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된 일이긴 한데 오늘 본 웹툰이 고시원 이야기라서 문득 생각난 김에 풀어보려고. 들어볼 사람 있어?
고시원에서 겪었던 소름돋는 일
일단 풀어볼게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기숙사에 떨어지면서 고시원에 들어간적이 있어. 자취를 하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들었고 하숙은 방이 다 찼었거든. 입학 전에 알게 됐던 선배가 고시원에서 지내는 애들도 꽤 있고 나쁘지 않을거라길래 가격도 싸고해서 들어갔어.
>>2 >>3 고마워! 재미없을지도 모르지만 열심히 풀어볼게
처음에는 주인아주머니가 우리학교 이름을 듣더니 몇명 지냈었다고 하면서 되게 친절하게 챙겨주셨어. 나 못일어날 것 같다니까 매일 아침 모닝콜도 해주셨다..ㅎㅎㅎㅎ
근데 고시원이라는게 아무일이 없어도 사람을 점점 갉아먹는 것 같아. 방은 딱 침대 두개 들어 갈 수 있는 공간이고 그 절반은 침대가 있었어. 그리고 방음이 얼마나 안 되냐면 옆사람 코고는 소리, 알람소리가 바로 내옆에 있는 것처럼 들려. 고시원 밑에는 노래방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도 다 들릴 정도야. 술마시고 와서 그런지 다들 못 부름ㅇㅇ 일단 이말을 하는건 그 생활중 내가 많이 예민한 상태였을거라는거야.
>>8 그 웹툰맞아ㅋㅋㅋㅋㅋ
밤 11시 정도가 됐는데 옆방 사람이 영어단어를 말했어. 검정은 블랙! 검정은 블랙!, 불끄기는 테이크 오브!, 잠들다 슬립! 하면서 또박또박 단어를 외우는거야. 한단어당 열댓번 반복하고 조용해지더라. 아마 그 사람이 창문이 있는 제일 끝방에 나랑만 방이 이어져있고, 내 침대도 그 방쪽이어서 나한테 더 잘 들렸던 것 같아.
원래 한번 잠들면 잘 안깨고 이어폰 끼고 자는 버릇이 있어서 큰 문제삼지는 않았어
처음에는 어떤 아저씨가 뒤늦게나마 공부를 하시나보다 했지. 나이들어서 공부하시는 분들 요즘은 꽤 흔한편이니까. 근데 각종 색깔을 외우다가 늘 불끄다와 잠들다로 마무리하시던 분이 어느날 갑자기 듣다 리슨, 듣고 있어? 알 유 리슨? 을 반복하는거야
문장을 외우는 것도 처음이었고 찔리는 것도 있었고 놀라서 바로 이어폰끼고 잤다.
그 다음날은 듣고있어? 알 유 리슨? 반복하다가 학교는 스쿨 과 학생은 스튜던트를 반복했어. 그냥 단어가 바뀌고 문장도 시작하셨네 정도였던 것 같아.
그 다음날에는 오전은 에이엠, 여덟시는 에잍 오클락을 반복하더라. 그때부터 조금 무서워지기 시작했어. 등교할 때 8시에 나가면 바로 버스가 와서 거의 비슷한 시간으로 방을 나갔거든.
그 다음 날에는 방에 친구를 데려갔었어. 과자도 먹고 음료수도 마시고 조용조용 수다떨다가 돌아갔던 것 같아. 그 날 밤에는 친구는 프렌드! 오다 컴! 이 반복됐지.
이 때 무섭다는 느낌이 확 들었던 것 같아. 우연이라고해도 너무 소름돋을 정도로 내 상황과 비슷했으니까
아침이 되고서 주인아주머니께 옆방사람이 너무 시끄럽다고만 말하면서 다른 빈 방없냐고 물어봤어. 아주머니가 아직 빈방은 없고 나오면 제일 먼저 알려주겠다고 한 다음 옆방아저씨한테는 자기가 조용히하라고 잘 말해주겠다고 하셨어.
그 날 밤은 말하다 세이, 말했어 두 유 세이? 더라. 소름이 확 끼치면서 가방에 교복을 쑤셔넣고 겉옷 걸친다음 제일 가까운 곳에서 자취하는 친구한테 갔어. 친구한테 말하면서 울다가 잠든 것 같아
잠깐 저녁 좀 먹고 올게!
