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괴담 2019/03/04 01:06:25

#1 ◆i60rdQsoY1d 2019/03/04 01:06:25

내가 간호사 시절 봤던 한 환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이야기의 진위여부는 여러분이 알아서 판단해주길 바란다. 보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지만 서툰 글솜씨로 써보려고 한다.

#2 이름없음 2019/03/04 01:08:23

그녀를 처음 본 날은 내 아버지 장례식이 끝나고 복직한 다음날이었다. 절대 잊을 수가 없지. 그녀는 정말 예뻤다. 솔직히 환자라고 하면 다들 죽어가는 몰골 혹은 씻지 못해 꾀죄죄한 몰골이지만 그녀는 그런 사람들 틈에서도 빛나보였다.

#3 이름없음 2019/03/04 01:10:53

지금은 간호사를 그만두고 살고 있지만 우연히 발견한 일기장에 그녀에 대해 꽤나 많은걸 기록했기에 여기에 풀어본다. 그 당시 나는 경력이 얼마 없는 신경과 간호사였다.

#4 이름없음 2019/03/04 01:13:30

그녀는 진료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얀 피부에 가슴 언저리까지 오는 검은 생머리에 대체적으로 미인 상에 가까운 여자였다. 처음 그녀를 보고 예쁘단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저렇게 예쁜 여자도 아프구나.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치매에 걸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서 괜히 슬펐다는 대목도 있네.

#6 이름없음 2019/03/04 01:16:54

사실 복직 후 그녀에게 바로 관심이 생겼다거나 흥미가 생긴 건 아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시간이 좀 흘러도 마음이 편치 않기에 입원실쪽으로 부서를 옮기게 해달라고 부탁을 넣었고, 다행이 나랑 친한 수간호사님의 힘으로(사실 빽을 썼다고 보면 된다...) 입원 병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녀를 더 가까이 보게되었다 할 수 있다.

#7 이름없음 2019/03/04 01:20:07

>>5 보고 있다니 고마워. 나는 처음엔 내가 담당하는 플로어 (각 플로어마다 간호사는 기본 3명~5명까지 배치가 된다) 를 돌며 환자들과 인사를 나눴고, 그 다음으로 한 일은 장기 입원 환자를 체크하는 것이였다. 내가 있는 층은 장기 입원 환자가 적어서 그 사람들과 좀 친숙해지면 여유롭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8 이름없음 2019/03/04 01:22:38

그러다가 좀 특이한 케이스를 보게 되었다. 입원한지 1년이나 된 여자가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나이가 꽤나 젊다고 기록이 된다. 특이하게도 그녀는 식물인간도, 뇌사도 아닌 사지 멀쩡한 여자였다. 더 신기한 것은 그녀의 신상이었다. 그녀의 신상은 키와 몸무게, 혈액형 같은 아주 기본적인 신체에 관한 상태뿐이고 보호자나 이름같은 건 적혀있지 않았다. 그저 공백으로 둘 뿐.

#9 이름없음 2019/03/04 01:26:18

그녀의 병실은 503호였다. 그녀는 4인실에서 지내고 있었고, 내가 갔을 때는 1명은 그날 퇴원, 다른 두 명은 밖에 산책중이었다. 그녀는 환자복 위에 뭔가 보풀이 가득 일어나 곧 버릴 것만 같은 상태 안 좋은 검은 가디건을 하나 걸치고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바로 뒷쪽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건 모르는 거 같았다.

#10 이름없음 2019/03/04 01:27:47

그녀가 놀라지 않게 헛기침을 작게 하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조용히 고개만 돌려서 나를 보았고 별다른 말 없이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정말 바라보기만. 대부분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기라도 할텐데 그녀는 그저 두 눈에 나만 담은 채 입은 열지 않아 오히려 내가 더 당황했다

#11 이름없음 2019/03/04 01:29:08

나는 그녀에게 내가 새로 배치된 간호사이며 앞으로 자주 뵐 거 같아 인사 드리러 왔다고 하자 고개만 살짝 숙여 인사를 대신할 뿐 입을 열지는 않았다. 뭔가 찜찜한 마음에 나도 어색하게 그냥 나와 동료 간호사들이랑 대화를 하는 중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12 이름없음 2019/03/04 01:32:47

그녀를 처음 발견한건 그 때로부터 1년전 신고 전화로 응급차가 출동하였는데 그 관할구역이 우리 병원이었다고 한다. 한겨울에 신발도 안 신고 맨발로 밴치에 앉아 뭔가를 계속 중얼거리던 그녀를 행인이 발견해 말을 걸려고 하니 갑자기 픽 하고 쓰러져버렸다고 한다. 놀란 사람들이 119에 신고를 해서 그녀는 우리 병원으로 이송 되었다.

