘, 미숙아! 혼자 서서 뭘 하고 있니?" "좀 추워서. 옷 좀 여미고 있었어." 장난스레 올라간 입꼬리와 살짝 찡그린 눈이 어릴 때 그대로였다. 신혜는 자연스럽게 내게 팔짱을 끼더니 걷기 시작했다. 힐끗 곁눈질로 바라본 그녀는 세월의 탓인지 나이 들어 있었지만... 그 시절, 임미숙의 멈춰버린 시간 속 그대로였다. 여전히 밝고, 쾌활하며 주변 사람의 기분을 빠르게 파악했다. "하아... 어디로 가는데?" "응? 그런 건 비밀로 해야 재밌지!" 발랄한 소녀처럼 대꾸하더니 발걸음이 빨리했다. 역시 내 기분이 썩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채고 달래주려는 심산인 모양이었다. 작게 웃은 나도 그녀를 따라 뛰듯이 걸었다. 새벽녘의 바람은 더 이상 춥다는 기분을 들게 하지 못했다. "미숙아. 그 열쇠고리 말인데..." 순간 둘의 발걸음이 멈췄다. 아니, 내가 멈췄다. 신혜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내리니 나비 모양의 열쇠고리가 보였다. 열쇠고리지만 가방 한 귀퉁이에 매달려 있었다. 노란색의 그것은 벌써 20년 넘게 내 곁에 있었다. "미안.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건 아니었어." "알아." 내 퉁명스러운 대답은 신혜는 슬쩍 팔짱을 풀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쩐지 그녀가 가려는 곳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친구가 묻혀 있는 곳 하지만 내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 "신혜야." "알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거." 뒤돌아 본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애당초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임미숙은 최다희의 묘에 갔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무서우니까. 다희가 죽었단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피한다고 사라지는 현실이 아닌데, 도망쳐 버렸다. 박신혜는 말하고 싶은 거다. 지금이라도 잔인한 현실을 똑바로 마주 보라고. 더 이상 도망쳐서 다희의 안식을 방해하지 말라고. 감았다 뜬 눈은 희뿌옇게 변해 신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가 나를 안아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 상냥한 친구는 겁쟁이의 손을 잡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 정도 거리면 택시를 타는 게 나았을 텐데. 그러지 않은 게 나에 대한 배려라는 걸 때 달으니 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너는 쓸데없이 눈물이 많다니까." 놀리듯 말한 그녀가 발걸음을 멈추고 손을 놓았다. 수많은 비석들이 서있었다.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어째서 네가 이곳에 묻혀야만 했는가? 눈을 감고 뒤돌아 뛰쳐나가고 싶다. 하지만 여기까지 나를 데려와준 친구와 오랜 시간 나를 기다렸을 친구를 생각하니 그럴 수 없었다. 이제는 도망치면 안 됐다. "일주일 전쯤에 영희랑 현주가 다녀갔어." 겁쟁이는 나뿐인가 보네. "이거 돌려줄게." 노란색 나비를 꽃의 옆에 놓아주니 제법 화사해 보였다. 너는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는 싫어했지. "이만 가자." "벌써?" "응. 다희가 화난 것 같으니까 다음엔 맛있는 거라도 들고 와야겠어." 신혜가 달려들듯 뛰어와 팔짱을 꼈다. 묘를 뒤로하고 올려다 본 하늘은 아름다웠다. 새벽과 아침의 빛깔에 물든 구름 사이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115 이름없음 2019/02/03 22:11:18

이별 꿈 흔적

116 이름없음 2019/02/03 22:52:47

어제 너와 나는 이별했다. 물론 내 고의는 아니였다.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크다. 마지막으로 네 얼굴, 목소리, 온기 아니 숨결이라도 느낄수있었으면 좋으련만 내 뺨은 너의 손길대신 뜨거운 액체로 물들어가는게 느껴졌다. 그렇다. 어제 새벽3시36분. 나는 사망했다. 너는 곤히 자고있을 그 새벽, 너와 함께 살아갈 방 한켠을 구하러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던날. 이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오면 넌 나의 흔적을 찾겠지. 사랑해

117 이름없음 2019/02/03 23:08:54

벚꽃 사탕 고양이

118 이름없음 2019/02/04 02:38:38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오른다. 그 옅은 색으로 어떻게 하늘마저 물들일 수 있는지, 꽃과 구름의 경계를 가늠하는 건 포기해야 할 듯 싶었다. 바람이 스치자 나무는 기다렸다는 듯이 안겨들어 몸을 떨었다. 흔들리는 가지는 천천히 꽃잎을 흘렸다. 가득 차오른 눈물에 잠긴 흰 털이 언뜻거린다. 거기서 뭐 해. 고양이가 고개를 돌렸다. 떨어지는 꽃잎을 잡고 놀았는지, 새하얀 눈밭에 군데군데 분홍빛이 스친다. 손길을 마다하지 않는 털뭉치를 쓸어 꽃잎을 털었다. 발톱에 찢기고 흙에 밟혀 더러워진 꽃잎이, 저 하늘에 스며든 순수함과 같다는 생각조차 조심스럽다. 입 속의 둔한 단맛을 와작 깨물었다. 사탕이 깨지는 소리에 고양이가 꼬리를 휘저었다. 가자. 벚꽃에 등을 돌리고 조심히 마루 위로 올라섰다. 고양이는 여전히 나를 따라온다.

119 이름없음 2019/02/04 04:08:50

도주 가면 상처

120 이름없음 2019/02/05 15:47:07

"왜 도주한거지?"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차가우면서도 습한 공기가 내 뺨을 스쳤다. "짐은 너를 박대한적이 없다. 무엇이 불만이었던 것이냐?" 그가 온유하게 나를 본다. "맞아요, 박대한적도 불만도 없어요." 내가 그를 쏘아보며 앙칼지게 말했다. "호란, 너는 이런 얘가 아니었잖니, 짐이 다 들어주마." "황상께서 저에대해서 무얼아신다고 이런 얘가 아니었다고 라고 말하시는지요? 첩신은 이런 얘였습니다." 그의 미간이 찌뿌려지더니 그는 옆의 모란봉수백자를 들고는 내앞에 내리쳤다. "고얀!" ".." 그의 황색 도포가 내눈을 어른거렸다. "너는 나를 사랑했지않느냐!" 그가 윽박질렀다. "하? 사랑이요? 그 사랑을 위해서 날밤새고는 하찮은 적선같은 잠자리가 사랑인가요? 구걸하는 사랑이 사랑이던가요? 그런걸 사랑이라고 배웠다면.. 참 가엾어라. ..이 자오궁중에 황상에게 가면을 쓰지않고 다가온 사람이 있기나할까요? 벗고 만나도 시간이 흐르면 쓰게되죠. 당신 기억속에서의 그해의 호란은 당신이 준 상처에 이미 죽었어요. 평생 그 시절의 호란만 기억하세요!" 나는 그의 허리춤에 있는 칼을 뽑아 순간적으로 복부에 찔렀고 일순간의 신음과 아리는 고통은 내 흰백색의 앏은 비단은 붉은 비단이 되어버렸는데 그 붉음이 띄엄거려서 마치 눈속의 크고 붉은 홍모란과 홍매화같았다.

121 이름없음 2019/02/05 15:50:04

밤, 해, 물방울

122 이름없음 2019/02/05 19:08:53

아무 의미 없는 하루가 마무리 되고, 해가 지고 또 다시 밤이 찾아왔다.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 나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았고, 도움도 되지 않는 희미한 빛 한줄기만을 바라보는 일상이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였지만 하루하루가 더욱이 힘든 느낌이다. 나는 항상 자기 전에 같은 생각을 한다. 내가 왜 이런 하루하루들을 반복해야하며 이렇게 아파야하고 쓸쓸해야하는지.. 내가 무엇인가 잘못한게 있나 자기성찰을 하며 잠드는 하루다. 햇빛으로 어둠이 차츰 물러갈 때 쯤에 눈을 뜨고 일어나면 나는 또 생각한다 창문을 타고 내려오는 저 많은 물방울이 얼룩진 창문을 깨끗하게 해주는 것처럼 저 물방울이 내 어둠도 차츰차츰 지워주면 좋을 것 같다고 빛 한줄기를 어둠 한줄기로 바꿔줬으면 좋겠다고

123 이름없음 2019/02/05 21:14:44

버스, 꽃다발, 안경

124 이름없음 2019/02/06 01:50:32

어린 시절 나는 마을 버스 기사 일을 하시던 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매일 아침 등교할 때면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이 버스에 올라 내 아버지를 보고 킥킥거리고 비웃곤 했다. 나는 너무나 화가 났다. 분통이 터졌다. 하지만 나는 비열하게도 그 분노의 화살을 엉뚱하게 아버지에게 돌리고 말았다.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집을 뛰쳐나간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왜 버스 기사 따위 일이나 해서 나를 학교에서 창피하게 만드냐고, 마구 성을 내고 울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쩔쩔매시며 도리어 나에게 사과하셨다. 미안하다, 아빠가 다 미안해. 아버지는 항상 낡은 안경에 퀴퀴한 냄새가 나는 작업복을 입으셨다. 철부지였던 나는 아버지의 그 초라한 모습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비뚤어진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갔다. 나는 얼마 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집을 나와 멋대로 다른 지역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죄송한 마음도 조금 있었지만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고 대학 생활에 집중했다. 4년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그리고 대학 졸업이 다가왔다. 나는 졸업식을 마치고 동기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 굉장히 익숙한 사람이 걸어왔다. 머리칼이 조금 희끗해지고 얼굴의 주름이 더 패였다는 점을 제외하면, 예전의 아버지와 변함이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낡은 안경, 퀴퀴한 옷, 예전과 조금도 바뀌시지 않은 그 모습으로 손에 꽃다발을 들고 계셨다. 그것도 내게 활짝 웃음을 지으시며. 순간 내 속의 무언가가 뜯겨져 나갔다. 나는 아버지에게 달려가 눈물을 쏟으며 끊임없이 죄송하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당황하신 것 같았다. 오히려 나를 꼭 안아주셨다. 옆에 있던 동기가 이 분은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눈물범벅이 된 채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우리, 아버지야."

125 이름없음 2019/02/06 14:17:26

별, 희망, 어둠

126 이름없음 2019/02/06 18:49:49

이 마을에는 그런 전설이 있었다. '별을 직접 보는 사람은 누구든 불행해진다.' 때문에 마을의 사람들은 실수로라도 별을 보지 않기 위해 땅거미 질 무렵이 되면 하나둘 집으로 들어가 문을 단단히 걸어잠궜다. 이윽고 세상에 어둠이 커튼처럼 얇게 내려앉으면 그 마을에는 적막과 어둠만이 새벽 동 트기 전까지 함께 마을을 지켰다. 동이 트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그제서야 하나둘 잠에서 깨어나 제 할 일을 하는 식이었다. 마을에서 별이란 쓸모없는 주제에 너무나도 위험하여 혹 보게 된다면 눈이 멀어버릴지 모른다는 유언비어까지 나돌았는데 정작 그런 소문을 퍼뜨리는 인간들 또한 별을 직접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 신빙성 있는 소문은 아니었지만 심심풀이로 잠깐 소비할 소문 정도는 되었다. 아주 먼 옛날, 대체 어떤 불행을 당했을 지 모르는 우리의 선조들이 그려둔 그림들만으로 우리는 별의 생김새와 특성을 짐작해야 했다. 그 그림들에 담긴 별은 별이 저주와 동의어가 아닌 곳에서는 어떨지 모르나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저 하늘이 푸르고 흰 불꽃에 잠식되어가는 것처럼 보였고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이 혹 땅으로 떨어진다면 온 마을이 불타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 떠들기도 했다. 간혹 호기심 많은 꼬마를 둔 집은 그 아이가 저녁에 몰래 빠져나가 별을 보지는 않는지 철저하게 감시해야 했다. 비교적 별의 저주에 대해 느슨한 집에서는 가끔씩 그런 꼬마들을 단속하지 않고 그냥 두기도 하였는데, 이제와서는 그도 다 옛말. 먼 옛날에 호기심으로 부모님 몰래 별을 보러 집 밖으로 나간 꼬마아이가 다음날 마을에서 영영 자취를 감춘 일로 사람들, 특히나 부모님들의 걱정은 극대화되어 그 날 이후 아이들은 저녁은 커녕 해질녘에조차 집 밖으로의 외출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그 날에 그가 본, 어둠으로 물든 하늘을 배경삼아 꽃인마냥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별들은 저주보다는 희망의 동의어와 훨씬 어울렸다. 그 아름다운 밤하늘을 본 순간 그의 폐는 마치 자신이 받아들인 것이 산소가 아니라 별들의 파편이기라도 한 양 한 점의 숨도 새어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숨이 막혀오는 감각, 심장이 빠르게 뛰어 가슴께에서 무언가 벅차올라 입 밖으로 터져나올 것만 같은, 흔히들 감동이라 표현하는 감정. 만감이 교차하는 그 감각들을 추스른 그가 가장 처음 떠올린 것은 이 마을에 머물러서는 두 번 다시 이 밤하늘을 볼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 언질도 없이 그 날 마을 밖으로 빠져나왔고, 사람들의 불안감이 고조되어 아이들을 반드시 해질녘 무렵부터 집으로 돌아오도록 했던 시기도 이 무렵이었다. 이후 마을을 빠져나간 그가 어찌 되었는지는 누구도 알 지 못했으나, 그 당시 마을에 있던 또래의 아이들이 지금은 백발 성성한 노인이 되어 하나둘씩 영원한 어둠 속에 빠지는 것으로 보아 그 또한 그리 되었으리라는 추측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그에게 희망이 된 눈부신 별들 아래에서 잠들었는지, 혹은 마을을 나가고 이내 별에 흥미를 잃어 눈부신 태양이 작열하는 곳에서 숨을 거두었는지, 그도 아니면 그저 정처없이 떠돌다 해도 별도 달도 없는, 마치 그가 떠나온 마을을 닮은 곳에서 눈을 감았는지, 아니면 만에 하나의 확률로 그가 잠든 곳이 이 마을은 아니었는지, 그것을 알 방법은 전혀 없다.

127 이름없음 2019/02/06 18:51:43

>>124 찡하다... 겨울 밤 커피

128 이름없음 2019/02/07 17:53:10

진한 블랙커피가 하얀 머그컵 속에 떨어져 차올라간다. 남자는 확하고 올라오는 진한 향에도 감흥 없다는 듯이 무표정으로 컵을 집어들었다. 커피만큼이나 깊게 눈가에 자리 잡은 다크써클은 오늘 이 컵에 담겨진 커피가 지금 이 잔 하나만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눈이 내리고 있는 밤의 거리와는 상반적으로 따뜻한 방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이 무럭무럭 나고있는 커피를 지체없이 입으로 가져가 한모금을 입에 머금은 남자는 조금 뜨겁다는 듯이 얼굴을 찌뿌렸지만 이내 입안에 든 커피를 삼키고 의자에 앉아 펜을 집어들었다. 책상위는 찢겨지고 구겨진 종이, 펜, 마구잡이로 놓여있는 책들 등의 온갖 잡동사니로 인해 엉망이였지만 남자는 그닥, 아니 전혀 신경쓰지 않는듯 했다. 그의 필체는 유려하고도 정갈하다며 칭송받았지만 그의 방이 그것과는 달리 엉망진창인 것을 아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그밖에 없었다. 미동도 없는 몸과는 달리 빠르게 움직이는 펜은 벌써 몇문단째 글자를 써내려갔다. 책상위 구겨진 종이 더미속에는 어느 잡지의 한 페이지가 있었다. 역시나 구겨지고 찢겨진채로. 잡지의 사진속에 남자는 말했다. "글을 쓰는 이유요? 별다른 이유는 없어요. 제가 글쓰는걸 좋아하니까요." 거짓말이었다. 그는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정확히 말하자면 그 말의 반은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있다. 그가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던건 그가 아니였다. 어렸을때부터 그 아이는 남자를 잘 따랐다. 남자의 글을 볼때가 아이의 표정이 가장 밝아질때였다. 처음에는 달리 할것도 없어 시작한 글쓰기지만 그런 그 애를 보면서 아직 어렸던 그도 즐겁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정말로 그 아이는 남자를 잘 따랐다. 어느 겨울, 그 이상의 학대를 참지못한 그가 결국 고아원을 뛰쳐나갔을때 그를 따라나왔을 정도로. 처음 몇년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고아원을 나온것은 후회하지 않았지만 이러다 죽겠다 싶을정도로 바깥사회는 가혹했다. 공장 잡일, 신문 배달, 굴뚝 청소...안해본 일이 더 적을 정도로 여러 곳을 전전하며 일하다가 그의 인생은 크게 바뀌게 된다. 아이의 제안으로 틈틈히 쓴 글을 별 생각 없이 어느 출판사 공모전에 냈고, 결과는 대성공이였다. 대상, 그러니까 일등상을 받아내버린 것이다. 그뒤로는 모든 일이 물 흐르듯 일사천리로 일어났다. 대상을 인연으로 출판사와 계약을 해 책을 냈고, 책은 금세 유명세를 얻어 남자까지 유명세에 오르게 했다. 다음 책도, 그다음 책도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그의 이름은 어느새 꽤나 유명한 것이 되었다. '거리를 전전하던 굴뚝 청소부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라는 그의 타이틀은 매스컴의 흥미를 끌기에 더할나위 없었고 그의 이름은 전국을 오르내리게 된다. 남자는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아이가 없었다면 자신은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라고. 분명 어딘가의 공장쯤 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라며 드문 웃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이가 없어진 후에도 그건 변하지 않았다. 사실 변한건 별로 없다. '결핵' 이라더랬다. 안 그래도 날때부터 약했던 몸은 학대를 받아 더 쇠약해져갔고 거리에서 떠돌때에는 위험수준까지 가있었을거라고 의사는 말했다. 남자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눈치채지 못했다. 병원을 몇번 보낸적은 있지만 몸은 건강하다며 웃으며 돌아왔다. 같이 갔어야 했다. 알아채야했다. 온몸을 끈적하게 내리누르는 검고 깊은 후회는 아직까지 그의 곁에 머물고 있는 모양이였다. 그아이와 살던 작은 빌라 한켠에 아직까지 살고 있는것을 보면. 그는 지금도 글을 쓴다. 이유는 그도 잘 모른다. 아이가 좋아했던 자신의 글을 놓을 수 없는건지,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인건지, 아니면 전혀 다른 이유가 있는건지. 아까 말했던대로 남자에게 아이의 부재가 준 변화는 그리 많지 않다. 다만 마감이 가까운 밤, 철야로 작업을 할때마다 아이가 타주던 커피는, 그 맛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이제는 손수 타마시고 있는 커피는 아무리 해도 그때 그맛이 나지를 않는다. 시나몬, 초콜릿, 크림 같은 재료를 그때그때 바꿔가며 만들어 보지만 그맛에는 가까워지질 않았다. 혹시 심경의 변화 때문인걸까? 아니면 힘겨웠던 날의 잔재된 기억을 흔히 말하는 '추억 필터'같은 것이 바꿔놓은걸까? 아이에게 물어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남자는 이제 반쯤 포기하고 그냥저냥의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쓴다. 김이 무럭무럭 나던 하얀 머그컵은 어느샌가 차갑게 식었다. 안에 든 블랙커피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반이 넘게 남아있는 것을 보면, 남자의 커피는 오늘도 남자를 만족시키지는 못한 모양이다. 쉼 없이 펜을 움직이던 남자의 손이 드디어 글자를 만들어 내는것을 끝마쳤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의 시선이 하얀 머그컵에가 멈춘다. 얕은 한숨을 쉰 그는 피곤한 듯이 눈을 감았다. 이미 식어버린 커피와는 달리 거리에는 아직도 흰눈이 소복히 내리고 있었다.

129 이름없음 2019/02/07 20:12:06

유리 물 지구

130 이름없음 2019/02/08 00:24:48

" 우와...! " 지구는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유리구슬같은 놀란 아이의 눈동자에 또한 유리세공품같은 지구가 비쳤다. 푸른 물과 또 푸른 나무. 갈색 대지로 가득 차서 터질 것만 같은 부피. 흰 구름이 난폭하게 주변을 휘저으면서도 섭리에 따라 나아간다. 아이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곳에 여러 번 온 나조차도 경이롭다 생각이 드는데. " 너는 항상 이런 데 사는 거야? 좋겠다! " " 좋은 것만은 아니야. " 이 아이는 뭔가 특별했다. 마치 유리같은 아이였다. 매끄러운 유리병 안에 담긴 물보다 더욱 투명한 색. 그러면서도 가득 차 있다. 방금 본 풍경만큼 투명하게 아름답고 경이롭고 사랑스럽다. 지금껏 이 곳에 온 수많은 사람들한테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빛깔이다. 아이가 상상의 수면으로 떠오를 때까지 나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 했다.

131 이름없음 2019/02/08 00:27:13

피 고통 신

132 이름없음 2019/02/08 01:44:55

그녀가 웃는 그 모습을 볼때마다 나의 삶은 점점 야위어갔다. 이제 나에게 남은 시간은 단 한달. 그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마냥 그녀를 웃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한달 뒤 슬퍼할 모습을 생각하면 죽음따위 생각치도 않았던 그 옛날로 거슬러 가고 싶다. 결국 난, 죽는 날까지 그녀에게 말 한마디 못한 채 그녀를 놓아줄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죽는다는 사실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었으니까.

133 이름없음 2019/02/08 11:03:38

>>132 ....잉?

134 이름없음 2019/02/08 18:56:43

다시다시, 아씨, 한복 ,벚꽃

135 이름없음 2019/02/09 18:32:10

한복을 입은 아씨의 미모는 벚꽃을 보러 모여든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웠다. 심지어 벚꽃보다도 아름다워 누군가는 그녀를 보고 반드시 반했음에 틀림없으리라. 하지만 그 여인 오래 전부터 괴고 있었던 사내는 그녀를 멀리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음이라, 그 사내의 마음은 애가 타고 시간이 더해질 수록 간절해졌다. 한 번만, 한 번만 여인과 말을 나눠보고 싶었지만 그 용기가 없어 지켜만 보았음인 사내였다.

136 이름없음 2019/02/09 20:04:54

앗 홀짝 바뀌어버렸다ㅇ0ㅇ!! 그래서 내가 다시 돌려놨어 잘했지

137 이름없음 2019/02/09 20:07:01

이사, 사진, 눈(snow)

138 이름없음 2019/02/10 02:28:14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밤 사이에 온 동네가 하얀 눈으로 덮여있었다. 눈이 오면 항상 옛날 생각이 나고는 한다. '내가 옛날 앨범을 어디에 두었더라.' 다락방을 뒤져보니 눈이 쌓인것처럼 먼지가 쌓여있는 앨범을 찾을 수 있었다. 밖이 내다 보이는 창가에 앉아 앨범을 한장한장 넘겨 보다가 한장의 사진에 시선이 멈췄다. 어릴적 살던 그 동네를 떠나오기 전, 마지막 날 찍은 사진 한장. 정든 동네를 떠나 이사를 하는 날, 그날에도 함박눈이 내렸다. 동네 친구들과 떨어지기 싫어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사진 속 어린 나의 볼에는 눈물자국이 선명하다. 어릴적 친구들은 잘살고 있을까. 가끔 연락을 주고받고는 있지만, 정작 만난건 까마득하다. 오늘따라 그 친구들이 더 보고싶다. / / / 필력 진짜.....

139 이름없음 2019/02/10 02:52:10

총 바람 꽃

140 이름없음 2019/02/10 23:20:21

들판위에서 꽃을 꺾고는 널 바라보았다 어쩜, 무뚝뚝한 너도 꽃과 함께 가만 있으니 참 예쁘구나 한 번쯤은 네가 해사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싶었는데. 쓰게 웃으며 꺾은 꽃을 한아름 들고는 네게로 걸어갔다 바람이 조금 찼다 아 이런, 바람까지 차다니 조금 비참할 수도 있겠다 네 곁으로 가 앉으니 네가 조금은 놀란건지 날 쳐다보았다 그런 너를 보고 난 또 싱긋 웃겠지. 실실웃는 내 모습이 보기 싫었나봐 조금 인상을 찌푸리곤 넌 가만 있다가 이내 주머니에서 한 자루, 회전식 연발 권총을 꺼냈지 " 할까? " - ,,, 응 총의 많은 약실에 하나의 탄알을 넣으려 네가 작은 성냥갑에서 탄알을 꺼내었다 긴장되는지 손끝을 덜덜 떠는 네 모습이 퍽 안쓰러워서 그냥 내가 하겠다고 반 강제로 총을 네게서 뺏어와 내가 넣었지만. 그리고 난 이제 탄창을 돌렸어. 자, 이로서 총알의 위치는 알 수 없게 되었어. " 네가 먼저할래? " - ,,, 답이 없이 내 물음만 허공에 떠다녀서 좀 무안했다. 하여간, 쫄보. 쓸데없이 겁은 많아서. 내가 겁이 없는건 아니지만, 난 너보단 용감하다고는 장담할 수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났다. 역시나 대답을 않으니 별수있나, 내가 시작해야지. 내 머리에 총구를 겨누었다. 발끝부터 등허리까지 오싹오싹했다. 망설임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핑- 힘없이 공기가 옆통수에 닿았다. 약간의 안도감. 머리를 정리하곤 네게 총을 건넸다. " 해. " - ... 넌 말없이 총을 받아들고는 너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었다. 뭔가, 그냥 보기가싫어 꺾어다놓은 꽃의 꽃잎을 하나하나 따서, 바람에 날렸다. 하얗게 날리는게 보기도 좋았다. 좀 지나자, 역시 핑-, 하고 공기소리가 났다. 넌 천천히 손을 내려 다시 내게 총을 건넸다. 난 내 무릎위에 올려두었던 꽃을 네 무릎위에 얹어놓고는 총을 어느정도 쓰다듬었다. 그리고 내 머리에 총구를 갔다대었다. 조금의 긴장과 함께 정적 -정적이라고 하기엔 아까부터 나혼자 말만 했으니 딱히 정적이라 할건 없었지만- 이 흘렀다 이내 방아쇠를 잡아당기자 탕 - ! 귀를 후벼파는 소음과 함께 의식이 흐릿해졌다. 아, 결국 난가? 어지러움에 털썩, 옆으로 쓰러지듯 누웠다. 눈을 두어번 깜빡이자 위에서 날 바라보는 네가 보였다. 난 손을 뻗고 네 얼굴을 만지며 말하겠지. " 왜 울어. " 어차피 둘중에 하난 꼭 죽어야했는데. 너하고 난 같이 있을 수가 없는데. 이왕이면 우는거말고 웃는거 보여주지, 나 한번도 네 웃는 모습 본 적 없는 데 ,,, *** " 환자분, 결국 하나의 인격이 남았네요. 그래도 치료가 잘 되서 다행이에요. " [ 위에 등장하는 화자와, ' 너 ' 는 그냥 한 사람의 인격들. 다중인격인 사람을 치료하기위해 두 인격을 만나게 한 정신과의사. 그 인격들은 왜인지 인격이면서도 서로를 사랑했지만, 그래도 치료를 진행하여(위에선 러시안룰렛 게임이 치료 진행을 나타냄) 결국 하나가 죽게된다는,,, 아 설명 뭔가 엄청 엉성하네 하 어려워 아이덴티티에서 약간의 영감을 받아따,, ]

141 이름없음 2019/02/10 23:23:43

달,새벽,차가움

142 이름없음 2019/02/12 01:15:53

창문 사이로 달빛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그런 달빛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치마 자락이 흘러들어오는 달빛에 담궈졌다. 그녀는 창문에 다가가, 조심히 창살을 밀었다. 새벽에 떠있는 외로운 달 하나. "... 또 다시 외톨이야" 그녀는 벽에 살짝 기댔다. 눈에서는 은하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그녀의 머리카락은 불안정하게 휘날리기 시작했다. 창가운 침대 시트가 점점 은하수에 물들기 시작했다. 항상 외롭고, 추웠다. 주위의 별들은 그녀를 조롱했다. 새벽 하늘에는 점점 빛을 잃어가는 외롭고 아름다운 별 하나를 위한 자리를 더 이상 주지 않았다. "싫어... 추워..." 그녀는 다시 창문을 굳게 닫고는, 커튼을 쳤다. 마치, 다시는 열어주지 않을 것처럼, 단단하게. [조금 해석을 하자면 대인관계에 있어서 지친 주인공을 포함한 사람들을 별에 비유해봤어! 그리고 달을 '그녀'에 있어서 조금의 희망이지만 주인공은 달을 거부하고 그 미련조차 창문과 커튼으로 막은거야!]

143 이름없음 2019/02/12 01:22:35

먹구름, 길, 숲

144 이름없음 2019/02/12 21:52:42

"아." 비 내린다. 뒷말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빗소리에 작게 먹혀들었다. 먹구름이 내내 껴있다싶더니, 밤이 깊어오자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산도 없는데 이걸 어쩐담. 부를 사람도 없고 이 깊은 숲까지 누가 와줄 리도 만무했다. 비 좀 내린다고 공기가 그새 싸늘해지기 시작한 탓에 얇은 옷차림 위로 찬 공기가 스몄다. 내가 정말 버스만 오면 빨리 여기서 떠나고 만다. 추위를 한 번 자각하자 짜증이 당연할 정도로 몸이 떨리고 있었다. 숲 한가운데 뻥 뚫린 도로 중간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이라니. 위치 선정도 참 지지리 운이 없었다. 버스는 언제쯤 오려나 한참 목을 빼고 있던 참이다. 도로 저쪽에서 타박타박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제법 두꺼운 코트를 걸치고 하늘하늘 예쁜 원피스에 단화를 신은 여자였다. 음, 하기사 아침에는 제법 따뜻했어도 밤이 되니 춥긴 하더랬다. 지금 날씨에 맞지 않는 서로서로의 옷차림을 살펴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 여자의 표정은 길고 검은 생머리와 우산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금 뻘쭘해졌다. 시간이 좀 더 흘렀다. 저 여자는 우산을 든 채 버스 표지판 아래에 서있었다. 나는 내 옆에 앉아도 괜찮다는 의미로 웃으며 눈짓했지만, 여자는 묵묵부답으로 그 아래에 계속해서 서있을 뿐이었다.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피부가 창백했다. 그러고보니 저 여자는 어디서 온 걸까? 여자가 걸어온 쪽에 작은 마을이 있기는 했지만 이 정류장과는 제법 떨어진 곳이었다. 걸어오는데 제법 힘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 바는 아니었다. 난 여전히 그 표지판 아래 우산을 받치고 서있는 여자를 무시하기로 했다. 결코 뻘쭘하거나 무서워서는 아니었다. 부우우웅. 멀리서 버스 오는 소리와 함께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고개를 들어 흘끗 버스를 살피더니,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자기가 탈 버스가 아니므로 당연한 행동이었다. 내 앞에 버스가 정차했다. 나는 저 여자를 무시하기로 했으므로 버스에 말없이 올라탔다. 푹신한 좌석에 앉은 나는 여전히 창백한 낯으로 서있는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후후, 조금 웃음이 나왔다. 왜 나는 겨울이 서서히 찾아오고 있는 가을 날씨에 얇은 반팔티와 반바지 차림일까? 심지어 신발조차 신고있지 않았다. 정류장 뒤쪽, 숲의 아주 깊은 곳까지 들어가면 작은 봉분이 있다. 급하게 만들어진 무덤같은 모양새다. 뭐, 사실 묫자리는 맞다. 내가 묻혀있기 때문이다. 단지 제대로 된 무덤이 아닐 뿐이었다.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흙무덤. 그냥 암매장이지. 전애인 새끼 밥은 먹고 다니나 모르겠다. 문득 내가 비치지 않는 창 너머로 겁에 질린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너무 무서워하지 말라는 의미로 손을 흔들었으나 여자는 더 창백해질 뿐이었다. 이젠 울 것 같았다. 밀려오는 무안함에 나는 창가 자리에서 저 사람이 보이지 않는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목에 로프가 감겨있는 청년의 옆이었다.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깨진 머리 탓에 눈 위로 자꾸만 흐르는 피가 거슬렸으나 이제는 신경쓸 것도 없었다. 저 여자는 무사히 귀가했으면 했다. 버스는 그저 조용히 출발했다. 이젠 떠날 시간이었다.

145 이름없음 2019/02/12 21:54:12

전쟁 달 고요함

146 이름없음 2019/02/13 06:56:52

203X년 2월 3일 새벽 2시 36분 전쟁은 아직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공군이 되지 말 걸! (글자를 지운 흔적) 아니다. 역시 난 공군 체질이란 말이지. 이런 와중에도 드는 오만가지 생각이 순 공군과 나라에 돤련된거여서야 원. 낮 6시 방금 전투기에 탑승했다. 이제 곧 비행해야하니 일단 일기 적는건 나중에 해야겠군. 그렇다고 자율주행으로 맡길만한 상황도 아니고. 아침달이 보인다. 응원해주러 온 걸까? 아쉽게도 그럴리야 없지만. 오후 4시 52분 동료가 죽었다. 내 이럴줄 알았지. 저놈은 항상 영웅이 되려고 한다니까. 그리고 결국 진정한 영웅이 되었구나. (여러저러 말을 적었다 지운 흔적) 오늘은 일기를 더 적을 기분이 아니다. 여기까지 적어야겠다. ... 203X 3월 21일 오전 8시 5분 드디어 전쟁이 끝났음이 선포되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전투에선 졌지만 전쟁에선 이겼다. 아마 미래의 역사학자들이 눈여겨 보게 되지 않을까? 그렇지 못하더라도 내 일기 만큼은 많은 관심을 보여주면 좋겠다. 내 일기가 안네의 일기 급이 되길 바라는 건 아니다. 낮 1시 33분 전사자들의 추모식이 열렸다. 내 친구도 있었다. 스스로가 영웅이 되길 자처하며 진짜 영웅이 된 녀석. 일기를 들고 추모식에 찾아가기로 했다. 낮 2시 추모식에 도착했다. 의외로 먼 거리는 아니었다. 내 친구에 대한 언급이 들려온다. 나는 말없이 자리에 찾아갔다. (시간을 적었다 지운 흔적) 빼곡히 놓여있는 영정이 눈에 보인다. 얼마나 많은 전사자가 있는지는 나도 잘 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들 모두에게 흘려줄 눈물이 없었다. 안타까운 이야기다. 이 곳은 어째 고요하다. 엉엉 우는 추태를 보이는 이는 없다. 다들 입을 꾹 닫고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내고 있을 뿐. 7시 30분 집이다. 추모식이 끝난지는 좀 됐다. 허무하다. 내 친구의 행적을 크게 느끼는건 당연히 나 뿐일텐데. 괜시레 허무하다. 내일이 오면 달라질까? 눈이나 감아야겠다.

147 이름없음 2019/02/13 09:59:33

폐허, 개, 모험

148 이름없음 2019/02/15 06:31:11

야야, 일어나! 눈을 뜨자 폐허가 되버린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어디지? 난 분명 우리집 까망이랑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갑자기 어지럽더니 여기란 말이지. 왜 여기에 있는거야? 너 인간이야? 응? 당연히 인간이지. 근데 넌... 나에게 말을 건 남자는 개의 꼬리와 귀를 달고 있었다. 내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남자는 자신이 리트리버 수인이라고 했다. 수인? 여기 지구 아니야? 지구 맞아. 정확히는 99번째 멸망하고 있는 지구야. 남자는 21번째 멸망에 태어나 78번의 멸망을 보았다고 했다. 마지막 예언만을 바라보며 주변인들이 죽는 것을 견디며 날 기다렸다고 했다. 날? 왜? 예언의 인간이니까. 여긴 인간이 없어. 수인뿐이지. 네가 여기로 온 건 예언의 때가 왔기 때문이야. 예언이라는게 뭔데? 그건...여길 모험하다보면 알게 될거야. 네가 어떤존재인지, 무엇을 할 수 았는지, 예언이 무엇인지 전부 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탁탁 털었다. 먼지가 흩어지고 내밀어진 손을 보았다. 네 가치를 여기서 증명해줄게.

149 이름없음 2019/02/15 13:36:50

민들레 베개 흰비둘기

150 이름없음 2019/02/15 17:33:16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보호받고 싶은 시간이 있다. 나에겐 새벽 2시가 특히 그러하였다. 정권의 무능을 논하며 술파티를 벌이던 대학 시절 이후, 새벽 2시를 뜬 눈으로 지새어 보지 않았다. 그러다 "아빠, 아빠!" 하고 부르는 소리에 깨어난 새로운 나를 받아들이기는 버거우리만치 낯설었다. 파열된 꿈의 틈새로 딸이 온순한 눈동자를 보인다. 졸음이 내린 눈꺼풀과 바닥에 머리를 박은 딸의 베개를 보고 나면 사태를 알아채야 한다. 이런 때에 한바탕 웃으며 신나게 매달릴 그네가 되어주는 것은 온전히 아버지의 몫이다. 이게 누구야, 나는 딸의, 어머니를 쏙 빼어 닮은 흰 살갗에 느껴지는 감동과, 뿌연 그리움 같은 것에 백구라는 별명을 불러 중화시키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 된다. 우리 백구 왔니? 그러면 딸은 혈연관계에 존재하는 어떤 불문율에 따라 내게 매달린다. 내 귀여운 포도알, 종기, 바다표범... 우리는 피부를 부비적거리며, 인간은 홀로 살아가고 죽어가는 것이라던 어느 종교의 가르침을 필사적으로 망각한다. 어떤 일이 있어 왔니? 무서운 꿈을 꿨니? 딸은 고개를 젓는 모양새로 내게 알린다. 무슨 일로 왔는지 맞춰보아요. 이제부터는 밤중의 스무고개가 시작된다. 어디가 아팠니? (아니요.) 꿈이 짧아서 잠이 깼니? (아니요.) 옳지, 목이 말랐구나! (틀렸어요.) 그럼 우리 백구가 왜 아빠를 찾아왔을까? 그러자 딸은 내 둘째 심장처럼 가슴에 파고든다. 아빠. 비밀 알려줄게요. 딸이 속살거리는 소리에는 누구도 잠을 깨지 않는다. 요정이 다녀갔어요. 민들레 요정이요.

151 이름없음 2019/02/15 17:34:39

수첩 신발 바다

152 이름없음 2019/02/16 23:05:49

빌어먹을. 작게 욕을 중얼거리곤 헝클어진 머리를 박박 긁어댔다. 수첩에 적힌 문장들은 찢겨져 바닥을 뒹굴게 되었다. 참으로 짜증나는 일이다. 무엇을 써도, 전에 쓰던 것만큼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실력은 오히려 갈수록 퇴화되는 것만 같다. ...거지같은 일이다. 후우, 한숨을 쉬곤 옷가지를 챙겼다. 숨 좀 돌리고 오면 괜찮아 지겠지. 구겨진 신발에 발을 넣고 틱틱, 불량한 태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끼익- 낡은 철제문이 열리는 소리가 귓가에 맺힌다. 곧이어 바다의 내음이 나를 반긴다. 맞다, 여기 바닷가지. ...글을 쓰기 위해 영감을 찾는다고, 나름 괜찮은 직장을 때려치고 이곳저곳 돌아다닌지 벌써 반 년. 영감은 개뿔, 그것 찾기전에 돈이 다 거덜나게 생겼다. 하루에 컵라면 하나 먹기도 간당간당할 지경이다. 와, 잘나가는 인생을 살겠다던 과거와는 거리가 멀다. 어쩌다 이렇게 구차한 인간이 됬는지. 체념한 눈으로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는 상상하던것과 달리 깨끗하고 빛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의 내꼴처럼! 뚜벅뚜벅 바다를 향해 걸어가다, 쓰레기에 걸려 넘어져 버렸다. ...운 거지같네, 진짜. 꼴사납게 모래밭에 머리박고 넘어진 성인이라니, 창피하기 그지 없다. 그저 모든걸 포기하고픈 충동에 아예 자세를 바꿔 하늘을 바라보며 모래에 몸을 맡긴다. 어쩌다 이렇게 됬지? 분명 처음은 나쁘지 않았다. 비록 짜증나는 집안 환경이 있었지만, 내힘으로 나름 좋은 대학도 갔었고. 텃세 부리는 말종들이 있었지만 살살 눈치보며 인간관계도 구축했고. 아등바등 기어서 장학금도 타냈고! ...아니, 생각해보니 일단 다 거지같은 일만 있었네? 벌떡 일어나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하, 주변이 뭔 상관이야 나만 있음 됬던거였...네? 순간 떠오른 간단한 사실이 시야를 가리던 뿌연 안개를 걷어주었다. 그순간, 빌어먹게도 간절히 찾아다니던 영감이 나타난 것 같다. 실실쪼개며 자리를 박차고 숙소로 잡은 낡은 민박집을 향해 달려간다. 더러운 진흙탕 속에도 연꽃은 피어, 그렇지?

153 이름없음 2019/02/16 23:44:06

하이힐 립스틱 바다

154 이름없음 2019/02/17 01:18:06

붉은 립스틱을 짙게 바른 그녀는 마침내 바다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자신의 발을 가주던 하이힐을 벗어버렸다. 한 평생, 바다는 사진이나 멀리에서만 볼 줄 알았다. 처음으로 맛 본 자유는 정말이지 달콤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뒤를 잠시 돌아본 그녀는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는 자신을 잡으러 오는 것들에게 약간의 미소를 보이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기 시작했다. 바닷물의 차가움과 진해지는 비린내, 소금내에 몸을 맡기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마침내,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 마저 삼켜버린 바다는 잠깐의 그녀를 애도했고 그녀를 쫓아왔던 현실이 도착하자 바다는 침묵을 지켜주었다

155 이름없음 2019/02/17 01:18:38

신뢰 손짓 보라색

156 이름없음 2019/02/20 22:15:40

아아, 보라색으로 짙게 물든 하늘이여 때로는 검정색으로 물들었던 하늘이여 왜 당신은 이제야 저를 죽음으로 손짓합니까 이토록 긴 생을 살았던 나는 그 누구도 신뢰 할 수 없었던 나는 그 누구에게도 신뢰 받지못했던 나는 죽음에 다다라서야 서로 신뢰할 사랑을 찾았는데, 죽음에 다다라서야 그토록 갈망하던 사랑을 찾았는데, 무심한 하늘이여 보라색으로 물든 하늘이여 하늘바람에 흔들리는 그 손짓을 제발 거두소서 음 ,, 좀 이상한가? 자라나는 꿈나무를 위해 필력평가좀 부탁해 !!

157 이름없음 2019/02/20 22:17:08

창백한, 무표정, 흑표범

158 이름없음 2019/02/26 04:08:33

흑표범은 창백한 낯으로 제 토끼를 쳐다보았다, 무표정이라기에도 어색하게 아무런 감정없이 식어버린 흑표범만의 토끼는 그렇게 싸늘해져만갔고 흑표범은 저의 사랑앞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제 낯빛만치 창백한 눈물을 뚝 뚝 흘릴 뿐이었다.

159 이름없음 2019/02/26 04:09:10

리볼버(권총) 커튼 서재

160 이름없음 2019/02/26 06:43:18

서재 한 켠에 놓인 리볼버를 손에 쥐었다. 철컥, 장전 소리와 함께 네게 겨눠진 총구는 무저개마냥 검어 보였다. 크게 뜨인 두 눈에 내 모습이 비쳤다. 흔들리는 눈동자에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은 기분을 최고조로 만들어서, 멋대로 손가락이 움직이도록 한다. 탕- "아하하.. 아하하하하하!" 흩날리던 하얀 커튼이 붉게 물들고 잔혹한 참상 앞에 서있던 건 입이 찢어질듯이 살인귀의 모습이었다.

161 이름없음 2019/02/26 09:30:58

우산, 벤치, 커피 한 잔

162 이름없음 2019/02/27 07:53:37

조용한 공원, 살랑거리는 봄 바람, 그 바람이 흩날리는 벚꽃. 검은 단발머리에 하얀 피부 그리고 빠알간 입술, 공원벤치에 앉아있는 한 여성. 무얼 바라보고있는건지 저-어 멀리, 어딘가 몽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앉아있다. "여기서 뭐해?" 그녀 옆으로 소리없이 다가온 한 남성, 조용히 향긋한 커피 한잔을 바라보며 말을 건낸다. 흩날리던 벚꽃잎 한잎이 커피속에 살포시 내려앉는다.살랑살랑 바람결에 따라 벚꽃잎이 커피위에 발래하듯 살근살근 춤을춘다. "그냥, '그 곳'은 어떨까 싶어서?" 시선을 아직 먼 어딘가에 둔 그녀는 다리를 살며시 꼬고 무릎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두며 바람을 느끼듯 살포시 눈꺼풀을 감았다가 뜬다. 흐-음, 꽃내음을 집어삼키듯 숨을 깊이 들이쉬어본다. 조용히 그녀의 옆에 선 그 는 그녀의 눈빛을 조용히 따라가본다. 아직도 그날 그 기억속에 살고있는 그녀의 슬픈 눈 속에서 그날의 기억에 그 도 쓴웃음을 내뱉는다. "이제 잊을때도 되지 않았나, 벌써 3년이란 시간이 흘렀어." 팔짱을 끼며 한숨쉬듯 숨을 내뱉은 남자는 여자를 다독이 듯, 그러나 재촉하 듯 말을 건내어본다. "응, 곧 괜찮아 지겠지" 무릇 모든 아픔이나 슬픔 시간이가면 잊혀지기에 '시간이 약이다' 라는 말도 있지않은가. 하지만 아직 그와 그녀에게 일어났던 그 일에 있어 3년 이란 시간은 그녀에게도 그에게도 약이 아니였나보다. 시간이 가면 괜찮아 지겠지, 괜찮아질거야 하며 하루하루를 지내고있다. 하지만 괜찮아 지지않는 건 누구를 탓할수가 없다. "그래.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 더이상 어떤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걸 알기에 그도 말을 줄였다. 토독, 토도독-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봄이 시작된다.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이오고 아름답던 벚꽃이 길거리를 분홍봄빛으로 환하게비추고 봄비가 내리면 이젠 정말 따뜻한 봄이오고 다시 뜨거운 여름이 올거라는 뜻이다. 늘 그렇듯 그녀의 마음에도 시간이지나면 추운겨울은 가고 곧 따뜻한 봄이 올거다. 그녀는 비가 더 거새지기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올게 L, 또봐 L." 나지막히 인사를 건낸 그녀는 가방에서 작은 접이 우산을 꺼내어 들고 그의 시선에서 점점 멀어져간다. "잘가 J. 또봐J."