>>22 >>23 맛있게 먹고 왔당 >>24 그니까ㅠㅠㅠㅠ 날 지켜보고있다는 느낌이 너무 무섭더라. 막상 그 사람을 바깥에서는 한번도 마주친적이 없어
참고로 고시원이 아침~낮에는 아주머니가 사무실에 계시면서 관리하시고 저녁~새벽까지는 남편분이 사무실에 계시면서 경비 겸 관리를 하셔.
학교 끝나고서 아주머니한테 전화를 걸어서 옆집아저씨 이야기를 다 하고 무서워서 못 살 것같으니 방을 빼고싶다니까 한번 오늘 밤에 방에 같이 있어보자고 하시더라. 내 말을 제대로 믿어 줬으면 하는 것도 있고 직접 듣고나면 더 빨리 뭐라도 대처해주시지 않을까 싶어서 알겠다고 했어
그 아저씨가 아주머니 오시는 거 듣고 아무말도 안할까봐 그냥 11시즈음에 예비키로 조용히 들어와달라고 부탁했어. 솔직히 아주머니 입장에서는 평범한 아저씨였을테니 여기서 눈치채고 아무말도 안하면 나만 이상한 애가 되는거잖아
11시가 다 되어갈 때 아주머니가 들어오시고 잠시동안 기다렸어. 누구 후! 누구 후! 옆 사이드! 옆 사이드! 친구? 프렌드? 친구 프렌드? 이러더라. 내가 방안에 쭉 있었고 누군가 방에 들어온 상태였다는 걸 알았던거잖아.
아주머니가 듣고서 기겁을 하시더니 남편분을 부르신 다음에 바로 옆방문을 두들겨서 열고 욕을 퍼부으셨어. 그리고 지금 당장 나가라면서 바로 건물밖으로 끌어내셨어. 나는 도저히 그 방에서 못잘것 같아서 친구집으로 갈 준비를 했지.
아주머니는 오늘은 내보냈으니 안심하고 자라는데 어떻게 잠이 오겠어.. 바깥으로 쫓겨난 아저씨랑 마주칠까봐 친구한테 전화해서 근처까지 와달라고 빌다시피했던 것 같아.
다음날 아주머니께 연락이 왔어. 그 사람은 짐 싸서 내보냈고 이제 곧 계약이 끝나가는 사람이 있으니 며칠 뒤면 3층으로 옮길 수 있다는거야. 3층은 남편분이 항상 계실테니 더 안전할거고 더 신경써 주신다길래 주인분들이 너무 친절해서 믿고 계속 지내기로 했었어. 일단 위험한 사람도 당장 나간 상태니까.
일주일정도는 무난하게 지냈던 것 같아. 대신 옮긴 방에 화장실이 없어서 공용 화장실을 사용했어야 했다는거 빼면말이야.
샤워실과 화장실이 같이 있고 남녀 공용이어서 되게 부담스러웠어. 불투명한 유리칸막이 이기는한데, 샤워실유리가 실루엣이 비치는 약간 반투명 유리였거든.
샤워중에 누군가 화장실쓰러 들어오면 되게 불안했어. 샤워실 바로앞에도 남자소변기 하나가 있는데 그래도 누가 샤워중이면 거긴 안써주더라. 근데 어느날부턴가 샤워중일 때 앞에있는 소변기 근처로 실루엣이 비치기 시작하는거야.
몇번은 왜 굳이 거길 쓰지...? 하는 불쾌감이었는데 며칠이 계속되도록 내가 한창 샤워중일때 기웃거리다가 사라지더라. 찝찝해서 아주머니께 샤워실 있는 방이 나오면 옮기고 싶다고 연락을 드리고 최대한 사람이 없을만한 시간에 씻게됐어. 주로 학교끝나자마자 였던 것 같아.
너무 졸린 관계로 잠시만 졸다올게...
늦어서 미안해. 돌아왔어!