#13 이름없음 2019/03/04 01:33:51

의사들은 발작이나 간질을 염두해서 보호자 동의없이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해봤으나 별다른걸 찾지 못 했고, 그녀는 이틀을 꼬박 잠만 잤다고 한다.

#14 이름없음 2019/03/04 01:36:05

잠에서 깬 그녀는 매우 혼란스러워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본인은 대학생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의사들은 집주소와 보호자를 불러줄 것을 요구했고 여자는 당당하게 무언갈 말하려다가 갑자기 곧 울거 같은 얼굴을 하더니 엉엉 울면서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15 이름없음 2019/03/04 01:38:12

갑작스럽게 쓰러지기도 했고 그녀가 심적으로 불안정한 거 같다고 생각한 의사들은 일단 보류하기로 하고 며칠 더 지켜보자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실종신고같은 게 들어오지 않아 그녀에 대한건 미궁으로 빠졌다고 한다. 그녀는 본인의 나이는 물론, 이름도 몰랐으며 혼자 남겨진 세상에 깊은 불안을 느꼈다고 한다.

#16 이름없음 2019/03/04 01:40:35

하지만 기억은 했을까. 내가 처음 그녀를 보고 느낀 생각은 예뻤다고. 그녀는 정말 예뻤다. 그녀가 걸어다니기만 해도 남자들은 힐끔힐끔 그녀를 보았고 여자들도 그녀의 외모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웃기게도 그녀를 측은하게 여긴 병원 관계자들이 처음엔 돈을 조금씩 모았다고 한다. 그녀를 한 달이라도 입원시켜주자고. 그녀는 기억상실증일지도 모른다고.

#17 이름없음 2019/03/04 01:41:23

잠깐 핸드폰이 과열돼서 좀 뜨거우니 식혔다가 쓰겠다...

#20 이름없음 2019/03/04 02:42:11

아 미안. 잠깐 쉰다고 덮었더니 깜빡 졸았다... 정신 차리고 조금만 더 이어서 쓰고 자려고 한다.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다니 괜히 기분이 든든하네. 기다려줘서 고맙다. 이어서 쓸게. 아무튼 그녀는 그 모금 덕에 입원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가 입원한지 얼마 안 됐을 때 그녀가 이상한 말을 했다고 한다.

#21 이름없음 2019/03/04 02:44:04

그녀는 어느날 일어나더니 침대 해드부분에 등을 기대고 앉아 마치 귀부인 마냥 손으로 박수를 짝짝 치면서 식사를 대령하라고 했다고 한다... 같은 병실에 있던 사람들도 다들 놀라서 바라봤고.

#22 이름없음 2019/03/04 02:46:29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자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고 한다. “뭐냐? 그 얼빠진 표정들은. 가서 일이라도 하지 그러느냐.” 솔직히 이거 읽으니까 생각난건데 이 얘기를 해준 동료 간호사가 그 간드러지는 목소리를 내며 해준게 떠오른다ㅋㅋㅋ 아무튼 좀 명령조로 말해서 다들 어이없어 했다고 한다. 사실 그럴게 입원 후 그녀는 꽤나 평범하게 지냈으니까.

#23 이름없음 2019/03/04 02:48:46

그녀는 계속 박수를 치며 식사를 내오라고 말했으나 그걸 들어줄 사람이 있나... 화가 난 그녀는 자리를 벅차고 일어나더니 같은 병실의 사람들 물품들을 모조리 다 쓰러뜨리고 깨부수며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자신의 밥을 내놓으라면서. 덤으로 하찮은 것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며 발악했다고 한다

#24 이름없음 2019/03/04 02:49:59

그녀는 진정제를 맞고 진정이 되더니 스르르 잠에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깨어난 그녀는 본인이 그런 일을 했다는 기억이 없다고 한다. 여기서 그녀의 상태를 본 의사들은 흥미를 가졌다고 한다. 이건 어쩌면 인격장애라고 생각하게 된 거지.