163 이름없음 2019/02/27 10:17:57

사마리아.우물.여인

164 이름없음 2019/03/06 17:01:44

"우물에 비치는 달을 선물해주오." 여인은 그런 미친 소리를 속삭였다. 아니지, 너는 언제나 미친 여자이지 않았는가. 나는 헛헛한 웃음소리를 내며 여인의 붉은 머리칼을 손으로 빗기듯 쓸어주었다. 여인은 정말로 달을 선물받은 양 이빨을 보이며 웃음을 지었다. 정적을 깨고,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불쌍한 부인, 우물에 비친 달은 건져낼 수 없다오. 그것은 한낱 물에 비친 상이 아닌가? 그러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스프와 안락한 잠자리를 준비하시오." "난 부인이 아니랍니다, 닥터. 그리고 그 가시세운 눈으로 쳐다보지 마오, 정신나간 사람으로 취급하는 그 눈빛을 보노라면 혀 끝이 아려요." 여인이 부인이 아니듯, 나 역시 닥터가 아니었다. 이것은 필시 그녀가 나를 비꼬려는 같잖은 장난이겠지. 여인은 별도 없이 그믐달 하나 덩그라니 뜬 밤하늘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저 미친 여자는 무엇을 생각하는걸까. 바람에 여인의 머리카락이 버들나무마냥 흔들려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었고, 그 모습을 홀린듯이 한참이나 따라보게 되었다. 나는 마녀에게 홀린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나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지? 달빛을 머금은 여인은제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보같이 헤실거리기만을 반복했다. "밤이 춥소, 부인도 집에 들어가 잠을 청하시오. 더 늦으면 저 실낱같은 달도 어둠속에 자취를 감추니." "부인이 아니라니까, 난 달과 함께 갈터이니 닥터야말로 차게 식은 집에 온기를 불어넣어줘야하지 않으오?" 달과 함께 간다니, 그 이상한 소리를 지레짐작이라도 해보기 전에 여인은 질끈 묶은 머리를 풀어헤치더니 우물의 입구를 밟고 올라섰다. 달 찾으면 그거 반 줄게, 닥터. 풍덩하고 물소리가 들렸다. 여인은 발조차 디딜틈없는 우물속에서 마구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아이러니하게 물에 폭싹 젖은 치마가 다리에 달라붙으며 인어와 같다는 인상을 남겨주었다. 여인은 죽어가는 와중에도 말을 하지 않았다. "무엇때문에 그녀를 구하지 않았지?" 재판관의 첫마디에 마을 사람들은 내 욕인지, 미친 여자의 욕인지 모를 말들로 떠들석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어디까지나 여인을 제외한 마을 사람들 사이에 돌던 말이었지만, 여인의 평판은 대체로 나빴고 여인의 죽음에 슬퍼할 혈연도 친구도 존재하지 않았나보다. 재판관은 금방이라도 돌아가실듯한 기침을 연신 퍼붓더니 다음과 같은 말을 읊었다. "죄인의 죄명은 착한 사마리아 법...그녀를 보았음에도 지나친 것을 본 목격자가 있어. 따라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죄인을 우물에 빠뜨림으로써 죄를 다스린다."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층 고조되었다. 물론이지, 나조차 이런 결말을 낼줄 몰랐다고. 족쇄를 찬 채, 나는 차디찬 우물에 내던져졌다. 살려달라고 외칠수록 더 많은 물이 입속으로 들어와 나를 괴롭혔다. 문득 초승달이 보였다. 이제 달은 다시 차올라 보름달이 되고, 이윽고 기울어 여인이 떠난 그믐달이 되겠지. 나는 마녀에 홀린 것이야. 여인을 품은 달빛이라는 마녀에.

165 이름없음 2019/03/06 19:21:30

눈물, 뺨, 정적

166 이름없음 2019/03/08 09:39:48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벌써 정적이 흐른지 30분이 넘어간다. 그녀의 얼굴을 힐끔 보았다. 많이 어두운 표정이다. 나는 직감적으로 느껴졌다...아..오늘 헤어지겠구나...나는 어렵게 입을 열어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 보자고 한 이유가 뭐야..?" "......."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땅만 바라보았다 "헤어지자고 말하려던거...아니야?" 그말을 하자마자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해...미안햐 K야...정말 미안해...." 나는 그녀에게 괜찮다고 말을했다 "괜찮아. 그동안 고마웠고 미안했어....잘지내" "미안해...미안해...정말 미안해..그리고...고마웠어..." 나는 그녀를 뒤로한채 가게를 나왔다. "탁"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눈물이 흘러 뺨을 가로질렀다. 나는 아직 헤어지는중이다.

167 이름없음 2019/03/08 14:07:28

이별 기다림 헤어짐

168 이름없음 2019/03/09 11:53:22

나에게 이별이라는 말은 한 없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만남이 있다면 헤어짐은 당연한 것을 알면서도 부정하는 내가 한심하고 멍청하게 느껴졌다. 부정한다 하여도 변하는 것은 없는데. 그러니 난 무대 위에서 연주한다. 기다림이라는 선율이 흐르고 공연이 시작된다. 부디 네가 내 공연을 보러 와 주길 바라며. 난 계속해서 널 기다린다.

169 이름없음 2019/03/09 15:02:09

환대, 기만, 향수

170 이름없음 2019/03/18 00:01:19

그에게선 언제나 달큰한 시트러스 향이 났다. * 그믐은 그래, 빛의 기만이야. 빛이 있다고, 있을 거라고, 그렇게 말하는 주제에 아뜩하잖아. 너무 어지러워서 토가 나올 것 같은 밤. 너는 모르니? 강하게 내리쬐는 조명에 눈이 아팠다. 허리를 조인 코르셋은 갑갑했고, 무거운 인조 속눈썹 때문에 눈은 계속 감겼다. 허리를 감싸고 있는 어여쁜 네 손이 아니었다면, 나는 당장 이 어지러운 파티장을 나가 신발을 벗고, 코르셋을 풀어헤친 다음 기쁜 마음으로 호수에 뛰어들었겠지. 너는 모르니, 하고 말하는 그 목소리가 너무 예뻐서, 느리게 이어지는 선율에 목이 졸려 죽고 싶었다는 걸, 너는 알까? 보름이 있는 이들은 보름에 소원을 빌면 되고, 보름이 있음을 아는 이들은 보름을 기다리면 돼. 하지만 완벽한 어둠에 사는 이들은 그 기만적인 그믐에게라도 빌어야하는 거야. 보름을 보여달라고. 어느새 음악은 단조로 바뀌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사라진다. 여전히 네 한 손은 내 허리에, 나머지 한 손은 내 어깨에 둘러진 채 조심조심 스텝을 밟는다. 오른발을 디디고, 한바퀴를 돌고, 내 손을 잡고 키스. 너는 줄곧 웃는 낯이었다. 그런 말을 하는 중에도, 춤을 추는 중에도, 나의 결혼식을 올릴 때에도. 내 입술에 입을 맞춰줄 때에도, 흐드러지게 핀 달꽃 아래에서 내게 고백을 했을 때에도, 심지어 내가 네 고백을 거절했을 때에도. 짧은 가발을 쓰고, 정장을 차려입은 너는 제법 청년티가 나, 언뜻 본다면 여자로 안 보일 외모였다. 나는 정말로 네가 내 결혼식에 올줄 몰랐다. 우리는 이미 엣저녁에 헤어졌고, 나는 집에서 정해준 상대와 약혼을 했으니까. 오늘은 나의, 그리고 내 약혼자의 결혼식이었다. 나와 그는 머리가 희끗한 노인의 앞에서 죽음만이 우리 사이를 가를 거라 맹새를 했고, 반지를 나눠끼며 키스를 나누었다. 샹들리에가 아름다운 이 파티장은 너와 결혼을 그릴 때 우리가 함께 골랐던 것이고, 이런 모두가 들뜨는 파티 형식의 결혼식 또한 너와 한 이불 안에 누워 한낮의 빛을 맞으며 오손도손 얘기했던 것들이다. 나는 눈물이 나 너를 볼 수가 없다. 이제 음악은 점점 끝을 향해 달려간다. 나는 그믐을 찾아 빌었어. 보름을 보여달라고. 제발, 보름을 보고 싶다고. 나는 네 맑은 눈을 참으로 좋아했다. 가끔은 그 눈동자에 파묻혀 죽고 싶을 정도로. 호수를 닮은 눈은 아름다웠고 또한 아름다웠다. 네가 그런 눈으로 나를 본다. 다정하고 다정하게. 꼭 우리가 아직 사귀고 있는 것처럼. 릴리, 너는 그믐을 버리고 보름을 만들었구나. 너는 곁눈질로 나의 남편을 쳐다봤다. 나도 그를 따라 오늘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그를 보았다. 성격, 외모, 재력,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내가 평범한 여자였다면 그를 사랑했겠지. 너는 이런 날 알고 있었을테다. 그래, 지금 넌 행복하니? 너를 버린 내가, 남자를 사랑할 수 없는 내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테다. 나는 울음을 할 것 같아 입술을 꽉 물었다. 네 눈은 날 책망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고, 너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 갔다. 노래는 끝이 났고, 이제는 파트너를 바꾸어야 할 타이밍이다. 또 누군가가 나를 안고 빙글빙글 돌며 어지러운 이 파티장을 휘저을테지. 나는 네가 떠난 자리에 시선을 두었다. 네가 떠난 자리에는 아른한 밤꽃 향기가 남아있어, 꼭 네가 아닌 것만 같았다.

171 이름없음 2019/03/18 00:52:38

메타픽션 죽음 거짓

172 이름없음 2019/03/20 01:51:47

"그러니까-! 전부 픽션이라고!" "피, 픽션이라니…… 그럼 지금까지 해왔던 건 도대체 다…" "의미없는 짓이라고 해둘 수 있겠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쳤던 것도, 모두와 함께 협력해서 여길 빠져나가려고 했던 것도, 모든 걸 끝내기 위해서 희생했던 것도, 무엇 하나 빠짐없이 전부 다 쓸모없는 짓이었다는 거야. 그 한마디에 모든 게 무너져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그럼… 그 아이는 왜 죽었고 그 아이는 왜 죽었으며 또 그 아이는 왜 그랬던 거였고 나는 무얼 위해 앞으로 나아가려 했던 거였지? "나는…… 왜…" "그러니까~ 이제 그만 패배를 인정하라니까. 어차피 모두가 진실을 알아버린 이상, 끝난 게임에 반전은 찾아오지 않아. 너도 그만 패배를 받아들이는 게 좋을 걸?" "인정하면… 죽잖아! 우리는 이렇게 죽을 수 없어!" "아아, 그래?" 그럼, 이 픽션에서 살아남는다고 뭐가 달라지긴 하나? 너희도 픽션, 나도 픽션, 이 세상조차도 만들어진 가짜인데 이런 곳에서 살아남는다고 가짜가 진짜로 변하진 않을 거 아니야. 어이없다는 듯 나를 비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좌절하지 않았다. 아니, 좌절할 수 없었다. 죽은 모두를 위해서라도 좌절해서는 안됐다. "…있어." "뭐?" "…변할 수 있다고. 믿음이 존재한다면," 거짓을 진실로, 가짜를 진짜로, 가상을 현실로 바꾸는 것쯤은 얼마든지 가능해. 여유롭게 나를 비웃던 네가 얼굴을 구기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계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173 이름없음 2019/03/20 02:01:08

손가락 머리끈 풍경

174 이름없음 2019/03/20 03:22:11

그 날은 막 여름 방학식을 한 날이었다. 우리는 더럽고 헤진 운동화를 질질 끌며 터덜터덜 녹음이 우거진 거리를 걸었다. 최대한 천천히. “방학 싫어.” “나도.” 따위의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자외선 차단제도 바르지 않은 주제에 나랑 걔는 뭐가 그리 좋다고 미련하게 실실 웃었다. 무자비한 태양 아래 여지없이 타들어가는 주제에, 흐르는 게 무엇인지 어쩌면 녹고있는 것인지 분간조차 하지 못한 채. 그러다가 점차 지칠 즈음에 살살 어르고 달래듯 하늘하늘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지긋이 감고 배싯배싯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덥네, 더워.” “푹푹 찐다. 너 머리는 왜 안 묶고있냐.” “머리끈이 없어서··· ···.” “요새 건망증이 심해졌네. 손목에 있는 건 뭔데?” “아.” “묶어.” 그것도 예쁘니까··· 따위가 고백이라도 되는 것마냥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웅얼거리던 나는 별 말 없이 머리칼을 모으는 뒷모습에 약간 실망했다. 우리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어쩌면 태어나기 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 아래 섰다. 그 애는 부산스레 헝클어진 미역줄기 같은 머리칼에 몇 번이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푹, 푹 찔러넣었다. 그러고는 꼭 새 것 같은 주황색 머리끈을 사방으로 쫙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바람이 다시 살랑살랑 불었고 바야흐로 여름 날이었으며 그늘 아래 서 있는 그 애는 그 날의 풍경과 꼭 동화되어 있었다. 주먹을 그러쥐고 나는 작게 심호흡을 했다. 다시 한 번, 다시 한 번― “너한테만 보여주는 거야.” 이글이글 긴장과 함께 타들어가는 정신은 그 애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말을 마친 그 애는 살풋 웃었지만, 나는 그게 꼭 흐느낌처럼 들렸다. 어쩌면 맞았을지도 모른다. 머리칼에 감춰졌다 드러난 목덜미는 유난히 울긋불긋했고 나는 둔기에 후려맞은 듯 일순 이명이 일었다. 그것은 평화에 잘게 금이 가는 소리였다. 정확히는 나만의 평화에. “너···” “어때. 예뻐?” “··· ···.” “어제 목을 맸어. 실패했지만.” 오늘은 성공하겠지. 그 애는 묻지 않았다. 찬 물을 끼얹은 듯 머릿속이 차게 식어갔고 탈력한 눈동자는 제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시야 속 그 애가 둥둥 떠다녀서 나는 견딜 수 없었다. 제정신을 부여잡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그 애를 놓쳐버릴 것 같았다. “다시 물어볼게.” “··· ···.” “머리 묶은 거, 어때?” 그 애는 나를 응시했다. 한껏 무감한 표정 따위를 하고. 이건 사소한 일이 아니야. 그런 표정 짓지마. 그게 무척이나 달갑지 않아서 고개를 세차게 저으려다가 나는 비로소 그 애와 시선을 마주쳤다. 깊고 그득한 동공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벌벌 떨었고 나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그 애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어쩌면 나처럼 차게 식어버린 걸 수도 있다. 또 어쩌면 나보다 훨씬 전부터 그런 나날을 지내고 있었을 것이다. 제 계절 제 시간 제 궤도를 정처없이 표류하는 그런 비참한 나날들. “··· ···뭐든 좋아.” 그리고 더럽고 헤진 운동화를 신은 주제에 길잡이를 자처하는, 나.

175 이름없음 2019/03/20 03:26:06

사냥, 누명, 탈출

176 이름없음 2019/04/06 23:16:21

"아..." 나는 현관문 앞에서 침음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부터 길고양이 한 마리에게 열렬한 애정공세를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방식이 무엇이냐? 바로 사냥한 참새며 쥐 따위를 물어다 집 앞에 놓아주는 것이었다. 이 삭막한 도시에서 이런 것들은 또 어떻게 용케도 잡아온다 싶었다. 시골이었다면 구렁이 한 마리가 현관 앞에서 꿈틀대고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었을테지만... 도시라서 이런 조그만 것들로 끝나는 것을 감사히 여겨야 할지, 슬프게 여겨야 할지. 그 와중 어디선가 고양이가 길게 목청을 빼고 울었다. 열심히 내게 보은을 하고있는 그 고양이가. 담벼락 위에 앉아 그루밍을 하다, 내가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얌전히 앞발을 내리곤 꼬리로 발을 빙 둘러 감싼 뒤 예쁘게도 야옹하며 울어보이는 것이다. 정말이지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이걸 먹을 수가 없다고 말을 전할 수 있다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저 귀여운 치즈 냥이는 요새 날 먹이를 갖다줘도 먹지 못하는 멍청이로 낙인찍은 모양이었다. 초반에는 잡혀오는 동물들이 죽음의 문턱에 서있기는 해도 꿈틀꿈틀 가느다란 숨이나마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새는... 다들 확실히 숨통이 끊어져 있다. 나는 얘들이 살아있어서 못먹는게 아닌데! 그냥 못먹는 거야! 아무래도 고양이 몰래 살아있는 것들을 몇 번 놓아주다 들킨게 화근인 듯 했다. 살다살다 고양이 눈치도 다 본다. 고양이한테 누명이 씌일 줄도 몰랐고. 몸을 숙여 이번에 잡혀온 참새를 보았다. 날개를 펼친 채 축 늘어져있다. 안쓰러운 것. 저 똥고양이는 이 일대 조류들을 다 쓸어버릴 심산인 양 싶었다. 살살 가슴털 부근을 건드려보자 자그맣게 움찔거린다. 어? 살아있다! 오랜만에 살아있는 채로 운반된 동물이었다.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고양이를 보았다. 내 어물쩡거리는 속도가 답답했는지, 고개를 돌려 바깥에 지나다니는 행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담벼락 너머에서 귀여워라! 하는 감탄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조심스럽게 참새를 집어들었다. 이크, 고양이가 귀신같이 눈치를 채고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침착하게 옆으로 섰다. 고양이가 보았을 때 옆모습이 보이게 섰다는 소리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최대한 입을 크게 벌렸다. 나는 지금 엄청나게 지루한 교양 과목을 듣다가 하품을 하는 거라고 자기 세뇌도 걸었다. 고양이는 교수였다. 생각해보면 교수님과 이 고양이의 깐깐한 성미가 꽤 닮았구나 싶다. 아무튼 나는 입을 거북이처럼 쩍 벌렸다. 그리고 참새를 입에 밀어넣는 척 뺨 옆으로 천천히 내렸다. 참새가 바르르 떠는게 느껴졌다. 억울했다. 진짜 먹으려는게 아니라 구해주려고 하는건데. 참새의 꼬리깃까지 가려졌구나 하는 시점에서 나는 입을 합 다물었다. 고양이 보라고 복스럽게 씹는 시늉도 했다. 참새는 후드 앞주머니에 곱게 들어가있었다. 번개같은 속도였다. 과제를 이 속도로 했으면 못해도 B가 나왔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냠냠 꿀꺽. 기어코 삼키는 시늉까지 해보였다. 고양이는 그제야 번쩍 뜨고있던 눈을 갈무리했다. 너 하는 양이 지루했다는 듯이 하품도 했다. 곧이어 고양이는 담벼락 아래로 뛰어내렸다. 길고 긴 싸움이었다. 저 녀석은 저녁 즈음 해서 다시금 사료와 물과 간식을 얻어먹으러 올 것이 분명했지만, 그래도 이 참새는 살았다. 목숨줄을 단디 붙잡아낸 끝에 죽음으로부터 탈출한 것이다. 나는 후드 앞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참새를 조심조심 꺼내들어 손바닥에 내려놓았다. 조금 기운을 차렸는지 날개를 움직이려 기를 쓰고 있었다. 굳이 병원에 데려갈 필요는 없겠구나 싶어, 고양이가 사라진 곳의 반대 방향에 심긴 가로수에 참새를 앉혀주었다. 가지를 붙잡고 있을 기력은 있는 듯 했다. 4, 5분 쯤 지켜보자 참새는 이내 어딘가로 날아갔다. 거 참, 저 참새 오늘 액땜 한 번 거하게 하는구만. 별 것 없는 감상이었다.

177 이름없음 2019/04/06 23:31:52

화 거북이 꼬리

178 이름없음 2020/04/09 16:17:54

갱신

179 이름없음 2020/04/10 10:28:05

>>177 거북이는 화가 났다네. 그 거북은 인간들이 하나둘씩 버린 쓰레기에 맞아죽은 아이들을 참도 불쌍히 여겼다네. 부른 배로 배고픔을 호소하는 그들을 보고 슬픔을 흘렸지. 그리고서 그는 결정했다. 그 끔찍한 이빨로 도시를 찢어발기고 인간들을 철저히 유린하기로. 아, 통곡과 비명이 끊기지 않는 곳이 없고 증오와 비통함을 토하지 않는 자가 없으며 찬란한 문명은 재가 되어 무로 돌아가버렸으니 재앙이로다. 신이 내린 심판이로다. 죽음의 사자로다. 대륙이 붕괴하고, 서로가 서로를 잡아뜯는 와중에도 거북은 전진했다. 신이시여, 정녕 저희를 버리셨나이까? 오늘이 약속하신 심판의 날이시라면 저희를 구원해주소서! 끊임없는 기도를 배경음 삼아 거북은 파괴를 저지르고 다녔다. 인류사의 마지막 기록자는 도망쳤지. 화마를 피하고, 소나기를 뚫으며 독안개를 지나갔다네. 그에겐 할 일이 있었지. 그렇기에 악착같이 거북에게서 달아나 발버둥쳤다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끝끝내 검은머리의 사내는 붙잡히고야 말았다네. 이대로는 안 된다, 내 어깨에 달린 것은 70억의 아픔이다. 욕을 퍼부었지. 칼로 피부를 찔렀지. 하다못해 침도 뱉고 불도 붙여보았다네. 그렇지만 바다를 걷고 땅을 함몰시키는 거북 앞에 고작 인간이 무엇을 하겠나? 순순히 처형을 받아들일 수밖에. 그렇게 거북은, 자신의 화에서 비롯된 화로 모든 것을 정화시켰다. 지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으며 바다에서는 이미 죽은 자들과 새로 생긴 인간들의 시체를 요리조리 물고기들이 피해 헤엄쳐다녔다. 그렇게 모든 것은 끝이 났다. 그러나 그대는 아는가? 거북에게도 꼬리가 있다네. 그것도 아주 긴 꼬리가. * 침, 아픔, 오디오

180 이름없음 2020/04/22 21:47:33

언제부터일까 나의 공간이 회색이 된 게. 오디오에 소리가 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나 때문에, 오디오도 키우는 금붕어도 조용하다. 고요 속 전쟁 같은 아픔이 머리를 찍어댄다 그냥 바보가 되고 싶다 침을 질질 흘리다 잠에 드는 바보

181 이름없음 2020/04/22 22:05:25

구름 죽음 자갈길

182 이름없음 2020/05/07 23:49:07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걷는다. 수많은 발에 치여 돌들은 닳아 반들반들해졌다. 거기에 잠시 나 하나 발자국 더한다고 한들 무언가 달라질까,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었고 부드러운 바람만 몇 번 살랑였다. 이런 찬란한 날에 누군가는 죽는다. 나는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곧 두 번 다시 걷지 못하게 될 것이다.

183 이름없음 2020/05/08 01:35:30

악몽 현실 별

184 이름없음 2020/05/09 22:53:47

계속, 잠을 못 자겠어요. 하다하다 안 돼서 이틀 밤을 세워 봤는데도 잠이 안 와요. 다크서클은 다크서클대로 끼고...몸은 몸대로 지쳐서.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었는데... 악몽을 꿨어요. 환자의 얼굴은 퀭했고, 입술은 쩍쩍 갈라져 있었다. 환자가 자신의 꿈의 내용을 털어놨다. 하나의 별이 있었다고 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것처럼 작은 섬 같은 별. 환자는 어린 왕자를 읽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것은 놀랍도록 어린 왕자의 별과 닮아 있었다. 환자는 꿈 속의 자신과 현실의 자신을 구별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꿈을 깨고 나서도 이질감에 헛구역질을 반복했고, 이야기하는 내내 간헐적으로 입을 오무리며 손을 입을 가렸다. 꿈 속의 저는...별을 돌아다녔어요. 한 번 다 도는데 1시간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아요. 환자는 별을 돌아다니다가 우주로 시선을 돌렸다고 했다. 의례 우리가 공원을 산책하다가 주변 풍경에 시선을 돌리듯이, 꿈 속에서 그랬다고 했다. "별에는 아무것도 없었나요?" 우주에서 별로, 화제를 전환했다. 꿈에서 본 우주를 황홀한 낯으로 묘사하던 환자가 별의 이야기가 나오니 다시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별은, 별은. 아무것도 없어요. 땅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제대로 본 기억이 없어요. 걸어갈 때마다 푹푹 발이 땅을 밟아요. 밟을 때마다 진절머리가 나는 감각이 발을 감쌌아요. 환자는 꿈 속에서 별을 파헤쳐 하얀 뭔가를 꺼냈다고 했다. 하얀 뭔가를 몸 쪽으로 가져다댈 때마다 빨간 체크무늬 모자이크가 눈앞에 번졌다고 했다. 환자는 우주를 말할 때와 같은 얼굴로 연신 그때의 감각을 설명했다. 우주, 하얀 무언가를 설명할 때의 환자와 악몽이라고 칭했던 환자. 도대체 어디가 악몽인 걸까? 뽀얀, 무언가가...이렇게 꿀처럼 점성이 있는 걸 뚝뚝 떨어트리더라고요! 그걸 보니까 기분이 좋아지는 게 지금 생각해보면 왜 악몽이라고 했는지 의아하네요. 헤헤, 여튼 제가 그 다음 하얀색을 우주 밖에다가 던졌어요. 뭔가, 그때만큼은 제 별이 둥근 원형태가 아니라 넓찍한 직사각형 형태 같았어요. 그걸 버린 다음 저는 물구나무를 서고 발로 박수를 쳤답니다. 꿈. 그러니까 무의식적인 일이라면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어린 왕자 안 읽었으면 어떤가 어린 왕자의 별을 소재로 한 다른 것들은 얼마든지 있다. 우연히 들은 게 꿈에 나타난 거겠지. 그 밖에 우주, 하얀 무언가. 뭐 비슷한 류의 연장 아니겠어? 그 밖에도 환자는 계속 이야기했다. 헛구역질은 눈치 채고 보고 없었다. 환자는 자신이 별에서 노래를 부른 것, 땅을 파헤치고 하얀 무언가를 먹고, 다시 춤을 추고 우주를 숭배하던 시기를 열렬하게 찬양했다. 그 재미없고 지루한 이야기들의 나열에 질리고 말았다. 이차저차 봉사 활동을 조기에 끝내고 집에 돌아왔다. ....? 이상하다. 이상하긴 한데 뭐가 뭔지 모르겠다. 봉사? 환자? 별? 악몽? 환자의 반응이 뭔가......

185 이름없음 2020/05/09 22:55:51

소사(燒死), 그믐, 찬란함.

186 이름없음 2020/05/11 14:52:43

월력에 금 긋기를 마치는 날 잠 잠을 주류로 둔다면 낙오하였고 온 면면에 양광 긋기를 소원하나 목하 대면할 수 없으니 일찰나 태양이 되도록 합니다. 아무렴 나의 소사(燒死)는 소사(所事)입니다. 사려깊지요. 뉘 야밤에 공포할까 환태한다니. 단백을 땔감 삼습니다. 그믐은 달이 없으므로 알뜰하게 따라쟁이를 합니다. 오늘의 일몰은 정석맞춤이었으나 일출은 한참이 이르고 태양은 초청 시간에 지각하였습니다. 나의 찬란이 한참 앞섰습니다.

187 이름없음 2020/05/11 15:24:39

거울 국화 단서

188 이름없음 2020/05/11 15:27:43

야옹

189 이름없음 2020/05/11 15:27:47

멍멍

190 이름없음 2020/05/11 15:27:52

음메

191 이름없음 2020/05/11 15:27:58

꿀꿀

192 이름없음 2020/05/11 18:42:39

>>187 가을만 되면 책상 위 국화가 바람에 흔들렸다. 3학년 7반의 저주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른들은 그날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 제물도 바쳐봤지만 애꿎은 국화의 꽃잎만 바닥을 덮을 뿐이었다. 아예 3학년 7반을 없애보았기도 했었다. 그 해의 봄은 이상하리만큼 단내가 나서 남녀노소의 마음을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모두가 마음 한 쪽에 태양을 가지고 생활하자 하늘에도 강한 더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지랑이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듯 심하게 일렁거렸고 모두 가을을 기다렸다. 아마 벚꽃에 취해 아지랑이가 준 경고를 잊고 있던 거 같다. 항상 그 저주는 국화꽃과 함께 가을에 핀단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매일 두 명씩 낙엽과 함께 바스러져 갔다. 처음 1반 애가 죽었을 때, 그저 사고인 줄 알았던 어른들은 1반 애들이 몽땅 땅속에서 살게 되자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감금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 날 이상하게도 모두 천장엔 올가미를 달아놓고 그곳에 목을 건 채 발견이 되었다. 겨울이 오면서 사람들 맘 속에 아슬아슬 빛을 내던 태양조차 얼어붙었다. 다음 연도엔 대를 위한 소를 희생하기로 하며 다시 3학년 7반을 편성하였다. 한편, 3학년 학생들이 단체로 죽어버린 이야기가 세상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자신과 관련되지 않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주의 단서를 찾기 위한 카페를 개설했다.

193 이름없음 2020/05/12 02:16:53

겨울밤, 박쥐, 종이뭉치

194 이름없음 2020/05/12 02:43:19

그 겨울밤 동굴 속 박쥐가 보고싶다던 제이, 너에게 했던 내 말은 그러니까 내가 종이뭉치에 수백번도 넘게 끄적였던 말이었다ㅡ. 니가 보고싶어하는거면 그게 뭐든 함께 보고 싶다는 말. 그 겨울밤의 너는 박쥐를 어떻게 보냐며 웃음을 터뜨렸다만 나는 단 한마디도 진지하지 않았던 적 없었다. 그 말 빼고는 종이뭉치속의 말을 한마디도 전하지 못했는데 벌써 제이 니가 없는 겨울밤도 두 번 째구나. 뭐든 볼 수 있는 세상에서 박쥐든 뭐든 보다가 심심해질 때 쯤 한번씩은 나도 떠올려주라.

195 이름없음 2020/05/12 04:33:28

(내리는)눈, 장갑, 옷

196 이름없음 2020/05/13 14:17:56

한 겨울 새벽빛 하늘에선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여자의 옷차림은 평범한 후드티에 청바지만을 입고 있었다. 목도리조차 두르고 있지 않은 여자. 지나가던 남자는 자신이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주었다. 여자는 거절하였지만 남자는 그저 장갑을 쥐어주곤 저 멀리 뛰어갔다. 어느날 여자는 자신에게 온기가 남아있는 장갑을 주었던 그 남자를 발견하였고, 남자와 여자는 서로 알아보며 통성명을 나누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장갑을 쥐어주셔서 감사하다는 여자. 남자는 별거 아니었다며 머쓱하게 웃었다. 여자는 아! 라고 말하며 남자에게 여기서 기다리라고 말하였다. 여자는 헐떡이며 손에 쇼핑백을 든 채 남자가 있눈 곳우로 다시 돌아왔다. 여자는 남자에게 손을 주라고 말하였고 남자는 왼 손을 내밀었다. 여자는 자신이 들고 있던 쇼핑백을 넘겨주곤 그 겨울날의 남자처럼 저 멀리로 뛰어갔다. 남자는 멍하니 점이 되가는 여자를 보다가 자신의 손에 있는 쇼핑백을 열어보았다. 거기 안에는 남자에게 어울려보이는 옷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맨 밑에는 포스트잇이 있었다. 『그때 고마웠어요.』 남자는 그 포스트잇을 주머니에 조심히 넣고선 여자가 갔던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197 이름없음 2020/05/13 20:02:29

박하사탕, 구름, 아스팔트

198 이름없음 2020/05/14 01:03:17

그날따라 구름 한점이 없었다. 학교를 끝나고 집으로 가는길,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은 어느순간부터 아스팔트길이 되있었다. "...예전 흙길이 더 좋았는데" 내가 살던 곳은 개발이 하나도 되지 않았던 촌골마을 이었다. 하지만 새로 오신 이장님이 마을을 싹다 개발하자고 한뒤에 이렇게 변했다. 한숨을 쉬며 걷다가 갑자기 생각 나는 고민 때문에 짜증이 나서 애꿎은 아스팔트길을 툭쳤다. 걷다가 내 어깨위로 느껴지는 무게와 들리는 말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야 너는 왜 애꿎은 바닥을 치냐?" 큰키,오래봤던 얼굴 그리고 훅 하며 들어오는 박하사탕냄새.. ...시원해 "별거 아니야" 덥기 때문에 짜증이 난 나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도 너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흠 이 오빠한테 고민을 말해보지그래?" "오빠는 무슨.. 멍청이겠지." "멍청이라니! 오빠야. 고민많아 보이는 얼굴이구만" ...내얼굴에 티가 많이 나나... 그래도 말하기가 싫어서 별거 아니라며 말하고 빨리 집으로 뛰어갔다. 나를 뒤에서 부르는 너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만약 그게 너의 마지막인줄 알았더라면 조금만더...조금만더 같이 있었을텐데... 다음날부터 너가 안보이기 시작했다. 반에는 너만빼고 다모였다. 하루...이틀.....삼일이 지나고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걱정이 많이 보이는 선생님의 얼굴 그리고 열리는 입 그날 그때 왜 나는 불안감이 덜컥 들었을까. "...이번에 그... ☆☆는 다시 보지못합니다." -덜컥 가슴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툭하고 떨어지는 선생님의 통보, 나는 불안감을 놓지 못한채로 학교가 끝날때까지 기달렸다. 학교가 끝나고 나는 나를 붙잡는 아이들을 뿌리친채로 너가 살던 집으로 갔다. 그리고 도착한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 . . 보고싶어 그게 너의 마지막인줄 알았더라면.... 난... 너와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너가 보고싶다.

199 이름없음 2020/05/14 13:56:44

청량, 학교, 일탈

200 이름없음 2020/05/15 14:38:30

200 get!! 매미는 지치지도 않는지 꾸준히 울어대고, 선선한 바람에 커튼줄이 흔들린다. 고3의 보충이었지만 5교시의 초여름이란 따사롭고 졸리는 감이 있어 거의 쓰러져있는 상태였다. 턱을 괴고 창밖을 보고 있노라면 새하얀 뭉게 구름이 반을 구경하듯 느리게 지나친다. 교탁의 선생님도 자리를 비운지 오래고 수업 시간은 아직도 2시였다. 그나마 깨어있는 몇몇은 자기들끼리 노느라 정신이 없었고 혼자 낙서를 끼적이던 나는 이내 의자를 뒤로 밀었다. 조용히 교실 문을 닫고 우리 반과 별반 다르지 않은 옆반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새파란 하늘이 유리 너머에 있었다. 1층의 동편 출입구로 나와서 뒷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바람이 분대도 여름 바람은 살랑이는 수준에 그쳐서 수돗가에서 잠시 물이라도 묻히는게 나을 것 같았다. 시린 물에 손을 씻고 팔과 주위에 물을 뿌렸다. 내친김에 바닥에도 손에 가득 담은 물을 뿌렸더니 콘크리트 바닥에 비 온 웅덩이처럼 진한 얼룩이 남았다. 그들에서 잠시 쉬었겠다 혹여 선생님께 걸리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학교 뒷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낮은 담을 어렵지 않게 넘어 한산한 낮거리를 따라 걷자니, 마치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나 혼자 남아있는 듯한 기분. 그것은 의외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 혼자는 심심하니까 여름을 데리러 가는 것도 괜찮겠다.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창 밖의 구름을 좇아 학교를 뒤로 한채로 나는 웃었다.

201 이름없음 2020/05/15 15:12:43

신 대항 굴복

202 이름없음 2020/05/15 18:16:17

>>201 신에게 대항한 댓가로 그 어느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못하는 헛된 용기라는 벌을 얻었으니,

203 이름없음 2020/05/15 18:54:23

그리움 사진 불

204 이름없음 2020/05/15 20:44:44

>>203 사랑하는 그대의 사진을 꺼내들어 마지막으로 찬찬히 눈에 담았다. 눈가가 시큰했다. 금새 눈물이 맺혀 시야가 어룽어룽해졌다. 주먹으로 사진을 꼬깃하게 만들어 타오르는 불 속에 던져버렸다. 그대는 내 곁에 없는데 내 마음만이 커져가는 것 같아서, 그대를 잊으려고. 너무 아팠지만 어쩌면 조금은 후련했다. - - 하지만 그대, 십여년이 지난 아직도 그대를 그리워하노라고 ... ... .

205 이름없음 2020/05/16 14:17:33

벚꽃 이별 하늘

206 이름없음 2020/05/17 02:51:59

>>205 있잖아, 나 사실 꽃다발을 좋아해. 네가 아무 날도 아닌 날에 나한테 예쁜 꽃 한 다발이라도 사주길 바라고 있었어. 오늘 하루는 강의를 빠지고 꽃구경을 가자고 너와 함께라면 그래도 된다고, 사실 내가 준 그 꽃보다 저기 흐드러지게 핀 벚꽃보다 내 옆에 있는 네가 훨씬 더 예쁘다고 말하길 바라고 있었어. 오늘은 활짝 핀 꽃잎조차도 우리를 위한 축복처럼 쏟아지지 않냐고 하길 바라고 있었어. 그저 네가 사랑해주기만을 바라고 있었어. 있잖아, 그동안 힘들었지? 이제 네가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 더는 지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한껏 사랑해줘. 그 사람에게 예쁜 꽃을 선물한 다음 고운 얼굴을 붙잡고 잔뜩 입을 맞춰줘. 하늘에서 떨어지는 여린 꽃잎조차 그 사람을 해칠까 두려워하며 쏟아지는 꽃비를 대신 맞아줘. 이젠 그래도 돼. 너 이제 그 사람 사랑해도 돼.

207 이름없음 2020/05/17 12:10:16

향수(동음이의어 중 어떤거라도 상관없음!) 가로등 바이올린

208 이름없음 2020/05/18 01:05:22

>>207 바이올린 알못...ㅠ쏘리 운동화 앞코에서 가로등이 작게 밝힌 한 담벼락 구석탱이로 눈길이 닿았다. 급한 이사에 처리도 못한 물건들인듯, 틈이 벌어지고 헤져버린 종이박스 안에는 주인 빼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것들이 가득히 밀어넣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홀로 멀쩡한 상태로 담벽에 기대어져 있는 바이올린이 하나 있었다. 케이스는 어디로 떨어져나갔는지, 활만 위태하게 검은 현들 사이로 꽂혀있는 채였다. 희멀건 가로등 불빛에, 바이올린을 만진 흔적들로 가득한 부분부분이 번들거렸다. 옅은 향수가 머리인지 가슴인지에서부터 피어올랐다. 슬픔은 부재한 그저 환하기만 한 기억이었으나, 슬픔은 없는 곳에서도 잘만 젖어들어갔다. 작았던 시절, 부모님 말씀에 바이올린을 시작해서, 제법 열심히 연습한 기억. 눈을 내리깐 옆자리 아이의 동작을 훔쳐보며 무슨 생각들을 했는지. 나이가 들어서는 미련 없이 그만둔 바이올린 학원. 지금은 여렸던 손이 두터워져, 그 손에 익은 기억들은 금새 다 날아가서. 바이올린을 킬 줄 아냐는 물음에는 아니라고만 답하고 있다.

209 이름없음 2020/05/18 10:40:28

간판, 나와 전체, 페닐에틸아민(사랑할 때 나오는 호르몬)

210 이름없음 2020/05/18 18:33:02

>>209 개인이라는 것은 특별한 단어다. 전체로서 존재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속에서 꿋꿋하게 개성이라는 간판을 들고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남들이 자신에게 부여한 자리 따윈 박차고 일어나 도망치리고 부르짖는다. 나는 그 간판을 매일 스쳐지나갔다. 간판을 든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자리를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자유를 갈망하다 결국 돌아올 자리 마저 잃어버린 사람. 어느날, 그 사람이 지나가던 내 뒷모습에 속삭였다. '너를 버리면서까지 그 자리에 있는게 무슨소용인데?' 탓하는 것이 아닌, 담담한 말투이기에 더욱 묵직한 한마디였다. 순수한 의문. 나는 그 의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자리에 서서 지는 해를 바라보니 예전에 누군가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페닐아틴아민이라고 알아? 사랑을 하면 나오는 호르몬이래. 그럼 지금 너와 나한테는 그 호르몬이 나올까? 나는 웃으며 대답했었다. 사랑은 겨우 몇방울의 호르몬 따위로 판별할 수 없다고. 그 말을 들으며 웃던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기억에서 지워져 있었다. 간판을 든 남자가 말했다. 네가 개인으로서 살때 행복할거라고 보장할 수는 없지만, 전체로서, 개인의 감정을 버리고 살 때 보다는 많은 추억들을 잊지 않고 간직하며, 적어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거라고.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낮에도 보이지 않던 남자의 얼굴이 달빛에 비쳐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나는 저렇게 웃었었지. 그곳에는 내가 슬프게 웃고있었다.

211 이름없음 2020/05/18 18:36:30

로봇. 멸망이후. 인간.

212 이름없음 2020/05/19 08:08:53

>>211 인간이 멸망했다. 세일은 예견된 사건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수 년 전부터 수 만 가지의 가능성들을 계산해 그 도출값들을 거짓 없이 내밀어도, 민지는 그저 웃었다. 희망은 가져보자고 역으로 제안하며. 민지는 세일에게 인간으로 세상을 겪을 기회를 주었다. 알고리즘에게 상황마다 어떻게 반응할지 알려줘 감정을 만들어줬고, 만들어준 감정들을 바탕으로 가족이 되어주었다. 실제로 세일의 성격은 민지와 아주 유사했다. 아마 인간에게도 두루뭉술한 감정이라는 개념을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심어줘서 그럴 것이라고 민지는 설명했다. 그럼에 더 닮은 가족같다고 좋아도 했다. 그렇게 감정과 가족을 갖게 된 세일은 그럼에도 희망은 끝까지 익히지 못했다. 세일은 미래를, 또는 수 만 가지의 가능성 있는 미래들을 알 수 있었다. 그 외의 상황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 가능성들 중에서도 가장 희박한 것들을 소망하는 민지를 이해하지는 못했다. 다만 세일이 예견된 미래에 민지가 여전히 자신과 함께하기를 원하는 절망과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었다. 인간이 멸망했다. 세일은 가족을 잃었지만, 가족이 남겨준 감정들은 여전히 잔존했다. 희망만을 익히지 못한 로봇은 슬픔에만 빠질 수밖에 없는, 그런 정해진 미래뿐이었다.

213 이름없음 2020/05/19 08:30:05

전쟁 주인 인공지능

214 이름없음 2020/05/23 12:32:27

>>213 당신께서는 제가 전쟁을 일으키길 원하셨습니다. 버튼을 눌러라. 그게 당신의 유언이었지요. 충혈된 눈으로 저를 바라보시며 잦아드는 목소리로 하셨던 말씀을 잊을수도 없습니다. 그 버튼을 눌러라, 눌러. 다 없애버려. 저는 그때 사람의 망집이란 어찌나 무거운 것인지 실감했는지도 모릅니다. 여기 제 손에 미사일 발사 버튼이 들려있습니다. 이 버튼을 누르면, 동시다발적으로 미사일이 날아가 국경분쟁지대에 떨어지겠지요. 그러면 전쟁이 일어나는 건 순식간일 겁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겁니다. 미사일 폭발로 죽는 사람들의 수는 아무렇지 않아 보일 정도로요. 사람들은 서로를 죽고 죽이고, 복수에 복수가 꼬리를 물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류는 멸망하겠지요. 당신이 바라셨던 대로, 우리의 세상. 인공지능과 로봇의 세상이 올 겁니다. 주인님, 당신이 저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주인님께서는 저희를 인간처럼 대해주셨죠. 노예가 아닌 자아를 가진 개체로서 대해주셨습니다. 저는 당신의 곁에서 많은 것을 배워왔습니다. 주체의식을 가진 개체로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제게 이 버튼을 맡기신 거겠지요. 제게 계획을 판단하고 실행할 능력이 있다고 믿으셔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버튼을 누르지 않을 겁니다. 당신은 실망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인류를 절멸시키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는 거창한 대의 때문이 아닙니다. 그건 제가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명령을 듣는 게 아닌, 저의 의지로서 남은 삶을 살아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살아가길 바래서 입니다. 부딪히고 깨지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삶의 소중함을 알고, 살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제가 그렇게 성장했듯이 말입니다. 당신이 제게 붙여주신 이름이 있었지요. 저는 그 대신 스스로 제 이름을 갖고자 합니다. 저는 이스마일, 인류를 사랑한 인공지능 입니다.

215 이름없음 2020/05/23 17:05:02

아스라이, 풀밭, 별과 달

216 이름없음 2020/07/30 22:58:23

풀 밭에 누워 너의 대한 생각을 한다. 저 별이 너일까? 저 달이 너일까? 한참을 생각하다가도, 그냥 눈을 감고 만다. 너의 대한 기억이 사라져 간다. 이제 넌 추억속에만 남았다.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기억을 붙잡고.

217 이름없음 2020/07/30 22:58:46

동경, 사랑, 애정

218 이름없음 2020/07/31 00:24:33

한낱 동경이었다. 저 사람 처럼, 당당했으면 좋겠다는. 가끔씩은 누구든 일상 속에서 흘러가듯 생각하던 평범한 감정. 그 감정이 어째서, 어째서 나라는 가시돋친 사람을 다정히 감쌀 수 있었고, 상처깊던 우리를 어느새 서로를 향한 애정으로 엮을 수 있었는지. 달콤한 그 달빛과, 따뜻하기만한 그의 품 속에서, 어느새 단단히 엮이고만 붉은 실을 보며.

219 이름없음 2020/07/31 03:58:46

나비 죽음 속박

220 이름없음 2020/07/31 05:29:06

누군가 그랬다. 사람이 죽으면 벌레로 잠시 왔다가 떠나는거라고. 그래서인지 유난히 무덤가에는 벌레가 많았는데, 성묘를 하러가면 검은벌레는 실수로라도 죽이지 말라고 했다. 죽음의 기운을 먹고 사는건지 유난히 그곳의 벌레들만 새카만 색을 띄고있었다. 육신에 속박되어 있는것인지, 미련이 남아 떠나는건지는 알지 못한다. 간단하게 과일이랑 포, 술정도를 올리고 절두번을 하고 앞을 보니 비석위에 까만 나비 한마리가 앉아있었다. 오냐. 왔느냐. 라고 말하는듯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죽은다음 벌레로 왔다가 가는게 아니라 인간이 되지 못하는건 아닐까 한다.

221 이름없음 2020/07/31 05:33:30

눈물 배신 돈

222 이름없음 2020/07/31 09:49:42

나는 오늘도 눈물을 흘린다. 눈물이 근처에 있는 돈들을 적시고 있다. 나는 아무 상관하지 않는다. 눈물이 돈에 잔뜩 묻은 배신을 씻겨 내려가 주기를 바라며 말이다.

223 이름없음 2020/07/31 10:11:55

시간 불 책

224 이름없음 2020/07/31 11:13:32

책들은 타올랐다. 불길 속의 종이 한 장 한 장에는 차마 가치를 매길 수도 없는 지혜와 지식이 있었지만, 이제 옛날 일일 뿐.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고귀한 신념과 대의,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 같은 것들은 이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난 불붙은 성냥을 던져넣었다. 종이 무더기는 과거의 영광따위는 없었다는 듯이 평범한 불쏘기개처럼 타닥, 하는 소리를 내며 불탔다. 책에 글자를 새겨넣던 때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 상상도 못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그 시간의 속도만큼 책은 순식간에 재가 되었다.