불투명 유리 보면 알겠지만, 건너편에 무언가가 있다는 희미한 실루엣이었다가 가까워질수록 엄청 또렷해지잖아. 하루하루 그 실루엣이 또렷해지는게 느껴지니까 혹시라도 이사람이 진짜 작정하면 큰일나겠구나 싶고, 몰카라도 설치하면 어쩌나 싶었어
결국에는 그 고시원을 나왔는데 나올때까지 그 뒤로 절대 고시원에서 목욕은 안했어. 기숙사 친구들이 도와줘서 기숙사에서 몰래 씻고가거나 친구집에서 놀다가 씻고가면서 버텼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난 민폐덩어리였네 ㅋㅋㅋㅋㅋ
부모님께 말씀드리려고했는데 안그래도 집밖에 있는 자식 이런 소리까지 들으면 얼마나 불안해하시겠어. 그래서 그냥 더 참았던 것 같아. 그렇게 지내는데 나와야겠다고 결심한 사건이 터졌어
나갈 때 알게됐는데 사용자들한테 방키를 주고 예비키를 한곳에 모아서 사무실 바로 앞 서랍에 넣어두시더라고. 그 서랍이 서랍처럼 안생기기도 했고 화분도 위에 있어서 그냥 장식용인가 싶은 곳이었어.
솔직히 그렇게 자물쇠하나 없이 보관한다는거에 충격먹긴했는데 나름 의심도 못해보였지... 3층으로 방을 바꾸고나서 목욕도 고시원에서 안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이상한걸 느끼게 됐어. 방에 누군가 들어온 것 같은 느낌
내가 완전히 고시원을 잠자는 용도로 쓴 이후부터 확 와닿은거라 진짜 언제쯤부터 내방에 들낙였는지는 짐작도 안갔어
처음에는 내가 착각했나? 할정도였는데 돌이켜보니까 다 이상한 것들이야. 아침에 급하게 코드만 뽑고 갔던 고데기 위치가 미묘하게 달라진 것 같고. 분명 충전기를 연결해놨던 것 같았는데 노트북 충전기가 빠져있다던가. 내가 착각했나? 싶은정도 있잖아.
내가 예민해져서 이상한 생각까지 하나보나 했지. 누군가가 들어왔다는걸 제대로 인지한건 스킨로션 위치부터였을거야 이것도 엄청 사소한 부분이긴 한데 내가 절대 헷갈릴 일이 없는거거든. 나는 무조건 스킨-로션-선크림 순서로 거울앞에 올려놓는데 어느날 그 순서가 바뀌어있었어.
주인 아주머니는 방에 문제가 있어서 고치러 들어오실 때만 정확히 언제쯤 들어갔다 나올건지 꼼꼼히 설명해주시고 다녀가신뒤로도 딱 그부분 외에는 변하는게 없었어. 받은 연락도 없는데 하물며 화장품을 건드리실리가 없잖아.
내가 그 동안 되게 눈치보고 스트레스 받는 예민한 상태라거 했잖아. 그때는 그 상황이 너무 무서워서 자기 합리화를 하려고 애쓴것같아. 아 설마 진짜 내 방에 들어왔을까? 내가 아침에 급했던것같은데. 하면서 부인했지. 지금 생각하면 제일 미친짓이지. 내방에 들어올 수 있다는건데 내가 방에 있을 때 그 놈이 들어와서 무슨 짓을 할 줄알고
화장품일은 애써 아니다 아니다하면서 넘겼는데 물건이 하나씩 없어지기 시작했어
>>67 맞아 나도 자취하면서 무서울 때가 너무 많아ㅠㅠㅠㅠ 집이 최고야..
내가 빨랫감을 한 바구니에 모아놨다가 주말이나 학교에서 일찍 온 날 코인세탁소를 가는데 빨래 몇개가 없어지기 시작했어.
기억하기 힘들어보여도 막상 입은건 개수라던가 확실히 뭐가 있어야하는지정도는 알게되잖아. 속옷 개수가 이상하게 적었어
그밖에도 학용품이라던가 화장솜같은 사소한 것들도 조금씩 없어졌어. 며칠에 걸쳐 조금씩 없어지다보니 크게 인지를 못했던 것같아
잠깐 씻고올게.
어느날에 조별과제 준비하느라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있던적이 있었어.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문이 열려있더라. 아무리 내가 덜 떨어져졌어도 문을 안잠그고 다닐리가 없는데
방에 들어가니까 진짜 가관이였어. 방이 완전 쑥대밭이 돼있고 바닥에는 물같은게 뿌려져있어서 양말이 다 젖을정도였어.