#25 이름없음 2019/03/04 02:50:36

일단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난 이만 가겠다. 다들 좋은 새벽 보내고 즐거운 3월이 되면 좋겠네.

#48 ◆i60rdQsoY1d 2019/03/04 19:25:01

일이 늦어질 거 같아서 빠르면 새벽 아니면 내일 올 거 같다... 일단 글이 길어질 거 같으니 인코부터 하겠다.

#51 ◆i60rdQsoY1d 2019/03/04 23:45:46

좀 늦었지. 피곤하니 조금만 쓰고 갈 예정이야. 듣는 사람 있을까?

#53 ◆i60rdQsoY1d 2019/03/04 23:49:38

일단 보는 사람없어도 쓸게. 그녀는 한동안은 바깥 풍경을 유심히 보더니 졸기도 하고 일어나서는 다시 창밖만 보는둥 대화는 일절 없이 지나갔다. 나는 좀 고리타분하지만 클래식이나 뉴에이지 음악을 좋아해서 주로 이루마 피아노 곡을 틀어놓는데 기분탓인지 그녀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 보였어

#54 ◆i60rdQsoY1d 2019/03/04 23:51:40

아침 10시쯤 해운대에 도착했던 걸로 기억난다. 우리는 숙소로 가기엔 체크인이 2시부터이기에 먼저 바다부터 보러 가기로 했어. 바닷바람을 맞고 햇볕을 쬐며 그녀가 좋아할줄 알았지만 그녀는 밀려오는 바닷물에도 흠칫 놀랐다. 그러곤 바닷물에 잠기는 발을 보며 살짝 물장구를 치긴 했지만 즐거워보이진 않았어. 그 모습에 나는 약간 실망했다. 나 혼자 신나게 계획 짠 거 같잖아. 바보같이

#56 ◆i60rdQsoY1d 2019/03/04 23:53:25

내가 실망한 표정이었는지 그녀는 내게 와서 내 어깨를 톡톡 쳤어. 말 안 한게 있는데 그녀의 키는 155~156 정도였다. 내 키는 163전도야. 약간의 키차이가 나지? 아무튼 그녀는 나를 톡톡 치더니 까치발을 들고 내 귓가에 속삭였다. “바다 좋아요.”

#57 ◆i60rdQsoY1d 2019/03/04 23:55:43

>>52 >>55 봐줘서 고마워. 진짜 힘이 나. 앞으로도 열심히 쓸게 뭐라해야지. 그 말을 들으니 그녀가 마치 내 여동생같더라. 감정도 없어 보이는 애가 내 표정 하나 시무룩해졌다고 귓속말을 해주는게 너무 귀여웠어. 우리는 물속에 발만 담구고 같이 해안선을 걸으며 사람들 구경을 하다가 그녀가 뜨거운 열기에 괴로워해서 점심쯤에 근처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어.

#58 ◆i60rdQsoY1d 2019/03/04 23:58:26

그런데 밥을 먹으러 식당을 고를때 문득 궁금해졌다. 그녀는 병원 밥을 많이 먹지 않았어. 사실 뭔가를 맛있게 많이 먹는걸 못 본 거 같다. 나는 그녀에게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고 물었는데 그녀는 그냥 주는대로 먹는다고 했어. 나는 병원식은 맛없으니 자극적인 음식도 먹여주고 싶어서 근처 횟집? 같은데 들어가서 알밥이랑 해물라면을 시켰어.

#59 ◆i60rdQsoY1d 2019/03/04 23:59:33

사실 주문하면서도 만약 그녀가 해산물을 못 먹으면 어쩌나 했는데 그녀는 오히려 차분했다. 걱정한 내가 웃기게도. 그리고 음식을 받자 그녀는 해물라면을 뒤적거리며 말했다. “여기에 진주가 있었어.” 웬 진주?

#60 ◆i60rdQsoY1d 2019/03/05 00:01:16

혹시라도 거기에 진주가 있나 싶어서 봤지만 있을리가 없지. 그래서 나는 그녀를 추궁하면 그녀가 또 입을 다물 거 같아서 관심 없는 척 말했어. “옛날에도 그거 먹은 적 있어?”