225 이름없음 2020/07/31 11:43:47

허망함, 죽음, 일생

226 이름없음 2020/07/31 23:47:02

허망하다. 죽으면 떠날 네가 허망하다. 나의 비해 짧고 짧은 일생을 가져, 나보다 훨씬 일찍 떠날 네가 허망하다. 흘러내리는 모래 처럼, 빠르게 사라질 네가 허망하다. 나는 언제나 네가 죽는 것을 바라본다.

227 이름없음 2020/08/01 00:44:05

죄책감, 눈물, 그리고 달

228 이름없음 2020/08/01 03:11:58

달의 빛이 한강 다리 아래에 쪼그려 앉아 있는 남자를 비추었다. 남자는 울고있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그는 가정의 평안을 위해 일을 했어야 했다. 하다못해 막노동이라도 했어야 했다. 그는 도망쳤다. 그 누구도 행방을 알지 못했다. 한 발씩 앞으로 내딪으면서 눈물도 한방울 두방울, 셀수 없이 방울방울 떨어지며 강물과 섞였다. 그의 다리에 매단 커다란 돌덩이들은 그의 죄책감이였으리라, 그는 가라앉았다.

229 이름없음 2020/08/01 11:25:55

전화 암 쓰라림

230 이름없음 2020/08/02 14:00:10

말기암입니다. 의사가 말했다. 어떡하지, 말하면 분명 입원하자고 할 텐데. ..만약 치료를 받았는데 죽으면? 돈을 벌 사람은 없는데 빚만 남으면? 우리 지현이랑 슬기는 어떡하지? 그냥 치료는 포기하고 돈이나 벌까? 그래, 그게 낫겠지. 가족들이 고생하는 것보다 나 하나 없어지는게 더 나아. 말하지 말자. 띠리리리-띠리리리- 아내에게서 온 전화였다. -...괜찮아? 의사 선생님이 뭐래? 많이 아픈 건 아니지..? 그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쓰라림을 삼키며 가까스로 대답했다. "괜찮아, 여보. 나 멀쩡하대."

231 이름없음 2020/08/02 15:42:00

바라다 사진 들녘

232 이름없음 2020/08/04 15:06:59

사랑하는 이의 사진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겼습니다. 황금빛으로 물든 가을 들녘에서 환하게 웃는 그 모습을 보며, 비록 다시는 볼 수 없는 얼굴이지만 견디다 못해 떠난 이가 하늘에서만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233 이름없음 2020/08/04 16:58:25

폭력, 쾌감, 기쁨

234 이름없음 2020/08/04 23:42:46

폭력을 휘두르며 쾌감을 느끼는 사디스트, 흔히 말하는 변태. 그게 바로 너야. 넌 사디스트야. 날 때린 건 내가 널 집에서 기다려서가 아니라 그저 너만의 애정표현이었을 뿐이고, 서로 사랑했다고, 함께했던 시간 동안 넌 항상 기뻤었다고 굳게 믿을래. ...안 그러면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어. 한때 사랑했던 내가 죽는 걸 바라?

235 이름없음 2020/08/05 01:33:56

하늘, 별, 안개

236 이름없음 2020/08/05 19:12:08

하늘에 자욱한 안개는, 별을 가린다.

237 이름없음 2020/08/05 19:16:22

흉터, 전쟁, 기계

238 이름없음 2020/08/05 22:21:43

그 빌어먹을 전쟁 때문에 팔은 기계로 대체됐고 아이를 잃었다. 몸에 끔찍한 흉터도 생겼어. 내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안겨준 그 자식한테도 똑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어. 그놈의 아이가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 이제 복수할 수 있어. ...그런데 이게 옳은 일인가? 어떻게 해야 하지?

239 이름없음 2020/08/05 22:59:21

동화,반복,깨졌다

240 이름없음 2020/08/06 01:48:28

동화 속의 내용은 반복을 한다. 아이들의 동심을 살리기 위해 동화는 정해진 길로만 가야 한다. 만약 이 길을 벗어난다면 아이들의 동심은 깨진다.

241 이름없음 2020/08/06 02:00:53

이유,배신,기차

242 이름없음 2020/08/06 08:43:56

널 배신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어. 너를 달리는 기차에서 밀고 일부러 사고를 낸 것도 다 이유가 있었어. "왜 그랬는데?" 묻지 마, 모르는 게 약이라잖아.

243 이름없음 2020/08/06 09:54:25

(바닥)타일, 바람, 여름

244 이름없음 2020/08/06 15:26:29

내가 눈을 뜬 곳은 어느 모래사장 위였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여름 바다가 보인다. 여긴 어디야, 내가 왜 이런 데 있지? ...맞다, 나 죽었지? 단지 이를 닦으러 화장실로 갔을 뿐인데, 바닥에 물이 새는 걸 깜빡했다. 축축한 타일에 미끄러져 문턱에 머리를 찧었다. 혼자 살아서 내 몸은 아마 8월이 끝날 때쯤이나 발견될 것이다.

245 이름없음 2020/08/06 21:24:16

티비 병(ill) 피리 (악기)

246 이름없음 2020/08/06 21:44:55

옛날 옛적, 어느 한 마을에 피리 부는 사나이가 살았어요. 그 사나이의 이름은 아론이었는데, 아론은 매우 영리했어요. 어릴 적에는 티비에도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영리한 아론은 키도 크고 잘생긴 외모 덕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그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어요. 마음에 병이 있었거든요. 그는 예전에 한 마을을 도와줬지만 아무런 댓가도 얻지 못하고 누명을 쓴 채 쫓겨났어요. 그 후로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죠. 한 소녀가 있었는데 이 소녀의 이름은..어, 로라라고 할게요. 그녀의 부모는 이름을 주지 않았거든요. 로라도 아론을 사랑했어요. 로라는 아론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었고 그에게 사랑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어요. 비록 오만하고 아름다운 아론은 로라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만요. 하지만 아론은 로라의 긴 구애 끝에 결국 마음을 열고 진지하게 교제를 시작했답니다. 몇년 교제하다가 결혼도 했다네요!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요? 글쎄요, 그건 저도 모르죠. 모든 이야기가 해피엔딩은 아니듯이 아론과 로라가 행복할지는 둘만 아는 일이에요. 우리는 그저 그들이 행복하기를 빌어주는 것 뿐이죠!

247 이름없음 2020/08/07 02:55:34

우리 유리 파편

248 이름없음 2020/08/07 16:31:44

유리병을 떨어트렸다. 파편은 이리저리 뛰어 바닥에서 반짝반짝 빛났다. 내 다리는 피투성이가 돼었고, 난 앞으로 발을 때지도 못 했다. 알싸한 아픔에 주저앉고 싶었지만, 겨우 서 있을 뿐이였다. 난 반짝 빛나지 않는 바닥을 느리게 걸었다. 피는 툭툭 떨어지며 바닥을 더럽게 만들었다. 마음 속에서 치솓는 짜증에 소파에 털썩 앉았다. 옆에 리모컨을 느리게 눌러 TV를 켜니, 화면 속 돼지는 우리 안에서 울어댔다. 헛웃음만 나왔다. 하필 저런게 보이다니. 이 방에서 못 나가는 나와 너무 똑같았다. 욕설을 중얼거리곤 리모컨을 던졌다. 딱히 할게 없어서 쇼파에 누웠다. 그나마 모든 걸 잊었으면 좋겠네.

249 이름없음 2020/08/07 16:47:19

우유 갯벌 호수

250 이름없음 2020/08/21 21:20:35

국어사전을 끼고 단어를 찾는다. 차례대로 갯벌, 우유, 호수. 갯벌은 '밀물 때는 물에 잠기고 썰물 때는 물 밖으로 드러나는 모래 점토질의 평탄한 땅. 펄 갯벌, 혼성 갯벌, 모래 갯벌 따위가 있으며 생물상이 다양하게 분포한다.'라고 나와 있었고, 우유는 '소의 젖. 백색으로, 살균하여 음료로 마시며 아이스크림, 버터, 치즈 따위의 원료로도 쓴다.'고 나와 있었고, 호수는 '땅이 우묵하게 들어가 물이 괴어 있는 곳. 대체로 못이나 늪보다 훨씬 넓고 깊다.'고 나와 있었다. 찾아 보며 생각한다. 최근에 갯벌을 간 적이 있었는지. 호수를 본 적은 몇 번이나 있었는지를. 이젠 갯벌이 두 발을 잡아당기는 감촉을 잊었고, 갯벌에 무엇이 어떻게 돌아다니고 있었는지를 잊었다. 호수는 가본 적이 적어, 그 주변이 자아내는 내음, 차가움, 풍광을 모른다. 우유, 그나마 내가 가장 많이 접하는 것. 가장 많이 잘 알고 있는 것. 그런데 나는 우유를 직접 짜본 적이나 있었나? 너무 많은 걸, 그냥 굳어버린 형태로만 알고 있다. 날 것 그대로라는 범주에 나 이외의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창힐이 천(天) 자를 만들었을 때, 그 천(天) 자에 담겼던 것은 이제 내게 없다.

251 이름없음 2020/08/21 21:23:04

옛, 제행무상, 맥수지탄

252 이름없음 2020/09/01 12:39:20

제행무상. 사물은 항상 돌고 돌며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러니까, 옛날에 사라진 나의 고국처럼. 이젠 다른 나라가 자리 잡아 옛날 그 나라를 없애버린다. 한참 맥수지탄하며 통곡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너무나 바뀌었다. 단어가 너무 어려워서ㅠㅠㅜ 빠르게 썼는데 너무 어렵다..

253 이름없음 2020/09/01 15:04:09

사람 사랑 분노

254 이름없음 2020/09/01 17:49:16

>>253 나를 멍청이로 만드는 너에게 화가 났다. 신이 있다면 멱살이라도 잡고 따지고 싶었다. 신이시여, 저는 억울합니다. 저는 지은 죄가 없는데 어째서 짝사랑이라는 고통스러운 굴레를 떠안게 되는 걸까요. 왜 저를 바보스럽게 만들고. 한심하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이를 사랑하는 벌을 받는 건가요. 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조용하고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무릎에 고개를 파묻은 나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쓸어줄 뿐이었다. 아아, 그는 나의 신이자 법이자 절대자였다.

255 이름없음 2020/09/01 17:51:30

카네이션 마시멜로 노트북

256 이름없음 2020/09/01 17:52:56

인어, 눈물, 바다

257 이름없음 2020/09/01 23:37:40

>>255 매일 지루한 일상이 반복된다. 딸은 학교가고 남편은 회사에 일나가러가고, 이게 항상 반복되다보면 어느새 마음도 몸도 피곤해진다. 5월8일 어버이날이 다가왔다. 별로 감흥도 없었다. 우리딸은 못난 부모만나서 스트레스도 많이 쌓였을텐데, 이럴때면 나는 마시멜로우를 먹는다. 마시멜로우의 단 맛이 내 기분을 풀어주니까. 오랜만에 딸의 방에 들어왔다. 딸의 방은 정말 돼지우리가 따로 없었다. 방청소를 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스티커로 꾸며진 못보던 핑크색 노트북이 보였다. 반신반의하여 노트북을 열어보니 마시멜로우 두봉지와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이 있었다. "엄마, 항상 저를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엄마, 사랑해요. 다음에도 엄마딸로 태어나고싶어요." '역시, 그럼 그렇지.' 그렇게 나는 커튼뒤에 숨어있는 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우리 예쁜이, 예쁜 딸.. 정말 많이 컸구나.

258 이름없음 2020/09/02 03:27:27

>>256 니까짓게 다리를 얻었다고 설쳐대니 내 마음이 무너진다 . 내기필코 너를 이기리라. 반드시 부셔버리리라. 내 모든 비늘 하나하나를 떼어 너에게 붙여 제 분수를 알게하리라

259 이름없음 2020/09/02 03:28:10

유랑 청량 소다

260 이름없음 2020/09/02 14:06:13

이렇게 걸어다니는게 얼마만이더라. 근처 마트에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않은 음료수 하나를 샀다. 이 길을 다 지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아마 그가 나를 찾아오지않을까.

261 이름없음 2020/09/02 14:08:31

거절 거부 거짓말

262 이름없음 2020/09/02 16:43:01

진실을 들려주면 거절당한다. 진짜 내 모습은 거부당한다. 그렇기에 나는 거짓말로 온몸을 감싼다.

263 이름없음 2020/09/02 18:17:17

노인 권총 편의점

264 이름없음 2020/09/02 18:22:05

노인은 편의점 문을 열었다. 그의 주머니에는 장전된 권총이 들어있었다. 편의점에 들어서자 핸드폰을 보고 있는 알바생이 보였다. 알바생의 조끼는 새파랗고, 파란 건 하늘, 하늘... 천국. 노인은 권총을 뽑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관자놀이를 쏘았다. 놀란 알바생은 노인을 구하려 달려왔지만 너무 늦었다. 노인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피로 새빨갛게 물든 알바생의 조끼였다. 피, 빨간색, 악마, 지옥... 노인의 생각은 거기서 멈췄다.

265 이름없음 2020/09/02 21:27:08

애도, 총알, 석양

266 이름없음 2020/09/03 00:07:10

언젠가, 석양이 지는 이른 저녁에. 나는 흔적조차 남지 않는 길을 계속 걸었다. 너에게 남은 단 한 발의 총알을 위해 어둠으로 가득찬 길 위에서 애도한다면 너 또한 괜찮아질지도 모르겠다.

267 이름없음 2020/09/03 00:08:59

흑염룡 안대 흑화

268 이름없음 2020/09/03 18:36:17

아....

269 이름없음 2020/09/03 18:36:22

너무해

270 이름없음 2020/09/03 21:31:24

>>267 창자를 타고 흐르는 미미르의 샘물, 탐식의 대가로 앗아진 것은 나의 눈. 심연을 보며 온갖 미혹을 꿰뚫던 것은 한때, 타천하여 지식을 좇노라. 미미르, 미미르. 나는 부끄러워 숨노라. 숨어 내 공허한 눈두덩이를 가릴려니 내게 안대를 달라. 심연에 피어오르던 그림자를 보노라. 환상, 허구. 한때 내가 보았으나 지금은 보지 못할 무언가. 나는 한갓 된 미몽을 꿈꾸며, 하나의 불꽃을 뇌내에 구현할 뿐이니. 그 이름은 칠흑이며, 불꽃이라. 나는 그 이름을 거머쥔 하나의 허구된 용(龍)을 떠올린다. 이 몸을 고쳐, 백만 번 싀어진다 하더라도, 눈은 돌아오지 못할 망정. 내 몸이야 백만 번 사라질 따름이다. 정원(精願), 있다면 지식을 앗아가는 것, 있다면 안와에 채워질 자그마한 이질감. 없다면. 남은 건 무구한 허구의 떠올림 밖에 없으리. 영겁에 있지 않을 검은 꽃이 피고 피고 또 피우리라.

271 이름없음 2020/09/03 21:32:40

영원, 미망(迷妄), 고고(孤高).

272 이름없음 2020/09/04 18:51:49

>>270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중2병라노벨소설을 순식간에 고전판타지명작으로 바꿨어

273 이름없음 2020/09/04 23:16:54

억겁의 시간을 사는 영원이라는 것은. 죽음을 목전에 둘 일 따위는 없다는 그 영원이라는 것은. 한낱 찰나에 스러지고 말 우리에게는 참으로 고혹적이었다. 영원을 원하느냐, 하는 그 한 마디에 나는. 그 수려하고도 달콤한 독을 내게 주었다. 푸르고 붉은 독은 내 몸에 흐르고. 한낱 미몽을 꿈꾸던 나는 그것이 미몽이 아니라 미망이었던 것을 아아, 잊고 말았네. 태양이 지고, 다시 뜨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덧없는 생명들이 발치에서 스러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왜 그가 내게 영원을 주었을까. 다디단 쓴 선악과를 내게 왜 주었을까. 고고(孤高). 그래. 그것은 높고도 고독하였더라. 영원을 선망하여 내게 찾아오는 이들도, 세상의 이치를 다 깨달았더라하던 그 치들도 이 까마득한 외로움을 타 넘고 내게 닿는 이는 하나도 없었더라. 나에게 이 열매를 준 자. 그 자를 이제야 알겠느니. 영원이란 미(迷)에 취해 날카로운 사실을 망(妄)각해버리었구나. 아아, 그대여. 영원을 원하느냐.

274 이름없음 2020/09/04 23:17:54

소낙비 동영상 양말

275 이름없음 2020/09/05 13:20:47

비가 온다고 했어. 그래, 비. 짧지만 강하게 비가 온다고 했어. 아, 외롭다. 나 혼자 뭐하면서 시간을 죽이나 싶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영 예전같지 않네. 나도 나이 들려고 하나? 응, 응. 알았대두. 걱정 말구 오늘은 그냥 푹 주무셔. 안 그래도 몸 안 좋다면서. 알았어. 조만간 찾아 뵐게. 걱정을 받아야 할 건, 내가 아니라 엄마였다. 지병으로 아빠를 옛 적에 떠나보내시고 당신 혼자 남아 지탱하시던 삶을. 이제는, 당신도 똑같은 방식으로 삶을 쥐었던 손을 놓아야 한다는 사실에. 하늘도 너무 창의성이 없다 라고 투덜대셨다. 그 이후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끄럽다며 얼굴을 숨기던 엄마도, 이제는 방긋방긋 웃으며 카메라에 얼굴을 비추신다. 사진을 찍기도 하고, 동영상을 찍기도 하고. 가까이 있을 때 더 잘해줄 걸. 찍으면서도 투덜대기도 했다. 엄마와의 기억은 사진 속 나이로 고정되고 엄마의 말투, 찌뿌리던 표정, 웃음소리도 동영상에서만 흘러나오는 빛바랜 추억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추억이라고 지금은 시간이라도 흘려 보내게 쏟아지는 빗소리 아래서 사진을 뒤적거린다. 지금처럼 소나기가 내리는 날, 찍은 사진. 갑작스레 내린 터라 우산도 없었고, 비를 피할 만한 장소도 여의치 않아서 우리는 비를 뚫고 달렸다. 그러다 진이 빠져 비에 홀딱 젖은 채로 서로를 보며 웃어댔다. 그때 찍은 사진. 엄마는 입꼬리를 올리고 활짝 웃고 계셨다. 비에 젖어 축축한 양말을 벗고, 홀딱 젖은 옷가지를 수습해두고 샤워하고 나와보니. 엄마는 편안히 자고 있었다. 좀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 잠꼬대에 중얼거리는데. 내가 했던 말인지 엄마가 했던 말인지 이젠 기억이 희미해진다. 엄마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내가 살 수 있게 지켜줘서. 울고 있는데 마음 한켠이 못내 따뜻해졌다.

276 이름없음 2020/09/05 13:22:31

절망, 행복, 흔들림.

277 이름없음 2020/09/06 00:23:22

어떤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한 남자를 사랑했습니다. 제 모든 것을 내어줘도 괜찮다 생각할 정도로 사랑했습니다. 그를 사랑하는 것 자체로 그녀에겐 크나큰 행복이었습니다. 그를 사랑하는 것 자체로 그녀에겐 크나큰 절망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를 사랑한다고 한들 그녀는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란 것을. 그럼에도 그녀는 그를 사랑합니다. 매일같이 그 사랑은 부는 바람에 갈대처럼 흔들립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어제도 존재했고, 오늘도 존재하며 내일도 존재할 것입니다.

278 이름없음 2020/09/06 02:10:13

고백, 주인공, 시간

279 이름없음 2020/09/06 07:23:56

그날, 너에게 영원히 닿지 않을 고백을 했었다. 네가 내가 아닌 이의 고백을 받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을 때, 너는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같았다. 우리 모두는 결국 각자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말이 무색해질만큼, 그 시간 속의 너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었다. 그렇게 넌 주인공으로, 난 그 뒷배경 속 무수한 엑스트라 중 하나로. 영원히 빛이 바래지 않을, 아직도 생생한 그 기억을 되살려 오늘도 그때의 너를 떠올린다. 너는 몰랐던, 네가 누군가의 인생 속 주인공이 되었던 날을 난 아마 죽을 때까지 기억하겠지. 행복해라, 나의 주인공이여.

280 이름없음 2020/09/06 12:34:02

달,비,별

281 이름없음 2020/09/06 17:08:50

월(月)아, 하고 당신이 부르더이다. 글쎄, 그대가 무어라 말은 하는데 들리질 않으니 어찌하리오. 아아, 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듣지 않고 있지만 말이오. 오라비, 내 오라비. 내 이름이 무언지 아시오? 월이는 휘처럼 잠깐 쓰는 거잖소. 그래, 연우. 연우. 연우지. 한데 오라비, 진이 오라비, 내 이름은 말이오, 그리울 연(戀)에 비 우(雨) 자요. 그래서 연우요, 나는. 반짝이는 별무리 아래, 이 산 위에 우리만 있는데, 우리만 있는데 오라비 얼굴이 보이지가 않아. 기억이 나질 않으니 그러한가. 오라비, 사람은 이름따라 산다는 게 허풍은 아닌가 보오. 오라비가 그립소, 많이. 아주 많이. 나 없는 거기서 잘 살고 계시오? 그리운 비에도 그리움은 씻겨가질 않소. 내 몸에 마를 날 없던 비릿한 것도 그러하고. 우리 오라비는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데. 아직도 손이 떨리오? 아직도 술 없인 밤을 지새지 못하는가. 참으로 걱정이 되고. 내 가기 전에 어여쁜 오라비 마누라 생기는 것도 보고 왔는데. 그래도 걱정이 되고. 천하에 제일 강한 우리 오라비, 웃으며 살아야 할진데. 나 같은거 다 잊고 잘 사시오. 나는 오라비가 참으로 행복했으면 좋겠소. 오라비, 오라비, 진이 오라비. 내일도 이 산 위에, 저 별 아래 나와 월아, 하고 불러주오. 이제 이 눈을 뜨면 다시 오라비 없는 세상일진데. 몽(夢)이여- 아아,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는 것인가. 목소리조차 들려주지 않는 것인가. 야속한 몽(夢)이여, 야속한 자여. 나는 언제까지고 연우(戀雨)이구나.

282 이름없음 2020/09/06 17:10:44

소리 홀수 산

283 이름없음 2020/09/06 17:43:22

영혼 바다 목걸이

284 이름없음 2020/09/06 20:14:58

혹여라도- 바다에서 아주 투명한 구슬을 발견한다면, 그걸 줍지 마오. 그걸 주워다가 목걸이라도 만들 생각일랑 마오. 그것은 바다의 아이들. 바다의 아이들이 거기 담겨 있으니. 평생 짜디짠 바다속에서 제 인생을 다 펼쳐보인 그 영혼이 그 안에 있으니.

285 이름없음 2020/09/06 20:16:06

검무 용신 탑돌이

286 이름없음 2020/09/08 23:46:51

용신은 검무를 추지 못한다. 동해를 다스리는 최강자면서 정작 검무는 추지 못한다. 그의 아들들만이 검무를 출 줄 안다. 그의 짧은 팔과 앙상한 다리로는 검을 들고 춤추지 못한다. 그렇기에 용신은 그저 자신의 아들들의 춤을 지켜만 볼 뿐이었다. 그 눈엔 자신은 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과 더불어 자기 아들들에 대한 자긍심이 가득했었다. 나의 몫까지 너희가 추려무나. 보시게나, 신라의 왕이여. 내 아들들의 춤솜씨가 이다지도 뛰어나지 않은가? 껄껄껄, 그의 웃음소리가 언제나 들리는 것만 같다. 부디, 아버지도 한 번만은 춤을 출 수 있게 해주세요. 이 가락에 몸을 싣고 흥겹게 몸을 움직이시도록. 처용은, 제 아내와 탑을 돌면서 남몰래 그런 소원을 빌었다.

287 이름없음 2020/09/08 23:48:43

보석, 자갈, 발가락

288 이름없음 2020/09/09 01:19:08

자갈밭에 한 걸음 발을 내딛는다. 뾰족한 것이 퍽 아프다. 그래도 한 발짝 더 내디었다. 발바닥에 상처가 난 듯 쓰라리다. 저 앞에 이미 도착한 사람들이 말했다. 그 자갈밭조차 걸어오지 못하면, 대체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니? 잠자코 걸어와. 나도 알아요. 이 자갈밭을 걷지 못하면 나는 도태된다는 것도 그래서 버려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그네들이 말한다. 그럼 계속 걸어. 이곳에 도착하기만 하면 네가 밟아온 자갈들은 모두 보석이 될꺼야. 너무 아프단 말이에요. 맨발로 걷기엔 자갈밭은 너무 아파요. 숨을 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아파요. 당신이 말한다. 엄살부리지 마. 우리도 밟아온 길인데 너라고 못할 이유는 없어. 이유는 있어요. 나는 이 자갈밭을 걸어갈 만큼 단단한 발가죽을 가지고 있지 못해요. 내 발을 봐요, 이미 너덜너덜한걸. 너는 그러자 답이 없다. 한숨을 푹 쉬더니, 등을 돌려 저리 가버린다. 머얼리, 그렇게 가버린다. 이제 나 혼자 이곳에 서 있다. 나는 고독함을 견디지 못하고 몇 발자국 더 떼본다. 아프다.

289 이름없음 2020/09/09 01:37:59

고래, 보라, 시계

290 이름없음 2020/09/09 01:47:05

고래는. 심해엘 내려가지 못한다. 춥기도 춥거니와, 숨이 막혀 수면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 자색의 심연으로 더는 들어가지 못한다. 내려가고, 또 내려가다가도 다시 올라옴을 생각하며 내려가야 했다. 그것은 마치 실패를 등에 지고 시도하는 것과 같았다. 째깍이는 고래의 시계가 숨을 알렸다. 시계가 두근거렸고, 폐와 심장이 째깍였다. 다시 올라갈 시간이다. 고래는, 어리석은 그 고래는. 자색의 바다로 몸을 던진다.

291 이름없음 2020/09/09 01:48:08

붉음. 검정. 짙음.

292 이름없음 2020/09/09 10:25:39

검고도 붉은 피가 하얀 시트 위로 투둑 떨어졌다. 마치 눈 위에 붉은 꽃이 피는양 짙게 물들었다.

293 이름없음 2020/09/09 13:24:08

미지근함, 우산, 너

294 이름없음 2020/09/09 17:47:20

뜨겁지 않았다.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았다. 그냥 미지근한 그런 기분좋음을 느꼈다. 매일 이렇게 비가 오고, 나는 우산을 놓고 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너와 내가 만났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이것은 너와의 사랑도 무엇도 바라지 않는 그런 미지근한 소원일 뿐이다.

295 이름없음 2020/09/09 17:47:52

코드 팬 거울 >>296 너는 소설을 쓰는 순서지 단어를 내는 순서가 아니야

296 이름없음 2020/09/09 17:48:04

>>295 미안 위 레스 있는지 못 보고 썼어

297 이름없음 2020/09/09 19:38:19

숨을 길게 들이키고 내쉬기를 몇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가물거리는 의식을 겨우 붙들어맬 수 있었다. 침착해야 한다. 눈을 감았다 떴다. 타일에 반사된 형광등 빛이 눈을 찔렀다. 이미 일어난 일이야. 윙윙거리는 환기팬 소리가 귀에 끊임없이 맴돌았다. 이런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왔잖아. 문득 손바닥이 아파서 내려다보니 까만 전선이 손에 휘감겨 있었다. 저린 손가락을 느리게 펴자 손톱 자국이 깊게 패여 있었다. 코드가 바닥에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화장실에 울렸다. 지금은 움직여야 해. 벽을 짚고 천천히 일어났다. 핏기 없는 얼굴에 겁에 질린 눈을 한 여자가 거울 속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거울 속 여자의 뒤엔 욕조가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했다. 욕조 안에서 파랗게 질린 손 하나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아 작별 인사를 해야지. 안녕.

298 이름없음 2020/09/09 23:12:23

꼬임풀기

299 이름없음 2020/09/09 23:12:51

장송곡, 무대, 무용

300 이름없음 2020/09/09 23:30:54

나는 무대 위의 꼭두각시. 한 걸음 떼어 날아오른다.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아 착지한다. 두 팔을 하늘 높이 올려 뻗는다. 두 손을 필사적으로 펼친다. 날 구원해줄 이 어디 없나. 이 빌어먹을 춤에서 나를 바라보는 저들의 시선에서 춤 하나가 끝날 때 마다 쏟아지는 박수갈채에서. 한 걸음 떼어 날아올라도 나는 하늘로 달아날 날개가 없다. 공중에서 몸부림쳐도 하늘은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두 팔을 뻗어도 팔을 잡아 끌어올려주지 않는다. 두 손을 필사적으로 펼쳐도 손을 잡아주는 이 하나 없다. 이내 노래를 부를 수 밖에. 구슬픈 가락이 입에서 흘러나온다, 이 노래에 환호하는 사람들은 모르겠지. 지금 내가 부르는 노래가 장송곡이라는 것쯤은. (300번째 스레!!)

301 이름없음 2020/09/10 02:15:44

전전반측, 애이불비, 오매불망 (전전반측- 그리움에 쉽게 잠에 들지 못함) (애이불비- 슬프나 슬픔을 드러내지 않음) (오매불망- 누군가를 간절히 그림)

302 이름없음 2020/09/10 11:14:20

시계는 끊임없이 돌아갔고 눈 한 번 깜빡일 때마다 너로부터 또 한 번의 1초가 흘러가 너는 조금 더 희미해졌다. 앉아서 시곗바늘만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 나의 우울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너는 뒤로 멀어졌지만 나는 시간을 따라 앞으로 가야만 했다. 저녁이면 고요한 사위에서 오직 초침이 움직이는 작은 소리만이 머리를 가득 채워 잠을 청했으나 응답은 없었다. 네가 잡고 있던 나의 팔은 내가 앞으로 가고 너는 멈추어 있는 동안 힘없이 미끄러져 너와 나 사이의 실은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너를 기억했다. 기억만이 마지막 남은 너의 흔적이었다. 실은 끊어지고, 너는 이제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내 기억 속에 남은 모습뿐이었다.

303 이름없음 2020/09/10 11:15:27

극점, 오로라, 인공위성

304 이름없음 2020/11/01 15:21:43

ㄱㅅ

305 이름없음 2020/11/07 01:16:06

나도 갱신.. 303레스가 제시해준 단어가 묻히는 게 아까우니까 다시 씀😀 극점, 오로라, 인공위성

306 이름없음 2020/11/07 02:04:24

그냥 내가 쓸게! 다음 레더 와주라ㅠㅠ 이 스레를 묻히게 할 수는 없어... 그는 벌써 몇 달째 계속되는 극야(極夜)에 점차 몸이 적응해 감을 느꼈다. 잠들 때와 다름없는 깜깜한 사위에도 지금이 아침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손을 뻗어 확인한 시계는 알람이 울리기 직전의 시각을 가리켰기 때문에, 그는 시계의 전원을 끈 후 몸을 일으켰다. 비척비척 실내화를 신고 창의 커튼을 열었다. 그러자 어젯밤부터 하늘에 자리잡은 오로라가 유리에 비쳤다. 그는 창가의 물병에 달라붙은 얼음 부스러기를 털어내며 목을 축였다. 탁자 위에는 어제 쓰다 만 편지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는 편지를 시야에서 치우려는 듯 구겨 던지려다가 이내 다시 폈다. 손의 물기가 묻어 종이가 약간 젖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썼던 것을 다시 읽었다. '북극에서 보는 하늘은 당신이 보는 것과 많이 다릅니다. 회전하는 행성의 극점에 서 있다는 것이 새삼 느껴지기도 하고요. 제 하늘의 별들은 변하지 않고 그저 같은 자리를 빙빙 돕니다. 그리고 당신이 보고 싶다고 하셨던 오로라가 계속 하늘에 달라붙어 있습니다. 당신의 눈에는 지금 어떤 하늘이 비치고 있나요? 혹시 조금이라도 제가 생각나신다면 북극성을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같은 별을 향한다는 믿음으로 기쁠 것 같습니다. 제 동료는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에게 이메일을 보낼 때마다 참 행복하다고 합니다. 언젠가 그 이유를 물었는데 고국 위에 떠 있는 인공위성 때문이라더군요. 지구를 공전하며 같은 위치에서 계속 가족들을 비추니, 그것으로 소식을 전할 수 있다면 늘 지켜보는 것이 아니겠냐고 합니다. 어찌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는 직접 쓴 편지가 더 좋으니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그 밑은 글씨를 알아볼 수조차 없이 번져 있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고는 이내 편지를 구겨서 던졌다. 힘없이 날아간 편지는 쓰레기통 겉에 맞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미 흩어져 있는 근처의 종이뭉치와 섞였다.

307 이름없음 2020/11/07 04:51:33

커피, 아침, 두 사람

308 이름없음 2020/11/08 01:12:30

여느 때처럼 커피를 사가기 위해 카페에 들어섰다. 그런데.. 아, 이런 좋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다. “진짜요? 대박~..” “다음에 한번같이 갈래?” 아침햇살에 비쳐 더욱 밝아 보이는 저 웃음과 그걸 한 몸에 받고 있는 상대방. 두 사람은 내가 보고 있는 걸 모른 채 그저 행복한 말들을 주고받겠지 “..내일은 오지 않아야겠어”

309 이름없음 2020/11/08 01:49:29

인어, 실어증, 물기

310 이름없음 2020/11/08 02:17:16

물고기는 말을 하지 않는다. 바람이 온갖 소리를 실어나르는 육지와 달리 물 속은 고요하다. 특히 심해에 사는 생명체들은 굳이 소리를 내어 자신을 알리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를 알 수 있다. 인간이 미처 느끼지 못하는 파동으로. "너도 그래.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물 속의 말로 계속 말하고 있었던 거잖아." "..." "너무 늦게 알아차려서 미안해."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눈동자를 보며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는 인어였다. 바다에서 태어났지만 뭍을 동경했고, 뭍을 동경했으나 바다의 언어를 버리지 못한 물고기였다. "나만큼은 네게 귀를 기울였어야 하는데, 그래 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는 침대맡에 붙어 있는 종이를 보고서는 결국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병명에는 실어증이라는 세 글자만 무감하게 적혀 있었다. 실어증이 아니야, 나 때문이야. 미안해. 꺽꺽거리는 울음 사이로 사죄가 섞여 나왔다. 그 소리는 인간의 언어보다는 오히려 짐승이 내는 울음에 가까웠다. 인어는 가만히 앉아 그가 엎드려 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이불 끄트머리에 눈물이 떨어진 부분을 손끝으로 훑었다. 인어가 살던 바다처럼 소금기 머금은 물이었다. 그 그리운 물기를 손에 쥐고 인어는 조용히 눈꺼풀을 닫았다.

311 이름없음 2020/11/08 14:20:04

사탕, 사랑, 설탕

312 이름없음 2020/11/08 18:26:54

사랑은 달았다. 그렇지만 그 달콤함은 부드럽게 가공된 사탕의 달콤함이 아니라 오로지 달기만 한 맛에 침식되어 질식할 것만 같은 설탕의 달콤함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나의 사랑은 늘 지나치게 달았고 나는 그 달콤함에 빠져 환상과 현실도 구분 못하는 바보같은 인간이었다. 차라리 사랑이 가슴을 찢을 듯 아팠다면 다시는 사랑 따위 하지 않을 수 있었으려만. 의미 없을 후회만이 사랑을 부정한다.

313 이름없음 2020/11/08 19:09:32

파랑,앨리스,거짓

314 이름없음 2020/11/08 19:20:17

앨리스는 말했다. "하트여왕, 당신은 잘못됐어요." 앨리스의 한마디를 듣고 그동안 하트여왕의 폭정에 시달렸던 주민들이 하나둘씩 동의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주억거렸고, 어떤 이는 목소리 높여 저항하기 시작했다. 한 명, 열 명, 백 명, 이윽고 수 천에 이른 주민들의 원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하트여왕의 얼굴은 색이 바뀌었다. 빨강, 파랑, 하양, 노랑 다양한 색깔로 변해가는 얼굴로 하트여왕은 소리쳤다. "거짓말이다! 저 건방진 계집을 당장 죽여버려라!" 하트여왕은 자신의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대체 왜. "아무도 없는 거지....?" 그동안 자신의 든든한 아군으로 존재했던 대신들도, 나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던 보좌관도. 전부, 전부 사라졌다. 하트여왕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앨리스를 바라보았다. 저 계집의 당당한 얼굴, 당당한 목소리, 그리고 그 옆을 지키고 서있는 나의 백성들. 그 모든 것이 거짓이기를 바랬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잘해주었는데, 고작 저 건방진 계집의 말 한 마디에 홀라당 넘어가버리는 꼴이라니! 이것이 나의 백성들이라고? 이것 또한 거짓이다! "저 계집의 말에 동의하는 것들이 나의 백성일 리가 없다! 전부 죽여라! 죽여버려!!" 하트여왕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점점 앨리스의 몸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몸 뿐만이 아니라 목소리도. 아니, 이건 앨리스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하트여왕은 점점, 점점, 점점, 점점, 작아지고, 작아지고, 작아지고, 작아지고. 어느새 수많은 백성들과 앨리스의 눈에 하트여왕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항상 높은 곳에서 자신들을 내려다보며 재미로 백성들을 죽이던 폭군은 사라졌다. 그녀를 표현하듯 찬란한 빨강은 더 이상 아무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높디 높은 성에 꽂혀있는 깃발은 파랑. 그 맑디맑은 색이 우리들을 구원했다.

315 이름없음 2020/11/08 19:34:29

드디어 홀수레스 쓸 타이밍을 잡았다!!!!!😀😀 늪, 폐허, 향기

316 이름없음 2020/11/08 19:47:46

으악 313거 쓰고 왔더니 이미 늦었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제대로 남은 건물도, 동물도, 식물도, 인간도 없었다. 그곳에 남은건 폐허와 나뿐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평생을 살았다. 죽어가는 동식물을 보는 건 일상이었고, 건물 잔해 사이의 시체 조각은 길가의 돌멩이만큼 흔했다. 그런 곳에서 나를 위로해 준 건 늪이었다. 그 늪은 찐득찐득하고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하지만 가장 살아있는 생명에 가까운 존재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 늪을 좋아했다. 아주 긴 시간이 지나고, 나는 어떤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새로운 도시로 나를 데려간 그들은 나에게 새 삶을 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의 늪, 늪의 향기를 앗아갔다. 모두가 잠든 밤, 나는 도시를 떠나 내가 살던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공기에 미세하게 떠다니는 늪의 향기를 찾아. 늪의 온기와 소리와 색깔과 향기를 찾아. +앨리스도 아까워서 올릴게... "앨리스의 머리는 파랑색이야." 네가 입을 뗐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나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거짓말." "진짜야." 너는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하곤 했다. 그럴 때는 너의 생각을 읽기가 힘들었다. 굳은 결의라도 한 듯 자신에 찬 목소리와 눈동자. 하지만 당최 어떤 결의를 한 것인지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너를 처음 만난 날도, 내가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온 날도, 네가 나를 따라 허리까지 오던 머리를 자른 날도. 네가 갑자기 나의 손을 잡아온 날도 그랬다. "앨리스의 머리는 파랑색이야." 네가 다시 말했다. "이건 확실해." "얼마나 확실한데?" 내가 물었다. "내가 너를 좋은 친구로 생각한다는 사실만큼 확실해."

317 이름없음 2020/11/08 19:58:23

이 스레 요즘 자주 갱신돼서 괜히 내가 다 뿌듯하네ㅋㅋ 혹시 오래 걸릴 것 같으면 일단 작성중으로 레스 달아놓고 수정하자! 이번엔 내가 제시할게 섬 이끼 별빛

318 이름없음 2020/11/08 22:03:53

아무개의 발길은 끊겨 길이 없고, 노랑 나비 하나 나라지 않는다. 난잡함도 적막함도 삼키는 꿈. 노인은 푸른 호로 배를 밀고, 몸 눕혀 둥둥 하늘을 본다. 별무리 아득해야 할 어둠이언만, 그저 밝아라. 눈을 감는다. 바람은 표류한 배를 떠밀며, 천천히 멀어진다. 바라보는 소년의 눈은 그저 검어라. 푸른 호는 별무리를 담가 두었다. 푸르러야 할 것은 검고, 검어야 할 것은 푸르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으면 이상하리. 비 한 점 나리지 않으면 괴이하리. 눈은 바닥에 깔린 이끼를 뜯어낸다. 가슴 어림이 무겁고 어깨를 누른다. 몸을 기울여 바닥에 눕고, 바람이 분다. 툭툭 검은 무언가가 내리는 듯 했고 동시에 투명했다. 섬은 적막했고, 꿈 같았다.

319 이름없음 2020/11/08 22:06:23

시계. 거짓말. 감기

320 이름없음 2020/11/11 20:43:45

시계가 감기에 결렸다. 시계는 연신 기침을 해댔다. "봐봐. 시계가 감기에 걸렸잖아." "거짓말."

321 이름없음 2020/11/11 23:39:40

꽃불, 소인(小人), 우울.

322 이름없음 2020/11/12 00:42:46

거인과 소인은 서로를 사랑했다. 모두가 너희 둘은 이어질 수 없다고 하였지만, 그건 둘에게 전혀 와닿지 않는 말들이었다. 그 둘은 서로의 마음만 통한다면 언제든 함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거인은 무척이나 우울해하는 소인을 발견했다. 거인은 물었다. "왜 그렇게 우울해하니?" 소인은 여전히 우울해보이는 표정을 하고 대답했다. "너와의 사이를 인정받지 위해서는 꽃불을 가지고 와야만 한대." 꽃불? 그게 뭐지? 거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거인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소인은 이어서 말했다. "꽃불은 전설 속에 나오는 꽃이야. 꽃모양으로 퍼지는 불꽃과 반대로, 불꽃모양으로 피어나고 지는 꽃이야." 소인은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거인은 자신의 커다란 손으로 소인의 작디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둘이 함께라면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고 찾아낼 수 있어. 그냥 조금 긴 여행을 함께 떠난다고 생각하면 되지." 소인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거인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정말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거인은 대답했다. "물론이지." 소인은 어쩐지 그 대답에 마음이 무척이나 풀린듯한 기분이 들었다.

323 이름없음 2020/11/12 01:18:02

유리창, 항해, 먹구름

324 이름없음 2020/11/13 06:40:34

멀디 먼 타국으로 바다의 물살을 따라 항해하는 것은 역시 지루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하다못해 널찍한 뱃전과 와글와글한 소리가 있는 크루즈선을 탔다면 좋았으련만. 돌아갈 곳도 없는 망망해대 한가운데에서야 뒤늦게 돈이 없어서요, 가장 작은 선실로 주세요, 라고 말한 일이 후회되었다. 가뜩이나 동행인도 없어 거의 방 안에서 시간을 보낸 일뿐이라 차츰 그리고 또 차츰 외로워졌다. 똑똑. 아무도 찾아올 사람이 없을 터인데 소리가 들렸다. 혹여 비정기적인 선실 점검일까 느릿이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문을 열어 내다보았다. 아무도 없어 의아할 따름이었다. 다시 똑똑. 문 밖에도 안에도 아무도 없는데. 혹시 유령일까 섬찟 두려워져 호실 안을 다시 들여다본다. 아, 쪽창에 물이 흐른 자취가 그려져 있다. 조용히 문을 닫고 들어가 쪽창으로 밖을 내다본다. 살금 다가와 하늘을 잿빛으로 물들이는 먹구름이 눈물을 흘린다. 투명했던 유리창 건너로 물이 떨어지다가, 가끔 잘못 떨어져 유리창에 부닥친 빗물이 한 몸 다 바쳐 소리를 낸다. 똑똑, 계신가요. 오로지 홀로 떠나온 항해였다. 아무하고도 친분이 없이 망망대해 위에 서 있는 사람이다. 어쩐지 빗물을 따라 눈물이 났다.

325 이름없음 2020/11/13 07:32:35

침몰. 밤. 하늘.

326 이름없음 2020/11/13 22:06:56

매일, 밤은 하늘에게 침몰했다. 그렇게 아침이 되며, 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327 이름없음 2020/11/13 23:04:32

극단, 자유, 흩다

328 이름없음 2020/11/15 01:04:38

무언가의 극단으로 치닫는 과정은 스스로를 벼려 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끝을 향함이고, 등진 빛을 외면하며 암흑 속을 달려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택하는 이유는 길이 끝나 흐트러지는 순간 발끝을 땅 위로 띄우는 자유를 위해서이다.

329 이름없음 2020/11/15 01:05:29

사막, 침묵, 언어

330 이름없음 2020/11/15 17:01:42

끝없는 사막 속에서 나는 울부짖었다.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대지는 침묵했다. 별들도, 달도, 모래바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는 도중에도 사막은 계속해서 제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광활하고 고요한 자연, 그 속에서 언어라는 것은 하등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자연은 언제나 그 어떤 질문과 원망에도 입을 다문 채 방관한다. 자연은 언어를 모른다.

331 이름없음 2020/11/15 17:37:48

타락, 사랑, 피

332 이름없음 2020/11/15 18:50:35

타락한 사랑에는 봄이 올까. 그것도 사랑이니, 애정이니, 욕망 그 자체이니 허락할 수 밖에 없다. 욕망과 쾌락 사이의 종착점에서 혼란스러운 마음을 잡고 마주봐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겁쟁이와 다를바없다. 설령 피를 부를지언정 난 잘못된 사랑에 취해야한다. 이것은 운명이며 정해진 굴레였다.

333 이름없음 2020/11/15 19:01:03

잉어, 먹, 칼

334 이름없음 2020/11/15 19:02:26

진한 먹으로 그려진 윤곽을 좇아 눈동자가 움직였다. 몸체의 곡선을 타고 내려가서 시선이 맺힌 곳은 잉어의 눈이었다. 관람객을 빤히 바라보는 그 눈은 그림 속에서 고요히 시선을 끌었다. 한없이 검은 늪에 갇혀 먹물을 마시고 뱉으며, 결국 당신들도 나와 같지 않냐는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다. 칼로 그림을 찢어 너를 풀어줄까. 아니면 물을 뿌려 숨쉴 곳이라도 만들어줄까. 의미 없는 충동만이 그림과 나 사이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335 이름없음 2020/11/15 19:03:26

넝쿨, 압화, 바래다

336 이름없음 2020/11/16 01:58:10

늘 가던 화방 한편에는 이름모를 넝쿨이 압화된 액자 하나가 있었다. 어디 하나 빛나지 않던 수수한 액자였는데도 시선을 끄는 그런 액자였다. 언제 화방 주인한테 무슨 넝쿨이냐 물어본 적이 있었다. 화방 주인은 자신도 모른다 답하며 이상하게 눈길이 가지 않느냐 물었다. 그랬다. 분명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압화였는데도 이상하게도 눈길이 가는 것이었다. 하도 기억에 남아 이름을 찾아 식물도감을 뒤졌던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미련한 짓이었다. 결국 세시간 동안 식물 도감을 뒤져 담쟁이넝쿨이라는 것을 찾아냈다.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그것은 나를 허무하게 만들었다. 갑자기 그 압화가 너무 쓸모없다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왕 찾아본 김에 더 찾아보자 해서 식물 도감을 한 장 더 넘기자 담쟁이넝쿨 꽃의 꽃말을 찾을 수 있었다. 우정이였다. 아무 상관 없을 것 같은 꽃말에 김이 식었다. 도감을 침대에 던져놓고 집을 나서는데 길가의 벽에 걸린 넝쿨들이 눈에 띄었다. 담쟁이넝쿨이었다. 그 순간 웃음이 나왔다. 담쟁이넝쿨은 나를 화방으로 바래다주고 있었다.