방도 전체적으로 난장판이었는데 침대위에 그동안 조금씩 없어졌던 물건들이 다 모여있더라. 뭐였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는데 되게 끈적끈적한걸로 범벅이었어. 약간 물풀느낌 같기도 했어
하필이면 그 때 남편분이 전화통화하신다고 고시원 밖에 계셨거든. 큰 소리가 나면 당장 도와줄 사람은 없고 위험한 상황만 올 것 같았어. 일단 교복이나 가방같이 바로 필요한건 나한테 멀쩡히 있었으니까 진짜 조용히 문도 안닫고 발소리도 안나게 걷다가 신발장있는 현관으로 나오는 순간 운동화는 손에 들고 편하게 신는용도의 슬리퍼만 대충 신고 뛰었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일단 고시원에서 멀리가야 할 것 같았어.
그래도 다행이 골목으론 안가고 번화가쪽으로 왔어. 일단 어디라도 사람 많은 밝은 곳에 있고 싶어서 눈앞에 이마트가 보이길래 들어갔지. 바로 화장실에 틀어박혀서 울면서 부모님께 전화했어. 그동안 말 안해서 미안하다부터 시작해서 너무 무섭다고 주절주절 두서없이 털어놨고 부모님도 만만치않게 멘탈이 깨지셨겠지
너무 부모님이 보고싶기도 해서 지하철타고 본가로 갔어. 진짜 오랜만에 부모님 얼굴을 보는데 말이 안나오더라. 거의 30분은 울기만 한 것 같아.
그 당시에는 이 생키를 잡아서 족쳐버리겠어! 라는 생각보단 그냥 이 모든 일이 내 머릿속에서 지워졌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어. 계속 생각하고싶지도 않고 굳이 그 놈을 잡아야하나? 했던 것같아. 일을 키우고 싶지도 않고 당장 이 상황만 끝나주면 다 좋을 것 같았어 . 그래서 경찰에 신고도 안했고.
그 다음날엔 집에서 학교를 갔고 내가 학교에 있는동안 아빠가 가서 중요한 물건만 골라서 간단하게 짐을 정리하시고 나머지는 다 버렸어. 상태도 멀쩡하지 않았고 찝찝하기도 했거든.
고시원 주인분들께서도 이런 일이 처음이라 굉장히 놀라시고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시더라. 본인들 탓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시원 방세를 모두 환불해주시고 버리려는 물건을 보셨는지 다시 사라고 돈을 더 주셨어.
집으로 와서 아빠가 가져온 짐을 정리하는데 그중에 노트북도 있었어. 내가 노트북을 따로 가지고 다니지는 않았고 딱 방안에서만 썼던거라 당시에는 비밀번호를 안걸어놨어
아 맞아. 주인분들이 계시는데 어떻게 방에 들어왔을까 했더니 아주머니께서 낮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시는 시간이 있다고 하시더라. 재활용품 통이랑 일반쓰레기통 다시한번 확인하고 하시느라 시간이 꽤 걸리는 일이셨대. 그 시간을 이용했다고 생각해
노트북을 열어봤는데 절전모드 상태여서 화면이 켜지고 바로 켜져있던 창들이 떴는데 처음보는 폴더가 하나 열려있고 서른장정도 되보이는 사진들에 내 방 구석구석이 찍혀있었어.
직접적으로 내 모습이 찍힌 사진은 없었는데 그 조그마한 방을 그렇게 자세히 찍고 내 노트북에 옮겨놓을 생각을 했다는게 소름돋더라
카톡은 그전에 사용할 때 실수로 껐다가 나중에 다시 쓸때 로그인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다시 안해놨었는데 덕분에 혹시라도 봤을 가능성은 없었을거야. 제일 다행이었어
한동안 집에서 통학하다가 지금은 그 고시원동네랑은 떨어져있는 곳에서 자취중이얌. 별로 길지도 않고 재미도 없어보이네.. 읽어줘서 고마워♥♥
따로 고시원 생활같은거에 대해서 궁금한거 있으면 물어봐. 내가 아는 선에서는 답해줄게!
>>100 지금 생각해보면 여러 일이 있었을때도 되게 멍청하게 대처헀는데 말짱한거에 매우 운이 좋았지..
>>101 맞아ㅠㅠㅠ 잡아냈어야 했는데 그때 내 정신이 너무 약해져있고 계속 이 일을 언급하는게 힘들던 때라서 부모님들도 그렇고 고시원 주인분들도 내 생각해서 그냥 넘기게 되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