#61 ◆i60rdQsoY1d 2019/03/05 00:02:54

그러자 그녀는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말했다. “있어. 옛날에 그 사람이랑 왔어. 진주반지를 숨겨뒀어. 너무 웃겼어.”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처음으로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더라. 뭔가 기분 좋은 생각이 나서 행복해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62 ◆i60rdQsoY1d 2019/03/05 00:04:26

그런데 나는 그 순간 그녀가 휙 다른 사람이 됐다는 걸 느꼈다. 그녀는 원래 말수가 적고 조용조용 말하며 나긋나긋하다 해야하나. 아무튼 부드러운 사람인데 저 말을 하면서 그녀는 점점 뭐랄까... 사랑에 취한 20대 여자 같았다. 게다가 늘 나에겐 존댓말을 썼는데 계속 반말을 썼어.

#63 ◆i60rdQsoY1d 2019/03/05 00:05:39

원래 병원같으면 다들 비상 걸려서 재빨리 진정제를 투여하고 그녀도 눈을 질끈 감고 맞았을테지만 나는 그녀의 그런 상황을 냅둬보기로 했다. 만약 그녀가 정말 기억장애나 인격장애라면 이 모든 언행에서 그녀에 대한 힌트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64 ◆i60rdQsoY1d 2019/03/05 00:06:38

그녀는 점점 또렷해진 목소리로 조잘댔다. 그 사람은 키가 컸고 달콤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그와 자신은 미래를 약속했지만 자신의 집에서 매우 반대해 그와 도망쳤다고. 그러고 그녀는 마지막에 눈을 감으며 말했다. “즐거웠지. 울산여행.”

#65 ◆i60rdQsoY1d 2019/03/05 00:09:07

울산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묻자 그녀는 지나간 과거를 추억하듯 말했다. “사실 별거 없었는데... 바람이 너무 좋았어. 미시령고개에서 마치 나를 집어삼킬 듯한 바람에 질식할 것만 같았거든. 공기는 넘쳐나는데 숨이 막혔어.” 나는 그걸 기억해두고 다음날 일정을 미시령고개로 바꿨다

#66 ◆i60rdQsoY1d 2019/03/05 00:11:08

사실 바람이라는 단어에서 그녀는 반응했다. 그렇다면 미시령 고개가 힌트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에게 더 생각나는 것을 말하게 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갑자기 창밖을 바라보더니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자신의 라면을 보곤 다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라면이 다 불었어요.” 다시 원래의 그녀로 돌아온 거였어

#67 ◆i60rdQsoY1d 2019/03/05 00:13:05

그녀는 숙소에 도착해서도 창밖만 바라보았다.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을 때도 있었지만 물어봤자 어차피 대답을 안 해줄 걸 알았기에 나는 뉴스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그러더라. “이상하네. 왜 그 뉴스가 안 뜨지?”

#68 ◆i60rdQsoY1d 2019/03/05 00:14:39

목소리가 그 무슨 섹시한 여성?의 목소리길래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니 분명 작은 테라스에 있는 의자에서 밖을 보던 그녀가 내 쪽으로 아예 몸을 돌리고 다리를 꼰 채 턱을 손으로 바치고 뉴스를 흥미롭게 보고 있더라. 나는 그 때 놀란 마음을 부여잡고 다시 다짐했다. 저 인격들은 다 원래 저런 사람이다. 하고 놀란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70 ◆i60rdQsoY1d 2019/03/05 00:16:16

그녀는 한쪽 입꼬리만 씩 올리며 웃었다. “왜 내가 정의구현한 뉴스가 안 뜰까? 응? 꼬마 아가씨.” 그녀의 말에 나는 리모컨을 만지작 거리며 어... 음... 이러며 뜸을 들였다. 그러자 그녀는 독백하듯 혼자 말했다. “내가 그 자들의 가슴에 구멍을 내줬어. 시체도 보란듯이 널어놨지. 그런데 어째서 나의 업적을 보고하지 않을까? 아직도 내겐 할일이 남아있나?”

#71 ◆i60rdQsoY1d 2019/03/05 00:20:18

>>69 레딧? 그게 뭐야? 내가 놀라서 그녀를 보자 그녀는 손으로 나를 총으로 쏘는 시늉을 하더니 재밌다는듯 혼자 웃더라. “꼬마아가씨. 너무 놀라지마. 너도 알잖아? 이 몸의 이름을.” 뭔가 평소 달라지던 성격중 이게 제일 특이해서 어덯게 반응해야하지 생각중이었는데 그녀는 자랑스럽다는듯 말했다. “그 이름도 찬란한 단죄자란다?”