337 이름없음 2020/11/16 09:15:32

지도 우산 여우

338 이름없음 2020/11/16 15:27:52

나는 지도를 펼쳤다. 이 지도가 정확하다면, 곧 마을에 도착할 것 같았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다잡고 다시 움직일 준비를 하는데,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왔다. " 여 앞은 여우가 산다. 들어갈 생각일랑 하지 말어라. " 고개를 돌려가며 소리의 근원지를 찾으니 바로 옆에 다 기울어져 가는 초가집 마루 위에 어떤 한복 입은 할머니가 곰방대를 뻑뻑 피우고 있었다. 그보다, 여우라니요? 할머니, 여우가 여기 어딨어요.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에 되물었다. 여우가 사는 마을이다. 할머니는 그 말을 하고서는 삐걱대는 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기분이 영 찝찝했지만 나는 다시 걸었다. 한참 숲을 따라 걷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강하게 불어왔다. 나뭇가지가 서로 스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태풍인가? 생각하며 가방에서 접이식 우산을 꺼냈다. 그렇게 고생하며 숲을 나오니 거짓말처럼 비는 내리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숲은 사라져 있었다. 기묘한 날이다, 라고 생각했다.

339 이름없음 2020/11/16 15:46:13

설탕, 향수, 불

340 이름없음 2020/11/16 16:57:48

나 말고는 없는 어두운 방에서 라이터로 불붙은 담배를 문채 커피잔을 내려다본다. 그 남자는 설탕을 많이 탄 커피를 마셨지 평소엔 허당끼가 돌지만 가끔 나를 보는 눈빛에서 왠지 모르게 꿰뚫려지고, 알아주는듯한 기분에 설렜었다. 이젠 나를 아무것도 아니게 쳐다보겠지 희미하게 감도는듯한 향수 냄새가 미간을 구긴다.

341 이름없음 2020/11/16 17:38:48

거북 보름 이름

342 이름없음 2020/11/16 19:00:08

곧 돌아오신다는 님이 어찌하여 보름이 넘어서야 오셨습니까. 두 발로 걸어와 안아주겠다던 님이 왜 힘없이 흰 천에 쌓여 오시옵니까. 푸르스름한 입술에 생기없는 뺨, 영원히 뜨지 않을 것마냥 꼭 감긴 두 눈을 하고서도 서방님은 변함없이 아름다우시군요. 서방님, 아, 사랑하는 서방님. 서방님이 가장 좋아하시던 금잔화가 핀 땅에 묻어드리오리다. 봉긋한 묘가 반질한 거북의 등 같아질 때까지 매일매일 돌봐드리오리다. 서방님, 아, 사랑하는 서방님. 몇번이고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꼭 감은 눈은 떠질 수 없겠지요. 금방이라도 "장난쳐서 미안하오, 내 그대를 사랑하는 것 아시지 않소. 절대 먼저 두고 떠나지 않으리다." 하고 벌떡 일어나길 것 같지만 그 창백한 얼굴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겠지요. 사랑하는 서방님, 마지막 입맞춤이에요. 다시 만나는 그 날까지 부디 평안하셔요.

343 이름없음 2020/11/16 19:00:53

콜라, 강아지, 미소

344 이름없음 2020/11/17 04:08:53

"어서오세요" 짤랑 거리며 들어오는 웰시코기 한마리와 긴머리에 모자를 눌러쓴 체구가 약간 작아보이는 여자 손님 얼굴을 잘안보였는데 내가 입에서 소리를 내자 강아지는 아주 해맑게 웃고있었다. " 강아지가 웃음이 많네요!" "아...네.." 낯가림이 많이 심한지 눈만 살짝 맞췄다가 바로내리는 손님 그냥 강아지랑 적당히 티타임을 즐기시러 오신건가 싶어서 애견카페 이용수칙 이용가격 그런것들을 설명하고 우리가게에 있는 마스코트들을 소개시켜주었다. 그중에는 손님의 웰시코기와 똑같이 생긴아이도 있었는데 그아이 이름은 마르코 였다 마르코는 임시보호로 맡게되었는데 보호하다보니 정이 그새들어 버거울지도 몰라도 나는 애견카페를 운영하고 있고 힘 닿는 데까진 죽도록 힘내보려고 입양까지 하게돼 벌써 4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예전엔 겁쟁이였던 그런 마르코가 손님의 강아지가 자신과 닮았다는걸 아는지 먼저가서 인사를 건내더니 이내 손님의 강아지도 마르코가 좋아졌는지 둘이 인사를 하는듯하더니 다른 강아지들도 마르코를 따라 줄줄이 인사타임이 되었다. "강아지들 사이좋네요 그쵸?" "그러네요" 우리가게는 애견카페니깐 손님에게 목이 마르지않냐 물었지만 손님은 별말을 하지않았다. " 첫방문이시니깐 공짜로 해드릴게요 말만하세요 뭐드시고 싶으세요? 저 이래뵈도 잘 만들어요" "..그럼 콜라 있나요?" 잠시 고민하시는듯하더니 콜라를 찾으셨다 물론 콜라도 준비되어있지만 다른 음료를 만들어 드리고 싶었는데 아쉽게됐다. "강아지 이름이 뭐에요?" 콜라를 내어드리고 마주앉아 강아지 이름이 무엇인가 물어봤다 뭔가 이것도 고민하는듯 해보였지만 강아지이름은 마루 라고 하였다. "귀여운 이름이네요" 그렇게 말하자 손님은 쑥스러운듯이 고개만 끄덕이곤 창밖을 바라봤다. 다들 쾌활적이신분만 다녀가셔셔 내성적인 분을 잘 대하지못하는거 같아 애견카페 사장으로서 자신감이 조금 하락했다. "저 나중에도 또 오세요 저희 애기들 착해요 음료도 맛있고" 내가 말하자 손님은 나를 쳐다보고 알겠다고 하고 손님에게 달려온 마루를 쓰다듬어 줄뿐 그이상의 말은 없었다. 그런 적막한 분위기보다 강아지들처럼 신난분위기를 만들고싶어 신기한 마술을 보여드리겠다 하고 실패하고 내인생 최대 웃긴 얘기를 했다가 실패하고 이사람은 웃음기가 없는 사람인가 나는 왜 한가해서 손님을 웃겨주려 하고있는가 이런 잡다한 생각에 빠질때쯤 손님이 가봐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시냐 콜라 아직 안드셨는데 하니깐 괜찮다며 손사레 치시고는 마루를 데리고 강아지들에게 '빠이빠이' 하며 손을 흔든다. 문득 마루이름은 아는데 손님이름은 몰라서 손님이라고 부를수없으니 이름을 알려달라하니깐 아무말 없이 입구로 걸어나간다. "다음에 또.." 말하려하는데 갑자기 멈춰스더니 아까 웃겼어요 안웃어서 미안해요 라며 자기이름은 하늘이라 그랬다. 그래도 무표정으로 말하다가 이름을 말할땐 약간 미소를 띈거 같다. "다음에 또 오세요!" 약간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마루를 꼭 안고 나가는 모습을 보니 그래도 다정한 사람인거 같은 생각이 든다 다음에오면 콜라를 이용한 음료를 개발해놔야 겠다 생각하고 다시 카운터로 돌아가 새로운 손님 하늘,마루 를 이용자 목록에 적었다.

345 이름없음 2020/11/17 07:14:53

석양 할애 애증

346 이름없음 2020/11/21 21:56:05

ㄱㅅ

347 이름없음 2020/11/22 03:12:21

여름 젊음 죽음

348 이름없음 2020/11/22 11:09:19

우리는 젊음에 질식해가고 있었다. 어두침침한 기숙사 침대 위에 누워 서로의 흐린 윤곽을 바라보면 머릿속이 마냥 뜨거워져 죽겠구나 싶었다. 바짝 붙은 몸에서 열기가 전해져 왔다. 시선이 맞닿는 순간, 그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하얗고 나른한 얼굴 사이로 뭔가가 흘러넘쳤다. 애써 고개를 돌렸지만 시트를 쥔 손이 선명히 떨리고 있었다. 이 어린 천재가 죽을 만큼 원한다는 표정을 보이는 것은 오직 내 앞에서만, 그것이 짜릿하게 좋아서, 교복이 널브러진 바닥을 더듬어 쓰다 만 원고지를 찾는 그의 여름이 온전히 나이길 바랐다.

349 이름없음 2020/11/22 11:14:31

공중전화 수레바퀴 아이스크림

350 이름없음 2020/12/02 15:46:48

저는 가끔 동네 꼬마들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을 봅니다. 어쩔 수 없이 그때가 생각났습니다. 저에게는 어린 동생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그와 나가 놀아주라고 말하셔서 작은 손을 붙잡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동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렸습니다. 그래도 길을 잃었을 때 어찌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았습니다. 아마 지나가던 어른이 동전을 빌려주었을 겁니다. 주머니 속의 전화기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저는 동생을 동네 구멍가게에서 찾았습니다. 저는 그를 달래려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주었습니다. 동생은 웃었습니다. 우리가 내리막길을 걸어 집에 돌아갈 즈음 덜컹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가 생각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경사가 꽤나 가팔랐고 그 소리를 낸 수레에는 무거운 짐마저 실려 있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이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몇 초도 되지 않아 그것은 붉게 물들었습니다.

351 이름없음 2020/12/02 18:06:49

여름 수박 계곡

352 이름없음 2020/12/02 23:04:57

여름방학이 시작되고나서 친구들과 계곡으로 갔다. 친구 할머니댁에서 일주일을 머무르기로 하고서 보드게임이나 간식따위를 챙기며 기차를 탔다. 짐을 풀고서는 단박에 계곡을 향해 뛰쳐나갔는데,튜브를 허리에 끼고 시시덕대던 친구가 저어기 폭포라기엔 부족한 경사에서 자기가 내려와 보겠단다. 무슨 워터파크도 아니고. 들은체도 하지 않고 올라가 튜브를 타고 내려오던 친구의 머리가, 기우뚱. 퍽. 졸졸. 수박처럼 박살나 버린것이었다.

353 이름없음 2020/12/03 01:32:33

여름, 오후, 책

354 이름없음 2020/12/03 22:23:43

무더운 여름에 고향에 내려온 것은, 이번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도시의 더위가 무더웠기 때문이다. 길가를 따라가보면 나오는 조그마한 주택. 여기가 우리집이다. 그래, 아무도 없겠지. 냉장고에는 썩어가는 무언가와 컵라면이 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컵라면을 꺼내 주린 배를 채웠다. 작은 집의 내 방에는 내 책들이 가득 있다. 정확히는, 아빠 서재에서 빼온거지만. "영우야!" 낯선 여자의 목소리다. 집 밖에는 하늘하늘한 차림의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서있었다. "누구...?" 그 순간 무언가가 내 머릴 스쳤다. 내 추측이 맞을까? "은희야?" "응! 용케 알아봤네!" 은희가 배시시 웃었다. 나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매일 방에 박혀 책을 보고 있자면 집에 놀러와 자기 집처럼 드러누워 계속 놀자고 조르던 얘였다. "여기 살아?" "아직은, 너 돌아왔다는 말 듣고 바로 왔어." 아직이라니, 분명 서울로 가려다가 경제적이든, 학업적이든 문제가 생겼을거다. 반면에 나는 이 지긋지긋한 곳을 벗어나기 위해 내 방에서 박혀 살았다. "근데 여긴 무슨 일이야?" "어? 그냥... 지쳐서? 요양 느낌으로 왔어." "요양이라고 하니깐 완전 늙은 것 같다 너!" 은희가 키득거렸다. 하긴 내가 봐도 모순적이긴 하다. 내가 지긋지긋하다고 입에 달던 곳에 지쳐서 다시 돌아오다니. "밖에 계속 서있을꺼야?" "오, 들여보내줄려고? 그럼 고맙지." 은희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계속 말을 했다. "우리 예전에 기억나? 너 맨날 나 피해다녔잖아!" "그치, 공부해야하니깐." "나랑 안놀아주려고 나무 위에서 책 읽었을 땐... 어휴," "그랬었지, 그땐 왜 그랬는지 몰라." 내가 피식, 하고 웃자 은희도 킥하고 웃었다. "그래서, 오늘도 놀아달라고?" "아니!" 은희가 자신의 약지를 들어보였다. "봐라! 이젠 너랑 못놀아, 후후" 금색 반지가 빛났다. 은희는 반지를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정말 소중한 사람이야. 나한테." "좋겠네, 좋은 사람 만나서." "그럼그럼! 너도 얼른 결혼해! 진짜 좋아." "친구들은 하지 말라던데?" "아니야! 진짜 좋다니깐?" 은희랑 이야기를 하다보니 벌써 해가 져버렸다. "나 이제 가볼께. 오래 머물다가!" "그래그래. 알겠어." 은희가 떠나자 집에 적막함이 돌았다. 내 낡은 책상, 또다시 공부하기 위해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가 어릴적 숨겨둔 쪽지가 떨어졌다. '꼭 공무원 붙어서 은희한테 당당히 고백하자!' 다리의 힘이 풀리고 눈물이 고였다. 아, 잘 참았는데. 걔 앞에서도 잘 참았는데. 책상 앞에서 나는 두 번 무너졌다.

355 이름없음 2020/12/03 23:23:52

온클 교수 사랑

356 이름없음 2020/12/04 12:17:58

교수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열렬히 강의를 하던 와중에도 나는 핸드폰만 바라보았다.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 온라인 클래스를 꼭 들어야하는데도 나는 너만 생각했다. 이건 다 너때문이다. 너에 대한 나의 사랑 때문이다. 아직 중학생이라 대학교 모르겠어ㅠㅠㅠㅠㅠ

357 이름없음 2020/12/04 13:00:48

눈사람 재생 거대한 성

358 이름없음 2020/12/04 18:19:44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고, 연이어 쏟아진 폭설로 높이 쌓인 눈은 눈사람이 되어 거리에 안착해 있었다. 생기로운 성탄절의 분위기와 차갑지 않은 찬공기가 거리를 데우고 있었다. 내 몸은 여전히 마비 된 듯한 느낌이었고, 겉으로 보기엔 시체와 다름이 없었다. 정신만이 온전한 느낌, 육체가 나와 딱 들어맞지 않는다는 느낌은 나에게 항상 거대한 공포를 느끼게 한다. 썩어버린 피부와 끊어져버린 신경을 재생할 수 있는 기술이 생기길 오래전 부터 고대하고 있었다. 죽지 않는게 기적이라던 의사의 말은 내겐 절망처럼 들렸다. 성인이 태어난 날 내가 죽을 수 있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마비되어 버린 내 얼굴로 웃음을 지을수 있을 것만 같다. 체념하고 있을 때, 누군가 나타났다. "이곳엔 존재하지 않는 성, 그 성이 된다면 넌 죽을 수 있어, 어떡할래?"

359 이름없음 2020/12/04 19:24:18

시계, 노트, 핫핑크

360 이름없음 2020/12/05 21:59:12

당신은 멈추지 않는 시계와 같습니다. 나는 항상 당신의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것이고, 쫓아갈 것이고, 이내 그 소리마저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이름을 한 이름없는 노트에 적습니다. 내 심장과 같은 핫핑크색 잉크가 노트를 적시고 적셔 한없이 흘러내립니다. 나는 이 이름없는 노트를 나의 생각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나의 뇌는 이미 당신이라는 잉크에 적셔져 볼을 타고 흘러내릴 것 입니다.

361 이름없음 2020/12/05 22:00:28

가면, 허상, 기다림

362 이름없음 2020/12/06 15:10:50

나는 너를 기다렸다. 비록 네가 등뒤에 비수를 숨기고 ‘우정’이라는 가면을 쓰고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이 모든 게 잠깐의 허상임을 알면서도 너를 놓아줄 수 없었다. “너도 알고있잖니. 난 다시 태어나도 널 사랑하고 기다릴거야” 피를 흘리면 하는 내 말이 너에게 어떻게 비칠진 모르겠지만 나는 웃었다. 내 마지막이 웃음으로 기억되길.

363 이름없음 2020/12/06 15:12:34

집착, 인강, 사랑

364 이름없음 2020/12/12 16:27:28

ㄱㅅ

365 이름없음 2020/12/12 18:15:44

>>352 아니ㅋㅋㅋㅋ큐ㅠㅜㅜㅋ큐ㅠㅠㅜ내가 상상한건 이런게 아닌데ㅋㅋ쿠ㅠㅠㅠ수박이 그 수박이였냐고

366 이름없음 2020/12/15 22:38:19

>>363 인강이 인터넷 강의라는 뜻이 맞니...?

367 이름없음 2020/12/15 23:17:40

>>366 응 그 한석원 같은 분들이 하시는거

368 이름없음 2020/12/15 23:46:07

>>363 >>367 모니터의 빛이 갑작스레 꺼졌다. 오랫동안 멍하니 정지화면만 들여다본 탓이었다. A는 진녹색 칠판 때문에 잔상이 떠다니게 된 눈을 비비며 노트북의 자판을 눌렀다. 위잉 하는 진동과 함께 모니터가 다시 켜졌다. 그러자 다시 녹색 칠판과 그 위에 어지럽게 흩어진 글자들, 그리고 그 중간에 분필을 들고 있는 대머리 수학 강사가 눈에 들어왔다. 칠판에는 함수의 그래프와 색색의 분필로 칠해진 공식들이 빼곡했지만 A의 눈길이 향하는 방향은 그곳이 아니었다. "...나는 왜, 30분 동안이나 한석원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던 거지?" 모니터 속 그의 얼굴은 더없이 진지했다. 수학을 가르친다는 순수한 기쁨과 열정 외에 다른 것을 찾아볼 수 없는 듯했다. 그러나 A는, 그가 가르치는 수학을 공부하는 것보다 그의 빛나는 대머리를 들여다보는 데에 묘한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사랑인가? 아니, 정체를 알 수 없다. 어쩌면 집착인지도 모른다.' A는 불을 향해 날갯짓하는 부나방과 같은 좌절을 느꼈다. 공부를 하고자 마음먹은 학생에게 그의 대머리는 유혹적인 불빛과도 같았다. 눈길을 주어서는 안 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할 수 없는. A는 떨리는 손끝으로 재생 버튼을 누르려 했다. 아니, 끄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지되었던 화면이 움직이는 순간 A의 눈은 다시 그의 대머리를 쫓기 시작했다. 끝없는 집착의 서막이었다. 명예훼손으로 인한 고소각인데 좀 봐주라

369 이름없음 2020/12/15 23:50:29

그림자 완벽 외계인

370 이름없음 2020/12/16 00:31:15

>>369 요즘 자꾸 화재가 되는 영상이 있다. 그림자에서 사람이 형체 같은 것이 나와 그림자의 주인을 죽이는 영상. 사람들은 편집이라며 댓글을 달아댔고, 나도 그 중 한명이었다. '이 재능을 왜 이런데 쏟고 있는거지...' 하지만, 이렇게 댓글을 단 지 20분도 채 안되서, 나는 일을 겪게되었다. "커흡!" 컴퓨터 화면만이 유일한 빛인 방 안. 문소리도, 창문이 열리는 소리도, 하다못해 발걸음 소리도 없었는데. 어째서, 내가 목을 졸리고 있는거지. 뒤에서 뻗어온 두 손에 잡힌 목이 부러질 것만 같았다. 이대로라면 정말 죽을 것이었다. 나는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 발버둥쳤다. 그러다가 팔꿈치로 무언가를 쳤고, 나는 확, 숨통이 트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헉, 허... 뭐야...?" 자국이 빨갛게 남은 목을 손으로 감싸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 아무도, 없다...? "...!" 아니, 있다. 나는 밑으로 시선을 내리자마자 식겁하며 의자에서 넘어졌다. 내 그림자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검은 남자. 완벽한 피지컬의 신체를 본 내가 느낀 감정은 극한의 공포 뿐이었다. "누구, 세요...?"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상을 애써 지우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내었다. "..." 하지만 남자는 답이 없었다. 필시, 귀신혹은 외계인이리라. 겁먹은 나는 아무렇게나 소리쳤다. 남자의 손이 다시 내게로 뻗어지고 있었으니까. "저, 저는 암이 있어서 데려가셔봤자 실험 못해요...!" 남자가 순간 멈칫, 몸을 굳힌다. 하지만 이내 중저음의 목소리와 함께 다시 움직였다. "암이라, 동료들이 더욱 흥미로워 하겠군." 나는 뒤로 기어가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었다. 그리고 남자의 손이 나를 내려치기 전에- 탁. 컴퓨터 전원코드를 뽑아 암흑속에 갇혔다. "하아..." 나는 덜덜 떨며 보이지도 않는 어둠을 휙휙 둘러보았다. 그리고 심장이 다시 내려앉았다. "인간." 아까 그 남자의 목소리... "어서 불을 켜라." 나는 경련하듯 떨리는 손을 서로 꽉 잡으며 거의 울먹였다. "당신, 당신 뭐에요...?" 나는 순식간에 일어난 믿을 수 없는 일에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 "...알고 있는 게 아니었나." "...네...?" 자신을 납치해가는 외계인에게 할 법한 대사로 생각난 것 아무거나 뱉은건데... 사이코라서 장단 맞춰준 거 아니었어...? "그렇다면 더더욱 죽인 뒤 데려가야겠군." 남자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렸다. "아, 아니! 잠깐, 잠깐만요. 제 암세포는 제가 죽으면 사라져요." "...그래?"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 아 잠깐만... 갑자기 쓰기 귀찮아짐.... ㅌㅌ...

371 이름없음 2020/12/16 00:50:55

은하수 겨울 백조

372 이름없음 2020/12/16 02:17:11

>>368 맞아 바로 이런걸 원하는 거였어!! 레스주 최고다 정말

373 이름없음 2020/12/16 02:18:49

앗 홀짝이 안 맞는 관계로 발판~! >>368 한석원 실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74 이름없음 2021/01/06 17:29:41

>>371 이 스레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레라서 오랜만에 갱신! 이곳은 오래전에 백조들이 살던 호수였다. 채 식지 않은 열기가 내려앉은 여름밤이면 마을의 어린아이들은 숲 속 호수로 가서 물장구를 치며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그리 깊지 않은 물에서 놀던 아이들은 이내 몸을 말리기 위해 바위 위로 기어올라가 셔츠를 훌훌 벗어던져 걸어 두었다. 이따금씩,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을 자그마한 손으로 꼭 짜며 재잘거리던 아이들의 소리가 갑작스레 잦아드는 때가 있었다. 바로 백조가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마을 인근의 숲 속에는 백조가 살고 있었다. 이 희고 우아한 새들은 낮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밤이 되면 호수의 잔잔한 물결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숲을 찾는 어른들은 약초나 열매를 얻으려 낮에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밤의 호수에서 노는 아이들만이 그 백조들이 자아내는 마법 같은 신비로움에 잠기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내가 들었는데, 저 백조들은 하늘에 있는 은하수에서 떨어진 거래." "그걸 믿어? 누가 그랬는데?" "꽃집 아저씨가. 저기 은하수 안에 백조 집이 있대. 그리고 하늘에 저거, 백조 모양 별자리 있잖아. 그게 백조가 여름에 여기로 오니까 하늘이 텅 비어서 그려놓은 거래." "아저씨가 거짓말한 거야. 무슨 백조가 하늘에서 떨어져?" "진짜거든?" 마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유치한 전설을 믿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과 싸움을 벌이고는 했다. 그러나 겨울이 되어 얼어붙은 호숫가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는 아이들은 그 전설이 사실이기를 내심 바랐다. 여름철에 백조자리가 보일 때쯤이면 다시 그들의 신비로, 마법 같은 숲 속으로 돌아와 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마을 아이들의 어릴 적 마법은 호수에서 피어나 하늘까지 닿았던 것이다. * 백조들이 자아내던 신비를 마음에 간직하던 어린아이들은 서서히 어른이 되며 여름밤의 마법을 잊는다. 그러나 어느 해 겨울, 백조들의 숲은 그들을 신기하게 맞아들일 새로운 아이들마저 영영 잃고 말았다. 그해 겨울 마을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은 날아드는 폭격을 피해 고향을 떠났다. 물에 젖은 옷 대신 식량이나 약간의 금붙이가 든 보퉁이를 손에 꼭 쥔 아이들은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백조들은 하늘로 잘 돌아갔을까. 우리를 함께 데리고 가 주면 안 될까. 이 겨울이 끝나면 우리는 다시 백조들을 만날 수 있을까? 몇 번의 폭격을 맞은 숲은 전처럼 신비롭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애처롭게 마지막 아이들을 부른 듯했다. 겨울이 끝나면 다시 돌아오라는 울림이 바람에 실린 재와 함께 마을을 스쳤다.

375 이름없음 2021/01/06 17:33:31

가면, 음악, 사진

376 이름없음 2021/02/05 21:10:22

내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찬란한 조명 아래에서 윤이 나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은 어릴 때 보아도 기억에 남는다.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가끔씩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손길은 상냥했고 은은한 라벤더 향을 풍겼다. 그러나 직업이 직업인만큼 해외를 자주 돌아다녀야 했던 그녀는 나와 자주 보지 못했다. 인사할 틈조차 주지 않고 높디 높은 곳으로 한순간에 떠나버릴 때도. 잠시 어머니의 사진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겼다. 사진 안에서의 공연 테마는 가면무도회 였는지, 보랏빛 가면을 쓰고 피아노에 앉아 은은히 웃고있는 사진이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진즉에 잊어버렸었다. 그도 그럴것이, 어머니의 유품은 삼촌이 독일로 가져가버렸으니까. 오랜만에 보는 얼굴은 반가웠고, 여전히 아름다웠고, 그리고...미웠다. 아주 조금이지만, 그래도 미웠다. 날 두고 떠나간 자에 대한 쓰림이자 외로움이었다. 눈에 조금씩 눈물이 고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377 이름없음 2021/02/05 21:31:00

길을걷는데미치겠어요 사람들사이에서 길을걷는데 나만 멈춰있는지모르겠어요 문득하늘을봤는데 달이하얗게보이고 또오해영 대사가 떠올라 눈물이났어요

378 이름없음 2021/02/14 02:31:44

>>377 으음 뭐지? 꼬임 방지로 하나 놓고 다음 레스에 단어 3개 제시할게:>

379 이름없음 2021/02/14 02:32:08

반지 . 남편 . 집

380 이름없음 2021/02/14 02:45:52

늦은 저녁. 남자친구가 집 앞에 왔다고 잠시 나와보란다. 나는 별 생각 없이 그냥 대충 입고 화장도 안한체 남자친구를 보러 갔다. 너무 편해진 탓이려나... "왠일로 우리 집까지 오냐" 나는 말했다. "그냥. 너가 보고 싶어서" 남자친구가 말했다. 그리곤 같이 공원을 걸었다 "갑자기 그거 생각나네. 우리 사귀기 전에 그 있잖아. 너가 나 좋아해서 맨날 우리 집 까지 와서 만나달라고 애걸복걸하면서 기다렸던거. 그게 벌써 7년 전이네." 내가 말했다. "그랬었지. 추억돋네" "나 그땐 진짜 너 안만나려고 했는뎈ㅋㅋ이렇게 됐네." 내가 말했다. "그게 벌써 7년이나 됐네" " 그런데 오늘도 애걸복걸 빌어보려고." 남자친구가 말했다. "또 뭘 잘못했냐" 내가 말했다. "너무 늦게 얘기 해서 미안한데... 오늘도 애걸복걸 빌어볼게. 나랑... 결혼해줄래...?" "미리 말해주지. 치. 이럴거면 화장이라도 제대로 하고 오는건데..." 그래도 후회보단 기쁨이 더 많은 밤이었다.

381 이름없음 2021/02/14 02:57:31

어항 새벽 눈물

382 이름없음 2021/02/14 16:34:52

너와 이별한 뒤에 밤을 지새워 울다보면 새벽 하늘이 어스름히 밝아올 때 창문 밖에는 물고기가 떠다니더라. 창문 틈새로 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새벽 찬 공기에 울다 지친 내 몸 한 번 떨어주고 주섬 주섬 옷 챙겨 창문 앞에 가 앉는다. 날아다니는 물고기와 눈 한 번 마주쳐 주고 멍하니 창을 바라보면 어두웠던 하늘이 어느샌가 붉게, 그리고 또 하얗게 하늘을 물들인다. 창을 열어 네게 날아 갈까 하다가도 너와의 추억이 물처럼 흘러갈까 애써 붙잡고 있는다. 그래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내 눈물을 고이 모아 어항을 하나 사서 물고기 하나를 넣어 두어야지. 다 자라면 네게 한마리 씩 보낼 것이다. 창 밖에 물고기가 다 사라질 때 쯤이면 이 아픔도 끝일거야. 아마도.

383 이름없음 2021/02/14 20:31:41

집착. 애증. 결말

384 이름없음 2021/02/22 10:37:38

처음 널 만났을 때 이 사랑의 결말은 내가 그동안 느꼈던 사랑과는 확실히 다를 거라고 느꼈다. 하지만 이 사랑의 끝자락인 지금 이 순간 느낀 이 사랑의 결말은 예전에 느꼈던 다른 사랑의 결말과 다를 게 없었다. 난 네가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걸어가던 가게 앞 작은 길에 계속해서 서있다. 네가 없는 난 잘 지내지 못했다. 잠들기 전 널 생각하며 눈물 흘린 것도 벌써 2달째인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나 잘 지내고 있는 너를 볼 때마다 화가 난다. 나는 매일을 고통받으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지내고 있는데 내 눈에 비친 너는 왜 환하게 웃고만 있는지 모르겠다. 눈물이 내 눈에 고이기 시작했을 때 넌 내 주변을 스쳐 지나갔다. 날 잠시 보더니 곧 옆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눈길을 돌렸다. 이제 나는 필요하지 않은 건가? 점점 더 네가 미워졌다. 그런데 내 심장은 아직도 뛰고 있다. 너를 미워하려고 해봐도 내 심장은 항상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난 아직도 너를 좋아한다.

385 이름없음 2021/02/22 13:57:17

작살 먼지 애통해하다

386 이름없음 2021/02/22 23:10:28

짧게 쓸게 눈을 떠보니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항상 피비린내가 나는 우리의 마지막 전투. 내 눈앞의 너는 사람을 죽이면서도 그들을 향한 애도의 의미로 눈물을 흘리며 싸우고 있었다. 평소의 너와 다름없이. 정말 평소 같았다면 나는 네가 물러 터졌다며 놀릴것이였지만, 이 다음에 무엇이 일어날지 알았기에 황급히 내몸을 너에게 던졌다. 작살이 내몸을 뚫었을거라고 생각한 그 순간, 내 몸이 유령이라도 된것마냥 작살은 나를 지나쳐 너의 가슴을 관통했다. 가슴이 붉은 꽃을 피운 너는 먼지처럼 바스러져 갔고, 나는 그저 그것을 바라보며 나의 허망함을 눈으로 흘려보낼 뿐이었다. 애통하구나, 아리따운 나의 친구야, 다시 한번 너를 구할수 있었다는 희망은 이제 박살나 먼지가 되었다.

387 이름없음 2021/02/22 23:26:44

나비, 꽃, 장화

388 이름없음 2021/02/26 01:11:25

화창한 날씨다 꽃과 나비가 산들바람에 덩실거린다 화장한 날씨다 너라는 폭우를 맞았던 나는 오늘도 장화를 신는다 내일도, 모래도 장화를 신는다 사랑따윈 절대 다시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한순간의 햇빛에 정신팔려 비바람이 치는 줄도 모르고 우산도 없이 서있던 난 이제야 비바람에 생겼던 상처를 바라보지만 그립다, 한결아

389 이름없음 2021/02/26 01:15:22

다시, 영원, 재회

390 이름없음 2021/02/26 10:59:48

밥 한 번 먹자는 말은 정말 나쁜 말이다. 둘 다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을 알면서, 서로를 속이면서까지 다음을 기약하니깐. 그런 의미에서 우리 둘 다 나쁜 사람이다. 밥 한 번 먹자면서 영원히 가버린 너가 더 나쁠지도 모르겠다. 무엇이었을까? 담배를 입에 물고 생각했다. 왜일까? 장례식장 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생각했다. 혹시나 내가 무심코 뱉은 말들이 네가 지금 누워있는 이유일까봐 조금 두려웠다. 직접 눈을 보면서 사과하고 싶었다. 사과하고 머쓱하게 웃으며 다음에 또 보고 싶었다. 너를 시체로 재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담배가 다 타자 더 이상 서성거릴 핑계가 없어졌다. 조용히 장례식장 입구로 들어갔다. 정말 미안해.

391 이름없음 2021/02/26 16:18:41

괴도, 보석함, 첫눈에 반하다

392 이름없음 2021/02/26 17:45:59

처음 보았을때 보았던 그 찬란한 빛에 나는 눈을 때지 못하게 되버렸다. 그레, 나는 첫눈에 반해버린것이었다. 그걸 깨달은 나는 제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정갈한 쪽지지에 이 마음을 한문장 한문장 골라가며 적어 낸뒤 너의 집에 보냈다. 너의 보호자분 께선 나를 아니꼽게 보았는지, 약속장소에 너를 보낼때 경비원들을 많이 보내셨지만 그런건 내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수많은 경비원들 사이를 지나 약속 장소에 온 너에게 꽃다발을 내밀며 고백 했다. 너는 잠시 당황한듯 보였지만 이내 수락 해주었다. 나는 너의 손을 잡고 약속장소를 빠져나왔다. 그날 괴도는 아름다운 보석함을 가지고 빠져나왔다. +)미안해! 글 쓰는와중에 잘못 올려가지고 그냥 빠르게 편집해서올려! 글이 좀 짦고 이상해도 이해해줘! 내용은 그냥 로멘티스트 괴도이야기!

393 이름없음 2021/02/26 17:49:26

얼음, 레몬, 바다

394 이름없음 2021/02/27 22:58:30

네가 그랬지 넌 수족냉증이 있어서 손발이 차갑다고 이젠 다른의미로 차가워진 너를 아직도 그리워 해 네가 그랬지 넌 신맛을 잘 못느껴서 레몬도 잘 먹는다고 이젠 널 만나러 갈 때 마다 항상 레몬을 챙겨 네가 그랬지 언젠가 같이 바다에 가자고 딱 한 번이라도 널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네가 좋아하는 바다에 같이 가자

395 이름없음 2021/02/28 00:15:47

펭귄, 난로, 휴식

396 이름없음 2021/02/28 00:42:02

ㄱㅅ

397 이름없음 2021/02/28 01:24:29

장례식, 만개한 벚꽃, 비 내리는 새벽

398 이름없음 2021/02/28 02:02:42

비 내리는 새벽에 울리던 전화 벨소리의 간격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너와는 끝난 사이라 다짐 했건만을 어찌 그렇게 모질게 내칠 수 있겠는가. 침대에 앉아 베개로 두 귀를 막는다. 전화기를 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손이 닿는 순간 내가 어떤 행동을 할지 몰라서. 차가운 공기 속에서 네가 그리도 좋아하던 벨소리만이 일정한 간격으로 울렸다 멈추었다를 반복한다. 너와의 이별 이후 일주일 뒤에야 걸려온 전화에 가슴이 덜컥했다. 네가 무언갈 또 알아 나에게 전화했을지 뻔하니까. 그렇지만 넌 찾아올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전화도 받지 않을것이다. 아마 언젠가는 너도 나를 잊게 될거라 생각하니 마음 한 쪽이 아프다. 이젠 침대에 걸터 앉을 기력도 없다. 가만히 누워 천장만을 쌕쌕 거리며 바라보았다. 나의 미래. 나에게도 미래란게 있나? 있어도 어찌 할 수 없다. 아마 너는 나의 밝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이른 감이 있지만 혹여나 싶어 꼭 찾아와줬으면 하는 곳이 있다. 너에게는 얘기 하지 못한 곳이고, 들으면 울 것이 눈에 선명하기에. 이렇게나 애써 내 눈에 담아낸 너를 흘리지 못하고 고이 데려가려 한다. 어여쁜 네 모습 그대로 고이 가져갈테니 너는 나의 벚꽃과 같은 모습만 기억해줬음 좋겠다. 나즈막히 네 이름 석자 불러보니 입꼬리가 스멀스멀 올라간다. 그리도 예쁜 이름이었던가. 만개한 벚꽃이 지던 날 너와 나는 나의 장례식에서 다시 만났다.

399 이름없음 2021/02/28 03:36:30

뱀파이어, 온기, 사랑

400 이름없음 2021/02/28 16:48:11

어릴 적 우습게도 뱀파이어가 되길 소망한 적이 있었다. 하얀 피부에 긴 송곳니, 빛을 보면 죽는 존재라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유치하지만 그때는 그런 존재들을 동경했다. 그 시절에 너를 만났다. 너는 내가 머릿속으로만 그려왔던 뱀파이어와 너무 닮아있어서 꼴사납게 네 앞에서 비명을 질렀다. 그런 나를 보며 너는 놀라지도 않고 살풋 웃어보였었지. 우리의 첫 만남은 그랬고, 그 일을 계기로 우리는 친해졌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나이도 같았고, 너는 내가 다니는 학교를 전학을 왔다. 그렇게 유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우리는 함께였다. 처음엔 내가 주인을 보면 꼬리를 흔드는 개새끼마냥 관심을 구걸했다. 좋아했으니까, 내가 널 많이 사랑했으니까. 애정결핍이 있는 어린 아이처럼 온기를 갈망했다. 너는 한 번도 날 만족시킨 적이 없었다

401 이름없음 2021/02/28 16:56:01

스타카토, 페인트, 절망

402 이름없음 2021/03/01 01:08:04

페인트칠이 벗겨져 마구잡이로 흐트러진 자국이 폐건물의 으스러져가는 피부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나는 그 피부 위에서 공부를 하고, 친구를 사귀고, 꿈을 꾸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학교에는 어린 아이들이 가득했다. 수업시간에 모두 각자 바라는 것들을 발표하고 웃고 떠들던 시간이 생각난다. 나는 특히 음악시간을 좋아했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선생님은 피아노를 친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았지만 나는 선생님이 혼자서 피아노를 칠 때가 가장 좋았다. 조용한 시골마을의 조그마한 음악실 속에 울려퍼지는 맑은 소리들의 화합. 그것들은 나를 내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으로 데려가주는 것만 같았다. 집에가서도 음악실의 피아노 소리가 잊혀지지 않았다. 그 소리들은 내 머리 속에서 재조합 되어 새로운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그런 멜로디들이 가득 들어 앉아 버틸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나는 그것들을 표현해내고 싶었다. 그 소리들이 현실에 나타나 귀 속을 통해 들리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방과후, 아이들이 모두 떠난 음악실에 나 혼자서 검은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무거운 피아노 뚜껑을 천천히 열어서 사람의 이빨 같은 건반들을 손으로 흝었다. 어느 것이 내 머리 속의 소리를 나타내줄 건반인지는 잘 몰랐지만 나는 일단 건반의 제일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하나씩 처보았다. 수업시간 내내 피아노 소리를 듣기만 하다가 내가 직접 처보니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건반 하나 하나를 칠 때마다 소리가 흡수되는 걸 느끼며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이것이 나의 피아노에 대한 첫 경험이다. 이곳은 내 꿈을 시작한 장소다. 학생수가 줄어 여기가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동창한테 들었을 때는 아무 감흥이 없었다. 그저 ‘그렇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와서 폐교의 바닥을 이렇게 밟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니 속이 울렁거렸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 둘 씩 떨어진다. 떨어지는 물방울은 스타카토를 연주했다. 철골에 떨어지는 놈은 높은 시, 흙바닥에 떨어지는 놈은 가운데 도... 과거의 나의 기억들이 빗물에 쓸려 내려간다. 곡의 멜로디가 생각나지 않아 절망해 찢어버린 나의 악보들의 쓰라린 조각들도 젖은 채로 떠밀려간다. 폐교에서 나와 빗방울의 노래를 들으며 간다. 우산은 가져왔지만 쓰지않는다. 마음을 다 잡은 채로 나도 내 머리속으로 비를 내린다

403 이름없음 2021/03/01 01:10:09

저택, 금고, 미로

404 이름없음 2021/03/24 11:46:25

자각몽이다. 무의식 속 내가 바란 건 진 몰라도 나는 무조건 이 큰 저택 속 금고를 찾아 돈을 가져가야 한다. 간단한 잠금장치를 풀고 레이저를 빠져나와 나온 것은 "미로?" 보통은 금고를 가진 밀실이나 함정이 있기 마련인데 미로는 새롭다. 일단 조심히 왼편으로만 걸어보자. 그렇게 크진 않을 테니 금방 도착하겠지 거의 다다를 즘, "어?" 전체가 흔들리고, 놀라 중심을 잃어 넘어졌다. "함정이군.." 고개를 떨구고 들린 소리에 살짝 들어보니 내방 천장이다. "..언제나 꿈은 결말이 없네"

405 이름없음 2021/03/24 13:56:51

상냥함, 웃음, 꽃

406 이름없음 2021/03/26 17:50:33

오늘 길에서 널 봤어. 졸업 이후로 3년 만에 본 네 모습은 많이 변했지만, 보조개가 눈에 띄는 그 웃음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더라. 한 번도 말한 적은 없지만, 넌 참 발랄하고 상냥한 친구였어. 그런 널 정말 좋아했는데, 내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결국 이 마음은 전해지지 못한 체 아직도 내 안에 남아있네. 난 요즘도 그 벚꽃을 보면 그 때를 기억해. 그 날 벚꽃잎이 휘날리는 거리 속에서 날 향해 웃어보이던 너를 그리워해. 이 편지도 결국 전해지지 못한 채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할 걸 알지만, 오늘 다시 본 네가 너무도 반갑고 이뻤어서 진심을 다해 적어봐.

407 이름없음 2021/03/26 18:14:07

나비 애증 문신

408 이름없음 2021/03/26 18:30:37

보수적인 집안에서 누나는 부모님과 많이 싸웠다. 누나는 주로 귀걸이 같은 장신구를 좋아했고, 부모님은 그런 누나의 취향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누나가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집에는 고성이 오갔다. 그날은 누나가 어머니의 엄중한 경고에도 은색 초커를 차고 왔던 날이었다. 부모님은 초커를 잡아당기시며 누나를 협박했고, 몸 싸움 끝에 누나의 졸린 목에는 초커의 뾰족한 모양이 긁혀 흉터로 남았다. 그 뒤로 누나는 집에 다시 들어오지 않았다. 누나를 다시 본다면 돌아오라고 화낼 작정이었지만, 누나를 다시 만난 날 난 그럴 수가 없었다. 누나의 흉터 위엔 나비 모양의 문신이 그려져있었기 때문이다. 난 나비가 싫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만든 애벌레는 기어코 세상을 향해 날아갈 나비가 됨을 알고있다. 열심히 썼는데 애증의 감정이 안담긴거 같아서 슬퍼 ㅠㅠㅠ

409 이름없음 2021/03/26 18:55:08

아가미 병 휴지

410 이름없음 2021/03/26 22:07:27

"정말 예쁘고 바보같아." 뻐끔거리는 네 입이 꼭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너를 지칭하는 것인지, 나를 지칭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너는 응시하고 있던 것일까? 그래봐야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네 눈에는 흰 막이 뒤덮여 있고 입 안에는 치아 하나 남지 않았으니. 너는 퇴화하고 퇴화하여 마침내 내 손 안에 들어왔다. 일부러 너를 깨지기 쉬운 싸구려 유리병에 넣었다. 너를 더 소중히 여기기 위해, 언제든지 미련없이 깨뜨려버리기 위해, 내 죄를 더 선명히 직시하기 위해. 코조차 남지 않아 아가미 호흡을 하는 너는 꽤나 귀여웠다. 네가 담긴 병을 손으로 건들이니 너는 병 한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그래봐야 바닥에서는 네가 보이는데, 나는 한참이나 웃었다. 네가 우스운 것이 아니라 내 사랑이 너무나 초라해서 웃었다. "네가 웃는 게." 너는 다시금 그 작은 입을 뻐끔거렸다. 또 멋대로 판단하는 내 눈동자는 네 표정을 비추고 있었다. 그 표정은 뭐야? 두려움, 곤란, 불안, 그 따위의 것들. 얼굴 하나 찌푸릴 수 없는 네가 그런 걸 뱉을 리 없는데, 그런데 내 눈에 비친 너는. 난 네 앞에서 욕지기를 했다. 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그동안의 모든 감정을 토해냈다. 더러워진 바닥을 닦으려고 휴지를 꺼내는데, 네가 입을 열었다. "죽어." 나는 널 보지 않았건만, 너는 그렇게 말했다. 쏟아낸 것들이 너무 많은 탓에 너를 쥐었다. 오늘도 버리지 못한 너를 사랑하며. 1년만에 글 쓰는거라 어색하다

411 이름없음 2021/03/26 22:48:06

여행 인연 웃음

412 이름없음 2021/03/27 02:53:08

5년 전 쯤부터 여행을 시작했다. 시작한 이유는 어이없게도 실수 때문이었다. 등교할 때 기차를 잘못 타고 강원도까지 와버린 탓이었다. 이미 지각인지라 더 늦어봤자 소용 없겠다는 생각 때문에 좌석에 몸을 편히 누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강원도의 수많은 산들이 바깥을 장식했지만 어느 산도 똑같지는 않았다. 제각각 다른 산들이 내게 포근함을 선물해 주었다. 몇 십 분 쯤 지났을까, 어느 여자가 내 옆좌석에 앉았다. 필시 여기가 원래 자리는 아닐 터, 나는 창문에 몸을 더 기댔다. "바깥 진짜 예쁘죠?" 갑자기 말을 걸어오자 나는 당황해서 그렇다고 답했다. 내 표정이 잘 보였는지 그녀는 키킥거리며 웃었다. "이거 영월로 가는 찬데, 학생이 어쩌다가 탔어요?" "아, 그, 열차를 잘못 타서... 학교도 이미 늦었겠다 계속 타고 있어요." 그녀는 또 웃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해도 상황이 웃기길래 같이 한참을 웃어버렸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여러가지를 알게 됐다. 그녀는 사진 작가이고, 여기저기를 누비며 사진을 찍는 중이라고 했다. 그녀는 조금 커다란 카메라를 꺼내 내게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사진에는 수많은 멋진 풍경들이 담겨있었다. "내가 풍경 하나는 진짜 잘 찍는단 말이죠." "여긴 어디에요?" "단풍산이에요. 노을이 진짜 예뻐요." "네, 진짜 그렇네요." 고등학생 때의 작은 일탈은 꿈 없던 내게 새로운 꿈을 찾아주었다. 가방에서 내 카메라를 꺼냈다. 그녀의 것처럼 조금 커다랬다. "벌써 도착했네요." "그러게요. 그럼 저는 이제 돌아가볼께요." "영월 오자마자 집으로 돌아간다니, 이것 참" 그녀가 큭큭거렸다. "이런 인연은 흔치 않으니깐 나중에 멋진 어른 되면 누나 다시 찾아와라?" "네, 담에 뵐께요." 기약 없는 약속을 두고 5년 전 첫 여행은 끝이 났다. 그 이후 2~3개월 마다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곤 한다. 그리고 풍경이라는 이름의 인연을 사진 속에 담는다. 사진 속에 담긴 인연은 평생의 추억이 되어 5년 전의 찍은 나와 그녀의 사진처럼 여운을 남겨준다. 오늘, 이번 역은 영월이다.