#72 ◆i60rdQsoY1d 2019/03/05 00:22:32

내가 뭘 더 물어보기도 전에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옆에 있는 테이블로 엎어져버렸다. 깜짝 놀라서 달려갔더니 그녀는 잠들어 있었다. 사실 지금 정신이면 나는 너무 무서워서 그녀와 더이상 못 있겠다고 사표를 써도 이상하지 않은데 그 당시엔 내가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이 동생이라고 느낄만큼 의무감과 동정심이 컸다. 나는 그녀를 부축허며 침대에 눕혀주고 나도 잠들었다.

#74 ◆i60rdQsoY1d 2019/03/05 00:25:25

다음날엔 일정을 다 취소하고 바로 미시령 고개로 향했다. 그 당시엔 미시령 휴게소가 있었는데 거기에 바람 엄청 부는 거 알려나 모르겠다. 아무튼 거기에 가니 그녀는 한참동안 아무 말 없이 팬스를 잡고 바람을 맞았다. 가뜩이나 저체중인 그녀라 곧 쓰러지거나 날아갈 거 같아 조마조마했는데 그녀는 그 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더라. 그러더니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끅끅 소리도 못 내고 울었다. 항상 아이처럼 소리내며 엉엉 울던 그녀가 소리없이 우는건 처음봤다

#75 ◆i60rdQsoY1d 2019/03/05 00:26:58

>>73 봐줘서 고마워. 그녀는 한참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채 내가 사다준 코코아를 홀짝 거리며 마셨다. 나는 그녀가 진정되게 작은 소리로 클래식을 틀어놨었고. 한참 후에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간호사님. 저는 너무 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요.”

#77 ◆i60rdQsoY1d 2019/03/05 00:29:27

그녀는 제정신으로 또박또박 말을 했다. 불안한듯 그녀는 손에 들린 코코아를 만지작 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처음 병원에서 눈 뜨기 전 꿈을 꿨어요. 저는 긴 복도 시작점에 서있었는데 긴 복도엔 양 옆으로 문들이 많았어요. 방이 너무 많아서 어느 방에 들어가야할지 몰라서 한참을 헤매다가 출구를 찾아서 문을 열었더니 잠에서 깼어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내가 이틀이나 잤대요.”

#78 ◆i60rdQsoY1d 2019/03/05 00:32:31

>>76 고마워 “나는 그날 이후로 꾸준히 많은 기억과 목소리를 듣고 봐요. 어제는 두 명이 나를 찾아왔어요. 한 명은 자신을 떠난 사랑을 찾으며 울었고 한 명은 칼과 총으로 나에게 비키라고 협박했어요. 너무 무서워서 자리에 주저앉았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리니 해가 밝아오더라고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이 말해도 되는건가 고민하듯이. 나는 그녀의 손 위에 내 손을 포개며 말했다. 많이 힘들었구나. 미안해. 못 도와줘서. 그러자 그녀는 다시 입술을 꾹 다물며 눈물만 똑똑 흘리더라

#79 ◆i60rdQsoY1d 2019/03/05 00:34:59

그 후로도 그녀는 자신에게 들렸던 목소리, 그리고 스쳐가는 기억들을 말하며 괴로워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든 의문은 그거였다. 내가 아는 인격장애는 거의 성별이나 나이, 성격이 다른 인격들이 존재하는데 그녀는 시대까지 초월하고 있다. 심지어 국적도. 대표적인게 전날 본 킬러(그녀의 말로는 27살의 미국 출신), 깨어나서 난리친 귀부인(영국출신의 30대 귀족) 등등... 나는 이것을 듣고 그녀에게 화장실을 가겠다고 차에서 나와 의사에게 보고했다.

#80 ◆i60rdQsoY1d 2019/03/05 00:36:04

아... 들어주는 사람이 많아서 너무 고마운데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고 자려고 한다. 일어나서 다시 이을게. 이야기는 60%~70%정도 왔다. 나에게는 꽤나 길었던 시간이 중요 사건들만 짜집으니 얼마 안 되네.