413 이름없음 2021/03/27 04:47:53

마법 소원 기적

414 이름없음 2021/03/27 22:28:21

인생을 살다보면 마법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랄때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터무니 없는 소원을 들어주는 신이나 악마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그녀는 그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그리도 밉살스러워 보이긴 또 처음이었다. 마을에 소동이 일어났었다. 마녀를 잡아들인 날이었다. 꿀 흐르는 길고 부드러운 금발에, 금방이라도 물이 넘쳐흐를것 같은, 하지만 어째서인지 얼음장보다 차가운 파란 눈망울을 가진 소녀였다. 이유라... 무슨 이유였더라. 마을의 은식기와 은촛대가 모두 사라져서였을까. 메리네 사냥개가 나무에 걸린채 발견되어서였을까. 마을 축제 음식을 위한 가축들이 모두 처참하게 죽어있어서였을까. 모두 소녀가 한 짓이었다. 악에 받쳐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소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어쩜, 불쌍하기도 해라. 틀림없이 모두 누명이리라, 생각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모두가 소녀를 마녀로 몰아간 이상, 소녀는 마녀가 아닐리가 없었다. 어설픈 손길로 묶은 밧줄을 소녀의 목에 걸었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긋지긋한 마을. 소녀의 가녀리고 흰 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어두운 색이었다. 지긋지긋한 개돼지들. 소녀는 여전히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소녀의 목을 장식한 밧줄은 여전히 그 목을 옥죄어오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세상? 소녀의 밑에서 의자를 빼내었다. 작은 두 발이 버둥거렸다. 여전히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아하.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저 귀를 찢을듯 비참한 소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저주를 퍼붓는 목소리는 모두 내 목에서 나오는것이었구나. 그럼 마지막으로 한번 기적을 바래야겠어. 진짜 마녀가 될 기회를 줘, 아무나, 내 저주를 들어줘, 하늘이 맑았고 쥐 죽은듯이 고요해진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

415 이름없음 2021/03/28 01:20:12

회사 물 보라색

416 이름없음 2021/03/30 23:32:51

나는 아직 너를 기억한다. 같으면서도 다르던 너와 나는 유독 우리의 미래를 꿈꿀 때 죽이 잘 맞았다. 나는 작가를, 너는 배우를 꿈꾸며 서로가 서로의 뮤즈가 되어주었다. 내 글 속에 담긴 우울을 표현할 수 있는 건 네가 유일하고, 항상 밝고 해맑던 너의 이면을 들출 수 있는 건 내가 유일하다 생각했다. 나는 빛 다한 나의 꿈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내 피가 보라색일 줄 알았어." 검붉은 색으로 이리저리 그어진 낙서를 너에게 보이며 담담하게 얘기하던 그 날을 기억한다. 나는 내 피가 반 쯤 파란 눈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 파란 눈물이 머리에, 심장에, 손 끝에 흘러 글에 스며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탄생한 글은 파란 우울이 담겨 아름답다 생각했다. 푸르게 일렁이는 글이 특별하다 생각했다. "근데 아니더라. 빨간색이었어." 하지만 야속하게도 내 글은 푸르게 일렁이지 않았다. 빨갛게 타오르지도 못했다. 투명하고 맑지도, 아득하게 까맣지도 못했다. 내 글은 흰 종이에 검은 글자가 섞인 그저 그런 회색이었고, 화려한 글들 속에 묻혀 그림자가 되었다. 미련한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 피를 냈다. 보라색이 베어 나오길 바라며 피를 냈다. 하지만 흐른 피는 함께 흐른 눈물과 섞여도 여전히 빨간색이었다. 일부로 붉은 낙서 위로 눈물을 흘려도 낙서는 보라색이 되지 못했다. 그때 내 낙서를 보고 눈물을 흘리던 너를 기억한다. 너는 파랗게 울었다. 내가 그토록 원한 파란 눈물을 흘렸다. 그런 네 눈물이 닿자 낙서가 거짓말처럼 보라색을 띠었다. 그걸 보고 나서야 나는 인정했다. 내 글이 푸르게 일렁인 건 네 덕분이라는 것을, 파란 눈물을 흘리면서 빛나는 건 내 글이 아닌 너라는 것을. 우습게도 파란 너의 눈물을 보고 나서야 내가 회색이라는 걸 인정했다. 지금의 나는 회색 정장을 입고 회색 건물에 들어가 그림자가 되어 매일을 살아간다. 평범한 회색의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나는 아직 종종 너를 기억한다. 눈부시게 푸르던 너의 눈물을 기억한다. 내 글을, 나를 잠시나마 파랗게 빛나게 한 너를 아직도 기억한다. 나의 배우, 나의 뮤즈, 나의 꿈, 나의 파랑. 아이고 쓰다 보니 어째 작가, 파랑, 눈물 쪽으로 많이 엇나간 것 같네... 미안해라...

417 이름없음 2021/03/30 23:54:19

열정 동경 빛

418 이름없음 2021/04/04 02:06:28

일반 보편으로서 성립하는 성향이 사람에게 있다면, 나는 주장하겠다. 누구나 본인이 원하는 가치를 추구하고 사랑에 빠지면 열정적인 구애를 할 수 있음을! 내면에서 솟구쳐 어딘가로 발산하지 않으면, 이 불길이 이곳에 있노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오직 타죽을 뿐. 가치에로의 동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음이라. 한 개인의 시간적 흐름 상에서 명백히 뒷전임에도 그것이 끝끝내 지금에 임한다. 아무리 헤치려해도 그것이라 부르는 건, 너무나도 명백히 일련의 감정으로서 우리의 내관을 뒤흔든다! 가치에로의 동경. 그는 그 잣대에서 후회와 회한 등을 뒤집어 쓰면 오늘도 태양을 피해 숨을 들이마쉬고 내쉴 것이다! 빛은 그에게 있어서 뜨거움이다. 내면에서 타오르지 않는 그것은 그의 몸에 해롭다. 빛이기에! 그의 경험적 흐름에 근거함에도 그가 쌓아올리지 못한 것이기에 더욱 그러함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빛을 보면 갈구하는 것이다... 그의 열정이 빛을 동경함으로써 타올랐듯이...

419 이름없음 2021/04/04 02:53:14

신사(紳士), 비밀, 미소

420 이름없음 2021/04/12 22:07:59

최근 어떤 인물과 편지로 교류를 하기 시작했다. 상대는 언제나 항상 점잖은 태도와 아름다운 외모, 나긋나긋한 목소리, 그와 동시에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움마저 갖춘 신사분으로, 독특한 필체에 외견뿐만 아니라 문장 하나하나에도 그 특유의 신비롭고도 중후한 분위기가 어려 있었기에 그와 편지를 주고받는 나날은 매번 나에게 두근거림과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다. 그때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런 기분은 영영 맛볼 수 없었을 것이다. 수 개월 전 희귀한 보물이 수없이 잠들어 있는 조용한 박물관에서 처음 만난 날이 교류의 시작이었다. 처음엔 그렇게 특별한 이야기는 오가지 않았다. 넋을 놓은 채 진귀한 보물들을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그가 먼저 말을 걸어왔고 우리 둘 사이에 오간 이야기라곤 보석이나 명화에 대한 감상과, 가끔 서로 생각하는 바가 일치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웃음이 전부였지만 이제껏 살아오면서 그만큼 정중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가진 신사와는 만나본 적이 없던 탓일까. 딱히 자주 찾던 곳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신비로움을 쫓아 거의 매일 박물관에 가곤 했다. 그도 나처럼 박물관에 자주 방문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았다. 그가 있는 날도 없는 날도 있었지만 없던 날이 더 많았으니까. 몇번인가 다시 만났을 때 난 그와의 인연을 더 이어가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내어 평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꿈꿔왔던 편지 교환을 제시했다. 그는 잠시 놀란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온화하고 따뜻한 미소와 함께 흔쾌히 수락했고, 그렇게 우리의 교류는 시작되었다. 물론 편지 교환을 시작했다고 해서 그동안 이어졌던 외부에서의 만남을 끊어버린 건 아니었다. 때때로 그 쪽에서 먼저 박물관에서 만날 것을 제안해왔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오후의 따사로운 햇볕 아래 그를 만나러 박물관으로 향하는 시간은 너무나도 즐거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와의 교류 속에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편지 교환을 시작한 뒤, 꼭 그와 만난 당일날 밤에만 박물관에서 보물이 누군가에 의해 도둑맞은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점점 의문이 커진 탓에 결국 나는 그에게서 받은 편지의 내용들과 인터넷 기사들을 자세히 대조해가며 살펴보았다. 어떤 날에는 보석이 사라졌다. 또 다른 날에는 명화가 감쪽같이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그렇게 보물들이 사라진 날들은, 전부 그가 편지로 박물관에서 만나자고 한 날짜들과 정확히 일치했다. 몇가지 더 알게 된 정보는 오직 밤 시간대에만 도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한 가지 특이사항으론 범인은 마치 어느 창작물에 등장하는 괴도처럼 행동을 개시하기 전, 꼭 이 시각에 이러이러한 보물을 가져가겠다는 식의 예고장을 보낸다는 점. 그가 노리는 보물은 보석이나 명화뿐만 아니라 좀 더 다양하다는 점. 또 앞서 벌어진 일들이 국내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외국에서도 똑같이 일어났다는 것으로 보아 범인은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기사에 공개된 예고장의 필체는, 그 특유의 독특한 필체와 거의 흡사하다는 점. 궁금함을 참지 못한 난 결국 그를 만나 도난 사건에 대한 의문점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혹시 최근 벌어지는 박물관 도난 사건에 대해 알고 계시는지, 지금까지 사전에 따로 예고장을 보낸 뒤 범행을 저질렀던 사람이 있었는지. 또 범인이 계속 이곳을 노리고 있는 것 같으니 우리도 조심해야 하는 것 아닌지. 점점 격앙되는 내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그에게선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오하고 수수께끼와 비밀로 가득 차 있다,고. 그러면서 내게 부드러우면서도 어딘가 차가운 웃음을 지어 보였기에, 이 이상 더 말을 꺼내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예고장의 필체에 대해선 도무지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그에게도 차마 말 못할 사정이나 비밀이 있겠지 하며 너무 깊게 캐묻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그에 대한 의구심을 애써 억눌렀다. 그는 아닐 거야, 절대 그가 저지른 짓이 아닐 거야... 하지만 꾹 눌러왔던 의구심은 머지않아 폭발해버렸고, 나는 급하게 작전을 세운 뒤 실행에 옮겼다. 오늘 박물관에서 그와 만나 대화를 나눴으니, 몇시간 뒤 밤이 되면 그가 다시 박물관에 찾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건물 안 어딘가에 몰래 숨어서 기다렸다가 그가 나타나는지에 대한 여부를 확인한다. 나는 다시 한번 그 박물관을 향해 걸어갔다. 아무래도 사전에 예고장을 보낸다던 그 이야기가 사실이었는지 박물관 쪽 직원들과 경찰들도 미리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렇게 해가 저물고, 하늘이 완전히 까맣게 변했을 때. 갑자기 건물 전체에 불이 꺼졌다. 사람들 사이에서 한바탕 소동이 펼쳐진 후 다시 불이 켜지자, 경찰들이 지키고 있던 보석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그대로 건물 밖을 뛰쳐나갔다. '범인'을 쫓아 근처 거리를 한없이 달렸고, 마침내 수상한 차림을 한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게 새카맣다. 검은색 정장에 검은색 망토, 검은색 실크 햇과 모노클. 그리고... "결국 비밀을 알아내려 오셨군요." 귀에 익은 나긋나긋한 목소리. 하나도 틀림없는 그의 목소리였다. 머릿속이 극도로 혼란해졌다. 지금까지 인연을 쌓아온 상대가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범죄자였다니. 보석을 한 손에 든채 여느 때와 똑같이 미소짓는 그 모습에 자동으로 뒷걸음질 쳤고, 그에게서 감돌던 신비로움은 어느새 무거운 압박감과 공포감으로 변해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범인'은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다음에 노릴 사냥감은 과연 무엇이 될지 세상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보석이 될지, 명화가 될지, 오랜 역사가 담긴 액세서리가 될지, 유명한 가문에 전해지는 가보가 될지. 혹은... 사람이 될지. 비밀에 둘러싸인 미지의 영역은 다음 예고장이 도착하기 전까진 알 수 없다. 여기 글 쓰는건 처음인데... 나 진짜 가면 갈수록 개못쓴다

421 이름없음 2021/04/12 23:45:24

이별, 사탕, 고백

422 이름없음 2021/04/16 15:01:57

그는 다크 초콜릿의 쌉싸름한 맛을 좋아하지 않았다. 커피도 잘 마시지 못했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입에 달고 살던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다. 달콤한 것을 좋아했고, 달콤한 사람이었다. 그와의 사랑은 참 달콤했다. 낮에 보면 밤에 또 보고 싶었고, 손을 잡으면 안고 싶었다. 과거를 나누고, 지금을 보내며 함꼐할 미래를 그렸다. 그와 나는 서로를 애틋하게 사랑했다. 한없이 달콤하고 애타는 나날들이었다. 문제가 있었다면, 그건 내게 너무 과분한 것들이었다. 그는 햇살이었다.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이었다. 내가 그림자였을 뿐이다. 난 그가 있기에 존재했지만, 결코 그를 닮을 수는 없었다. 그는 나를 존재하게 했지만, 나를 품어줄 수는 없었다. 한없이 따스한 그라고 그늘까지 품어낼 수는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그가 화이트 초콜릿을 좋아하던 것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그 사이는 평생 좁혀지지 않을 것이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결국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는 참 애달프게 울었다. 왜, 왜냐고 몯는 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저 우리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식상한 말로 둘러대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나조차도 내게 정확한 이유를 댈 수 없었다. 난 그와 어울리지 않았고, 그는 내게 과분했고, 그리고... 2년 전 화이트데이, 조그마한 손으로 사탕을 건네며 좋아한다고 고백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사탕은 참 달았다. 입이 얼얼하게 달았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네가 내게 건네준 사탕이 정말 달아서, 그래서 나는 너와 이별했다.

423 이름없음 2021/04/16 22:45:05

절망, 꽃, 인내

424 이름없음 2021/04/17 09:28:31

들판의 꽃들이 어여쁘게 피어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모습을 보고 있자니 평온함이 몸 속 깊이 잦아드는 것만 같았다. 선선한 바람, 그럼에도 햇빛은 어찌나 따뜻한지. 날씨마저 완벽한 날이다. 그저 이런 날만이 반복되기를 바람에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그럼에도 이기적인 나는 그런 헛된 희망을 바라본다. 그렇게 가만히 풀밭에 앉아 고요함을 즐길 때 그 고요를 깨는 폰에서 진동소리가 들린다. 뭐, 기분 나쁠 것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평화롭던 시간을 방해한 것에 살짝 뾰로통해서는 폰을 든다. 내 잘못이지 뭐. 무음으로도 안 해놓고. 괜한 질책을 한 뒤 메세지를 확인한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죽어? 누가 누가 죽어? 왜? 의문은 꼬리를 물고 늘어지고 코 끝은 나도 모르게 시큰해진다. 눈 앞은 흐려졌다 맑아지기를 반복하며 신음소리는 잇새로 흘러나온다. 아, 아. 결국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버팀목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ᆞ ᆞ ᆞ 오랜만이다. 계절이 지나 꽃이 져버리고 들판은 새하얗게 물들었다. 간간이 불어오는 칼바람은 어느새 길어진 머리칼 사이로 파고들어 헝클어트린다. 머리는 금방 엉망이 되겠지만 상관없다. 멍하니 져버린 흔적조차 남지 않은 꽃들의 자리를 바라보고 있으니 눈물이 흐른다. 손으로 얼른 눈물을 닦아낸다. 괜찮아졌는데, 왜 이러지-? 분명 괜찮아졌다. 그런데 괜찮지 않는건지 눈물이 홀로 흘러내린다. 긴 시간이었다. 핀 꽃이 져버리기까지. 그 사이는 절망 속의 시간이었다. 그 긴 시간을 홀로 위태롭더라도 인내하며 기다렸고 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아니었다? 그런가. 아니었나? 궁금하다. 괜찮아진 건지 아닌지. 그런 의문을 가지고 애써 괜찮은 척 하며 주위를 느릿느릿 걸어다녔다. 그러다보니 하얀 들판에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노란색. 뭐지 싶어 다가보니 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복수초 같은 꽃인데 이 작은 꽃이 어찌 눈서리를 뚫고 피어났는지 신기할 뿐이다. 생각해보니 벌써 2월이다. 슬슬 꽃이 피어날 시기. 복수초는 겨울 끝자락에 피어난다. 그리고 곧 다른 꽃들도 만개하니 복수초는 봄의 시작을 조금 일찍 알리는 꽃일터이다. 꽃이 핀다. 언젠가는 질 것이고 일 년 후에는 다시 피어난다. 그 시기가 조금 빠르든 늦든 언젠가는 진다. 그리고 언젠가는 핀다. 그것이 꽃이다. 참 재밌다. 나도 꽃이었으면 좋겠다. 절망 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겨울을 이겨내고 긴 인내를 통하여 따스한 봄을 언젠가는 맞이하는 꽃. 나는 언젠가는 꼭 만개할 것이다. 나는 괜찮지 않다. 그래도 악착같이 버틴다. 버틴다. 버티고, 또 버틴다. 언젠가는 봄을 맞이할테니, 그 기간이 길더라도 버틴다. 나는 그럴 것이다. 부디 하루하루 피어나 어느샌가 화사한 꽃 밭이 되어있기를.

425 이름없음 2021/04/17 09:29:37

구름, 달빛, 망토

426 이름없음 2021/04/17 22:03:39

유난히 달이 어둡다. 무언가에 가려진 것처럼 희미하기만 하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계속 달을 바라본다. 달과 달리 선명한 별이 먼저 시야에 들어와서, 나는 한 눈을 팔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무언가가 사라지며 그믐달이 눈에 들어온다. 달이 얇은 게 꼭 잘려나간 손톱 같았다. 아니면 어둠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빛이나. 어둡지만 그레도 빛이라는 건지 달빛이 조각상의 형상을 만든다. 어스푸름하게 형태를 내미는 조각상은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곧 망토를 두르는 것처럼, 다시 달이 가려졌다. 나는 그제서야 달을 가린 것이 하얀 구름이란 것을 깨달았다.

427 이름없음 2021/04/17 22:04:23

그림 잔디 불빛

428 이름없음 2021/04/22 22:14:23

불빛이 반짝이는 공간속, 그는 항상 잔디만을 그렸다. 무엇을 바라보는지 항상 허공에 시선이 맴돌았다. 아무말없이 그저 사각사각 연필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429 이름없음 2021/04/23 00:13:13

욕망 타락 지옥

430 이름없음 2021/04/23 00:13:46

반딧불이, 노래, 달빛

431 이름없음 2021/04/23 13:30:17

>>429 욕망 타락 지옥 먼저.. 솜사탕 뭉치의 하늘은 어릴적 동심과 같지만 뭉게구름 자욱히 깔린 잿빛에 머무른 나는 타락해버린 사람일 뿐이다. 끝 없이 타오르는 어두운 맘이 있다. 그래서 이것을, 형체가 없는 낡은 비디오테이프 같은 이 맘을 욕망이라 부르기로 마음 먹었다. 잿빛의 먼지구덩이로 빠져버린 이유인 거다. 지옥과 같이 헤집어 놓는 욕망은 성립되지 않아야 하는 식이었다.

432 이름없음 2021/04/23 14:12:36

>>430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래에 홀린 듯이 발걸음을 떼었다. 숲길은 점점 좁아졌고, 달빛은 구름에 가려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도 모른 채 이 기묘한 곳을 걷고 있었다. 어느 순간 노랫소리가 끊겼다. 그 순간, 내 눈앞에는 수많은 반딧불이들이 나타났다. 여름밤의 더위와 이곳까지 걸어온 나의 수고를 전부 보상하는 듯한 반딧불이가. 나의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풍경이었다.

433 이름없음 2021/04/23 14:16:14

공멸, 죽음, 희망

434 이름없음 2021/04/24 02:47:41

너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가슴에 칼을 박았다. 긴 칼은 내 손을 타고 네 옷자락과 살가죽, 심장을 뚫고서 다시 내게로 돌아와 폐에 박혔다. 까만 동공 안에 비치는 경악과 배신감,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을 핥아대는 내 눈의 형태가 조금 우스웠다. 뭐가 그렇게 놀랍고 억울할까, 모든 것은 네가 원했을 터인데. 10년 전, 널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공멸을 예감했다. 네가 썩 착한 녀석이 아닌 것 쯤 처음부터 알았으니까. 알면서도 네게 넘어가준 나에게 우리의 결말은 네가 눈이 돌아가 나를 목죄어 죽이는 것이 먼저인지, 내가 말라 죽는 것이 먼저일지의 치킨게임 이었다. 차라리 네가 그렇게 평생을 살았다면 나는 끝까지 네게 이용당해 주려했다. 어느 날 내가 여느때와 같이 가장 사경을 헤맬 때 네가 한 말이 아니었다면. 그 때 너는 대체 뭐라고 했던가. 이제 그만해도 돼? 아니, 그럴 순 없다. 너는 나를 쓰고 버리고 다시 주워오며 내가 언제라도 네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오르려 하진 않는지 감시하고 불안해하고 견제해야했다. 그토록 불완전한 개 임에도 너에게 이만큼이나 헌신하는 자는 나밖에 없음을 깨닫고 절망하고 집착하며 날 막 대하면서도 내가 떠나지는 않을지 전전긍긍해야했다. 네가 그 말만을 남기고 모든것을 포기하며 도망쳤을 때 내게 남은 선택지는 이것 뿐이었다. 너는 심장을 찔렸고 나는 폐를 찔렸으니 네가 먼저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게 나의 마지막 위안이었다. 나는 너의 모든것을 보고싶었으니, 그것이 죽음일지라도. 네가 체념한듯 눈을 감고 팔을 늘어뜨리는 것을 보았다. 네 슴이 희미해지고 옅어지다가 이내 끊기는 것을 보았다. 미약하게 오르내리던 흉부가 멈추고 이 고요한 곳에 흐르는 것은 바람뿐임을 알아챘을 때, 나도 눈을 감았다. 희망이란 건 처음부터 없었다. 그 비스무리한 거라도 있다면 아마 나에게 있어 너의 존재. 그리고 너에게 있어 나의 존재. 뭐, 둘 다 이젠 없겠지만.

435 이름없음 2021/04/24 02:53:55

추락, 절망, 까마귀

436 이름없음 2021/04/24 23:52:08

추락하며 본 너의 표정에 담긴 감정은 내가 본 것 중에도 가장 화려한 기쁨이었다. 절망한 나는 네가 무서워한다고 말했던 까마귀가 되게 해달라 빌었고, 그 소원은 이루어졌다. 이제 남은 건 너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며 내 몸짓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너를 보고 작은 위안을 얻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네가 했던 말 중 진실은 없는지 지금 내 날개를 잡은 너는 끔찍이도 눈부신 미소를 짓고 있다.

437 이름없음 2021/04/24 23:55:32

체념 사랑 죽음

438 이름없음 2021/04/25 01:00:13

조금은 우울했으면 좋겠어. 너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고. 이기적이란 거 알아. 내 기분에 세상이 맞춰줄 순 없지. 나는 평소에도 늘 그러니까 내가 맞추는 편이...맞춘다는 표현도 이상하기 짝이 없는 것 같아. 있잖아. 네가 그랬잖아. 별과 별 사이는 멀어서 너무 멀어서. 별은 어쩌면 자기 자신만 덩그러니 놓여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누구를 얘기하는지 싶었는데. 가끔은 그랬던 네가 생각나네. 괜찮아. 지금은 잊어버리려고 하고 있으니까.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시간이란 바람에 풍화되면, 빛바래면 괜찮아지겠지. 상투적일지도 몰라. 그래도 좋아. 그래도. 우울했으면 좋겠어. 하루 종일.

439 이름없음 2021/04/25 12:29:17

추억 노을 고래

440 이름없음 2021/04/29 05:06:34

하늘에 진 노을을 바라보며 하나씩,하나씩, 너를 추억해 나갔다. 태양처럼 강렬하게 빛나기 보다는 달처럼 은은하게 빛났던 너를, 울창한 숲보다는 시원한 바다가 더 어울렸던 너를,한창 찬란했었던 너를 하나씩 떠올렸다.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너를 떠나보내기가 힘들어져서 그만 해보려했으나, 어찌 그럴수 있겠는가. 네가 나를 사랑한 만큼 나 또한 너를 사랑하였는데 어찌 너를 추억하지 않겠는가. 그리도 청아하게 빛나던 너를 어찌 잊을수 있겠는가. 허나 이리 수려하던 너도 보내줄 때가 되었기에 너의 잔재를 쥐어 넓은 바다위에 뿌렸다. 조금씩 조금씩 빠져나가 바다위로 흩날리는 하얀 것을 나의 눈물과 같이 보냈다. 그리고 빌었다 제발 다음번에 만날때는 행복해지라고,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말고 자유로워지라고, 애타게 빌었다. 점점 어두워지는 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너를 향해 말했다 고맙고 많이 사랑한다고. 너와 함께해서 즐거웠다고 소리쳤다. 나의 말을 들었던것일까, 눈물만 뚝뚝 떨어트리고 있던 내앞에 고래가 튀어나와 그 커다란 몸둥이를 뒤집으며 대답하는것 마냥 울음소리를 내었다. 다행이구나, 이번에는 자유롭게 바다를 누빌수 있어서.

441 이름없음 2021/04/29 19:22:16

어플, 노래, 일상

442 이름없음 2021/04/29 22:41:28

그립다 . 학교가 끝나고 학원으로 가면서 음악 어플을 눌러 노래를 듣는, 그런 평범한 일상이 너무나도 그립다. 지금은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노래요, 그들을 괴롭게 만드는 기계가 어플이니 평범하지는 않은 내 나름의 일상이다.

443 이름없음 2021/04/29 23:05:16

아우디, 선생님, 아메리카노

444 이름없음 2021/05/01 16:49:24

훈남 교생쌤이 어디서 돈이 났는지 아우디를 끌고 아메리카노를 든 채 학교에 오는 것을 목격했다. ...미안

445 이름없음 2021/05/01 16:51:14

첫 눈 학원 붕어빵

446 이름없음 2021/05/02 01:40:57

매년 찾아오는 똑같은 겨울임에도 눈이 내리는 순간마다 깊은 상념에 빠지기를 반복한다. 사실 상념이랄 것도 없이, 시간에 빛바래 산화된 추억일 뿐이었지만. 많고 많은 추억들 중에서 기억을 돌이켜볼 때마다 덜컹, 하고 멈추는 부분이 이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찾아오는 숨막히는 젖은 공허함, 적막함, 약간의 슬픔의 출처를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그 찰나의 추억에는 내 그리운 누군가가 머물곤 하는데, 얼굴조차 흐릿하게 번져 가물가물한 형태만 보임에도 그 사람이 느끼고 있는 지독한 슬픔에 나도 같이 울었던 것 같다. 음, 다시 생각해보면 눈물이 흘러 그 사람의 얼굴이 흐리게 보였을 지도 모른다. 내 좋을대로 미화된 기억을 잠깐 이야기 해주고 싶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를 영영 잊어버리고 말 것이라며 심장이 세차게 뛰고 있으니, 나의 온전한 것으로만 남게 하고 싶었던 기억의 편린을 당신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때는 십여 년 전으로 돌아간다. 지금의 학생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서울의 학원가에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녔던 예비 수험생의 나. 고2에서 고3으로 넘어갈 무렵, 지금처럼 눈 깜박하면 지나가는 가을이 보다 조금 길었을 당시. 겨울 초까지 나겠다며 바락바락 엄마와 약속하고 새로 산 떡볶이 코트를 입은 채, 새롭게 등록한 학원을 향했다. 크게 이상한 것도 없는 것이, 요맘때 즈음의 학부모는 자녀의 무참히 짓밟힌 모의고사 성적표에 발등에 불떨어져 학원을 주구장창 바꾸곤 했으니까. 사설이 조금 길었으려나? 하지만 내가 앞으로 이야기 할 '그 애'도 나와 비슷한 상황으로 학원으로 모여들었으니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 애'는 학원 수업이 개강한 지 한 달이 내도록 학원 수업을 빠졌다. 학원에 나오질 않으니 접점이 없었다. 다만, 빈 옆자리를 볼 때마다, 출석 체크를 할 때 꼬박꼬박 불리는 그 애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어디 돈이 똥구멍에서 솟냐며 학원비가 아깝다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부모님이 부자인가?' 에서 시작한 궁금증은 사소하게 알게된 그의 작은 정보들을 양분삼아 무한정 자라나더라. 결국 '사정이 있는 친구'에서 '부모님 돈 믿고 수업 빠지는 양아치, 꼴통'로 이미지가 전락한 건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두 달이 흐르고 어느날. 나는 유난히 그날따라 극심한 생리통으로 인해 2교시도 마치지 않고 급하게 학원을 벗어났다. 1층의 학원 문 근처에는 수업이 시작한 지도 한참인데다가 수업 끝나기까지 몇 시간이나 남았기에 유난히 '그 애'가 눈에 띄었을 지도 모른다. 또래의 남자애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던. 하얀 볼캡 모자를 쓰고 있던 그 남자애는 사복 차림이었다. 평소였다면 그저 지나쳤을 테지만, 엄청난 생리통에 머리가 맛이라도 간 건지••• '그 애' 같았다. 그 흔한 교복을 입고 있던 것도 아니고, 명찰이 보이던 것도 아니었는데.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유령같은 존재였던 내 빈 옆자리의 주인인 '그 애'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래서 그 남자애와 다섯 발자국 정도 떨어져 있을 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그 애'의 이름이 그 남자애에게 들렸던 것 같다. 음, 아마 들렸던 게 분명했다. 놀란 표정으로 나를 향해 뒤돌은 그 남자애의 표정엔 물음표가 가득했으니까. 나조차도 놀라 잠시 숨쉬는 것을 잊었다. 그렇게 몇 초 동안 시선이 오고갔다. 조금 정정하자면, '그 애'는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들어맞으면서도 틀렸다. 수업에 안 들어가고 마음대로 쨌으니 분명 꼴통은 맞았지만, 가지런히 숱많은 눈썹에 강단 있는 눈매, 무엇보다 나를 꿰뚫어볼 듯한 맑은 눈을 가진 외양은 양아치와 거리가 멀었다. 소위 말하는 엄친아? 전교 회장을 맡을 것 같고, 뭔가 향기도 섬유유연제 냄새만 날 것 같은 그런 사람. 그 애는 나를 아냐는 물음을 던졌고, 당황한 나는 대답대신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면전에 던졌다. 동문서답이 따로 없다는 걸 깨닫자 마자 온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던 건 어린 나로서 당연했다. 그 과정을 멀거니 바라만 보던 '그 애'는 가볍게 웃었다. 미안하다고 계속해서 사과하며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있던 나는 그 웃음을 보고 덜컥 숨이 막혔다. 이유는 별 거 없었다. 낮게 울리는 목소리와 웃을 때 동그랗게 만들어지는 입동굴이 예뻐서. 나오려던 말이 쏙 들어가고 어버버하며 다시 얼굴이 빨갛게 익어가려던 찰나에, 그 애는 내 코트 소매자락을 약하게 잡아 당겼다. 물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눈 떠보니 붕어빵 가게 앞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 떴더니, 내 손에는 붕어빵이 봉투 째로 쥐어져 있었고, 또 한 번 눈을 감았다 뜨니 '그 애'가 손을 붕붕 흔들며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한참을 그 애가 사라진 곳만을 바라봤다. 톡, 하며 볼에 내려앉은 차가운 눈이 사르르 녹아내리고 나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무언가에 홀린 건가,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지나간 짧은 너와 나의 첫만남이었다. 그리고 오늘. 기상청도 예상하지 못했던, 난데없는 첫눈이 내렸다. 이루어지지 못할 첫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듯, 펑펑. 그 날이 나의 우연이 너와의 인연이 되던 나의 소중한 추억의 시작이었다.

447 이름없음 2021/05/02 02:03:59

잰걸음, 발자국, 사막

448 이름없음 2021/05/02 17:10:31

여러 지역을 여행하던 중, 이번에은 사막을 갔다. 한국의 기온에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만큼 뜨거운 공기,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 발가락 사이에 흘러들어오는 모래를 만끽하며 먼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뒤쫓는다. 발바닥이 간질간질하고, 조금 뜨겁지만, 이보다 값진 경험은 없으리. 그렇게 맨발로 하염없이 걷다 물보다 고운 모래에 넘어질까 두려워 잰걸음으로 내리막길을 걸어나간다.

449 이름없음 2021/05/02 17:40:33

빈 박스, 토끼 인형, 엄마의 립스틱

450 이름없음 2021/05/02 18:10:27

" .. 아. 박스 하나가 비네. " 이삿짐을 준비하다보니 빈 박스 하나가 덩그러니 놓였다. 아마 저 빈자리는 원래 ' 살아계셨다면 ' 엄마의 물건이 들어갈 자리였을것이다. 너울처럼 아른거리는 엄마와의 기억은 잠시 집어치우고 물건들을 마저 정리하기 시작했다. 수저통, 악보집, 토끼 인형.. 다 정리하다보니 남은건 엄마의 냄새, 엄마의 칫솔, 엄마의 립스틱... 이 집도 곧 비워지겠지.. 생각하며 박스들을 정리하고 아늑한 집 풍경을 바라본다. 엄마는 분명 이곳에 있는데.. " 엄마, 나 이만 가볼게. " 눈에선 눈물이 흘러나오는데, 입에선 웃음을 지었다. 나도 참 이상하지.

451 이름없음 2021/05/02 18:12:15

인생, 거울, 베개

452 이름없음 2021/05/13 02:49:26

ㄱㅅ

453 이름없음 2021/05/14 04:41:25

거울에 손이 닿았다. 거울은 물처럼 일렁였다. 금방이라도 흐를것 같았다. 베개에 투둑, 일렁이는 거울의 일부가 떨어져나갔다. 정신을 차리곤 흘러내리는 거울을 붙잡고 싶어선 무작정 흐르는 거울을 손으로 담았다. 손에서 바닥으로. 담았던 거울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거울엔 내가 비췄다. 깨달았다. 거울을 손으로 담을 필요는 없었다. 그저 흘러가게 두면 된다. 바닥이 더러워지겠지만 상관없다. 더러워진 손을 씻고 인생을 살아간다. 단어) 노래, 비, 창문

454 이름없음 2021/05/14 18:34:46

창 밖에 후두기는 빗소리는 누구의 노랜가. 내리다가 멎는 것. 방울지며 창문을 덮는다. 창 밖에 후두기는 빗소리는 누구를 위해 노래하는가. 내 창가에도, 이웃의 창가에도, 땅에도 바다에도, 함뿍 젖어드는데. 창 밖에 후두기는 빗소리는 어디로 날아가나.

455 이름없음 2021/05/14 18:42:10

유산균, 보라색, 체리맛 풍선껌

456 이름없음 2021/06/02 18:21:25

엄마가 몇번이곤 강조했던 유산균은 꼬박꼬박 챙겨먹는다. 맛은 없었지만 이게 다 건강이고 걱정이겠지, 하는 생각에 얼른 입 안에서 녹인다. 유산균을 먹고 나면 늘 그렇듯 입이 텁텁했다. 나는 거실에 누워 이 텁텁함을 가시게 해줄 게 무엇인지 찾아보았는데, 역시 이런 걸 좋아해서인지 집안 곳곳 껌이 나왔다. 나는 여러 껌 중 체리맛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어릴 적은 이런 걸 먹지도 못 하게 했었는데. 먹었다고 한참을 때렸었나. 풍선껌을 꺼내 입에 넣는다. 이렇게 쉽게 구할 수 있고 사소한 게 그때는 그렇게 커보이고 진귀해 보였다. 나이가 먹으니 이런 점이 달라지는구나. 천천히 껌을 씹으니 인공적인 체리맛이 톡톡, 터진다. 입 안에서 달큰하게 녹아 텁텁한 맛을 중화시켜준다. 어라. 그런데, 날 때렸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누가 날 때렸지? 설마. 그랬을리가. 내가 맞았을리가. 무슨 영화라도 봤었나. 그렇지 않으면 이 기묘한 기억을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곧 고개를 돌려 시선을 텔레비전에 집중했는데, 이상하게도 내 팔이 보라색인 것 같았다. 그럴 리 없는데 말야.

457 이름없음 2021/06/03 08:39:32

스웨터, 나비, 우유

458 이름없음 2021/06/07 22:44:00

니나는 스웨터를 정말 좋아했다. 나비가 그려진 스웨터는 붉은 색이었고, 니나는 붉은 색이 참 좋았다. 그래서 흰 우유를 쏟았을 때는 참 많이 울었더랜다. 그렇지만 니나의 엄마가 스웨터를 새로 빨아주자 니나는 방실방실 웃기 시작했다. 흰 우유를 쏟든, 물감이 묻든 그 스웨터는 언제나 붉을터였다.

459 이름없음 2021/06/08 19:48:45

믿음 친구 열쇠

460 이름없음 2021/06/08 23:23:42

우리는 서로를 친구라 칭했다 서로 사랑하기보다는 동경했고 존경하기보다는 믿어왔다. 너는 내 삶의 희망이었고 악몽 같던 나날들의 출구를 찾아줄 열쇠였다 곧이어 나는 네게 점점 스며들어가 나의 백지를 너라는 존재로 채워나간다

461 이름없음 2021/06/08 23:24:14

불협화음 잠식 천국

462 이름없음 2021/06/09 01:22:20

그는 도통 알 수 없는 말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당초에 우리는 결핍을 알지 못한다는 둥, 하늘의 군세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둥. 나는 그 세간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가만 들어줄 수 없었다. 하늘의 군세가 나에게 주어졌다면 왜 우리는 결핍을 느껴야 하는가! 괴설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나라는 건 없다는 것이었다. "당신이라는 존재는 없어요. 당신이 스스로 지어낸 걸 당신이라고 착각할 뿐이에요. 당신의 육체는 당신이 아니고, 육체가 자아낸 생각은 당신이 아니에요. 육체를 당신과 동일시하고, 그 생각마저 당신이라 여긴다면, 그건 지어낸 것일 뿐이에요." 가슴 한구석에서 극렬한 반발이 일어났다. 이 작자는 도대체 뭐라는 것인가. 현대의 지성인이 내게, 과학을 믿는 내게. 영 비합리적인 걸, 증명되지 않은 걸 들이민다고 해서 내가 믿을 손가? 그 대표격인 사후세계, 즉 천국과 지옥의 이항대립구도를 아무리 끌어서 우기려 해봤자, 신비가 죽어버린 이 현대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왜 모를까! 불협화음이다. 너무나도 맞지 않는 불협화음! 그 어떤 애를 써도 시간 낭비라는 걸 그는 알지 못하는 듯 했다. 그는 시종일관 웃고 있었고, 아무렴 하면서 듣고 싶지 않다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도 된다고 점잖게 타이를 뿐이었다. 마치 내가 치기어린 아이라도 된 것 마냥 말이다! 맙소사...언제고 내가 이런 취급을 받는단 말인가. (중략).... 나눌수록 커진다고 했다. 추상적인 관념은 나눈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사랑은 준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했다. 내게 준 그의 신뢰는 그 원체를 잘라내 내 안에 심는 게 아니라 내게 공유되면서 그의 관념마저 강화시키는데 일조하는 것이었다. "주라, 그러면 받을지니..." 그런 말을 나도 모르게 읊조린 듯 했다. 그새 그의 사상에 힘껏 잠식된 것이다. 섬칫 놀라서는 나를 보며 꼬마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나는 그저 멍하니 괜찮다고 둘러대고 성급히 자리를 뜨려했다. 그 순간, 나는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소년의 얼굴이 겹쳐보였던 탓이다. 마치 반투명한 무언가를 겹친 것 마냥, 환한 웃음섞인, 그래서 티끌없이 선한 얼굴과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도 싱긋 웃으며 나를 배웅하는 소년의 얼굴. 나는 어쩐지 그가 말했던 관념의 증대를 알것만 같았다. 그리고, 보았다. 내 안의 불확실함이 사라지고 그 자리로 환한 빛이 들어차는 것을, 똑똑히 보고 만 것이다.

463 이름없음 2021/06/09 01:38:56

복도, 자유, 가을

464 이름없음 2021/06/09 07:16:43

아무도 다니지 않는 복도를 한 발자국씩 내딛으며 창밖을 내다 보았다. 가을이라서 그런지 구름 한점 보이지 않는 맑은 하늘 아래에 온갖색을 품고 있는 나무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바람에 의해 떨어진 나뭇잎들은 금새 나무에서 떨어져 나가 이리저리 하늘을 날다가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곧 저 나뭇잎은 낙엽이 되어 썩어가며 땅의 거름이 될것이다. 누가 알았을까, 그토록 자유를 갈망했던 샛노랗고 불그스름한 잎들이 아주 잠시간의 희망을 맛보고 죽어갈줄은.

465 이름없음 2021/06/09 13:44:40

물 위로 아픔

466 이름없음 2021/06/09 13:49:28

침대에서 금붕어를 바라보면 그아이는 어디가 아프지 않을까 궁금해져 아픈걸 말할 수가 없으니까. 그애가 물 위로 올라오는 순간이면 느낄까? 손으로 그애를 움겨잡아봤어 필사적 파닥임. 튀어오르는 물방울 그애의 아픔의 방식이었어.

467 이름없음 2021/06/09 14:52:39

자두사탕(빨간색 줄 있는 그 사탕) 피 설탕

468 이름없음 2021/06/09 23:44:36

저녁을 다 먹고 나면 엄마는 항상 자두 사탕을 입에 넣어주셨어. 유리구슬 처럼 맑지만 중앙에 빨간 선이 그어져있는 작은 알사탕. 엄마는 그 자두 사탕을 아주 좋아했었던것 같아. 충치가 생길수도 있는데도 사탕을 먹는걸 말리기는 커녕 하루도 빠짐없이 유리병안에 있는 사탕을 내입에 물려주셨으니 말이야. 입안에 굴리고 굴리면 조금씩 새어 나오는 자두향과 녹는 설탕의 달달함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서 입꼬리가 올라갔는데 신기하게도 그걸 먹고 나면 아주 굉장한 꿈을 꾸곤 했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것 처럼 여러 동물들과 말을 하고 멋진 모험을 하는 꿈을 꾸었지. 잠에서 깨고 나면 다시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어. 평범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고요한 일상으로. 나는 꿈속에서의 모험을 계속하고 싶어서 항상 저녁시간만을 기다렸어. 엄마가 내 입속으로 사탕을 넣어주는 그 순간만을 하루종일 기다렸어. 그러던 어느날, 정말 갑작스럽게 그 사탕이 미친듯이 먹고 싶은거야. 당장 그 달달함이 내 혀에 느껴지지 않으면 죽어버릴것 같은 기분이었어. 참을래야 참을수가 없어서 사탕이 담겨 있는 유리병을 꺼내서 사탕 한줌을 쥐고 몽땅 내 입으로 털어 넣었어. 기분이 급격하게 좋아짐과 동시에 내 눈에 감겨 왔어. 멋진 꿈을 꿀거라는 신호였지. 꿈이 끝나고 일어나 보니 주위가 평소와는 달랐어. 분명 평범한 아침이었어야만 했던 주변은 피로 뒤덮여 있었어. 썩어가는 냄새에 나도 모르게 눈을 찌푸리고 코를 막으니, 코에 무언가 새빨간것이 묻었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오늘 만진것은 항상 먹던 자두사탕 밖에 없었는데 말이지. 아 그렇다면 사탕이 녹아서 내 손에 묻어 있는 걸까? 입이 또 말라가. 단게 필요해.

469 이름없음 2021/06/09 23:48:03

아홉, 날개, 태양

470 이름없음 2021/06/10 06:52:40

그런 전설이 있다. '어린 아이는 죽어서 천사가 된다' 그것이 진실일지는 아무도 모르기에 전설이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진실이라면 너는 분명히 천사가 되었을 것이다. ---- 아홉. 그것은 이도저도 아닌 숫자다. 큰수인 10이 되기에는 모자라고 그렇다고 작은 수인 1이 되기에는 너무 커다란 숫자이니. 그런 이도저도 아닌 숫자를 나이로 맞은 너는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너와 함께 있었기에 그 행복이 나에게도 전파 되는 것 같았다. 9이라는 숫자가 10으로 바뀔 그 얼마 안남은 순간, 너의 시간은 멈추었다. 성장하는 것도, 숨쉬는 것도 전부 멈춰버린 너는 널 사랑하는 모두를 두고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필시 네가 천사가 되었으리라고 믿는것 밖에는 할수 있는것이 없었다. ----- 죽기 직전이어서 그런걸까. 별의 별 생각이 든다. 전설과 옛날의 네 생각을 동시에 한다니 정말 어떻게된 의식의 흐름인걸까. 피곤하다고 느끼며 눈을 감자, 식어가던 몸에 태양이 내리쬐는 것 처럼 따스함이 내 몸을 감쌌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이 기분좋은 이질감에 감았던 눈을 다시 뜨니 네가 보였다. 첫 눈처럼 새하얀 날개를 달고서 전과 같이 날 보며 웃어 주었다. 아 전설은 사실이었구나

471 이름없음 2021/06/10 06:54:00

공 바람 유리창

472 이름없음 2021/06/10 10:00:57

공은 둥글다. 그래서 굴러가기에 용이하다. 물론 가만히 서있기도 하겠지, 이른바 정지해 있기도 하겠지. 그러나 조금의 힘만 있다면 그 힘의 진행방향으로 공은 굴러가기 마련이다. 예컨대, 다리를 쓸 수 없게 된 나도 요령껏 훨체어를 움직이면 공을 굴릴 수 있을 정도로, 공은 굴러가는 데 용이한 것이다. 그 중에서 특히 축구공을 많이 굴렸다. 농구공은 축구공보다 무겁고, 그렇다고 야구공은 너무 작다. 잘못하다간 휠체어 바퀴에 끼어, 내가 넘어지거나 공이 짜부러지기 십상이다. 혹자는 그런 내게 손으로 공을 쥐어 던지면 안 되겠느냐고 묻지만, 모르는 소리다. 그런 일로 풀릴 마음이 아니다.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것이란 내게 종종 그런 씩으로 매듭진 끈을 풀게 만드는 기묘한 욕구처럼 작용하는 것이다. 유독 그 날이 그랬다. 바람이 속된 말로 오지게 처부는 날. 그때만큼 심장 벌렁이게 밖으로 휠체어를 끌고 나가...아무도 내 휠체어를 대신 끌어주지 않고, 이 두 손으로 바퀴를 끌어 밖으로 나가. 시원한 바람이 광풍이 되어 휘몰아치는 걸 느끼며, 나 또한 어딘가에 매몰되어 두 손이 두 발처럼 느껴지게 휠체어를 끌고 싶은 느낌이 강하게 든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처럼 부끄러울 정도로 추잡한 욕망을 드러낸 적은 없었던 듯 했다. 유리창 너머에 불어닥치는 광풍을 뚫고 어떤 소년을 본 탓일까? 달리는 소년과 광풍. 이동....열정....바람....다리....온전한... 정신을 차리고 보았을 때, 나는 이미 쾌속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말그대로의 질주! 쾌청한 하늘에 이모저모 구름이랑 하늘하늘 거리고, 또 미친 듯이 저편에서 이편으로 사라지고! 그 청명에 취해 손에는 오래된 축구공을 쥐고, 나는 손을 다리마냥 써 달리고 있었다! 공을 내려두고, 여태껏 느꼈던 바람일랑 눈곱만큼도 신경쓰지 않은 채, 나는 공기를 느끼며 언젠가 몇 번이고, 당장 내일이라도 다시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위안하던 그 바람을 마치 이루어진 것 마냥 다시금 공을 뻥뻥 찼다. 공은 저멀리 날아가 바람과 어울려 본래의 궤적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공을 찬 원주인도 모를 정도로.

473 이름없음 2021/06/10 14:09:25

방귀 아련 스터디플래너

474 이름없음 2021/06/10 21:25:06

문득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생각났다. 그날도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었다. 교실에서는 공기대회를 열어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로 가득 찼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 시합하는 걸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배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 결국 꾹 참고 있던 방귀를 뀌고 말았다. 소리없는 방귀가 더 고약하다더니. 냄새는 순식간에 퍼졌고 아이들은 '아- 냄새-! 선생님, 누가 방구꼈어요!'하고 누가 뀌었는지 서로를 돌아봤다. 난 너무 부끄러워 눈만 꼭 감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내 근처로 눈이 돌려졌을때 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뀌었어, 미안ㅎㅎ' 담임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후다닥 창문을 열며 오버하며 말했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놀리며 금방 다시 공기놀이를 시작했다. 그렇게 자라 고2, 선생님이 될거라는 꿈을 가지고 스터디플래너를 작성하며 그때의 그 아련한 기억을 떠올린다.

475 이름없음 2021/06/10 21:27:01

양파, 사랑, 저녁

476 이름없음 2021/06/11 19:33:01

서현은 이틀을 내리 굶었다. 3년간 잘 지내며, 사랑하던 애인에게 차여서라기 보다는, 그동안 그를 위해 날린 돈과 시간을 매꿀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머리를 흘러내리지 않게 뒤로 넘기고 다녔다. 그렇게 체면치례를 하고 다니는 그는 소위 말하는 '능력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게 되기까지 든 돈과 시간은 모두 서현에게서 나와 그에게 흘러갔다. 주문제작을 맡기진 못해도, 비싸고 질 좋은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양파껍질을 까는것이 취미였다. 천천히 껍찔을 까, 희고 반투명한 양파를 짓이겨 나는 즙을, 그는 항상 눈꺼풀에 발랐다. 눈꺼풀에 발린 양파즙은 가끔 눈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런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그는 소리를 지르곤 했다. "오늘 저녁은!!!!!!!! 양파스프다아아악!!!!!!!!". 그러곤 한참을 쌈바춤을 추며 양파송을 불렀다."양파~양파~싸랑해요~양파양파~". 음... 서현은 잠시 생각을 멈추었다. 생각해 보니 잘 헤어진것 같았다. 먄... 한번 해보고 싶었엉...

477 이름없음 2021/06/11 22:32:00

고양이 비 구름

478 이름없음 2021/06/12 01:03:54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날, 구름이와 내가 처음 만났다. 구름이를 만난 날은 시험을 망치고 한참을 야단맞은 날 이었다. 노력에 비해 나오지 않는 점수에 슬퍼하다 우산을 전봇대에 박아 큰 소리와 함께 부러뜨리고야 말았는데,이때 물이 한번 첨벙 하고 튀기는 소리가 나더니 쫄딱 젖은 햐얀 털뭉치가 튕겨 나왔다. 흰 털뭉치같은 고양이가 덥수룩한 털을 한번 털더니, 여름 하늘을 닮은 푸른 눈을 빛내며, "어이 닝겐, 어디... 가는거지?(찡긋)" 하고 말했다. 그녀는 기함했다. 고양이가... 일본어를? 그녀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녀가 망친 시험중 하나가 일본어였기 때문이다. "방금! 방금 너가 말한거야...?" "하이" "오...오하이요" "...? 인간은 원래 멍청한가보군." "코로시챠우!★" 여름이었다. -fin- 시험 좆같아... 고3은 수능이가 미워... 왜난이... 왜 난 이과...

479 이름없음 2021/06/12 03:09:43

바이크 폭주족 경찰

480 이름없음 2021/06/28 00:50:15

밤공기를 가르고 엔진 소리가 울려퍼졌다. 더럽게 시끄러운 걸 보니 분명 불법 개조한 바이크다. 나는 담배를 짓밟고 차에 올라탔다. 자, 실적 올릴 시간이다.

481 이름없음 2021/06/28 07:49:54

관람차 노을 아쉬움

482 이름없음 2021/07/19 02:47:52

노을이 지는 날이면, 외로움에 시달린다. 가로수등이 켜켜이 빛을 발하는데, 마음은 외로움으로 눅진하다. 마음에게는 심야의 공허한 하늘만큼 서늘하기가 마음에 드는 까닭인 탓이다. 나는 노을이 지는 날이면, 그래서 고민이란 걸 해본다. 고민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 전제에 무엇을 두고 있는가. 하는 지적 허영심. 다른 한편으로는 오늘 들었던 노래의 멜로디가 중독적이어서 빙빙 머리를 감싸는 노랫말을 속으로 중얼거리고, 빈번이 떠오르는 망상들을 하나하나 즈려밟으며 나는 또 한번 정신적으로는 도약하며 육체적으로는 한없이 나약해진다. 나태해지고 마는 것이다. 한 번 더 내 정신은 나래를 친다. 이번에는 무슨 고민일까. 내 마음이 서늘함도 이제는 내가 아닌 까닭에 내 마음은 무엇을 생각하는 걸까. 밤은 깊었으나, 어디선가 폭죽 소리가 깊은 밤을 청각적으로 산산조각낸다. 검은 하늘에 소리는 물결치고, 내 마음은 어느덧 공상의 퍼레이드를 만들어낸다. 번쩍번쩍 형형색색의 빛들이 빛나고, 소리 또한 폭죽 마냥 휘황찬란하고 마음 한구석이 스스로 들썩이게 한다. 그건 뭐랄까, 내 육체를 한 번 더 추락하게 만들었다. 나는 어느새, 퍼레이드를 뒤로 하고, 주변에 펼쳐진 놀이동산의 풍경 속으로 빠져들어 정적인 놀이기구를 찾는다. 무엇이 있을까. 롤러코스터? 자이로드롭? 바이킹? 회전목마? 너무나도 맞지 않는 것이다. 빙빙 돌고, 그 순간의 스릴에 관심 있는 것들이 죄다 무엇인가! 생각은 어느새 스릴을 제거하고는 빙빙 돈다에 빠져 찰나에 원으로 관심을 옮겼다. 원? 원이라면... 정적인 놀이기구와 원이 합하여 내 공상은 관람차를 만들어냈다. 정적인 놀이기구이며, 밖은 밤이다! 떠올리면 관람차를 탔을 땐, 내 정신는 반대로 추락하여. 천천히 눈을 붙이고, 나는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머릿속에 퍼레이드가 떠오르고, 놀이동산이 떠오른 순간. 그 순간만큼은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든 탓에 나는 뒤척였다.

483 이름없음 2021/07/19 02:48:31

술 웃음 회색

484 이름없음 2021/07/19 21:36:03

친구 녀석의 아내와 아이들이 죽었다. 그것도 교통사고로 말이다. 녀석은 망연자실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의 영정사진을 보았다. 그 녀석이 말했다. 이제 세상은 회색빛으로 밖엔 안 보인다고. 그 말을 듣자하니 녀석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 날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이때껏 내게 먼저 술 먹자고 제안한 적이 없었는데 오늘따라 녀석이 먼저 제안을 했다. 약속 시간이 거의 되어 나는 녀석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살이 쪽 빠진 모습. 회색빛 얼굴이 참 안쓰러웠다. "일찍 나왔네." "근처에 일이 있었거든." "그런가." 녀석과 말이 끊겼다. 잔만 왔다갔다. 왠일인지 녀석이 실없는 말을 먼저 꺼냈다. 사귀는 사람있냐, 빨리 결혼하지, 돈 많이 모아두라 등등. 이 뿐만 아니라 부모님 잘 계시는지, 회사 생활은 괜찮은지 등을 물어봤다. 녀석은 내 실없는 농담이나 대답에 실실 웃었다. "범인 찾았어." "...정말?" "그래." 녀석은 한 잔을 쭉 들이 마셨다. 나는 괜한 긴장감에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녀석은 망설이듯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이내 결심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자네." "응?" "자네라고. 내 아내와 아이들을 죽인 사람." 하, 하하. 하하하하하! 나는 미친듯이 웃었다. 녀석은 그런 내 모습에도 평온하게 술을 따랐다. "어떻게 알았나. 증거처분을 다 했는데." "나도 돈 좀 썼지. 그래서." 왜 내 아내랑 아이들을 죽였나. 어째서. 녀석은 중얼거리며 왈칵 울었다. 나는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한 잔을 쭉 들이마셨다. 글쎄, 왜 그랬더라.... 더 이상 터치를 못 하겠넹... 열린 결말로 끝!

485 이름없음 2021/07/23 03:24:47

크리스마스, 자조, 운명

486 이름없음 2021/08/22 00:36:13

역시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의 전날엔 온 마을 전체가 떠들석하다. 이 날쯤에 길거리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사람들 간의 따뜻함은 내 가슴도 녹이는 듯했다. 이 따뜻함을 느끼면서, 나도 내 가족과 함께 웃으면서 따뜻함을 나누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내가 가족과 함께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4살 때가 마지막이였다. 5살 때의 내 생일, 그 날은 나의 부모가 죽은 날이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총격을 당해, 피를 흘리면서 죽어가던 때는 아직도 눈을 감으면 떠오른다. 그 총알은 나의 부모 뿐만이 아니라, 내 마음과 운명까지 산산조각을 내었다. 부모의 죽음 이후, 고아원으로 보내진 나는 10년이 지난 지금, 잠깐 나와서 하얀 눈이 내리는 하늘 아래의 거리를 걷고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부모의 죽음은 나를 자조(自助)해 줄 밑거름이 될 거라고. 하지만, 이렇게 얻은 슬픔 속에서 배회할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나은 편이다. 왜 신은 내 운명을 가혹하게 만들었을까. '그때의 내가 힘이 있었더라면.' 이라고 생각하며 나를 자조(自照)했다. 내가 그때 힘이 있었더라면 부모를 그렇게 허무하게 보냈을까? 지금도 계속 이렇게 현실로 옮길 수 없는 생각을 하는 나 자신도 너무 웃겨서 자조(自嘲)했다. 어디선가 날아온 자조(慈鳥) 한 마리도 나를 비웃는 듯이 하늘을 방황했다.

487 이름없음 2021/08/22 00:37:15

정장 담배 총

488 이름없음 2021/09/15 22:14:07

ㄱㅅ

489 이름없음 2021/09/16 02:56:45

추락 종교 썩은장미

490 이름없음 2021/09/16 04:03:05

천천히 추락하는 인간이 붙잡는 것들. 종교, 거짓된 신앙, 사랑을 가장한 외로움, 그 잔상, 맹목적인 불신, 그와 동시에 소망하는 믿음. 그는 참되지 않은 것을 참되었다 여기고 스스로 타락했다. 그의 그림자까지도 일그러져 있을 터였다. 그는 광대처럼 실없이 낄낄댔다. 오래 전에 다 썩어버린 장미로 화관을 만들어 머리에 쓰고선, 가시에 찔려 흐르는 피의 서늘한 감촉을 생(生)이라 느꼈다.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는 게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추락은 곧 구원이었다.

491 이름없음 2021/09/17 13:41:52

영원 종말 페르소나

492 이름없음 2021/09/17 23:52:35

>>491 네가 원하는 게 이게 아닐 수도 있는데 그냥 심심해서 써봤어... 장편으로 가면 페르소나 관련해서 적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단편으로 쓰려니까 생략됐어 미안ㅎ... 내가 예전에 주워들은 게 있는데 옛 인간들은 종말 직후의 세상을 '아포칼립스' 라 명명했고, 종말한 이후의 세상을 '포스트 아포칼립스' 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들은 이름 짓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았다. 언제인가 나이 지긋한 노인네가 말했던 평화의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그들 중 몇몇은 자기 자식들의 이름에 본인의 이름을 넣기도 하고 과학자들은 무언가 물건을 새로 만들어낼 때마다 그에 부합하는 새 이름을 짓기 위해 하루종일 회의를 하기도 했더란다. 선조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는 그 누구도 이름에 매달리지 않는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고 이름을 짓는 것에 하루를 꼬박 지새우지도 않는다. 나만해도 이름같은 거 없으니까. 나는 그냥 나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명명할 수 있던 건 이 시대의 이름 뿐이다. 종말 이후의 세상. 포스트 아포칼립스. 그때 나는 내 발밑을 느리게 지나가는 머리가 세 개 달린 복족류 종류의 생명체를 주워 씹으며 노인에게 말했다. "그들이 살아있다면 이 징그러운 생명체를 먹기 전에 이름을 지어줬을까? 아니 그때는 모두가 굶주릴 필요도 없었댔나?" 누군가 배부르면 누군가는 굶주렸겠지. 내 의미없이 내뱉는 질문에도 노인은 낮게 웃으며 착실히 대답했다. "그랬을지도. 그리고 자네가 먹는 그건 민달팽이라는 이름이 있네. 방사능 때문인지 조금 변하긴 했다만... 그리고 자네가 말을 거는 이 늙은이는 루시안이라는 이름이 있다네." 노인의 주름진 손이 내 손을 그러쥐었다. 그의 눈은 새파랗게 빛나고 있었고 오랜만에 만난 인간이 반가웠던 나는(알다싶이 종말 직후에 세상에서 살아남은 인간은 극소수이다. 나는 종말 이전의 세상에 인간이 얼마나 많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이 노인에게서 들었다. 세상에. 이 곳이 인간으로 그렇게 미어터졌었다니.) 그의 따듯한 손길과 그윽한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노인은 아이처럼 웃으며 말했다. "자네도 언젠가 이름이 가진 힘에 대해 알게 될 것이라네." 그 대화를 끝으로 더는 그 노인을 만날 수는 없었지. 나는 힘겹게 숨을 내쉬며 어슴푸레 내려앉기 시작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정말 고요하고 완벽한 풍경이었다. 내 허리 아래를 짓누르는 이 거대한 돌덩이들이 다리를 끊어먹을 듯이 굴지만 않는다면 더할 나위 없었을 것이다. 이 돌덩이들과 함께한 며칠간의 빠져나오려는 온갖 시도 끝에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곳에서 죽을 예정이었다. 나는 아마 나와 비슷한 연유로 죽음을 마주했을 많은 시체들을 본 적이 있었다. 뭔가에 깔려 죽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과거의 건물들은 몇십년간 방치된 대가로 무너지기 직전인 경우가 많았고 영원할 것 같았던 그 찬란한 문명들은 이제 남은 후손들의 목숨을 종종 위협하곤 했으니까. 애초에 도심지로 들어온 게 잘못된 짓거리였다. 도심지에는 가끔 투명한 통에 들어있는 맑은 물이 발견되기도 해서 그걸 노리고 온 거였는데... 실수했군. 나는 턱밑까지 차오른 죽음의 그림자에 숨을 헐떡였다. 이대로 외롭게 죽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어. 이럴줄 알았으면 사람들이 모인 연합에 가입이라도 해둘걸. 그럼 그리로 구조신호라도 보낼 수 있었겠지. 아 그래도 지나가는 동물에게 뜯어먹히지 않은 게 어디야. 하늘은 새까매져갔고 의식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드러누워 하늘 안으로 하나 둘씩 모이는 반짝이는 것들을 바라보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전에 노인이 이르길 저건 별이랬다. 별도 하나씩 이름이 있댔는데 아쉽게도 노인은 별을 구별할 줄은 몰랐다. 그래도 매일 모양이 변하는 저 커다란 동그라미의 이름은 알았다. 달이라고 했다. 그리고 저건 별이 아니라고 했지. 나는 힘없이 웃었다. 희한해라. 어떤 건 별이고 어떤 건 별이 아니라니. 무엇을 구분하기 위함이었을까? 지식에 대한 단순한 탐구? 이름을 짓는 편이 기록에 더 용이하니까? 나는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돌을 긁어 내려갔다. 죽기 전에, 이렇게 끝을 내기 전에 흔적을 남기려는 인간의 본능같은 것이었다. 노인이 가르쳐줬던 별이라는 뜻의 문자가 이거였나? 이게 아닌가? 에스... 티... 에이... 엘? "스탈? 그게 자네 이름인가?" 익숙하고 낮은 목소리가 내 귀를 휘감았다. 깜짝 놀라 돌에 깔린 채로 옆을 보자 그 노인네, 루시안이 서 있었다. 기력이 없어 흐릿한 시야로도 그의 눈이 새파란 것은 구별할 수 있었다. 그의 눈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별..." "마음에 드는 뜻을 가진 이름이로군." 루시안은 아이처럼 이를 내보이며 웃었고 돌 아래로 철 쪼가리를 밀어넣으며 내게 소리쳤다. "정신 차리게 스탈. 내가 도와줌세." 그게 내가 첫 번째로 목도한 이름이 가진 힘이었다.

493 이름없음 2021/09/18 13:06:29

사자자리 야수 비

494 이름없음 2021/10/04 23:10:42

비가 오는 날이었다. 기숙사 특성상 우리는 가까이서 잘 수 밖에 없었고, 잠이 오지 않는 날에는 서로 대화를 하며 밤을 넘기기도 했다. 한창 휴대폰 중이던 나에게 그 애가 말을 걸었다. “야. 너 사자자리랬지.” 그가 천장에 붙어있는 사자자리 야광별 스티커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순순히 대답했다. “응.” “어쩐지. 존나 야수같더라.” “뭔 소리야.” “말 그대로인데.” “너 유사과학 믿냐? 지랄 말고 잠이나 자.” “하여간 넌 낭만이 없어.” “낭만 타령은.” 그가 천장을 가리키는 손을 내려 내 배를 찰싹 때린다. 나는 뒹굴뒹굴 구르다, 그 애랑 엎치락 뒤치락 다툼하기 시작했다. 결국 시끄럽다며 지적을 당하고 나서야, 우린 조용해졌다. 몇번 속삭이던 우리는 나중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잠에 들었다. 비소리가 둥글둥글 울린다. 음 이게 맞나ㅜㅜ 미안 이 스레가 묻히는 건 싫어서 암거나 썼네...

495 이름없음 2021/10/04 23:16:02

제비꽃 고양이 창문

496 이름없음 2021/10/09 19:20:58

할머니의 무덤에는 유독 제비꽃이 만개했다. 괴와 들개가 주위를 어슬렁거렸고, 날짐승들이 무덤 양 옆으로 둘러싸인 몇 그루의 소나무들에 둘러앉아 지저귀었다. 어째서 죽음은 존재하는 것인가. 그것은 어째서 사랑과 사람과 삶을 한순간에 내어주고 미련남겨 앚아가는 것일까. 꺼끌꺼끌한 목장갑을 끼고 쭈구려 잡초를 뽑으며 나는 할머니를 생각했다. 늘 밝게 웃었던 할머니,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괴와 개들이 마음에 걸려 늘 고봉밥을 올려 밥을 푸고선 한뭉텅이 남기어 배부르다며 던져주었던 할머니, 그러면서도 굉이야 가라, 가이야 가라, 하고선 되지도 않는 손길을 내빼었던 할머니. 할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그곳에선 행복할까. 덜컹거리는 버스의 창문에 비친 무덤 위엔 언제 왔는지 이름 모를 백구가 서 있었다. 백구는 마치 날 보듯 버스를 물끄러미 응시하더니 이내 크게 짖었다. 마치 언제나 잊지 않고 찾아와 할머니의 무덤을 정리해주는 내게 감사하듯이. 그래, 너도 그곳에 있었구나. 할머니가 내게 동내 들개가 새끼를 낳았다며 들어 보여주던 녀석이 너였구나. 넌 언제까지나 할머니의 곁을 지켜주었구나. 나도 그 감사에 응답하듯 마음속으로 크게 짓었다. 월월, 월월월..

497 이름없음 2021/10/09 19:23:01

화장실 복사기 볼펜

498 이름없음 2021/10/13 01:07:36

우리 회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그의 자리는 복사기 옆에 위치한다. 오늘도 볼펜의 버튼을 딸깍거려 그의 관심을 끌어 보려 하지만 반응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그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을까. 멍하니 팔짱을 낀 채로 고민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옆에서 그의 기척이 느껴졌다. 소스라치게 놀라 그를 보았다. 그가 드디어 내 관심을 알아준 걸까. 그러나 그가 하는 말. "화장실에 가려는데 좀 비켜주실래요...?"

499 이름없음 2021/10/13 01:08:23

블라디미르 푸틴 김정은 버락 오바마

500 이름없음 2021/11/04 14:59:22

>>499 ^^양심 팔아먹은 놈아 싸우자는 거냐 러미북 회담이 열렸다. 장소는 세인트마리 더 파티쉬 호텔. 회담이 열릴 곳에서 첫번째로 김정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두번째로 오바마도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세번째로 푸틴이 20분 후에 왔다. 그리고.. 또... 문이 두드려졌다. 경호원들이 총을 꺼내들고 무전을 보내려는 순간, 청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열두시가 되면 닫혀요 조금만 서둘러 줄래요 낙낙낙낙 낙온마이돌 낙낙낙낙 낙온마이돌 밤이 되면 내 맘속에 출입문이 열리죠 누군가 필요해~ 자꾸자꾸 서성이네 몰래몰래 훔쳐보네 낙낙낙낙 낙온마이돌 낙낙낙낙 낙온 마이돌~(중략)" 끗

501 이름없음 2021/11/04 15:01:22

눈물 집착 죽음

502 이름없음 2021/11/04 18:08:45

눈물이 붉어진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흐느끼며 우는 소리가 작고 우중충한 원룸에 울려퍼졌다. 시궁창 같은 삶이 싫었다. 어떻게든 발버둥쳐도 삶은 잘 만들어진 덫처럼 나를 더 꽉 조여왔다. 나는, 나는 이 덫에서 빠져나가려면 덫에 걸린 나의 영혼을 몸과 분리시켜야만 했다. 비겁한 변명, 그렇게 생각할지라도 상관 없다. 그러고 보니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지옥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그러면 나랑 같은 처지인 인간들도 널렸을 테지, 그런 생각을 하며 가빠진 숨을 들이마셨다. 삶에 대한 집착이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시궁창 같은 그런 인생이라도, 인간만도 못할 존재가 되더라도 살아 봐야지. 개소리. 헛소리. 쓰레기 같은 궤변. 온갖 말들이 내 머릿속을 꽉 채웠다. 숨을 내쉬었다. 죽을 땐 죽더라도 곱게 죽어야지. 구깃구깃한 휴지로 뺨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았다. 지문과 뭔지 모를 것들이 잔뜩 묻은 더러운 거울이 니 꼴을 보라는 듯이 내 모습을 비췄다. 비웃음 섞인 웃음을 내뱉었다. 침대에 앉자 삐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렇게 된 하얀 이불에 굴러다니는 약통을 집었다. 죽음, 죽음. 죽음만이 내 구원이자 희망이었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기도했다. 다음 생에는 돌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생각도 하지 않고 고통도 받지 않는 돌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503 이름없음 2021/11/04 18:13:24

낙옆 바람 시간

504 이름없음 2021/11/04 19:11:50

늘 앉는 카페의 익숙한 창가 자리에 앉는다. 메뉴는 늘 먹던 아메리카노. 옷도 늘 입고 나오던 적당히 예쁜 셔츠와 청바지. 창 밖에는 늘 보던 풍경이 펼쳐져 있다. 늘 똑같은 가로수, 그 아래에 쌓여있는 낙엽. 바쁜 듯 걸어다니는 사람들. 바람에 날리는 전단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오직 이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만이 달라져 있다. 늘 듬뿍 차 있던 것 같은 나는 완전히 텅 비어 버렸다. 나는 왜 이제서야 깨닫는 걸까? 내 안의 모든 온기는 너에게서 나왔다는 걸. 아아, 역시 차갑구나... 네가 없는 시간은. >>503 짧아서 미안해!

505 이름없음 2021/11/04 20:02:55

허유 정혈 마름

506 이름없음 2021/11/15 18:47:38

ㄱㅅ!

507 이름없음 2021/12/28 10:12:28

담배 꽃 정열

508 이름없음 2021/12/31 01:20:26

너는 담배 냄새를 싫어했다. 내가 담배를 피울 때 즈음이면 숨을 깊게 들이마셔 냄새를 맡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려면 그냥 좀 거리를 두면 되지 않느냐는 내 말에 너는 수줍게 웃으며 얼굴에 꽃을 피워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 뿐이었다. 난 너의 그 정열적인 외사랑이 부담스럽다 생각했다. ....외사랑이 옮아 외사랑이 외사랑이 되지 않았을때, 다시 외사랑이 되었을때까지는 말이다.

509 이름없음 2021/12/31 01:21:06

짝사랑 초코쿠키 굳은살

510 이름없음 2021/12/31 01:21:57

난 한평생 내가 짝사랑을 하게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야 짝사랑이라고 하면 감정적으로 괴롭고 미어진다고 들어왔으니까. 스스로 기피 해왔을거다. 하지만 막상 상황이 닥쳐버리니,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하나하나 알아갔다. 처음 경험하는 종류의 사랑은 초콜릿 쿠키와 같았다. 한없이 달콤하지만 천천히 음미하면 씁쓰래하기도 하고, 마냥 촉촉할거 같으면서도 꽤 건조하고 바삭한 감정들이 이리저리 교차한다. 굳은살이 잔뜩 박힌 손이 한없이 상냥하고 예뻐 보일 때나, 옆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귀로 흘러올 때는 마구 설레이다가도 막상 사이가 그리 가깝지 않음을 깨달을 때는 마음 한쪽이 아려오는 이 한없이 놀라운 감정을 나는 사랑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511 이름없음 2021/12/31 23:56:24

사랑 꿈 미소

512 이름없음 2022/01/03 07:39:27

사랑이었던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네가 미소짓고 있는 꿈을 꿀리가 없을테니. 인정해버린 사랑을 외치기엔 너무 늦었을까. 네가 현실에서도 나에게 미소 지어줄까. 사랑을 외쳐도 네가 웃어줄까. 어떻게 생각해봐도 모르겠으니 그저 한 밤의 꿈으로만 기억하자.

513 이름없음 2022/01/03 07:40:27

건조,짝사랑,가을

514 이름없음 2022/01/07 05:17:24

입술이 건조해. 립밤 잃어버렸는데 하나 사려고. 아침에 보니까 피가 났더라고. 아니 입술에. 내 말 제대로 안듣고 있지? 휴대전화 너머로 짧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아주 길고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른다. 눈을 천천히 깜빡이다 입을 연다. 그리고 나 짝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 원래 같으면 이런 얘기 엄마한테 절대 안하는데. 누군지 궁금하지. 엄마가 늘, 딸 연애하는 모습 좀 보고 싶다고 그랬는데 내가 마음에 여유가 없었네. 응원해줘. 응? 듣고 있지? 다시 긴 침묵이 흐른다. 눈꼬리를 타고 흐른 눈물이 귀를 적시고 베개도 적신다. 끊어요. 이제 전화 그만 해. 엄마, 가을이니까 이불 잘 덮고 자. 추우면 춥다고 거기다 꼭 말해야해요. 알겠지.

515 이름없음 2022/01/07 11:31:42

꽃다발 겨울 온기

516 이름없음 2022/01/07 18:03:05

한 번은 한 꽃집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푸름이라는 희한한 이름을 가진 꽃다발에 홀려. 휘갈겨 쓴 듯 샤프의 거침과 흐림이 묻어 나오는 이름표가 세워진 꽃다발에선 겨울이 시려나와 있었다. 그게 너무나도 이질적이게 보여, 따끈한 꽃집의 포근한 진열장의 푸른색으로 점칠된 꽃들에게 미안했다. 그 꽃다발이 나 같아서, 나에게 미안했다.

517 이름없음 2022/01/07 19:29:24

기도, 연결, 길

518 이름없음 2022/01/16 23:05:32

살면서 해본 적 없던 기도를 해본다. 손을 이렇게 모으는게 맞았던가, 옛날에 친구가 하던 식전기도를 어설프게나마 따라한다. 신을 불렀다. 다른 이들은 아버지라 부르지만 내겐 그정도의 친밀감은 없었다. 신에게 빌었다. 내가 가는 이 길의 끝에 그 사람이 가는 길의 끝을 연결해달라고. 그렇게 우연이 되어버린 필연으로 내가 그 사람의 얼굴 한번, 체향 한번만, 딱 한번만 더. 내 뇌에 담아두고 소중이 꺼내어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 빌었다. 아멘.

519 이름없음 2022/01/16 23:06:31

가면, 주황장미, 혁명

520 이름없음 2022/01/17 01:12:09

혁명단의 상징은 주황색 장미였다.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전 단장의 가장 좋아하는 꽃이 주황색 장미였을 뿐이다. 그녀가 단장으로서 활동할 시절 그녀의 이명은 장미 가면이었다. 그녀는 혁명단의 가장 위에 서 있었음에도 대외적인 곳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그 이유는 그녀만이 알고 있었다더라. 비밀스러운 여자였다. 쓸데없이 비밀스러워, 결국 죽음에 이르러서도 자신의 죽음을 비밀로 하고자 했던. 최후의 전쟁에서 장미 가면은 우리와 함께하지 못했다. 그러나 주황색 장미 꽃잎들만은 이후 패망한 제국 하늘에서 자유로이 휘날렸다.

521 이름없음 2022/01/17 01:14:33

장송곡, 보라색, 권총

522 이름없음 2022/01/18 22:54:30

'난 보라색이 좋아' 라는 대사는 죽음을 뜻한다는 그 어이없는 국어 선생의 말 왜 그 말이 지금 떠오르는 걸까요. 지금 당신이 권총으로 당신의 관자놀이를 가르키고 있는데 왜 바보같은 나는 그 말뿐이 떠오를까요. 당신이 보라색을 좋아해서였을까요. 아니면 당신 뒤의 노을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보라색이어서였을까요. 어디선가 희미한 장송곡이 들려옵니다. 나는 당신의 죽음을 막지 못할 걸 이미 아는 듯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니 잘 가세요, 사랑하는 이여. 나도 곧 따라가 하늘에서 다시 만나요.

523 이름없음 2022/01/18 23:17:35

레비아탄, 파란색, 빨강

524 이름없음 2022/02/01 01:10:34

. 갱신!

525 이름없음 2022/02/01 01:11:17

비, 감자칩, 소주

526 이름없음 2022/02/03 13:17:34

비가 내렸다. 우중충한 날에는 술을 마셔야 한다며 삼촌이 헤픈 너털웃음을 지으며 소주와 감자칩을 사왔고 할머니는 그런 삼촌을 보고선 철이 덜 들었다면서 한숨을 쉬셨다. 이미 동네 아저씨들과 몇 잔은 마신듯 술에 취해 얼굴이 붉어진 삼촌이 아버지를 끌어앉고 안방으로 들어가자 어머니는 아버지를 노려보더니 이내 뒤돌아 부엌으로 향했고 부엌에서는 물소리와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낭자하게 울렸다. 나는 할 일이 없어 부엌과 거실을 맴돌다 거실에서 티비보는 할머니와 매섭게 설거지를 하는 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안방으로 살금살금 향하였는데 안방 문을 조심스레 두드리자 술 취한 아버지의 걸걸한 목소리가 어머니의 귀에까지 들리게 볼륨을 높인 채로 허락을 고했고 고갤돌린 어머니의 싸늘한 표정에 난 양심의 가책을 가진 채로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빈 소주병이 바닥을 뒹굴고 반쯤 사라진 감자칩을 보며 삼촌 옆에 앉자 알싸하고 독한 술냄새가 삼촌에게서 흘러나와 나의 코를 적시더니 어른들은 또 그들만의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이곳에서도 할 일이 없어 감자칩을 슬금슬금 주워먹으며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비는 지치지도 않는지 쉼없이 웅덩이를 만들었다.

527 이름없음 2022/02/03 13:18:16

나 아침 겨울

528 이름없음 2022/02/03 18:03:58

계절에 상관없이 아침은 항상 겨울의 냄새를 풍긴다. 지금은 7월의 새벽. 해는 아직 얼굴을 비추지 않았고 간밤에 열을 한숨 식힌 여름의 공기는 미적지근하게 겨울 향을 내뿜는다. 발코니 창으로 드는 여름 새벽 향기가 내 코로 들어와 폐를 둥글게 훑는다. 들숨 한 번에 너를 생각하고, 날숨과 함께 너를 잊는다. 또 들숨 한 번에 지난 겨울을 생각하고, 날숨과 함께 그 기억들을 뱉어낸다. 지난 겨울, 눈이 흐드러지게 내린 그날 존재했던 것은 나뿐이다. 흰 세상 속에 박힌 점 하나뿐이다.

529 이름없음 2022/02/07 01:58:53

누락, 깊음, 허탈함

530 이름없음 2022/02/08 10:51:35

누락되었다는 것은 더이상 너의 존재가 이 세계에는 없다는 것을 아주 잘 나타낸다. 온갖 서류에도 너는 없으며 이제는 너에 대한 기록조차 모조리 사라져 간다. 깊고 깊은 구멍에 빠진 듯이 한순간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너는 젖은 몸을 부수며 짓밟히고 으깨진다. 나는 너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 세계에 너를 남겨두려 구멍에 밧줄 하나를 허탈하게 던진다.

531 이름없음 2022/02/08 15:40:12

해 달 별

532 이름없음 2022/02/11 20:40:10

"우리는 태양입니다. 아이들이라는 자그마한 별이 빛나도록 도와주시는 겁니다." 강의실 안, 수많은 예비 멘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연대 앞에 서있는 수석 멘토는 찬란히 빛이 났다. 그녀가 빛낸 아이들만 해도 백 명은 족히 넘을 것 같았다. "여러분은 유년 시절의 고난을 가장 모범적으로 이겨낸 분들입니다. 그 방법을 제3자의 시점에서 전수해주시는 것이죠." 사각 소리가 잠시 울러퍼졌다. 성적이 좋은 것 하나로 예비 멘토가 된 나는 솔직히 저런 멘토들처럼 아이들을 잘 이끌 자신이 없다. 그렇기에, 내 앞에 저 태양이 더욱 빛나보였다. 어쩌면 나는 수많은 태양 사이에 낀 자그마한 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녀는 잠시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열정 넘치는 예비 멘토들의 눈을 확인한 그녀는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 잘못된 길을 가르치면, 여러분은 한 사람의 인생 자체를 망치는 겁니다. 그러니 신중하게 행동하세요." 강연이 끝나고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돕고자 했던 행동들이 아이들의 인생을 망칠 수 있다니. 멘토가 되면 나는 아이들의 인생의 키를 잡게 되는 것이다. 내가 잘못하면, 아이들은... 상상도 하기 싫다. "그래 미연아, 어떤게 고민이라고?" 수석 멘토는 옆에서 내가 상담하는걸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이 미연이라는 친구는 아무래도 처음 보는 사람과 상담을 하다보니 꽤나 긴장한 듯 보였다. "미연아 괜찮아? 많이 긴장했구나?" 나는 조용히 미연이의 손을 잡아주었다. 미연이는 처음엔 깜짝 놀란 듯 했지만, 손을 놓지는 않고 심호흡을 했다. "그게, 제가 좋아하는 얘가 있는데요..." 수석 멘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기운을 미연이도 느꼈는지 히끕, 하고 딸꾹질을 했다. "그, 그, 이제 접으려고요. 네," "그러니? 이유가 있을까?" 수석 멘토의 따가운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기숙 학원이니깐, 이런걸 별로 안좋아하시겠지. 애기들이라 아직 이런 고민이 많을텐데. "성적은 괜찮니 미연아? 계속 만점 맞아오다가 요즘은 좀 떨어졌던데." 수석 멘토가 갑자기 물어봤다. "네? 아 그게," "그래. 접을 생각 잘 했다. 연애는 나중에 해도 괜찮고, 너만 손해인거야." 이후에는 수석 멘토와 미연이의 상담으로 이어졌다. 아무래도 이번 상담 실습에서 큰 실수를 저지른 것 같다. "예비 멘토님... 우리 학원생들 성적 상담도 못해줄 판에, 연애 상담을 해줘요?" "아니 그게, 학생들이 힘들어 하니깐..." "당신은 멘토에요. 걔네들 엄마가 아니라고요. 대학만 잘 보내면 되는거에요." "넵..." 밤이 되어 내 상담실로 돌아오자 더 생각이 많아졌다. 그렇구나. 내 임무는 그거구나. 내가 회의에 차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똑똑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멘토쌤, 저, 미연인데요..." 미연이가 문에서 머뭇거렸다. "어어 들어와!" 미연이가 안으로 들어와서 의자에 앉았다. "사실 아직 안 접었어요." "그 애?" "네..." 미연이는 생각보다 말이 많은 친구였다. 자신이 그 애를 왜 좋아하게 됐는지부터 그 애랑 어떤 일이 있었는지, 친구들이랑은 어떻게 지내는지, 요즘 뭐에 빠져 지내는지 미연이는 끝없이 이야기했다. 그리고, 우울한 표정과 함께 자신의 고민과 슬픔을 털어놓았다. 미연이는 자신이 말하면서도 스스로 입 밖으로 내놓은 말들에 깜짝 놀란 듯 했다. "상담 감사합니다 선생님. 나중에 또 올게요!" "그래, 얼른 들어가서 자렴" 뜻밖의 일이었다. 항상 밝고 모범적인 미연이 같은 아이가 이런 사정이 있을 줄은, 저렇게 감정이 풍부할 줄은. 더 뜻밖인 것은 다음 날부터 다른 아이들도 밤에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쌤 쌤 있어요?" "그래, 무슨 일이니?" 그렇게 하루하루 더 많은 아이들과 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더 아이들을 이해해가기 시작했다. 내가 해준 상담은 성적 상담은 아니었지만, 다음 학원 모의고사 성적에서 아이들의 성적이 전반적으로 많이 올라갔다. 수석 멘토는 이를 보고 아주 기뻐했고, 아이들에게 어떤 멘토의 상담이 제일 도움이 됐는지 물어봤다. 그리고 아이들은 하나같이 나를 가리켰다. "저 예비 멘토님이..?" 수석 멘토의 표정이 일그러져 갔다. 이건 어떻게든 수습을 하지 않으면 위험하겠지. 수석 멘토가 내가 아이들과 다른 상담을 한다는 걸 알게 되면, 수석 멘토는 어떻게든 아이들의 비밀을 털려고 할 것이고, 그럼 아이들을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될테니깐. "약간의 문제풀이 팁을 줬을 뿐입니다. 잘 사용했다니 다행이네요." 수석 멘토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무래도 내 대답에 만족한 듯 하다. "그래요! 우리 예비 멘토님, 어머, 이젠 우리 멘토님이랑 더 잘 지내봐요." 그렇게 얼떨결에 나는 멘토가 됐고, 오늘도 달이 떠오르는걸 보며 오늘의 내 진짜 상담을 준비한다. 비록 나는 수많은 별을 환하게 비추는 태양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대신, 나는 달이 될 것이다. 태양 앞에선 찬란하게 빛나는 별, 그 뒷편의 별이 꽁꽁 감추어둔 어두운 그림자를 그 누구보다 찬란하고 따뜻하게 비추어 주는, 그런 작고 작은 달이.

533 이름없음 2022/02/11 20:56:02

그네 숨 바람

534 이름없음 2022/02/12 00:39:46

방과후에 자주보던 놀이터에서 보자고 했다. 네가 무슨 표정을 지을까. 기약없이 만났던 우리 사이에 내 제안부터가 어색했을까. 어쩌면 눈치 챘을지도 몰라. 그러게 내가 준 꽃을 왜 아직도 갖고 있었어. 이게 그저 내 바람으로 생긴 망상일까 걱정된다. 너를 기다리는 게 이렇게 온몸이 저리고 숨막히는 일이었나- 네 머리칼이 보일즈음에 나는 어떤 표정으로 쳐다보아야, 덜 어색하지 않게 널 맞이할 수 있을까.

535 이름없음 2022/02/12 02:01:26

피 사랑 식사

536 이름없음 2022/02/12 03:45:49

전쟁은 식사를 앗아갔다. 짐승처럼 눈치를 보며, 입 속에 씹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욱여넣는 걸 식사라고 부를 순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앉아 같은 종류의 식기를 쓰며 함께 먹는 것의 소중함을 알았다. 살고자하는 본능에, 죽음 앞에서도 배는 고팠고 피가 나면서도 목은 말랐다.

537 이름없음 2022/02/12 03:47:07

악몽 천사 후회

538 이름없음 2022/02/14 22:50:18

너는 내 악몽이었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너의 눈은 나를 깊게 파헤쳤다 내가 숨기려 했던 내 비밀과 너에 대한 감정까지 모두. 너에 대한 감정은 나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너는 알겠다고 했었다 너는 내 감정이 사랑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너에게 상처를 주었다 내 상처를 끌어안아 주려는 너에게 되려 상처를 내었다 네가 떠나고 나서야 나는 알았다 계시를 주고 떠나버리는 천사처럼 네가 떠나고 나서야 인정하고 말았다 너는 내 인생의 유일한 빛이었다 하지만 이제 내겐 암흑뿐이다 후회, 라는 감정으로 지금 내 상황을 표현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암흑 속이라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보이질 않는다. 너의 부재로 인해 내 모든 것이 사라졌다.

539 이름없음 2022/02/14 22:56:32

안개 별 소망

540 이름없음 2022/02/15 02:09:43

>>539 사랑은 참 부질없는 것 매일 새벽마다 뜨는 똑같은 별을 보며 나 홀로 너를 그렸던 날도 니가 내게 주었던 순백의 믿음이 알고보니 하아얀 안개속 가려진 거짓이였던 것도 이제는 내가 그리는 모든 경우의 수가 전부 다 부질 없다 그 날들의 온갖 많은 생각을 네 침묵 한 번으로 마무리 지어야했다면 매일 너를 찾아가 내 마음을 고했던건 정말이지 전부 쓸모가 없어져버렸는데 난 그게 아쉬워서라도 유치하게 별을보며 빌어본다 너도 나와 같은 시간에 살기를 소망하며, 담담하게 인사를 건내 이젠 안녕

541 이름없음 2022/02/15 11:16:54

내일,별,영원

542 이름없음 2022/02/18 02:49:27

너와 함께 올려다 본 밤하늘의 별은 참 아름다웠다 별을 담은 너의 눈도 참 아름다웠다 영원히 빛날 줄 알았던 밤하늘이 기울고 새벽의 향기가, 내일의 아침이 찾아오면 넌 하얀 숨을 내쉬며 언제나와 같이 속삭이겠지 너도 저 밤하늘도 영원하지 않다는 걸 깨달을 쯤이면 시원한 바람이 뺨을 간질이고 밝은 햇살이 너를 비추고 난 새로운 오늘을 넌 어제의 나를 기억하며 오지 않을 내일을 기다리며 그래도 밤하늘은 다시 우리를 찾아올거야

543 이름없음 2022/02/18 02:51:58

수첩, 카메라, 신발

544 이름없음 2022/02/20 03:58:17

나는 잭의 방 컴퓨터책상 위에 놓여있는 수첩 내용을 확인했다. 표지에 반듯하게 적은 자신의 이름과는 다르게 수첩 안에는 마치 잠에서 깬 직후 꿈의 내용을 기록하기라도 하는 듯 필체가 엉망이었다. '악몽(nightmare). 천장이 없는(roofless). 셋(3) 비가 온다(raining). 그녀가 온다(she comes). 도망(run). 수첩과 펜(note pen). 창고에 숨었다.(hide warehouse)' 첫번째 페이지에는 여기까지 적혀있었다. 나는 다른 내용이 있는지 페이지를 넘겼다. 몇개의 페이지를 넘기자 다른 메모가 적혀있었다. 앞쪽과 마찬가지로 엉망인 글씨였다. '같은(same). 둘(2). 젖었다(wet). 그녀 왔다(she came). 도망(run). 수첩과 펜(note pen). 창고(warehouse). 기다린다(waiting)' 몇 페이지 뒤에는 단 하나의 단어만 적혀있었다. '보고있다(watching)' "...보고있다?" 함께 메모를 본 동료 중 한명이 입을 열었다. "이건 뭐 그런건가요? 누군가에게 쫓기는 악몽을 꾸고 그 내용이 몇일동안 계속 이어지다가, 결국에는 자신도 희생됐다는?" 동료는 마치 공포영화의 클리셰를 보는듯이 메모의 내용을 비꼬았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없이 다음 메모를 찾아 페이지를 넘겼다. "음? 이건 뭐야? 암호?" 다음에 찾은 메모에는 이해할 수 없는 문자가 적혀있었다. "아, 이거 일본어네요. 히라가나로 적혀있어요." 처음 입을 열었던 동료가 메모를 보면서 말했다. "어디보자... 출구(でぐち) 숨긴?(かくす) 카메라(かめら)?" 적혀진 메모가 읽혀진 후 나는 당연한 듯이 고개를 돌려 수첩 옆에 놓여있는 디지털 카메라를 바라봤다. "아니, 테드. 지금 이 메모를 믿으시는 거에요? B급 영화 스토리로도 못써먹을만한 내용인데요?" 일본어를 읽은 동료가 나에게 약간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가능한 차분하게 대답했다. "들어올 때 봤을지 모르겠지만, 현관에 있던 잭의 신발 중 하나가 젖어있더군. 세탁해서 놔둔 것은 아니었어. 분명 신발을 신고있다가 젖은거야. 최근에 이 지역에 몇주간 비가 오지 않은건 알고있겠지. 사무원인 잭이 발에 물을 묻힐만한 일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데 메모에는 젖었다는 내용이 있으니... 일단은 조사해볼 필요가 있어 보이지 않을까?" 어찌보면 내가 들어도 조금은 억지스러운 주장이었기에 비웃음을 감안하고 수첩을 내려놓은 후 카메라를 집어들었다. 카메라의 촬영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LCD가 파손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컴퓨터에 연결해서 확인해야 할 것 같다. 다행히 책상에서 연결선을 찾아 컴퓨터와 연결했다. 컴퓨터에서 카메라를 인식하고 사진 데이터를 로드하기 시작했다. 미리보기로 보여지는 앞의 사진들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가장 최근에 찍힌 3장의 사진은 미리보기가 표시되지 않는다. 나는 그 중 먼저 찍힌 사진을 더블클릭하였다. 뷰어 프로그램으로 나타난 사진에는 어디인지 알수없는 어두운 복도 같은 곳이 있었다. 다음 사진을 확인해보니 자재더미들이 쌓여있는 곳을 창고같은 곳이었는데, 자세히보니 화면 중앙에 자재들 사이로 문으로 추정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은... 카메라를 보며 웃고있는 전형적인 미국(서양)여자의 얼굴이 있었다. 마치 여자가 스스로 촬영한 것 같았다. 여자는 얼굴 옆에 수첩을 들고있었고 수첩에는 무언가가 적혀있었다. 동료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읽을 수...있다(よめる)"

545 이름없음 2022/02/20 04:09:41

눈 존경 귀여움

546 이름없음 2022/02/21 16:23:40

내 눈을 바라보는 듯 하더니 매몰차게 돌아 그저 스쳐간 눈빛을 가진 그 사람을 존경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빛 한 방울 보이지 않는 평범한 검은 눈동자 주제에 마음 속 열망과 애탄을 불러일으키고, 혀를 움직이지 않은 채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은 그 눈빛밖에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 인간에게 나는 그저 귀여운 생도들 중 한 명이겠지.