#90 ◆i60rdQsoY1d 2019/03/06 00:43:24

늦어서 미안해. 내가 오늘 좀 바빴어. 일단 글을 쓰기 전 >>83 의 말처럼 미시령은 강원도고 울산이랑은 거리가 있지. >>86의 말대로 울산에서 그냥 도로 타고 쭉 올라가면 미시령이 나와. 네비게이션에 처보면 더 선명히 알 수 있다. 말을 안 해줘서 혼란을 만들었네. 나도 그녀에게 자세히 들은 건 아니지만 내 추측에도 미시령에서 울산으로 타고 내려간 코스가 아닐까 싶었다.

#92 ◆i60rdQsoY1d 2019/03/06 00:45:35

늦은 시간이라 봐주는 사람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아무튼 의사에게 보고한 결과 그는 그저 그녀가 타인에게 속마음을 얘기했다는 거에 기뻐했다. 그는 나에게 잘하고 있다며 칭찬했고 앞으로도 남은 시간 그녀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다. 정말 그게 다여서 이 인간이 일을 똑바로 하는 건지 의심스러웠을 정도

#93 ◆i60rdQsoY1d 2019/03/06 00:47:00

>>91 오, 고마워. 늦은 시간인데 나는 전화를 끊고 차에 돌아갔지만 그녀는 잠에 들어있었다. 코코아를 꼭 쥔채 잠든 그녀가 너무 안쓰러웠어. 만약 정말 인격장애라면 자신을 잃어가는 그 기분. 그리고 자신이 한 적없는 기억들을 타인에게 듣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하고

#94 ◆i60rdQsoY1d 2019/03/06 00:48:56

정말 우습지만 여행에서 얻은 소득은 이게 전부였다. 그녀는 남은 일정동안 다른 특이한 언행은 하지 않았어. 다만 나를 언니처럼 의지했고, 어느순간 간호사님 이라는 호칭에서 간호사언니로 호칭이 바뀌었다. 그걸로도 난 좋았어. 그녀의 신뢰를 얻었으니까. 휴가를 다녀와서 우리가 함께 직은 사진을 인화하여 그녀의 병실에 붙여주었다. 그녀는 이제 나와 있으면 예쁘게 미소를 짓고는 했어.

#95 ◆i60rdQsoY1d 2019/03/06 00:50:36

그렇게 시간은 흘러 가을이 되었다. 그녀는 나와 처음 만난 날의 그 꾀죄죄한 가디건을 다시 꺼내 입었다. 나는 문득 이 가디건은 왜 안 버리나 싶어 물어봤다. 이 가디건은 어디서 난 거냐고. 그러자 그녀는 살짝 인상을 쓰며 말했다. “기억은 안 나요. 그냥 엄청 소중하다고 느껴져서 그냥 입고 있어요. 뭔가 버리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아서.”

#96 ◆i60rdQsoY1d 2019/03/06 00:51:59

나는 그 가디건을 버리고 새 것을 사자고 말하진 않았어. 그녀의 표정이 매우 그립다는 표정이었으니까. 나는 화재를 돌려 우리 나중에 단풍이 곱게 물들면 함께 단풍 구경을 가자고 했다. 그녀는 좋다며 웃었어.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99 ◆i60rdQsoY1d 2019/03/06 00:55:16

나는 가끔 그녀와 취미를 함께했다. 사실 그녀는 내가 하는걸 가만히 지켜보다 나를 따라 하나씩 하는 수준이었어.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는 꽤나 많은 작품을 알았다. 내 취미는 독서와 산책인데 그녀는 내가 책을 읽는걸 옆에서 갸웃 거렸는데 어느 날 이런 말을 했다. “오필리아는 참 안타까워요. 하지만 그만큼 많은 영향을 준 여인인 거 같아요.”

#100 ◆i60rdQsoY1d 2019/03/06 00:57:01

>>97 >>98 기다려줘서 고마워. 나는 깜짝 놀랐어. 내가 읽던 책은 햄릿이었거든. 그것도 특별한 구간은 햄릿에게 아버지가 살해되자 강물에 몸을 던진다는 부분이었다. 내가 예전엔 에세이 집같은 걸 읽다가 장르를 바꾼 건데 그녀는 오필리아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줄줄 토해냈어.

#102 ◆i60rdQsoY1d 2019/03/06 00:58:27

나는 그녀에게 오필리아가 문학과 예술에 끼친 영향에 대해 듣고 그녀의 문학적 감수성과 예술적인 지식에 감탄했다. 그리고 세익스피어의 작품에 대해 많은 토론을 했어. 놀랍게도 그녀는 세익스피어의 거의 모든 작품을 외우다시피 알더라. 심지어 대사마저도 정확히 암기했어. 자신의 태생이나 존재자체도 모르던 그녀가 말이다.