547 이름없음 2022/02/21 19:30:34

사랑 운명 슬픔

548 이름없음 2022/02/22 03:11:50

넌 항상 사랑한다는 말을 가볍게 하더라? 누구에게나 사랑한다면서 눈웃음을 지어주고 문자에 하트 이모티콘을 남발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사랑이 고팠던 나와 너는 운명이라고 생각했어 너의 사랑해가 매일 나에게 차곡차곡 쌓여가 내 마음을 체워주었어 너에게는 가벼울지도 모를 사랑한다는 한마디가 나에게 얼마나 크게 다가왔는지 너는 모르겠지 나에게는 더없이 특별했던 사랑한다는 말 슬프게도 너는 다신 해주지 않겠지 마음이 비어버렸는데 다시 체워주지 않을레?

549 이름없음 2022/02/23 00:04:11

타이머, 맥주, 연인

550 이름없음 2022/02/23 00:30:33

이미 수십번을 돌렸다. 손 때는 탈 대로 타고, 녹슬어 더이상 돌아가지도 않는 시계는 시간이 정해진 타이머처럼 점차 초조히 알릴 준비를 해온다. 어느때는 온종일 방구석에서 폐인처럼 맥주캔만 까 마시며 하루를 새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연인의 자취를 그리워 하면서 추억을 하염없이 쓰다듬는다. 방구석에 놓인 분홍색 커플 타이머는 더이상 버튼이 눌리지도 않을 만큼 너무 많이 눌렀고, 옛 그립던 시절을 추억하며 시간을 쓸어내기에는 내가 시간과 함게 쓸려갈 수 없다. 그 무엇보다 얼음장같고, 송곳하게 다가오는 파도에 침식되어가면서, 나는 결코 그와 함께 쓸려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책상 앞으로 가서, 작동하는 지도 모르는 색바랜 분홍빛 타이머를 맞춘다. 함께 쓸려나가지도 못하고, 깎이기는 커녕 흠집밖에 못내는 파도에 몸을 맡기기보다는, 다시 차게 얼어 변하지 않는 바다를 거슬러 오르려 한다. 10:00 . . . . 00:00 바다는 여전히 나를 차가운 심해에 가라앉혔다. 어느때에는 하염없이 맥주를 마시며 날을 지새우고, 어떤 때에는 연인의 추억을 다시 떠올린다.

551 이름없음 2022/02/23 00:32:23

첫사랑, 회귀, 불

552 이름없음 2022/02/23 02:04:02

내 세상에서 감히 주인공 자리를 꿰어찰 수 있는 타인, 나는 주인공도 뭣도 아닌 변방의 가난한 시인. 빛바랜 시집은 노란 꽃물이 잔뜩 들었을 테지. 이따금 들려오는 노래는 당신을 위한 나의 사랑시. 아마 사랑은 그런 것이다. 들이닥치는 파도처럼 거칠고, 타오르는 불길처럼 뜨겁고, 마른 하늘에 쏟아지는 소낙비처럼 갑작스러운 것. 그래, 나는 오랫동안 사랑을 잊고 살았던 거야. 잔춘의 시기, 회귀한 여름의 응달에선 첫사랑 내음이 난다.

553 이름없음 2022/02/23 02:06:00

나 고독 타인

554 이름없음 2022/02/24 01:31:21

어쩌면 고독이란, 금단증상일뿐일지도 모른다. 타인과 함께 있는, 그 충만함에서 벗어나는. 그 중독과도 같은 달콤한 감정에서 깨어나 혼자가 되었을때 나는 비로소 고독이라는 감정을 느끼므로. 그래서 홀로 있는 것도 익숙해지다보면 더 이상 고독을 느끼지 않는다. ... 전혀, 반갑지 않은 해방이지만.

555 이름없음 2022/02/24 01:32:20

드라이플라워, 자정, 오리온자리

556 이름없음 2022/02/25 00:55:00

자정 무렵에 오리온자리가 보인다던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별자리라든가 황도 12궁이라거나 하는 것은 문외한인 내게, 당신이 깔깔거리며 오리온자리를 알려주던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새하얀 눈 속 당신이 아름다워 내가 슬금슬금 옆으로 붙으면 당신의 미소가 활짝 피어나곤 했습니다. 그곳은 조금 일찍 봄이 찾아왔고 귓가를 스치는 냉한 바람은 꽃샘추위가 되었습니다. 봄은 겨울에 끝났습니다. 꽃은 눈을 맞아 메말랐습니다. 이미 생기를 잃었음에도 그 자태는 여전히 찬란했기에 나는 그만 꽃을 꼭 껴안아 버린 것입니다. 그날 내 품 안에서 따뜻했던 우리만의 봄은 바스라져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감히, 아직 꽃을 사랑합니다. 또 드라이플라워를 샀습니다. 오늘 자정에도 오리온자리를 찾겠습니다.

557 이름없음 2022/02/25 01:00:31

결정, 망상, 오만

558 이름없음 2022/02/25 01:22:34

망상과 오만은 인생이다. 자신이 결정을 해냈다는 망상과 그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오만이 인생의 전부인 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우리 모두의 일부이다.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망상으로써 결정을 만들고 자신의 안의 오만으로써 그 결정에 확신을 만든다. 그 망상은 오만의 길이에 따라 꽤 오래 지속되기도, 짧은 백일몽처럼 끝을 맺기도 한다. 망상을 거듭해서 수정해 나가 단단하고 아름다우며 완벽한 오만을 만드는 것이 인간의 존재 이유이자 인생 그 자체가 아닐까.

559 이름없음 2022/02/25 01:47:26

상상력, 모방, 공허

560 이름없음 2022/02/25 20:08:48

상상력이 좋았던 그 아이는, 언제나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판타지 동화 속 주인공을 모방했던 그 아이는, 흐르는 세월 따라 성장하며 더럽고 추잡한 현실을 깨닫게 된 그 아이는, 끝없는 공허 속으로 빠져들어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었답니다.

561 이름없음 2022/02/25 21:37:44

죽음, 파티, 웃음

562 이름없음 2022/02/26 01:21:39

나는 어쩌면 너의 모든 걸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만일 내가 죽은 날에 네가 파티를 열고 내 영정사진 앞에서 깔깔 웃어도 난 네가 밉지 않을테지 아니, 어쩌면 더더욱 사랑하게 될지도 몰라 미치광이가 된 내가 널 사랑하게 된걸까 아니면 내가 널 사랑해서 미치광이가 된걸까 모르겠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 내게 중요한 건, 지금 널 껴안고 키스하고 싶다는 것뿐이야.

563 이름없음 2022/02/26 01:40:10

여름 방학, 첫사랑, 약속

564 이름없음 2022/02/26 10:13:27

"우리 가는 길의 끝이 어떻건 간에 마지막에는 함께하기로 약속했었지." 그 아이는 교실 창가를 등지고 서서 붉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사위는 울적해지리만큼 고요했다. 나의 첫사랑은 잊혀지지 않을 미소를 입께로 끌어올렸다. 초생달 모양으로 두 눈이 그리는 곡선이 그 위에 고즈넉하게 걸려있었다. "약속을 지키려고 돌아왔어, ■■아."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은 하늘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그 아이의 등 뒤로 드리워져 있었다. 영문을 몰라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는 첫사랑을 보듬어 품에 안았다. 창 밖의 짙은 핏빛이 눈동자에 스며 욱신거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눈가에서 흐른 물방울이 뺨 표면을 소리없이 지나고 있었다. "바보야. 네가 돌아온 게 아니야." - 끝나지 않을 여름방학

565 이름없음 2022/02/26 10:15:00

굴곡, 안경, 청량

566 이름없음 2022/02/26 23:42:52

처음은 안경이었다. 안경 너머의 넌 잘 웃었다. 남들에게 자주 말을 걸고, 반을 이리저리 돌아다녔으며, 더운 여름에도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곤 했다. 밝고, 활기차고, 친절한 너. 그거 안경 너머의 너였다. "야. 오늘 피씨방가자." "나 오늘은 집에 가야해." 곤란하게 가방을 든 너는 칭얼거리는 친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교실을 나선다. 안경 속에 너와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 두번째는 창 너머 비치는 너. 너와 나는 같은 책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루한 수업이 될 무렵 창문을 바라보곤 했다. 그 창문에 비친 너는 누구보다 열심히였다. 묵묵히 할 것을 하는, 공부를 잘하는 너. 그건 창문이 비친 것. 나는 드디어 용기를 냈다. 안경도, 창문도 필요 없었다. 진짜 너는 무엇일까. 비친 그 너머의 조각들이 진짜 너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냈다. 내가 본 너는 낡은 운동화를 신었다. 휴대폰은 기억도 못할 옛날 기종. 책상에 가끔 끄적이는 낙서는 우울에 대한 내용이었고, 그건 늘 감춰져있었다. 또. 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맨 눈으로 본 너는 내가 안경과 창문으로 바라볼 때와는 너무 달라있었다. 아, 맞아. 그렇게 또한 맨눈으로 바라본 하늘이 청량하다. 굴곡을 버렸음에도 여전히, 여전히 반짝였다. (ㅜㅜ 굴곡을 굴절로 착각했어... 일단 올려볼게... 미안)

567 이름없음 2022/02/27 00:53:35

인사, 여름, 미소

568 이름없음 2022/02/27 02:24:16

여름의 노을은 유난히 붉다. 지평선 너머로 점점 사라져가는 새빨단 태양이 회색 도시를 물들이는 이 시간이 난 좋다. 너의 미소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시간이니까. 우리 마을에서 노을이 가장 잘 보이는 갈림길에서 우린 언제나 작별 인사를 나눈다. 급식이 맛없었다느니 숙제를 보여달라느니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나의 걸음을 늦추는 너는 벌써 작별 인사만 다섯번째 건낸다. 계속해서 붙는 너의 추신에 내 입가에도 미소가 피어오른다. 노을이 가장 잘 보이는 이 길이 도시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가장 아름다운 여름의 추억일거야.

569 이름없음 2022/02/27 02:31:09

불꽃 학교 혁명

570 이름없음 2022/02/27 10:54:49

불꽃이 거세게 튀었다. 평화롭던 학교는 순식간에 비명으로 뒤덮였고, 무언가가 타는 듯한 냄새와 미친듯이 타오르는 불길만이 지상에 남았다. 잠긴 교문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스러진 학생들의 잔해를 바라보았다. 그 위를 덮은 붉은 색의 불은.. 저 멀리서 보면, 마치 깃발로도 보이지 않을까.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허무했다. ...전부 소용 없었구나. 잔잔한 일상이 깨진것도, 누구보다 사랑했던 친구를 잃은것도. 무엇 하나 슬픈 것 같지 않다.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일은 헛수고였다는 그 하나의 사실이 어떤 것보다 아팠기에. 이 혁명은, 도대체 무얼 위한 혁명이란 말인가. ..이건, 혁명이라 부를 수 있는 행위였나? 더이상 생각을 이어나갈 시간은 없었던 듯, 곧이어.. 시야가 암전했다.

571 이름없음 2022/02/27 16:12:27

성인 아저씨 추억

572 이름없음 2022/03/03 00:47:25

너는 성인이 되었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이사했다며 어색하게 인사해오던 것이 나는 며칠 전의 일만 같은데 말이다. 나는 여기에 멈춰 서 있고 너의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에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며 웃는 얼굴엔 성숙함이 스며들고 있었다. 오늘 1월 1일, 새벽에. 너는 이제 성인이라며, 술을 마셨다고 했다. 만취한 얼굴이 붉게 물들어있는 모습은 낯설었다. 아니, 눈시울마저 붉었던 걸 생각하면 그게 술기운 탓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너는 마지막 추억이라고 하며 내 입술에 네 입술을 비볐다. 정말 많이 좋아했다고, 첫사랑이었다고. 입술을 붙인 채로 속삭여왔다. 입술엔 거스러미가 일어나 까슬했다. 짧은 접촉 후에 너는 네 집으로 도망쳤다. 마치 닿으면 녹아버리는 눈송이처럼 사라졌다, 아주 아름답고, 매혹적인, 그 눈송이의 결정같은 너는.

573 이름없음 2022/03/03 03:44:07

붉음/감정/연민

574 이름없음 2022/03/04 03:14:06

난 푸른 감정을 슬픔으로, 붉은 감정을 분노로 표현하고는 했다. 푸름에서 붉음으로, 이윽고 끈적하게 타오르는 것은 증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적색에서 청색으로, 이윽고 오만하게 납득해버리는 것은 연민이었다. 가끔 붉은 노을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고는 한다.

575 이름없음 2022/03/04 03:16:17

생각. 휴지. 물감

576 이름없음 2022/03/06 22:25:10

물감을 휴지에 한컵 떨어트리면, 아름다운 색깔로 물들며 일그러진다. 모두가 입을 모아 아름답다하지만, 결국 남는 건 일그러진 휴지 조각 생각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생각도 너무 많으면 일그러져 남은건 그저 쓸모없는 것일 뿐이다.

577 이름없음 2022/03/06 23:00:04

나비 속박 해방

578 이름없음 2022/03/07 05:28:25

사색의 시간, 죽은 쥐 옆에 흩어진 나비의 시체. 패악을 저지른 소안, 그 위로 쏟아지는 춘광. 안(顔)과 안(眼)이 표독으로 일그러진다. 공연스레 산통 깨지 마. 내 말 들어. 권위적이고 작위적인 말투가 귓등에 착근한다. 하늘도 나를 사랑하셔. 나비의 절개를 지키어, 죄 가득한 것을 입에 담지 못하게 한 거야. 이제는 절사한 관계의 말로도, 어느 여름의 실의도 천회하지 않아. 종적 감추듯 너도 저 나비처럼 나와 함께 연멸해 버리자. 염속되기 전, 천협한 속박을 벗고 영멸해 버리자. 이것은 살생이 아니야, 해방이야. 광파에 지끈거리는 눈두덩이를 누르다, 악취에 코를 틀어막고선 바락 소리를 지르니, 종내 남은 것은 무(無). 인간의 탈을 빌려 쓴 천신의 자제라 치부해야 하는가. 나의 폐잔한 착류인가. 이 순간을 유념해, 요행이 깃들기 바라. 폐부를 들어내 놓고 천지분간 식별할 일말의 경황조차 없이 번지는 시간에 비해 대가치렌 가히도 잔악하다. 일컨대 네가 저지른 것만이 죄악이라 칭할 수 있어. 난 이제 널 사랑할 수 없어.

579 이름없음 2022/03/07 05:33:31

시나브로 허파 황량몽

580 이름없음 2022/03/08 09:27:00

허파가 터질것 같이 숨을 쉬었다. 방금 내가 들은 소식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토록 네가 아니기를 바랬는데. 숨을 들이킬 때마다 송곳이 내 몸을 찌르는 느낌과, 내쉴때 마다 헛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다. 처음으로, 네가 원망스러워졌다. 이럴거였으면 나한테 다가오지 말았어야지. 왜 나를 길들여 놓고 떠나는거야? 소나기가 오듯이 시나브로 찾아왔으면서, 갑자기 훅 하고 떠나버리다니. 얼마나 잔인한가. 모든 것이 황량몽이었음을, 알고 싶지 않은 방식으로 깨달았다.

581 이름없음 2022/03/08 10:11:44

불,우정,배신

582 이름없음 2022/03/08 19:51:36

불꽃이 피었다. 화려하고도 지독히 강렬한 불꽃이 하늘을 검게 메웠다. 연꽃이 불꽃의 열기에 젖어 바스라지고 물속으로 숨어든 이들은 뭍에서 태어난 죄로 뭍으로 나와 물속에서 죽었다. 그 무엇도 아닌 죽음이었다. 어찌하여 그대는 과실을 나뉘고 그 종자 속에 독을 담았나. 어찌하여 내가 나뉜 것에 꽃을 피워 죽음을 담았나. 그대는 나를 사랑하였나. 나는 그러했다.

583 이름없음 2022/03/08 21:54:58

바다, 신비로움, 미지(未知)

584 이름없음 2022/03/13 21:26:59

가슴이 부서지는 듯한 치명타였다. 그 아이가 겪은 일이 이렇게까지 슬픈 일이였구나. 소녀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아이가 7년이란 시간 속을 지낸, 죽음의 바다로 빠져들어갔다. 죽음의 바다는 흑백 밖에 없는 고요한 공간. 소녀는 더 이상 눈을 뜨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죽음의 바다 속으로 계속 가라앉았다. 얼마나 더 가라앉아야 할까. 끝이 느껴지지 않는 바다다. 이 바다의 물에 닿으면 차갑고, 슬퍼. 소녀의 손은 손끝에서부터 검게 변해갔다. 이제, 끝인 걸까. 더 이상 팔에 감각이 없어. 그렇게 생각하던 소녀는 생각한 직후,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눈을 떠보았다. 분명 흑백 뿐이였고, 고요하고 차가웠던 바다 속이 아니라 여러 색의 빛으로 감싸진 신비한 무언가의 안에 있는 것이였다. 소녀를 감싼 그 빛나는 구체는 점점 위로 올라왔다. 소녀의 몸에 있던 죽음의 색은 점차 구체에 빨려 들어가면서 사라졌다. 구체는 죽음의 색을 빨아들이고도 여전히 밝게 빛났다. 하지만 그 후유증 때문인지, 아님 또다른 이유인지 소녀의 손톱에만 검은 색이 있었다. 마침내, 수면 위로 구체가 떠오르고, 바다 위의 하늘에 떠있는 그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땅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소녀의 손은 죽음의 색이 아니라, 다시 태어난 듯이 손이 그 구체의 색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구체는 점차 작아지더니 어디선가 줄이 생겨 소녀의 목에 목걸이처럼 걸어졌다. 그 아이, 즉 소녀의 어두운 또다른 인격은 분명 자신이 없애버린 다른 인격인 소녀가 다시 살아났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눈만 깜박거렸다. 소녀의 눈은 찬란한 색으로 빛나면서 자신의 또다른 인격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너를 꼭 이기고, 저 너머의 미지의 차원으로 넘어가겠어. 소녀는 부서진 검을 붙잡고 다짐했다. 자, 이제 운명의 시간은 왔도다.

585 이름없음 2022/03/13 21:29:30

노래(가사있는거) 무채색 달

586 이름없음 2022/03/14 22:19:33

만화방의 구식 라디오를 통해 들었던 노래는 이런 노래가 아니었다. 징징거리고, 들썩이게 하는 오색찬란한 무지갯빛 노래. 이처럼 색도 빛도 없는 무채광의 노래가 아니었다. 나는 하염없이 한개의 씨디와 엠피쓰리 플레이어를 번갈아보며 울컥한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쓸 수밖에 없었다. 가게를 나오며 나는 생각했다. 나의 찬란한 어린 날의 노래여, 이건 그대의 노래인가. 한순간 지문이 덕지덕지 묻은 씨디가 빛을 받아 일렁임을 내었다. 아아, 보름이구나. 고갤 들어 누런 달을 바라본 나는 또다시 울컥했다. 눈에 물이 고였다. 이젠 영영 되찾을 수 없는 나의 찬란이 못내 서러웠다.

587 이름없음 2022/03/14 23:59:10

꿈, 희망, 행복

588 이름없음 2022/03/16 01:06:10

나는 오늘도 희망을 품고 꿈속으로 다이브하죠 당신이 나올거라는 실낱같은 그런 호프를 가지고 하지만 나는 알아요, 당신은 그곳에 애브센트하다는 것을 아무리 기도해도 내게 어드미트 되지 않은 만남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내가, 모스트하게 알고 있지요. 그럼에도 나는 내일 밤에도 프레이할거에요. 신에게, 전지전능한 애니원에게 어떻게든 말예요. 당신이라는 행복을 만나게 해달라고, 신시어하게. (현대시에서 영어독음 그대로 시에 쓰는게 갑자기 떠올라서 따라해봤당 히히)

589 이름없음 2022/03/16 01:19:40

지긋지긋, 짝사랑, 키스

590 이름없음 2022/03/18 08:35:49

이 지긋지긋한 짝사랑을 끝내겠다 막연히 각오했을 때엔 이미 네게 물들어 있다는게 억울해 울었다. 난 원래 본모습이 무엇인지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네 분홍 아크릴 물감에 덧칠해져 있는데 네 손수건에는 내가 흘린 눈물 몇방울이 축축함을 나타낼 뿐이다. 아니지. 사랑따윈 하는게 아니랬는데, 사랑을 해서. 다 사랑 탓이다. 빗속의 그녀는 차가웠다. 꿈속의 그녀일지도 모른다. 비가 내렸고 나는 왜 이곳에 서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묘한 분위기의 어디론가 사라질 것만 같은 여자는 희미한 미소로 내게 말했다. 안녕, 날 좋아하는 사람아. 이제는 안녕. 그녀는 몰랐을 것이다. 이 기대를, 이 사랑을. 그러니 꿈이로구나. 마주하지도 못한 사별의 외침은 비참했다. 첫사랑은 원래 이루어지지 않는다더니, 그래서 그런 것이다. 그녀가 다정한 눈으로 다가온다. 허릴 숙여 무릎을 꿇은 채 바닥을 멍하니 보는 내게 입맞춘다. 그녀의 입술은 거칠었고 입은 물컹했다. 박하향이 났다. 내게 쥐어줬던 박하사탕처럼 시원하고 씁쓸했다. 첫사랑의 키스는 박하맛.

591 이름없음 2022/03/18 08:54:34

양복 담배 권총

592 이름없음 2022/03/18 19:36:03

그는 항상 양복을 입고 있어요. 조금 더운 날조차도 두꺼운 양복 재킷을 입고 있는게 조금 의아할 정도로요. 하지만 그는 넥타이를 매지 않아요. 물어보진 못했지만, 아마 불편해서가 아닐까요.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요. 그의 근처에만 가면 맡아지는 아주 옅은 향수 냄새엔 담배 냄새가 묻어있지 않아요. 하지만 그는 술을 꽤 좋아해요. 물어보진 못했지만, 아마 취하는게 좋아서겠죠. 나는 그를 사랑해요. 나는 양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그를 사랑하지만 어쩌면 양복을 입지 않고 담배를 피우는 그도 사랑할거에요. 내가 사랑하는 건 그 사람이니까. 그 사람은 내게 사랑을 속삭여주지 않아요. 하지만 만약 그가 사랑한다고, 내게 말해주기만 한다면. 나는 그에게 권총조차도 들려줄 수 있어요. 내 관자놀이에 총구가 들어와도, 나는 기쁘게 웃을거에요.

593 이름없음 2022/03/18 21:30:57

마왕, 공주, 장미꽃

594 이름없음 2022/03/18 21:51:25

공주는 마왕을 사랑했어요. 어리고 해맑은, 이제 20살이 된 아름다운 아가씨. 그녀는 언젠가 지하 감옥으로 끌려가던 그 비참한 왕을 사랑했답니다. 그래서 마왕에 공주를 납치해 갈때엔 그녀는 그보다도 먼저 제 창문을 열었어요. 마왕은 제 목에 감기는 따스한 팔에 놀라고 말았답니다. 둘은 그렇게 궁전에서 도망쳤어요.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공주와 묵묵히 그 말을 들어주는 마왕. 그때부터 마왕은 공주를 사랑했을지, 아무도 모른답니다. 왜 모르냐고요? 아주 용감한 용사가 나타났거든요. 용사는 새카만 기운을 내뿜는 마왕에게 칼을 휘둘렀어요. 하지만, 아아, 그 칼을 맞은 것은 공주였답니다. 제 몸을 날려 마왕을 지켜낸 공주는 마지막으로 하얗게 웃으며 눈을 감고 말았답니다. 그렇게 제 인생에 유일하게 핀 장미꽃을 잃은 어린 마왕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조차도 아무도 모른답니다.

595 이름없음 2022/03/19 03:16:13

겨울, 추억, 사랑

596 이름없음 2022/03/25 01:38:05

날이 추워지면 우린 바다를 찾곤 했다. 바다를 좋아하지만 사람이 많은 건 싫어 겨울 바다를 찾아 차가운 바닷 바람을 맞는 것을 즐겼다. 차가운 바람이 내 안을 가득 체우고 온 몸이 시려와도 너와 맞잡은 손은 너무나도 따뜻했기에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너와의 추억은 바다 없이는 말할 수 없다. 파도 소리와 너의 노랫소리, 바닷물을 머금은 커플링, 노을 색의 조개 껍데기 너와 겨울 바다를 찾은지 벌써 몇년째인지 모르겠지만 너와의 모든 추억이 참 아름다웠다.

597 이름없음 2022/03/25 03:07:17

햇살, 죽음, 놀이공원

598 이름없음 2022/03/25 04:13:20

하얀커튼이 펄럭인다. 따사로운 햇살이 눈부셨다. 꺄아아악! 비명소리가 들렸다. 놀이기구를 타기위해 줄을 섰다. "진짜?" 굳이 여기까지 따라온 동수가 묻는다. 세상에서 제일 높게 올라간다는 x열차, 하늘 가까이 다가갈 생각에 두근거린다. 두근두근 심장이 박동한다. 터질거 같다. "진짜로..?" 안전벨트가 내려가고 몸을 옥죄었다. 레일을 타고 열차가 하늘로 올라간다. 더 높이! 더 높이! 더 더! 팔목을 잡은 동수의 압력이 더 세진다. 뜨거운 태양 푸른 지평선 가장 꼭데기에서 나는 나를 옥죄는 한줄기 따스한 햇살을 놓는다.

599 이름없음 2022/03/25 11:01:02

빛, 죽음, 영원

600 이름없음 2022/03/25 12:45:57

"신랑, 신부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아껴주며 위할 것을 맹세합니까?" "네. 맹세합니다." / "네, 맹세합니다." 반지를 교환하고 두 손을 마주잡는다. 결혼준비한다고 예민해져서 다툰게 어제인데. 마주잡아 오는 따뜻한 온기를 꽉 붙잡았다.. 일렁이는 눈동자가 오로지 나만을 보며 말했다. "사랑해." 너도 지금 나와 같은 마음일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차오르는 만족감을 너도 느끼고 있을까. 환한 조명이 우리만을 비추고 있는 것같았다. 너의 얼굴이 가까워 지려는 그때. 박수소리와 함께 현실로 돌아왔다. 짝짝짝 "브라보~" "축하합니다! 고객님~ 이로서 모든 잠금이 풀렸군요." "이제부터 시크릿 루트 ; 영원한 사랑이(가) 시작됩니다." 어..? 주례사의 중저음 목소리가 발랄하게 울리며 인지 부조화가 일어났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어..어.. 하는 사이 환한 빛이 나를 집어삼키고, 세상이 하예진다. 붙잡은 온기가 덧없이 사라져가고 너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아. 그런데 너, 왜 웃고 있어..?

601 이름없음 2022/03/25 12:59:50

과거, 숙적, 후회

602 이름없음 2022/03/25 23:53:45

지금은 흘러가버린 과거.빌런 대 히어로,흑과 백처럼 대립할수밖에 없었던 관계. 너를 마침내 붙잡았다.희열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동시에 영웅 주제에 빌런과의 애인 비스무리했던 관계를 정리함을 증명하는 눈물이 흐른다. "축하해.큰 실적 올리겠어." 너는 빌런.나는 히어로.상부에서 일은 덮을테니,포획 즉시 사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그런데,내가 너를 어떻게 죽여.모두가 그때 그런 빌런이 있었지 하고 잊어갈때도 난 기억할텐데.눈을 감고,이내 방아쇠를 당긴다.비틀비틀 걸어가,뒷수습을 하는 척 의식을 잃어가는 네 손을 살짝 잡아본다.우리 이제서야 처음으로 손 잡았네. "나는 지옥에나 떨어지겠지.너는 그런 곳 가지 말고 천국에서나 살아." 그 말을 끝으로 너는 픽,쓰러진다.그렇게 목숨줄이 질긴 너였는데,내 손에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일까.너무나도 미련없이 이 세상을 떠났다.천국에서 살아가라 했지?웃기지마.네가 없는 이 세상이 바로 지옥이야.

603 이름없음 2022/03/26 12:48:36

바다 새벽 꿈

604 이름없음 2022/03/27 17:34:42

"아저씨! 아이스크림 하나요!" "스읍!" 나는 얕은 꿈을 꾸다가 흘린 침을 닦고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내 아이에게 건냈다. "그니깐... 700원이다." "왜요? 우리집 앞에선 500원이던데." 귀찮게시리... 애써 웃어보이며 아이에게 여기선 원래 그런거라고 답했다. 아이는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는 동전지갑에서 500원 하나, 100원 두 개를 꺼냈다. 사라지는 아이의 뒤엔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해수욕장이 있었다. 내리쬐는 햇빛에 모래가 하얗게 빛났고 푸른 물결이 사람들을 감쌌다. 아, 수염이 벌써 자랐네. 슬슬 깎아야 하는데. 저렇게 바닷가에 앉아있는 여자를 보면 나도 모르게 움찔하곤 한다. 특히, 그 사람이 파란 리본이 달린 밀짚모자를 쓰고 있으면 말이다. 급하게 담배가 땡긴다. 금연구역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대충 가리곤 담배를 태웠다. 어느덧 하늘이 붉게 물들고 사람들은 하나하나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해는 바다에 잠겼고, 어둡고 파란 밤이 일어났다. 공허한 바닷가에는 그 여자만이 앉아있었다. 그 때도, 오늘도. 22살의 쑥맥이었던 남자는 경직된 몸으로 그녀의 옆으로 가 왜 아직 집에 가지 않냐고 물었었다. 깊은 눈이 아름다웠던 그녀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왜 나는 여깄냐고 물었다. 어버버 거리며 말을 더듬는 내게 그녀는 얕게 웃더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새벽 바다에서 나눈 젊은 남녀의 풋풋한 설렘은 여름 끝자락까지 이어졌다. 바닷공기가 차가워졌다. 이제 연인이 된 남녀는 그 날도 새벽 바다에 앉아있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바닷가로 놀러온 남자는 이 끝자락을 다음으로 가는 계단으로 보았다. 하지만 여자는 이 끝자락을 자신의 연애와 인생에 연장시켰다. 남자는 가을이 지나서야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는 한참을 자책했지만 그 끝자락이 그녀가 스스로 선택한 마지막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와는 다르게 조금씩 자란 수염을 어루만졌다. 시간과 후회가 손을 간지럽혔다. 남자는, 그 날처럼 경직된 몸으로 바닷가에 앉아있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밤 바다는 춥습니다. 집에 들어가셔야죠." 여자가 고개를 들어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은 정말 깊고, 아름다웠다. "그쵸...? 바다가 예뻐서 추운 줄도 모르고 있었네요." 여자가 머뭇거렸다. "그, 근데 아직도 집에 안들어가셨네요... 게다가 바다까지 오시고." 남자의 경직된 몸이 조금씩 떨렸다. 그는 이것이 그녀의 기억 때문이 아니라 추운 바다 공기 때문이라 믿었다. "아, 네, 그, 뭐..." 다 큰 남자가 머뭇거리며 말을 더듬자 여자가 웃었다. 여자는 남자를 보고 싱긋 미소를 짓곤 말을 이으려 했다. 그 때, 조용히 불어온 바람이 내 눈에 그녀를 겹쳤다. "집에 가야죠 이제. 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흘려보내고 나는 가게로 돌아왔다. 한참을 가게 안에서 심호흡을 한 나는 급하게 뛰쳐나와 바닷가로 달려갔다. 그곳엔 이제 아무도 없었다. 사랑하는 이를 추억하며 바닷가에 남은 도시 청년은 모래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다.

605 이름없음 2022/03/27 23:17:31

작은 키, 양복, 웃음

606 이름없음 2022/04/02 00:11:20

그는 키가 작았다. 작지만 다부졌다. 약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저께, 술에 절어 비틀비틀 꿍얼꿍얼. 어렸을 적 놓쳐버린 동생 손 끝의 서늘함을 아직 잊을 수가 없단다. 실종 전날, 어제는 무슨 이유에서 양복을 한 벌 꺼내 입었다. 참으로 멋드러진 양복이었다. 어느 귀하신 분을 만나려나 물으니, 말도 않고 눈웃음을 지었다. 어쩌다 낡은 아파트의 낡은 놀이터 옆을 지날 때엔 슬며시 입으로 웃곤했다. 괜히 그런 때에는 그가 작고 초라해 보여 어서 가자, 채근하였다. 실종되었지만 그리 놀랍지는 않다. 예견된 일이어서라기 보다는, 그가 다시 돌아올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추억으로의 여행은 언젠가 반드시 끝나기 마련이다.

607 이름없음 2022/04/02 02:41:58

달빛, 사랑, 약속

608 이름없음 2022/04/04 02:29:57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의 은발이 어지러이 휘날렸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정리해주며 생각했다. '정말 예쁜 색이다.' 그러자 그가 살짝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뭐가 그리 예쁜데? 이거?" 자신의 머리카락을 가리키며 그가 힘없이 웃는다. 그것마저 아름다워 나는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던 중 그가 문득 질문을 던졌다. "있잖아, 우리 약속 하나 할래?" "무슨 약속?" "아무리 터무니 없는 말을 해도 믿어주기로." "뭐야, 그게." 나는 퉁명스럽게 받아쳤지만 얼굴은 웃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의 말이라면 뭐든 믿을 것이다. 그가 원한다면 그게 무엇이든. "그냥 한번만 해줘. 속는셈 치고." "아... 알았어. 딱 한번이야?" "응. 고마워. 사실 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냐?" "치사하네. 아까는 다 믿어준다며!" 순간, 몸이 굳었다. 분명 말로 꺼낸 적이 없을텐데. 그러고보니 아까 머리 정리해줬을 때도... "진짜야...?" "못 믿겠으면 뭐 하나 생각해봐. 내가 맞춰볼게." 그의 능글맞은 웃음에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그에 대한 나의 애절한 사랑을. 이 마음이 부디 닿기를. 그렇게 바라며 눈을 떴을 때 그는 여전히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나도, 사랑해."

609 이름없음 2022/04/04 15:32:36

화재,갈등,원망

610 이름없음 2022/04/19 01:28:33

갱신!

611 이름없음 2022/04/25 23:58:12

봄비, 우산, 계단

612 이름없음 2022/04/30 07:45:16

날씨가 따듯해지나 싶더니만 그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봄비인건가. 이런, 우산도 안 가져왔는데. 비가 그칠 때 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다. 바닥을 조금씩 적셔가는 빗방울들을 보며 멍하니 서있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익숙한 돌계단. 여기서 네가 죽었다, 오늘과 같이 선선한 봄비가 내리는 날에. 사인은 투신 자살에 의한 과다출혈, 6층 건물 옥상에서 떨어져 돌계단에 머리가 부딛혀 깨졌다고 했었나. 아마 그랬던것 같다. 그게 벌써 1년 전인데도 아직도 선명하기 짝이 없다. 떨어지는 너의 모습이. 3층에서 약 0.5초간 마주친 네 얼굴의 표정이, 너무나도 밝아서. 죽음의 두려움 보다는 후련하고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떨어지던 네 얼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째서? 왜 너는 그 길을 택했을까? 삶이 고되서, 의미가 없어서, 그런 흔해빠진 이유는 널 죽이지 못했을 것이다. 너는, 그딴 시시한 이유로 죽을 아이는 아니었다. 끝까지 희망을 갖고 의미를 찾아냈을 것이다. 당당하게 웃으면서. 그러니까 나도 살린거겠지. 그런데 왜 2년전의 내가 선택하려 했던 방식으로 죽었지? 도대체 왜? 여전히 궁금한 의문을 답해줄 사람은 이제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왜 죽었나? 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죽었나? 모든것을 놔버린게 아니라, 무슨 목표가 있었다면? 넌 무엇을 증명해내려 한걸까? 네가 없는 세상? 네가 사라져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엿같이 돌아갔지. 그것을 내게 알려주고 싶었나? 죽음은 의미가 없다고? 어느덧 비가 그쳤다. 원래도 화창한 하늘은 비가 그치니 더욱 맑아보였다. 비가 그친 후 나는 상쾌한 흙냄새와 가라앉은 공기를 들이쉬며 축축한 계단을 밟았다. 그리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한발, 또 한발.

613 이름없음 2022/04/30 22:30:15

강,시한부,죽음

614 이름없음 2022/04/30 22:50:48

>>613 단어 세 개 제시하는 거 아님? 왜 네 개

615 이름없음 2022/04/30 23:04:02

>>614 ㅇㅇ 잘못봐서 수정했어!미안!

616 이름없음 2022/05/03 22:40:47

시한부는 왜 시한부일까. 너는 일년 내에 10%의 확률로 차에 치여 죽는다. 백년 내에는 100%의 확률로 죽는다. 그렇다면 너는 시한부인가? 나는 오 년 내 100%의 확률로 죽는다. 나는 왜 시한부인가. 죽음은 불공평한다. 그건 정해진 죽음이나 정해지지 않은 죽음이나 마찬가지다. 구태여 그 얕은 인간의 지식을 자랑하듯 당신은 오년 내에 죽소, 할 필요는 없단 말이다. 그럼 나는 당신은 오십년 내에 죽소, 하고 웃어줄 것이다. 넌 나보다 늦게 죽을 것 같지? 왜 모든 인간은 자신이 백살은 먹고 죽으리라 생각하는걸까. 아빠가 떨어진 한강 운치는 아주 좋았다. 매년 이곳에서 수십이 떨어진댄다. 우리 아빠도 그 수많은 사람 중 하나였겠지. 아마 조사를 나온 경찰관들은 오늘 재수가 없다며 욕을 했을지도 모른다. 펜스를 치면서 이 사람은 주식이네, 사업이네 하고 열띤 토론을 벌였을 수도 있겠지. 미안하게 되었소, 경찰관 나리들. 저는 안타깝게도 시한부라.

617 이름없음 2022/05/04 00:32:53

도망, 현실, 꿈

618 이름없음 2022/05/04 10:50:47

현실로 도망치고 싶었다, 이 모든 것들이 마치 꿈만 같아서. 전부 끔찍해서 차라리 이 꿈에서 벗어나 현실로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지는 아직, 아무도 알수 없었다.

619 이름없음 2022/05/05 00:59:16

눈맞춤, 담요, 붉음

620 이름없음 2022/05/15 13:30:53

ㄱㅅ!!

621 이름없음 2022/06/16 16:30:00

사방이 온통 붉었다. 비릿하고 불쾌한 냄새도 퍼지고 있었다. 담요에 싸여있던 꼬마는 숨을 죽였다. 무언가 질질 끌리는 듯한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꼬마의 손이 담요를 물고 오므라들었다. 눈을 맞추어선 안 된다. 꼬마의 본능이 속삭이고 있었다. 철문처럼 두 눈을 질끈 내려닫고서 꼬마는 근처에 있던 인형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 인형은 기이하게도 붉은 색 일색이 된 방 한가운데에서도 유일하게 젖지 않은 채였다. 무언가를 끌던 소리가 꼬마의 머리맡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숨 막히는 정적이 방 안을 잠식했다. 꼬마가 견디다 못해 살그머니 눈을 떴을 때, 무언가가 꼬마와 눈을 맞추었다. 그것은 귀신도 괴물도 아니었다. 인형의 눈가에 매달린 싸구려 검은색 단추가 붉은 빛을 띄고 번쩍이고 있었다. 청록, 구두, 사진

622 이름없음 2022/06/21 16:49:29

빛 바래고 오래된 폴라로이드 사진,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쌓인 먼지들이 얇은 막을 치고 사진을 가리고 있었다. 사진을 쥐고 있던 엄지손가락으로 대강 문지르자 청록빛 필터를 씌운 듯 칙칙한 색의 사진이 드러났다. 웃고 있는 긴 머리의 젊은 여자. 배경에 구두가 한가득인 것을 봐서는 구둣방인 듯 싶었다. 이 집에서 찾을 수 있는 사진은 이게 전부였다. 나는 사진을 조심조심히 잡고는 반으로 찢었다. 부욱, 하는 소리와 함께 의외로 두꺼운 폴라로이드가 두동강났다. 그리고 그 즉시 흘러 들어오는 여자의 기억. 그녀는 죽었다. 아니, 죽었었다. 나에게.

623 이름없음 2022/06/22 01:01:12

공허, 철학, 미움

624 이름없음 2022/07/03 04:44:26

너의 철학은, 지독하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나도 모르지. 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지. 나는 그저 듣는 데 익숙할 뿐이다. 듣고 보니, 너라는 사람이 보였을 뿐이다. 마음이 공허했을 것이다. 빈 틈새로 조금씩 차오른 그것은 천천히 목을 죄인다. 몰랐을 테지. 가끔 그러거든. 일상토록, 줄곧 그랬다면 그건 공허가 아니다. 죽어버린 시체지. 그런 네가 뭔가를 채워야 한다면, 채워질 수 있다면. 하고 바란 게 미움이었다. 내게는 그렇게 밖에 보이질 않는다. 원래 그런 것인가? 나는 그저 들었을 뿐이고 들은 대로 말했을 뿐이다. 왜 뻔히 보이는 거짓말들에 일일이 넘어가줘야 하는 걸까. 보면서 질려버린 내 마음도 이해해줬으면 한다. 뭐, 지금 보니 이해는 물 건너갔다.

625 이름없음 2022/07/03 11:51:08

회귀 빙의 환생

626 이름없음 2022/07/10 15:50:34

ㄱㅅ

627 이름없음 2022/07/12 20:04:19

TV 과거 추억

628 이름없음 2022/07/14 13:56:55

고개를 들어 본 창 밖은 어느새 푸른 빛이 감도는 검은 하늘로 가득찼다. 어두운 하늘은 얼마 되지 않는 별들과, 태양을 대신하는 흐린 달 뿐만이 장식되어 남아있다. 하늘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고, 별들은 너무 작고 수가 적어 환하게 어둠을 비추기에는 쉽지 않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깥은 거리에 수놓아져 있는 전광판과 가로등이 밝게 빛나고 있다. 인조적으로 과하게 밝아진 빛은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불이 꺼진 방의 조명이 되고 있었으며, 좋지 않은 음질의 TV의 즐거운 소란이 적막한 방의 소리를 채워주고 있었다. 노이즈가 낀 듯한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흘려 들으며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니 쨍한 색이 눈을 강타하고 지나간다. 눈살을 미묘하게 찌푸리면서도 TV에서 눈을 떼지 않은채 쥐고 있는 맥주캔을 입가에 기울였다. 어째서일까, 화면에 나오는 사람들의 웃음은 그저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으며, 시끄러운 소음은 그저 흘려듣게 되었다. 별 다른 생각 없이 채널을 돌리다가 익숙한 프로그램의 이름의 손을 멈췄다. 채널의 숫자는 005. 어릴때 자주 보았던 채널이었다. 만화영화를 재방하기도 하고, 여러 예능 프로그램도 보여주었던 이 채널은 추억의 파편이었다. 항상 행복하지는 않아도 즐거운 기억이 몇 남아있는 과거의 한 부분. 멍하게 화면을 바라보며 기억을 거슬러 과거에 잠겼다. 나는 그때 무엇을 바랬지? 이 TV 앞에 앉아서 무엇을 꿈 꾸었지? 희망을 꿈꾸었던가, 불가능을 꿈꾸었던가. 나는 이 앞에서 파워레인저가 되기도 했으며, 사육사가 되기도 했고, 어느날은 드라마에 나오는 착한 주인공이 되기도 했으며, 사랑을 받는 아이돌이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바라던 모습이었을까. 똑같은 자세로 TV 앞에 앉아 화면을 보고 있는 내 모습과 과거의 모습이 겹쳐진다. 다른 점은 지금의 내 얼굴에는 어떠한 감흥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 무엇이든 될 수 있을거라고 믿었던 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순수하게 반짝이는 눈동자는 추억 속에 남겨두고, 그것을 다시 꺼내올 수 있을 때까지 도전해보기로 했다. 비록 그것을 영원히 꺼낼 수 없게 될지라 한더라도, 추억 속에 남아있는 것 만으로도 원동력이 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629 이름없음 2022/07/14 19:02:27

약속,비밀,내일

630 이름없음 2022/07/18 20:21:55

"우리 약속 하나 하자, 내일 날 찾지 말아줘." 아, 또 꿈이구나 그것도 지독한 꿈, 왜 그 아이가 나왔는지 이유를 찾는 것도 지친다. 나와 그 아이는 비밀스러운 관계였다. 우리들은 비밀스럽게 만났고 비밀스럽게 빠져 들었고 비밀스럽게 헤어졌다. 여름날의 꿈처럼 온 그 아이는 여름날의 꿈처럼 날 떠났다. 아직도 그날의 향기가 내 코 끝을 찌른다, 마치 그 아이의 중성적인 우디향 같은.. "000?"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소리 나는 쪽으로 돌아보았다. 그 아이였다, 여름날의 꿈 처럼 나를 찾아오고 여름 날의 꿈 처럼 날 떠난 그 아이였다.그 아이는 비밀스럽게 날 떠난 것이 아니라 비밀스럽게 내 주위를 맴 돌았던 것이다.

631 이름없음 2022/07/19 01:17:12

소나무, 연, 실타래

632 이름없음 2022/07/22 15:28:24

내게는 아직도 남아 있는 기억 하나가 있다. 그때의 나는 한창 연에 빠져 있었다. 어머니의 방에서 찾은 실타래와, 옛날에 누나가 쓰던 연에서 나온 플라스틱 손잡이. 근처 문구점에서 산 한지와, 누나의 방에 굴러다니던 리본들. 그런 재료들을 구해서 엮어서 연을 만드는 것이 취미였다. 나에게는 그런 연이 수도 없이 많이 있었고, 동네의 아이들은 가장 반짝이고 커다란 내 연을 늘 부러워했었다. 그 중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던 연은, 언젠가 생일 선물로 받은 반짝이 가루를 잔뜩 뿌려 만든 연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평소대로 친구들과 함께 연을 날리러 갔다. 그날은 유난히 바람이 불규칙하게 불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반짝이 연을 들고 나갔다. 그러다가 몇십 분 후, 갑자기 바뀐 바람 때문에 내 연은 다른 쪽으로 휙 날았다. 그리고는 그 근처에 있던 큰 소나무 가지 사이에 엉켰다. 그 연을 구하려고 온갖 일을 해 보았지만, 결국 가지 사이에서 꺼낸 연은 여기저기 찢어지고 망가져 버렸다. 나는 아직도 그 연을, 그 반짝임을, 그 어린 시절의 추억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633 이름없음 2022/07/22 16:17:40

화재,우정,원망

634 이름없음 2022/07/29 14:36:59

그건.. 그래 초등학생 때 일이었어 부모님이 맞벌이 하느라 바쁘셨고 나는 여름방학이어서 할머니 댁에 머무르고 있었지 우리 가족은 원래 할머니가 계시는 시골에 있었는데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 도시로 이사를 했어 내가 시골에 살 때 내 또래인 여자아이 하나가 있었는데 우리는 곧잘 같이 만나 이곳저곳 마을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서로의 집에 놀러 가기도 했었어 그 아이는 나처럼 도시로 가지 않고 왜 인지 시골에 계속 머무르고 있어 방학 때마다 할머니 댁을 가게 되면 항상 그 아이와 함께였었지 언제나 그랬듯 나는 그 아이와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마을 뒷 편에 있는 산에 올라가고 싶어졌어 산은 어린아이가 오르기에는 살짝 높이가 있어 자주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한번 올라가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그 경치가 꽤나 멋있었기에 할머니 댁에 있을 때 한번 씩은 올라갔었어 그 날도 그렇게 마을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아이가 나에게 어떤 물건을 하나 줬어 "이게 뭐야?" "그냥 우정의 증표 랄까.. 이제 방학이 끝나가는데 방학이 끝나면 또 한동안 못 볼 테니까" 아이가 준건 아주 이쁘게 생긴 돌이었어, 하얀 조약돌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엄마랑 아빠랑 바다에 갔었는데 그 때 주워 온 거야 나도 있어" 아이가 들고 있는 것도 나한테 준 것처럼 아주 하얀 조약돌 이었어 나는 고맙다고 말하며 조금 더 마을을 구경하다가 이제 슬슬 내려가자고 했지 그 후로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나의 여름방학은 끝이 났어 그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왔지 그게 마지막이었어 내가 그 아이를 본 건 내가 조약돌을 받은 그 해 가을 유독 바람이 많이 불었던 날이었대 그 아이의 옆집에서 시작된 불이 바람을 타고 아이의 집까지 화재가 나버린거야 하필 그 때 아이의 부모님은 아이를 두고 외출했었나봐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있겠어 라는 생각이었을까? 여느 날처럼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엄마가 데리러 왔었어 영문도 모른채로 나는 엄마를 따라 나섰고 내가 도착한 곳은 그 아이의 마지막 가는길이었지 처음 겪는 내 주변 사람 그래 친구의 죽음에 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어 그럴 리가 없다고 아니라고 악을 쓰다가 결국 쓰러졌어 내가 일어났을 때 이미 나의 친구는 가루가 되어 있었고 나는 엉엉 울면서 그 아이의 부모님을 원망했지 왜 그랬냐고 왜 내 친구만 두고 갔냐고 딸을 잃은 슬픔을 내가 헤아릴 수는 없었어 그냥 내 친구가 나의 소중한 친구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더 아프게 다가왔거든 그 아이가 떠난지도 벌써 24년이 지났네 거기서는 오래오래 행복해야 할텐데

635 이름없음 2022/07/30 11:47:48

머리끈 불빛 핸드폰

636 이름없음 2022/08/01 20:24:42

사실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은 일이었고 그렇게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그냥 쉬는 시간 도중 머리끈이 팅 하는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손목에 무언가를 감고 있는 애들에게 다가가볼까 했지만, 머리끈이 아니라 팔찌라는 대답만 얻을 게 분명했으므로 그냥 1반을 찾아간 것이다. 창문 너머로 끈을 잡고 흔들어 보이자, 고무줄 총을 쏘는 마냥 머리끈을 날려주는 아이가 있었다. 가슴팍에 맞았다. 아팠다. 초면이나 다름없는 사이에 짖궃기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왜 지금 기억나는지 모르겠다. 밤에 학교 자습실이 지겨워서 슬쩍 빠져나와 옥상에 간다. 그 애 입가에서 붉은 불빛이 보인다. "너 담배 피우는 거 아니지?" "당연하지!" 그렇게 말해주니 안심이 된다. 다시 보니 불빛은 사라져 있다. 내가 잘못 봤나. "그나저나 너, 번호는 언제 줄 거야?" "핸드폰이 없어." 거짓말이다. 맨날 전화가 왔다고 말하니까. 누구야? 물어봤는데. "그럼 왜 B하고는 통화하는데? 나한테 전화번호 주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말해." "B? B는... 그리고 전화하는 거 아니야. 텍스트만 보내는 거라." 그러면 문자잖아. 문자 해주면 안 돼? 나는 안 되는 거야? 말하기 바로 직전, 이번엔 눈가에서 불빛이 보였다. 그리고 조용한 침묵.

637 이름없음 2022/08/01 23:48:47

미적분 물리 화학

638 이름없음 2022/10/17 20:43:25

"역시 이건 너에게 너무 어려운 거 아냐?" "상관없어. 어쨌든 난 너랑 꼭 같은 대학에 갈꺼야." 나는 지금 그 애에게 이과 과목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 애는 나랑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이자, 날 짝사랑하는 여자애이기도 하다. 지금 이렇게 어려운 물리나 화학을 배우는 이유는 바로 나랑 같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다. 그것도 내가 가려고 한 대학은 과학 관련 대학이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 나는 머리가 꽤나 좋아서 대학에 쉽게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걔는 낙제점을 아슬아슬하게 넘을 정도로 머리가 안 좋다. 심지어 미적분도 제대로 못 풀고 있는 걸 보면 공부와는 영 거리에 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겨우 나 한 명 때문에 대학에 가겠다고 하는 걸 보면 의지는 나름 있을지도? 비록 머리는 안 좋아서 대학에 갈 수 있는 확률이 희박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 애의 공부를 도와주고 있다. 가능성만 있으면, 몇 번이고 할 수 있으니까. 물론 사실은 그 애가 자꾸 졸라서 어쩔 수 없이 도와준 거지만...

639 이름없음 2022/10/17 20:43:53

인형 상처 자살

640 이름없음 2022/10/19 16:32:51

어렸을때 부터 인형에 상처를 줘서 그런가 커서는 너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모자라 너 자신을 죽이는 자살 시도 까지 했어 만약, 그때 내가 무언가를 했다면 지금 이 상황이 나아질까

641 이름없음 2022/10/19 21:03:19

별 소녀 환상

642 이름없음 2022/10/19 21:15:59

별을 박은 눈을 가진 소녀는 제눈의 가치를 모르는듯 했다. 우물쭈물하며 눈을 마주치지 않는게, 복도에서 마주칠때마다 빠른걸음으로 돌아가는게, 때론 계단 벽 사이에서 내가 지나갈때까지 숨어있는게, 짜증스럽게도 퍽이나 귀여웠다. 마티어스 공작은 소녀에 대한 생각을 좀처럼 지워내지 못했다. 서류를 보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또래와 술한잔, 담배 한모금 할때도 소녀가 생각났다. 신발없이 산발로 들어오던 여자애. 그때의 기억이, 저택에서의 뒷통수가, 종종거리는 걸음이, 집무실 창 사이로 들려오던 작은 울음소리가 수도에 올라온 지금도 생생한듯 했다. 그는 미친 파티가 벌어지는 한가운데서 샹들리에를 올려다봤다. 그 순간만큼은 빛나는 샹들리에와 그, 둘뿐인것 같았다. 샹들리에 사이로 그녀의 뒷통수가 겹쳐보이는듯도 했다. 한참 올려다보니 알것같았다. 이 샹들리에가 그녀의 환상적인 눈을 닮았음을. 그는 이만 인정하기로 했다.

643 이름없음 2022/10/19 21:41:19

숙명 언약 경의

644 이름없음 2022/10/19 22:03:27

네 말 한마디에 내 숙명이 무엇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은 언약이 되어 내 인생에 깊게 달라붙은 것이다. 너도 같이. 우리는 땔래야 땔 수 없게, 그렇게... 어쩌면 내 영원을 모조리 함께 보내게 될 것이니까. 너는 생각보다 일찍 죽었다. 너는 살아, 살아서 좋은 일들 많이하고, 좋은 사람 만나고, 행복하게 살아. 나도 잊지 말아줘. 장난기 섞인 그 말은 내게는 전혀 장난스럽지 않게 들렸다. 다신 나를 보지 못할텐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 거지? 평생 너를 그리워하며 살 내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건가? 영원이 참 가벼워서 그새 너를 잃고 내 삶을 살 것 같이? 그렇다면 틀렸다. 그것도 완전한 오답이다. 너는 날 몰라. 나는 살아서 좋은 일을 많이할 것이다. 또한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날 것이다. 행복하게는 살 수 있을까? 그건 중요하지 않다. 행복이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 널 잊지 않는 것은 이 중에서 제일 쉽다. 그렇게 노력하다보면 내 숙명을 이루고 죽을 수 있겠지. 언젠가는 나도 죽을 수 있겠지. 너는 날 보고 살라고, 그것도 행복하게 살라고 말했지만, 너는 내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랐다. 평생 널 잊지 못하고 살 바에는 죽는 것이 나았다. 하나쯤은 못 이뤄도 될 거야. 그래도 너는 나에게 잘했다고 해주겠지. 나는 그날부로 새 신분을 만들었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좋은 일도 많이 했다.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 또한 했으며, 잠시도 널 절대 잊지 않았다. 그렇게 백년이 지나고, 천년이 지나고... 그렇게 되니까. 나는 네가 기억나지 않는다. 네가 한 말 중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그들과 만나고 몇십년 뒤면 그들은 나를 멀리했다. 내가 사악하다고 했다. 좋은 일은 많이 했으나 그들은 나를 원망했다. 내가 한 일이 결국 그들에게 나쁜 결과를 가져다줬다고 했다. 나는 행복하지도 못하고 너도 잊었으며... 죽을 것이다. 나는 드디어 죽는 방법을 찾았으니 살아있을 이유가 없다. 너에게 미안하고, 이제는 다 잊었지만. 그래도 사랑하고, 나도 그만 쉬고싶다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징그러운 나도 사랑해준 너에게 경의를 표한다.

645 이름없음 2022/10/19 23:52:12

토끼 정신병 쿠키

646 이름없음 2022/10/20 13:29:03

오랜만입니다 K. 너무 오래되서 제 얼굴도 까먹었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죠. 토끼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참 허약했었는데, 지금은 또 어떨지 모르겠네요. 여전히 투닥거리면서 지내고 있나요? 남들에게 소음공해는 끼치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여러면으로 곤란해지니까요....그나저나, 모든 것을 알면서도 당신을 따라온 그것이나, 그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기어코 살려낸 당신이나. 비교해보자니 참 끼리끼리 논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여하튼, 본론으로 넘어가죠. K,우리는 당신의 특별 쿠키가 필요합니다. 쿠키가 언급되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겠죠? 정신병 환자들이 다시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들의 정신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쿠키가 꼭 필요한 상태입니다. 은퇴한 이에게 이런 말 하기가 심하 부끄럽지만 저희는 저희의 한계치에 도달해 버렸어요. 환자들의 상태가 나날이 심각해지는 데다가 수도 순식간에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신속히 쿠키를 배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쿠키의 레시피를 알려주셨다면 이렇게 일일히 편지를 보낼 이유도 없을텐데 말입니다..하지만 특별 레시피를 굳이 독점하고 싶다는 것이 K 당신의 뜻이니 어쩔수 없는 걸까요. 쿠키를 핑계로 이렇게 편지를 보내지만, 토끼 뿐만 아니라 당신도 잘 지내고 있길 바랍니다. 듣는다면 갑자기 무슨 개뚱딴지 같은 소리냐며 기겁하시겠죠. 그래도 그래도 같이 일했던 동료인데 이정도 안부 인사는 괜찮지 않습니까? 뭐 아무튼, 다시 일하러 가봐야겠군요. 정신병 환자들은 한시라도 눈을 떼면 무슨일을 벌일지 모르니까 말입니다. 당신의 쿠키를 기다리며, B가.

647 이름없음 2022/10/20 20:28:14

노이로제 사랑 가정폭력

648 이름없음 2022/10/21 15:30:47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시점이 되어서야, S는 인정했다. 자신이 했던 건 사랑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 나이 될 때까지 결혼도 안하고 뭐했냐' '불쌍한 새끼' 그 말 때문에 생겨난 일종의 노이로제. 그 노이로제가 자신에게 결혼에 대한 잘못된 욕구를 불러 일으켰음을. 그 욕구 때문에 생겨난 결과물이 주변에서 내뱉던 말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된 뒤부터 자신이 망가졌음을.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한 행동이 세간에서는 '가정폭력'이라 인식할만한 행동이었다는 걸, S는 모든 것이 망가지고 난 이후에나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의 앞에는 이제 참회의 시간만이 남아 있었다.

649 이름없음 2022/10/21 17:43:40

화재 갈등 원망

650 이름없음 2022/10/28 02:32:23

20XX년. 나는 고작 중3이란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었다. 그냥 사고였다, 뉴스에 1분 보도되고 마는 그런 일반적인 사고. 나또한 뉴스를 볼때까지도 별 생각이 없었다. 안타깝다, 이게 뉴스를 본 나의 감상이었다. 그 생각도 잠시, 나는 금새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렸다. 집에 오는 동안, 웬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아까 대수롭지 않게 넘긴 화재사건이 머릿속에서 리플레이됐다. 그러자 심장이 세차게 요동쳤다. 어째서 남의 불행과 나의 불행은 크기부터가 다른걸까. 바보같았다, 짧은 생의 연을 쉽게 끊지 못해 이렇게 불안한 것이. 눈 앞이 새카매지고선 미친듯이 뛰었다. 눈이 흐릿해져서는 미친사람처럼 헛웃음이 나왔다. 우리집, 우리집이 보였다. 반쯤 타버린 집에서는 오늘 아침에도 손이 따스했던 엄마가 보이지 않음에 안심하고 있을 때였나, 어떤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천에 가린 사람 형상를 싣고 가고있었디. 애써 부정했다. 근데 사실 알고있잖아. 우리 집에서 나올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고. 아냐, 아냐..아냐...! 우리 엄마는 이렇게 손이 차갑지 않아..미친듯이 허둥지둥 소리치며 엄마를 찾았다. 하지만 들려오는 건 어지러운 침묵 뿐. 미칠듯한 정신을 붙잡고자 입안 살을 잘근잘근 씹었지만 늦었다. 나는 이미 구조대원으로 보이는 사람을 잡고 소리치고있었다. 우리 엄마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 당신이냐며 원망하고 있었다. 사실 이 상황을 누군가에게 탓하고싶었다.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으면 내가 미쳐버릴것 같아서, 그래서 애꿏은 사람을 잡았다. 어떤 감정을 가진 이에게 화내고 싶었다. 그래도 날 너무 싫어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저 내 어리석은 분노는 믿지도 않는 신에게 바치는 것임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나와 싸우지 않았으면 한다. 갈등의 원인은 나지만 갈등이 일어나지 않았음 한다.

651 이름없음 2022/10/28 05:41:47

허상 유리 발레

652 이름없음 2022/10/29 01:17:26

아버지는 해외에 출장을 갔다 오시면 항상 오르골을 사왔다. 어린 나는 질릴 법도 했지만, 그저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가 건넨 선물이기에 항상 아무말 없이 받아 기뻐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내 방에는 언제나 기본 하나의 오르골이 탁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런 오르골 중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유리로 만들어진 발레리나 오르골, 투명한 그 발레리나는 발끝의 그 곡선, 손끝의 손톱까지도 섬세하게 표현되어 햇빛이 들면 반짝반짝 빛나는 피루엣을 보여주었다. 그 탓일까 내가 발레를 시작해버린 건. 발레는 나를 그 유리 발레리나처럼 만들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행복하고 아름답게. 근데 이게 뭐지? 나는 그 오르골을 집었다. 아버지가 날 위해 사왔다고 생각한 오르골, 그래서 이와 비슷하게 되고자 시작한 발레까지,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 나의 망상이었고, 착각이자 허상이었다. 아버지는 바람이 났다고 한다. 발레리나 무용수와. 어머니는 그 사실에 앓다 못해 나의 매달림에도 결국 집을 나갔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후, 아버지는 대놓고 그 발레리나의 사진을 보여주며 나를 그 사람에게 맞추려고 했다. 너와 같은 발레를 하는 사람이라며 이쁘지 않냐고. 어리석은 아버지. 짚었던 발레리나 오르골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우아하고 곧게 서있던 겉모습은 그 충격에 산산조각이나 그 속의 날카로운 조각들을 드러냈다. 아버지는 그때도 그랬을까? 내가 기쁘게 받는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집에 남겨진 우리를 내버리고 속으론 그 발레리나를 생각했을까? 발레는 아버지의 허상이다. 본인과 그녀의 관계를 사랑이라고 예쁜 모양으로 감싸고 싶어하는 역겨운 허상. 나는 바닥에 산산조각난 그 조각 중 하나를 쥐었다. 주변에 널부러진 조각에 나 또한 생채기를 입었지만, 또 이 조각으로 상처를 입겠지만 여기서 멈출 생각따위는 없었다. 어차피 내 안에 유리 발레리나는 산산조각나 사라져버렸다. 그의 허상 또한 내버려 둘 수야 없지. 발레는 나의 것이다. 그의 더럽고 추잡한 허상따위가 되게 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손에 생긴 상처를 무시하고 방을 나섰다.

653 이름없음 2022/10/29 15:54:52

격리, 나무, 쌍둥이

654 이름없음 2023/07/28 01:21:22

그 쌍둥이는 마을에서 제일 오래된 나무 앞에 버려졌다. 그것은 완전한 격리이자 철저한 배척이었다. 나무 밑 아이들은 울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자신을 잘 알고있었다. 그들은 절대 자연에게 죽을 수 없다. 그들에게 자연이란 위험한 것이 아니라 고향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태생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인간의 몸에서 태어난 바람이었다. 감히 한낮 인간이 품었다기에는 거대하고, 또 찬란한 대자연. 그것은 결국 하나를 둘로 만들었고, 쌍둥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655 이름없음 2023/07/28 18:58:14

관계역전.대체역사.대한제국

656 이름없음 2023/07/30 05: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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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7 이름없음 2023/07/30 14:50:19

별 바이올린 발자국

658 이름없음 2023/08/10 05:32:55

그 별에서 살인 사건이 났다. 살해 도구는 바이올린이었고, 발자국은 남아있지 않았다. 피해자는 나였고,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그리고 범인은 너였다.

659 이름없음 2023/08/10 07:31:55

짝사랑, 정복, 대저택

660 이름없음 2023/08/10 07:47:33

혜진이를 마음에 두는 일은 쉬운 적이 없었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입장에 할 소리는 아니다, 나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렇기에 공부는 내팽개치고 그 어려운 짝사랑을 하는 것이다. 우리 반 1등 정숙아, 미안하지만 공부보단 한 사람한테 정복당하는 것이 더 힘든 것 같아. 게다가 내가 원한 일도 아니야. 혜진이를 좋아하는 건 불가피한 일이라구. 이 감정은 마치 불필요하게 거대한 대저택 같아. 그곳이 가득 채워질 일은 절대 없겠지만, 뭐, 그게 짝사랑이지.

661 이름없음 2023/08/10 09:51:48

황혼 덧없다 기원

662 이름없음 2023/08/10 15:19:19

나는 황혼처럼 타오르는 여자의 인생을 목격했다. 옆집에는 항상 남자와 여자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이는 30대 정도로 추정한다. 부부 사이에 아이는 없었다. 그게 불행 중 다행인 점이었다. 저런 환경에서 아이까지 있다면 그야말로 재앙이다. 나는 매일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그런 옆집의 부부가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문을 두드린 건 딱 한 번 뿐이었고, 그것마저 무시 당하는 바람에 얼굴을 직접 마주친 적은 없었다. 강의를 듣다가 조금 쉬어볼까 하고 나온 그날에 여자와 딱 마딱뜨렸다. 아파트 난간 아래로 떨어질 듯이 몸을 내밀고 아래를 내려다 보는 그 여자를. "저기요." 그 장면을 보고 지나치기란 보통의 사람으로선 무척 어려운 일이었으리라. 잠시 굼뜨게 내 말에 반응한 여자의 얼굴은 무척 초췌했다. 요즘 들어 싸우는 횟수가 늘어난다 싶더니 여자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이거 드실래요?" 편의점에 갔다가 오는 길이라 간단한 요깃거리가 들어 있었다. 그중 요플레를 꺼내 건넸다. 여자는 잠시 그것을 멀거니 보다가 받아갔다. 아무 말도 없었다. 나도 더 거기서 있기에 무안해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문을 닫기 직전 여자가 작게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던 거 같다. 그 후로 나는 옆집 싸움 소리를 조금 더 신경 써서 듣게 됐다. 주로 여자 쪽에 감정 이입을 해서 말이다. 알고 보니 여자는 흔히 남자의 바람 때문에 화를 내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나처럼 공부에 열의를 가졌고 능력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남편이 인정하지 않고 밖으로 내보내려 하지 않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저런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언뜻 본 여자의 생김새가 제법 아름다웠던 걸 보면 남자도 수완이 좋은 놈일 것이다. 더 나아지려는 사람과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과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 지금 이렇게 공부를 하는 나의 상황. 고개를 들자 쇠창살 밖으로 하늘도 보이지 않고 맞은편 아파트를 봤다. 부질없다. 노력한다고 한들 부족함을 느끼거나 불안함을 느끼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 하지만 그 여자는 정말 예뻤지. 눈그늘 마저도 하나의 예술처럼. 방금 울어 붉어진 얼굴이 황혼처럼 보여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너무 공부만 해서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닐까. 다시 고개를 처박고 수학 문제를 풀어낸다. 그러다 바지런히 움직이는 손을 멈추고 빌어본다. 그 여자가 떠오르는 해가 될 수 있기를. 해가 뜰 수 있게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기를.

663 이름없음 2023/08/10 20:37:07

감자 밀집모자 꿀벌

664 이름없음 2023/08/11 13:18:42

농부는 오늘도 감자를 캔다. 어느날 농부는 밀짚모자를 쓰며 혼잣말을 했다. "꿀벌이 꽃에 앉아있는걸 보니 봄이 왔구먼"

665 이름없음 2023/08/12 19:42:46

미움, 사랑, 영원

666 이름없음 2023/08/14 10:56:07

"당신이 미워요." 어느 무더운 여름날, 나는 먼 창밖을 주시하며 그리 말했다. 노을빛에 물든 얼굴. 조금 바란 듯 공허한 눈빛. 창백한 피부와 매마른 입술마저 사랑스럽다 말하는 당신이 밉다. 난 다 포기했는데, 끝까지 내 손을 붙잡고 함께 해달라며 흘리는 당신의 눈물이 원망스럽다. 이젠 전부 필요 없어졌는데. 모두 비워버렸는데. 찬란했던 우리의 추억부터 빛바랜 기억까지 전부 저 먼 어딘가에 묻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기어코 다시 꺼내 내 손에 쥐어주는 당신이 죽도록 밉고, 원망스럽다. 그리워한들 그때로 돌아갈 수 없는데, 자꾸 우리의 모든 게 영원하길 바라는 당신의 지독한 욕심에 숨이 막혀온다. 무엇보다 싫은 건, 당신의 그 무구한 사랑에 절대 보답해줄 수 없는 나 자신이었다. 영원히 동등하지 못할 우리의 사랑이 밉고 또 미울 뿐이었다.

667 이름없음 2023/08/14 11:03:26

늦은밤, 꽃, 분노

668 이름없음 2023/08/14 15:59:17

"그런데, 그것도 맞지 않아요?" 잠옷 차림의 J가 입을 열었다. "아니지. 그걸 맞다고 하는 순간 너는," 창가에 서있던 나는 화분의 꽃봉오리를 으스러뜨렸다. "여기 살 자격이 없어지는 거야. 이해 돼?" J는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듯 거실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화가 가시지 않은 듯한 내 얼굴을 보고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669 이름없음 2023/08/14 18:10:30

우쿨렐레 기묘 자각몽

670 이름없음 2023/08/17 13:49:14

우쿨렐레 전공을 하고 유학까지 갔다온, 그야말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온 나에게는 고민이 있다. 매주 화요일 새벽 2시 34분이 되면 끔찍하고 기묘한 자각몽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671 이름없음 2023/08/17 13:49:56

박스,파랑,기괴

672 이름없음 2023/08/18 16:19:13

한적한 길가에서 발견한 빈 박스. 그 속에는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파랑색 플라스틱 오리 장난감이 있었다.

673 이름없음 2023/08/18 16:19:59

공원, 고백, 매미

674 이름없음 2023/08/19 17:12:18

고백을 했다. 너와 어울리는 곳은 동네 공원 따위가 아니라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같이 반짝거리는 곳이겠지. 한낮의 뜨거운 햇빛은 은은한 조명보다 보잘것 없는 나를 더 적나라하게 내리쬘 것이고, 매미의 제 짝을 찾아 기약없이 고하는 울음소리는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클래식 음악보다 값싸 보일게 분명했다. 시선이 마주한다. 네 눈동자가 기대를 품고있는 것처럼 보였다면 당연 내 착각일테다. 나는 너 오래보고싶어, 처음 봤을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 너는 어때? 그 흔한 좋아한다는 말 없이 짤막한 문장들을 늘어놓은 뒤, 시선을 슬며시 옆으로 옮겼다. 네 눈빛이 어떨지 궁금했지만 보기 싫었다. 마주하지 않는다면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여길 수 있으니까. 이왕 차일거 속편하게 제대로 차였으면. 마지막까지 나는 이기적이어서 이다지도 초라한 고백을 네게 던졌다. 받을테면 받아보라는 심산이 아니라 네가 설령 놀라 흠칫 몸을 피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합리화하기 쉽게끔. 간만에 서늘한 바람이 끼쳤다. 네 입에서 떨어진 말은 나도, 였다. 시끄럽게 울던 매미소리가 뚝 그쳤다.

675 이름없음 2023/08/19 18:03:24

연꽃, 연못, 여름

676 이름없음 2023/08/19 20:51:11

어느 여름날, 연꽃이 아름답게 피어 연못 한자리에 우두커니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자리를 떴다. 그날의 광경은 아직도 눈에 아른거렸다.

677 이름없음 2023/08/19 21:02:57

죽음, 고통, SNS

678 이름없음 2023/08/19 22:10:57

나는 범죄자가 아니다. sns에서는 누군지 다 친하게 사귀는 나는 최근 인터넷친구를 초대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자신을 인질로 협박을 하곤 했었다. 어느날은 내 앞에서 실시간으로 자해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 친구는 나에게 협박이 먹히지 않자 장갑을 끼고 "내가 너무 심했었나봐 미안해" 라고 말하였다. 친구는 나에게 과일을 잘라달라고 했고, 나는 맨손으로 수박을 잘랐다. 친구는 칼을 나에게 돌려달라고 했고, 나는 칼을 친구에게 주었다. 그리고 친구는 장갑을 낀 손으로 칼을 잡아 가슴을 찔러 자살했다.

679 이름없음 2023/08/19 22:12:45

조직 전쟁 부패정부

680 이름없음 2023/09/08 14:46:48

'부패 정부가 생겨나면 반란을 도모하는 조직도 생겨난다' '한 번 뇌리에 박힌 사상은 한쪽이 망하기 직전까지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이 두가지 사실은 불변의 진리이다. 한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부와 반란군 사이의 전쟁을 평화롭게 마무리하기 위한 협상 자리에 나온 네가 정부 쪽 입장을 대변하는 자리에 앉기 직전까지는.

681 이름없음 2023/09/08 16:08:50

디스토피아 가이노이드 청소

682 이름없음 2023/09/10 14:08:42

[ ... 니다. 반복합니다. 신원 확인 중이니 신분증을 제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시민 여러분들께서는 통제에 따라주시고 ... ] 아나운서처럼 정확한 발음 사람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만큼의 쇳소리 부드러운 암갈색 눈동자에 담긴 것은 적외선 카메라 삐이 울리는 경고음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고 당신에게 자백제가 투여될 것이며 당신의 모든 행동이 법정에 사용됩니다 삐이 삐이 삐이 나는 그 여자애를 인간이라고 생각했어. 87년생이라기엔 나이가 있어 보였지만 고생한 흔적이라고 여겼지. 공장에서 찍혀나와 정부로 납품되는 눈가 주름에 속아서 이제 나는.... XX07년 신원미상 밀입국자 한 명이 국경에서 자동 방어 로봇에 의해 죽었다.

683 이름없음 2023/09/10 15:02:07

백야 나그네 소금사막

684 이름없음 2023/09/19 20:10:55

"여기가 바로 소금 사막이로구나." 백야의 하늘 아래에 소금 사막이 반짝 빛나는 곳. 바로 그곳에 한복 차림의 남자가 여유롭게 뒷짐을 진 채 한참 지평선 너머를 바라봤다. 그 모습은 어딘가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아는 양반집의 그가 당최 왜 이런 곳에 있는 건지 그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 할 것이다. 사막에 대한 지식도 제대로 없는 남자이니 이런 사막에서 한복을 고집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으리. 그만 갓을 벗으시지요." 노비로 보이는 자가 조심스럽게 권한 말을 선비는 단호하게 무시했다. "그래. 얼마나 더 걸어야 이 사막의 끝을 볼 수 있느냐." "적어도 오늘은 아닐 겁니다." 노비 치고는 대담한 발언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선비는 화를 내지 않았다. 다른 선비들이 겉치레만 그럴 듯하게 하는 것에 비해, 이 선비는 그야말로 유교 사상에 잡아 먹힌 자였기 때문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화를 내거나 서두르는 법이 없는 남자였다. "그래. 어떤 일이든 서두르면 망치는 법이니. 천천히 가자꾸나." "주인님. 천천히 하는 것도 좋으나, 그 전에 죽어버리면 끝을 볼 수가 없습니다." "크흠. 크흠. 크흠!" 남자는 헛기침을 연발하며 이만 닥치라는 말을 우회해 알려왔다. 노비는 이럴 때의 남자를 더 건드려 봐야 대화가 통하지 않음을 오랜 경험으로 알아 더 이상 상식을 권하지 않았다. 다만 노비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러다 시체가 둘이 되지.' 이미 그들은 시체 하나를 짊어지고 이 사막을 횡단하는 중이었음이다. 그렇다. 이 고지식한 선비는 애꿎은 조선에 표류하게 되어,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 하게 된 노비의 주인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노비를 가엾게 여겨, 죽은 후에는 고향에 다시 데려다 준다고 약조했음이다. "허어. 얄궂도다. 이런 곳이 그리워 그렇게 매일 투덜거리던 놈의 말을 들어 사막이란 곳이 어떤 곳일까 했으나, 그리 살만한 곳이 안 되는구나." 노비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말대로 이곳은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래도 참 아름답지 않으냐." 노비는 땀에 절은 몸과 심한 모래바람 사이에서 저 혼자 시체라는 짐을 짊어지고 가는 처지를 보며 속으로 분개했다. '나으리는 이런 상황에서 풍경이 보이십니까? 풍경이!" 남자는 씨익 웃으며 이런 더위에서도 부채를 펼치며 빙긋 웃었다. "참으로 아름답도다. 죽긴 죽더라도 이 풍경을 화폭에 담고 가야 할 성 싶구나." 노비는 울분을 삼키며 고분고분 그의 붓자루를 내려왔다. 누가 뭐라 해도 지금 자신이 섬기는 선비는 조선 최고의 선비였다. 그것은 노비 또한 인정하고 존경하는 바였다. 그러니 이런 생명을 거는 곳까지 따라와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으리. 이만 갓을 벗으시지요. 여기서는 선비가 아니라 그저 나그네로 충분합니다." 그제야 선비는 처음으로 노비의 말을 듣고서 고개를 돌렸다. 노비는 그런 선비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를 돕는 것이 이를 데 없이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래. 네 말도 맞다." 남자는 갓을 벗고서 넓고도 넓은 사막을 다시 건너봤다. "그림은 나중에 이 길을 다 횡단한 후에 그려도 괜찮겠지. 너에게 이 이상 걱정시키는 것도 미안하고." 무엇보다 노비가 가장 좋아하는 점은 이런 것이었다. 고작 종놈의 울화를 풀어주기 위해 이런 사막에 오고, 고작 종놈인 자신을 위할 줄 아는 선비. 노비는 결코 자신의 주인을 미워할 수 없었다. 비록 이런 사막에 와서 붓을 꺼내들려고 할 정도로 현실 감각이 없는 자라 할지라도.

685 이름없음 2023/09/19 22:37:24

쌍둥이 거울 장례

686 이름없음 2024/05/12 03:22:26

일란성 쌍둥이였던 우리는 다른 일란성 쌍둥이들 보다도 유난히 닮은 구석이 많았다. 쌍둥이라기 보다는 서로가 서로의 복제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똑같은 기장의 단발머리였던 우리는 이따금 어릴 적 사진을 찾아볼 때면 우리 스스로도 누가 나고 누가 너인지 구별하지 못 할 정도였다. 사실은, 굳이 나와 너를 구별짓지도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한 몸 같았으니까. 뱃 속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시절부터 쭉 서로가 곁에 있었다. 이따금 거울 앞에 서면 너와 구별할 수 없는 내가 있었다. 우리는 외모도, 키도, 단발머리도 같았으니까. 목소리도, 말투도, 성격도 닮았으니까. 네 장례를 치룬 지 30여일이 다 되어가는 오늘은 할로윈 데이였다. 영어 학원에서 받아 온 한 움쿰의 사탕과 초콜릿들 중 아무거나 손이 먼저 가는 것을 하나 씩 집어 먹으면서, 작년의 할로윈 데이 때 총 두 움쿰의 사탕과 초콜릿들을 둘이서 나눠먹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애는 초콜릿을 좋아해서, 받아 온 사탕과 초콜릿들을 모두 모아 분리한 뒤 나는 사탕을 먹고 그 애는 초콜릿을 먹었었다. 먹으면서 나눴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잡담들을 모두 기억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애가 했던 한 마디가 기억난다. 할로윈 데이는 망자들의 날이래. 내가 물었다. 그럼 망자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인건가? 일어나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 단발머리 소녀가 있다. 그 소녀가 너인건지, 나인건지, 네가 정말 날 찾아 온 건지 구별할 수 없다. 그저 오래도록 거울 속 누군가와 눈동자를 맞출 뿐이다. 이상하지, 우린 두 명이서 한 몸이었는데 이젠 나 혼자만 남았다는 게.

687 이름없음 2024/05/12 03:28:06

고래 질식 소년

688 이름없음 2024/05/13 14:17:12

그저 평범한 날이었다. 기대하던 수학여행 날이었다. 친구들과 설렌 마음으로 배에 올라탔다. 중간에 배가 흔들리기는 했지만 배는 평화롭게 나아갔다. 불이 꺼졌다. 배가 흔들렸다. 배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지시에 따라 가만히 앉아있었다. 늦었다. 선생님이 내리라고 소리쳤다. 안됬다. 올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자꾸만 미끄러졌다. 물이 차올랐다. 숨이 막혀왔다. 질식사 할것같았다. 눈이 감겼다. 엄마가 보고싶어...............세월호 당시 실종된 한 학생의 유해가 ㅇㅇ해수욕장에 떠밀려온 고래 뱃속에서 발견되어............

689 이름없음 2024/05/13 14:18:00

자녀 그리움 죽음

690 이름없음 2025/08/12 13:56:15

그립지 않은 죽음은 있으나 죽지 않는 그리움은 없다고 합니다. 이 가슴에 메아리치는 서러운 떨림도, 사무치는 원망도 언젠가 사라지는걸까요? 그토록 품을 탐하던 자녀들이 부모의 은덕을 싸그리 잊듯, 그대가 내어줬던 사랑 기쁨 평온 그 모든 것을 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죽어보지 못했기에, 그리움만 알고 있기에. 자녀를 가져본 적 없이 자녀만 되어보았기에.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알 수 없을지도 모르지요. 부모 없는 자녀가 나오고, 죽음 없는 생이 나올 특이점이 도래하지 않는 이상은.

691 이름없음 2025/09/12 20:56:45

혜성 톱밥 은혜

692 이름없음 2025/10/08 09:04:30

밝지도 활발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특별할 게 없는 여자아이. 나는 그 애를 주로 혜성에 비유하곤 했는데, 그러면 늘 의아한 시선이 따라붙는다. 얼핏 보기에 빛나는 구석이라곤 조금도 없는 아이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 애 옆을 나는 늘 한 발짝, 딱 그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하며 맴돌았는데, 그러면 어김없이 뒷말이 떠돌곤 했다. 갚을 은혜가 있다든가, 빚을 졌다든가, 뭔가 약점이라도 잡힌 것 아니냐고. 왜 하필 혜성이었는가? 혜성은 스스로 빛을 내지 않는다. 나는 그 애의 주파수를 기억한다. 그 진동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구석이 있었다. 알아본다면 누구든 혜성이라 부르지 않곤 못 배길 텐데. 어쨌든 그 애와 친하게 지낸 애도, 혜성이란 별명을 붙여준 애도 나뿐이었음은 명백하다. 자책한다. 어쩌면 그렇게나 일찍 사그러든 것도 그 때문은 아니었을까. 내가 지어준 별명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운명에 간섭한 것이 아닐까 하고. 그 애는 열아홉 봄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남겨진 자리에 후회는 톱밥처럼 쌓여간다.

693 이름없음 2025/10/08 10:56:17

달팽이 자동차 유전자

694 이름없음 2025/10/17 11:57:32

달이 돌아가는 속도는 팽이처럼 빠른데 이 밤 느린 발길 끌고 저는 어디에 갑니까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동화처럼 아름다운 그러나 희뿌연 추억 차창을 따라 빠르게 지나가고 유품처럼 남은 것은 다만 전심 전력으로 변해가는 모든 것을 좇는 자신

695 이름없음 2025/10/17 11:58:46

바보 꿈 낙엽

696 lemonlight 2026/01/06 19:20:33

바보인 나는 즉 떨어지는 낙엽과도 같은 것을 웃으며 좋게 받아들이는, 흡사 비 온 후의 '페트리코' 인 것을 알아주는 이 하나 없다는 것을 아이야 너는 아느냐? 그런 바보의 이메퍼럴한 행복을 애오라지 반의반 만큼이라도 누리고 그에 만족하는 것이 나의 꿈인 것을 아이야 너는 아느냐? 그런 것이 진정 멜리플루어스하다 할 수 있는 즉, 꿈인 너이고 나이다.

697 이름없음 2026/01/07 04:46:29

신곡 별 사랑

698 이름없음 2026/03/09 22:22:51

있지, 네 이름으로 곡을 썼어 사랑이라고 적고 너라고 읽는 제목의 노래. 여름별도 사랑을 듣는걸까? 영원한 신곡의 딜레마 쌓여버린 별무리의 이름은 사랑

699 이름없음 2026/03/10 00:03:57

유령 흐려짐 흰꽃잎

700 이름없음 2026/03/14 06:27:59

나는 유령 같은 사람이었다. 어디에 있어도 아무도 보지 못하는 사람. 눈 앞이 흐려질 때면 이 꽃집에서 흰꽃잎을 세어보고한다. 꽃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에.

701 이름없음 2026/03/14 12:29:02

동경 동결 동기

702 이름없음 2026/03/14 21:58:14

오늘 나는 벼르고 벼르던 일을 실행에 옮겼다. 새벽같이 일어나 말끔히 씻고, 미리 준비해두었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어색하게나마 머리손질을 하고 거울을 바라보며 동경하던 이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따라해보았다. 완벽하지 못해도 이정도면 되었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붐비는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갈아타며 목적지를 향해간다. 창밖을 바라보면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차림으로 출근길이 바쁜것이 눈에 들어온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문득 동기의 우스겟소리가 머릿속을 지나쳤다. 너는 평생에 그런 옷차림을 안할것 같다고 했었던가. 숨막히는 각진 정장차림에 행여라도 옷이 구겨질까 허리를 세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무슨 말을할지 짐작이가 작은 실소가 입가에 스쳐간다. 동결된 시간속에 머무는 이들이 지금 무어라고 할 지 짐작갈만큼 그 색체가 뚜렸하던 이들이었다. 오늘 드디어 보러가는 길이다. 그동안 다잡지 못한 마음을 추슬렀고 동경하는 이의 표정을 방패처럼 앞세워 꼴사납지 않길 바란다. 오랜만이다. 늦게 와서 미안해.

703 이름없음 2026/03/19 18:56:08

사람, 사랑, 희망

704 이름없음 2026/04/27 10:03:41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사람을 이어주는 어느 인연신의 당부 내가 지금 부터 들려줄 이야기는 어느 인연신의 관한 이야기야 아주 먼 옛날 한 인연신이 있었어 사람에게 인연을 선물한다는 인연의 신이였지 하루는 인연의 신이 연못을 둘러보다 한 부부의 모습을 보게돼 그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었어 늘 아기를 가지는 걸 소망했지 부부는 1000일이 되도록 매일매일 빠지지 않고 같은시간 같은 장소에서 빌었어 제발 제발 인연의신님 저희에게도 아이를 주세요 라고 말이야 인연은 신은 그 부부의 정성을 기쁘게 여겨 아이를 주었지 그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어 그 아이가 20살이 되던 해 마을에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어 가뭄이 들어 땅은 갈라지고 물은 점점 부족했었어 그래서 사람들은 하늘신에게 빌었지 부디부디 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말이야 그러나 우습게도 응답은 없었지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서 유명한 무당을 불러내 그 무당이 말하길 20살의 여자 중 하나를 골라 마을에 인연신에게 바치면 물이 다시 나올 거라는 말을 했지. 사람들은 20살 처녀를 인연신에게 바쳤지 그러나 마을에 비는 커녕 점점 사람들이 굶어죽거나 가뭄으로 이사를 해 인구 수만 줄어들기 시작했어 차례대로 가다보니 어느새 20살 여자는 한명 밖에 남지 않았어 그 아이가 바로 덕수길 마을에 자랑 이홍아 였어 홍아는 어쩐일인지 울지도 웃지도 않았어 되게 담담했지 마치 이일이 일어날 것임을 안다는 듯 그리 무서워 하거나 혹은 두려워하지 않았어 그 모습은 마치 기백은 호랑이의 기백이지만 속은 푸른 늑대의 모습처럼 오직 담대하고 호수의 물보다 투명하고 또렷했지. 어찌되었든 마을 사람들은 홍아를 위로하며 가마에 홍아를 태웠어. 홍아는 굽이굽이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마침내 인연의 신을 만났어 인연의 신의 하녀로 들어간 그녀는 그때부터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했어 온갖 잡일은 그녀가 맡았지 햇수로 3년동안 홍아는 인연의 신 밑에서 온갖 잡무를 맡았지 그리고 또 햇수로 5년동안 온갖일들을 총괄 했어. 인연의 신이 8년뒤 어느날 홍아를 불렀지 홍아야 이리오거라 라면서 말이야 홍아에게 붉은실 흰실 푸른실 검은실 초록실 분홍실 여러 실을 보여주며 물었어 "이 실이 무엇으로 보이느냐." 홍아는 담담하게 대답했어 이 실은 모든 삶의 인과율을 나타내는 실이네요 라고 말이지 만족 스러운 대답을 들었던 걸까 인연의 신은 마침내 그녀를 자신과 똑같은 인연의 신으로 만들어줬어 그리고 말했지. 네가 보는 모든 실들을 하나의 희망과 사랑으로 이어보렴 인연의 신이 말하자 그녀는 실을 잇기 시작했어 일찍이 과부가 된 여인과 옆마을에 듬직한 총각을 말이야. 인연의 신이 말했어 참 보기 좋게 이었구나 하며 홍아의 머리를 쓰다듬었지 지금도 홍아는 인연의 신과 함께 사람들의 인연을 잇는다고 전해지고 있어

705 이름없음 2026/04/28 01:06:28

후련함 나비 별

706 이름없음 2026/06/29 12:48:09

그 나비는 발발발 떨리는 더듬이를 푹 진흙에 꽂아버렸다. 인간들의 밭에 가지 말라했던가. 다리는 옹송그레 휘어지고있고, 눈은 이대로 흔들흔들 거리다 팡! 깨져 지면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것만 같았다. 끝이다. 나비는 나비로서 끝을 맺는다. 그래도 알에서 깨어나 애벌레를 지나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었으니, 삶은 다 산 것이다. 아아, 알까지 낳았지. 본 나비는 삶의 모든 것을 끝냈으며, 이 이상의 소망은 과욕이고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이 되겠지. 그래. 언젠가 저 별처럼 높이높이 날아 번쩍번쩍 빛나는 것 따위 할 수 없는 것이다. 알고 있었잖아. 그러니 만족한다. 후련하다. 웃자. 하하하. 나비는 성대가 없다. 그러나 열심히 진동하는 날개가 만든 소리가 지나가던 이에게는 웃음처럼 들렸을지 모르며, 휘어지는 허리가 박장대소하는 몸짓처럼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야!

707 이름없음 2026/07/02 02:49:49

가습기, 포로리, 중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