#104 ◆i60rdQsoY1d 2019/03/06 01:01:10

그녀의 변화에 의사들은 감탄했지. 그리고 그녀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했다. 그녀는 혼자 면담을 받기는 무서워해서 내 손을 꼭 붙잡고 의사와 면담을 진행했어. 그 중 미술치료에서 그녀가 생각하는 여성?상에 대해 그리는데 그녀는 하나의 그림이 아닌 열댓장의 그림을 그려냈다. 나는 그 그림들을 보며 물었어. 이 여자들은 누구냐고

#105 ◆i60rdQsoY1d 2019/03/06 01:02:58

그러자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중세시대 유럽 드레스?를 입은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리 앙투아네트.” 나와 의사는 직감적으로 눈치를 챘다. 그녀가 그린 그림들은 대부분 가상의 인물 혹은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이었다.

#106 ◆i60rdQsoY1d 2019/03/06 01:04:16

나는 상담이 끝나고 그녀와 도서관을 가고, 함께 독후감도 써보고 그 책들에 대해 수많읂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의 기억은 그녀 자신의 것이 아닌 많은 등장인물들을 향해 있었고, 그녀는 자신의 기억이 아니라는 것에 슬퍼했어.

#107 ◆i60rdQsoY1d 2019/03/06 01:06:03

겨울이 다가올수록 그녀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키워갔다. 삶의 의지조차 없던 그녀가 자신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은 우리에겐 희소식이었디. 그리고 매우 추웠던 겨울, 나는 붕어빵을 사들고 그녀에게 찾아갔어. 그런데 그녀는 병실 사람들이 다 퇴원하고 없던 그 날, 목을 멘 채 나를 맞이했다

#108 ◆i60rdQsoY1d 2019/03/06 01:08:15

나는 순간 생각이 정지됐어. 왜? 어째서? 우리는 먾은 시간을 함께하고 그녀를 찾기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나? 이내 정신이 확 들고 난 비명을 질렀어. 회진을 돌던 의사도 급하게 찾아와 그녀를 내려놨지. 다행이도 그녀는 살아있었다. 기절한 것 뿐이라고. 그녀가 목을 메단지 1분도 안 돼서 내가 발견한 거였어. 하지만 그녀는 또다시 깊은 잠에 들고 말았다.

#109 ◆i60rdQsoY1d 2019/03/06 01:15:53

그녀는 서툰 글씨로 유서까지 써놓았어. 그 유서에 적힌 내용은 내가 그대로 적어놨다. - 유서 언니가 이 유서를 제일 먼저 발견하면 좋겠어요. 아, 그냥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저에겐 가족같은 사람이 언니밖에 없잖아요. 난 말이죠. 언니 덕분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물론 제 머릿속과 꿈속에서요. 그리고 언니가 나에게 말했죠? 나는 어쩌면 배우였을지도 모른다고. 사실 그 말을 듣고 며칠 후 꾼 꿈에서 나는 예쁜 드레스를 고르며 어떤 사람들에게 화장을 받고 있었어요. 그리고 얼굴이 안 보이는 사람들이 꽃을 들고 찾아와서 말해요. “이번 연극도 기대할게, 부장.” 나는 그날 꿈에서 깨고 한참 울었어요. 그리고 알았어요. 나는 내 연극부 부장이었고 내가 대본을 쓰고 내가 무대에 나섰어요. 사실 이게 내 기억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너무 그리워서 내 거라고 믿고싶어요. 하지만 내가 내 자신으로 돌아가기엔 너무나 늦었는걸요. 나는 내 연극 주인공들과 동화됐어요. 그녀들은 날 놓아주지 않아요. 그녀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배신자는 용서하지 않겠다고 매일 나를 찾아와요. 며칠 전엔 언니 등 뒤에도 매달려 오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녀들이 원하는대로 함께 영원히 꿈속에 살려고 해요. 언니와 현실을 사는 것도 좋지만, 난 여러 모습의 나도 사랑하는걸요. 내가 죽거든 화장해서 강가에 뿌려주세요. 만약 운좋게 살아남아도 내 기나긴 꿈이 지속되도록 도와줘요. 고마웠어요 언니.

#110 ◆i60rdQsoY1d 2019/03/06 01:17:19

그녀는 혼자서 차근차근 모든 기억을 떠올렸지만 그게 본인의 기억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훗날 의사에게 들었지만 이 또한 사고의 휴우증으로 생기는 기억장애의 케이스 중 하나라고 하더라. 그녀는 자신의 기억과 연극을 했던 주인공들과의 기억이 동화되어 이도저도 선택하지 못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12 ◆i60rdQsoY1d 2019/03/06 01:19:40

나는 그날 한참을 울었다. 지켜주지 못 한 미안함과 그녀의 고충에 대해 한 번만이러도 더 물어보고 관심을 가져줬더라면 그녀가 이렇게 됐을까 하고. 그녀의 처분에 대해 의사들의 토의가 이뤄졌다. 그녀를 계속 살리자는 의사들은 매우 적었다. 말했다싶이 그녀의 생계는 병원의 지원하에 이뤄진다. 그러니 좋게 보는 시선이 적을 수밖에. 결국 그녀는 잠에 빠진지 4일후, 그녀의 유서에 적힌대로 우리는 그녀의 영원한 여행을 도와주게 되었다.

#114 ◆i60rdQsoY1d 2019/03/06 01:21:49

우리는 그녀를 보내주기 전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더 지문조회를 했지만 역시나 지문들이 다 망가져있어서 찾기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나중에 질문할까 말하지만 그 당시 정보찾기 기술은 지금과는 달리 매우 낮은 수준이었고, 치아나 다른 것으로 돌려봐도 찾기 힘들었다. 우리는 그녀를 위해 근처 성당에서 신부님과 수녀님을 불러 함께 그녀의 여행을 배웅했고 안락사시켰다

#115 ◆i60rdQsoY1d 2019/03/06 01:23:28

그녀의 장례식은 적은 사람들과 함께했다. 그녀의 바램대로 화장을 시켜 강가에 편히 쉬도록 해주었다. 그녀의 소품들을 정리하며 나는 그녀와의 사진들 또한 함께 태웠다. 그녀의 물건들은 매우 검소했고, 그녀라는 존재가 이 세상을 뜬지 겨우 이틀만에 그녀의 흔적은 이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116 ◆i60rdQsoY1d 2019/03/06 01:24:51

나는 그 사건 이후로 대인기피증까지 생겨 출근에 지장이 생겼다. 지나가는 검은 생머리의 젊은 여자만 봐도 그녀로 착각했고 꿈에서도 잡히지 않는 그녀를 쫓아 연신 사과를 했다. 그만큼 죄책감 또한 느끼며 살았다. 결국 난 그녀가 죽은지 2주만에 사직서를 내고 간호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117 ◆i60rdQsoY1d 2019/03/06 01:26:37

아직까지 우리는 그녀에 대해 알지 못 한다. 그녀의 이름, 나이, 살던 곳,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등. 자잘한 일들은 다 스킵하고 중요한 부분만 쓰다보니 얼렁뚱땅인 것 같지만 아직도 난 그때 당시 동료들과 연락하며 그녀에 대해 얘기한다. 우리는 그녀가 연예인이 아닌 학교 동아리를 하던 예쁜 학생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118 ◆i60rdQsoY1d 2019/03/06 01:28:24

내가 이 글을 마무리하며 생각하는 것은 그녀가 살아있었고, 그녀를 한 사람이라도 더 생각해주고 그녀의 아주 짧았던 추억을 공유하고자 함이다. 그녀의 존재는 이 세상에서 사라진지 오래지만 그녀는 확실히 이 곳에 살았고, 나와 함께했던 동생같은 아이었다. 그냥 뭔가 이 두서없던 내 일기를 읽어줘서 고맙다. 나는 이제 어머니와 함께 작은 카페를 운영하며 살고있다. 궁금한 거나 하고픈 말 있으면 남겨줘. 시간 될 때마다 확인하러 올게.

#120 ◆i60rdQsoY1d 2019/03/06 01:31:17

>>119 우리 병원은 경찰 측에도 협조를 요구했었고 우리 지역엔 그녀에 관한 수소문을 했었다. 하지만 그녀에 관한 실종신고도 없었고, 간혹 그녀와 비슷한 실종신고를 받아 그녀의 사진을 보여주면 자신들의 딸이 아니라는 경우가 많았어.